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4)하늘나라에 목표 두는 삶으로 매일 기쁘게](//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4686_1.0_titleImage_1.jpg)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4)하늘나라에 목표 두는 삶으로 매일 기쁘게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성경에서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 하고 말한다. 우리가 80평생을 산다고 가정할 때, 일하는데 26년, 잠자는데 23년, 밥 먹는데 6년, 사람을 기다리는데 6년, 텔레비전을 보는 데는 10년을 쓴다. 그 중 웃어서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은 22시간 3분이다. 살면서 항상 기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세상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기쁠 수가 없다. 바다는 채워도 사람 욕심은 채울 수 없다는 말처럼 끝이 없는 게 사람 욕심이다. 사는 게 힘든 것은 현실 때문이 아니라 욕심 때문이다. 하늘나라가 삶의 목표가 된다면 항상 기쁘게 살 수 있다. 이탈리아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는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100마리 가운데 먹을 것을 들고 움직이는 개미는 20마리였다고 한다. 나머지 80마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20마리씩을 모아 100마리를 만들었더니 또 그 안에서도 20마리만 열심히 일하고 80마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다녔다. 어느 공동체나 열심히 일하는 20%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이치다. 본당도 마찬가지로 운영되기에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바뀐다. 사목자가 긍정적인 20%를 강조하느냐, 부정적인 80%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본당 분위기는 달라진다. 기쁨이 가득하면 모든 일이 가능해진다. 분열과 미움, 증오가 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쁨이 있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대표적 긍정적인 인물이 바로 성모님이다. 처녀의 몸으로 구세주를 임신하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그대로 저에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응답을 하고 인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다. 가정에서도 엄마가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는 집 밖으로 겉돌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서,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희생하고 인내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참고 살아온 엄마 인생에 대한 보상은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가꾸고, 마음을 돌보며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 스스로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자식과 남편의 행복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자.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 발을 씻겨 주시며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하고 말씀 하셨다. 우리가 하늘나라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것으로 욕심이 가득 차면 참신앙인이 될 수 없다. 신앙의 기본은 기쁨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보통 간구기도를 열심히 한다. 하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하느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인데, 반대로 하느님께서 내 뜻을 실천하는 형상이 된다면 무언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혹시 내 뜻을 하느님께 바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간구기도만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하느님을 시험하게 된다. 하지만 하느님께 감사기도와 찬미기도를 드리면 영적으로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금요일 오전 8시 (본방송), 토요일 저녁 8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오후 6시, 수요일 오후 4시.퇴사자22012.05.15
서울 송파동본당, 선교에 앞서 내적 친교 다지기신자들이 먼저 서로 관심 갖자지난해 5월 개최한 전 신자 성모성월 묵주 고리기도에서 많은 신자들이 성당 마당을 가득 메운 채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오금동본당 "방지거는 화재방지, 시몬은 '레몬은 시지'를 거꾸로 하세요. 요한은 요새 한가하죠? 미카엘은 미끄러져, 골룸바는 골머리 터져봐예요."(이경복 회장) "하하하""껄껄껄" 주일미사가 끝난 15일 오후 서울 송파동본당(주임 송영호 신부)에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이경복(바오로, 수맥흙침대 대표) 사목회장이 "공동체 친교를 위해 신자들 간에 세례명쯤은 외우고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터득한 세례명 암기법을 소개하자 신자들이 배꼽을 잡은 것이다. 특히 "안나는 '애 안나(안 낳아)?' '왜 안나'"하고 예를 들자 신자들은 박장대소했다. 이 회장이 신자들 앞에 나선 것은 올해 송파동본당 사목목표가 '선교하는 교회'임을 알리고, 실천에 앞서 기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그는 재미있는 세례명 암기법에 이어 그동안 신자로서 살면서 느꼈던 천주교 장점, 성공하는 대화법 등 선교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강의했다. 이 회장은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요한 15,11)이라는 성경 구절을 소개하고 "신자들이 먼저 서로 관심을 갖고 사랑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 때 그 사랑을 이웃에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종파가 없고, 교황님이 세계 지도자이며, 사제와 수도자가 혼인하지 않고, 군사독재를 종식시켰으며, 출생ㆍ혼인ㆍ장례 등 인생 삼대사를 모두 책임지는 천주교 장점과 특징을 잘 알고 이를 선교에 활용하자"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4월부터 본당 관할지역인 잠실역과 송파구청 앞, 방이동 먹자골목 등 8곳에서 전 신자가 참여하는 대대적 선교운동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이힘 기자 이힘2012.01.1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3주일](//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692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3주일신앙 여정은 영생 위한 죽음의 삶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야이로라고 하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께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하고 애원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 가운데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던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분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았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따님이 죽었습니다"하고 전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시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를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 소녀는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만이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시며, 그분만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그분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 통교하며, 신앙 안에 있는 자는 죽어도 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살아도 죽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정동수라는 유명한 익살꾼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북적거리는 시장 한복판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슨 까닭인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기 때문이오. 그게 못 견디게 슬퍼서 이리 눈물이 난다오. 아이고, 이런 변이 있나"라고 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무슨 병고로 모두 죽는단 말이오. 전쟁이나 몹쓸 돌림병이라도 났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속 시원하게 말해주시오"하고 물었다. 그러자 정동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나이 들고 늙으면 다 죽지 않는가"하고는 껄껄 웃으면서 일어나 사라졌다.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부터 예외인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모든 외부 가르침에 앞서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어에서 '믿음'의 본래 의미는 '떠나고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우상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즉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가까이하고, 더 사랑하는 것에서 떠남을 뜻한다. 우리는 매사가 숙려(熟慮)되고 실천되기보다 말로써 이해시키거나 규정되는 언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언어는 언어일 뿐, 그 일상적인 논리적 사유과정이 인간의 깊은 정신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성에 갇힌 삶의 범주 안에서 신앙의 신비는 이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는 것이 된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처럼, 신앙을 굳게 만드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삶이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세상을 조금씩 놓아 버리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한다. 마침내 다 놓아버릴 준비가 된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안내하시는 보금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 죽음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 2,19)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담고, 유한에서 영원으로, 덧없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서 불멸의 영광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야 함을 묵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신앙 여정이 '죽을 때 죽지 않도록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12년 동안 앓고 있던 여인의 하혈병을 낫게 하시고,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다. 그곳에 모인 군중이 도저히 그들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기적을 행하시고도, 당신의 전능으로 병을 낫게 하시고 살리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인의 믿음이 그녀를 낫게 했고 또한 야이로 믿음이 그의 딸을 살리도록 하느님 기적을 가져오게 한 것임을 강조하신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사건은 우리의 죽음 이후 영생을 얻는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인생을 마칠 때에 영원히 죽지 않기 위해 신앙의 여정 동안 이웃에게 매 순간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죽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퇴사자22012.06.26
