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만남이라는 신비 수많은 만남 중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하느님과 만남은 그 무엇보다 특별하고 신비롭다. 우리는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여느 만남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은총을 경험한다. 이 은총은 사랑과 우정, 용서, 구원, 감사, 생명, 희망, 평화, 기쁨 등 갖가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 만남은 신비로, 참 만남으로 불린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하느님과 만남이 구원과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간파했다. 권 주교는 이 책에서 복음에 등장하는 하느님 만남을 통해 이 지름길을 알려주고 있다. 책에는 엠마오 제자를 비롯해 니코데모, 라자로, 죄인들, 가난한 이들 등 12명 주인공들이 만나는 하느님이 담겨 있다. 권 주교는 독자들도 성경 속 인물들처럼 그날 그날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1996년 출판된 책의 개정판이다. 본문에 인용된 성경 구절은 「성경」(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발췌했으며, 본문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다듬고 소제목도 약간 바꿨다. (권혁주 주교 지음/바오로딸/8000원) 박수정 기자박수정2011.06.28
![[성경 속 상징] (88) 악기- 일상생활에서 중용한 도구](//cpbc.co.kr/CMS/newspaper/2010/09/rc/351674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88) 악기- 일상생활에서 중용한 도구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2010년 여름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핫이슈를 꼽으라면 전 세계 축구팬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남아공 월드컵이 아닐까 싶다. 월드컵 기간에 축구도 아닌 것이 축구만큼이나 전 세계 주목을 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뿌~하는 독특한 소리를 내는 부부젤라(vuvuzela)다. 부부젤라는 길이가 1m 안팎으로, 120데시벨(dB) 정도의 큰 소리를 낸다. 이는 사격장 소리와 기차 소리, 전기톱 소리보다도 시끄러운 소리다.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부부젤라는 유명세를 탔지만 그 독특하고 시끄러운 소리는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울리는 부부젤라 소리에 불쾌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부부젤라의 경기장 반입 허용 여부를 두고 고민을 했으나 부부젤라를 아프리카 전통으로 인정해 사용을 허가했다. 그러나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대회 기간에 부부젤라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부젤라처럼 지나치게 큰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지만, 대체로 악기의 아름다운 음률은 사람들 마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준다. 성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악기는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구였다. 재미있는 것은 사울은 자주 다윗을 불러 비파를 연주하게 했다는 대목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영이 사울에게 내릴 때마다, 다윗은 비파를 손에 들고 탔다. 그러면 악령이 물러가고, 사울은 회복되어 편안해졌다"(1사무 16,23). 하느님을 찬양하는 데도 악기를 사용했다. "사제들은 자기 자리에 늘어서고, 레위인들도 주님을 찬양하는 악기들을 들고 섰다. 그 악기들은 다윗 임금이 레위인들을 시켜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하며 찬양할 때에 주님께 찬송하려고 만든 것이다"(2역대 7,6). 이스라엘 백성이 기쁨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늘 악기와 함께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이 여호사팟을 앞세우고,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원수들을 이기는 기쁨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금과 비파와 쇠 나팔을 연주하며 예루살렘에 들어와, 주님의 집으로 나아갔다"(2역대 20,27-28). 또 전쟁 중에도 나팔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두 번째 비상 나팔을 불면 남쪽에 진을 친 진영들이 출발한다. 출발할 때마다 이렇게 비상 나팔을 불게 하여라"(민수 10,6). 때로는 악기 연주가 경계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성전에서 봉사하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관능적 이방인 예배와 관련된 음악 사용을 금지했다. 특히 풍요와 다산의 제사 의식이 일반화돼 있었던 문화권에서 음악은 다분히 사람들의 성적 방종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한 때로는 감미로운 음악 선율이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 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아모 6,4-5).조은일2010.09.28

매주 수요일 저녁은 쪽방촌 의사로의료봉사자 고영초 교수(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장)인턴시절부터 35년 동안 수요일마다 요셉의원 등 무료진료하느님 은총으로 받은 재능, 주님 마음에 드는 일 하려 노력동료 의사들도 봉사의 길로 초대 '의사 낚는 어부'로 불려지난해 대장암 발견, 수술 받은 후에도 봉사 의지 변함 없어 35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건강을 지켜온 고영초 교수가 요셉의원에서 행려인을 진료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행려인 무료진료소 요셉의원. 4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요셉의원 진료 대기실이 행려인들로 북적거린다. 진료실 안 책상에는 진료카드가 수북이 쌓여있고,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평화롭다. "아이구, 아파요! 거기 거기요…. 누르지 마세요." 고영초(가시미로, 59, 건국대학병원 의학전문대학원장) 신경외과 의사가 50대 중반의 행려인을 눕혀 놓고 허리를 누르자, 행려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통증을 호소한다. "선생님 오시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일하다가 햇볕에만 나가면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워요.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행려인 말을 귀 기울여 듣던 고 의사가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마주치고 또박또박 말한다. "제가 덜 어지럽게 약 처방해 드릴게요." 6년째 고 의사에게 몸을 맡겨온 이 행려인은 "환자는 자기 몸이 왜 아프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궁금해하는데 그걸 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며 "저런 의사 선생님은 정말 상 받을만한 분"이라고 고마워했다. 낮에는 대학병원 교수로 환자와 학생을 만나고,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행려인과 쪽방촌 주민,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하는 고 교수가 6일 청와대에서 국민추천포상(국민포장)을 받았다. 1977년 의과대학 인턴 시절부터 35년간 요셉의원과 서울 시흥동 전진상의원, 혜화동 라파엘 클리닉을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무료진료를 해온 공로다. 행정안전부가 제정한 국민추천포상은 묵묵히 선행을 실천해온 평범한 이들을 국민 추천으로 국가가 주는 상이다. 행안부는 473건의 추천서를 바탕으로 국민추천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국민훈장ㆍ국민포장ㆍ대통령표창 등 수상자 24명을 선정했다. "쑥스럽지요. 저는 습관처럼 밥 먹고 학교 가듯 해온 일이니까요. 제가 35년을 봉사했다기보다 봉사할 수 있도록 35년간 기회를 주신 거에요. 이 상은 제게 의료봉사 기회를 준 환자들과 전진상의원 아피(AFI,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 요셉의원ㆍ라파엘클리닉 직원들과 모두 같이 받는 상입니다." 의대생 시절, 우연히 시골 무의촌에서 시작한 의료봉사는 그에게 벅찬 기쁨을 안겨줬다. 별것 아닌 작은 도움에 행복해하는 순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미소에 반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인제대 서울 백병원, 건국대학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매주 수요일 저녁은 의료봉사를 위해 비워뒀다. "봉사는 시간만 비워두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소신학교 출신으로 사제의 길을 꿈꿨던 그는 고2 때 진로를 바꿔 의대에 진학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의사가 되길 원하신 것 같아요. 하느님 은총으로 재능을 받았으니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해야지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분과 소변이 묻은 행려인들 바지에선 악취가 나고, 양말을 벗겨 냄새나는 발을 주무르는 건 고역이었다. 척수종양 환자를 놓칠 뻔한 적도 있다. 그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성경구절을 묵상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를 찾아오는 행려인과 쪽방촌 일용직 노동자들은 예수님 대접을 받는다. 행려인들은 오래 앓은 지병이 많고, 고혈압ㆍ당뇨 등 알코올 관련 질환이 많다. 그는 "환자들이 나를 잘 믿고 따라주는 것,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것 모두 하느님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의사 낚는 어부'라 불릴 정도로 지금까지 40~50명 의사들을 봉사의 길로 초대했다. 2007년 고 이태석 신부와 함께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한 그는 이태석 신부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태석 신부님은 의사였다가 신부가 됐고, 저는 신부가 되려다 의사가 됐지요. 대장암에 걸린 것도 똑같고요." 지난해 정기검진에서 대장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은 그는 젊은 의학도들에게 '울지마 톤즈'를 보여주고 있다. 고 교수는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나면 기쁨을 느끼듯 봉사도 해본 사람만이 기쁨을 안다"며 봉사를 권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2.07.10
