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중)](//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8404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중)인간, 하느님과 관계와 기억의 힘으로 주체적 존재 돼 요한 밥티스트 메츠의 신학은 근대적 사상의 유산과 만나 대화의 지평을 여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주체의 신학 메츠는 자신의 초기 저작 「세상의 신학을 향하여」(1968)에서 표방한 정치신학의 탈사사화(脫私事化)를 「역사와 사회 속의 신앙」(1977)에서 재차 강조하면서 주체와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신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진리와 의미개념은 사사화하거나 개인주의화한 사유방식, 동일성의 사유체계로부터 모색될 수 없고 구체적 역사에 대한 주체적, 실천적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의 정치신학은 역사적 의식이 주체와 실천과 관계된 기억의 이성에서 방향을 잡고, 이렇게 주체와 결합된 기억을 공적 차원의 의식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또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주체적 존재로 서고,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책임을 통해 보편적 연대를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메츠의 주체의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적 사회적 함의를 고려한 가운데 인간학적 전환을 신학적으로 완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주체의 신학은 인간을 주체적 존재의 사회적 본질과 역동적인 역사적 과정에서 이해하고, 인간의 주체적인 동일성은 역사적 사회적 매개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메츠는 특히 라너의 초월론적 신학을 비판한다. 주체의 구체적 역사적 체험은 사회적 모순과 적대적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데, 라너의 초월적 경험의 주체는 이를 간과해 인간의 역사적 고통에 직면한 주체의 동일성을 과도하게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메츠는 성경에 근거한 주체 형성의 사유 전통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서 라너의 초월적 주체신학을 극복하고자 시도하는데, 그에 따르면 주체는 실천과 그의 인식론적인 범주에 해당되는 '기억'과 '서사'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성취된다. 기억과 서사는 역사적 투쟁과 위협 속에서 정체성의 확증과 구원을 위한 근본적인 범주며, 이 기억과 서사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주체로 체험하고 주체로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과 서사는 인간 주체성을 구원하는 실천이성의 범주이며, 모든 인식의 가능조건이 된다. 기억에 기초한 주체의 신학은 아우슈비츠의 상황에서 재차 강조된다. 아우슈비츠 이후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희생자와 아우슈비츠의 유다인에게 의존해 있기에 주체의 역사 의식은 고통당하는 이와의 관계 속에서 보증될 수 있다. 주체는 고통 당하는 타자를 위한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타자와 더불어 사는 존재를 주체됨의 본질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는 타자를 향해, 타자와 더불어(살아 있는 자, 죽은 자, 희생자를 모두 포함한 타자) 타자를 위해 존재함으로써 자신을 체험하고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심층에 이르고 '나를 나로서 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아로서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자와 무관한 방식으로 구축하려는 관념적인 신학이나 심층심리학의 자아 규정과 구별된다. 이와 더불어 메츠는 근대화 과정과 근대화 이후의 과정에서 시장제일주의 사고와 교환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인간이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주체의 해방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하느님에 대한 기억의 힘으로 참으로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추종의 그리스도론 메츠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위해서 유다-성서적 전승의 뿌리와 연결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전승에는 종말론적 시간 의식과 추종의 실천을 통한 그의 기억이 핵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에서 메츠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그리스도론으로서 '추종의 그리스도론'(Nachfolgechristologie)과 '성토요일 그리스도론'(Karsamstagschristologie)을 전개한다. 메츠 신학에서 중심을 이루는 실천은 이제 추종 형태로 구체화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증언하는 근본적 범주며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본질이다. 추종은 '정체성 실현을 위한 기준'이다. 따라서 주체가 된다는 것은 추종의 실천에서 이뤄지며, 이 실천을 통해 주체됨의 유효성과 의미를 얻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추종은 주체가 되기 위한 결정적인 가능조건으로, 그리스도인 실존은 바로 추종의 실존이다. 이로써 주체와 관계된 추종의 실천은 그의 그리스도론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추종은 그리스도론적 진리의 비변증법적인 내면화의 행위도 배타적인 규범적 관념도 아니며, 기억과 서사를 토대로 한 정치성이자 신비성이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추종의 신비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보편적 정의와 과거의 고통은 물론 현재의 고통을 위한 요청을 수용하는 것이며 종말론적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물음에 기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차이와 비동일성에 대한 종말론적 의식 없이 진술되는 그리스도론은 비정치적이며, 그의 사회비판적 힘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말론 없는 그리스도론은 승리의 이데올로기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신비적'이라는 것은 어떤 비의적인 신비나 정치권력의 신비가 아니라 하느님이 세상의 작은 이를 형제로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낮아진 것처럼 인간을 위한 신적 사랑실천에 투신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추종의 신비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고통당하는 타자와 보편적 연대를 이루고,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을 죽음에서 구원해 주체적 존재로 불러내는 종말론적 하느님을 증언하게 된다. 이러한 추종의 그리스도론의 신비적 차원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의를 이루는 하느님의 힘에 대한 희망을 토대로 저항과 중단의 신비, 회심과 고통의 신비로 이끌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이러한 신비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고통당하는 예수의 신비다. 성 토요일의 그리스도론 '성토요일' 개념은 90년대 메츠 신학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에 광범위하게 퍼진 포스트모더니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메츠는 부활절 그리스도론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반면 성토요일 그리스도론은 너무 빈약하다고 봤다. 부활절의 그리스도론은 우리의 기도를 승리의 언어에 젖어들게 했지만 그만큼 그 언어는 재앙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성토요일 개념이 비록 1990년대에 등장했지만, 메츠의 그리스도론 발전사에 비춰보면 성토요일에 대한 암시는 1960년대 초반의 저작에서 이미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저작 「영의 가난」(1962)은 메츠 그리스도론의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 메츠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형태를 근본적으로 초월적인 하느님의 자기 낮춤, 수난 속에서 자기 낮춤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훗날 '고통의 기억'으로 구체화되는데, 특히 고통의 기억은 자유의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바로 그런 점에서 구원하고 해방하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의 토대로 해석된다. 아울러 메츠에게 성토요일 개념은 그리스도론에서 성금요일과 부활절 사이를 매개하는 개념으로 작용한다. 그에 따르면 만일 누가 그리스도 부활의 복음 속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외침을 들을 수 없다면 그는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승리 신화를 들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토요일 개념은 그리스도론의 근본문제인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 문제를 해소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차단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정치신학- 교회 내 문화적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메츠의 정치신학의 중심적 틀은 근대와 계몽사상의 지평에서 형성됐다. 그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서구라는 문맥을 통해 정치 해석학의 틀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의 종교비판을 접하면서 복음을 사회와 실천과 상관성에서 파악하려 했다. 