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드라마 등 방송ㆍ신문매체에서 잘못 쓰는 가톨릭 용어 많다](//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4633_1.0_titleImage_1.jpg)
[문화] 드라마 등 방송ㆍ신문매체에서 잘못 쓰는 가톨릭 용어 많다대중에게 그릇된 이미지 심어줄 우려최근 어느 방송사 드라마에서 나온 수녀 모습. 목에 건 묵주와 베일 밑으로 빠져나온 염색한 머리카락은 수도자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 줄 우려가 있다. 최근 어느 방송사 주말드라마에 나온 수녀(송채환 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신자들이 많았다. 수녀 목에 묵주가 걸려있는 데다 베일 밑으로 붉게 염색한 머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이라는 대사에도 눈살을 찌푸렸다. 해당 드라마 게시판에 항의 글이 빗발치자 수녀 역을 맡은 배우가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해프닝이다. 물론 이같은 오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교회는 고유 용어와 전례, 문화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방송ㆍ신문매체에서 여전히 오용(誤用)되는 사례가 발견된다. #어? 이게 아닌데! 김수환 추기경 선종과 장기기증운동, 이태석 신부 선종과 '울지마 톤즈' 열풍 등으로 지난 2~3년간 매스컴에 천주교 관련 소식이 유난히 많았다. 그러다보니 매체를 접하다 '어? 이게 아닌데!'하며 멈칫한 신자들도 그만큼 많았다. 매스컴에서 가톨릭 용어와 이미지를 가장 흔하게 오용하는 게 미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미신자에게 생소한 단어가 많고, 개신교 용어 영향으로 혼동되는 탓이다. 미사를 '예배', 사제의 미사 주례를 '집도'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흔하다. '강론'을 '설교'로 칭하거나 '성가'를 '찬송가'로 쓰는 경우도 더러 눈에 띈다. 또 '성전'을 '예배당'으로, '성당'을 '사원'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은 해묵은 오용 사례다. 한국 천주교는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을 '하느님'이라고 하고,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하는데도 천주교 관련 기사에 '하나님'이 등장한다. 또 라틴어 표기에서 C를 한글 자모 ㄱ으로 씀에 따라 '가톨릭'이라고 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카톨릭'이나 '카토릭' 등으로 혼용한다. 특히 TV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아 잘못 비춰진 가톨릭 이미지는 바로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목에 묵주를 걸고 나온다거나 신부가 정체불명의 '빨간' 성경을 들고 기도하고, 무릎을 꿇고 성가를 부르는 장면도 있다. #그건 이겁니다! 교회는 이런 잘못된 표현이 발견되면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편이다. 주교회의 사무처 미디어부와 교구 홍보국 등이 담당자에게 오류 사실을 알리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재발을 막는다. 또 지난해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는 이런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 「매스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ㆍ자료집」을 제작, 각 신문ㆍ방송사에 보급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언론과 영화, 드라마 등 매스미디어는 대중과 천주교 소통의 중요한 연결고리"라며 "이런 오류가 자주 발생하면 대중에게 과장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또 "교회는 매스미디어 종사자들이 고유 용어와 이미지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창구를 더 다양화하고, 자문과 감수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2.02.08
![[특집 대담]'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시리즈를 마무리하며](//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6036_1.0_titleImage_1.jpg)
[특집 대담]'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시리즈를 마무리하며바오로 사도의 선교여정은 감동과 전율 그 자체... 왜 바오로인가? 이 시대는 왜 바오로를 필요로 하는가? 바오로는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가?… 새해 기획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를 7개월여에 걸쳐 연재하는 동안, 실타래처럼 뭉쳐있던 의문이 하나하나 풀려갔다. 바오로 사도가 걸어간 그 길, 바오로 로드를 따라가노라니 사도의 삶과 회심, 그 위대하고도 기나긴 여정(On The Road)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걸어간 그 길을 연재에 앞서 한국정교회 초대 대교구장을 지낸 그리스 출신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와 서양화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56)씨, 그리스정교회 신자들이 따라 걸었고, 연재가 이뤄졌다. 24회 연재를 하는 동안 미처 원고에 담지 못했던 내용과 뒷얘기를 가려 대담형식으로 묶는다.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시리즈 스크랩북을 펼쳐놓고 필진과 관계자들이 연재 당시 지도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트람바스 대주교, 한국정교회 출판부 담당 우종현 신부, 오세택 기자, 화가 정미연씨.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정을 7개월간에 걸쳐 연재하시느라 노고가 크셨습니다. 독자들을 대신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우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트람바스 대주교= 연재가 국내외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하니 저도 기쁩니다. 연재를 통해 주님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독자들을 '선한 땅'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멀리 미주지역에 계신 분들께서 미처 스크랩하지 못한 연재분 신문을 요청해오셨다고 하니 말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번 시리즈를 통해 만난 바오로 사도를 늘 마음에 모셔두고 인생에 훌륭한 안내자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미연= 바오로 사도와 개인적 인연이 얽혀있는 트람바스 대주교님과 생생한 인연의 고리를 따라 함께 순례를 하고 대주교님 글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대주교님께서 직접 선정한 바오로 사도의 선교지를 찾아 떠났기에 어떤 순례보다 특별했습니다. 또 그리스에서 오래 공부하신 백은영(아가티) 수녀님 통역과 뒷받침도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그리스정교회와 만남으로 신비로움이 배가됐습니다. ▲2000년 전에 살았던 성 바오로의 삶과 선교 여행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트람바스 대주교= 성경은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하고 언급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그 훌륭한 복음을 전한 바오로 성인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우리 생활방식도 달라지지만, 선조들의 영적 고민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날마다 성경 읽기를 권하고 성경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합니다. 정미연= 타르수스와 필리피, 에페소, 네아폴리스, 아테네 등 성경에 등장하는 바오로 사도의 선교지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감동이 컸습니다. 