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 '성탄 교리교육 꾸러미'를 특집주제로 △성탄 교안 완전 정복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왕 △교리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게임 한 토막 △성탄 골든벨을 소개했다. 교리 도움자료로 '사회교리란 무엇인가요?'를 실었고, 읽을거리에서는 청소년의 문제 행동과 부모의 양육 태도를 살펴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가톨릭 비타꼰 개그맨도 울고 갈 정도로 웃기는 웃음치료사 이미숙(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를 만났다. 「이야기 성서」를 펴낸 오정희(실비아) 소설가를 인터뷰해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명강론을 글로 읽다'에서는 서울대교구 구의동본당 박명근 주임신부의 전교주일 강론을 실었다.(마리아의아들수도회/4000원) ▨경향잡지 특별기고로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교회'를 실었다. 바티칸통신에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폐막 소식을 전했고, 경향돋보기에서는 2012년을 돌아보며 △왜 지금 경제민주화인가?(선대인)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박광용)를 다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 한국교회 사적지 순례에서는 볼리외 성인 발자취가 남아 있는 수원교구 하우현본당 역사를 다루며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옛 사제관과 1965년 신축한 성당에 얽힌 이야기도 소개했다. 지난달 열린 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다산 정약용과 서학 및 천주교와 관계'를 지상중계했다.(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 지난달 정부 초청으로 방한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연구의 세계적 석학 스테파노 자마니ㆍ베라 자마니(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 부부를 인터뷰했다. 올해 여름 마리아폴리에서 발표된 경험담 3편을 소개했고, 성탄특집으로 성탄동화 '초보 산타 시몬'을 게재했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영성으로 △신앙의 여정 재발견(권혁주) △교회 전례 안에서의 마리아(맥그리거/하성환) △신앙의 해와 새로운 시작(신호철) △아름다운 사랑 고백(김태현) △프랭크 더프의 생애와 활동(이재호 역)을 실었다. '궁금해요, 가톨릭교회 교리!'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은 왜 준성사를 사용하는가?'를 다뤘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 아침뜨락에서는 강석진(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가 한 해를 보내며 자신을 성장시킨 일화를 들려줬다. 영성 에세이로는 △내가 곧 오겠다-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아버지에게 오라-성탄은 예수님만의 일이 아닙니다를 소개했고, 한 달간 복음말씀과 묵상글을 영한대역으로 실었다.(가톨릭출판사/3000원) ▨사목정보 특별인터뷰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를 만났다. '공의회 반세기, 길 위의 한국교회'를 특집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화와 평신도 영성, 수도생활, 한국교회 현실 등을 살펴보며, 정하권 몬시뇰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5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에 대한 제언을 실었다. 시론으로는 '대통령 만들어 세우기'(이순성)를 게재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 특집주제로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다루며 가족과 이웃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과 고마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글들을 소개했다. 양승국 신부의 기도레슨에서는 '구유 앞에서 드리는 묵상' 기도를 통해 아기 예수, 마리아, 요셉 등 구유 속 인물들을 바라보며 묵상한 내용을 소개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소년 성탄특집으로 성탄트리 꾸미기와 성탄동화 '아기 예수님을 만나요'를 담았다. 특별부록으로는 2013년 가톨릭 어린이 달력을 준비했다. 부모님과 함께보는 영화에서는 발레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담은 '퍼스트 포지션'을, 세기를 빛낸 거룩한 사람에서는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를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 포콜라레 회원으로 20년째 종교간 대화에 힘써온 한미숙(코린)씨를 만났다. '교회와 사회'에서는 황세현 변호사가 기업회생제도에 관해 살펴봤고,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는 송봉모(예수회) 신부가 '바오로의 회심 사건'을 해설했다. 표정이 있는 풍경에서는 제주시 민속 오일시장을 찾아갔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 탤런트 김현주(마리 데레사)씨를 만나 가톨릭 신자가 된 사연과 봉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집으로 '희망을 먹고 자라는 기다림'을 주제로 △대통령 선거를 기다리며, 어머니께 △하느님의 '사랑해'가 될 날을 기다리며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 10개월 △주께서 쓰실 그날을 게재했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박수정 기자박수정2012.11.27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상)](//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04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상)오늘날 신앙 위기 진단과 해답 통한 신학적 전망 제시요제프 라칭거(오른쪽)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한 주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라칭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기간에 독일 퀼른대교구장 요제프 프링스(1887~1978) 추기경의 주요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CNS] 2013년의 가장 중요한 교회의 키워드는 바로 '신앙의 해'다. 지난 2월 말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가 선포한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개최 50주년을 기념해 2012년 10월 11일에 개막했고, 오는 11월 24일에 폐막한다. 신앙의 해 선포라는 세계 교회 차원의 기획은 현대 세계의 전반적인 교회 위기 상황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됐기에,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신자들 신앙 열정을 북돋우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신앙의 해 선포에서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의 신학 사상이 그 이론적 기본 토대로 작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현대 세계에서 신앙인이 겪게 되는 갈등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과제는 베네딕토 16세가 일생 동안 추구해왔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즉, 과거 신학자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던 때까지 모든 기간을 관통하는 베네딕토 16세의 일관된 신학 사상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의 상태와 신학의 흐름에 관한 베네딕토 16세의 문제 제기는 과연 무엇인가. 베네딕토 16세는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ger, 1927~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신학자 시절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1968)을 펴냈다. 베네딕토 16세는 초판 머리말에서 유명한 '행운의 한스' 이야기를 제시한다. 한스는 운 좋게도 금덩어리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자신이 갖고 있던 금덩어리가 너무 무겁고 짐스럽다고 여겨 다른 것들과(처음에는 말 한 마리, 그 다음에는 소 한 마리, 그 다음에는 거위 한 마리, 마지막으로 숫돌 한 토막) 하나하나 바꾸다가, 결국 마지막 남은 숫돌 한 토막마저도 물에 던져버린다는 이야기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이야기를 통해 "황금에서 숫돌로 이끄는 경향을 조장"하는 흐름을 비판한다. 현대 세계에서 소중한 신앙 유산과 교회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현대화 흐름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몰지각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신앙의 요구를 단계적으로 풀어헤친 결과, 아무것도 소중한 것은 잃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한 단계를 더 내려와도 못 느낄 만큼씩은 무언가 잃어 온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그저 믿는 마음으로 자꾸 바꿔 나가며 한 해석에서 다른 해석으로 이끌려 나온 가엾은 한스는, 크리스천은 결국 오래지 않아 처음에 가졌던 황금 대신 이제는 숫돌 한 토막만 손에 들고 있게 되었고 그것마저도 던져 버리라고 마음 놓고들 권유하게 된 것이 아닐까"(12~13쪽). 