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잃은 성모 마리아와 유다 어머니가 만난다면…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 31일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시작으로 순회공연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 출연자들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1970~1980년대 배경…고통 통해 하느님 만나는 과정 담아 서울 장안동·쌍문동성당과 대구 범어대성당서 무료 공연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가 31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을 시작으로 순회공연에 나선다. 가톨릭 신자라면 묵주 기도를 통해 예수님 탄생부터 십자가 수난, 부활의 영광까지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게 된다. 특히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성모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며 성모님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마음을 키우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의 어머니를 떠올린 이도 있을까? 성경 그 어디에도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지만, 그녀 역시 아들을 잃은 애통함에 가슴이 찢어졌을 텐데 말이다.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는 같은 시기에 장성한 아들을 잃은 성모 마리아와 유다의 어머니가 만나 서로 고통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규원(사라) 작가가 신앙과 상상력을 접목해 써내려간 작품으로, 지난 2005~2006년 전국 40여 곳의 성당과 교도소·대학 등에서 초연됐다. 이 작가는 “유다 어머니라는 인물 자체가 이 작품의 특징이지만 처음에는 거부감이 일지 않을까 굉장히 두려웠다”며 “하지만 그분의 아픔도 못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수님과 유다가 내면에서라도 나눴을 격론을 두 어머니의 입장에서 얘기하면 여성의 언어, 어머니의 언어라서 부드럽지만 훨씬 강렬할 것 같아 극을 썼다”고 밝혔다. 작품은 1970~198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숨어 살며 운영하는 떡집에 아들을 잃은 상실감으로 무너진 한 나이든 여인이 머물게 되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두 어머니는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하지만 이내 각자의 정체가 드러나 고통의 격랑에 빠져든다. 이번 시즌 유다 어머니는 임영순(세라피나)·윤미향 배우가 번갈아 연기한다. 임영순 배우는 “성경에 유다에 대해서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때문인지 2000년간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 어머니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며 “성모님은 하늘에 가깝게 사신 분이지만 유다 어머니는 세상에 가까운, 우리 보통의 어머니들과 많이 닮아 있다”고 말했다. 윤미향 배우는 “유다 어머니를 연기할 때면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분노, 종교적인 갈등과 번뇌 등 다양한 감정이 북받쳐서 어렵다”며 “엄마의 마음과 신앙인으로서의 마음이 들끓다 융합돼 나와야 해서 몹시 힘들다”고 토로했다. 성극 ‘어머니의 마음’으로는 오는 31일 오후 7시 30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29일 서울 장안동성당, 이후 쌍문동성당과 대구대교구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도 상연될 예정이다. 안수호 연출은 “대부분 성당에서 공연되는 극이라 배우들이 연극적인 무대로 공간을 익히고 만들어 가는 데 고민이 많다”며 “하지만 두 어머니가 만난다는 설정은 종교를 떠나 모든 관객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만큼 두 사람이 어떻게 갈등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지 잘 담아내고 싶다”고 전했다. 공연은 전석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티켓 문의 : 010-4007-3867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0.23
이성우씨, 책 1000권 교정시설에 기증 임관빈씨 저서 「유머 타고…」 1200만 원 상당 시설에 전달 기증자 이성우(오른쪽 두 번째)씨와 현대일 신부, 저자 임관빈(왼쪽 첫 번째)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 사회교정사목위 제공 서울대교구 한남동본당 신자 이성우(안토니오)씨가 임관빈(이레네오) 예비역 육군 중장이 지은 책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 1000권(1200만 원 상당)을 교도소와 구치소 등 교정시설과 각 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기증했다. 시설별로는 서울구치소, 서울동부구치소에 각 100권, 서울남부구치소와 서울남부교도소에 각 60권이다. 또 대구·광주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각 100권, 의정부·원주·안동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100권씩, 춘천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60권, 마산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50권을 기부했다. 이성우씨는 10월 31일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센터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교정시설에 수용된 분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증하게 됐다”며 “이 책을 읽고 교정시설 수용자들이 삶에 희망을 느끼고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증식에는 이씨를 비롯해 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현대일 신부, 임관빈 예비역 중장 등이 참석했다.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은 신자로서 되새기면 좋을 교리와 마음가짐을 정리한 책으로, 성경을 비롯해 신학적·인문학 이야기, 저자의 경험담에 유머를 담은 책이다. 임씨는 42년간 군에서 복무하며 육군참모차장, 국방대 총장,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4.11.05

임마누엘(Immanuel)[월간 꿈 CUM] 인생의 길 (14) ‘임마누엘’(Immanuel)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은 도대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시기 위해서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동떨어진, 인간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과 언제나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시기 위해서 맨 먼저 무엇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시기 위해서 먼저 인간을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다오.” 하느님께서는 먼저 인간을 부르시고 협조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부르심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창조주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인간을 부르셨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도움을 통해서, 인간의 협조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부르심은 바로 구원의 초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것은 당신 구원사업에 협조해 달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의 협조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씀으로 인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협조해 달라고 손을 내미시는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마리아와 요셉은 기꺼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응답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며 손을 내미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 주님. 당신의 손을 꼭 잡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는 하느님의 손을 꽉 잡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느님은 우리와 멀리 계신 하느님이 아닌, 우리와 동떨어진 하느님이 아닌,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 되십니다.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하느님의 손을 꼭 잡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탄생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도움과 협조를 요청하십니다. “얘야, 나는 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단다. 나는 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그러니 제발 나를 도와다오.” 이렇게 우리를 부르시며 따뜻한 손길을 내미시는 하느님의 손을 꼭 잡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이렇게 응답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 주님. 당신의 손을 꼭 잡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응답 드릴 때 하느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마음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Immanuel)이 되셔서 오실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갔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젊은이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을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발자국 옆에 또 다른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긴 그 젊은이는 하느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느님! 제가 걸어온 제 삶의 발자국 옆에 또 하나의 발자국은 도대체 누구의 발자국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발자국은 바로 나의 발자국이다. 너는 잘 몰랐겠지만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걸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어떤 때에는 자신의 발자국 옆에 하느님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또다시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하느님! 왜 어떤 때에는 당신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겁니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내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을 때 네 인생에 있어서 어떤 때였느냐?” 젊은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그때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든 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하느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 그때는 바로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께서는 그때 저와 함께 걸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가 그때 너무나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절망하기에 내가 직접 너를 업고 걸었단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을 지냈다. cpbc2025.05.19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18) 브라질의 작곡가 프란치스코 브라가(Francisco Braga, 1868~1945)의 오페라 ‘유피라(Jupira)’는 흔히 듣기 힘들지만 걸작이다.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에 치중된 클래식계 현실로 인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놓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페라의 내용은 브라질의 건국 신화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유피라의 아리아 ‘이민자, 죽어가는 자, 창백하게 승천하다’(Migrante, morente, risale pallente)는 그중 발군하다. 주인공 유피라는 이민자의 아픔과 고독을 언급하며 모두가 하나 되는 것이 행복을 향한 길이라고 노래한다. 유피라의 아리아 //youtu.be/u2sbC9Puuc0?si=y4bwhcblHXOUqCfW 가톨릭교회가 지정한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은 정치와 경제·종교 등 여러 이유로 고국을 떠나 있는 이주민과 난민들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이방인은 대체로 경원의 대상이고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고대로부터의 덕목이다. 나그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전령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가족이 되기도 하였다. 외부에서 온 인사를 환영하지 않는 민족은 번영하지 못했고 쓸쓸히 퇴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스라엘 민족도 오랜 기간 이집트와 전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다. 이스라엘 역사는 조상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 지역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 총리로 있던 때에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하던 유다인들은 이집트 힉소스 왕가의 호의 덕분에 나일강 유역의 ‘곳센’에 정착하면서 짧은 번영을 누렸으나,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노예로 전락하였고 400년을 핍박받았다. 모세에 의해 이집트를 탈출한 유다인은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이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구약성경의 탈출기에서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 23,9)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인으로 핍박한 이집트는 쇠락을 겪게 되며 로마에 지배당하게 된다. 미국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이민자와 난민의 나라라는 데에서 온다. 수많은 민족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갈등이 불거져 나오지만, 그들이 합쳐진 힘은 강력하다. 이미 선진국들은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여 사회 공동체로 만들었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국가의 명맥을 유지·발전시킨다는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민자와 난민을 배척하는 무리도 확대되며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정권을 노릴 만큼 성장하였다. 하지만 성경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흐름은 이들이 가는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영화 ‘대부’ 중 ‘이민자 테마’ //youtu.be/R-bsuTT-tm8?si=a5FIefVKvRlj7Hz6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cpbc2024.09.25
![[신앙단상] 살아가는 신앙(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2/25/RSn1740474011898.jpg)
[신앙단상] 살아가는 신앙(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는 자전거로 10분 정도 걸리는 성당에 다녔다. 그곳은 영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가톨릭교회로, 나처럼 외국인이 많았다. 한인 성당이 멀기도 했고, 또 이때가 아니면 언제 영어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 싶어 다니게 되었다. 오랜 복사 활동을 통해 미사 통상문이나 독서·복음은 한국에서도 외울 정도로 익숙했으니, 살짝만 들어도 ‘아, 지금 이 전례 중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톨릭 앱에 올라온 일정과 같았기에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미사 시작 10분 전에 도착해 스마트폰으로 그날의 전례 내용을 예습하곤 했다. 신부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그 성당은 여러 나라에서 모인 신자들, 특히 2~4년 단위로 신자들의 유동이 잦아 특별한 점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미사 중 다양한 언어로 불렀던 성가곡들, 평화의 인사 때 제대 아래로 내려와 성당을 크게 한 바퀴 돌며 거의 모든 신자와 포옹하고 악수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1년에 한 번은 모두 모여 각국 음식을 요리해 하루 종일 나눠 먹는 행사가 있었고, 가끔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수 있는 미사도 있었다. 하지만 주일 오후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는 많지 않았다. 우리 성당뿐만 아니라 유럽을 여행하며 방문했던 대부분 성당에서도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국보다 적다고 느꼈다. 하루는 작곡가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중에 기도하며 성호를 긋는 내 모습을 본 이탈리아 친구가 자신도 하지 않는 기도를 내가 하고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갑자기 죄를 지은 기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는 그리스도인이 많은지, 나는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 묻다 보니, 어느새 다 함께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그리스도교 문화가 바탕인 환경에서 태어나 피터(베드로)·카타린느(가타리나)·베로니카·니코스(니콜라우스)·마태오·사라·루카스·스테판(스테파노) 등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갔던 기억이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모태 신앙이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서일까? 그리스도교적 행동과 사고가 자연스럽게 밑바탕이 된 것 같았다. 미사 때 들었던 독서와 복음, 신부님 강론이나 교리 시간에 배운 내용이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양보하며, 믿고 도와주고 용서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놀라다가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기도 중에 한 가지 바람을 더 추가했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상대를 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보통 그런 순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찾아오고, 찰나에 지나가 버려 지나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더 관용을 베푸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손일훈(마르첼리노) 작곡가cpbc2025.03.04

