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02/tiW1780360450650.jpg)
[특별기고]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레오 14세 교황 첫 회칙 「고귀한 인류」 톺아보기 (김태오 신부)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바티칸에서 회칙 「고귀한 인류」를 직접 발표하고 있다. OSV AI 시대, ‘사랑의 문명’을 재건하는 인간의 소명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가 5월 25일 교황과 주요 참석자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바티칸 새 시노드 홀에서 반포되었다. 「고귀한 인류」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35주년을 맞이한 지난 5월 15일에 서명되었고, 25일 공개 발표회와 함께 반포됐다. 공개발표회는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 안나 로울랜즈(영국 더럼 대학교 신학자) 교수, 크리스토퍼 올라(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 창업자), 레오카디 루숌보(캘리포니아 산타 클라라 대학교 예수회 신학대학원 정치신학 및 가톨릭 사회학) 교수,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회칙은 AI와 인간 존엄 관련 그리고 세계 평화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다룬 첫 사회 회칙이다. 그 배경에는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명이 인간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새로운 것들(res novae)”에 직면한 인류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이 놓여있다. 이번 회칙의 주요 내용은 소주제에 명시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 인간존재 보호함(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교황은 첫 회칙 공개발표회 마무리 발언에서 AI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위험요소에 대한 자신의 무거운 책임감을 표명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하나는 ‘AI를 무장해제(disarm)하는 것’이다.(회칙 110항 참조) 무장해제라는 강력한 언어를 교황이 선택한 이유는 AI 시대에 인류를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AI 시대에 기술을 가진 권력자가 자동으로 통치권을 갖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AI는 누구든 환영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AI의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교황의 AI 무장해제는 기술을 독점적 통제에서 해방하고, 토론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예로, 평화와 인류를 위한 핵 군축과 공동이익을 위한 핵에너지의 공동사용이다. 교황이 강조한 다른 하나는 AI가 ‘인류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I는 공동선을 건설하고 사랑의 문명(civilization of love)을 재건하는 ‘역사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 교황의 목소리다.(회칙 90항 참조) 교황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 이야기처럼, 모든 이가 함께 벽돌 하나하나를 쌓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의로운 공존을 이루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AI 시대에 소수의 특권층만이 아닌 인류 공동의 집을 위한 미래를 함께 건설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마니피캇의 성모님을 찬양하면서 발언을 마쳤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발표한 회칙 「고귀한 인류」. OSV 회칙의 구성 및 내용 회칙의 구성은 전체적 맥락을 요약한 서론과 결론, 그리고 본문 5장을 합해 총 5장 24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의 전개가 매우 진솔하고 세부적이며 논리적이다. 먼저 제1장은 교회의 사회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개괄적으로 제시하고(17~24항), 레오 13세 교황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회 교리 전통을 재조명하면서(28~45항), AI 시대 또한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임을 밝힌다. 사회 교리는 고정되고 정체된 매뉴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발전하는 “복음에 충실한 역동적 성격(dynamic character)”이다.(45항) 제2장은 먼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실체와 같은 사회 교리의 기초와 원리를 설명하며(46~58항), AI 시대의 “새로운 것들(new things)”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 교리의 핵심 원리들을 다시 정리한다(59~81항). △공동선(common good) △재화의 보편 목적(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보조성(subsidiarity) △연대성(solidarity) △사회정의(social justice)다. 회칙의 주요 내용은 제3장과 제4장에 있다. 제3장에서 교황은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technocratic paradigm)의 지배가 점점 커지는 위험을 분석하며(92~96항), 기술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인간의 주체성(지성, 양심, 자유 등)을 강조한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만들어진(built)’ 것이라기보다 ‘배양된(cultivated)’ 것에 더 가까워(98항)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다. 한마디로 AI는 “가치 있는 도구이지만 경계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AI 사용에 대한 책임성, 투명성, AI 거버넌스는 명확한 기준과 실질적 감독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108항), 앞서 언급한 AI ‘무장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110항) 마지막 부분은 우리 마음에서 투쟁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시와 두 사랑(Two cities and two loves)”을 언급한다. “두 사랑이 두 도시를 세웠다. 곧 하느님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시를 세웠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하느님 사랑이 하늘의 도시를 세웠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5일 회칙 「고귀한 인류」에 최종 서명하고 있다. OSV 제4장은 공동선으로서 진리·노동·자유의 보존을 강조하며, 전환의 시대에 사회 주요 분야에서 추진해야 할 인간 중심적 AI 활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AI 시대에 교육·노동·어린이·노동시장·금융·경제·가족과 청년 등 각 분야에서 야기될 수 있는 중요한 위험 요소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해법을 제안한다.(139~169항) 또 의존성과 상업화로부터 인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교황은 과거의 노예제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176항) 마지막 부분은 디지털 경제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에 대한 규탄이며,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제도·기업·중간조직·시민)이 강조된다. 제5장은 평화와 사랑의 문명에 관한 전망으로 나아간다. 교황은 AI 군비경쟁과 자율살상무기 개발을 강하게 경고하면서 ‘힘의 문화’가 아니라 ‘사랑의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182~211항) 교황은 회칙 서론에서 언급했던 성경적 이미지의 두 가지 상반된 길을 비교하면서, 권력과 교만에 의지하여 바벨탑을 쌓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느헤미야 시대처럼 인내하고 함께하면서 인간성과 공동선을 지키자고 요청한다. 결국 이번 회칙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레오 14세 교황이 언급한 바벨탑인가 아니면 느헤미야의 성벽 쌓기인가? 또한 힘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할 것인가? 김태오 신부(마리아수도회, 목포가톨릭대 교수)cpbc2026.06.02

책꽂이 _ 사람 관계에 도움 될 만한 책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자고로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법. 가정의 달을 맞아 스스로는 물론이고 가족·이웃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봤다. 일상을 새롭게 바꾸려면 / 안셀름 그륀 신부 / 황미하 옮김 / 성서와함께 2025년도 3분의 1이 지났다. 오래전에 작심삼일로 잊힌 새해 다짐은 차치하고 일상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에 사로잡혀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는 되풀이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온화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경우 회복이 필요한 지점부터 살펴보라고 권한다.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는 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의 가치를 알려 주고, 집중해서 일하고 싶은 이에게는 질서를 세우거나 행동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일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커다란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장마다 끝 부분에 저자의 제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방법들을 함께 실었다. “일을 마치면 그 문을 닫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집 안의 문들도 열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바깥일의 ‘문’을 닫지 않는 사람은 늘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영혼에 해롭습니다.”(159쪽) 산티아고 순례길 / 김아라·김창현 / 눈빛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번도 못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고 하던가. 이번 책은 부녀가 함께 엮었다. 2022년 봄과 2023년 가을, 홀로 산티아고의 모습을 담은 아버지의 사진에 딸이 글을 쓴 형식이다. 서로 이해하기 힘든 이른바 ‘꼰대 세대’인 아버지와 ‘MZ 세대’인 딸이 작업하는 동안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가족의 죽음과 상실로 겪은 방황과 갈등을 서서히 극복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은 아버지 김창현(아가피오)씨는 역사가 및 사진가이고, 글을 쓴 딸 김아라씨는 ‘마음과사람 상담소’ 소장이다. 만화 신약 성경 1·2 / 황중선 / 바오로딸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 신약 성경」이 출간됐다.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네 복음서의 이야기를 골고루 실었고, 읽기 쉽고 재미있게 편집했다. 성경을 담았지만 글자보다 그림이 많고, 등장인물의 표정과 장면의 색감이 다채롭다. 총 2권으로, 1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부터 유년시절·공생활·가르침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2권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수난과 죽음·부활이 전개된다. 사도행전 내용도 함께 수록돼 예수님 승천 후 사도들의 활약상과 사도 시대의 교회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재미있는 성경만화」(전 8권) 「굴뚝으로 들어간 니콜라오」 등의 책을 펴냈다. 바람타고 머물러요 / 임현아 / 레벤북스 「바람타고 머물러요」는 알 수 없는 힘이 인도하는 인생의 여행길에서 만남의 소중함을 담은 책이다. 꽃과 별, 부엉이와 거북이, 곰과 사슴 등이 등장하는 동화책 같지만 내용이 단순하지는 않다. 책 속의 ‘바람’은 진정 원하는 ‘바람(꿈)’을 상징하고 ‘별’은 소중한 ‘인연’들이다. 저자가 어릴 적 경험한 사랑과 이별을 서정적인 언어와 시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책의 내용을 영문으로 함께 수록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5.05.07

160여 개국 누빈 ‘지구별 순례자’ “여행만큼 좋은 ‘인간 수업’은 없다”‘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탄생 100주년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찬삼 선생의 기획전이 영종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다. 40년간 지구 32바퀴 이동한 세계 여행가 1958년 여행 시작으로 지구 곳곳 방문해 갖은 위기 속 국적·인종 초월한 호의 경험 세계에 한국을, 한국에 세계를 전하다 사진 슬라이드 10만 장 등 기록물 남겨 서적 100만 권 이상 판매·국민훈장 추서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 여행객은 3000만 명에 육박했다. 지금 우리는 휴대전화 하나로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지구 곳곳을 누비는 여행 유튜버들도 셀 수 없다. 그보다 수십 년 앞서 배낭 하나 메고 세계로 나간 한국인이 있다. 여행을 ‘인간 수업’으로 여기고, 세계를 ‘인류 공동체’로 바라본 이, ‘한국 세계 여행의 선구자’ 김찬삼(토마스, 1926~2003) 선생이다. 그가 처음 세계 여행에 나선 때는 1958년. 한국전쟁의 폐허가 채 복구되지 않았고 해외 여행 자유화는 30여 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던 시절이다. 지리학자이자 교사였던 그는 40여 년 동안 총 3회 세계 일주와 20여 회 세계 여행을 통해 160여 개국을 방문했다. 순수 여행 기간만 14년, 이동 거리는 지구 32바퀴에 이른다. 낯선 땅에서 자신보다 더 큰 곤궁 속에 사는 사람을 만났고, 국적과 인종을 넘어 건네는 호의를 경험했다. 김 선생은 자신이 보고 듣고 기록한 세계를 책·사진·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와 나눴고, 이는 많은 이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됐다. 올해는 김찬삼 선생 탄생 100주년이다. 여행이 일상이 된 시대, 한국인의 세계 여행에 길을 낸 ‘세계의 나그네’가 남긴 발자국을 다시 따라가 본다. 1959년 알래스카 포인트 배로에서 아이들과 찍은 사진. 유서 써놓고 떠난 세계 여행 김 선생이 세계 여행을 꿈꾸게 된 데에는 14살 때 세상을 떠난 형의 영향이 컸다. 자전거 여행 중 사고로 떠난 형의 유품에서 “언젠가 남미의 안데스 고원을 헤매고 아프리카를 넘으리라”는 글을 발견했다. 그는 형의 꿈을 대신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동방견문록」도 소년의 마음에 세계를 심었다. 그는 “마르코 폴로가 서방에서 동방으로 왔다면 나는 동에서 서로 가겠다”고 꿈꿨다. 그러나 꿈만으로 세계에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는 우선 세계 여행을 위한 관문으로 미국 유학을 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SFSU)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수학할 때 정원을 돌보고 항공사 기내 청소 등을 하며 경비를 모았다. 그렇게 1958년 제1차 세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페루 안데스 고원을 밟으며 형의 소원을 이뤘다. 그의 여행 원칙은 분명했다. 떠나기 전 현지 지리와 국제 정세를 공부하고 최신 지도와 카메라를 준비했다. 교통편은 가능한 한 가장 싼 것을 택했고 화려한 복장을 피했다. 호텔보다 여행자 숙소를 찾고 식사는 전통시장에서 해결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기 전에는 그날의 여행 상황과 지출을 기록하고 이동 경로를 지도에 표시했다. 김찬삼 선생의 일기. 매일의 여행 기록을 빠짐없이 남겼다. 또 하나의 원칙은 ‘위급할수록 미소를 잃지 않는다’였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통하지 않으면 웃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준 최상의 의사소통 수단은 미소”라고 했다. 하지만 여행은 낭만과 거리가 멀었다. 비자 문제로 국경에서 발이 묶이기도 하고,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나마 필름은 구두 속에 숨겨놓아 건질 수 있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고, 숲에서 길을 잃어 굶주리기도 했다. 아마존에서는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쥐고기까지 먹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유서까지 써놓았다. 그렇게 목숨 걸고 세계를 걸은 끝에 그는 ‘사람’을 발견했다. 제1차 세계 여행을 마친 그는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분명 사랑에 굶주리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몸으로 얻은 결론을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넓고 사람들의 마음씨는 아름답다.” 그는 “인간 수업에 있어서 여행처럼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는 ‘위대한 성경’이라고 했다. 김찬삼 선생의 딸 김서라 이사장이 부친의 수많은 상패가 전시된 거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버지 김찬삼은 김 선생의 1남 6녀 중 셋째 딸 김찬삼세계여행문화협회 김서라(요안나, 73) 이사장의 어린 시절 기억에는 아버지의 긴 ‘부재’가 자리한다. 