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대 복음화 열기, 캠퍼스 달군다'유턴 투 갓' 운동… 전년대비 세례자 수 두 배 증가가톨릭대 학생들이 4일 세례를 받고 있다 가톨릭대학교(총장 박영식 신부)의 복음화 열기가 뜨겁다. 가톨릭대가 4일 봉헌한 세례미사에서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85명(교직원 11명 학생74명). 지난해(교직원 11명, 학생 38명)와 비교하면 세례받은 학생 수가거의 두 배가 늘어난 셈이다. 이는 올해부터 학교가 교목실을 중심으로 '유턴 투 갓(U-turn to God)'을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학내 복음화를 위해 활동한 결과다. '유턴 투 갓'은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뜻으로, 학생들이 일상에서 쉽게 하느님을 접해 신자들에게는 신앙심을 고취하고, 미신자는 하느님을 익숙해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주일미사 참례, 아침ㆍ저녁 기도 생활화, 성경 곁에 두고 읽기 등 평소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 영적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학생 1000여 명이 생활하는 기숙사에는 방마다 성경을 비치해,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3년 전 한 방당 성경 한 권씩을 배치해뒀던 학교는 교수 기부금, 레지오마리애 단원 후원금으로 이번 성탄절에는 1인 1권에 해당하는 1000권을 갖출 예정이다.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답게, 미신자들도 자연스럽게 가톨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도 가톨릭대만의 장점이다. 학내 신자 비율이 30%대일 정도로 높은 데다가, 가톨릭 학생회 '소피바라', 복사단 '첼룸',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 전례단 '주마다', 성가대 '아마빌레', 핸드벨 연주 동아리 '안젤루스 벨 콰이어', 청년성서모임 등 학교 내에서 활동 중인 공식 가톨릭 동아리만 7개다. 학교는 이들과 함께 '또래를 통한 선교'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캠퍼스 내에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미신자 학생들에게 가톨릭을 알리는 '선교의 날' 행사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많은 예비신자 학생들은 입교 동기로 '신자 친구의 신앙생활'와 '선교의 날'을 꼽는다. 새 신자에게는 성경 읽기 모임 참여를 장려해 더 깊이 있는 신앙을 접하도록 이끈다. 4일 세례를 받은 박준희(빈첸시오 드 폴, 종교학과, 19)군 역시 친구 권유로 입교하게 됐다. 박군은 "힘든 상황에 닥치더라도 기도로 꿋꿋이 이겨내는 친구들을 보며 '천주교인은 왜 다를까'하는 의문으로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됐다"며 "나 역시 신자로서 미신자 친구에게 모범을 보이는 방법으로 선교하겠다"고 다짐했다. 교목실장 정태영 신부는 학교 복음화의 목표를 '미평지'의 양성으로 설명했다. 예비신자들도 구호처럼 외고 다니는 이 말은 '미래 평신도 지도자'의 줄임말이다. 졸업 후 각자 전문분야로 진출한 뒤에도 '하느님을 아는 리더' '미래 교회를 이끌어갈 리더'를 길러 내자는 것이다. 정 신부는 "가톨릭대에서 '미평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신자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1.12.06
![[문화]작은 형제회 이종한 신부, 일반인 대상 성미술 강연 열어...](//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5773_1.0_titleImage_1.jpg)
[문화]작은 형제회 이종한 신부, 일반인 대상 성미술 강연 열어... 성미술 통해 신자들 영성 한층 풍요롭게18,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서성미술 통한 문화의 복음화 추구 풍경, 정물화에서도 주님과의 만남 가능평화방송 TV '영성의 향기' 방송 작은 형제회 이종한 신부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성미술 강연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일종의 '대중 강의'다. 자신의 수도명을 딴 '이요한 신부의 성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마련된 특강은 11일 첫 강연을 시작으로 18일, 25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성당에서 열린다. 굳이 따지자면 특강은 '복음의 문화화'이자 '문화의 복음화'다. 성미술을 통해 복음을 풀어내고, 복음을 문화화하며, 나아가 문화를 복음화하는 작업의 일환이다.올해로 작품 제작 500주년을 맞아 독일 드레스덴미술관에서 공개된 라파엘로 산치오의 1512년작 '식스토의 마돈나'를 설명하는 이종한 신부. 이 작품 제작을 기념해 바티칸과 독일 정부는 동시에 기념우표를 발간했으며, 드레스덴 미술관에는 이 그림을 보기 위해 관람객이 물밀듯 밀려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194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 살, 수도생활만도 50년이 다 돼가서인지(정확히 48년째) 무척이나 편안하고 푸근해 보이는 이 신부를 7일 작은 형제회 유기서원소인 서울 성북동 평화의 모후 수도원에서 만났다. 이 신부는 "신앙이 얼마나 멋스러운 것인지, 얼마나 사람을 상쾌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인지 성미술을 통해 전해주고 싶다"고 말문을 뗐다. 그래서 첫날인 11일엔 1강과 2강으로 '성화의 영성'과 '성화에 나타나는 예수님 모습의 변천사'를 다루고, 18일 3강과 4강은 '성화에 나타나는 성모님'과 '라파엘로 신치오의 마돈나 시스티나'를 조명한다. 25일 5강과 6강은 '일상 삶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성화'와 '빈센트 반 고호의 작품에 나타나는 크리스천 영성'을 살핀다. 작은 형제회 인터넷 누리방(www.ofm. or.kr/sacredpictureboard)과, 지난해 평화신문을 통해 독자들과 이미 성화를 소재로 한 나눔을 가져왔기에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이 신부의 성화 나눔은 사실 특별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또 다시 성미술 특강을 마련했을까. "하느님은 진선미의 근원이시지만, 교회는 그간 진(성서 등)이나 선(봉사 등)으로만 하느님을 전해 왔습니다. 다들 피곤하죠. 그런데 감성 체험인 미, 곧 성미술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체험한다면 얼마나 기쁨으로 다가올까 싶어 성미술을 풀어주는 작업을 해왔어요. 교리적 전달보다는 다른 방법으로도 신앙이 전달된다면, 이게 바로 감성 사목이 아니겠습니까? 성화를 보는 방법도 설명하고요. 인터넷도 많이 이용하다 보니 작은 형제회 누리방을 통해서도 성화 이야기 나눔을 갖게 됐습니다." 이 신부는 "성경 주제를 다룬 성미술만이 아니라 풍경화나 정물화를 통해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신앙을 미적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면 우리 시대의 지성인들을 영성적으로 한층 풍요롭게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신부는 "영국 런던에 있는 성공회 성 바오로 대성당에 가면 '인간은 자기 삶의 가장 좋은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며 바쳐왔다'고 쓰여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종교미술, 종교음악은 항상 최고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영성화된 부처님은 석굴암의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교회미술에 접목시키는 게 바로 우리나라 성미술의 토착화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신부의 세 차례 특강은 평화방송TV 프로그램 '영성의 향기'를 통해서도 방송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9.11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0593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모든 것을 아낌없이 봉헌하자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신을 묻을 때 그 입에 동전을 넣었다. 죽음의 바다를 건널 때 쓰라는 뱃삯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 어떤 화폐가 필요할까? 사랑(caritas)이다.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여정을 떠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큰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과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해외에서 도움을 받던 처지였다. 이제 어려운 나라를 돕는 나라와 교회가 됐다.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 어디서나 헌금을 원하고 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인 듯하다. #가난한 과부가 넣은 렙톤 두 닢의 가치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큰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은 선의보다는 자기에게 더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인 듯하다. 부자들 헌금은 보상을 위한 행동으로 보일 때가 많다. 헌금으로 하느님의 큰 복을 얻으려는 속셈이 있다고 생각하면 과장된 것일까. 성경은 부유함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사람은 그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 선물에 먼저 감사를 드릴 때, 선물의 목적이 이뤄진다. 불행하게도 부자의 문제는 그 선물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부자는 모든 것을 소유했다. 부자들 문제는 부유함이 아니라 하느님 강복의 뿌리를 잊고 사는 것이다. 복음은 강복에 감사하지 않으면 오만함으로 죄를 짓고, 결국 모든 것을 잃는 신세가 된다고 이야기한다(루카12,15-21). 부자들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받았다. 물질뿐 아니라 영적인 것도 받았다. 그런데 물질에 대한 원의와 열정은 뜨겁지만 나누는 영적인 모습은 미지근하게 보인다. 가난한 과부 헌금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릴 때 주님의 복을 받는다. 부자는 가난한 과부 마음을 배워야 한다. 구약에서 하느님 축복은 아브라함을 통해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졌다. 신약에서 하느님 축복은 물질적 부유함을 넘어 영적 부유함까지 말하고 있다. 사람이 소유하는 재산은 하느님 축복이다. 일하며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럼 소유하고 남는 것은 누구 재산이며, 필요한 재산과 남은 재산을 어떻게 구별할까? 성 바실리오는 "남는 재산은 우리 재산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게 속한 재산"이라고 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가난한 자에게 자선하는 돈은 이 세상의 은행에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세상으로 저금하는 것이며, 그곳에서 사랑으로 전달한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하늘나라에서 쓸 수 있는 돈 저축해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이탈리아 국영 텔레비전에서 조사한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자동차가 신호에 걸리면, 외국인 노동자가 서 있는 차의 앞유리를 재빨리 닦는다. 