![[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6>한스 큉(상)](//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1941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한스 큉(상) 교회 기초는 제도 조직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의 고백 열정과 논쟁의 신학자한스 큉(Hans Kung, 1928~ ) 신부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신학적 연구를 열정적으로 수행하면서 많은 저서를 집필한 신학자다. 우리 시대에 중요하게 부각된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를 탐구해 신론, 그리스도론, 교회론, 종말론, 신학적 방법론, 세계 윤리, 세계 종교들, 그리고 종교와 문학의 관계를 다룬 저작을 남겼다. 큉의 저서가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되고 수많은 사람에게 읽히면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학자가 됐다. 우리말로 번역된 단행본만 해도 스무 권에 가깝다. 그는 또 다른 이유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신학적 이견 때문에 교회 교도권과 공개적인 갈등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이에 따라 그를 평가하는 관점도 열렬한 지지와 격렬한 비판으로 엇갈린다. 이런 맥락에서 1993년 그의 6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된 신학 논총에서 "한스 큉은 20세기 신학에서 하나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평가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한스 큉 신부의 생애를 단계별로 살펴보면서 그의 신학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조명해본다. 한스 큉은 1928년 스위스 수르제에서 태어나 루체른에 있는 김나지움(인문계 중등교육기관)에서 수학했다. 전통적인 가톨릭 분위기에서 성장했던 큉에게 김나지움 교육은 근대 문학과 예술은 물론 근대 정신 전체에 열린 자세를 갖게 해줬고, 같은 학교에서 수학하는 개신교, 유다교 학생들 간 교류를 가능케 해줬다. 이런 교육은 나중에 큉이 근대 정신과 화해를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교회일치와 타 종교와 대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는 데 씨앗이 됐다. 1948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큉은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 진학해 1955년까지 철학 과정과 신학 과정을 이수한다. 이 기간 예수회가 운영하는 독일어권 신학생을 위한 신학원 '게르마니쿰'에 머물면서,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정신에 따른 엄격한 사제 양성 교육을 받는다. 그는 처음에 당시 신스콜라 신학과 규율에 철저히 순응하는 자세로 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황청과 신학의 경직성, 신학원의 일부 융통성 없는 규율에 의문을 품으면서 비판의식을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 로마에서 교육이 끝날 무렵인 1954년 큉은 사제품을 받는다. 로마에서 신학 기본 과정을 마친 큉은 프랑스 파리로 자리를 옮겨 소르본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1955~1957). ▨개신교 신학 거장 칼 바르트와 의화론 큉의 박사학위 논문 「의화론」은 스위스 출신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K.Barth, 1886~1968)의 의화론과 트리엔트공의회에 나타난 가톨릭의 의화론을 비교한 것이다. 큉은 이 논문에서 두 의화론이 근본적으로 일치하며, 차이는 교회 분열을 일으킬 만큼 큰 것이 아님을 밝혀냈다. 가톨릭과 개신교 벽이 아직 매우 높았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상황을 고려할 때, 종교개혁 시발점이 됐던 의화론에서 양편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 큉의 논문은 신학계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된다. 칼 바르트는 큉의 논문에 "만일 당신이 당신 논문의 두 번째 부분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라고 전개한 의화론이 실제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라면, 나는 나의 의화론과 당신의 의화론이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한편 칼 라너(K.Rahner, 1904~1984) 신부는 큉의 의화론이 가톨릭의 통상적인 신학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론 가톨릭 의화론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큉은 칼 바르트가 타계할 때까지 그와 신학적, 인간적 교류를 지속했다. 큉 스스로 바르트에게 받은 신학적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바르트의 용어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소위 무한한 차이'라고 표현되는 하느님께 대한 엄청난 경외심 △'항상 더 크신 하느님'은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 △인간은 이 계시 사건을 '오직 신앙을 통해서 적합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교회론 연구 한스 큉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스위스 루체른으로 돌아와 한 성당에서 1년 반(1957~1959) 보좌신부를 지낸 뒤 본격적으로 학문 활동을 시작한다. 독일 뮌스터대 가톨릭 신학부에서 교의신학 조교로 있다가 1960년 독일 튀빙겐대 가톨릭 신학부 교수로 초빙받아 부임했다. 1964년에는 동 대학 부설로 새로 설립된 교회일치신학연구소 소장 직책을 겸임했다. 큉은 같은 대학의 개신교 신학부 교수들, 특히 신약성서학자 에른스트 캐제만(E.Kasemann, 1906~1998)과 만남을 통해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을 적극 수용하게 되는데, 이는 향후 큉의 신학, 특히 교회론과 그리스도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큉의 튀빙겐대 교수 부임 2년 후인 1962년 10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고, 그는 공의회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이 시기 그는 교회론에 집중하며 「공의회와 재일치. 쇄신, 일치에로의 부름」(1960), 「교회의 구조들」(1962), 「공의회에서의 교회」(1963) 등을 출판했다. 큉의 교회론 연구는 1967년에 출간한 「교회」에서 정점을 이룬다(이 책의 축소판 「교회란 무엇인가」는 1978년, 원저는 2007년 우리말로 출판됐다). 그는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의 연구를 종합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근거로 교회를 이해하고자 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 공동체로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교회의 본질적 요소다. 교회 기초를 이루는 것은 고유한 예식이나 제도, 특정한 직무를 포함한 고유한 조직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고백이다. 예수의 핵심 관심사는 하느님 나라였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 공동체인 교회는 당연히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이어가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전령(傳令)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철저히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이 아니라 종말에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고, 강제와 무력을 배제한 헌신적 봉사를 수행하며, 죄를 멀리하더라도 결코 죄인을 내치지 않는 자비의 공동체가 돼야 하고, 자신의 업적에 의존하지 말고 철저히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큉은 교회가 신앙인 공동체임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를 교계제도와 동일시했던 공의회 이전 시각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과거에 소홀히 다뤄졌던 모든 신자의 보편 사제직을 부각시킨다. 또한 교계 직무는 성령의 다양한 카리스마 중 하나로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봉사 직무로 이해한다. 교황직에 관해서는 교회론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면서 그것은 교회 일치를 위한 봉사로서, 교황 수위권은 법적 권력이나 지배가 아니라 '봉사 수위권''사목 수위권'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20세기 교회론의 대가 콩가르(Y.Congar, 1904~1995) 추기경은 큉의 교회론이 이룩한 가장 큰 공헌은 바오로 신학에 근거해 교회의 카리스마적 차원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과거의 교회론이 교회를 가시적인 머리인 교황으로부터 연역해서 생각했지만, 큉이 교회 발달에 대해 먼저 관심을 두고, 교계제도와 교황을 마지막에 다룬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콩가르는 큉이 교회 전통과 직무에 대해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교부들의 교회론이나 교회의 성사적 측면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교회 전체의 사도적 계승만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 직무자를 통한 사도적 계승의 측면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큉의 교회론에 찬성 못지않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비판의 목소리에는 교황청 신앙교리성도 포함돼 있었다. 1967년 12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조사를 위한 '대화'가 있기 전에 이 책의 보급과 번역을 금지한다고 통보했고, 그 다음 해 9월 큉을 소환했다. 하지만 큉은 공정한 '대화'를 위한 조건이 선결돼야 응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의견조율을 위한 양편의 협상이 시작됐다.교황 무류성 논쟁 큉은 「교회」에서 전개한 교회론의 실천적이며 비판적 측면을 1968년 「진실성,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에 담아 출간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황 무류성 교의 선포 100주년을 맞아 1970년 출간한 「무류라고? 하나의 질문」에서 그의 비판은 실천을 넘어 교의 문제로 향한다. 큉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유한성과 역사성 때문에 무류적 문장이나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절대적 무류성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하는 것으로서 공의회도, 교도권도 무류적 문장을 만들 수 없다. 