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복음화 시대를 열어가는 수도회들문화 매개로 하느님 만나는 장 제공... 성 바오로수도회 무용수 19명 발레단 운영... 작은 형제회는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 운영...대월아카데미, 예수회센터서 문화,영성강좌 열어 문화 복음화 시대다. 복음을 전하고, 하느님 진리를 증거하는 데 있어 문화만큼 효율적인 매개체는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 복음화 시대를 열어가는 수도회 사례를 살펴본다. 지난해 1월 개관 당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1층에 있는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에서 흥겨운 공연이 열리고 있다. #남자수도회가 발레단을? "수도회가 발레단을 운영한다고요? 왜죠?" 세인트폴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성바오로수도회 백기태 신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백 신부는 "발레를 통해 전례무용을 전파하고, 나아가 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싶어서"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역동적인 교회 청년문화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수도회의 발레단 운영은 평소 출판ㆍ음반ㆍ인터넷 미디어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성바오로수도회의 영성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설립된 발레단은 19명의 가톨릭 신자 무용수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선교발레단'이라고 해서 아마추어들의 취미활동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발레 전공자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님이 주신 탈렌트로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 하나로 똘똘 뭉쳐 활동하고 있다. 최세희(아기 예수의 데레사) 부단장은 "단원 모집부터 연습실 마련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문화 복음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용선교'에 대한 단원들 열정은 남다르다. 마땅한 연습실도, 교통비 지원도 없지만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봉헌하며 연습에 열중한다. 세인트폴발레단은 12일 오후 3ㆍ7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서 '춤추는 미리암'을 공연한다. 창단 후 두 번째 정기공연이다. 성바오로수도회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주니어발레단도 설립할 예정이다. #수도원 카페에 맴도는 문화의 향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 최근 시민들 발길이 잦아졌다. 평일 점심 때면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러 찾아온 직장인들로 붐빈다. 회관 1층에 있는 문화공간 '산 다미아노(San Damiano)' 덕이다. 여느 전문 카피전문점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맛과 분위기를 자랑한다. 언뜻 보면 북카페처럼 보이지만 카페보다는 '문화적 만남'을 더 중시한 새로운 개념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커피와 책은 물론이고 하느님, 사람, 문화예술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60~70석 규모의 공연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매달 튜티앙상블 음악회, 휴(休) 음악회 등 다양한 테마로 무료 연주회가 열린다. 직장 동료들과 자주 온다는 서인하(30)씨는 "수준 높은 공연과 커피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기경호 신부는 "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만난 것처럼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가 하느님과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되고, 여러 세대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통교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도회에서 배움의 기쁨을!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면? 사진을 배우고 싶다면?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운영하는 대월아카데미를 찾아가보자. △자신을 정화하고 하느님과 대면하도록 이끄는 영신수련인 대월기도(몸기도) △하느님 말씀을 익히는 도상(圖像)인 이콘 △리코더ㆍ오카리나 △장구ㆍ가야금ㆍ해금 △성경공부 과정 성서40주간 △사진교육 △주교요지 원전 강해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대월아카데미는 현대인의 영적ㆍ문화적 갈증을 풀어주고, 예술 표현을 통해 하느님과 대면하는 '대월(對越)의 삶'을 구현하도록 이끌고 있다. '대월'은 순간을 성화하는 수도회 정신인 점성(點性)과 육신 안팎의 침묵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 순간을 뜻한다. #영성의 향기, 예수회에서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예수회센터에 가면 '영성의 뷔페'를 만끽할 수 있다. △수원 말씀의 집 원장 권오민 신부가 진행하는 영신수련 정기강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송봉모 신부의 성경대학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심종혁 신부의 영성의 향기 △예수회 홍보국장 조인영 신부의 왕초보를 위한 기도교실 등 다양한 영성 강좌가 즐비하다. 송봉모 신부의 성경대학은 수요일 낮반엔 480여 명, 금요일 저녁반에 300여 명이 등록해 공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센터 4~6층 피정동에서 진행되는 1박 2일, 3박 4일 단체 피정도 인기다. 방학 중엔 8일 피정도 열린다. 예수회센터는 그야말로 '영성의 복합단지(Complex)'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지혜2012.05.08
![[출판] 이달의 교계 잡지- 2월](//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9527_1.1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 잡지- 2월 ▨가톨릭 디다케 특집으로 '사순묵상/교리교안'을 다루며 △사진으로 묵상하는 주일학교 교사의 사순 △사순 시기, 예수님의 사랑! △한 뼘 더 자란 신앙의 키 등을 실었다. '백점짜리 교사 만점짜리 엄마'에서는 스마트폰에 빠진 6학년 남자아이를 둔 부모의 고민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우리 교사회 자랑'에서는 대구대교구 평화본당 주일학교 교사회를 소개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가르멜 수도회 영성을 특집으로 소개하며 수도회 영성의 전통과 네 가지 영적 단계를 설명했다. 지적장애인들과 함께한 해외문화탐방 동행취재기가 눈길을 끌며, 비타꼰 화랑에서는 서울대교구 가톨릭사진가회 부회장 문수영(토마스)씨 사진과 묵상을 실었다. 가톨릭 신앙유산 기행에서는 이스라엘 시온산을 소개했다.(마리아의 아들 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소식에서는 '한국 주교, 베트남전쟁 범죄에 대하여 사과하다'를 실었고 '세상 속 신앙 읽기'에서는 상처 받은 신자, 상처 입은 사목자를 다뤘다. '경향 돋보기'에서는 대선 이후의 진정한 민주화를 주제로 △조화로운 민주화를 향한 단상 △경제민주화 없으면 양극화 해소도 없다 △이제는 사회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 등을 게재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번역논저에서는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한문본 「성 요셉 성월」의 해제를 실었다. 「성 요셉 성월」은 북경교구장이던 들라플라스 주교가 성 요셉 성월인 3월에 요셉 성인 덕을 기리고자 1872년 북경에서 간행한 신심서적이다. '사목 서한으로 읽는 한국교회사'에서는 정규하ㆍ르 메르 신부의 서한을 각각 소개하며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교회사를 살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사순특집으로 이해인 수녀의 가상칠언 묵상시 3편을 실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성 금요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주례로 로마 콜로세움에서 거행된 십자가의 길 기도의 기도 묵상글을 쓴 포콜라레 회원 부부의 '가정 십자가의 길 기도'를 소개했다. '종교 간 대화'에서는 신정훈(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다종교 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증거에 관해 썼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정신으로(조환길) △교회를 사랑합시다(맥그리거/하성환) △성모님을 닮아 '좋은 땅'이 됩시다(손희송) △새로운 천년기의 거대한 도전(디아르무르/이재호)을 실었다. '걷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선 마산교구 순교자 묘지를 순례했고 '공의회 문헌 풀어보기'에서는 일치교령을 해설했다.