운전자는 그들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넨다. 그런데 동전이 가장 많이 걷힌 도시는 잘 사는 밀라노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폴리였다. 가난한 자가 봉헌하는 적은 헌금에는 하느님 축복을 진심으로 청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가난한 자의 헌금은 축복 자체인 듯하다. 러시아 옛 영성생활 지침서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가난한 이들이 도움을 청할 때, 십자가 징표를 보이시오. 가방에 손을 넣어 가난한 이웃에게 헌금하시오. 형제여,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축복하십니다. 하느님은 그대를 통해 당신과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를 주십니다. 그것을 받아가시오." 이슬람 사람들도 비슷하게 말한다. "알라께서 그대에게 축복하십니다. 당신의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시오." 렙톤 두 닢은 현재의 우리 돈 1500원 정도다. 시간을 돈에 비유한다. 사람이 노동으로 한 시간에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 매일 일거리를 찾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버스 기다리기, 승강기 앞에 서 있기, 사람 기다리기, 회의시간 기다리기. 시간이 돈이라면 이러한 시간은 돈가방에서 떨어져 나가는 동전인 셈이다. 이 모든 순간의 시간을 주워 모으자. 그리고 주님께 봉헌하자! 하느님의 보물함에 던져 헌금하자! 짧은 기도와 함께 버리는 시간을 영적으로 풍요롭게 저축하고 채우자. 그러면 얼마나 더 단순하고 귀중한 기도가 마음에서 나올까? 가난한 과부의 헌금과 같은 영적 풍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퇴사자22012.11.06
[아! 어쩌나?] (175) Q. 사람은 반드시 이름값을 해야 하는 건가요?Q. 사람은 반드시 이름값을 해야 하는 건가요? 부모님과 대화하다 보면 '이름값'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 사람은 이름값 하네' 혹은 '그 나이 되도록 이름값도 못하고 말이야'하면서 핀잔 같은 말씀도 하십니다. 이런 부모님 말씀을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제 마음 안에는 커다란 부담감이 생깁니다. '부모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려면 이름값을 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람은 반드시 이름값을 해야 사람 대접을 받는 것일까요? A.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이 없으면 사회에서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름은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인 동시에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은 값어치를 갖는 것입니다. 이름은 두 가지 가치를 지닙니다. 존재 가치와 기능적 가치가 그것입니다. 존재 가치란 이름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 가치를 말합니다. 기능적 가치란 그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했을 때만 부여되는 가치입니다. 소위 이름값이란 것은 기능적 가치의 관점에 있는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존재적 관점의 이름보다 기능적 관점의 이름값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받습니다.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든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등 말들은 무의식 중에 사람에게 지금 삶에 만족하지 말고 기능적 면에서 무엇인가 실적을 남겨야 한다는 압력이 됩니다. 그래서 작은 시골동네에서는 그 마을 출신 사람이 입신출세하면 동네 어귀에 플래카드를 걸어놓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능적 평가가 몸에 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마음 안에 이런 플래카드를 달아놓습니다. 그럼 이런 경향은 건강한 것일까요? 영성가들은 이 같은 모습이 병적 성향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합니다. 사람은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고, 그 마음 안에 나름대로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기능적 가치에만 집착해 사람의 이름을 평가한다면 각자가 지닌 전체성, 유일성의 가치는 꽃피우지 못한 채 주위 압력에만 밀려 살게 됩니다. 더불어 자기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허수아비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정원에 들어가면 수많은 꽃이 있고 꽃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정원에 비싸고 예쁜 꽃만 많이 심어야 수익이 난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정원지기가 정원 전체에 장미만 심고, 할미꽃과 민들레, 패랭이 같은 꽃은 뽑아 버린다면 정원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 정원은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해주는 곳이라기보다 꽃 생산 공장과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회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도움을 주는 터입니다. 그런 사회가 기능적 관점의 가치만 인정하는 풍토가 만연한 곳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회는 인간 사회가 아닌 기계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 마치 정원이 꽃 공장이 되듯 인간공장이 돼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풍토에서 기능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도태되거나 강제로 죽음의 길을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가 수많은 유다인을 학살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다인을 학살했던 폴란드 수용소를 가보면, 히틀러가 유다인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인 독일 사람들까지도 죽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량 민족인 독일인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기능성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을 제거한 것입니다. 기능적 관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사례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름값 문제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성경에 손님 시중을 들던 마르타가 주님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없는 마리아를 나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루카 10,8-42 참조). 이때 주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마르타야, 마르탸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마르타가 기능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는 우회적 충고를 하신 것입니다. 마르타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기능적인 면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형제님도 이름값을 생각하면서 전전긍긍할 일이 아니라 주님께 사랑받은 마리아처럼 형제님의 존재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늘 반가워하는 존재가 되려는 노력을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퇴사자22012.11.06

보고 만지고 느끼는...체험형 여름휴가 5>원주 용소막관광체험마을과 용소막성당고향 추억 되살리는 100년 교우촌도시에서 자란 아이들 태반이 벼를 '쌀나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벼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쌀도 다른 열매처럼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 농촌과 우리 농산물에 대한 어른들 무관심이 아이들에게 투영된 웃지 못할 일이었다. 시대가 변해 농촌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아이들이 황금 들녘에서 고개 숙이고 익어가는 벼를 보거나 뙤약볕 아래 여물어가는 옥수수를 따 볼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런 아이들을 농촌의 일상으로 초대하는 농촌체험마을이 있다. 흐르는 개울물에 발 담그고, 잘 익은 감자와 옥수수를 맛볼 수 있는 용소막관광체험마을과 그 중심에 자리한 용소막성당으로 떠난다. #다양한 농촌 체험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2리 용소막관광체험마을은 100년이 넘은 용소막성당이 있는 마을답게 주민 대부분이 신자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어르신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마을이 '관광ㆍ체험'이라는 이름을 걸고 농촌체험을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계절별로 다양한 농촌체험을 준비했다. 사계절 체험행사가 있지만, 여름에는 찰옥수수 따기와 감자캐기, 열무솎기를 할 수 있다. 혹자는 "이 무더위에 돈을 내고 사서 고생을 하란 말이냐"고 시큰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녀와 함께 땀 흘리며 우리 먹을거리를 수확하는 일은 농촌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가족 화합을 다지는 소중한 기회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도움도 되고 직접 수확한 농산물은 일정량 가져갈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농촌체험은 마을 소개로 시작된다. 용소막이 강원도 친환경 우수마을과 건강장수마을, 참 살기 좋은 마을로 선정된 설명도 듣고 마을 가운데 있는 용소막성당도 둘러볼 수 있다. "옥수수 대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옥수수를 돌려서 따면 됩니다." 조기화 이장의 마을 설명이 끝나자 옥수수 따기가 시작됐다. 햇볕을 가리려고 모자를 썼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땀이 쉴 새 없이 흐른다. 김연우(11)군은 "동네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옥수수가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따서 실어 보낸 것인줄 몰랐다"며 "올해는 폭염 탓에 예년보다 옥수수가 작다는 설명을 듣고나니 먹을 때 큰 것만 찾은 게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형철(45)씨는 "옥수수를 따며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을 들려줬다"며 "평소에 놀아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아빠와 체험이라는 선물을 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농촌이라고 농사체험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을 인근 개울에서, 혹은 커다란 떡메를 들고 한바탕 힘을 써야 하는 체험도 있다. 송어잡기와 떡메치기, 쟁기끌기다. 