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나의 증인이 네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간을 잇는 사도행전은 교회 기원과 확장, 교회 본연의 사명과 생활상을 알려주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신약성경이다. 사도행전 해설서 「나의 증인이」는 사도행전 본문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에 따른 여러가지 묵상과 교회 가르침을 아우르고 있다. △사도행전을 시작하며 △제1부 성령께서 오시어 교회를 낳다(사도 1,1-6,7) △제2부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교회가 성장하다(6,8-9,31) △제3부 시리아와 유다의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다(9,32-12,24) △제4부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다(12,25-16,5) △제5부 그리스와 소아시아에서 말씀이 성장하다(16,6-19,20) △제6부 로마에서 말씀을 선포하다(19,21-28,31)로 구성돼 있다. 책은 "만약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이 빠졌다면, 교회의 태동과 성장과정,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와 봉사자들 모습, 교회가 겪은 박해와 갈등 양상을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사도행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서와함께 편집부는 "이 책을 만나는 모든 분이 우리 교회의 신원을 깨닫고, 성령에 힘입어 '담대히 하느님 나라를 선포'(사도 28,31)하는 증인으로 신앙의 지평을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성서와 함께 편집부 지음/성서와 함께/1만 6000원)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3.06
![[출판]박영식(야고보) 신부,「오늘 읽는 요한묵시록」펴내](//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8218_1.0_titleImage_1.jpg)
[출판]박영식(야고보) 신부,「오늘 읽는 요한묵시록」펴내묵시록에 대한 올바른 이해 돕는 해설서... 오늘 우리 현실에서 말씀이 어떻게 되살아나는지 깨닫게해 '묵시록'이란 말을 들으면, 종말과 심판이 먼저 떠오른다. 환시나 상징에 대한 갖가지 해석은 때로 우리를 두려움에 몰아넣기도 한다. 게다가 묵시록엔 세상 종말이 닥치기 직전에 일어나는 자연과 천체이변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뉴스를 통해 지구촌 기상이변이나 천재지변 소식을 들으면, 묵시록에 나오는 종말 현상이 떠올라 한동안 공포를 갖게 한다. 그러나 요한묵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와 인류 역사 안에 살아있으며, 당신 피로 우리를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고 하느님이 있는 천상 예루살렘으로 데려갈 계획을 파트모스 섬에 유배돼 있는 요한에게 밝힌 것을 기록하고 있다.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 튀니지를 방문,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로마시대 원형극장을 돌아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박영식 신부. 박영식(야고보, 대구대교구 효목본당 주임) 신부가 쓴 「오늘 읽는 요한묵시록」은 우리 현실에서 묵시록 말씀이 어떻게 되살아나는지 꿰뚫는 해설서다. 성서학자로서의 올곧은 연구활동과 필력이 느껴진다. 1976년 사제품을 받고 2년 뒤 로마로 유학을 떠난 박 신부는 1982년 2월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받고, 유학 중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수학하면서 고고학 발굴 참여와 함께 성경을 연구했으며, 귀국한 뒤에도 성경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입문ㆍ새 본문 번역ㆍ해설'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묵시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으며, 구세사를 관통하며 지나가는 말씀의 힘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일깨우고 하느님 구원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느끼게 한다. 해설서는 묵시문학이 태동하게 된 배경과 함께 묵시록 저자 요한이 어떤 문학 유형으로 언제 어디서 묵시록을 썼는지 살펴보고 요한이 천사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은 환시와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한다. 전체를 6장으로 나눠 입문과 머리말,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천상 하느님의 어좌ㆍ봉인된 일곱 두루마리와 어린양ㆍ여섯 나팔ㆍ삽입된 두 환시ㆍ일곱째 나팔, 용ㆍ짐승들ㆍ어린양ㆍ일곱 재앙과 일곱 대접ㆍ심판과 대탕녀 바빌론ㆍ그리스도의 승리와 역사의 끝, 결론을 살핀다. 특히 묵시록의 원문이 갖는 의미를 살려 새로 번역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을 담았다. 상징이 많은 묵시록인 만큼 지은이는 성경학계에서 쟁점이 되는 해설을 가급적 피하고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설명을 토대로 삼았다. 또한 일정한 본문 해설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간추리거나 요약해 오늘 우리 현실에서 묵시록의 말씀이 어떻게 되살아나는지 깨닫도록 했다. 아울러 하느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뤄질 구원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3.13
![[새해 대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에게 듣는다 2](//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831_1.0_titleImage_1.jpg)
[새해 대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에게 듣는다 2"새로운 복음화에 교구민 모두가 마음 모으길" ▶최근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면서 대외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는 등 남북한 상황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걱정이 많이 되실텐데요, 특히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가운데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남북 분단과 대치 상황은 수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는 말씀처럼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우리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참된 화해와 일치를 향해 나가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지난해 한국교회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 행형지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돼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서소문성지 정비 및 복원 사업이 활기를 띠게 될 전망입니다. 교구는 서소문순교성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성역화하는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서소문순교성지의 교회사적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최대 순교성지가 바로 서소문성지입니다. 서소문은 조선시대 남소문(지금의 광희문)과 함께 서울 도성의 유해를 성 밖으로 운반하는 곳이었습니다. 서소문 밖 사거리는 신유(1801년)ㆍ기해(1839년)ㆍ병인(1866년) 박해를 거치며 가장 많은 천주교우들이 처형된 순교지입니다.