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3> 에드워드 스힐벡스 (상)](//cpbc.co.kr/CMS/newspaper/2013/08/rc/467554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에드워드 스힐벡스 (상)관념적 신학을 인간 경험 중심으로 이끈 선구자 에드워드 스힐벡스 1979년 모습.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을 연구하고, 신앙 전통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신학을 연구했다.에드워드 스힐벡스(Edward Schillebeeckx, 1914~2009)는 교회 역사상 변화가 극심했던 20세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신학적 방법론에서뿐만 아니라 신학적 논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20세기 신학에 많은 자극을 줬으며, 신학 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오늘날까지 그가 신학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6세때 부터 복사 서미 사제 꿈꿔 스힐벡스는 1914년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 엉벨스에서 14형제 중 6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무관으로 엄격하지만 자녀들과 토론하고 대화하기를 즐기며 가족 간 소통을 중요시했고, 가족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14명의 자녀들을 키우느라 늘 바빴다. 그럼에도 그의 부모는 형제들이 함께 돕고 서로에게 배우도록 하면서 14남매를 키웠다. 이처럼 좋은 토양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6세 때부터 복사를 서기 시작했는데 복사 서는 일을 아주 좋아했다. 특히 영성체 예식 때 종을 치면서 '나도 커서 사제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나는 행복한 신학자」에서 회고했다. 형제들과 자유롭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세까지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십대 초반의 가난한 아이들이 그 학교에서 일했는데, 학교측은 스힐벡스에게 이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한 소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노동자 문제에도 눈을 뜨기 시작해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글을 읽고 사회 문제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도미니코회 입회 그의 맏형은 예수회 신부로 인도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영향을 받은 스힐벡스는 자신도 형과 같은 길을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 예수회 교육이 너무 엄격했기에 스힐벡스는 1934년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그는 도미니코 성인의 생애를 읽고 성인의 기쁨, 세상을 향한 개방적인 자세, 강론을 중심으로 한 신학 연구 등에 감동을 받고 이 수도회를 선택한 것이다. 수도회에서 2년의 수련기를 마친 스힐벡스는 루방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의 신학 여정은 20세기 가톨릭교회의 변천사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신학 경향은 1965~1967년을 기점으로 명백하게 구분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에 현상학과 인문과학을 접목한 열린 토미즘 노선을 지닌 전반기와 인간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험신학을 창출해 낸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새로운 신학을 접하며 연구 매진 스힐벡스가 신학을 시작한 시기는 사변론적인 신 스콜라 신학, 신 토미즘이 여전히 팽배한 가운데 신학을 갱신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는 루방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맡은 드 페터 신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현상학뿐 아니라 당시 토미즘과는 다른 신학적 방법론을 배웠다. 특히 칼 아담의 신학을 소개받았는데 이는 교의신학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과 역사비평을 통해 강생하신 인간 예수, 인성을 지니신 예수, 인간의 심리적 차원 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방법론의 그리스도론이었다. 교의를 중심으로 한 사변론적인 그리스도론이 아닌 이 그리스도론은 당시 가톨릭 신학계에선 상당히 획기적이었다. 스힐벡스는 신학과정을 마친 후 박사학위 준비를 위해 1945년부터 2년간 파리에서 보냈다. 이 기간에 그는 숄슈아 도미니코 공동체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훗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이브 콩가르, 마리 도미닉 쉐뉴를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접했다. 스힐벡스는 이들을 통해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시기는 당시 로마로부터 강의 금지령을 받은 쉐뉴 신부의 개인적 도움으로 역사비판 방법론을 실천한 때였다. 그리고 소르본대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수학한 기간이었고, 노동 사제들과 만난 기간이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스힐벡스는 루방대에서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1951)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는 성사론을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신학계에 아주 좋은 반향을 일으켜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성사신학 쇄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힐벡스는 1958년 루방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네덜란드 니메그대에서 1983년까지 교의신학과 신학의 역사 등을 강의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구원의 역사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 생소한 것이어서 이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학 쇄신의 필요성을 확신한 그는 여러 어려움에도 이 길을 용기 있게 나아갔다. 다행히 학생들과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은 그를 옹호하고 지지했다. 스힐벡스는 1962년 요한 23세 교황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연설을 듣고 깊은 안도의 숨을 쉬었는데, 교황께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신앙 핵심이 담긴 교회 가르침, 즉 교의(dogma)가 있지만 교의 내용은 내용이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방식이기 때문에 이에 쇄신이 있어야 함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네덜란드 주교단의 공식 대변인으로 적극적으로 공의회 준비를 했다. 그는 공의회가 신학을 쇄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칼 라너, 이브 콩가르, 마리 도미닉 쉐뉴에 의해 쇄신된 신학이 인정받는 계기가 돼 자유롭게 신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그는 전반기에 「계시와 신학」, 「하느님과 인간」, 「결혼은 성사다」, 「세상과 교회」 등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가 신학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신학 연구 방향 전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 네덜란드 교회에서의 경험과 미국 여행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경험, 그리고 철학자 리쿼와 가다머의 영향은 그에게 현대사회, 그리고 인간의 경험과 직접적 대화를 시도하게 한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 방향 전환은 「하느님 인간의 미래」(1969)에 잘 드러난다. 이는 토미즘 신학과 결별을 의미한다. 