![[영성의 길 수도의 길]-<61> 삼위일체 수도회](//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2620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 삼위일체 수도회갇힌 자들의 해방 꿈꾸며 교정사목에 헌신 2002년 9월 한국에 첫발... 창원,진주교도소 사목재소자들과 함께하며 인간존엄성 되찾도록 도와장기적으로 수도원내에 '출소자의 집' 건립 계획 남도(南道) 땅, 마산이다. 창원ㆍ진해시와 통합한 지 2년 6개월째로 접어들지만, 통합 창원시는 여전히 낯설다. 아직도 마산합포구ㆍ마산회원구라는 이름을 통해 마산이라는 지명이 살아있는 인구 30만 명 소도시에 내린 건 어둑새벽이었다. 1960년 3ㆍ15 의거와 1979년 부마민주항쟁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열쇳말이 된 민주화의 성지는 기대보다 훨씬 차분했다. 수출자유지역으로 향하는 대형 트럭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변곡점이 된 터전에 삼위일체 수도회가 뿌리를 내린 건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2002년 9월 27일, 첫 한국인 회원인 안찬모 신부가 마산교구에 파견되면서부터다. 그리고 2010년 초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리 282, 현 수도원으로 옮겨오기까지 10년간 사도직을 통해 한국인 회원들이 하나둘 입회하고 수도회가 자라났다. 800년 전 수도회 설립 당시만해도 '노예 해방'이 모토였지만, 국내에 들어오면서 갖가지 내적, 외적인 것에 얽매인 '갇힌 자'들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도록 하는데 사목적 시선을 뒀다. 이를 위해 선택한 사도직이 마산교구 교정사목이다. 교구 교정사목후원회와 함께 창원ㆍ진주 교도소를 맡은 수도회는 재소자들이 하느님 자녀, 곧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신앙과 존재적 삶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진 구속 안에서 계속될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수도회의 교정사목은 재소자들을 '위한' 사목이 아니라 재소자들과 '함께하는' 사목이다. '대신 갇힐 수 있는' 사목을 꿈꾼다.모자이크로 표현된 삼위일체 수도회 상징. 설립자인 마타의 성 요한이 자신의 첫 미사 때 본 환시를 모자이크로 표현한 것으로, 로마의 성 모타스 인 포르미스 옛 수도원 정문에 보존돼 있다. 커다란 제병 모양으로 둘레에 '삼위일체와 노예들의 수도회 상징'이라는 라틴어 글귀가 새겨져 있고 그 안에 구속자 그리스도와 두 노예가 그려져 있다. 흑ㆍ백 두 노예는 전쟁 포로를 재현한 것으로, 십자가를 든 왼쪽 백인 노예의 사슬은 그리스도께 연결돼 있는데 신앙의 끈으로 예수와 연계돼 있다는 의미다. 반면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 발목에 채워진 사슬을 자기 손으로 잡고 있는 오른쪽 흑인 노예는 강하게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구속자 그리스도께서는 두 포로들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도록 해주신다. 교구에서 필요한 사목과 수도회 영성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교정사목의 길을 선택한 수도자들은 재소자들이 자신의 인간됨, 곧 존엄성을 되찾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내 첫 파견자인 안찬모 신부가 도맡고 있는 창원교도소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가 미결수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지 않지만 일주일이면 두세 차례 이뤄지는 정기 방문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한다. 미사 봉헌과 예비자 교리교육, 복음 나누기, 성가 연습, 성경 공부, 교정마을 레지오 활동, 구역장 모임, 회장단 모임, 간사 월례회, 생일잔치는 기본이다. 이에 덧붙여 대림, 사순시기면 재소자 하루 피정으로 재소자들이 하느님 자녀로서 존엄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권면한다. 지난 사순 피정 땐 직접 관 속에 들어가 예수님 죽음을 묵상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죽음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진주교도소는 정신지체 장애나 결핵 등 질병을 앓는 재소자들이 많아 수도회 한국지부장 이영민 신부는 전례의 맛을 느끼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례를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 하느님 체험이 핵심이다. 특히 성주간이면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이끌며, 나아가 이같은 체험이 일상 삶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 성모님의 날 봉헌식, 성가합창발표회 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정사목동 활동에 억지로 수도회 색깔을 입히려 애를 쓰지는 않는다. 우선적 과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엄성을 되찾도록 하는 데 있고, 그 다음이 수도영성 구현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스도인 됨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중점을 두고 매주 번갈아가며 미사 봉헌과 인성교육, 성가발표회,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장기수 복음나누기, 수형자와 봉사자를 잇는 자매결연 프로그램은 진주교도소만의 특색있는 사도직이다. 이같은 교정 사도직활동 재원은 교구 내 각 본당별로 구성된 교정사목후원회에서 마련한다. 그리고 수도회 차원에서 마련된 재원도 교정사도직 투신에 온전히 쓰여진다. 수도회의 재원 활동은 타 수도회와 달리 독특한 데가 있다. 수도회에서 '테르시아 파스(Tertia Pars)'라고 부르는 전통이 그것이다. 수도원 재원의 3분의 1은 공동체적 삶에, 두 번째 3분의 1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애덕 활동비에, 나머지 3분의 1은 노예 해방에 쓰인다. 이것이 수도회의 재원 활용 규칙이다. 이 전통은 수도원조차 내어놓는 영성으로 이어진다. 교정사목을 통해 '갇힌 자들의 해방'을 꿈꾸는 수도회는 요즘들어 장기 교정사목 프로그램의 하나로, 수도원 내에 출소자의 집이나 쉼터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재소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소자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이영민 신부는 "출소자 쉼터 개설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희 수도회의 영성이 '갇힌 자들의 해방'을 지향하기에 당장은 어렵지만 미래엔 수도원 곁에 출소자의 집을 만들 계획"이라며 그간 수도회의 교정사목에 함께한 후원자와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오세택 기자 ▨삼위일체 수도회 역사와 영성 삼위일체 수도회(Order of the Trinity)로 약칭하지만, 수도회 본래 이름은 '삼위일체와 노예들의 수도회(Ordo Sanctissimae Trinitatis et Captivorum : O.SS.T)다. 여기에 수도회의 역사와 영성이 그대로 함축돼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Trinitatis)과 구속(Redemptio)이라는 두 축이 수도영성의 중심을 이룬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인류를 구원한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과 봉헌적 삶을 본질적 바탕으로 삼고(기도생활) △그분 사랑에서 비롯되는 일치와 친교의 삶을 구현함으로써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에게 하느님 자비를 증거하며(공동체 생활) △노예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들 모두가 하느님 자녀, 즉 자유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 구속 업적 안에서 자신의 신앙과 존재적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사도직 생활) 수도회의 뿌리를 둔다. 그래서 '삼위일체께 영광을,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이라는 모토를 쓰고 있다. 이같은 수도회 설립은 십자군 전쟁이 배경을 이룬다. 전쟁이 한창이던 1154년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포콩에서 태어난 설립자 마타의 성 요한은 젊어서 엑스로 가서 무술과 말타기를 배웠으나 곧 고향으로 돌아와 은수생활에 전념한다. 그러던 중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박사학위를 받고 사제품을 받는다. 그는 첫 미사에서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는 계시를 하느님에게서 받는다. 바로 무슬림으로부터 그리스도인 노예를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발루아의 성 펠릭스 신부와 함께 지내며 수도회 설립을 추진하던 그는 1198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설립 인가를 받는다. 초대 총장은 마타의 성 요한이 뽑혔다. 이것이 삼위일체 수도회의 시작이다. 수도회는 1201년 그리스도인 포로 186명을 석방하고, 이듬해엔 마타의 성 요한 혼자서 110명을 해방시키는 성공을 거둔다. 당시 노예해방을 위해 파견된 수도자들 가운데는 포로와 노예들을 구출하고자 자신이 대신 억류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1998년에 설립 800주년을 지낸 수도회는 이제 시대적 징표를 새롭게 읽어내며 신앙의 위기를 겪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 가난한 형제들과 함께하며 하느님 구원을 전하는 사도직에 헌신하고 있다. 회원 수는 2011년 말 현재 25개국에 613명이다. 한국에는 삼위일체 수도회와 1986년 부산교구에 파견된 프랑스 발랑스의 삼위일체 수녀회가 가족수도회를 이루고 있다. 현재 스페인관구 소속 한국지부 회원은 지난 9월 한국에 들어온 전임 총장 호세 에르난데스 산체스 신부를 포함해 사제 4명에 수사 1명, 지원자 2명 등 7명이다. 3회(재속회) 회원도 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오세택 기자sebastiano@pbc.co.kr ※성소모임 ▲비정기모임(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리 282 본원) ▲문의 : 055-224-9900(담당 이영민 신부)오세택2012.11.27
