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2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598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2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이끄시어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을 통해 자신의 권능을 드러냈다. 그림은 독일 지거 쾨더 신부가 그린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르 1,21-22).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께 가는 길인 율법을 연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은 토라(Torah), 즉 율법이었다. 율법은 구약성경 최초의 다섯 권(모세오경)을 가리키며, 그것의 핵심은 십계명이었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하느님께서 직접 모세를 통해 주셨다고 믿었다. 이러한 율법을 연구하며 발전시키기 위한 학자들 계급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율법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구약성경과 조상들 전통을 근거로 내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다. 당시 율법은 절대적 신성과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율법학자들 권위는 기본적으로 율법에서부터 생긴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유다인들에게 율법은 신앙과 생활의 최고 규칙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율법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에서 삶의 모든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규율과 규칙을 이끌어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런 과정에서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원칙을 규율과 규칙으로 바꿔 놓았다. 그들 가르침에 의해 종교는 복종하는 규칙으로 변질됐다. 때로 율법은 기득권층의 특권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율법의 근본 정신을 드러내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권위로 가르쳐주셨다. 또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을 선포하셨기에 가르침의 내용이 힘차고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데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참된 권위는 사람을 억압하고 복종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힘을 실어주는 데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성경에는 예수님에게 더러운 영들도 복종한다는 대목이 있다(마르 1,27 참조).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는 권능이 있는 것과도 연결이 된다. 옛 사람들은 정신병이 더러운 영, 악령에게서 왔다고 생각했다. 유다인들에게 악령은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을 방해하는 존재였다. 예수님께서 그런 악령을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는 단순한 명령으로 물리치시니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준 이야기는 단순히 치유기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적에는 예수님의 권위가 그분의 놀라운 행위를 통해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말의 가르침이 아니라, 권위 있는 행동으로 악의 세력을 몰아내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보여주셨다.퇴사자22012.02.21

인천교구 성소국 '신앙의 해' 신앙체험수기 최우수상 수상작 하느님 향한 굳은 믿음, 기쁨의 묘약 간암 말기에 시력과 청력까지 잃은 오빠. 그런 오빠가 잠 못 이루며 묵주기도를 몇백 단씩 바쳤는데도 밤새 아파서 기도를 조금밖에 못 했다고 할 때면 성한 내 몸이 얼마나 죄스러운지 모릅니다. 오빠는 하루종일 누워서 기도만 하면서 기도 중에도 때론 어두운 마음이 생긴다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합니다. 주님께 너무 죄송하다면서요. 그런 오빠를 보면서 잡생각 속에 기도를 드리는 제가 진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반성이 듭니다. 오빠는 최근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지냈습니다. 간암 말기라 혈관이 터져 몇 번의 색전술로 위험한 고비도 넘겼지요.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러 오셨을 때 오빠는 맥박도 없고 의식도 없었어요. 신부님께서는 저희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병자성사를 주셨어요. 그런데 오빠가 신부님의 성사에 맞춰 크고 똑똑한 말투로 "아멘"을 외치는 거예요. 저와 엄마는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봤어요. 분명 하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오빠가 어떻게 대답했을까? 다음날 의식이 돌아온 오빠에게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신 것 아느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예수님께서 왔다가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멘'이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빠는 "여기 중환자실에 사탄이 있는 것 같은데, 묵주만 꼭 쥐고 있으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저에게 묵주기도의 위력을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병실에 있는 동안 냉담 중인 환자들을 주님 품으로 많이 이끌었습니다. 고통이 심해 말도 못하는 오빠는 그저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정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만 했대요. 복음전파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느껴졌는지 같은 병실 냉담교우가 회개하고 다시 성당을 나간다고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조카들에게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성경 안에는 지혜가 들어있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늘 일깨워 줬습니다. 저에게는 "아녜스야, 무엇이 먼저인지를 생각하고, 항상 기도 먼저 바쳐라.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땐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봐라. 모든 걸 들어 주시는 아빤데…"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습니다. 오빠의 말에 저는 조용히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만 있으면 모든 상황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오빠가 퇴원한 후 엄마는 식사할 틈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빠의 기저귀 갈아줍니다. 식사는 물론, 4시간마다 하는 투석과 주사를 놓는 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밤을 꼬박 새우다 보면 보호자도 지치고 힘이 듭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미사 때 성체성사와 성체조배의 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는 길이 얼마나 큰 은총으로 향하는 길인 줄 모르고 지냅니다. 우리 식구는 한번 미사에 참례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오빠 투석을 돕고, 씻기고, 밥 먹이고, 옷을 입힙니다. 그러면 2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뇌출혈로 손과 발이 부자연스러운 오빠의 신발 신기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어렵게 성당에 도착하면 무척 기쁩니다. 성당에 와 있다는 그 자체, 주님을 모신다는 기쁨에 그야말로 감동이지요. 예수님을 모신다는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겨운 일인데 이렇게 좋은 미사참례의 기쁨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엄마는 매일미사를 한 번도 거르신 적이 없습니다. 오빠 또한 거동을 못하기 전까지 매일미사에 열심히 참례했습니다. 저 또한 근심기도 중에 주님을 만나고,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될 때 제 마음이 하얀 깃털이 되어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으십시오. 기도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주님과 더 가까워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얼마 전 오빠가 너무 힘들어하며 고해성사 드리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빠가 병상 중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줬어요. 유리창이 깨져있는 지하 단칸방에 할머니와 아기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오빠는 선뜻 지갑의 돈을 꺼낼지 말지를 망설였대요. 꿈에서 깨어난 오빠는 재물을 버리지 못했던 마음에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며 부끄러워했어요. 얼마 전 장애연금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주님의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천국의 집을 짓고 재물을 쌓아둬야지 이 지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진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때 알았어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가슴 한구석에 까만 점하나만 있어도 못 견뎌하며 성사로 주님께 다시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온통 까만점으로 뒤덮여 있는데도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길로 곧장 고해성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어요. 저희의 고통을 대신하고 저희를 위해 죽음까지 맞이하셨죠. 신앙의 해는 지금 이 시대에 교회 안에서 절실히 필요한 결정임이 틀림없습니다. 교황님 뜻을 따라 우리 신앙인은 회개하고, 복음선포와 성사, 기도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빠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장애인입니다. 암 투병과 복막투석으로 손과 발의 거동은 불편합니다. 수십 군데로 전이된 암과의 사투 속에서도 오빠가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한다는 분명한 신앙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모든 걸 주님께 맡길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주어진다는 지혜를 배웠습니다.이지혜2013.01.15
