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181) Q. 술만 마시면 푸념하는 남편](//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23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81) Q. 술만 마시면 푸념하는 남편Q. 술만 마시면 푸념하는 남편 제 남편은 술만 마시면 가족에게 푸념을 해대서 아주 괴롭습니다. 특히 자기는 부모를 잘못 만나 어린 시절이 너무 가난했고,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제가 처녀 때는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안돼서 나름 도움을 주고자 했고, 결혼 후에도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날이 갈수록 술주정이 심해져서 이제는 남편 신세타령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남편이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A. 남편의 증세는 '피해자 증후군'입니다. 이런 사람은 늘 입버릇처럼 "너희가 나를 알아?" 하면서 허세 아닌 허세를 부립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문제가 다 과거 이유 때문이라는 변명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데, 이런 모습이 때로는 특권을 누리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버스에 올라타서는 자기 전과를 자랑하는 사람처럼 말이지요. 과거에 아무리 아픈 상처가 있다손 치더라도 현재 나의 삶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 중에는 어린 시절 불우했던 기억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만듭니다. 진흙탕 같은 자기 과거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그 진흙탕 안에서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런데 피해자 증후군 증세를 가진 사람들은 꽃을 피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늘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 속에서 마치 그 영혼이 늪에 빠진 사람처럼 살아가니 자기 인생에서 꽃을 피우기는커녕 시궁창처럼 썩은 내를 풍기며 사는 것입니다. 자매님 남편의 술버릇을 고치려면 절대 주정하는 소리를 들어주면 안 됩니다. 응석받이가 돼서 더 심해질 것입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제풀에 지쳐서 안 하게 될 것이니 동정이나 연민은 절대 금물입니다. Q.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데 저는 아직 신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루카복음을 읽고 있습니다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52). 이 대목을 읽다 보면 그리스도교를 믿으면 가정이 파탄이 난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정말 그런지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가 시집가서 시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A. 얼핏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보면 루카복음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가정을 파탄 내기 위한 말씀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정의 화목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가족 간 불화를 조장할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날 때 서로 연결돼 있지만, 매우 혼란스런 신경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경험을 통해 더욱 조직화됩니다. 경험은 사람과 환경이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뇌구조를 체계화시켜줌으로써 세상을 배우고 세상에 적응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경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가족관계를 통해 세상에서 사는 방법을 터득해갑니다. 어린 동물들이 작은 둥지에서 생존 법칙을 배우고 난 후 넓은 세상에 나가듯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족 간의 관계가 병적인 경우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즉, 부모가 아이를 과보호하는 등 좋지 않은 양육습관으로 아이를 대할 때면 어른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다시 말해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엄마가 지나치게 보호하면 결국은 걸음마를 배우지 못하고 엄마에게 자기 인생을 통째로 맡겨버리는 의존적 성격이 형성됩니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세상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지나치게 바라는, 성격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생깁니다. 소위 '성격장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외부 지지를 받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조종하려고 합니다. 즉, 타인의 지지를 받으려는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를 가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치유하는 방법은 지지나 격려가 아니라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즉, 세상살이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해야 성격장애 결함을 일부라도 고칠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심리치료적 관점에서 이렇게 보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퇴사자22012.12.18
![[예비신자가 묻습니다] 28. 순교신심에 관하여](//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4594_1.0_titleImage_1.jpg)
[예비신자가 묻습니다] 28. 순교신심에 관하여103위 순교성인화(부분), 서울 혜화동본당 소장.Q. 김대건 신부님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돼 온갖 고문을 당하고 결국 사형되셨는데, '어떻게 믿음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기에 수많은 신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데, 어디서 그런 믿음이 났을까요? 신성호(서울 신림성모본당, 53) A. 목숨까지 바쳐가며 신앙을 지키는 것을 순교(殉敎)라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爲主致命, 위주치명)는 말을 줄여 치명이라고도 부릅니다. 한국교회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신앙을 증거했던 신앙선조들의 '순교신심'에 뿌리를 두고 성장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외국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를 접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직접 천주교에 관한 책과 성경 등을 들여와 공부하며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유교질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남자와 여자, 양반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하느님 자녀로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동시에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또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사랑을 배우며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눈 뜨게 됩니다. 