한 번 여행을 떠나면 몇 년씩 집을 비웠다. 그 자리는 어머니와 조부모가 채웠다. 그런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김 선생은 귀국한 뒤 방학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국내 곳곳을 여행했다. 가족 여행에서도 그는 ‘지리 선생님’이었다. 석탑 하나를 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참 설명한 뒤에는 자녀들에게 질문했다.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김 이사장도 훗날 교사가 돼 39년 동안 교단에 섰다. 세월이 흘러 김 선생의 강연과 책을 접한 뒤 외교관 꿈을 키우고 세계로 나갔다는 이들이 김 이사장을 찾아왔다. 자신을 ‘자전거 김찬삼’·‘자동차 김찬삼’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김찬삼 선생이 세계여행 중 찍은 슬라이드 필름. 김 이사장은 본지와의 만남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업적이 크게 느껴진다”며 “아버지를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이들의 증언을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김찬삼이라는 이름이 낯설어진 30~40년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겨진 기록도 방대하다. 김 선생이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슬라이드만 10만 장에 이른다. 개인 여행 기록을 넘어 세계의 모습과 한국인 시선이 담긴 시대 기록이다. 지도·일기·원고·사진 등 자료도 방대하다. 여행 중 집으로 보낸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도 1000권이 넘는다. 김 이사장은 “무엇보다 이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김찬삼 여행박물관’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63년 가봉 랑바레네에서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 수많은 독자·청중에 전한 여행 이야기 김 선생은 세계를 ‘인류 공동체’로 바라봤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고, 동시에 자신이 직접 본 세계를 한국인들에게 보여줬다. 세계로 멀리 나갈수록 조국에 대한 애정은 더 커졌다. 그때마다 한국의 아름다운 풍속을 담은 사진과 교육용 슬라이드를 챙겼다. 해외 언론과 만나면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설명했고, 애국가와 아리랑을 소개했다. 1963년 제2차 세계 여행 중에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그가 가장 동경하던 노벨상 수상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 보름 동안 함께 지냈다. 김 선생의 집필실 책상 벽면에는 지금도 슈바이처 박사와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그가 세계 곳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책과 강연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청중에게 전해졌다. 전 10권으로 출간된 「김찬삼의 세계 여행」은 1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1980년대 후반까지도 가정 방문 판매의 대표 서적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그를 진정한 외교관이라 평가하는 이유다. 선종 5년 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 받았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찬삼 선생의 기획전이 영종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다. 여행가에서 ‘김찬삼 토마스’로 여행과 집필, 강연으로 평생 분주하게 살아온 그는 말년에 아내 고 정안순(루실라) 여사와 함께 신앙생활에 더욱 충실했다. 김 이사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장면은 손을 잡고 새벽 미사에 가던 부모의 모습이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는 김 이사장이 부모를 차로 성당에 모셨다. 미사가 끝나면 어머니는 성체조배실에 남았다. 언제나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다. 아버지는 비뚤어진 성당 의자를 정리하고 쓰레기도 주웠다. 평생 지구 곳곳의 길을 걸었던 여행가는 병상에 눕기 전까지 그렇게 성당 의자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김 선생을 병간호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 선생도 6개월 뒤인 2003년 7월 2일 눈을 감았다. 다음 날인 7월 3일은 그의 세례명 성 토마스 축일이었다. 김 이사장은 “말년에 보속과 같은 아버지의 신앙생활이 하늘에 닿은 것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김찬삼 선생이 꿈꾸던 것보다 훨씬 쉽게 세계로 나간다. 여행가들의 넘쳐나는 영상을 보며 낯선 도시의 골목과 음식까지 손바닥 안에서 만난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을 ‘인간 수업’이라 부르며 낯선 이들과 직접 눈을 맞추고 세계를 바라본 그의 삶은 오히려 지금 여행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제시해준다. 탄생 100년, 잊혀가던 ‘세계의 나그네’가 우리 앞에 남긴 말이다. “세계는 넓고 사람들의 마음씨는 아름답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9.16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2>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하)](//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6442_1.2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하)창조, 구원은 하느님 사랑, 계획 안에서 완성 지난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발타사르는 역사가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완성되고 절정에 달한다며 그리스도 중심으로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또 십자가 신학을 전개하면서 십자가 사건이 위에서의 개입, 곧 삼위일체 하느님의 개입이기에 역사를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을 중심으로 해석할 것을 주문하면서 역사를 '하느님의 드라마'(Theodrama)로 제시했다. 발타사르의 이런 역사 해석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십자가에서 계시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보자. 내재적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신비 하느님의 신비를 알기 위해선 우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관계를 규정해야 한다.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는 이 세상의 구원역사 안에서 계시되고 나타난 삼위일체 하느님 모습을 뜻하는데 통상 '경륜'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내재적 삼위일체는 영원에서 이뤄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인 생명의 신비 자체를 의미하는데 '신학'이라고 한다. 발타사르는 오직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통해서만 내재적 삼위일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며 후자가 항상 전자보다 앞서고, 전자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봤다. 내재적 삼위일체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구원역사 전체를 깊이 밝혀준다는 것이다. 발타사르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해 칼 라너의 입장을 비판했다. 라너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신비로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것으로 생각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 당신 자신을 세상에 전달하고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타사르는 라너의 이런 입장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라너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내재적 삼위일체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에 흡수돼 하느님 본질 자체가 세상 역사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타사르는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를 서로 명확하게 구별하고, 내재적 삼위일체를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모든 구원 사건과 세상 역사 전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내재적 삼위일체가 없다면, 구원경륜적 삼위일체가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라너와 발타사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신학을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너의 신학적 사고는 '아래에서 위로' 곧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에서 내재적 삼위일체를 향해 움직인다. 그의 신학적 기반은 '아래', 이 세상에 실존하는 인간이다. 그는 인간 중심적 신학을 전개한다. 이에 반해 발타사르의 신학적 사고는 '위에서 아래로' 곧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로 향한다. 발타사르의 신학적 기반은 '하늘'이며 이는 내재적 삼위일체를 뜻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적으로 풀어나간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역사의 근원과 마지막 그러면 발타사르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계시된 내재적 삼위일체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그는 삼위일체로서 하느님의 본질을 사랑 자체로 제시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변화 없이 경직된 하느님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께서 위격적으로 사랑을 나누시는 '삼위일체적인 사건',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의 사건'이다. 하느님 본질이 사랑으로 구체화될 정도로 세 위격은 생생하게 사랑을 나누는 영원한 움직임, 역동적인 사랑의 사건이다. 발타사르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약 성경 내용을 성부의 창조적인 사랑, 성자의 감사하는 사랑, 이 두 위격의 사랑 교환으로 탄생한 성령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절대적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선 항상 사랑을 나누시기에 보다 위대한 분이며, 유한한 인간이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이다. 발타사르가 묘사하는 내재적 삼위일체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내재적 삼위일체의 절대적 사랑은 세 위격들의 절대적 자기 비움으로 이뤄진다. 이 사랑의 사건에서 세 위격들은 타 위격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삼위일체적 사건이 하느님의 영원한 운동이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랑 자체로서 영원히 완전하시다. 그분은 스스로 충만하시며 하느님으로 존재하기 위해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둘째, 하느님 사랑은 그 본질상 폐쇄되지 않고 자기를 넘어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향해 내려오시는 '위에서 아래로의 운동'이 일어난다. 발타사르는 이를 인식 이론적으로 '하강하는 논리'로 부른다. 곧 아래로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자기운동 덕분에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하거나 하느님께 다가서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발타사르가 근본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바는 세상과 인간 그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이 절대적이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사랑의 사건은 세상의 시작이며 종말이다. 세상과 인간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사랑에서 유래하며, 그 역사도 하느님 사랑으로 지속돼 결국 완성된다. 하느님 안에는 이미 절대적 자기포기의 사랑과 항상 자기를 헌신하는 사랑이 있기에 그 사랑으로 세상은 창조되고 구원된다. 사랑을 도외시한 채 세상과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발타사르의 이런 시각은 현대에 이르면서 점점 잊히는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을 생생하게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사실 하느님 사랑은 세상과 인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근본 토대며, 또 인간이 마지막까지 간직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다. 역사, 하느님의 드라마 이제 발타사르가 제시하는 '하느님의 드라마'인 역사를 살펴보자. 세계 역사는 하느님의 내적 역사로부터 이뤄진다. 하느님에 의해 이뤄는 사건, 하느님 자신 안에서 생성되는 사건이다. 하느님 본질은 삼위일체로서 충만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움직임, 생명이 넘치는 존재, 타자에게로 향하는 존재다. 이런 삼위일체 하느님은 역사의 기초다. 역사 자체는 그 기초에 상응해 삼위일체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사랑의 대화를 통해서 마침내 세상 창조를 결정하고, 세상을 떠맡으신다. 이런 내재적 삼위일체의 대화에 따라 세상의 윤곽을 스케치할 수 있다.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의 사건은 세상에 의미와 형식을 주는 원리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낳으실 때 세상을 원하시고, 성자에게 세상을 선물로 넘겨주신다. 성자께서는 이런 선물을 순종으로 받아들여, 역사의 이념과 세상의 원형이 되신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세상에 대한 의지를 보편화시키신다. 창조로 시작해 강생을 넘어 십자가 사건에까지 이르는 역사의 모든 움직임은 이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미리 결정된다. 이렇게 역사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미리 결정되고 또 그 사랑으로 실행된 드라마라면 '어떻게 죄악이 역사에 나타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죄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충만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당신 사랑의 선물로 세상에 자유를 주는 모험을 감행하신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로 죄를 범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늘 함께하시고, 위급한 경우 십자가 비움을 통해서 인간을 되찾을 준비를 할 정도로 인간의 자유를 감싸셨다. 그 결과 인간은 협력자로 하느님 드라마에 등장한다. 이 드라마의 핵심 인물은 하느님과 인간이다. 곧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으로 행동하시고, 인간은 그 사랑에 대해 자유를 통해 응답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창조와 함께 주어진 세상의 구체적 모습을 거부할 수 있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긍정적인 분리'를 인정하는 것도 거부할 수 있다. 하느님과 인간의 실제적 분리는 신적 위격들 사이의 실제적 분리에 기초한다. 세상은 하느님과 분명하게 분리되지만 뗄 수 없이 그분과 깊이 결합돼 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세상은 자기의 실제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지킬 수 있다. 이에 비해 죄는 하느님과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피조물이 자기 자유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의 거룩한 분리 안에 자리잡은 죄 하지만 이런 죄의 가능성은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놓여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죄악을 원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발타사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지만, 이 사랑에 직면한 인간이 이유 없이 거부한다고 자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죄는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성부와 성자의 거룩한 분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거룩한 분리에서 모든 죄가 회복되고 극복될 수 있다. 그러니까 창조와 구원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바탕을 둔다. 여기에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창조가 십자가 사건에서 완성되고 그 충만한 의미를 지닌다면, 창조는 십자가 표지 아래 있다. 이것은 구원 사건이 근본적으로 창조와 더불어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 계획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 파견돼 인류를 구원한 성자께서는 영원에서부터 이미 성부의 뜻을 성령 안에서 실행하려 준비하고 계신다. 하느님에게 구원은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발타사르는 예수님께서 세상이 창조 이전에 이미 살해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인간은 창조된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구원된 존재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김선태 신부(전주교구 화산동본당 주임, 신학박사)조은일2013.07.30
