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생활, 하느님 나라보다 '마음의 평화' 중시▨심층분석 / 당신은 왜 성당에 다니십니까? <上>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생활에서 영원한 삶이나 구원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신자들이 한 야외미사에서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평화로만 치자면 요즘 명상수련센터나 요가교실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신앙생활의 주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날이 갈수록 내면화, 개인화하는 추세를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신앙생활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요즘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떨어지고, 아들은 취직이 안 돼 걱정이고…. 여러 가지로 걱정할 게 많은데, 아무래도 성당 가서 기도하면 그런 불안감이 좀 덜하죠. 신앙생활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50대 여성 신자 박 마리아(51)씨는 성당에 나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신자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서울대교구 대치동본당(주임 김철호 신부)이 신자들 신앙생활 설문조사 결과를 기초로 작성한 사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신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신앙생활보다 '마음의 평화'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사제가 강론시간에도 복음 자체에 대한 해설(22.5%)이나 교리ㆍ교회에 대한 이해(6.9%)를 돕기보다는 마음에 위로와 평화(37.7%)를 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이러한 경향은 나이를 불문한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가 지난해 5월 19~39살 본당 신자 1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청년신자의 신앙생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청년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음이 평안한 것(38.7%)'과 '가정생활이 즐거운 것(30.6%)'을 꼽았다. 신앙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이는 16.5%밖에 되지 않았다. 또 응답자들은 신앙이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61.9%)'는 답을 골랐다. 두 조사 결과는 상당수 신자들이 마음이 평화로운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앙생활 목표를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원한 삶이나 구원같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는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한국인만의 종교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종교를 가진 한국인에게 두루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보는 견해다. 송용민(인천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한국인들은 어떤 특정한 교리나 종교적 진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보다 마음에 맺힌 한을 풀어주는 실천적 지침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며 "그렇기에 교리나 성경공부보다는 영성적 삶에 관심이 많고, 때로 종교가 지나치게 윤리적 지침을 강요할 때 부담을 느끼거나, 종교생활에서 이탈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원인은 사회적 불안이다. 물질만능주의와 양극화 심화, 최근의 경제난과 취업난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안감을 겪고 있고, 이를 해소할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택한다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는 "물질적 풍요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이 심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심리적 박탈감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거대한 집단(가톨릭)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질책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을 보다 성숙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 주교는 "어느 종교든지 구복(求福)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현세적, 구복적 성격을 무시하면 안 된다"며 "다만 신자들의 이러한 동기를 점차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 교회와 사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cpbc2013.04.02
![[성경 속 궁금증] (8) 결혼식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왜 쫒겨났을까](//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249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8) 결혼식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왜 쫒겨났을까인간 세상 예복과 질적으로 달라예수님은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혼인 예복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회개라고 하셨다. 그림은 '카나의 혼인잔치'(제라드 데이비드 작, 1500년).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혼인잔치에 오지 않았다. 그러자 임금은 종들에게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종들은 거리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을 데려왔고, 혼인잔치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임금은 하인들에게 그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게 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임금이 아들을 위해 베푸는 혼인잔치에 비유하신 대목이다(마태 22,1-14). 결혼식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왜 쫓겨났을까. 우리는 결혼식 혹은 장례식에 갈 때, 그에 어울리는 예복을 차려 입는다.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그에 걸맞은 예복이 필요하다. 유다인들은 혼인잔치가 치러지는 동안 새 신랑과 신부는 물론 가족, 그리고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까지 혼인 예복을 입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풍습이 있었다(마태 22,12 참조). 유다인들 혼인잔치는 가족과 친인척, 마을 사람들, 지인들, 심지어 행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큰 축제와 같았다. 혼인잔치는 일주일이나 치러졌으며, 잔치 내내 연회, 노래, 춤 등이 이어졌다. 혼인을 치르는 신부는 아름다운 여왕처럼 몸치장을 했다. 신부는 목욕을 하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보석을 빌려 머리를 장식했다. 신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렸는데, 이 베일은 혼인을 치르는 장내에 들어갈 때까지 벗을 수 없었다. 새 신랑과 신부가 혼인서약을 한 후, 남편과 아내가 됐음을 선언 받은 뒤에야 비로소 베일을 걷을 수 있었다. 이때 혼인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은 결혼이 성립하는데 중요한 증인 역할을 했다(창세 29,22).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혼인 예복은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는 자애로, 혼인 예복은 세례 자체라기보다는 깨끗한 마음과 흠 없는 양심,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혼인 예복은 믿음의 세례라고 했다. 거룩한 교회에 속한 사람이지만 혼인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온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혼인 예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했다. 이는 창조주께서 교회를 당신과 결합시키기 위해 혼인잔치에 오셨을 때 그분께서 지니셨던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혼인 예복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회개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았다고 무조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언급한 결혼 예복은 인간 세상의 예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기에 예복을 갖추지 않으면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는 것이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1.10.11