(한국레지오마리애협의회/비매품)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멕시코에서 사목하는 최강(한국외방선교회) 신부 글 '웰빙을 원하세요?'를 실었고, 영성 에세이로는 △주님의 영광을 누리도록 창조된 인간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주님께 영광을 등을 게재했다. 묵상 시는 김요한 시인이 맡았다. 이와 함께 연중 제3주간부터 사순 제2주간 복음과 독서 말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미래사목 대안에서는 △2040 세대를 위한 교회 모델(현정수) △다원종교시대, 신앙의 부흥(김혜경) △신앙 대물림의 지혜(이영춘)를 게재했다. 시론에서는 '박 당선자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무지개꿈'(이순성)을 게재했다. 특집으로는 '착한 소비로 자라나는 공동선'을 주제로 △우리 사회 소비의 불편한 진실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 등을 다뤘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특집주제로 선정해 △아버지 딸의 아버지 기억(조영주) △그 비틀거림마저도 사랑합니다(이창근)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고함(권혁주) 등을 실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탤런트 서현진(가브리엘라)씨를 만나 인터뷰했고 '특별기획-유럽 성모발현지를 가다'에서는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성지를 소개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생활, 잘하고 있습니까?'를 주제로 특별좌담을 마련, 20대부터 60대까지 신자와 사목자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신앙 생활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복음 속 풍습과 친해지기'에서는 단식에 관해 알아봤고 '배워봅시다, 성경의 언어'에서는 히브리어 자음의 이름과 표기, 발음기호 등을 소개했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 봄 방학 특집으로 동생과 함께 읽는 그림 동화 '나는 곰 친구가 있어요'를 실었다. '예수님이 살던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을 안내했고, 부모님과 함께 보는 영화에서는 뮤지컬을 소재로 한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를 추천했다. '순교로 빛을 밝힌 성인 이야기' 만화에서는 성녀 김성임 마르타를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공의회를 사는 사람들'에서는 올바른 성(性)과 생명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는 이광호(베네딕토)씨를 만나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할 생명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표정이 있는 풍경'에선 광주대교구 해남본당 김양회 신부의 사진과 글을 실었다. '이슬람 이야기'에선 무슬림들의 꾸란에 관해 알아봤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아름다운 사람들'에서는 엄마 리더십으로 감동의 야구를 선사한 삼성 라이온즈 김인(루도비코) 사장의 삶과 신앙을 소개했다. 특집으로는 '불통? 화통! 소통^^'을 주제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김기경) △자식과의 소통, 어렵지 않아요(류태선) △학교 생활이 고달프냐고요?(박태순) △아~옛날이여!(배용우)를 실었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박수정 기자조은일2013.01.29

주님 공현 대축일 유래와 의미모든 민족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 전해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사건을 경축하는 축일이다. 그림은 '동방 박사들의 경배'(터키 카파토니아 동굴 성당 프레스코 벽화, 10세기).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예수 성탄 대축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축일이다. 가스파르, 발타사르, 멜키오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세 명의 동방 박사가 구세주께서 탄생하심을 알고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사건을 경축하는 날이다. 이 사건을 통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탄생이 공적으로 드러났다. 공현(公現)은 그리스어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인데, '드러나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매년 1월 2일에서 8일 사이 주일에 지낸다. 관련된 성경 기록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1). 동방 박사의 방문은 구약에서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6). 금과 유향은 당시 이방인들이 태양신에게 바쳤던 예물로, 세상을 비추는 빛(구세주)이 오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교회에서 시작됐다. 그리스도교 초기 서방교회는, 그날부터 낮이 길어지는 태양신 탄생 축일(동지)인 12월 25일을 예수 성탄일로 지냈다. 동방교회도 주님 공현과 함께 예수 성탄을 기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집트를 포함한 동방교회가 예수 성탄일로 기념한 태양신 탄생 축일(동지)은 1월 6일이었다. 예수 성탄일이 두 개가 된 것이다. 4세기 말께 동방교회의 예수 성탄일이 서방교회에 전해지면서 혼동을 막을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혼동을 막고 성탄과 공현을 구분하고자 예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로 나눠 지내게 됐다. 지금도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내는 동방교회가 적지 않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예수 성탄 대축일과 달리 특별한 예식을 하지 않는다. 공현 대축일이 성탄시기에 들어 있으면서 성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성탄은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공현은 '그분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들 형상을 구유에 설치한다. 세 명의 동방 박사는 구세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교황 레오 1세(재위 440~461)는 그의 강론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의 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늘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연장해주고 있는데, 두 축일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의 신비를 연이어 지낸다 해서 우리 기쁨의 강도나 믿음의 열정이 약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태어나신 갓난아기가 작은 마을에 갇혀 계시면서도 벌써 온 세상에 선포하신 인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백성 그리고 이 백성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하셨으며, 이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만민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당신의 탄생이 어머니의 협소한 거처 안에 감춰져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즉시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성탄 대축일의 중심이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에 있다면,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신성(神性)으로 눈길을 돌린다. 다시 말해 성탄 대축일은 인성에, 공현 대축일은 신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두 대축일은 성탄과 공현의 의미를 서로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남정률2012.12.31
![[기획] 세례 물 협력의 해- 목마른 하느님<하>](//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6627_1.0_titleImage_1.jpg)