교회가 진리 안에 머물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류적 문장이나 제도와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교회는 인간들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약속 덕분에 복음의 진리 안에 유지된다.' 큉의 주장은 가톨릭 신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칼 라너는 1971년 한 신학 잡지 기고문을 통해 단호한 반대 의견을 밝힌다. 교회가 하느님 계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개념이나 문장을 통해 참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큉이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나 '회의적 철학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공격한다. 같은 해에 신앙교리성은 조사 대상에 「무류라고? 하나의 질문」<사진>도 추가했고, 독일 주교회의도 이 책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구장, 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1986년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1992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신학 박사학위 과정 수료 ▲1996년 가톨릭대 대학원 교의신학 전공. 신학박사 ▲저서 : 「일곱 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성사 각론」,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등 ▲번역 : 「희생양은 필요한가?-성경에 나타난 폭력과 구원」 cpbc2013.09.03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3> 에드워드 스힐벡스 (상)](//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54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에드워드 스힐벡스 (상)관념적 신학을 인간 경험 중심으로 이끈 선구자 에드워드 스힐벡스 1979년 모습.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을 연구하고, 신앙 전통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신학을 연구했다.에드워드 스힐벡스(Edward Schillebeeckx, 1914~2009)는 교회 역사상 변화가 극심했던 20세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신학적 방법론에서뿐만 아니라 신학적 논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20세기 신학에 많은 자극을 줬으며, 신학 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오늘날까지 그가 신학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6세때 부터 복사 서미 사제 꿈꿔 스힐벡스는 1914년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 엉벨스에서 14형제 중 6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무관으로 엄격하지만 자녀들과 토론하고 대화하기를 즐기며 가족 간 소통을 중요시했고, 가족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14명의 자녀들을 키우느라 늘 바빴다. 그럼에도 그의 부모는 형제들이 함께 돕고 서로에게 배우도록 하면서 14남매를 키웠다. 이처럼 좋은 토양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6세 때부터 복사를 서기 시작했는데 복사 서는 일을 아주 좋아했다. 특히 영성체 예식 때 종을 치면서 '나도 커서 사제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나는 행복한 신학자」에서 회고했다. 형제들과 자유롭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세까지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십대 초반의 가난한 아이들이 그 학교에서 일했는데, 학교측은 스힐벡스에게 이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한 소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노동자 문제에도 눈을 뜨기 시작해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글을 읽고 사회 문제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도미니코회 입회 그의 맏형은 예수회 신부로 인도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영향을 받은 스힐벡스는 자신도 형과 같은 길을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 예수회 교육이 너무 엄격했기에 스힐벡스는 1934년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그는 도미니코 성인의 생애를 읽고 성인의 기쁨, 세상을 향한 개방적인 자세, 강론을 중심으로 한 신학 연구 등에 감동을 받고 이 수도회를 선택한 것이다. 수도회에서 2년의 수련기를 마친 스힐벡스는 루방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의 신학 여정은 20세기 가톨릭교회의 변천사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신학 경향은 1965~1967년을 기점으로 명백하게 구분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에 현상학과 인문과학을 접목한 열린 토미즘 노선을 지닌 전반기와 인간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험신학을 창출해 낸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새로운 신학을 접하며 연구 매진 스힐벡스가 신학을 시작한 시기는 사변론적인 신 스콜라 신학, 신 토미즘이 여전히 팽배한 가운데 신학을 갱신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는 루방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맡은 드 페터 신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현상학뿐 아니라 당시 토미즘과는 다른 신학적 방법론을 배웠다. 특히 칼 아담의 신학을 소개받았는데 이는 교의신학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과 역사비평을 통해 강생하신 인간 예수, 인성을 지니신 예수, 인간의 심리적 차원 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방법론의 그리스도론이었다. 교의를 중심으로 한 사변론적인 그리스도론이 아닌 이 그리스도론은 당시 가톨릭 신학계에선 상당히 획기적이었다. 스힐벡스는 신학과정을 마친 후 박사학위 준비를 위해 1945년부터 2년간 파리에서 보냈다. 이 기간에 그는 숄슈아 도미니코 공동체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훗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이브 콩가르, 마리 도미닉 쉐뉴를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접했다. 스힐벡스는 이들을 통해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시기는 당시 로마로부터 강의 금지령을 받은 쉐뉴 신부의 개인적 도움으로 역사비판 방법론을 실천한 때였다. 그리고 소르본대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수학한 기간이었고, 노동 사제들과 만난 기간이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스힐벡스는 루방대에서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1951)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는 성사론을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신학계에 아주 좋은 반향을 일으켜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성사신학 쇄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힐벡스는 1958년 루방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네덜란드 니메그대에서 1983년까지 교의신학과 신학의 역사 등을 강의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구원의 역사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 생소한 것이어서 이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학 쇄신의 필요성을 확신한 그는 여러 어려움에도 이 길을 용기 있게 나아갔다. 다행히 학생들과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은 그를 옹호하고 지지했다. 스힐벡스는 1962년 요한 23세 교황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연설을 듣고 깊은 안도의 숨을 쉬었는데, 교황께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신앙 핵심이 담긴 교회 가르침, 즉 교의(dogma)가 있지만 교의 내용은 내용이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방식이기 때문에 이에 쇄신이 있어야 함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네덜란드 주교단의 공식 대변인으로 적극적으로 공의회 준비를 했다. 그는 공의회가 신학을 쇄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칼 라너, 이브 콩가르, 마리 도미닉 쉐뉴에 의해 쇄신된 신학이 인정받는 계기가 돼 자유롭게 신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그는 전반기에 「계시와 신학」, 「하느님과 인간」, 「결혼은 성사다」, 「세상과 교회」 등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가 신학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신학 연구 방향 전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 네덜란드 교회에서의 경험과 미국 여행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경험, 그리고 철학자 리쿼와 가다머의 영향은 그에게 현대사회, 그리고 인간의 경험과 직접적 대화를 시도하게 한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 방향 전환은 「하느님 인간의 미래」(1969)에 잘 드러난다. 이는 토미즘 신학과 결별을 의미한다. 교의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 경험을 살펴보는 연역적 방법에서, 인간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 경험을 밝히기 위한 도구로써 교의 개념을 살펴보는 귀납적 방법으로 자신의 신학 연구 방법을 바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학하는 방법을 두고 "인간의 경험, 크리스천의 공동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즉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을 연구하고, 신앙 전통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후반기의 대표적 저서로는 삼부작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교회」다. 