![[아! 어쩌나] 198. 가지지 못한 사람](//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991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98. 가지지 못한 사람 Q. 성경에서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원래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 편이 아니시던가요?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자들 편을 드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대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A. 형제님처럼 복음 내용을 사회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분들은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 내용은 치유적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기에 한쪽으로만 해석하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큽니다. 형제님이 보신 내용은 루카복음 8장 16-18절에 나오는 것이지요.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성장 심리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마다 인생이란 시간과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대비적 비유를 드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이라는 시간은 아주 소중합니다. 절대로 아무렇게나 써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마구 써버리고, 자신을 '헐값 인생'으로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진 것도 못 써보고 주어진 시간마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 인생 노숙자처럼 살다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명씨로 사라진다는 것을 경고하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회의 등불이 돼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등불 같은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미국 뉴욕대 여성의학자 수잔 코바사는 "도전 정신과 통제, 몰입이라는 세 가지 자질을 갖추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위기를 위협이 아니라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둘째 외부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대처 방식은 언제든지 통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위기와 고난을 긍정적 틀로 변화시켜주는 가치 있는 일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세를 가지고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보통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인생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턴 역시 "1만 시간의 연습을 해야 장인의 입지를 가진다"고 했지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이 나는 그렇게 못 한다고 하면서 뒤로 넘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은 길게 그리고 천천히 시간을 잡으면 됩니다. 20년, 아니 30년을 잡고 넉넉하게 길을 간다면 크게 성공하거나 세상을 비추는 등불은 못 될지라도 어두운 골목길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밤길에 넘어지지 않게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성장하기 위해서는 관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 마음과 신체의 관계, 나와 이웃의 관계, 나와 생명과의 관계, 보호막처럼 존재하는 집단 혹은 사회적 제도와의 관계 등등. 장인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장과 성공은 주위 도움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관계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별개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의 관계가 성장하면 다른 것들이 연관성을 갖고 성장을 촉진합니다. 주님께서 가진 사람이 더 가질 것이라고 하신 것은 이런 성장의 법칙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영성가는 관계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성장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성장에도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고자 할 때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이런 동반자적 관계를 통해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지고, 복음적 인격을 갖추게 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활 체험을 하게 된다." 참으로 지당한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누누이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랑 실천이 단순한 종교적 행위 차원이 아닌, 인간을 성장시키기 위한 기본적 자세임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말들이 귀에 들리지 않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하는 분들, 인생을 허무하게 여기고 노력을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하는 분들은 자신의 무기력증을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입이 아니라 온 몸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도 "인생이 지루하고 허망하다"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식의 말로 인생을 농락하는 분들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살며 시간의 아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을 생각하십시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4.2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1>요한 밥티스트 메츠(하)](//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9506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요한 밥티스트 메츠(하)신앙을 개인 영역에서 사회 정치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메츠의 신학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모색하고, 인간을 '연대적인 주체'로 다시 살려내는 작업이다. 메츠는 하느님을 향한 깊은 열정으로 시대의 징표를 예민하게 읽고 인류의 고난 역사를 껴안았다. 교회 내 문화적 다원주의와 정치신학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종교 간 대화와 교회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와 관련해 메츠는 진정한 세계교회가 되기 위한 전제로 △역사적인 신뢰 △예수 추종의 실천 △고통의 기억을 통한 보편적인 소통 능력을 제시했다. 메츠는 교회가 참으로 세계교회가 되기 위해선 유럽중심주의와 교회의 단일성을 방어적으로 고수하려는 관료적인 중앙집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봤다. 또 그리스도교의 원천과 긴밀히 결합돼야 하고 더 나아가 이 원천이 다른 문화와 만남에서 매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특히 성경의 두 가지 근본 유산, 곧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 민속적-문화적 다양성을 창조적으로 인정하는 문화(타자를 인정하는 문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를 추종하는 신비적이고 정치적인 실천 속에서 세계교회로 구체화될 수 있다. 여기서 실천은 가난한 이들과 타자를 존중하는 선택을 의미한다. 교회가 지금 여기에서 예수의 수난을 증언하고 하느님 정의를 수행할 때 진정으로 세계교회로서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복음의 고유한 원천인 고통의 기억을 토대로 타자의 고통을 기억할 때, 교회는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도 보편적 교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교회가 다양성 안에서 인정의 문화를 세계화(보편화)하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며, 세계의 평화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서로 인정하는 책임을 다하도록 이끌기 위한 생산적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와 정치신학 메츠의 정치신학은 근대 사상의 격랑과 회오리 속에서 형성됐다. 그런 만큼 메츠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근대적 사고에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못마땅해했고, 오히려 근대의 모색과 구상을 비판적, 생산적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그가 근대적 사고에 직면해서 그리스도교 대화 방식을 '생산적 비동시성'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면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을 '계몽을 넘어선 계몽'을 지향하는 신학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메츠의 신학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모색하고, 인간을 '연대적인 주체'로 다시 살려내는 작업이다. 물론 이러한 메츠의 모색을 오늘날 낡은 시도로 받아들이거나 시대에 부응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메츠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체의 해체 과정'이라고 진단하고 근대화 과정이 극단화된 형태로 파악한다. 즉 주체가 이성의 도구화를 통해 '또 다른 미성숙'으로 휩쓸려 가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이 또 다른 형태에서 미성숙하다는 것을 확인해 줄 뿐이다. 개체화된 인간은 근대의 기술적 진보 사상으로 형성된 시민사회에서 그저 무기력할 뿐이고, 윤리적 문제는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인격적 결단까지도 제거해 버린다. 