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하)- 세상은 참 좁습니다](//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71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 호주 시드니(하)- 세상은 참 좁습니다우용국 신부(서울대교구)우용국 신부가 시드니 캐링바성당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십수 년 전, 한 외국인 수녀님께서 어느 젊은 간호사에게 '성소 모임'에 나가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성경에 관해 공부하는 '성서 모임'이라고 알아듣고 나가봤더니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간호사는 성소 모임에 계속 나가게 됐고, 결국에는 입회를 하고 종신서원을 거쳐 가난한 이웃과 임종을 앞둔 병자들을 위해 열심히 사도직활동에 임하는 수도자가 됐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그리고 그 부르심에 잘 응답할 때 그 열매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롭게 맺어지는 법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바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the Little Company of Mary)의 호주 출신 메리 트레이시 수녀님, 그리고 박 모니카 수녀님입니다. 메리 수녀님은 1970~8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에 기꺼이 한국으로 오셔서 30년 동안 의사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입니다. 신학생 시절, 행려자들을 위한 병원인 요셉의원에서 잠시 체험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메리 수녀님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선교활동에 대한 열망을 조금씩 키워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간호사였던 박 모니카 수녀님을 통해서는 성소에 대한 첫 마음을 다시금 살펴보고 조금씩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언제나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조력자로 보내주고 계십니다. 지난 1월 시드니대교구장님의 인사이동을 명 받고 시드니 남쪽에 위치한 캐링바본당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곳에서 메리 수녀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은퇴하신 후 호주로 돌아오셨는데, 바로 성당 근처에 있는 공동체에 계셨던 것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한국을 떠나 노년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바로 그곳 한국에서 온 젊은 사제가 고향 본당으로 오게 됐으니 '세상은 참 좁아요' 하시는 수녀님의 첫마디 말씀이 정말로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수녀님께서는 가난한 나라 한국으로 소임을 받고선 멜버른의대에 들어가 공부하고 의사가 되셨습니다. 그때 함께 소임받았던 여러 동료들이 공부가 힘들어 중간에 성소를 포기했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고 복음화가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 그리고 희생이 있어야 했는지, 이 좁은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늘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시드니와 서울 간 시차는 한 시간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로는 반년의 차이가 있어서 지금은 겨울이 점점 깊어가는 때입니다. 본당 내 학교들도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그래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 전화가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환절기에 접어들면서 병자성사와 장례미사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늦은 밤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가 자주 있는데, 임종을 앞두고 급하게 사제를 찾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얄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성당에 전혀 나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제 다급해지니 찾는구나, 게다가 한참 자고 있을 때만 찾는구나" 하는 지극히 게으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저분들이 이제 곧 주님 곁으로 갈 텐데, 조금이라도 잘 해드려야지 가서 내 얘기를 좀 잘 해드릴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귀찮은 일은 기꺼운 일로 바뀌었습니다. 모처럼 하늘에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까요. 제가 사목하는 캐링바성당이 위치한 이 지역은 서덜랜드 샤이어라는 곳으로, 시드니에서는 앵글로색슨족의 마지막 거주지라고 불릴 만큼 주민 대부분이 백인들로 이뤄진 곳입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섞여 어울려 살고 있는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고, 또한 영국 본토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많은 지역인 만큼 아무래도 가톨릭보다는 영국 국교회(성공회) 신자 비율이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양로원을 비롯한 노인복지시설들도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고, 그래서 검정머리 젊은 동양인 신부가 성직자 복장으로 방문할 때면 쉽게 주목받는 곳입니다. 물론 불편해하는 시선을 느낄 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친절하게 잘 맞아주시고 또한 부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현재 호주사회에서 성공회 교회들은 거의 활동이 멈춰 있을 만큼 쇠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드릴 때면 성공회 신자들도 많이 찾아와서 함께 합니다. 물론 성체를 함께 나눌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 하느님의 한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양사람이든 동양사람이든, 영국교회든 가톨릭교회든 그 껍데기는 비록 달라도,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같은 식구들이기에 구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비록 크고 넓게 보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작고 아담한 동산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을 언젠가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며, 종래에는 모두 한 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겠습니까. 