교의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 경험을 살펴보는 연역적 방법에서, 인간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 경험을 밝히기 위한 도구로써 교의 개념을 살펴보는 귀납적 방법으로 자신의 신학 연구 방법을 바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학하는 방법을 두고 "인간의 경험, 크리스천의 공동체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즉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을 연구하고, 신앙 전통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후반기의 대표적 저서로는 삼부작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교회」다. 스힐벡스는 일반 신자들이 읽을 수 있는 신학서적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세상과 교회와 관계, 세속화 현상 속에서 신앙 문제 등에 관한 그의 신학적 견해는 일반 신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65년 라너, 콩가르, 큉과 함께 '콘칠리움'(Concilium)이라는 신학 전문잡지를 만들어 새로운 신학을 전파하고자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보수적 성향의 신학자와 사목자들로 인해 1968ㆍ1976ㆍ1984년 세 차례에 걸쳐 교황청으로 불려간 그는 신학의 정통성 여부에 대해 조사를 받았으나 강의 금지판결을 받지는 않았다. 첫 소송에서는 칼 라너가 혼신을 다해 그를 변호해줬다. 특히 사제직 문제, 교회론에 관한 진보주의적 성향으로 교황청의 의심을 받았지만 그의 신앙에는 아무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다만 찬성하지 못하는 몇 가지 점이 있다는 지적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유럽 사회와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네덜란드의 영광스러운 명예상인 '에라스무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에드워드 스힐벡스는 관념적이고 교의 중심적이던 신학 분위기로 신앙 표현이 교리 공식에 고정됐던 교회와 세속화, 현대화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사회 가운데서 적합한 신앙 표현과 가르침을 위해 노력한 신학자다. 그는 신앙 경험이 살아 있는 경험이 되고 교회와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려고 성경뿐 아니라 교회 전통을 통해 내려온 가르침을 현대인에게 맞도록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상황 신학자'로 볼 수 있다. 김미정 수녀 ▲1978년 고려대 졸업 ▲198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81년 프랑스 성 안드레아 수녀원 입회 ▲2000년 프랑스 파리 예수회대 교의신학 전공. 신학박사 ▲2001~현재 파리 예수회대 교수 ▲논문 : 「타 종교와의 관계-바티칸공의회 : 한시작의 시작」 「한국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창조주 하느님 개념」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 : 유스티노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저서를 중심으로」 ▲저서 : 「죄와 조화」 「평화와 폭력 가운데」 「이냐시오 영성의 식별과 선교」 「전통의 좋은 사용」 「은총론」 cpbc2013.08.06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5>거리미사와 성체성사](//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5823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거리미사와 성체성사예수님 희생 기억하는 미사, 사회적 약자에게 눈 돌려야 지금 이 땅 곳곳에서 길거리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작은 고을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서울시청이 보이는 대한문 앞에서, 한강 상류 두물머리 강가에서, 청춘의 상징이었던 통기타를 제조하는 콜트콜텍공장 한 모퉁이에서, 그렇게 거룩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거룩함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거룩함'이 참 익숙하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에게도 거룩함을 수식하고, 성경ㆍ성당ㆍ성가처럼 책과 장소와 음악에도 거룩함을 수식하고, 성품ㆍ성직자ㆍ성인처럼 사람과 직분에도 거룩함을 수식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과 피에도 '성체'와 '성혈'처럼 거룩함을 수식한다. 그러나 익숙한 거룩함은 더는 거룩함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 발에 밟힌 그곳, 자동차 소음과 수많은 행인의 분주함으로 어지러운 그곳, 무심히 흐르는 강 주변에 잡초가 제멋대로 자란 곳, 기계소리로 어수선한 곳, 그곳을 우리는 거룩한 곳, 곧 성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서 부르는 노래를 성가라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읽는 하느님 말씀을 성경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 모인 이 사람 저 사람을 모두 성도(聖徒)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이뤄지는 행위를 성찬례라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나누는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이라 할 수 있을까? 희생이란 말의 라틴어 어원은 '거룩함을 행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성(聖)과 속(俗)은 같은 내용의 두 이름인 셈이다. 거룩함은 희생을 구성하고, 행동은 거룩함과 짝을 이룬다. 우리는 그 전형을 성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서 거룩하기도 하겠지만, 그분 희생 때문에 거룩하다. 이웃을, 그것도 보잘것없는 이를,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다니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스스로 내어놓는 그 희생 때문에 거룩하다. 세상이 내버린 이들, 세상이 무능하다고 낙인 찍은 이들, 거추장스럽다며 사라져줬으면 바라는 이들, 그 보잘것없는 이들 가운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맡기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렸기에 거룩하다. 희생이 없는 거룩함은 단순한 상징이며 표지에 불과하다. 상징과 표지는 실재가 아니다. 전통적 교리로 따지자면 성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그 희생(거룩한 행위)을 기억하며 그 희생에 동참하고 동행하지 않는 성찬례는 성찬례(성사)가 아니다. 우리들의 상징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가 기억할 예수님은 누구일까? 우리를 위해 당신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 우리와 모든 이를 위해 피 흘린 예수님, 그 예수님이 우리가 기억할 예수님 아닌가. 그리고 그 예수님은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다니며, 병들어 누워있고 감옥에 갇힌 이",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 사회적 약자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당부하신 최후의 유언은 떠올려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당신 몸을 내어주고, 피를 흘리신 그것을 우리보고 계속해달라고 당부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겉모습으로만 성과 속을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전국 방방곡곡 성당에서 성음악과 함께 성스러운 미사가 매일 봉헌된다. 또한 방방곡곡에서 예수님의 벗들은 배고프고 목말라하며, 헐벗고 떠돌며, 아파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예수님의 벗을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를 신기한 듯 바라보거나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미사를 길거리에서 하느냐"고 마뜩잖아 한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한다"(「교회헌장」 8항).퇴사자22012.09.11