그 때문에 그의 신학은 근대적 사상의 유산(주체, 자유, 역사와 같은 근대사상의 중심개념)과 만나 대화의 지평을 여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신학은 이러한 근대적 사상의 유산을 문제 삼을 뿐 아니라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로 피할 수 없는 도전과 마주하게 됐다. 오늘날 정신사를 풍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정신적, 사회적 환경 그리고 인간의 경험 세계와 삶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의 방식이나 행동양식 그리고 사고 유형이 다양화돼 가는 변화 과정에 있는 것과는 달리 세계화는 이미 세계경제와 세계정치의 현실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어떻든 이 두 변화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설 정도로 내용적으로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대의 정신적, 사회적 모호성과 불투명성에 직면한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중의 과제 앞에 놓여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뤄 진정한 세계교회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고, 교회 외적으로는 이웃종교와 세상의 다른 가치체계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보편성과 절대성 요청을 타당하게 드러내는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메츠는 이미 1980년대부터 이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천착해왔다.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cpbc2013.10.15
![[아! 어쩌나] 204.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하>](//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84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04.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Q. 신부님들이 강론할 때마다 사랑 타령을 하는데, 과연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사랑을 외치는 사람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무기력해 보입니다. 힘이 없어 사랑이란 도피처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A.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여서 몸의 음식 이상으로 마음의 음식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심리적 음식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고,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종교적 계명 차원이 아닌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심리적 영양소입니다.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어린이 보호시설에 들렀다고 합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적대국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늘 외침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아주 슬픈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전쟁고아가 많습니다. 이곳의 어린이 시설을 방문한 수녀님은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커야 할 아이들이 성장이 멈춘 상태로 있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장을 멈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주고받아야 할 사랑이 없어 그저 시간표대로 애정없이 주어지는 음식을 먹고 자란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즉,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뇌하수체 분비선에서 성장호르몬을 생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 육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정신적 성장에도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 애착 관계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적 성숙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발달심리학은 아이는 부모와 애착 관계를 통해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긍정적이고 일관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고 합니다. 사랑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이웃 사랑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사랑을 받아봐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도 일종의 학습을 통해 얻는 것인데, 그런 사랑의 학습 과정이 없는 아이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기에 어른이 돼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어렵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가끔 '나를 왜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대사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는 사랑 결핍증 환자들이 주로 말하는 것들입니다. 소위 '사랑에 걸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말이지요. 배가 고프니 밥 달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내가 배고파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외치는 것이 사랑타령입니다. 이런 사랑은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감정으로 맺어진 커플은 오래가지 못하고, 서로 질리고 싫증나서 헤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학습 행위는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기에 우리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사랑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토끼는 관상동맥 체계가 사람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 토끼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 역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관심 받으면, 마음과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약을 먹고 또 육체적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온갖 식단을 짜서 몸의 건강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합니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더 많은 질병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이 병으로 죽어가는 것은 약이 모자란 것도, 음식 때문도 아닙니다. 마음의 외로움이 깊어 가면서 병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돈을 주고 외로움을 더는 방법들을 찾는데, 문제는 비용을 내고 주고받는 관계가 사랑을 주고받는 인간적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상생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주님 가르침을 따라 서로 자기 몸처럼은 아닐지라도 챙겨주고 챙김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성당에 가는 사람들만의 삶이 아니라 나의 건강한 생활을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루카 10,27)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생존방법입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6.04
![[아! 어쩌나?] (178) Q. 나이를 잘 먹으려면](//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267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78) Q. 나이를 잘 먹으려면 Q. 나이를 잘 먹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성경을 보면 시메온이라는 노인이 나오는데 저도 그분처럼 주님 은총 안에서 나이를 먹고 싶습니다. A. 글쎄요.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어쨌든 자매님이 부러워하는 시메온이라는 분에 대해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주셨다." 참으로 부러운 분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이 세상 사람 중에 노인이 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떤 사람은 더 무기력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 활기찬 삶을 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자 셀리그먼은 '유연한 시간관념'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유연한 시간관념이란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가 일시적이며 통제할 수 있고, 특정 상황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낙천적 삶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 비관적인 사람들, 운명론자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우선 지금의 문제가 계속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압도돼 매사에 무기력합니다. 