이 가운데 송어잡기가 단연 인기다. 양식장 송어를 하천에 풀어놓고 잡는 체험이지만, 송사리만 잡아 본 아이들에게 어른 팔뚝만 한 송어는 고래를 잡은 것 못지않은 월척이다. 잡은 송어는 냇가에서 회로 맛볼 수 있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아빠들에게도 인기다. 준비가 필요하다 보니 송어잡기와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는 20명 이상 모여야 체험할 수 있다.용소막관광체험마을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아이들. 부드러운 감촉의 흙을 밀고 자르고 붙이는 작업은 가족 단위 체험으로는 그만이다. 도자기 만들기 체험도 인기다. 영화 '사랑과 영혼' 한 장면처럼 물레로 도자기를 빚는 게 아니라 흙덩어리를 밀대로 밀어 자르고 붙여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용소막체험마을 김인자 사무장은 "아이 보기가 어려운 농촌현실에서 가족 단위의 체험객이 늘어 주민들도 좋아한다"며 "친환경 재배농산물 판매도 증가해 농가 소득도 늘었다"고 말했다. 조기화 이장은 "농촌체험은 자녀에게 흙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추억도 만드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고향 집에 가는 것처럼 편하게 찾아달라"고 했다. 고향 집에 갈 때도 전화는 필수다. 일주일 전 예약해야 하며 마을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문의 : 033-763-5330 #용소막성당 용소막성당은 마을 어디서나 한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뒷동산을 배경으로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둘러싸인 용소막성당은 처음 찾는 이들에게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본당 공동체 역사는 병인박해(18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지방에서 피난 온 몇몇 신자 가족이 강원도 평창지역에 몰려 살다가 박해가 뜸해지자 용소막(龍召幕)에서 멀지 않은 황둔과 오미 마을에 정착했다. 이들이 용소막을 중심으로 모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신앙 못자리가 된 것이다. 1986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된 용소막성당은 1915년 고딕양식으로 건립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성당 종이 공출되고, 6ㆍ25전쟁 때는 북한군 창고로 쓰이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은 그 색이 바래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용소막 신자들 삶을 떠올리게 한다. 성당 앞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마을 쪽을 바라보면 마을 전경과 미사참례를 위해 언덕길을 올라오는 신자들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사제 선종완 라우렌시오 유물관 구약성경 우리말로 처음 옮겨말씀의 성모영보수녀회 설립 용소막성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선종완(1915∼1976, 사진) 신부다. 성당 바로 앞마당 터에서 태어난 선 신부는 1960년 말씀의 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으로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등 한국교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목이다. 용소막성당을 찾았다면 성당 왼편에 있는 '사제 선종완 라우렌시오 유물관'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선 신부는 62살에 간암선고를 받고도 쉬지 않고 공동번역성서 번역작업을 했다. 공동번역성서가 출판되기 1년 전인 1976년 초벌 번역을 마치고 "이제야 하느님께서 우리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선 신부는 그해 선종했다. 고인이 사용하던 낡은 책상을 비롯해 손목시계, 우산, 지팡이, 제의ㆍ제구, 의류 등 유품 380여 점과 각종 서적류 300여 권이 전시돼 있다. 선 신부의 생생한 숨결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전시물들은 한평생을 오롯이 하느님께 바친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담당 수도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전시물을 둘러볼 수 있다. 백영민 기자 백영민2012.08.14
![[문화] 팟캐스트 이용해 방송하는 사제들](//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9594_1.0_titleImage_1.jpg)
[문화] 팟캐스트 이용해 방송하는 사제들 스마트폰 이용자 3000만 명 시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홍보주일 담화에서 "새로운 기술은 공간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고,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며 스마트폰을 비롯한 뉴미디어의 영향력에 주목했다. 그 중에서도 간결성, 신속성, 관계성이 특징인 '1인 미디어시대'의 총아 인터넷 라디오방송 팟캐스트(Pod cast)는 선교사목에도 활용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 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팟캐스트를 통해 복음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사제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다락방 DJ홍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을 진행하는 한 사제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 취지를 물었다. 바로 답을 들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방송을 들어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시간 후 스마트폰으로 접속하자 '평화신문 이서연 베로니카 기자에게'라는 제목의 6분짜리 방송이 올라와 있었다. 말 그대로 발 빠른 '1인 방송'의 위력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이 방송의 진행자는 의정부교구 IT사목연구 홍석정 신부. 홍 신부는 올해 초부터 팟캐스트를 통해 '다락방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주 청취자는 홍 신부가 특수사목을 하면서 더부살이(?)하는 의정부교구 고양동본당 신자들. 그중에서도 주일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단골 청취자다. 홍석정 신부와 의정부교구 고양동본당 주일학교 학생들이 함께 방송녹음을 하고 있다. 홍 신부가 방송을 시작한 동기는 간단하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서다. 홍 신부는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최신 모바일기기에 익숙한 주일학교 아이들이 딱딱한 교리서를 보고 흥미를 느끼긴 어렵다"며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주님 말씀이 얼마나 유익하고, 성당이 얼마나 즐거운 곳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 신부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학생들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방송에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중2 토크','교사 상황극' 등 학생들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경우다. 성당에서 일어난 이야기, 자신의 고민, 주임 신부님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마이크 앞에서 가감 없이 하다 보니 인기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또 직접 출연하지 않더라도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만 해도 반응이 폭발적이다. "혜린이는 왜 어제 주일학교에 안 왔니?" "진석이는 요새 얼굴 좋아 보이더라" 등 홍 신부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안부를 물으면 다음 주 주일학교 출석률이 부쩍 올라간다.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며 은근히 압력을 넣는 학생들도 있다. 홍 신부의 방송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양동본당 주일학교도 활기를 띠고 있다. 주일학교에 등록된 110여 명 학생 중 절반이 넘는 60여 명이 매주 나오고 있다. 홍 신부는 올해 말까지 주일학교 '100명 출석'을 목표로 다락방 방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고리타분한 얘기는 되도록 하지 않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방송하려고 해요. '왜 신부님은 평생 혼자 살아요?''신부님은 연애도 못해요?' 같은 짓궂은 질문도 환영합니다." #강론을 들어봐! 청주교구 오송본당 주임 이중섭 신부도 요즘 개인방송 제작에 푹 빠져 있다. 본당 사목에다가 5개 언어 대역판 성경 편집 주간, 인터넷 카페 성경공부 지도, 취미로 하는 트럼펫 연주와 테니스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데 일거리를 또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28일 개국한 팟캐스트 '이중섭 신부 평일강론'을 통해 이 신부는 월요일과 주말을 제외하고 매주 화ㆍ수ㆍ목ㆍ토 평일미사 강론을 서비스한다. 팟캐스트용 매일미사 강론 원고를 준비하는 건 기본. 그리고 방송을 보고 듣는 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성전 내 제대와 해설대, 소성당 등을 옮겨다니며 프로그램을 제작해 인터넷에 올린다. "언제 어디서든 접속해 들을 수 있다는 매력에 팟캐스트를 활용하게 됐어요. 물론 쉽지 않죠. 강론 준비에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올리는 일은 번거롭지만 신자들 반응이 좋아 계속합니다." 세 달간 내려받은 건수는 총 2880건. 1월 606건, 2월 800건, 3월 1354건(26일 현재)으로 접속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하루에 30~50건씩 이 신부 강론을 내려받는다. 중국과 홍콩, 필리핀, 호주, 프랑스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접속한다. 강론 제목이 튀면 내려받기 횟수가 좀 더 늘기는 하지만, 이 신부는 접속 건수에 연연하지 않고 차근차근 강론을 올린다. 때론 자신의 장기 가운데 하나인 트럼펫 성가 연주까지 곁들인다. 이에 댓글(리플)이 달리고 평가항목에서 별 다섯 개 중 네 개라는 평가가 올라올 때면 더 힘이 난다. 1995년 파리가톨릭대 구약성경 박사과정을 수료한 성서학자이기도 한 이 신부는 "팟캐스트를 하려면 콘텐츠(강론)와 기술력(방송제작). 의지가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제의 의지"라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이서연 기자 kitty@ ▨팟캐스트란? 팟캐스트는 애플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 합성어.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방송파일을 내려받아 재생할 수 있는 서비스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오세택2012.03.27

