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주간-성경경시대회서 우수상 받은 일본인 아야코씨 "꼭 필요한 말씀 주님께서 주시죠" 영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교구 성경경시 대회 우수상을 거머쥔 일본 출신의 붓쇼 아야코씨. 외국인인데다 영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새내기 신자가 성경 경시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눈길을 끈다. 지난 10월 3일 수원교구 성경잔치 현장.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신자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성경 경시대회에서 일본인 붓쇼 아야코(리타, 33, 수원교구 수지본당)씨가 우수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참가자들 시선이 강단으로 쏠렸다. "사실 그날은 아침부터 비행기표를 끊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정말 기뻤는데, 기뻐할 새가 없었죠." 아야코씨는 성경경시대회 바로 전날, 일본에서 전화를 받았다. 외할아버지 선종소식이었다. 시험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그에게 남편 정용화(프레드릭, 35)씨는 "비행기표는 내가 알아볼 테니, 일단 시험은 보라"고 권했다. 남편 덕에 그는 외할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우수상을 선물할 수 있었다. 캐나다 어학연수 중 남편을 만난 아야코씨는 2003년 결혼해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신앙이라곤 가져본 적도, 가질 생각도 없었던 그는 2008년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에 나사를 박는 큰 수술을 하면서 혼자 힘으로는 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스스로 찾아간 분당 성마태오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영세한 그는 반모임과 '여정 첫걸음' 성경공부에 열심히 나갔다. "성경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신앙생활도 뭔가 알아야 하겠구나 싶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들어가자마자 젊다고 조장도 되고, 외국인이라고 예쁘게 봐주셔서 교육분과 일도 하게 됐어요." 그는 용인으로 이사 온 뒤에도 여정 공부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 반장도 맡았다. "성경경시대회에 반장과 구역장은 꼭 참가해야 한다는 거에요. 할 수 없이 공부를 시작했죠. 그냥 앉아만 있다 올 수는 없잖아요." 때마침 여정 진도도 시험 범위인 '예언서'에 들어갔다. 인근 도서관에서 연대표를 찾아가며 예언서를 한 번 읽고, 예상문답을 읽고 또 읽었다. 15년 동안 냉담해 온 남편 정씨도 그의 정성에 감복해 올 6월 다시 성당을 찾았다. 7월 본당 예선전 결과는 '대상'. 그의 노력에 신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 성경필사 중이다. 신약부터 쓰기 시작해 묵시록을 쓰고 있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이사 40,30-31)'는 성경 구절을 제일 좋아해요. 주님께서는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아요." 성경 공부 재미에 빠진 아야코씨의 유창한 한국어 수다가 끝날 줄을 모른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10.11.16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교회사 공개대학⑥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5066_1.0_titleImage_1.jpg)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교회사 공개대학⑥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조현범 박사(토마스,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프로테스탄트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가톨릭 영성운동인 '데보치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근대 신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4세기 말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스콜라 학파를 '고대'(antica)로 지칭하면서 이와 구별되는 근대(Moderna)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인적이고 실천적인 신심을 강조했다. 전례나 성사 참여보다 수난 명상이나 산상 강론을 중시했으며, 관상 안에서 신과의 직접적 통교를 강조하는 신심을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신앙의 개인성과 내면성을 발견했고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곧 개신교의 원형적 종교성을 이루고 있다. 게르하르트 흐로테의 공동생활형제단(Brethren of the Common Life, 1383년)이 대표적 조직이며,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나 마르틴 루터, 장 칼뱅, 이냐시오 로욜라 등에게 두루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데보치오 모데르나의 영향을 받아 은총을 확인하는 길은 오직 성경과 신앙뿐이라며 성경 중심주의를 강화하는데 공헌했다. 당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성경과 고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중세 교회 관행이나 관습 중 고쳐야 할 것을 제시했으며, 이러한 인문주의 정신은 중세교회가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춰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징표였다. 안타까운 점은 교회 내에서의 개혁 시도(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보다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시도(루터, 칼뱅)가 더 큰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1517년, 독일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노 엄률수도회 수사 루터가 대사(大赦) 문제에 관해 보낸 95개조는 이단 심문과 논쟁으로 비화됐고 급기야 교황청은 루터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루터는 자신을 지지하는 독일 영주들의 후원으로 루터교파를 설립했고 독일, 스칸디나비아,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지로 퍼져나갔다. 이어 장 칼뱅의 개혁운동도 스위스,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라인강 하류 지방, 스코틀랜드로 전파됐다. 이로써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으로 갈라져 나간다. 한국교회는 '장감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로교와 감리교, 성결교 교세가 크다. 미국과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진출하면서 선교가 이뤄져 장로교가 가장 많은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천주교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개신교를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선 과속성장에 대한 개신교측의 자성은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다. 교회 난립의 폐단과 과다한 신학생 배출, 함량 미달의 신학(특히 실천신학) 교육, 극단적 배타성 등은 천주교가 곱씹어봐야할 대목이다. 개신교의 목회자 권위주의에 기초한 독재적 리더십은 이제 한국교회에 대안적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한국 개신교의 재정 규모 증대와 재정 지출 경향은 꼭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기 경제 운영의 축소판과도 같다. 