선교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바오로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은 전율이었지요. ▲바오로 선교여행을 형상화하느라 어려움이 크셨다고 들었는데,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정미연= 처음엔 막막했어요. 현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그 깊은 바오로 사도의 영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해야 할지 아득했지요. 해법을 멀리서 찾으려니까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토록 끙끙 앓으며 순례를 되새기고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한 고리 한 고리 풀어가다보니 어느 순간에 스스르 풀려나왔어요. 그건 제 힘이 아니었지요. 하느님 사랑 속에서 바오로 사도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그림이 풀려나올 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원 체험이 특히 인상적이셨다고 들었는데. 정미연= 순례는 터키에서 열흘, 크레타 섬 관상수도회에서 열흘, 그리스에서 열흘씩 이뤄졌습니다. 이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도원 체험이었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엔 대주교님께서 수도원 체험 일정을 열흘씩이나 짠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직접 수도원에서 살아보니 정말 소중한 일정이었어요. 관상수도원에서 몸짓으로 침묵의 대화를 나누며 정신없이 보낸 터키 순례를 정리하고 그리스 순례를 준비할 수 있었지요. 수도원에서 침잠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돼 기뻤어요. 특히 정교회 수도생활의 깊은 문화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뜻깊었습니다. 또 하나, 이번 순례 여정에서 비잔틴미술에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성미술의 진수를 봤습니다. 단순하고 질박한 교회미술의 깊이가 얼마나 마음속에 와 닿았는지 충격적이었습니다. 비잔틴 미술이 얼마나 엄청난지, 신앙과 영성과 초월자의 깊은 내면까지 묘사해내는 표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지요. ▲바오로 서간을 통해 드러난 바오로 신학의 핵심은 무엇인지요. 트람바스 대주교= 바오로 서간에 나타난 바오로 신학의 핵심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두 주제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께서는 늘 이 두 가지 의미를 강조하고 자주 인용합니다. 십자가에 대해서는 특히 '자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죽음에서 승리하셨다고 강조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믿음은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고, 그 부활을 믿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신학을 바오로는 갖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왜 그렇게 많은 서간을 남겼는지, 또 서간 중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서한은 무엇인지요. 트람바스 대주교=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설립하고는 그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한 동안 머무른 곳이 있다면 에페소와 코린토뿐입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잠시만 거쳐 갔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신학적 가르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해서 바오로는 협력자들과 교회 구성원들, 제자들을 교육하고자 서신을 씁니다. 각 서간이 다 귀하지만, 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약을 근거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신학적으로 정립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방법론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바오로의 선교 목표와 방법, 신학적 기초를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또 바오로 사도의 진정한 유산은 무엇인지요. 트람바스 대주교= 다마스쿠스에서의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는 곧바로 선교여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 3년간 지내며 기도와 금식, 영적 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사막에서 살며 구약 율법을 정리했고, 구약과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준비되지 않는다면, 주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완벽하게 하고 선교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선교 목적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자신의 희생이 따르지 않는다면 선교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교회가 필요한 것은 바오로가 펼친 선교사업의 외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바오로의 선교 정신을 본받는 것입니다. 정미연= 바오로 사도 선교지를 훑어가다 보면 얼마나 그 삶이 드라마틱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없었다면 성경이 이렇게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또 성경의 가르침이 제대로 이어졌을까 싶습니다. 바오로가 매개로 쓰이지 않았다면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연재가 책으로 묶이고 또 전시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트람바스 대주교= 많은 분들이 이번 연재가 책으로 나왔으면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신문의 협조와 한국정교회출판부의 호응으로 책을 내게 됐습니다. 또 바오로의 중심 활동무대가 소아시아였던 만큼 터키어로도 이 내용이 출판되기를 희망하고 있고, 그리스어 출판은 구상 중입니다. 연재가 무사히 마무리되도록 최대한 협조해 주신 데 감사를 드립니다. 바오로의 행적을 따르는 여행을 하며 예술가로서 독창적 관심과 흥미를 보이며 선교지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고 그림으로 그리신 정미연 교우님께도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도 사도 바오로의 삶을 닮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시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미연= 나름 열심히 해보려고 먼 길을 달려왔는데 제대로 전달했는지 두려움과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정을 따라 걸으며 제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는 전환점이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삶의 큰 고비 하나를 넘은 느낌입니다.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신문에 연재했던 그림은 오는 9월 26일부터 2주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내 미루화랑과 피카소룸에서 전시회를 갖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08.09