「부스러기 성경 이야기」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백남해 신부 펴내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백남해 신부가 성경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썼다. 「부스러기 성경 이야기」에는 성경 속 주요 사건에서 조연급에도 들지 못한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말 그대로 성경 속에선 거의 대사가 없는 단역배우들이다. 이를테면 향유의 여인(루카 7,38), 보리빵 아이(요한 6,9), 사마리아 여인(루카 10,33), 황금닭(루카 22,60) 등이다. 주인공들의 재미있는 입담과 해학과 풍자가 뛰어나다. 거룩한 성경에 상상력이 더해졌다. 예수님은 주변 인물로 물러났지만, 이들 삶을 뒤바꾸어 놓은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예수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은 자신의 몸을 버린 죄인이다. 시장의 쓰레기더미 옆 걸인들 움막에서 구걸도 하다 하인을 몇 명 부릴 만큼 돈을 번 그는 하녀들이 소경을 눈 뜨게 하고 절름발이를 낫게 한 어떤 예언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는다. "간음하다 붙들려온 한 여인을 군중들이 돌로 쳐 죽이려 하자, 예언자라는 분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하자, 다들 떠나갔고 그 예언자가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했다"는 하녀들 말에 여인은 귀가 번쩍 뜨인다. 여인은 그 예언자가 누구냐고 채근하자 하녀들은 조심스럽게 "나자렛 사람, 예언자 예수"라고 말해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을 때 그의 곁에서 운 닭도 입을 연다. 자신은 평범한 닭과 다르지 않았지만 이천여 년 전 슬픔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면서 황금닭이 됐다고 고백한다. 그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운명 지워진 닭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도록 그분께서 자신을 이끌어 주신다고 한다. 그리고 당신이 사람보다 돈을, 하느님보다 세속 권력자들을 더 높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또 행동 없이 입에 발린 사랑을 지껄이고 고급 자동차를 몰면서 남에게는 가난을 설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경고한다. 백 신부는 머리글에서 "성경에 관한 이야기지만, 순 상상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마시고, 화장실 변기 뚜껑에 올려놓으시고 심심할 때 편하게 읽으라"고 했다.(불휘/1만 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0.07.27
![[예비신자가 묻습니다] 천주교에서 묵주를 갖고 기도를 하는 이유와 의미가 무엇입니까?](//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63_1.1_titleImage_1.jpg)
[예비신자가 묻습니다] 천주교에서 묵주를 갖고 기도를 하는 이유와 의미가 무엇입니까?순교자에 씌운 장미 화관 꽃마다 바친 기도서 유래 불교에 염주가 있듯이 천주교에는 '묵주(默珠)'가 있습니다. 묵주는 라틴어로 Rosarium, 영어로는 Rosary라고 합니다. 묵주 한 알을 굴리며 성모송 또는 주님의 기도를 한 번 바칩니다. 성모송 10번과 주님의 기도 1번이 묵주기도 1단(端)입니다. 묵주에는 작은 십자가가 달려 있고, 그 위로 묵주알 다섯 개가 이어져 있습니다. 묵주알 수는 모두 59개입니다. 묵주알은 나무ㆍ유리ㆍ수정ㆍ나무열매ㆍ은ㆍ금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듭니다만 요즘엔 주로 플라스틱이나 구슬로 만들지요. 반지로 만든 묵주반지와 팔찌 모양의 묵주팔찌도 있습니다. 묵주는 모양이 목걸이와 비슷하지만, 목에 거는 것은 올바른 사용방법이 아닙니다.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이 교회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대교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교인들에게는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콜로세움에 끌려가 사자밥이 되던 그리스도교 박해 시절, 순교를 앞둔 신자 머리에 장미꽃 관을 씌웠는데 박해를 피해 살아남은 신자들이 순교자 시신을 몰래 거둬 그들이 썼던 장미꽃 관을 한데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쳤다고 합니다. 한편 이집트 사막에서 지내던 은수자(隱修者)들은 매일 구약성경 '시편'을 50~150편을 외었는데, 기도 숫자를 쉽게 세기 위해 돌멩이를 줄에 엮은 것이 묵주기도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2세기에 와서는 삼종기도 보급과 함께 성모 마리아 신심도 깊어져 주님의 기도 일색이던 묵주기도가 성모송 50번을 바치는 식으로 변화됐고, 13세기에는 영광송도 삽입됐습니다. 16세기 교회 분열을 틈타 이슬람교도가 로마를 침공했는데 당시 교황 비오 5세(재위 1566~1572)가 그리스도교 국가 왕들과 연합군을 편성,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전쟁에 나가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이날을 묵주기도 축일로 제정했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묵주기도 보급이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베르나데트(1844~1879)에게 나타나 직접 묵주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등 여러 차례 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는 환희ㆍ고통ㆍ영광ㆍ빛 등 네 가지 신비를 통해 예수님 강생과 고통, 죽음, 부활과 승천, 성모님 생애를 묵상하게 이끌어줍니다. 특히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추가한 '빛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더욱 깊이 묵상하도록 해줍니다. 가정을 위한 기도이자 평화를 위한 기도인 묵주기도를 온 가족이 함께 바치면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힘 기자 lensman@이힘2012.07.17
![[특집] 세상과 교회 비추는 '빛과 희망' 소공동체 20년](//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7108_1.0_titleImage_1.jpg)
[특집] 세상과 교회 비추는 '빛과 희망' 소공동체 20년 2012 소공동체 지역ㆍ전국모임 결산소공동체 전국모임 참가자들이 9월 20일 파견미사에서 이웃과 지역사회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하느님 일꾼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촛불의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공동체는 과연 한국교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소공동체가 친교와 말씀으로 무장해 본당 공동체를 살찌우고, 나아가 지역사회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이 되려면 어떤 장애를 극복해야 하나. 한국교회 소공동체 사목 도입 20돌을 맞아 9월 한 달간 숨가쁘게 열린 3개 교구(대구ㆍ부산ㆍ전주) 지역모임과 전국모임은 소공동체 20년의 체험과 성과를 나누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아고라(Agora)'였다. 참가자들은 우선 소공동체가 지난 20년간 평신도들에게 자발성과 참여의식을 불어넣어 주고, 말씀과 친교로 무장시켜준 성과에 주목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한 친교의 교회론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려가고 있는 현상을 높이 평가하면서 소공동체에서 한국교회 희망을 찾았다. #소공동체 교회 성장과 변화 이끌어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9월 11일 부산 지역모임에서 "한국교회는 소공동체를 통해 친교의 교회, 참여하는 교회로 변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소공동체는 일시적 '운동'이 아니라 성경 말씀과 공의회 가르침을 따라 친교의 교회를 이루고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소공동체 덕에 본당 공동체가 한층 활성화하고 발전하는 구체적 사례를 나누며 소공동체 정착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울 무악재본당 조재연 신부는 소공동체 원리에 기초해 청소년 친화적 본당을 만들어가고, 서울 제기동본당 최경옥 수녀는 소공동체 '말씀터'와 '두레(구역)자치회'를 통해 본당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성과를 발표했다. 광주대교구 학운동본당 안호석 신부는 소공동체를 활성화해 우리농촌살리기와 다문화가정 돌보기 등 지역사회 복음화에 앞장서는 모범사례를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또한 소공동체 정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극복 방안을 모색했다. 대표적인 게 교회 구성원들이 소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본당에서 수평적 의사소통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최덕기 주교는 "평신도ㆍ수도자ㆍ사제들의 리더십이 수직적이고 지배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소공동체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특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제들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 참가자는 사제 관심도에 따라 소공동체가 활성화되거나 침체되는 문제에 대해 "신자들이 성경 말씀 나눔과 자율적 봉사로 삶이 다져져야 (주임신부 관심도에 따른) 변화에 적응할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소공동체와 사도직단체 활동이 겹친다는 반복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 의정부교구 의정부본당 서춘배 신부는 "단체 활동은 목적이 뚜렷하지만 소공동체 활동은 신앙인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상 삶의 모든 것"이라며 "소공동체는 할머니 몇 분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것처럼 친교의 자리만 돼도 좋다"고 말했다. #세상에 복음의 빛 비추는 소공동체 올해 지역 및 전국모임에서 20살 성년이 된 소공동체가 본당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사회 복음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큰 소득이다. 대구가톨릭대 정희완 교수신부는 19일 전국모임에서 "소공동체는 파편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 하며 사회 변화를 위한 자발적 결사체가 될 수 있다"며 "소공동체는 교회 쇄신과 사회 변화(하느님 나라 건설)라는 그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가톨릭 신앙인 역시 세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세상의 문제들과 무관하게 살 수 없다"며 "이것이 소공동체가 성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다과를 나누고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광주가톨릭대 김정용 교수신부는 "소공동체가 교회 내부 활동으로 이해되어 세상 복음화라는 본래의 지향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은 점은 성찰이 필요하다"며 실천 방안으로 △사회교리에 대한 이해 △사회적 약자와 연대 △윤리적(착한) 소비 실천 △생명·인권·환경문제에 대한 연대 등을 제시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소공동체 봉사자들 말을 들어보니...