베네딕토 16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기간에 독일 쾰른대교구장 요제프 프링스(1887~1978) 추기경의 주요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이 경험을 토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배경과 과정을 설명하는 해설서를 내기도 했다. 1963년부터 독일 뮌스터대, 1966년부터는 튀빙겐대, 1969년부터 레겐스부르크대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1976년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됐고, 1977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1981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하다 2005년 교황으로 선출, 올해 2월 말 자진 사임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가장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기본 저서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이다. 1968년 처음 출간된 이 책에는 오늘날 신앙 위기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와 해답이 어느 정도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책은 다음과 같은 머리말의 문제 제기로 시작한다. "그리스도 신앙의 내용과 의의가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은 오늘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둠과 불안에 싸여 있다"(12쪽).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오늘날 신앙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데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의 의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서 인간 실존을 가능케 하는 길로서 신앙을 다시 이해하려는 데 있다. 정신적 공백을 억지로 감추려는 한갓 빈말로 신앙을 변조하자는 게 아니라 신앙을 진지하게 풀이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13쪽). 그리스도 신앙 고백의 집약이며 그리스도교 입문을 위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사도신경'의 기본 구조를 따라 신학적 고찰을 제시하는 이 책은 베네딕토 16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신학 자문위원 역할을 마치고 독일 튀빙겐대 신학 교수로 활동하던 1967년 여름학기 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으로 1968년 독일어로 처음 출판됐다. 많은 이가 이 책을 요제프 라칭거의 최고 저서로 꼽는데 주저치 않는다. 2000년에는 긴 서문과 함께 새로운 독일어 개정판이 발간됐다. 국내에서는 1974년 분도출판사를 통해 처음 번역됐고(장익 주교 번역), 새 번역판은 2007년 출간됐다. 이 책은 오늘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집중 조명한다. 미국의 유명 가톨릭 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바티칸 통신원 존 알렌은 "이 책은 현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의구심과 불신 앞으로 용기 있게 걸어가는 심원한 인간 경험을 통해 신앙을 고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책의 의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 인간 실존의 기본 근저로서 신앙의 의미를 재발견하려는 데에 있다.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이다. 책이 상당히 난해한 신학 내용을 담고 있어 완독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을 잘 제시하는 이 책은 신앙의 해를 선포한 뜻과 의도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은 기초신학과 교의신학적 측면, 특히 신론과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여러 신학적 전망과 쟁점을 제시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책은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 전개되는데, 주로 성부와 성자에 관한 신앙고백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2000년 신판의 머리말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서인 이 책의 핵심이 "하느님에 관한 물음과 그리스도에 관한 물음"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하느님에 관한 물음과 그리스도에 관한 물음을 중심에 놓고, 하나의 '서술적 그리스도론'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교회 안에서 신앙의 자리를 제시"(37쪽)하는 데에 있다. 한편, 성령과 교회 그리고 종말에 관한 신앙고백이 담긴 부분은 매우 짧게 다뤘다. 신앙고백 부분에 대한 해설은 한국어 번역판(2007년)의 총 363쪽 중 31쪽에 불과하다. 물론 중요한 신학적 전망을 짧게나마 제시하고 있지만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다 상세한 해설이 필요하다. 베네딕토 16세의 신학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중심으로, 이후 주교와 추기경,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교황을 지내며 발표했던 모든 공식 교회 문헌과 개인 저작물에서 드러나는 연속성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글은 교회 교도권 가르침을 분석하기보다는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특별 연재에 속하기에, 추기경과 신앙교리성 장관 등 교회 교도권 직무를 공식적으로 수행하기 이전인 요제프 라칭거라는 개인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까지로 다루는 범위를 국한할 것이다. 2000년 신판의 긴 머리말을 포함해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드러나는 신학적 기조 사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 후속 과제는 무엇인지, 그것이 특별히 신앙의 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기본 목적이다. 다만, 베네딕토 16세의 가장 최근 저서인 「나자렛 예수」 1~3권은 따로 다룰 것이다. 「나자렛 예수」 1권 서문에서 베네딕토 16세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절대로 교도권 차원에 속하는 공식 문헌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의 얼굴'(시편 27,8 참조)을 찾는 개인적인 탐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누구든 내 견해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나는 그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부탁할 뿐이다"(24쪽). 「나자렛 예수」는 그리스도론의 흐름 속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쩌면 1968년 저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적 전망의 후속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20세기 대표적 가톨릭 신학자 요제프 라칭거에 관한 총 3회 연재 중 이번 소개에 이어 두 번째 연재에서는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 나타난 신학적 기조 사상을, 마지막으로는 「나자렛 예수」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적 전망을 소개하겠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1992년 수품(서울대교구) ▲2004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교의신학 전공. 신학박사. ▲현재 가톨릭대 성신교정 및 생명대학원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 ▲주요논문 :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에 관한 식별-교의신학적 원리들(2006), 성경과 전승의 관계에 대한 해석학적-조직신학적 고찰(2007),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의 현대적 흐름과 쟁점-종교 다원주의 맥락에서(2009) 등 14편 ▲저서 : '박준양 신부와 함께하는 신학 여행 시리즈'(생활성서사, 6권) 퇴사자22013.05.14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2.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4> 기쁜 신앙생활의 초석, 기도](//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00_1.2_titleImage_1.jpg)