신앙선조들은 천주교 가르침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했고 영원한 구원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참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모독하기보다 차라리 천 번이라도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외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한국교회가 배출한 성인은 103분으로 박해시기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사형당한 순교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그 중 한 분입니다. 또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125분도 모두 순교자입니다. 125분 가운데 한 분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님인데 '땀의 순교자'로 불립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순교는 아니지만, 박해의 눈을 피해 전국 교우촌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다 과로로 숨지셨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9월을 순교자성월로 정해 순교자들 삶과 신앙을 특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순교성인전을 읽고, 순교성지를 순례하며 믿음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의 신심을 본받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퇴사자22012.08.28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4>사순 제5주일- 고해성사](//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3389_1.0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사순 제5주일- 고해성사화해의 성사,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고해성사는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얻고 하느님과 교회와 다시 화해하게 해 주는 성사다. 사진은 세계청년대회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청년. [CMS]"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 우리 잘못을 고백합시다. 주님께서는 기꺼이 용서해 주십니다. 회개의 성사, 참회의 성사, 화해의 성사라고도 하는 고해성사에 대해 알아봅니다.◇살펴봅시다 ㉠고해성사의 필요성(1424~1445항) :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원죄와 본죄(직접 지은 죄)가 모두 깨끗이 사해지고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세례성사가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주지만 "인간 본성의 불안정함과 나약함을 없앤 것은 아니고, 전통적으로 사욕이라고 부르는, 죄로 기우는 경향을 없앤 것도 아니었기"(1426항)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하느님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모욕"(1440항)이고 또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시는 까닭입니다. 하느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위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당신 이름으로 행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 이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이 사도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죄는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칩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또한 교회와 화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당신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시면서 죄인들을 교회와 화해시키는 권한도 주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하시며 주신 '매고 푸는 권한'에서 잘 드러납니다. 베드로에게 맡겨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 그 단장과 결합돼 있는 사도단에도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죄를 지은 사람은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얻고 또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해성사는 이를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1440항)입니다. 이 고해성사는 참회자 혹은 고백자의 세 가지 행위와 집전자인 사제의 사죄로써 이뤄집니다. ㉡참회자의 행위(1450~60, 1490항) : 참회자의 세 가지 행위는 마음의 통회, 사제에게 하는 죄의 고백, 그리고 보속하겠다는 결심과 그 이행입니다. 통회는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 죄를 미워하는 것"(1451항)입니다. 통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 것을 아파하는 완전한 통회(사랑의 통회)입니다. 완전한 통회는 소죄를 용서해 주며, 가능한 한 속히 고해성사를 받겠다는 굳은 다짐이 포함된 경우 죽을 죄도 용서받게 해 줍니다. 또 하나는 불완전한 통회(두려움의 통회)로, 죄의 추악함이나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통회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통회는 그 자체로는 대죄를 용서받지 못하며, 고해성사로 용서받도록 준비시킬 뿐입니다. 통회하고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먼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하느님 말씀에 비춰 자신의 양심을 살펴보는 양심성찰이 필요합니다. 십계명, 복음서의 산상설교, 서간에 나오는 사도들의 가르침 등이 양심성찰을 위한 요긴한 성경 본문들입니다. 통회를 한 후에는 죄를 고백합니다. 죄의 고백은 지은 죄를 직시하게 해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깨닫게 해주며 그 책임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친교에 다시 마음을 열게 해줍니다. 고해성사에서 핵심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을 죄, 곧 대죄는 하나하나 열거해야 합니다. 부끄럽다고 해서 숨긴다면, 환자가 의사에게 자신의 증세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치료를 받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잘못(소죄)도 고백하기를 교회는 크게 장려합니다. 보속은 죄의 결과로 인한 폐해를 보상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속죄해야 하는데 이를 보속(補贖)이라고 합니다. 고해사제는 참회자의 고백을 듣고 나면 죄의 경중과 개인적 상황, 영적 이익 등을 고려해 적절한 보속을 내려주며, 고백자는 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고해성사의 집전자(1461~1467항) : 고해성사의 집전자들은 주교와 사제들입니다. 