스힐벡스는 일반 신자들이 읽을 수 있는 신학서적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세상과 교회와 관계, 세속화 현상 속에서 신앙 문제 등에 관한 그의 신학적 견해는 일반 신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65년 라너, 콩가르, 큉과 함께 '콘칠리움'(Concilium)이라는 신학 전문잡지를 만들어 새로운 신학을 전파하고자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보수적 성향의 신학자와 사목자들로 인해 1968ㆍ1976ㆍ1984년 세 차례에 걸쳐 교황청으로 불려간 그는 신학의 정통성 여부에 대해 조사를 받았으나 강의 금지판결을 받지는 않았다. 첫 소송에서는 칼 라너가 혼신을 다해 그를 변호해줬다. 특히 사제직 문제, 교회론에 관한 진보주의적 성향으로 교황청의 의심을 받았지만 그의 신앙에는 아무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다만 찬성하지 못하는 몇 가지 점이 있다는 지적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유럽 사회와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네덜란드의 영광스러운 명예상인 '에라스무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관념적이고 교의 중심적이던 신학 분위기로 신앙 표현이 교리 공식에 고정됐던 교회와 세속화, 현대화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사회 가운데서 적합한 신앙 표현과 가르침을 위해 노력한 신학자다. 그는 신앙 경험이 살아 있는 경험이 되고 교회와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려고 성경뿐 아니라 교회 전통을 통해 내려온 가르침을 현대인에게 맞도록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상황 신학자'로 볼 수 있다. 김미정 수녀 ▲1978년 고려대 졸업 ▲198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81년 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입회 ▲2000년 프랑스 파리 예수회대 교의신학 전공. 신학박사 ▲2001~현재 파리 예수회대 교수 ▲논문 : 「타 종교와의 관계-바티칸공의회 : 한시작의 시작」 「한국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창조주 하느님 개념」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 : 유스티노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저서를 중심으로」 ▲저서 : 「죄와 조화」 「평화와 폭력 가운데」 「이냐시오 영성의 식별과 선교」 「전통의 좋은 사용」 「은총론」 cpbc2013.08.06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5>거리미사와 성체성사](//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5823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거리미사와 성체성사예수님 희생 기억하는 미사, 사회적 약자에게 눈 돌려야 지금 이 땅 곳곳에서 길거리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작은 고을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서울시청이 보이는 대한문 앞에서, 한강 상류 두물머리 강가에서, 청춘의 상징이었던 통기타를 제조하는 콜트콜텍공장 한 모퉁이에서, 그렇게 거룩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거룩함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거룩함'이 참 익숙하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에게도 거룩함을 수식하고, 성경ㆍ성당ㆍ성가처럼 책과 장소와 음악에도 거룩함을 수식하고, 성품ㆍ성직자ㆍ성인처럼 사람과 직분에도 거룩함을 수식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과 피에도 '성체'와 '성혈'처럼 거룩함을 수식한다. 그러나 익숙한 거룩함은 더는 거룩함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 발에 밟힌 그곳, 자동차 소음과 수많은 행인의 분주함으로 어지러운 그곳, 무심히 흐르는 강 주변에 잡초가 제멋대로 자란 곳, 기계소리로 어수선한 곳, 그곳을 우리는 거룩한 곳, 곧 성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서 부르는 노래를 성가라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읽는 하느님 말씀을 성경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 모인 이 사람 저 사람을 모두 성도(聖徒)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이뤄지는 행위를 성찬례라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나누는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이라 할 수 있을까? 희생이란 말의 라틴어 어원은 '거룩함을 행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성(聖)과 속(俗)은 같은 내용의 두 이름인 셈이다. 거룩함은 희생을 구성하고, 행동은 거룩함과 짝을 이룬다. 우리는 그 전형을 성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서 거룩하기도 하겠지만, 그분 희생 때문에 거룩하다. 이웃을, 그것도 보잘것없는 이를,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다니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스스로 내어놓는 그 희생 때문에 거룩하다. 세상이 내버린 이들, 세상이 무능하다고 낙인 찍은 이들, 거추장스럽다며 사라져줬으면 바라는 이들, 그 보잘것없는 이들 가운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맡기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렸기에 거룩하다. 희생이 없는 거룩함은 단순한 상징이며 표지에 불과하다. 상징과 표지는 실재가 아니다. 전통적 교리로 따지자면 성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그 희생(거룩한 행위)을 기억하며 그 희생에 동참하고 동행하지 않는 성찬례는 성찬례(성사)가 아니다. 우리들의 상징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가 기억할 예수님은 누구일까? 우리를 위해 당신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 우리와 모든 이를 위해 피 흘린 예수님, 그 예수님이 우리가 기억할 예수님 아닌가. 그리고 그 예수님은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다니며, 병들어 누워있고 감옥에 갇힌 이",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 사회적 약자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당부하신 최후의 유언은 떠올려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당신 몸을 내어주고, 피를 흘리신 그것을 우리보고 계속해달라고 당부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겉모습으로만 성과 속을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전국 방방곡곡 성당에서 성음악과 함께 성스러운 미사가 매일 봉헌된다. 또한 방방곡곡에서 예수님의 벗들은 배고프고 목말라하며, 헐벗고 떠돌며, 아파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예수님의 벗을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를 신기한 듯 바라보거나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미사를 길거리에서 하느냐"고 마뜩잖아 한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한다"(「교회헌장」 8항).퇴사자22012.09.11
![[부활특집] 새 생명 품은 흙에서 부활을 일구다](//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5147_1.1_titleImage_1.jpg)
[부활특집] 새 생명 품은 흙에서 부활을 일구다 생명의 흙- 천주교 농부학교 생명농업 실습현장에서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는 성경구절처럼, 하느님을 따라 농부가 될 준비를 하는 예비 농사꾼들이 있다. 이들은 흙에서 새 삶의 부활을 기대한다. 왜 농부일까? 이들은 한결같이 "생명이신 주님 뜻에 따라 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땅을 일구는 농부의 삶을 통해 자연에서 하느님 모습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우리농운동본부(본부장 조해붕 신부)가 주관하는 귀농학교인 천주교 농부학교 제8기 학생 30여 명은 화창한 주말인 16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서울 우리농 실습농장에서 농사 준비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이 흙에서 발견한 것은 생명이었다.봄 햇빛을 받은 새싹들이 흙 속에서 깨알 같은 얼굴을 내밀고 있다.#생명을 품고 부활하는 흙 농부학교 학생들은 3월 초부터 매주 두 차례 이론수업만 받다 이날 처음 들판에 나왔다. 목장갑을 끼고, 삽과 곡괭이를 들었다. 화정동 134번지에 있는 1752㎡ 실습장은 봄이 완연했다. 그동안 쌀쌀했던 낮 기온이 이날은 섭씨 13도를 넘었고, 햇살마저 눈부셨다. 점퍼를 입은 예비 농부들이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초보 농사꾼들을 불러 모은 이 땅은 서울 우리농이 물류센터를 지으려고 매입했다가 계획이 바뀌는 바람에 빈땅으로 남은 곳이다. 얼마 전까지 인근 화정동본당 신자들이 주말농장으로 이용했다. 농부학교 학생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솜씨는 어설펐지만 땀을 흘려가며 곡괭이질을 했다. 주말농장이었지만 큰 돌과 자갈이 많아 일일이 골라내야 했다. 건축 폐기물과 쓰레기도 많았다. 겨우내 흙 속에 숨어 있다가 봄 햇살을 받고 올라온 시금치를 뽑는 일은 여성들 몫이었다. 농부학교 1기 출신 정지양(베드로, 농부학교 전 운영위원장)씨와 송인섭(안드레아) 운영위원장 등 선배들이 초보 농사꾼 멘토를 자청하고 나섰다. 이날 담당교사로 나선 박정국(마르티노, 5기)씨가 "학생들에게 개인 텃밭을 분양하고, 동문을 위한 공동작물도 심을 계획"이라고 하자 학생들은 자신의 텃밭이 생긴다는 기쁨에 힘 든 줄도 모르고 구슬땀을 흘렸다. 얼마 시간이 지나자 초보 농사꾼들이 "허리가 아프다" "팔이 아프다"며 엄살을 떨었다. 선배들은 "한 번에 힘 다 쓰지 말고 여유를 가지세요"하고 후배들을 다독였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점심시간. 하늘ㆍ땅ㆍ똥ㆍ호미 등 모둠별로 자리를 펴고 앉은 이들은 각자 싸온 김밥과 주먹밥, 고추장 비빔밥, 나물 등을 나누며 즐겁게 식사했다. 삼겹살을 굽는 모둠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런 게 오병이어 기적이 아니겠느냐"며 웃음 지었다. 들판 식사에 농주(農酒)인 막걸리가 빠질 리 없다. 시원한 막걸리가 몇 순배 도니 들녘 농부 모습이 따로 없다. 8기 수강생 김홍진(서울 쑥고개본당 주임) 신부는 "땅은 세상의 모든 더러움까지 겸손하게 품으면서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며 "땅을 일구는 농부들 마음속에서 하느님 뜻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종대(시메온, 64, 서울 당산동본당)씨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이번 농사실습이 첫 농사인 셈"이라며 "겨울을 이겨내고 올라온 쑥과 풀을 보니 하느님이 주신 생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흙의 넉넉함을 배워야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흙(땅)을 먼저 만드셨다. 