[출판]상처입은 관계의 치유 인간 감정을 둘러싼 오해와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도록 해 준 「상처입은 감정의 치유」의 속편으로 이번에는 인간관계에 대해 살펴봤다. 인간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전해준다. 모두 14장으로 구성된 책은 소통, 듣기, 갈등, 친밀감, 가장 중요한 관계, 용서와 화해, 상실, 이혼, 사별과 애도, 불안과 두려움, 재혼, 행복한 결혼생활, 가족, 감사하는 마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심리학자이자 전문 상담가로 활동해온 마르틴 파도바니 신부는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마주앉아 상담하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친근한 예로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성경말씀을 토대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는 불안 속에서 태어났고 불안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정은 달라집니다. ….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를 낙관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신뢰의 기도로 삶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마라'고 365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루카 8,50)"-제10장 불안과 두려움 중에서- 저자는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는 타인과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일러주셨다"면서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올바른 관계를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마르틴 파도바니 신부 지음/권은정 옮김/분도출판사/1만 3000원)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1.06.21
![[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2> 서석공소 터를 닦으며](//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70_1.2_titleImage_1.jpg)
[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 서석공소 터를 닦으며 모세에게 주신 용기, 지혜 약속하신 주님 22살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두메산골 서석(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들어가 선교사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서울에 가서 새 출발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내게 공소 선교사 자리를 제의하고 며칠 생각할 말미를 준 조선희 필립보 신부님과 마주 앉았다. 신부님은 "서석이 돌아오지 못할 지옥은 아닙니다. 힘들거나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나오면 됩니다"하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정하고 신부님을 뵌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부족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신부님은 월급 1만 5000환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한 달 치를 미리 주셨다. 신부님은 서석 일대를 답사하신 후 성당부지로 사용할 야산을 매입해 두신 상태였다. 그리고 야산 앞에 있는 초가 6칸을 사놓으시고 나를 선교사로 파견하시는 것이었다.홍천본당 서석공소 선교사 시절 눈 쌓인 공소 앞에서(가운데가 임 보나 선교사). 하느님은 내게 착하고 부지런한 예비신자와 협조자를 많이 보내주셨다. #면(面)에 천주교 신자 단 한 명 1956년 10월 10일, 얼마 안 되는 부엌 살림살이와 이불을 챙겨 신부님 차를 타고 서석에 들어갔다. 홍천에서 서석까지 3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신부님은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우리 모자(母子)만 초가에 덩그러니 남겨놓으시고는 바로 홍천으로 돌아가셨다. 큰 집에서 대가족과 함께 살았던 터라 낯선 초가에 촛불만 켜들고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7살배기 어린 아들은 집에 가자며 칭얼거렸다. 아이는 울면서 방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신부님이 서석에 공소를 세우기로 한 이유는 연규필(안드레아) 형제 때문이다. 연 안드레아 형제는 6ㆍ25 전쟁 중에 하반신을 조국에 바친 1급 상이용사였다. 육군병원에서 세례를 받고 귀향한 그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홍천본당 조 신부님께 공소를 세워달라고 청한 터였다. 그날 저녁 연 안드레아 형제가 식사하자며 허름한 마을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때 난생처음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 않는 경험을 했다. 더구나 처음 만난 상이군인(안드레아 형제)은 왜 그리 무서웠던지…. 1950, 60년대는 나라가 가난해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불구가 된 그들에게 호구지책을 세워주지 못했다. 악에 받친 그들은 가는 곳마다 울분을 토하며 행패를 부렸다. 그러면 주민들은 물론 경찰도 무서워서 슬금슬금 피했다. 서석면을 통틀어 천주교 신자는 안드레아 형제 한 명뿐이었다. 그의 부인도 신자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천주교라는 걸 처음 들어본다"며 무슨 신흥종교 대하듯 했다. 주민들은 불교와 유교를 믿었다. 터줏대감, 산신령, 서낭당, 손각시(처녀귀신), 아들바위(소원을 들어준다는 암석) 등 잡다한 무속에 빠진 주민도 많았다. 그리고 마을마다 자리 잡고 있는 단골무당들은 "예수 믿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경험도 없는 내가 이토록 터가 센 마을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모든 게 피난살이할 때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신부님이 공소에 오셨기에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다. "부족한 게 많아서 여기서 일할 자신이 없습니다." 신부님은 한참 생각하신 후에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참아보세요. 보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잘 될 겁니다"하며 다독여 주셨다. 그날 저녁기도를 마치고 성경을 펼쳤다. 탈출기 3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사람을 말 못하게 하고 귀먹게 하며, 보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그러니 이제 가거라. 네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탈출 3,10-4,11). #한밤중 외딴 길에서 맞닥뜨린 나병환자들 복음을 묵상하면서 크게 깨달았다. 콕 집어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 순간 용기가 솟았다. 다음날부터 서석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하는 생곡리 생비라는 마을까지 오르내리면서 천주교를 알렸다. 하반신을 나라에 바친 25살 연 안드레아 형제는 나머지 상반신을 하느님 사업에 바치겠다는 각오로 선교활동을 도와줬다. 하느님은 착하고 부지런한 예비신자와 협조자를 많이 보내주셨다. 서석면 생곡1리 교우집에 집회소를 정하고 주1회씩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할 때다. 낮에는 농사일이 바빠 밤에 모여 교리공부를 하다보면 밤 11시에 끝이 났다. 아무리 선교사라고 해도 젊은 여자 몸으로 밤길 6㎞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다. 고맙게도 황 사무엘(19살)과 심 사베리오(18살)가 보디가드처럼 밤늦게 데리러 왔다. 어느 추운 날 밤, 황 사무엘이 혼자서 나를 데리러 왔다. 얼굴이 새파랗게 얼었다. 우리는 밝은 달빛을 손전등 삼아 매서운 바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검산리 아들바위를 돌아서니까 도로 한가운데서 몇 사람이 화톳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시신을 지키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때는 객사(客死)하면 시신을 집에 들여놓지 않았던 터라 길에서 그런 광경을 더러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깜짝 놀랐다. 장날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구걸하는 나병환자들이었다. 나병환자들이 몹쓸 짓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절이다. 장날에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광경도 실제 보았다. 발길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남장을 할 겨를도 없었다. 사무엘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큰일 났어요. 이쪽에 여자가 있는 걸 본 것 같아요." 도로 오른쪽은 가파른 산이고, 왼쪽은 낭떠러지였다. 그야말로 피할 곳 없는 외나무다리였다. "회장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요. 빨리 뛰면 돼요." 나는 마음을 다잡고 독백처럼 말했다. "아냐, 늦었어. 그냥 땅만 보고 지나가." 그 순간 무리에서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계속)조은일2012.07.17