![[가톨릭 문화산책]<24> 건축(5) 포털, 영광의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62_1.2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5) 포털, 영광의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 누구나 들어오라 초대하는 주님의 집 '하늘나라의 문' 1285년에 지어진 프랑스의 부르주(Bourges)대성당 정면에 있는 5개의 문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광장과 도시를 압도한다. 이 문은 영광의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이다. 이 문은 시편에 나오는 그대로 '머리를 들고 있는 문'이며 '일어서 있는 문'이다. 그래서 이 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향해 언제나 웅장하게 노래하고 있는 문이다. 헨델의 메시아 33번 합창곡은 이렇게 노래한다.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께서 들어가신다. 누가 영광의 임금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께서 영광의 임금이시다"(시편 23,9-10). 이 메시아 33번곡을 들으며 이 대성당의 장대한 문을 바라보라. 그러면 저 문의 수많은 돌들이 소리 내며 우리와 함께 찬미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문은 사람들을 그 안에 있는 세계로 이끌어준다. 또 자신의 과거를 단절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이렇게 문은 그 안에 있는 세계를 확정해준다. 문은 건물의 맨 앞에서 사람을 반기며 때로는 닫고 거절한다. 그리고 문은 안에 있던 이가 밖을 향해 출발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문은 건물의 안팎을 이렇게 이어준다. 사람이 사는 집의 대문은 방문과 달리 더 높고 크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집인 성당의 문은 어떠해야 하겠는가?대성당처럼 중요한 건물의 웅장한 정문을 특별히 '포털'(portal)이라고 부른다. 포털이라 하면 천상과 지상의 이미지가 조각된 중세 대성당의 포털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건물 전체의 의미가 응축되는 특별한 장소였다. 성당의 포털은 단순히 벽을 뚫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심히 생각하면 성당의 문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으로만 여기기 쉽지만, 실은 그 문은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문이시다. "나는 문이다"(요한 10,9). 포털은 이렇게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당의 포털에 들어서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 안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 때문에 어떠한 성당의 문도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숭고한 생각을 보여주는 상징이며, 그 의미가 지니는 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팀파눔에 많은 조각으로 장식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은 외관이 매우 간소했고,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시대의 외관에는 엄숙하면서도 침착한 건축 요소가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중세의 대성당에서는 실로 장려한 조각으로 그리스도교의 과거와 미래를 세상을 향해 있는 포털에 응축해 새겼다. 중세에서 회화와 조각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대신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당의 포털은 바깥 광장에 접해 있고 사람의 눈높이에 가까이 있으며, 성당에 들어가거나 그 앞을 지나갈 때 이 수많은 조각을 되풀이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자리였다. 포털의 조각 모티프로는 십자가, 천사, 성인, 식물,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 등이 사용됐다. 이와 같이 성당의 포털은 '하늘나라의 문'이었고,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요약하고 있는 책의 표지와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포털이 한 개였지만 내부 통로의 수에 대응해 3개로 늘어났으며 때로는 5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성당처럼 본래 통로가 셋이었는데 후에 나르텍스가 확장되면서 포털이 두 개가 된 예외도 있다. 그렇지만 성당의 규모와 관계없이 신자들은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측면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돌로 지어진 성당에서는 문을 만들려면 벽의 일부를 떼어내야 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작은 성당이라도 문을 만들 때에는 건물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문은 인방이라는 수평 부재와 이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다. 로마네스크나 고딕 대성당의 문에서는 여러 개의 문설주가 뒤로 차례로 물러나며 문의 양쪽에 붙는다. 그 문설주 위로는 다시 여러 겹의 장식 아치가 뒤로 물러나며 얹힌다. 이 때문에 실제로 드나드는 문보다 훨씬 큰 문으로 확장돼 보이는 효과를 얻는다. 이 장식 아치가 뒤로 물러나며 많은 겹을 이룰수록 성당의 벽 두께가 두껍고 견고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문 위의 긴 인방과 장식 아치 사이에 반원형이 생기는데, 이 부분을 팀파눔(tympanum, 프랑스어로는 tympan : 탱팡)이라 부른다. 이 말은 라틴어로 '큰 북'이라는 뜻이다. 눈에 띄는 장소에 있기 때문에 팀파눔에는 많은 조각이 장식된다. 정면의 한가운데에 있는 주 포털의 팀파눔 안에는 영광의 그리스도, 최후의 심판자 그리스도가, 좌우 포털의 팀파눔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등이 새겨지기도 했다. 성당의 포털은 하늘나라의 문이므로 후광으로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그 안에 들어가기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여기에서 판정한다. 일반적으로 고딕 성당에서는 구조적 이유로 문과 문 가운데에 기둥 한 개를 더 두는데, 이를 '가운데 기둥'(트뤼모, trumeau)이라고 한다. 독일 쾰른대성당의 가운데 기둥인 트뤼모에는 성모자상이 놓여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하는 순례길의 중요한 장소였던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므와삭(Moissac)의 생 피에르 수도원 성당 문에는 로마네스크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장엄한 조각이 있다. 성당 입구의 팀파눔 중앙에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어좌에 앉으신 모습이 한층 높고 크게 조각돼 있다. 그 옆에는 네 복음사가가 날개가 있는 인간(마태오), 사자(마르코), 황소(루카), 독수리(요한)로 묘사돼 있으며, 주변에는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3단으로 앉아 있다. 요한묵시록 4장의 말씀이 돌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성당 앞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은 마을과 도시 사람들이 모이는 일상의 장소여서, 이 장대한 문들은 성당 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에게도 늘 말을 건넨다. 더욱이 깊이가 있고 수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는 대성당의 남북 문 주변은 무대와 같은 공간이었다. 11세기에는 연극이 회중석에서 공연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문 주변에서 성사극(聖史劇)이 상연됐으며 음유시인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교회의 앞 광장은 극장이 됐고, 장대한 포털은 그 연극의 무대 배경이 됐다.프랑스 부르주대성당(1285년). 정면의 5개 문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광장과 도시를 압도한다. #장대한 포털은 사라지고 전통만 남아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런 장대한 포털은 사라졌지만 그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미니쿠스 뵘이 설계한 노이 울름(Neu-Ulm)의 성 요한 세례자성당(1927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근대 성당의 걸작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울름 성채에서 나온 돌을 사용해 세워진 이 성당의 긴 정면에는 3개의 높은 아치의 포르티코가 겹쳐 있다. 붉은 벽돌 띠가 포르티코의 아치 위를 지나게 해 아치 형태를 더욱 뚜렷하게 했다. 성당에 들어가는 5개의 문 중에서 3개의 문은 높은 아치로 된 포르티코 안에 있다. 아치 한가운데는 요한 세례자, 좌우에는 성녀 엘리사벳과 밤베르크의 성 오토를 두었다. 로마네스크적 포털을 근대적으로 번안한 탁월한 설계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당은 중세 대성당의 포털을 가질 정도의 규모가 전혀 못 되고, 대지의 제한이 많아서 정면에 이러한 문을 만들기조차 어렵다. 그래서인가, 이와는 달리 루돌프 쉬바르츠가 설계한 성 안나성당(1956년)은 규모도 크고 그 주변이 제법 넓은데도 딱히 정면이랄 것이 없다. 성당 전체의 크기에 비하면 문이 아주 작아서, 잘 모르면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아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시대의 성당 문이다. 일상의 다른 건물과 다를 바가 없는 작은 문, 그렇지만 누구나 들어오라고 초대하는 겸손한 문이며, 지나가는 이에게 묵묵히 말을 건네는 문이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자주 보는 가난한 자, 헐벗은 자의 모습으로 이 문으로 걸어 들어오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 크기로 작아진 문,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라는 말씀을 공간과 형태로 잘 구현한 '문이신 주님'을 겸손하게 만들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 문은 조용히, 그렇지만 중세의 장대한 포털 못지않게, 우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그곳에 늘 서 있게 될 것이다.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조은일2013.07.02
![[가톨릭 문화산책]<14> 건축(3) 회중석, 하느님 백성의 자리](//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9868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3) 회중석, 하느님 백성의 자리 하느님 말씀 듣고 성체 모시려 하느님 백성이 머무는 공간 주님께서는 언덕 위에서 가르치셨고 배 위에서 가르치셨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그분을 둘러쌌다. 그들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앉거나 서서 마음을 다하며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성당이라는 건축 안에 넣어본다. 그러면 신자들이 앉는 회중석이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회중석이란 제대를 둘러싸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몸을 모시며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하느님 백성이 머무는 장소다. 미사를 드리는 공동체는 사제가 입당하면 일어서고 참회하기 위해 서 있고, 독서를 듣기 위해 앉았다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기 전 다시 일어서고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몸으로 전례에 동참한다. 그러니 회중석은 신자가 편히 앉는 좌석이 배열된 전용공간 같은 것이 아니다. 성당의 회중석은 제단이라는 거룩한 공간과 구별되면서도 이 제단과 하나가 되도록 느끼는 하느님 백성의 자리다. 오늘날의 제단과 회중석은 각각 구약의 성전을 이루는 지성소와 성소의 위치에 있었다. 회중석은 예비신자 교리는 받고 있으나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이 있는 입구 가까운 곳의 나르텍스(narthex)와 제단 사이의, 신자들이 앉게 되는 공간을 가리킨다. 영어로 '네이브(nave)'라 하는데, 이것은 '배'라는 의미의 라틴어 '나비스(navis)'에서 유래한 건축 용어다. 본래 전용 건물이 없었던 교회는 공공 집회를 위해 넓은 내부 공간을 가졌던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basilica)를 성당 건축에 응용했다.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에서는 긴 변의 한가운데에 입구를 두었는데, 교회는 반대로 짧은 변에 입구를 두고 내부의 긴 방향을 바라보게 했다. 이 간단한 차이는 그야말로 근본적인 변화를 줬다. 이때부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부는 마치 배와 같은 구조처럼 보였고, 저 끝에 보이는 둥근 방은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자리라고 여기게 됐다. 이렇게 하여 평면은 배 모양이 됐고, 그 이후에 생긴 볼트 천장으로 성당 내부는 더욱 배의 용골 모양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회중석이 왜 '배'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교회가 무질서하게 소용돌이치는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로 비유됐고, 회중석에 앉은 사람들을 세상의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여정을 떠나는 이들로 비유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당의 평면 모양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축약한 그림과도 같았다. 회중석을 지나가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인생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아직 이 'nave'에 대한 번역어가 정해져 있지 못하다. 건축에서는 nave를 흔히 '신랑(身廊)'이라는 일본식 번역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몸이라는 뜻을 담고는 있어도 '랑(廊)'은 채나 복도라는 뜻이 강해서 '배'의 의미를 담지 못한다. 가톨릭사전에는 nave를 '신도석'이라고 적고 있지만 이보다는 '신자석'이 더 맞는 말이다.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이는 모든 이를 '전례 회중'(liturgical assembly)이라고 한다. 회중이 평신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함께 모여서 미사를 드린다'는 뜻이 잘 나타나 있으므로 nave를 '회중석(會衆席)'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성당의 평면이 긴 경우, 회중석은 긴 통로(aisle)로 나뉜다. 그러니까 회중석은 이 세 개의 통로 모두를 말한다. 그러나 성당이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경우 흔히 가운데를 회중석(nave), 그 좌우를 '측랑(側廊)'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가운데를 '중앙 통로(central aisle)', 그 좌우를 '측면 통로(side aisle)'라 부르는 것이 맞다. 평면이 기둥과 벽으로 몇 개로 나뉠지라도 그 전체가 회중석이다. 그런데 이 'aisle'을 번역할 말이 참 없다. 이것을 여기에서도 '통로'라고 번역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통로는 벽과 벽 사이를 말한다. 로마네스크나 고딕 성당에서 중앙 통로를 만드는 좌우의 벽을 높게 만들려고 아치로 이루어진 아케이드(arcade)를 제일 아래에 두고 그 위에 갤러리(gallery)를 두고, 다시 그 위에 세 잎처럼 생긴 트리폴리움(trifolium)을 얹기도 한다. 또 가장 위에는 측면 높은 곳에 낸 창(고창, clerestory)을 얹는다. 그러나 갤러리나 트리폴리움은 성당의 높이에 따라 모두 둘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둘 수도 있다. 오래된 유럽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정성을 다해 아름답게 장식한 바닥을 볼 수 있다. 좌석이 고정돼 있는 오늘날의 회중석을 생각하면 어차피 의자에 가릴 바닥을 왜 그렇게 아름답게 장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전에는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계속 서 있었고, 오래된 성당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회중석에는 좌석을 두지 않고 빈 공간으로 뒀다. 회중석에 좌석이 놓이게 된 것은 중세 시기가 한참 지나서였다.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좌석이 마련돼 있지 않았으므로 평신도는 서 있었거나 요구가 있으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르 토로네 수도원 성당(프랑스 남부). 성당에 등받이가 없는 벤치를 놓게 된 것은 13세기부터였다. 신자들이 앉는 긴 자리는 개신교에서 긴 시간 설교를 듣게 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가톨릭 개혁에서 말씀 전례를 강조하게 된 이후에는 성당에도 이 긴 의자가 배열됐다. 16세기 후반에 가서야 등받이와 무릎틀도 생겼고 의자가 커지고 고정됐다. 