[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2.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 기쁜 신앙생활의 초석, 기도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기도, 튼튼한 신앙생활의 비결 인천교구 총대리 정신철 주교는 최근 교구가 주최한 '청년 토크 콘서트'에 일일 강사로 나서서 무엇보다 기도하는 습관을 강조했다. 정 주교는 바쁜 일상 때문에 기도생활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시간대별로 나열해보고 과연 정말 잠시라도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할 시간이 없는지 돌아보라"며 "기도와 미사 참례를 비롯한 모든 신앙생활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조언했다. 정 주교는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기도생활'이 우선돼야 한다며 하루 단 5분이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며 성당 밖 신앙생활도 튼튼히 하자고 했다. 신앙의 해 중반을 넘어서면서 신앙생활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기도하는 삶의 중요성을 짚어보기 위해 인천 교구청에서 정 주교를 만나 기도에 관해 물어봤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기도 의미를 되새긴다면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자 만남이며, 하느님께로 나아감이다. 기도는 어디서든 주님과 만나게 해준다. 그런데 바쁜 현대인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눈에 띄는 결과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즉각적인 답이 없는 기도는 재미없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도의 효과를 금방 바라기보다 신앙의 초석을 닦는 차원의 기도 연습이 필요하다." -기도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잘 안 된다 "즉각적인 응답을 바라기 때문이다. 또 그 응답이 자기 뜻에 꼭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느님 뜻이 결실을 맺도록 내 뜻을 내어놓고 맡기는 행위다. 기도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과 범주를 내려놓아야 한다. 나도 기도할 때 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해주소서'라고 먼저 청한다.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 기도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든 일의 우선에 기도를 둬라. 아침ㆍ저녁으로 짧게 성호를 긋는 것부터 시작하라. 기도도 연습이고 습관이다. 나중엔 성호만 긋는 게 죄송해서 주모경을 외우고, 묵주기도를 바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기도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현대인에게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다. 스마트폰 게임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묵주를 손에 쥐어보라. 한알 한알 기도하다 보면 저절로 주변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기도의 힘이다. 예전에는 성당에서 기도문을 외우라고 강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에는 기도에 습관을 들이기 위한 이유가 있었다. 기도문도 반복해 외우다 보면 깊은 의미가 새겨진다." -주교님은 어떤 기도를 바치시는지 "주교가 된 이후 교구를 위해, 특히 교구 사제단을 위해 늘 기도한다. 또 병환 중에 있는 사제나 신자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또 주교회의 해외선교ㆍ교포사목위원장으로서 사목의 불모지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한다. 시기에 따라 지향이 다르기도 하다. 현재 긴장상태에 놓인 남북 관계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은 "1994년부터 8년간 프랑스에서 홀로 유학하던 시절, 공부에 한참 치이며 기도하던 때가 생각난다. 머릿속이 온통 공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기도가 기도가 아니더라. 하지만 문득 모든 것 다 떠안고 앉아 있는 자체도 기도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두 손 모으는 것만 해도 기도인 것이다." -기도에 습관을 들이라고 강조하셨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와 지향이다. 기도가 습관화되려면 의지의 무의식화가 돼야 한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무의식적 의지로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무조건 많이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일상 속 십자성호와 화살기도는 기도 습관의 첫걸음이다."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면 "복자 마더 데레사 수녀의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란 기도와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좋아한다. 자신을 도구로 써달라는 데레사 수녀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는 우리가 주님 뜻에 맞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해준다."-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아침과 저녁 기도시간을 정해두고 이를 꼭 지켰다. 저녁까지 놀다가도 시간 맞춰 집에 뛰어들어가 함께 기도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 삶 안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자각을 심어주는 것이 기도다. 최근 김연아 선수가 묵주반지를 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김연아 반지'라고 하더라. 신앙의 또 다른 세속화다. 우리가 낀 묵주반지가 단순한 액세서리가 되지 않도록 신앙의 해에 기도하며 하느님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하자."<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마더 데레사> 존경받으려는 욕망에서사랑받으려는 욕망에서칭찬받으려는 욕망에서명예로워지려는 욕망에서찬양받으려는 욕망에서선택받으려는 욕망에서신뢰받으려는 욕망에서인정받으려는 욕망에서인기를 끌려는 욕망에서모멸받는 두려움에서경멸받는 두려움에서질책당하는 고통의 두려움에서비방당하는 두려움에서잊히는 두려움에서오류를 저지르는 두려움에서우스꽝스러워지는 두려움에서의심받는 두려움에서저를 자유롭게 해주소서. 오, 주님! 제 마음도 당신처럼 되게 하소서.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사랑받게 하소서.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존경받게 하소서.주님! 이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도록 저에게은총을 베푸소서.저는 젖히시고 다른 사람들이 선택받게 하시고저는 눈에 띄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찬양받게 하시고모든 일에서 저보다 다른 사람들을 택하여 주시고제가 거룩해지려 하는 만큼저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거룩하게 하소서.<서울 청년성령쇄신봉사회, 성령세미나 현장 탐방>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임마누엘 하느님 체험 성령의 은총을 받은 청년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1테살 1,6)는 구절처럼 성령께서는 기도하는 젊은이들에게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갈라 5,22)의 열매를 가득 부어주신 것 같았다. 서울대교구 청년성령쇄신봉사회 '루하(Ruah)'는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CYC)에서 청년 성령세미나를 개최한다. 5월의 첫 금요일인 3일 저녁 성령세미나 현장을 찾았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소감은 한결 같다.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시다는 확신이 들어 매우 기뻤어요."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어요." #기도와 찬양으로 찬미 저녁 7시 30분,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 (신앙에) 목마른 청년들이 하나둘 씩 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세미나에 앞서 청년들은 모두 묵주를 꺼내 든다. 콘서트처럼 신나는 찬양으로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던 기자는 조용히(?) 시작하는 성령세미나가 조금 낯설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건물 지하마다 들어선 클럽에서는 젊은이들이 비트가 강한 음악에 몸을 내어 맡기지만, 옆 건물에서는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 젊은이들이 큰소리로 주님을 찬양한다. 묵주기도가 끝날 무렵이 되자 빈 의자가 많이 줄었다. 인도자로 나선 조은진(로사, 39) 부회장이 시작에 앞서 '찬미 예수님!'하고 서로 인사를 하게 한다. 그리고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는 성경구절을 읽는다. 찬양이 시작된다.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오직 주께~ 주 경배합니다~♬'('주 앞에 엎드려') '그 사랑 주님께 모두 감사하여라.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들 모두 찬양하리니♪'('그 사랑 주님께 모두 감사하여라') 신나는 찬양에 일부 청년들은 눈을 감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조 부회장은 "힘든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거나 우리 곁에 늘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하느님께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달라고 청하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자"고 말했다. #미사와 안수로 절정 30분 가량 찬양으로 처음 듣는 생활성가가 귀에 익숙해질 때쯤 이용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담당)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가 봉헌된다. 미사에는 '취업하게 해주세요''부모님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등 청년들 고민이 지향으로 오른다. 미사 때도 찬양이 이어진다. 미사는 사제 안수로 끝을 맺는다. 이 신부는 강론에서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며 "여러분의 손과 발이 주님의 손과 발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주님과 함께하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며 "사랑 자체이신 주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난아(실비아, 32, 수원교구 광문본당)씨는 "금요일마다 성령세미나에 참석해 주님 은총과 위로를 받는다"며 "성령세미나를 통해 냉담교우였던 남편이 청년 성령세미나 봉사자로 거듭났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퇴사자22013.05.14