주교와 사제들은 성품성사의 힘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집니다. 사제는 신자에게 고해성사를 받도록 권고해야 하며 신자가 합리적으로 이 성사를 요청할 때마다 언제나 기꺼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고해성사를 거행할 때 사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탕자를 기다리다 맞아들이는 아버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고 자비로운 판결을 내리는 의로운 재판관의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죄인에 대한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지이며 도구"(1465항)인 사제는 "하느님의 용서를 마음대로 다루는 주인이 아니라 종"(1466항)입니다. 고해사제는 △죄에 떨어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며 △진리를 사랑하고 교회 교도권에 충실해야 하고 △고백하는 사람을 치유와 완전한 성숙으로 인내로이 인도해야 하며 △고백자를 위해 기도하고 속죄해야 합니다. ㉣고해성사의 효과(1468~1470, 1496항) : 고해성사의 효과는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시켜 주고 하느님과 화해하고 결합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또 우리를 교회와 화해시켜 줍니다. 죄가 약화시키거나 파괴한 형제적 친교를 바로 잡고 회복시켜 줍니다. ◇알아둡시다 고해성사는 나아가 △죽을 죄로 받게 되었던 영원한 벌(영벌)을 사면받게 해주고 △잠벌(暫罰, 그 죄 때문에 받아야 잠시 받아야 할 벌)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사면받게 해주며 △양심의 평화와 안온, 영적 위안을 주고 △악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영적 힘을 키워 줍니다. -교회법에서 가장 엄한 벌인 파문을 받은 사람은 고해성사를 받지 못합니다. 파문을 푸는 권한은 교회법에 따라 그 지역의 주교와 교황, 또는 이들에게서 권한을 받은 사제들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파문된 사람이 죽을 위험이 있을 때는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사제가 모든 죄와 파문에서 그 사람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1463항). -고해사제는 고백자에게서 들은 죄에 대해 절대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고해를 통해 고백자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인용해서도 안 됩니다(1467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3.12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4>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上)](//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9560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上)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한 복음 선포그리스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0㎞ 떨어진 고대도시 코린토는 상업이 번창한 항구도시였다. 신약의 코린토 서간은 이곳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바오로 사도가 사목적으로 답변한 내용이다. 사진은 코린토 유적지. 평화신문 자료사진 코린토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교회의 여러 사목적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답변한 것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린토는 양옆에 바다가 있어 문물과 문화의 교류가 활발했던 도시다. 반면 도덕적 추문이 잦았다.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1년 6개월여를 머물며 교회를 창설했지만, 유다인들의 고발로 떠나야 했다. 신자들은 에페소에 머물던 사도에게 코린토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한 사도의 답변을 묶은 것이 바로 코린토 서간이다. 코린토에서 일어난 문제는 △교회 파벌싸움 △도덕적 추문 △우상에게 바친 제물 △종교적 열광주의 △바오로에 대한 불신 △부활에 대한 불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코린토교회는 아폴로와 베드로파, 바오로파 등 파벌로 분열돼 있었다. 사도는 사람들이 인간적 지혜와 학문적 언변, 인간적 권위를 추구하는 데서 분열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복음은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선포한다는 것이다. 사도는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2)하고 말했다. 표징은 증거를 요구하는 계산적 신앙을 뜻한다. 이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분일 뿐이다. 지혜를 찾는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철학을 발전시키며 끊임없이 지적 세계를 건설했지만, 이성적 합리주의 안에 갇혔다. 이들은 이성으로 파악되는 우주적 이성을 신으로 숭배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지혜는 결국 인간적 지혜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반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다. 이 십자가의 어리석음은 코린토교회를 구성하는 원리이자 바오로의 인격을 구성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바오로 사도는 계모와 동침하거나 창녀와 어울리는 등의 도덕적 추문(1코린 5,1, 1코린 6,16)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사도는 이러한 죄인은 사탄에 넘겨지고 육체는 파멸되지만, 세례 때 받은 영이 그를 결국 그리스도의 몸에 다시금 통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는 "창녀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곧 창녀와 한몸이 된다는 것이고, 이는 창녀의 지체가 된다는 뜻"이라며 이들을 단호히 단죄했다. 육체의 결합은 매우 밀접해서 다른 모든 결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이 성경에 드러나는 성적 결합의 의미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성적 방종은 큰 죄가 된다. 그의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성령의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 사도 역시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하고 말하기도 했다. 사도는 우상에 바쳐졌던 물고기를 먹어도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신자들에게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해,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1코린 8,4)하고 답했다. 즉, 하느님 외에는 섬길 분이 없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바쳐진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이 때문에 괴로워하고 양심에 상처를 입는 형제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1코린 8,12-13). 또 사도는 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격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에게 답변했다. 그는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업적이 아닙니까?