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메시지] 한국평협 최홍준 회장 등](//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12_1.2_titleImage_1.jpg)
[축하메시지] 한국평협 최홍준 회장 등 진리 선포와 복음화 향한 더욱 힘찬 발걸음 내딛길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최홍준 회장 축하와 감사, 평신도에 대한 사랑을 부탁합니다! 창간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한 평화신문과 신문 종사자, 평화방송 모든 분에게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쳐 드립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동시에 이 매체가 우리 신앙생활의 동반자로서 소명과 사명을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신자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사도직의 소명과 함께 선교사명을 하느님께 직접 받는 것과 같이, 교회 언론 또한 복음화의 소명과 사명을 안고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렸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평화신문은 소식을 전달하는 소임뿐만 아니라, 신학의 깊은 부분은 쉽게 풀어주고, 교회의 높고 먼 위치의 부분은 일반 신자가 더 잘 접근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몫도 성심껏 해주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에 개막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내용을 현실 감각에 맞춰 풀이해주는 노력은 이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 많이 쏟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에게도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교회 신문과 교회 방송에도 관심을 둬주셨으면 합니다. 주일미사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면서 주보를 놓고 가는 신자가 없었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 교회 매체를 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전국가톨릭경제인협의회 유영희 회장 청년으로 성장한 평화방송ㆍ평화신문.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는 소명으로 지난 25년을 지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는 소명의 실천이 얼마나 힘들고 또 중요한 일인지는 지난 25년 역사가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소명을 다하기 위해 진력해 온 방송과 신문 관계자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교회가 당대의 인류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은 지난한 일입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신문의 이름에서 지향하는 평화와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조직에 대한 어두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현실은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십자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 십자가 너머에서 부활을 맞으셨듯이 쓴 말 속의 달콤함을 알게 하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지혜가 오늘날 하느님 백성들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반세기를 향한 용기있는 발걸음을 응원합니다.한국가톨릭여성단체협의회 김연숙 회장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더욱이 신앙의 해에 맞이하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25돌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사 모든 분에게 주님 사랑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서는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에서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참으로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라고 하셨습니다. 내적, 외적으로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와 신앙인들이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좋은 안내자가 돼주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점에서 교회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 교리서 공부나 성경말씀 해설은 아주 시의적절하고 유익한 내용이어서 감사한 일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도 한 줄기 말씀의 빛으로 정화되고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 줍니다.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말씀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리고 세상 속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는 평신도들 모습도 조금 더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김태식 회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창립 25주년을 언론인으로서, 시청자로서 그리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반세기 연륜을 쌓아오면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이제 한국 천주교회 대표적 교회 언론으로서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류 열풍은 세계 각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회의 국제적 위상 또한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우리 교회를 세계에 알리는 국내 미디어 역할은 아직까지 매우 미비한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 영자 매체나 외국 언론들이 중요 사안을 보도하기는 하지만, 매체 특성상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외국 언론의 경우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 독자 입맛에 맞게 다루기 때문에 우리 뉴스를 우리 시각으로 정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기회를 빌려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SNS 등 첨단 매체를 통한 선교와 보도 활동에 중점을 두는 한편, 세계인에게 한국교회를 정확하게 알리는 소명도 다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국제적인 뉴스 미디어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꾸르실료 한국협의회 정주영 회장 사반세기 세월은 축하를 받을 만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삶의 기본 요소가 됐습니다. 그래서 전파와 활자를 통한 복음선포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세월 여건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서도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앞으로 25년 후 금경축을 맞이할 때에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특히 지금은 하느님 백성 모두가 신앙의 해를 살면서 증거자 역할을 더욱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고 그렇게 사는 것을 몸에 익혀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청년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세상 복음화 사명을 완수하는 데 선봉에 서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한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김현조 회장 창립 25주년을 맞은 평화방송ㆍ평화신문과 종사자 모든 분께 축하 인사드립니다. 