![[특집]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산, 서학과 만남 통해 위대한 학문적 업적 이뤄](//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2612_1.0_titleImage_1.jpg)
[특집]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산, 서학과 만남 통해 위대한 학문적 업적 이뤄신앙인 다산과 학문적 업적 분리 연구 바람직서학 받아들여 새로운 유학인 성기호설 제창제사금령 거부... 상제례는 효도의 표현 인식 다산(茶山) 정약용(요한, 1762~1836). 영세와 배교, 회심의 삶을 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맞아 천주교회도 그의 삶과 신앙, 서학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이사장 염수정 대주교)는 11월 23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의 관계'를 주제로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심포지엄을 갖고, 8시간에 걸쳐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다산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심포지엄은 △다산 정약용과 서학/천주교 관계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다산의 천주교 신앙 문제를 중심으로(원재연) △다산의 상제관과 서학의 상제관(김치완) △마테오 리치와 다산 정약용 철학의 거리 ; 다산의 지적 배경을 통해 본 「천주실의」의 쟁점들(백민정)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의 심성론(정인재) △천주교회의 유교 제례 금령과 다산의 상제례관(최기복 신부) 등에 관한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서울대교구장 겸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 천주교회는 다산 선생께서 서학과의 만남을 통해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아울러 그러한 만남이 이어져 한국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역사적 비극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조광(왼쪽에서 여덟 번째) 연세대 석좌교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다산 신앙과 학문, 분리 연구해야 원재연(하상 바오로)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다산 정약용에 대한 서학 또는 천주교와 관련된 논의를 조선 후기→1945년, 1945→1970년대, 1980→1990년대, 2000년→현재까지 네 시기로 나눠 조명하고, 신앙인으로서 다산과 다산의 학문적 업적을 분리해 연구하는 것이 다산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등장하는 다산의 저술 「조선복음전래사」를 근거로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 신앙을 회복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항덕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선종했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란을 개괄했다. 원 실장은 "다산의 내면적 사상(사고)과 그의 삶(실천)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연결시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위론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일치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산학술재단에서 추진하는 다산 저술의 정본화도 중요하지만 다산의 일문(逸文, 일부만 전해지는 글)을 최대한 조직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그 안에서 미공개 사료가 상당수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다산의 상제는 이신론에 가까워 김치완(프란치스코) 제주대 교수는 다산의 상제관과 서학의 상제관을 비교 분석, "다산이 설사 신앙생활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상제(上帝)는 결코 그리스도교의 천주(天主)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다산의 상제가 존재론적 실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게 오늘날의 공통된 시각이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다산의 상제는 성경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나 기적 등을 부정하며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이성적 진리에 한정시킨 근대 서양의 이신론(理神論)과 가까운 존재"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산과 보유론적(補儒論的) 서학의 '천(天)-상제' 관념 연구는 기존 호교론적 관점이 아니라 철학적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산사상, 시대에 대한 사상적 대응 '마테오 리치와 다산 철학의 거리'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백민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연구교수는 다산은 초년부터 서울 경기지역에 유포된 서학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의 철학체계는 중국 성리학과 양명학, 조선 주자학, 청대 고증학, 일본 고학 등의 학풍이 유기적 양상으로 혼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따라서 "다산 철학은 전통사상과 외래 사유 간 지적 분열과정을 거쳐 형성된 중요한 사상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못 박고 "18세기 세계사 변화를 염두에 둘 때, 정약용 철학은 동아시아 변방 지식인의 시대에 대한 사상적 대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자학 비판하고 성기호설 제창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는 '서양의 아니마(Anima)론과 다산의 심성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서양철학에 수용된 아니마를 중국에서 한자로 영혼 혹은 영성으로 번역한 것은 천과 인을 연결해 주는 것이 영(靈)이라고 여겼고 뒤에는 인간만이 갖는 초월적 능력인 사유 추리능력을 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산은 주자학의 심성론을 비판하고 중국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서학을 조선 유학과 융합해 새로운 유학, 곧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제창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그의 성기호설은 인간 존재를 신과 형이 묘하게 합해 인간을 이룬다는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존재라고 본다"며 "혼삼품설이 식물과 동물, 인간을 생혼과 각혼, 영혼이라고 한 것은 다산의 인성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마음을 심장[形]과 영명[神]으로 구분한 것도 서학 인성론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으며, 다산의 독창이라고 말하는 권형(權衡)이라는 개념도 서학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유교상제례 근본은 살리되 현실에 맞게 성균관대 석좌교수 최기복 신부는 '천주교회의 유교제례 금령과 다산의 상제례관'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다산은 제사금령을 단호히 거부했으며 천주교에 대해서도 거듭 배교를 선언한다"며 "그에게 상제례는 인간 윤리 도덕과 상제 섬김의 바탕이 되는 효도의 실천적 표현이며 백성을 구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가결의 신성 의례였다"고 지적했다. 최 신부는 "그러면서도 다산은 전통 상제례를 그대로 고수하지 않은 채 근본정신은 살리면서도 표현 양식은 현실을 참작해 시의에 맞게 쇄신하려 했다"며 그의 상제례는 △사체 치아 사이에 놓는 쌀과 조가비, 주옥 등 반함(飯含) 폐지 △혼백(魂帛) 폐지와 신주(神主)로서 명정(銘旌) 사용 △묘지를 파기 전과 하관 전, 묘제 때 토지신에 올리는 후토제(后土祭) 배척 등 전통제례 개혁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기조강연/다산의 사천학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 '다산의 사천학과 천주교 교리의 활용'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금장태(토마스 아퀴나스) 서울대 명예교수는 과학기술과 천주교를 포괄하는 서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다산의 경학을 '사천학(事天學)'이라는 새로운 경학 체계로 파악한다. 그래서 금 교수는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 신앙을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 여부보다 다산 사상에 내포된 천주교 교리의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역설한다. 다산은 유교 경전의 해석에서 천주교 교리의 영향을 받아 핵심 개념인 '천(天)-상제(上帝)'와 '심(心)-성(性)'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주자학의 의리론적(義理論的) 경학을 넘어 사천학으로서 새로운 경학을 제시했으며, 이는 경학사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주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자학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불교가 아니듯, 다산의 경학은 서학 및 천주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지만 천주교는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다산의 경학은 천주교 교리를 흡수함으로써 유교가 지닌 가능성을 새롭게 계발해냈고, 이를 통해 태어난 다산의 사천학은 당대에 유교 경전과 천주교 교리가 가장 깊은 차원으로 교류한 성과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다산의 사천학은 유교 사상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업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유교경전 해석에 활용됐던 천주교 교리의 빛은 한국교회사에서도 순교 역사를 넘어 사상적, 문화적 교류 차원을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오세택2012.11.27