![[성경 속 상징] 104. 아침- 하느님과 창조사업 상징](//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656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04. 아침- 하느님과 창조사업 상징예수님은 아침에 부활하셨다. 그림은 지그 쾨더가 그린 '호숫가의 아침'.허영업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새해 아침을 '원단'(元旦)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원(元)이란 으뜸을 의미하고, 시간적으로는 한해의 첫 시작일인 1월 1일을 가리킨다. 그리고 단(旦)은 태양이 솟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아침을 뜻한다. 이처럼 원단은 1월 1일 새해 첫날 첫 아침을 의미하는 희망찬 단어다. 새해 첫날은 누구나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소망을 기원하며 가족 간 사랑 속에서 희망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침의 상징적 의의는 떠오르는 태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고대에는 태양을 향해 아침기도를 드리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상에 의하면 태양신은 매일 아침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하늘의 대양에서 몸을 씻었다고 한다. 무속신앙에서도 밤에는 요귀들이 자유로이 배회하다가 빛이 비쳐오는 아침이 되면 힘을 잃고 활동을 멈춘다. 서양 민담 역시 악마나 흡혈귀와 같은 악한 정령들은 새벽이 오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이들은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싫어하며, 특히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빛과 아침은 하느님, 그리고 창조사업을 상징한다.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창세 1,5). 또 일반적으로 아침은 좋은 시작을 상징한다. "사자들은 사냥 거리 찾아 울부짖으며 하느님께 제 먹이를 청합니다. 해가 뜨면 물러나서 제 보금자리로 들어가고 사람은 일하러, 저녁까지 노동하러 나옵니다"(시편 104,21-23). 특별히 아침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주님, 아침에 제 목소리 들어 주시겠기에 아침부터 당신께 청을 올리고 애틋이 기다립니다"(시편 5,4). 아침은 또 구원의 시간과 관계가 깊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너희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주님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불평하느냐?"(탈출 16,7).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 위엄하신 모습을 나타내신 것도 아침이었다. "셋째 날 아침,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영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탈출 19,16-17). 신약성경에서 아침은 예수님과 관계가 깊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죄인들 손에 결박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빌라도에게 인도된 시간도 아침이었다.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마르 15,1).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루카 24,1-3)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식사를 준비해주신 때도 아침이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한 21,12). 특별히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아침과 태양의 상징적 의미와 연결돼 있어서, 교회는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사람이 된 이를 '빛의 자녀'라 부른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우리가 늘 새로운 아침처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퇴사자22011.02.08
![[ 아! 어쩌나 183] 병에게 야단을 쳤다는데…](//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6650_1.0_titleImage_1.jpg)
[ 아! 어쩌나 183] 병에게 야단을 쳤다는데…홍성남 신부 Q. 루카복음을 묵상하다가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루카복음 4장 38~39절을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아픈데 장모의 열에게 야단을 쳤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을 보고 야단을 친 것이 아니라 병을 보고 야단을 쳤다는 것이 영 이상하고, 이해가 안 갑니다. 혹시 성경 번역을 잘못한 것인가요? A.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현대인 입장에서는 주님께서 하신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선 독자들을 위해서 루카복음 해당 구절을 알려 드리지요.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루카 4,38-39). 베드로의 장모가 열이 심했다는 것은 화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위라고 하는 사람이 돈 벌 궁리는 하지 않고 젊은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딴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장모로서는 주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었을 것이고, 베드로 사도가 아주 미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열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욱이 자기 사위를 부추겨 이상한 길로 끌고 가려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따르라고 지시한 장본인이 자기를 찾아온다니, 심기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어 자리에 몸져누웠을 것입니다. 베드로 장모의 이런 심사를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딸 가진 부모로서 당연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런 전후사정을 다 아시면서도 베드로 장모의 불편한 심기를 위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야단을 치셨을까요? 아마도 베드로 장모가 자리에 눕는 행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상습적이었기에 그러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일이 자기 마음대로 안 풀리면 무엇인가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위성 행위'로 자리에 누워버리는 습관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해 사람을 야단치기는 그렇고 엉뚱한 열에게 야단을 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신학자들 중에서는 열을 야단치신 것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한 기억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해서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지 않아 내가 이렇게 사는 거야"하는 말들은 어린 시절 상처가 지금의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말이지요. 물론 어린 시절의 힘겨움이 지금 내가 사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지금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과거로 돌리는 것은 미성숙한 행위입니다. 왜냐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계속해 흘러가고 없어져 가는데, 과거라는 망령에 사로잡혀서 징징거리고 우는 것은 어른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퍼질러 앉아 울어대는 어린아이나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울어대도 일이 해결될 리가 없는데 떼를 쓰는 것은 사실은 자신의 무기력함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기만적 행위임과 동시에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돼야 한다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자' 특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합니다. 자기 비위를 맞출 때까지 희생양인 양 행동하기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엉뚱한 사람들을 가해자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위로해주거나 이해해주려고 하면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위로를 자기 방어 겸 타인 공격용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위로해줘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냥 내버려두거나 아니면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합니다. 소위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합니다. 엄마가 말 안 듣는 아이를 날 잡아 매를 대듯 말입니다. 이런 특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칫 자기 기만적 한탄에 빠져 신세타령이나 하고 사는 한심한 인생으로 세상을 마감할 지도 모릅니다. 요즘같이 부모가 과보호한 아이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자식이 자기 인생을 책임지게 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개입하거나 혹은 과보호를 한 경우, 나중에 무책임하고 무능한 어른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 사도 장모의 열에다 대고 야단을 치신 것은 화병의 원인 즉, 베드로 장모의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시기 위한 일갈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가운데 깊은 마음의 상처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위로를 통해 치유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자기 무능력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님처럼 직면하고 따끔한 처방을 해줘야 합니다. <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cpbc2012.12.31
