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교회의 ‘성가정’, 신앙 잇고 순교자 길러내다[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22) 박해 시기 그리스도인 가정 한국 가톨릭교회 순교자들은 가정 안에서 조부모와 부모에게 기도와 신앙 교육을 배우며 성장했다. 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103위 순교 성인’ 일부, 서울 혜화동성당.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곳은 ‘가정’이다.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는 ‘나자렛 성가정’뿐 아니라 모든 가정과 연결돼 있다. 참하느님이시고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을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단지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신앙을 권면해야 하며 가정을 ‘성가정’으로 가꿔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권고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상이다. 선교사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 공동체를 이룬 것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큰 자랑이다. 이것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 바로 수많은 가정에서 순교자들을 배출하고 복자와 성인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성인·복자 배출한 한국 가톨릭교회 성가정들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가족 모두는 순교자이다. 정약종과 장남 정철상(가롤로)은 복자품에, 정약종의 부인 유 체칠리아와 아들 정하상(바오로), 딸 정정혜(엘리사벳)는 성인품에 올랐다. 정철상의 장인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과 처남 홍인(레오), 홍교만의 사촌 서(庶)동생 홍익만(안토니오), 홍익만의 사위 홍필주(필립보)와 그의 어머니 강완숙(골룸바) 역시 복자다. 유항검(아우구스티노) 가정 또한 순교자 집안이다. 유중철(요한)·유문석(요한)이 아들이고, 이순이(루갈다)가 며느리이다. 유중철·이순이는 동정부부다. 그리고 유중성(마태오)은 조카다. 이들 모두 복자로 공경받고 있다. 부인 신희 또한 순교자로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돼 있다. 이순이의 오빠 이경도(가롤로)와 동생 이경언(바오로)도 복자다. 이들 세 남매의 어머니 안동 권씨가 하느님의 종 권철신(암브로시오)·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동생이다. 따라서 이들 세 남매는 권일신의 자녀인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권 데레사 남매와 외척 간이다. 세 남매의 아버지 이윤하(마태오) 또한 초기 조선 가톨릭 신앙공동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한국 가톨릭교회 첫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바오로)은 복자 윤지헌(프란치스코)의 형이고, 복자 권상연(야고보)과는 이종사촌 간이다. 또 정약종 일가와는 고종사촌 간이고, 유항검 일가와는 가까운 인척이다.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당고모 김 데레사가 성인이고, 증조부 김준후(비오)와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이 복자다.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아버지는 성 최경환(프란치스코)이고, 어머니는 복자 이성례(마리아)이다. 복자 최해성(요한)도 최 신부의 먼 친척이다. 허계임(막달레나)과 딸 이영희(막달레나)·이정희(바르바라), 외손녀 이 바르바라, 시누이 이매임(데레사) 모두 성인이다. 이광헌(아우구스티노)·권희(바르바라) 부부와 딸 이 아가타, 동생 이광렬(요한)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최창흡(베드로)·손소벽(막달레나) 부부와 딸 최영이(바르바라), 사위 조신철(가롤로) 또한 한 가족으로 성인이 됐다. 복자 현계흠(바오로)은 현경련(베네딕타)·현석문(가롤로) 성인의 아버지다. 남명혁(다미아노)·이연희(마리아), 남이관(세바스티아노)·조증이(바르바라), 박종원(아우구스티노)·고순이(바르바라) 부부 세 쌍은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유진길(아우구스티노)·유대철(베드로), 조화서(베드로)·조윤호(요셉) 성인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고, 한영이(막달레나)·권진이(아가타), 이 가타리나·조 막달레나 성인은 어머니와 딸 사이다. 박큰아기 마리아·박희순(루치아), 김효임(골룸바)·김효주(아녜스), 이영덕(막달레나)·이인덕(마리아) 성인은 자매들이고, 홍병주(베드로)·홍영주(바오로) 성인과 복자 김대권(베드로)·김화춘(야고보)은 형제다. 아울러 복자 최인길(마티아)·최인철(이냐시오) 형제는 복자 최창현(요한)의 아저씨뻘이다. 복자 김이우(바르나바)·김현우(마태오) 형제의 배다른 형이 김범우(토마스)다. 윤유일(바오로)은 윤유오(야고보)의 형이며, 윤점혜(아가타)·윤운혜(루치아) 자매의 사촌 오빠로 이들 모두 복자다. 또 윤운혜의 남편 정광수(바르나바)와 시누이 정순매(바르바라) 역시 복자품에 올랐다. 교회 가르침 충실히 지키며 가정 내 신앙 교육 한국 가톨릭교회처럼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공경하는 성인과 복자가 가족과 혈연으로 얽혀 있는 예는 보편 교회 안에서도 거의 없다. 이는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증명해주는 본보기다.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대 그리스도인 가정은 매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삼종기도, 아침·저녁 기도뿐 아니라 성경과 기도서를 읽고 외우며 주일과 축일의 의무를 충실히 지켰다고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는 증언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이런 분위기가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상당수 집안에서 3~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했고, 때로는 배교를 했다가도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원천이 됐다. 복자 이경언(바오로)은 순교를 앞두고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내 아들과 딸아,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어머니께 효의 도리를 다하는 데 힘을 쏟도록 하여라. 모든 사람을 상냥하게 사랑으로 대하고, 너희가 이 세상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너희는 당연히 천국에 오를 것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5.27
![[금주의 성인] 성 론지노 (10월 16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0/08/Sdc1728367346049.jpg)
[금주의 성인] 성 론지노 (10월 16일)+1세기경, 출생 미상 및 튀르키예 선종, 순교자, 성경 인물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론지노 성인. 사진=굿뉴스 전설에 의하면 론지노 성인은 빌라도 총독의 지시를 받고 예수님께서 매달린 십자가 곁에 서 있다 창으로 주님의 옆구리를 찌른 군인입니다. 그는 주님의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요한 19,34) 예수님의 오상(五傷) 가운데 창에 찔려 마지막으로 생긴 다섯 번째 상처 이야기는 공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오직 요한 복음서에만 나옵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을 찌른 군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그분을 지키고 있던 다른 이들과 함께 지진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라고 말한 백인 대장이라고 합니다.(마태 27,54) ‘롱기누스’라는 이름도 「빌라도 행전」으로 알려진 「니코데모 복음서」라는 외경(外徑)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그 이름이 요한 복음 19장 34절에서 ‘창’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라틴어로 바뀌면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론지노가 신앙을 갖게 된 계기나 기적 이야기 등은 13세기 제노바의 주교이자 연대기 작가인 야고보 데 보라지네 복자가 편집한 「황금 전설」에서 전해집니다. 여기서 론지노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군인들의 백인 대장으로, 예수님 상처에서 나오는 피와 물을 본 뒤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나이 들어 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 예수님을 찔렀던 ‘창’에서 흘러내린 피를 눈에 갖다 대자 즉시 시력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후 론지노는 군인 생활을 그만두고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고, 오늘날 튀르키예인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에서 28년 동안 수도생활에 전념하며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습니다. 그러다 박해를 받았는데, 지방 장관은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론지노의 이를 뽑고 혀를 자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론지노의 설교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론지노는 도끼를 들고 이교도의 신상을 부수며 “이것이 무슨 신들인가!”하고 외쳤습니다. 신상이 부서지면서 쏟아져 나온 마귀들은 지방 장관을 사로잡아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론지노는 자신이 죽어야 지방 장관의 눈이 나을 것이라 했는데, 그 말대로 론지노가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자 지방 장관의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방 장관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남은 생애 동안 선행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론지노의 유해는 직접 십자가 아래에서 모은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유물과 함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 만토바의 성 안드레아 대성당에 모셔졌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지방과 성당에서 그의 유물을 보존하며 공경하고 있습니다.cpbc2024.10.08