[기획] 세례 물 협력의 해- 목마른 하느님생명 품은 물 보전은 곧 하느님 창조질서의 보전경북 예천군의 물돌이 마을인 회룡마을 전경. 마을을 360도 휘돌아 흐르는 강은 내성천으로, 국내 몇 되지 않는 모래강이다. 올해 초 영주댐이 완공되면 다시는 이 모습을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세계는 지금 '물 전쟁' 중이다. 중동을 비롯한 아프리카와 남미 등 지구촌 곳곳이 수자원 확보로 인한 갈등으로 편할 날이 없다. 지구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 넉넉히 마음껏 쓸 수 있었던 물이 1990년대 이후 '푸른 금(Blue Gold)'으로 둔갑하면서 세계는 물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세계 각국 및 국내 물 분쟁 사례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치열해지는 물 확보 분쟁 사실 물을 확보하려는 분쟁(전쟁)은 인류가 창조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역사가 길다. 성경에도 구약시대 아브람과 조카 롯이 물을 찾아 각각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창세 13,8-10). 황창연(수원교구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신부는 저서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에서 "'라이벌'은 라틴어 'Rivalis(같은 강물을 사용한다)'에서 유래한 말"이라며 "같은 강물을 쓰는 사람은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아프리카 나일강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가 물 확보를 위한 전쟁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1951~1953년, 1964~1966년 요르단강 물줄기를 바꾸려는 계획 때문에 두 차례나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요르단강을 함께 쓰는 레바논과 요르단, 시리아에 강에 손을 대는(댐 건설 등) 즉시 폭격을 감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어서 언제 다시 전쟁이 날지 모른다. 아프리카 세네갈은 북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리타니와 물 분쟁 우려 때문에 양국 관계를 고려해 댐 건설을 전면 백지화한 적이 있으며, 중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 태국을 흐르는 메콩강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유럽도 독일 바덴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ㆍ헝가리 등 17개국을 따라 흐르는 다뉴브강을 둘러싼 각국의 기 싸움이 존재한다. #국내 물 분쟁 사례와 바람직한 대안 예로부터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불릴 정도로 맑은 물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물로 인한 갈등이 드물다. 유엔이 최근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정부와 환경단체 입장이 다르고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린다. 현재 국민 대부분은 물 부족의 심각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사실 물 부족이나 물로 인한 분쟁은 피부에 와 닿는 이슈가 못 된다. 하지만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과 1995년 시화호 오염, 2000년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갯벌 생태계 파괴, 지난해 팔당 상수원 녹조 등을 겪으며 수질오염 및 수자원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분쟁까지는 아니어도 한강과 낙동강 등 식수원인 강을 둘러싼 지자체 간 갈등은 엄연히 존재한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해 강원도ㆍ충청도ㆍ경기도ㆍ서울을 지나 경기만으로 흐르는 한강만 하더라도 상류지역(강원도)과 하류지역(인천시) 간에 갈등이 존재한다. 낙동강 상류에 있는 대구시와 하류지역인 부산시의 갈등도 오래된 이야기다.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강 특성상 상류가 맑아야 중ㆍ하류도 맑다. 상류지역 지자체가 물을 조금이라도 덜 쓰고 덜 오염시키고, 폐수를 깨끗이 처리해야 하류지역 지자체가 수돗물 생산에 드는 비용과 폐수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수자원 이용을 지속가능하게 할 대안은 무엇일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기후변화와 사막화, 하천 오염, 생물 다양성 상실 등은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 모두 이러한 환경문제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생태적 위기를 다른 관련 문제와 분리해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순진(건국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물이 깨끗하다는 것은 물이 나오는 땅이 깨끗하다는 뜻이며, 그 물에 사는 생물과 생태계 역시 건강하다는 뜻"이라면서 "물을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인식을 생태계 전반, 하느님 피조물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퇴사자22012.12.31
[성경 속 상징](93) 화환 영예와 기쁨, 전쟁에서 승리 1922년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왕 무덤이 발견됐다. 18살에 요절한 투탕카멘왕의 무덤은 3000여 년 동안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투탕카멘왕 무덤에는 당시 이집트의 번영을 나타내듯 황금과 향료 등 진귀한 보물들이 잔뜩 있었다. 무엇보다 고고학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투탕카멘왕 관 속에 놓여 있는 한 묶음의 화환이었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보존된 이 화환을 누가 왕에게 바쳤는지에 대해선 기록이 없었다. 학자들은 청상과부가 된 왕비가 남편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화환은 영예와 축복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 화환은 그의 왕비가 바친 것이 아닐지라도 결코 나쁜 의미로 그곳에 있진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고대 이집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도 화환이 이용됐다. 겨울에도 잎이 무성한 상록수가 마법적 힘을 가졌다는 생각에 상록수로 환(環)을 만들어 나쁜 액을 막는데 사용했다. 전쟁에서 개선하는 전사와 올림피아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들에게는 월계관을 씌워주기도 했다. 젊은 연인들은 애인 집 문간에 사랑의 표시로 화환을 걸어두기도 했다. 또 신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화환을 쓰는 관습이 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장미꽃다발이나 장미화환을 바쳤다. 초창기 박해 당시 신자들은 사자밥이 되기 위해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갈 때 장미화환을 쓰고 들어가 순교했는데, 신자들은 밤중에 몰래 시신을 수습하며 떨어진 장미꽃을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성경에서 화환은 영예와 기쁨을 상징한다. "지혜를 소중히 여겨라. 그것이 너를 높여 주리라. 지혜를 품으면 그것이 너를 영광스럽게 하리라. 그것이 아름다운 화환을 네 머리에 씌워 주고 화려한 관을 너에게 가져다주리라"(잠언 4,8-9). 하지만 하느님 뜻을 거스른 자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도 쓰였다. "불행하여라, 에프라임 주정꾼들의 거만한 화관!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버린 꽃! 술에 빠진 자들의 머리 위에, 기름진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것!"(이사 28,1). 성경에서 화환은 무엇보다도 경기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한다. "덕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본받고 없을 때에는 그것을 갈구한다. 고결한 상을 놓고 벌인 경기의 승리자, 덕은 영원의 세계에서 화관을 쓰고 행진한다"(지혜 4,2). 바오로 사도는 신앙을 구하는 싸움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기에 비유하면서 영생을 썩지 않는 화환에 비유했다.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1코린 9,25). 주님께서는 당신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화환을 주신다(2티모 4,8). 야고보 사도는 신앙의 시련을 극복하고 유혹의 시험을 참는 자는 생명의 화환을 받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12).허영엽(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신부 이지혜2010.11.02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3. 사순 제4주일- 천주 성부, 자비로우신 아버지](//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2709_1.0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3. 사순 제4주일- 천주 성부, 자비로우신 아버지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근원, 하느님 아버지하느님은 무한히 용서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시다. 그림은 '돌아온 탕자'(뉴욕 박물관, 작자 미상). [CNS] 사순시기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회개와 속죄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을 깊이 깨닫고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 곧 천주 성부의 마음입니다.◇살펴봅시다 ㉠한 분이신 하느님(198~231항) : 우리가 신앙고백 때 바치는 신경 가운데 하나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하느님이 한 분이시라는 고백은 하느님이 계신다는 고백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께서 본성과 실체와 본질에서 오직 한 분이심을 고백한다"(200항).