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사도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의 증표입니다"(1코린 9,1-2)하며 부활한 예수를 만났음을 강조했다.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이러한 의심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신자들의 물질적 도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은 아내를 동반해 전교여행을 했고, 지역 교회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사도는 도움을 받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사도는 "나는 내가 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다그치는 그리스도의 그 충동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보상을 받을 자격이 된다면 '보상을 포기하는 자유'가 보상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편으로는, 사분오열돼 있고 여러 어려움을 겪는 코린토교회에서는 물질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좀 더 정정당당하게 교회를 이끌어갈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피교회에서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던 것에 미뤄 경우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1.29
![[생활 속의 복음] 누가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가](//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9554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누가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가 연중 제4주일 (루카 4,21-30) 연중 제4주일이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당신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해 당신의 사명선언문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목격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할 사명은 '주님의 은혜로운 해'(루카 4,19)를 선포하시는 일이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여 그들의 삶 속에 기쁨이 넘쳐나도록 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여 억울하게 잡혀가 영어(囹圄)의 삶을 사는 그들이 목 놓아 자유를 노래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또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여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똑똑하게 목도(目睹)하도록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면서 그 모든 일이 곧 주님께서 베푸신 자비에서 비롯됨을 온몸으로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이러한 예수님 사명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수행해야 할 사명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열성적 신앙인들이다. 예수께서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낭독하실 때에도, 또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은 열성신자답게 그 말씀을 하느님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적 열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돌연 무서운 집단적 패거리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잘못되고 왜곡된 신앙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진실한 예수님 말씀에 불쾌감을 느끼고는 헐뜯기 시작했다. 급기야 모두 화를 내면서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루카 3,29-30)했다. 열성적 신앙인들이 삽시간에 흉악무도한 패거리로 돌변하는 순간이며, 그들이 자긍심을 지녔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잘못됐음을 자인하는 순간이다. 왜곡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기적(잿밥)'에 더 관심을 끌게 하고, 오로지 기적만을 강조하게 한다. 주님의 참된 말씀을 앞세워 살기보다는 자신들의 그릇된 욕심을 앞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기적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일시적 영달을 채우려는 못된 마음 씀씀이가 문제다. 주님께서 베푸신 기적은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시고자 행하시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갈라지고 다투며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인류를 바로잡으시려는 은총이요 은사다. 따라서 은총은 인류를 사랑하시는 당신 자비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 방문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임을 깨닫기보다는 고향이라는 것을 내세워 몇 배나 더 강한 기적을 행할 것을 주문하려 했다.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그들은 예수께서 소개하시는 하느님이 그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하느님도 되신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유다인들의 선민의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당신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당신의 공동체를 세우셨다. 그러나 그분이 뽑아 세운 일꾼들은 또다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그분을 '감실(龕室)'에 가두고, 감실 안에 계시는 분만 세상에 소개하려 한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주님이 아니라 그들만의 주님으로 섬기려 하기에 그분이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참뜻을 저버리는 신세로 전락하려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누리면서 살기를 일깨워주기는커녕 그분을 다시금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니 그 옛날 나자렛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는 교회의 몸이시며 머리이신 분께서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고"(2티모 1,10), 또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라는 선언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입으로는 무엇인들 말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우리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 공동체를 세우신 그분, 교회의 몸이시고 머리이신 분의 말씀을 듣고 화를 잔뜩 낸 적은 없는가. 잘못되어 돌아가는 정치에 일침을 가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작고 약한 이들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쥐꼬리만한 세속 권력에 기대려 하고, 교회의 안보를 내세워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았는가. 또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험담하고, 입만 열면 '십자가' 운운하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십자가에 대해서는 교묘하고 해괴한 논리로 회피하지는 않았는가. 그뿐만 아니라 진리나 진실보다는 권력과 재물과 학력에 모든 것을 걸려는 삶의 행태야말로 예수님을 벼랑으로 끌고 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면 우리가 주님의 자녀나 일꾼이라고 감히 불릴 수 있을까.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주님 뜻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그래서 참된 믿음을 잃어버렸거나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혹은 훼손하고 있다면, 주저 없이 예수께로 돌아와 그분에 대한 참된 신앙을 재발견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한다.▲신대원 신부(안동교회사연구소장)cpbc2013.01.29