비록 겉모습은 조금씩 다르고, 말도 사고방식도 차이점이 있지만, 그러나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로 이뤄진 한 가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서로 힘껏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양한 문화적ㆍ사회적 배경을 가진 민족들로 이뤄진 시드니에서의 여러 사목활동을 통해 다양성과 포괄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영어로 'diversity' 라는 말에는 이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서로 다른 그 많은 것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그 다양한 것들을 한데 포괄할 수 있는, 바로 그 영역의 확장이 복음화가 아닐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은 소통(communion: 친교, 영성체 모두 같은 뜻입니다)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포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는 사실을 매일 매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차단하고 배타적이 되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은 실로 너무나 좁은 곳입니다. 더욱 더 많은 후배 신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세계 곳곳의 많은 교구들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도 늘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습니다. 이 귀중한 기회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퇴사자22013.07.02

성모 승천, 구원의 영광 보여주는 희망의 표지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와 의미성모 승천 대축일은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림은 예루살렘 성모영면성당에 있는 '성모 승천' 이콘. 8월 15일은 성모 승천, 즉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진 것"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이날 모든 신자는 주일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 지내면서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를 짚어본다. ▨성모 승천 교리 성모 승천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다. 성모 승천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이는 4세기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오다. 당시 많은 교회 문헌이 승천을 비롯한 성모 마리아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에피파니오 주교는 성모 승천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했다. 지나친 성모 공경을 우려한 까닭이다. 성모 승천 교의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6세기 투르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다. 성모 승천 교의는 8세기 들어 신학적 근거를 갖고 대두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 알베르토(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보나벤투라(1217~1274) 등 신학자와 베네딕토 14세 교황(재위 1740~1758)이 이를 확인했다. 1870년께부터 교황들은 성모 승천 교의를 공식화하자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마침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은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 승천을 가톨릭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했다. 195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으며 지상 생활을 마치신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으시어,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으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셨다"(「교회헌장」 59항)며 성모 승천을 정통 교리로 재천명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신적 권능에 의한 능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부른다. 성모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마찬가지로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영광에 들게 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모 승천 대축일 유래 교회가 언제부터 성모 승천을 성대하게 기념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은 4세기께 안티오키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가 성모 승천을 공적으로 기념한 것은 5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축일로 지내면서부터다. 교회는 6세기께 이 축일을 '성모 안식 축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교회는 순교자와 성인들을 그들의 선종일에 맞춰 기념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성모 마리아가 하늘나라로 올림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성모 안식 축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동로마 제국 황제 마우리치우스(582~602)는 제국 전체가 이 축일을 지내도록 했다. 이 축일이 로마교회에 전해진 것은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피난 온 동로마 제국 내 수도원들 영향으로 추측된다. 세르지오 교황(재위 683~701)은 다른 성모 축일에서처럼 이날 행렬을 하도록 권함으로써 축일을 더욱 성대하게 지내는 데 기여했고, 레오 4세 교황(재위 847~855)은 팔부 축일로 지정했다. 니콜라오 1세 교황(재위 858~867)은 이 축일을 부활 대축일, 성탄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과 같이 대축일로 기념하도록 했다. 교회는 16세기 '로마 성무일도'에 성모 승천 팔부 축일을 삽입했다. 1970년 미사 경본 개정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전야 미사가 인정되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됐다. 현재 성모 승천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과 함께 교회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 가운데 하나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마리아 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함께 신자들이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축일로 지낸다. ▨성모 승천 의미 교회가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각별한 영예와 공경을 드리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구세사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다. 