<이런 점이 힘들어요> -복음나누기 7단계가 힘들어요(참가자들이 묵상나눔을 어려워하고, 나눔에서 나온 말이 밖으로 새나가 갈등이 생기기도) -참석률이 낮아요(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의 텃새, 젊은 사람들 참석 저조, 사제 관심 정도에 따라 참석률 변화) -봉사자가 부족해요(맞벌이 부부 증가, 소공동체 인식 부족, 장기 봉사자의 편파적ㆍ독단적 운영, 양성교육 시스템 부족) <이렇게 해야 합니다> -불참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는 초대 문구로 문자 메시지 발송 -반장 역할이 가장 중요. 총무는 2년 동안 '반장수업'해야 -폐단을 예방하고, 새로운 봉사자 양성 위해 봉사자 임기 꼭 정해야 -묵상나눔 비밀 지켜야▨ 제11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최종 선언문(요약)"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세상 속의 소공동체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동시에 한국교회가 소공동체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우리는 공의회에 감도하신 성령께서 한국교회에 그 정신을 실현하는 길로 소공동체라는 선물을 주시고 이끌어 주셨음에 감사드린다. ▶소공동체 지역모임 열매들 오늘날 교회 과제로 주어진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소공동체를 통해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나누며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역할이 중요함을 인식했다. 또한 소공동체는 공의회의 교회관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목 비전임을 재확인했다. 즉, 소공동체는 '복음화 못자리'이고 '교회 희망'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공의회가 말한 하느님 백성의 친교 공동체는 교회 울타리 안의 개인이나 가족, 이웃과의 관계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교회로서 정치 경제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소공동체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참여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고자 오신 하느님 강생의 신비를 드러내는 표지가 돼야 함을 자각했다. ▶사회와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 세상은 어둠과 혼동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을 물신주의와 쾌락주의가 만연한 사회 환경으로 내몰았다. 세속주의 물결 속에 전통 윤리의식은 붕괴되고, 종교적 가치마저 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교회 안에도 자본주의 병폐가 유입되고 있다. 양적 증가에 집착하는 성장주의, 건물과 거룩한 상징을 마케팅으로 이해하는 상업주의, 신학과 영성을 지식으로만 소비하는 소비주의 등 교회 안에도 세속주의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교회 위기는 교회가 진정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는 데 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공동체 20년을 돌아보며 소공동체가 세상과 교회를 비추는 등불이었으며 교회의 길을 비춘 빛이었음을 발견했다. 또한 교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었고, 세상 속에 현존하는 교회로서 그 사명과 역할을 자각했다. 아울러 모범 사례들을 나누면서 소공동체가 교회 본질을 드러내는 세상의 빛이며 희망임을 발견했다. ▶과제와 제안 우리는 소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성체와 말씀으로 힘을 얻어 교회와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본당 조직과 운영원리, 말씀을 생활화하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모범사례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쇄신 방안으로 도입해 이를 확산해 간다. 소공동체 안에서 사회 현실을 바라보고 세상의 온갖 불의와 죽음의 문화에 맞서 정의와 평화,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한다. ▶결론 우리는 소공동체가 미래 교회에도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고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서 희망이 됨을 자각했다. 소공동체 20년은 완성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는 말씀의 빛으로 그 약속을 믿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2012년 9월 20일 제11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참가자 일동 김원철2012.09.25
![[생활속의 복음] 연중 31주일](//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982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31주일마음·정신·힘 다해 사랑해야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매사에 질문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다. 옛말에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했듯이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주님께서는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 한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복음은 성실한 삶의 첫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전한다. 질문은 기본에 충실하고, 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데 필요하다. 그리고 본질이 무엇인가 따져묻는 데 유익하다. 정직하고 성실한 공무원은 주민에게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속 묻는다. 교사도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들 입장에서 예상되는 요점을 질문형식으로 준비한다. 자동차 정비사도 자동차뿐만 아니라 운전자에게 문제점을 물으며 정비한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은 공경을 받았다. 그들 죽음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신 주님 사랑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2세기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구원을 위해서는 많은 인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많이 사랑하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시리아의 수도자 치로 테오도레토는 엄격한 수도생활을 기록한 책에서 "오직 사랑만이 모든 삶을 정당화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체코의 어느 대중가요 가사는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이미 하늘의 천사처럼 성인이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윤리학자들은 하느님 사랑을 남녀의 사랑에 비유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간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과연 늘 부정적일까? 오히려 인간 사랑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아들이 칭찬을 받거나 성공할 때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아들과 어머니 사랑이 함께 작용하는 것은 아들과 어머니가 한 몸인 까닭이다. 이 같은 영적 일치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나타난다. 주님의 영광이 히브리인의 승리이기에 그들은 매일 "우리 주님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오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같이 우리가 하느님을 가슴 깊이 느끼고 사랑한다면, 하느님의 영광과 성공은 우리 기쁨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정은 친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시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우정을 요청하신다. 우리는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데 협력하면서 그분께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의 사명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이 부르실 때 이사야의 말처럼 "예!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이사 6,8)하고 응답하는 자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마음과 목숨 그리고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 주님께 질문하는 율법학자는 사랑의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다. 주님 말씀을 즉시 알아듣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 주님의 표현,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는 사랑"과 율법학자의 고백, "마음, 생각,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온 존재를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한국교회는 전 존재를 다 바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가? 혹시 주님께서 오늘의 교회가 자신만을 사랑하지 않는가를 질문하는 듯하다. 한국교회 일반이 교계뿐 아니라 사회에 우려를 끼치는 것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보다는 교세확장, 축복획득이라는 표층종교의 자기 사랑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다. 내가 잘 되려고 믿는 종교에 머무는 것이 오늘날 종교의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 교회는 표층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믿음으로 지금의 나를 극복하고 참된 나를 찾아 하느님과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는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한다. "대형화, 세력화가 한국교회를 망치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비교종교 신학자 오강남 교수의 지적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퇴사자22012.10.30