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 하느님의 종 125위 가운데 20위 이상이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처형됐으니 국내 최대이자 세계적 성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을 비롯해 정약종, 최창현, 강완숙, 황사영 등 초기교회 대표적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 바로 이곳 서소문입니다. 1984년 103위 순교성인 시성을 기념해 서소문 근린공원에 순교자현양탑을 세웠지만, 역사문화적 가치에 비해 정비가 가장 안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서소문 행형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 전문가들 연구 결과 서소문 행형지가 현재 순교자현양탑이 세워져 있는 서소문공원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까지 천주교 박해가 이뤄졌던 역사의 현장이 완벽히 복원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대주교님께서는 2005년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설립 당시 초대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생명수호 운동을 펼쳐오셨습니다. 올해는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제정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자보건법의 역사는 사실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부는 산아제한정책이 담긴 가족계획을 최초로 발표했지요. 이것을 바탕으로 1973년 모자보건법을 제정했습니다. 산모의 건강을 빌미로 낙태를 허용했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생명을 경시하는 환경과 죽음의 문화로 가는 문을 열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낙태뿐 아니라 저출산율,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교회 문헌 「생명의 선물」에서는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그 스스로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조기 낙태약인 응급피임약을 일반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 교회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는데요,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어 교회 가르침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선택하는 데 혼란을 겪는 신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죽음의 문화가 예전처럼 명백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정당한 권리인 양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 배아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실험, 안락사를 조장하는 존엄사법 제정 움직임 등은 우리 교회가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새로운 가치관과 생명의 문화를 우리 안에서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변호할 수 없는 배아, 태아, 말기환자들을 지키고 돌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 한해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실 것인지요. "하느님 모상으로 빚어진 우리는 참으로 값지고 빛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값진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고 있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누구든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당의 사목적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생명교육을 실시할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가정에서 잘 준비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출산조절 프로그램을 확대 보급할 계획입니다. 건강한 가정과 출산이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교회 가르침을 널리 알리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1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새 대통령 앞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새 대통령에게 꼭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우선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나라 일을 잘 하며 사랑받는 지도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국민을 위하고 희망을 주는 대통령,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소통하며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자 나섰던 그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진 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돕는 데 적극적이었으면 합니다." ▶올해 사목교서는 서울대교구를 이끌고 나가실 교구장님 사목방침의 초석이 아닐까 합니다. 교구민들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2013년은 신앙의 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새로운 복음화에 교구민 모두가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귀 기울여야 합니다. 또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호흡이며 신앙생활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도 서서히 시들어가고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사랑 실천 역시 중요합니다.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 사랑의 하느님을 체험했다면, 당연히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줘야 할 것입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교구 모든 신자들이 신앙 기초를 튼튼히 함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의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돌이 되는 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으로 우뚝 서서 사회적 책임이 점점 커질 시기입니다. 교회언론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988년 5월 15일 평화신문 창간호 발행으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시작됐습니다. 튼실한 청년으로 자라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에 축하를 드립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회사 이념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잇는 소통자 예수 그리스도를 체현해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사명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인간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퍼트리는 데 앞장서 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종교인들, 비신자들, 낙담한 이들,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 병들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평화방송 시청취자, 평화신문 독자들에게도 한 말씀 전해주십시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우리 교회가 하느님 말씀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전하려고 만든 매체입니다. 