성경과 기도문,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성경·기도문 풀어 쓴 도서 성경과 기도문을 자세히 풀어쓴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오랜 시간 관련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했던 저자들의 입체적인 해설이 독자들을 성숙한 신앙생활로 안내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발터 카스퍼 추기경 허찬욱 신부 옮김 / 분도출판사 주님의 기도는 신자들에게 가장 친숙하고도 중요한 기도로 손꼽힌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셨고, 그 안에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그리스도교 신앙이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독일 출신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주님의 기도의 기원과 전승을 살펴보고, 오늘날 이 기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이 아버지라는 호칭에는 이 세상의 아버지가 결코 완전히 채울 수 없는 궁극적인 갈망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에는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 배려와 관심에 대한 동경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지상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적인 바람을 무한히 뛰어넘어 우리의 근원적인 갈망을 채워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23쪽) 주님의 기도는 단 여섯 개의 청원으로 모든 주요 문제를 간결하게 요약한다. 우선 하늘과 땅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고 하느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하지만, 인간이 바라는 구체적인 요구도 놓치지 않는다. 기도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청한다. 인간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의 기도는 잘 알고 있다. “양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양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즉 먹고 마시는 것, 쉴 수 있는 집, 추위와 더위에서 몸을 보호하고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옷 등을 다 포함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양식은 자연에서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인간 공동체의 기본적인 선에 참여하길 바라는 우리의 사회적인 요구도 담고 있습니다.”(95쪽) 평생 다양한 신학 주제를 연구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주님의 기도를 한 구절씩 해석하며 이 기도의 넓고 깊은 의미를 친절하게 풀이한다. 특히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해석하면서도 신약성경에서 이미 시작된 전승과 영향사(影響史)를 고려하고, 동시에 현재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 교구장을 지낸 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된 2010년까지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부 의장으로 재직했고, 교황청 신앙교리부와 종교 간 대화부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마태오 복음 묵상 C. M. 마르티니 추기경 성염 옮김 / 바오로딸 “마태오 복음은 ‘교리교사의 복음서’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이 복음서의 자료가 폭넓고 정리가 잘 되어있을 뿐 아니라, 교리교육 과정을 마치고 교회 내에서 세례를 받고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을 상대로 정규 교육을 베풀려는 의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마태오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들려주며, 여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언행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인이 공동체 안에서 걸어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비추어 주고 있다.”(15쪽) 「마태오 복음 묵상」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은 마르티니 추기경이 1977년 사르데냐 지역의 이탈리아 영신수련협회 대표들을 대상으로 영신수련을 지도한 ‘마태오 복음에 따른 영신수련 강의’를 엮은 묵상서다. 저자는 특별히 파스카 신비, 즉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깊이 참여하도록 안내하며, 교회적 관점으로 묵상을 전개해 나가는 텍스트로 마태오 복음을 제시한다. 마태오 복음은 ‘교리교사의 복음서’ 또는 ‘교회의 복음서’로 불리며, 세례를 받은 후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 마태오 복음을 ‘하느님 나라에 관한 교리서’로 바라보며, 마태오가 교회 내부의 생활과 교회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인다고 설명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1927~2012) 추기경은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교황청 성서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68년부터 1978년까지 성서대학원 학장 및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197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이탈리아 밀라노 교구장으로, 1983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2002년 은퇴 후에는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경 연구와 기도 생활에 전념했고, 저명한 저서들을 남겼다. 구세사 산책 김명숙 / 성서와함께 한님성서연구소 김명숙(소피아) 수석 연구원의 「구세사 산책」이 출간됐다. ‘구세사’는 하느님의 인간 구원의 역사, 즉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역사다. 그 사랑의 시작은 세상의 창조였다. 「구세사 산책」은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다시 말해 창세기에서 여호수아기까지를 다룬다.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천지 창조부터 성조의 역사를 거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이다. 저자는 책에서 각각의 구원 사건들과 함께 구약시대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의 사회, 문화, 당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믿었던 이방 신, 계약 체결의 방식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또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세부 사항이 어떤 의외의 중요성을 지녔는지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의 말이나 행동, 상황에 대한 입체적인 해설은 400쪽이 넘는 책장을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기게 한다. “세 번째 여인은 삼손의 운명을 결정지은 들릴라다. 그가 음모를 꾸며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니 기세가 ‘태양’ 같던 삼손이 눈까지 뽑히며 ‘빛을 잃는다’. 들릴라라는 이름 안에는 ‘밤’을 뜻하는 ‘라일라’가 들어 있으니 둘의 관계는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해야 할까? (중략) 삼손은 진정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자기중심적이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만, 판관기 저자는 그를 통해 ‘주님께서 쓰시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같다.”(399쪽) 저자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제키엘서」로 제23회 한국가톨릭학술상에서 연구상을 받았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6.23

헨델·바흐·멘델스존… 무대서 만나는 종교음악올봄 풍성한 무대 이어져 서양음악사에서 종교음악은 큰 축을 담당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성경 말씀이나 그리스도교 정신을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봄 잇따라 무대에 오르는 헨델·바흐·멘델스존의 종교음악을 소개한다. 헨델의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후기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Il Trionfo del Tempo e del Disinganno)’가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헨델(1685~1759)이 1707년에 지은 첫 번째 오라토리오(종교적인 극음악)로, 주인공 ‘아름다움’이 현재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시간’과 ‘깨달음’의 도움으로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저명한 예술 후원자이자 작가였던 베네데토 팜필리 추기경의 대본을 악보에 옮긴 것이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아름다움·즐거움·깨달음·시간이라는 의인화된 존재들이 삶과 죽음·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담론이 담긴 작품이다. ‘아름다움’에게 ‘즐거움’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반면 ‘깨달음’과 ‘시간’은 모든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며 좀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이상을 제시한다. ‘음악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대가들과 교류하며 주목 받은 20대 초반, 젊음과 즐거움이 충만했을 청년 헨델이 완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아리아와 콜로라투라(기교적이고 화려한 꾸밈음) 기법도 일품이다. 극 중 ‘가시는 놔두고 장미를 꺾어라’는 이후 오페라 ‘리날도’의 유명 아리아인 ‘울게 하소서’의 밑그림이 된다. 이번 공연은 고음악 지휘의 거장 르네 야콥스가 이끄는 시대악기 전문 B’Rock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야콥스와 여러 차례 협연한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씨가 ‘아름다움’을 맡았다. 소프라노 카테리나 카스페르, 카운터테너 폴 피기에, 테너 토머스 워커도 합류한다. 4월 2일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 사순 시기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묵상할 수 있는 오라토리오 ‘요한 수난곡’은 4월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서울모테트합창단(지휘자 박치용)의 제129회 정기연주회다. 바흐(1685~1750)가 1724년 작곡해 그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초연한 것으로 알려진 ‘요한 수난곡’은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총망라한 대작으로 손꼽힌다. 요한 복음서를 기반으로 자유 가사가 더해지며, 합창과 아리아 사이에 줄거리를 해설하는 복음 사가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톨릭 성가 75번 ‘주 그리스도 우리 왕’, 169번 ‘사랑의 성사’ 등은 ‘요한 수난곡’에서 가져온 곡이다. 멘델스존의 ‘시편 42’ 그레고리안 성가와 시편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은 4월 16~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만날 수 있다. 박동희의 객원 지휘로 열리는 서울시합창단의 명작 시리즈 ‘합창, 피어나다’. 이번 공연은 오르간과 함께하는 1부, 봄과 자연을 담은 2부로 구성된다. 그레고리안 성가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강렬한 리듬을 담은 벤저민 브리튼의 ‘페스티벌 테 데움(Festival Te Deum, Op. 32)’으로 문을 연 1부는 멘델스존(1809~1847)의 ‘시편 42(Psalm 42)’로 마무리된다. 오르가니스트 이수정의 연주와 다양한 합창 기법으로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로 열어가는 시편 42장을 노래한다. 2부에서는 다채로운 우리 가곡과 흑인 영가 등을 즐길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영의 연주가 더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3.19