서울대교구 청년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해설(상)청년들 성경공부에 목말라 한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서울대교구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2010년 6월)에 이어 최근 발표한 '청년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는 사목국 산하 성서사목부(담당 안향 신부)가 청년들 요구에 부합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만 19~34살 청년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청년 신자들이 시간과 장소 부담 없이 접하기 쉬운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원한다는 점이다. 응답자 대다수(83%)가 성경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로 성당을 꼽았고, 센터(CYCㆍ명동성당ㆍ청소년회관 등, 10.2%), 학교나 직장(3%)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성경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으로 '청년미사 전'(28.1%), '주일 오전'(13.8%), '목요일 저녁'(13.4%)을 꼽았다. 직장생활과 학업으로 바쁜 청년 신자들이 비교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시간대다. 이는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7.5%)가 성경공부 경험이 없는 이유로 '시간 없음'을 든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일부지만 청년 성경공부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청년 주일학교 개설'(7.9%)을 제안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청년들은 '하느님을 더 잘 알고 싶고,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갈망이 일어날 때'(34.5%), '교리를 잘 알고 싶을 때'(29%),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을 때'(28.8%)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년들은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과 복음을 올바로 이해(41.6%)하고, 실생활에서 하느님 말씀을 바르게 실천(31.6%)하며, 인생의 기준 및 목표를 정립(12.6%)하고, 윤리적ㆍ도덕적 가치관을 형성(7.4%)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실제로 청년들은 여타 신심단체 활동보다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 성장에 더 많은 도움을 얻는다고 응답했다. '본인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정도' 질문에서 성경공부 모임 점수는 3.86점(5점 만점)으로, 다른 단체 활동(성가대, 레지오 마리애, 성령기도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대부분 본당 활동에 열심인 청년들이어서 청년성서모임 같은 성서사도직 단체(62.2%), 본당 자체 프로그램(16.8%), 서적ㆍ방송ㆍ인터넷(11.7%) 등을 통해 성경공부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성경공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16.4%)는 응답과 함께 '프로그램 부재'(15.4%), '홍보 부족'(15.1%)을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성경공부를 활성화하려면 청년들 인식 및 관심 촉구(38.2%)와 더불어 성경공부 프로그램 개발ㆍ홍보(18.2%)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울러 성경공부 모임을 단체화하자(16.2%)는 의견도 나왔다. 레지오 마리애, 교사회, 성가대처럼 성경공부 모임도 본당 내 사도직단체로 상설화하자는 것이다. 청년들은 또 성경공부를 할 때 읽기 또는 강의 형태에 구성원 간 생활 나눔이 결합된 '그룹 공부+생활 나눔'(50.8%), '강의+생활 나눔'(28.8%) 방식을 선호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담당 우창원 신부는 제언에서 "설문에 나타난 것처럼 교회가 청년들 영적 갈망을 채워줄 다양한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성경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서사목부는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청년들 선호도를 반영해 청년들이 본당에서 참여할 수 있는 성경공부 프로그램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11.10.04
![[생활속의 복음]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5000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연중 제26주일 (루카 16,19-31) 연중 제26주일이다. 언제부턴가 이즈음 사람 사이에서는 신뢰랄지 신용이랄지 신실(信實) 따위의 말들이 점점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이 용어들은 모두 믿음 혹은 신심이나 신앙의 다른 표현으로서 그만큼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훼손돼버렸다는 말이 된다. 사람 사이에 믿음이 날이 갈수록 훼손되고 왜곡돼가고 있다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들은 곧 돈과 명예, 권력 따위가 아닌가 싶다. 인간끼리의 관계가 그러할진대 인간과 자연 사이, 인간과 하느님 사이는 또 어떻겠는가? '믿음'이란 약속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사이의 믿음이 무너지면 사람과 자연 사이,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믿음 또한 무너져버리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몇 가지 전제를 제시하신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또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을 향해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4-15)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곧 사람살이에서 믿음을 회복하고, 믿음을 사는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제시하신 가르침이다. 곧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27)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통상적으로 믿음이란 '사람 사이의 소통(人+言)'을 뜻한다. 소통은 서로 막힘없이 꿰뚫어 두루 미치게 하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양방향에서 상호부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서로 막히면 통하지 않게 되고, 통하지 않으면 '불통'이 돼 독재와 독단, 전체주의가 판을 치게 만든다. 그러면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믿음이 존재하지 않고 믿음이 없으면, 사랑과 정의와 평화는 없어지게 돼 일방적인 약육강식의 사회가 형성될 뿐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을 삶의 첫째로 손꼽으며 살고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믿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고, 하느님께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근원이심을 믿으며, 사람은 모두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재들이라는 진실을 믿는다. 이렇게 믿음을 가진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은 드디어 이 땅에서 십 분의 일을 넘어섰다고 큰소리를 낸다. 하지만 사회는 고사하고 믿는 이들 안에서마저 믿음이 점점 왜곡되고 약해지고 있으니, 과연 이 땅에서 '참된 믿음'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믿음이 있어야 사랑이 싹트고, 사랑이 싹터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되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야 참된 행복이 비로소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하시지 않겠는가? 오늘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우리 시대를 향해 참 적절한 비유 말씀을 들려주신다. 거지 라자로와는 달리 돈에 목숨을 건 덕분으로 온갖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다가 죽은 부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루카16,25). 그러자 그 부자는 남아 있는 집안의 식구들에게 애정을 보이면서 걱정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의 입을 빌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루카 16,26)고 말씀하신다. 사실 우리에게는 성경뿐 아니라 타 종교 경전들, 예컨대 불교 경전들, 유교의 「사서삼경」, 「명심보감」 그리고 수많은 현자의 어록들이 있고, 그 속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지가 차고 넘치도록 수록돼 있다. 사실 평소 같으면 그 부자는 수많은 어록의 명구(名句)들을 입에 닳도록 외우거나 족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뒀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체험한 하느님 나라를 보고 난 뒤라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루카 16,30)라며 애원하기 바쁘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 누가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신앙의 해 순교자성월이 오늘로 마지막 주일을 맞는다. 오늘을 보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 증거자 삶이 어떠했으며, 어떻게 살다가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는지를 체득했는지 묻고 싶다. 사실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만일 우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마태 17,20)이라도 갖고 있다면, 당장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 불의한 힘에 억눌려 살아가는 이들, 절망 앞에 놓인 이들 편에 서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도가 돼야 할 것이다. cpbc2013.09.24