이 때문에 메츠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방식에 회의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는 이성의 보편타당한 합의를 목표로 삼지 않고 불일치, 다원성 그리고 서로 다름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하나를 강조하는 사유나 윤리의 보편타당성 문제와 같은 큰 담론을 거절하고 작은 이야기를 중요시한다. 이를테면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세련하고 서로 다른 실재를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메츠는 서구철학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형언할 수 없는 재앙을 가져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우슈비츠로 표현되는 재앙은 근대적 사유를 총체적으로 문제 삼는 사건이다.) 그는 또한 삶의 세계가 다원적임을 인정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츠는 전체주의적 사고와 하나임을 추구하는 사유는 서로 구별돼야 한다고 보며, 상호관계성을 상실한 다원주의적 사유의 파편화 경향과는 생각을 달리한다. "서로 상관성이 없고 또 행동과는 동떨어진 다양성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폭력이 둥지를 틀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모든 인간이 하나이고 동등하다는 생각을 위험천만한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유다인들이 가스실로 보내지기 전부터 이러한 하나됨에서 원천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봉쇄되지 않았는가?" '거만한 다원주의'는 결국 보편적 책임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무력화한다. 메츠는 이를 우리 삶이 개인주의에 이르는 형태로, 비판적 책임이 없는 관망자 성향 혹은 우리 세계의 위기와 고통의 현실 앞에서 부초처럼 떠도는 것과 같은 관계로 특징짓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편적 윤리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유에서는 보편적 윤리를 유효하게 하는 합의의 원리가 불충분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러한 합의를 모두에게 보편타당하게 요구할 수 없고, 또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평일 뿐이며 바로 그 때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게 되는 것은 그저 왜소한 윤리일 뿐이다. 이 윤리는 마지막엔 사회시스템에 대한 무책임한 적응 능력으로만 나타난다. 메츠는 오늘날 보편적 윤리의 위기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한다. "왜소한 윤리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고…, 위험 상황에서는 자기실현마저도 쉽게 포기하는 것을 간단히 허용한다. 또한 그것은 모든 갈등을 개인주의적으로 해소하게 하고, 보편적 동의와는 달리 모든 것이 다 똑같다는 식이다…. 이러한 왜소한 윤리는 만족하는 다수를 위한 윤리이다. 다른 이들의 고통이나 불만족하는 소수를 고려하지 않는 윤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후에 직면해 어떻게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스도교 희망을 말할 것인가. 문화와 종교 세계의 다양함 속에서도 모두에게 타당하고 보편적인 진리의 척도가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을 포스트모던의 시장에 내어주고 말 것인가. 이에 대한 메츠의 응답은 하버마스가 메츠와 논박에서 언급한 바처럼 '암시적'일 뿐이다. 메츠는 합리적 근거를 엄격하게 철학적으로 반성하는 것을 거절한다. 그 대신 '고통의 기억'을 대화를 통해서 보편적인 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척도로 제안한다. 그러나 '기억'의 범주만으로는 상대화의 위험이나 새로운 폭력의 대두, 사회적 모순을 해소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메츠의 정치신학 의미와 평가 메츠의 정치신학의 전체적 윤곽은 근대와 오늘날의 위기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생산적 비동시성'(근대의 기획과 연대하나 시민사회의 주체와 종교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메츠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해석학적'이라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복음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비판적 이성을 토대로 동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관계 속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앙과 종교를 사적인 영역으로 환원하거나 축소한 신학적 프로그램을 거슬러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정치적인 차원을 신학적 사유에 중심에 놓았다는 점은 분명히 정치신학이 이룬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메츠의 정치신학은 또한 '맥락적 성격'을 지녔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과 더불어 인간 실존과 역사의 의미를 기억하는 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고통의 기억을 통해 승자의 역사 안에서 배제되고 망각된 고통당하는 이들의 자취를 찾은 점, 또한 그들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면서 고통당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주체의 신학을 모색한 점은 메츠의 정치신학이 이바지한 큰 공헌이다. 메츠의 정치신학이 지닌 맥락적 성격과 관련해서 그의 신학이 남미의 해방신학(메츠 역시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을 비롯해 이른바 제3세계 신학 토착화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메츠의 정치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신학적 해석학의 수단을 해방하는 기억의 서사에서 찾았기에 '요청적 성격'을 지닌 신학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은 기억과 서사를 통해 전승되고, 서사의 기억은 전승의 실천을 통해 역사적으로 매개된다는 점에서 폐기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역사적 자기계시가 다만 서사의 기억만으로 만족스럽게 보증될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적 문제에 있어서는 비판적 성찰이 불가피하다. 메츠의 정치신학이 지닌 근본 문제는 서사적 매개와 논증적인 성찰을 뒤섞어 놓았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메츠의 정치신학에서 철학과 신학의 긴장은 서로 차별화되지 않은 채 '신학적으로' 용해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성격 규정에 앞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메츠의 정치신학은 근본적으로 '예언자적이고 신비적인 얼굴'을 지녔다는 점이다. 특히 하느님을 향한 깊은 열정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예민하게 읽고, 인류의 고난 역사를 껴안고 씨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외에도 메츠의 정치신학이 고통당하는 타자를 위한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고 타자와 그 타자성을 존중하는 인정의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의 신학에 큰 자극과 영감을 제공한다. 모든 인간을 주체적인 존재로 호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복음을 신학적 사유 중심에 두고, 이를 역사와 사회의 맥락과 관계 속에서 해명한 정치신학의 기획은 언제나 유효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cpbc2013.10.22
![[가톨릭 문화산책]<33> 영화(7) '터치'- 생명을 살아가는 작은 숨결들](//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3157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영화(7) '터치'- 생명을 살아가는 작은 숨결들흔들리는 인간 마음을 터치하는 '그 손길' 터치(Touch, 2012) 감독 : 민병훈 상영시간 : 100분 장르 : 드라마 등급 : 18세 이상 몇 년째 자살률이 부동의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2011년 서울시에서 자살한 사람은 2722명으로, 하루 평균 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3시간마다 1명이 자살한 셈이다. 너무 빈번해 이제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면 보도도 되지 않는다. 민병훈(바오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그날그날 세상을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의 낮고 작은 숨결이 모여 이룬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신의 영역이라면,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이런 메시지를 살리려고 애쓴, 소시민의 이야기 같은 영화 '터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국가대표 사격 선수를 지냈지만 점차 알코올 중독자가 된 후 모든 걸 잃고 중학교 사격코치를 하는 남편 동식(유준상)과 간병인 일을 하며 쪼들리는 삶이지만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아내 수원(김지영)의 이야기다. 수원은 병원 몰래 돈을 받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환자들을 무연고자로 속여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도 한다. 어느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동식은 코치 재계약 문제로 이사장이 주는 술을 어쩔 수 없이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하다가 자신이 가르치던 사격부 학생 채빈을 치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 뺑소니를 쳤다가 경찰에게 잡힌다. 