한복, 우리 민족의 예스러운 멋과 조화미 품은 전통의상[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2. 한복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한복 입은 소녀’, 1911,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볏단 위의 아이들’, 1911. 05. 황해도 청계동,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베버 총아빠스, 한복의 조화미 단숨에 간파 한복은 멋스럽다. 직선과 완만한 곡선의 단순한 조형미가 참으로 곱다. 단아한 깃과 정갈한 고름, 색동 장식이 조화롭다. 넉넉한 품과 과하지 않은 주름이 소박하다. 옷맵시를 드러내는 끈과 고름, 대님 또한 그 넓이와 길이·색의 변화로 여유롭다.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예스러움을 품고 멋을 드러내는 ‘전통 복식’이다. 따라서 옷은 물론 장신구와 신발 등을 제대로 갖춰야 한복이라 할 수 있다. 한복이 멋스러운 이유는 단순히 예스럽기 때문만은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입어온 옷 속에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가 켜켜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정서와 문화의 조화가 한복의 멋으로 드러난 것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을 반영해 지어진 옷이 바로 한복이다.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복의 조화미를 단숨에 간파했다. “옅은 꽃들이 봄의 첫 전령인 양 잠든 자연을 깨우고, 들판의 흙빛 풀들은 화사한 봄빛으로 갈아입고 햇살 고운 봄의 생기와 정취로 초대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봄꽃처럼 화사하고 매혹적인 아이들의 옷이었다. 부드러운 아네모네의 흰빛과 수줍은 제비꽃의 보랏빛, 다홍치마와 파랑 저고리, 이 모든 것이 붉고 푸르게 빛나는 풀모나리아 꽃처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저기 한 아이가 초록 잎 위에 나부끼는 연노랑 앵초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금세 다시 연두와 주황이 되었다가 여기에 보라·초록·빨강이 뒤섞인다. 저기 긴 초록 옷은 어느새 연두로 변해 있고 흰색 끝동이 달린 주황과 자줏빛 옷 위로 검은 댕기 머리가 춤추고 있다. 젊은 봄기운과 흥겨움만이 마법을 걸어 만들 수 있는 색채의 향연이다. 물론 옷 군데군데 흙먼지와 때도 묻어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 소나기에 흙이 튄 작은 봄꽃 같다. 비록 몇 주 전 한 독일 신문기자가 조잡한 자연색의 배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래도 한국 아이들 옷의 아름다움은 현란한 색상에서 단연 독보적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71~72쪽) <사진 2> 깨끗한 옷은 ‘정결’을 상징한다. 구약의 사제들은 속죄 예식을 할 때 정해진 곳에서 몸을 씻은 후 깨끗한 아마포 옷을 입고 사제직을 수행했다.(레위 16,32 참조) 목화에서 뽑아낸 실로 짠 아마포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 입던 흰옷의 무명천과 같다. 성경에서 ‘흰옷’은 거룩함과 승리를 상징한다.(2마카 11,8; 묵시 3,4-5 참조) 정결은 ‘정숙’을 요구한다. 교회 영성가들은 정숙함이 절제의 완벽한 구성 요소라고 가르친다. 정숙이 사람들의 내밀한 면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정숙은 정결을 지향하고 정결의 신중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정숙한 사람은 단정하게 산다. 그리고 점잖은 옷을 골라 입는다.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남바위를 쓴 여성들과 여아들’, 1911. 03. 하우현성당,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한복 입으면 몸가짐 단정하고 걸음 단아 한복은 점잖다. 몸가짐을 얌전하게 하고, 걸음도 단아하게 한다. 한복 입은 여인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치마 뒷자락을 살짝 걷어 올려 잡고 사뿐히 걷는다. 이처럼 한복은 늘 품격을 유지하게 한다. <사진 3> “나는 밝은색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음울한 천에 무늬를 넣은 띠로 매무새를 다잡은 일본 옷과 비교하면 알 것도 같았다. ··· 한국인은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산마루에 진달래꽃 불타는 봄이면,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진달래꽃을 응시할 줄 안다. 잘 자란 어린 모가 연둣빛 고운 비단을 펼치듯 물 위로 고개를 살랑인다. 색이 나날이 짙어졌다. 한국인은 먼 산 엷은 푸른빛에 눈길을 멈추고 차마 딴 데로 돌리지 못한다. 그들이 길가에 핀 꽃을 주시하면 꽃과 하나가 된다. 한국인은 이 모든 것 앞에서 다만 고요할 뿐이다. 그들은 꽃을 꺾지 않는다. 차라리 내일 다시 자연에 들어 그 모든 것을 보고 또 볼지언정, 나뭇가지 꺾어 어두운 방안에 꽂아 두는 법이 없다. 그들이 마음 깊이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연에서 추상해 낸 순수하고 청명한 색깔이다.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색상을 그대로 활용한다. 무늬를 그려 넣지 않고,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살린 옷을 아이들에게 입힌다. 하여, 이 소박한 색조의 민무늬 옷들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원숙하고 예술적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84~285쪽)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아기를 업고 있는 소녀’, 1911. 03. 하우현성당,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5> 노르베르트 베버, ‘황해도 청계동 여자들과 아이들’, 1911. 05. 청계동,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일제 강점기 시절 한복은 저항의 상징 한복 이름도 다양하다. 형태에 따라 겉막이, 회장 저고리라 불리고 옷감에 따라 갑사·숙고자·양단·무명·모시 저고리 등으로 불린다. 또 색깔에 따라 노랑·분홍·색동저고리로, 문양에 따라 연화 문단·보상화 문단 저고리라 한다. 바느질 방법에 따라 홑·겹·깨끼 저고리라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한복은 저항의 상징이었다. 일제는 식민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말과 글뿐 아니라 머리 모양새와 옷차림을 강제로 바꾸도록 했다. <사진 4> “이 진기한 거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헐렁한 흰옷으로 휘감았다. 이 옷에 어떤 장식물을 달아 본디의 순수성과 특성을 손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네 의복과 머리 모양을 신식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런데 그 동기가 옛 것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일본과 일본을 연상시키는 것들에 대한 증오다. 덧붙여 말하면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혐오하거나 혁신에 적대적이지 않다.”(지그프리트 겐테, 「한국 여행기」 , 1905년 출간, 203~222쪽 참조) 복식연구가들은 한복의 멋스러움은 ‘정중동(靜中動)’에서 우러난다고 한다. 옷맵시에 대한 감성적 향수보다 내재한 정서를 더 깊이 성찰한 표현일 것이다. <사진 5> “새로운 정신이 밀려들고 있다. 옛 성벽이 허물어지고 당당한 성문들이 헐리고 있다. ··· 문화의 증거들은 포악하게 짓눌려 으깨진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굴뚝 위로 우뚝 솟은 현대식 건축물들이 새 시대의 도래를 알려준다. 과거의 엄정한 윤리 도덕이 섬나라 풍속을 들여온 지배 세력의 강력한 영향하에 흐트러지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생성, 소멸과 개조가 진행 중이다. 여러모로 운이 따른 덕에 나는 소멸할 운명에 처한 문화사적 보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포착할 수 있었다.”(노르베르트 베버, 「분도통사」 196쪽) 리길재 전문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27