![[특집/신앙의 해,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청주교구,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신앙 심화](//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330_1.0_titleImage_1.jpg)
[특집/신앙의 해,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청주교구,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신앙 심화'이웃으로 향하는 신앙공동체의 해' 구현'불평 안 하기 운동' 평신도운동으로 전개신앙 근원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에 초점 청주교구는 11일 제94차 감곡성체현양대회에서 신앙의 해 개막미사를 봉헌하고, 앞으로 1년여에 걸쳐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신앙을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 청주교구가 준비한 신앙의 해 프로그램과 신앙 실천 밑그림을 소개한다. 청주교구는 2013년을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2차년도(2013~16) 첫째 해로 보낸다. 지난 1차 4개년(2009~12)에 걸쳐 교구 조직과 규정을 새로 마련하고 중장기 사목계획을 수립해 교구 기틀을 다진 데 이어 2차년도 4개년 첫째 해를 신앙의 해로 지내는 기쁨 속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준비한다. 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사목교서를 통해 내년 한 해를 '이웃으로 향하는 신앙공동체의 해'로 정했다.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통해 신앙을 굳건히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복음화에 힘쓸 것을 교구민들에게 요청한 것이다. 교구는 이를 토대로 신앙의 해가 끝날 때까지 전례와 교육, 선교, 홍보, 사제 등 5개 분야로 나눠 새로운 복음화를 추진한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산상 성체강복을 통해 1년여 동안 이어질 신앙의 해에 전 교구 공동체가 말씀과 성체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하느님께 축복해 주시기를 빌고 있다. 사진제공=청주교구 #신앙의 새 사목교서 실천에 주력 교구는 우선 '이웃으로 향하는 신앙 공동체의 해'라는 2013년 사목교서를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새롭게 돌아서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만나도록 초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성경을 읽고, 가족이 함께 기도를 바치며,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미사 성제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한다. 이에 따라 △이웃에게 다가가는 선교 공동체 △신앙을 바로 세우는 청소년 사목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을 사목교서 세부 실천지표로 정했다. 우선 이웃에게 다가가는 선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개인과 단체, 본당과 지구가 힘을 모은다. 신앙의 선물은 이웃과 함께 나눌 때 풍요롭기에 이웃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데 합심한다. 이어 신앙을 바로 세우는 청소년 사목에도 주력한다. '청소년은 교회 미래'라는 교구 시노드 정신에 따라 교구 안팎 청소년들이 복음적 가치관을 습득하도록 지구 차원에서 도보 성지순례와 합동 성시간, 청년 성경공부, 청소년 생명교육 등을 마련한다. 또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각 가정이 주일미사 참례와 성경 묵상, 가정기도에 힘쓰도록 독려한다. 나아가 주위 홀몸 어르신이나 다문화, 한 부모 가정 등에도 관심을 갖고 나눔을 실천하도록 권고한다. 교구는 각 가정이 가정사도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자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교구 차원 세부안은 교구는 내년 사순시기에 복대동본당에서 전개해 호평을 받은 '불평 안 하기운동'을 평신도운동으로 전개한다. 교육 분야에선 교구 사목 부서별 교육자료를 마련해 대림ㆍ사순 판공 문제지와 소공동체지 등과 함께 본당에 제공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운데 「교회헌장」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자의교서 「믿음의 문」, 25개 암송교리와 25개 암송성경 등을 숙지해 실천하도록 했다. 교구를 이를 기초로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협력해 지구 및 교구 경시대회를 열기로 했다. 선교 분야에선 신자 1인당 새 양, 잃은 양을 1명씩 찾는 '영적 11운동', 하루 100원씩 한 달에 3000원씩 모아 봉헌함으로써 성체성사의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3000운동, 가정에서 생명ㆍ환경운동 실천하기, 하느님의 종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운동을 통한 신앙의 증인 만나기, 사회복음화 및 사회복지 네트워크 활성화 등도 추진한다. 아울러 2000년 대희년에 앞서 '성자의 해'에 나온 소책자를 개정한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사제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이밖에 신앙의 해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를 본당에 보급한다. 교구 선교사목국장 서철 신부는 "신앙의 해를 맞아 어떻게 하면 교구 공동체가 주님이시며 신앙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또 말씀과 성체 중심의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계획을 마련했다"며 "특히 신앙의 유산이 담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자주 읽고 익힘으로써 신앙을 더 키워나가는 데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이지혜2012.10.23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0. 연중 제4주일- 신앙](//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9557_1.0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0. 연중 제4주일- 신앙하느님 진리에 동의하는 초자연적 은총'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예수님 말씀을 나자렛 주민들은 믿지 않습니다.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 인간의 합당한 응답이 믿음, 곧 신앙입니다.나자렛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예수님 말씀을 믿지 않았지만, 동정 마리아는 천사의 전갈에 믿음으로 동의함으로써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다. 사진은 나자렛 주님탄생예고 대성당 모자이크화. [CNS 자료사진]◇살펴봅시다 ㉠신앙(150~152, 166~175항):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께 귀의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해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150항)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을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고 하느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그런 믿음을 피조물에게 두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150항)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분 곧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강생하신 말씀이시기 때문"(151항)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1,18). 또 성령의 도움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는 분은 그분의 영이신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믿는 것은 성령께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교회 안에서 교회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우리가 "저는 믿습니다" 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때 언제나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고백합니다. "교회가 먼저 믿고 이로써 나에게 그 신앙을 전해주고, 키워주고 지탱해주기"(168항)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 신앙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알아둡시다 ㉡신앙의 복종(144~152항): '복종하다'(oboedire)는 라틴어로 '에게'라는 뜻을 지닌 'ob'와 '듣다'라는 뜻을 지닌'audire'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복종은 말하자면 자신이 들은 하느님 말씀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복종으로 모범을 보인 대표적 인물로 구약의 아브라함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믿음으로 따랐고 이방인으로 순례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신앙으로, 자신의 외아들까지 바치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 때문에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모든 믿는 이들의 아버지가 됐습니다(로마 4,11-23; 히브 11,1-18 참조). 