![[아! 어쩌나?] (161) Q. 아들이 건강을 해치고 있어요](//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60_1.1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61) Q. 아들이 건강을 해치고 있어요 Q. 아들이 건강을 해치고 있어요 제 아들은 수도자가 되려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엄격한 봉쇄 관상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성인전을 비롯한 수도생활에 대한 책을 보면서 제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엄격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날이 갈수록 자기 몸을 거의 돌보지 않아 건강을 해칠 정도가 돼 가고 있습니다. 제가 걱정이 돼 이제 몸을 좀 돌보라고 하면 아들은 복음을 인용하면서 저를 나무랍니다. 아들이 잘 인용하는 대목은 마태오복음 6장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저는 아들이 성경구절을 들이대면서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데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어미 된 사람으로서 아들의 지나친 금욕주의적 삶을 말리고 싶습니다. 아들이 엄격한 삶을 살수록 가족들과의 대화도 세속적이라고 기피하고, 작은 일에 짜증도 잘 냅니다. 왠지 아들의 이런 삶이 뭔가 아니란 생각은 드는데 제가 학문이 깊지 않아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A.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얼핏 들어보면 몸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교회 수도원에서는 성경의 이 말씀에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스토아학파 생각마저 얹어 아주 혹독한 수도생활을 하는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것은 수치스런 짓이라 여겨서 옷은 넝마같은 것으로 일 년 열두 달 입고 잠자리는 마구간 같은 곳에서 자는 아주 엄격한 수도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자다 깨서 기도하는 시과경까지 바치고 심지어 어떤 수도자는 음식을 탐하지 않으려고 자기 밥에다 재를 뿌린 사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런 성향은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 잡게 됐는데, 그 바람에 곤욕을 치르는 것이 본당신부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본당신부가 몸집이 좋고 혈색이 좋으면 '기도생활 안 하는 신부'라고 비아냥거리고, 새 옷을 입기만 하면 '무슨 신부가 그리 부자들 흉내를 내느냐'고 핀잔을 줘서 당혹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몸의 병은 떠나질 않아서 많은 열심인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 주위 사람들을 더 당혹하게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몸에 대해 과소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몸을 대화적 대상이 아닌 물적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가 질병을 불러온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건강관리에 지나친 관심을 보입니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광고들을 보면 상당수가 건강식품과 건강의약품 등에 대한 것들입니다. 또 건강관리를 위해 걷고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질병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교회가 몸을 혹독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과 현대 사회가 지나치게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몸을 물적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처럼 대화 대상이 아니라 무슨 기계나 혹은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래서 질병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몸은 학대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며, 단순히 먹이고 입히기만 하면 되는 대상도 아닙니다. 몸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영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몸을 물적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몸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건전한 신체는 건전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역으로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신체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은 몸과 마음이 이원적 관계가 아니라 일원적 관계 즉, 몸과 마음이 연계성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을 잘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촌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화가 나면 머리가 아프다''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등등 몸은 마음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환고리를 갖습니다. 주님은 몸의 이런 중요성을 잘 아셨기에 늘 병자들 몸을 고쳐주셨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영성가들이 영혼은 하느님이 머무시는 성전이고 몸은 그런 영혼이 머무는 성전이라고 하면서 몸의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몸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하는 조강지처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평생 동반자인 몸을 단순한 물적 대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혐오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복음적 정신에 어긋납니다. 자매님은 아드님에게 이런 취지를 말씀해주시고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 몸을 소중히 여기라는 조언을 해주시길 바랍니다.홍성남 신부 (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퇴사자22012.07.17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9>-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6017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선행, 그들의 것 돌려주는 것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게으름과 나태, 도덕적 해이, 무책임 때문에 가난해졌다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약성경의 신명기ㆍ레위기ㆍ시편, 그리고 예언서들은 가난과 빈곤에 처한 이들을 불의한 통치구조와 탐욕, 착취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공동체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돌보는 것을 의무로 명하고 있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이웃을 위한 사랑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구약성경에서의 가난과 불의 교회 관행 가운데 우리 사회에서 자주 논란과 비판 소재가 되는 게 '십일조'다. 이는 십일조 자체보다 그 사용에서 비롯된다. 구약을 보면 "너희 소출에서 십 분의 일을 모두 떼어 놓고, 그것을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너희 성안에서 배불리 먹게 될 때(…) 당신께서 저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습니다"(신명 26,12-14)라며 그 사용처를 밝힌다. 이처럼 십일조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주로 쓰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힘없고 약하고 불쌍한 존재로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비참한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 고통과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셨다.