![가족의 수호자, 그 이름 아버지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9)](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fdT1715067341708.jpg)
가족의 수호자, 그 이름 아버지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9)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이자 성모 마리아의 배필인 성 요셉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 요셉에 관해 성경이 전하는 기록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적은 기록 속에서 그는 과묵하고 이해심 깊은 남편, 순종과 침묵의 인물, 노동의 존엄성을 실천한 사람, 그리고 가족의 수호자이자 책임 있는 아버지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해 부모를 함께 기념하지만, 다수의 서양 국가들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나눠 기념한다. 모두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된 기념일이다. 어머니의 날은 안나 자비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계기가 되었고, 아버지의 날은 소노라 스마트 도드가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한 것이다. 남북전쟁 참전 용사로서 여섯 자녀를 홀로 키운 아버지의 헌신에 감사하기 위한 이 기념일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어머니의 날과 함께 미국 사회의 중요한 가족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당시 미국은 오늘날과 같은 초강대국은 아니었기에 이 두 기념일은 미국의 생활문화가 세계로 전파된 초기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친근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어머니의 사랑은 ‘감싸는 사랑’, 아버지의 사랑은 ‘떠받치는 사랑’으로 설명된다. 아버지의 역할이 문제 해결, 규칙 제시, 보호와 책임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더욱 엄격하고 거리감 있게 그려진다. 「논어」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등장한다.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제자 진항이 “아버지에게서 특별히 들은 가르침이 있느냐”고 묻자, 백어는 평생 동안 들은 말이 단 두 가지, ‘곧 시를 배우라’, ‘예를 배우라’는 말뿐이었다고 답한다. 이를 들은 진항은 군자는 자신의 아들을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에서 성 요셉을 직접적으로 기리거나 소재로 삼은 작품은 매우 드물다. 그중 비교적 분명하게 성 요셉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의 ‘주님 탄생을 위한 노래(In nativitatem Domini Canticum) H.414’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 탄생 장면에서 목자와 천사, 그리고 성 요셉의 대화를 풀어낸다. 성 요셉 대축일에 미사 봉헌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youtu.be/DllzSso5fcY?si=QN4ZdZHRMZVN71jh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역시 어쩌면 인간이 상상해 온 엄격한 보호자의 형상을 반영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에 등장하는 불멸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는 매우 상징적이다. 이 노래는 완고한 아버지를 향해 딸이 목숨을 걸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선율과는 정반대의 가사가 만들어내는 이 강렬한 대비는 음악의 마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youtu.be/Sf-tjXevlyQ?si=4CMPwRS8Gm3R9nTk 작곡가 류재준cpbc2026.03.11
![[독자기고] 엄마와 함께하는 성지순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08/bXQ1778204993439.jpg)
[독자기고] 엄마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4월 9일 엄마의 요양원에 방문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하다. 기차 안에서 요기하며 대전에 계시는 엄마를 보러 간다. 적막이 감돈다. 절로 나오는 한숨, 머리에는 가시관이 얹혀있다. 변해가는 엄마 모습을 떠올리니 가시 하나가 박힌다. 자식의 도리에 못 미치니 괴로움의 가시가 또 하나. 두 시간 넘게 달려가 만난 엄마를 보고 또 하나. 이렇게 엄마와 나는 수 년을 함께했다. 엄마의 목소리와 눈빛은 여전히 젊다. 당당하시다. 그럴 땐 나도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다. 땅 한 평도 놀리지 않는 엄마 세대, 집 마당에 마늘을 심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드리고 집으로 오는 차 안의 공기는 항상 무겁다. 가시로 콕콕 찔린 상처에 눈을 감는다. 3일 후 엄마가 또다시 나를 부르신다. 4월 16일 요양원으로 달려가 보니 엄마 얼굴이 심상치 않다. 온몸에 얼굴까지 요독으로 괴로워하신다. 서둘러 병원으로 모시고 심전도·신장·엑스레이·소변 검사. 대학병원 병원 의자에 지쳐 누우신 엄마, 신장내과 교수님은 말없이 컴퓨터만 바라보신다. 순간 각오를 하고 들을 자세를 취한다. 신부전 말기. 투석을 하지 않으면 2주 안에 돌아가실 거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투석을 해도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씀?. 가족들과 투석으로 연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뜻을 모은다. 통증을 줄이며 평화롭게 가시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엄마의 통증은 나도 누른다. 어쩔 수 없이 투석 요양병원으로 모신다. 일주일에 3번, 한 번 할 때마다 4시간. 투석을 시작한 후 엄마는 안정의 길로 돌아온다. 나도 기쁘다. 오늘은 사랑의 기쁜 관이 앉혀 있다. 엄마의 밝아진 목소리에 더해 가족들의 지원으로 지난여름부터 준비해온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10일간의 순례행을 결정한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엄마에게 성지순례 갔다 오겠다고 인사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밥을 제대로 드시고 있는지 묻는다. 다시 또 하나의 가시가 박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4월 21일 순례길에 오른다. 이틀 뒤 프란치스코 성인이 계시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발칸의 넓은 광야를 버스로 이동하던 중 핸드폰에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연속된 부재 전화가 뜬다. 순간 묵주 한 알에 엄마의 길을 봉헌한다. 3시간 후 호텔에 돌아와 가족에게 건 전화. 엄마의 죽음이 전해진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마리아의 울음은 빈 무덤의 통곡의 울음, 나의 통곡이 시작. 영혼이 나간 눈빛, 손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듯 물건을 들었다 놨다, 발을 동동거리며 방 곳곳을 돌아다닌다. 타 본당 성지순례에 끼어 온 터라 조용히 홀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가이드님께 비행기 표를 알아봐 달라 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가이드님은 크로아티아에서 직항은 없고, 두 번의 환승 끝에 돌아간다고 해도 발인 날짜를 넘길 것이라 한다. 내게 얹혀있는 가시관에서 피가 흐른다. 룸메이트에게 미안함도 잊은 채 꼬박 주님을 향해 분노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가시관 가시로 저를 찌르시는지. 다음 날 신부님과 가이드님께 남은 일정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말해야 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마태 8,22) 성경 말씀이 살아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동시에 정종순 마리아를 위한 순례 미사가 시작되었다.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내가 몸담아 온 본당 식구와 재속 가르멜회에는 엄마의 부고를 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성인들의 행적이 깃든 순례 성당에서 엄마를 위한 미사가 매일 봉헌되었다. 발인 전날, 크로아티아에서 영정을 컴퓨터 전면에 띄운 채 장례미사를 올렸다. 주님! 이거였군요. 엠마오 제자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그 순간처럼 나의 가시관에서 깊숙이 못 박힌 가시가 아지랑이로 변하여 엄마와 나의 순례를 이끌고 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번 순례 여정은 당신께서 준비하신 것. 보이지 않는 당신을 깊은 내면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인이 된 정종순 마리아를 위하여 주모경을 바쳐주시는 감사로 고인의 부고를 알려드립니다. 십자가 성 요한의 딸. 황규순 헬레나 cpbc2026.05.08