마리아는 처녀임에도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순명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데 일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사업의 뛰어난 협조자가 됐고,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됐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성모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도 육신이 부패되지 않고 영혼과 함께 하느님의 영광 속에 들게 됐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성모 승천은 우리에게 희망의 표지가 된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74년 발표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가 바라던 종국적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일"이라고 밝혔다. 성모 승천은 구원의 역사가 완성됐을 때 그리스도를 따랐던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생을 하느님 뜻에 순명한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모 신심과 한국교회 성모 승천 대축일과 한국교회는 각별한 인연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고, 3년 뒤 같은 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광복절과 대한민국 건국일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면서 신자들 사이에는 해방과 건국이 한국교회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가 도우신 결과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이는 또한 성모신심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사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초창기부터 활발했다.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꽃을 활짝 피운다.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퍼지던 성모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전수했다.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승인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서울 명동성당은 1898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다. 또 국내 첫 본토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1932년 설립됐다. 한국전쟁 직후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성모기사회 등 성모신심 단체들이 대거 한국교회에 진출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열어 다시 한 번 한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또 1984년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명동성당에서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를 마리아께 봉헌했고,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2000년 대희년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위해 묵주기도 3억 단을 봉헌하기도 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교회 성모신심은 이처럼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13.08.06
![[새 교황 탄생]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 시작으로 31명 배출](//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4234_1.0_titleImage_1.jpg)
[새 교황 탄생]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 시작으로 31명 배출교회사 속 수도회 출신 교황 누가 있나 1846년 그레고리오 16세 선종 이후 167년 만에 수도회 출신으로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됨으로써 교구와 함께 교회의 두 수레바퀴를 이루는 수도회 출신 교황들에 새삼 시선이 쏠리고 있다. 266대에 이른 교황 중 수도회 출신은 얼마나 되는지, 그 면면과 교회사에 남긴 발자취는 어떠했는지 관심이 일고 있는 것. 그렇다면 역사상 수도자로서 베드로좌에 오른 최초의 교황은 누구일까. 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다. 30살 젊은 나이로 로마 원로원 의장에 올랐던 대교황은 자신의 사저에 베네딕토 수도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성 안드레아수도원)을 만들고 베네딕도회에 입회했다. 시칠리아에 5개 수도원을 세워 묵상과 함께 성경과 라틴교부 문헌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러던 중 590년 교황직에 올라 게르만족을 개종시켰고, 「그레고리오 전례서」를 완성하는 등 광범위한 저술을 남겼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제정했고, '서방 수도자들의 제2의 대부'가 됐다. 이후 1420여 년에 걸쳐 베네딕도회와 클뤼니 수도회, 베네벤토의 소피아 수도회,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시토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도미니코회,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카말돌리회, 예수회 등 10개 수도회가 31명(11.65%)의 교황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베네딕도회가 가장 많은 12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베네딕도회 총연합에 속하거나 베네딕도회 계열인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시토회) 4명, 클뤼니 수도회 2명, 카말돌리회 1명까지 합치면 모두 19명이나 된다. 이어 도미니코회가 4명,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각각 2명씩 탄생시켰다. 이밖에 베네벤토의 성 소피아 수도회와 예수회도 1명씩 배출했다. ▶베네딕도회 대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64대)를 시작으로 보니파시오 4세(67대), 아데오다토(혹은 데우스데딧) 2세(77대), 성 그레고리오 2세(89대), 성 레오 4세(103대), 요한 9세(116대), 레오 7세(126대), 파스칼 2세(160대), 첼레스티노 5세(192대), 클레멘스 6세(198대), 우르바노 5세(200대), 비오 7세(251대) 등이다. 가히 유럽 교회의 주보성인인 '성 베네딕토'의 카리스마와 영성을 따르는 수도회답게 숫적으로 많은 교황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하느님 영광과 교회 건설, 세상 구원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빛나는 표징이 됐다.그레고리오 1세. ▶클뤼니 수도회ㆍ시스테르시안 수도회ㆍ까말돌리회 10세기 베네딕도회 개혁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해산된 클뤼니 수도회는 성 그레고리오 7세(157대)와 복자 우르바노 2세(159대)가 사도좌에 착좌했다. 13세기 들어 클뤼니회에서 개혁 주도권을 넘겨받은 '백의 수사들(white monk)' 시스테르시안 수도회 출신 교황은 에우제니오 3세(167대)와 루치오 3세(171대), 첼레스티노 4세(179대), 베네딕토 12세(197대) 등이다. 