세상을 이끄는 힘의 중심이 사상과 경제를 넘어 여론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위치가 정말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세속 언론들은 지배욕으로 주도권 다툼과 편 가르기에 빠져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직 진리 자체인 하느님을 증언하고 복음전파의 사명 수행을 위해 노력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모든 언론의 귀감임이 분명합니다. 역경의 나날인 신문팔이 소년 신세를 거쳐 청년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악이 아무리 날뛰어도 한 번도 선이 패배한 적이 없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저희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보호하는 하느님의 표징으로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교회는 물론 더 큰 사회적 소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ME한국협의회 대표 이제빈,윤봉희 부부, 최준웅 신부 한국 ME 20만 가족과 함께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복음을 전하는 언론매체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 증진을 위해 경영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어려움에도 난관을 잘 극복해오셨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다양한 활동과 소식을 체계적으로 현실감 있게 보도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일깨워주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환경문제와 관련된 심층 보도는 복음화 사명을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미사 전례와 기도 등 영성 관련 글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스승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도착하는 평화신문을 기다리며 우편함을 바라보는 이유이겠지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사회의 밝은 면을 보도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도 희망을 품게 해 주십시오. 사회의 어두운 곳에는 착한 손길이 이어져 밝은 곳으로 변화해 가도록 해주십시오.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김칠연 단장 세상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모든 분께 주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25년은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영적 성장에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달된 교구장님 사목 지침은 단원들의 활동 목표가 됐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봉사활동 사례는 우리를 채찍질했습니다. 자칫 활동으로 소홀할 수 있는 단원들에게 영성 칼럼과 신부님 강의는 우리가 주님 포도밭의 일꾼으로서 삶의 영성을 일깨워줬습니다. 활동 대상자 가정을 방문하면 평화신문을 종종 발견합니다. 병원을 방문해보면 평화방송을 통해 위로를 얻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항상 친구 같은 방송, 친구 같은 신문으로 함께해 주시고 빛과 소금이 필요한 곳의 소식을 자주 들려주십시오.레지오 마리애 대구 세나뚜스 류해석 단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창립 25주년을 마음속 깊이 축하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창립 이후 안으로는 국내외 보편교회 소식과 입장을 대변하고, 신자 재교육의 장이 되어 왔습니다. 밖으로는 사회적 사건에서 교회 견해를 밝히는 정론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대표적인 가톨릭계 주간지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정보화 시대를 사는 지금, 대중매체에 의한 복음화가 더욱 촉망받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방송과 신문이라는 매체는 주님 오시는 길을 미리 닦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내면서 예언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복음화의 도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에 갈채와 성원을 보내며 앞으로 미디어를 통한 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은총의 시기에 전국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함께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광주 세나뚜스 김광희 단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대를 인정하고 이웃과 자연과 상생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사회의 어둡고 외로운 곳에 새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사회의 약자들 편에서 노력하신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독선과 편견, 불편부당함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사회적 공기(公器)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은일2013.05.07

서로 연대하고 지혜 모아 소외된 이웃과 함께해야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 '교회의 사회복음화와 공동체의 참여' 전주 지역모임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소공동체소위원회(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1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에서 '교회의 사회복음화와 공동체의 참여'를 주제로 세 번째 지역모임을 열었다. 이병호(전주교구장) 주교 개회사로 시작된 이날 모임은 '세상 속에 강생하는 소공동체'를 주제로 한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 발표에 이어 안호석(광주대교구 학운동본당 주임) 신부와 정복동(청주교구 감곡본당) 전 골롬반회 평신도선교사의 사례발표로 마무리됐다. 강 주교는 "우리는 세상의 문제들과 무관하게 살 수 없다"면서"소공동체의 존재 가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연대하고 지혜를 모으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주제발표: 세상 속에 강생하는 소공동체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회의 의장) 주교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진 성인ㆍ의인들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향한 순례를 시작한 이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교회는 항상 세상 속에 살아야 하고,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르코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단순히 종교적 가르침이나 교리의 깨달음을 전하러 오신 분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불의한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해 스스로 망설임 없이 악의 권세에 선전포고를 하고 권세를 쫓아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신 구원사업을 이어받아 추진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가톨릭 신앙인이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고 하지만, 세상의 문제들과 무관하게 살 수는 없다. 정치ㆍ경제 문제라고 해도 그것이 윤리적 측면을 지니게 되면 찬성과 반대를 선택해야 한다. 세상 많은 일들의 배경에는 정의 문제와 윤리적 가치가 엮인 문제가 서로 연결돼 있다. 지난해 3월 일본 동북부 지진과 함께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4기가 파괴돼 인근 주민 20만 명이 집을 잃고 실향민이 됐다.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동경전력회사와 정부가 하는 이야기, 즉 원전은 절대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발전소라고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후쿠시마 지역 전력회사는 동북전력이란 다른 회사가 관장하고 있는데, 이 지역 원전은 동경전력 소속 발전소다. 