그렇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회중석 옆에 앉는 여자들의 좌석은 의자가 낮고 무릎틀도 낮았다. 이러기까지 남자와 여자는 회중석에서 종종 나뉘어 있었다. 어떤 오래된 성당의 중앙 통로 좌우 벽에는 열주로 된 아케이드로 구분된 2층석이 있다. 이것은 마트로네오(matroneo)라고 하는 여성용 특별석으로, 남녀가 따로 미사를 드린 비잔틴 전통을 따른 것이다. 고딕 성당에서는 이것이 그 용도를 잃었지만, 동방교회에는 여자들이 때때로 회중석 위에 있는 기나이콘(gynaikon)이라 부르는 갤러리에 서 있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15세 이상의 여자들이 모여서 뜨개질을 하거나 옷을 짓던 '기나이콘'이라는 방에서 나온 것이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여자들은 북쪽과 서쪽에, 남자들은 남쪽과 동쪽에 앉았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나라 하데스는 서쪽에 있고 이교도들은 북쪽에 있다고 보았고, 여자들이 믿음이 적은 이들을 이런 유혹에서 지켜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성당 정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드나들도록 문을 좌우에 두 개 더 두기도 했다. 요사이 이동하기 쉽게 하려고 회중석에 독립된 개인 의자를 두는 경우를 본다. 나무로 된 긴 의자는 무겁고 고정된 것이기는 해도 모인 이들이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또 성당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함을 말해야 한다면 개인 의자는 극장 좌석을 연상하게 하므로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서는 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의자의 색깔이나 재질은 성당이라는 전체 공간의 바닥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회중석의 의자는 세심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먹이시는 주님의 식탁이 두 개가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는 제대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대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강론을 하고 성경을 낭독하며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회중석에 층계를 두고 높은 단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후에 강론대(pulpitum)와 독서대(ambo)가 됐다. 16세기 중엽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가톨릭에서는 회중석에서 보기 쉽고 말이 잘 들리도록 하기 위해 많은 강론대가 회중석 안으로 옮겨졌다. 이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당신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성당 안에 있는 회중석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앉거나 서야 할까? 내가 본 가장 겸손한 회중석, 그것은 프랑스 남부 르 토로네 수도원 성당의 회중석이다. 앉아 보면 의자가 낮다. 주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낮추기 위함이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 버린 겸손한 수도자의 마음이 이렇듯 의자라는 물체에 소박하게 표현돼 있다. 등받이도 없고 무릎틀도 없다. 무릎을 꿇으려면 딱딱한 돌바닥에 무릎을 대야 한다. 이런 의자에는 우리 성당에서 흔히 보는 긴 방석 같은 것이 놓일 여지가 없다.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주님의 몸을 모시고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가 조금 더 편한 의자에 앉아 무엇하랴? 이것이 우리가 앉고 서는 회중석의 본래 모습이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은 바로 이런 우리 마음과 영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조은일2013.04.24

제46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전문(요약)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진리, 사랑, 정의로 사회가 새로워지도록 그리스도인이 나서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태아를 비롯하여 가장 힘없는 이들의 생명권을 수호하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 실현이나 민족들의 온전한 발전, 환경보호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반문하며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진은 지난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생명수호대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십자가를 들고 있는 장면. 해마다 새해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저는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일치와 평화를 주시어 모든 이가 바라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이 이뤄지기를 빕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인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을 확인하면 힘이 솟아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고 모든 이를 위한 평화 증진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며, 유혈분쟁과 전쟁의 위협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이기적ㆍ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만연하면서 빚어진 긴장과 갈등의 온상들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 자본주의에서도 드러납니다. 온갖 형태의 테러와 국제적 범죄 행위로 평화가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종교의 참된 본질을 왜곡하는 근본주의와 광신주의도 평화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평화를 이루려는 수많은 노력으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올해 평화의 날 담화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복음의 참 행복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 행복(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은 약속들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참 행복은 약속에서 절정을 이루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 행복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닙니다. 오히려 참 행복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요구하는 것들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약속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세상 눈에는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는 이들이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서 언제나 그들 편이 돼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시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참 행복은 평화가 메시아의 선물이면서 인간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해 줍니다. 평화는 서로에게 주는 선물의 열매입니다. 평화, 하느님 선물이며 인간 노력 결실 평화는 인격 전체와 관련되고 모든 인간의 참여를 요구합니다. 곧 반포 50주년을 맞는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교황 요한 23세 복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평화는 무엇보다 진리, 자유, 사랑, 정의를 토대로 공존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다운 평화의 일꾼이 되려면, 초월적 차원에 관심을 갖고 아버지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평화를 부인하는 온갖 형태의 죄악들, 곧 이기주의와 폭력, 탐욕, 권력욕, 지배욕, 불용, 증오와 불의한 구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꿈이나 이상향이 아닙니다. 평화는 실현 가능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됐고, 새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이바지하면서 성장해 나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새롭게 선포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와 더불어 민족들의 완전한 발전을 이루시는 으뜸가는 주역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평화, 우리의 정의, 우리의 화해이십니다(에페 2,14; 2코린 5,18 참조). 생명을 온전히 사랑하는 평화의 일꾼 공동선과 평화를 실현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임신[受精]에서부터 성장과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충만한 생명은 평화의 정점입니다. 인간 생명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고, 이를 테면 낙태 자유화를 지지하는 자들은 자신이 거짓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실, 태아를 비롯해 가장 힘없는 이들의 생명권을 수호하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 실현이나 민족들의 온전한 발전, 환경보호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원칙은 신앙의 진리도 아니고 종교자유의 권리에 따른 귀결도 아닙니다. 이는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기에 온 인류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세계 평화와 관련되는 인간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는 종교자유의 권리입니다. 소극적 관점에서, 한 사람이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관련해, 예를 들어, 의무나 제약 '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적극적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로 '~할 자유'가 있습니다. 평화의 일꾼들은 급진적 경제 자유주의와 기술 관료주의의 이념들이 여론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적 권리와 의무 가운데 하나가 노동의 권리입니다. 경제발전은 주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 달려 있다고 여겨 노동이 점점 경시되고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올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인간 존엄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논리가 "모든 사람의 안정된 고용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것을 재천명합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새로운 노동관입니다. 이 선에 부응하는 것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노동정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입니다.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통한 지속 가능한 통합적 발전과 공동선은 모두 재화와 가치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요구합니다. 그 척도는 하느님을 궁극적 준거로 삼고 있습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의 지배적 경제 모델은 이윤과 소비 극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지속적 성공은 우리 자신의 재능, 지적 능력, 진취적 정신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경제분야에서, 특히 정부는 산업과 농업발전 정책을 표명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통화와 상업시장을 위한 윤리구조의 창출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시장들은 안정돼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더 많은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평화의 일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각오로 재정위기보다 더 심각한 식량위기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평화교육을 위한 가정과 단체 역할 평화의 일꾼들이 가정의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위한 열정을 키우고, 효과적 사회교육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가정은 사람들이 성숙하도록 도와주고, 배려와 나눔을 통해 서로 풍요로운 성장을 하도록 북돋워 줍니다. 도덕과 신앙에 관한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권리와 그 일차적 역할이 지켜져야 합니다. 평화교육이라는 이 중대한 과업에 수도 공동체들도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합니다.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이 커다란 책임을 함께 나눈다고 믿습니다. 이 복음화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으로 돌아가 개인과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으로 새로 나는 것을 그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문화단체, 학교, 대학교는 평화를 위한 특별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국제적 공공기관의 쇄신에도 중요한 공헌을 해야 합니다. 평화의 일꾼들을 위한 교육 결론적으로, 평화교육을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공동선 실현으로 이어지고, 평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며 평화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일구며, 단순한 관용보다는 선의를 지니고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용서에 대한 교육이 증진돼야 합니다. 이 세상 우상들이 내세우는 거짓 평화와 그에 따르는 위험을 거부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어,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가져다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교황 요한 23세 복자와 더불어 우리도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모든 지도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그들이 자기 민족의 정당한 행복을 돌보며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보장하게 해주소서. 모든 민족이 그들을 갈라놓는 벽을 허물고 서로 사랑의 유대를 강화하며 자기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이 형제애를 나누며 그들이 갈망하는 평화가 영원토록 꽃피고 언제나 평화가 그들을 다스리게 하소서. 이 기도로 저는 모든 이가 참다운 평화의 일꾼이 되어 인류 공동체에 형제적 화합과 번영과 평화가 넘치게 되기를 빕니다.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조은일2012.12.25
![산 자를 위한 위로의 레퀴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3)](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fdT1715067341708.jpg)