동식의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원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환자의 끈질긴 성관계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돼 수원은 결국 병원에서 퇴출당한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수원은 딸 주미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고 수소문 끝에 낯선 집에서 주미를 발견하는데…. 민초들의 삶 영화의 첫 장면은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만신창이가 돼 흔들리는 들풀로 시작한다. 세파에 시달리며 가정을 지키는 소시민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장례미사를 드리는 성당 안 풍경이다. 검정색 포에 덮인 관, 아빠 품에 안긴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가 스쳐 가지만 수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사제는 강론을 계속한다. "…하지만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영혼 속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눈은 좀 더 밝아질 것입니다. 영혼 속 신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다면…." 강론은 영화의 흐름을 암시한다. 장례미사 도중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이 성당 밖으로 나와 고통스러워한다. 수원이 말을 건넨다. "어머님은 좋은 데로 가셨을 거예요." 그러나 아들의 질문은 날이 서 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때 뭔가 수원의 양심을 건드린다. 사랑과 용기의 영이 그녀를 터치한 것이다. 수원은 몰려오는 피곤을 감수하며 간병 일에 힘을 소진한다. 먹고 살기 위해 불법 의료행위까지 하며 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래서 수원은 자신에게 불신의 눈길을 던지는 사제나 수녀의 눈길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그녀의 긴장된 삶을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핸드 헬드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며 따라가는데, 이들 장면 속에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거나 이웃을 괴롭혀 상처를 주지 못하는 수원의 착한 심성과 강인함의 양면성을 겹쳐서 보여준다. 그녀는 간신히 남편을 출옥시킨 뒤 노인 복지센터를 그만둔다. 동식이 사격코치를 하던 부유한 집안 여학생 채빈은 자신의 속옷을 훔쳐 달아나는 남학생(장정원)을 사격용 총으로 쏜다. 정원이는 폐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달동네 학생이다. 동식은 정원이를 쏜 채빈의 뺨을 때리며 야단친다. "빈총이라도 사람에겐 겨누지 않는다." 수원의 노력으로 출옥한 동식은 사냥 포수로 돈벌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덫에 걸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사슴을 보며 생명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동식은 두려움과 신비로움의 체험을 사슴이라는 상징을 통해 하느님 영에 터치된다. 인간의 쓰러짐은 인간적인 것이고, 다시 일어섬은 신적인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찾아온 희망 주미의 행방불명을 알게 된 수원은 절규하며 딸을 찾아 나선다. 그때 딸의 생일선물 인형을 매달고 가는 남학생을 미행한다. 학생이 다다른 가난한 달동네 정원이의 집 벽장에서 주미를 발견한 수원은 두려움과 분노 속에 도망치듯 딸을 끌고 나온다. 그때 방바닥에서 방치된 한 여인을 본다. 더러운 오물 냄새 속에 다리가 썩어가는 여인의 꺼져가는 신음 소리가 수원의 양심을 건드린다. 그때 성당 마당에서 본 사슴이 떠오른다. 수원은 자신의 마음을 터치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그 여인을 찾아간다.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어두운 방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살은 수원과 그녀를 비춘다. 어쩌면 우리 영혼 속에 깃들고 싶어 하는 하느님 빛의 초대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 죽음이 임박한 듯한 여인을 위해 수원은 주민센터도 찾아가고 병원 응급실도 찾아가지만 관료적인 그들의 태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수원은 소리친다. "그럼, 돈 없으면 치료도 받지 말라는 건가요?" 이 말은 사회에 던지는 절규다. 마지막으로 가톨릭노인복지센터에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그러나 그동안 수원이 저지른 거짓에 속아온 사제는 그 여인의 입원을 거절한다. 수원은 가슴을 에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직접 여인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아주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한다. 절망의 순간에 양심을 건드리는 하느님! 수원은 자신이 생명도, 죽음도 책임질 수 없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이때 죽음에 임박한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수원의 볼을 조용히 건드린다. 그를 위해 애쓰는 수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터치다. 그때 요양원 구급차가 도착한다. 요양원에 도착한 여인은 세례를 상징하는 물속에 잠긴다. 그동안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씻긴 것이다. 수원은 그의 손을 잡아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인은 아들 정원을 보살펴줄 것을 수원에게 부탁한다. 그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은은한 성가를 뒤로한 채 수원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밤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 한편 동식은 채빈의 사격 성공에 환성을 지르며 또 술을 마신다. 취중에 교통사고로 쓰러진 아이를 총으로 쏜 동식은 갓길에 쓰러진다. 아침 햇살이 동식이의 어깨를 환히 비춘다. 잠을 깬 동식은 몽롱한 눈으로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에게 생명의 경외감을 안겨준 사슴이다. 햇살은 동식의 눈과 사슴의 눈을 강하게 비춘다. 동식은 생명을 죽인 죄책감에 오열한다. 지친 몸으로 돌아온 수원을 밝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비추고 수원 손에 들려진 생일 선물 인형이 클로즈업된다. 그때 원장신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잘 들어갔니? 방금 자매님이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안나야, 고생했다. 정말 수고했다. 편히 쉬거라." 수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불편함을 주는 영화 러시아에서 영화 공부를 한 민병훈 감독의 작품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연출기법처럼 담백하고 함축적이다. 이 영화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사유하게 하고, 곱씹으면서 깊은 의미를 끌어내게 한다. 영화 '터치'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어둔 현실의 갖가지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영화이기에 재미로 감상하기에는 무겁고 감상하기 힘든 영화다. 이 영화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터치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성찰적 예술성이 강한 작품이다. 그룹대화 1. 오늘을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2. 이 영화에서 터치 받은 것은 무엇인가? 3.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터치한다고 생각하는가? 성경구절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이복순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cpbc2013.09.10
![[가톨릭 문화산책]<34> 건축(7) 세례당과 세례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자리](//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4992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7) 세례당과 세례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자리씻음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특별한 장소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 세례대. 건축물과 특별히 관계가 깊은 세 성사는 성체성사, 고해성사, 세례성사다. 성체성사를 제외하면 건축적으로 가장 많은 고려를 해야 하는 성사가 세례성사다.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라면, 세례성사는 첫 번째 성사이며 근본적인 성사다. 물론 오늘날에는 세례당이나 세례반을 어디에 둬야 하고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률적인 규정은 없다. 그렇지만 세례당이나 세례반은 성당의 중요한 초점이며 도상(圖像)이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는 징표이며 교회 일원이 되는 문이다. 그래서 세례당이나 세례대는 성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많이 놓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이 첫 세례성사였듯이 우리는 세례대를 지나 성당에 들어간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세례대 덮개는 대성당 형태를 하고 있고 그 위에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다. 이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아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세례당과 세례반 우리가 쉽게 잘 구별하지 못하고 쓰는 용어가 세례반(洗禮盤)과 세례대(洗禮臺)다. 