이 사실은 동경전력 소속 원전이 동북지역 주민들을 위한 전력을 생산한 것이 아니고 송전탑으로 200㎞ 남쪽의 동경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전소라는 것이다. 사고가 나고 나서야 주민들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도 아니고 동경지역 사람들이 쓰는 전기를 공급해 주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는가. 또 일본 사회 전체에 원전 윤리성 문제가 대두됐다. 풍요로운 도시민들이 풍족하게 전기를 쓰도록 농촌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정책이 용납돼도 되는가. 올해 1월 22일 이치수라는 74살 노인이 분신하고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한전이 신고리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송전탑을 세워야 하는데 이 노인의 농토에도 송전탑을 세우게 된다고 통보를 해왔다. 그런데 이분의 농토는 시가로 10억 원 가까운데, 한전은 불과 880만 원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노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도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신고리원전은 전적으로 수도권 주민들이 쓰는 전력을 증산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예수님 제자로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고 한다면, 이웃의 기본적 권리를 옹호하고 존중할 줄 안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회 문제들은 혼자서는 알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복잡한 사안이다.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연대하고 지혜를 모아 협력해 나갈 때 비로소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들이다. 소공동체의 존재 가치는 이런 데 있다. 소공동체가 성서말씀을 나누며 기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다과만 나누고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소공동체소위원회 주최로 12일 전주 전동성당에서 열린 세 번째 지역모임에서 강우일 주교가 '세상 속에 강생하는 소공동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사례발표1: 소공동체와 생명, 평화, 정의의 실현안호석(광주대교구 학운동본당 주임) 신부 교회의 미래 사목은 소공동체 사목이어야 함을 깨닫게 됐다. 어느 날, 후배 신부들 몇몇과 소공동체 전국모임을 함께 갔는데 거기에서 참된 교회 모습을 발견했다. 사목자가 소공동체를 하면서 '예수님을 살고 교회를 살고 복음을 사는 것'을 즐기면 사목이 절대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목자들이 소공동체를 어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피곤함 때문이다. 그래도 교우들에게 소공동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시키자면 사제가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교회 사목 대부분은 교리와 신심단체 중심 사목이었고, 본당 교우들 관리와 재정 유지, 건물 관리에만 급급했다. 물론 상황이 그러면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 복음화를 할 수 있는 참된 사목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사목자들이 조금만 더 뛰면 본당이나 공동체가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본당 사목의 모든 실천들이 사목자 지향에 달려 있다. 사목자는 본당 교우들에게 다양한 사목적 배려를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다양한 평신도 사도직과 신심운동은 물론이고, 사회복음화를 위해서 시대 징표를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그리고 사목자는 교우들에게도 이러한 현장체험을 통해 시대적 징표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도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길은 '사회복음화'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각 교구장과 본당 사목자에게 달려 있고, 소공동체를 통해서만이 교회적이고 복음적으로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고 본다. 본당 사회복음화 운동의 바람직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로 '되살이운동'이다. 소공동체 사도들이 되살이 판매장을 운영하면서 지역민들에게 믿을 수 있는 우리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교회를 신뢰하게 했다. 둘째로 이주민들을 위한 봉사다. 어떤 본당에서는 전임 사목자가 빈첸시오회 대신 재가복지회를 만들어 홀몸 어르신들과 빈곤한 이들에게 소공동체별로 봉사를 이끌었다. 셋째로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본당이 홀몸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 성경대학을 열거나 장애노인들을 위해 소공동체가 차량 봉사를 하는 것 등이다. 또한, 레지오가 아닌 구역별로 시간을 정해 연도를 하는 것, 구역 소공동체별로 1년에 한 번씩은 공소를 방문해 체험하는 것 등은 도ㆍ농간 친교를 다지는 데 좋은 계기가 된다. ■사례발표2: 하나의 평신도로 살아가며정복동(아녜스, 청주교구 감곡본당) 전 골롬반회 평신도 선교사 1993년 서울 신림동 달동네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던 어느 날 본당에서 구역별 소공동체 피정 일환으로 교육을 받게 됐다. 복음나누기 7단계를 하면서 6단계에서 함께 소공동체가 할 일을 논의하다가 지역 당면 과제 중 하나인 공부방 이주작업을 시작했다. 3~4년 동안 우여곡절 끝에 재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철거 전에 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임대아파트에 이주했다. 그러나 정부는 내가 살던 공부방은 함께 입주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홀로 폐허가 된 동네에서 지내야 했다. 공부방 이주작업은 주민들이 집단 이주한 임대 아파트에 공부방을 옮기는 것이었다. 구역에서 조를 짜 매일 밤 내가 사는 공부방에 함께 와서 시간을 보냈고,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작성해 보내기도 했다. 이사 후 결국 후배에게 공부방을 물려주고 그 지역을 떠났다. 현재까지 그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지역사회에 역할을 하고 있다. 소공동체 배려 덕분이었다. 선교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골롬반회에 입회해 대만으로 첫 파견될 때 낯선 땅에서 선교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느님께 나를 온전히 의탁해 그분의 도움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스스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되는 체험이었다. 복음을 묵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 온몸으로 복음을 쓰고 나눠야 함을 알았다. 선교를 통해 우리 스스로 복음화되고 그 복음을 함께 나눠야 한다. 이 바탕 위에서 교회도 나 자신도 끊임없이 쇄신해야 한다. 교회는 다문화 가족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배려해야 할 지 조금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방인들에게 잘 대해주라는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 가족과 이웃이 된 이주민들을 교회와 소공동체 모임이 진정 식구로 맞아들이고 있는지, 어떻게 함께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내가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이 나를 따뜻한 친구와 가족으로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행복한 선교사로 살 수 있었다. 그렇듯이 이주민 여성들을 포함한 다문화 가족들이 곧 우리나라에 파견된 또 다른 선교사들 모습이다. 강성화2012.09.18