![[생활 속의 복음] 예수 성탄 대축일 -하느님이시며 참 빛이신 분](//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9515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예수 성탄 대축일 -하느님이시며 참 빛이신 분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오늘 복음은 "처음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시며 참 빛이신 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참 빛이신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내용이다. 원조들의 잘못으로 하느님에게서 분리된 우리를 하느님과 다시 일치시키시고, 또 우리를 이어주실 분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 그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사 9,5-6 참조)이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다. 하느님께서 구약의 오랜 세월 동안 인간에게 당신 사랑을 어떻게 보여주셨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하느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간 암울한 인간은 오직 육신의 안위만을 위해 세상에 재물과 명예를 쌓는 것에 목적을 둔 듯 살고 있었다. 이처럼 우매한 인간을 향해 하느님은 끊임없이 사랑이신 당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역사 속에서 일정한 장소ㆍ사물ㆍ사람을 통해서다. 즉 하늘의 천둥 번개와 바람, 땅의 나무와 흙, 물과 불, 혹은 예언자 등 자연적이거나 초자연적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셨다. 구약 전체 내용이 '그 사물', '그 사람', '그 사건'을 통해 구체적이고 점진적으로 현세에 집착하는 인간에게로 다가오시는 구원 역사이다. 이 오랜 구약의 세월을 닫고 창조주께서 목덜미가 뻣뻣한 당신 백성(탈출 32,9)에게로 직접 오시기 위해 피조물 마리아에게 당신의 특별한 은총을 입게 하셨다. 이 여인 안에 스스로 작아지신 하느님, 곧 인간이 되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 놀라움을 "당신 자신을 비우셨다"(필립 2,7)고 했으며, 교부들은 "하느님이 우리의 작음을 취하셨다"고 일컬었다. 성경은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 탄생으로 이제 그 분 왕국에서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라"(이사 11,6-9)고 전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늑대ㆍ양ㆍ표범ㆍ독사ㆍ살모사ㆍ소ㆍ곰 등 동물 속성을 자신들 안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살면 서로가 서로에게 독사로, 양으로, 곰이나 사자 등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니 신앙 안에서 아집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자신을 벗고 이타적 사랑으로 전환된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 즉 예수님 삶과 일치할 때 본능적인 우리의 나쁜 속성들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순화된다. 신앙으로 평화로운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세상과 자신에게 고정된 시야는 하느님과 이웃에게로 향하게 되고, 아무리 보잘것없는 작은 사랑의 행위라도 그리스도 정신의 모든 것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 이웃을 구원으로 이끈다. 또 하느님 은총으로 인간은 위대하고, 존엄하며 인격적 존재로 바뀐다. 소설 「부활」의 저자인 톨스토이가 "신앙 없는 인간의 생활은 짐승의 생활이다"고 한 말은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게 한다. 이제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좇으며 살다가 아무런 희망 없이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허무하고 비참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 어떤 부귀영화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고 살다가 영원에 들어가게 됐다. 하느님 상속인이 된 것이다. 임마누엘 예수님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고 당신의 영적 현존을 약속하셨으니 우리 신앙생활은 그분과 함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하느님 사랑에로 초대 받아야 할 이들이 많다. 신학적, 철학적 학문 이론은 인간 이성에 만족을 줄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복음 선포, 즉 하느님 구원에로의 초대 방법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조은일2011.12.20
![[사목일기] 채찍 든 로마 병사인가?](//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8893_1.0_titleImage_1.jpg)
[사목일기] 채찍 든 로마 병사인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대학생사목부 이승민 신부 성경 말씀을 읽다 보면 '세상이 창조된 날부터 지금까지 뭐가 변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고, 세상 권력에 집착하고, 하느님을 몰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요나처럼 도망가거나 유다처럼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하느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 방법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워서 때로는 속이 터지기도 합니다. 한 번은 연락을 끊은 채 삐딱하게 행동하려는 학생들을 무작정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 만나 겨우 설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어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속으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양을 어깨에 메고 오신 이유가 혹시 양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셔서 그런 거 아닌가?' 물론 아니겠지요. 교회 안에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도 교회가 2000년 이상을 꿋꿋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삶의 방식을 지켜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때론 우리 모두에게 수도자와 같은 모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도인과 같은 마음을 갖고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사목부를 담당하고 난 뒤의 제 모습을 보면 그렇게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생은 길게 봐야 하는데, 눈앞 대학생들 삶을 보면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할 이때 예수님 사랑이 아니라 세상의 자본과 권력의 굴레를 좇아 세상 가치를 따라가고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면, 두고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참 많이 싸워온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저 역시 세상을 닮은 폭력적 모습을 보인 건 아닌가 고민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예수님을 따라가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가며 말한 것이 아니라 로마 병사들처럼 채찍을 들고 다그쳤던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세상엔 참으로 아픈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구 어느 한 편에서,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대학 안에서도…. 이 아픈 곳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납니다. 아픈 곳을 향해 손 내밀 수 있는 학생 사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에 조바심이 납니다. 그리고 아픈 곳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어야 함을 어떻게 가르치고 보여줘야 할지 어려움을 느낍니다. 오늘도 개강미사 집전을 위해 대학교로 향하는 길, 기도를 올립니다.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끌고 가는 병사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제자가 되게 해 주세요."퇴사자22012.03.20
![[기획] 이웃종교 스테이(2) 개신교](//cpbc.co.kr/CMS/newspaper/2012/08/rc/424538_1.0_titleImage_1.jpg)
[기획] 이웃종교 스테이(2) 개신교천주교와 한 뿌리… 16세기 종교분열로 분리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이웃종교 스테이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어찌 보면 가까운 듯 한데 멀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최근 독도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서도 다른 전례 양식과 문화를 가진 개신교(改新敎) 이야기다. 한국에는 동네마다 개신교회가 십여 개씩 있다. 신자 수는 10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개신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선뜻 떠오르는 게 없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대표회장 김희중 대주교)가 8월 17~19일 강화도와 서울 일대에서 개최한 '개신교 스테이'에 참가해 개신교 문화를 체험했다. 이번 행사에는 천주교ㆍ개신교ㆍ불교ㆍ원불교 신자와 무교(無敎)인 등 30여 명이 참가했다. 이웃종교 탐방기획 두 번째로 '가깝고도 먼 이웃' 개신교를 소개한다. 천주교와 뿌리가 같은 개신교는 여러 이웃종교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개신교는 '기독교'와 '교회'라는 단어로 익숙하게 다가온다. 보통 천주교와 기독교, '성당 다니는 사람'과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의 한자식 표현이다. 따라서 천주교도 기독교에 포함된다. 또 성당은 '천주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개신교, 교회 다니는 사람은 개신교 신자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는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일으킨 종교분열 이후 가톨릭에서 갈라져나간 모든 그리스도교를 개신교라고 일컫는다.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이 대표적이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0여 개 교파가 있다. 개신교 스테이는 성공회ㆍ정교회 성당, 구세군, 정동제일교회 등 종교시설 방문과 개신교 영성과 역사에 대한 강의로 이어졌다. 11세기 서방교회와 분열된 정교회는 개신교에 속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교 체험이라는 취지로 일정에 포함됐다. 먼저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강화읍성당과 온수리성공회성당을 찾았다. 전통 한옥형태의 외관이 눈에 띈다. 멀리서 보면 절로 착각할 정도다. 1890년 한국에 진출한 대한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토착화에 힘썼다. 강화성당의 건축양식은 이러한 선교사들 의지를 잘 보여준다.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성공회는 개신교적 성향이 강하지만 전례형식은 가톨릭과 유사하며 미사를 봉헌한다.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신부ㆍ주교ㆍ수도자가 있다. 사제 독신 의무는 없으며 여성 성직자가 있다. 이어 서울 정교회 한국대교구 성 니콜라스 주교좌대성당을 방문했다. 