신앙의 해 동안 하느님 말씀을 늘 가까이 두고 생활하고 싶으시다면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챙겨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사를 통해 나에게 맞는 기도방법과 신앙생활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미사 때 들었던 복음말씀이 새롭게 들리기도 할 것입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우리 교우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신앙생활의 벗으로 가까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심해지는 빈부격차로 많은 이웃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과 신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 구조의 변화로 소외된 이웃의 모습도 더 다양해졌습니다. 물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시급한 이웃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내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남기셨던 마지막 말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우리도 자주 말하고 실천한다면 이웃 사랑의 계명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해 덕담 부탁드립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셨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6,16-18). 우리가 한 해 동안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지침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선물로 받은 이 시간을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감사하게 살 때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은총을 덤으로 내려주실 것입니다. 기쁘고 희망찬 새해,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기원합니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2012.12.25
![[아! 어쩌나?] 185. 반석 위의 집](//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86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85. 반석 위의 집 Q. 성경묵상을 하다 보니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그런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알 것 같은데, 그렇게 되려면 어떤 수련을 해야 하나요? A. 형제님은 루카복음 6장을 이야기하는가 봅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루카 6,47-49). 마음이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많은 영성가는 이구동성으로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홀로 있는 시간, 외로움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리는 아주 고약한 감정이지요. 외로움의 포로가 돼버리면 마음의 평온은 깨지고, 나라는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는 듯 여겨집니다. 그리고 춥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야 합니다. 이 외로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감정들과는 달리 끈질기게 사람을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사람을 찾아 헤맵니다. 친구를 만들고 배우자를 만나 부부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덜고자 합니다. 심지어 돈을 주고서라도 외로움을 덜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식으로 외로움을 덜고자 하는 시도는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 안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거나 외로움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기초 없는 땅에 집을 짓는 사람들처럼 마음 기반이 약해서 작은 일에도 쉽사리 무너집니다. 그러니 괴롭더라도 하느님 앞에 홀로 머무는 시간, 자신의 사무친 외로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시간 안에서 굳어진 편견들이 깨져 나가고, 평소 못했던 창조적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외로움의 시간 안에서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에서 학자가 많이 나오고 성인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외로움의 영성'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가능하면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견디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병약한 청년이 운동의 대가를 찾아가 "스승님, 저를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십시오"하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마당에 놓인 큰 돌을 가리키면서 "저 돌을 밀어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면, 너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병약한 청년은 그날부터 매일같이 밥만 먹으면 그 바위를 밀어댔지요. 하지만 바위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무려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바위는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친 청년이 스승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세상사람 중에서 저 바위를 움직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그렇다. 저 바위를 움직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네 모습을 보아라. 어떻게 변하였느냐?" 하면서 스승은 청년에게 거울을 줬습니다. 청년이 거울을 보자 10여 년 전 병약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울퉁불퉁한 근육질 남자가 거울 속에서 자기를 바라보더랍니다.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바위를 밀면서 청년의 몸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역경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역경을 굳건히 참아내는 사람들은 내공이 생깁니다. 