눈높이 교육으로 구체적 실천 이끌어야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세미나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ㆍ평화교육' 세미나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해 1월 1일 발표한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와 평화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황은 젊은이들 관심사에 동참하고, 그들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 전체의 첫째 의무라고 제시했다.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평화 교육,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김녕 교수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10월 2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ㆍ평화교육,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그들에 대한 정의ㆍ평화교육 방향을 논의했다. 박종대(서강대) 명예교수와 김승한(의정부교구 청소년국 차장) 신부 등 참석자들은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정의와 평화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을 심어주려면 그들 눈높이에 맞는 교육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종대 교수는 '젊은이들을 위한 정의ㆍ평화교육 구상'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젊은이들에게 선에 봉사하며 살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켜야 하지만, 교회에서 젊은이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교회가 그동안 외적 행사에 치우쳐 내실을 기하는 일에 소홀히 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리스도교 교육은 생명력 있는 교리를 청소년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인생 목적이 무엇이며,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정의롭고 평화로운 환경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전해야 한다"며 △눈높이에 맞는 신앙강좌 마련과 교재개발 △가톨릭계 대학의 정의와 평화 관련 교양과목 개설 △전국 단위 청년연합회 활성화 △시대 현안을 가톨릭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세미나 개최 및 연구소 개설 등을 제안했다. 김승한 신부는 배동교육을 소개하는 발표에서 "배동교육은 예수님처럼 오늘날 현실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생활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예수살이 공동체 청년교육"이라며 "청년들이 복음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돕고 변화된 삶을 통해 능동적 현실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김 신부는 "교육을 받은 이들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데다 현실에 도전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며 "구체적 실천으로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신용카드, 승용차, 쇼핑에서 자유로워지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도와 묵상, 배려, 정직함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삶은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과 맥락이 같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개인의 힘은 무력하기에 배동교육을 받은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 연대를 맺는다"며 "이는 교육을 받고 서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공동토론에서 "정의는 가톨릭계 대학의 교육이념이며 정의와 신앙은 합일을 이뤄야 한다"며 "주님을 안다는 것은 곧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이며, 안다는 것은 지성적 인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투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교리 교육은 세상의 불의에 대해 구체적 관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며 "성경을 읽고 묵상만 하는 신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뉴스를 보다가도 울먹이며 기도하는 가슴 뜨거운 신앙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용환(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현시대를 복음적 가치로 되짚어 보고 그 정신을 실천에 옮기는 청년모임 활동을 소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 외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민(서울 서초유스센터 관장) 신부는 "무한경쟁에 내몰린 대학생들은 정치 사회 문제보다 학점과 취업ㆍ연애 등에 더 관심이 많지만, 주님에 대한 영적 목마름 또한 크다"면서 "평화ㆍ정의교육 역시 조금 더 일찍 그들 언어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정수(수원교구 비산동본당 주임) 신부는 "우리가 얻으려는 자유와 평화는 매우 소중한 가치이지만 부서지기 쉽다"며 "지식전달 위주 교리방식에서 벗어나 사회교리를 확대하고, 선한 이들이 만나 그 뜻을 공유하고 기도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훈(수원교구장) 주교는 이날 세미나 인사말에서 "과연 교회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이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열망과 희망을 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오늘 논의가 여러 교육 현장에 적용돼 교회 젊은이들이 정의와 평화, 진리와 자유를 바탕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백영민2012.10.30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9>생명주일- 다섯째 계명](//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20_1.0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생명주일- 다섯째 계명생명의 주인은 하느님, 인간은 가꾸고 돌보는 관리자 교회는 5월 첫 주일을 생명 주일로 지냅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 문화의 위험성을 일깨우고 존엄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은 바로 인간 생명의 존엄함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명입니다.'살인하지 말라'는 다섯째 계명은 인간 생명 존중과 인간 존엄성의 존중, 전쟁 회피 및 평화의 보호와 관련된다. 사진은 태내의 아기를 구하기 위해 자궁 종양 수술을 거부하다 출산 후 일주일 만에 숨진 성녀 잔나 베레타 몰라(1922~1962). 그녀는 2004년 5월 16일에 시성됐다. [CNS] 다섯째 계명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계명입니다. 인간 생명은 신성합니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2258항)고 교회는 천명합니다. ◇살펴봅시다 ㉠인간 생명의 존중(2259~2283항) :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창세 9,5-6). 무죄한 사람을 일부러 살인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황금률(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과 창조주의 거룩하심을 중대하게 거스르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살인하지 마라'는 제5계명과 관련, 분노와 증오와 복수를 금하시면서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렇다면 정당방위는 어떠할까요? 교회는 개인이나 집단의 정당방위 곧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공격자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에는 살인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목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 권리인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폭력을 가한다면, 부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사람에게는 정당방위가 중대한 임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시민 공동체를 해치는 공격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2266항)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형벌의 일환인 사형은 어떠할까요? 교회는 불의한 공격자에게서 인간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사형뿐이라면 사형에 의존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형이 아닌 방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면, 사형이 아닌 방법을 써야 합니다. 교회가 사형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사형이 아닌 방법으로도 공공질서와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이고 고의적인 살인은 제5계명을 거스르는 중대한 죄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일부러 협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생학이나 국민 건강을 이유로 행해지는 어떤 살인도, 공권력이 명령하는 것까지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중대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죽을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뿐 아니라 위험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한 것"(2269항)도 제 5계명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인간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마지막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돼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낙태를 중죄로 단죄합니다. 뿐만 아니라 낙태에 대한 분명한 협력도 중죄가 됩니다. 낙태하는 사람은 물론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사람도 자동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배아 역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과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생물학적 실험 재료로 쓰려고 배아를 만들어내는 일 역시 부도덕합니다. 안락사 또한 결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생명은 우리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의 관리자이지 소유주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을 결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 또한 중죄입니다. 자살은 생명을 보존하고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 상반되며, 올바른 자기 사랑에 어긋납니다. 자살은 또한 이웃 사랑을 어기는 행위이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사랑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자살은 제5계명을 거스르는 중죄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은 이들의 구원에 대해서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기"(2283항)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존중(2284~2301항) : 악한 표양(스캔들)을 통해 일부러 다른 사람이 심각한 과실을 저지르도록 한다면, 그 악한 표양은 중죄가 됩니다. 