[출판]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성탄 교리교육 꾸러미'를 특집주제로 △성탄 교안 완전 정복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왕 △교리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게임 한 토막 △성탄 골든벨을 소개했다. 교리 도움자료로 '사회교리란 무엇인가요?'를 실었고, 읽을거리에서는 청소년의 문제 행동과 부모의 양육 태도를 살펴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개그맨도 울고 갈 정도로 웃기는 웃음치료사 이미숙(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를 만났다. 「이야기 성서」를 펴낸 오정희(실비아) 소설가를 인터뷰해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명강론을 글로 읽다'에서는 서울대교구 구의동본당 박명근 주임신부의 전교주일 강론을 실었다.(마리아의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특별기고로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교회'를 실었다. 바티칸통신에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폐막 소식을 전했고, 경향돋보기에서는 2012년을 돌아보며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선대인)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박광용)를 다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국교회 사적지 순례에서는 볼리외 성인 발자취가 남아 있는 수원교구 하우현본당 역사를 다루며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옛 사제관과 1965년 신축한 성당에 얽힌 이야기도 소개했다. 지난달 열린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 관계'를 지상중계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지난달 정부 초청으로 방한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연구의 세계적 석학 스테파노 자마니ㆍ베라 자마니(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 부부를 인터뷰했다. 올해 여름 마리아폴리에서 발표된 경험담 3편을 소개했고, 성탄특집으로 성탄동화 '초보 산타 시몬'을 게재했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신앙의 여정 재발견(권혁주) △교회 전례 안에서의 마리아(맥그리거/하성환) △신앙의 해와 새로운 시작(신호철) △아름다운 사랑 고백(김태현) △프랭크 더프의 생애와 활동(이재호 역)을 실었다.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은 왜 준성사를 사용하는가?'를 다뤘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강석진(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가 한 해를 보내며 자신을 성장시킨 일화를 들려줬다. 영성 에세이로는 △내가 곧 오겠다-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아버지에게 오라-성탄은 예수님만의 일이 아닙니다를 소개했고, 한 달간 복음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별인터뷰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를 만났다. '공의회 반세기, 길 위의 한국교회'를 특집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화와 평신도 영성, 수도생활, 한국교회 현실 등을 살펴보며, 정하권 몬시뇰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5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에 대한 제언을 실었다. 시론으로는 '대통령 만들어 세우기'(이순성)를 게재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특집주제로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다루며 가족과 이웃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과 고마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글들을 소개했다. 양승국 신부의 기도레슨에서는 '구유 앞에서 드리는 묵상' 기도를 통해 아기 예수, 마리아, 요셉 등 구유 속 인물들을 바라보며 묵상한 내용을 소개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소년 성탄특집으로 성탄트리 꾸미기와 성탄동화 '아기 예수님을 만나요'를 담았다. 특별부록으로는 2013년 가톨릭 어린이 달력을 준비했다. 부모님과 함께보는 영화에서는 발레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담은 '퍼스트 포지션'을, 세기를 빛낸 거룩한 사람에서는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를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포콜라레 회원으로 20년째 종교간 대화에 힘써온 한미숙(코린)씨를 만났다. '교회와 사회'에서는 황세현 변호사가 기업회생제도에 관해 살펴봤고,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는 송봉모(예수회) 신부가 '바오로의 회심 사건'을 해설했다. 표정이 있는 풍경에서는 제주시 민속 오일시장을 찾아갔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탤런트 김현주(마리 데레사)씨를 만나 가톨릭 신자가 된 사연과 봉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집으로 '희망을 먹고 자라는 기다림'을 주제로 △대통령 선거를 기다리며, 어머니께 △하느님의 '사랑해'가 될 날을 기다리며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 10개월 △주께서 쓰실 그날을 게재했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박수정 기자박수정2012.11.2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상)](//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04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상)오늘날 신앙 위기 진단과 해답 통한 신학적 전망 제시요제프 라칭거(오른쪽)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한 주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라칭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기간에 독일 퀼른대교구장 요제프 프링스(1887~1978) 추기경의 주요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CNS] 2013년의 가장 중요한 교회의 키워드는 바로 '신앙의 해'다. 