시골 작은 본당에 큰 기적이…가평 미원본당, 주일 미사 참례율 50% 넘고 선교운동도 시작미원본당 신자들은 평일미사를 마치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만큼 신앙열기가 뜨겁다. 사진은 2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신자들과 김현준 신부(맨 오른쪽). 신자 수 319명에 불과한 작은 본당에 단체가 10개나 있다. 남ㆍ여 어르신들이 활동하는 요아킴회ㆍ안나회를 비롯해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애덕회까지 활동 내용도 다양하다. 미사 참례율은 50%를 넘나들고, 소공동체 모임에는 90여 명이 참석한다. 최근에는 새신자 30명 입교를 목표로 4단계 선교운동 '살ㆍ짝ㆍ전ㆍ함'을 시작했고, 3일에는 본당 설립 후 처음으로 청소년 신자 15명을 위한 청소년미사가 봉헌됐다. 작지만 신앙열기는 그 어느 본당보다 뜨거운 춘천교구 가평 미원본당(주임 김현준 신부) 이야기다. 2일 오전 미원성당을 찾았다. 평일미사에 40명 가까운 신자가 참례해 작은 성전이 북적북적했다. 미사를 마친 후에는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김현준 주임신부와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다. 십자가의 길 기도 후에는 예비신자 5명을 대상으로 두 시간여 동안 교리가 진행됐다. 교리 장소는 사제관, 교리교사는 김 신부였다. 예비신자 교리는 1주일에 2번이다. 금요일에는 김 신부가 사제관에서 가르치고, 주일에는 평신도가 강의한다. 올해 '2018년 새성전 건립'과 '냉담교우 없는 참된 공동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운 미원본당은 모든 신자가 목표 실현을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성전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어르신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안나회 어르신들은 매주 화~토요일 음식카페를 열어 떡라면과 떡만둣국을 팔고 있고, 요아킴회 어르신들은 빈병을 모아 팔아 성전건립에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주일 교중미사 후에는 성모회 회원들이 김치찌개, 제육볶음, 소고기미역국 등 매주 다른 메뉴로 점심 식사를 준비해 판매하고 있다. 점심식사는 성전건립기금 마련뿐 아니라 신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친교를 다지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고 있다. 지난해 8월 부임한 김 신부는 3개월 동안 본당 모든 가정(151가구)을 방문해 신자들을 만나고, 냉담교우들에게는 다시 성당에 나올 것을 권했다. 이후 미사참례율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김 신부는 "외지에 나가 있는 신자를 제외하고 미사에 나올 수 있는 모든 신자가 주일미사에 참례하면 미사참례율이 61%가 된다"면서 "미사참례율 61%가 될 때까지 신자들과 함께 냉담교우 회두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주 8개면으로 발행하는 본당 소식지 '구면인듯ㆍ구면처럼'도 미원본당 자랑이다.'구면인듯ㆍ구면처럼'에는 각 단체 활동 내용과 구역ㆍ반 소공동체 모임 참석자 현황, 한주 동안 있었던 소소한 행사 내용이 빼곡하게 실려 있다. 이번 달에는 대대적인 선교운동도 시작했다. 6일 대전교구 보령 갈매못성지를 순례하고 선교 선포식을 한 미원본당 신자들은 24시간 고리 묵주기도, 매일 성경구절 읽고 쓰기 등을 하며 본격적인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신자들은 친척과 지인 등을 대상으로 입교를 권하며 선교운동을 펼치게 된다. 김 신부는 "우리 본당에는 미사 시간에 늦거나 미사가 끝나기 전에 성당을 빠져 나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모든 신자들이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냉담교우 없는 본당 만들기, 아름다운 새성전 봉헌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2.03.06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16>사회복지와 교회의 가르침(2)](//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1989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사회복지와 교회의 가르침(2)보편복지, 역선택 모순 고려해야 지난 번에 보편복지 주장과 선별복지 주장은 각기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그 때문에 건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 복지정책은 다음 네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누구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그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그 정책실현을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다. 우리 언론은 주로 네 번째 요소, 즉 재원마련 대책도 없이 즉흥적 선심성 복지공약을 남발한다고 비판한다. 시민들 대부분이 이에 공감한다. 그러나 시민 사이에 혹은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 사이에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첫째, 선별복지를 보수의 시각으로, 보편복지를 진보의 시각으로 단순하게 대립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복지를 인권의 사회권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처럼 사회복지 역사는 보편복지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선별복지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예를 들어, 4대 보험ㆍ초중학생 무상교육ㆍ65살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료이용 같은 경우는 보편복지 성격을 갖는 정책이다. 만일 보편복지가 진보주의의 주장이라고 가정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보수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실행하고 있는 보편복지 정책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관점에 따라 선별복지정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는 거의 만나보기 어렵다. 둘째, 선별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보편복지를 비판하면서 많이 내세우는 것 가운데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의료비 부담이 적다고 불필요하게 병원을 찾음으로써,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을 악화시킨다고 비난한다. 혹은 일은 하지 않거나, 힘든 일은 피하는 사람들까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비판한다. 이는 극복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것만이 도덕적 해이라 할 수는 없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무 내용은 회자하면서도 용어는 낯선 '역선택'이란 것이 있다. 