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 당신께서 유일하신 분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유일하신 하느님은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 이 말씀은 지금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느님이 바로 이스라엘 조상들의 하느님이시라는 것, 곧 언제나 한결 같으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어서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직접 알려 주십니다.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나는 있는 나다"라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이름 '야훼'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깨닫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무한히 초월해 계시는"(206항) 신비로운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이 하느님은 "숨어 계신 하느님"이며 또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있는 나다"라는 하느님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그들 곁에 늘 계시는 하느님"(207항), 살아계신 하느님이심을 알려 줍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늘 우리 곁에 계시는 하느님은 또한 자비와 은총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을 용서한다"(탈출 34,6). 이 하느님은 진리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리 자체이시며 그 말씀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215항). 그뿐 아니라 당신을 계시하실 때도 하느님께서는 진실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에게서 오는 가르침은 그 자체가 참된 법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것도, 이스라엘의 불성실과 죄를 용서하신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이 사랑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비유됩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 : 많은 종교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만물의 근원이시며 초월적 권위를 지니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것입니다(238~239항 참조).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의미에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당신 외아들과의 관계에서도 영원히 아버지"(240항)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시는 하느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마태 6,32 참조).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한결 같으신 아버지이십니다(마태 5,45 참조).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서 보듯이 인내하시고 용서하시고 무한히 자비로우신 아버지십니다. "모든 용서의 근원"이십니다(1439, 1449항).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은 당신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결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됐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넣어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742항 참조). ◇알아둡시다 전능하신 하느님(268~278):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모두 하느님 아버지를 전능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전능이 "우주적"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 하느님의 전능은 "사랑으로 충만한 전능"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우주적 전능에 대해 여러 번 고백합니다. 그분은 "만군의 주님"(시편 24,10)이시며,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이루시는 분(시편 135,6)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주의 주님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아버지로서의 전능을 보여주십니다. 당신 자비로 죄인들을 자유로이 용서하심으로써 그 권능의 극치를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시라면 왜 세상에는 악이나 고통이 있는지요? 왜 때로는 하느님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지요? 교회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들의 자기 낮춤과 부활 안에서 당신의 전능을 신비하게 드러내시고 그 낮춤과 부활을 통해 악을 이기셨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힘이며 지혜이시다"(272항). 우리는 오직 신앙으로만 전능하신 하느님의 이 신비한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동정 마리아는 이 신앙의 가장 탁월한 모범이십니다. 동정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우리 영혼에 깊이 새겨진 이 확신보다 우리의 신앙과 희망을 더 굳게 해주는 것은 없다"(274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3.05

'이성의 오만'에 맞서 새로운 복음화에 매진[교황 특집] 진리의 수호자, 교황 베네딕토 16세<하>- 그는 세속주의와 싸웠다2월 28일 교황직에서 물러나기 직전 카스텔 간돌포에 도착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환영객들에게 인사한 후 돌아서고 있다. 【CNS】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현대사회의 무신론자들 책이 한바탕 바람을 일으켰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이들의 공격적 무신론을 요약하면, 인간 이성으로 신을 설명하지 못하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 망상에서 창조된 것이고, 인류 분열의 근원이기에 빨리 버려야 새로운 시대의 지식인이라도 되는 양 논리를 전개한다. 독실한 신앙인에게 이들 주장은 하느님에게서 고삐 풀린 '이성의 오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주장에 열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하느님 없이도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 배제하는 풍조 확산 이런 무신론적 태도를 부추기는 것은 세속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이다. 세속주의는 초월적인 것을 세상적인 것으로 끌어내리고 하느님이 배제된 사고방식을 부추긴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복음의 진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다른 세속적 가치와 동일시한다. 아무것도 궁극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러한 시대 조류와 교회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전에 신에게 고대했던 것을 모두 제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과학적 지성 체계는 신앙 문제를 태곳적 일이나 신화적인 것, 또는 지나가 버린 문명에나 속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 적어도 그리스도교는 과거 유물로 취급된다."(대담집 「신앙의 빛」 208쪽) 1995년 독일 칼스루에(Karlsruhe)에 있는 연방헌법재판소는 "공립학교 교실에 십자가를 거는 것은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려 교황청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칼스루에 판결'이라 불리는 이 결정은 공적 영역에서 신을 철수시킨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또 유럽연합(EU)이 유럽 기본권 헌장을 만들 때, 초안에는 회원국이 공유하는 문화적ㆍ인문적ㆍ종교적 유산을 언급했으나 프랑스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결국 정신적ㆍ도덕적 유산만 언급해야 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교회 입장에서 이런 시대적 조류는 거대한 역풍(逆風)이다. 이 때문에 교황은 서구사회의 신앙 위기 원인이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영향이라고 보고, '새로운 봄'을 재촉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고유한 역사 속에 내재하는 위대한 도덕적ㆍ종교적 힘을 스스로 절단해낸다는 것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문화의 자살 행위를 뜻한다. 