까말돌리회는 한국천주교회가 잊을 수 없는 교황, 곧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에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한 그레고리오 16세(254대)를 배출했다. ▶도미니코회 복자 인노첸시오 5세(185대)를 시작으로 복자 성 베네딕토 11세(194대), 성 비오 5세(225대), 베네딕토 13세(245대) 등을 배출했다. 교황이 입는 흰 수단은 도미니코회 출신인 비오 5세로부터 비롯됐는데, 이는 도미니코회 수도복과 그 색깔이나 형태가 비슷하다. ▶작은 형제회ㆍ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니콜라오 4세(191대)와 식스토 5세(227대)가 작은 형제회 출신이고, 식스토 4세(212대)와 클레멘스 14세(249대)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출신이다. '프란치스코 수도복을 입은 예수회원'이라고도 불린 클레멘스 14세는 1773년 예수회 해체를 요구하는 군주들 압박에 밀려 예수회를 해체했으나, 예수회는 41년 뒤인 1814년에 다시 허용된다. ▶기타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하드리아노 4세(169대)와 에우제니오 4세(207대)가 각각 사도좌에 올랐다. 또 베네벤토의 소피아 수도회도 복자 빅토리오 3세(158대)가, 예수회도 현 교황이 각각 사도좌에 착좌했다. 특히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주도로 종교개혁 당시 쑥밭이 된 서방 가톨릭교회의 부흥을 이끈 예수회는 설립된 지 473년만에 첫 교황을 배출하는 영광을 안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오세택2013.03.20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0> 마르코(하)](//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6050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마르코(하)광야·빈 무덤 지나 부활의 갈릴래아로빈 무덤을 찾은 세 여인이 예수가 부활했음을 알고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이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부활을 선포하고, 예수가 기다리는 갈릴래아로 가게 된다. 그림은 코르넬리우스(1783~1867)의 '무덤가의 세 마리아'.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강림한다. 하늘이 갈라질 정도로(마르 1,10) 강력한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내던졌다'(1,12). 마르코복음은 광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예수가 사탄을 제압하고 들짐승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3). 이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 11,6-9)하고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했다는 표지다. 마르코복음에서 광야라는 장소는 대단히 중요하다. 광야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 복낙원(復樂園)을 암시한다. 예수가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일 때 광야는 초원으로 변모한다(6,39-40). 이는 이사야서를 비롯한 묵시문학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예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성령의 활동 안에서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15)하고 말한다.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왔지만 여전히 감춰져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지 않는 한, 하느님 나라에 관한 어떤 말도 의미가 없다. 하느님 나라와 믿음이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하느님 나라 선포는 공동체가 더불어 수행해야 하는 공동의 소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자세다. 예수의 네 제자가 생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뒤따랐던 것처럼, 구체적 삶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1,18). 예수가 행한 치유와 구마(驅魔) 행위는 기존 질서와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다. 마귀는 성경에서 인간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둠의 세력인 동시에 공동체의 사회적 시스템, 또는 자연 배후에서 작용하는 세력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구마 행위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5장에 기록된 '마귀들과 돼지 떼' 에피소드다. 예수가 마귀 들린 이 앞에 나타나 이름을 묻자 그 안의 더러운 영들이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5,9). 이들은 예수에게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하지만 더러운 영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더니 호수에 빠져 죽는다(5,10??13). 마귀들의 이름을 군대라고 밝힌 것은 로마 군대를 연상시킨다. 이는 백성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로마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 나라는 미래에서 현재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현실이 변모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제국주의적 현실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수는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꼽음으로써(12,29), 인간의 궁극적 원리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예수는 성전 앞의 환전상과 비둘기장수를 쫓아내는 성전 정화사건(11,15)을 벌인다. 그리고 성전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파괴되리라고 암시한다(13,2). 또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행위를 금지시킴으로써 제구를 나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는 유혈제사를 비판하고,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11,17). 유혈제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빵으로 바꾸어 나누는 성찬례가 그리스도교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르코복음은 후반부에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16,8)고 진술한다. 빈 무덤에서 예수의 부활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이를 선포하기보다는 두려워서 스스로 입에 족쇄를 채우고 도망친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1장의 배경인 '광야'에 다시 놓인 것과 같다. 이처럼 마르코복음서는 광야에서 시작해 무덤으로 끝난다. 