또한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사소한 좌절이 매일, 길게는 몇 달씩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처럼 자기파괴적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생기를 잃습니다. 시메온이라는 분은 유연한 시간관념을 갖고 살았던 분이라 여겨집니다. 이분은 구세주가 없어 고난을 겪는 현실에 압도돼 아무것도 못하고 산 것이 아니라, 기다리면서도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건강한 노년기를 가질 수 있었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어른으로서 지도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자매님도 시메온 노인의 삶을 깊이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Q. 주님과 비교하면 저는 아주 작은 일에도 잘 넘어집니다. 그래서 제 대모님은 늘 저를 보고 '믿음이 약하다'고 하시고, '주님처럼 역경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기운이 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꾸만 주눅이 들고, 주님 앞에서 움츠러드는 기분이 듭니다. 정말 제 믿음이 약해서 이런 것일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서 늘 야단맞고 자란 데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 열등감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지요. 대모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신앙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곤합니다. 성당을 그만 다녀야 할까 봅니다. A. 무슨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자매님이 문제가 있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대모님이 문제가 많은 분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역경을 만날 때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잘 견디고 어떤 사람은 잘 넘어집니다. 이렇게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그까짓 것 하나 못 견디느냐"고 말하지만, 그런 말들이 오히려 무지막지한 말들입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못 먹고 자란 아이들은 병치레를 심하게 하고 몸의 힘이 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무시당하고 무관심 대상이었던 아이들은 심리적 힘이 약해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주님은 이러이러하셨는데, 여러분은 뭐하는 것인가요?"하는 질책성 말들을 하는데, 이런 말들은 아주 위험한 발언입니다. 주님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인간적 관점에서 봐도 어린 시절을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라셨기에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비교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또한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분들은 잠재적 우울증을 갖고 있는데, 스스로 심하게 자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식의 자기 비난은 건강한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분들은 불우한 기억으로 뭉쳐진 내재아를 달래주고 위로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주고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렇게 조금씩 내적 힘을 키워가야 역경을 만났을 때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퇴사자22012.11.27
![[성경 속 상징] (112) 날개](//cpbc.co.kr/CMS/newspaper/2011/04/rc/372641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12) 날개강함과 보호… 도피와 안전날개 달린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주는 '주님 탄생 예고'(프라 안젤리코 작, 1430년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을까?' 사람이 새처럼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고대 예술품에서 날개 달린 인간과 동물 형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꿈을 이뤄준 라이트 형제는 수백 마리 새를 잡아다 놓고 그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면밀히 관찰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라이트 형제는 새 모양을 본뜬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마침내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꿈을 이룬다. 성경에서 날개는 주로 비유적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날개에 관한 실제 언급은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우선 창조 이야기에서 날아다니는 새가 언급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21).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도 "온갖 날짐승과 날개 달린 것들이"(창세 7,14)이 등장한다. 성경에서 날개는 강함과 보호의 상징이다. 특히 새끼를 날개로 업어 나르는 독수리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 자연에 대한 상세한 관찰을 통해 새들 날개가 갖는 특징을 성경에 잘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날개 달린 새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도피와 안전의 상징이다.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큰 방패와 갑옷이라네"(시편 91,4).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할 때 날개를 언급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이와 같이 하느님 날개는 보호와 구원, 사랑과 은혜 등의 이미지로 언급되고 있다. 날개는 영적이며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도 상징된다. 그래서 날개를 가진 존재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에게 내려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태 3,16). 날개를 지닌 영적 존재에 대한 언급은 특별히 묵시문학에 많이 등장한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4,8). 이처럼 성경시대 사람들은 날개를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특히 빛나는 흰색 날개는 거룩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cpbc2011.04.05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4)성경은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56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4)성경은 무엇인가성령으로 쓰인 하느님 말씀 우리는 성서(聖書)와 성경(聖經)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다. 성서는 '거룩한 글(책)', 성경은 '거룩한 경전'이라는 뜻인데, 두 명칭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성령의 감도로 쓰인 하느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런데 공동번역을 사용할 때는 주로 성서라고 했으나, 2005년 새 번역 「성경」 발간 이후 경전(經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이라고 일컫는다.7세기께 이집트에서 기록된 후리어 성경사본(Freer Gospels)의 표지 그림. 마태오와 루카 두 사도가 성경을 들고 있다. ▶1100여 년에 걸쳐 기록돼 성경의 원저자는 하느님이다. 하느님 계시로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를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것이고,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성령의 감도를 받아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 단계를 거치다가 글로 쓰이기 시작했고, 글로 쓰인 기간 역시 장구하며, 기록과 편집에 참여한 저자와 편집자 역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기록했고,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공동체 전체가 기록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구약은 기원전 950년께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신약은 기원후 150년께 마무리됐기에 성경은 대략 1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록됐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솔로몬 임금(기원전 961-922년)이 다스리던 기원전 950년께부터 단편적으로 작성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587-538년 바빌론 유배시기 무렵에 단편적으로 작성된 문헌들이 낱권 책들로 엮어졌다. 이어 기원전 200년께 어느 정도 성경 형태를 갖췄다. 이 무렵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됐다. 이것이 바로 「칠십인역」이다. 물론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후대에 집필된 제2경전 지혜서 같은 경우는 기원전 1세기, 더 나아가 기원전 30년께 기록됐다고도 추정한다. 신약은 기원후 51년 바오로 사도의 테살로니카 1서를 시작으로 기록됐다. 요한계 문헌이 비교적 후대인 기원후 100년 전후에 기록됐고, 베드로 2서는 기원후 100~130년께 기록됐다고 한다. ▶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기록됐나?