사제수품 60년 회경축 맞은 백민관 신부주님께 바친 60년, 더 바랄 것 없어 신부님을 동경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무엇이든 척척 대답해주시는 신부님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신부님처럼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소년은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이 뛰어났던 소년은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은행원이 됐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어린 시절, 모르는 것이 없었던 신부님 생각이 났다. 소년은 생각했다. '공부를 하려면, 신학교에 가야 한다.' 신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사제가 됐고, 신학교 교수가 됐다. 벨기에와 프랑스로 유학도 다녀왔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는 정말 원없이 했다. 어찌나 책을 봤던지 눈이 다 닳아버려 오른쪽 눈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가 않는다. 올해 여든 여섯 살. 그 가운데 60년을 사제로, 50년을 신학교 교수로 살며 학문적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웠던 백민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이야기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된 백 신부를 3월 2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있는 그의 사제관에서 만났다. "가만있어보자, 올해가 몇 년이지? 맞아, 그래. 사제수품 60주년이라는데 하루하루 똑같이 살아가니 소감이랄 것도 없어. 그저 이렇게 건강하니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지. 지난 학기까진 라틴어 강의를 맡았는데 올해부턴 강의도 안 해. 아쉽고 서운한 거? 없어. 이제 할 만큼 다 한 것 같아." 사제수품 60주년을 맞는 노(老)사제에게 특별한 소회는 없었다. 그에게 지난 날 영광과 기쁨, 고통과 배고픔은 모두 아득한 기억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만하면 할 만큼 한 것 같다"는 한마디로 평생 걸어온 길을 압축했다. 1927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백 신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잠깐 일하다 덕원신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산당원들이 신학생들을 잡아들였던 터라, 어머니 권유로 혈혈단신 남쪽으로 피신했다. 그 이후로 가족을 만나지 못한 것은 지금도 큰 슬픔으로 남아있다. 갈 곳 없던 그는 무작정 명동성당을 찾아갔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신학생이 갈 곳이라곤 성당밖에 없었다. 그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으로 보내졌고, 신학대는 지금까지 그의 보금자리가 돼줬다. 가족, 친척, 친구도 한 명 없는 곳에서 백 신부가 할 일은 공부밖엔 없었다. 그는 밤낮없이 책을 읽었다. 어쩌다 돈이라도 생기는 날엔 전부 책을 사는 데 썼다. 유학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귀국할 때도 비행기 삯을 아껴 책 한 권이라도 더 사보려는 마음에 1달 동안 배를 타고 한국에 왔을 정도였다.신학교에서만 50년, 학문에만 매달려 한쪽 눈까지 바쳐 그는 "공부하는 일이 즐겁고 재밌었을 뿐이다"며 가볍게 넘겼지만 그가 학문에 매진해 일궈낸 업적은 한국 천주교회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는 데 공을 들였고, 옛날말로 된 미사경본도 현대어에 맞게 가다듬었다. 「공동번역 성서」 탄생도 그의 학문적 결실 중 하나다. 라틴어-한글 사전도 편찬했다. 또 15년간 공을 들인 「백과사전-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을 여든한 살이 되던 2007년에 마무리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백과사전 낸 것은 잘 한 일 같아. 힘든 만큼 보람이 컸지. 그 때 너무 책을 많이 봐서 한쪽 눈이 안 보여. 이제는 편히 쉬라는 하느님 뜻인 것 같아. 덕분에 더 공부도 안 하고 편해. 허허허." 한쪽 눈마저 어두워 더 이상 책을 보긴 힘들다고 했지만, 백 신부 독서대 위엔 여전히 백과사전과 성경, 라틴어 교본이 활짝 펼쳐져 있다. 50년을 신학교에서 '살아온' 그는 신학교 학장도 두 번이나 지냈다. 철학과 라틴어를 가르쳤는데 지난해까지 강단에 섰으니 웬만한 신부들은 다 그의 제자다. 제자 신부들은 그를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자율을 강조한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현재 성신교정 교수로 재직 중인 박준양 신부는 "백 신부님은 신학생들이 규칙 안에서 자유를 느끼며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는데, 신학생 양성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책임있는 자유 강조하며 사제양성에도 힘쓴 큰 스승 1972년 그가 학장을 지낼 당시 신학교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여학생을 받아들인 것도 책임 있는 자유를 강조하는 그의 신념과 무관치 않다. 60년을 사제로 살아온 백 신부가 여전히 신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틀을 벗어나지 말고 규칙을 잘 지키라"는 것이다. "이런 신부가 돼라, 저런 신부가 돼라, 얘기해봤자 소용 없어. 어차피 다들 알아서 잘 크더라고. 다만 사제로서 신자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일지 잊어선 안 되지. 아, 그리고 공부는 즐기면서 해야 해." 요즘 그의 하루 일과는 기도와 걷기가 전부다. 점심엔 한강을, 저녁엔 성북천을 따라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겨울엔 스키, 여름엔 테니스를 즐겨 '동키하테' 신부로도 잘 알려진 그는 인터뷰가 있기 이틀 전에도 스키장을 찾아 질주했을 만큼 건강을 자랑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빗겨갈 수는 없었다. "스키장에서 옷을 갈아 입고 거울을 봤는데, 아이고 웬 늙은이가 서 있는 거야. 내가 이렇게 늙었나 도저히 못봐주겠더라고. 마음은 아직 젊은데 말이야. 그래도 이만큼 활동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은혜지 뭐. 더 바라는 것 없어." 백 신부에게 회경축을 맞는 특별한 소감을 기대한 것이 애초 잘못이었다. 더 바랄 것 없는 삶, 자기 자신에게 할 만큼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백 신부에게는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이었다 .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3.27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4) ]16. 콘스탄츠 공의회(1414~18년)<하>](//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260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4) ]16. 콘스탄츠 공의회(1414~18년)종교개혁가들 단죄하지만 불씨는 남아화형 당하는 얀 후스. 후스의 추종자들은 이에 격분해 후스파를 결성했고 마침내는 후스 전쟁을 일으켰다. 출처=한국가톨릭대사전■ 이단 문제 콘스탄츠 공의회가 이단 문제를 다룬 것은 피사 교황 요한 23세의 탈출과 체포, 폐위 등으로 좀 어수선하던 1415년 4월~6월이었습니다. 핵심 대상은 영국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1330?~1384)와 그의 사상의 핵심 추종자로 지목된 보헤미아의 얀 후스(1369?~1415)였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이미 20년이 넘었고 또 영국에서 이미 여러 번 단죄받은 바 있는 위클리프 문제를 공의회가 다시 다룬 것은 그의 사상이 얀 후스를 비롯한 보헤미아(유럽 중부 현 체코 공화국 일대) 교회 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부이자 옥스포드 대학 교수를 지낸 위클리프는 성경을 모든 교리와 제도의 원천으로 제시하면서 성경에 직접 토대를 두지 않은 것을 전부 거부했습니다. 교황 권위와 수도회를 부정하고, 대사와 고해성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제들의 재산 소유를 비판하며 극단적 청빈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특히 성체성사의 실체변화를 부정하고 축성된 후에도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미 그의 생전인 1382년 런던 교회회의에서 24개 주장이 단죄받으면서 그의 저작들은 금서로 공포됐습니다. 또 그가 죽은 후인 1388년과 1397년에도 그의 주장은 단죄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교회 개혁과 민족 운동으로 꿈틀거리던 보헤미아 지역 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프라하 대학 교수이자 나중에는 총장까지 지낸 얀 후스 신부가 있었습니다. 후스는 프라하 대학에서 위클리프의 저서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했을 때 공공연히 위클리프 편을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관할 대주교에게서 설교 금지와 성무 정지를 당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후스는 성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성경을 최고 규범으로 삼으면서 제도 교회의 폐해를 비난하고 영적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는 1415년 5월 제8차 전체회의에서 위클리프가 내세운 45개 명제를 이단으로 단죄한 데 이어 제15차 전체회의에서 위클리프를 이단자로 선언하면서 그의 주장이 담긴 저서들을 소각토록 했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가 이단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보헤미아 얀 후스는 이미 콘스탄츠에 있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공의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시지스문트가 안전을 보장한 데다가 후스 또한 자신의 주장이 이단이 아님을 공의회에서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의회 개회에 맞춰 콘스탄츠에 내려온 후스는 그러나 한 달이 조금 지나 도미니코 수도원에 감금되고 맙니다. 공의회는 얀 후스에 대한 재판을 통해 후스의 주장 중 30개 항을 뽑아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그 몇 가지를 보면 △베드로는 거룩한 가톨릭교회의 머리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교황의 품위는 황제에게서 기원하며 교황의 임명과 제정은 황제의 권위에서 나왔다 △품행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나 베드로의 대리자가 아니다 △교회적 순종은 사제들이 만들어낸 것이지 성경의 권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위클리프의 45개 명제에 대한 단죄는 비합리적이고 부당하며 가톨릭적이 아니다 △대죄 상태에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세속의 군주, 고위 성직자, 주교가 아니다. 