그러나 광야가 주님이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잠시 준비하는 곳인 것처럼, 무덤 역시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확인하는 장소로서 거쳐 가는 장소일 뿐이다. 때문에 제자들은 당혹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으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고, 예수가 기다리는 갈릴래아(16,7)로 향해야 한다. 이는 인간적 좌절과 실패, 두려움을 겪는 우리를 불러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초대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4.02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14> 4.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1)'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9616_1.2_titleImage_1.jpg)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4. 미사로 하나되는 신앙 (1)'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미사,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며 핵심 미사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뤄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미리 거행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7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CNS 자료사진】미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친교를 나누고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가 모두 하나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임을 확인하게 된다. 말씀과 성체를 받아모신 그리스도인은 다시금 영적 힘을 가득 채우고 일상생활로 파견(Missio)됨으로써 세상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헌장」 11항)이다. 미사의 기원 미사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이루신 최후의 만찬이다. "우리 구세주께서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식사 중에 당신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유다인들의 파스카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하셨다. 미사는 유다인들의 파스카를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뤄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미리 거행하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 때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다. 미사의 호칭들 성체성사의 풍요로움은 다양한 이름들을 통해 나타난다. △성찬례(Eucharistia: 감사제)-하느님께 드리는 감사행위를 의미하고 창조와 속량, 성화의 하느님 업적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의 만찬-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수난 전날 밤에 드신 최후의 만찬과 관계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과 관련되는 이름이다. △거룩한 희생 제사-성체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한다는 것과 교회의 봉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친교-이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해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거룩한 미사(Missa)-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가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미사의 구조 미사는 모든 세기에 걸쳐 거행됐다. 오랜 세월을 통해 오늘날까지 보존돼 온 기본 구조는 두 가지의 주요 부분으로 진행된다. 첫째, 모임과 독서와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로 이뤄지는 말씀 전례. 둘째, 빵과 포도주의 봉헌, 축성의 감사기도, 영성체로 이뤄지는 성찬 전례다. 성찬례에서 우리를 위해 차려진 상은 하느님 말씀을 듣는 식탁이며 동시에 주님 몸을 받아먹는 식탁이다. 이러한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복음 말씀이 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루카 24,13-35) 말씀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만나고 길을 가시던 도중에 제자들에게 성경을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어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루카 24,30)고 전해주고 있다. 1)말씀 전례 미사를 통해 우리는 말씀의 양식으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억하며, 선포하고, 마음에 새겨 간직하게 된다. 미사 때 듣게 되는 하느님 말씀은 전례주년에 따라 이뤄진다. 전례주년이란 한 해의 흐름 안에서 그리스도의 강생부터 성령강림 날까지, 더 나아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기념하는 것이다. 특히 말씀의 식탁에서 중요한 것은 단연 복음이다. 그래서 다른 독서와 다르게 공동체가 모두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하고 가장 큰 경의를 표하게 된다. 2)성찬 전례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 영적 양식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이 펼쳐진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파스카 제사와 잔치를 제정하시고, 이를 통해 십자가의 제사가 교회 안에서 언제나 지속되게 하셨다. 사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해, 주님께서 행하셨고 당신을 기억해 행하도록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십자가상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함으로써 그 구원의 효과가 우리 안에 현실화된다. 또한 이 예식 안에서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가 하나인 생명의 빵, 세상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영한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룬다. 미사의 준비 미사의 본질은 제사다. 예수님은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로 감사와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고,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지속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에 따라 각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그에 합당한 복장과 행동, 음식 등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미사에 참례할 때도 그에 합당한 복장과 행동이 있고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1)미사의 지향-미사는 전례주년에 따라서 지향이 바뀐다. 