교구설정 75돌 맞은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인터뷰빛고을 환히 밝히는 복음의 빛 되길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7일 교구 설정 75주년 및 대교구 승격 50주년 기념 감사미사에서 이날부터 14일까지 8일간을 '기념주간'으로 선포하며 교구민들이 지역 복음화를 이루는 '빛'으로 거듭날 것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김 대주교는 9월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가 그 지역과 시대의 필요와 요청에 응답해 '세상의 빛'이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교구 설정 100주년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는 교구가 선과 의로움, 진실을 밝히는 빛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결 과제 청년 복음화, 냉담 교우교구 성년, 교구장 비전 선포 통해전대사 은혜 주고 공동체성 회복신앙의 해 맞아 복음 증거 독려 -기념축제 주제어가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입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광주대교구는 1937년 교구 설정 이래 광주ㆍ전남 지역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국 가톨릭원조회를 통해 굶주리는 가난한 이웃을 살리는 데 동참했고, 목포 성골롬반병원은 자선병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빛'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교구는 지역민과 함께 생명을 보호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데 함께 했습니다. 빛의 자녀로서 소명을 되새기며, 교회 안에만 머무는 빛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자는 다짐입니다." -교구 역사 75주년을 돌이켜볼 때, 가장 중요한 사건 3가지를 꼽자면 무엇이겠습니까. "레지오 마리애 도입,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대교구 승격입니다. 1953년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시작한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교회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면서도 기도로 무장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이와 함께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교구 사제들은 시민들과 함께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가톨릭교회에 신뢰를 보냈고 교회 위상도 더불어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교구가 1962년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대교구로서 위상에 걸맞게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대교구 승격과 함께 문을 연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은 사제가 부족한 교구에 큰 힘이 됐습니다." -현재 교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07년 한국 주교단이 교황님을 방문했을 때 청소년ㆍ청년과 냉담교우에 대한 사목 적 배려를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저 역시 이 두 가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제단 일치를 강화하고,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 공동체성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기념주간 마지막 날 축제미사를 봉헌하면서'교구 성년 선포'와 '교구장 비전 선포'를 할 예정이십니다. 이 선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습니까. "희년을 맞이한 교구민들이 은총의 해를 보내도록 전대사를 받을 기회를 줄 것입니다. 지구마다 지정된 본당을 순례한 신자들은 기도와 참회, 고해성사와 미사참례를 모두 마치면 전대사를 받아 성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 신앙의 해를 잘 보내도록 다양한 교육과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교구가 나갈 방향을 공동체성 회복에 두고 '하나 됨의 참 기쁨을 누리는 우리 교구'라는 표어 아래 △청소년ㆍ청년을 위한 지원 △소외된 이들과 이주민 배려 △사제단 연대와 지구사목 강화에 힘쓸 것입니다. -신앙의 해와 교구 성년을 맞은 교구민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랍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신앙의 가치가 기준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신앙이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배우며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실천하지 않는 복음 선포는 헛된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순교자적 정신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민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지역이 민주화의 성지라 불린다면, 과연 우리 지역 모든 곳에서 민주적 가치가 구현되고 있는지 냉철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포용력을 가지고 민주화 전통을 되살려야 합니다. 민주적 가치를 지역 울타리안에만 가둔다면 박물관 골동품과 다름 없습니다. 선과 진리의 가치를 존중하며 지역 울타리를 벗어나길 바랍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사진=장재학 명예기자 bio2583@박수정2012.10.09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28. 사제 양성 교령](//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67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28. 사제 양성 교령성소증진, 사제 양성은 모든 그리스도인 책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이하 사제 양성 교령)은 공의회 제4회기 때인 1965년 10월 11일 통과돼(찬성 2318, 반대 3) 10월 28일 제7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공포됐습니다. 보편교회 차원에서 사제 양성에 관한 가르침을 새롭게 제시한 것은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때인 1563년 성품성사에 관한 교리를 선포하면서 사제 양성 법규를 제시한 이후 400년 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목자 양성에 필요한 일반 원칙을 담고 있는 사제 양성 교령은 신학생들에게 타 종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제시한다. 사진은 지난 6월 정교회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부제들. 교령은 서론에서 민족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기에 공의회는 사제 양성에 관한 일반 원칙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고 "그 지역의 사목적 요구에 언제나 부합하도록" 각 나라나 예법(전례)에 따라 고유한 사제 양성 지침을 각국 주교회의가 제정하고 개정해 사도좌 승인을 받아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항). 교령은 이어 사제 성소 증진에 관해 언급합니다(2~3항). "성소 증진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의 의무"(2항)이기에, 하느님 백성 전체가 기도와 보속, 강론과 교육, 성소 기구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성소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성소 증진을 위한 노력을 강조한 후 교령은 사목자 양성을 직접 목표로 하는 대신학교의 사제 양성에 관한 원칙들을 △학교 규정(4~7항) △영성 교육(8~12항) △교회 학문 과정 개편(13~18항) △사목 교육 증진(19~21항) △계속 교육(22항)으로 나눠 제시합니다. 교령은 대신학교에 관한 규정과 관련, 신학교 장상들과 교수진을 "가장 뛰어난 인재들 가운데서 발탁해야 한다"면서 모든 사제들은 "신학교를 교구의 심장으로 여기고 신학교에 기꺼이 협조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5항). 성소 심사와 관련해서는 비록 사제가 부족하고 안타깝다 하더라도 언제나 확고한 기준을 적용해, 합당한 사람들을 진급시키고 부적합한 사람을 제때에 다른 임무를 찾아가도록 어버이로서 지도하라고 당부합니다. 