마치 수많은 전투를 치른 베테랑 군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두툼한 배짱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많은 이들이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데, 그들 역시 처음에는 새가슴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나라고 못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방법들은 처음부터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운동이 자기 체력에 맞게 해야 하듯, 영성훈련 역시 자기 마음의 힘에 맞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심리적 부작용에 시달릴지도 모르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cpbc2013.01.15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2.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5>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6857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2.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기도, 모두가 하느님 안에 머물도록 도와주는 '행복의 길'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과연 어떤 삶이 참으로 행복한 삶일까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 성실히 응답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지요! 이러한 행복한 삶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길이 기도입니다. 기도야말로 '하느님이 누구신지, 나는 누구인지'를 일깨워주며,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은 자연과 성경 말씀, 그리고 일상생활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해오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우리를 둘러싼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인지를 여쭤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 중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물음을 던지며 그분의 말씀과 행위 안에서 우리의 선택과 실천의 기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 하느님 안에 머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복의 길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를 행복의 삶으로 이끌어주는 기도 생활에 더 충실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신앙인이 하느님을 깊이 만나고 체험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서울대교구 청년들이 서로 손잡고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봉헌하는 모습.(1)기도의 모범이 되기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의 모범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 특히 신앙의 후손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길 수 있습니다. 언제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할머님의 거친 손마디를 떠올릴 때마다 사제로서 살아가는 데 큰 힘을 얻곤 합니다. 신앙이 나에게 소중한 일이라면 기도 생활의 모범을 보여 가장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는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앙을 이어주기 위해서도 중요한 행복의 길입니다. (2)기도 습관들이기 신앙인은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장거리 경주에 임하기 위해서는 단거리부터 연습해야 하듯이 기도를 지속해서 하기 위해서는 습관이 중요합니다.'기도할 줄 모른다'거나 '기도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거창하게 많이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결심하고 시작하면 됩니다. 지향을 정하고, 시간을 정하고, 어떤 기도를 바칠지를 정하면 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좋은 습관들이기의 시작입니다. 때로는 하기 싫을 때도 있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자신에게 불어넣어 보십시오. 그리고 기도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십시오.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훈련이요, 하느님을 떠올리는 행복의 길입니다. (3)기도로 성화하기 신앙인은 기도를 통해 하루를 성화해야 합니다. 아침, 저녁, 삼종기도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뜻에 일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시간이 없다거나 기도할 장소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일상 삶의 자리가 곧 기도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교통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접하는 일이 하느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뜻에 일치하기 위한 기도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만 하면 하느님께 일치할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 행복의 길입니다. (4)기도로 함께하기 신앙인은 기도 안에서 서로 하나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기도를 통해 함께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또한 평소에 알던 사람뿐 아니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 모두를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주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 세상을 향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길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모두가 한 가지 지향을 가지고 또는 서로의 지향을 기억하며 함께할 수 있는 행복의 길입니다. (5)기도로 열매 맺기 신앙인은 기도의 힘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삶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기도를 바치다 보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위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체험에만 만족하고 삶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온전한 기도 생활이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한 하느님 체험이 깊을수록 삶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야 합니다. 