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는 가난한 이들과 탐욕스러운 이들, 불공정한 재판을 일삼는 지도자를 대조시킴으로써 가난과 빈곤, 고통이 불의에 의한 희생임을 드러낸다. #신약성경의 사회적 약자와 불의 신약에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을 당신과 동일시하면서 당대 지도자를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가장 유명한 가르침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일 것이다. "누가 이웃인가?" 하는 물음에, 예수님은 "무력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라고 가르치신다. 무력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지나친 이들은 나름 형편이 괜찮은 이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이 누구인가를 가르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이들을 비판하시는 것이다. 행복선언에서도 예수님은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 편을 드신다. 반면 부유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꾸짖으신다. 가난하고 비참한 처지의 라자로와 그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풍요로움만 즐기는 부자의 비유를 들며 가난의 탓이 부자의 무관심에 있음을 드러내신다. 아울러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것이 그리스도 제자들이 따라야 할 길임을 밝히신다. #자비 이전에 정의의 의무이다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의 가르침은 어떤가? "애덕의 실천은 자선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빈곤 문제의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 대처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84항)고 말한다. 빈곤 원인이 개인의 도덕적 결함일 수도 있겠으나 사회 정치의 구조적 불의와 불완전함에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10억 인구가 굶주림으로 시달리고,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주림과 기초적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 몰려있다. 가난한 나라의 빈곤이 과연 그들만의 탓일까. 국외여행을 며칠 다녀온 분들이 "그쪽 사람들이 얼마나 게으른지 구걸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겨. 그러니 가난할 수밖에…"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책임해서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오랜 식민지배의 억압과 착취 때문에, 혹은 발전 자체가 불가능한 현재의 불의한 경제 교역조건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살펴봐야 한다. 빈곤을 그들 나라의 부패와 게으름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교회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오랜 식민지배의 억압과 착취로 이룬 선진국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있다. 교회는 가르침을 통해 사랑과 정의의 관계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가난한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 때,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맡겨진 정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정의에 따라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마치 사랑의 선물인양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은 분명 "재물에 지나친 애착을 갖거나 재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가 전하는 것은 재화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가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재화를 나누는 정신은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다.퇴사자22012.02.21
![[위령성월 특집] 위령성월에 만난 사람- 남편과 자녀 둘 잃은 김시영씨](//cpbc.co.kr/CMS/newspaper/2012/11/rc/430575_1.0_titleImage_1.jpg)
[위령성월 특집] 위령성월에 만난 사람- 남편과 자녀 둘 잃은 김시영씨죽음 이긴 예수님 덕분에 다시 살아야겠다 결심25년 전 남편 잃은 후 아들 딸도상실감에 방황하고 우울증 겪어피정 다니며 예수님께 희망 얻어김시영시가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과 두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보다 자식을 잃었을 때의 아픔이 더 크다는 뜻이다. 위령성월(11월)을 맞아 남편과 두 자녀 등 가족 셋을 잃었지만 신앙심 하나로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행복한 삶을 사는 김시영(포티나, 74, 서울 상계2동본당)씨를 만났다. 김씨는 "그때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하느님 원망을 참 많이 했지요.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하면서요. 남편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우리 아들딸마저 데려가셨으니까요." 그는 지난해 5월 지병을 앓던 큰딸(고혜순 마리아, 당시 52살)을 잃었다. 앞서 12년 전에는 외아들(고기윤 가밀로, 당시 33살)을, 1987년에는 남편(고재환 요한, 당시 53살)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25년 전부터 그에게 시작된 죽음과 이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이었다. 그는 평소 레지오 마리애 단장과 구역ㆍ반장, 선종봉사회장 등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1994년 둘째 딸이 수녀회(한국외방선교수녀회)에 입회한 것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 남편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1남 3녀를 둔 다복한 집안이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남몰래 지역 내 어려운 청소년들을 도왔다. 시간이 흘러 도움을 받았던 한 명이 장성해 취직하자 그를 위해 잔치를 열었는데, 그곳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들도 2000년 교통사고로 그의 곁을 떠났다. 아들은 당시 신혼이었고, 손자가 태어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김씨는 "아들을 잃었을 때는 삶 전부를 잃은 듯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성당에 나가는 것과 봉사하는 것, 기도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면 '아들 전화 아닌가'하며 깜짝깜짝 놀랐다. 우울증도 생겼다. 혼자 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시곗바늘은 1시간 뒤를 가리키는 날이 많았다. "아들을 보내고 몇 년쯤 지나선가,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대로 살면 저마저 죽을 것 같더라고요.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과 자식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어요. 신앙인에겐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다시 살아야겠다고 하느님께 매달렸어요." 그는 그 뒤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찾아 피정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 주님은 그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는 생활습관도 바꿨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본당 노인대학에도 나가고,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질까봐 허드렛일이나마 직장생활도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자 죽음의 고통이 물러나고 삶의 희망과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해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큰딸마저 잃었을 때는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전처럼 신앙을 저버리는 일은 없었다. 요즘에는 성경필사를 하면서 주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그의 얼굴에서 행복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성당에만 오면 기분이 좋아요. 하느님은 제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들여다보고 계시잖아요. 이제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노인을 잘 대해주는 좋은 주임신부님 보내주신 것도요. 아니 전부 다 말이에요."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2.11.06
![[기획] 이웃종교 스테이 1>유교](//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1928_1.0_titleImage_1.jpg)