산 자를 위한 위로의 레퀴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3) 연중 제3주일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면서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2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힘들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오늘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경과 민족, 문화와 종교를 넘어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며, 특히 개발도상국과 분쟁·재난 지역에 있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핵심은 단순한 동정이나 일회성 시혜가 아니다. 문제를 연대(solidarity)와 공동 책임의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데 있다. 이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길이며, 부유한 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서로 돕고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함으로써 ‘보편 교회의 일치’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신자로서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책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 또한 해외 원조 주일의 중요한 목적이다. 세속적으로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돕는 날도 아니다. 주님을 같이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뜻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이 하느님께 간절히 바쳐온 기도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깊어진 신앙과 감사의 기도는 주님 안에서 우리 역시 함께 받는 숨겨진 선물이 된다. 종교와 문화, 인종이 다른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정성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작은 기쁨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답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흔히 듣는 ‘레퀴엠(Requiem)’은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다. 레퀴엠은 가톨릭 장례미사에서 불리는 통상문과 고유문을 바탕으로 한 음악 형식을 말한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비밀스러운 작곡 위촉과 작곡가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드라마틱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미완으로 남은 부분을 제자 쥐쓰마이어가 완성했음에도 역사상 최고의 레퀴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다. 라틴어 대신 독일어 성경의 가사를 사용한 이 작품은 다른 레퀴엠과 달리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고통받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를 담고 있다. 브람스는 인간의 상실과 슬픔 앞에서 심판·저주·공포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음악의 시작과 끝을 모두 살아있는 이들을 향한 위로로 채웠다. 브람스의 음악은 흔히 절대음악, 낭만적인 선율, 풍부한 화성, 그리고 클라라 슈만과의 길고 열렬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힘든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개인적 상실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는 자선을 ‘시혜’나 ‘공덕’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 곁에 함께 머무는 공감과 연대로 재정의했다. 브람스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독일 레퀴엠’ //youtu.be/jeCtv_2Zgu0?si=ne5RIvVvjttEXK84 해외 원조 주일은 “우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날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는가”를 묻는 날임을 상기하자. 작곡가 류재준cpbc2026.01.21
![[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06/vlE1746515454670.jpg)
[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년 2월 헌법재판소는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 권리를 보장했다. 그동안 성별 고지를 막아온 배경에는 오랜 남아선호 문화가 있었다.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아들, 특히 장남에게 의존하는 전통은 자연스럽게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딸은 결혼과 동시에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는 ‘출가외인’으로 여겨진 반면, 아들은 재산을 상속받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성경에서도 ‘장자권’은 두 몫의 상속권과 영적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을 얻을 때까지 아이를 낳는 부모도, 노후를 자식에게만 의지하는 부모도 찾아보기 어렵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자녀와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장남’(19.0%)보다는 ‘형편이 되는 자녀’(42.3%)나 ‘마음이 맞는 자녀’(24.9%)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인들 스스로 장남이나 아들에게 의지하는 노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음을 보여준다. 실제 노인 절반 이상이 부부만 함께 살고, 1/3은 홀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합계출산율이 0.7~0.8명대에 불과한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 노인세대의 현실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자기 돌봄(self-care)’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자녀나 가족이 아닌 스스로 노후를 돌봐야 하는 시대에 자기 돌봄은 필수적이다. 자기 돌봄은 단순히 자신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삶의 전 영역에서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며, 질병 발생 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노년으로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 자기 돌봄은 자녀나 국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의 역량이다. 자기 돌봄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신체적 돌봄’으로, 적절한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심리 정서적 돌봄’으로, 충분한 휴식과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통해 내면의 긴장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셋째는 ‘관계적 돌봄’으로, 가족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지지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적 자기 돌봄’으로, 기도와 명상, 자기 성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적 평안을 찾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맞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고 그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실천적 태도를 포함한다. 영적 자기 돌봄은 신앙인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돌봄의 영역이다. 독거노인 200만 명을 넘어선 100세 시대, 우리는 더 이상 자녀나 타인에게 기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자기 돌봄의 여정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절대자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는 데서 시작된다. 신앙 안에서 나를 정성껏 돌보는 일은 내 안에 머무시는 주님을 소중히 모시는 일과 같다. 나의 신앙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점검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진정한 자기 돌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맞이할 노년을 복된 시간으로 바꾸는 가장 확실한 열쇠다.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cpbc2026.01.21

예루살렘 피자발라 추기경, “전쟁에 하느님 이름 쓰는 중죄 범하지 말라” 경고미 국방부, 전쟁 정당성 부여에 시편 구절 인용 성지 이스라엘의 대표 교회 지도자인 예루살렘 라틴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 정당화에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OSV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해당한다”며 “하느님은 분쟁 속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종교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가톨릭 매체 OSV News에 따르면, 피자발라 추기경은 15일 국제 오아시스 재단이 주최한 웨비나 연설에서 이같이 밝히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이용하는 거짓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이후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과 관련한 발언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피자발라 추기경이 이처럼 강력 경고하고 나선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성경 메시지로 미국이 전쟁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10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전쟁 상황을 전하면서 시편 144편 1절 “나의 반석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내 손에 전투를, 내 손가락에 전쟁을 가르치시는 분”을 인용해 발언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만약 이 전쟁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중동 전역에서 죽어가고 고통받고 아파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받는 이들 가운데 계시다”면서 “이 분쟁에는 종교적 색채가 있지만, 그것은 조작된 것이며, 종교를 끌어들이려는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동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폭력이 “오늘 우리가 처한 인간적 파괴 상태”를 낳았다고 말했다. “폭력 위에 세워진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그것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주변에 공허를 만들어냅니다. 두려움, 원한, 증오. 이는 그리스도교 언어로 말하면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최근 브리핑에서 시편 구절을 인용해 전쟁 발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또 오늘날 전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보 또한 “분쟁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기자의 역할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독자가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가능한 한 정확한 해석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피자발라 추기경의 발언 이튿날 언론을 향해 “특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언론이 선전 도구가 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며 전쟁 ‘선전’을 반복하거나 권력자의 ‘대변자’가 되지 않도록 뉴스를 검증할 것을 촉구했다. 계속되는 폭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앞에서 한 이란 여성이 망연자실한 채로 잔해 더미 위에 앉아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또 가자지구 상황도 낱낱이 전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정보 차단 현실과 함께 인도주의적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약 200만 명이 피란 상태에 있으며, 영토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기본적인 항생제를 포함한 의료 물자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가자는 잊혀졌지만 상황은 여전히 절박합니다. 서안지구에서는 거의 매일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00만 명의 피란민이 모든 것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80%는 파괴된 상태이며 재건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36개의 병원이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약품이 부족하고, 항생제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하수구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사진으로는 그 냄새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피난민으로 전락한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피난 텐트가 밀집한 집에서 슬픔에 젖어있다. OSV “이 비극적인 상황이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악순환입니다. 하마스가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철수하지 않으면 하마스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교착 상태에 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포스트는 16일 미사일과 요격체 파편이 예루살렘 구시가지 일대, 유다인 구역, 통곡의 벽 인근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이정훈2026.03.19

위대한 스승 : 아우구스티누스 (01)[월간 꿈 CUM] 교회의 꿈CUM _ 예수, 그 이후 (42) 이탈리아 로마 성 아우구스티누스 대성당 많은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오해라는 나뭇가지 끝자락에 꽃을 피워보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적으로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야 금욕적인 신앙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레이보이가 아니었다. 물론, 「고백록」에 기록되어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가 17살 때 한 여인과 동거해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 방탕하게 놀아났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354년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아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당시 동거는 흔한 일이었다. 서기 300년대 중반 북아프리카에서는 17세 남성이 비슷한 또래 여성과 함께 사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고,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성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 세속적 쾌락과 향락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는 매우 엄격한 종교인이었다.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마니교는 어떤 종교였을까. 마니교의 어떤 점이 당대 지식인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을 뒤흔들었을까. 당시 지식인이라면 마니교가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삼위일체, 죽은 이가 살아났다는 부활 신앙, 예수의 몸과 피를 나눈다고 알려진 전례 등 그리스도교는 당시 지성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지식인들의 갈증을 한방에 풀어준 종교가 있었다. 마니교였다.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듯, 불교가 붓다(佛)의 가르침이듯, 마니교는 마니의 가르침이다.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 1882~1944)이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김희숙·정보라 옮김, 생각의 길, 2018)에서 정리한 마니교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페르시아인 마니(Mani)는 실존 인물로 3세기 초에 오늘날 이라크 남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오늘날 뉴욕만큼이나 국제적이고 다국어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성장한 마니는 불교, 그리스도교, 미트라교, 유대교에 고대 바빌론의 여섯 개 미신을 살짝 섞어서 자신만의 혼성 철학을 추출해냈다. 실제로 마니는 자신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붓다, 예수, 조로아스터로 이어져 내려온 예언자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마니는 여기에 악한 신과 선한 신이 인간의 영혼을 놓고 영원히 싸우고 있다는 고대 페르시아 신화를 섞어서, 악한 신은 구약성경의 야훼와 연결하고, 선한 신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본래 혐오스럽고 천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끊임없는 육신의 고행을 통해 세속적인 야망을 버리려 노력해야 하고,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섭생과 행실 규율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악의 신의 마수에 걸려 지옥 불에 타게 되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 이상한 사람 마니는 자신의 사상을 모든 인류에게 설파하겠노라고 장담했다. 먼저, 인도와 중국을 방문했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마니가 성공을 거두자 수입원을 잃게 된 페르시아 승려들은 마니를 박해하고 죽였다. 하지만 마니교는 붕괴되지 않았다. 선지자의 사상은 빛가루가 되어 유럽과 아시아 땅으로 멀리멀리 흩뿌려졌다.” 