국민의료보험을 강제하지 않는 임의가입으로 하고 민간보험회사에서 의료보험상품을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민간보험회사는 사회 통계상 평균 질병률에 기초해서 보험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평균 질병률보다 낮은 질병률을 가진 젊은층과 건강한 층의 상당수는 보험료가 높다고 생각해 탈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지균형 차원에서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보험적용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평균 질병률보다 낮은 질병률을 가진 가입자가 탈퇴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다. 결국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저소득 계층만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과 의료서비스 축소가 불가피하고 공익 차원의 의료보험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것을 역선택이라 하는데, 강제가입으로써 이 문제를 방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도덕적 해이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전 국민 의무가입과 당연 지정제를 축으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필요한 낭비가 가져오는 피해보다, 역선택이 가져오는 피해가 훨씬 치명적일 수 있어서다. 쉽게 말하면 불필요한 서비스 과잉으로 축나는 재정보다 강제가입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려는 이들이 차지하는 손실 부분이 훨씬 클 수 있다는 뜻이다. 고위공직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메뉴 가운데 하나가 국민건강보험료 미납인 이유도 바로 이 역선택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고액 소득자는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고 생활환경이 비교적 쾌적하기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 편이다. 그런데 의료서비스를 받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고액 보험료를, 그것도 되돌려 받지도 못할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 마뜩잖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이 낸 보험료를 갖고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조금 낸 저소득층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아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역선택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높다. 역선택의 결과에 대해 설명해 줄 성경 구절이 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루카 16,19-21).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주장 사이의 건전한 토론을 위해서는 바로 낭비적 요소와 함께 역선택의 문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퇴사자22012.04.17
인천 논현1동본당 2011 가톨릭 소래포구 축제인천교구 논현1동본당(주임 지성용 신부)은 10~16일 새 성전 및 교육관, 소래포구 일원에서 지역민과 함께 하는 문화 나눔 축제인 '2011 가톨릭 소래포구 축제'를 연다. 이번 축제는 제11회 인천소래포구축제(13~16일) 기간에 맞춰 소래포구를 찾는 인천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톨릭 신앙과 나눔 문화를 소개하고 지역민과 화합하는 행사로 마련됐다. 인기 가수 및 생활성가 공연과 아름다운 연주가 펼쳐지는 음악회가 15일 오후 7시 30분 새 성전에서 열리고, 서예가 석현 전운순(요셉) 선생의 '성경 말씀 가훈 써주기' 행사가 13일 마련된다. 복녀 마더 데레사 수녀의 희생적 사랑과 봉사의 삶, 영성을 묵상할 수 있는 유품(수도복 및 수의 일부, 머리카락) 전시회(13~16일 성체조배실)도 열린다. 아울러 본당 주임 지성용 신부의 애장품(희귀 성물, 음반, 도서 등)과 일반 신자들이 내놓은 기증품을 판매하는 아나바다 바자도 마련된다. 또 축제 기간 중 논현1동성당 교육관 식당에서 소래 특산물인 전어, 대하, 꽃게 등으로 요리한 음식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고, 본당 명패가 부착된 '가톨릭 소래포구 상인연합회'(회장 전인수) 회원 상점에서는 싱싱한 해산물과 건어물, 젓갈 등을 할인판매 한다. 한편 논현1동본당은 오는 12월 새 성전 입당을 앞두고 성전을 장식할 각종 성물과 성전 제대 뒤편 '영혼의 집'에 조상의 명패를 모실 수 있는 '생명판' 봉헌 접수를 받는다. 문의 : 032-425-7594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11.10.04
![[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3> 무속신앙의 벽](//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2105_1.0_titleImage_1.jpg)
[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 무속신앙의 벽"너를 살리신 분은 하느님이시란다"1960년대 강원도 산골 공소 선교사 생활은 지금의 사람들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처럼 들리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서석공소 선교사 시절 찍은 사진(뒷줄 오른쪽이 필자) 자정이 다 된 밤에 강원도 산길에서 마주친 나병환자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는 나병환자에 대한 해괴한 소문이 파다했던 터라 그들이 나타나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던 시절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회장님 아임겨? 이 밤중에 우델 갔다 오능교?" 화톳불가에 둘러앉아 있던 그들 중 한 명이 일어서더니 아는 체했다. 그 소리가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빛줄기를 찾은 것마냥 반가웠다. 키가 크고 좀 늙어 보이는 게 낯이 익다 싶었다. #한밤중 산길에서 마주친 나병환자들 생각해 보니 우리집에 와서 구걸을 한 나병환자였다. 어느 날인가, 그는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미역국도 못 끓여줬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돈을 조금 줬더니 옷도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나도 옷이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한 벌 꺼내 줬다. 그랬더니 고무신도 달라고 했다. 신발이라고 해봐야 달랑 고무신 두 켤레였지만 군말 않고 한 켤레를 싸서 줬다. 사실 내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빨리 돌려보내고 싶어 달라는 대로 다 줬다. 그는 옆에 있는 나병환자들에게 "회장님은 고마운 분이니까 인사 올리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줘서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휴~ 이제 살았구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화살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를 데리러 온 황 사무엘도 그날 얼마나 놀랐는지 앞으로 잘 경호하겠다면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아들바위 근처에서 귀신(?)을 본 적도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밤늦게 집회소 교리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앞에 흰옷을 입은 여자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사무엘에게 "빨리 걷자. 저 여자랑 같이 걸으면 좋겠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우리가 빨리 걷는데도 그 여자와의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20m 간격쯤 될까. 그래서 같이 가는 걸 포기하고 속도를 늦췄는데, 그녀도 그랬는지 간격은 똑 같았다. 집이 대여섯 채 있는 마을을 지나자 그녀는 길도 없는 강가 쪽으로 들어섰다. 내가 "이상하네. 