기도와 삶이 따로 겉도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또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하지만, 그 삶의 모습은 미신앙인 같다거나 이전의 부족한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면 기도 생활이 충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기도의 열매는 우리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6)기도 체험하기 신앙인은 기도 체험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이 사랑으로 커가듯 기도도 기도로 커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체험,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떠올릴 때 하느님과 더욱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 체험을 떠올리고 간직하게 하고, 하나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기도 체험이 기도 생활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맛집을 알아두고서 가지 않는다거나 혹은 가더라도 맛을 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해야 기도를 알 수 있으며, 기도해야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또 공동체 차원에서 이뤄진 기도를 통한 하느님 체험은 신앙생활에 커다란 힘을 주는 행복의 길입니다. (7)기도 준비하기 신앙인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깊이 만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중요성, 기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굳은 믿음과 희망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탁하면서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감실의 성체, 십자가, 또는 성화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는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생생하게 의식하는 일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하느님을 똑바로 뵙기 어려운 죄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다면 이때야말로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죄스러운 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기도에 전념하는 일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의 화해, 이웃과의 화해를 이루는 것이 기도 생활을 깊이 하는 데에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나는 누구인지를 일깨워주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의 손길을 깨닫기 위한 사랑의 대화로서의 기도를 지속해서 해야 합니다. 기도 안에서 신앙인은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과거의 삶에 얽매여 후회와 우울의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지금 여기의 현재'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도하는 신앙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기도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증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조성풍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일반교육부 담당)퇴사자22013.06.04

일본어 미사 봉헌 23년째 지속... 매달 첫 주일 작은 형제회 정동 수도원서 입제(入祭)와 답창(答唱), 봉납(奉納), 폐제(閉祭)…. 제대 왼쪽 칠판에 생소한 전례용어가 등장한다. 우리말로 바꿔보면, 입당송과 화답송, 봉헌성가, 파견성가로 보면 되는 일본어 전례용어들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 탓에 일본 가톨릭 공동체 미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언제 어디서 봉헌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매달 첫 주일 오후 2시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서울 정동 성 프란치스코수도원 2층 소성당에서 일본어로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서울주보와 작은형제회 인터넷 누리방을 통해 알려졌다. 1990년 4월에 시작됐으니 올해로 꼭 22년을 넘긴 일본 가톨릭 공동체 미사다. 6일 오후에도 일본어 미사는 가톨릭대 교수 박문성 신부 주례로 한일 가톨릭 신자 18명이 함께한 가운데 어김없이 봉헌됐다. 일본어 미사는 지금은 진주 칠암동 성 프란치스코수도원 재정 담당(당가)으로 활동하는 일본인 코사카 요시히로(高阪淑皓, 빈첸시오) 수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국내에서 장애인이나 다문화가정, 성경 공부 사도직을 해오던 글라렛선교수녀회, 그리스도 왕 선교 수녀회, 느베르 애덕 수녀회, 성령 선교 수녀회 등 여러 수도회 일본인 수도자들이 호응,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과 한국인 가운데 일본어에 관심이 많은 신자들이 모여 지금까지 맥을 이어 왔다. 모임 이름은 '일본어 미사 그룹'으로, 그때 그때 모여드는 한일 가톨릭신자들 20명 안팎이 전부지만 이들의 우정과 친교, 연대는 끈끈하다.국내 유일의 일본어 미사 그룹이 미사를 봉헌한 뒤 작은 형제회 정동수도원 뒤뜰에서 함께하고 있다. 1985년부터 3년간 일본에서 유학한 인연으로 20여 년간 함께해온 최해숙(에메리타, 60)씨는 "한국에 와 있는 일본 출신 수사님과 수녀님들은 굉장히 헌신적으로 사도직활동을 하고 계신다"며 "그래서 매주 금요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일본어 성경 공부팀에 함께하고 있다"고 말한다. 매달 첫 주일이면 새벽에 버스를 타고 상경해 미사에 함께해온 코사카 수사는 "일본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들과 함께하고 싶어 이번에 주보와 인터넷을 통해 일본어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됐다"며 "더 많은 일본인 가톨릭신자들이 함께해 친교와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 010-3538-0927 이날 미사를 주례한 박문성 신부는 "일본에도 성소가 없고 할 일이 많은데도 한국에 와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시는 것도 대단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한일 교류라고 본다"며 "국내에서 여러 언어로 미사가 봉헌되고 있지만 일본어로 한국 땅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는 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5.08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8> 영화 속에 나타난 '인간몸'에 대한 천사들의 찬사-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외 영화들](//cpbc.co.kr/CMS/newspaper/2012/10/rc/428144_1.0_titleImage_1.jpg)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영화 속에 나타난 '인간몸'에 대한 천사들의 찬사-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외 영화들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인간 육체의 위대함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인간의 몸을 통해 물의 차가움을 느끼는 천사 세스. 1. 영화 속 천사들은 성경 속 천사들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성경 텍스트를 재현한 '예수 영화(Jesus Story)'에서 천사는 예수님 탄생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나 부활한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지키는 천사들로 등장해 비교적 성경에 충실한 모습으로 나온다. 그 외 영화 속 천사들은 주로 사람들을 돕는 수호천사 역할이나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개입되는 존재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들 천사 역할은 카메오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가 나온 이후로 이제 천사들은 영화 속에서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대표적 영화가 브래드 실버링 감독의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 1998),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조 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 1998), 노라 애프론 감독의 '마이클 (Michael, 1996)' 등이다. 