![[생활 속의 복음] 예수 부활 대축일 (요한 20,1-9)](//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5042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예수 부활 대축일 (요한 20,1-9)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예수 부활 대축일이다. 우리를 위해 오셨고 사셨으며, 수난하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모든 믿는 이들과 더불어 기뻐하고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시는 축복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도드린다. 우리에게는 공통된 꿈이 있다.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없으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서 언제까지나 영원을 향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 말이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살이에서 아무런 우여곡절 없이 지낸다면 결코 사람답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가에서 석가모니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언급하며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했다. 하지만 인생은 고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다. 그러한 은총의 장(場)을 고해로 느끼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느꼈다면 괴로움의 바다를 어떻게 은총의 바다로 느끼며 살아 갈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혹은 그가 처해 있는 공동체에 달려 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참으로 부활하셨다. 그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믿는다면 그 구체적 증거는 무엇인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으시고 묻히신 예수님 무덤을 조배하러 갔다. 거기에서 빈 무덤을 보고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하고 전한다. 정황상 매우 긴박한 분위기다. 제자들도 마리아 막달레나 말을 못 믿고 달려와 빈 무덤을 봤다. 하지만 빈 무덤이 곧 예수 부활의 결정적 증거는 못 된다. 빈 무덤을 보고도 그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요한 20,9)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만을 믿으려 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잘 믿으려 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믿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뵙고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참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진정한 일꾼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시면서 참사람이신 예수께서 오늘 부활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에 생로병사를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셨기에 또한 생로병사에 노출돼 있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생로병사의 사슬을 끊어버리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이다. 다시 살아나셨기에 다른 모든 인간에게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렇다면 누가 부활할 수 있는가? 정답은 사람이면 누구나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다 부활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활에는 몇 가지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는 우선 죽어야 한다. 죽지 않고 부활을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도 부활에 참여할 꿈을 꾼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부활은 어림없는 소리다. 문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부활을 희망하는 자는 부활하신 분을 믿어야 하고, 또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그분과 함께 걸어야 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우선 죽으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으셨기에 부활할 수 있으셨을까? 그것은 평소 그분의 삶이 대답해 준다. 예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요한 14,31)고 말씀하셨다. 오시고 사시고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산다면 은총에 힘입어 그 분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진리를 외면한 채,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에 상심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요한 20,10).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지난날의 삶도 잊어버린 채 또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예수께서 초대하신 부활의 삶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활은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부활하신 몸에서 출발한다. 부활이신 분은 사랑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시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그분의 부활하심을 깨닫고, 부활하신 분을 몸 입으며, 생활 속에서 진실로 부활을 증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cpbc2013.03.27
![[새성전 봉헌] 수원교구 모전동본당](//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9313_1.0_titleImage_1.jpg)
[새성전 봉헌] 수원교구 모전동본당본당 설립 12년 만에 하느님의 집 봉헌이용훈 주교와 사제단이 새성전에서 봉헌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순결한 하느님 집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성당 내부를 흰색으로 칠했다. 수원교구 모전동성당(주임 황현 신부)에서는 10여 년 동안 주일마다 작은 장이 열렸다. 신자들은 소금, 참기름, 쌀, 고구마, 꽃, 떡 등 갖가지 물품을 팔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돈을 모아 성전건립기금에 보탰다. 모전동본당은 20일 경기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781에서 설립 12년 만에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다. 새성전은 면적 1972㎡, 지상 3층 규모로 대성전을 비롯해 만남의 방, 교리실 등을 갖췄다. 설계는 예터건축사무소, 시공은 선인종합건설이 담당했다. 2000년 설립된 모전동본당은 그동안 낡은 공장 건물을 고쳐 지어 성당으로 사용했다. 비가 오면 슬레이트로 덮은 지붕 사이로 비가 새 대야 10여 개로 빗물을 받아야 했다. 신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건축을 서두르지 않았다. 기금을 충분히 마련한 후 성당을 짓는 게 낫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02년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운 본당은 이듬해부터 기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어르신들은 고철과 폐지, 헌책 등을 꾸준히 모아 성당 한 편에 쌓아뒀다 팔았고, 본당은 종종 바자를 열어 신자들이 기증한 물품을 판매했다. 주일마다 성당 마당에 작은 장이 서서 신자들은 웬만한 식료품은 성당에서 구입했다. 명절이 되면 신자들이 기증한 쌀로 송편, 가래떡 등을 직접 만들어 팔았다. 2008년에는 밭을 빌려 고구마 농사도 지었다. 고구마 농사는 노력에 비해 수확이 시원치 않았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더 일치하고 단합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해 3월 공사가 시작되자 황현 신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에 나와 공사진척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신자들은 매일 묵주기도 5단 바치기, 고리기도, 성경필사 등을 하며 기도로 힘을 보탰다. 김수동(베르나르도) 사목회장은 "성전 건축을 위해 한마음이 돼 노력한 신자들 덕분에 잡음 한 번 없이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며 "10여 년을 창고 같은 성당에서 생활하다가 새성전을 봉헌하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고 기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10.23