미사 지향에 따라서 독서와 복음, 기도문, 성가도 변한다. 대림시기, 성탄시기, 연중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 등 오랜 시간 동안 지향을 지니게 되는 기간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여러 성인의 대축일, 축일, 기념일 등에 따라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지향이 변하게 된다. 따라서 미사에 참례하기 전에 미사의 지향을 미리 확인하고 독서와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하는 것은 미사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받을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또한 미리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할 때 강론을 통해 하느님 말씀인 복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2)고해성사-바오로 사도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양심 성찰을 권고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중한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미사에 참례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얼룩을 씻어내는 준비가 필요하다. 3)공복재-성체를 영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이 공복재는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동안 물과 약 외에 어떤 식음도 삼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이나 질병에 걸린 이나 기타 사유로 심신이 병약한 이들과 이들을 간호해야 하는 이들은 비록 한 시간 이내에 조금 먹었더라도 성체를 영할 수 있다(교회법 제919조 참조). 4)복장-거룩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몸가짐과 복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제사 때에 반바지나 짧은 치마, 맨발로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례할 때 집에서 입는 옷차림이나 식료품 가게에 가듯이 옷차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는 만큼 주님을 뵈옵기에 합당하게 자신의 옷 중에 품위 있고 깨끗한 옷을 입고 참례해야 한다. 신앙의 해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신앙의 쇄신과 신앙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며 정점인 미사를 올바로 알고 잘 준비해 참례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기본이며 신앙의 해를 올바로 살아가는 자세일 것이다. 그 어떤 기도보다 더 많은 은총의 보화를 지니고 있는 미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와 평화와 지혜를 얻고 영성체를 통해 영혼의 양식과 구원의 은총을 받아 더욱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이정준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기획실)cpbc2013.08.20
수원교구 분당성마태오본당 설립 17주년 맞아 성미술전, 15~23일'찾아가는 종교미술관…' 찾아오세요'Logos의 암호', 조광호 신부 작 수원교구 분당성마태오본당(주임 방상만 신부)은 설립 17주년을 맞아 15일부터 23일까지 성당 내 갤러리에서 '찾아가는 종교미술관-그림으로 하느님을 만나다'를 주제로 성미술전을 연다. 지폐 5만 원권의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이종상(요셉) 화백을 비롯해 조광호(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장)ㆍ나경환(수원교구 가톨릭미술가회 담당)ㆍ김태원(원주교구 가톨릭미술가회 담당) 신부, 김미영(서울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수녀, 추원교(요셉, 한양대 디자인대학) 교수, 한진섭(요셉, 조각가)씨 등 유명 미술가 24명이 참여한다. 십자가의 길 14처를 소재로 한 작품부터 성경 구절을 표현한 작품까지 회화ㆍ조각ㆍ공예ㆍ유리화ㆍ이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다. 본당 성미술부가 기획해 성당에서 여는 전시회지만, 참여 작가와 규모 면에서 대형 갤러리에서 열리는 성미술전에 뒤지지 않는다. 15일 오전 11시에는 체칠리아앙상블과 마태오 청소년오케스트라의 개막 연주회가 열린다. 분당성마태오본당은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수준 높은 성미술 세계를 선보이기 위해 성미술 작가와 사제, 수도자들에게 작품을 요청해 이번 전시회를 성사시켰다. 본당은 2년 전에도 김수환 추기경 추모 사진전과 미술전 '내마음에 그림 하나'를 열었듯이, 성당 공간을 문화복음화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문의 : 031-711-4268, 분당성마태오본당 사무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09.04
![[책으로 읽는 영성] 14. 우정](//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1917_1.0_titleImage_1.jpg)
[책으로 읽는 영성] 14. 우정성실한 친구, 최고 보물이요 명약우정(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성서와 함께) 안셀름 그륀 신부가 전하는 우정 예찬론이다. 그륀 신부는 성경 말씀은 물론 성인과 학자, 시인들이 남긴 기록에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우정이 지닌 아름다움을 전한다. 집회서는 성실한 친구를 피난처, 보물, 생명을 살리는 명약으로 설명하며 성실한 친구가 얼마나 값진 존재인지를 말하고 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집회 6,14-16).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는 "친구가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성인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며 책을 저술했다. 친구들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켜 나갔고, 그들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위대한 신학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일깨워준 것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친구와 함께 가면 어떤 길도 멀지 않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친구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며, 용기를 내도록 북돋워준다.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인으로 살아간 작가 젠타 마우리나는 "새에게 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는 지상의 먼지 위로 자신을 들어 올려주는 우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예수님과도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서 "예수님에 대한 우정은 사람들 영성에 따뜻하고 인간적 요소를 심어준다"고 했다. 예수님 역시 당신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며 우정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친숙하게 지내며 자신의 감정과 경험, 지식과 사랑을 기꺼이 나누셨다. 그륀 신부는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이며, 친구와 대화하듯이 그분과 다정하게 대화할 수 있고, 그분이 우리 길을 동반하시며 당신 생명도 돌보지 않는 헌신적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우정의 본질은 진정으로 완성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퇴사자22012.11.20