동방정교회는 고대 동로마제국에 있던 여러 지역교회들이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독자적 전례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 사제설'은 개신교 영성을 잘 보여준다. 만인 사제설은 교회와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누구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모든 신자는 사제이고, 신자들 사이에는 직능 차이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개신교 스테이를 인솔한 김태현(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목사는 "개신교 영성의 핵심은 '하나님' 말씀이 삶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라며 "얼마나 정의롭게 살고,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 지가 신앙생활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모진 박해를 받으며 한국에 뿌리를 내린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조선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비교적 쉽게 이 땅에 정착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조선은 서구 국가에 문호를 개방했다. 그러자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884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매클레이가 한국을 방문해 선교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선교가 시작됐다. 1884년 9월 의사였던 장로교 선교사 알렌이 최초의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다.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 신자들과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다소 차이가 있다. 천주교는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원칙으로 하지만 대부분 개신교 신자들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가도 다니던 교회를 다닌다. 개신교 신학생 박정선(33, 서울 감리교신학대학원)씨는 "천주교는 전례 형식이 같지만 개신교는 교단마다 다른 점이 많다"면서 "심지어 같은 교단이라도 교회에 따라서 예배 방식이 달라 생소한 교회를 가게 되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개신교 신자들은 새로운 사람이 보이면 어김없이 달려가 연락처를 묻고, 말을 거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입교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며 "몇 번 가톨릭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는데 낯선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천주교 신자들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19일 아침 모든 일정을 마친 후 개신교 예배를 체험하기 위해 박씨가 다니는 서울 청파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예배는 인도자(목사)의 '예배로의 부름'으로 시작됐다. 미사의 시작성가라고 할 수 있는 '경배의 찬송'이 이어졌다. 찬송가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를 불렀는데 보통 1, 2절만 부르는 천주교와 달리 끝(3절)까지 다 불렀다. 찬송가를 마친 후 공동기도, 참회와 침묵기도, 대표기도, 성경봉독 등이 이어졌다. 기도가 끝날 때마다 찬양대(성가대)의 찬양이 있었다. '삶의 잔치에 응하라'를 주제로 '말씀'(강론)을 한 김기석 담임목사는 "많은 사람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 초대에 응하지 않고 있는데, 자신의 일이 하나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가"하고 반문하며 "주님 초대에 응하기 위해 자신의 일을 멈출 줄 아는 자만이 초대를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말이었다. 말씀이 끝나자 또 찬송가를 불렀고 예배는 '주의 기도' 합창과 김 목사의 축복으로 마무리됐다. 예배는 목사의 설교가 중심이 된다. 설교 시간이 전체 예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설교가 끝나면 예배가 마무리된다. 미사에만 참례하다가 낯선 예배를 보니 왠지 말씀 전례만 하고 마친 것 같아 허전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08.28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24〉세상 속의 교회-(2)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할까?](//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8083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24〉세상 속의 교회-(2)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할까?참된 인간화·사회화를 봉헌물로#교황 회칙에서 본 교회의 역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회를 인간다운 발전으로 이끄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하고, 또한 사회와도 일치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투신이다. 예로부터 교회는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과 일치하기 위하여 교회의 '남은 것' 뿐만 아니라 '요긴한 것'을 가지고도 나누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것이 없어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데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敬神禮)를 위해서 값비싼 장식을 마련한다든가, 화려한 성전(聖殿)을 짓는다든가 하는 일은 교회의 신앙이 아니다. 소유의 노예가 된 세상 사람들에게 존재의 복음을 가르쳐 주어야 할 교회가 더 소유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면 이는 교회의 길을 벗어나는 일이다. 교회의 발전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수의 소유가 다수의 존재, 즉 인간됨을 손상시키는 사회 현실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1항) #백성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지도자 지난 호에 이어서, 사목의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을 섬기듯 백성을 섬기는 이들이었다. 모세가 그랬으며, 다윗과 솔로몬이 그랬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지도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대에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할 사람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셨으며, 제자들을 벗으로 삼으셨다. 그분에게서는 신분이나 인종에 의한 차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섬김으로 드러내셨다. 그분은 사람을 지도하는 일만 하신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와 동행하셨다. 특히 약하고 힘없는 이웃을 당신과 동일시하셨으며,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당신을 따르는 길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사목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사제직은 이 세상을 거룩한 제물로 만들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직무를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 사물 질서 안에 하느님 정의와 사랑을 심어 그 열매를 맺음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 이름을 거룩히 빛내며, 하느님 나라를 세우며, 하느님 뜻을 이룸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께 거룩한 제물로 봉헌하는 것이다. 경신례는 중요하다. 그러나 겉치레뿐인 예배는 위험하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바치는 제사는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뿐인 제사는 위험하다.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나 겉치레뿐인 경신례는 부정과 불의의 죄를 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위험은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침략전쟁이든 정당방위전쟁이든 종교적 예식을 치르고 나서 얼마나 많은 살육의 전쟁이 있었던가! 필자는 예비신자 교리시간에 "만일 우리가 월화수목금토요일에는 온갖 불의와 부정을 저질러놓고, 주일에 두 눈 감고 두 손 모아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성제를 어여삐 받아들이실까요?"하고 묻는다. 아직 "그렇습니다"하고 답하는 예비신자를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신앙 따로 생활 따로'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 총선이 있었다. 꽤 많은 그리스도인 후보자가 출마했다. 그 후보자들은 저마다 교회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느님 뜻과 교회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신앙 감각으로 정치 분야에서 활동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난망하다. 반대로 그리스도인 유권자가 하느님 뜻을 실현할 정치인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역시 무리다. 신앙과 정치를 철저하게 분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는 철저하게 빈말에 불과하다. 실제 그렇다면 이는 알맹이 없는 신앙, 껍데기뿐인 신앙일 뿐이다.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행하는 경신례가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땅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땀 흘려 헌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경제생활과 정치생활, 문화생활, 국제관계 따위에서 참된 인간화와 참된 사회화를 이루려는 노력으로 거둔 결실을 경신례 제대 위에 봉헌물로 바쳐야 한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제물로 기꺼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세상을 거룩하게 하여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제직은 그런 것이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예언직과 사목직과 사제직을 수행할 임무가 있으며, 이 임무의 수행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기도 하다.퇴사자22012.06.19