흙에서 나온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황창연(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신부는 환경에세이집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에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흙의 부드러움, 따뜻함을 느끼고 만물을 길러 내는 흙의 넉넉함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느님이 공짜로 주신 땅을 사고팔기 시작하면서 땅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인간이 삶의 여유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황 신부는 "심리학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도 흙을 밟지 않는 사람들 정신을 분석한 결과, 50% 정도가 이상 증세를 보였다"며 흙이 인간의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겨울 매서운 추위에 웅크리며 사순(?)을 보낸 흙은 부활 즈음에 기지개를 켠다. 햇살과 바람이 따듯해질 이 무렵이면 '예수님 부활을 축하하듯' 땅속에 있던 생명도 몸을 일으킨다. 키 작은 잔디와 이끼들이 먼저 깨어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면, 뒤 이어 매화와 개나리, 벚꽃 등 봄꽃이 추임새를 넣는다. 시인 안도현은 "제비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 이 들판에 나오너라. 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 영차 어기영차 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보아라"('봄')하고 농부의 손을 예찬했다. 봄은 거저 오는 게 아니다. 농부들이 들에 나와 흙 묻은 손으로 당겨오는 것이다. 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흙은 생명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조은일2013.03.27
![[생활 속의 복음] 예수 부활 대축일 (요한 20,1-9)](//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5042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예수 부활 대축일 (요한 20,1-9)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예수 부활 대축일이다. 우리를 위해 오셨고 사셨으며,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모든 믿는 이들과 더불어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축복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도드린다. 우리에게는 공통된 꿈이 있다.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없으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서 언제까지나 영원을 향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 말이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살이에서 아무런 우여곡절 없이 지낸다면 결코 사람답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가에서 석가모니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언급하며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다. 하지만 인생은 고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다. 그러한 은총의 장(場)을 고해로 느끼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느꼈다면 괴로움의 바다를 어떻게 은총의 바다로 느끼며 살아 갈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혹은 그가 처해 있는 공동체에 달려 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참으로 부활하셨다. 그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믿는다면 그 구체적 증거는 무엇인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으시고 묻히신 예수님 무덤을 조배하러 갔다. 거기에서 빈 무덤을 보고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하고 전한다. 정황상 매우 긴박한 분위기다. 제자들도 마리아 막달레나 말을 못 믿고 달려와 빈 무덤을 봤다. 하지만 빈 무덤이 곧 예수 부활의 결정적 증거는 못 된다. 빈 무덤을 보고도 그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요한 20,9)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만을 믿으려 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믿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뵙고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참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진정한 일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시면서 참사람이신 예수께서 오늘 부활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에 생로병사를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기에 또한 생로병사에 노출돼 있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생로병사의 사슬을 끊어버리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이다. 다시 살아나셨기에 다른 모든 인간에게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렇다면 누가 부활할 수 있는가? 정답은 사람이면 누구나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다 부활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활에는 몇 가지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는 우선 죽어야 한다. 죽지 않고 부활을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도 부활에 참여할 꿈을 꾼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부활은 어림없는 소리다. 문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부활을 희망하는 자는 부활하신 분을 믿어야 하고, 또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그분과 함께 걸어야 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우선 죽으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으셨기에 부활할 수 있으셨을까? 그것은 평소 그분의 삶이 대답해 준다. 예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요한 14,31)고 말씀하셨다. 오시고 사시고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은총에 힘입어 그 분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진리를 외면한 채,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에 상심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요한 20,10).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지난날의 삶도 잊어버린 채 또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예수께서 초대하신 부활의 삶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활은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부활하신 몸에서 출발한다. 부활이신 분은 사랑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그분의 부활하심을 깨닫고, 부활하신 분을 몸 입으며, 생활 속에서 진실로 부활을 증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cpbc2013.03.27
![[새성전 봉헌] 수원교구 모전동본당](//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313_1.0_titleImage_1.jpg)
[새성전 봉헌] 수원교구 모전동본당본당 설립 12년 만에 하느님의 집 봉헌이용훈 주교와 사제단이 새성전에서 봉헌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순결한 하느님 집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성당 내부를 흰색으로 칠했다. 수원교구 모전동성당(주임 황현 신부)에서는 10여 년 동안 주일마다 작은 장이 열렸다. 신자들은 소금, 참기름, 쌀, 고구마, 꽃, 떡 등 갖가지 물품을 팔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돈을 모아 성전건립기금에 보탰다. 모전동본당은 20일 경기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781에서 설립 12년 만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다. 새성전은 면적 1972㎡, 지상 3층 규모로 대성전을 비롯해 만남의 방, 교리실 등을 갖췄다. 설계는 예터건축사무소, 시공은 선인종합건설이 담당했다. 2000년 설립된 모전동본당은 그동안 낡은 공장 건물을 고쳐 지어 성당으로 사용했다. 비가 오면 슬레이트로 덮은 지붕 사이로 비가 새 대야 10여 개로 빗물을 받아야 했다. 신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건축을 서두르지 않았다. 기금을 충분히 마련한 후 성당을 짓는 게 낫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02년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운 본당은 이듬해부터 기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어르신들은 고철과 폐지, 헌책 등을 꾸준히 모아 성당 한 편에 쌓아뒀다 팔았고, 본당은 종종 바자를 열어 신자들이 기증한 물품을 판매했다. 주일마다 성당 마당에 작은 장이 서서 신자들은 웬만한 식료품은 성당에서 구입했다. 명절이 되면 신자들이 기증한 쌀로 송편, 가래떡 등을 직접 만들어 팔았다. 2008년에는 밭을 빌려 고구마 농사도 지었다. 고구마 농사는 노력에 비해 수확이 시원치 않았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더 일치하고 단합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해 3월 공사가 시작되자 황현 신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 나와 공사진척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신자들은 매일 묵주기도 5단 바치기, 고리기도, 성경필사 등을 하며 기도로 힘을 보탰다. 김수동(베르나르도) 사목회장은 "성전 건축을 위해 한마음이 돼 노력한 신자들 덕분에 잡음 한 번 없이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며 "10여 년을 창고 같은 성당에서 생활하다가 새성전을 봉헌하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고 기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10.23