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6세기에 마호메트가 하느님 계시를 받아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께서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신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사람이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대필한 것도 아니다. 성경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을 거쳐 형성됐다. 구약과 신약 모두 구전→문서화→편집→정경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형태를 갖췄다. 구약의 형성과정은 아래와 같다. ①구전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과정을 거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을 후손들에게 이야기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성조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이집트 종살이에서 어떻게 해방됐는지, 약속의 땅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등 그들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했던 사건을 이야기로 엮어 전했다. ②문서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시대를 달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전승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원전 950년께부터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글로 작성해 고정하는 문서화 작업을 시작했다. ③편집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글로 작성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시대를 달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수집ㆍ정리되는 가감첨삭 편집 과정을 거쳤다. 구전 및 문서 전승을 종합해 하느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④정경화(正經化) 오랜 세월에 걸쳐 글로 기록되고 편집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바른 경전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정경화(正經化) 작업을 거쳤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책들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쓰인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한 다음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김원철2011.06.21

한가위 조상 제사 이렇게... 주교회의, '가정 제례예식',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예식'에 관한 지침 주교회의는 지난 춘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과 '설ㆍ한가위 명절미사 전이나 후에 거행하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의식'에 관한 지침을 승인했다. 그동안 명절 때면 본당은 공동의식으로, 가정에서는 나름의 제례로 차례를 지내왔지만 공식지침이 없다 보니 양식에 통일성이 없고, 때로는 의미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전까지 통용된 3가지 가정 제례 양식은 개인 연구자들이 제시한 안(案)이지 주교회의 차원에서 공식 인준한 것은 아니다. 주교회의가 인준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제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예식이다. 따라서 제례 의미가 조상 숭배 개념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신자 가정에서 의무적으로 제례를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일 등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가정 제례에 우선해 위령미사를 봉헌할 것을 권고한다. 한가위를 앞두고 주교회의가 인준한 주요 지침을 소개한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설이나 한가위 명절 때 본당에서 공동으로 조상 추모의식을 거행할 때는 '미사 전이나 후'에 해야 한다. 사진은 신자들이 한가위 합동 위령미사 후 공동 추모의식을 거행하는 모습. ▨본당 공동의식 명절 때 본당에서 공동의식을 거행할 때는 '미사 전이나 후에' 해야 한다. 전례와 비전례적 신심행위(공동의식)가 혼합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의식은 이에 대한 사제의 설명, 분향, 위령기도 등 간소하게 구성한다. 또 명절미사 때 조상 이름을 일일이 적어 게시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유교식 제사에서 사용하는 위패(位牌)로 오인될 소지가 많다. 부득이할 경우 음식상이나 제대 앞이 아니라 제대 주변에 미사지향을 알리는 차원에서 게시한다. 신위(神位) 신주(神主) 위패(位牌) 지방(紙榜)이라는 유교식 용어는 조상 숭배 의미를 연상시킬 소지가 있어 '조상(고인)의 이름', '조상의 사진' 등의 용어로 대치한다. ▨가정 제례 예식(명절 차례) 시작예식, 말씀예절, 추모예절, 마침예식으로 구성한다. 특히 추모예절은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한국교회의 전통적 기도인 위령기도를 주요 예식으로 구성한다. <준비사항> 1.마음과 몸의 준비: 제례 전에는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례 때는 복장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는다. 2.상차림: 제례상은 음식을 차리지 않고 단순하게 추모예절만을 위한 상을 차릴 수도 있다. 상 위에는 십자가와 조상(고인)의 사진이나 이름을 모시며,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그 외에 「성경」 「가톨릭 성가」 「상장예식」(또는 「위령기도」) 등을 준비한다. 음식상을 차릴 때에는 형식을 갖추려 하지 말고 소박하게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린다. <시작예식> 3.시작 알림: 제례준비가 끝나면 가장은 다음과 같이 제례의 시작을 알리며 예식을 진행한다. 지금부터 명절을 맞이하여 설날(또는 한가위) 차례를 거행하겠습니다. 4.성호경 5.시작성가: 「가톨릭 성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성가 50번ㆍ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6.시작기도: 가장은 오늘 거행하는 제례의 취지를 설명한 후 가족들의 마음을 모으는 기도를 바친다. †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설/한가위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님들을 기억하며 차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과 부활의 주인이신 주님께 조상님들과 우리 자신을 봉헌하면서 정성된 마음으로 이 예절에 참여합시다. 잠시 침묵 후에 † 주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주님의 종 ( )를 받아들이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며 성인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도 주님의 뜻 안에서 서로 화목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말씀예절> 7.성경봉독: 아래에 있는 성경 말씀 외에 다른 본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마태 5,1-12(참 행복), 요한 14,1-14(아버지께 가는 길), 로마 12,1-21(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과 생활 규범), 1코린 13,1-13(사랑), 에페 5,6-20(빛의 자녀)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8.가장의 말씀: 가장은 조상을 회고하면서 가훈, 가풍, 유훈 등을 가족들에게 설명해 준다. 또한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가족들이 신앙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권고한다. <추모예절> 9.분향과 배례: 가장이 대표로 향을 피우고 다함께 큰절을 두 번 한다. 10.위령기도(「가톨릭 기도서」 74~79면): 긴 위령 기도를 바치거나 노래로 부를 때는 「상장예식」(또는 「위령기도」)을 참조한다. † 지극히 어지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 믿으며 ( )를 아버지 손에 맡겨드리나이다. ○ ( )가 세상에 살아있을 때에 무수한 은혜를 베푸시어 아버지의 사랑과 모든 성인의 통공을 드러내 보이셨으니 감사하나이다. ● 하느님 아버지,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 )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주시고 남아있는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믿음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시편 129(130), 시편 50 † 주님, 세상을 떠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또한 저희의 부르짖음이 주님께 이르게 하소서. † 기도합시다. 주님,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을 생각하며 비오니 주님의 성인들과 뽑힌 이들 반열에 들어 주님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모두 무릎을 꿇고 '주님의 기도', '성모송'을 각각 한 번씩 하고 다음 기도로 위령기도를 마친다. † 주님, ( )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 ( )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마침예식> 11.마침성가: 「가톨릭 성가」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성가 50번ㆍ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12.음식나눔: 온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사랑과 친교의 대화시간이 되도록 한다.김원철2012.09.18
![[출판]공부 십자가 진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3285_1.0_titleImage_1.jpg)