신성불가침의 도덕적 가치를 거부하면 유럽의 양심은 자멸한다. 유럽이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새롭게 인정해야 한다." 유럽에서 그리스도교는 가장 권위 있는 정신문명 체계였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시민혁명,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던 하느님을 변방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문명이 종교를 대신해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사회질서의 토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한 사상가의 격한 선언이 아니라 당대 사회상의 반영이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도 르콩드는 「마지막 유럽인 교황 베네딕토 16세」에서 "교황은 유럽사회가 하느님 때문에 불편해지는 걸 싫어한다면, 이는 세속주의ㆍ냉소주의ㆍ소비만능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주의에 물들어 쇠약해졌다는 뜻이라고 여긴다. 그에게 상대주의는 종교의 가장 큰 적이었다"고 말했다. 교황이 임기 중 '새로운 복음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한 이유도 이런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우리 시대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경청과 새로운 복음화의 시대가 돼야 한다. 그리스도교 생활에서 하느님 말씀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만민을 향한 선교를 계속하고, 세속주의 확산으로 복음에 무관심해진 나라들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준다."(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주님을 향해 새롭게 돌아서라 교황은 교회 미래를 결코 장밋빛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이미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부터 그리스도교는 소수 종교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교회는 가까운 미래에 더 이상 단순히 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삶의 형식이라는 지위를 잃을 것이다.… 교회는 앞으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거대 사회와 관계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소수인의 교회가 될 것이다. 신앙에 따라 사는 진짜 독실한 신도들로 이뤄진, 작지만 생명력이 있는 모임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교회는 성경 말씀대로, 다시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다."(대담집 「이 땅의 소금」 197ㆍ260쪽) 교황은 인간이 하느님에 매여 있는 끈을 끊어 버리고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이 침몰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늘 새로운 시작을 창출한다고 말한다. 또 교회의 생명력에 기대를 건다. "교회를 단순화시키면서 동시에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여는 데 도움을 주었던 진정한 개혁자들은 언제나 성인들이셨다. 베네딕토 성인을 생각해보라. 그분은 고대 말기에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안해 교회로 하여금 엄청난 변화의 길을 가도록 하셨다."(「이 땅의 소금」 309쪽)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 연장선상에서 지난해 10월 신앙의 해를 선포했다.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해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이다. 또한 인류를 향한 간곡한 호소이다. "오직 주 그리스도 안에서만 미래에 대한 확신과 참되고 영원한 사랑이 보장된다. 이 신앙의 해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 굳건해지기를 바란다."(신앙의 해 선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 15항)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cpbc2013.03.05

가부장적 본당 문화 근본적 변화 촉구우리신학연구소,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아시아 평화' 주제 실천신학 포럼아시아 청년 아카데미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본당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개방적이며 네트워크화된 문화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우리신학연구소 주최로 12~14일 수원 화서동 수원대리구청에서 열린 아시아 실천신학 포럼에서 존 프라이어(말씀의 선교수도회, 영국) 신부는 "전통적 가톨릭 문화의 특성은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가부장제도"라며 "본당 문화와 사목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교회 운동들이 본당 내에서 설 자리가 없는 가톨릭 신자들을 흡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정한 참여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발표한 프라이어 신부는 "전통적 교회 문화 안에서는 사회적 다양성, 문화적 다원주의, 종교적 파격 등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지적하며 △차별이 없고 △남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성경의 가치관과 규범을 강조하고 △사회에 대한 사명을 강조하는 교회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새 우주론과 교회쇄신 : 교회 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를 발표한 생태신학자 디아무드 오무쿠(예수성심전교회, 아일랜드) 신부는 "현재 가톨릭 신자의 80%가 남반구에 있고, 서구 사회와는 다른 문화에서 살고 있지만 교리와 가치에 대한 대부분 문제는 유럽과 로마 견해를 우선으로 여긴다"며 "교회의 99%는 평신도지만 교도권자인 성직자 견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오무쿠 신부는 "대중매체들은 교회 다양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교회 '공식입장'에만 초점을 맞추기에 교회에 큰 오해를 갖고 있다"며 "현대 가톨릭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언론과 신자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 고정관념과는 극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과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설립 40주년을 맞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포럼에는 세계 10여 개국 신학자와 청년 등이 참가해 △아시아 평화 △새로운 교회론 △세계화와 노동현실 △새로운 영성 △정의와 평화 등을 주제로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한국 소공동체와 공공성'을 주제로 발표한 김정용(광주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지금까지 소공동체는 세상의 빛으로서 한국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역부족이었다"며 "소공동체가 세상 속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중산층 신자 중심의 교회현상유지 프로그램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소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한 공적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복음의 시대적 해석인 사회교리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소공동체 시선을 교회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전환하고 △복음 영성을 심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폭력 평화 실현을!'