개신교계 일각에선 교회 분열이 교회의 공공성을 해치고 있다며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 있는 참여를 외면하고 교회와 세상을 양분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또 물량적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 신학을 향한 개신교의 열정과 노력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비교종교학을 시도한 한국적 신학의 선구자 최병헌, 불교와 유교, 도교의 정수를 흡수해 '한국어로 신학하기'를 내세운 한국적 영성의 정초자 유영모, 무교회주의를 통해 고난사관으로 한국사를 재해석한 함석헌, 성리학의 형이상학을 차용해 '성(誠)의 신학'을 주창한 윤성범, 안병무와 더불어 민중신학을 체계화한 서남동, 한국인의 영성과 종교적 전통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제기한 풍류신학의 유동식, 음양의 이분법 상징을 통한 주역의 신학을 제시한 이정용 등이 대표적 신학자들이다. 최근엔 토착화 신학 발전과 함께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화 사회로의 진전, 유전공학 발전,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 문화의 확산 등 현대 사회의 징후와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이지혜2011.11.08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4) 제4회가와 공의회 폐막](//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2497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4) 제4회가와 공의회 폐막16개 문헌 결실과 함께 새로운 시작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 1월 4일 제4회기 개회일을 9월 14일로 정했습니다. 공의회 준비 단계에서 12개 준비위원회가 담당 분야별로 초안을 마련했지만 제3회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정돼 의안은 모두 16개로 늘어났습니다. 이 중 제2회기에서 2개 문헌(전례헌장, 사회매체교령)이, 제3회기에서 3개 문헌(교회헌장, 일치교령, 동방교회교령)이 공포됐습니다. 공의회에서 다뤄야 할 의안은 아직 11개나 있었습니다. 1965년 3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로마 시내의 한 본당을 방문, 공의회의 첫 결실인 전례헌장 정신에 따라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신자들을 등지고 드리던 미사에서 신자들을 향해 미사를 드렸고 전례 언어도 상당 부분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사용했습니다. 교황은 함께한 사제들에게 전례 개혁 이행에 협력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교황은 6월 24일 교황청 기구 개편 및 교회법전 개정에 착수했습니다. ▨제4회기 제4회기 개회 연설에서 바오로 6세는 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를 공식 기구로 설치하고 유엔 총회에 참석하겠다고 밝혀, 교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는 교회헌장에 들어 있는 주교단 단체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기구였습니다. 교황의 유엔 총회 참석은 처음 있는 일일 뿐더러 교회와 세상의 대화, 특히 평화에 대한 교회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교부들은 9월 15일부터 종교 자유에 관한 의안을 시작으로 계시에 관한 수정안,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안, 현대사회에서의 교회에 관한 안들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종교 자유에 관한 안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가톨릭국가 주교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만, 공산 치하에서 박해를 받은 주교들의 체험적 고백이 설득력을 지니면서 반대 목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교회에 관한 의안에서는 가정 문제, 평화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습니다. 교부들은 또 사회교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초 교부들은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이하 주교교령)를 통과시켰습니다(찬성 2319/반대 1/기권 1). 교령은 교회헌장 제3장 주교직에서 제시하는 원칙에 따라 주교들의 실제 사목 임무를 다루고 있습니다. 개별 교회인 교구도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참다운 그리스도 교회임을 강조했고, 고령이나 기타 이유로 주교직을 수행할 수 없을 때 자발적 은퇴를 권고했습니다. 이전까지 주교직은 사실상 종신직이어서 그에 따른 문제가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어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이하 사제양성교령. 찬성 2318/반대 3)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이하 수도생활교령, 찬성 2325/반대4),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교육의 중대성」(이하 그리스도인교육선언, 찬성 2290/반대 35),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우리 시대」(이하 비그리스도교선언, 찬성 2221/반대 88/기권 1)이 통과됐습니다. 비그리스도교선언은 "타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고 타 종교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과 특히 유다인을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보면서 유다인 차별과 박해를 배격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불과 한 세기 전인 1870년 교황령(교황에게 속한 교회 영토)이 없어지기 전까지 유다인들을 게토(집단 주거지)로 몰아넣어 격리시켰을 정도로 배타적 입장을 보였던 태도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 10월 28일 제7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교부들이 통과시킨 3개 교령과 2개 선언 곧 주교교령과 사제양성교령, 수도생활교령 등 3개 교령과 그리스도인교육선언 및 비그리스도교선언 등 2개 선언을 공식 반포했습니다. 공의회는 약 20일 후인 11월 18일 제8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교부들이 통과시킨 '하느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이하 계시헌장, 찬성 2344/반대 6)과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이하 평신도교령, 찬성 2340/반대2) 두 문헌을 공포했습니다. 계시헌장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가 "오직 성경만!"을 주장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맞서면서 그동안 다소 등한시했던 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 성경과 성전을 똑같은 애정으로 공경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평신도교령은 교회헌장의 평신도 신원을 바탕으로 평신도 사도직의 고유한 측면이 현세 질서의 쇄신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공의회는 막바지로 치달았습니다. 남은 4개 의안에 대한 위원회들의 마지막 수정 작업과 투표를 거쳐 12월 7일 제9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이하 종교자유선언, 찬성 2308/반대 70/기권 6),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이하 선교교령, 찬성 2394/반대 5), '사제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이하 사제생활교령, 찬성2390/반대 4),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이하 사목헌장, 찬성 2309/반대 75/기권 7)이 공포됐습니다. 종교자유선언은 그리스도 신앙의 자유의 토대와 근거를 밝히는 가운데 타 종교들도 고유한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선교교령은 선교가 교회의 본성임을 강조하면서 선교 활동의 쇄신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목헌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장 뜸을 많이 들인 문헌이었습니다. 교부들 사이에서 그만큼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것입니다. 문헌은 세상과 대화를 강조한 공의회의 '백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16개 문헌 반포를 마무리한 1965년 12월 7일 공의회는 또 하나의 역사적 선언을 합니다. 동ㆍ서 교회 결별의 결정적 원인이 됐던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공동선언을 바티칸과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에서 동시에 발표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역점을 둔 '교회 일치'를 위한 뜻 깊은 선언이었습니다. ▨페막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튿날인 12월 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주례한 성대하고 장엄미사로 폐막했습니다. 교황은 폐막 미사 후 공의회에 참가한 교부들 이름으로 국가지도자들을 비롯해 사상가와 학자, 예술가, 여성, 노동자, 가난한 이와 병자와 고통받는 모든 이, 젊은이 등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합니다. 이로써 제2차 공의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막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신호였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2.01.17