[출판]공부 십자가 진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의정부교구 강주석 신부, 입시위주 교육 현실 안타까워 직접 기도서 펴내 강주석(의정부교구 광적본당 주임) 신부는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 모습에서 무죄한 어린 양이 짊어진 십자가 슬픔을 느꼈다. 건강까지 해쳐가며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사회 구조는 예수에게 십자가를 지우라는 악한 군중의 외침처럼 다가왔다. 아이들은 답답한 현실에 왈칵 울음을 쏟아내고 싶지만 눈물마저도 시험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강 신부는 수험생들에게 기도로 힘과 용기를 보태고 싶어 자신이 직접 쓴 수험생을 위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책으로 펴냈다.각 처마다 성경 구절과 묵상글, 기도로 구성 성경 구절과 묵상글, 기도로 구성된 책은 수험생을 위한 강 신부의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 묻어 난다. "이번에 넘어지면 못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모두들 목표를 향해 죽을 힘으로 달리고 있는데 우리 아이가 넘어지면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달아나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 삶의 무게 때문에 넘어지는 당신의 자녀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 예수님, 아직 믿음이 부족한 저희들이지만 십자가의 길에서 또 다시 넘어지시는 당신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어 우리 아이들이 넘어지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아멘."(제7처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수험생 부모도 위로 강 신부는 수험생 자녀와 함께 수험생 생활을 하는 부모 마음도 헤아리며, 부모들이 자녀에게 부담이 아닌 위로와 평안을 줄 수 있도록 기도했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기쁨의 선물로 다가왔던 아이, 그런데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아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 소중한 아이를 키워 내면서 가슴에 못이 박힌다는 말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못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님, 우리도 주어진 십자가를 잘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소서. 아멘."(제11처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강 신부는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하느님 아들과 그 어머니, 그 길을 함께 했던 사람들 마음을 묵상하면서 이 기도를 썼다"면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을 통해 수험생과 가족들이 인생 여정에서 부딪히는 고통의 의미를 찾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8.14
![[출판]저자와 만남-사도신경 지은 차동엽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780_1.0_titleImage_1.jpg)
[출판]저자와 만남-사도신경 지은 차동엽 신부사도신경에 담긴 교회 보물 끄집어내 보여주고파사도신경(차동엽 지음/위즈앤비즈/1만 4100원) "사도신경은 교회 보물이며 생명줄입니다. 또 우리가 바치는 절절한 신앙고백이자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지요. 이 사도신경을 제대로 고백하며 살아간다면 주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에 넘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사도신경 해설서를 펴낸 차동엽(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신부의 사도신경 예찬은 끝이 없었다. 차 신부는 "사도신경은 교회와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새 희망을 줄 2000년의 지혜이자 자녀에게 대물림할 신앙의 가보"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 화두는 절망과 분노입니다. 미래가 안 보인다, 비전이 안 보인다며 답답해 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위기를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이 때에 한줄기 빛이 돼주는 출구가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 찾는 지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차 신부는 "명색이 신학자라는 나조차도 사도신경을 읊어만 왔지, 그 속에 담긴 보물을 발견하지는 못했다"면서 "이 책을 쓰는 내내 새로운 깨달음에 설레였고, 기쁨과 희망으로 가슴 벅찼다"고 말했다. 사도신경은 라틴어로 심볼룸 아포스톨로룸(symbolum apostolorum)으로, 사도들의 증표라는 뜻이다. 또 증표ㆍ상징ㆍ기호를 나타내는 '심볼룸'의 어원은 깨트리거나 쪼개진 물건의 반쪽을 뜻한다. 차 신부는 사도신경을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반쪽"으로 설명했다. 그는 사도신경을 '주님과 나눈 약속의 정표'로 불렀다. 차 신부는 책에서 사도신경 한 단어, 한 구절씩 곱씹고 되새김질했다.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뜻을 구체적으로 풀이했다. 또 자신의 체험과 여러 예화를 곁들이며, 이 기도를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구현하며 살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그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구절을 설명하며 고통과 불안,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찾아냈고, '나는 믿나이다'라는 고백에서 말씀을 붙잡고 시련을 견디는 신앙을 일깨웠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해설하는 대목에선, 무신론과 다원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의미를 정확히 짚어주며 "예수는 세상 지혜뿐 아니라 초월적 진리까지도 다 아우르고 계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사도신경에 담긴 교회론과 종말론을 비롯해 부활신앙과 성령, 성모 마리아 영성에 대한 명쾌한 풀이를 제시했다. 신학과 신앙의 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2000년간 전해져온 사도신경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다. 차 신부는 "그동안 성경(「맥으로 읽는 성경」), 주님의 기도(「통하는 기도」), 향주3덕ㆍ복음3덕(「믿음 희망 사랑」) 참행복(「행복선언」)에 관한 책을 썼는데, 사도신경 집필로 그리스도교 보물인 7대 신앙유산(성경, 십계명, 참행복, 주님의 기도, 향주3덕, 복음3덕, 사도신경)이 완성됐다"면서 "그리스도인 윤리와 신앙, 영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게 해준 하느님 섭리를 느꼈다"고 말했다. 차 신부는 현재 평화방송TV에서 사도신경을 강의하고 있다. 방송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다. 한편 미래사목연구소는 5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사도신경과 새복음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세미나에서는 홍승모(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신부, 한국평협 오용석(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무총장, 차동엽 신부가 각각 △성경의 요약으로서 사도신경 △본당 새복음화 프로그램으로서 사도신경 △믿는 이의 승리-사도신경의 현대적 적용을 발제한다. 이날 가수 장혜진(멜라니아)씨가 참석, 특별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접수 및 문의 : 031-985-2835, 미래사목연구소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6.27
![[가톨릭 문화산책]<6>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 미술(2)](//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2036_1.2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 미술(2)인류 구원 위한 수난의 길 암시된 아기 예수의 탄생 예수 탄생을 주제로 한 성화는 마태오복음이 전하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루카복음이 전하는 '목자들의 경배'를 기초로 한다. 마태오복음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동방 점성술사들이 메시아 도래를 알리는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찾아 예수께 경배하며 선물을 바쳤다. 반면에 루카복음은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예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부름을 받은 양치기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했다고 전하지만, 동방박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로렌초 로토(Lorenz o Lotto, 1480-1556) 작품인 '탄생'에는 목자도, 동방박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소 작은 작품인 '탄생'은 가정에 봉헌된 작품으로, 신비로운 예수 탄생은 상당히 가정적 분위기로 형상화된다. 작품 : '탄생', 로렌초 로토 작, 46x36㎝,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1523년.● 환희의 신비 1단 :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묵상 단어 : 탄생과 죽음(십자가), 하늘과 땅, 사랑 #의로운 사람 요셉 팔을 쭉 뻗은 아기 예수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마리아와 요셉은 무릎을 꿇고 있다. 이콘이나 중세 전통 도상에서 요셉은 보통 아기 예수와 마리아가 있는 중심부에서 따로 떨어져 있다. 수심에 찬 표정으로 요셉은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앉아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장차 아내와 아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로토는 웃음을 띤 얼굴로 아기 곁에서 기도하는 요셉을 그린다. 기쁨과 감동, 그리고 찬미가 있다. 요셉의 침묵과 합장한 두 손은 자신이 마리아의 동정성의 증인이자 하느님과 함께 예수의 아버지임을 드러내는 듯하다. 