후스는 자신의 주장이 결코 이단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또 이단적 주장을 철회하라는 권유에 대해서는 철회할 것이 없다고 거부합니다. 공의회는 결국 제15차 전체회의에서 후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화형선고를 내립니다. 후스는 그날로 국가 법집행기구에 넘겨져 화형당합니다. 공의회는 또 당시 보헤미아 지방에서 유행하던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를 금지하면서 평신도에게 양형 영성체를 해주는 사제를 단죄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공의회는 후스를 변호하러 콘스탄츠에 와 있던 동료 히에로니무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화형에 처합니다. 또 공의회를 앞두고 '포악한 군주가 있다면 그 폭군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웠습니다. 공의회는 이 문제를 다룬 끝에 '폭군에 대해 아무나 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신앙과 윤리에 어긋나는 오류이며, 국가와 국왕에 대한 불충이라며 단죄했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는 1418년 4월 22일 교황 마르티노 5세 주재 하에 45차 전체회의를 끝으로 폐회합니다. 이로써 공의회는 3년 6개월의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성경을 최고로, 제도교회 비난한 위클리프 이단자그의 사상 추종자 후스와 히에로니무스 화형시켜추후 후스파 결성돼 무장봉기, 10년간 후스 전쟁■ 공의회 결과와 그 이후 교회사에서 16번째 세계 공의회인 콘스탄츠 공의회는 40년 가까이 계속된 교회 대 분열을 종식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비뇽 교황이었다가 공의회에서 폐위된 베네딕토 13세는 아라곤 국왕 영토인 발렌시아 페니스콜라 성에 머물면서 1423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합법적 교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사망한 후 아비뇽 추기경들은 후임 교황으로 클레멘스 8세(재위 1423~1429)를 선출합니다. 그런데 클레멘스 8세는 교황직을 사임하면서 추기경들에게 마르티노 5세를 합법적 교황으로 다시 선출토록 합니다. 이로써 이중 교황으로 인한 서구 대이교가 최종적으로 끝난 것입니다. 폐위된 요한 23세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2년 이상 감옥이 갇혀 있다가 1417년 12월 공의회 결정으로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후 마르티노 5세 교황과 화해한 그는 투스쿨룸-프라스카티의 주교급 추기경에 임명됩니다. 그리고 6개월 후 선종합니다. 그렇다면 서구 대이교 당시의 교황들 가운데 적법한 교황 계보에 있는 교황들은 누구일까요? 교회는 로마 교황들인 우르바노 6세, 보니파시오 9세, 인노첸시오 7세, 그레고리오 12세를 적법한 교황 계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가 채택한 교령 '헥 상타'와 '프레쿠엔스'는 교황보다 공의회가 우위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어서 이후 학자들 간에 논란이 돼 왔습니다. 하지만 이 교령들은 교황권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비상시기의 임시 방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적입니다. 어쨌거나 이 공의회 우위설은 그 다음 공의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편 콘스탄츠 공의회가 얀 후스와 히에로무스를 이단으로 단죄해 화형에 처하자, 후스를 교회 개혁가로서뿐 아니라 민족 운동의 지도자로 여겨 따랐던 보헤미아 사람들은 격분합니다. 이들은 후스를 순교자로 떠받들며 후스파를 결성한 후 무장봉기를 일으키는데, 10년이나 중부 유럽을 공포로 몰어 넣었던 이 전쟁을 후스 전쟁(1420~1431)이라고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1.10.11

긴급진단 / 신자들 음주실태와 바람직한 음주문화적당히 마시면 '약' 지나치면 '독'"술은 알맞게 마시면 사람들에게 생기를 준다"(집회 31,27). 적당히 마시면 술만큼 좋은 게 없지만 지나치면 술만큼 나쁜 게 없다. 수많은 송년모임과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연말이다. 송년모임은 보통 술자리로 이어지고 과음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본당 단체모임도 예외가 아니다. 구역 모임, 형제회를 비롯한 각종 본당 모임에서도 술이 빠지는 경우가 드물다. 다른 종교 신자들보다 천주교 신자들이 술에 관대하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3년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인들 가운데 술을 가장 많이 마신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술자리가 잦아지는 연말을 맞아 신자들의 음주실태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음주문화를 모색해봤다. #성당에서 술을 마시지 마세요 수원교구 A본당 신자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성당에서 술을 마셔본 일이 없다. 주임신부가 '절제하는 삶'을 강조하며 성당 내 음주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당 행사나 잔치, 야유회가 있어도 A본당에서는 술을 구경할 수 없다. 굳이 술을 한 잔 하고 싶은 신자들은 성당 밖으로 나가서 마셔야 한다. 얼마 전에는 성당에서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바자를 열었는데 역시 술은 팔지 않았다. '성당 내 음주금지' 조치에 대해 신자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대부분 남성 신자들은 썩 내켜하지 않는 반면 여성 신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음주금지' 덕분에 남편이 술 마시는 횟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B본당도 A본당과 비슷한 이유로 지난 여름부터 성당 내 음주를 금지시켰다. A본당 신자 박 아무개(남)씨는 "본당 행사 때 술이 빠지니까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아쉽긴 하지만 신부님께서 좋은 취지로 정하신 규율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큰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본당에서 신자들에게 음주 자제를 당부하는 이유는 그만큼 신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본당 행사나 각 단체 친목회를 할 때 술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체 회합을 마치고 '2차 주(酒)회합'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주 술자리를 갖는 남성 단체도 적지 않다. #본당 행사, 단체 모임 후 술자리는 필수? 이따금씩 술자리를 가지며 친목을 다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단체 회합 후 술자리가 관행처럼 굳어졌다거나 과음을 할 때 문제가 생긴다. 회합보다 술자리가 더 길어지거나 술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 발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박 요한씨는 몇 해 전 있었던 본당 윷놀이대회 이야기가 나오면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교중미사 후 열린 윷놀이대회에서 신자들과 낮술을 마시다가 오후 2시도 안 돼 이른바 '필름'이 끊겨버린 것이다. 평소 얌전한 성격이었던 박씨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성전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까지 뱉는 '몹쓸 행동'을 했다. 물론 박씨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행히 박씨를 일찍 발견한 친한 성당 선배가 담배를 뺏고 밖으로 끌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박씨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낮술을 과하게 먹고 취해서 성전을 활보한 사람은 박씨뿐이 아니었다. 박씨는 "그 일이 있은 뒤로 성당에서는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서도 "성당 사람들과 만날 때 술자리가 없으면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중장년 신자들만 술자리를 자주 갖는 게 아니다. 청년 신자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서울대교구 C본당 청년회 각 단체는 청년 미사를 마치고 거의 매 주일 술자리를 갖는다. 이는 다른 본당 청년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당에서 술을 처음 배우는 청년도 무척 많다. #성경말씀에서 찾아본 '술' C본당 청년성가대 단장 박 베드로씨는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면서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성당 선후배들과 만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씨는 "주일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다음날 생활에 지장을 받은 적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 지구 청년모임에서 간부로 활동했던 박 미카엘씨는 그 때를 '살아오면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박씨는 "보통 회의를 1~2시간 한 후 술을 5~6시간씩 마셨다"면서 "이튿날 회사에 출근해 전날 먹은 술을 게워낸 적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개신교회는 술과 담배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천주교는 술에 대해 무척 관대한 편이다. 장재봉(부산가톨릭대) 신부는 저서 「소곤소곤 이게 정말 궁금했어요」에서 "성경은 인간의 먹거리를 간섭하지 않으며 오히려 '먹거나 마시는 일'로 아무도 심판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콜로 2,16)"면서 "하느님은 인간이 감사하게 먹는 행위라면 술과 담배를 따지지 않으신다"고 설명했다.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취한 채 너의 길을 걷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토빗 4,15), "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고통 받는 모든 이의 권리를 해치게 된다"(잠언 31,5), "술을 지나치게 마신 자는 기분이 상하고 흥분하여 남들과 싸우게 된다"(집회 31,29). 