"함께 읽고 쓰며 말씀에 맛들여요"수원교구 복음화국 제17회 성경잔치 성황성경암송대회 본선에 진출한 한 가족 대표가 손을 번쩍 들고 성경을 암송하고 있다. 수원교구 복음화국(국장 문희종 신부)은 3일 경기도 평택시 장당동 효명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제17회 교구 성경잔치를 열었다.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하며 말씀 안에 살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신자 20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관련기사 22면 이번 대회에는 가족 단위로 참가해 성경을 암송하는 '성경암송대회'가 처음으로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성경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과 필사노트가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필사노트 전시코너에는 광북본당과 지동본당 등 17개 본당에서 전 신자가 필사한 대형필사노트가 선보였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2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서 완필한 필사노트와 이영배(교구 총대리)ㆍ이정훈(대야미본당 주임)ㆍ손용창(서신본당 주임) 신부 등 사제단이 쓴 필사노트도 전시됐다. 가족과 함께 성경암송대회에 참가한 장운학(베드로)씨는 "암송대회를 준비하면서 처음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었다"며 "내년에는 할머니까지 모시고 3대가 함께 출전해 꼭 수상하겠다"고 말했다. 미사 후 열린 경시대회 시상식에서 일반부문 김정원(라파엘라, 성복동본당)씨, 어르신부문 신정숙(레지나, 상대원본당)씨, 청소년부문 최재림(아셀라, 상록수본당)양이 각각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신갈본당이 최우수본당으로 선정됐다. 또 참가자 가운데 최연소 위규원(엘리사벳, 8)양과 최고령 홍태희(스테파니아, 91) 할머니가 꿈나무상과 은빛상을 각각 수상해 큰 박수를 받았다. 신자들은 교구와 교구민을 위해 기도하며 성경을 필사한 이 주교에게 감사패를 전달, 고마움을 표시했다. 결혼이주여성으로 경시대회 우수상을 받은 붓쇼아야꼬(리타, 일본)씨는 "어제 일본에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시험을 치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봉헌하는 마음으로 응시했다"며 "지난해 세례를 받고 성경을 너무 몰라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상까지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 성경필사자는 1회 필사자 481명, 2회 이상 필사자 106명 등 모두 587명으로 최다 필사자는 9회 완필한 남순희(마리아, 83, 병점본당) 할머니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10.10.05
![[공동체]대전가톨릭대 2012년도 20회 입학미사](//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7437_1.0_titleImage_1.jpg)
[공동체]대전가톨릭대 2012년도 20회 입학미사대전, 청주 미래의 사제들 첫 출발 축하... 대전가톨릭대 2012년도 20회 입학미사 봉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2일 충남 연기군 전의면 신방리 대전가톨릭대 성당. 학부모와 수도자, 평신도 등 3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새내기 신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입당했다. 대전교구 12명, 청주교구 10명에 몽골지목구 1명, 수도회 4명 등 모두 27명이었다. 뒤이어 교구 사제단과 교수 신부들 60여 명,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등이 성당에 들어섰다. 20회째를 맞는 대전가톨릭대 입학미사가 거행되는 자리다. 20회째로 대전가톨릭대에 입학한 신학생들이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앞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신입생 선서를 하고 있다. 지난 1993년 첫 입학미사를 봉헌한 이후 스무 번째 입학생을 받아들이는 미사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지만, 신학교와 두 교구에선 감회가 남달랐다. 지난 20년간 성소를 위해 힘써온 두 교구 성소국은 더 흐뭇하고 기뻐했다. 그동안 대전교구에서 172명, 청주교구에서 74명 사제를 배출했고 수도회까지 합치면 모두 256명이나 배출했기 때문이다. 이날 입학생 27명을 대표해 서약한 대전교구 예산본당 출신 이용환(시몬, 27) 신학생은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오게 돼 두려움이 앞선다"면서도 "신학교에 들어오기까지 함께해주신 하느님, 그리고 본당 신부님과 본당 공동체에 특히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 긴 부르심의 여정이 남아있는 만큼 참된 사제가 되기까지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장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마음 한 가운데 오직 사제가 되겠다는 일념, 훌륭한 사제가 되겠다는 열정만 품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 주교도 강론을 통해 "20회째 입학생을 받아들이기까지 지난 20년간 좋으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미래 사제가 될 여러분들은 이제 대전신학교의 주보이신 성 요셉을 닮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3.06
 아버지이신 하느님; 아빠, 아버지](//cpbc.co.kr/CMS/newspaper/2011/09/rc/390163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5) 아버지이신 하느님; 아빠, 아버지모든 인간들의 아버지 하느님 구약성경에서 복합적 요소를 지닌 신의 면모가 야훼 표상 안에 수용된 것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단일적 성격을 띤 하느님 면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어느 때는 하느님 심판에 대해, 또 어느 때는 하느님 자비에 대해 언급한다. 또는 심원한 간격을 지닌 하느님,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한 하느님을 예수님께서는 친히 보여주시고 명백한 말씀으로 알려주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히브 1,3)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하느님은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된다. 이러한 기록은 하느님은 오직 한 분밖에 안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한편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소개하신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로 시작하는 신경과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가르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의 자기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생애와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전수돼 온 하나의 신앙이 이스라엘 사람들 사상과 그리스도인들 사상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된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한때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당신 백성으로 만들었다. 