퇴폐적 풍속, 타락한 종교생활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행동을 유발하는 법이나 사회 구조를 조장하는 이들은 악한 표양을 보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부정행위를 조장하는 규칙을 정하는 기업주들, 학생들을 격분케 하는 교사들, 여론을 조작해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유혹이 없을 수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고 개탄하십니다(루카 17,1 참조). 다섯째 계명은 또한 건강을 돌보는 일까지도 포함합니다. "생명과 신체의 건강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값진 재산"(2288항)이 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 생명과 신체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육신 숭배를 조장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됩니다.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완벽한 육체와 스포츠의 성공을 우상화는 경향"은 새로운 이교도 정신입니다. 교회는 또한 온갖 형태의 과잉을 피하게 하는 절제의 덕을 강조합니다. 무절제한 과욕으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중죄를 짓는 것입니다. 교회는 "개인이나 인간 집단에 대한 과학적ㆍ의학적 또는 심리학적 실험이 병의 치료나 공중 보건의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연구와 실험이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률에 어긋난다면 그 자체로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치료와 처방 목적이 아닌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수족 절단, 신체 상해, 불임 수술은 도덕률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장기이식은 "제공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과 위험률이 그 장기를 받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선익과 균형을 이룬다면 도덕률에 부합됩니다"(2296항). 제5계명은 또한 죽은 이들에 대한 존경과도 관련됩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에게는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그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 죽은 이들의 시신은 "부활에 대한 신앙과 희망 안에서 존경과 사랑으로" 다뤄야 합니다. "죽은 이들을 장사지내는 것은 신체에 자비를 베푸는 일이며, 이것은 성령의 궁전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명예롭게 하는 일"(2300항)입니다. 교회는 육신 부활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화장을 허락합니다. ◇알아둡시다 ㉠ 평화(2302~2306항) :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은 살의를 품은 분노와 증오가 부도덕하다는 것을 일깨우며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요구합니다. 복수에 찬 분노는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습을 교정하고 정의의 선을 보존하기 위해서 보상을 부과하는 것은 잘하는 일"(2302항)입니다. 분노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심한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려고 한다면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죽을 죄에 해당합니다. 의도적 증오 역시 사랑에 어긋납니다. 이웃에 대한 증오는 그 이웃이 잘못되기를 의도적으로 바랄 때 죄가 됩니다.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증진하는 데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평화는 질서의 고요함이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며 사랑의 결실이다"(2304항). 따라서 사람들의 선익 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중시,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등이 없이는 평화가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습니다. ㉡ 전쟁을 피함(2307~2317항) : 다섯째 계명은 인간 생명을 일부러 파괴하는 것을 금합니다. 전쟁은 많은 생명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과 위정자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진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위험이 있는데, 평화협상의 모든 방법을 다 써도 안 될 경우 무력을 통한 정당방위권을 교회는 인정합니다. 무력을 통한 정당방위가 도덕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엄중한 조건들을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다음의 조건들을 모두 채울 때만 무력을 통한 정당방위의 도덕성을 인정합니다.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돼야 한다 △제거돼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 조건들이 이른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교리에서 열거되는 전통적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전쟁 그 자체로 모든 행동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비전투원과 부상병과 포로들을 존중하고 인간답게 대우해야 합니다. 또 어떤 민족이나 국민이나 소수 민족에 대한 집단 학살은 죽을 죄로 단죄돼야 하고, 종족 말살의 명령에는 항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무기 비축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막중한 도덕적 제약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잉 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2315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4.30
![[출판]시편을 묵상하며 바치는 오늘의 기도 외 3권](//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1680_1.0_titleImage_1.jpg)
[출판]시편을 묵상하며 바치는 오늘의 기도 외 3권▨시편을 묵상하며 바치는 오늘의 기도 (정호경 지음/성서와 함께/8000원) 시편은 구약시대 하느님 백성이 주님께 바친 찬양노래며 기도노래다. 예수는 복음을 선포할 때 시편을 인용하거나 노래했고, 신약성경에는 시편이 100번 이상 인용된다. 오늘날에도 시편은 미사와 시간전례(성무일도) 때 기도로 봉헌되고 있어 신앙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성경 말씀이다. 책은 정호경(안동교구) 신부가 시편을 묵상하며 당시 기도하는 시인들 처지와 심정에 초점을 맞춰 바친 기도문이다. 정 신부는 "사람 냄새 나는 시편을 기도와 묵상을 통해 이 시대 우리의 새로운 노래로 재창조해 불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성경 시편 본문을 먼저 읽고 묵상한 뒤 책을 볼 것을 권했다. ▨시토회가 걷는 길, 사랑의 학교 (앙드레 루프 아빠스 지음/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 옮김/분도출판사/1만 3000원) 관상 수도회인 시토회의 특별한 영성을 안내하는 책이다. 프랑스 몽 데 까(Mont des cats)시토회 수도원의 앙드레 루프 아빠스와 수사들이 관상 수도생활 영성을 현대인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했다. 수도생활 역사에서부터 성 베네딕도 규칙, 중세기 수도회 개혁 등을 다뤘고 오늘날 존재하는 시토회 전통과 수도자의 하루 등을 엿볼 수 있다. 또 거룩한 독서와 금욕생활을 신학적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시토회의 특별한 영성을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정신에서 찾았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고 따름으로써 지상에서의 그분 삶의 신비가 수도자 삶 속에서 재현된다." ▨똥배 (김원석 시/이영림 그림/밝은미래/9000원) 국민 동요 '예솔아'의 작사가 김원석(대건 안드레아,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전무이사) 시인이 3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김 시인은 동시 69편을 통해 부모의 사랑과 자연의 소중함 등을 아이들 감성에 맞게 노래했다. 1장 '얼레, 바지 벗었잖아'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동시로 지었고, 2장 '고혈압 친구인 아버지'에서는 가족과 친구 사이의 따뜻한 사랑을 들려줬다. 3장 '그림을 그리는 바람', 5장 '자전거의 생각'에서는 주변 사물과 일상에 대한 작가만의 독특한 감성을 엿볼 수 있다. 4장 '1월'에서는 어린이들이 시를 통해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옥수수의 습격 (유진규 지음/황금물고기/1만 4800원) SBS에 방송된 '옥수수의 습격'을 제작한 유진규 PD가 쓴 책이다. 유 PD는 책을 통해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가축들의 사료가 옥수수로 바뀌면서 현대병이라 일컬어지는 비만, 고혈압, 불임, 심장병 등이 증가하게 됐다고 고발한다. 풀을 먹고 자란 가축에 비해 옥수수를 먹고 자란 가축은 오메가3 지방산이 결핍되고 오메가6 지방산이 과잉축적된다. 때문에 이 가축을 먹는 인간들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건강을 위협한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유 PD는 풀을 기반으로 한 가축사육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옥수수를 기반으로 하는 축산식품을 식탁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역설한다.박수정2012.01.11