마태오복음은 단지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했는데, 그들이 함께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의 인도로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의로운 사람이었던 요셉은 그래서 마리아를 신부로 맞아들일 생각을 굳힌다(마태 1,19-25 참조). #요람에 누운 아들과 교감하는 어머니 마리아는 눈과 입술을 통해 손을 치켜들고 작은 발을 사랑스럽게 구르는 아기 예수를 바라본다. 갓 태어난 아기의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아기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안기고 싶은 듯하다. 어머니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다정다감한 교감이 느껴진다. 가슴을 숙인 채 마리아의 엇잡은 팔에는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이 드러난다. 아기를 향한 마리아의 자세와 시선은 주님의 종으로서 겸손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신비를 드러낸다. 짚이 깔린 바구니에는 나신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놓여 있다. 바닥, 땅! 이는 이 세상에 바로 오심을 뜻한다. 땅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자궁, 곧 어머니를 상징한다. 육화돼 이 땅에 오신 예수의 모습은 초라한 바구니 요람에서 드러난다(루카 2,11-12 참조). 전통적 비잔틴 도상에서 요람은 부활사건처럼 열린 무덤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사각형에 단단한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로토는 바구니 아래에 입구를 동여맨 작은 주머니와 작은 통을 그려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암시한다. 빵과 물! 여행을 시작한 누군가가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물건이다. 이는 곧바로 전개될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을 예고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오두막 안에는 일련의 '성스런 대화'의 요소가 빛을 통해 부분적으로 조명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시작으로 천사들과 사다리, 산비둘기, 그리고 멀리서 잘 보이지 않는 나귀와 소,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쥐덫(혹은 대패) 등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이미지는 곧바로 눈에 띈다. '탄생'에 '죽음'이 왜 등장할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탄생하고, 골고타에서 죽음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작은 천사들과 사다리 하늘에는 5선이 보이는 커다란 악보를 손에 든 세 천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노래한다. 로토는 앞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탄생을 알린 것처럼, 하늘의 힘과 축복을 천사들의 찬미로 드러낸다. 나신의 천사들은 마치 아기 예수처럼 작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관계로 인생에 중요한 사랑을 채우려 한다. 왜 오두막에 사다리가 세워져 있을까? 농촌 환경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로토는 이 사다리 역시 성경과 연결한다. 브에르 세바에서 하란으로 여행하던 중 하늘과 땅이 연결된 층계를 본 요셉의 꿈을 예수 탄생에 연결시켜 사다리를 그린다(창세 28,13 참조). 교부학자들에게 사다리는 천사들을 통한 하느님 섭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사다리는 하늘과 땅을 결합한 그리스도 강생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산비둘기 한 쌍 집 입구 나무 위에는 산비둘기 한 쌍이 앉아 있다. 로토는 비둘기 한 쌍에 예리한 빛의 효과를 줘 회화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장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세 그리스도교의 상징을 나타낸 것이다. 산비둘기는 성스러운 신부와 관계된 교회의 표징이다. 또한 아기 예수의 정결례 당시 제단에 드려야 할 재물의 규정에 따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루카 2,24)를 바쳤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쥐덫(혹은 대패)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로토의 서명이 새겨진 물건은 무엇일까? 몇몇 비평가는 목수였던 요셉의 직업을 상징하는 대패로, 다른 한편으로는 쥐덫으로 본다. 쥐덫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에 관한 메시지를 강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쥐덫은 대각선으로 연결된 지점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관계한다. 쥐덫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이미지 사이에 아기 예수가 있다. 도상에서 쥐덫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쥐덫은 성 아우구스티노가 "예수의 십자가는 악마를 잡는 쥐덫과 같다. 악마를 유혹하기 위해 쥐덫을 달아놓은 미끼는 다름아닌 예수의 죽음이었다"는 말을 의미한다. 로토는 예수께서 수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신학적 교리를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고 있다. 작품 :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틴토레토 작, 240x146㎝, 이탈리아 볼로냐국립회화관, 1549년께.● 환희의 신비 2단 :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묵상 단어 : 복된 여인, 기쁨, 만남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친척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한다.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준 대로 엘리사벳은 임신한 지 6개월째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1-45) 곧 마리아의 방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된다. 엘리사벳은 문 앞에서 기쁨으로 마리아를 맞이한다. 단순한 둘만의 만남이 아니라 예언자 요한 세례자와 구원자이신 예수의 만남이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전원에는 성령으로 위안과 평화를 얻은 마리아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퇴사자22013.02.26
![[세계 물 협력의 해] 서울 환경사목위ㆍ평화신문 공동기획- 목마른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5648_1.0_titleImage_1.jpg)
[세계 물 협력의 해] 서울 환경사목위ㆍ평화신문 공동기획- 목마른 하느님3. 물에서 배운다 / 4대강 여주 이포보 일대 자연훼손 현장 탐방흉물스럽게 남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이포보. 보가 강물을 가로막아 물이 썩기 시작했다.<연재 순서> 1. 물은 생명이다2. 생물학적 관점으로 본 물3. 물에서 배운다4. 동양사상에서 바라보는 물5. 물은 모두의 것이다 "이건 강이 아니라 썩은 물이에요. 맑디맑던 한강 상류가 4대강 사업으로 썩고 있어요." 5월 22일 경기도 여주군 남한강 이포보에서 만난 여주환경운동연합 전 간사 안은화(41)씨는 시궁창처럼 변해버린 남한강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쳤다. 8년 전부터 여주에서 살아온 그는 "4대강 공사 전 이곳은 주말마다 온 가족이 강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행복한 주말을 보내던 곳"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굴착기가 강바닥을 긁어낼 때마다 내 가슴이 파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안내로 여주군 남한강 일대를 둘러봤다. 남한강은 더 이상 '생명을 품은 강' 모습이 아니었다. #흉물스런 이포보와 그 일대 취재 차량이 이포보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것은 남한강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괴기한 모양의 건축물이다. 외계인이 타고 왔을 법한 둥근 우주선 7개가 다리 위에 착륙한 모습의 이상한 구조물이 강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이포보다. 이포보는 2011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공사 완공 기념행사를 열었던 곳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대한민국의 4대강은 생태계를 더욱 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1년 7개월여가 지난 현재, 이포보를 흐르는 강물은 심한 냄새와 부유물질로 강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안씨는 "강은 흘러야 하고, 강바닥엔 모래가 있어야 그 모래가 오염물질을 가라앉히고 물을 정화한다"며 "모래를 죄다 긁어내는 바람에 남한강은 점점 썩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설명을 마치고 물속에 손을 넣었다. 심하게 부패한 수생식물과 진흙과 같은 오니(汚泥)들이 잔뜩 딸려 올라왔다. 시궁창에서나 맡을 수 있는 역한 냄새도 났다. 이포보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가 물 흐름을 막고 있어 유속은 제로(0)에 가까웠다. 보 위에서 내려다본 강물에는 이따금 쓰레기가 떠 있었고, 희뿌연 더러운 물거품이 보 밑에서 뭉게구름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차를 돌려 이포보 오토캠핑장에 갔다. 이곳도 역한 강물 냄새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새롭게 조성된 이포보 오토캠핑장에는 강변 대신 강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 부근 야영장에 텐트가 처져 있었다. 강변에서 낭만적 캠핑을 기대했던 캠핑족들이 냄새 때문에 강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 모습이다. 인근 대로에 산더미처럼 쌓인 골재도 문젯거리다. 