세례반은 욕조처럼 바닥을 내려서 만든 것이고, 세례대는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성수를 담는 그릇을 올려놓은 것이다. 영어로는 모두 'baptismal font'(piscina)이다. 비교적 큰 세례반에는 흔히 물 안에 들어가기 위한 계단과 물에서 나오기 위한 계단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죽음과 부활을 나타낸다. 세례반이 낙원과 관련된 도상으로 장식돼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성수대(aqua benedicta fontana)는 신자들이 마귀를 쫓는 의식으로 손에 찍어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할 때 쓰는 성수를 담아 성당 입구에 놓아두는 그릇이 받침 위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세례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니 잘 구분해야 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반이나 세례대가 없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신 것을 연상하기 위해 자연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담가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세례반 속에서 몸을 담게 해 세례를 주었으므로 세례반도 상당히 컸다. 이때 세례반에는 어른용과 유아용 두 가지가 있었는데, 어른용은 바닥보다 낮게 하고, 유아용은 바닥보다 약간 높게 해 영세자가 쉽게 몸을 담그거나 머리에 물을 붓기 쉽게 했다. 초기의 세례반은 사방 2m이고 바닥이 대략 70㎝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서 있으면 넓적다리까지 잠기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가슴까지 잠겼다. 세례는 기본적으로 장소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많은 성당에는 전용 세례 영역, 곧 독립한 세례당(洗禮堂, baptistery)이 있었다. 세례당은 세례반을 둘러싸는 독립된 중심형 구조물이다. 세례당이 따로 독립해 지어졌다는 것은 당시에 세례성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준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모든 세례대는 세례성사의 면모,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많은 교회에서는 세례대가 별도의 방이나 경당 또는 교회 내부의 독립적인 공간에 설치됐다. 오래된 세례당의 대부분은 성인 세례 지원자를 많이 수용하는 독립된 건축물로 돼 있었다. 세례당이 따로 있는 성당에서 세례반은 세례당에 설치됐지만 보통은 성당 안에 설치됐다. 또 어떤 세례당은 남녀를 구별하기 위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며, 간혹 남녀를 구별하려고 두 개의 세례당을 지은 경우도 있다. 성인 신자라도 자신의 탄생을 재현하기 위해 벌거벗은 몸으로 세례를 받는 수가 많았다. 세례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했다. 일부 도시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을 정도였으므로 세례당은 눈에 잘 보이게 설계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주교가 모든 세례 지원자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것도 1년에 3번뿐이었다. 세례가 없는 몇 달 동안은 세례의 정통성을 위해 세례당의 문이 주교의 인장으로 봉해져 있었다. 따라서 세례당은 그리스도교 초기 수 세기에는 도시 중심부의 주교좌 성당에만 있었고 교구 성당에는 없었다. 여행하다가 이런 세례당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공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이었음을 기억해 둬야 한다. 세례당은 씻음을 상징하는 로마의 공중 목욕탕과 죽음을 상징하는 영묘(mausoleum)라는 당시 두 개의 중심형 건물 유형을 본떴다. 이스라엘 쉬브타(Shivta)에 있던 성당의 십자형 세례반(5세기)처럼, 세례반은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는 것이므로 대개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특히 초기 세례반은 사각형이었으나, 유명한 사탑이 있는 피사 대성당의 왼쪽에 있는 거대한 원형 세례당처럼 원형은 삼위일체와 다시 태어남(요한 3,3)을 나타냈고, 6각형은 일주일의 여섯 번째인 금요일과 아담이 창조된 날에서 오는 죽음을 나타냈다. 세례당에는 8각형 평면이 많았다. 그것은 '창세의 7일간' 다음의 시간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일주일의 첫날, 곧 구약의 7일로 이뤄진 일주일을 지나 제8일에 부활하셨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8각형의 세례당은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영적인 미래를 나타냈다. 로마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있는 세례당은 5세기에 지어진 첫 번째 세례당으로, 많은 세례당이 이것을 모델로 했다. 3개의 단을 두어 세례반에 내려가며, 세례반의 물은 자연의 샘물에서 받았다. 위에는 금이나 은으로 된 비둘기가 매달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밖에서는 정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야 8각형으로 보이는 것도 있고 12각형 또는 원형인 세례당도 있다. 세례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유럽의 모든 성당에는 세례를 위한 세례대가 있다. 세례를 위해 축성된 물이 세례를 받는 사람의 이마나 머리 위에 부어질 때 세례대 안으로 흘러내리게 된다. 12세기의 세례반은 유아의 온몸을 물에 담그기 위해 8각형이 아닌 긴 사각형으로 돼 있었다. 세례반 밑에는 세례에 사용된 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배수관이 연결 돼 있다. 이 물은 성별된 거룩한 물이므로, 땅속에 마련된 특별한 구멍에 직접 흐르게 했다. 일반적으로 세례대에는 정교하게 장식을 했으며 예술성이 풍부한 덮개가 있었다. 세례대는 작으면서도 세련된 상징으로 장식돼 있는 것이 많으므로, 성당을 찾아갈 때에는 반드시 이것을 자세히 봐야 한다. 유럽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자 성인 영세자가 줄어들었다. 7세기 무렵에는 성인세례 대신에 유아세례가 일반화되면서 따로 떨어진 큰 세례당이나 세례반을 둘 필요가 없어지고, 세례반도 유아 한 사람을 물에 담글 정도까지 작아졌다. 또 어린이는 세례대 위로 들어 올려 물을 부었고, 어른은 세례대 위로 허리를 굽힐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적은 물을 영세자 머리에 붓게 되면서 세례반도 점차 축소됐고, 받침을 둔 세례대가 생겼다. 그러자 세례대는 점차 성당 안에 자리잡게 됐다. 그렇지만 이 세례대의 중요성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 닫집(cibirium)을 그 위에 덮거나 덮개를 장대하게 장식했다. 중세 성당의 세례대에 있는 목재 덮개는 세례용 성수를 먼지 같은 것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조각을 새긴 덮개를 위에 매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넓은 성당 안에서 세례대의 존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례반을 강조하는 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미국 유타 주 솔트 레이크 시티의 막달레나 대성당의 세례반(1991년)은 침례라는 오랜 전통을 살린 것이며, 성경에 나오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상의 도시를 상기시겼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어떤 성당의 경우에는 무려 3만 8000ℓ의 용량을 가진 세례반을 만든 경우도 있다. 이 세례반은 천연석을 촘촘하게 깔아 호수나 강에서 세례를 받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고, 원시 그리스도교의 소박한 세례를 상기시키기 위해 건축적인 상징을 쓰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성당은 어떤가? 우리의 성당에는 세례당도 없고 세례반, 세례대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시대가 바뀌고 방식이 바뀌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세례성사를 위해 세례당까지 따로 지었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세례반이나 세례대에 담겨 있는 본원적인 의미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세례성사에서는 적어도 주전자로 머리에 성수를 붓고 이를 플라스틱 용기로 받아내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대신할 오늘날의 세례대와 세례반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야 한다.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cpbc2013.09.24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7. 주님 세례 축일](//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7387_1.0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7. 주님 세례 축일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명의 시작"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제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수락하시고 시작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사진은 색유리화로 표현한 예수님의 세례 장면. [CNS 자료사진]◇살펴봅시다 ㉠예수님의 세례(535~6, 1223~4항) :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요한 세례자는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해 파견된 주님 직전의 선구자입니다. 요한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자청하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이 행위는 당신의 '비우심'을 나타냅니다. 강생 곧 거룩한 성탄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아들이 자신을 낮추고 비워 사람이 되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한 점의 죄도 없는 거룩한 분이시지만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비우신 것입니다. 