교회는 나아가 동정 마리아를 "가장 완전하게 신앙의 복종을 실천하신 분"(148항)으로 제시합니다. 마리아는 신앙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신앙의 동의를 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세대가 마리아를 복되다고 일컫는 것입니다. 나아가 마리아는 일생 동안 극도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가장 순수한 신앙을 실현하신 분"(149항)으로 공경합니다. 신앙의 특성(153~165항): 신앙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153항)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려면 하느님 은총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또한 성령의 내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참으로 인간적 행위"(154항)입니다. 신앙은 인간의 자유나 지성에 결코 반(反)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움직여진 의지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진리에 동의하는 지성적 행위이다"(155항). 신앙이 지성적 행위라는 것은 신앙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동의(同意)하는 것이 결코 정신의 맹목적인 작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앙과 지성 또는 이성의 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은 확실합니다. 신앙의 이 확실성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 말씀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적 이성의 빛이 주는 확실성보다 하느님의 빛이 주는 확실성이 더 큽니다. 성 안셀모(1033~1109)는 "신앙은 이해를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믿는 바를 이해하도록 요구하고 또 이 이해를 통해 우리는 더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믿기 위해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는 유명한 금언을 남겼습니다. 자연적 이성의 빛이 주는 확실성보다 하느님의 빛이 주는 확실성이 더 크다는 것은 신앙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 해도 "신앙과 이성 사이에 진정한 불일치는 있을 수 없다"(159항)고 교회는 단언합니다. "신비를 계시하고 신앙을 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정신에 이성의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159항)입니다. 신앙과 이성의 이런 관계에 비춰 우리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참으로 과학적 방법으로 도덕적 규범에 따라 이뤄진 탐구라면 결코 신앙과 대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실재는 다 똑같은 하느님에게서 그 기원을 이끌어내기 때문"(159항)입니다. 신앙이 인간의 응답 곧 인간적 행위라면 그 행위는 어느 누구도 억지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됩니다. 곧 신앙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여야 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신앙과 회개로 초대하시지만 결코 이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그 믿음을 항구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리합시다 -"신앙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인간이 인격적으로 온전히 귀의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행위와 말씀을 통해서 당신 자신에 대해 밝혀 주신 계시를 지성과 의지로 따르는 것이다"(176항).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 이외에 다른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178항).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 선물이다. 믿기 위해서는 성령의 내적 도움이 필요하다"(179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1.29
![[아! 어쩌나] 213. 사람들이 나약하게만 보여요](//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78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13. 사람들이 나약하게만 보여요 Q. 30대 초반 청년입니다. 군대도 다녀왔고 나름대로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군대와는 달리 사람들이 참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군대에서는 '하면 된다'는 신념을 익히고 나왔는데, 사회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약한 것 같더군요. 특히 혼인을 약속한 여자친구는 성당에 다니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저 몰래 점을 보러 다니는가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잘 듣는 편인데, 그러고는 혼자서 불안해합니다. 여자라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가끔은 짜증이 나네요. 사람들은 왜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A. 형제님이 짜증을 내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현대문명이 발달하고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인간 사회를 발달하게 해주는데, 여자친구가 왠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으니 짜증 날만 하지요. 그리고 군인정신으로 살면 되는데, 나약한 사회인들을 보면 한심한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뒤에서 보세요. 세상이 현대화돼 가면서 점집이 없어졌나요? 아니면 종교에서 기복신앙을 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나요? 인간 사회는 참으로 기묘해서 물질적 발달과 더불어 기복신앙을 구하는 욕구도 같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심리학에서는 '통제의 착각'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부 자기가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왜 생기는가?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자기 식대로 처리하다 보면 근거 없는 자만심이 생겨나 세상 모든 일을 다 자기 힘으로 할 것 같은 자기도취와 착각에 빠집니다. 즉, 자신이 노력하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일은 변수가 아주 많아 자기 마음대로 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지도 형제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강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은 자기 의지보다 다른 사람들이 던지는 암시에 더 약한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그냥 한 마디 던진 것이 낮에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밤이 되면 왠지 마음에 걸려 도무지 잠을 못 이루는 것이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암시에 약한 존재인가요? 우리는 주관이란 것을 가지고 삽니다. 사람의 판단과 결정은 인격의 자아 부분에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이 자아가 여러 가지 변수를 종합해 개인적 결론을 내린 것을 우리는 주관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 자아는 그리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외부 영향을 쉽게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완벽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혹 주관이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성장 과정 중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은 자아가 아주 약해 다른 사람들의 암시에 쉽게 넘어가고 사기를 당하곤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약한 자아 암시에 잘 걸려드는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 위약 효과(플라세보 효과) 혹은 광고 효과이고, 나쁜 것으로는 사기를 치는 것이 해당합니다. 특히 종교 사기꾼들은 사람들의 이런 취약점을 아주 잘 알고 영악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마음 안에 불안과 공포를 주입하고서 자신이 구세주나 예언자인 양 행세하면서 미숙하고 약한 사람들의 자아를 심리적 감옥에 넣고 피를 빨아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적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아를 가지고 험난한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암시를 줘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은 밭이나 논과 같다고 하는데 자기암시란 이런 땅에 씨를 뿌리는 행위입니다. 약한 자아는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들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암시를 줘도 따라 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긍정 심리학자들은 자신에게 부정적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 말을 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하는 식의 말을 자주 하면 정말로 인생살이가 꼬이고 해결되지 않는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할 만하잖아. 잘했었잖아, 잘 할 거야" 등 영어로 'I can do it' 하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자기암시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도해도 되지 않으면 '약한 자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주님 저는 약한 존재입니다"라고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주님께 마음을 의탁하는 기도를 하면 자기암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주님, 저의 구원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시편 38,22-23).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8.06