신약의 하느님도 구약의 하느님처럼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인격적 하느님이시다. 특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배드림으로써 하느님 인격성은 더 새롭게 드러난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세례와 거룩한 변모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로 불렀고, 예수님 또한 하느님을 '압바' 또는 '아버지'라고 불렀다. 특히 '압바'란 말은 아람어로서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매우 정다운 호칭이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이 단어는 종교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오랜 역사를 통해 'genitore(생식적 차원에서 생명을 준 사람)'를 의미한다. 생명의 창조자, 생활의 부양자, 보증자인 것이다. 신이 아버지라는 사상은 아주 보편적이지만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가리켜 '압바'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를 하느님 아들로 여겼다. 물론 여기서 '아들됨'은 신화적 의미에서가 아니다. 역사 안에서 구원 업적에 대한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즐겼다. 신약성경은 그 완성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신약성경은 바로 하느님이 아버지라고 확정지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나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으로 계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와 같은 모습은 루카복음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 구체적으로 잘 묘사돼 있다. 예수님 강생은 하느님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실제 사건이 되게 한 것이다. 특히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라는 말씀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말씀으로 하느님이 아들 예수님을 통해 모든 인간들 아버지이심이 선언됐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느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자녀가 되는 데는 옳은 사람, 옳지 못한 사람의 구별이 없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여성과 남성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오히려 대접받지 못한 당시 여성들에게 극히 이례적인 존경심을 갖고 대하셨고, 힘없는 어린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애정을 갖고 그들을 받아들였다. 병자나 소외된 인간일수록, 장애자일수록 그들을 위해 필요한 자로 처신하셨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의식주는 물론 머리카락 하나까지 돌보신다. 모든 인간이 예외없이 귀한 존재인 까닭이다. 때문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베푸는 선행은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한 상급으로 베풀어진다. 우리는 구약성경이 어렴풋이 보여준 하느님 부성을 예수님에게서 명료하게 보게 된다. 신약의 커다란 특징은 성부의 종말론적 계시가 예수님이라는 인격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아버지로 계시된 하느님께 이제 누구나 온전한 신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부성애로 인간을 감싸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아주 자상한 분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소박한 신뢰성과 경외감을 동시에 잘 표현해주고 있는 좋은 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 권위와 주권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전인적 행위로써 하느님께 대한 경외감을 심화시켜준다. 하느님은 만민의 심판관인 동시에 아버지로서 악에 대한 진노를 참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로서 자비로운 하느님과 준엄한 하느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하느님 진노도 자비와 함께 인간에 대한 하느님 부성애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느님 진노는 인간 죄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랑의 한 측면이다. 하느님이 아버지라고 해서 하느님 정의와 공정성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경외함으로써 모든 행실에 있어서 하느님 자녀다운 모습을 드러내도록 촉구하고 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9.20

제46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전문(요약)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진리, 사랑, 정의로 사회가 새로워지도록 그리스도인이 나서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태아를 비롯하여 가장 힘없는 이들의 생명권을 수호하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 실현이나 민족들의 온전한 발전, 환경보호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반문하며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진은 지난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생명수호대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십자가를 들고 있는 장면. 해마다 새해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저는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일치와 평화를 주시어 모든 이가 바라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이 이뤄지기를 빕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인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을 확인하면 힘이 솟아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고 모든 이를 위한 평화 증진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며, 유혈분쟁과 전쟁의 위협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이기적ㆍ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만연하면서 빚어진 긴장과 갈등의 온상들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 자본주의에서도 드러납니다. 온갖 형태의 테러와 국제적 범죄 행위로 평화가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종교의 참된 본질을 왜곡하는 근본주의와 광신주의도 평화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평화를 이루려는 수많은 노력으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올해 평화의 날 담화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복음의 참 행복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 행복(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은 약속들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참 행복은 약속에서 절정을 이루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 행복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닙니다. 