![[영성의 길 수도의 길]-(49)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5791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49)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소외된 이들에게 예수 사랑으로 선교와 애덕 실천 1997년 파푸아뉴기니에 갔을 때 까리따스 여자기술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인 수녀들이 여학생들에게 요리, 제빵, 재봉, 컴퓨터 등 직업기술을 가르치는 파푸아뉴기니의 유일한 여자기술학교였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이곳 여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1993년 학교를 세웠다. 모든 것이 열악한 파푸아뉴기니 오지에서 '라스칼'(강도)로부터 숱하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말라리아 등 열대 풍토병에 시달리면서도 억척스럽게 학교를 운영하며 그리스도 사랑을 전하는 수녀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 파푸아뉴기니 선교 25주년을 맞아 봉헌한 기념미사와 파푸아뉴기니 출신 첫 수녀 서원식. #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 전파 현장 사랑, 애덕, 자선이라는 뜻의 라틴어 까리따스(Caritas)라는 이름에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예수 성심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 몸 바쳐 봉사하라'는 설립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그래서 까리따스 수녀들은 다양한 사도직 현장에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고 전하며 가르치는 삶을 살아간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끝자락, 사당역 1번 출구로 나와 약 250m 거리에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서울관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방배동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까리따스 수녀들 모습을 집약해 놓은 듯 여러 사도직 공동체가 모여 있다. 다양한 계층을 위한 서비스로 '복지 백화점'이라 불리는 까리따스 방배종합사회복지관에는 어린이집ㆍ공부방ㆍ알코올상담센터ㆍ노인학대상담센터ㆍ장애인주간보호센터ㆍ무료급식소 등이 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시대의 절박한 요청에 응답해 시작한 활동이다. 서울 도심과 경기도 남부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에 다양한 복지시설이 있다는 것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찾아올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1시, 점심식사 시간으로는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무료급식소 '사랑의 식당'에는 20대 청년부터 80대 노인까지 하나 둘 문밖에 모여들었다. 서울 도심과 과천ㆍ안양ㆍ수원 등지에서 찾아온 노숙인과 장애인, 홀몸노인들이다. 문을 여는 날(매주 월~금요일 11시 20분~12시 20분)이면 250~280명이 찾아온다. 2007년 서울역 거리급식이 중단되면서 100명 가까이 더 늘었다고 한다. 1998년 3월 복지관 개관과 동시에 문을 연 사랑의 식당은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수녀회 자체 기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쌀, 고기, 김치, 채소 등 식재료를 가져다주는 후원자들이 있지만 한 달 부식비만 400~500만 원이 넘게 들어간다. 최지운(폴리카르포) 수녀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며 웃었다. 한편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재가 어르신들에게 배달할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고, 사랑의 식당 옆 알코올상담센터에서는 알코올의존자와 가족들을 위한 상담과 재활프로그램이 24시간 진행 중이다. 또 지난 2000년 가톨릭교회에서 처음으로 노인학대상담센터를 개설한 수녀회는 현재 서울 남부ㆍ북부, 대전 등 노인보호전문기관 세 곳을 수탁운영하고 있다. # 오로지 예수 성심의 사랑을 산다. '행동하는 사랑'이라는 복지관 표어가 눈에 들어온다. 말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한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관뿐 아니라 성요셉요양원(광주)과 까리따스 마태오요양원(강원 고성), 아동복지시설 경애원(목포), 성가롤로병원(순천), 이주민상담센터,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 공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지관 옆 성서교육관에서는 「여정」 성경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성서사도직은 성경의 생활화를 위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일이다. 경기도 일산에도 여정 성서교육관이 있고, 광주ㆍ수원ㆍ마산교구 등에서도 성경교재인 「여정」을 보급하고 강좌를 개설해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또 수녀회가 설립한 생활성서사는 1983년 9월 월간 '생활성서' 창간호를 낸 이래 지금까지 통권 339권과 500여 종 단행본 및 음반을 발행하면서 대표적 성경 전문 출판사로 자리매김해왔다. "저희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며 사도직 식별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서울관구장 홍명숙(나탈리아) 수녀는 "까리따스 수녀들은 선교와 애덕을 실천하는 일이라면 하지 못할 일이 없고, 가지 못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리핀과 멀리 아프리카 오지까지 찾아가 헌신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남수단 굼보 지역에 수녀들을 파견해 수녀회의 애덕 정신과 가족 수도회인 살레시오회 고 이태석 신부가 남긴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수녀회가 파푸아뉴기니에 처음 해외 선교사를 파견한 지 올해로 25주년이 됐다. 지난 6월 파푸아뉴기니 공동체에서는 현지 출신 첫 수도자를 배출해 기쁨을 더하고 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수도회 영성과 역사까리따스 수녀회 영성은 한마디로 '예수 성심의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를 밑거름 삼아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가슴 가득 채운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이웃에게 전함으로써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꾼다. 수녀회는 이탈리아 출신 살레시오회 선교사인 하느님의 종 빈첸시오 치마티(1879~1965) 신부와 안토니오 가볼리(1888~1972) 신부가 1937년 일본 미야자키(宮崎)현에서 설립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몹시 황폐한 상황이었다. 한국보다 200년 앞서 전해진 가톨릭은 박해를 받아 거의 소멸된 상태였다. 미야자키 본당 사제로 발령을 받은 가볼리 신부는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는 직접적인 복음 선포보다 굶주림과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이 우선임을 깨달았다. 그는 사도적 열성으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당시 선교 현지 수도회 설립을 권유한 교황 비오 11세와 애덕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을 권고한 자신의 장상 치마티 신부 뜻에 따라 1937년 8월 미야자키 까리따스 수녀회를 설립했다. 수도회 이름은 나중에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로 변경했다. 설립자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7)고 하신 그리스도 말씀에 따라 모든 이에게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사도직에 헌신하기를 열망했다. 현재 전 세계 회원 수는 1200여 명에 이르며, 세계 14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도직은 1956년 10월 19일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입회한 선교 수녀가 파견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직후여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녀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양한 애덕활동으로 예수 성심을 전한 결과 성소자도 꾸준히 증가했다. 수녀회 한국관구는 2009년 12월 8일 광주ㆍ서울ㆍ수원 세 관구로 분할됐다. 회원 수 500명이 넘는 규모로 대형화된 수도회 몸집을 가볍게 함으로써 수도생활의 공동체성, 수도자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설립자 정신으로 새 출발하고자 내린 결단이다. 서울관구장 홍명숙 수녀는 "관구 분할로 더욱 효율적 행정이 가능해졌고, 회원들 간 대화와 협력, 일치와 친교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cpbc2011.11.15
 전승과 전례](//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079_1.2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교리](3) 전승과 전례하느님 말씀, 행적 모든 가르침 전승(傳承)은 넓은 의미에서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 교회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모든 것, 곧 성전(聖傳)과 성경(聖經) 모두를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전승은 바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 내지 자기 통교에서 출발한다. 유한한 인간이 하느님의 자기 계시나 자기 통교 없이 무한하신 그분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계시(啓示)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나게 하거나, 감추어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볼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 당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을 계시라고 가르친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당신 존재를 드러내셨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역사에 함께하시면서 더 구체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삶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성장,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전하게 계시하셨으며,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도 계속 나타내 보이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자기 계시의 절정이자 완성이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말씀과 행적, 인격과 삶에서 최종적으로 완결됐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공적 계시가 완결됐다고 가르친다. ▶전승의 내용 1)성전(聖傳) 한처음부터 하느님은 인간과 인간 역사에 개입하셨다. 그분 말씀과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셨을 때도 그분 말씀과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사도들 가르침과 행적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세기를 이어오면서 교회 가르침과 활동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 모든 것이 교회의 거룩한 전승, 곧 성전을 이룬다. 2)성경(聖經) 하느님 말씀과 행적을 글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행적을 전하시기 위해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구원에 필요한 일들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3)성전과 성경의 관계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상통한다.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됐고,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분을 선포하고 전하기 때문이다. ▶전승에 대한 올바른 이해 전승을 올바로 알아듣고 해석하려면 첫째, 하느님 은총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16). 둘째, 교도권 해석이 필요하다.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계시헌장」 10항)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느님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례라는 말은 그리스어 '레이토우르기아'에서 비롯됐다. 이는 '백성의 일' 또는 '모든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뜻하는데, 기원전 4~3세기께부터 예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됐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느님 아버지께 올리고,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경배를 가리킨다. 전례는 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임명된 이들이 교황청 인준을 받은 예식에 따라 교회 이름으로 거행하는데, 전례에는 모든 성사ㆍ준성사ㆍ시간전례ㆍ성스러운 행렬ㆍ성체 강복식 등이 포함된다. 교회는 일 년을 주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를 기념한다. 이를 전례주년이라고 한다. 교회는 일 년 동안 예수님 탄생부터 시작해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기념한다. 전례주년은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대림ㆍ성탄ㆍ사순ㆍ부활ㆍ연중시기로 이뤄져있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06.14