이는 죄인인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따라서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된 '고난받는 종'(이사 53장 참조)이라는 당신 사명을 수락하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명은 "죽음의 '세례'"(536항)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겪으셔야 할 일 곧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당신이 받아야 할 '세례'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10,38 참조). 이 죽음의 세례는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 수난을 겪고 죽어야 한다는 아버지 뜻을 수락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수락에 성부께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소리로 화답하십니다. 또 성령께서는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어 머무르십니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고 성령께서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자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는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와 마찬가지로 '주님 공현'입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3,21)고 전합니다. 아담의 죄로 닫혔던 하늘이 예수님의 세례로 다시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따라서 "새로운 창조의 서막"(536항)이기도 합니다. ◇알아둡시다 ㉠세례의 예표(1217~1222항)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약에서부터 이 세례의 예표(豫表)를 여러 가지로 보여줍니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홍수와 노아 방주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 덕분에 홍수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홍수를 통하여, 죄를 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주셨나이다."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 또한 세례로 이뤄지는 해방을 예고합니다. 교회는 부활 성야 때에 세례수를 축복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홍해를 건너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세례 받은 새 백성의 예표로 삼으셨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것 또한 세례의 예표입니다.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된 땅을 선물로 받는데, 이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이 복된 상속의 약속은 새 계약 안에서 성취된다"(122항).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약의 예표(1223~1225항) : 구약의 이 세례 예표들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취됩니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파스카 신비, 곧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해서 죄에 죽고 생명으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의 샘'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주십니다. 성경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병사가 찌르자 "곧 피와 물이 나왔다"(요한 19,34)고 전하는데, 교회는 물과 피가 "새로운 생명의 성사들인 세례와 성체성사의 예형"(1225항)이라고 봅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태 28,19)고 분부하십니다. ㉢교회 안의 세례(1226~1228항) : 그리스도의 이 명령에 따라 교회는 오순절 그날부터 거룩한 세례를 거행하고 베풀어왔습니다. 이 세례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결부돼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사도 2,38). 이렇게 믿는 이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다.' 성령을 통하여, 세례는 깨끗하게 해주고 거룩하게 해주고 의롭게 해주는 목욕이다"(2227항).◇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로써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겪으셨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내려오셨고 아버지께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공생활의 중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는 것,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떠한지요? '내 사랑하는 아들 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딸'로서 살고 있는지요?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1.08
![[아! 어쩌나] 201. 풍랑 속의 영혼들](//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26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201. 풍랑 속의 영혼들 Q. 루카복음 8장 22절을 보면 주님께서 풍랑 속에서 주무시면서 마치 제자들을 시험하시려는 듯한 느낌을 주는 행동을 하십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왠지 주님께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일부러 제자들을 조롱하듯 시험하신 것일까'하는 불편한 생각 때문에 이 복음을 묵상하기를 일부러 피할 정도입니다. 성당 선배 신자 분들에게 이런 제 생각을 말했더니 "그것은 불경죄에 해당된다"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자들이 조롱당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문제가 있나요? A. 루카복음 해당 구절에는 주님과 제자들의 미묘한 감정이 잘 묘사돼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가서 흔들어 깨우며 '선생님,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다 어떻게 되었느냐?'하시며 책망하셨다. 그들은 두렵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데 바람과 물결까지도 그 명령에 복종하는가?'하고 서로 수군거렸다"(루카 8,22-25). 얼핏 보면 주님께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모른 체하시다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은 성장심리 관점, 생존심리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선 제자들은 평범한 신앙인들이 역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음에 임박했을 정도로 위기의식을 느끼자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겸손함을 보입니다. 즉, 자신의 힘과 머리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을 내려놓고 주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그게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려운 일, 앞날이 캄캄할 정도로 힘겨운 일이 닥쳤을 때는 대부분 기도하지 않고, 불안한 생각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머리로 해결하려고 하다 결국은 좁은 늪과 같은 불안감에 빠져 심리적 질식사를 당하곤 합니다. 평소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에 반해 제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낮은 자의 겸손함을 보입니다. 또 제자들은 주님을 부를 때 혼자 하지 않고 함께 몰려가 도움을 청하는 기도의 자세를 보입니다. 자폐 성향이 있는 사람 혹은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일이 잘 해결이 안 되면 극단적 방법으로 자기 파괴적인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럿이 함께 가서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건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회는 여럿이 모여 하는 미사야말로 기도 중의 기도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제자들 모습은 '미사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해 시범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조용히 깨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화를 내든 말든 소리치면서 주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죽게 됐는데 왜 책임 있게 대응하지 않느냐고 주님을 몰아세우는 듯한 말을 합니다. 많은 분이 청원기도를 할 때 '내가 죄를 많이 지었는데,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는 의문과 갈등을 품고 기도합니다. 소위 이것을 신경증적 기도, 눈치꾸러기 기도라고 하지요. 이러한 기도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기에 기도 결과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의 불안함을 떨어버리려는 의도와 확실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의도로 주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청합니다. 바로 신앙인들이 본받을 만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했을까요? 만약 당신을 흔들어 깨운 사람들이 제자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당신의 대를 이을 사람들,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미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르침을 주었고, 기적을 목격하게 해준 제자들이 위기에 닥치자 어린아이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시고, 공동체 책임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병자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의지처로 내어주시고 치유자 역할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 뒤를 이어 수많은 사람의 정신적 지도자가 돼야 할 제자들에게는 엄격한 내적 훈련, 역경 속에서도 잘 버티는 훈련, 즉 특수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님은 주님의 이러한 깊은 뜻을 잘 이해하며 성경을 읽어야 왜곡된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cpbc2013.05.14