[기획] 이웃종교 스테이 1>유교종교 유교, '仁' 강조하며 '참 인간 되기' 지향다례를 배운 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다. 유교를 종교가 아닌 전통문화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천주교 신자들도 다르지 않다. 유교 예식인 제사는 낯설지 않다. 제사를 지내는 신자들도 많고 주교회의가 '한국 천주교 가정제례 예식(안)'을 마련하는 등 제사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유교가 강조하는 예의범절도 어려서부터 '당연히 지켜야할 것'으로 배우며 자란다. 이처럼 친숙한 유교지만 유교를 단지 전통문화 혹은 학문으로만 바라봐서는 유교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유교는 문화이기 전에 종교이기 때문이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대표회장 김희중 대주교)가 7월 27~29일 경북 영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서 개최한 '유교 스테이'에 참가해 유교문화를 체험했다. 문화로서는 친숙하지만 종교로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유교를 소개한다. 이웃종교 스테이는 개신교(17~19일), 원불교(24~26일), 불교(31~9월 2일)로 이어진다. 입소식 후 배례법(拜禮法)부터 배웠다. 모든 유교 예식의 시작은 예의를 갖춘 절이다. 제사를 지내거나 어른들에게 예를 표현할 때도 절을 한다. 바른절은 직계ㆍ방계 존속, 8촌 이내 어른, 스승에게 하는 절이다. 남자와 여자의 바른절은 차이가 있다. 바른절을 하기 전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얹고 배꼽 아래 부분에 올리고 있어야 한다. 이 자세를 공수(拱手)라고 한다. 공수 자세에서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면서 이마를 오른손 위에 올린다. 여자는 오른손을 위에 둔다. 공수한 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수평이 되게 한 후 고개를 숙여 이마를 손등에 살짝 닿게 한다. 그 자세로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후 머리를 숙인다. 일어날 때는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운다. 초상과 같은 흉사(凶事) 때는 손 위치를 바꾼다. 남자는 오른손, 여자는 왼손을 위로 한다. 단 제사는 흉사가 아니기에 손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 배운 대로 서너 번 절을 하고 나니 이제 절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배례법 공부를 마친 후 계촌(計寸)법을 배웠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1촌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촌수 계산은 생각보다 쉽다. 나를 중심으로 가계도를 그리고 1씩 더 해서 계산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모의 아들(이종형제)은 4촌이다. 나와 어머니,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이모, 이모와 아들이 1촌이기 때문에 모두 더하면 4촌이 된다. 이종형제가 자녀를 낳으면 나와 5촌이 된다. 기본적인 예절 공부를 마친 후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이상호 원장의 강의가 이어졌다. 공자(BC 551~479)를 시조로 하는 유교의 궁극적 가르침은 '참 인간 되기'이다. 유교는 '인(仁)'을 강조한다. 여기서 '인'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다. 유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 44)는 성경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이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지만 유교는 '이직보원'(以直報怨)을 이야기한다. 원한을 가진 사람을 정의로 대하라는 의미다. 또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은혜로 갚으라고 가르친다. 이를 '방법적 차별애'라고 한다. 특히 부모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엄격하게 다스린다. 유교에서는 내 생명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부모, 조상과 깊이 연관돼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에 익숙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유교의 가르침이 다소 매정해 보일 수 있다. 지금은 신자들이 유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천주교 전래 초기에는 제사 문제 등으로 대립이 있었다.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조상 신주단지를 모시지 않아 박해가 일어난 진산사건 후 대립이 이어졌다. 조선왕조는 척사위정(斥邪衛正)이라는 유교적 이념에 근거해 천주교를 탄압했다. 교황 비오 12세가 1939년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제사에 대해 관용적 조치를 취한 후 유교와 천주교의 제사로 인한 갈등은 해소됐다. 제사가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닌 문화적 풍속이라고 해석했다. 유교는 가장 현실적인 종교이기도 하다. 경험할 수 있고 증명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공자는 비현실적인 일, 증명할 수 없는 신의 존재, 내세,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역시 사후세계(천국)를 믿는 천주교와 다른 점이다. 대부분 종교는 신자 수 등을 집계해 교세를 파악하지만 유교는 정확한 신자 수를 알 수 없다. 입교예식이 따로 없고 교적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성직자도 따로 없다. 이상호 원장은 "공자를 경건한 마음으로 모시고, 유교 가르침에 따라 '꼿꼿함'을 바탕으로 하는 선비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유림(유교 신자)라고 할 수 있다"면서 "유교적 이념에 동참하면 누구나 유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향교는 유교 성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 234개 향교에서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유교 예식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정해진 날에 향교를 찾으면 된다. '유교 스테이'는 예절교육, 강의를 비롯해 전통 무예 택견 배우기, 사군자 그리기, 다례 실습, 떡메치기 등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유교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논어」 강독 시간도 마련됐다. 25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유교를 이해하기에는 2박 3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종교로서 유교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원장은 "이웃 종교 신자들이 유교를 전통문화나 학문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종교로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주=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07.31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2>나자렛 예수-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천②](//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90_1.0_titleImage_1.jpg)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나자렛 예수-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천②예수 부활, 하느님 나라 선포 정당성 증거예수에게 내려진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체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예수는 제자들을 파견해 복음을 선포하게 하고, 그들에게 마귀 추방과 치유 능력의 권한을 부여했다. 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는 새 세상이 오면, 그들 역시 옥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마태 19,28). 이처럼 예수는 자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재건을 위해 헌신했다. 또 어머니인 마리아와 형제들 역시 예수 활동에 함께했다(요한 2,1, 요한 7,3-10). 또 예수가 행한 기적과 구마행위는 군중을 모여들게 했다. 군중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예수는 이를 피해 산으로 가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한 6,15), 이는 예수가 일부 군중에게 메시아로 간주됐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예수와 율법 예수와 유다교의 두 개 기둥으로 일컬어지는 율법과 성전의 관계를 살펴보자. 예수는 복음서에서 흔히 율법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로 묘사된다. 그러나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고 말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현실에서 율법을 재해석하고 근본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이와 등 굽은 여자, 앉은뱅이를 치유했다. 유다인들이 율법을 증거 삼아 항의하자, 예수는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하고 말했다. 병자가 병이 나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누리는 것은 하느님 창조질서의 회복과도 같고, 그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가 지상에서 이뤄지는 표지라고 해석한 것이다. 또 예수는 병자를 고쳐준 뒤 모세가 명한 대로 제물을 바치라고 명하거나, 십일조를 무시하지 말라고 이르기도 했다. 