교회는 술을 마시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성경에서 지나친 음주를 경고하는 구절은 수없이 나온다. 즉 술을 마시더라도 과하지 않게, 적당히 마시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시더라도 적당히 술자리 대신 문화활동으로 신자들 간 친교를 다지는 본당도 있다. 서울대교구 역촌동본당(주임 김민수 신부) 몇몇 구역은 구역모임이 끝난 후 술을 마시던 관례에서 벗어나 연극을 관람하고 차를 마시며 구역모임을 실시해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얼마 전에는 김민수 주임신부의 권유로 '술 없는 본당 야유회'를 열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본당 4구역 총무와 청년분과장을 맡고 있는 김대수(니콜라오)씨는 "본당 단체는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마음으로 활동을 마치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술자리로만 친목을 다지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신자나 새로운 신자가 기존 단체에 들어가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는 "술자리를 아예 금지하자는 말은 아니다"면서 "가끔 맥주 한 잔 정도 하며 술자리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모임이나 활동을 마친 후 으레 술자리를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원교구 D본당에서 성인 복사단장과 쁘레시디움 단장을 맡고 있는 최인걸(아우구스티노)씨는 모임을 마친 후 회식을 할 때면 마실 술의 양을 미리 정해 놓는다. 보통 복사단(8명) 회식 때는 소주 2병, 쁘레시디움 회식 때는 생맥주 500cc 한 잔씩이 '정량'이다. 아무리 회식 분위기가 좋아도 절대 술을 더 주문하는 법이 없다. 최씨는 술을 더 먹자는 단원이 있으면 "취하도록 마시고 싶으면 집에 가서 혼자 먹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신자들 모임에서는 절대 술이 중심이 되면 안 된다는 게 최씨 지론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와 가장 어울리는 게 바로 술이다. "마셔야 할 때에 적절하게 마시면 술은 마음의 즐거움이요 영혼의 기쁨이다"(집회 31,28)는 성경 말씀처럼 술은 적당히 마시면 즐거움을 주고 인간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연말에 본당 단체 송년모임을 계획하고 있는 신자들은 '과유불급'을 꼭 기억하자.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1.12.13

'학교폭력' 대구 자살 중학생 어머니 임지영씨 "집단 괴롭힘 피해자 없는 세상을 위해…" 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은 임지영 교사는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한명의 학생이라도 구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냈다. 권승민군 책상 위에는 권군 사진과 형 친구들이 접어준 종이학이 놓여 있다.학교폭력 비극 알리려 「…길었던 하루」펴내아들 잃은 슬픔 딛고 모든 학생을 자녀로 품어따돌림 당하는 학생 도우려 상담 공부도 준비 지난해 12월 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자살했다. A4용지 두 장에 연필로 써 내려간 유서가 공개됐다. 친구들이 물 고문과 구타를 하고 돈을 갈취했으며, 라디오 전선을 목에 묶고 끌고 다녔다는 내용이었다. 가족 몰래 매일매일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며 한탄했던 권승민군 자살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성세대는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했고, 정부는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종교인들은 인간교육의 소중한 배움터가 병든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14살 된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 엄동설한을 견뎌낸 권군의 어머니 임지영(젬마, 49)씨를 6일 대구 수성구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경북 영천의 금호중학교에서 가정을 가르친다. 임씨는 최근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형설life)를 펴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부터 가해 학생들이 징역형을 선고받기까지 고통의 나날을 샅샅이 기록한 책이다. "처음 아들의 시신을 보고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장례가 끝나는 대로 아들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임씨는 "하지만 내가 버티고 있어야 학교폭력 피해자를 도울 수 있다"면서 "한 명에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라고 담담히 말했다. 요즘도 수면유도제를 복용하는 임씨는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망연자실한 채 몇 달을 보냈다. 아들이 등교하지 않고 서성이다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후, 임씨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꺽꺽 울다가도 멍해지는 순간이 많았고 음식은 먹는 족족 토했다. 운전을 하다가도 아들 생각이 나면 차를 세워놓고 울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인 큰 아들은 가해 학생들을 죽여버리겠다며 주먹으로 벽을 쳤다. 임씨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통곡했다. 윤리교사인 남편은 더 이상 학생들 앞에 설 수 없어 퇴직했다. "우리 아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착한 아이였어요. 아파트에서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보면 도와드리고, 찐빵이라도 사오면 꼭 경비아저씨에게 드리던 아이였는데…." '왜 내 아들이냐'고 하늘을 원망한 임씨는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성당을 남편과 함께 찾아갔다. 기도하고 싶었다. 부부는 성당에서 수녀를 만났고 자살한 학생이 우리 아들이라고 털어놨다. 이들 부부와 함께 울어준 수녀는 본당 신부를 만날 것을 권했다. 며칠 후 최경환(대구대교구 욱수본당 주임) 신부는 이들을 만나 작은 나무십자가를 손에 쥐여줬다. 부부는 십자가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십자가에는 "용기를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는 성경구절이 쓰여 있었다. 1월 초 조환길(대구대교구장) 대주교가 묵주와 시집을 들고 가정을 방문했다. 조 대주교 기도에 부부는 큰 위로를 받았다. 매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임씨는 이날 처음으로 잠을 잤다. 임씨는 이번 사건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받았다. 본당 신자들 기도가 쏟아진 것은 물론 알지 못하는 이들이 승민이에게 많은 편지를 보내왔다. 경찰서에 시민들 항의 전화가 빗발친 덕(?)에 경찰조사는 수월했다. 책이 세상에 소개되면서 학교폭력 피해 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위로 전화도 받았다. 임씨는 학교폭력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집으로 초대해 아픔도 나눴다. "우리 승민이를 데려가신 것은 하느님 뜻이에요. 하느님이 우리 아들을 이렇게 쓰시려고 보내신 것 같아요." 임씨는 법정에서 가해 학생들을 처음 봤다. 죄수복을 입은 채 고개 숙인 옆모습이었다. 임씨는 최 신부가 준 십자가를 손에 쥐고 재판 증인으로 나갔다. 가해 아이들을 용서할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던 그는 기자들에게 "인신공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가해 학생의 신상을 파헤치지 말라"고 했다. 가해 학생 2명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각각 장기 3년에 단기 2년 6개월, 장기 2년 6개월에 단기 2년의 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임씨는 "가해자는 정당한 벌을 받고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란다"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이런 피해를 입히려고 곳곳에서 기회를 엿보는 독버섯을 자르는 데 남은 생을 바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첫 수업에서 임씨는 학생들에게 "나는 너희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느님이 승민이 보낸 후에 뭐했냐고 물으시면 우리 학생들 돌봤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쩌면 그것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는지도 몰라요." 임씨는 "이미 내 자식은 잃었으니 지금부터는 학교폭력으로 피해 입은 아이들을 돕겠다"면서 "그래야만 나중에 승민이를 만나도 덜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기르는 건 물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명문대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성적은 성적대로 올려야 하고, 업무는 업무대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반에 40명 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라는 것은 교사에게 가정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아들 사진을 보며 기도하는 임씨는 따돌림 당하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상담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2.09.11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16) 아버지이신 하느님 : 사랑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9/rc/390846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16) 아버지이신 하느님 : 사랑의 하느님하느님 사랑은 용서와 희생2009년 6월 29일 베드로 사도 축일을 기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 번째 회칙 「진리 안의 사랑」을 발표했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사랑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로 하느님의 약속이며 우리의 희망"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는 생명의 빵이다. 좋은 것일수록 짝퉁(모조품)이 많다. 