을 주제로 발표한 마츠우라 고로(일본 오사카대교구 보좌) 주교는 "영토 분쟁이 일어나거나 국가 간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 우리는 '군사력으로 권리를 지키겠다'고 사고(思考)하기 시작한다"며 "사고의 출발점을 '군사력 우위'에 둘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혜를 모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츠우라 주교는 "군대를 갖고 있지 않으면 군대를 유지하는 데 드는 막대한 예산을 교육ㆍ환경ㆍ국제공헌 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며 "진정한 평화는 비군사적 요소와 비폭력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확고히 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 앞서 3일부터 11일까지 아시아 12개국 청년, 수도자, 사제 등 25명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아 청년 아카데미'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정의, 평화, 생태 문제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신앙인의 소명과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11.13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47>어리석어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미사(크리스마스)](//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880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어리석어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미사(크리스마스)사회적 약자에게 다가온 구원과 해방의 기쁜 소식 코흘리개 시절, 이색 저색 크레파스로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뜻도 모르는 문구를 집어넣어 성탄 카드를 만들곤 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 뜬금없이 '왜 그렇게 무성의하게 카드를 만들었을까' 자문한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딱히 카드를 건넬 이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애써 핑계를 찾는다. 수십 년이 지나 해마다 성대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교회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스도 미사의 진정한 의미 필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철없던 그때나 지금이나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 이유는 '거룩하게 태어난 그 아기가 도대체 무슨 죄를 범했기에 십자가에 처형되었을까',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으니, 그 아기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잇는 길을 연 셈인데, 사람들은 왜 십자가를 만들어 하늘로 높이 세워놓고 그곳에 그를 매달았을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하늘과 땅을 잇는 길을 폐쇄하려는 것이었을까, 왜 폐쇄하려 했을까, 하느님 통치를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들의 무한 통치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혹시 이 사람처럼 하늘과 땅을 이으려는 불경한 짓(?)을 하면 이 꼴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누군가 으름장을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들 때문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성탄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말이다. 그리스도(Christ, 기독, 基督)는 하느님의 사명(구원과 해방)을 받아 기름을 얹어 성별(聖別)하여 파견된 이(메시아)를 말한다. 미사라는 말은 '파견'이라는 의미를 갖는 라틴말이지만, 교회는 희생과 나눔과 친교의 제사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하느님 사명을 요약하면 구원과 해방이다. 이는 비(非) 구원과 억압의 상태를 전제한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비 구원과 억압의 상태에 놓인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고 해방하기 위해 파견된(성탄) 예수의 희생(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것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원과 해방이 마음의 문제이며 개인의 문제이며 사후의 문제이기만 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달리 신구약성경과 교회 가르침은 구원과 해방이 현실의 구체적 문제이며, 공동체의 문제이며, 역사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예수가 관심과 애정을 갖고 돌본 이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 거꾸로 끈질기게 예수를 죽이려 애쓰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를 보라. 오늘날 표현으로 요약하면 예수는 사회적 약자에게 구원과 해방의 길을 열어주었고, 그 예수를 죽음의 길로 내몬 이들은 현세의 힘 있는 지도자들이었다. #따뜻함을 전하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예수의 성탄을 노래하고,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으며, 거리를 빛으로 장식하지만, 그 모든 것은 반드시 이 땅의 평범한 사람에게 구원과 해방의 기쁜 소식이어야 한다. 예수가 목숨을 바쳐 돌보고 섬긴 사람들, 예수가 당신의 이웃으로 또 벗으로 삼은 이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그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부르는 성탄 노래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 대한 조롱에 불과하다. 거리에 내몰린 이들을 그늘로 몰아넣었다면, 아무리 화려한 성탄 장식도 의미가 없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겉옷을 놓고 벌인 제비뽑기에 불과하다. 수많은 이들을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틀에 가둬놓았다면, 성탄 카드와 아무리 비싼 선물이라도 고통에 신음하며 목말라 하는 예수에게 건넨 신포도주에 불과하다. 존경하는 어느 신부가 지난해 12월 20일 "아직 성탄도 아닌데 성금요일 아침을 맞은 텅 빈 마음"이라는 문자 글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그리고 다음날 21일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의 죽음에 이어, 또 그 다음날 22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씨가 목숨을 끊었다. 우리 사회가 '잘 살아보세'를 노래할 때, 예수처럼 수많은 힘없는 이들이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성탄을 보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와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땀을 흘려야겠다. 내 삶이 크리스마스 카드가 되어야겠다. 겨울 추위를 이기려면 따뜻함이 필요하고, 마땅히 땔감을 태워야 한다. 이웃과 세상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남을 태워서라도 나를 따뜻하게 하면 된다는 세태에서, 나를 태워 남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참 거룩함이다.퇴사자22012.12.25

한국 가톨릭 '연료' 떨어지면 안 된다[인터뷰] 오수영 신부-'신앙의 해', 복음과 성령으로 재무장해야 오수영 신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월 27일 교황청 신앙교리성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현대사회의 신앙 위기를 '연료가 떨어진 불꽃(a flame without fuel)'에 비유했다. 전통에 안주한 채 영적 활력을 잃어가는 서구교회에 해당되는 비유이겠지만, 우리 한국교회라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부산교구 원로사목자이자 오순절 평화의 마을 설립자인 오수영 신부는 "한국교회 '연료'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는 10월에 시작되는 신앙의 해를 하느님이 주신 영적 충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피정과 기도회를 주관하는 등 교회에 영적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듣든지 나라도 미쳐야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바오로의 해와 사제의 해를 어떻게 보냈나 "먼저 우리가 바오로의 해와 사제의 해를 충실히 살아냈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의 복음선포 열정으로 거듭나고, 사제들이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본당 사제들의 수호 성인) 영성 안에서 내적 쇄신을 이뤄내는데 미흡했습니다. 신앙의 해는 이런 반성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기초해 신앙 활력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새로운 복음화 동력은 복음 말씀과 성령, 그리고 사제들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하루 30분씩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타 강사의 명강의를 들을 때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말씀을 받아 적어야(성경필사) 합니다." 그는 오순절 평화의 마을 원장 시절, 국내에서 처음 성경 통독을 하며 성경읽기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성령쇄신운동 1세대인 그는 또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는 인간이든 교회든 쇄신은 성령강림을 통해 거듭 태어남으로써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며 신앙쇄신 동력을 성령쇄신운동에서 찾자고 제안했다. "침체된 성령쇄신운동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삼위일체 신비를 믿으며, 매일 성호경을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성부와 성자'에게만 의지해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완성해 주신 분이 '위에서 내려오는 힘', 바로 성령인데 말입니다." 