지난 2월 말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가 선포한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개최 50주년을 기념해 2012년 10월 11일에 개막했고, 오는 11월 24일에 폐막한다. 신앙의 해 선포라는 세계 교회 차원의 기획은 현대 세계의 전반적인 교회 위기 상황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됐기에,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신자들 신앙 열정을 북돋우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신앙의 해 선포에서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의 신학 사상이 그 이론적 기본 토대로 작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현대 세계에서 신앙인이 겪게 되는 갈등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과제는 베네딕토 16세가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즉, 과거 신학자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던 때까지 모든 기간을 관통하는 베네딕토 16세의 일관된 신학 사상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의 상태와 신학의 흐름에 관한 베네딕토 16세의 문제 제기는 과연 무엇인가. 베네딕토 16세는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ger, 1927~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신학자 시절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1968)을 펴냈다. 베네딕토 16세는 초판 머리말에서 유명한 '행운의 한스' 이야기를 제시한다. 한스는 운 좋게도 금덩어리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자신이 갖고 있던 금덩어리가 너무 무겁고 짐스럽다고 여겨 다른 것들과(처음에는 말 한 마리, 그 다음에는 소 한 마리, 그 다음에는 거위 한 마리, 마지막으로 숫돌 한 토막) 하나하나 바꾸다가, 결국 마지막 남은 숫돌 한 토막마저도 물에 던져버린다는 이야기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이야기를 통해 "황금에서 숫돌로 이끄는 경향을 조장"하는 흐름을 비판한다. 현대 세계에서 소중한 신앙 유산과 교회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현대화 흐름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몰지각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신앙의 요구를 단계적으로 풀어헤친 결과, 아무것도 소중한 것은 잃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한 단계를 더 내려와도 못 느낄 만큼씩은 무언가 잃어 온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그저 믿는 마음으로 자꾸 바꿔 나가며 한 해석에서 다른 해석으로 이끌려 나온 가엾은 한스는, 크리스천은 결국 오래지 않아 처음에 가졌던 황금 대신 이제는 숫돌 한 토막만 손에 들고 있게 되었고 그것마저도 던져 버리라고 마음 놓고들 권유하게 된 것이 아닐까"(12~13쪽). 베네딕토 16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기간에 독일 쾰른대교구장 요제프 프링스(1887~1978) 추기경의 주요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이 경험을 토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는 해설서를 내기도 했다. 1963년부터 독일 뮌스터대, 1966년부터는 튀빙겐대, 1969년부터 레겐스부르크대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1976년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됐고, 1977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1981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하다 2005년 교황으로 선출, 올해 2월 말 자진 사임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가장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기본 저서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이다. 1968년 처음 출간된 이 책에는 오늘날 신앙 위기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와 해답이 어느 정도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책은 다음과 같은 머리말의 문제 제기로 시작한다. "그리스도 신앙의 내용과 의의가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은 오늘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둠과 불안에 싸여 있다"(12쪽).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오늘날 신앙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데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의 의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서 인간 실존을 가능케 하는 길로서 신앙을 다시 이해하려는 데 있다. 정신적 공백을 억지로 감추려는 한갓 빈말로 신앙을 변조하자는 게 아니라 신앙을 진지하게 풀이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13쪽). 그리스도 신앙 고백의 집약이며 그리스도교 입문을 위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사도신경'의 기본 구조를 따라 신학적 고찰을 제시하는 이 책은 베네딕토 16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자문위원 역할을 마치고 독일 튀빙겐대 신학 교수로 활동하던 1967년 여름학기 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으로 1968년 독일어로 처음 출판됐다. 많은 이가 이 책을 요제프 라칭거의 최고 저서로 꼽는데 주저치 않는다. 2000년에는 긴 서문과 함께 새로운 독일어 개정판이 발간됐다. 국내에서는 1974년 분도출판사를 통해 처음 번역됐고(장익 주교 번역), 새 번역판은 2007년 출간됐다. 이 책은 오늘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집중 조명한다. 미국의 유명 가톨릭 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바티칸 통신원 존 알렌은 "이 책은 현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의구심과 불신 앞으로 용기 있게 걸어가는 심원한 인간 경험을 통해 신앙을 고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책의 의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 인간 실존의 기본 근저로서 신앙의 의미를 재발견하려는 데에 있다.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이다. 책이 상당히 난해한 신학 내용을 담고 있어 완독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을 잘 제시하는 이 책은 신앙의 해를 선포한 뜻과 의도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은 기초신학과 교의신학적 측면, 특히 신론과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여러 신학적 전망과 쟁점을 제시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책은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 전개되는데, 주로 성부와 성자에 관한 신앙고백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2000년 신판의 머리말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서인 이 책의 핵심이 "하느님에 관한 물음과 그리스도에 관한 물음"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하느님에 관한 물음과 그리스도에 관한 물음을 중심에 놓고, 하나의 '서술적 그리스도론'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교회 안에서 신앙의 자리를 제시"(37쪽)하는 데에 있다. 