주님이 주신 말씀과 기쁜 소식에 감사·찬미[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건 못 참지] (8)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 독서가 끝날 때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응답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과 지혜를 비춰주셨음에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신자가 미사 독서를 봉독하고 있다. OSV “선생님, 독서 말씀 끝에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응답하고 복음 말씀 끝에는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응답하나요? 똑같이 하면 안 되나요?” 전례부 학생이 제게 묻습니다. 그렇지요. 똑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왜 다르게 하는지 예전에 저도 참 궁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미사로 들어가는 말씀 전례 부분 중 ‘독서·화답송·복음 환호성·복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말씀 전례의 중심은 하느님 말씀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잘 읽고, 잘 응답하는 예절로, 말씀이 백성에게 선포되고, 우리에게 전달되는 예식의 한 부분입니다. 독서자의 입을 통해 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지금 직접 나에게 해주시는 시간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서는 평일엔 한 번, 주일과 대축일에는 두 번 봉독됩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말씀의 풍성함을 나누는 시간으로, 전례 시기와 축일 등 해당 시기와 조화를 이루며, 그 시기의 특징과 익혀야 할 내용을 반영하는 말씀으로 구성됩니다. 제1독서는 신약의 일을 보여준, 그날 복음과 관련된 내용을 구약성경에서 선택합니다. 제2독서는 복음 말씀 생활화와 관련된 사도들의 서간(편지글)을 선택합니다. 화답송은 성경 말씀을 듣고 외치는 응답의 노래이며 독서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약성경의 ‘시편’에서 인용합니다. 복음 환호송(알렐루야)은, 매 주일은 작은 부활 축제로서 주님의 승리를 기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승리와 기쁨의 날이기에, 우리는 알렐루야(주님을 찬양하라)를 외치는 것입니다. 또 잠시 후 선포될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복음(기쁜 소식, 곧 예수 그리스도)을 받아들여 깊이 새겨 둘 준비를 하게 합니다. 복음서는 3년을 주기로 가해는 마태오 복음서, 나해는 마르코 복음서, 다해는 루카 복음서가 선택됩니다. 요한 복음서는 매년 전례 시기에 맞춰 선택합니다. 독서를 봉독할 때 “○○○의 말씀입니다”라고 밝히는 이유는 저자, 또는 성경 이름을 통해 하느님의 신비가 어떻게 이해되고 체험되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독서자가 독서를 마치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응답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과 지혜를 비춰주셨음에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사제가 복음 선포 끝 부분에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면,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에 찬미로 응답하는 것으로, 즉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말씀 전례의 최고 절정입니다. 사제가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하면, 신자들은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응답하면서 ‘이마·입술·가슴’에 작은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이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들을 들으면서 우리도 복음을 머리로 깨닫고, 입으로 고백하여 말씀을 전하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생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은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말씀이며, 그리스도 자신의 상징으로 보기에 부제와 사제만 선포합니다. 신자는 복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어서서 복음을 듣습니다. cpbc2024.06.25

모세의 율법 다시 세우고 공동체를 새롭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0)느헤미야기 느헤미야기는 하느님께서 바빌론 포로 생활 귀환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진은 느헤미야가 재건했던 예루살렘 성벽 유적. 출처=Christian VandenHeuvel 느헤미야기는 본디 히브리어 정경에서 ‘에즈라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한 책이었습니다. 느헤미야기는 “하칼야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느헤 1,1)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느헤미야는 ‘위로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니함’과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가 합쳐진 단어로 우리말로 ‘야훼 하느님께서 위로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에즈라 느헤미야를 ‘Εσδρα B’(에스드라스 베타)라 표기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를 분리해 ‘Nehemias’(네헤미아스)라 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가톨릭 「성경」은 ‘느헤미야기’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기는 에즈라기와 같이 유다인들의 바빌론 포로 생활이 끝난 후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445년으로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기원전 465-424년)가 다스린 지 20년째 되는 해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빌론 유배 이후 에즈라와 함께 예루살렘을 재건한 인물입니다. 에즈라가 사제요 율법학자였던 것과 달리,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궁정에서 파견된 유다인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가 주로 한 일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일입니다. 그는 신심 깊은 유능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반대자들을 회유할 줄 아는 설교가이기도 했죠. 느헤미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귀국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1─7장), ‘율법 선포와 초막절 축제 거행’(8─10장), ‘예루살렘 성벽 봉헌’(11─13장)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복구에 반대하는 유다의 적들과 싸우는 동시에 주민들에게 용기를 북돋고 규율 준수를 촉구하며 이 일을 완수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 귀환자들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인 동시에 귀환 목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유배 이전의 역사와 연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루살렘 성전 제단을 복구해 하느님께 감사의 경신례를 거행했습니다. 이른바 ‘제2 성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에즈라가 바빌로니아에서 가지고 온 모세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선포하고 초막절 축제와 참회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제부터 모세의 율법이 유다교의 중심으로 확실하게 자리 굳히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경신례와 종교 관습, 사회 질서가 확립됩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며 기쁨의 원천입니다.(느헤 8,8-12) 하느님께서 단 한 번도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계명을 준수하라고 억지로 강요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고 기쁨으로 율법을 실천하라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종교 쇄신을 단행하면서도 단 한 번도 백성에게 율법 준수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이 율법을 스스로 지켜갈 것을 다짐합니다.(느헤 10,29-30)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자 느헤미야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여러 가지 예물에 관한 규정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이들과 관련된 규정을 재정비합니다. 아울러 유다인들에게 안식일을 철저히 지킬 것과 이방인과 혼인을 금할 것을 명령합니다. 귀환자들은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성전 재건을 돕겠다고 나선 이방인들의 도움을 거절합니다.(에즈 4,1-24 참조) 또 에즈라와 느헤미야 역시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새로운 공동체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모세의 율법 규정(신명 21,10-14)에 따라 귀환자들과 혼인한 이방인 여인들을 공동체에서 내보내게 하고 혼종혼인을 금합니다.(느헤 13,23-27)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철저하게 분리시킵니다.(느헤 13,1-3) 느헤미야가 이렇게 조치한 궁극적 이유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방인과의 공존은 이방 종교와의 공존을 의미하고 결국 종교 혼합주의에 빠져드는 원인이 되리라 판단했기에 모든 이방인과의 철저하고 완전한 분리를 주장한 것입니다.(느헤 13,26-27) 느헤미야기의 핵심 주제는 느헤미야기의 맨 마지막 문단에 함축돼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모든 낯선 것으로부터 정결하게 한 다음, 임무를 확정하여 저마다 제 일을 하게 하였다. 또 정해진 때에 바치는 장작의 봉헌과 맏물도 확정하였다.”(느헤 13,30-31) 느헤미야는 하느님께서 바빌론 포로 생활 귀환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신다고 강조합니다. 유배와 왕국의 패망에서 구원받은 ‘생존자’(에즈 9,8)들인 참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사제와 레위인들의 지도를 받아 모세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유다인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가치관에 동화돼 “그들이 누리는 평화와 안녕을 좇아서는”(에즈 9,12) 안 되고, 오로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율법을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느헤미야기의 이 가르침은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1-2)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9.06

고독한 선지자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41) 선지자는 외로운 존재다. 남들보다 앞선 안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남들과 공유하기는 힘들다.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선지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고독하다. 오늘 루카가 전한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는데,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즉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주님의 다가올 수난을 짐작하지 못하고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초막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예수님 입장에선 안타깝고 서운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적혀 있다. 예수님의 여러 모습 중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위치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면모다. 큰 사명과 다가올 수난을 알면서 계속해서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종종 잊곤 한다. 그 많은 군중과 제자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예수님이 걸어갈 길을 알고 있는 이가 없는 가운데, 혼자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나아가는 그 괴로움을 우리가 어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음악의 선지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고통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백안시당했다.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는 시대를 앞선 선구자였지만, 그의 작품에 보인 청중의 분노는 음악사 중 가장 파격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다. 당시 파리는 전 세계의 문화 수도였다. 수많은 화가·소설가·음악가·안무가가 파리로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한 시대를 상징할 만큼 독특하고 창의적이었으며 매력적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배웠고 파리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 줄 수 있는 동료들과 교류했다. 특히 패션계의 초일류 브랜드를 만든 코코 샤넬과 안무가 디아길레프는 그를 인정하고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스트라빈스키가 바라보는 음악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미래지향적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불세출의 무용수 니진스키가 안무를,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을 담당한 ‘봄의 제전’은 폭탄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 파격적이고 선동적인 음악은 이전의 조성체계를 부정하고 있으며 원시적인 리듬은 당시의 세련된 음악 문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듯했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던 생상스는 이 작품의 첫머리를 듣자마자 “파곳은 저렇게 사용하는 악기가 아니야”라고 외친 후 퇴장하였고 청중은 혼란에 빠져버렸다. 지금 수없이 연주되고 청중의 호응을 얻는 작품의 시작이 이렇게 부정적이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과 미래를 알고 있던 작곡가의 선지자적인 시각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알게 된다. 현재는 발레와 콘서트용 음악이 둘 다 자주 연주되고 있다. 사이몬 래틀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가 연주한 ‘봄의 제전’ //youtu.be/EkwqPJZe8ms?si=qtTLpZYqI43MIMQ- 류재준 작곡가윤하정2025.03.12