저긴 길도 없고 인가도 없는데"하고 말하자 사무엘은 "걱정하지 말고 우리 길이나 가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다음날 사무엘이 공소 사택에 찾아와 "이젠 무서워서 경호원 노릇을 못 하겠다"고 했다. "회장님이 놀라실까봐 어제 말씀을 안 드렸는데, 어젯밤에 본 게 귀신이에요. 귀신. 불편하시더라도 다음부터는 집회소에서 주무시고 아침에 오세요." "귀신? 하느님 믿는 사람이 무슨 귀신타령이야." "물귀신이 틀림없어요. 그 귀신이 우리를 홀리러 왔다가 회장님이 믿음이 강한데다 손에 묵주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둔 거예요. 그 여자가 앞서서 마을을 지날 때는 개가 짖지 않다가 우리가 지날 때는 막 짖었잖아요. 거기에 큰 소(沼)가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사람이 빠져 죽는다니까요." 그 바람에 나는 교리공부가 끝나면 창고나 다름없는 집회소 골방에서 자고 집에 돌아왔다(주민들이 그 귀신 이야기에 조금씩 살을 붙이더니 여자가 산발을 했느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느니 하는 '전설의 고향' 드라마를 만들어 놨다). #손녀를 살리려면 굿을 해야 1965년 어느 날이었다. 풍암2리에 사는 변 마리안나 자매의 시어머니가 3살 먹은 손녀를 업고 들이닥치더니 "내 손녀 살려내라"며 애를 내던지듯이 내게 안겼다. 영문을 모르는 터라 시어머니 마음을 진정시키고 얘기를 들어봤다. 사연인즉 이렇다. 내게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 신자가 된 변 마리안나 자매가 애를 낳았는데, 홍역도 잘 치른 애가 무슨 변고인지 열병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답답해서 단골무당집에 찾아갔는데, 그 무당이 "아들의 전처 귀신이 붙어서 그런 거니 큰굿을 해서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며느리 마리안나가 "천주교 신자는 굿을 하지 않는다"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아이는 계속 열이 펄펄 끓고, 무당은 "빨리 굿을 하지 않으면 애가 죽는다"고 겁을 줬다. 하는 수 없어 시어머니는 "천주교고 뭐고 애는 살려야 한다. 정 그러면 쌀 한 가마니만 다오. 내가 나가서 굿을 하고 올테니…"하며 며느리에게 사정을 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자식을 죽이면 죽였지 굿은 못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화가 잔뜩 난 채로 내게 와서 당신이 며느리를 천주교 신자로 만들었으니 애를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애는 홍역 끝에 폐렴이 온 것 같았다. 어깨로 숨을 쉬고 코밑은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상태가 위독해 보였다. 나는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아이를 업고 보건소로 뛰어갔다. 보건소 공의(公醫)는 진찰을 하더니 급성 폐렴이라면서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이 날 뻔 했다고 했다. 의사는 주사를 놓고 약을 3일치 지어주면서 내일 한 번 더 와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애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날 보건소에 들렀다. 아이가 간밤에 차도가 있었는지, 또 주사를 맞고 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간밤에 애가 잘못된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보건소에서 풍암2리를 가려면 자작고개를 넘어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묵주를 쥐고 성모송을 바치면서 고개를 넘었다. 마리안나 집 앞에 도착했지만 인기척을 내기가 망설여졌다. 발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했다. 십자성호를 긋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더니 마리안나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줬다. "회장님, 애가 어제 주사를 맞고 오더니 할머니 등에서 쌔근쌔근 잘 자고 있어요. 열도 다 내린 것 같아 보건소에 가지 않았어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구약성경의 신명기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신명 32,39). 겁을 준 그 무당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10여년 뒤 서석을 떠나 다른 성당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어느 날, 손글씨로 예쁘게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임 회장님이 살려주셨다지요. 어머니께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임 회장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성함만 기억할 뿐이에요. 뵙고 싶어요." 그때 폐렴으로 사경을 헤맸던 마리안나 둘째딸이 보낸 것이었다. 답장을 써서 보냈다. "내가 너를 살린 게 아니란다. 너를 살리신 분은 하느님이시란다."<계속>김원철2012.07.31
![[24살 청년 평화에 바란다] 교회와 사회에 감동을 주는 신문](//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3895_1.0_titleImage_1.jpg)
[24살 청년 평화에 바란다] 교회와 사회에 감동을 주는 신문오용석(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한국 평협 사무총장)평화신문이 태어난 1988년은 격동의 한 해였다. 한국교회에서는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를 1년 앞둔 해였고, 그해 말에는 보편교회의 역사적 문헌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발표됐다. 남북한 간 해빙무드를 조성한 7ㆍ7선언도 같은 해 일이었다. 이 선언이 있고 나서 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현 신부를 평양에 보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숨 가쁜 역사적인 해에 평화신문은 '진리를 빛으로', '정의를 목표로', '사랑을 원동력으로', '참 언론을 펴 나아가려는 것'을 사명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모든 인간 형제의 귀가 되고 입이 되며, 나아가 겨레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이 시대와 분단된 남북의 7천만 겨레 앞에 다짐'하며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이렇듯 평화신문 탄생의 명분은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더욱이 국민에게 큰 존경을 받던 김수환 추기경이 발행인이었기에 교회 안팎으로 평화신문에 대한 기대는 참으로 컸다. 이런 평화신문이지만, 교회의 유일한 신문이 아닌데다가 주간지라는 한계성과 인적ㆍ물적 부족함으로 인해 인고(忍苦)의 24년을 지내왔다. 그동안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려 한 노력만으로도 평화신문 24년은 24K 순금 가치 같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빛이신 주님의 진리를 알리기 위해 성서신학에 조예가 깊은 사제들의 글 연재로 독자들이 '성경의 궁금증'을 풀고 '생활 속의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했다. 평화방송 TV와 함께한 '기획강좌 신앙의 재발견'은 읽는 이들에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바른 신앙의 길을 찾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현대사회에 적응하고자 하는 보편교회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연재물이다. 하느님 창조질서와 사회정의에 관한 교회 가르침인 생명과 사회교리 연재는 영성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현세의 생명과 환경,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는 데 기여하고, 상담코너 '아 어쩌나?'는 평화신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기 꼭지로 자리 잡고 있다. 