![[성경 속 궁금증] (1) 왜 농부는 바위에 씨앗을 뿌렸을까요?](//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5317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궁금증] (1) 왜 농부는 바위에 씨앗을 뿌렸을까요?요즘 파종법과 전혀 달라 씨 뿌리는 사람(고흐 작, 1888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마르 4,3-8).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씨를 뿌리는 사람 비유를 들어 가르치신다. 이 비유는 공관복음 모두에 등장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비유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신다. 여기서 씨는 하느님 말씀이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이시고, 땅은 인간 마음을 뜻한다. 씨앗이 길에 떨어진 것은 사탄이 와서 뿌려진 말씀을 앗아가 버리는 것을 비유한다. 돌밭은 환난이나 박해가 생기면 쉽게 넘어지는, 믿음의 뿌리가 약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가시덤불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에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땅은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여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충실한 신자를 비유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 궁금증이 밀려온다. 농부가 왜 처음부터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않고 길 위나 바위, 가시덤불에 떨어지게 뿌렸을까? 그 이유는 요즘 파종법과 성경시대 파종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쟁기로 밭을 고르고 난 뒤 씨앗을 뿌리고 흙을 돋우지만 성경시대에는 쟁기로 밭을 갈지 않은 채 그냥 흙 위에 씨를 뿌렸다. 예수님 시대 쟁기는 밭고랑을 갈 정도로 날이 강하지 못해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씨앗을 가지고 나가 바람에 날리면서 한 번에 뿌리는 방법과 나귀 등에 구멍을 뚫은 씨앗 자루를 실어 돌아다니게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파종을 하다 보니 씨앗이 길 위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또 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살던 팔레스티나 지역에는 돌이 많아 파종이나 쟁기질이 아예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 씨앗을 뿌려도 농부가 흙으로 덮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파종한 씨앗의 70~80%는 소실됐다. 농부 입장에선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농부 마음이 바로 하느님 마음이 아닐까. 농부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잘 길러 내리라 마음을 쓴다. 그러나 제멋대로 흘러가버려 결국은 제대로 땅에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채 말라죽는 씨앗들도 많이 있다. 농부 입장에서는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과연 나는 어떤 땅에 떨어진 씨앗인지 묵상해보자.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1.08.02
![[전례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22)연중 제 10주일-병자성사](//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87_1.0_titleImage_1.jpg)
[전례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22)연중 제 10주일-병자성사성령의 힘으로 병자에게 전하는 치유의 은총병자성사는 중병이나 노쇠에 따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성사다. 사진은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주교가 한 자폐증 어린이 환자의 손에 병자 성유를 발라주는 모습.[CNS 자료사진] 연중 제10주일인 오늘 미사 본기도에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시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고통받는 이들, 특별히 질병이나 노환으로 어려움 속에 있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는 성사인 병자성사(1499~1532항)에 대해 알아봅니다. ◇살펴봅시다 질병과 고통은 인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병고에 시달리면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체험합니다. 때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젖습니다. 그 결과 절망의 나락에 빠지거나 자기 속으로 도피해 외부와 담을 쌓아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병과 고통이 이렇게 부정적 측면만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 있고,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지를 가려내는 분별력을 갖게 해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실망이나 반항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1500~1501항 참조). ㉠구원 역사에 본 병자성사의 근거들(1502~1511항) :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치유하시는 분으로 제시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탈출 15,26). 병은 죄와 악과 신비스럽게 관련돼 있으며, 그래서 하느님의 용서는 치유의 시발이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치유자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모두 고쳐주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이셨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하느님 나라 도래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고 구속을 위한 그분의 수난에 결합될 수 있게"(1505항)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8). 또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우 그 고통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는 의미를 지닙니다(콜로 1,24 참조). 