17세기 상본이 낳은 기적의 도시 독일 케벨라어 성모 성지[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2. 독일 케벨라어 성모 성지 케벨라어의 은총 소성당(앞)과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뒤). 브라반트의 셰르펜회벨 은총 소성당을 본떠 1654년에 육각형 돔 형식으로 세운 소성당으로, 지나가는 순례자가 바깥에서 위로의 성모님을 뵐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바실리카는 첨탑이 90m인 네오고딕 양식의 순례자 성당으로 19세기에 건설됐다. 1923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우리 주변에서 상본(像本)을 자주 봅니다. 기도와 묵상을 돕는 이미지로, 사제서품식 때 출사표처럼 기념 성구를 넣어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고, 축일 때 책과 함께 카드처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본 문화는 14~15세기 유럽 라인강 지역에서 주로 시작됐습니다. 글을 모르던 이가 대다수였던 당시 성화나 상본은 한 장짜리 ‘가난한 이들의 성서(biblia pauperum)’였습니다. 신앙 교육 자재이자 하느님을 체험하는 수단이었죠. 특히 먼 길을 떠나온 순례자가 성지에서 구한 성화 한 장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습니다. 성지를 자기 집으로 옮겨오는 특별한 일이었지요. 그 일은 때로 엄청난 기적을 낳았습니다. 바로 오늘 가볼 순례지인 케벨라어에서 말입니다. 케벨라어는 독일 북서부 라인강 하류 쪽 네덜란드 국경과 가까운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작은 성모님 상본 하나로 거대한 순례의 파도가 일어나, 매년 80만 명이 찾는 ‘성모님의 도시’가 됐지요. 은총 소성당에 모셔진 1640년도 룩셈부르크 성지에서 가져온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 원본 상본(왼쪽)과 1649년도 케벨라어 성지의 상본(오른쪽). 성모자상은 거의 비슷하나 배경이 된 도시와 소성당, 아래 문구가 다르다.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의 주 제대. 1992년 새롭게 봉헌된 제대로 성녀 우르술라와 성 토마스의 성유물이 옮겨 안치되어 있다. 주변으로 슈툼멜(1859~1919) 공방이 제작한 벽화들이 보인다. 룩셈부르크의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 상본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1년 성탄 무렵, 상인인 헨드리크 부스만은 케벨라어 들판에 세워진 십자가 앞에 기도하던 중 ‘여기에 나를 위한 작은 경당을 세워라’라는 신비로운 목소리를 듣습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죠. 일주일 뒤 다시 그 앞에 이르렀을 때 같은 목소리를 듣습니다. 며칠 후에도 똑같은 일을 겪자 언젠가 소성당을 짓겠다고 맹세합니다. 몇 달 뒤, 부스만의 아내는 한밤중에 집 안에서 빛 속에 나타난 성모님과 소성당 환시를 봅니다. 그 모습은 얼마 전 길에서 만난 두 명의 병사가 보여준 작은 상본(약 7.5×11㎝) 속 성모님과 같았습니다. 병사들은 상관에게 전해줄 상본을 들고 있었는데, 그중 한 장을 팔려고 그녀에게 보여준 것이죠. 부스만은 처음에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자기 집이 환히 빛났다는 소문을 주위에서 듣고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겪은 일과 이어져 있음을 느끼고, 결국 그 상관에게 상본을 사들입니다. 그 상본은 바로 전에 소개한 룩셈부르크의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간 김에 순례’ 27회) 상본이었습니다. 케벨라어 본당 신부는 1642년 6월 1일 성령 강림 대축일 전 주일에 아내가 환시에서 본 모습대로 부스만이 세운 경당에 이 상본을 모십니다. 그날부터 인근 마을에서 많은 이가 모여들었고, 기적이 일어나면서 순례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불안한 시기였지만, 순례자의 수는 해마다 늘어났습니다. 교구는 순례자를 위해 촛불 소성당을 세웁니다. 각 지역의 순례자가 거대한 초를 가져와 봉헌하는 전통이 있는데, 장소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30년 전쟁이 절정에 치닫던 1643~1645년에 성당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당시의 신앙과 희생이 어떠한지 잘 보여주지요. 1647년 교구 시노드는 부스만의 진술을 확인하고 조사 후 케벨라어를 공식 순례지로 인준합니다. 이례적인 신속한 결정은 신자들의 자발적 성모 신심과 순례자의 폭발적 증가 덕분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케벨라어 상본이 독일·네덜란드·벨기에 등지로 퍼져나갑니다.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본랑. 길이 약 70m, 폭 28m의 삼랑식 구조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금별이 새겨진 천장과 제단 주변의 서사 패널이 인상적이다. 가대와 후진부터 측랑까지 구원사의 사건들로 벽화가 꾸며져 있다. 촛불 소성당. 순례자를 위해 처음 만든 소성당이다. 매년 주변의 순례자 행렬이 성당에 큰 초들을 봉헌해 왔는데, 촛불 아래 새겨진 문장은 이러한 행렬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리스 공동체는 1643년에 케벨라어를 처음 조직적으로 순례해 초를 봉헌했다. 도심 속 위로와 희망의 장소 케벨라어 역에 가까워지면 회색 지붕들 위로 불쑥 솟은 첨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90m 높이의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입니다. 역과 가까운 도심 한복판에 은총 소성당과 촛불 소성당이 있고, 그 맞은편으로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와 고해성사 소성당·성체성사 소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654년 부스만의 경당 자리에 은총 소성당을 세우고 그곳에 상본을 모십니다. 은총 소성당은 바깥으로 반원형 시선창이 나 있어, 밖에서도 순례자가 위로자이신 성모님을 보며 기도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남쪽으로 난 세 개의 문으로 성당에 다시 들어와 제대 뒤 상본을 가까이서 볼 수 있지요. 한동안 상본은 부스만이 만든 나무판 위에 그대로 붙어있었으나, 1664년에 금세공 공방에서 봉헌한 은제 액자에 모십니다. 지금 액자는 1681년 외팅겐 공작이 봉헌한 것입니다. 케벨라어 은총 소성당 제대(위)와 바깥 시선창에서 본 은총의 상본(아래). 먼저 소성당 바깥에서 위로의 성모님을 뵙고, 내부에서 기도한 뒤, 제대 뒤쪽 통로로 성화를 좀 더 가까이 대면할 수 있다. 소성당은 천정 육각 볼트와 벽면을 활용해 구원사에서 성모님의 신학적 위치를 집약적으로 그린 벽화와 스투쿠로 장식되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성모 바실리카는 1858년 착공해 1884년 완공됐습니다. 이 성당은 길이 약 70m, 폭 28m의 삼랑식 구조로 서쪽 첨탑은 90m에 달해 성지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장대한 벽화들이 제대 주변으로 펼쳐집니다. 프리드리히 슈툼멜과 그의 제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 교회 구원사, 성경·전례 장면을 유기적으로 배치해 순례자들이 눈으로 구원의 서사와 그 안에서 성모님의 역할을 묵상하도록 했지요. 그 정점은 주 제대입니다. 제대 위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삼위를 주제로 한 조각과 화려한 장식이 놓여있고, 순례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쪽 ‘천상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바실리카 전체가 성체성사와 성모 신심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것이죠. 17세기 독일 라인강 지역은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이 상본이 널리 퍼졌습니다. 케벨라어에서는 한 장의 상본이 은총의 상징이자 이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고, 우리에게 순례의 길을 열어주었죠. 이 전통은 21세기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9월 7일 우리 교회는 카를로 아쿠티스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성인은 온라인으로 복음을 전한 ‘하느님의 인플루언서’였고, 그가 만든 웹사이트는 전 세계 순례자들의 가상 성체조배 공간이 되었습니다. 17세기 판화로 찍은 상본으로 성모 신심을 전했던 것처럼 21세기 성 카를로는 직접 코딩한 웹사이트라는 ‘디지털 상본’을 통해 성체의 기적을 사람들에게 전했던 것 같습니다. 매개는 다르지만, 목적은 같음을 케벨라어에서 느낍니다. <순례 팁> ※ 쾰른·뒤셀도르프·크레펠트에서 기차로 이동하면 좋다. 역에서 은총 소성당까지 도보 10분. ※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미사: 주일과 대축일 8:15·10:00·11:45·18:45, 평일 10:00,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크게 지낸다.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09.10