즉, 예수는 일부 잘못된 율법주의적 해석과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 율법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를 내쫓았던 '성전 정화사건'은 사제가 백성을 참다운 진리와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 사건이다. 또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포했다. 요한 세례자 역시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성전의 고유 권한인 사죄권을 행사했다. 성전 당국자들 입장에서 이러한 행동은 용납하기 어려운 도발이었다. 로마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하고 말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예수는 폭압적 권력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 예수는 결국 종교와 정치 지도자에 의해 체포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왜 십자가형이었을까. 이는 당시 로마제국의 형벌 중에서 정치범에게 가하는 가장 참혹한 것이었다. 벌거벗긴 죄수는 인간적 수모를 겪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탈진한 상태로 서서히 죽어간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는 뼛조각과 쇳조각이 감긴 채찍을 맞아 온몸이 피범벅이 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수에게 이런 끔찍한 형을 내린 것은 로마 제국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체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식민지 지배자들의 단호한 의지 표명이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로마제국에 대한 도전, 예수를 메시아라 떠받드는 군중의 기대는 황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으로 과연 예수 운동이 막을 내렸을까? 필자는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 중 예수 부활만큼 놀라운 반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고, 몇몇에게 예수가 발현함으로써 그들은 예수 부활을 전하기에 이르렀다. 예수 체포 당시 도망쳤던 남자 제자들 역시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 일부 유다인은 제자들이 예수 시신을 훔쳐다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예수 시신이 다른 무덤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했기에 빈 무덤을 부활의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 발현은 제자들의 절망이 만들어낸 심리 현상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로는 도주했던 제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예수 부활을 드높이 외치는 반전을 설명할 길이 없다. 더군다나 예수 생전에 그를 만난 적도 없지만, 부활한 예수의 용감한 증인이 된 바오로 사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부활로써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비로소 활활 타오르게 됐다. 예수 부활은 하느님 나라 선포가 옳았으며 섬김의 삶이 승리를 가져오고, 나자렛 예수의 역사가 제자들을 통해 새롭게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신약성경 전반을 살피는 이 대장정을 시작하며 나자렛 예수의 삶과 부활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개될 신약의 고백은 예수를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분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들 증언이다. 그들은 각자가 처한 고유한 역사적 상황과 공동체 특성에 따라 예수에 대한 표현과 소개를 달리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를 한결같이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퇴사자22013.01.15
![[아! 어쩌나] (160) Q. 백수 아들이 걱정입니다(하)](//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252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60) Q. 백수 아들이 걱정입니다(하)Q. 백수 아들이 걱정입니다(하)A.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좋지 않은 생각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건강한 생각은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안 좋은 생각은 좋은 생각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과거 안 좋은 기억들을 떨쳐버리고 좋은 기억들만 떠올리고 그 안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올라오는 생각들을 떨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사용한 방법은 '사진 보기'입니다. 사진은 과거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는 데 아주 큰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사진 속의 시간으로 들어가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앞날에 대한 낙관적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 앞날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앞날을 생각하다 숨이 막히고 죽을 것만 같은 기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불길한 앞날을 줄곧 생각하다 보면 중추신경이 그것을 현실로 인식해 불길한 생각이 현실처럼 여겨지고 신체적으로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재개발을 겪으면서 거짓말과 선동, 사기로 주민을 속인 사람들과 몇 년을 상대하면서 무기력감을 느끼게 됐고, 그런 무기력감이 앞날에 대한 불길한 예측으로 이어져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에도 심리적 처방은 비슷합니다. 지금 바로가 아닌 몇 년 후 제 모습과 모든 일이 다 해결된 이후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불안감에 시달리면 그 마음의 눈이 자꾸 자기 발밑만 보려는 습성이 있는데, 그 눈을 들어 먼 앞날 소위 장밋빛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이면 다 부서진 동네를 걸으면서 군대 시절 불렀던 군가를 부르곤 했습니다.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불안한 제 마음에 힘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현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재개발 현장에서 심리적 괴로움을 겪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이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런 상황 속에서 제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우 현장에서 벌어지는 역겹고 힘겨운 상황들이 저를 책상물림 상담가가 아닌 '현장 상담가'로 만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 마음 안에 온갖 소용돌이가 치고 그것이 안정돼 가면서 소위 현장 상담가로서 심리적 내공이 생기게 된 것이 소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마전보다 더한 이곳에서 제가 사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그 뒤부터 마음 안에 전의가 살아났습니다. 게다가 사회 문제에 제대로 눈 뜨게 된 것 역시 큰 소득입니다. 신문을 보면서도 남의 집 일인 양했는데 몸으로 겪다 보니 이제는 신문 지상에 난 기사들이 저의 일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소위 사회에 대한 눈이 떠지고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진솔한 사람들인지 식별하는 눈을 갖게 된 것은 소득입니다. 이렇게 현장에서 힘겨운 삶이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던 저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마음이 과거와 미래로 도망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이 세 가지 방법이 만능은 아니고 또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를 따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좋았던 것에만 머물려고 하면 심리적으로 퇴행해서 무력한 삶을 살게 되고, 미래의 좋은 일들만 생각하고 살려고 하면 마치 마약환자들처럼 현실감이 떨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현재에 감사하면 사는 것 역시 사람의 힘겨움을 무시한 삶을 살게 해 나중에 또 다른 신경증적 심리적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과거 미래 현재 시점의 치료 방법을 사용하는 것과 한가지 방법으로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권유하고 싶은 방법은 성경구절을 써서 늘 간직하고 다니다가 마음이 힘들 때 꺼내 묵상하는 방법입니다. 옛날 유다인들은 성경구절을 귀중하게 간직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단순히 보관하는 차원이 아닌 수시로 자기 심리치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특히 아드님에게는 마태오 복음 말씀을 권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 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25-34).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퇴사자2201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