세상 안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신앙들의 모습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동행'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우리의 메마른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해왔다. 또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는 특정한 날의 반짝 행사가 아니라 독자들이 늘 어려운 이웃을 만나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하고 있다. 사랑을 원동력으로 하겠다는 평화신문 창간 이념을 독자와 함께 실현하는 본보기라 할만하다. 병원이나 사회단체들이 봉사활동에 뜻을 모아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의 현장 취재 기사라든지, '사랑의 학교 만들기' 같은 특별기획은 우리 사회 어두운 면을 충분히 밝고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읽게 해준다. 이 밖에 평화신문 신춘문예는 거의 불모 상태였던 한국 가톨릭문예 창작 발표의 장을 마련한 것으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화신문 24년의 공로 이면에는 아쉬움 또한 없지 않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다른 어떤 신문보다 먼저 집어 읽고 싶은 신문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평화신문이 다른 신문들과의 차별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때의 국민적 감동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포함된다. 또 평화신문은 주간지 특성을 살려 독자들이 배달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지도 못했다. 그것은 기사 내용이 사회적 관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컨대, 최근 한미FTA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교구 간, 신자 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을 평화신문은 몇 줄의 소극적 사실보도에 그침으로써 교회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적어도 신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교리 해설이나 사회교리 실천 현장의 사례들을 발굴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독자들 욕구를 읽는 데도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필진이 그 예다. 신자 독자들은 본당이나 교구에서 직접 만나기 어려운 저명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을 지면을 통해 만나고 싶어한다. 이런 수요를 못 채워준 평화신문에 대해 독자들은 교구 주보와 큰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바라건대, 하루의 끝과 시작의 만남이 24시이듯 평화신문 창간 24주년이 더 큰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 됐으면 한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깊은 성찰을 통해 잘했던 것은 더욱 잘하고 미흡했던 부분은 끊임없이 보완해 나간다면 교회와 사회에 진정한 감동을 주는 신문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평화신문 24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교회와 사회의 등불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도한다.남정률2012.05.08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제2부] 27. 수도생활 교령](//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244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제2부] 27. 수도생활 교령수도 생활의 쇄신과 적응에 대한 원칙 제시수도 생활 교령은 교회헌장 제6항에서 제시하는 수도자 신분과 관련, 수도 생활의 쇄신과 적응에 관한 일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인보성체수도회 서원식 장면. 평화신문 자료사진 공의회 준비 단계에서 마련된 수도생활 교령 초안은 몇 차례 축소 조정된 후 공의회가 개막하면서 교부들에게 배포됐습니다. 하지만 제1회기에서 다시 축소됐고, 제2회기 때는 4쪽 분량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그러다가 제3회기에서 10쪽 분량으로 조금 늘어났고, 마지막 제4회기 때인 1965년 10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참석한 장엄 공개회의에서 찬성 2325, 반대 4로 통과됐습니다.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e)」이라는 제목으로 된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이하 수도생활 교령)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해 전체 25개 항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교령은 특히 교회헌장 제6장 수도자에 관한 부분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교령은 서론(1항)에서 수도 생활 유래를 간단히 설명하면서 수도 생활과 규율에 관한 일반 원칙을 제시한다는 교령의 취지를 설명합니다. 교령은 수도 생활 쇄신의 일반 원칙으로 1)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최고의 회칙으로 삼고 2)설립자의 정신과 고유한 목적과 건전한 전통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보존하며 3)교회 활동과 목적을 자기 것으로 삼아 발전시키고 4)인간 조건과 시대 상황과 교회의 필요를 적절히 인식하도록 노력하며 5)외적 활동을 추진할 때도 영적 쇄신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제시합니다(2항). 쇄신의 실천 기준으로는, 생활과 기도와 활동 양식이 회원들의 신체적, 심리적 조건에 부합해야 할 뿐 아니라 각 단체의 특성에 따라 사도직의 필요와 문화적 요구, 사회 경제 상황에도 맞아야 한다고 밝힙니다(3항). 교령은 이어 수도 생활의 공통 요소와 특별히 영성 생활에 대해 언급합니다(5~6항). 공통 요소란 수도 생활을 하는 회원들은 스스로 복음적 권고를 서원했기에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만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원들은 관상 생활을 사도적 사랑과 합치시켜야 합니다. 수도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영성 생활이 첫 자리를 차지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 봉독과 묵상을 매일 생활화하고, 거룩한 전례, 특히 성체성사의 풍부한 샘에서 영성 생활을 길어야 합니다. 교령은 이제 수도 생활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7~11항). 우선 활동보다는 기도와 침묵과 보속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관상 수도회가 있습니다. 교령은 관상 수도회의 생활 양식도 적절한 쇄신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재검토돼야 하지만 "세상에서 물러나 관상 생활을 하는 고유의 수련은 거룩하게 보존돼야 한다"(7항)고 밝힙니다. 흔히 활동 수도회라고 하는 사도직 수도회들은 "수도회의 규율과 관습을 그들이 헌신하는 사도직의 요청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8항)고 교령은 제시합니다. 수도원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수도원 생활도 충실히 보존돼야 한다고 교령은 밝힙니다. 그러나 "그 전통을 현대인의 요구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9항). 교령은 평신도들로만 이뤄진 수도회들의 경우 총회 결정을 통해 소속 회원이 사제품을 받도록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힙니다(10항). 재속회와 관련, 교령은 "재속회 자체는 세상에서 또 세상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 생겨났다"며 "그 사도직을 어디에서나 효과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재속이라는 그 고유한 특성을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1항). 