이들 영화들은 한 가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천사와 인간이 지닌, 영적 속성과 육적 속성, 무한과 유한, 관조와 개입이라는 이항대립적 구도에서 천사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동시에 유한한 인간이 지닌 몸의 속성과 그 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오감(五感)의 축복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2.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지상에 자리를 잡고 그것을 지켜본 이들이자, 사람들 곁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수호천사다. 그들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회상한다. 베를린 콘크리트 제방에 선 그들은 원시 시대의 강물이 강바닥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회상한다. 또 빙하가 녹아내리는 긴 세월의 흐름을 잔잔하게 기억하며 들려준다. 그리고 천사들의 역할은 도시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과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다. 그들은 종종 도시의 천사동상 어깨 위, 빌딩 옥상 같은 높은 곳에 있기도 하지만, 사고를 당한 희생자를 위로하거나 자살하려는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실제 천사 카시엘은 다리 위에서 자살하는 청년을 저지하지 못한다. 단지 곁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주거나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주기 위해 머리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놓는 정도이다. 인간에게는 본인 스스로 선택할 몫, 자유의지가 있기에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영화는 늘 지켜보기만 하지 직접 인간들의 삶에 개입할 수 없는 천사의 세계를 흑백화면으로 표현하고, 인간의 세계는 컬러 화면으로 표현한다. 천사들은 인간들 세계 속에 존재하지만 인간들의 육체와는 다르다. 때때로 순수한 아이들에게 그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인간과 다르다. 그런데 이들 천사 중에 다미엘이 인간들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을 느낀다. 또 그가 늘 지켜보기만 했던 곡예사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높은 곳에서 그대로 뛰어내린다. '추락천사'가 되어 날개를 잃고 천사의 능력을 상실한 인간이 되어 이제 사랑, 고통, 질병, 죽음이 있는 유한한 세상사 속에 뛰어든 것이다. 영화는 천사 다미엘이 세상사에 뛰어내려 인간이 된 이후 사랑에 빠진 곡예사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천사 다미엘이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영원이었다'는 것과 '그날 밤의 일은 죽을 때까지 남을 것이다'는 말로써 그가 영원을 포기하고 유한한 시간에 들어왔으며, 그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인간이 되고 싶었던 천상의 욕망을 말해준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천사에 대한 한편의 시이자, 철학적 명상이라면, 헐리우드의 '시티 오브 엔젤'은 한편의 이야기이자, '베를린 천사의 시'에 대한 해설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리메이크한 '시티 오브 엔젤'은 오리지널 영화가 암시했던 요소들을 조목조목 명확하게 밝혀놓고 있다. 영화 속 천사 세스는 환자의 죽음으로 슬럼프에 빠져 방황하는 의사 매기 곁에 머물며 위로하고 주목하는 사이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마침내 그는 그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들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영혼의 느낌을 교류하지만, 매기는 그가 만지는 느낌이나 그로 인한 오감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영적 존재라는 사실에 혼란에 빠진다. 결국 천사 세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 다미엘처럼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려 피를 흘리고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으로 매기를 찾는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둘이라고 하는 것의 놀라움, 남과 여의 놀라움, 바로 그것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또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영원이었다'는 천사 다미엘의 모호한 고백은 천사 세스와 매기에 의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기는 세스에게 줄 오감의 축복인 음식을 사가지고 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결국 매기는 죽게 되고, 세스는 인간이 되어 혼자 남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허탈한 죽음 앞에서 그는 말한다. "난 후회하지 않아, 그녀의 머리향기, 그녀의 입술과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 게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나아, 단 한번이라도."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서도 죽음의 천사가 인간사를 들여다보며 인간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그들이 몸으로 느끼는 열정과 정서를 체험하고 싶어서 인간 세계에 개입한다. 그는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한 남자의 몸을 통해 일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업가 윌리엄이 느꼈던 열정과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몸을 통해 느끼는 사랑의 느낌과 행복도 체험하지만, 끝내는 사랑받을 수 없는 아픔과 슬픔도 느끼고 다시 천사 세계로 돌아간다. 영화 '마이클'에서는 제목 그대로 이 세상에 휴가를 나온 대천사 미카엘이 나오는데 그는 각박하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이 무엇을 잊고 사는지에 대해 일깨우면서, 인간의 몸이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축복과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체험을 그리워하고 즐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3.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나 '시티 오브 엔젤'에서 영겁의 세월을 사는 천사들이 인간을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비록 인간이 유한한 삶을 살지만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몸', 그것이 지닌 '오감의 축복'이다. 그래선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천사들은 한결같이, 오랜 세월 관조의 눈으로 신기하게만 바라보았던, 인간들의 먹는 느낌의 풍경들을 자신들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베를린 천사의 시' 천사 다미엘은 추락천사가 되어 지나던 행인에게 구걸해서 얻은 동전으로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거리 모퉁이에 있는 이동식 자동차 커피가게다. 