평신도를 위한 가톨릭 교육기관 호응영성적 목마름 해소하는 오아시스 평신도를 위한 가톨릭 교육기관들이 신자들의 학문적ㆍ영성적 목마름을 해결하는 오아시스가 돼주면서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각 분야 평신도 전문가를 양성하는 요람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광주가톨릭대 평생교육원(원장 조영대 신부)은 올해 기존 1년 과정의 신학아카데미를 2년 과정의 교리신학원으로 새롭게 개편, 교육을 강화했다. 1년만으로는 배움이 부족하다는 신자들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구약과 신약, 2과목으로 구성됐던 성경 과목도 모세오경, 공관ㆍ사도, 예언서, 요한계 문헌 등으로 세분화했다. 이와 함께 교구 교리교사양성학교가 교리신학원 과정과 연계돼 있어 교리신학원을 수료한 뒤 별도 교육과정을 거쳐야 교리교사로 활동할 수 있다. 교육원은 또 최근 교회음악원을 개설, 교구와 본당에서 활동할 교회음악 전문가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초급과정 '교회음악아카데미'를 수료하면 평생교육원 원장 명의 수료증을, 전문과정 '교회음악전문가'를 수료하면 광주대교구장 명의 자격증을 줘 공신력을 높였다.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원장 김진태 신부)은 교리교사와 선교사 양성 전문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가톨릭교리신학원의 전문교육과정은 '교리교육학''종교교육학''성서영성학'으로 전공이 나눠져 있다. 밀도 있고 수준 높은 교육으로 신자들 만족도가 높다. 또 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며 그동안 가톨릭교리신학원이 배출한 졸업생만해도 4000명이 넘는다. 졸업생들은 현재 전국 각지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문화와영성연구소(소장 김광엽)는 가톨릭 문화와 영성과 관련된 다양한 강의를 마련, 차별화된 교육으로 신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다. 영화ㆍ그림ㆍ사진ㆍ시 등을 활용한 예술과 영성수련, 그리스도 영성사, 성서와 영성수련 등 독특한 강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영적 길잡이'와 '문화영성 길잡이' 등 전문가 과정도 마련해 3년간 일정학점을 수료하면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수원가톨릭대 부설 하상신학원과 대전가톨릭대 평생교육원 등에서도 복음화 일꾼을 양성하는 교육을 진행하며, 신자들의 신학적 갈증도 함께 채워주고 있다. 광주가톨릭대 평생교육원장 조영대 신부는 "신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수많은 배움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면서 "이러한 교육기관들을 적극 활용해 보다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2.28
[출판]책꽂이나봇이야기(암브로시우스 지음/최원오 옮김/분도출판사/1만 2000원)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40~397) 성인은 성경 속 인물 가난한 나봇을 탐욕스러운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민중의 상징으로 삼아 사회적ㆍ경제적 약자 권리를 변호한다. 그는 목자의 자비로움과 법관의 엄정함으로 소외되고 억압당한 약자의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부자들의 탐욕과 욕망에 일침을 가한다. 재물의 공정한 분배와 사유재산의 권리와 한계를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교 문헌으로, 분도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교부문헌총서' 20번째 권이다. 평화를 누리십시오(송열섭 신부 엮음/성바오로/4000원) 오상의 성 비오 신부(1887~1968, 이탈리아 카푸친 작은형제회) 어록을 정리한 소책자다. 2002년 발간한 것을 새롭게 다듬었다.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성 비오 신부는 1918년 기도 중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상처를 받았다. 현대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상처들은 기적으로 판명났고, 비오 신부는 2002년 시성됐다. 어록을 엮은 송열섭(청주교구) 신부는 "비오 신부님 가르침이 우리의 힘든 인생길에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으로 떠나는 꽃차여행(글ㆍ사진 류정호/인문산책/1만 7000원) 아름다운 꽃과 향긋한 꽃차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다도 전문가 류정호(데레로사)씨는 지난 3년간 전국으로 '꽃차 여행'을 다녔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우리 꽃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며, 꽃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담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꽃 이야기 외에도 꽃차 만드는 법과 저마다의 꽃차가 지닌 다양한 효능도 곁들였다. 최근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을 졸업한 류씨는 "다도를 좇던 30여년 만에 생명을 공부하게 되면서, 꽃차가 주는 치유의 생명력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식탁은 얼마나 풍족할까?(전헌호ㆍ김영호 지음/박연옥 그림/가교출판/1만 2000원) 미국산 밀가루로 부친 전, 호주산 소고기로 만든 불고기, 중국산 조기구이, 뉴질랜드산 골드키위…. 어느새 우리 식탁을 수입 농수산물이 점령했다. 게다가 햄버거, 피자 등에 익숙해진 어린 아이들이 우리 먹거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깨닫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30%가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 곡물 자급 현실을 지적하면서, 풍성한 식탁 뒤에 숨겨진 식량위기 문제를 일깨워준다. 식량과 환경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그림 및 그래프와 함께 설명했다. 가족의 두 얼굴(최광현 지음/부키/1만 3800원) 왜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받을까. 가족에게 내 감정을 폭발시키는 이유는 뭘까. 가족과 함께지만 여전히 외롭거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가족 문제는 가족과 상관없는 사람보다 당사자인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원인일 때가 많다. 자신이 가족에게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직시하고, 이를 가족과 함께 공감하다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가족과 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가족 문제의 원인과 치유 방법까지 명쾌하게 짚어준다.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4.03
![[여름테마순례/박물관에서 배워요]②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205_1.0_titleImage_1.jpg)
[여름테마순례/박물관에서 배워요]②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사 '고스란히'... 병오박해 제외 3대 박해 순교역사 총망라... '황사영 백서' 사본 등 각종 유물과 사본 전시... 중림동 약현본당 역사와 발자취도 함께 소개 '숨어있는 꽃'과 같이 의미심장한 교회사 전시관이 있다.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중림동약현성당과 사제관을 돌아 서소문순교자기념관 옆길로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전시관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마치 고 윤의병(바오로, 1889~1950?) 신부의 소설 「은화(隱花)」 주인공인 박해시대 이름 모를 수천 순교선열들처럼 은신해 있다. 그렇지만 그 교회사적, 순교사적 의미마저 숨어 있는 건 아니다. 103위 순교 성인 가운데 44위, 현재 한국교회가 시복을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가운데 21위가 순교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사를 드러내 특화시킨 전시관이 바로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이어서다. 그러기에 정부에 등록된 전문 박물관 못지않은 교회사적 의미와 함께 순교선열들의 빛나는 순교 얼과 발자취를 흠씬 느껴볼 수 있다. 2009년 지상 2층에 건축연면적 562㎡(170평) 규모로 지어진 전시관은 서소문 순교성지의 박해사를 9개 부분으로 나눠 조명한다. △신유박해(1801) 자료 △기해박해(1839) 자료 △병인박해(1866) 자료 △성모 소제대 △약현성당 발자취 △본당 유물 △본당 화재 유물 △성인 유해 △고 김선영(1898~1974) 신부 유물 등이다. 4대 박해 가운데 병오박해(1846)를 제외한 3대 박해 순교역사가 모두 망라되는 셈이다. 서소문 순교성지 관리 담당자인 김쌍수(요셉, 오른쪽)씨가 6일 전시관을 찾은 김광만 다큐멘터리 PD에게 1893년 프랑스에서 건너와 걸게 된 약현성당 종 설치 경위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사 특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에 들어서면 곧바로 마주하게 되는 교부 성 테르툴리아노 주교의 말은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의 특징을 그대로 함축한다. 깊은 골짜기에 숨어 피고지는 한 떨기 아름다운 꽃처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순교자들의 아름다운 한 생애를 각종 유물과 사진, 그림, 도표, 영상물 등을 통해 소개한다. 우선 신유ㆍ기해ㆍ병오 박해 전모와 순교 자료, 순교자 가계도, 연월일별 순교자 명단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 박해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간략하고도 알차게 설명하면서 당시 순교지를 후대 사진이나 도표 등을 통해 설명한다. 이어 현재 교황청이 소장 중인 '황사영 백서' 사본이나 미사 종, 기도문과 칠성사 등 주요 교리를 기록한 한문서학서 「성교절요(聖敎節要)」, 첫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 인쇄본(1906), 「기해일기(己亥日記)」, 한불자전(韓佛字典)」, 묵상서 「신명초행(神命初行)」 하권, 묵상서 「성찰기략(省察記略)」, 고해성사 준비 성찰서 「회죄직지(悔罪直指)」 등 유물과 사본들을 선보인다. 1865년 만들어진 「을축년 첨례표(乙丑年 瞻禮表)」는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사료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이 첨례(첨례는 축일의 옛말)표는 전례력에 따른 주요 축일을 월ㆍ일별로 기록한 한 장짜리 표로, 고 한희동 신부 기증으로 서소문순교성지 전시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한국교회 첫 영세자 이승훈(베드로), 「주교요지」의 저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남종삼(요한) 성인 등의 초상도 걸려 있다. #약현 공동체 역사도 함께 선봬 전시관 절반은 서울 4대문 밖 본당들의 어머니인 중림동약현본당의 122년 발자취다. 1891년 본당 설립 당시 가까이는 경기도 광주에서 과천, 양주까지, 멀리는 황해도 송도(개성)와 백천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관할한 약현본당의 역사가 펼쳐진다. 그러기에 4대문 안을 관할한 종현(현 명동)성당을 제외한 서울ㆍ수도권 교회사인 약현본당사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중림동약현본당 역사와 발자취는 1886~1900년대, 1910~29년, 1930~49년, 1950~69년, 1970~89년, 1990년 이후 등 6시기로 나눠 조명된다.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1886년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첫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세워지기까지 역사가 상세하게 소개되고, 이후 약현본당이 가명학교를 세워 근대교육을 실시하고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이 하나하나 담겨진다. 유물로는 제병 굽는 틀과 제병재단기, 1963년까지 사용했던 목재 종틀, 1892~96년 사이 전 9책 활판본으로 간행된 「성경직해」 제3권, 로마식 옛 제의(지금은 그리스식 제의), 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토마스) 대통령 세례 증명서 등이 선보이고 있다. 1998년 화재로 중림동약현성당이 불에 탄 이후 잔해로 남은 유물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옛 제대 감실과 상부 잔해, 제대 왼쪽 회랑에 모셔져 있던 옛 성모상 등은 중림동 약현성당이 얼마나 험난한 복음화의 여정을 걸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1892년 완공된 중림동약현성당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52호이자 우리나라 첫 서양식 성당이다. 끝으로 약현본당 출신으로 중국에서 사목하다가 선종한 착한 목자 김선영 신부의 일대기와 유품, 유해 등이 소개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07.10