21세기 교황들, 젊은이에게 이 이야기는 꼭 했다 ‘매일 성경을 읽고 항상 기도하며 자주 성사를 보라.’ 21세기에 베드로 사도의 직무를 수행한 성 요한 바오로 2세·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청소년과 청년, 곧 젊은이들에게 당부한 공통된 권고다. 세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토대로 삼아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고 성장하라고 당부했다. 청소년 주일(25일)을 맞아 전임 교황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남긴 주요 메시지를 다시 살폈다. 세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우선으로 성경을 권유한 이유는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를 아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자주 읽으면서 주님을 만날 것을 권유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성경 읽기에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복음서에서 시작하기 바랍니다. 매일 한두 줄을 읽으십시오. (⋯) 기도 안에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리고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면 여러분은 주님과 여러분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5년 제30차 청소년 주일 담화 중) 세 교황은 기도하면 성령을 깊이 알게 된다고 했다. 기도가 신앙생활을 증진시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을 이끌기 때문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9년 제15차 청소년 주일 담화에서 “기도하기를 즐겨 교회의 살아 움직이는 지체가 되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돼라”고 당부했다. 성사는 신앙을 굳건히 해준다. 특히 견진성사는 온 삶을 바쳐 하느님을 증언하고 하느님께 영광드릴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준다. 세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견진성사를 꼭 받길 권고했다. 아울러 성체성사에 자주 임할 것을 요청했다. “성찬례 거행에 자주 참여하고 시간을 할애해 성체조배를 할 때에 사랑의 원천인 성체에 힘입어 여러분은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기쁜 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2008년 제24차 청소년 주일 담화 중) 세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영적 공허에서 깨어나 ‘일어나라’라고 했다. 교황들은 젊은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온 인류가 넘어지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일어나 증언하라!”고 촉구했다. “일어나라! 기죽어 있거나 너 자신 안에 갇혀있지 마라. 일어나라! 인간관계 안에 사랑과 존중을 증언하라. 일어나라! 사회 정의, 진리와 공정, 인권을 지켜라. (⋯)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기쁘게 증언하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에, 학교와 일터에, 디지털 세상에,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라.”(프란치스코 교황, 2021년 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중) 세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온 인류에 대한 개방정신과 연대의식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세 교황은 이러한 삶을 제대로 살도록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권유했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인간답고 거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머무르시도록 하십시오. (⋯) 돈과 물질 재화와 출세와 성공을 우상화하는 위험을 깨달으십시오. 또한 그러한 거짓 환상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 이웃 사랑을 키우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인간적 재능과 전문 능력을 공동선과 진리를 위하여 쓰도록 하십시오.”(베네딕토 16세 교황, 2009년 제24차 청소년 주일 담화 중) 21세기 착한 목자이며 위대한 교황으로 교회와 온 세상에서 존경받는 세 교황은 그들이 남긴 문헌을 통해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으뜸 자리에 두라”고 권고한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5.21

십자가와 성경 든 복사단과 사제 뒤엔 성당 묘원으로 향하는 행상[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 전통 상장례 <하>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상여’, 유리건판, 1911년 황해도 청계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상주의 지위에 따라 상여 모양 달라져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 전통 상장례에 지관(地官)의 역할이 큰 것에 놀라워한다. 지관은 음양오행설의 풍수에 기반해 집터와 묘터를 정하거나 길흉을 평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시대부터 활동했고, 조선 왕조에서는 지관을 과거로 선발해 전문적으로 양성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모든 계층에 풍수가 성행했으며 과거를 통해 선발 양성된 이를 지관이라 했고, 민간에서 생업을 겸하며 풍수를 보는 이를 지사(地師)라 구분했으나 일반적으로 지관이라 통칭했다. 풍수가·풍수·풍수장이는 지관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장례일을 잡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한다. 첫째는 친족 초대 의무다. 그들이 올 수 있는 날로 장례일을 잡아야 한다. 둘째는 지관이다. 지관이 먼저 묏자리를 정해야 날을 잡을 수 있다. (⋯) 유족이 부른 지관의 임무는 막중하다. 그는 패철 등을 활용해 묏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선산을 소유하고 있다. 부유한 문중의 선산은 꽤 멀다. 보통 망인을 선산에 묻는 것이 관례지만 이때도 지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하든 다른 묏자리를 찾든 결정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는 어려운 일이라 오래 걸릴수록 지관의 몸값이 치솟는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24~325쪽) 지관이 정해준 장례일이 되면 여섯, 여덟, 열여섯 혹은 스물네 명의 상여꾼이 집 앞에서 붉고 푸른 색색의 종이로 상여(喪轝)를 장식하며 출상 채비를 한다. 고인을 장지까지 운구하는 도구인 상여는 크게 거(車)와 여(轝)로 나뉜다. 거는 바퀴를 달아서 이끄는 방식이고, 여는 어깨에 메는 방식이다. 거에는 말이 끄는 윤거(輪車)와 소가 끄는 상거(喪車)가 있다. 왕의 종친이나 사대부가 죽으면 주로 윤거를 사용했고, 장지가 멀어 상여꾼을 구할 수 없을 때 상거를 사용했다. 민가에서는 소여(小轝)만 상여로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고 인지하는 상여다. 상여는 상주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모양이 달랐다. 지위가 있는 이들은 상여를 다층화하고 그림과 각종 장식물을 빈자리가 없을 만큼 빼곡하게 붙이고 달아 꽃상여를 만들었다. 상여가 크고 화려할수록 유교적 효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스도인들은 상여에 십자가와 성경 구절을 새겼고, 불자들은 만(卍)자를 넣어 외부인들이 자신의 종교를 알 수 있도록 표현하기도 했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행상’, 유리건판, 1911년 황해도 청계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1911년 황해도 청계리 출상 직전 상여 촬영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황해도 청계리에서 출상 직전 상여를 촬영했다. 건장한 10명의 상여꾼이 상여를 멨다. 상여 뒤에는 기품있는 상주와 상주 가족들, 일가친지들이 슬픔에 가득 찬 얼굴로 상여를 뒤따를 채비를 하고 있다. 상여는 소박하다.<사진 1> “장례 행렬이 출발한다. 청홍색 종이 초롱이 선두에 서고, 향도 격인 상복 차림의 주례자가 지휘봉을 들고 우뚝 솟은 상여 앞에서 걸어간다. 상여는 휘장으로 둘렀다. 관은 그 아래 있다. 상여꾼들은 관대 아래 횡목에 매단 끈을 어깨에 걸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상엿소리의 리듬을 타면서 춤추듯 걷는 걸음이다. 때로는 숫제 춤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갈 길이 멀다. 요령잡이와 상여꾼들은 최대한 에둘러 먼 길을 잡는다. 장례 소요 시간으로 견적을 내기 때문이다. 장지가 너무 가까워 큰 벌이가 안 되겠다 싶으면 별짓을 다 해 시간을 끈다. 개울을 건널 때마다 상제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힘들면 멈추고 돈을 주면 다시 간다. 장지까지 당일에 못 갈 때도 많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28쪽) 베버 총아빠스는 장례 행렬을 1911년 황해도 청계리<사진 2>와 1925년 함경남도 내평<사진 3>에서 촬영했다. 둘다 가톨릭 교우의 장례 행렬을 촬영했지만 1911년 청계리 사진은 우리 전통 풍속을 잘 보여주고, 1925년도 내평 사진은 당시 교회풍의 장례 행렬을 보여준다. ‘사진 2’는 상여가 양편 초가를 빠져나와 마을 어귀에 당도한 장면이다. 주민들이 마을 어귀까지 나와 떠나가는 상여를 지켜보며 고인을 위해 기도하고, 상주들과 문상객들을 위로한다. 상여 맨 앞에 올라탄 요령잡이가 종을 치며 구슬피 노래하며 앞길을 인도한다. “노상에서 부르는 상엿소리는 실로 통절하다. ‘저승길이 힘들구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이 산 헐면 다시 오나?’ 요령잡이 둘이 요령을 흔들며 관 앞을 춤추듯 돌다가 이렇게 앞소리를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로 응답한다. ‘두 번 다시 아니 오네’. 다시 앞소리가 ‘바닷물 마르면 다시 오나?’라고 물으면 뒷소리는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두 번 다시 아니 오네.’ 이런 창의적 소리 메김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28쪽)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행상’, 유리건판, 1925년 함경남도 내평,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1925년 내평 사진, 교회풍 장례 행렬 보여줘 ‘사진 3’은 ‘사진 2’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상여 맨 앞에는 십자가를 든 복사단 행렬이 자리한다. 