출산은 생명 사랑과 인격적 관계의 시작서울 생명위워회 제24차 학술 세미나 '인간의 존엄성과 출산의 가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13일 개최한 '인간의 존엄성과 출산의 가치'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23명(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 222개 국가 가운데 217위다. 출산을 축복이기보다는 부담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다분히 경제적 우려 때문이다. 출산에 깃든 생명의 신비는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대주교)는 1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출산의 가치'를 주제로 제24차 학술 세미나를 열고,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토대로 다양한 각도에서 출산의 의미를 짚었다. 염수정(서울대교구장) 대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출산과정에 대한 기술적 개입이 확대되면서 수정되는 순간부터의 인간 존중, 인격체로서의 인간과 성(性) 등과 관련된 중대한 도덕적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생명은 하느님 선물이라는 진실에 비춰, 태중의 작은 아기일지라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발표문 요약.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성경의 세계에서 본 생명 (이명기 수녀, 가톨릭대 ELP학부대학 교수) 성경은 생명의 초기 형태가 어떻고, 또 어떤 과정으로 발달했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직 '누가' 그 모든 것을 창조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생명을 말할 때 몸과 영혼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총체적 존재이다. 성경은 인간생명이 지닌 전일성(wholeness)의 특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목으로, 목구멍(식도)으로, 숨(호흡)으로, 피로, 영혼으로 표현하는데, 어느 것 하나로 표현해도 그것은 인간생명 전체를 가리킨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생명과 관련된 구체적 필요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응답하신다. 생명에 대한 예수의 배려는 그분이 온갖 질병을 고쳐주시는 행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야말로 예수가 목숨 바쳐 수행한 하느님의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마르 3,4). ▨생명 시작의 생명과학적 이해 (김원선 교수, 서강대 생명과학과) 생물학적 개체로서 인간은 난자와 정자의 융합에 의해 수정란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자와 난자는 생식을 위해 고도로 분화된 특수세포이지만 유전적으로는 완벽하지 못한 상태이다.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유전적으로 완전함이 성취되고 생명력을 얻으면서 활발한 물질대사와 함께 생명체로서의 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수정란은 한 개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와 생명체로서 지녀야 할 기본 특성을 이미 모두 갖췄다.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보이는 배아는 실제로는 생명체의 기본 기능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이것이 생명체가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배아의 정체는 무엇인가. 단순해 보이는 사안도 막상 경계선에 이르면 그 경계는 멀리 벗어나 있다. 이는 인간 능력이 절대적이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과 가치전도에 의한 편의주의적 경향은 사안을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 낙태ㆍ배아줄기세포 연구ㆍ체세포 복제가 이뤄지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양보할 수 없는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면서 이를 과학의 언어로 합리화하고 인위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출산의례와 생명의식 (이향만 교수,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새 생명의 탄생은 한 집안의 축복이자 경사이다. 출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성과 인간생명에 대한 경외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생명의식을 보여준다. 전통적 출산의례는 출산과정만이 아니라 한 생명의 잉태를 위한 준비과정인 수태와 출산과 양육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고 있다. 이 점에서 혼인식이 출산의례의 시작인 셈이다. 실질적 출산의례는 태교로 시작해 태어날 아이의 삶을 예견하는 태몽, 출산과 금기, 아기의 장수를 비는 첫 잔치인 백일, 아기가 장차 할 일을 예견하는 돌잡이, 정상적 가족 구성원이 되는 세 돌에서 끝난다. 세 돌은 부모에 대한 삼년상의 근거가 된다. 사람은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다른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이를 통해 자기 생명의 가치와 권리가 생긴다. 전통적 출산의례는 이러한 생명의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새 생명은 한 공동체에 새로운 희망이자 의미이고 거울이었다. 출산의례는 정성을 다해 새 생명을 경외하는 가운데 생명의 신비를 깨우치고자 했다. ▨출산의 의미와 윤리적 실천 (정재우 신부,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자녀를 원하는 부모의 올바른 태도는 자녀의 잉태를 결정하는 분은 따로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녀를 부부의 바람 또는 성취의 대상으로 삼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기다리고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한다. 부부행위는 인격적이고 책임 있는 사랑의 행위로, 부부가 배우자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동시에 서로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피임을 통해 출산의 책임을 배제하는 부부행위는 전적인 내어줌과 받아들임이라는 부부 사랑의 의미를 손상하며, 시험관아기 시술 등 사랑의 행위가 배제된 출산은 자녀를 지배하고 도구처럼 다룸으로써 자녀 사랑의 의미를 손상한다. 결국 두 가지 차원 중 어느 하나를 배제한 행위는 인격적 의미를 상실하고 감각적 쾌락이나 만족을 얻기 위한 물리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출산 본연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것은 사랑과 인격적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인간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친밀한 관계인 부부 관계와 부모-자녀 관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인격적 관계 안에서 행위자 자신이 인격체로 성장하게 된다. 퇴사자22012.10.1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0>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하)](//cpbc.co.kr/CMS/newspaper/2014/01/rc/491226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하)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성체성사의 신학 재조명 샤르댕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도구도 없이 홀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 거행하는 체험을 했다. 그는 세상 자체를 살아 있는 성체로, 하나의 전례로 보고 성체성사의 신학을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 【CNS】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샤르댕은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합하는 낙관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론적 차원의 신학사상을 전개했는데, 이는 20세기 초중반 당시에 매우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편으로 샤르댕의 신학사상은 그의 생전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 또한 계속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샤르댕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사목헌장」과 「교회헌장」 작성에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온 땅을 주님께 드리는 제단으로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가장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그가 중국에 가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던 시절인 1923년의 신앙체험을 기록한 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이다. 