그렇다면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마니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마니교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입교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20세에 ‘듣는 자’ 단계로 입교한 후, 9년이 지나도 다음 단계인 ‘선택된 자’로 승급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돌연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내막이 불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폴 존슨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첫 번째 요인은 ‘건강문제’다. 그에게는 심신질환(심리적인 원인으로 신체에 일어나는 병적인 증상)이 있었는데, 이러한 건강 결핍은 마니교 교리에 따르면 악에 사로잡힌 사람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였다. 두 번째 요인은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의 영향이다. 삶의 진리를 깨닫고 영적인 해방을 원하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암브로시우스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교회는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함께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의 추종자가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와 자신의 신앙을 실천에 옮기고, 동시에 신앙적 사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당시 기세를 떨치고 있었던 이단들의 주장에 대항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신앙을 정립한다. 이때 저술된 그의 저서들은 이후 가톨릭 신학의 주춧돌이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우리나라 조선 시대 이황과 기대승의 이른바 ‘사칠논쟁’(四七論爭)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유명한데, 이야기 위주로 전개되는 이 원고에서는 그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 정립 역사에 대해 궁금한 독자라면 이 부분에 대해별도로 자세히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성적인 문제에 대한 관대함, 해방된 인간을 강조한 펠라기우스적 주장과 인간을 무력한 아이로 보고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종교적 엄격함을 견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불꽃 튀며 맞붙는 그 지점이 흥미진진하다. 이 논쟁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주장의 핵심은 하느님의 은혜가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가 정립한 ‘죄’ 및 ‘악’과 관련한 사유는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식의 도약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여겼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악용하여 세상의 악한 일들이 일어났으며, 악은 더 큰 선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입장은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졌고, 오늘날 우리도 이 논증을 기반으로 사유하고, 믿는다. 이밖에도 죄와 벌, 구원 등 대부분 우리가 믿고 있는 교리가 상당 부분 아우구스티누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의 위대한 스승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이단에 대적해 그리스도교의 주춧돌을 놓고, 정통 신앙을 수호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나, 생애 마지막 순간에 혼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025.12.07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저는 믿나이다] (49) 하느님의 어머니 가톨릭교회는 세 번째 보편 교회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성모 마리아의 칭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심을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하느님의 어머니’, 모자이크, 튀르키예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가톨릭교회의 정통 교리가 선포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 고백을 하기에 이르는 데에는 고대 교회의 두 신학파가 크게 공헌했습니다. 바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 안티오키아 학파입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관념과 사변적 성향이 강해 성경과 교리 내용을 은유와 비유(우의-寓意)로 설명했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과 교리 내용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자의-字意)로 해석했습니다. 이 두 학파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신학 논쟁 끝에 4세기 교회는 두 차례의 보편 교회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문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선포했습니다. 5세기 들어 교회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교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온전히 일치해 ‘하나의 본성’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구분되고, 의지적 결합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두 학파 간 대립은 마리아께 대한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 테오토코스) 칭호를 둘러싼 논쟁으로 표출됐습니다.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된 네스토리우스(381~451)는 성전이 하느님의 거처이듯 마리아는 하느님이 거하는 인간 예수를 낳았을 뿐이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Χριστοτοκος)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380~444)는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요한 복음 1장 1절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바탕으로 인간 예수가 바로 성자 그리스도이시기에 성모 마리아를 당연히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3세기 이후 200여 년 동안 별 문제 없이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러온 그리스도인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신자들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비롯한 안티오키아 학파 신학자들을 비난하고 반발했지요. 성 치릴로는 교황에게 네스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며 이단으로 고발합니다. 이에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은 430년 8월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교회에서 추방합니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불복해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공의회 소집을 요청합니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31년 6월 22일 에페소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공의회를 개최했습니다. 3명의 교황 사절을 비롯한 주교 198명이 참석했습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느님이자 영혼과 육신을 갖춘 온전한 인간이라는 치릴로의 주장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며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432년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 선종 후 즉위한 성 식스토 3세 교황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간의 대립을 종식하고 교회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화해를 주선합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교회 주교들은 교황 뜻에 따라 일치를 이루며 안티오키아의 요한이 433년 봄에 작성한 일치 정식 서한을 교황에게 보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지닌 완전한 인간이시며, (모든) 시대 이전에 신성에 따라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마지막 날에 우리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 인성에 따라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바로 이분께서 신성에 따라서는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인성에 따라서는 우리와 본질이 같으심을 고백합니다. 두 본성이 일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이신 아들, 한 분이신 주님을 고백합니다.”(덴칭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100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요약하면, ‘마리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에 그분의 어머니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시다는 정통 교리를 확립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에페소 공의회를 다음과 같이 공적으로 평가합니다. “네스토리우스 이단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인간적 위격이 하느님의 아들의 신적 위격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맞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와 431년 에페소 제3차 세계 공의회는 ‘말씀’은 영혼으로 생명력을 지니게 된 육신을 위격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일치시키심으로써 인간이 되셨다고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 외에 다른 주체를 가지지 않는다. 이 제2 위격은 잉태 때부터 인성을 취하시어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에페소 공의회는 431년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태중에 인간으로 잉태함으로써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0.29

현세에서 선행에 힘쓰며 교회 가르침에 맞게 살아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7)티토에게 보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생각해 현세에서 함부로 살지 말고 선행에 힘쓰며 교회의 건전한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티토 성인. 성경학자들은 경전 내용과 교리 가르침이 비슷한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과 티토에게 보낸 서간(이하 티토서)을 ‘사목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이들 세 서간은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보낸 개인 서간일 뿐 아니라 원로 사목자가 젊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직분과 실천해야 할 삶의 지침을 제시한 ‘공적 서간’입니다. 아울러 사목 서간들을 바오로 사도의 친필 서간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 대다수 성경학자는 이들 세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가 쓴 ‘제2 바오로 서간’으로 규정합니다. 티토에 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티토는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에 몇 차례 나오지만, 루카가 쓴 사도행전에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티토는 헬라스 곧 그리스 사람으로 바오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49년께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예루살렘 사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날 때 티토를 유다인이 아닌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로서 데려갑니다.(사도 15장 참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티토가 안티오키아 출신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고 어머니가 유다인이었던 티모테오와 달리 티토는 온전히 이방인이어서 바오로 사도에게서 할례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도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티토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주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됩니다.(갈라 2,1-3) 티토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리스 철학과 시학을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세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통역자이자 비서·협력자로 활동하게 되지요. 에페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바오로 사도를 대신해 코린토로 가서 코린토 신자들이 겪는 갈등과 교리적 의문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뿐 아니라 할례와 정결례 등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자들과 자신들의 광신적 생각과 이론을 전파하던 영지주의자들을 힐난하고 바오로 사도의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코린토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 일로 티토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큰 호감을 얻습니다.(2코린 7,7 참조) 그래서 마케도니아에서 티토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티토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가 여러분의 그리움과 여러분의 한탄, 그리고 나에 대한 여러분의 열정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위로 말고도, 우리는 티토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이 여러분 모두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토는 여러분이 모두 자기를 두려워하고 떨면서 맞아들여 순종한 것을 회상하며, 여러분에게 더 큰 애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2코린 7,7.13.15)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티토를 “내 동지이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2코린 8,23)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티토를 “나의 착실한 아들”이라며 그를 사랑했지요.(티토 1,4)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대한 티토의 믿음과 복음 선포에 관한 그의 열정과 능력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뒤를 이어 크레타 섬에 있는 여러 공동체의 조직을 마무리 짓도록 책임을 맡깁니다.(티토 1,5) 티토는 바오로 사도의 지시에 따라 크레타 섬에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했습니다.(티토 1,5) 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인 된 새 신자들에게 옛 생활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직하고 착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이후 티토는 바오로 사도가 파견한 아르테마스와 티키코스에게 임무를 넘겨주고 니코폴리스에 있는 바오로 사도를 찾아갑니다.(티토 3,12)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당부로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인 아드리아해 동쪽 달마티아로 가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2티모 4,10) 교회 전승에 따르면 티토는 달마티아에서 크레타 섬으로 돌아와 초대 주교로 사목하다 93세 나이로 선종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니티나에 안장됐고, 823년 사라센인들이 이곳을 침공할 때 그의 유해(머리)를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티모테오와 함께 1월 16일을 그의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 대부분은 티토서가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에 의해 쓰였다고 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Τιτον’(프로스 티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Titu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티토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티토서는 총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티토서는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교회 제도와 지도자와 신자들의 올바른 태도에 관해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티토서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내용과 유사하게 유다인들의 잘못된 가르침, 어리석은 논쟁, 율법 논란으로 말미암은 해악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 재림의 날을 생각하며 현세에서 함부로 살지 말고 건전한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선행’에 힘쓸 것을 강조합니다.(2,11-15)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8.28