[출판] 기도는 하느님과 주고받는 쌍방향 대화「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II-기도와 관상」펴낸 허성준 신부 사순시기를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한 신자들이 많다. 틈틈이 주모경과 묵주기도를 바치곤 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생각이 든다. 나를 내려놓고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도를 바치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최근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II-기도와 관상」(분도출판사/1만 4000원)을 펴낸 허성준(성 베네딕도회) 신부를 만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허 신부는 "기도도 배워야 한다"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도 방법을 찾아 이를 배우고 끊임없이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기도가 자연스러워질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한 허 신부는 20년 넘게 고대 수도 전통 안에서 전해져 온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라는 한 주제를 연구해왔다. 또 렉시오 디비나와 기도에 관한 다양한 저술과 강의로 신자들을 깊은 기도 세계로 이끌고 있다. 저술로는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분도출판사, 2003), 「구심기도」(분도출판사, 2003), 「스승님, 기도란 무엇입니까?」(생활성서사, 2007), 「사막에서 길을 묻다」(생활성서사, 2008) 등이 있다. 또 현재 평화방송 TV에서 '허성준 신부의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기도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는데, 신부님께서 생각하는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한마디로 대화입니다. 일방적이 아닌 서로가 주고받는 쌍방향 대화입니다. 우리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들어 올려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께 올바로 응답하게 될 때 참된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깊게 하시는 분들은 고독과 침묵을 찾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에도 단계와 수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신자들이 기도서에 나오는 기도를 바치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청하는 기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깊은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영성신학에선 기도를 9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 단계가 기도서에 나온 기도를 소리내서 바치는 구송(口誦)기도고, 마지막 단계는 영혼이 주님과 함께 있게 되는 변형 일치의 기도입니다. 높은 단계에 이를수록 기도의 주인은 기도를 바치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 됩니다. 그럴수록 기도는 수동적이 됩니다. 내 노력이나 의지가 아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방향으로 기도를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더 깊은 기도를 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기도를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무엇이든 처음에 제대로 배우고 기본기가 탄탄해야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지 않습니까. 다양한 기도 방법 중에 자기에게 잘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은 다음, 그 기도를 끊임없이 충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신자들도 관상단계에 이를 수 있을까요. 관상이란 것은 영적 수준이 높은 수도자들에게만 어울리는 비현실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관상은 봉쇄수도자나 관상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닙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상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릴 필요 없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독서와 묵상을 열심히 하면 어느 날, 어느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깊은 기도와 관상 단계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얻은 체험이나 깨달음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대학원 논문 주제를 고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렉시오 디비나를 공부해왔습니다. 교회의 훌륭한 유산인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는 하느님 말씀을 온 마음으로 읽고 새기는 기도 방법입니다. 성 히에로니무스 말씀처럼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영성은 철저히 하느님 말씀에 기초해야 빗나가지 않게 되는데, 렉시오 디비나는 하느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묵상하는 것이니 여러분께도 적극 추천해드립니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저는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살다 보면, 신앙 따로 생활 따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가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기도생활 따로, 봉사활동 따로, 일상생활 따로, 이렇게 별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 삶을 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교회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성경 말씀으로 하루하루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해 나간다면 영성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박수정2012.02.28
![[특집]신앙선조들, 사순시기 어떻게 보냈을까](//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6686_1.0_titleImage_1.jpg)
[특집]신앙선조들, 사순시기 어떻게 보냈을까고신극기로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 금식, 금육재 지키고 금욕생활하며 '수난 복음' 묵상 '회개와 기도의 때' 사순시기다.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 이어지는 사순 40일을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은 어떻게 지켰을까. 그 40일을 들여다보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1840~50년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럴 수는 없으니, 당시 김대건ㆍ최양업 신부 등 한국인 사제들이 쓴 서한, 샤를로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 펴냄) 등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이들 사료를 통해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사순 살이'를 살핀다. 1843년 사순시기. 11살 소녀 바르바라는 책 2권과 쌀을 지닌 채 또래 소녀 1명과 함께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깊은 산속 토굴에서 책을 읽고 기도를 하고 동무를 가르치며 지냈다. 사흘 만에 가족에 발견돼 끌려온 바르바라는 그때부터 1주일에 두 번씩 금식재를 지키고 고기와 생선 등 육류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특히 사순시기에는 날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집안일을 할 때나 들일을 할 때나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특히 교리문답과 교리책, 성녀 바르바라와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성인전,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 기타 조선 신심서를 늘 암송하곤 했다. 최양업 신부는 1850년 10월 1일자 서한에서 수계생활을 하다 18살 어린 나이로 선종한 바르바라의 삶을 통해 박해시대 사순시기에 신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히 그려낸다. 서한을 통해 드러나듯 당시 험준한 산속 벽ㆍ오지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신자들은 사순시기 때면 단식을 하는 금식재(대재)와 육식을 하지 않는 금육재(소재)를 엄격하게 지켰고, 평상시에도 이를 지켰다. 신자들은 재일(齋日)이면 식음의 절제 또는 전폐를 뜻하는 재(齋, abstinentia)를 지켰고, 이 재는 박해시대 신자들에게 절식과 금육재(소재), 절주 및 금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가뜩이나 조밥에 소금을 겨우 얹어 먹는 열악한 형편인데도, 이조차도 마련하지 못하면 나뭇잎이나 도토리ㆍ풀뿌리ㆍ산나물 등을 먹고 지내야 하는 궁핍한 처지인데도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을 통해 육신을 제어하고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과 더 큰 친교의 관계를 가졌다. 지금이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단식실천 요구, 즉 파스카적 단식 계명(전례헌장 110항)에 따라 사순절의 시작과 성금요일, 그리고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성토요일에도 실행하도록 하지만, 당시엔 사순시기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단식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자신을 극기했다. 이른바 고신극기를 통한 참회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해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1801년 순교자 김광옥(안드레아)의 아들로, '하느님의 종' 125위에 포함돼 있는 순교자 김희성(프란치스코, 1765~1816)의 경우가 그 예다. 어려서부터 모든 교리 실천의 훈육을 받으며 자란 그는 아버지가 순교한 뒤 경상도 영양 고을 깊은 산속에 은거해 나무뿌리와 도토리로 연명했고, 사순절이면 엄격한 금식을 지켰다. 자신의 성격을 얼마나 순화시켰는지 그의 온화함은 모두에게 찬탄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부부 간에도 금욕을 지켰다. 이처럼 당시 신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기도와 희생, 자선에 엄격했고, 금욕적인 성향이 강했다. 금식재와 금육재가 천주교 신자들의 교리로 알려지면서 이를 지키는지 여부를 보고 천주교 신자인지를 알아내 체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래서 1811년 중국 베이징(북경) 주교에게 보낸 '신미년 서한'에선 금식재와 금육재의 관면을 청하기도 했다. 나아가 박해시대 신자들의 사순시기는 '수난 복음'을 묵상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성경 해설서인 「성경광익(聖經廣益)」에 따르면, 신자들은 사순시기가 되면 4복음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수난에 관한 대목만 간추려 묶은 '수난복음'을 집중적으로 깊이 묵상하면서 피정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느님의 종 조숙(베드로, 1787~1819)과 동정부부 사이인 권 데레사(1784~1819)는 특히 금욕에 대한 훈련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실천했다. 몸이 자주 아프고 병치레도 많았지만 영신적 열성으로 고통을 기꺼이 참아냈으며, 겉으로 아무런 불편함이나 배고픔도 보이지 않았다. 고통 중에도 예수님 따르기만 열망하면서 자신의 영적 발전을 위한 독학에 몰두했다. 기도에 전력을 기울이던 그는 종종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말을 듣던 모든 이들을 신앙적 열심으로 채웠다. 전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조한건 신부는 "박해시대 사순시기는 대림시기에 비해 각종 교회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기에 그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도 "다만 지금보다는 대재와 소재를 잘 지켰다는 기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고 수난복음에 대한 묵상을 기록한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