또 각 교구가 자기 신학교를 제대로 설립할 수 없는 곳에서는 여러 교구 또는 그 지역이나 국가 전체에 공동 신학교를 설립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6~7항). 교령은 영성 교육과 관련, 교회 정신과 순명 교육뿐 아니라 정결 교육과 인간 성숙 그리고 사목 수련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영성 교육은 △학문 교육과 사목 교육과 직결돼야 하며 △학생들이 성삼위와 끊임없는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이뤄져야 합니다. 또 "교회 관습이 권장하는 신심 행위도 열심히 실천해야 하지만 영성 교육이 신심 행위에 그치거나 종교적 감정만을 키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8항)고 지적합니다. 신학생들은 사제적 순명과 가난한 생활 방식, 극기 정신의 배양에 각별히 힘써야 하며, "허용되는 것이라도 유익한 것이 아니면 기꺼이 끊어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한다"(9항)고 교령은 적시합니다. 또 독신 생활은 "교회법의 명령일 뿐 아니라 겸손되이 간청해야 할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이라고 밝히면서 신학생들의 "생활과 활동이 독신 생활 때문에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고, 몸과 마음을 더욱 철저히 다스리고 더욱 완전한 성숙에 이르며, 복음의 참 행복을 더욱 완전히 깨닫게 해야 한다"(10항)고 강조합니다. 인간 성숙과 관련, 신학생들은 특별히 △정신의 안정성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사건들과 인간들을 정확히 판단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 뿐 아니라, △진실한 마음 △변함없는 정의감 △약속을 지키는 신의 △정중한 행동 △사랑으로 나누는 점잖은 대화를 존중하도록 배워야 합니다(11항). 교령은 또 영성 교육의 더욱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고 신학생들이 심사숙고한 후 자유 의사로 성소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적절한 기간을 영성 수련기로 설정하고, 나아가 얼마동안 휴학기 또는 사목 수련기를 두어 사제직 후보자의 적성을 더욱 충분히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12항). 교회 학문 과정 개편(13~18항)과 관련, 교령은 신학생들이 고등학문을 받을 수 있는 인문 교육과 과학 교육을 받아야 하고 라틴어 지식을 배양해야 할 뿐 아니라 전례 언어와 성경 언어에 대한 지식도 증진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또 교과 과정에서는 철학과 신학 과목들을 적절히 조화롭게 편성해 신학생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특별히 교회 학문은 상당 기간 입문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입문 과정은 신학생들에게 교회 학문의 의의와 체계, 사목적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고 아울러 신앙을 토대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철학 연구는 신학생들이 "특히 인간과 세상과 하느님에 대한 건실하고 일관성 있는 지식을 얻도록 이끌어야"(15항) 하고, 신학 과목들은 "신앙의 빛 안에서 교회 교도권의 지도를 받아" 신학생들이 "가톨릭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자기 영성 생활의 양식으로 삼도록 또 사제 교역에서 이를 선포하고 설명하고 수호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16항)고 교령은 밝힙니다. 또 성경을 비롯해 교의신학과 윤리신학, 교회법 등 과목들이 어떻게 개편돼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이 밖에도 갈라진 교회와 교회 공동체들을 더욱 충분히 이해하고 교회 일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도록 이끌고 다른 종교들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교령은 강조합니다. 사목 교육 증진(19~21항)과 관련, 교령은 신학생들이 교리교육, 설교, 전례 거행, 성사집전 등 사목 임무 수행에 직접 필요한 교육뿐 아니라 적절한 대화 교육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인간관계의 여러 상황에서 사랑의 정신으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19항)고 지적합니다. 또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의 도움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사도직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하고 신학교 밖에서의 실습 교육을 통해 이론만이 아니라 실습으로 사도직 수행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교령은 끝으로 신학교 교육 과정을 마친 뒤에도 계속 교육이 필요함을 지적하면서 이를 위해 각국 주교회의들이 더욱 적합한 수단들을 활용할 것을 주문합니다(22항). 사제 양성 교령이 제시하는 이런 기본 원칙과 그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2년에 발표한 교황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 등을 토대로, 한국 천주교회는 2001년 교황청 승인을 받아 「한국 사제 양성 지침」을 마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각 대신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양성 지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2.07.17
![[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상)-치키토스에서](//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5830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상)-치키토스에서김일옥(헬레나) 예수성심시녀회볼리비아 정글에는 10대에 아이를 낳은 '소녀 엄마들'이 많다. 우리 눈에는 아이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 필자) 1998년 남미 볼리비아로 떠나라는 명을 받고 볼리비아 제2의 도시 산타크루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성 프란치스코 마을로 왔습니다. 그곳에서 어렵게 셋방을 구해 선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웃통을 훌렁 벗은 채 반바지만 입고 버젓이 거리에 나와 앉은 옆집 아저씨들, 마치 수영장에 온 것 같은 아줌마들 옷차림….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람들 사이에 울타리도 없는 집에서 우리 또한 편안한 차림으로 시멘트바닥에 누워 한낮 더위를 식히곤 했습니다. 밤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며 예수성심 사랑을 전하고, 이들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살다가 2001년 다른 소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모든 것이 작은 마을, 치키토스 주님께서 볼리비아인들에게 연민을 품고 사는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2009년 다시 이곳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번에는 산타크루즈에서 동북쪽으로 300㎞ 떨어진 치키토스(Chquitos) 중심에 있는 콘셉시온 마을이었습니다. 치키토스('작다'는 뜻)는 사람도 적고, 집도 작고, 모든 것이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처음 볼리비아에 왔을 때는 출입문만 있고 창문도 방문도 없는 셋방에서 생활했습니다. 밤이면 불빛을 보고 모여드는 온갖 벌레들과 씨름을 했고, 비가 오면 방이 한강으로 변해 자다 일어나 빗자루질을 하며 살았습니다. 콘셉시온 마을에서는 방문과 창문, 방충망까지 있는 좋은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살고 있는 각종 해충들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만여 명이 살고 있는 콘셉시온 마을에는 크고 작은 공동체가 50여 개 있습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갈라서 남쪽은 멕시코 수녀님들이 담당하고, 우리 수녀회는 북쪽에 있는 22개 지역을 맡았습니다. 4개 공동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 주변에 인접해 있지만 나머지 18개 정글공동체는 가까운 곳은 5㎞, 먼 곳은 124㎞나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 공동체까지 가려면 왕복 10시간이 넘는 긴 여행을 해야 합니다. 