![[출판] 책꽂이](//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1969_1.0_titleImage_1.jpg)
[출판] 책꽂이눈물샘(장 바니에 글/안느-소피 앙드류 엮음/양비안네 옮김/성바오로/1만 원)발달장애인 생활공동체 '라르슈'(노아의 방주라는 뜻)를 설립한 장 바니에가 피정 때 강의한 내용을 담았다. 성경말씀을 주제로 6일 동안 하루 3번씩 이어진 강의는 독자들을 슬픔과 고뇌에서 진실과 위로, 희망으로 안내한다. 장 바니에는 먼저 하느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기를 당부하면서 자기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이어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 계명을 실천하며 참 행복을 누리는 길을 알려준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였던 장 바니에는 프랑스 정신요양원을 방문한 뒤 교수직을 그만 두고 프랑스에서 발달장애인 2명과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라르슈는 34개국에 공동체를 둔 국제 단체로 성장했다.지금 나의 삶은 아름다운가(소스텔라 지음/책읽는수요일/1만 3000원)소희숙(스텔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가 기도하며 일하며 살아 온 40여 년 수도생활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과 경험들을 정성껏 풀어냈다. 소 수녀는 그동안 국내 본당과 서강대 교목실 근무, 미국 유학, 인도와 우간다 파견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해왔다. 지금은 서울 고척동에서 이탈주민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괴짜 수녀, 용감한 할머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소 수녀는 세상 한복판에서 생명과 자연의 편에 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누구든 이 책을 읽다가 한 번이라도 고요히 침묵하고, 지금 나의 삶이 아름다운지 자문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 바랄 것 없이 좋겠다"고 말했다.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소 알로이시오 지음/김규한 옮김/책으로여는세상/1만 3000원)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을 사랑한 파란 눈의 사제 소 알로이시오(1930~1992) 몬시뇰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1957년 미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 해 12월 한국으로 건너와 평생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지내왔다. 그는 1989년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는데 이 책은 병마와 싸운 투병기이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영광을 바치는 사랑의 기도서다. 소 몬시뇰이 녹음기에 남긴 말을 글로 풀어낸 김규한(마리아수녀회 영성지도) 신부는 "몬시뇰은 극심한 고통에서 보낸 마지막 3년 동안 예수님 공생활처럼 성사와 기도를 선명하게 보여주셨다"면서 "이 책은 하느님 은총의 생명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나를 이끄시는 분(윌터 취제크 지음/성찬성 옮김/바오로딸/1만 1000원) 윌터 취제크(1904~1984, 미국 예수회) 신부는 23년을 러시아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와 감옥에서 지냈다. 러시아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겠다는 열망 하나로 1940년 이주 노동자로 위장, 러시아에 잠입했지만 이듬해 신분이 발각돼 체포됐다. 그는 감옥 독방에서 5년간 취조를 받았고, 15년간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강제노동을 했다. 그는 1963년 미국과 러시아 간 포로 교환이 극적으로 체결돼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취제크 신부는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느님 섭리' 덕분이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책에서 러시아에서 체험한 '하느님 섭리'를 생생하게 풀어내면서 생사의 기로에서 자유와 평화의 힘이 돼 준 하느님을 증언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4.17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19) 윤점혜(아가타, ?~1801년)순결한 주님의 종, 우윳빛 피 흘리며 기쁘게 순교 가톨릭 신자에게 세례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례 때 받은 제 2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이름, 즉 본명(本名)이라고 부르며 수호성인의 삶과 신앙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밖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내세울 수 없었던 한국교회 초창기 신자들은 더욱 그러했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여러 동정녀 가운데 행적이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꼽히는 윤점혜(아가타, 1778?~1801)도 마찬가지였다. 3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아가타는 평생을 하느님께 동정으로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살던 중 순교한 성녀. 윤점혜는 "나도 아가타 성녀처럼 살다가 순교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동정으로 살다가 신유박해 때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양근성지에 있는 윤점혜 동상. 윤점혜는 1778년께 태어나 경기도 양근 한감개(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살았다. 일찍이 어머니 이씨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1795년에 순교한 윤유일(바오로)은 그의 사촌 오빠, 1801년에 순교한 윤운혜(루치아)는 그의 동생이다. 윤점혜는 일찍부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고자 동정생활을 할 것을 굳게 결심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 풍속에서는 처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윤점혜는 몰래 집을 떠날 결심을 하고 어머니가 마련해둔 혼수 옷감으로 남자 옷을 지어 숨겨둔 채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윤점혜는 남장을 하고 사촌오빠 윤유일의 집으로 가서 숨었다. 얼마 있다가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갔는데, 가족과 이웃 사람들이 크게 질책했음에도 이를 꿋꿋하게 견뎌냈다. 윤점혜는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께 더욱 헌신하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의 은혜를 전할 것만 생각했다. 윤점혜는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동정을 지키고자 과부로 행세했으며, 2년 뒤에는 주 신부에게 정식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윤점혜는 여회장 강완숙(골룸바)의 집으로 옮겨 함께 살면서 강완숙을 도와 조선교회 일에 전력했다. 윤점혜는 주 신부 지시에 따라 동정녀 공동체를 만들고 회장을 맡아 다른 동정녀들을 가르쳤다. 그는 교리를 엄격히 지키면서 극기와 성경 읽기, 묵상에 열중함으로써 다른 신자들 모범이 됐다. 어머니를 위해 자주 연도를 바쳤고, 순교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천주학을 고집하는 마음을 고치기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굳센 신앙심을 보여준 윤점혜는 당시 조선교회에서 강완숙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여인이었다. 윤점혜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성사를 받지 못한 것이 한탄스러워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는 환시를 보았다. 놀랍고 가슴이 벅찼지만 이 환시가 헛된 꿈이거나 악마의 장난이 아닌가 염려스러워 이를 주문모 신부에게 알렸다. 주 신부는 좋게 해석해줌으로써 윤점혜를 안심시켰고, 윤점혜는 평화를 얻고 기도생활에 더욱 증진할 수 있었다. 윤점혜는 또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보았다. 성령께서 성모 마리아 위에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은혜가 실제로 하느님 은총 속에서 이뤄진 것인지 감히 말할 수 없어 다시 주 신부에게 영적 지도를 받았다. 그때 마침 성령께서 성모 마리아와 함께하는 상본을 갖고 있던 주 신부는 그것을 보여주며 윤점혜를 진정시켰다. 윤점혜는 더욱 겸손히 침묵하며 자신의 내적 체험을 소중히 간직했다. 그는 또 자신의 수호성인인 아가타에 대한 공경심으로 가득 차 주위 사람들에게 아가타 성녀처럼 순교하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했다. 마침내 그의 소원이 이뤄지게 됐다. 1801년 2월, 신유박해 초기에 그는 강완숙과 함께 체포돼 석 달 동안 옥에 갇혀 신문과 갖은 고문을 당했다. 윤점혜를 문초했던 관리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가 강완숙의 집에 살았던 세월이 10년이나 되며, 강완숙에게서 천주교에 관한 것을 모두 배웠다. 신부를 접대한 일은 처음에는 없다고 했으나 강완숙의 집에 유숙하면서 주 신부와 함께 내방(內房)에서 남녀가 한데 모여 첨례를 보고 자주 송경을 했는데, 그녀도 역시 그 가운데 참례했고 사학을 매우 열심히 공부해 비록 형벌로 살육을 당하더라도 마음을 고쳐먹을 뜻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학에 고혹된 모양은 포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그는 적당히 내세울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과부로 지칭했다. 이것은 천주학을 하는 여자들이 많이 하는 상투적 방법이며, 네거리를 쏘다니고 남의 집에 더불어 살며 처녀도 아니요 과부도 아니면서 허씨(許氏)의 아내로 보이게 했다. 남녀가 부부가 되는 것은 인간의 큰 도리인데 작고 어린 한 여자가 그러한 행동을 하여 풍속을 상하게 하고 부패시키며, 분명히 시집을 가지 않았는데도 시집간 사람처럼 하니 이 어찌 천지간에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허씨라는 사람의 부인으로 행세하며 동정을 지키고자 한 것이 풍속을 어긴, 천지간에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그는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밀고와 배교를 거부했다. 그러자 박해자들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강완숙과 함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기를 원했으나 강완숙은 한양 서소문 밖에서, 윤점혜는 고향인 양근으로 보내져 참수됐다. 고향 백성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순교 직전 양근 감옥에는 여자 교우 한 명이 함께 갇혀 있었는데, 훗날 그는 "윤점혜는 말하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 사형을 앞둔 사람 같지 않고, 태연자약하여 이 세상을 초월한 사람 같았다"고 증언했다. 윤점혜는 1801년 7월 4일(음력 5월 24일)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 순교 당시 그의 목에서 우윳빛이 나는 흰색 피가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다. "10년 동안이나 깊이 빠져 마음으로 굳게 믿고 깊이 맹세하였으니, 비록 형벌 아래 죽을지라도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오세택2012.09.11
![[황창연 신부의 행복특강] (2)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느님만 섬겨라'](//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3243_1.0_titleImage_1.jpg)