공의회 문헌,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돕는 '나침반'[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2>서울평협 공의회학교공의회학교 수강생들이 수업 시작에 앞서 강사소개 시간에 박수를 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50일째 되는 날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이날은 교회의 탄생일이다. 지금부터 51년 전인 1962년, '제2의 성령강림'으로 불리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다. 1962~1965년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회, 세상에 다가가는 교회, 평신도 위상이 새롭게 정립된 교회 등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발표된 공의회 문헌만 16편에 이른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신앙의 해를 위한 사목 권고를 담은 공지'를 통해 "신앙의 해는 모든 신자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주요 문헌들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깊이 연구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공의회 문헌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면 신앙의 해를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최홍준)가 2007년 개설한 '공의회학교'가 새삼 주목받는 까닭이다. #서울평협 공의회학교는? "우리는 공의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을 손에 들고 거기서 교리적ㆍ사목적으로 우리를 독려하는 매우 풍요로운 내용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0년 11월 26일 강론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항해하던 배가 방향을 잃으면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나침반이다.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하느님께 가는 길'이라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 길에 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수단'인 나침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것처럼 공의회 정신으로 돌아가고, 공의회 문헌을 공부한다는 것은 신자들이 예수님께 효과적으로 향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제시한 가르침을 관심 있게 보고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현재 가톨릭교회 기본 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공의회학교는 평신도들이 공의회 가르침과 정신을 잘 앎으로써 교회와 사회에서 더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설됐다. 유수일(군종교구장)ㆍ조규만(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를 비롯해 김성태ㆍ정의철ㆍ김준철 신부 등 대신학교 교수진과 노길명ㆍ조광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서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공의회 문헌을 배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강의를 들을 수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개설 초기에는 '평신도학교-공의회과정'이라는 이름으로 1년, 2학기제(3~6월, 9~12월), 28주 강의로 과정을 구성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공의회학교'라는 이름으로 상반기 한 학기(3~6월) 과정으로 개편했다. 처음에는 공의회 문헌 16개를 모두 다뤘으나 1학기 과정으로 축소 개편되면서 14개 문헌을 배운다. 1년이라는 긴 과정이 공의회 문헌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자칫 흥미를 잃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 3월 4일 개강해 6월 10일 수료식을 한 올해 공의회학교는 '보편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김성태 신부) 강의를 시작으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정의철 신부)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김민수 신부) △하느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조규만 주교) 등 문헌을 주제로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렸다. #공의회학교 이모저모 그동안 공의회학교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 매우 열심한 자세로 수강했다는 평가다. 수강생 대부분이 공의회 문헌에 관한 자발적 관심으로 참여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본당 사목회장 등 사목회 임원들도 많았고,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도 많이 수강했다. 수도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올라와 수강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매일 새벽 3시께 출근해 건물 청소 일을 하면서 강의를 듣던 한 신자는 매주 월요일 수업이 있는 날이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쪽잠을 자다 출근하면서도 1년(2학기)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아 수료식 날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 수도회 신학생 수강생은 정규수업 대신 공의회학교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공의회학교 수강생 가운데 더 공부하고 싶은 21명이 심화과정을 마련해 따로 공부하기도 했다. 공의회학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열기는 2007년 이후 조금씩 식어가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해 50~60명 수준에 머물던 수료 인원이 2012년 237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단체 수강도 적지 않은 몫을 했지만 신앙의 해를 계기로 공의회학교가 다시금 주목받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66명이 수강해 132명이 수료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전 과정을 수료한 이는 674명이며, 미수료자를 포함한 전체 수강생은 1575명이다. 공의회학교에 직접 참가하지 못했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기존 1년짜리 강의(2009년)와 현재 1학기 강의(2012년)가 서울평협 누리방(www.clas.or.kr) 공의회학교 '강의동영상' 게시판에 모두 올라와 있다. 