손빈(孫臏)의 병법으로 요셉처럼 말하다![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4) 사마천의 「사기」 「손자오기열전」은 병법의 대가 손무(손자), 손빈, 오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손빈(孫臏)은 손무(손자)의 5대손인데 ‘臏(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정강이 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처럼 손빈은 오나라에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다리를 잃은 불구였습니다.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수레를 타고 군사를 지휘했던 병법의 대가, 손빈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으로 삶의 지혜를 더듬어 봅니다. 어느 날 오나라에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두 다리를 잃은 손빈에게 제나라 사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신은 손빈을 몰래 빼내어 제나라로 데리고 갑니다. 제나라에서 전기라는 장군의 빈객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수레를 몰고 활을 쏘는 내기를 할 때마다 전기는 번번이 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상황을 판단한 손빈이 한 말이 아래 구절입니다. 말의 속도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상중하 등급의 무리가 있다. 馬足不甚相遠 馬有上中下輩 경기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3대가 한 조가 되어 상대 수레와 순서대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었는데 전기의 문제는 상·중·하급의 수레를 늘 순서대로 맞붙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이 등급마다 조금씩 빨랐으니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죠. 병법의 대가 손빈이 전기에게 많은 돈을 걸게 한 후 상황을 판단하여 다시 계책을 마련해 줍니다. “제일 느린 하급 수레를 상대의 상급과 붙게 하고, 상급 수레는 상대의 중급, 그리고 중급 수레는 상대의 하급 수레와 붙게 하십시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 1패 뒤 2승으로 내기에서 이기게 되는 것이죠. 같은 말과 수레이지만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한 쪽 방향만을 고집하면 어리석은 이가 됩니다. 그것에 허점이 있다면 같은 조건이라도 방식을 달리하면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할 때도 완전 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패턴’을 파악한 후 ‘분해’하여 ‘재결합’한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재료라도 분해하여 재결합하면 새로운 창조적 예술이 무한히 탄생하듯, 우리가 사는 삶도 환경과 조건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어 재결합해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나보다 강한 타자가 있고, 살다 보면 나보다 부자인 타자가 있으며, 살다 보면 나보다 앞서 있는 타자가 있습니다. 내 의자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대상들입니다. 인간은 현실 사회의 경쟁 속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 또한 내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운명입니다. 그런 조건과 환경에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하던 방법으로만 삶을 살면 늘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5) 이 구절은 요셉이 이집트에서 형제들에게 한 말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고, 누명으로 감옥까지 떨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재상이 되어 형제들과 모든 가족 무리들이 이집트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연약한 요셉을 앞서 보내신 이유였습니다. 하느님은 병법의 대가처럼 약한 요셉을 앞서 이집트에 보내어 다른 어떤 민족보다 큰 민족이 되도록 계책을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1패 뒤에 얻은 2승, 3승의 승리였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늘 패배자 같고 실패자로 살아가시나요? 환경과 처지를 탓해도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우리의 병법가로 모시고 오늘 하루 삶의 가치와 배열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버렸던 가치를 앞서 보내고, 순서를 바꾸면 비록 지금 내 삶이 1패 할지라도 일생, 영생은 2승, 3승 하여 승리할 것입니다. 삶의 배열과 조합을 바꾸는 것, 그 안에 창조적 인간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손빈처럼 빈(臏)의 처지로 무릎 꿇고 있지만, 손빈의 병법으로 요셉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 나를 그리고 세상에 버려진 가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07.15

초기 교회에서 이방인 포용에 앞장선 야고보 [저는 믿나이다] (2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 교회 전승은 작은 야고보로 불리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열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페드로 오렌테 작 ‘작은 야고보 사도의 순교’, 유화, 1639년, 스페인 발렌시아 벨 예술 박물관.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세 명 등장합니다. 이들 중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인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제베대오의 아들을 ‘큰(大) 야고보’라 하고, 알패오의 아들을 ‘작은(小) 야고보’라 부릅니다.(마태 10,3;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나머지 한 명은 예수님과 형제(마르 6,3; 마태 13,55-56)이며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갈라 2,9)으로 존경받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19)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봅니다.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이 둘을 동일 인물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경전 중 하나인 ‘야고보 서간’을 알패오의 아들로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가 쓴 것으로 여겨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 사이에선 알패오의 아들과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요한 7,5)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라는 복음서의 증언처럼 예수님의 형제 곧 친척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라는 말을 들으며 배척당하셨을 때에는 이미 열두 사도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셨다고 설명합니다.(마르 6장 참조) 그리고 무엇보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주님의 형제들을 언제나 구별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사도 1,13-14; 1코린 9,5; 15,5-8) 또 야고보 서간의 저자는 ‘알패오의 아들’ ‘주님의 형제’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어 같은 인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상 신약 성경에서 그가 작은 야고보라 불렸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행적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 다른 하나가 있네요. 그의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 죽음을 지켜봤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빈 무덤을 목격한 성모님 친척인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55-56)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루카 24,9-10) 등이 소개됩니다. 이제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교회 전통에 따라 작은 야고보 사도를 소개합니다. 이미 밝힌 대로 교회 전통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활동했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봅니다. 그는 큰 야고보라 불리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가 44년 4월께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돼 순교한 후 예루살렘 교회를 맡아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사도 12장 참조) 그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열어 이방인들을 할례 없이 교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당시 교회 구성원의 한 축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한 축인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 율법을 따를 것과 할례를 받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했지요. 그래서 사도들은 이 난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때 작은 야고보 사도는 모든 사도가 동의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모세의 정결례 법’만은 준수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 우상숭배 행위와 불륜, 그리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사도 15장 참조) 이처럼 작은 야고보 사도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초기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야고보 서간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실천할 것을 권고합니다. 야고보 서간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삶에서, 무엇보다 이웃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에서 완성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26) 1세기 말 저서 「유다 고대사」에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작은 야고보 사도가 62년 예루살렘 최고 의회 대사제 아나니아(사도 23장 참조)의 명으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반면 에우세비오 「교회사」는 야고보 사도가 성전 꼭대기에서 내던져졌음에도 죽지 않아 몽둥이질을 당해 순교했다고 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5.28

전쟁 상처 위에 세운 ‘화해의 집’[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27.안동교구 점촌동본당 동로공소 동로공소 제단. 소박하게 꾸며진 제단이 어떤 화려함보다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준다. 동로공소는 적성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안동교구 점촌동본당 동로공소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 여우목로 2797-6(적성리 571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로(東魯)는 ‘동쪽 노나라’라는 뜻이다. 노나라는 공자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따라서 동로를 ‘동쪽 유교의 본고장’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동로는 삼국시대 때부터 영남 동북부권으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었다. 소백산맥 줄기인 하늘재를 넘어 꼭두바위 고개를 곧장 오르면 해발 620m의 여우목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동로면 적성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여우목’은 말 그대로 여우가 다니는 고갯길이다. 여우가 다닐 정도면 상당히 깊은 오지다. 이 깊은 산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에 조선 왕조의 박해를 피해 교우촌을 이루고 숨어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여우목 교우촌을 처음 일군 이가 성 이윤일(요한)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도 홍주에서 상주 상골을 거쳐 문경 최동북단에 위치한 여우목으로 숨어들었다. 곧이어 서치보(요셉) 가족도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충청도 청원에서 이곳으로 피신했다. 또 순교자 박경화(바오로)와 그의 아들 박사의(안드레아) 가족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 여우목에 정착했다. 동로공소는 6·25전쟁 당시 적성리 전투로 무너진 성의 돌들로 지었다. 동로공소 전경. 동족상잔의 비극 서린 돌들로 지어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11월 18일 문경 관아 포졸들이 여우목 교우촌을 습격했다. 교우촌 회장 이윤일을 비롯한 많은 교우가 체포됐다. 이들은 문경 관아에서 3일간 뭇매를 맞은 뒤 상주로 이송됐다. 상주에서 한 달여 옥살이하면서 이윤일은 9차례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이윤일은 1867년 1월 경상 감영이 있는 대구로 압송됐고, 1월 21일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서치보는 여우목에 들어온 이듬해 선종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서인순(시몬)과 서익순(요한), 서태순(베드로)은 1860년께 경산 모개골 교우촌으로 이주했다가 병인박해 때 체포돼 1868년 대구 감영에서 옥사했다. 동로공소가 자리한 적성리는 6·25전쟁 격전지였다. 1951년 1·4 후퇴 며칠 뒤인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국군 300여 명이 북한군 3000여 명을 상대로 1대 10의 치열한 전투를 벌여 기적같이 승리했다. 국군이 전사자 3명, 부상자 4명뿐인 것에 비해 북한군은 전사자 1057명, 부상자 900여 명에 달했다. 마을 주민 100여 명이 죽창과 곡괭이를 들고 합세해 국군을 도왔다. 군과 주민들이 함께 이룬 승리였다. 제6대 점촌동본당 주임으로 1956년 7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사목한 아르놀도 렌하르트(Arnold Lenhard, 한국명 노도주, 1905~2003) 신부가 적성리 격전지 1653㎡(500평)를 사들여 그 위에 건평 132㎡(40평) 건물을 지어 1960년 11월 27일에 동로공소를 설립했다. 동로공소는 적성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언덕에 자리한다. 북서쪽으로는 소백산맥이, 그 반대편으로 태백산맥이 우뚝 솟아 있다. 공소 뒤편으로는 백두대간 황장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천주(天柱)봉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풍수를 모르는 이가 봐도 명당 중의 명당이다. 렌하르트 신부는 적성리 전투 당시 북한군의 공격으로 무너진 방공호 축대의 돌들로 동로공소 외벽을 장식했고, 창문과 양철 지붕은 공평성당 자재를 옮겨와 사용했다. 어떤 이들은 방공호 축대 돌들이 아니라 적성리 전투 때 북한군이 미군의 포격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돌들이라고 했다. 그 돌의 쓰임새가 어떠했든 동로공소는 동족상잔 비극의 상처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름 모를 많은 젊은이가 그 돌 위로 비참히 쓰러져 세상을 마감했고, 그들의 피가 공소가 서 있는 대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비극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받아들인 침묵의 증거물들로 하느님의 집을 지어 그 집 안에서 지금까지 ‘화해’와 ‘평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인 상호 작용을 한다. 둘은 결코 나뉠 수 없다. 