정글 속 길을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고, 얼마 전까지 웅덩이였던 곳이 늪으로 변해 있기도 합니다. 자동차가 고장나 숲 속에서 다른 차량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정글여행은 많은 시간과 무한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정글에 있는 여러 공동체들을 찾아다니며 신부님을 도와 세례ㆍ견진ㆍ혼인성사, 첫영성체 교리교육을 담당합니다. 13~14살이 되면 임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이가 아이를 낳는 꼴입니다. 아빠 없는 아이들을 기르는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위생교육과 성교육을 합니다. 또 이것저것 재료들을 준비해 가서 뜨개질, 바느질, 자수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침술치료를 할 줄 아는 수녀님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에게 침을 놓아줍니다. 정글에서 침술치료는 명성이 높습니다. #기다림과 가난을 배우며 이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기다림과 가난을 배웁니다. 무엇을 하든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여유롭습니다. 인터넷도 전기도, 수도도 없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버스도 없어 정글공동체에 살고 있는 이들이 마을까지 나오려면 나무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몇 시간, 심지어 며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우리 돈으로 3000원이 없어 심한 치통을 앓고 눈이 짓무를 정도로 아파도 이들은 병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돈을 아끼기 십리 길을 걸어갑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흘리며 걸어다니는 이들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조금 더 기다립니다. 그리고 불편과 가난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퇴사자22012.09.11

영화 '피에타'의 '피에타'를 를 아시나요?연약한 두 팔로 껴안은 슬픔의 무게는 김기덕 감독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피에타(Pieta)라는 단어가 새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엄마를 자처하는 여인(조민수)이 남자 주인공(이정진)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촬영한 영화포스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이 구도는 매우 익숙하다. 그리스도교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미켈란젤로(1475-1564)의 걸작 피에타상에서 차용한 구도다.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에 들어서면 순례객 시선을 사로잡는 미켈란젤로 부나로티의 '피에타'. 대리석, 높이 174㎝. 성모 마리아는 극도로 절제된 슬픔으로 구원에 대한 갈망을 더 한층 끌어 올린다. '연민' '자비'라는 뜻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무릎에 끌어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표현한 교회미술의 대표적 이미지다.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에 들어서면 입구 오른편에서 순례객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다. 순례객들은 투명 방탄유리 너머 불빛 아래에서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인간적 슬픔과 비통함을 느낀다. #성모의 절제된 슬픔 압권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는 고통과 슬픔을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한참 벗어난 고통이나 슬픔은 인간을 돌로 만들어버린다. 마리아에게 예수는 구세주 이전에 매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이다. 아들의 처참한 주검 앞에서 혀가 굳고, 손발이 굳어 몸이 석화(石化)되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묘사한 마리아의 비통함이 그러하다. 그 위에 아들을 인류 구원의 희생제물로 바쳐야 하는 여인이 겪어야 할 숙명적 슬픔이 얹혀 있다. 만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14세기 독일에서 발굴된 '뢰트겐 피에타'처럼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으로 묘사됐더라면 불후의 명작 목록에 올랐을지 의문이다. 뢰트겐 성모의 얼굴은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다. 예수도 굶주려 앙상하게 뼈만 남고, 목은 뒤로 젖혀졌다. 인체의 이상적 비례와 균형을 추구한 미켈란젤로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다. 미켈란젤로의 성모는 눈물을 삼키고, 슬픔을 절제한 얼굴이기에 사람들을 더 깊은 슬픔과 연민으로 이끈다. 피에타는 성경에 나타나는 장면이 아니지만, 그동안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 작가와 시대정신에 따라 표현양식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어머니의 비애는 보편적 정서이기에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피에타의 문헌상 기원은 매우 오래됐다. 6세기에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성모의 고통을 묘사한 시가 지어졌다. 서방교회에서는 13세기부터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슬픔의 성모)'라는 기도문 내용이 음악과 도상(圖像)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두 팔로 인류의 모든 슬픔 끌어안아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성베드로대성전 피에타상 앞에서 끝을 맺는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헤맨 지 9개월째인 화자 '너'(딸)는 엄마의 체취가 느껴지는 성모에게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피에타상 앞에 장미묵주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 숨을 거둔 아들의 겨드랑이를 감싸고 있는 성모의 손가락들이 길게 뻗어나와 너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 아들의 팔과 다리가 어미의 무릎에서 평화롭게 늘어져 있었다. 아들은 죽어서도 위로받고 있었다. … 창세기 이래 인류의 모든 슬픔을 연약한 두 팔로 끌어안고 있는 여인상을 보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는지도 … 눈물이 한 방울 너의 감은 눈 아래로 흘러내렸다."(280~282쪽) 한편, 교황청이 발행하는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예술비평가 펠레그리니의 글을 실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호평했다. 펠레그리니는 "갑자기 사라진(채무자들에게 납치된) 어머니로 인해 아들은 처음으로 고통을 느끼고 범죄 현장에서 자비를 갈구한다. 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어머니의 비밀로 인해 '피에타'는 복수가 되기도 하고, 용서가 되기도 하며, 속죄가 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김원철2012.09.25