제물- 죄를 용서받으려 바치던 희생물](//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4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20)제물- 죄를 용서받으려 바치던 희생물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제물(祭物)은 제사에 쓰는 음식물, 또는 희생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유교문화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는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고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때 제사상에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을 올리는데, 그 음식들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세 가지 탕(湯)과 세 가지 적(炙), 삼색 나물, 삼색 과일 등 제사상에 필수로 올리는 제사음식의 가짓수와 색에는 자연의 섭리와 사람과의 일치됨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고, 기복도 담겨 있다. 또한 제사음식을 준비할 때는 최고의 것을 장만하고, 값을 깎지 않으며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등 부정한 기운이 드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온 정성을 다했다. 고대의 제물은 '희생물'의 의미가 크다. 고대의 희생은 교환이라는 관념이 주를 이뤘는데, 이는 인간이 신에게 희생을 바치는 것은 신으로부터 그 이상의 것을 받기 위함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에 인간을 산 제물로 신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속죄 희생의 최고 형태로 여겼기 때문이다. 산 제물은 점차 동물로 대신하게 됐다. 성경에서 제물은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바치던 희생물을 의미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양이나 암소 등 동물과 곡식을 제물로 바쳤으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짐승의 피를 바쳤다(레위 16,11). 모든 생물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제물은 철저하게 하느님과 관련성을 갖는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생 제물에 대해 밝히신다. "너희는 나를 위한 희생 제물의 피를 누룩 든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 또 축제 때 나에게 바친 굳기름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도 안 된다"(탈출 23,18). 특별히 첫 소출은 하느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이 된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 13,2). 성경에서는 제물을 드리는 자체가 하느님께 완전히 속한다는 상징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물을 드리는 행위에서 내면적 의의는 잃어버리고, 그 형식만 남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시편 40,7). 하느님께서는 제단 위에 바친 제물을 보고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마음을 보고 자비를 베푸신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시편 51,19). 예언자들도 하느님께서는 내적 제물을 원하시며, 마음과 행동의 변화 없이는 그 어떤 물질적 제물도 의미가 없음을 강조했다. 신약시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삼아(1코린 5,7) 최후의 만찬에서 제헌의식을 행하셨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희생의식을 행하셨다. 세상의 죄를 없애는 희생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1요한 2,2).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1베드 2,5).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하느님께 바쳐야 할 참된 유일한 제물은 '자선 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친절'이라고 강조했다. 조은일2011.06.21

공의회 문헌,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돕는 '나침반'[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2>서울평협 공의회학교공의회학교 수강생들이 수업 시작에 앞서 강사소개 시간에 박수를 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50일째 되는 날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교회의 탄생일이다. 지금부터 51년 전인 1962년, '제2의 성령강림'으로 불리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다. 1962~1965년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회, 세상에 다가가는 교회, 평신도 위상이 새롭게 정립된 교회 등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발표된 공의회 문헌만 16편에 이른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신앙의 해를 위한 사목 권고를 담은 공지'를 통해 "신앙의 해는 모든 신자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주요 문헌들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깊이 연구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공의회 문헌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면 신앙의 해를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최홍준)가 2007년 개설한 '공의회학교'가 새삼 주목받는 까닭이다. #서울평협 공의회학교는? "우리는 공의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을 손에 들고 거기서 교리적ㆍ사목적으로 우리를 독려하는 매우 풍요로운 내용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0년 11월 26일 강론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항해하던 배가 방향을 잃으면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나침반이다.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 길에 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수단'인 나침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것처럼 공의회 정신으로 돌아가고, 공의회 문헌을 공부한다는 것은 신자들이 예수님께 효과적으로 향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제시한 가르침을 관심 있게 보고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현재 가톨릭교회 기본 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공의회학교는 평신도들이 공의회 가르침과 정신을 잘 앎으로써 교회와 사회에서 더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설됐다. 유수일(군종교구장)ㆍ조규만(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를 비롯해 김성태ㆍ정의철ㆍ김준철 신부 등 대신학교 교수진과 노길명ㆍ조광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서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공의회 문헌을 배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개설 초기에는 '평신도학교-공의회과정'이라는 이름으로 1년, 2학기제(3~6월, 9~12월), 28주 강의로 과정을 구성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공의회학교'라는 이름으로 상반기 한 학기(3~6월) 과정으로 개편했다. 처음에는 공의회 문헌 16개를 모두 다뤘으나 1학기 과정으로 축소 개편되면서 14개 문헌을 배운다. 1년이라는 긴 과정이 공의회 문헌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자칫 흥미를 잃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 3월 4일 개강해 6월 10일 수료식을 한 올해 공의회학교는 '보편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김성태 신부) 강의를 시작으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정의철 신부)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김민수 신부) △하느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조규만 주교) 등 문헌을 주제로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렸다. #공의회학교 이모저모 그동안 공의회학교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 매우 열심한 자세로 수강했다는 평가다. 수강생 대부분이 공의회 문헌에 관한 자발적 관심으로 참여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본당 사목회장 등 사목회 임원들도 많았고,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도 많이 수강했다. 수도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올라와 수강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매일 새벽 3시께 출근해 건물 청소 일을 하면서 강의를 듣던 한 신자는 매주 월요일 수업이 있는 날이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쪽잠을 자다 출근하면서도 1년(2학기)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아 수료식 날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 수도회 신학생 수강생은 정규수업 대신 공의회학교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공의회학교 수강생 가운데 더 공부하고 싶은 21명이 심화과정을 마련해 따로 공부하기도 했다. 공의회학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열기는 2007년 이후 조금씩 식어가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해 50~60명 수준에 머물던 수료 인원이 2012년 237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단체 수강도 적지 않은 몫을 했지만 신앙의 해를 계기로 공의회학교가 다시금 주목받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66명이 수강해 132명이 수료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전 과정을 수료한 이는 674명이며, 미수료자를 포함한 전체 수강생은 1575명이다. 공의회학교에 직접 참가하지 못했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기존 1년짜리 강의(2009년)와 현재 1학기 강의(2012년)가 서울평협 누리방(www.clas.or.kr) 공의회학교 '강의동영상' 게시판에 모두 올라와 있다. 