그는 "성령이라는 말이 나오면 뭔가 이질감이 드는 성령세미나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따라서 성령쇄신운동 관계자들은 더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교회 '연료' 떨어지면 안 돼 그는 최근 A4용지 반장 크기의 리플렛을 1만 장 인쇄했다. 제목은 '하느님의 영을 지니는 것, 그것이 전부다!'이다. 영국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이 사제 성화를 기원하며 사제들에게 띄운 글 '완전해지려면'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오늘의 교회를 위한 기도' 등을 인쇄한 리플릿도 수북이 쌓아 놓았다. 오 신부는 "교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이 리플릿을 미친 듯이 나눠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 신부는 "한국 가톨릭은 우리 사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할 일이 많기에 '연료'가 떨어지면 안 된다"며 "신앙의 해를 은총의 해로 보내려면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김원철2012.02.07

"자전거는 타야 재밌지 메고 가면 힘들어"'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공동기획한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 "신앙은 '기쁨'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지만, 그것을 받아 키우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평화신문과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를 공동기획한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이번 기획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기쁨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신앙의 기초체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손 신부는 "하느님 선물인 신앙을 키우려면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앙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앙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 손 신부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어깨에 메고 다닌다면 힘이 든다"며 "하지만 타는 법을 배우면 자전거 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앙의 해는 그러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앙의 해 공동기획에 바라는 점은 "신앙의 해 취지가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또한 신앙의 맛과 기쁨을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신앙의 해가 일회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신앙은 기쁨이자 하느님 선물이다. 신앙의 기쁨을 누리려면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만남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우리는 좋으신 하느님을 만날 때 매우 기쁘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제대로 알고 살았기에 기쁘게 순교의 칼을 받았다. 신앙의 기쁨을 느끼려면 우리에게 손 내미시는 하느님께 우리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미사에 참례하고 돌아가는 신자들 표정에 기쁨이 묻어나야 한다." ▶서울대교구는 말씀ㆍ기도ㆍ교회 가르침ㆍ미사ㆍ사랑나눔 등 5가지 신앙의 해 표어를 정했다. 선정 배경과 취지는 "서울대교구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위기는 '허약한 신앙'에 있다. 예비신자가 있지만 그만큼 냉담교우가 생긴다. 위험신호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로마 10,17)고 말했다. 그래서 첫 표어를 말씀으로 정했다. 기도는 그 다음이다. 또한 하느님 뜻은 교회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기에 교회 가르침도 중요하다. 요즘 신자들은 교회 가르침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교회의 공적 가르침은 하느님 뜻이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뤄졌다. 교회 가르침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 미사는 공동체성을 드러내 준다. 교회의 핵심이 미사다. '하나가 되자'는 것이 우리 신앙이다. 모든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바로 사랑 실천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신앙은 시작이요, 사랑은 마침'이라 했고, 야고보 사도는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현대 신앙인들의 신앙적 토대가 점점 약해지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예전보다 기도를 안 한다. 옛 신자들은 가족과 함께 조과ㆍ만과(아침ㆍ저녁기도)를 바쳤다. 성경공부를 하는 이들도 전체의 10%도 안 될 것이다. 신자로서 꼭 해야 하는 말씀공부와 기도를 안 하는데 신앙적 토대가 튼튼할 리 없다. 교회 외적 요인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학생들은 성적, 어른들은 돈을 하느님 위에 둔다. 돈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했으니 신앙이 약해지는 것이다. 돈을 절대화하는 풍토가 문제다. 나 자신을 절대기준으로 삼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도 우려스럽다. 우정이 깊어지려면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며 함께 이겨내야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한국교회에도 유럽교회화 돼가는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이 있는데 "세속화를 경계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 모습은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세속적 판단기준이 통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변질되고, 복음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교회 봉사직에 명예, 재력, 학력을 내세우면 세상과 다른 게 무엇인가. 입교한 지 얼마 안 돼 냉담하는 사람 중에는 그런 모습에 실망하고 돌아선 경우가 많다. 순교자 중에 황일광(시몬, 1757~1802)이라는 백정이 있다. 그는 천국이 두 곳이라고 했다. 하나는 죽어서 갈 곳이고, 또 하나는 바로 여기라고 했다. 하느님을 만난 양반들이 천민 백정을 한 형제로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교회가 천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신앙의 해가 18일로 100일을 맞았다.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신앙의 해를 열심히 살아가는 본당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본당도 있다. 본당에서 신앙의 해 프로그램을 신앙의 기쁨을 얻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 신자들이 신앙과 공동체 생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사목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목자들 관심과 호응이 성패의 관건이다. 이번 공동기획이 교회 공동체에 동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한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황병훈2013.01.15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요한 2,1-11)](//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87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요한 2,1-11)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연중 제2주일이다. 요한의 세례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세례운동을 거룩한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만드신 예수께서는 오늘 어머니와 함께 카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신다. 혼인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의미대로 성숙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으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음을 뜻한다. 동시에 인류가 대를 이어 존속해갈 수 있는 통로요 창구다. 이런 자리에 예수께서 증인으로 참석하심으로써 혼인은 거룩한 하느님의 역사로 거듭나게 된다. 