성경 각 권의 이름이 다른 천주교와 개신교[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8) 성경 권 이름의 차이 천주교와 개신교 성경 각 권의 이름과 인정하고 있는 권수가 각기 다르다. 사진은 한 신자가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 OSV 천주교와 개신교 성경의 각 권의 이름은 어떻게 다른가요? 천주교 신자가 개신교 성경을 대하면 성경 각 권의 이름부터 번역 내용의 생소함에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여 출간한 「셩경젼셔」(1910년) 이후, 개역 작업을 거쳐 「성경전서 개역」(1938년)을 시작으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1961년), 「표준 새 번역」(1993년)과 「새 번역」(2004년)을 거치면서 각 책의 제목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반면에 천주교는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개신교와 함께 1977년에 출간한 「공동 번역 성서」를 오랫동안 공용 성경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여 독자적으로 출간한 「성경」을 천주교 공용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구약 성경 39권의 책 이름을 모세 오경(5권), 역사서(12권), 시가서(5권), 예언서(17권)로 분류합니다. 천주교는 구약 성경의 제2경전을 포함하여 총 46권을 경전으로 인정하며, 모세 오경(5권), 역사서(16권), 시서와 지혜서(7권), 예언서(18권)로 분류합니다. 신약 성경 27권을 개신교에서는 복음서(4권), 역사서(1권), 서신서(21권), 묵시서(또는 계시록, 1권)로 분류하는데, 천주교에서는 27권의 권수와 구분은 개신교와 같지만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으로 구분합니다. 개신교의 성경 이름 줄여 쓰기(축약) 원칙에 따르면, 되도록 한 글자로 하되 그 한 글자는 책 이름의 첫 음절로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마태 복음)는 ‘막’(마가 복음)과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한 글자 축약의 혼란을 막고자 다른 음절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여호수아), ‘스’(에스라), ‘사’(이사야) 등이 그렇습니다. 물론 두 권 이상의 책의 경우 구약은 ‘상하’(대상, 대후 등)로, 신약은 ‘전후’(고전, 고후 등) 등으로 표기합니다. 반면에 천주교에서는 통상 두 글자로 성경의 책 이름을 줄여 표기하지만(예: 창세, 탈출, 마태, 마르 등), 구약의 상하권의 책(예: 사무엘기 상권, 역대기 하권 등)과 신약의 서간들(예: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요한의 셋째 서간 등)에는 책 이름 앞에 ‘1, 2, 3’을 붙입니다(예: 1사무, 2역대, 1코린, 3요한 등).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경 각 권의 책 이름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7.26

“먼저 간 딸의 꿈, 우리 부부가 대신 이뤘어요”이태원 참사로 외동딸 상은씨 떠나 보내고 가톨릭 세례받은 이성환·강선이씨 부부 이태원 참사로 외동딸을 잃은 이성환·강선이씨 부부가 딸 고 이상은씨의 방에 서있다. ‘가톨릭 세례받고 명동대성당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상은씨의 꿈이었다. 예비신자 교리를 채 못 마치고 25살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금지옥엽 외동딸의 소망을, 3년 만에 부모가 대신 이뤘다. 이성환(요한 마르코, 59)·강선이(로즈마리, 55)씨 부부는 지난 9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부부는 하늘에서 딸이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여겼다. 그리고 딸이 원했던 성당 혼인성사를 대신해 부부는 혼인갱신식을 했다. 마침 올해 결혼 30주년을 맞은 이씨 부부를 19일 서울 자택에서 만났다. 집안은 세례 축하 선물로 받은 여러 성물로 가득했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 상은씨가 쓰던 방이다. 당장이라도 주인이 돌아올 것처럼 모든 것이 깨끗하게 잘 정돈된 모습이다. 창틈으로 비치는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은 상은씨의 사진과 그림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생전 딸은 ‘웃음이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형제가 없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유독 좋아한 데다 성격이 밝고 활발해 인기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에 함께했던 휴대폰도 켜진 채 충전기에 꽂혀 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고인을 그리워하는 친구와 지인들의 연락이 온다. 이처럼 상은씨의 자취가 아직도 생생한 이곳에서 어머니 강선이씨는 밤마다 초를 피우고 딸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저는 사실 상은이의 버킷리스트(소망 목록)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몰랐어요. 나중에 메모를 발견하고 남편과 함께 꿈을 대신 이뤄주기로 했죠. 제일 먼저 예비신자 교리 수업이 떠올랐어요. 그걸 가장 좋아할 것 같아서요.” 1년 전 강씨가 먼저 교리교육을 시작했고, 뒤이어 남편도 동참했다. 딸을 위한 마음으로 개근한 부부는 마침내 한날한시에 주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부모와 함께 상은씨도 ‘실비아’라는 이름으로 화세(火洗)를 받았다. 생전 고인이 바라던 세례명 중 하나였다. “17일 세례받고 처음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선산에 있는 딸의 무덤을 찾았어요. 그리고 전보다 한층 더 편한 마음으로 작은 성물을 갖다 놓으며 이렇게 말했죠. ‘상은아, 엄마 아빠 드디어 세례받았다’고요.” 이씨 부부는 그동안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애타게 촉구하면서 가톨릭에 입교하기까지 많은 눈물을 흘렸다. 교리를 받을 때에도, 명동대성당에서 혼인갱신을 할 때에도 두 사람은 상은씨를 생각했다. 아버지 이성환씨는 “상은이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자리에 상은이가 있어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눈물이 많이 났다”고 전했다. 강씨는 “신약 성경 마르코 복음을 필사하면서 예수님을 눈앞에서 잃은 성모님의 심정에 이입됐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며칠에 걸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모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제가 제일 아픈 줄 알고 살았는데, 성모님께선 얼마나 더 고통스러우셨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두 사람에게 신앙은 딸 상은씨가 남기고 간 ‘소명’이자 그에게로 가는 ‘길’이다. 부부는 “하느님의 뜻이 사랑이며 자비인 만큼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상은이가 미국 미주리에 있는 시골 동네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미국 공인회계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고 그곳에 살고 싶다더라고요. 상은이 뜻에 따라 다음엔 그곳에 가볼까 봐요.” 이학주 기자이학주2025.03.26

‘복지는 크게 임금 차이는 적게’ 경영 철학 실천[모두를 위한 경제를 부탁해] (5) KCTi 한국사이버테크 KCTi 한국사이버테크를 30년째 운영해온 이준녕 대표는 청년 창업가와 중소기업 대표들에게 “기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했느냐보다, 내가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기뻐해야 하는데, 기쁘려면 욕심을 줄이고 사랑이 먼저 앞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30대 시절 과로로 쓰러졌을 때 ‘내가 다니고 싶은 회사 만들자’ 다짐 전국 2500개 공공기관·기업에 기술 공급 사업 초기 EoC 무지개 경영 방침 큰 도움 경제·노동·사랑의 문화 조화롭게 경영 통 큰 신혼여행비·출산축하금 직원 아끼는 마음 복지 제도서 드러나 “30년 넘게 IT회사 이어온 비결 포콜라레 정신 실천했기 때문 기업가는 아버지 마음으로 운영해야”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외국계 컴퓨터 회사 한국 지사에서 일하던 30대 청년이 쓰러졌다. 열심히 일한 만큼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10년 차 직원이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밤낮없이 일했지만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전 8시 20분, 출근하고 프린트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고, 유명한 한의사는 ‘기진맥진’이라고 진단했다. “힘이 쭉 빠지고, 운전도 못 하고, 지하철도 못 타겠더라고요. 공황장애와 비슷했죠. 몸을 소모한 만큼 회복하는 데 3년이 걸리더라고요.” 그는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온몸으로 겪었다. 노동력 위에 돈이 있었고, 그 위에 회사가 있었다. 결국 그는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과 국민연금을 깨 홀로 방배역 근처에 9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었다. 거래처 하나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는 30년간 전국 2500개 이상의 공공기관과 회사 등에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직원은 12명. 평균 재직 기간이 14년으로 신입직원이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많은 직원이 이 회사에서 일하며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며 삶을 꾸리고 있다. 회사가 직원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복지 제도에서 드러난다. 직원들에게 신혼여행비, 출산축하금, 법인 차량, 통신비, 교통비, 점심값을 지원한다. 신혼여행비는 유럽 신혼여행도 가능한 수준이며, 출산축하금은 출산 후 조리원 비용과 산후조리에 충분한 비용이다. ‘이윤 극대화’보다 ‘사랑 극대화’를 택한 KCTi 한국사이버테크 이준녕(안드레아, 67, 서울 방배동본당) 대표를 만났다. “저는 자본주의와 잘 맞지 않는 사람같아요. 사장 체질이 아니고 초등학교 교사가 딱인데⋯. 직원들이 이 회사에 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은 정말 신비롭고 기적 같은 일이죠.” 이 대표의 인상은 자신이 앞서 말한 것처럼 기업인보다는 정년을 앞둔 온화한 초등학교 교사를 연상시킨다. 그는 과로로 쓰러졌을 때 ‘내가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KCTi 한국사이버테크는 IT 분야의 HA(고가용성), DR(재해복구), 백업 및 마이그레이션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 기업이다. 화재·침수·전산실 마비 등 비상 상황에서 공공기관과 기업의 핵심 업무를 복구해 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백업할 수 있도록 전산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것. ‘복지는 크게, 임금 차이는 적게’가 이 대표의 경영철학이다. 이 회사의 연봉 최고액과 최저액 차이는 3배가 채 안 된다. 최근 레오 14세 교황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언급하며, CEO 임금이 노동자 평균의 600배에 달하는 소득 격차를 지적했다. 이 대표는 “IT 회사는 보통 3~5년이면 문을 닫지만, 30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포콜라레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업 초기에 EoC가 추구하는 무지개 경영 방침이 큰 도움이 됐고, 이를 통해 경제와 노동, 사랑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경영을 실현할 수 있었다. KCTi 한국사이버테크 홍보 리플렛. 2024년 협력사를 초청한 세미나에서 이준녕 대표가 인삿말을 하고 있다. KCTi 한국사이버테크 제공 2023년 전자신문이 주최한 디지털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 전략 발표회에서 KCTi 한국사이버테크 이준녕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KCTi 한국사이버테크 제공 사업 초기에 혼자 영업과 관리까지 도맡아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겨우 50만 원인 적도 있었다. “사업 초기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다. 회사가 잘되고 못되는 건 하느님의 계획이다’라고요. 하지만 망함으로써 더 큰 위기를 막아주는 것도 하느님 사랑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 대표는 “사장을 하면 월급쟁이보다 더 불안하고 마음이 좁아지기 쉽다”면서 “사장이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직원과의 관계도 돈으로만 연결된다”고 꼬집었다. “사장이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하는데, 직원은 칼퇴근하면 마음이 상해요. 내 돈을 낭비하는 것 같죠. 저는 회사의 성장보다 직원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은행 대출을 받지 않는다. 직원 한 명 채용도 인건비가 쌓여야 한다. 2011년부터는 재무 시스템을 구축해 경비, 급여, 수입·지출 내역을 직원 모두가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다. “사장이 법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쓰면 직원들도 이걸 원하지 않을까요? 사장이 회사 법인 차량을 운전하면, 직원들도 법인 차량을 원하지 않을까요? 사장이 법인카드를 이용하면 직원들도 법인카드를 이용하면 좋겠지요.” 직원들은 회사에서 개인 비용을 쓸 일이 없도록 시스템적으로 배려받고 있다. 이쯤 되면 기업 대표라기보다 한 가정의 가장 같다. “어떤 전업주부가 제게 ‘사장이 아니고 가장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들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사실 기업가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너무 어렵죠. 아버지는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아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어려운 일엔 먼저 나서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런 마음으로 기업을 운영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교황님은 기업인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이 대표는 EoC운동도 회사에서 가정의 모습을 끌어내 직원들을 가족 구성원으로 바라보게 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포콜라레 운동 창설자 끼아라 루빅도 가정의 문화를 사회에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이 아픈 가족을 돌보듯 회사도 직원들을 돌봐야 한다는 뜻이죠.” 그는 아내(이정순 리오바)와 함께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초창기 멤버로 활동 중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이 대표는 이제 후배들에게 회사를 이양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KCTi 한국사이버테크는 올해 해외 파트너사(오픈텍스트 사이버시큐리티)로부터 영업·마케팅·기술 3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오픈텍스트 사이버시큐리티는 7500개 이상의 기업 고객을 보유한 글로벌 정보 관리 기업이다. 아시아 태평양 20개국 이상이 참석한 행사에서 3개 부문의 상을 받은 회사는 KCTi 한국사이버테크가 처음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직원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없으면 불행하듯, 직원들도 다니는 회사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없다면 떠나겠죠. 직원들이 회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까지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사회와 가정으로 확산되길 바랍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 ‘모두를 위한 경제’를 부탁해 경제를 통해 공동선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기업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한국 EoC위원회와 함께 사람과 생명을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하면서 그 이윤을 사회의 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따뜻한 기업들을 탐방합니다. EoC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가난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1991년 시작된 글로벌 경제사회 운동입니다.이지혜2025.09.24