강바닥에서 퍼올린 자갈과 모래가 4년째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여주군 일대에는 높이 10m 규모의 골재산이 17개나 있다. 15톤 덤프트럭 100만 대 분량이다. 골재에서도 역한 냄새가 났다. 강에 사는 조개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려 인근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여주군은 매년 골재 관리비용으로 50억 원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200억 원이 넘는 세금이 골재 관리비로 사라졌다. #여주대교와 신륵사 일대 여주대교에서 신륵사가 바라보이는 강 맞은편. 영월근린공원에서 강변유원지 방향 일대를 걸으며 수질을 살폈다. 강변은 충격 그 자체였다. 조그마한 선착장에 들어서자 물 흐름이 끊긴 곳에서는 각종 부유물과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팔뚝만한 누치 사체가 반쯤 썩어 물 위에 떠있었고, 파리떼가 들끓었다. 나뭇가지를 주워 강물을 저으니, 시커먼 진흙이 뿌연 강을 더 뿌옇게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악취로 숨을 쉬기 어렵다. 큰 자갈과 모래마다 부유물이 가득 붙어 썩고 있었고, 4대강 공사 때 버려진 폐건축자재도 강바닥과 모래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강을 이 지경으로 만들려고 수십 조 혈세를 쏟아 부었단 말인가'하고 화가 치밀었다. 고요히 수천수만 년을 흘러온 강에 손을 대 하느님 창조질서를 짓밟은 대가는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누치와 조개, 물고기들이 온몸을 내던져 설명해주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안씨는 "그래도 희망을 품자"고 했다. 그는 "강은 창조된 그대로 흐르도록 두면 언젠가는 원래 모습을 되찾지 않겠느냐"며 "4대강 공사 때도 손대지 않고 남겨둔 아름드리 나무가 그래도 희망의 징표"라고 씁쓸해했다. 여주군 일대 남한강은 "강에 있는 물고기들은 죽고 강은 악취를 풍겨, 이집트인들이 강에서 물을 퍼마시지 못할 것이다"(탈출 7,18)는 성경 구절이 실현되기라도 한 것처럼 악취를 풍기며 썩고 있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3.05.29
![[공동체]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진출 75주년 감사미사와 대축제 통해 '프란치스코처럼 작고 겸손하게' 살겠다 다짐](//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8085_1.0_titleImage_1.jpg)
[공동체]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진출 75주년 감사미사와 대축제 통해 '프란치스코처럼 작고 겸손하게' 살겠다 다짐 올해 한국 진출 75주년 '은총의 해'를 맞은 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는 7일 '프란치스코처럼 작고 겸손하게' 복음적 삶을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봉사자 이현주)는 이날 대전시 부사동 한밭종합경기장 내 충무체육관에서 75주년 감사미사와 대축제를 갖고, 회개와 쇄신을 통해 진정한 프란치스칸으로 거듭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감사미사는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와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작은 형제회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카푸친 작은 형제회 등 1회 프란치스코회 사제단 60여 명, 광주ㆍ인천ㆍ제주 교구 사제회원 5명 공동집전으로 전국 13개 지구, 138개 단위 형제회원 6500명이 참례한 가운데 봉헌됐다. '회개와 쇄신'을 주제로 한 2부 감사미사 봉헌 시간에 국가형제회는 빵과 포도주, 한국인으로는 첫 재속회원인 장면(요한) 전 총리와 첫 사제회원인 오기선 신부 등 2명의 인물전을 봉헌하고, 지구형제회는 지난 3년간 필사한 성경과 지구 쇄신운동, 헌혈증서, 장기 및 시신 기증 봉헌서, 특산물 등을 봉헌했다. 이어 기념식에서 서약생활 50년 금경축을 넘긴 허순덕(데레사, 81)씨 등 재속회원 24명과 사제회원인 광주대교구 김성용 신부 등이 기념패를 받고, 75주년 기념 체험수기 입상자 3명도 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회상과 만남'을 주제로 한 미사 전 행사에서 회원들은 75주년 기도와 함께 6ㆍ25전쟁 중 순교한 착한 목자 이광재 신부 시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바치고 동영상을 통해 75년 역사를 되돌아본 뒤 서울지구 형제회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또 감사미사에 이어 '일치와 기쁨'을 주제로 75주년 축제를 열어 지구별로 준비한 성가와 노래, 율동, 연극, 댄스 등을 즐겼다. 이현주(가타리나) 국가봉사자는 이날 "75주년을 새로운 시발점으로 삼아 철저한 쇄신을 통해 교회와 사회에서 마음을 열고 기뻐하며 프란치스코처럼 작고 겸손하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국가형제회원들이 제각기 팻말을 들고 '일치와 기쁨'을 주제로 한 대축제를 마치며 한국 진출 75주년을 자축하고 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진출 75주년 기념행사 이모저모 7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거행된 재속 프란치스코회 한국 진출 75주년 감사미사는 지나온 75년 발자취를 돌아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다가올 100주년을 내다보며 '작은 프란치스코'로 살겠다는 서약의 대축제였다. "작은 프란치스코 다짐 ○…감사미사와 대축제에 앞서 지난 3년간 성경 필사와 희생, 봉사를 통해 내적 쇄신을 이뤄온 재속 프란치스칸들은 첫 전국 행사에 형제적 기쁨을 나누며 75주년 기도문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겸손하고 단순하게 형제애가 충만한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세상과 형제회 안에서 섬김의 삶을 살아나감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하느님 자애와 평화를 전하기를" 기도했다. 75주년 감사미사의 절정은 지난 3년간 내적 쇄신을 지향하며 정성스럽게 필사한 성경과 한국인 재속 프란치스칸 2명의 인물전, 지구 형제회 쇄신운동, 헌혈증서(250매), 장기(350명) 및 시신(46명) 기증 봉헌서, 특산물 등 봉헌 예식이었다. 또 기념식을 통해 재속회원 24명과 사제회원 1명 등 총 25명에게 지난 50년간 서약생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기념패를 전달했다. 또 이날 감사미사 봉헌금 4000여만 원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려 설립된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전액 기증키로 했다. 행사장 2층 복도에선 지구별로 지나온 역사와 발자취를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돼 재속 프란치스칸들 발길을 잡아끌었다. 미사를 주례한 유흥식 주교는 강론에서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의 몸을 취한 강생의 신비와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의 신비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라며 '작은 프란치스코'로 성실히 살아가기를 전 회원들에게 당부했다.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 보편적 형제애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 프란치스칸의 삶을 충실히 살아 갈 것"을 주문했다. "일치와 기쁨 나눔 대축제" ○…1부 미사전 행사, 2부 감사미사에 이은 3부 대축제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원들은 물론 맨발의 재속 가르멜회 등 타 수도회 3회원들까지 한데 어울려 일치와 기쁨을 나눈 자리였다. 지구 형제회원들은 제각기 특색 있는 노래와 율동, 연극, 퍼포먼스, 풍자극 등을 통해 폭소와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1회 수도회인 작은 형제회와 3회 수도회인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ㆍ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회원들도 노래와 율동 등으로 재속회원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올해 서약생활 51주년을 맞은 전주 전동형제회 허순덕(아기 예수의 데레사)씨는 "형제회를 통해 24시간을 하느님께 향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돼 정말 행복하고 앞으로도 형제자매들과 함께 '섬기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장 기경호 신부는 "하느님께선 지난 75년간 한 순간도 회원들에게서 사랑의 눈길을 떼지 않으셨기에 지난 75년은 은총의 75년이자 사랑의 75년이었다"며 "앞으로도 75년 발자취를 돌아보며 진정한 회개를 통한 쇄신과 사랑의 역사를 써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1937년 12월 서울 백동(현 혜화동성당)에서 첫 착의식(입회식)이 거행되고 이듬해 1월 첫 형제회로 서울형제회가 설립됨으로써 시작된 국내 재속 3회의 맏형 격인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현재 13개 지구에 회원 1만3000여 명을 둔 단체로 성장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10.09