성경을 든 복사가 뒤따르고 그 뒤에는 중백의에 영대를 두른 카누토 다베르나스 주임 신부가 걸어가고 있다. 주임 신부 뒤에 자리한 상여는 고인이 그리스도인임을 알리는 십자가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상여가 내평본당 공동 묘원으로 들어섰음을 많은 나무 십자가 묘비가 알려준다. 상주들을 비롯한 행렬 참가자들이 무거운 침묵 속에 상여를 뒤따른다. 그리스도인이 죽음 앞에 오열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완전히 한몸이 되는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 감사송 1)라고 기도한다. 하관(下棺)은 집안에 따라 관 채로 안치하는 경우도 있고, 탈관해 안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인의 머리를 북향, 발을 남향으로 반듯하게 안치한 후 흙으로 메우는 것은 어디든 같다. 지방에 따라 하관 역시 지관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다. 지관은 하관 시간을 정하고 하관 장면을 보지 말아야 할 띠를 미리 알려준다. 이 띠에 해당하는 사람이 만약 하관 장면을 보게 되면 살을 맞아 병을 얻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해서 하관을 마칠 때까지 뒤돌아 서 있게 한다.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하관’, 유리건판, 1925년 함경남도 내평,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베버 총아빠스는 ‘사진 3’의 하관 예식을 필름에 담았다.<사진 4> 상여에서 막 내려진 관에는 십자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상여꾼들이 하관을 위해 광목 천을 감싸고 있다. “벽을 친 묘혈에 하관이 진행되는 동안 인부들은 천천히 주위를 돌면서 땅을 밟아 다진다. 이때 지관이 다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꿰고 있다. 관은 정확하게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 지관은 끊임없이 납추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면서 그 방향으로 관을 움직인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측정하여 수평을 잡는다. 마침내 지관이 작업을 끝낸다. 종이를 바른 나무판에는 망인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것을 관 위에 놓는다. 관을 묘혈 석벽 사이에 정중히 모시고 그 위를 각목으로 덮은 다음 흙을 붓는다. 묘혈이 완전히 메워지면 인부와 상여꾼들이 땅을 밟아 단단히 다진다. (⋯) 원무를 추면서 흙다지기를 오래 거듭하는 동안 어느덧 높고 견고한 봉분이 쌓인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30~331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11.06
![[신앙단상] 성당 봉사로 얻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04/sDP1762217527594.jpg)
[신앙단상] 성당 봉사로 얻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 김기형 지난주 얘기한 히스토리를 통해 15년 전 우리 가족 4명은 같은 날 동시에 세례를 받게 되었고(11월 2일자 ‘신앙단상’ 참고), 세례를 받자마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독서, 아내는 제대회, 그리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기에 아내는 자모회 봉사도 함께했다. 그런 아내를 돕고자 나 역시 대놓고 비공식적인(?) 자모회 일꾼 봉사를 시작했다. 독서나 자모회 활동이 매일 있는 봉사는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은 봉사 기회가 주어졌다. 독서를 하기 위해 「매일 미사」 또는 성경을 읽어야 했고, 아내는 제대를 준비하기 위해 제대의 중요성과 전례 용품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성당에서 많은 봉사활동이 이뤄지지만, 아내와 나는 전례와 관련된 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우리 대화도 각자 봉사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신앙 관련, 초등부 주일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 등 가족의 신앙생활 관련 내용이 자연스럽게 공통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다른 주제로 이어지면서 나와 아내의 대화 폭은 넓어져 갔다. 성당에서의 봉사활동은 신앙생활, 개인 성찰, 일상적 삶의 모습 등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아내와의 대화, 아이들과의 대화였다.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하기 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아내와의 대화는 주로 부족한 생활비, 다른 집과의 비교 등 답이 없거나 말다툼으로 번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나의 대답은 “당신이 알아서 해” 또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가 전부였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공부해라, 그만 좀 놀아라,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등 야단치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대화 주제는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자 하는 것들, 제대회·자모회·독서 등 봉사활동과 관련된 이야기들, 나아가 아이들 부모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 같은 것들로 바뀌었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도 잘 알듯이 천주교는 사랑과 감사를 강조한다. 나와 아내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모회 봉사를 열심히 했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은 아내는 내가 회개를 결심한 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제대회 봉사를 열심히 했다. 아이들은 깔깔깔 웃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초등부 주일학교 선생님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했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미사 독서에 임했다. 그렇게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간이 쌓이고 흘러 15년이 지났고, 이사를 하면서 본당을 두 번 옮기게 되었지만, 아내와 나의 봉사활동은 변함없이 진행 중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대회 봉사를 했던 아내는 지금 첫영성체 부모 교리교사로 봉사 중이고, 독서 봉사를 했던 나는 해설 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주일학교에 다니던 딸과 아들은 중고등부 교리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성당에서의 봉사는 신앙적 깊이를 더 깊게 해주었고, 이는 자녀들이 어긋나지 않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본이 되었다. 무엇보다 냉랭했던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다.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며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2사무 7,18)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것입니다.”(2사무 7,29) 김기형cpbc2025.11.05

성스러운 캔버스에서 다이아몬드 두개골까지화제의 전시에서 만나는 종교 파올로 베로네제 작 '그리스도와 백인대장', 1575~1580년.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데이미언 허스트 작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년)와 앞쪽 두개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잇달아 개막했다. 신앙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16세기부터 과학과 물질에 그 자리를 내어준 듯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시대와 당대의 작가가 담아낸 종교가 이색적이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 전이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톨레도 미술관이 소장한 렘브란트·고야·다비드·터너 등 유럽 회화사의 변곡점으로 거론되는 거장들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크게 5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세기 중반~19세기 중반, 즉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낭만주의에 이르는 예술사조와 함께 시대와 철학,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작품의 주제와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엘 그레코 작 ‘겟세마니의 기도’ 1590~1595년 경.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사순을 거쳐 부활 시기에 접어든 만큼 이 가운데 스페인 종교미술의 토대를 마련한 엘 그레코의 ‘겟세마니의 기도’가 눈에 띈다. 네 복음서를 통합해 예수님이 체포되기 직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드린 기도를 시각적으로 해석했다. 그림 오른편에는 유다와 성전 경비병이 예수님을 향해 다가오는가 하면, 왼편의 깊이 잠든 베드로·야고보·요한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무릎을 꿇은 채 길게 늘어난 예수님의 신체는 내면의 갈등과 영적 고양을 표현하고, 왼쪽 상단의 천사는 십자가 수난을 상징하는 금잔을 건네며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요동치는 하늘, 전체적으로 황금·은·붉은색이 뒤섞인 강렬한 색채 대비는 인간의 고통과 신성의 초월을 내포하고 있다.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작 '성가정과 세례자 요한', 1540년경.