이제부터 혼인은 단순히 인간끼리 만남의 장이 아니라 태초에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거룩한 일체의 표징이 된다. 오늘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혼인잔치에 참석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첫 번째 기적에 눈길을 보내기보다는 이 자리에 참석한 주님 어머니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면 어머니의 태도가 바로 주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셨다. 또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으며"(루카 2,19) 오늘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함으로써 모든 것을 당신 아드님 뜻에 맡기셨다. 물론 어머니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그분 뜻대로 하시라고 맡기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고 했다. 또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라고 했다. 오늘 복음에서는 아드님을 향해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하셨다. 더러는 두려워하고, 역정 아닌 역정을 내며, 아들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권위를 발휘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아드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희망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아드님은 또 어떠하신가? 단 한 번도 어머니 희망을 꺾지 않으셨다. 아드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으며"(루카 2,51) 오늘은 또 "물독에 물을 채워라 (…)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요한 2,7-8)고 하심으로써 어머니 요청을 모두 들어주셨다. 아드님께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청원,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이의 청원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청원하는 이의 청원보다 과분하게 넘치는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아드님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주님 앞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가? 복음서 안에 주님이 몇 번이나 기적을 행하셨는지 혹은 몇 번이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지, 또 십자가를 지시고 몇 번이나 넘어지셨고, 유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대답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와 같은 태도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복음사가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루카 2,11)고 전한다. 제자들은 그분 영광을 보고서야 그분을 믿으려 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머니처럼 무조건 아드님을 믿는가? 아니면 제자들처럼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영광을 보고 그분을 믿는가? 사실 어찌 보면 전자도 후자도 아닌 듯싶다. 우리는 어머니처럼 아드님에게 모든 것을 걸고 희망하기란 틀려버린 게 아닐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겉으로는 "주님!"하면서 속으로는 모든 것을 자기 욕심대로 결정하고, 그것을 주님 뜻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처럼 주님 영광을 보고 믿는다는 것도 진실이 아닐까봐 근심스럽다. 주님 영광이라면 성경을 통해, 각종 교리서와 성인 전기를 통해, 하늘과 땅과 산천초목을 통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도 저도 아니면서 세파에 이리저리 떠밀려가는 신세로 살면서 짐짓 입만 열면 주님, 주님하는 것을 보면 암담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는 주님 말씀이 곧 오늘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보여 슬프기까지 하다. 주님은 어머니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루카 2,4)라고 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나 그 어느 누구에게도 휘둘리실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온전히 자유로운 분이신데 우리는 그분을 그분 뜻이 아니라 우리 뜻대로 움직이려 든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람들에 의해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으셨지만, 외려 혼인을 하느님의 거룩한 표징으로 만드시고 친히 축복해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의 종이면서 자녀라면 주님 뜻을 헤아리며 살 줄 알게 된다. 자기 뜻에 맞춰주실 것을 주님께 요구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왜냐면, 그분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그저 그분 작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cpbc2013.01.15
[성경 속 상징] (92) 화 지혜로운 이는 화를 가라앉혀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베트남 승려이자 시인, 평화 운동가로 유명한 틱낫한 스님이 쓴 책 「화」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행복한 인생을 꿈꾼다면 화부터 다스리라고 권고한다. 평소에는 늘 웃고 지내다가도 상대방 말 한마디에 불쑥 화가 솟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평상시에도 마음속에 화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외부로부터 크고 작은 자극을 받으면 가만히 숨어 있던 화가 마음 한가득 퍼진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화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상대방을 공격하고 악담을 퍼부어 화를 쏟아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화내는 사람의 마음에 몇 배의 화를 다시 쌓게 된다. 불쑥 솟아나는 화를 무조건 참아야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화를 무조건 드러내는 것도, 화를 참고 속으로 삭이는 것도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화가 날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충분한 시간 동안 호흡을 천천히 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권한다. 그리고 화를 폭발시키기 전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라고 조언한다. 순간의 감정을 화로 쏟아내고 나면 인간관계가 깨지기 쉽고, 대개의 경우 화를 낸 후로는 후회의 감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올리면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분이라는 기억이 제일 먼저 난다. 그런데 가끔 화를 내시면 평소와는 딴판으로 무척 무섭게 꾸짖고 벌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화가 나셨다 하면 무조건 줄행랑을 쳤다. 시간이 좀 흐른 후 집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아버지는 평온상태셨다. 요즘에는 우발적 폭력이나 살인이 점점 더 늘어난다고 한다. 욱하는 성질과 핏대를 억누르지 못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방증이다. 성경에도 화에 대한 언급이 많다. 화를 잘 내면 다른 이와 언쟁이 잦아지고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우둔한 자는 화를 있는 대로 다 터뜨리지만 지혜로운 이는 화를 가만히 가라앉힌다"(잠언 29,11). 또 화는 이성적 힘을 약화시켜 본의 아닌 실수와 잘못을 가져온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싸움을 일으키고 성을 잘 내는 자는 죄를 많이 짓는다"(잠언 29,22). 또한 화는 자주 범죄로 이어지므로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화를 잘 내는 자는 벌을 받는다. 네가 그를 구해 주려 하면 화를 돋울 뿐이다"(잠언 19,19). 화를 쉽사리 내지 않고 기분 나쁜 일에 즉시 발끈하지 않으려면 대단한 용기와 이성적 힘이 필요하다. "분노에 더딘 이는 용사보다 낫고 자신을 다스리는 이는 성을 정복한 자보다 낫다"(잠언 16,32). 재미있는 것은 하느님도 화를 내시는 분으로 소개된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는 꾸짖고 가르치시려고 우리에게 잠시 화를 내시지만, 당신의 종들과 다시 화해하실 것이오"(2마카 7,33). 그러나 하느님의 화는 결국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한 것이다. cpbc201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