![[성경 속 궁금증] (5) 유다인은 왜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나?](//cpbc.co.kr/CMS/newspaper/2011/09/rc/388989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5) 유다인은 왜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나?순수 혈통 보존 못했기 때문유다인들은 혼혈민족이라는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했다.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착한 사마리아인'(1890년).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땅 제일 북쪽에는 갈릴래아가 있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 지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북쪽 갈릴래아에서 남쪽 유다 지역으로 가는데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면 사흘밖에 걸리지 않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요르단 강을 건너 두 배나 되는 먼 길을 돌아다녔다.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대화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방인 지역이라 알고 있는 사마리아 지역도 본래는 유다인들 땅이었다. 사마리아인들도 이스라엘 중부 팔레스티나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어쩌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그토록 적대시하게 됐을까. 본래는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됐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으며, 오늘날 북이스라엘을 부르는 통칭이기도 하다. 사마리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교통 요지였으며, 주변 평지보다 100m 정도 솟아오른 해발 430m에 있는 천혜의 요새 도시였다. 또 왕궁을 상아로 꾸미고 값비싼 향유를 맘껏 쓸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아모 6,4-6). 이러한 사마리아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에 점령당한다. 아시리아는 타민족 정복정책으로 정복한 민족의 씨를 말려버리는 정책을 사용했는데, 그 방법으로 타민족과 혼인, 즉 혼종(混種)정책을 썼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한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 유다인들 일부를 자기들이 정복한 타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타정복지 민족들을 북이스라엘로 이주시켜 서로 혼인하게 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순수한 혈통 유다인들은 자취를 감추고, 예수님 시대 이방인이라 일컬어지던 혼혈민족 사마리아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순수한 혈통을 지닌 유다인들은 남쪽 유다왕국 후손들뿐이었다. 이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약속받은 땅을 공유하는 자신들 민족으로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을 심지어 '개 같은 놈'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천대했다(요한 4,1-42). 사마리아인들 역시 아시리아 임금 보호를 받으며 나라를 유지한 유다왕국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이방인처럼 대하자 원한을 품었고, 결국 유다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원수지간처럼 지내게 됐다. 그러다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도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고, 유다인들은 유배 후 반세기만에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당시 예루살렘은 성벽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폐허가 된 도시였다. 귀향한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성전 재건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도 성전 건설 작업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거룩한 성전 건설 작업에 함께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사건으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놓인 적개심의 골은 더 깊어졌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을 계속 적대시했고,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미친 백성, 비열한 백성으로 철저히 무시하고 천대했다. 이러한 관계가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1.09.06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5대 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 축복식-이모저모수도회 쇄신과 새로운 선교사명으로 이끌 지도자 맞아 20일 거행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5대 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 축복식은 베네딕도회다운 수도생활 쇄신을 통해 새로운 노래를 부르며 선교사명에 투신하겠다는 전 회원들의 일치된 다짐의 자리였다. 동시에 제5대 덕원 자치 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직 승계 승인 발표를 통해 1949년 5월 폐쇄된 덕원 자치 수도원구와 함께 연길교구에 대한 깊은 연대를 표명한 자리였다.주례주교인 조환길 대주교와 이형우 아빠스의 안내를 받아 공동집전 사제석의 첫 자리에 선 박현동 아빠스.덕원 자치구장 서리직 승계 ○…말씀전례 후 열린 축복예식은 본원장 김종필 신부가 지난 5월 7일 선출된 박 신임 아빠스를 주례인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에게 소개하고 덕원 자치 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 승계 승인 공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개막. 교황청은 이 공문에서 2005년 왜관수도원 장상이 덕원 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직을 당연 승계토록 한 바 있어 박 아빠스는 5월 7일 선출과 동시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승인을 받아 서리직을 승계, 한국 주교회의에 정식회원으로 참가하게 됐음을 선포. 이어 박 아빠스는 조 대주교 앞에서 교회법과 수도규칙에 명시된 장상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서약하고, 수도형제들과 사제단, 주교단, 평신도 등 1500여 명이 성인호칭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제대 앞에 엎드려 천상 교회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왜관수도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서, 덕원 자치 수도원구를 책임진 사목자로서 참된 수도생활의 여정을 걸어갈 것을 다짐.수도형제들과 일일이 평화의 인사 ○…조 대주교는 축복예식의 절정인 축복기도를 통해 새 아빠스에게 장상직 수행에 필요한 지혜와 열정, 사랑을 내려주실 것을 하느님께 간구한 후 사부 성 베네딕토의 가르침이 담긴 수도규칙을 수여하고 중용의 정신과 분별의 지혜로 수도형제들을 돌볼 것을 당부. 또 성 베네딕도회 아빠스들이 사도좌 특전으로 11세기부터 주교 복장을 착용해온 관례에 따라 박 아빠스에게 수도공동체와의 신의를 표시하는 반지와 교회 상급 장상임을 표시하는 모관을 수여. 전임 수도원장인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도 목자의 책임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박 아빠스에게 물려주고 포옹. 축복예식은 박 아빠스가 조 대주교를 비롯해 함께한 주교단 20여 명 및 사제단 80여 명, 수도형제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끝나고, 계속해서 성찬전례가 거행됐다. 수도원 최고령자 이석철(미카엘) 수사와 막내 문정재(베드로) 지원형제, 박 아빠스의 부친 박팔수(암브로시오, 70)씨와 모친 김순연(데레사, 69)씨는 전례에 쓰일 제병과 포도주를 봉헌. 수도원의 밑거름으로 ○…미사에 이은 축하식은 왜관본당 순심유치원생들이 박 아빠스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 아빠스의 출신 본당인 대구대교구 울릉도 도동본당 사목회 김영윤(아나니아, 55) 부회장은 도동본당 신자들의 영적 선물을 담은 기념패를 증정. 