교황은 그 점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진리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많이 닮게 된다. 교황은 이미 첫 번째 회칙으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를 선포하며 사랑이신 하느님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 가요나 시, 소설이 사랑을 주제로 다룰 정도로 사랑은 오늘날 인간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주제이며 그리스도교 신앙도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많은 경우 상대방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방을 사랑함으로써 즐거움을 찾고 그렇게 해서 사랑이 시작된다. 그 사랑의 정상은 아가페적 사랑일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코린 13, 3-7) 이 말씀에 비춰 나를 바라보면 자신이 없어진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다'고 할 때 하느님에 대해 조금밖에, 내가 사랑하는 정도밖에 알지 못하는 셈이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랑을 체험하고 있을까? 분명 사랑 체험을 한 사람은 하느님 사랑,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의 체험을 통해서도 하느님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체험한 하느님 사랑 이야기이고,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체험한 하느님 사랑 이야기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느님을 마음과 힘과 생명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제물로 바치신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또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기꺼이 돌아가실 만큼, 우리의 양식인 빵이 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희망이 되신다. 하느님 사랑 자체를 가장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은총을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기점이 된다. 성숙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사랑이 아직까지는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논리적 이성이 끼어들지 못한다. 계산도 이익도 따지지 않으며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와 논리가 있다. 하느님께 바탕을 두지 않는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인간을 충만하게 하고 온전한 본연의 상태로 이끌어 해방시키는 사랑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다. 그것은 순수하게 무상으로 베풀어지는 사랑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강요될 수 없으며 자유를 바탕으로 한다. 사랑이 결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 고독이다. 고독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수용되지 못할 때 생겨난다. 권력도 사랑에 대치된다. 권력이란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지배하는 것이기에 개방되도록 만들어진 인간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은총은 이러한 인간의 불능성에 대한 해답이다. 사랑의 한 가지 행위로 은총과 깊이 관련되는 용서가 있다. 용서는 사랑의 가장 뚜렷한 행위다. 예수님은 탕자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통해 하느님을 소개하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 뜻을 철저하게 따른 예수님은 7번씩 70번까지 용서하라고 자신 있게 권유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한 이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의 반성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용서'라는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자케오, 야곱의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 막달라 여자 마리아, 무엇보다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 집에서 베풀어진 향연에서 마리아 모습이 대표적이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용서받을 뿐 아니라 많이 용서하는 사람이다. 많이 용서받기 위해서도 많이 용서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탕자의 비유'는 끊임없는 인간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모습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이미 탕자를 용서했다. 날마다 동네 어귀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들을 용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탕자의 귀향과 '하느님 제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습니다'는 죄 고백은 아버지가 용서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귀향과 죄 고백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인에게 예수님은 "나는 네 죄를 묻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여인이 죄를 고백했는지, 회개했는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는다. 먼저 예수님이 '용서'를 말씀하셨다. 용서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용서하는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분이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사랑이 작고 작은 사랑밖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참으로 큰 신비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9.27
 웃음-인간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거울](//cpbc.co.kr/CMS/newspaper/2010/10/rc/352491_1.3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89) 웃음-인간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거울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80년 인생을 산다면 26년 잠을 자고, 21년 일을 하고, 9년 먹고 마시지만… 웃는 시간은? 겨우 20일." 한 광고 카피 내용이다. 현대인들의 부족한 웃음을 소재로 삼아 "웃을수록 행복은 더 커진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80년은 2만9000일이 훨씬 넘는 긴 시간인데, 이 긴 세월 동안 웃을 날이 겨우 20일밖에 없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속담에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웃음은 우리 삶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웃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건강과 행복을 상징한다. 웃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 웃음은 자연 진통효과가 있으며, 동맥을 이완시켜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압을 낮춘다. 또 웃음은 스트레스와 분노, 긴장을 완화시켜 심장마비를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여 감기와 같은 감염질환은 물론 암이나 성인병에 대한 저항력도 높인다고 하니 그 효과가 놀라울 따름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보통 여섯 살 난 어린이는 하루에 300번, 성인은 겨우 17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웃는 횟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웃음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니 건강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웃어볼 일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주변 환경도 빛나게 한다. 또한 기쁘고 환한 얼굴은 인간관계도 부드럽게 하고 일의 성공에도 보탬이 된다. 사람들은 찡그린 얼굴을 싫어하고 피한다. 따라서 기쁘게 웃으며 사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성경시대 사람들은 진정한 기쁨과 웃음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라고 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 이 소식을 듣는 이마다 나한테 기쁘게 웃어 주겠지"(창세 21,6). 또 웃음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거울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얼굴을 좋게도 나쁘게도 바꿔 놓는다. 행복에 싸인 마음의 기운은 밝은 얼굴에 나타난다"(집회 13,25-26). 웃음은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웃음으로 얼굴을 빛나게 하고 굳은 얼굴을 변화시킨다(코헬 8,1). 하지만 비웃음과 어리석은 웃음은 기쁨과 행복과는 정반대 의미를 지닌다. "나는 내가 준 땅에서 이스라엘을 잘라 버리고,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별한 이 집을 내 앞에서 내버리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속담 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1열왕 9,7),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솥 밑에서 타는 가시나무 소리 같으니 이 또한 허무이다"(코헬 7,6). 또 대인관계에서 거짓 웃음을 경계하라고 했다. "그와 대등하게 말하기를 삼가고 그의 장황한 말을 믿지도 마라. 그가 너를 많은 말로 떠보고 웃음 지으며 너를 자세히 살필 수도 있기 때문이다"(집회 13,11). 웃음은 신앙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웃음과 희망이 없는 고통만의 신앙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십자가 고통은 오직 부활의 환희와 기쁨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웃음은 삶의 습관이다. 웃지 않게 되면 어느덧 웃음을 잃어버린다. 작은 일에도 마음을 기쁘게 하면 늘 웃는 얼굴이 된다.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웃을 때 가장 기뻐하시지 않을까?조은일2010.10.05