오히려 참 행복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요구하는 것들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약속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세상 눈에는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는 이들이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서 언제나 그들 편이 돼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시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참 행복은 평화가 메시아의 선물이면서 인간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해 줍니다. 평화는 서로에게 주는 선물의 열매입니다. 평화, 하느님 선물이며 인간 노력 결실 평화는 인격 전체와 관련되고 모든 인간의 참여를 요구합니다. 곧 반포 50주년을 맞는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교황 요한 23세 복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평화는 무엇보다 진리, 자유, 사랑, 정의를 토대로 공존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다운 평화의 일꾼이 되려면, 초월적 차원에 관심을 갖고 아버지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평화를 부인하는 온갖 형태의 죄악들, 곧 이기주의와 폭력, 탐욕, 권력욕, 지배욕, 불용, 증오와 불의한 구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꿈이나 이상향이 아닙니다. 평화는 실현 가능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됐고, 새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이바지하면서 성장해 나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새롭게 선포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와 더불어 민족들의 완전한 발전을 이루시는 으뜸가는 주역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평화, 우리의 정의, 우리의 화해이십니다(에페 2,14; 2코린 5,18 참조). 생명을 온전히 사랑하는 평화의 일꾼 공동선과 평화를 실현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임신[受精]에서부터 성장과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충만한 생명은 평화의 정점입니다. 인간 생명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고, 이를 테면 낙태 자유화를 지지하는 자들은 자신이 거짓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실, 태아를 비롯해 가장 힘없는 이들의 생명권을 수호하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 실현이나 민족들의 온전한 발전, 환경보호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원칙은 신앙의 진리도 아니고 종교자유의 권리에 따른 귀결도 아닙니다. 이는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기에 온 인류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세계 평화와 관련되는 인간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는 종교자유의 권리입니다. 소극적 관점에서, 한 사람이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관련해, 예를 들어, 의무나 제약 '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적극적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로 '~할 자유'가 있습니다. 평화의 일꾼들은 급진적 경제 자유주의와 기술 관료주의의 이념들이 여론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적 권리와 의무 가운데 하나가 노동의 권리입니다. 경제발전은 주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 달려 있다고 여겨 노동이 점점 경시되고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올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인간 존엄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논리가 "모든 사람의 안정된 고용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것을 재천명합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새로운 노동관입니다. 이 선에 부응하는 것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노동정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입니다.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통한 지속 가능한 통합적 발전과 공동선은 모두 재화와 가치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요구합니다. 그 척도는 하느님을 궁극적 준거로 삼고 있습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의 지배적 경제 모델은 이윤과 소비 극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지속적 성공은 우리 자신의 재능, 지적 능력, 진취적 정신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경제분야에서, 특히 정부는 산업과 농업발전 정책을 표명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통화와 상업시장을 위한 윤리구조의 창출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시장들은 안정돼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더 많은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평화의 일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각오로 재정위기보다 더 심각한 식량위기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평화교육을 위한 가정과 단체 역할 평화의 일꾼들이 가정의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위한 열정을 키우고, 효과적 사회교육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가정은 사람들이 성숙하도록 도와주고, 배려와 나눔을 통해 서로 풍요로운 성장을 하도록 북돋워 줍니다. 도덕과 신앙에 관한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권리와 그 일차적 역할이 지켜져야 합니다. 평화교육이라는 이 중대한 과업에 수도 공동체들도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합니다.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이 커다란 책임을 함께 나눈다고 믿습니다. 이 복음화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으로 돌아가 개인과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으로 새로 나는 것을 그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문화단체, 학교, 대학교는 평화를 위한 특별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국제적 공공기관의 쇄신에도 중요한 공헌을 해야 합니다. 평화의 일꾼들을 위한 교육 결론적으로, 평화교육을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공동선 실현으로 이어지고, 평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며 평화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일구며, 단순한 관용보다는 선의를 지니고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용서에 대한 교육이 증진돼야 합니다. 이 세상 우상들이 내세우는 거짓 평화와 그에 따르는 위험을 거부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어,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가져다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교황 요한 23세 복자와 더불어 우리도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모든 지도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그들이 자기 민족의 정당한 행복을 돌보며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보장하게 해주소서. 모든 민족이 그들을 갈라놓는 벽을 허물고 서로 사랑의 유대를 강화하며 자기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이 형제애를 나누며 그들이 갈망하는 평화가 영원토록 꽃피고 언제나 평화가 그들을 다스리게 하소서. 이 기도로 저는 모든 이가 참다운 평화의 일꾼이 되어 인류 공동체에 형제적 화합과 번영과 평화가 넘치게 되기를 빕니다.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조은일2012.12.25