한편, 성령과 교회 그리고 종말에 관한 신앙고백이 담긴 부분은 매우 짧게 다뤘다. 신앙고백 부분에 대한 해설은 한국어 번역판(2007년)의 총 363쪽 중 31쪽에 불과하다. 물론 중요한 신학적 전망을 짧게나마 제시하고 있지만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다 상세한 해설이 필요하다. 베네딕토 16세의 신학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중심으로, 이후 주교와 추기경,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교황을 지내며 발표했던 모든 공식 교회 문헌과 개인 저작물에서 드러나는 연속성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글은 교회 교도권 가르침을 분석하기보다는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특별 연재에 속하기에, 추기경과 신앙교리성 장관 등 교회 교도권 직무를 공식적으로 수행하기 이전인 요제프 라칭거라는 개인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까지로 다루는 범위를 국한할 것이다. 2000년 신판의 긴 머리말을 포함해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드러나는 신학적 기조 사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 후속 과제는 무엇인지, 그것이 특별히 신앙의 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기본 목적이다. 다만, 베네딕토 16세의 가장 최근 저서인 「나자렛 예수」 1~3권은 따로 다룰 것이다. 「나자렛 예수」 1권 서문에서 베네딕토 16세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절대로 교도권 차원에 속하는 공식 문헌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의 얼굴'(시편 27,8 참조)을 찾는 개인적인 탐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누구든 내 견해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나는 그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부탁할 뿐이다"(24쪽). 「나자렛 예수」는 그리스도론의 흐름 속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쩌면 1968년 저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적 전망의 후속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20세기 대표적 가톨릭 신학자 요제프 라칭거에 관한 총 3회 연재 중 이번 소개에 이어 두 번째 연재에서는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 나타난 신학적 기조 사상을, 마지막으로는 「나자렛 예수」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적 전망을 소개하겠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1992년 수품(서울대교구) ▲2004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교의신학 전공. 신학박사. ▲현재 가톨릭대 성신교정 및 생명대학원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 ▲주요논문 :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에 관한 식별-교의신학적 원리들(2006), 성경과 전승의 관계에 대한 해석학적-조직신학적 고찰(2007),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현대적 흐름과 쟁점-종교 다원주의 맥락에서(2009) 등 14편 ▲저서 : '박준양 신부와 함께하는 신학 여행 시리즈'(생활성서사, 6권) 퇴사자22013.05.14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2.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4> 기쁜 신앙생활의 초석, 기도](//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00_1.2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2.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기쁜 신앙생활의 초석, 기도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기도, 튼튼한 신앙생활의 비결 인천교구 총대리 정신철 주교는 최근 교구가 주최한 '청년 토크 콘서트'에 일일 강사로 나서서 무엇보다 기도하는 습관을 강조했다. 정 주교는 바쁜 일상 때문에 기도생활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시간대별로 나열해보고 과연 정말 잠시라도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할 시간이 없는지 돌아보라"며 "기도와 미사 참례를 비롯한 모든 신앙생활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조언했다. 정 주교는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기도생활'이 우선돼야 한다며 하루 단 5분이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며 성당 밖 신앙생활도 튼튼히 하자고 했다. 신앙의 해 중반을 넘어서면서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기도하는 삶의 중요성을 짚어보기 위해 인천 교구청에서 정 주교를 만나 기도에 관해 물어봤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기도 의미를 되새긴다면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자 만남이며, 하느님께로 나아감이다. 기도는 어디서든 주님과 만나게 해준다. 그런데 바쁜 현대인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눈에 띄는 결과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즉각적인 답이 없는 기도는 재미없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도의 효과를 금방 바라기보다 신앙의 초석을 닦는 차원의 기도 연습이 필요하다." -기도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잘 안 된다 "즉각적인 응답을 바라기 때문이다. 또 그 응답이 자기 뜻에 꼭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느님 뜻이 결실을 맺도록 내 뜻을 내어놓고 맡기는 행위다. 기도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과 범주를 내려놓아야 한다. 나도 기도할 때 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해주소서'라고 먼저 청한다.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 기도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든 일의 우선에 기도를 둬라. 아침ㆍ저녁으로 짧게 성호를 긋는 것부터 시작하라. 기도도 연습이고 습관이다. 나중엔 성호만 긋는 게 죄송해서 주모경을 외우고, 묵주기도를 바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기도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현대인에게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묵주를 손에 쥐어보라. 한알 한알 기도하다 보면 저절로 주변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기도의 힘이다. 예전에는 성당에서 기도문을 외우라고 강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에는 기도에 습관을 들이기 위한 이유가 있었다. 기도문도 반복해 외우다 보면 깊은 의미가 새겨진다." -주교님은 어떤 기도를 바치시는지 "주교가 된 이후 교구를 위해, 특히 교구 사제단을 위해 늘 기도한다. 