또 서울평협이 발행한 「공의회학교 1ㆍ2권」(가톨릭출판사/각 1만 원)을 통해 책으로 공부할 수도 있다. '공의회를 공부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서울평협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한 지 51년째를 맞고 있지만, 신자 모두가 공의회를 온전히 숙지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공의회 문헌은 신앙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보약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가톨릭교회가 지금까지 50년간 강조해온 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새삼 강조하거나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공의회 가르침"이라며 "공의회 가르침은 신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두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신도 정체성 깨닫고 봉사 앞장 ▲ 인터뷰 / 공의회학교 2011년 수료생 장병철(율리아노)씨 "공의회를 공부하면서 평신도에 대한 막중한 의무와 책임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공의회 문헌은 저를 더 열심한 신자로 변화시켰습니다." 2010년 2학기부터 2011년 1학기까지 공의회학교 1년 과정을 수료한 장병철(율리아노, 66, 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 연령회장은 공의회학교 수업을 계기로 평신도로서 정체성을 깨닫고, 하느님께서 주신 평신도 소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의회 문헌을 공부하면서 어떠한 봉사직에 있어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열심히 봉사하게 됐다는 것. 힘들다는 연령회장직도 스스로 맡게 됐다고 했다. 공무원으로 은퇴한 장 회장은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 소원이 맏아들이 세례받는 것이어서 2006년 예순 나이에 늦깎이 신자가 됐다. 그는 "하느님이 저를 사랑하셔서 뒤늦게나마 자녀로 만들어주신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에 영세 직후 사목회 임원과 연령회 회원으로 봉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의회학교를 수료하고 나니, 이제야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인이 된 것 같아요. 공의회 문헌은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와 교부 수백 명의 가르침이 담긴 문헌입니다. 공의회 문헌을 모른다면 진정한 의미의 신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말씀처럼 공의회 문헌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힘 기자 cpbc2013.07.02
![[생활 속의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6508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오늘의 순교,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신학원장)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선교사 없이 복음화의 꽃을 피운 한국천주교회 역사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유례가 없다. 그 역사는 성경 속 복음의 증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삶이었다. 18세기 말 남인 신서파 학자들로 시작한 '위로부터의 신앙'이 '백성들의 신앙'으로 내려온 것은 중국 서학 관련 한문서적들을 조선으로 갖고 들어와 즉시 한글로 번역한 덕분이다. #많은 고난을 겪고 복음이 새로운 땅에 뿌려지면 순교라는 고통의 싹이 자라는 것은 교회의 오랜 경험이다. 하느님의 일이 왜 그리 어렵고 고통스럽나 하겠지만 성경은 본디 그런 거라고 말한다.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5). 순교역사가 그러하듯 우리가 위로를 받는 점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먼저 겪으신 것이다. 순교자는 길이신 주님을 따라갔다. 복음 안에서 신앙을 지킨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은 온 삶을 끌어당겨 구원으로 향해가는 물결의 흐름과 같았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셨다. 산 정상에 오른 자만이 역풍과 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순교자는 어려움을 겁낼 필요가 없었다. 복음의 용기를 지닌 순교자는 구원을 위해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시각장애 시인은 "약한 자는 자신 안에 믿음을 두지 않는 자며, 자기 안의 부족함에 머무는 자가 작은 자다"는 글을 썼다. 그가 매일 인간을 압박하는 천 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인내다. 순교자들의 덕이 인내라면, 박해자들은 생명으로 그들의 인내를 시험하기도 했다. 고통과 죽음은 십자가를 던지고 멀리 도망치는 유혹을 낳게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순교자가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를 주시지 않는다. 순교자들은 오늘날처럼 복음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안에 말씀을 움직여 증거했다. 충청도 보령 황일광(시몬)처럼 기쁘게 복음적 삶을 살다간 순교자도 드물다. 백정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지만 천주교 입교 후 상상도 못할 대접을 받았다. 신자들은 그를 일반인과 똑같이 대해주었고, 양반집 방에까지 초대했다. 밝은 성격의 황일광은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그는 서울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집에서 하인으로 있으며 땔나무를 하러나갔다가 체포되었는데, 그는 이것도 기쁘게 받아들였고, 고향 홍주에서 한겨울 1월 30일 참수를 당해 두 번째로 천국으로 갔다. 내포 양반 유군명은 조선에서 사노비가 해방된 19세기 말보다 백년을 앞서 자신이 소유한 노비들을 자유인으로 풀어줬다. 그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는 복음을 실천했다. 같은 신자라도 조선시대 사회 풍습에서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천민을 신분의 벽을 넘어 받아들이는 일과 자신 소유의 노비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바로 복음이 움직인 순교의 힘이었다. #나를 따라야 한다 영국 성탄절 성가에 성 빈첸슬라오 이야기가 나온다. 빈첸슬라오 왕은 맨발로 다니면서 가난한 자에게 자선과 선행을 베풀었다. 한 겨울 그를 따르는 종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자 빈첸슬라오는 종한테 자신의 발자국을 밟고 따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종의 발이 따뜻하게 달아오른 것이다. 전설 같은 성인 이야기지만, 이 기적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수반되는 고통과 어려움의 무게는 주님께서 덜어주신다는 뜻과 연관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고통을 당한다면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 육적으로 위로를 받게 되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주님의 생각과 행동을 닮아 그 고통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세주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짊어졌던 순교자는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혼자 짊어지는 십자가는 무겁지만 주님과 함께 지는 십자가는 무겁지 않다. 순교자성월을 맞아 우리 모두 순교자처럼 제 십자가를 지며 주님을 따라 가야 할 것이다.퇴사자22012.09.18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12> 루카 (중)](//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438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루카 (중)이방인 포함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자녀'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그림은 안 반 스코렐의 '착한 사마리아인'. 루카 복음과 마태오 복음은 여러 면에서 비교되곤 하는데, 두 복음은 예수의 족보를 소개하는 위치와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마태오복음은 첫 부분에 아브라함에서 마리아로 내려오는 하강형으로 족보를 소개한다. 반면 루카복음은 예수가 광야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족보를 소개하는데, 그 형식도 예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상승형을 취한다. 