이런 전통을 받아 사도 시대에 교회에는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앓는 사람을 위해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면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를 일곱가지 성사 가운데 하나인 병자성사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병자성사는 특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성사입니다. ㉡병자성사는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집전하나(1514~1519항) : 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가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이미 이 성사를 받기에 적절한 시기가 된 것"(1514항)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또 병자가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면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다가 더 심해지는 경우에도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는 어르신들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병자성사는 사제, 곧 주교와 신부들만 집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병자들이 사제를 청해 이 성사를 받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또 교회 공동체 전체는 병자들을 특별히 기도와 형제적 사랑으로 감싸줘야 합니다. 병자성사는 가정이나 성당이나 병원이나 어디에서든 거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 중에 거행하는 것이 매우 합당합니다. 또 상황이 허락하면 병자에게 고해성사를 먼저 베풀고 병자성사 후에 성체를 영해 줄 수도 있습니다. 참회기도와 말씀 전례에 이은 안수와 도유가 병자성사의 중심 요소들입니다. 도유는 병자의 이마와 양 손에 합니다. 그런 후에 병자에게 성체를 영해줍니다. ㉢병자성사의 효과(1520~1523항) : 병자성사를 통해 병자는 성령의 특별한 선물을 받습니다. 병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을 얻습니다. 이 은총을 통해 병자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죽음 앞에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이러한 도움은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한다"(1520항)고 교회는 고백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병자성사를 통해 죄도 용서받습니다. 병자성사의 은총으로 환자는 또 자신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가까이 결합시키는 힘과 은혜를 얻습니다. 또 이로써 원죄의 결과인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지닙니다. 즉 고통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 또한 이 성사로써 은총을 얻습니다. "교회는 이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병자들의 선익을 위해 전구한다. 또 병자도 나름대로 이 성사의 은총을 통해서 교회의 성화와 모든 이의 선익에 이바지한다"(1522항). 병자성사는 또 병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마지막 길을 준비하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로부터 임종이 임박한 이들에게 병자성사를 거행했습니다. "병자성사의 마지막 도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있을 마지막 싸움에 대비하여 우리 지상생활의 마지막에 튼튼한 방패를 마련해 준다"(1523항). ◇알아둡시다 노자성체(1524~1525항) : 교회는 임종을 앞둔 이들에게 병자성사를 거행한 후에 성체를 줍니다. 이 성체를 노자(路資) 성체라고 합니다. 이승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러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길에 힘이 되는 성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6.04
![[출판]책꽂이](//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1337_1.0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숨어 계신 님 1(이재성 지음/프란치스코출판사/1만 2000원) 이재성(작은형제회) 수사가 쓴 관상 일기와 후배들에게 보낸 영적 편지다. 일생생활에서 솟구치는 미움과 시기심, 갖가지 아픔과 상처,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과 경쟁 등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을 기도와 관상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막 교부들 금언집을 연상시키는 글들에서 이 수사의 치열하면서도 겸손한 영성을 엿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출판사 사장 고계영 신부는 "저자가 오랫동안 관상에 몰입해 꽃 피운 신비 작품으로, 한 줄을 읽더라도 거기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하느님과 함께 5분(피에르 신부 지음/임숙희 옮김/성서와 함께/8000원) 세계적 빈민구호 단체 엠마우스 공동체를 설립한 아베 피에르(1912~2007, 프랑스) 신부가 남긴 짧은 묵상글이다. 그가 남긴 글엔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 말씀을 실천한 활동가이자 영성가로 살아온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면서 인종 차별, 가난, 소외, 억압과 같은 우리 시대 악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책은 피에르 신부가 묵상한 성경 구절을 한글과 영어로 나란히 소개한 뒤 피에르 신부의 묵상글을 이어서 실었다. 주일ㆍ대축일 성경 묵상-나해(알베르 반호이 지음/오영민 옮김/나이테미디어/2만 원) 알베르 반호이(프랑스 예수회) 추기경 강론집으로 주일과 대축일 독서와 복음을 사목적ㆍ영성적으로 해설했다. 기존 여러 강론집이 저자의 체험이나 시대 상황에 비춰 성경말씀을 설명한 것과 달리 이 책은 철저히 성경 내용을 기반으로 복음 메시지에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반호이 추기경은 마르코복음이 주를 이루는 나해의 주일 독서와 복음의 의미를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그는 성서학박사이자 교수로 오랫동안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교황청 성서대학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사랑의 부활-죽기 전에 죽을 수 없을까?(이제민 엮음/경세원/1만 2000원) 이제민(마산교구 명례성지 담당) 신부의 인생낱말사전 6번째 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신비를 다뤘다. 죽음, 생명, 사랑, 고통의 신비(1~4부)와 함께 부활에 대한 올바른 이해(5부), 내가 믿는 부활(6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신부는 책에서 "그리스도교가 부활신앙을 통해 인류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면서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이라고 말했다. 또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면서 그리스도 부활에 담긴 희생 정신을 강조했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