[황창연 신부의 행복특강] (2)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하느님만 섬겨라'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보낸 부모가 60살이 넘어 함께 사는 사람은 자식이 아닌 배우자다. 평생 자식을 돌본다는 이유로 부부는 사랑의 탑을 쌓지 않다가 사랑이 없는 채로 여생을 보내기도 한다. 연애할 때 젊은 남녀는 몸에서 나오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때문에 행복감을 느낀다. 마약보다 더 강력한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분비가 된다. 호르몬이 쏟아져 나올 때 하느님께서는 남녀를 묶어주신다. 사랑 하면서 남녀 모두에게 나오던 옥시토신은 출산한 후에는 모유 수유를 하는 여자에게만 흐른다. 연애할 때와 다른 느낌을 공유하는 부부는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여자는 아이를 키우면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집중하게 된다. 결국 여자는 자녀 양육에만, 남자는 일하는 데만 몰두하면서 한 지붕 아래 남남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60살이 넘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60살이 넘어서도 옥시토신이 계속 나오는 부부들이 있다. 이들은 결혼해서 대화도 많이 하고, 여행도 다니며 서로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에게 더욱 감사해 하고 함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65살 이상 노인자살률은 10만 명당 미국은 10명, 일본은 35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72명이다. 젊은 사람보다 3배나 많은 숫자다. 우리나라 노인들 행복지수는 생각보다 낮다. 60살이 넘어 자식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비율이 일본은 8%, 홍콩은 11%, 우리나라는 83%라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부의 사랑보다 자식 욕심으로 남은 인생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9)라는 말로 유혹한다. 권세와 영광에 대한 유혹이다. 돈이 없는 사람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유혹이다. 신자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는 신부들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환호하고 소리쳤다. 당나귀를 보고 기뻐한 것이 아님에도 당나귀는 착각한다. 신부들도 자신 때문이 아니고, 뒤에 계신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 직후 지지율이 70%를 넘다가, 임기가 끝날 때쯤 10%로 떨어지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5년 동안 주변 사람들 칭찬만 들으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결과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누구나 빠질 수 있는 유혹이다. '나 없으면 안 된다'는 착각도 그 유혹 중 하나다. 신부 중에도 내가 아니면 성당을 못 짓는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본인이 없어도 다 돌아가게 돼 있다.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에 대한 유혹이 무서운 것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며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이 아닌 자신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유혹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사회적 지위, 학식 등을 드러내지 않고 본당에서 묵묵히 주차봉사를 하는 형제들이나 성모회에서 설거지를 하는 자매들 모습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의 모습이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금요일 오전 8시(본방송), 토요일 저녁 8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오후 6시, 수요일 오후 4시.퇴사자22012.05.01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24〉세상 속의 교회-(1)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할까?](//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7464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24〉세상 속의 교회-(1)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할까?사회 현실 진단해 복음 선포해야#가난한 이들과 일치하는 교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회를 인간다운 발전으로 이끄는 데 있다"며 "이를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하고, 또한 사회와도 일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예로부터 교회는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과 일치하기 위해 교회의 '남은 것'뿐만 아니라 '요긴한 것'을 가지고도 나누었다"며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곳이 없어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데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敬神禮)를 위해 값비싼 장식을 마련한다든가, 화려한 성전(聖殿)을 짓는다든가 하는 일은 교회의 신앙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소유의 노예가 된 세상 사람들에게 존재의 복음을 가르쳐 줘야 할 교회가 더 소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면 이는 교회의 길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교회 발전이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수의 '소유(所有)'가 다수의 '존재(存在)', 즉 인간됨을 손상시키는 사회 현실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사회적 관심」 31항 참조) #예언직, 복음으로 어둠을 밝히는 등불 교회와 신앙인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예언직과 사목직과 사제직이라는 '삼중직무'를 받아 수행해야 한다. 이중 예언직은 교회와 세상의 현실을 진단하고, 복음의 빛을 비춰 해석하며, 그 올바른 길, 즉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 전통에서 예언자는 주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하나는 하느님 뜻을 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돼주는 것이었다. 구약시대 사회적 약자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모든 분야에서 소외된 이들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의 약자였다. 거꾸로 힘 있는 사람은 모든 분야에 걸쳐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하느님 백성을 돌봐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하느님 백성을 사지로 내몰기도 했다. 이런 경우 예언자는 힘없는 이들의 편이 되어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불의한 지도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구약의 일부 예언자들, 신약의 요한 세례자,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은 바로 이들 불의한 지도자들 손에 처형되는 운명을 맞는다. 예언자들은 특히 지도자들의 불의함으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의 신음에 귀를 막은 채 거행하는 겉치레뿐인 경신례를 비판했다. 예언직 수행이 하느님 말씀을 이용해 힘 있는 사람들 비위를 맞추거나, 힘없는 사람의 처지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무병장수의 길을, 대학입학 해법을, 사업번창 비책을, 부동산 개발이익 전망을 돈 몇 푼 받고 알려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용어가 주는 오해라 치부하기에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다양한 역할의 조화와 일치 사목은 섬김을 의미한다. 인간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섬김으로써 하느님 뜻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 내용을 살피기 전에 용어가 갖는 문제를 짚어보자. 고대 농경사회에서 목자와 가축 관계를 반영한 이 용어가 오늘날 현대인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보다는 다스림과 순종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목자는 양을 보살피지만 다스리는 지위에 있고, 양은 목자의 다스림에 순종함으로써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은 사람이고 양은 양일뿐이다. 아무리 목자가 양을 사랑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섬긴다 하더라도 말이다. 목자와 양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다. 근대 이전 사람들은 하늘이 누구는 지도자로, 누구는 평민으로, 누구는 노예로 세웠으며, 각각 나름대로 역할을 맡겼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세운 이 질서는 절대적이었으며 신성시되기까지 했다. 사람이 함부로 거스르거나 훼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분에 따른 구별과 차별은 당연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제도화했다. 적어도 정치적 의미의 평등이 실현된 현대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질서이다. 예언이라는 용어가 주는 오해만큼이나 사목이라는 용어 역시 오해의 위험이 크다. 성직자를 목자로, 하느님 백성을 양으로 보게 되면 그 둘 사이는 주종(主從) 관계가 형성돼 지배와 피지배 질서를 정당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혹은 신분에 따른 구별을 넘어 차별을 제도화할 위험마저 있다. 역할의 다양함과 다양한 역할의 조화와 일치를 지향하는 뜻을 담은 용어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퇴사자22012.06.12
![[아름다운 동행] 신앙으로 학생 돌보는 박태순 교사](//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4555_1.0_titleImage_1.jpg)
[아름다운 동행] 신앙으로 학생 돌보는 박태순 교사"효산아,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네가 기특하구나." 박태순 교사(왼쪽)와 그의 대녀 정효선양이 교정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석촌중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박태순(마리아, 53)씨는 얼마 전 '첫 딸'을 봤다. 2001년부터 학교에서 가톨릭 예비신자 교리반을 운영하면서 학생 81명을 입교시키는 동안 처음으로 정효선(요안나)양을 대녀로 삼은 것이다. 세례식 날 박씨가 준비해야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담당교사로서 꽃과 묵주, 십자가, 성모상 등 선물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손님맞이와 미사진행도 신경써야 한다. 때문에 예식에 참가해 학생 대모를 설 틈이 없었다. 2010년 12월, 세례식을 한 달 앞둔 정양이 박씨에게 "대모가 돼주세요"라고 간절히 요청하기 전에는. 정양은 "교리를 받을 때 당연히 선생님께 대모를 부탁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왠지 엄마같은 편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박씨는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와 40살에 가까운 나이차이로 망설이기도 했지만 왠지 효선이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학교에 딸이 생긴 기분은 남다르다. 박씨는 "교무실에 누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오면 효선이부터 부르고, 성지순례를 가도 효선에게 선물할 묵주부터 고르게 된다"며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가보다"고 웃었다. 정양도 집에서 맛있는 반찬을 싸오거나 학교 일을 시시콜콜 털어놓으며 살갑게 군다. 박씨가 연이은 수업으로 목소리가 쉬거나 머리 스타일에 변화가 생길 때 가장 먼저 알아보는 이도 정양이다. "한 번은 효선이가 종이 한 장을 들고 급히 달려오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그날까지 제출해야하는 가정통신문인데, 부모님 서명 받아오는 걸 잊었었나 봐요. '선생님도 제 엄마니까 사인해 주세요'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정양은 박씨를 만나기 전에는 종교에 관심이 없던 학생이었다. 