축복식은 젊은 수도형제들이 새 아빠스를 모신 기쁨을 시편 23편을 모티브로 삼아 더글라스 놀만 곡 '목자의 노래'에 담아 노래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 「분도통사」를 집필한 요한네스 마르(72)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종신교수는 축사에서 "덕원과 연길수도원 순교자들의 빛으로부터 큰 힘은 받은 왜관수도원은 앞으로도 지역 교회 안에서 선교 베네딕도회로서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재단사무국장 유영희(막달레나) 수녀도 "신임 아빠스님의 인간적 풍요로움과 포용력, 훌륭한 성품이 선교베네딕도회로서 왜관수도원이 제 역할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박현동 아빠스가 걸어온 길 울릉도 '섬 소년'이 아빠스가 됐다. '영적 스승 내지 아버지, 지도자'를 뜻하는 아빠스직을 맡게 된 박현동 신임 아빠스는 197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44세에 불과하다. 젊은 만큼 '새로운 노래'가 기대된다. 1992년 1월 왜관수도원에 입회하기까지 박 아빠스는 경북대 응용화학과를 다니며 아마추어 무선통신에 취미를 둔 평범한 공학도였다. 대학시절 대구 대명동성당에서 주일학고 교리교사를 지냈는데, 그곳에서 성소를 느꼈다. 한국 인권 운동의 대부 허창수(본명 Herbert Erich Wottawah) 신부, 평생을 성경과 수도생활 강의와 피정 지도, 수도자 양성에 바친 진문도(Joseph Wilhelm Timpte) 신부 등이 삶의 모범으로 그에게 성소의 씨앗을 뿌린 것. 왜관수도원을 찾자마자 '여기가 내가 살 곳이구나' 싶었을 만큼 수도회에 반한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수도자의 길을 걷는다. 1997년에 첫 서원을, 2001년 종신서원을 하고 그해 10월 사제품을 받은 박 아빠스는 6년간 비서와 청ㆍ지원장으로 재임했다. 1996년엔 수도회 봉쇄구역을 소개하려는 취지로 웹사이트를 만들어 한국 가톨릭단체로는 최초로 인터넷 누리방을 개설하기도 했다. 대기업도 누리방을 안 만들 때였다. 이어 로마로 유학을 떠난 그는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에서 교회론을 전공했으며, 수도회 요청에 따라 시복시성청원인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유학 이전까지만 해도 '일 중독자'였던 그는 로마 성 안셀모수도원에 살며, 또 방학이면 유럽 각국 수도원으로 다니며 수도생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2007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830㎞ 순례여정은 그를 수도자적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2011년 귀국한 박 아빠스는 대수도원장 피선 직전까지 왜관수도원 수련장과 유기서원자 책임자, 시복시성 위원을 맡았고,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평의원과 시복시성 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한국 남자수도회 장상협의회 수련자교육전문위원장도 지냈다. 한국 베네딕도회의 새 영적 아버지로서 박 아빠스는 왜관수도원이 '영적 오아시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또 소임보다는 수도생활에 집중하자는 이덕근(1985~95년 재임) 아빠스 이래의 수도생활운동의 결실을 거두겠다고 한다. 나아가 '경청하는 아빠스'로서 회원들의 중지를 모아 사부 성 베네딕토의 영성을 전파하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오세택 기자 cpbc2013.06.25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8·끝>요한서간·요한묵시록](//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89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요한서간·요한묵시록요한서간- 베드로 수위권 받아들여 공동체 내 갈등 극복, 요한 묵시록- 환시 통해 말씀 기록하며 구원의 희망 표현사진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셨다는 곳에 지어진 갈릴래아 베드로 수위권 기념 성당. 평화신문 자료사진 ▨요한서간 사랑에 대한 계명은 요한복음과 요한서간을 관통하는 근원적 주제다. 요한 공동체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요한서간에 나타난 문제를 알아야 한다. 요한서간에는 반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세 가지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올바른 그리스도 신앙을 왜곡하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와 인간 예수를 구분한다. 요한의 첫째서간은 이들을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요한의 첫째서간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이들을 경계하라고 쓴 편지다. 문제는 요한 공동체는 교계제도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한 공동체는 예수님과의 직접적 친교 안에서 저마다 성령을 안내자로 삼아 독립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였다. 요한의 셋째서간은 디오트레페스라는 인물을 거명하면서, 디오트레페스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디오트레페스와 요한서간의 저자 요한 원로 사이에 교의적인 문제에 대한 갈등은 없다. 디오트레페스가 주도권을 갖고 우두머리 행세를 하려는 것이 쟁점이 됐다. 디오트레페스는 요한 공동체에서 성령을 모시고 스스로 성령 안에서 올바른 식별을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거부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거부하고, 성령만 유일한 스승이라고 고집하는 분리주의자 문제와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는 디오트레페스라는 사람으로 인한 갈등이 요한 공동체 안에 드러나게 됐다. 과연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을까. 이를 요한복음 21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21장은 부록이다. 요한복음은 본래 20장으로 끝난다. 21장은 요한의 첫째ㆍ둘째ㆍ셋째서간 모두 작성된 다음 최종적으로 첨가됐다. 요한 공동체가 겪고 있는 이단의 문제, 새 우두머리로 등장하는 디오트레페스에 대해 요한 공동체는 21장을 제시하고 있다. 요한복음 21장 내용은 두 가지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발현하시는 것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목권을 부여하시는 이야기다. 요한 21장에서 결정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는 대목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을 뒤집어서 질문하시고는,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하고 사목권한을 베드로에게 부여하신다. 요한복음은 20장까지 베드로에게 주어진 수위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질문하며 당신 양들을 맡기신다는 이야기를 21장에 넣은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요한 공동체는 그동안 지도자 없이 성령 안에서 저마다 신비한 방식으로 예수님과 일치하며 살았는데 이단 문제가 발생하고,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요한 공동체에도 지도체제가 필요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부여하신 보편적 목자의 권한을 요한 공동체가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의 수위권이 최종적으로 요한복음 21장에 첨가된 것이다. 요한의 문헌은 요한복음 21장을 첨가함으로써 완성됐다. 요한 공동체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의 영적 지도력을 계승하고 있다. 베드로의 보편적인 사목권한을 수용하면서 요한 공동체는 보편교회 안에 통합됐다. 요한 공동체에 싹튼 이단적인 움직임을 단죄할 수 있고, 보편교회 안에서 요한 공동체가 받은 심오한 계시 진리를 나눌 수가 있게 됐다. ▨요한 묵시록 환시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보고 듣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묵시록이다. 순교자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보상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새롭게 해주시리라는 희망이 표현된 것이 묵시문학이다. 요한 묵시록 배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 치하에서 박해를 받고 있을 때다. 묵시록은 도미티아누스 치세 말엽(92~95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한다. 묵시록은 로마 제국 하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고난을 겪는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고 마침내 사탄을 암시하는 용과 같은 존재들이 영원히 파멸돼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러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영원한 생명을 노래한다. 문제는 묵시록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있었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는 없었다. 60년대 네로 박해를 회상하며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묵시록이 박해 상황을 묘사하고, 구원의 시간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 이유는 로마 제국주의로 대표되는 악의 세력에 저항하려는 의식 때문이다. 1세기 말 소아시아와 유럽은 평화로웠다. 로마 황제는 제국을 지배하면서 유연한 정책을 썼다. 자율성과 지역특수성을 허용하면서 로마 제국에 대해 각을 세우게 하는 정책은 가급적 피했다. 그런데 에페소 주변의 소아시아에서는 지방 귀족들이 황제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황제 숭배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황제 숭배 사상에 대해 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저항한다. 요한 묵시록은 사탄의 도구로 전락한 제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요한 묵시록은 각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게 한다. 묵시록은 선교의 완성이자 신앙의 최고 증언이다. 요한 묵시록은 말씀의 사회적 육화를 가장 치열하게 추구한 묵시문학이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 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퇴사자2201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