이 족보는 아담에게까지 이르는데, 루카 사가는 아담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그를 '하느님 아들'이라 칭한다. 이는 이방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자녀라는 보편주의를 적용한 것이다. 족보를 예수의 세례 사건 이후 소개한 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세례로 성령을 받음으로써 참다운 하느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례받은 예수는 사탄의 유혹도 극복해내고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그는 나자렛회당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라며 희년을 선포했다. 여기서 말하는 주님 은총의 해는 종말론적 희년의 선포다. 예수는 청중 앞에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을 봉독한 다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루카 4,21). 이는 종말의 시기에 약속돼 있던 하느님 구원이 예수의 선포를 통해 이뤄졌음을 뜻한다. 루카 사가는 위 구절을 비롯해 복음 안에서 '오늘'이라는 단어를 즐겨 썼던 것도 같은 의미다. 예수 활동의 중심은 말씀의 선포다. 그는 희년 선포 후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거나 구마와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고, 제자들을 불러모았다. 이는 하느님 나라 선포가 단지 언어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구체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하느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에 드러나 있다는 것을 뜻한다(11,20). 예수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22-24)고 말했다. 이는 많은 예언가가 하느님의 아들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했으며, 제자들은 구원의 오늘을 경험하며 그러한 기쁨을 누리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루카 사가는 예수를 만난 이들은 그 자체로써 구원을 경험했으며, 하느님 나라가 예수를 통해 우리들 가운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루카복음에서 강조되는 예수의 모습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다. 예수는 스스로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고 말하면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식사를 즐겨했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충격적으로 비춰졌는데, 특히 바리사이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했다. 예수는 이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고, 이러한 태도는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도 드러난다. 죄인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 나라 선포는 선민주의, 자연도태 같은 세상 법칙에 반대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예수의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는 말에 대해 한 율법학자는 "그렇다면 그 이웃이 누구인가"하고 물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이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에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두고 사제와 레위인은 거들떠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응급조치한 다음 여관에 데리고 가 그를 돌보아주도록 부탁하고, 추가 경비도 지불한다. 이러한 선행을 베풀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예수가 역시 이 이야기에서 높이 평가했던 점 중 하나가 익명으로 선행을 베풀었던 점일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기란 힘들다. 때문에 예수가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이다.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온 만큼 조건 없이 나를 내세우지 말고 100%를 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나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이웃이 돼 줘야 하지 않겠는가. 교부(敎父)들은 이 이야기의 사마리아인을 예수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마리아'는 히브리말로 목자를 뜻한다. 예수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할 수 있도록 교회라는 여관에 우리를 맡겼으며, 다시 돌아와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이다. 그리고 예수는 여러분 자신이 누군가에게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이 돼 주라고 말하고 있다. 정리= 김은아 기자 euna@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저녁 10시퇴사자22013.04.16
![[세계교회] 샌디에 우는 미국 동부, 위로 손길 필요](//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0562_1.0_titleImage_1.jpg)
[세계교회] 샌디에 우는 미국 동부, 위로 손길 필요허리케인 피해 500억 달러 추산, 이재민 수만 명, 미국교회 지원 요청미국가톨릭자선회 통한 후원 요청각 교구 특별헌금 실시, 복구 도와허리케인 샌디가 뉴저지 호보큰 지역을 휩쓸고 난 10월 30일 물바다로 변한 거리에 차들이 둥둥 떠 있다. 【외신종합】 10월 말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뉴욕와 뉴저지 등 적어도 7개 주에서 최소한 1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재산 피해도 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재난 발생 일주일이 지난 5일 현재까지 거의 200만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당장 잠자리와 쉴 곳조차 없는 이재민들이 뉴욕에만 4~5만 명에 이르는 등 샌디의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롱아일랜드 나소 카운티에 있는 성심성당의 경우 1만 명이 살고 있는 관할 지역 주민 80%가 피해를 보았으며,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는 아일랜드 파크 남쪽의 롱비치 섬에서는 3만 5000명 주민 거의 전부가 샌디의 피해자가 됐다. 미국 주교회의는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주교회의는 미국의 재난 지역을 돕기 위한 헌금은 전국 조직망을 갖춘 미국가톨릭자선회(CCUAS) 재난기금을 통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주교회의는 또 샌디로 피해를 본 카리브해 국가들을 도우려는 이들은 미국 해외원조기구인 가톨릭구제회(CRS)를 통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풍 샌디는 미국에 상륙하기에 앞서 쿠바, 아이티, 자메이카, 바하마 등 카리브해 섬나라들을 덮쳐 최소한 7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아이티에서만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미국 주교회의는 샌디로 인한 전력난과 수송 수단 문제 등으로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많은 피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할 수 있다면 헌혈로도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또 기도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시편 91장과 지혜서 3,1-3, 요한복음 14,2-6 로마서 6,3-5; 9-11 같은 성경 구절을 제시했다. 피해 지역의 본당들은 이런 가운데서도 4일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재난을 당한 신자들을 위로했으며, 각 교구들은 샌디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 헌금을 실시키로 하는 등 재기와 복구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0월 28일 쿠바와 아이티, 자메이카, 바하마 등 샌디의 피해를 본 카리브해 국가들을 위한 기도와 물질적 도움을 요청한 데 이어 10월 31일 주례 일반알현 때는 미국의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을 격려했다. 박수정2012.11.06