그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가 보기엔 그만한 나이면, 이미 수도 없이 커피를 마셔봄직한 나이인 데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커피 마시는 행위가 그에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켜보기만 했지 한 번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지켜봄'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장면을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게 되고, 그가 인간 몸을 통해서 느끼는 그 커피 맛은 감동이자 기적으로 표현된다. 또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인간의 몸을 갖게 된 천사가 신기한 듯 과일의 촉감을 느끼고, 무화과 열매를 입에 물면서 눈을 감는 표정은 하나의 '행위'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의식'처럼 느끼게 한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 나오는 천사가 양복을 입고서도 땅콩버터가 있는 병을 들고 다니면서 맛을 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그의 말처럼 "천년이 영원과 곱해지고, 끝없이 시간과 합성되는 걸 떠올려봐, 난 그 세월만큼 떠돌아 다녔지"라고 할 만큼 영겁의 세월을 살면서도 늘 지켜만 봤던 그가 인간의 먹는 행위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 그 땅콩버터의 맛은 그가 맛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더 소중한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또 영화 '마이클'에서 인간 세상에 휴가를 나온 천사 미카엘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휴가이기에 음식을 먹는 행위에 최선을 다한다. 마치 '내일은 더 이상 이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이처럼 지난 영화 속에서 중심 캐릭터로 나온 천사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축복'을, 특히 '음식을 먹고 온 몸으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남다르고 색다르게, 그리고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4. 천사들이 인간을 부러워한다. 비록 영화지만 상당히 의미가 있다. 인간은 일회적 삶을 살지만, 육체가 있기에 위대하고 소중하다. 육체가 있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는 그 육체를 통해 우리 인간과 만나셨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저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대화집」에서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나는 맛보고 또 보았습니다. 오, 영원한 하느님이시여…. 당신은 독생성자의 피를 한없이 보배롭게 만드셨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우리가 그분을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체험처럼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다. 우리가 지닌 육체의 소중함을 묵상해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앞의 천사영화들을 추천하고 싶다.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 가치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몸은 곧 하느님께서 주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것을 묵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퇴사자22012.10.09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5>주님 수난 성지 주일- 수난과 죽음](//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4296_1.0_titleImage_1.jpg)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수난과 죽음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십자가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호산나!"하고 환호하던 군중이 돌변해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칩니다. "다 이루어졌다." 십자가 위 주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르며 그 뜻을 새겨 봅니다.◇살펴봅시다 ㉠예수님의 재판과 그 책임(595~598항) : 사람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얼마 후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붙잡히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사제에게 데려갔고, 예수님은 다시 최고의회로 끌려 가셨다가 마지막으로 빌라도 총독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는 외침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병사들에게 내줍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복음서들에 나타난 예수님 재판에 대한 역사적인 복합성을 고려할 때, 그 주역들(배반자 유다, 최고의회, 빌라도)의 개인적 죄가 어떠하든…그 재판의 책임을 예루살렘의 유다인 전체에게 지울 수는 없다"(597항)는 사실입니다. 또 군중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 27, 25) 하고 외쳤다고 해서, 예수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다른 모든 유다인에게까지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당시에 살고 있던 모든 유다인에게 그리스도 수난의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우거나 오늘날의 유다인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유다인들을 하느님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해서는 안 된다"(「비그리스도교 선언」 4항). 그러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요? 교회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들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렇게 밝힙니다. "교회는…너무나 자주 유다인들에게만 지웠던,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가장 중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린다"(598항).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말을 빌리면 "바로 당신이 악습과 죄를 즐김으로써 마귀들과 함께 주님을 못박았으며, 지금도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599~605항) :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적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넘겨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미리 써 놓으신 각본을 수동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영원한 계획은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곧 자유 의지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이 도성에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작당하여, 주님께서 기름부어 그리스도로 삼으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거슬렀습니다. 