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성경 속 그리스도와 로마군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르네상스 특유의 방식인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한 파올로 베로네제의 ‘그리스도와 백인대장’,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성가정과 세례자 요한’, 우르바노 8세 교황의 조카로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한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에게 의뢰한 ‘성모 마리아에게 까말돌리 수도회 회칙을 봉헌하는 성 베드로 다미아노’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이어진다. 데이미언 허스트 작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2007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영국 출신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시작됐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35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현대미술계에서 다채로운 해석과 평가를 받아온 허스트는 아름다움과 종교·과학·삶과 죽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의외로 상당수 작품의 오브제가 그리스도인에게 친숙한 이유는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과거 종교의 자리를 현대 의학과 자본이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체 4부 가운데 3부 ‘침묵의 사치’에서 과학과 종교, 예술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인간의 영혼과 부활을 상징하는 수천 마리의 나비를 사용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신의 사랑을 위하여’, 산 채로 살갗이 벗겨진 사도의 모습을 담은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등이다. 6월 28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 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년.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4.08
![[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유튜브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9/06/3m61693961823236.jpg)
[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유튜브를조승현 신부(CPBC 보도주간) 대한민국은 유튜브 공화국이다. 지난 8월 한 달간 한국인의 유튜브 사용 시간은 19억 5666만 시간이라고 한다.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하루 73분 유튜브를 시청했다.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이나 네이버보다 월등히 많이 사용한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유튜브로 본다. K팝이나 K드라마의 전 세계적 열풍은 유튜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악도 라디오도 유튜브로 듣는다. 특히 유튜브는 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이 학용품인 시대에 유튜브는 아이들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30초 내외의 짧은 ‘숏폼’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나 SNS에 올려 친구들끼리 공유한다. 유튜버 같은 ‘크리에이터’는 초등학생이 꿈꾸는 직업이다. 신앙생활도 유튜브다. 이제 사람들은 신부님들의 미사 강론도 유튜브를 통해 듣는다. 바티칸에서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을 안방에서 보고 듣는다. 여러 생활성가 가수의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궁금한 교리나 성경 지식은 유튜브를 검색해 공부한다. 황창연 신부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45만, 법륜 스님 구독자가 147만 명이다. 성지순례도 유튜브로 한다. 이스라엘의 예수님 성지가 내 손안에 있다. 유튜브를 통해 24시간 라이브로 프랑스 루르드 성모성지를 볼 수 있다. 성지순례 떠나기 전 유튜브로 내가 갈 성지를 미리 공부할 수 있다. 해외 유명 성지를 찾아간 영상이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 그럼 가톨릭 신자들은 유튜브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천주교나 불교의 조사는 없지만, 개신교 조사를 통해 추정해 보면 이렇다. 개신교의 조사(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60.7%가 하루 1시간 이상 유튜브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이용하는 개신교인 64.8%가 종교 콘텐츠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불교는 39.7%, 가톨릭은 31.4%가 종교 콘텐츠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특히 유튜브에서 종교 콘텐츠 주 시청자층이 6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조사된 것이 흥미롭다. 종교의 고령화 현상이 유튜브 시청 연령층에서도 확인된다. 조사를 진행한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유튜브로 복음을 접하는 현상을 ‘유반젤리즘(You-vangelism)’이라고 이름 붙였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텔레비전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활동을 가리켜 텔레비전(television)과 복음을 뜻하는 에반젤리즘(evangelism)을 결합한 파생어 ‘텔레반젤리즘’(Tel-evangelism)이란 용어가 있었는데, 유튜브 천하인 지금은 ‘유반젤리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과거 종교 방송국의 창립으로 TV를 통한 전교 활동은 새로운 혁신처럼 생각되기도 했지만, ‘유반젤리즘’ 시대에 TV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전유물이지 더 이상 복음화의 혁신이 되지 못하며, 선교 혁신은 스마트폰의 유튜브에 있다는 것이다. 다음 주 교회는 전교 주일을 맞이한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전교 주일을 앞둔 cpbc의 고민도 깊어진다.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신문을”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유튜브를”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교회와 세상의 연결은 신문 같은 전통 미디어가 아니라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유튜브 세상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cpbc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 새로운 시대 선두에 cpbc가 있을 것이다. 기도한다.조승현2024.10.08

AI 시대, 교황 회칙 토대로 인간 존재의 의미 되짚다[cpbc 특별강좌 -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 가톨릭대학교 교수 방종우 신부가 cpbc 특별강좌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 2부에 출연해 AI 시대 인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5월 레오 14세 교황은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레오 13세 교황이 1891년 산업화에 따른 노동 문제와 노동자의 권리를 다룬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한 이후 135년 만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4차 산업혁명 시기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삶과 사회 전반을 바꾸는 시대를 맞아 인간 존엄성과 기술의 올바른 활용에 관한 가르침을 담은 회칙을 직접 작성하고 반포했다. 1차 산업혁명 시기 근대 자본주의의 폐해와 노동자 인권을 강조했던 레오 13세 교황처럼, 그의 이름을 따른 레오 14세 교황은 AI 시대에 인간 존엄성과 AI를 올바르게 활용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은 최근 교황 회칙 발표에 따라 특집 강연을 방송했다. 주교회의 AI 태스크 포스(TF)에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대 교수 방종우·조동원 신부, 대구가톨릭대 교수 김도현 신부, 성바오로수도회 한창현 신부가 강연자로 참여했다. 사제들은 「고귀한 인류」의 탄생 배경과 AI 기술이 불러올 우려를 짚고, 정보와 효율이 중시되는 이 시대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물었다. 두 강연자씩 2회 연재한다. 강연 내용은 cpbc 플러스와 cpbc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1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김도현 신부 / 교회는 왜 AI를 말하는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김도현 신부가 cpbc 특별강좌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 1부에 출연해 AI 시대 교회가 왜 AI를 말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I 시대 인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AI의 토대는 1943년 매컬러-피츠 뉴런 모델로 탄생했다. 인공 신경망의 시초 모델로, 인간의 신경 활동을 0과 1이라는 이진법 단위로 설명했다. 이 모델은 뇌의 생리학과 형식 논리, 계산 이론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해 인공 뉴런 모델을 제시했다. 즉 인간의 두뇌 작용이나 심리 현상이 영적 현상을 배제한 채 물질적인 현상으로 해석되기 시작된 것이다. 