단 먼저 화해해야 한다는 순차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아마도 중국 간도 연길수도원 선교사로 활동하다 공산 당국에 체포돼 2년 넘게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했던 렌하르트 신부는 같은 민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선 먼저 기도 안에서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비극의 현장 위에 그 목격 증거물인 돌들로 공소를 지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움 간직 지금의 동로공소는 2010년 12월 수리비 1000만 원을 들여 개축했다. 2011년 7월 동로공소 공원화 추진 사업에 의해 잘 조성된 돌계단을 따라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면 제일 먼저 성모상이 반겨준다. 그 뒤로 돌집 동로공소가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성당 건축사에 있어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외형을 화강석과 같은 단단한 돌로 치장하고 종탑을 정면 중앙에 배치하는 성당 건축 양식이 두드려졌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든든한 성채처럼 성당에서 하느님의 견고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 성당 내부도 공간을 나누는 기둥들을 없애버리고 강당 형태의 밋밋한 구조로 마감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성당 기능을 우선해 형태미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 시기 지어진 대표적 성당이 춘천 죽림동주교좌·원주 원동주교좌·서울 돈암동·김포성당 등이다. 동로공소 또한 당시 유행하던 이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단단한 돌로 외벽을 장식했고, 종탑을 입구 정면에 뒀다. 내부도 강당식으로 기둥 하나 없이 단순하게 지어졌다. 때때로 화려함보다 단순함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더 자극한다. 비움으로써 투명해지듯 전례에 꼭 필요한 것만 채워져 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성당으로 감동을 준다. 동로공소가 그렇다.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화려하다. 예수 성심상을 지나 공소 안으로 들어서면 사물이 비칠 만큼 윤이 나는 나무 바닥에서 공소 교우들의 정성을 느낀다. 제대 위에 펼쳐진 성경이 교우들의 열성을 웅변한다. 제대와 십자가, 예수 성심상, 성모상으로 꾸며진 소박한 제단이 아름답다.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풍금이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음향을 채워주고도 남는 듯하다. 동로공소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는 말씀처럼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임을 느끼게 해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6.07.01

이단 물리치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이끌어[저는 믿나이다] (40) 사도 교부들의 업적 사도 교부들은 영지주의와 가현설 등 많은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호하고 정통 교의를 규정해 나갔다. 사도 교부들, 프레스코화, 1076년, 스바토슬라브. 이제 초세기 말부터 2세기 중엽까지 활동했던 ‘사도 교부 시대’를 마감하고, ‘호교 교부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호교 교부들을 만나기에 앞서 사도 교부들의 업적과 유산을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사도 교부들은 사도들의 직제자였거나 직·간접으로 가르침을 받고, 지역 교회 주교로 사목하면서 신앙 수호를 위해 저술 활동을 펼친 분들입니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 주교, 히에라폴리스의 성 파피아스 주교 등이 사도 교부를 대표하는 인물이죠.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 교회는 이미 지중해 연안을 통해 로마 제국의 많은 지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교회는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성찬례를 중심으로 친교를 이루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사도 2,42; 4,32 참조)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시고,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규범 곧 ‘교의’(敎義)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교회의 일치를 흔드는 다양한 주장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사도 교부들은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상황과 문제들을 신앙의 빛으로 밝히고자 성령의 이끄심대로 충실하고 체계적으로 정통 신앙을 제시했습니다. 곧 성경과 사도 전승, 교도권의 증언으로 교회의 신앙과 가톨릭 교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사도 교부들의 업적과 유산으로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릇된 교의를 ‘이단’(αίρεσιξ, 헤레시스)으로 단죄하였습니다. ‘이단’은 베드로의 둘째 서간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입니다.”(2베드 2,1) 당시 성행하던 대표적인 이단은 바로 ‘영지주의’였습니다. 지혜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이었죠. 영지주의자들은 참하느님과 창조주를 구분하고, 인간의 죄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참인간이 아니라 지상 생활 동안 사람의 모습을 잠시 빌렸을 뿐이고 인간이 구원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때문이 아니라 ‘깨달음’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하나 강력한 이단은 ‘유다이즘’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 유다교 율법 전체를 먼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들은 세례를 받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유다교 율법이 금한 음식 규정을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스도 가현설’을 주장한 이단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였지요. 이에 신약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누가 여러분을 찾아가 이 가르침을 내놓지 않으면 그를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인사하지도 마십시오.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의 나쁜 행실에 동참하게 됩니다.”(2요한 1,7.9-11) 에페소와 페르가몬 교회에서 활동했던 ‘니콜라오스파’도 빼놓을 수 없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방탕하고 부도덕한 생활의 방편으로 악용하였지요.(유다 1,4 참조) 둘째, 사도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사도 교부들은 교회 내 남아 있는 유다이즘을 몰아내기 위해 하느님 중심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앙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화’ 곧 참인간이신 하느님을 강조했고,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는 ‘주님’이라는 칭호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였습니다. 또 하느님과 그리스도, 곧 아버지와 아들의 단일성을 강조하였고, ‘로고스’ 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육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자 역할을 드러냈습니다. 셋째, 사도 교부들은 성찬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일치시켰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을 비롯한 이단 추종자들은 성찬례를 통해 오는 주님의 은총을 거부했습니다. 사도 교부들은 이들 이단에 맞서 성체가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고백했습니다. 넷째, 사도 교부들은 기도를 멀리하는 이단들에 맞서 수덕 생활을 권고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을 본받아 성덕을 완성하기 위해 수덕 생활을 실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도덕적인 완성 없이는 그리스도의 성덕을 본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고, 부를 자랑하기보다 의로움을 드러내라고 권했습니다. 또한, 모든 죄를 멀리하기 위해 사랑을 실천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다섯째, 사도 교부들은 교도권을 수호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복음 선포자들임을 선언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주교직, 교계제도와 평신도 지위를 규정하였습니다. 여섯째, 사도 교부들은 교회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로 규정하였습니다. 이 신앙의 규범은 지금까지 믿을 교리로, 교회 일치의 바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19
![[2026 부산교구 사목교서]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0/20/Mbu1697788601058.jpg)
[2026 부산교구 사목교서]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 청소년·청년의 해(3) 선포와 나눔의 해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인 젊은이들”이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난 2년을 ‘환대와 경청, 배움과 체험의 해’로 보냈습니다. 이제 ‘청소년·청년의 해’ 3년 여정 중 마지막 해를 맞이하여, 기쁜 마음으로 올해를 ‘선포와 나눔의 해’로 정하고, 구체적인 방향도 함께 제시합니다. 1. 복음의 기쁨은 먼저 교회 ‘안’에서 선포되고 나눠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온전한 사랑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은 필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들의 마음 안에는 교회 공동체와 즉시 나누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벅참’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기쁨과 희망을 안고 교회 ‘밖’,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말씀을 배우고, 성체를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었던 초대 교회 신자들은 모든 이에게 “호감”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한 벅찬 사랑 안에서 자기만의 말과 삶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와 새로운 이웃인 이주민에게도 우리의 복음적 기쁨과 희망이 닿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배우고 나눕시다. 우리 주변에는 참된 기쁨과 희망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넘쳐나는 참된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그들에게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한편 가정에서 신앙의 유산을 전달하는 조부모와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특별히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4. 순교자 정신을 이어갑시다. 저는 “순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확신의 결과’이며,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주님께 의지하고 맡겼던 순교자의 믿음을 본받는 것이 신앙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느님을 떠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교자처럼 ‘예수 그리스도 현존의 체험’을 통해 이것 또한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한편 ‘오륜대 순교자 성지’ 조성을 위해 아낌없는 기도와 후원을 해 주신 교구민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부탁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교구민 여러분들의 기도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5. 부산교구 젊은이의 날(BYD)과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특별히 2년간 젊은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은 것은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교회의 젊은이가 ‘교회의 주체이며 희망’임을 공유하고, 그들의 젊음이 교회에 활력을 되찾게 할 귀한 원동력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젊은이’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여정은 끝이 아닙니다. ‘지금의 젊은이’에 이어 ‘내일의 젊은이’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를 향한 우리의 관심이 끝이 없는 이유입니다.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cpbc2025.12.10

“행복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서로에게 건네야 할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1월 16일 바티칸에서 이탈리아 국립 청년 위원회 위원을 만나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은 생전 교황이 강론·담화·문헌·묵상 등에서 전한 행복에 관한 내용을 엮은 책으로 행복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며, 타인과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OSV 강론·담화·문헌 등으로 전한 프란치스코 교황 행복의 정수 고유한 아름다움 드러낼 것 등 행복 향한 15가지 방법 제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 프란치스코 교황 / 김의태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사랑이 필요합니까? 무절제한 쾌락이나 타인을 이용하고 소유하며 지배하는 태도 안에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한 감동을 원하십니까? 물건을 사 모으거나, 돈을 허비하거나, 세상의 것들을 필사적으로 좇는다고 해서 그러한 강렬함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훨씬 더 아름답고 충만한 방식으로 그 강렬함을 느낄 것입니다.”(230쪽) 사람들이 가장 바라면서 잡기 힘든 감정이 ‘행복’이 아닐까 한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다. 그러나 ‘충분한 만족과 기쁨’은 매우 주관적이기에 ‘행복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동일 인물이라도 어제는 행복하고 오늘은 아닐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커져가는 빈부 격차 속에서 SNS 등으로 너무나 쉽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연스레 비교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행복감을 느끼기가 더욱 어렵다. 오죽하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라는 단어까지 나왔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은 생전 교황이 강론·담화·문헌·묵상 등에서 전한 행복에 관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행복의 유산’인 셈이다. 교황은 행복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할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먼저 행복을 향한 15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평온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각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을 제안한다. 위대한 꿈을 꾸고, 바라는 지점에 도착하도록 건강한 조바심을 지니라고 조언한다. 또 용서하는 법과 슬픔을 읽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함께 걸으며 나누라고 말한다. 본문에서는 크게 8장으로 나눠 행복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비신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단테의 신곡」·「닥터 지바고」·「카라마조프의 형제들」·「반지의 제왕」등 문학 작품, 영화 ‘프란치스코, 신의 어릿광대’ ‘바베트의 만찬’ 등에서 행복과 관련된 내용을 인용했다.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길은 언제나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그 사이에 언제나 십자가와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속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행복을 약속하셨고, 우리가 그분의 길을 따른다면 그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39쪽) 수원교구 김의태(수원가톨릭대 교수, 1심 법원 부사법대리·재판관) 신부가 우리글로 옮겼다. 김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언어는 바티칸의 도서관이나 신학자의 책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가장 깊은 진리를 가장 쉬운 그릇에 담아 건네시는 교황님의 배려, 쉬움의 미학을 부족하지만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