이리하여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해 두신 일들을 모두 이루었습니다"(600항, 사도행전 4,27-28).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무지에서 나온, 그러나 자유로이 선택한 행동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성경에 예고된 대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른 "보편적인 구속, 곧 사람들을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는 속량의 신비"(601항)로서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 때문에, 곧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고자 당신 아들을 그 죄의 결과인 죽음에 넘기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이 우리의 어떤 공로보다도 앞서 존재하는 관대한 사랑의 계획"(604항)이라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로마 5,8). 이 사랑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고, 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605항). ◇생각해봅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606~618항) :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뜻, 곧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요한 8,36)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생애 전체가 하느님 아버지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계획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원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그 귀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대사제의 종을 칼로 쳐서 귀를 잘라버렸을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요한 18,11) 하고 말씀하셨고, 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요한 19,3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을 보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불렀고, 예수님께서도 최후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8.28) 하시며 자신의 죽음을 죄의 용서를 위한 구속적 죽음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서 인류의 결정적인 구속을 완성하시는 '파스카의 희생 제사'이며,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613항)입니다. 모든 제사를 완성하고 초월하는 유일한 이 희생 제사는 '선물과 봉헌'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닙니다. "성부께서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기 위해 당신 아들을 내어주신" 선물이고, 또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 자유로이 사랑으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불순종을 보상하기 위해 성부께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는 봉헌"입니다. ◇알아둡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린이들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시며 당신의 도성에 들어오신 메시아 왕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통해 완성하시려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낸다"(570항). 교회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이 일을 기념하면서 일년 중 가장 장엄하고 거룩한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3.03.20

책꽂이▨성경, 사랑의 편지(조르지오 제비니 지음/편집부 옮김/성서와 함께/6000원) 성경을 처음 읽는 이들을 위한 성경 입문서다. 성경의 의미와 탄생 배경부터 시작해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또 구약과 신약에 대해 각각 설명하며 이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에는 렉시오 디비나를 소개해 성경을 알고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끈다. 저자 조르지오 제비니(살레시오회, 교황청립 살레시오대 신학대 학장) 신부는 "이 책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주님 현존을 체험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재속의 불씨(조안 카티스터 지음/김영미,임수,임승희 옮김/성바오로/1만 2000원) 미국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 회장을 지낸 저자 조안 키티스터 수녀는 영성과 수도생활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저술가이자 강사다. 키티스터 수녀는 30여 년에 걸쳐 삶과 거룩함의 표징이 무엇인지, 변화 속에서도 수도 공동체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해왔고 이 책에 그 답을 담았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의 수도생활 영성을 탐색하면서 수도자들에게 하느님 영을 증거하는 타오르는 불이 될 것을 당부한다. 또 수도생활은 쇠퇴하는 제도가 아니라 변화 한 가운데서 피어나는 새로운 비전과 희망임을 강조한다. ▨심청전(박민호 글/알라딘북스/9000원) 심청전은 목판본, 필사본, 활자본 등 수십 종의 이본(異本), 즉 기본적 내용은 같으면서도 장면이나 주인공과 등장인물 성격 등이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책으로 전해온다. 아동문학가 박민호(바오로)씨는 내용이 가장 흥미롭고 다채롭다는 완판본을 바탕으로 여러 이본 중에 가려 뽑은 내용을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 다시 엮고 다듬어 고쳤다. 여기에 공자와 같은 옛 성현 말씀과 한시 등을 넣고 한자풀이도 함께 적어 한자공부에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 ▨왜 원전을 폐기해야 하는가(게르트 로렌크란츠 지음/박진희,정계화 옮김/시금치/1만 2000원) 원자력 발전 실상을 다루며 △원자력은 정말로 안전하다? △핵무기화와 원전 테러는 불가능하다? △핵폐기물 걱정은 쓸데없다? △핵연료 우라늄은 얼마든지 있다? △원자력은 기후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은 늘어나야 한다? △부흥기를 맞이하는 원자력? △아시아에서 원자력 신화가 부활한다? 등 원자력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지며 이를 반박했다. 독일 출신 반핵 운동가인 저자는 '가장 비싸고, 효과 없고, 유연하지 못한' 핵에너지로부터 탈피가 우리 미래임을 주장한다. ▨365 Thank You(존 크랠릭 지음/차동엽 옮김/한국경제신문/1만 3800원) 일과 가정을 모두 잃게 된 저자가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되찾고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의 감동 실화다. 미국 LA주 대법원 판사인 저자는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매일 감사할 거리를 찾고 그것을 표현하는 실천을 한다면 기적같은 삶의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수정 기자박수정201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