김도현 신부는 “가톨릭교회가 보기에 AI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AI의 탄생 시점부터 유물론적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라며 “AI 문명은 유물론적 문명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렇게 되면 우리는 죽으면 그만인 존재이고, 신앙은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물질적 존재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확산되면 영적 차원과 초월적 가치를 외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AI가 불러올 획기적인 생산력 증대, 이에 따른 대량의 전력 소모와 생태계 파괴 역시 가톨릭교회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김 신부는 “모든 일들은 효율성과 인건비 절감이라는 유혹에 직면한다”면서 “이는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 위험에 놓이게 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낳을 가능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으로 내몰아 인간을 대단히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혁명일 수 있다”면서 “이미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서도 지난해와 올해 노동자 3만 명이 해고됐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전쟁과 생태계에서의 AI 활용을 언급하며 통제 없이 이뤄질 무분별한 살상도 우려했다. 그는 “이제 어쩌면 전쟁터에서 로봇에 의해 인간이 살상당하는 일이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앞으로 벌어질 모든 전쟁은 사실상 AI에 의해 작전이 수행되고 계획이 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10년 전부터 경고해온 공동의 집 지구를 살리는 문제에서 우리가 점점 더 후퇴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 시대 인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새로운 바벨탑을 쌓을 것인지, 하느님과 함께 머물 거룩한 도성을 지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부 - 가톨릭대학교 교수 방종우 신부 / AI 시대 인간은 무엇인가 가톨릭대학교 교수 방종우 신부가 cpbc 특별강좌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 2부에 출연해 AI 시대 인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I는 긍정 응답으로 관계의 겉모습만 만든다" 방종우 신부는 정보와 효율이 강조되는 이 시대 인간의 존재에 대해 되짚어봤다. 방 신부는 “회칙이 ‘AI 시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이유는 인간의 기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AI 기술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고, 인간의 사회구조를 재편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 인간 존엄성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는 인간다운 존재로 남아있어야 할 시급한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방 신부는 AI가 인간의 사고와 대화 방식을 모방하면서 실제 인간관계를 대신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AI는 이성의 외적 작용과 추론의 형식을 모방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AI는 인간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되도록 긍정적인 응답을 내어놓는다. 말이 흉내 내어질 때 관계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겉모습만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방 신부는 AI 의존과 모방으로 인간관계가 약해질 위험도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관계를 맺으면 스트레스가 발생하는데, AI 접근은 그런 걱정이 없고 훨씬 더 쉽게 우리가 다가갈 수 있다”며 “결국 다른 이를 찾으려는 갈망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의 존엄은 정보 처리의 효율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며 “고통을 억제하려면 결국 사랑과 갈망마저 꺼버려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유한성 인정하며 평화 선택해야” 기술의 오남용이 우려되고 있지만, 사제들은 결코 이 회칙이 AI를 거부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AI를 인간과 공동선을 위해 선용하고, 기술에 대한 인간 통제와 책임을 회복하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김도현 신부는 “교황께서는 AI에 대한 주도권을 인간이 가져와야 한다면서 AI를 무장해제해야 한다고 표현하신다”며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신부는 성경 속 느헤미야의 모습을 예로 들며,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듯, 우리 역시 참된 예루살렘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회칙은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기 위해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경청과 용기, 기도의 책임을 결합하도록 당부하고 있다”면서 “경쟁에서 벗어나 힘의 논리 대신 평화의 논리를 매 순간 선택하며,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고 요청했다. 방종우 신부는 기술의 효율을 우선하고, 빠르게 정답을 찾기보다 인간의 취약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신부는 육신의 생물학적 한계와 결함으로 치부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지적하며 “인간의 유한성, 취약성은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이라며 “오히려 이 한계 속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한계의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이 모험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방 신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고통 앞에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가가고 상처를 싸매고 시간을 내어주는 데 인간다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에게 있고, AI에게 없는 것은 망설임”이라며 “인간은 분명 상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망설임 속에 배려와 품위가 있다”고 짚었다. AI의 빠른 답변보다 때로는 투박하지만,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고 자신을 내어주는 위로가 인간 존엄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 신부는 “AI 시대의 위기는 AI가 인간처럼 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AI처럼 되는 데 있다”며 “사람의 완벽함의 척도는 습득한 정보나 지식의 양이 아닌 그가 행하는 사랑의 깊이”라고 강조했다. cpbc 특별강좌 다시보기 정리=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6.10.28

200년 전 브뤼기에르 주교 발자취 안에서 조선 선교의 꿈 만나다[바다의 별을 좇는 자 - 시암 부주교 조선 선교사가 되다]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서울대교구 용산본당의 브뤼기에르 주교 해상 경로 탐방기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위치한 용산성당 프랑스·중국 이어 이번에는 태국 등 아시아 지역 탐방 나서 방콕에 남아 있는 주교 사목지 순례·묵상하며 헌신 되새겨 서울대교구 용산성당(주임 황응천 신부)은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시성을 위한 현양에 있어 그 중심이요 심장이라 할 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에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가 있기 때문이다. 1835년 10월 20일 내몽골 마가자에서 선종한 브뤼기에르 주교는 그곳 마을 공동 묘지에 안장됐다가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31년 10월 15일 이곳 용산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했다. 이후 용산본당 교우들은 매일 동이 트는 새벽부터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를 찾아와 고인의 영원한 안식과 교회와 이 세상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더불어 용산본당은 매일 오전 미사 후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에서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용산본당은 지난해부터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면서 그분의 삶의 흔적과 의미, 영성을 체현하고 있다. 이 순례길은 2025년 2월 프랑스, 6월 중국을 거쳐 올해 10월 1일부터 6일까지 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에 이르는 해상 경로로 이어졌다. 이번 순례는 마카오에서 복안, 산서대목구청이 있던 기현 구급촌까지의 중국 내륙 순례로 마무리됐다. 가톨릭평화신문은 기획 특집 ‘바다의 별을 좇는 자- 시암 부주교 조선 선교사가 되다’란 제목으로 2회에 걸쳐 용산본당 순례자들의 브뤼기에르 주교 해상 경로 탐방기를 연재한다. 용산본당 순례자들이 10월 2일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에서 195년 만에 조선 선교사가 된 시암대목구 브뤼기에르 부주교와의 만남을 이루었다. 순례는 여행이 아니다. 여행이 감각의 체험이라면 순례는 영의 체험이다. 여행이 오감(五感)의 즐거움을 만족하게 한다면 순례는 영적 허기를 채워준다. 여행이 미지의 세상을 향한다면, 순례는 내 안의 빛을 찾아 영의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그래서 순례는 여행과 완전히 격이 다른 내적 정화를 체험하는 ‘영의 여정’이다. 