![[내가 뽑은 교회건축] 서울 혜화동성당](//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0306_1.0_titleImage_1.jpg)
[내가 뽑은 교회건축] 서울 혜화동성당안창모(크리소스토모, 경기대 건축설계학과 교수) 서울에 있는 혜화동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정형화됐던 성당건축 틀을 깬 교회건축으로, 성당건축의 모형이 될 기념비적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바탕으로 근대주의 조형 언어로 지어진 장방형의 상자형 건물은 기둥에 의해 분할돼 신자석과 통로로 구성된 바실리카식 공간 구성의 틀을 해체했고, 측면 기둥 사이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 의해 연출되는 내부 공간은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고측창(천장 가까이에 만들어진 채광용 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연출하는 공간과는 다른 평화로움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건축형식은 바뀌었지만, 교회가 담고 있는 내용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성당 한편에는 예외 없이 종탑이 있고, 정면 조각에는 하느님 말씀이 담겨 있다. '최후의 심판도'가 그것이다. 바실리카식 교회건축의 전통 아래 지어진 로마네스크교회와 고딕교회에는 주로 주출입구 상부에 최후의 심판이 부조돼 있는데, 혜화동성당에서도 예외 없이 최후의 심판도가 정면에 조각돼 있다. 이 조각에는 한가운데 그리스도가 앉아 있고, 좌우로 네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부조와 함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는 성경 문구가 새겨져 있다. 왼쪽으로부터 사자, 독수리, 천사 그리고 황소가 표현돼 있는데, 이는 각각 마르코, 요한, 마태오 그리고 루카를 상징한다. 이 조각에서 예수가 안고 있는 지구는 인간 세상을 뜻하고, 그 위의 십자가는 세상을 위한 예수의 희생을 의미한다. 옥좌 뒤로는 광채가 빛나고 세상 모든 권세를 지닌 그리스도가 선인과 악인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최후의 심판을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야트막한 오르막에 있는 혜화동성당은 장방형의 단정한 건물과 공간으로 절제된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지만, 성미술의 존재로 풍부한 메시지와 공간감을 갖는 교회건축이다. '최후의 심판' 조각 외에 종탑에는 수호성인인 베네딕토 부조(김세중 작)가 있고, 성당 안은 항상 크고 작은, 높고 낮은 곳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환하게 비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를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이남규 작), 김세중이 제작한 청녹색 대리석 제대와 청동으로 제작한 십자고상, 문학진의 103위 순교성인화(1976), 최봉자 레지나 수녀의 감실(1993), 이순석의 세례대(1958), 김종영의 성수반 등 혜화동성당과 함께하는 수많은 성미술은 마음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 성심을 대신해준다.김은아2012.04.03

서울 제기동본당, 새로운 소공동체 모델 '두레' 도입 3년말씀 바탕으로 소공동체 활성화 큰 효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가장 잘 구현서울 제기동본당 전원(가운데) 신부와 5주레 신자들이 두레 미사에서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있다. 서울 A본당에서 독서단원으로 활동 중인 박젬마씨는 본당 15구역 소속이다. 그는 개인 일을 제쳐두고라도 독서단 회합에는 꼭 참석하지만 반 모임에는 결석이 잦다. 직장에 다니느라 평일 낮에 열리는 반 모임에 참석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구역 미사나 구역 성당 청소 등 때가 아니고서는 구역 모임에 참석해도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는 '독서단 모임에서는 내가 맡은 일이 있기 때문에' 반 모임과 독서단 모임 시간이 겹칠 때면 당연히 독서단 모임에 참석한다고 말한다. 박씨 사례는 대다수 본당 소공동체가 안고 있는 오래된 숙제다. 레지오 마리애나 주일학교 자모회 등 신심단체 활동에는 적극적인 신자들도 소공동체 모임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서울 제기동본당(주임 전원 신부)은 다르다. 올해 도입 3년째를 맞은 새로운 소공동체 모델 '두레'가 큰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공부 '말씀터'(소공동체)에 매주 300명이 넘는 신자가 꾸준히 참여하고 있을 정도다.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인원이 1000명 안팎임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큰 숫자다. ▨두레 두레의 가장 큰 특징은 두레(구역)를 본당 조직의 중심에 둔 것이다. 여타 본당에서는 사목회 분과와 신심단체를 중심으로 행사를 추진하지만 제기동본당에서는 모든 행사 주체가 두레다. 행정적 의미를 지닌 구역 대신 두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본당 산하 총 9개 두레는 두레별로 사목위원회와 분과를 뒀다. 교육ㆍ선교ㆍ전례 등이 본당 차원이 아닌 두레 차원에서 두레별 특성에 맞게 진행된다. 예컨대 본당 전례분과 소속 신자들이 미사 준비를 전담하는 것과 달리 미사도 두레가 돌아가면서 준비하고, 독서와 해설, 봉사자를 두레에서 해결한다. 이는 본당 차원에서 이뤄졌던 분과 활동을 두레 차원에서 하는 것으로, 더 많은 신자들에게 참여 기회가 돌아간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두레 중심 사목은 신자 개인을 거대한 단위인 본당에서 익명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찾게 함으로써 '우리가 교회'라는 소속감을 고취시킨다. 자연스럽게 신자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두레에 대한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러다 보니 두레 간 경쟁의식도 생겨 성가대회 등 두레 대항 행사는 참여도도 높고 경쟁 열기도 뜨겁다. ▨말씀터 두레는 신자 5~6명으로 이뤄진 말씀터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본당에서 직접 제작한 같은 이름의 학습지를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 신약성경 공부를 함께한다. 직장인, 홀몸어르신 등 상황이 비슷한 신자들을 묶어 편한 시간대에 모이도록 하기에 결석률이 낮다. 구약성경은 별도 학습지를 주일미사 때 배부한 뒤, 일주일 뒤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본당에서 꾸준히 활동 중인 말씀터는 70여 그룹이며, 매주 회수되는 구약 학습지는 300장을 웃돌 정도로 참여도가 높다. 말씀터는 말씀에 중심을 두는 소공동체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두레라는 조직이 잘 짜여진 그릇이라면 말씀터는 그 그릇에 담기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사목연구실 두레와 말씀터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맞춤 프로그램을 개발ㆍ지원하는 사목연구실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말씀터 교재를 제작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그램팀, 미사참례율ㆍ소공동체ㆍ단체활동 현황 관련 통계를 수집, 분석하는 조사분석팀과 데이타베이스(DB)팀, 온라인을 총괄하는 인터넷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목연구실 담당자들은 주간ㆍ월간 보고서를 통해 주임신부와 머리를 맞댄다. 보고서에는 헌금 액수까지 세세한 사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해마다 본당 신자들의 신앙생활 만족도를 조사하고 연간 통계를 바탕으로 우수 두레를 선정하는 것도 연구실 몫이다. 신자들은 이를 통해 소속 두레를 넘어 다른 두레, 그리고 본당이라는 상위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호흡한다. 두레는 신심단체 활동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특정 목표를 두고 일하는 신심단체와 달리 두레는 성경공부로 신앙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집중하기에 그 역할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에 두레 활동을 위해 신심단체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레와 말씀터 활동으로 본당 공동체에 애착을 갖게 됨에 따라 신심단체에 새로 가입해 활동하는 신자가 오히려 늘어났다. 두레 체제를 구축한 전원 신부가 두레의 이념적 토대로 삼는 것은 '말씀과 공동체로 돌아가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다. '말씀을 바탕으로 한 본당 소공동체 활성화'가 공의회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 전 신부 생각이다. 전 신부는 "신앙이 성당에서뿐 아니라 우리 삶 자리에서 성경말씀과 함께한다면 복음적으로 살아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 무악재ㆍ대방동ㆍ창동본당 등이 제기동본당 두레를 모범 삼아 새로운 소공동체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1.09.20