서울 노량진동본당, 설립 40돌 맞아 준주성범 필사운동 펼쳐준주성범 필사하며 영적 성장 도모서울 노량진동본당 신자들이 만남의방에 전시된 준주성범 필사노트를 보고 있다. "어머, 이 어르신은 몸도 안 좋으신데 이걸 다 쓰셨네~." "여기 와서 이 노트 좀 봐요, 마치 컴퓨터로 쓴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네요." 서울 노량진동본당(주임 박준호 신부) 만남의 방에 들른 신자들은 전시된 「준주성범」 필사공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준주성범」은 토마스 아 켐피스(독일) 수사가 14세기에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준주, 遵主) 따라야 할 거룩한 규범(성범, 聖範)을 쓴 책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그리스도교 고전이다. 올해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은 본당은 공동체 영적 성장을 위해 「준주성범」 필사운동을 펼쳤고, 지난달 28일부터 2주 동안 만남의 방에 완필 공책을 전시했다. 완필 공책을 제출한 신자는 모두 55명. 85살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필사 공책을 신앙유산으로 대대손손 물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완필했고, 예비신학생 아들을 둔 한 엄마는 말린 야생화로 공책을 꾸며가며 정성을 보탰다. 직장인 신자들은 시간을 쪼개 「준주성범」을 필사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70대 할머니, 암환자, 장애인 신자 등은 고통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완필해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줬다. 완필자들은 "필사하는 것 자체가 기도였고 은총의 시간이었다"면서 "「준주성범」 내용을 마음에 새기며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준호 주임신부는 "본당설립 40주년을 맞아 공동체 내적 성숙을 위해 「준주성범」 필사를 기획했다"면서 "신자들이 주님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본당은 18일 오전 11시 성당에서 설립 4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중엔 「준주성범」 우수 필사자 시상도 함께한다. 미사 후에는 대규모 바자를 열어 공동체가 친교를 나누고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임승운(베드로) 사목회장은 "설립 40주년을 맞아 주님 영광을 드러내는 본당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72년 명수대본당에서 분가한 본당은 신자 800명(350가구)으로 출발했다. 초대주임은 고 김옥균 주교(당시 신부). 1977년 처음으로 성전을 마련한 본당은 신자 증가와 공간 부족으로 2004년 새 성전을 지어 봉헌했다. 현재 신자 수는 2300명(845가구)이다. 본당은 주변이 고시촌 밀집지역이라 특별히 청년사목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가톨릭청년교리서 「유캣」 200권을 청년미사에 참례한 모든 청년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또 매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5가정에 성금을 전달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11.06
![[가톨릭문화산책]<23> 영화(5)더 헌트 -뒤틀린 소통의 관계`](//cpbc.co.kr/CMS/newspaper/2013/06/rc/460169_1.1_titleImage_1.jpg)
[가톨릭문화산책] 영화(5)더 헌트 -뒤틀린 소통의 관계`군중 심리에 가려진 '진실' 알아보는 헤안 필요 더 헌트(2012, 덴마크) 감독 : 토마스 빈터베르그 상영 시간 : 115분 장르 : 드라마(15세 관람가) 인간은 끊임없이 소통한다. 한순간도 소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침묵도 하나의 언어로 뭔가를 계속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두로, 몸의 언어로 소통하며 이웃과의 관계, 공동사회 전반과 관계를 맺으며 관계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소통이 없는 관계는 이미 생명을 포기한 관계이며 죽은 집단의 사회다. 살아있는 소통은 상대방을 읽어내는 것이자 건네지는 말에 대한 경청이다. 소통은 상대방을 인식하고 신뢰하는 타자 중심의 관계를 형성케 한다. 이것이 진정성을 동반하는 소통이며 생명을 살리는 소통이다. 사랑에 메말랐던 어린 아이의 즉흥적 거짓말이 한 사람을 이웃으로부터 매장시키는 '뒤틀린 소통'의 관계를 다룬 영화 '더 헌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새 여자 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의 친구 딸 클라라의 사소한 거짓말이 들불처럼 소문으로 번지며 루카스는 유치원 원장과 마을사람들로부터 의심과 함께 누명을 뒤집어쓴다. 그것도 아동 성추행이라는 누명이었다.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눈총과 집단 따돌림, 폭력을 견뎌내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화 루카스는 유치원 교사다. 원생들과 허물없이 놀아주고 대소변까지 닦아주는 이성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균형 잡힌 사람이다. 루카스의 절친한 친구 테오의 다섯 살 된 딸 클라라는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지낸다. 자기 생각에 자주 몰두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클라라는 가끔씩 길을 잃기까지 한다. 친절한 루카스는 그녀를 유치원과 집으로 데려다준다. 이런 루카스 아저씨에게 클라라는 애정을 품고 있다. 어느 날 클라라는 하트(♡) 모양을 만들어 루카스의 코트 주머니에 몰래 넣어두고 루카스에게 입맞춤을 한다. 루카스는 부드럽게 클라라를 타이른다. 하트는 엄마에게 주거나 만든 사람한테 돌려주고 입술 뽀뽀는 엄마, 아빠에게만 하는 거라고 분명한 가르침을 준다. 거절당한 클라라는 원장에게 루카스가 자신에게 하트를 선물했고 루카스의 성기를 봤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는 클라라 오빠들이 보여준 남성 성기 사진을 떠올리며 말한 것. 유치원 마당을 나오던 루카스는 아이들 놀이공에 뒤통수를 맞는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예고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원장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화적 믿음에 사로잡혀 루카스의 성추행을 의심한다. 루카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족과 마을, 학교 전체에서 진솔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일방적 단죄의 상황에 휘말린다. 원장은 이 거짓된 사건을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확대시키고,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클라라를 아동심리전문가와 인터뷰하게 한다. 심리전문가가 추궁하는 질문에 클라라는 어린아이로서의 불안과 억압충동을 느끼며 "그랬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임으로 반응한다. 어리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의 영악한 태도가 섬뜩하다. 원장은 이 사건을 더 부풀려 성학대를 당했다고 단정한 뒤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를 살핀다. 언제나 사회는 선과 악이 묘한 충돌을 일으켜 진실을 가리는 때가 많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그런 어리석음을 범한다. 하지만 인간은 군중심리에 휘말려 진실을 보지 못한다. 특히 어린이, 또는 통념적인 약자 편에 동조하기 마련이다. 진실은 그 뒤에 숨겨질 때가 종종 있다. 그것도 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치원을 찾아가던 날 아침, 햇살은 루카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루카스의 진실을 입증해 주는 상징적 햇살이다. #친구들이 뭐 이래, 친구도 아냐!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 비언어적 몸짓과 얼굴 표정, 눈 등은 많은 진실을 말해준다. 