또 병환 중에 있는 사제나 신자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또 주교회의 해외선교ㆍ교포사목위원장으로서 사목의 불모지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한다. 시기에 따라 지향이 다르기도 하다. 현재 긴장상태에 놓인 남북 관계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은 "1994년부터 8년간 프랑스에서 홀로 유학하던 시절, 공부에 한참 치이며 기도하던 때가 생각난다. 머릿속이 온통 공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기도가 기도가 아니더라. 하지만 문득 모든 것 다 떠안고 앉아 있는 자체도 기도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두 손 모으는 것만 해도 기도인 것이다." -기도에 습관을 들이라고 강조하셨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와 지향이다. 기도가 습관화되려면 의지의 무의식화가 돼야 한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무의식적 의지로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무조건 많이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일상 속 십자성호와 화살기도는 기도 습관의 첫걸음이다."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면 "복자 마더 데레사 수녀의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란 기도와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좋아한다. 자신을 도구로 써달라는 데레사 수녀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는 우리가 주님 뜻에 맞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해준다."-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아침과 저녁 기도시간을 정해두고 이를 꼭 지켰다. 저녁까지 놀다가도 시간 맞춰 집에 뛰어들어가 함께 기도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 삶 안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자각을 심어주는 것이 기도다. 최근 김연아 선수가 묵주반지를 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김연아 반지'라고 하더라. 신앙의 또 다른 세속화다. 우리가 낀 묵주반지가 단순한 액세서리가 되지 않도록 신앙의 해에 기도하며 하느님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하자."<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마더 데레사> 존경받으려는 욕망에서사랑받으려는 욕망에서칭찬받으려는 욕망에서명예로워지려는 욕망에서찬양받으려는 욕망에서선택받으려는 욕망에서신뢰받으려는 욕망에서인정받으려는 욕망에서인기를 끌려는 욕망에서모멸받는 두려움에서경멸받는 두려움에서질책당하는 고통의 두려움에서비방당하는 두려움에서잊히는 두려움에서오류를 저지르는 두려움에서우스꽝스러워지는 두려움에서의심받는 두려움에서저를 자유롭게 해주소서. 오, 주님! 제 마음도 당신처럼 되게 하소서.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사랑받게 하소서.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존경받게 하소서.주님! 이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도록 저에게은총을 베푸소서.저는 젖히시고 다른 사람들이 선택받게 하시고저는 눈에 띄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찬양받게 하시고모든 일에서 저보다 다른 사람들을 택하여 주시고제가 거룩해지려 하는 만큼저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거룩하게 하소서.<서울 청년성령쇄신봉사회, 성령세미나 현장 탐방>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임마누엘 하느님 체험 성령의 은총을 받은 청년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1테살 1,6)는 구절처럼 성령께서는 기도하는 젊은이들에게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갈라 5,22)의 열매를 가득 부어주신 것 같았다. 서울대교구 청년성령쇄신봉사회 '루하(Ruah)'는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CYC)에서 청년 성령세미나를 개최한다. 5월의 첫 금요일인 3일 저녁 성령세미나 현장을 찾았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소감은 한결 같다.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시다는 확신이 들어 매우 기뻤어요."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어요." #기도와 찬양으로 찬미 저녁 7시 30분,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 (신앙에) 목마른 청년들이 하나둘 씩 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세미나에 앞서 청년들은 모두 묵주를 꺼내 든다. 콘서트처럼 신나는 찬양으로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던 기자는 조용히(?) 시작하는 성령세미나가 조금 낯설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건물 지하마다 들어선 클럽에서는 젊은이들이 비트가 강한 음악에 몸을 내어 맡기지만, 옆 건물에서는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이 큰소리로 주님을 찬양한다. 묵주기도가 끝날 무렵이 되자 빈 의자가 많이 줄었다. 인도자로 나선 조은진(로사, 39) 부회장이 시작에 앞서 '찬미 예수님!'하고 서로 인사를 하게 한다. 그리고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는 성경구절을 읽는다. 찬양이 시작된다.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주 경배합니다~♬'('주 앞에 엎드려') '그 사랑 주님께 모두 감사하여라.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들 모두 찬양하리니♪'('그 사랑 주님께 모두 감사하여라') 신나는 찬양에 일부 청년들은 눈을 감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조 부회장은 "힘든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우리 곁에 늘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하느님께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달라고 청하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고 말했다. #미사와 안수로 절정 30분 가량 찬양으로 처음 듣는 생활성가가 귀에 익숙해질 때쯤 이용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담당)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가 봉헌된다. 미사에는 '취업하게 해주세요''부모님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등 청년들 고민이 지향으로 오른다. 미사 때도 찬양이 이어진다. 미사는 사제 안수로 끝을 맺는다. 이 신부는 강론에서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며 "여러분의 손과 발이 주님의 손과 발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주님과 함께하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며 "사랑 자체이신 주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난아(실비아, 32, 수원교구 광문본당)씨는 "금요일마다 성령세미나에 참석해 주님 은총과 위로를 받는다"며 "성령세미나를 통해 냉담교우였던 남편이 청년 성령세미나 봉사자로 거듭났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퇴사자2201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