창조의 하느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환경보호운동](//cpbc.co.kr/CMS/newspaper/2011/09/rc/38899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4)창조의 하느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환경보호운동인간, 환경 보전의 책임 지녀환경은 우리 시대 큰 화두다. 인간에게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과학과 기술은 편리함만큼이나 재해와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인간 이기심이 인류 파멸이라는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창조론에 담겨 있는 하느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부 환경운동가들과 구별되는 입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인간의 창조보전 책임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게 창조한 세상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왔는가?'하는 세상과 인간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갈구한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이 창조론이다. 창조론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한때 계몽주의와 대립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하던 자연과학자 갈릴레오를 단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성경에 나타난 창조 진술이 과학적 지식과 아무런 관련 없이 종교와 믿음에만 상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갈등이 잦아들고 있다.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창조신앙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맡기신 에덴동산을 돌보고 관리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흙을 소재로 한 인간 창조'를 언급하고 있다. 황무지에서 첫 창조물로 인간이 생겨나고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짐으로써 인간과 흙이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많은 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아담은 하느님 말씀을 거스른, 죄지은 구체적 개인이기도 하지만 종(種)으로서 인간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땅은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을 말한다. 인간은 물질적인 것으로 만들어졌고(창세 2,7), 땅은 야생식물과 경작식물을 돋아나게 하고 인간과 동물이 생존할 수 있는 양식을 산출한다(창세 2,8-15). 여기서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물질과 연결된 존재이자 땅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동시에 인간은 인간 창조주의 호의와 은혜를 받은 존재로서 하느님 정원을 경작하고 돌봐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어렵고 귀찮은 노동의 의무를 면제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 노동에 대한 본질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때 말하는 일이나 노동은 농사일이나 노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 전 영역에서 하느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 인간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유지하고 보전시켜 나가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분명 환경보전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인간 중심을 강조한다 오늘날 생태주의 옹호자들은 성경의 인간 중심주의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들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는 성경 구절을 환경파괴 주범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국가가 성경에 근거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한 책임을 고백해야 한다면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환경을 파괴했는지 묻고 싶다. 성경은 창세기와 시편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다고 표현했다. 이 지배권에는 봉사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행사하는 다스림은 땅을 정복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동물을 다스리는 것도 결코 착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생태계 파괴에 책임이 있다. 하느님 선물과 인간 사명으로서 지배권은 인간이 땅을, 즉 세상을 돌보라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자연을 파괴한 것이다. 성경의 인간 중심주의가 잘못이 아니라, 잘 다스리지 못한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생명은 다른 살아 있는 피조물들에 주신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인간은 마치 우주의 절정과도 같고 모든 피조물 중에 최상의 것인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영혼을 지닌 인간은 다른 혼을 지닌 생물보다 탁월하다고 했다. 교회는 인간 중심을 표명하지만 교회는 분명 인간 이외의 생명과 자연도 소중하게 여긴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하고, 이후 인간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수고로움을 겪게 됐다. 그러나 하느님 뜻 안에서 우리는 은총을 발견할 수 있다. 여인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고, 그의 임신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하나의 축복이 됐다. 하느님은 그들이 추방되는 순간에도 가죽으로 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 이러한 은총은 카인과 아벨, 홍수설화에서도 발견된다. 결국 하느님을 창조주로 드러내는 창세기는 인간 범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는 자비의 하느님, 은총의 하느님을 보여준다. 이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란 것을 드러낸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9.06