당시 그는 학문적 탐사를 위해 몽골 접경지대인 오르도스(Ordos) 사막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었다. 마침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아 새벽에 일어났지만 그는 미사를 봉헌할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샤르댕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도구도 없이 홀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 거행하는 체험을 했던 것이다(「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 참조, 김진태 옮김/이병호 감수,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4, 표지). 그곳에는 성당도 제단도 없었기에, 샤르댕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봉헌한다. "주님, 이번에는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 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15쪽). 그렇다면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집전하는 샤르댕 신부가 빵과 포도주 대신 미사의 예물로 봉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인간과 생명체들이 이뤄내는 삶의 노력과 수고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영'(靈)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15~16쪽).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것을 마치 성체성사에 사용되어 거룩하게 변화되고 거양될 '대제병'처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샤르댕이 발견한 "세계의 성사"(36쪽)다.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18~19쪽).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한 평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를 통해 샤르댕은 성체성사의 신학을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해 교회 내에서도 많은 반대와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오늘날 샤르댕의 신학사상이 가장 큰 오해를 받는 부분은 현대 뉴에이지(New Age) 운동의 이론가들과 그 추종자들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에 관한 그들의 잘못된 개념과 논리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얻기 위해 샤르댕의 글을 자주 언급하고 인용한다는 점이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세상의 궁극적 실재란 오직 하나의 비인격적이고 신성한 에너지로서의 '우주적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적 차원에서의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 이론을 내세우는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샤르댕의 저서들이 뉴에이지 운동의 이론가에 의해 계속 인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샤르댕의 사상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리스도 강생 신비의 인격적 차원을 강조한다. 즉, 모든 실재가 혼동 없이 수렴되는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 실재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샤르댕의 진정한 의도는 초대 교회부터 전수되는 고전적인 '말씀(Logos) 그리스도론'을 현대 과학사상이 탐구하는 우주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거로 샤르댕은 역동적인 현대적 세계관에 맞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 보편성에 관한 신학사상을 전개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최종 책임자로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오랜 기간 역임했다. 그러므로 베네딕토 16세의 긍정적 평가는 샤르댕 신학사상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모두에게 알려준다.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 ger)라는 개인 신학자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인 1968년 출간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2007년 신정판)은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핵심 저서다. 바로 여기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특히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인성과 신성의 결합 의미를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지평에서 설명하고자 시도한 공로를 높이 산다. 그리고 이 평가는 샤르댕의 그리스도론 전체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기도 하다. "이런 연관을 오늘의 세계관에서 새로 생각하고 다소 지나치게 생물론적 경향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로 보아 그래도 옳게 이해했으며, 여하튼 새로이 대할 수 있게 한 것은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큰 공로였다고 인정해야 할 줄 안다.…여기 현대 세계관의 견지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생물학적 어휘를 써 가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바오로-그리스도론의 방향이 파악되고 새롭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신앙은 예수에게 있어 생물학적 도식으로 말해서 이를테면 다음 단계의 진화적 도약을 성취한 인간, 우리의 제한된 인간 존재 양상과 단자(單子)적 봉쇄에서 탈출한 인간을 보는 것이다. 인격화와 사회화가 더 이상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뒷받침하는 인간, 지상(至上)의 일치가 또한 아울러 지상(至上)의 개성과 매한가지인 인간, 인류가 그에게서 최대한 자신의 미래로 성취될 수 있는 저 인간을 신앙은 예수에서 본다. 따라서 신앙은 균열된 인류를 유일한 아담, 유일한 '몸', 미래의 인간존재 안으로 모아들이는 움직임의 시동을 그리스도에서 본다. 신앙은 그리스도에게서 인간이 오히려 '사회화'되고 유일한 분과 일체가 돼 개개인이 붕괴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저 미래를 본다"(239~242쪽). 세상 자체가 곧 성체가 됨을 향하여 한편, 2009년 7월에도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서 8장에 대한 강론을 통해 샤르댕이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에서 제시했던 관점을 인용하며 그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어쩌면 이는 샤르댕 신학이 담고 있는 최종 지향점에 대한 베네딕토 16세의 영성적 해석이기도 하다. "사제직의 역할은 세상을 축성하여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되도록, 하나의 전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례는 세상의 실재와 동떨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하나의 전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테이야르 드 샤르댕에 의해 제시되었던 위대한 전망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진정한 우주적 전례를 거행하게 될 것인데, 거기에서는 우주 자체가 곧 하나의 성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시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 안에서 세상이 새로이 변형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변형이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시다."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편집위원장)cpbc2014.01.07
![[신앙의 해]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 - 서울대교구](//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8141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우리는 이렇게 살겠다 - 서울대교구'허약한 신앙' 기초 다지고, 신앙의 기쁨 재발견 11일, '신앙의 해' 막이 올렸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대다수 교구는 이날 교구별로 신앙의 해 개막미사를 봉헌하고 변화와 쇄신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각 교구는 신앙의 해를 알차게 보내고자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각 교구가 마련한 신앙의 해 청사진을 살펴본다. 서울대교구가 신앙의 해를 앞두고 펴낸 「신앙의 해 안내서」(이하 안내서)는 '신앙의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궁금해하는 모든 교구민을 위한 계획서이자 참고서다. 70여 쪽 분량의 안내서는 교구 차원 행사와 함께 본당에서 신앙의 해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안내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신앙의 해 선포를 앞두고 반포한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 신앙의 해 사목교서 △신앙의 해 다섯 가지 표어 △교구 차원 세부안 △본당 차원 세부안 등 다섯 항목으로 이뤄졌다. 안내서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교구 '신앙의 해' 사목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신앙의 해를 선포한 것은 세계교회가 심각한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앙의 위기는 지역 교회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유럽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과도한 과학적 사고방식과 개인주의다. 