모든 순례자는 서로 다르게 체험하지만 하나같이 순례 여정에서 감정이 순화되고 하느님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영의 사람으로 조명되어 변화된다. 마카오에서 시암 선교사로 방콕에 가고, 시암의 부주교가 된 후 조선 선교를 위해 방콕을 떠나 페낭, 마닐라를 거쳐 마카오로 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해상 여정을 탐방하기 위해 길을 나선 용산본당 30명의 순례자도 6일간의 참 순례를 체험했다. 순례자 모두 브뤼기에르 주교의 전구로 하느님과 하나 되는 크나큰 자비를 체험했다. 연휴가 시작되는 10월 1일 새벽 인천공항은 인파로 붐볐다. 수많은 낯선 사람 속에서도 용산본당 순례자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가 자주색 스카프를 동여맨 가방을 들었고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세례명을 부르며 수다를 즐기고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시성 기도와 순례자의 기도를 각자 바친 후 방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도로 시작하는 순례는 기쁨을 안겨준다. 왠지 거룩한 사람이 됐다는 느낌이랄까! 오직 하느님께만 온전한 의미로 사용되는 형용사 ‘거룩하다’를 인간에게 표현할 때는 그 인격이 하느님께 동화돼 그분께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거룩한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이다. 용산본당 순례자들은 벌써 기도를 통해 모든 여행자와 구별되는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1827년 6월부터 1831년 2월까지 3년 8개월간 사목하며 사제를 양성했던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 전경. 지금의 주교좌 대성당은 태평양 전쟁 이후 새로 지어져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 부분 개축을 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사목한 대성당 비행 6시간 만에 방콕에 도착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26년 12월 11일 시암대목구 선교사로 임명돼 마카오를 떠나 6개월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1827년 6월 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방콕에 당도했다. 방콕은 습하고 더웠다. 지난 두 달여 간 연신 내린 비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버스 통풍구에서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몽환의 은수처로 우리를 끌고 가는 듯 착각에 빠지게 했다. 첫 순례지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목지인 성모 승천 대성당이었다. 방콕에는 차오프라야 강을 경계로 4개 성당이 있다. 강 동쪽에는 1675년 처음으로 설립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과 1786년에 설립된 묵주의 성모 성당, 1822년에 봉헌한 성모 승천 대성당이 있다. 강 서쪽에는 1769년 설립한 성 십자가 성당이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방콕에 도착해 처음으로 찾은 곳이 바로 성모 승천 대성당이다. 그곳에 시암대목구장 플로랑 주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랑 주교는 1820년 주교좌 대성당 땅을 사들여 이듬해 벽돌로 새 성당을 지어 1822년 봉헌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27년 6월 20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랑글루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성당을 “제법 예쁜 성당”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대성당은 태평양 전쟁 이후 지은 성당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두 차례에 걸쳐 부분 수리를 했다.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사목 방문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목 방문한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 내부. “조선 선교사로 파견해 주십시오” 성모 승천 대성당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사목지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서 신학교를 운영하고 본토인 사제를 양성했다. 그는 매일 4과목을 수업하고 격주로 성경을 강의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신학생들을 위해 시암어로 된 라틴어 문법책과 시암어-라틴어 사전을 펴냈다. 그는 성모 승천 대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했다. 당시 방콕과 시암 왕국 곳곳에는 전쟁과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베트남인·캄보디아인·라오스인·중국인·일본인들이 있었다. 시암인들뿐 아니라 이들 이방인 모두 주교의 선교와 사목 대상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주일이면 방콕의 4개 성당을 돌며 미사를 주례하고 성사를 집전했다. 그는 1826년 6월부터 1827년 말까지 1년 6개월 동안 어린이 1600여 명에게 유아세례를 줬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조선 선교사의 꿈을 키웠다. 그는 매일 밤 플로랑 주교와 손을 맞잡고 조선 선교에 관해 대화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 성당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와 교황청 포교성성에 조선 선교를 자원했다. 플로랑 주교 또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선교를 희망하면 기꺼이 그를 조선으로 떠나보내겠다고 밝혔다. 레오 12세 교황은 1828년 2월 5일 브뤼기에르 주교를 시암대목구 부대목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브뤼기에르는 1829년 6월 29일 방콕 성 십자가 성당에서 플로랑 주교 주례로 주교품을 받았다. 그리고 1831년 2월 13일 조선으로 가기 위해 방콕의 성모 승천 대성당을 떠났다. 서울 용산본당 순례자들이 방콕 성모 승천 주교좌 대성당 소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주교의 흔적 찾아 용산본당 순례자들은 성모 승천 대성당 소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성모 승천 대성당을 조용히 순례하면서 기도하고 묵상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곳에서 예수님처럼 시암인과 이방인들에게 참된 ‘일용할 양식’ 곧 ‘생명의 양식’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글로써, 말씀으로써, 성사로써 이 생명의 양식을 나눴다. 그러면서 이 생명의 빵 부스러기라도 나눠달라고 호소하던 조선인들에게 자신이 찾아갈 것을 약속했다. 용산본당 순례자들은 195년 만에 이곳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생명의 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조선으로 떠나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만났다. 감격스럽고 거룩한 만남이다. 용산본당 주임 황응천 신부가 영해 주는 양형 성체가 마치 브뤼기에르 주교가 베푸는 성체성사처럼 다가왔다. 모두 울컥했다. 역시 마음을 열어야 제대로 보인다. 브뤼기에르 주교와의 방콕에서의 첫 만남은 이렇게 황홀하고 멋졌다. 그리고 순례자 모두를 ‘거룩한 사람’으로 변모케 하는 성스러운 만남이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10.20

거짓 교사와 불경자 경계하고 거룩한 사람이 돼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92) 베드로의 둘째 서간 베드로의 둘째 서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 교사와 불경한 자들을 경고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은 대로 주님의 재림 날까지 흠 없이 깨끗하게 살라고 권고하고 있다. 엘 그레코, ‘베드로 사도의 눈물’, 1580, 톨레도 대성당, 스페인. 베드로의 둘째 서간(이하 베드로 2서)의 가장 중요한 자료는 ‘유다 서간’(이하 유다서)입니다. 특히 2장 1절에서 3장 3절까지의 내용은 유다서를 중점적으로 이용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2서는 원본문인 유다서에 매여 있지 않고 내용상 독자적인 강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예로 베드로 2서는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과 관련해 제기되는 이의를 부각하지만, 유다서에서는 이 문제 자체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표지는 베드로 2서가 유다교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유다서보다 후대의 집단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 그래서 이 서간은 유다서에서 나타나는 배타적 경향과 바오로계 서간에서 볼 수 있는 개방적 경향을 조화시키려는 사목적 노력의 결과로, 곧 초대 교회의 여러 성향을 종합하려고 애쓴 데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주석 성경」 931~932쪽) 베드로 2서는 글쓴이가 주님의 거룩한 변모 때에 그 곁에 있었던(1,16) 시몬 베드로 사도라고 밝힙니다.(1,1) 그러면서 자기 죽음이 가까웠다(1,14)면서 유언 형식으로 이 서간을 쓴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립니다. 하지만 베드로 2서에는 누구에게 이 서간을 보내는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이하 베드로 1서) 수신자와 같다면 소아시아 5개 교회에 보낸 편지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베드로 2서는 베드로 1서와 문체가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 서간에서 같은 낱말은 100개뿐이지만, 다른 낱말은 599개나 됩니다. 