갈등과 분열 겪는 공동체에 내린 처방전[신간]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향하여(심흥보 신부) "신자들이 반대하면 신부님은 더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 같아요." "돈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사목회장 같은 자리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단체들마다 서로 자기 생각만 하니까 분란이 일어나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상은 친교의 공동체이지만, 현실에서는 친교(Koinonia)와 동떨어진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느님 말씀과 성사 안에서 한 몸이 돼야 할 하느님 백성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을 겪고, 때로는 '하느님 신비체'라는 정의가 무색할 정도로 분열된다.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향하여(위즈 앤 비즈) 서울 삼성동본당 주임 심흥보 신부가 펴낸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향하여」(위즈 앤 비즈)는 이런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심 신부는 하느님 백성들의 인간적 나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사목자의 독단적 결정에 대한 불만, 신자들 간의 마찰, '신앙 따로 생활 따로'에 대한 자괴감 등 신앙생활 중에 겪게 되는 문제들을 그대로 펼쳐 놓는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우리 사회의 문화를 살펴본다. 아울러 이에 대해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성경),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문헌), 나아가 어떻게 사목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모든 이야기는 친교의 교회론과 실천신학에 바탕을 두고 풀어나간다. 심 신부는 "과거에는 한 가지 잣대로 가르치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저마다의 경험과 문화, 신앙전승을 다 경청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본당 신부가 바뀌면 미사에서부터 성당 분위기까지 전체가 바뀐다는 불만에 대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전통문화와 정권교체기 혼란에 대한 토의를 유도한다. 이어 코린토 교회 분열을 가슴 아파하며 질책하는 바오로 사도 말씀을 빌려 복음 선포자 역할을 상기시킨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 6-8).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에 담긴 교회론을 설명한 후 실천신학적 전망을 제시한다. 저자 나름의 실천신학적 전망은 문제 해결의 힌트다. 이 책은 소공동체가 무엇이고, 교회가 왜 그토록 소공동체를 강조하는지도 덤으로 알려준다. 친교의 교회론에 기초한 소공동체는 현대교회 성장의 '핵'이다. 가난한 데다 사목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남미교회의 경우 기초공동체(소공동체)를 성장 발판으로 삼고 있다. 자립이 절실한 아프리카 교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복음의 힘으로 사회를 복음화하려면 소공동체가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담긴 원리와 가르침은 신앙 공동체를 '신비체'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궁전'으로 키워내는 자양분과 같다. 소공동체 워크숍용으로 안성맞춤이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김원철2012.04.17
![[생활 속 복음]연중 제16주일-한적한 곳에서 만나는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61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 복음]연중 제16주일-한적한 곳에서 만나는 하느님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은 자신들이 한 일과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을 모두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자"고 하셨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육로로 앞질러 먼저 그곳에 도착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 홀로 또는 제자들과 가셨던 '한적한 곳, 외딴곳'은 예수님께서 이루실 사명의 비밀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떼의 착하신 목자가 되려고 외딴곳에서 기도하셨다. 기도 중에 당신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 뜻에 따르고,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부 말씀을 옮기고, 자기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을 할 용기를 얻었다. 한 스님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암보살…"이라고 염불을 외웠다. 다른 스님이 불당 앞을 지나가다 이 소리를 듣고는 "아니, '관세음보살'을 왜 '관세암보살'이라고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염불하던 스님은 "관세음보살이라니요? 관세암보살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스님은 서로가 옳다고 우기다가 결국 스승이신 큰스님께 판정을 받자고 했다. 얼마 후 관세암보살로 외웠던 스님이 호박범벅죽을 큰스님께 드리면서 관세암보살이 맞는다고 말해달라고 청했다. 조금 뒤에 관세음보살이라 주장했던 스님도 국수를 큰스님께 드리면서 자신이 맞다고 해주길 부탁했다. 날이 밝고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두 스님은 스승에게 갔다. 큰스님은 "호박범벅경에 보면 관세암보살이라 되어있고, 국수경에는 관세음보살이라 적혀 있느니라"하는 말을 건네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원래 가시덤불에는 봉황이 깃들지 않으며,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틀고, 현명한 사람은 스승을 골라 섬긴다고 한다. 지도자는 단순히 대중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권위자와 구별된다. 사랑과 책임감을 지니고, 구멍 뚫린 배로 항해하듯이 항상 조심해야 한다. 겸손하게 집단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구성원에게 삶과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며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인류의 진정한 스승이며 착한 목자인 예수님의 전 생애는 하느님 아버지 뜻에 따르는 것이며, 성부의 창조 목적에 따라 양떼인 하느님 백성을 이끄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 삶의 핵은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라는 성경 기록 그 자체이다. 이것이 또한 그분 기도다. 예수님께서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 5,30)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에 따라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과 가르치심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삶과 기도의 지향이다. 지금 이 세상은 돈이 힘이며, 지조요, 대의명분이고, 사랑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신뢰할 수 있고 믿는 자에게 마음을 연다. 아무리 덕(德)으로 분을 바르고, 의(義)로 치장해도 숨은 뜻이 아름답지 못하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벼슬과 지위, 재물은 어쩌다 우리와 인연이 되어 잠깐 머물다 가는 것뿐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형제인 해와 자매인 달을 노래하듯, 창조에는 근본적으로 친밀성과 일체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탈렌트가 개인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이가 어울려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역할을 나눠 서로에게 봉사하려고 주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삶을 통해서 명예는 정직한 수고에서 생성되고, 우리 자신이 우리 명예의 수호자가 된다. 비록 현실의 삶이 복잡하고 분주해도 우리는 마음의 '한적한 곳'을 찾아서 예수님 가르침을 묵상하자. 그리고 하느님 뜻만을 이루시려 한 생을 보내시며 기도하신 그분을 닮고 사랑하도록 은총을 구하자. ※서광석 신부님은 이번 주로 '생활 속의 복음'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깊은 기도와 묵상 속에서 복음의 정수(精髓)를 건져올려 독자들에게 안겨준 서 신부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월 5일자(제1177호)부터 대전가톨릭대 교수 곽승룡(교의신학 박사) 신부님이 연재합니다.조은일201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