![[성경 속 상징] (103) 행렬- 야곱의 장례행렬 보기 드문 장관](//cpbc.co.kr/CMS/newspaper/2011/01/rc/365309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03) 행렬- 야곱의 장례행렬 보기 드문 장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신년하례미사, 성유축성미사, 사제성화의 날 등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에 모여 함께 미사를 드릴 때면 사제들은 성당 밖에서 입당을 위해 길게 줄을 선다. 사제단이 많이 모일 때에는 명동대성당을 반 바퀴나 돌 정도로 행렬이 길 때가 있다. 행렬(行列)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줄지어 감, 또는 그런 줄'이지만 교회에서는 '사제와 신자들이 열을 지어 행진하는 종교의식'이란 뜻이 있다. 따라서 행렬은 그리스도교 의식의 한 요소이기도 하고, 대중의 신심을 비공식적으로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들에서는 나라 수호성인 축일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수호성인 축일에는 성인상(像)을 모시고 거리를 행렬하는 축제를 벌이곤 한다. 이러한 대중 행렬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종교로 공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했으며, 중요한 의미를 갖고 거행됐던 특별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전례에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지주일행렬과 성체행렬도 중요한 행렬에 속한다. 성경에 언급된 가장 두드러진 정기적 행렬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전례의 일부로 거행된 행렬이다. "영광스러우신 분의 초막, 하느님의 집까지 환호와 찬미 소리 드높이 축제의 무리와 함께 행진하던 일들을 되새기며 저의 영혼이 북받쳐 오릅니다"(시편 42,5). 성경에는 야곱의 장례행렬에 대한 기록도 있다. 야곱이 죽고 요셉은 파라오에게 가나안 땅에 묻히고 싶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고, 이집트에서부터 가나안땅까지 야곱의 시신을 옮긴다. "이리하여 요셉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러 올라갔다. 그와 함께 파라오의 모든 신하와 파라오 궁궐의 원로들과 이집트 땅의 모든 원로, 그리고 요셉의 온 집안과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사람들이 올라갔다. 그들의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지방에 남겨 두었다. 또 병거와 기병까지 요셉과 함께 올라가니, 그것은 굉장한 행렬이었다"(창세 50,7-9). 성경에도 굉장한 행렬이라고 기록돼 있듯이, 야곱의 장례행렬은 아마도 성경에 기록된 장례행렬 중 보기 드문 큰 규모였을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 뒤로 환호하는 군중들의 행렬이 등장한다(마태 21,1-11). 이 행렬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악을 정복하고 환희로 가득 차 천국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행렬은 마치 승전한 장군이 그의 군대를 이끌고, 또는 포로들을 데리고 수도로 입성하는 로마 군대의 행렬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2코린 2,14). 우리는 과연 누구와 함께 어디로 행렬을 하고 있는 것일까?조은일2011.01.25

이탈리아 성서학자 엘레나 보세티 수녀마리아, 본당 사도직의 모델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본당사도직연구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성서학자 엘레나 보세티(선한 목자 예수 수도회) 수녀를 인터뷰하면서 두 번 놀랐다. 첫째는 이탈리아 가톨릭 TV 복음해설의 명진행자다운 조리 있는 말솜씨에, 그리고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보세티 수녀는 8월 22일부터 이틀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대강당에서 '성경 안에서 본 본당사도직 영성'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에서 30년 넘게 강의했던 보세티 수녀는 깊이 있는 성경 연구와 탄탄한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본당 사도직 수녀들에게 꼭 필요한 목자적 영성을 쉽고 명확하게 제시했다. 보세티 수녀는 "목자는 어머니와 비슷하다"며 "목자로서 본당 수녀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모성으로 평신도들의 영적성장에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여인으로 자신을 낮추면서도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따랐던 성모 마리아는 본당 사도직의 가장 이상적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또 "구약의 데보라 예언자, 미리암(모세의 누나) 등 성경 속 여성 지도자들을 통해 본당 사도직의 모범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은 슬기로운 행동으로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용서를 이끌어 냈습니다. 본당 수녀들도 이런 아비가일의 지혜를 통해 사목자, 평신도와 관계 안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보세티 수녀는 "성경은 이처럼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남성적 목자 뿐 아니라 여성적 목자상도 제시하고 있다"며 "본당 수녀는 사목의 보조자가 아니라 사제와 더불어 상호 보완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루카복음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인 요안나, 수산나 등 많은 여성들이 그리스도의 복음화 여정에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가정에서 어머니 존재가 그러하듯 본당에서도 영적지도자로서 본당 사도직 수녀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보세티 수녀는 현재 로마 클라렛티아눔대학과 모데나(Modena)에 있는 페리니 교리신학원, 이탈리아 '라디오 마리아'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등 활발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보세티 수녀에게 성경에 쉽게 맛 들이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매일 5분씩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이세요. 집, 사무실, 버스 어디라도 편한 곳을 정해 그날 복음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성경을 숙독하면서 하느님이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묵상하세요. 온 가족이 함께 하면 더 풍요로운 영적 양식이 될 것입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11.08.23
![[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②- '교도소와 시장에서 만나는 예수님'](//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1931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②- '교도소와 시장에서 만나는 예수님'이윤주 수녀(메리놀수녀회)이윤주(왼쪽) 수녀가 교도소 재소자들이 만든 공예품을 열심히 홍보하며 팔고 있다. 서울에 남대문시장이 있다면, 볼리비아 코차밤바 시내 한복판에는 '라 칸차(La Cancha)'라고 하는 커다란 재래시장이 있다. 식료품과 과일, 옷은 물론이고 가구와 잡화류, 신기한 토속 생산품 등 없는 게 없는 대형시장이다. 사고파는 이들로 날마다 북적대지만, 특히 수요일과 토요일은 전국 각지에서 신선한 식재료와 물품이 더 많이 들어오는 날이라 일주일에 두 번씩 '장을 보는 날'이 돼버렸다.#낯선 외국인의 진심이 통한 걸까 나 역시 매주 수요일 칸차에 간다. 장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장 한복판에 자리한 산 안토니오성당 바로 앞에 작은 가판대를 차려놓고 노점상이 되기 위해서다. 내가 일하는 교도소 수감자들이 작은 공예품들을 만들면, 난 그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아 그날 판 돈을 가져다 준다. 그 돈으로 수감자들은 한끼 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먹인다. 수감자들이 만드는 공예품들은 다양하다. 목공기술이 있는 사람은 나무 액자나 저금통, 조각상을 만들고, 뜨개질을 잘 하는 여성 수감자들은 손가방이나 아기옷 등을 만든다. 종이로 선물용 카드나 꽃, 인형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수감자들은 버려진 페트병이나 신문지 등을 재활용해 아름답고 실용적인 생활용품으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이런 물건을 팔면서 늘 느끼는 건 이들이 정말 손재주도 많고 창의적 아이디어도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좀 더 좋은 여건에서 자신들의 재주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들도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아무리 좋은 물건들을 만들어도 밖에 나가서 팔 수 있는 길이 제한돼 그들 재주도 그냥 묻혀버리고 생계 또한 막막하다. 그래서 봉사자들과 함께 물건을 받아 팔아주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처음엔 경험도 없는 내가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 서서 물건을 파는 게 쉽지 않았다. 