교리반에 가입하게 된 계기도 다른 특별활동과 다르게 활동비가 들지 않는 데다 간식도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양은 "선생님을 따라 성당에 가보니 가톨릭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성호경을 긋는 게 엄숙하게 보이는데다 성경이 개신교 것보다 이해하기 쉬워 더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톨릭교리신학원 종교교육학과를 졸업한 덕분에 쉽고 재미있는 교리교육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했다. 평소에도 서랍에 사탕과 초콜릿을 준비해 학생들에게 건네며 자연스레 신앙에 관련된 대화를 이끌어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특별활동 시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성당에 찾아가 미사에 참례했다. 한때는 동료 교사들이 각 반의 말썽꾸러기들을 "사람 돼서 오라"며 죄다 교리반으로 보내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물론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도 있죠. 그럴 때면 그들 안에도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 아이들도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이고, 학교는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하면 힘든 걸 이겨낼 수 있어요." 박씨가 마음속에 새겨놓은 말씀 중 하나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루카 5,31)는 구절이다. 그는 "진심은 통한다는 말은 진리"라며 "부적응 학생들은 따뜻하게 대해주는 이가 없어 사탕 하나 건네며 말을 걸어도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삼남매 중 맏이인 효선양은 가족 중 유일한 가톨릭 신자다. 박씨가 정양 신앙생활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박씨 바람대로 얼마 전부터 정양의 초등학생 막내 동생이 누나 손을 잡고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효선이를 위해 기도해야죠. 졸업이 무슨 상관인가요, 제 딸인데요!"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2.05.15
![[영성의 길 수도의 길]-(8) 성모영보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0/04/rc/331956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8) 성모영보수녀회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고▲노인복지시설 '해 뜨는 마을'에서 한 수녀가 거동이 불편해 누워 있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격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할머니, 아 해보세요. 잘 하셨어요. 이젠 요구르트도 좀 드셔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에 자리 잡은 노인복지시설 '해 뜨는 마을'. 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박미숙 수녀)가 운영하는 이곳은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을 돌보는 무료 양로시설과 장기요양보험 대상 중증 노인들이 생활하는 전문요양원, 주간노인보호센터로 이뤄져 있다. 오후 간식 시간이 되자 수녀들 손길이 분주해 진다. 혼자 음식을 먹기 힘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일일이 먹여 주거나 옆에서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오늘은 남기지 않고 다 드셨네요. 아이고, 이뻐라. 또 고집 부리시면 집에 보낼 거예요." 수녀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르신들에 대한 정이 듬뿍 묻어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힘들게 해도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친딸처럼 옆에 붙어서 재롱(?)을 떤다. 돌봐줄 가족이 없어 무료로 입소해 있는 어르신이나, 비용을 내고 유료로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이나 수녀들 관심과 돌봄에는 차별이 없다. 요양원 밖으로 나와 '성가정 수공예'라는 현판을 건 작은 집에 들어가니 수녀 몇 명이 작업대에 앉아 빨갛고 파란 끈으로 매듭을 엮거나 율무를 끼워 묵주를 만들고 있다. "어서 오세요." 수녀들은 눈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능숙한 솜씨로 묵주를 만드는 수녀들 손들이 얼마나 예쁜지…. 정성들여 한 알 한 알 엮어가는 표정에 기도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한편에서는 젊은 수녀 두 명이 선배 수녀에게 매듭묵주 만드는 법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이것 좀 봐주세요."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발음이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웬 외국인 수녀지? 올해 종신서원을 앞둔 멕시코 출신 네티시아 수녀와 기제르미나 수녀라고 했다. 성모영보수녀회는 1991년 12월 멕시코에 진출해 수지침 등 대체의학을 통한 애덕 사업을 실천하고 있고, 두 수녀는 멕시코 분원을 통해 입회한 첫 이방인 수녀다. 수녀회는 농장에서 땀 흘리며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는 반 봉쇄 관상적 활동 수도회로 출발했으나 1976년 9월 고 이경재 신부 요청으로 성 라자로 마을에 회원을 파견하면서 사회복지 사도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결핵환자 요양시설 파주 '시몬의 집'과 여성 질환자 보호시설인 용인 '서울시립 영보 자애원',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 나환자 시설인 '다미안 의원' 등 10여 곳에서 사회복지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성경학자이자 수녀회 설립자인 고 선종완(라우렌시오, 1915-1976) 신부는 수녀들에게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증거의 삶을 살도록 당부했다. 그래서 성모영보수녀회 회원들은 매일 30분씩 성경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어느 사도직현장에 있든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읽기 표를 따라 일정 분량의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복지 사도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원래 성경적 삶을 통해 하느님을 선포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회원들은 우선적으로, 절대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생명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심화시켜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총원장 박미숙(레지나) 수녀는 "성경을 학문적 이론이나 지식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하느님 말씀에 맛들인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모르는 이웃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좋은 모범을 보임으로써 복음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수녀는 "그동안 우리 수녀회가 조금은 사회복지 사도직에 치우쳤다는 자성과 함께 설립자 영성으로 돌아가 앞으로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파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을지 '말씀의 사도직'을 연구, 실천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수녀회는 제7차 총회(2009년 11월)에서 수도회 명칭을 '말씀의 성모영보 수녀회'로 변경하고 교황청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수도회 영성과 역사올해 50주년을 맞은 성모영보수녀회는 성경 연구에 한 생을 봉헌하며 복음대로 살았던 성경학자 고 선종완<사진> 신부가 1960년 주님탄생예고(성모영보) 대축일인 3월 25일 설립했다. 선 신부가 사재를 털어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에 마련한 부지에서 가난과 겸손만으로 시작한 수녀들은 경제적 자립을 위해 메추라기ㆍ닭ㆍ젖소ㆍ돼지 사육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농사짓고, 닭치는 수녀회'로 유명했다. 1967년 6월에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산골로 본원을 이전한 뒤에도 양계사업과 과수재배를 병행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다. 수도생활이 고된 탓에 한 때 성소자가 급격히 감소하기도 했으나, 육체적 노동이 영성강화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수녀회 이념에 따라 회원들은 더욱 엄격하게 양성됐다. 이후 1982년 막계리 수녀원이 서울대공원 부지로 수용됨에 따라 문원리로 수녀원을 이전했다. 현재 회원 수는 176명에 이른다. 선 신부는 평생 하느님 말씀을 양식과 의복삼아 청빈하고 겸손하게 살았다. 움막 같은 흙집에서 짚으로 만든 돗자리 하나 깔고 생활하며, 낮에는 고철 값밖에 쳐주지 않을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신학교 강의를 다니며 밤에는 등잔불 밑에서 성경번역에 몰두했다. 그러면서도 수녀원에 양식이 일주일분 이상 남으면 쌓아 두지 말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라고 말하곤 했다. 물질이 풍족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태해지고 노동을 천시하게 마련이다. 이에 회원들은 정신적으로 가난해야 한다는 서원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가난한 생활을 함으로써 빈곤한 이를 돕고 근면한 생활로 노동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복음의 메시지가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듯, 선 신부는 수녀들이 가난한 공동체를 이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총원장 박미숙 수녀는 "청빈의 삶은 우리 수도회가 철저히 지켜야 할 가장 으뜸적인 특성으로 말로만이 아닌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에 동참하며 영적 풍요로움을 성장시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녀회의 또 다른 영성적 특징은 '기도와 노동'이다. 설립자 고 선종완 신부는 "기도 없는 노동은 무의미하며 또한 노동 없는 기도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수녀회는 어떤 곳에서 활동하든지 '하루 5시간의 기도와 5시간의 노동'을 반드시 실천한다. 수녀회의 영성에서 '겸손의 삶'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겸손하게 십자가에서 당신을 봉헌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드러내지 않는 증거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래서 선종완 신부 출신 본당으로 선 신부 기념관이 있는 원주교구 용소막본당을 제외하고 본당 사도직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선 신부는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이들도 그리스도 말씀 안에서 완덕에 이를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녀회가 설립될 당시 한국 수녀회는 대부분 고졸 이상 학력을 요구해 수도성소의 뜻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 신부의 수녀회 설립 정신은 초창기 수녀들에게 한 강화에도 잘 드러나 있다. "가난하고 공부하지 못한 사람은 수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으나 우리 수도회는 주님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면 수녀가 될 수 있어요. 언제나 침묵 중에 주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하고 일하십시오." 이런 취지에 따라 성모영보수녀회는 지금도 나이와 학벌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하느님 종으로 살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두고 있다. 서영호 기자 cpbc201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