신앙의 중요성과 의미를 상실한 '식어버린 신앙'이 문제다. 한국교회에도 이런 형태의 위험이 서서히 나타난다고 본다. '허약한 신앙'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이 가톨릭 신앙에 대해 호감을 갖고 교회 문을 두드리지만, 매년 거의 입교자만큼 냉담교우가 양산된다.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해 신앙을 저버리는 이들이 많다. 신앙의 기초가 약해서다. 따라서 신앙의 해 모든 프로그램을 신앙의 기초 강화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신앙이란 하느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성경을 통해 하느님께 귀 기울여야 하며, 꾸준히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또 미사 중에 주님과 일치를 이루고 신자들 간 친교를 이룬다. 주님과 친교를 이룸으로써 그분의 손과 발이 돼 세상에 나아가 봉사할 힘을 얻게 된다. 이를 다섯 가지 표어로 요약하면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이다.▨교구 차원 세부안 서울대교구는 11일 명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신앙의 해 개막미사를 신앙의 해 성격이 드러날 수 있게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주례하고 사제단이 공동집전한 개막미사에서는 세례 갱신식을 통해 세례로 시작된 신앙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보편지향기도도 특색이 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교황과 모든 성직자를 위해 기도합시다 등 4가지 보편지향기도는 제목만 언급하고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신앙의 해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봉헌시간에는 성경과 기도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가톨릭교회교리서」, 사회교리서, 빵과 포도주에 이어 빈 바구니를 봉헌했다. 빈 바구니는 앞으로 신앙의 해를 살아갈 모든 이들이 신앙의 열매인 선교와 봉사,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의미한다. 교구는 개막미사 후 공의회 문헌과 교리서를 교구 모든 본당에 보급한다. 또 문헌 내용을 강의와 강론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쉽게 정리한 자료집을 제작키로 했다. 주보와 평화신문ㆍ평화방송 등 교회 매체를 통해서도 문헌과 교리서의 주요 내용이 소개된다. 한편 신앙의 해 폐막미사는 2013년 11월 24일(그리스도와 왕 대축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다. #사목국 사목국은 올해 12월 31일까지 신앙의 해 다섯 가지 표어를 주제로 '신앙체험수기'를 공모, 내년 11월 24일 폐막미사 때 당선작을 시상할 예정이다. 노인사목부는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방문 교리교사를 양성한다. 방문 교리교사로 봉사하려는 이들은 본당 주임신부 추천을 받아 교육과정에 등록하면 된다. 교육 이수자들은 봉사자 자격증을 받고 본당과 가톨릭중앙의료원 및 일반병원사목부와 연계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소공동체 교재 「길잡이」를 발행하는 일반교육부는 교리서 내용 중 1편 신앙고백을 「길잡이」에 연재함으로써 교리서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선교전례사목부는 2013년 6월 21일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교사의 날' 행사를 열어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교리교사'를 주제로 강의와 체험담 발표를 갖고,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단체사목부는 염 대주교와 평신도단체 간 만남의 날 행사를 열고 △신앙체험 발표 △2013년 사목지침 안내 △교구와 협력 부분 논의 및 협조사항 안내 등을 통해 교구와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단체 활성화를 논의한다. #청소년국 청소년국은 청년성서모임ㆍ문화홍보국 등과 함께 2013년 5월 청소년의 달과 명동성당 문화축제에 발맞춰 '청년 기도의 밤' 행사를 연다. 5월 중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떼제기도를 겸한 성시간과 참회예절, 개별 고해성사, 묵주기도, 교구장과 함께하는 미사 등이 열린다. 초등부는 내년 3월 10일 교리교사의 날 행사를 혜화동 청소년회관 또는 우리은행 대강당에서 개최한다.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가 주관하는 이날 행사는 외부강사 강의와 신나는 찬양, 미사와 근속교사 시상식 순으로 진행된다. 초등부는 또 올해 10월부터 내년 10월까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우리 손으로 성경 만들기'(가제) 성경필사 행사를 열고, 초등부 한마음 큰잔치(가제)도 연다. 중고등부는 올해 11월 4일 올림픽공원에서 제4회 가톨릭 유스데이(CYD) 행사를 열고 '신앙의 해 선포식'을 갖는다. 아울러 내년 8월 9~11일 의정부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서 중고등부 연합캠프를 열고, 신앙의 해와 관련해 청소년들에게 신앙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할 예정이다. 대학생사목부는 내년 7월 18~28일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는 '2013 리오 세계 청년대회'(World Youth Day Rio 2013) 참가를 통해 청년들 신앙을 다진다. 세계청년대회는 청년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청년들이 기쁨으로 하느님과 교감함으로써 스스로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교구 신학생들도 대거 참가할 계획이다. 청년부는 강사진을 구성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회교리ㆍ성과 사랑ㆍ성경 등 교육 및 특강을 실시하며, 교리경시대회 등을 연다. 청년교리서 「유캣(YOUCAT)」(가톨릭출판사)을 이용해 청년들이 교리공부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아울러 SNS를 활용한 신앙내용 전파에도 앞장선다. 한국스카우트 가톨릭연맹은 11월 10일 용문청소년수련원에서 전국 지도자대회 중 가톨릭스카우트 신앙의 해 선포미사를 개최하고, 4대 복음 필사 운동, 가톨릭연맹 10주년 기념 전국 도보성지순례 대장정 등을 펼친다. 아울러 중고등학교사목부와 가톨릭학생회도 △Cell 모임 △학생대회 △가톨릭학생회 신앙대회 등 신앙의 해 행사를 기획했다. #문화홍보국ㆍ성소국 문화홍보국은 교계 및 일반 신문ㆍ방송사 종교담당 기자를 대상으로 신앙의 해 교구 및 본당 행사를 널리 알리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와 팟캐스트 서비스를 통해 뉴미디어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주보도 신앙의 해를 위한 개편 작업이 한창이다. 주보의 최인호(베드로) 칼럼과 가톨릭교리 해설, 사회교리, 청소년 특집 등을 신앙의 해에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명동성당을 찾는 젊은이들을 위한 단기 명상ㆍ피정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가톨릭언론인협의회는 교구 성지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서소문과 절두산ㆍ새남터 등을 순례하는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합동 성지순례를 계획했으며, 가톨릭 언론인신앙학교 과정에 순교성지에 대한 강의도 마련한다. 교구 순교사적지와 관련한 스토리텔링 기획 및 외국어 번역 작업도 벌인다. 성소국은 11월 4일 서강대에서 열리는 가톨릭 유스데이(CYD)에서 상설부스를 운영해 성소계발에 주안점을 두는 한편, 2013년 1월 31~2월 1일 열리는 부제서품식과 사제서품식에 참석하는 신자와 수품 대상자들이 신앙의 해를 좀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영상 제작과 홍보물을 제작할 계획이다. 아울러 내년 4월 21일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열리는 성소주일 행사 때에도 신앙의 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사회사목부ㆍ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회사목부는 전 교구민을 대상으로 신앙실천 캠페인 '제가 하겠습니다! I DO!'를 펼친다. △기도 △단식 △자선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뤄진 캠페인은 신자들이 '제가 하겠습니다 봉헌서약서'를 작성토록 함으로써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이끈다. 평협은 내년 3~6월 14주 동안 가톨릭회관에서 열리는 '평신도학교 공의회과정'에 더 많은 신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교구 각 본당은 10월 14일 주일 교중미사를 신앙의 해 개막미사로 봉헌한다. 대축일급 미사로 봉헌되는 이날 미사에서 세례 갱신식을 갖는다. 보편지향기도는 명동성당 개막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도 제목만 언급하고 침묵한다. 성경과 기도서, 공의회 문헌 등을 봉헌하는 봉헌예식도 같다. 안내서는 본당에서 △하루 한 장 성경 외우기 △성경 쓰기 및 공부하기 △가정기도 바치기 △성인성녀 닮아가기 △「가톨릭교회교리서」 읽기 △견진성사 받기 △성체신심 강화 △주중 고해소 운영 △순교사적지 순례 △대부모와 대자녀 관계 증진 등에 역점을 둘 것을 권고했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2.10.09