![[아! 어쩌나] 199. 성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18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99. 성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Q. 새내기 신자입니다. 대부님이 "천주교인들은 성인을 본받아야 한다"며 성인전 몇 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그분들의 삶이 존경스럽고 부럽기는 합니다만, 부담스럽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내가 과연 성인들처럼 완덕의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성인전을 읽을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성인이 돼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구원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약해져 가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A. 성인전은 일반 사회에서는 위인전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이 배의 길잡이가 돼주듯, 위인전은 인생의 목표적 삶을 보여주지요. 성인전도 마찬가지로 구체적 신앙생활의 목표를 보여줍니다. 위인들처럼 성인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책이 성인전입니다. 그런데 교육계에서는 위인전이 아동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는 사실을 공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자아는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 자아와 지금의 나인 현실적 자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위인전은 이상적 자아의 자리를 갖는 것이지요. 지금의 자신을 혐오하고 지나치게 편향된 마음으로 이상적 자아만 추구하면 정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성인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전이 지나치게 성인들을 이상화한 내용만으로 구성된 경우 즉, 성인들에게 인간적 하자(瑕疵)가 있음을 기록하지 않은 성인전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적 열등감'을 갖게 합니다. 심지어 비현실적 신앙생활로 이끄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들을 인격적 결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 천사처럼 영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이 아닐뿐더러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우리에게 지나친 심적 부담을 안겨줍니다. 또 자칫 하느님을 멀리하고 냉소적 신앙인이 되게 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성인들의 인간적 면도 봐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주님은 완전한 인격체로 묘사돼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인간적 면모를 자주 보여주십니다. 성전에서 환전상이 장사를 한다고 화를 내시면서 상을 둘러엎으십니다. 그리고 수난의 길을 가시기 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새 고뇌에 빠지십니다. 또 부활하신 후에는 제일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를 만나시는 등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스캔들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주님에게서 그분이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인식하고 마음이 가까이 감을 더 깊이 느낍니다. 따라서 형제님이 성인이 아무 결함 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제님 생각은 주님이 성인들보다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루카복음 7장 36절 이하를 보면, 주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이 말씀은 진정한 성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주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미성숙하며, 이성적이기보다는 동물적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존재이기에 적지 않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성인들은 자신의 그런 허물을 인정하고, 그 허물을 고치기 위해 평생 노력한 분들입니다. 즉,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점은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잘난 척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용서받으며 살아온 존재란 것을 인식하고, 참회하는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자신이 용서를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아 팽창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은근히 단죄하는 신앙적 패륜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여인이 주님 발에 향유를 부었을 때, '주님이 저 여자가 죄인임을 모르시는가'하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용서받을 정도로 죄짓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품고 사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많은 용서를 받으면서 살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늘 고마움과 감사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적게 용서받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늘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성찰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4.30
![[나의 묵주이야기] 36. 어두운 길 밝혀준 '손전등 불빛'](//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6042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36. 어두운 길 밝혀준 '손전등 불빛' 박일원 십자가의 성 요한 (호주 시드니 와이타라본당,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저자) 내가 가톨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참 암담하고 심란한 시절이었다. 두 살 때 걸린 소아마비로 어머니 등에 업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에는 친구와 친척 등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중ㆍ고등학교를 거친 후 대학까지 마쳤지만 이제는 뭘 해야 하나, 그리고 내 짝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나에 대한 온갖 궁리 때문에 잠 못 이루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명동성당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제발 예쁜 짝 하나를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나는 결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원이 이뤄져 더 기도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그 후 낯선 호주에 이민 와 살게 되면서 의지할 곳이 필요해 성당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정을 겸해 시드니 남서쪽 잼버루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까지 찾아갔다. 깊고 깊은 산골이라 사람도, 나무도, 공기도, 물도, 구름도, 생각도 모든 게 다 고여 있는 듯했다. 수도원 입구에는 피정이나 묵상하러 오는 외부인을 위한 오두막이 몇 채 있고,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수녀님들이 거처하는 숙소와, 새벽이면 인근 마을 주민이 찾아와 미사를 봉헌하는 작은 성당 하나가 있다. 통나무로 지은 오두막 별채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성경을 읽고 묵상한 뒤 시드니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었다. 수녀원에 딸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수녀님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혹시 시드니까지 가는 거라면 '렌드윅'이라는 동네에 사는 여성 신자 한 분을 데려다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아내는 쾌히 승낙했지만 나는 그곳을 들르면 돌아가야 했기에,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짜증이 났다. 게다가 그 여성은 우리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몸이 피곤해 뒷자리에 눕겠다고 말하는 등 다소 예의가 없어 보였다. 렌드윅에 거의 다 와서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묻자, 그 여성은 그냥 로터리 근처에 세워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사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묻자 그녀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 병원이라고 했다. 그제야 아내와 나는 그 여성이 병원 장기입원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가 뒷좌석에 자꾸 누우려고 했던 이유도 알게 됐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던 거였다. 그녀는 병원 입구에서 내리며 손가방에서 묵주 하나를 꺼내 작은 선물이라며 건네줬다. 순간 나 자신이 무척 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전날 수녀원에서 새벽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오두막 숙소를 나섰을 때 일이 떠올랐다. 캄캄한 새벽,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아내와 나는 우산에만 신경을 썼지 어두운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는 전혀 생각지 못해 손전등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당까지 요리조리 물웅덩이를 피해 가며 오솔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차박차박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 거리를 두고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앞쪽으로 계속 손전등 불빛을 비춰줬다. 워낙 캄캄해서 뒤를 돌아봐도 그가 누군지 볼 수 없었지만, 그 오렌지 불빛은 우리가 돌부리나 물웅덩이를 피해 갈 수 있도록 살펴줬다. 나는 그 여성분이 전해준 묵주를 볼 때마다 그동안 내가 이 묵주를 손에 쥐고 남을 위해 기도했던 적이 얼마나 되는가 생각해본다. 부끄럽게도 인도의 잠언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 비 내리는 저녁이다. "나 아닌 것들을 위해/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갈라지면서도/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전단향나무처럼" cpbc201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