또 서울평협이 발행한 「공의회학교 1ㆍ2권」(가톨릭출판사/각 1만 원)을 통해 책으로 공부할 수도 있다. '공의회를 공부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서울평협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한 지 51년째를 맞고 있지만, 신자 모두가 공의회를 온전히 숙지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공의회 문헌은 신앙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보약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가톨릭교회가 지금까지 50년간 강조해온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새삼 강조하거나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공의회 가르침"이라며 "공의회 가르침은 신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두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신도 정체성 깨닫고 봉사 앞장 ▲ 인터뷰 / 공의회학교 2011년 수료생 장병철(율리아노)씨 "공의회를 공부하면서 평신도에 대한 막중한 의무와 책임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공의회 문헌은 저를 더 열심한 신자로 변화시켰습니다." 2010년 2학기부터 2011년 1학기까지 공의회학교 1년 과정을 수료한 장병철(율리아노, 66, 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 연령회장은 공의회학교 수업을 계기로 평신도로서 정체성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주신 평신도 소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의회 문헌을 공부하면서 어떠한 봉사직에 있어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열심히 봉사하게 됐다는 것. 힘들다는 연령회장직도 스스로 맡게 됐다고 했다. 공무원으로 은퇴한 장 회장은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 소원이 맏아들이 세례받는 것이어서 2006년 예순 나이에 늦깎이 신자가 됐다. 그는 "하느님이 저를 사랑하셔서 뒤늦게나마 자녀로 만들어주신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에 영세 직후 사목회 임원과 연령회 회원으로 봉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의회학교를 수료하고 나니, 이제야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인이 된 것 같아요. 공의회 문헌은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와 교부 수백 명의 가르침이 담긴 문헌입니다. 공의회 문헌을 모른다면 진정한 의미의 신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말씀처럼 공의회 문헌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힘 기자 cpbc2013.07.02
![[생활 속의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6508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오늘의 순교,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선교사 없이 복음화의 꽃을 피운 한국천주교회 역사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유례가 없다. 그 역사는 성경 속 복음의 증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삶이었다. 18세기 말 남인 신서파 학자들로 시작한 '위로부터의 신앙'이 '백성들의 신앙'으로 내려온 것은 중국 서학 관련 한문서적들을 조선으로 갖고 들어와 즉시 한글로 번역한 덕분이다. #많은 고난을 겪고 복음이 새로운 땅에 뿌려지면 순교라는 고통의 싹이 자라는 것은 교회의 오랜 경험이다. 하느님의 일이 왜 그리 어렵고 고통스럽나 하겠지만 성경은 본디 그런 거라고 말한다.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5). 순교역사가 그러하듯 우리가 위로를 받는 점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먼저 겪으신 것이다. 순교자는 길이신 주님을 따라갔다. 복음 안에서 신앙을 지킨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은 온 삶을 끌어당겨 구원으로 향해가는 물결의 흐름과 같았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셨다. 산 정상에 오른 자만이 역풍과 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순교자는 어려움을 겁낼 필요가 없었다. 복음의 용기를 지닌 순교자는 구원을 위해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시각장애 시인은 "약한 자는 자신 안에 믿음을 두지 않는 자며, 자기 안의 부족함에 머무는 자가 작은 자다"는 글을 썼다. 그가 매일 인간을 압박하는 천 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인내다. 순교자들의 덕이 인내라면, 박해자들은 생명으로 그들의 인내를 시험하기도 했다. 고통과 죽음은 십자가를 던지고 멀리 도망치는 유혹을 낳게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순교자가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를 주시지 않는다. 순교자들은 오늘날처럼 복음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안에 말씀을 움직여 증거했다. 충청도 보령 황일광(시몬)처럼 기쁘게 복음적 삶을 살다간 순교자도 드물다. 백정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지만 천주교 입교 후 상상도 못할 대접을 받았다. 신자들은 그를 일반인과 똑같이 대해주었고, 양반집 방에까지 초대했다. 밝은 성격의 황일광은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그는 서울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하인으로 있으며 땔나무를 하러나갔다가 체포되었는데, 그는 이것도 기쁘게 받아들였고, 고향 홍주에서 한겨울 1월 30일 참수를 당해 두 번째로 천국으로 갔다. 내포 양반 유군명은 조선에서 사노비가 해방된 19세기 말보다 백년을 앞서 자신이 소유한 노비들을 자유인으로 풀어줬다. 그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는 복음을 실천했다. 같은 신자라도 조선시대 사회 풍습에서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천민을 신분의 벽을 넘어 받아들이는 일과 자신 소유의 노비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바로 복음이 움직인 순교의 힘이었다. #나를 따라야 한다 영국 성탄절 성가에 성 빈첸슬라오 이야기가 나온다. 빈첸슬라오 왕은 맨발로 다니면서 가난한 자에게 자선과 선행을 베풀었다. 한 겨울 그를 따르는 종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자 빈첸슬라오는 종한테 자신의 발자국을 밟고 따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종의 발이 따뜻하게 달아오른 것이다. 전설 같은 성인 이야기지만, 이 기적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수반되는 고통과 어려움의 무게는 주님께서 덜어주신다는 뜻과 연관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고통을 당한다면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 육적으로 위로를 받게 되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주님의 생각과 행동을 닮아 그 고통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세주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짊어졌던 순교자는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혼자 짊어지는 십자가는 무겁지만 주님과 함께 지는 십자가는 무겁지 않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우리 모두 순교자처럼 제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라 가야 할 것이다.퇴사자22012.09.18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2> 루카 (중)](//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438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루카 (중)이방인 포함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자녀'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그림은 안 반 스코렐의 '착한 사마리아인'. 루카 복음과 마태오 복음은 여러 면에서 비교되곤 하는데, 두 복음은 예수의 족보를 소개하는 위치와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마태오복음은 첫 부분에 아브라함에서 마리아로 내려오는 하강형으로 족보를 소개한다. 반면 루카복음은 예수가 광야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족보를 소개하는데, 그 형식도 예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상승형을 취한다. 이 족보는 아담에게까지 이르는데, 루카 사가는 아담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그를 '하느님 아들'이라 칭한다. 이는 이방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자녀라는 보편주의를 적용한 것이다. 족보를 예수의 세례 사건 이후 소개한 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세례로 성령을 받음으로써 참다운 하느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례받은 예수는 사탄의 유혹도 극복해내고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그는 나자렛회당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라며 희년을 선포했다. 여기서 말하는 주님 은총의 해는 종말론적 희년의 선포다. 예수는 청중 앞에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을 봉독한 다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루카 4,21). 이는 종말의 시기에 약속돼 있던 하느님 구원이 예수의 선포를 통해 이뤄졌음을 뜻한다. 루카 사가는 위 구절을 비롯해 복음 안에서 '오늘'이라는 단어를 즐겨 썼던 것도 같은 의미다. 예수 활동의 중심은 말씀의 선포다. 그는 희년 선포 후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거나 구마와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고, 제자들을 불러모았다. 이는 하느님 나라 선포가 단지 언어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구체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하느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에 드러나 있다는 것을 뜻한다(11,20). 예수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22-24)고 말했다. 이는 많은 예언가가 하느님의 아들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했으며, 제자들은 구원의 오늘을 경험하며 그러한 기쁨을 누리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루카 사가는 예수를 만난 이들은 그 자체로써 구원을 경험했으며, 하느님 나라가 예수를 통해 우리들 가운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루카복음에서 강조되는 예수의 모습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다. 