![[출판]토빗기 인물들과 희망의 길 걸으세요](//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3734_1.0_titleImage_1.jpg)
[출판]토빗기 인물들과 희망의 길 걸으세요바오로딸출판사 '사술절에 읽는 토빗 이야기' 펴내 2월 22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바오로딸출판사는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앞두고 사순절 묵상집 「사순절에 읽는 토빗 이야기」(안드레아 슈바르츠 지음/현대일 옮김/6500원)를 출간하고, 이 책으로 묵상할 수 있는 영적 프로그램 '천사와 함께 걷는 40일'을 함께 제공해 눈길을 끈다. 구약성경의 토빗기는 하느님 섭리가 인간 삶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무한한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라파엘 천사의 동행은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일깨워준다. 토빗기가 말하는 은총과 희망은 토빗기 등장 인물들 이름에서도 나타나는데, 토빗은 '주님께서는 좋으시다',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셨다', 아자르야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다'는 뜻이다. 「… 토빗 이야기」는 포로가 되고 시력을 잃는 등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토빗과 토빗 집안의 길잡이가 돼준 라파엘 천사 등 토빗기 등장 인물들 여정을 담았다. 책은 토빗기 구절과 해설, 실천적 제안, 묵상시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독자들이 사순시기 동안 토빗기를 날마다 묵상하고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사순절 실천표'도 함께 실었다. 출판사는 또 책을 활용한 영적 프로그램 '천사와 함께 걷는 40일'을 인터넷(www.pauline.or.kr/special/ritual/08feb/sasunyoung_1)과 QR코드<사진 아래>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개인 묵상은 물론 소공동체나 구역 반모임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공동체 묵상, 본당 차원에서 사순피정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짧은 마무리 피정 등 묵상과 피정 방법, 기도문, 기도지향, 성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출판사는 "사순절을 준비하는 본당과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같은 책과 영적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면서 "40일 동안 날마다 토빗기를 읽고 등장 인물들과 희망의 길을 걸으며 부활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박수정2012.01.31

800여 개 언어로 된 성경 수집한 언어학자 김동소 교수 "인류의 소중한 문학작품이죠"대학시절부터 40년 가까이 800여 개 언어로 된 성경을 수집해온 김동소 교수가 성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성경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문학작품입니다. 지난 2000년간 성경의 일부라도 번역된 언어 수는 2400여 개가 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돼 가장 많이 읽혀온 책이지요." 비교 언어학자 김동소(야고보, 67, 전 대구가톨릭대 국어국문학) 교수가 집안 곳곳에 성경으로 가득 찬 책장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다. 재산 목록 1호 '성경' 제주 방언 성경부터 독일어 방언 성경, 히브리 문자로 쓰여진 아라비아어 성경, 일본어 방언 성경, 인도 남쪽의 말라야람어 성경 등 각양각색의 문자로 쓰여진 성경이 무려 870여 권이나 꽂혀 있다. 이 중에는 1850년 러시아에서 발간한 몽골어 성경, 18세기 중국 청나라에서 번역된 만주어 성경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희귀본 성경도 있다. 그야말로 성경 박물관이다. "세계의 언어와 문자 자료를 가장 효율적으로 모으는 방법은 각국어 성경을 모으는 것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세계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40년 가까이 각국어 성경을 수집해온 그는 경북대 사범대 재학 시절 우리말 성경을 읽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어를 시작으로 라틴ㆍ그리스ㆍ일본ㆍ독일ㆍ중국어 성경을 구입했다. 대학원에 입학해 비교언어학을 공부한 그는 연구자료로 성경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여행을 가면 먼저 그 나라에서 출판된 성경을 구하러 다녔다. 헌책방은 물론 외국인 신부를 통해서도 성경을 수집했다. 1980년대 인도 뉴델리의 한 대학으로 파견 근무를 갔을 당시, 인도 성서공회에서 성경을 자동차 한 대에 가득 싣고 왔던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성경을 어렵게 구할 때마다 기쁨과 환희를 느낍니다. 성경을 찾아 떠나는 세계 일주까지 계획했었어요. 하하." 그가 소장하고 있는 870여 개 성경 중 500여 개는 로마문자로 쓰여져 있다. 1851년 출간된 네덜란드어 성경에는 교리 문답도 실려 있다. 전 세계 민족의 얼과 관습,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대구 방언 성경 펴내고 싶어 그가 희귀본으로 소장하고 있는 만주어 성경은 1982년 일본 훗카이도 대학에서 연구 교수로 머물 때 마이크로필름으로 구해온 성경 원고다. 김 교수는 이 만주어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 성경 원고가 프랑스 출신의 루이 드 푸와로(Louis de Poirot, 1735~1813) 신부의 번역임을 논문으로 밝혀냈다. 18세기 중국 청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한 푸와로 신부가 청나라 당시 공용어였던 만주어로 성경을 번역했지만 출판되지 못했다. 지난 2008년 퇴임한 후 경북대에 연구실을 얻어 만주어 성경 역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역주가 완성되면 30여 권 분량의 책이 될 듯하지만, 죽기 전에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살아있는 한 계속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분도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 일을 한 적도 있는 김 교수는 요즘 매주 대구 남산동 가톨릭대 신학원 강의실에서 성서학자 신부와 신학생 및 평신도와 함께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히브리어 구약성경, 라틴어 성경을 읽고 있다. 수집한 성경들을 재산 목록 1호로 삼고 있는 김 교수는 "수집한 성경 자료를 바탕으로 「각국어 성경으로 보는 세계의 문자와 언어」라는 대중적인 책도 집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방언학자와 함께 대구 방언으로 된 성경도 편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0.11.16

서울대 캠퍼스에 신앙의 꽃 활짝서울대학교 사목 현장을 찾아서지난 3월 조규만(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대리) 주교가 주례한 서울대 개강미사에는 학생, 교수, 직원 등 150여 명이 참례했다. 서울대에는 가톨릭 학생 동아리가 12개나 된다. 중앙 동아리인 가톨릭학생회 '울톨릭'에서부터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공동체 '피아트', 교내 주일미사 봉사모임과 성가대 '사과나무 중창단', 청년 성서모임, 소공동체 기도모임이 있다. 또 음대 '뮤즈피아트', 경제학부 '피아티콘', 법대 및 법학전문대학원 '버톨릭', 행정대학원 '행ㆍ가ㆍ래' 등 단대별로도 모임이 형성돼 있다. 교수협의회 '하상바오로회'와 직원 모임 '대건회'까지 합하면 한 학교 내에 가톨릭 공동체 14개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대부분 대학교에 가톨릭 동아리가 한두 개 정도 활동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또 각 동아리들은 이름만 내건 단체가 아니라 신앙으로 똘똘 뭉쳐 활동하고 있다. 피아트는 평일 오전 8시, 낮 12시, 오후 6시 하루에 3번 모여 기도 모임을 가질 정도다. 지난해에는 '서울대 사목' 담당으로 낙성대동본당 김성훈 주임 신부가 임명돼, 공동체에 구심점이 생겼다. 김 신부는 한 달에 한 번 각 동아리 대표자들과 만남을 가지며 공동체간 화합을 도모했다. 또 손님 신부가 집전하던 주일 교내 미사도 직접 주례해 학생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본당 진형란(마리앙즈, 성가소비녀회) 수녀와 함께 학생들 영성 지도에도 힘쓰며, 학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늘 귀를 열어뒀다. 김 신부는 "학생들이 공부하랴 다른 동아리 활동하랴 바쁠텐데도, 스스로 모여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 기특할 따름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로 학생들 상담을 맡고 있는 진 수녀는 "기도 모임한다고 가방에 성모상과 십자가, 성경, 초를 넣고 다니는데 예뻐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고 거들었다. 김 신부는 현재 본당 신자들 후원을 받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1년간 도서구입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올해 7명의 학생들이 1학기에 40만 원씩 1년에 80만 원을 지원받는다. 김 신부는 "장학금까지 주면 좋겠지만 워낙 본당 규모가 작아 많이 도와주지는 못해 아쉽다"면서 "본당 주임사제가 대학사목 담당이니 이런 혜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대 사목 담당 사목자가 생겨 가장 기뻐하는 이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담당 신부님이 계시다보니 언제든 찾아뵐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면서 "신부님 덕분에 공동체간 친목도 더 돈독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사과나무 중창단장 박해동(요한 세례자, 서울대 대학원 재료공학부)씨는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공동체 활동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챙겨 모르는 학생이 없으시다"면서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에겐 큰 힘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