클라라의 아버지 테오는 맹세코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는 루카스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딸은 거짓말이라곤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루카스를 몰아부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라는 "아저씨는 잘 못 없어.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했는데, 이젠 다른 애들까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지만, 엄마는 아이 말을 흘려듣는다. 인간은 들려오는 많은 말뿐 아니라 움직임에서 드러나는 많은 것을 관찰하고 사유하지 않는다. 아들 마쿠스의 외침 속에 진실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친구들이 뭐 이래요. 친구도 아냐!" 철저히 아동 성범죄자로 내몰려 고립과 막막함, 슬픔이 배어나는 루카스의 얼굴이 압권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작은 잘못에 대해선 엄격히 단죄한다. 여럿의 잘못된 판단과 증언으로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기는 순식간이다. 더구나 군중의 힘이 결집될 때는 더 깊고 큰 상처를 남긴다. #진실의 눈빛 마켓에서 부당한 모욕과 폭행을 당한 루카스는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피를 흘리며 앉아 있다. 크게 부각된(big close up) 그의 두 눈은 죽은 자의 눈처럼 정지돼 있다. 거울 앞에서 옷과 핏자국을 닦아낸 루카스는 구두끈을 단단히 매고는 성탄 밤 마을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 간다. 유치원 아이들이 부르는 캐럴을 들으며 그는 테오에게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라고 소리친다. 슈퍼 직원들에게 폭행당해 부서진 안경은 이제 필요 없다. 진실된 눈, 거짓 없는 눈으로 테오에게 외친다. "내 눈을 봐. 내 눈을 보라고. 뭐가 보여? 뭐가 보이기나 해?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그만 괴롭혀…." 가슴속 깊은 절규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가 말하는 눈은 인간 내면을 반추하는 거울이자 오해와 편견으로 굽어진 사람들을 향한 양심의 외침이다. 그날 밤 테오는 결국 루카스에게 음식을 싸들고 찾아온다. 순간, 무겁고 깊은 침묵이 흐른다. 루카스가 먼저 테오가 들고 온 성탄절 음식을 맛본다. "맛있군…." 이 한 마디가 화해와 용서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마음을 추스른 루카스는 테오의 집으로 간다. 성탄 파티를 여는 가족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클라라를 본다. 여전히 바닥에 새겨진 복잡한 사선 무늬에 신경 증세를 보이며 계단 끝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클라라에게 루카스는 장난스럽게 말한다. "난이도가 높구나. 선이 얼키고 설켜 있네. 이 많은 선들을 어떻게 피하겠니?"하며 클라라를 안아 건네준다. 진실이 거짓까지도 끌어안아 선을 넘어가게 하는 포용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오늘의 희생양 1년 뒤, 루커스는 마을 사람들, 아들 마커스와 함께 사슴 사냥을 간다. 사슴을 쫓고 있는 그때, 누군가 루커스를 겨냥해 총을 쏜다. 갑작스런 상황을 피하며 산 위를 바라보지만 역광 속 언덕으로 사라지는 누군가는 아주 상징적이다. 거짓된 소문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듯하다. 사회 공동체의 집단 본성을 과감하게 드러낸 '더 헌트'는 덴마크 어느 마을 이야기만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주위에도 온라인 마녀사냥, 이른바 '네카시즘(Netizen+McCarthyism)'이 있지 않은가. 다수의 네티즌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 등에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통해 공공의 적으로 매도하는 현상에 대해 사회 정보윤리적 차원에서 깊이 새겨볼 일이다. 그룹대화 : -우리 가족이나 동네, 직장, 학교, 교회에서 누군가를 따돌린 체험이 없는지 대화 나누기.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에 대해 우리의 반응은 어땠는지. 성경구절 :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cpbc2013.06.25
![[예비신자가 묻습니다] 36. 신앙을 갖고 싶은데 가족이 반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1923_1.0_titleImage_1.jpg)
[예비신자가 묻습니다] 36. 신앙을 갖고 싶은데 가족이 반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가족의 반대가 있다면 기도와 생활의 모범으로 반대를 이겨내고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사진은 절두산 성지에서 매일 봉헌되는 미사에 참례해 열심히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신자들.Q. 신앙을 갖고 싶은데 가족이 가족이 반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A. 종교적 삶은 진리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求道)의 여정입니다. 신앙은 구원에 관계된 것이기에 영원한 삶을 얻고자 하는 신앙적 결단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성인이라면 신앙을 선택할 권리는 당사자에게 있는 게 당연합니다. 호교론적 입장에서 보자면, 예비신자는 비록 세례성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가족의 반대나 인종과 문화, 국가의 벽이 종교적 결단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 신앙적 결단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박해' 상황이나 다를 바 없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해야 하고 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다만 집안에서 반대한다면, 반대하는 이유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을 것이기에 그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하겠지요.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집안에서 타 종교를 믿고 있는데, 가풍이 다른데, 제사 때문에 등 갖은 이유를 다 댈 것입니다. 바로 이때 가족을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럴 때는 내적으로는 신앙적 삶을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가족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하면서 차근차근 설득해 나간다는 건 '속이는 게' 아니라 '선의의 거짓말'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러고나서 기도 속에서 하느님께 지혜를 주실 것을 청하십시오. 성숙한 신앙생활로 이끌어가는 길은 기도와 전례, 성경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깊이 있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생생한 친교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지혜의 빛을 발견하는 실마리를 주실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활로써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 '삶의 증거'를 보여주는 것인데,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완덕과 성화의 길을 꿋꿋하게 걸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족의 반대를 딛고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진짜 문제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의무를 인식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 진리의 씨앗이 자라기에 아주 메마른 땅입니다. 기도를 통해 내적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묵상, 기도와 공부, 욕망의 억제, 고독한 삶과 피정을 통해 세상의 온갖 외적 방해를 물리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퇴사자2201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