희망을 찾아 나서자[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92)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5) 희년을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희년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의 현 상황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상처 입고 희망을 잃은 이 시대에 교회가 희망의 불꽃을 피워주기를 바라는 취지로 희년의 주제를 ‘희망의 순례자’로 정하셨다. 그런데 이 암울한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전해줄 수 있는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일까? 희년의 성경 문구처럼(로마 5,5 참조) 우리는 얼마나 그 희망을 부끄럽지 않게 확신을 갖고 전하고 있는가? 최근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책에 관한 기사를 봤다. 저자는 말기암으로 극심한 고통 중에 안락사(조력사)를 선택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병이 나을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남아 있는 시간은 죽기보다 더 힘든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예정된 죽음’을 하루 앞둔 내일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괴로웠기에 오늘이 빨리 내일이면 좋겠다고 말했을까. 필자는 췌장암으로 고통받다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모친을 곁에서 지킨 경험이 있기에, 위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이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기도 했다. 그것은 다만 교회가 안락사를 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이는 말기암 환자만이 아닌 모든 인간이 겪을 문제인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노환이든 질병 때문이든, 인간적인 희망이 모두 땅에 떨어지는 ‘희망의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아무 희망도 없을 때, 과연 죽기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우울감에 빠지고 괴로운 나날을 보낼 것이며, 나를 여전히 살려두시는 하느님을 원망도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희망 없인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순간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하느님을 만날 채비를 하며 관계를 정리하고 생을 정리할 너무나 소중한 시간으로 변화한다. 필자는 호스피스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만약 이러한 희망을 세상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조력사를 선택한 결정을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한강 작가의 말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신앙인들은 우리가 지닌 희망이 무엇인지 찾으라고 한다. 그 희망이 얼마나 복되고 소중하며 위대한지를. 뒤늦게 깨닫지 말고, 그 희망을 찾아 지금부터 생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를 아름답고 찬란하게 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게 변모하신 사건을 기점으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예루살렘으로 가신 이유는 우리보다 먼저 고통과 번민, 절망과 죽음의 길을 몸소 걸으심으로써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에 다다랐을 때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희망이 되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사순 시기는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신 희망을 찾아 걷는 순례길임을 기억하자. 세상은 희망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스스로 꿈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믿는 우리가 나서서 담대하고 확신에 차 희망을 전하고 희망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더 밝아지고 희망차게 변하지 않을까. 한민택 신부cpbc2025.03.25

피하라 살 것이다.[월간 꿈 CUM] 건강한 영성생활 (6) 살다 보면 얼굴도 보기 싫은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 때문에 그런 사람을 참고 만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상대방이 나에게 갑의 위치, 내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면 그리 해야 할지 모릅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심리적인 그릇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 그릇의 한계가 도달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힘이 드는데 꾸역꾸역 참는 것은 덕을 쌓는 것이 아니라, 병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몸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참아야 할 때는 있습니다. 그러나 참지 말고 피해야 할 때도 적지 않습니다. 불편한 상황이나 사람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마음이나 몸의 건강에 좋습니다. 오래전, 사제는 사람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하에 꾸역꾸역 참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싫은 사람과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그런데 몸이 자꾸 무너져가더군요. 그릇이 큰 척, 통이 큰 척 하다 보니 마음과 몸이 과부하를 못 견뎌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심리학을 공부한 이후로 그런 미련한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성격 까칠한 신부, 심지어 성질 더러운 신부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그래도 속은 편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대상은 나를 밀쳐냅니다. ‘나’는 그 밀고 당기는 힘에 따라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심리학자 레빈(Kurt Lewin, 1890~1947)은 인간 심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관계는 자기장 속에서 자석들이 서로에게 힘을 미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상담은 자성을 지닌 쇠구슬과 같다. 사람의 주변에는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자석들이 널려있다. 즉,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N극과 S극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싫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일과, 하고 싶지만 당장 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것이 갈등의 근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때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찌할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때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입니다. 글 _ 홍성남 신부 (마태오, 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cpbc2025.01.13