외국인이 길거리에서 가판을 하니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고, 시 단속반에 걸려 쫓겨날 뻔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물건이 맘에 들어 관심을 보이다가도 교도소 수감자들이 만든 물건이라는 말을 듣고는 등을 돌리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럴수록 난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자고, 지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그들이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 수 있도록 관심을 나눠 주자고 호소했다. 낯선 외국인이 서투른 자신들의 말로 열심히 호소하는 그 진심이 통한 건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물건을 팔아주며 오히려 나를 격려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재소자들을 돌봐줘 고맙다는 인사까지 덧붙이는 사람들도 이제는 만난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과 돌봄이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사랑하고 돌보는 데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우는 순간이다. 장사가 잘 된 날은 가판대를 걷고 교도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하루종일 고생해도 몇 가지 팔지 못하는 날엔 돌아가는 길에 걱정이 한 가득이다. 그날 번 돈을 철창사이로 건네주며, "호세씨가 만든 나무저금통이 아주 잘 팔렸어요. 다음주에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 "마르타씨가 만든 꽃들이 아주 인기가 많네요" 같은 말을 건넬 때, 수감자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안 돼 건네주는 돈의 액수가 적을 때는 그들이 실망할까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아픈 아이들 약도 사야 할텐데, 물건을 더 만들 재료비는 있을지, 물값을 내지 못해 한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는데, 하는 생각에 나는 그저 걱정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농담까지 건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요, 수녀님. 다음 주에 더 팔면 되죠 뭐. 안 되면 그 다음주에 또 팔면 되고요. 저희들은 어차피 여기 쭈욱 있을 건데요, 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느긋한 지혜로움에 나는 또 한 번 감탄한다.#예수님은 처음부터 그곳에 계셨다 난 이제 교도소 식구들 말고도 시장 사람들과도 친구가 됐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늘 물건을 팔다보니 이웃 상인들과도 친해져 서로 도와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옷을 파는 아주머니와 구두 고치는 아저씨, 구걸하는 아이들, 작은 손수레에 냉차를 파는 할머니, 작은 기타처럼 생긴 전통 악기인 차랑고를 연주하는 거리 악사…. 모두가 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들이고, 내 이웃들이다. 또 내가 성당 문 앞에 가판대를 벌여놓고 호객행위(?)를 하며 장사를 하고 그야말로 성경 일화처럼 하느님 집 앞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놓는데도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미소로 성당 문을 열어주는 신부님도 든든한 후원자다. 내가 파는 물건에 관심을 가져주고, 왜 이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작으나마 성의를 보태고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나의 이웃들이니 이런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이 난 너무나도 감사하다. 가진 것은 없어도 삶의 활기와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교도소와 시장.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곳에 계셨다. 나는 그 두 곳에서,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 예수님을 만나러 힘든 줄도 모르고 날마다 나는 보따리를 이고 지고 그곳으로 간다.후원계좌 : 농협 351-0416-253553 예금주 : 메리놀수녀회 (Maloney, Jean Marie)오세택2012.11.20

무의탁자, 행려인의 육체, 정신적 상처 치유해주는 안식처(4)성가복지병원 성가소비녀회 운영, 12개 과목 진료 봉사유료병원서 무료병원으로 전환해 22년째하루 150여 명 환자, 한 해 2000여 명 찾아매주 두 차례 무료급식과 자립 쉼터 갖춰 성가소비녀회가 운영하는 무료 자선병원 성가복지병원에서 봉사자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황량한 광야에서 살아가는 형제들이 질병과 고통으로 지친 몸을 치료받고 쉬어가는 사마리아 여관. 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에 있는 무료 자선병원 성가복지병원(병원장 홍석임 수녀)을 두고 고 김성곤(프란치스코) 의사가 한 말이다. 그는 성가복지병원 초대 의무원장으로 16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생명의 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8층 건물에 12개 진료과목과 의료 봉사자 50명, 봉사자 2000명을 보유하고 있는 성가복지병원에 들어서자, 술에 취해 이동용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 행려인들이 보인다. 1층 로비에는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요한 21,7)라고 적힌 성경구절이 걸렸다. 병실 입구마다 "당신께 봉사함은 참으로 기쁩니다"고 쓰여 있다. 성가소비녀회가 운영해오던 유료 병원을 폐쇄하고 무료 자선병원으로 간판을 바꿔단 지 22년이 됐다. "다양한 질병을 앓는 행려인들을 지극정성으로 치료해드려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 꾀죄죄해져서 다시 옵니다. 배는 다시 복수가 차 불러오고, 술에 취해 들어와요." 병원장 홍석임(비앙카, 성가소비녀회) 수녀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건강한 사람의 판단인 거죠. 여기서 나가면 길거리를 전전하는데 옷이 더러워지는 건 금방이에요. 우리도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쳐 마음을 바꿨어요. 10번을 와도 처음 오시는 분처럼 돌봐 드리자고요." 홍 수녀는 "환자들이랑 실랑이도 하고, 때론 욕도 듣지만 우리 수녀와 직원들은 그때마다 웃는다"고 했다. 바닥에서 나뒹굴며 난동을 부려도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행려인의 순수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퇴원 후 근황이 확인이 안 되는 행려인들은 사회사업가 수녀들이 수소문해 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다시 알코올 중독의 유혹에 빠진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다. 진료를 받기 위해 성가복지병원에 드나드는 환자는 하루 평균 150여 명. 한해 2000명에 가까운 무의탁자, 행려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알코올 중독에 간경화나 당뇨 등 만성질환자가 많다. 성가복지병원은 무료 진료뿐 아니라 매주 두 차례 무료 급식을 실시해 행려인들의 허기도 채워준다. 자립을 희망하는 행려인들을 위한 쉼터도 갖추고 있다. 저소득층 무의탁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맞도록 호스피스 병동도 운영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간호사와 수녀, 신학생 등이 한 팀을 꾸려 인근 쪽방촌이 밀집된 마을과 임대아파트 등을 수소문해 가난한 환자를 찾아 나선다. 지금까지 가정방문으로 찾아낸 환자는 600여 명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임 프란치스코(51)씨는 "술 때문에 여러 번 입퇴원을 반복했는데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늘 가족처럼 치료해주신다"며 "몸을 회복시켜주고, 정신적 상처도 보듬어줘 휴식처이자 집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병실 봉사를 해온 유정희(모니카, 76, 노원본당)씨는 "생활이 어려웠는데 남편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편안하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면서 "고마움을 갚으려 봉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 병원은 많은 의료진과 봉사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나 역시 내가 하는 봉사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