예수는 스스로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고 말하면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식사를 즐겨했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충격적으로 비춰졌는데, 특히 바리사이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했다. 예수는 이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고, 이러한 태도는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도 드러난다. 죄인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 나라 선포는 선민주의, 자연도태 같은 세상 법칙에 반대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예수의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는 말에 대해 한 율법학자는 "그렇다면 그 이웃이 누구인가"하고 물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이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에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두고 사제와 레위인은 거들떠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응급조치한 다음 여관에 데리고 가 그를 돌보아주도록 부탁하고, 추가 경비도 지불한다. 이러한 선행을 베풀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예수가 역시 이 이야기에서 높이 평가했던 점 중 하나가 익명으로 선행을 베풀었던 점일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기란 힘들다. 때문에 예수가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이다.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온 만큼 조건 없이 나를 내세우지 말고 100%를 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나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이웃이 돼 줘야 하지 않겠는가. 교부(敎父)들은 이 이야기의 사마리아인을 예수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마리아'는 히브리말로 목자를 뜻한다. 예수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할 수 있도록 교회라는 여관에 우리를 맡겼으며, 다시 돌아와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이다. 그리고 예수는 여러분 자신이 누군가에게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이 돼 주라고 말하고 있다. 정리= 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4.16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2>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하)](//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6442_1.2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하)창조, 구원은 하느님 사랑, 계획 안에서 완성 지난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발타사르는 역사가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완성되고 절정에 달한다며 그리스도 중심으로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또 십자가 신학을 전개하면서 십자가 사건이 위에서의 개입,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개입이기에 역사를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을 중심으로 해석할 것을 주문하면서 역사를 '하느님의 드라마'(Theodrama)로 제시했다. 발타사르의 이런 역사 해석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십자가에서 계시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보자. 내재적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신비 하느님의 신비를 알기 위해선 우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관계를 규정해야 한다.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는 이 세상의 구원역사 안에서 계시되고 나타난 삼위일체 하느님 모습을 뜻하는데 통상 '경륜'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내재적 삼위일체는 영원에서 이뤄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인 생명의 신비 자체를 의미하는데 '신학'이라고 한다. 발타사르는 오직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통해서만 내재적 삼위일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며 후자가 항상 전자보다 앞서고, 전자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봤다. 내재적 삼위일체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구원역사 전체를 깊이 밝혀준다는 것이다. 발타사르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해 칼 라너의 입장을 비판했다. 라너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신비로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 당신 자신을 세상에 전달하고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타사르는 라너의 이런 입장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라너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내재적 삼위일체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에 흡수돼 하느님 본질 자체가 세상 역사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타사르는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서로 명확하게 구별하고, 내재적 삼위일체를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모든 구원 사건과 세상 역사 전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내재적 삼위일체가 없다면, 구원경륜적 삼위일체가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라너와 발타사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신학을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너의 신학적 사고는 '아래에서 위로' 곧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에서 내재적 삼위일체를 향해 움직인다. 그의 신학적 기반은 '아래', 이 세상에 실존하는 인간이다. 그는 인간 중심적 신학을 전개한다. 이에 반해 발타사르의 신학적 사고는 '위에서 아래로' 곧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로 향한다. 발타사르의 신학적 기반은 '하늘'이며 이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뜻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적으로 풀어나간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역사의 근원과 마지막 그러면 발타사르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계시된 내재적 삼위일체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그는 삼위일체로서 하느님의 본질을 사랑 자체로 제시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변화 없이 경직된 하느님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께서 위격적으로 사랑을 나누시는 '삼위일체적인 사건',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의 사건'이다. 하느님 본질이 사랑으로 구체화될 정도로 세 위격은 생생하게 사랑을 나누는 영원한 움직임, 역동적인 사랑의 사건이다. 발타사르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약 성경 내용을 성부의 창조적인 사랑, 성자의 감사하는 사랑, 이 두 위격의 사랑 교환으로 탄생한 성령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절대적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선 항상 사랑을 나누시기에 보다 위대한 분이며, 유한한 인간이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이다. 발타사르가 묘사하는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내재적 삼위일체의 절대적 사랑은 세 위격들의 절대적 자기 비움으로 이뤄진다. 이 사랑의 사건에서 세 위격들은 타 위격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삼위일체적 사건이 하느님의 영원한 운동이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랑 자체로서 영원히 완전하시다. 그분은 스스로 충만하시며 하느님으로 존재하기 위해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둘째, 하느님 사랑은 그 본질상 폐쇄되지 않고 자기를 넘어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향해 내려오시는 '위에서 아래로의 운동'이 일어난다. 발타사르는 이를 인식 이론적으로 '하강하는 논리'로 부른다. 곧 아래로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자기운동 덕분에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하거나 하느님께 다가서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발타사르가 근본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바는 세상과 인간 그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이 절대적이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사랑의 사건은 세상의 시작이며 종말이다. 세상과 인간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사랑에서 유래하며, 그 역사도 하느님 사랑으로 지속돼 결국 완성된다. 하느님 안에는 이미 절대적 자기포기의 사랑과 항상 자기를 헌신하는 사랑이 있기에 그 사랑으로 세상은 창조되고 구원된다. 사랑을 도외시한 채 세상과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발타사르의 이런 시각은 현대에 이르면서 점점 잊히는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을 생생하게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사실 하느님 사랑은 세상과 인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근본 토대며, 또 인간이 마지막까지 간직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다. 역사, 하느님의 드라마 이제 발타사르가 제시하는 '하느님의 드라마'인 역사를 살펴보자. 세계 역사는 하느님의 내적 역사로부터 이뤄진다. 하느님에 의해 이뤄는 사건, 하느님 자신 안에서 생성되는 사건이다. 하느님 본질은 삼위일체로서 충만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움직임, 생명이 넘치는 존재, 타자에게로 향하는 존재다. 이런 삼위일체 하느님은 역사의 기초다. 