유배자들이 귀향해 첫째로 한 일은 성전 재건[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9)에즈라기 에즈라기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유다인들의 유배로 중단됐던 경신례를 회복해 예전처럼 펼쳐지는 하느님 백성의 구원 역사를 선포한다.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배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터에 제단을 쌓고 경신례를 드리고 있다. 스톤로그 캡처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본디 히브리어 정경에서 ‘에즈라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한 책이었습니다. 또 히브리어 정경은 ‘에즈라 느헤미야’를 ‘성문서’로 분류돼 역대기 앞에 배열했습니다. 에즈라는 ‘돕다’, ‘협조하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동사 ‘아자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우리말로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에즈라는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이 책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합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Εσδρα ΑㆍB’(에스드라스 알파ㆍ베타)로 나눴습니다. ‘Εσδρα Α’는 기원전 2세기 역대기 하권에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헬라어로 엮은 에즈라기입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Εσδρα Α’를 ‘제3 에즈라기’라 해 구약 성경 외경으로 분류합니다. ‘Εσδρα B’는 히브리어 성경의 ‘에즈라 느헤미야’를 헬라어로 옮긴 책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Esdras’(에스드라스)와 ‘Nehemias’(네헤미아스)로 나눕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가톨릭 「성경」은 불가타 성경의 분류에 따라 ‘에즈라기’, ‘느헤미야기’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기계 역사서로 분류해 역대기 다음으로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에즈라기는 유다인들이 기원전 538년에 바빌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뒤 한 세기가 넘는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바빌론 포로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이 고국으로 귀향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일으키는 에즈라 사제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즈라기의 저자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표기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역대기 상ㆍ하권과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역사를 한 저자가 편집, 구성했다고 봅니다. 역대기 하권의 마지막 두 절(2역대 36,22-23)과 에즈라기의 첫 장 세 절이(에즈 1,1-3)이 같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에즈라기는 기원전 4세기 말엽에서 기원전 3세기 중엽 사이에 완성됐다고 봅니다. 대략 기원전 330~기원전 250년 사이라고 추정합니다.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귀향한 후 쓰인 것이죠. 에즈라기는 아람어로 작성된 일부 내용(에즈 4,8─6,18; 7,12-26) 외에 모두 히브리어로 기록돼 있습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팔레스티나에는 아람어와 히브리어가 공용됐기 때문입니다. 아람어는 페르시아의 공식 언어였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유다인들도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에즈라기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귀환과 성전 재건’(에즈 1─6장), ‘공동체 재정비’(에즈 7─10장)입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은 칙령을 반포해 유다인들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당시 유다는 왕국이 아니라 조그마한 지방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배자들은 점령지 관리들과 유다교 반대자들의 갖은 횡포를 이겨내고 제일 먼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 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바빌론 포로생활 동안 중단됐던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율법대로 경건하게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 사업을 착수합니다. 그렇게 공사를 한 지 20여 년이 지난 뒤 페르시아 다리우스 임금 통치 아래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에 마침내 성전 재건을 마무리 짓습니다.(에즈 1─6장) 바빌론 유배자들의 첫 귀향이 있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으로부터 공적 임무를 받은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에즈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유다인과 이민족 사이의 혼인으로 유다교 전통과 율법에 어긋나는 여러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슬퍼합니다. 그래서 에즈라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개혁을 단행합니다. 에즈라는 유다인과 결혼한 이민족 여자와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유다 지방 경계 밖으로 내쫓습니다. 그리고 에즈라는 바빌론에서 가져온 모세의 율법서에 따라 축일과 경신례를 복원합니다.(에즈 7─10장) 에즈라기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성전, 예루살렘,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에즈라기는 포로생활에서 귀향한 유배자들의 새로운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닙니다. 에즈라기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유다인들의 유배로 중단됐던 경신례를 회복해 예전처럼 펼쳐지는 하느님 백성의 구원 역사를 선포합니다. 그래서 에즈라기는 예루살렘 성전 복구가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배자들의 첫 번째 사명이자 과제였다고 합니다. 또 키루스 임금이 칙령에서 명령한 이 성전의 재건축이 바로 귀향의 목적이었다고 합니다.(에즈 2장) 에즈라기는 성전이 완공돼 봉헌된 것은 인간의 작품이 아닌 하느님의 작품이라며 기뻐합니다.(에즈 6,22) 그리고 유다교 율법 준수가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근본 바탕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에즈라가 강조한 율법 준수는 오늘날의 ‘근본주의’와는 다릅니다. 에즈라와 당시 귀향한 유다인들이 실천한 율법은 항상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하느님, 참된 경신례와 자발적 기도로써 찾을 수 있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즈라와 하느님의 백성들은 고정된 율법에만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에즈 3,11; 6,21-22; 7,27-28)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30

“하느님이 모든 걸 만드셨다면 하느님은 누가 만들었나요”휴가·방학에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만한 책 본격적인 휴가철이자 방학 기간이다. 아이와 부모가,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읽으며 각자의 눈높이에서 받아들이고 느낀 바를 실천할 수 있는 도서를 모아봤다.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질문에 전문가들이 답하다 하느님과 과학에 대한 101가지 질문 / 리지 헨더슨·스테프 브라이언트 / 김도현 신부 옮김 / 바오로딸 “하느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면 하느님은 누가 만들었나요? 하느님은 왜 지구 외에 다른 행성도 만드신 걸까요?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로봇이 사람처럼 사랑에 빠지거나 신앙을 가질 수 있나요? 과학이 더 발전하면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될까요? 동물에게도 종교가 있나요? 하느님은 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걸 막지 않으시나요? 과학자들도 하느님을 믿나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질문에 절로 미소를 짓는 동시에 그 심오함에 놀라고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어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느님과 과학에 대한 101가지 질문」은 이렇게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들의 물음에 과학·철학·신학·심리학 등 각 분야 전문가 70명이 재치 있게 답한 책이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왜 외계인이 나오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생화학자면서 성공회 사제인 앤드류 데이비슨 교수는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일단 성경의 주제가 외계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포문을 연다. 이어 “하느님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계시하셨지만, 우주의 과학적 사실을 모두 알려주지는 않으신 것 같아. 사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건 외계인 말고도 많단다. 펭귄, 익룡, 행성, 플랑크톤 등도 성경에는 나오지 않아. 대신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신 나는 영역을 탐험하도록 우리에게 과학을 주셨다고 생각해”라고 답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패러데이 과학과종교연구소 어린이 및 학교 프로그램 공동 책임자인 리지 헨더슨과 스테프 브라이언트가 공동 집필했고, 국내 유일의 물리학자 사제인 대구대교구 김도현(대구가톨릭대 교수 겸 동촌본당 보좌) 신부가 번역했다. 김 신부는 “이 책은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이작 뉴턴 이래로 자연 과학적 방법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영국에서 출판됐다”며 “단순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심오한 질문이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훌륭한 만큼 무신론적 과학 만능주의에 사실상 속수무책인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끊을 수 없는 달콤한 유혹 단맛 음식의 원리 / 노봉수(야고보) / 헬스레터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부상자가 병동으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처방하는 것이 설탕 한 스푼이었다. 아프고 힘이 든 상태에서 한 스푼의 설탕을 먹고 나면 원기를 회복하는 느낌을 가지면서 아픈 통증도 잠시 잊을 수가 있었기에 약품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였던 것이다.”(25쪽)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도 직접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어 보는 수업시간이 있다. (중략) 아이들은 ‘버터와 설탕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냐!’며 스스로 파운드케이크 먹는 일을 줄이게 되었다고 한다.”(145쪽)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과자일 것이다. 그런데 과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끊기 힘들다. 심지어 과자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단맛’을 탐닉하지 않던가. 식품공학자 노봉수(야고보) 박사가 태아 때부터 익숙하며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동시에 해를 끼치기도 하는 ‘단맛’에 대해 한 권의 책에 총망라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 단맛의 필요성과 함께 인간이 여러 채널을 통해 맛을 인식하는 과정, 단맛 물질의 종류와 구조적 특성 등을 설명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음료·약품·꿀·된장·고구마 등이 지닌 단맛의 원리를 살펴보고, 100여 년간 잘못 알려진 정보도 지적한다. 또 중독성 있는 맛을 추구하면서도 단맛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식품 업계의 상황, 과한 단맛 섭취로 나타날 수 있는 질병 등을 소개하며 왜 균형 있는 미각이 중요한지 강조한다. 조동익 노랫말에 추억 돋는… 엄마와 성당에 / 조동익 지음·소복이 그림 / 나무의말 ‘엄마와 성당에’는 가수 장필순·김광석·안치환·김현철 등의 음반에 프로듀싱 및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뮤지션 조동익씨가 1994년에 발표한 곡이다. 조동익의 노래를 듣고 자란 소복이 작가가 이 노랫말에 글과 그림을 더했다. 엄마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어린이와 어느덧 장성한 아들, 그 곁에 역시 달라진 모습의 엄마가 그려져 있다. 담백하고 귀여운 그림에 아이는 신 나게 책장을 넘기고, 어른은 콧날이 시큰할 수도 있겠다. 희망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절대 희망 / 고희석 / 청동거울 책 제목인 ‘절대 희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삶의 동기가 되어주는 희망을 뜻한다. 30년간 사회복지기관에서 물리치료사이자 사회복지사로 일해 온 저자가 공동체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 절대 절망의 시련 앞에서 희망할 수 없는 것조차 희망으로 승화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책에서 장애를 저마다 지닌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모두 똑같다. 그러나 이 같은 삶의 방식도 있음을 알리고 깊은 유대를 통해 함께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자고 외친다. 또한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절대 희망’의 불씨 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가자고 전한다. 지구야,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신문 읽는 지구 / 고영미 동시·박나리 그림 / 도토리숲 노랑 초록 주황 빨강 우리 반 교실 창 곁에 나란히 놓여 있는 깡통. 모두 꽃 한 포기씩 안고 예쁜 화분으로 태어났다. 아동문학가 고영미 작가가 「신문 읽는 지구」라는 동시집을 펴냈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땅과 공기·물·동식물 등 모든 것을 대가 없이 빌려준 지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은 편지다. 작가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지구가 보낸 신호에 귀 기울이고 이제라도 더불어 살자고 말한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생태계 교란에 의해 사라지는 것, 지켜야 할 것 등 광범위한 주제를 몇 마디 단어로 조곤조곤 속삭인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