![[성경 속 궁금증] <30> 부활하신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살과 뼈를 보여주셨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265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부활하신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살과 뼈를 보여주셨을까영혼과 함께 육신도 부활 확인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다. 그림은 '의심하는 도마' (카라바조 작, 1602년).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때 제자들은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을 다시 만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성경 기록을 보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뵙고도 부활을 믿지 못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루카 24,36-37). 제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은 너무 당황스럽고 믿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실제로 살아계시며 제자들과 함께 계심을 강조하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루카 24,38-40). 그런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놀라며 예수님 부활을 완전히 믿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드심으로써 다시금 부활을 확인시켜 주셨다. 결국 의심 가득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만져보고, 먹는 것을 본 후에야 비로소 주님 부활을 현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활한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며, 그분 육체는 실제로 존재한다. 부활한 예수님 생명은 영혼의 생존만이 아니라 육신의 생존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특별히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육체를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루카가 사목한 공동체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예수님 시대에서 떨어져 있었으며, 그리스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철학적 사고방식을 지닌 그리스계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육신과 함께 부활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들 고유한 사고방식으로는 육체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 부활은 그리스도교를 구성하는 신앙의 기본적 특징이었다. 그리스도교는 나자렛 예수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예수님 부활의 참된 실체를 알려주기 위해 부활한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한 이야기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한 육체를 순전히 환영(幻影)의 차원으로만 생각하려는 교회 일부의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루카복음이 부활한 예수님의 육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에서 루카가 강조한 것은 지상의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루카는 예수님이 육신과 뼈를 가지고는 있지만, 보통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기도 하고 사라지시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부활은 몸의 실재와 관련된 것으로, 몸이 없는 영과는 관련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퇴사자22012.04.25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나자렛 예수-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천1](//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7394_1.1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나자렛 예수-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천1믿는 이들에게 이미 다가온 '하느님 나라' 하느님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과 새로운 계약(新約)을 맺는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성령강림 사건이 펼쳐진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물이 무궁무진 묻혀 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백운철 신부가 독자 여러분과 신약의 세계를 탐구하는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평화방송 TV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연출 조규만 PD, 월요일 오전 9시)과 함께 진행된다. 백운철 신부는 파리가톨릭대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신약성경을 강의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공생활을 시작했다. 그림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장면을 형상화한 유리화. 【CNS 자료사진】 우리 신앙의 대상인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을 살펴보려면 당시 팔레스티나의 정치적ㆍ종교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기원전 63년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에 진군하면서부터 유다는 로마의 속국이 됐다. 로마는 팔레스티나를 완전히 장악해 제국주의적인 지배를 강화했다. 예수가 활동했던 베로데와 갈릴래아는 헤로데왕의 아들 안티파스가 다스리게 됐다. 종교적으로는 사두가이, 바리사이, 요한 세례자 그룹 등 여러 계파가 공존했다. 그러나 계파들은 계약적 율법주의(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하는 조건으로 율법을 줬고, 신자들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예수의 탄생 예수는 헤로데왕 치하 기원전 6~7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탄생일을 알 수 없음에도 12월 25일을 탄생일로 정한 것은 이 날이 로마의 동짓날인 태양신 축제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태양'이라는 신앙고백과 맞물려 이교도 축제일을 탄생대축일로 정한 것이다. 신약에서 마태오와 루카복음을 제외하면 동정 잉태를 명시한 부분이 없다. 오히려 유다인들이 예수를 맘제르(사생아, mamzer)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미뤄 사생아라는 의혹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동정 잉태는 성모 마리아가 제자 공동체에게 들려줘 가족 전승 형태로 전해졌을 것이다. 때문에 초대교회는 일부 제자를 제외하고 예수 탄생 비밀을 알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열심한 유다교 신자였던 부모에게서 신앙을 물려받았고, 나자렛 회당에서 율법을 읽을 만큼의 지식을 갖췄다. 또 나자렛에서 하느님과 깊이 친교를 나누는 경험을 통해 성경에 대해 독자적 이해를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12살 때는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예수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했다(루카 2,46-47).■세례와 공생활의 시작 예수는 세례를 받으며 공생활을 시작했다. 요한 세례자의 활동시기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세례 시기는 서기 27년 가을이다.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확실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요한은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와 하느님 심판이 임박했으니 흐르는 물에서 세례를 받으라"고 가르친 바 있다. 요한은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회개의 열매로 옷과 먹을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라고 요구하며 사회정의 실천을 강조했다.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줬다는 것은 이러한 가르침 역시 전달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예수가 하느님 아들로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성령에서 비롯됐다. 루카는 예수가 성령 안에서 흥겨워하며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전한다(루카 10,21). 본인은 이를 성령 안에서의 취기(醉氣)로 이해하고 싶다. 예수의 흥겨움에는 일종의 전염성이 있었고, 제자들 역시 사람들과 음식과 친교를 나누며 즐거워했다.■하느님 나라 예수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바실레이아 투 테우(Basileia Tou Theou, 하느님의 다스림, 하느님 나라)'다. 이 말은 예수 이전에도 쓰인 바 있다. 그러나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가 온다"는 독특한 표현을 썼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미래에 가야 하는 공간적 대상을 넘어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는 역동성을 강조한다. 또 이 말은 하느님 한 분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며, 이방 민족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리라는 민족주의적 희망을 담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느님 자비가 내 안에 머물며 나를 이끌 때 이미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 친밀한 일치 안에서 우리 가운데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기적의 권능과 밀접하게 관련시켰다. 기적은 하느님 나라를 현실화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예수가 행한 마귀 추방과 치유 기적은 하느님 권능을 사람들에게 펼쳐 자비로운 은총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기적을 행할 수 없다. 기적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능력이다. 이 능력은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믿음 없이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고, 치유도 구원도 일어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2-24).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퇴사자2201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