역사 자체는 그 기초에 상응해 삼위일체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사랑의 대화를 통해서 마침내 세상 창조를 결정하고, 세상을 떠맡으신다. 이런 내재적 삼위일체의 대화에 따라 세상의 윤곽을 스케치할 수 있다.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의 사건은 세상에 의미와 형식을 주는 원리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낳으실 때 세상을 원하시고, 성자에게 세상을 선물로 넘겨주신다. 성자께서는 이런 선물을 순종으로 받아들여, 역사의 이념과 세상의 원형이 되신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세상에 대한 의지를 보편화시키신다. 창조로 시작해 강생을 넘어 십자가 사건에까지 이르는 역사의 모든 움직임은 이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미리 결정된다. 이렇게 역사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미리 결정되고 또 그 사랑으로 실행된 드라마라면 '어떻게 죄악이 역사에 나타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죄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충만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당신 사랑의 선물로 세상에 자유를 주는 모험을 감행하신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로 죄를 범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늘 함께하시고, 위급한 경우 십자가 비움을 통해서 인간을 되찾을 준비를 할 정도로 인간의 자유를 감싸셨다. 그 결과 인간은 협력자로 하느님 드라마에 등장한다. 이 드라마의 핵심 인물은 하느님과 인간이다. 곧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으로 행동하시고, 인간은 그 사랑에 대해 자유를 통해 응답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창조와 함께 주어진 세상의 구체적 모습을 거부할 수 있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긍정적인 분리'를 인정하는 것도 거부할 수 있다. 하느님과 인간의 실제적 분리는 신적 위격들 사이의 실제적 분리에 기초한다. 세상은 하느님과 분명하게 분리되지만 뗄 수 없이 그분과 깊이 결합돼 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세상은 자기의 실제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지킬 수 있다. 이에 비해 죄는 하느님과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피조물이 자기 자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의 거룩한 분리 안에 자리잡은 죄 하지만 이런 죄의 가능성은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놓여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죄악을 원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발타사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지만, 이 사랑에 직면한 인간이 이유 없이 거부한다고 자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죄는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성부와 성자의 거룩한 분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거룩한 분리에서 모든 죄가 회복되고 극복될 수 있다. 그러니까 창조와 구원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바탕을 둔다. 여기에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창조가 십자가 사건에서 완성되고 그 충만한 의미를 지닌다면, 창조는 십자가 표지 아래 있다. 이것은 구원 사건이 근본적으로 창조와 더불어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 계획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 파견돼 인류를 구원한 성자께서는 영원에서부터 이미 성부의 뜻을 성령 안에서 실행하려 준비하고 계신다. 하느님에게 구원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발타사르는 예수님께서 세상이 창조 이전에 이미 살해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인간은 창조된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구원된 존재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김선태 신부(전주교구 화산동본당 주임, 신학박사)조은일2013.07.30
![[세계교회] 샌디에 우는 미국 동부, 위로 손길 필요](//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0562_1.0_titleImage_1.jpg)
[세계교회] 샌디에 우는 미국 동부, 위로 손길 필요허리케인 피해 500억 달러 추산, 이재민 수만 명, 미국교회 지원 요청미국가톨릭자선회 통한 후원 요청각 교구 특별헌금 실시, 복구 도와허리케인 샌디가 뉴저지 호보큰 지역을 휩쓸고 난 10월 30일 물바다로 변한 거리에 차들이 둥둥 떠 있다. 【외신종합】 10월 말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뉴욕와 뉴저지 등 적어도 7개 주에서 최소한 1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재산 피해도 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재난 발생 일주일이 지난 5일 현재까지 거의 200만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당장 잠자리와 쉴 곳조차 없는 이재민들이 뉴욕에만 4~5만 명에 이르는 등 샌디의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롱아일랜드 나소 카운티에 있는 성심성당의 경우 1만 명이 살고 있는 관할 지역 주민 80%가 피해를 보았으며,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는 아일랜드 파크 남쪽의 롱비치 섬에서는 3만 5000명 주민 거의 전부가 샌디의 피해자가 됐다. 미국 주교회의는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주교회의는 미국의 재난 지역을 돕기 위한 헌금은 전국 조직망을 갖춘 미국가톨릭자선회(CCUAS) 재난기금을 통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주교회의는 또 샌디로 피해를 본 카리브해 국가들을 도우려는 이들은 미국 해외원조기구인 가톨릭구제회(CRS)를 통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풍 샌디는 미국에 상륙하기에 앞서 쿠바, 아이티, 자메이카, 바하마 등 카리브해 섬나라들을 덮쳐 최소한 7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아이티에서만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미국 주교회의는 샌디로 인한 전력난과 수송 수단 문제 등으로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많은 피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할 수 있다면 헌혈로도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또 기도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시편 91장과 지혜서 3,1-3, 요한복음 14,2-6 로마서 6,3-5; 9-11 같은 성경 구절을 제시했다. 피해 지역의 본당들은 이런 가운데서도 4일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재난을 당한 신자들을 위로했으며, 각 교구들은 샌디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 헌금을 실시키로 하는 등 재기와 복구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0월 28일 쿠바와 아이티, 자메이카, 바하마 등 샌디의 피해를 본 카리브해 국가들을 위한 기도와 물질적 도움을 요청한 데 이어 10월 31일 주례 일반알현 때는 미국의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을 격려했다. 박수정2012.11.06

서울 노량진동본당, 설립 40돌 맞아 준주성범 필사운동 펼쳐준주성범 필사하며 영적 성장 도모서울 노량진동본당 신자들이 만남의방에 전시된 준주성범 필사노트를 보고 있다. "어머, 이 어르신은 몸도 안 좋으신데 이걸 다 쓰셨네~." "여기 와서 이 노트 좀 봐요, 마치 컴퓨터로 쓴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네요." 서울 노량진동본당(주임 박준호 신부) 만남의 방에 들른 신자들은 전시된 「준주성범」 필사공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준주성범」은 토마스 아 켐피스(독일) 수사가 14세기에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준주, 遵主) 따라야 할 거룩한 규범(성범, 聖範)을 쓴 책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그리스도교 고전이다. 올해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은 본당은 공동체 영적 성장을 위해 「준주성범」 필사운동을 펼쳤고, 지난달 28일부터 2주 동안 만남의 방에 완필 공책을 전시했다. 완필 공책을 제출한 신자는 모두 55명. 85살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필사 공책을 신앙유산으로 대대손손 물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완필했고, 예비신학생 아들을 둔 한 엄마는 말린 야생화로 공책을 꾸며가며 정성을 보탰다. 직장인 신자들은 시간을 쪼개 「준주성범」을 필사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70대 할머니, 암환자, 장애인 신자 등은 고통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완필해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줬다. 완필자들은 "필사하는 것 자체가 기도였고 은총의 시간이었다"면서 "「준주성범」 내용을 마음에 새기며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준호 주임신부는 "본당설립 40주년을 맞아 공동체 내적 성숙을 위해 「준주성범」 필사를 기획했다"면서 "신자들이 주님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본당은 18일 오전 11시 성당에서 설립 4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중엔 「준주성범」 우수 필사자 시상도 함께한다. 미사 후에는 대규모 바자를 열어 공동체가 친교를 나누고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임승운(베드로) 사목회장은 "설립 40주년을 맞아 주님 영광을 드러내는 본당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72년 명수대본당에서 분가한 본당은 신자 800명(350가구)으로 출발했다. 초대주임은 고 김옥균 주교(당시 신부). 1977년 처음으로 성전을 마련한 본당은 신자 증가와 공간 부족으로 2004년 새 성전을 지어 봉헌했다. 현재 신자 수는 2300명(845가구)이다. 본당은 주변이 고시촌 밀집지역이라 특별히 청년사목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가톨릭청년교리서 「유캣」 200권을 청년미사에 참례한 모든 청년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또 매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5가정에 성금을 전달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