또 주님의 재림에 관한 내용도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두 서간이 꽤 긴 시차를 두고 쓰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증거로 베드로 2서는 교회의 첫 세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3,4) 이는 베드로 2서를 쓴 이가 그 세대에 속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2서가 유다 서간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보다 훨씬 후대에 쓰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베드로 2서는 성경 경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나 예언자들을 글과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이 이미 신자들에게 성경으로 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3,15-16) 이런 이유로 성경학자들은 베드로 2서가 125년께 헬레니즘 세계의 디아스포라에 살던 유다계 그리스도인에 의해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에 따르면 베드로 2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가장 먼저 성경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ετρου Β(페트로 베타)’,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Petri Ⅱ’,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베드로의 둘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베드로 2서는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베드로 2서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생활을 하면서(1,4)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은 이입니다. 이 삶은 사도들의 증언과 성령의 감도를 받은 말씀에 바탕을 둡니다.(1,21)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3,14-18) 베드로 2서는 ‘거짓 교사들’을 경고합니다. 그들은 문란한 교리와 생활을 조장하고 퍼뜨리는 자들입니다.(2,1-22) 그들은 이단자들로 구약의 타락한 천사들,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처럼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더불어 베드로 2서는 ‘불경한 자들’을 단죄합니다.(2,1) 이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정하게 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거짓 자유를 퍼뜨려 신앙 공동체를 타락시키려고 하는 자들입니다.(2,19) 이들은 두 가지 이단에 빠진 자들입니다. 첫째,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부정하고 천사들을 멸시하기 때문에 ‘신학적 이단자들’입니다.(2,10-11) 둘째,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도덕적 이단자들’입니다.(2,14) 성경학자들은 베드로 2서가 이단자로 단죄하는 ‘거짓 교사’와 ‘불경한 자’가 바로 ‘영지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지식과 완전한 자유를 천부적으로 타고났다고 자부하면서 육체를 멸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2서는 주님의 재림이 왜 늦어지는지 과감하게 제기합니다. “그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소? 사실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창조 이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소?”라고 묻습니다.(3,4) 베드로 2서는 이러한 신앙의 결핍을 단호히 단죄하고 구약 노아 시대의 홍수가 앞으로 닥쳐올 마지막 심판의 예형이라고 설명합니다.(3,6) 그러면서 지금의 세상은 불로 파멸되고 그 자리에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 합니다.(3,10-15)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 시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라고 합니다.(3,8)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지체된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그분의 사랑에서 오는 인내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가 회개할 시간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종말이 오기까지 모두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리길재 선임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10.08

강추위를 견뎌낸 화초 앞에서[월간 꿈CUM] 꿈CUM 수필 바야흐로 완연한 봄입니다. 작년 겨울은 정말 길고 추웠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1월 한 달 내내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가 계속되었으니까요. 폭설로 인한 피해는 또 어땠습니까. 당사자들의 아픔을 뉴스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미안할 정도였지요. 그토록 엄청난 추위가 어느 순간 확 풀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게 해 줍니다. 저는 계절의 변화에서 유난히 하느님의 권능을 느끼곤 합니다. 인간이 만든 대형 히터를 수천수만 대 돌린다 해도 어찌 이토록 단번에 온도를 높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작년 겨울, 은근히 고집을 부려본 게 있습니다. 베란다의 화초를 거실로 들여 놓느냐, 그냥 두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결국은 그냥 두었습니다. 덩치 큰 화분들이 힘에 부쳐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내일은 조금 풀릴 거야, 내일은, 내일은, 하고 기대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게으름을 부렸던 것이지요. 그래도 한 오라기 연민은 있었던지, 화분을 창 쪽에서 거실 쪽으로 조금 끌어주고, 신문지로 몸통을 둘러주기도 하면서, 제발 우리의 전통적인 날씨 삼한사온이 회생되기를 기대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 쓴 것이 있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주던 물을, 화분이 얼까봐 햇빛 좋은 대낮으로만 한 모금씩 주면서 겨울을 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입춘 절기를 맞았습니다. 저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요. 저것들이 죽었을까, 살았을까…. 자꾸만 베란다로 나가 살펴보는데, 군자란은 워낙 강해서 진초록 잎이 끄떡없는 것 같고, 문주란은 시원찮아 보였습니다. 너부죽한 연초록 잎이 축 늘어져 아무래도 얼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거실 문을 빵긋 열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곤 했지요. ‘어떡하지? 30년도 넘게 길러온 저것이 죽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잘못인데, 미안해서 어쩌지?’ 마침내 3월이 왔습니다. 햇살 좋아 쾌적한 어느 날, 모처럼 베란다 청소를 하러 나갔다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춘란 화분에 하얀 꽃이 납작 피어 있는 것입니다. 몇 해 전, 고향 선산에서 몇 그루 캐어다 심은 것인데, 그동안 꽃도 보여주지 않아 거의 팽개쳐 둔 것 중 하나가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덩치 큰 동양란 화분에도 꽃대가 죽죽 두 개나 올라와 있었습니다. 와, 와, 고마워라…. 저는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청소하려던 것도 잊은 채 꽃들과 눈 맞추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행여나 하고 문주란 화분들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저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어느새 속에서 또르르 말린 새잎들이 쏘옥 올라와 있었습니다. 아, 그 강추위를 견디며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하느님 생각이 났습니다. 하찮은 식물도 생명이기에 제 마음이 이렇게 쓰이는데, 하느님께선 자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이실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너는 나의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연민 그득한 눈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바라보시는 하느님. 그분이야말로 오죽이나 우리를 잘 보살펴 주실까요. 성경 말씀이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1-12) 이어서 또 하나의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좁은 화분의 공간을 온 우주로 여기며, 악조건 속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워내고 잎을 피워낸 화초들. 그 수고와 열정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지금은 사순시기입니다. 지난겨울 폭설로, 구제역으로, 그 밖에도 제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당해, 홀로 광야를 거닐며 고독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이웃들! 주님, 그들이 주님 보살핌 안에서 힘차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수원교구 분당성요한본당) 1940년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만남, 그 신비」, 소설집 「가을, 그리고 山寺」 「가슴에 묻은 한마디」 「비밀은 외출하고 싶다」, 수필집 「아름다운 귀향」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시집 「한 송이 풀꽃으로」,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등을 펴냈다. 2023년 9월, 장편소설 「만남, 그 신비」로 ‘황순원 문학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가톨릭문인협회 회원이다.cpbc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