재속회란 수도 단체는 아니지만 교회 인가를 받아 세속에서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고 이행하는 단체들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평신도 재속회도 있고 성직 재속회도 있습니다 . 이렇게 수도 생활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 후 교령은 수도 생활의 고유한 특징인 정결ㆍ청빈ㆍ순명의 복음적 권고와 공동 생활에 대해 언급합니다(12~15항). 정결은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자유롭게 하여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더 불타오르게 하기 때문"에, 천상 행복의 특별한 표지이자 "수도자가 기꺼이 하느님을 섬기고 사도직 활동에 헌신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러나 장상들은 지원자들이 충분한 수련을 거쳐 심리적 정서적으로 알맞게 성숙한 다음에만 정결 서원을 하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또 공동 생활에서 회원들의 참된 형제애가 넘칠 때 정결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12항). 교령은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청빈이 특히 "현대에 높이 평가되는 표지"라고 밝힙니다. 수도자의 청빈은 장상의 허락을 받고 재화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회원들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난하게 살며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13항). 순명은 자기 의지를 온전히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하느님 구원의 의지에 확고하고 확실하게 결합하는 것이라고 교령은 설명합니다. 특히 수도자의 순명은 장상에 대한 순명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형제를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장상들에게 겸손되이 순명해야 합니다(14항). 공동 생활은 수도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교령은 "많은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살았던 초대 교회를 본받아서 복음의 가르침과 거룩한 전례, 특히 성찬례로 힘을 얻고 똑같은 정신으로 기도하며 친교를 이루는 공동 생활을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나아가 "형제들의 일치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드러내며 이 일치 안에서 커다란 사도적 힘이 솟아난다"고 교령은 밝힙니다(15항). 교령은 이어 봉쇄 수녀원과 수도복, 회원 양성에 관한 일반 원칙을 제시합니다(16~18항). 관상 생활에만 전념하는 수녀들을 위한 사도좌 봉쇄 구역은 유지돼야 하지만 낡은 관습을 없애고 시대와 지역 여건에 따라 조정해야 합니다. 봉헌의 표지인 수도복은 단순하고 단정하고 검소하고 품위가 있어야 하며 시대와 지역의 환경과 임무에 어울리도록 해야 합니다. 또 수도 생활의 쇄신은 양성에 따라 크게 좌우되므로 회원들은 적절한 양성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령은 새로운 수도 단체를 설립할 때는 유용성과 발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며, 고유한 사도직을 시대와 지역의 필요에 따라 적응시켜야 하지만 단체의 정신과 특성에 맞지 않는 활동들에 대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합니다(18~20항). 수도생활 교령은 이 밖에도 필요할 경우 수도 단체들을 통합하거나 연맹을 추진하고(21~22항) 성좌에서 설립한 상급 장상 협의회나 평의회가 수도자들의 공통 문제를 해결하고 사도직 수행의 협력 조정해 발전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합니다(23항). 교령은 사제들과 그리스도인 교육자들 그리고 부모들과 수도 단체들에게 수도 성소의 발굴과 증진에 힘쓰도록 당부하면서(24항), 수도자들에게 완전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라고 격려합니다(25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07.10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5 ‘천주교와 정교회’](//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4357_1.0_titleImage_1.jpg)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5 ‘천주교와 정교회’조현범 박사(토마스,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최근 미국 복음주의 교파에서 발표한 '2009년도 세계 종교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69억 2815만 명 중 그리스도교 교세는 22억 7172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정교회 교세는 2억 5000만 명으로 전체 그리스도교 교세 중 10%를 차지했다. 한국에서야 정교회 교세가 3000명 미만으로 극히 미약해 그 역사나 교리, 의례, 조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교 전체 역사를 통틀어 그 비중은 결코 적잖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 이후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일대엔 5대 교회가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교회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 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 로마 교회 등 4대 교회가 우선 설립됐고, 로마제국 수도가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으로 옮겨지면서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영향력을 확대했다.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다섯 교회에 총대주교좌를 공인, 이들이 주변 지역 교회를 이끌며 자립적으로 고유한 전례와 관습을 발전시키는 길을 터놓았다. 5세기부터 시작된 교회 대분열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각각 사용하면서 변화가 발생한 전례언어 문제, 동방교회의 성상 파괴와 함께 빚어진 갈등에 이어 신성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을 둘러싼 정치적 분란이 원인이었다. 마침내는 1053년 교황 레오 9세와 체룰라리우스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하면서 교회 대분열이 공식화됐다. 이후 정교회는 적극적 동방 선교에 나선다. 슬라브족 선교로 864년 불가리아, 988년 키예프 러시아가 개종했고, 1220년에는 세르비아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에 함락돼 정교회도 그들 수중에 들어가자 러시아는 세 번째 로마, 즉 로마제국 후계자로 자처하며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독립된 러시아 정교회를 이뤄 발전했다. 현재 세계 정교회에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세계 모든 정교회 가운데 최고 권위를 지니지만 다른 총대주교와의 관계는 대등하다. 정교회 4대 총대주교청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과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청,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청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으로, 고대엔 4대 총대주교청에 속해 있으면서 자치권을 행사하다가 모스크바와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루지아 총대주교처럼 총대주교구가 된 경우도 있다. 정교회 한국대교구는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청 뉴질랜드 대관구에 속해 있다. 교리상 특징을 보면, 정교회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성경과 성전(聖傳)의 권위를 인정한다. 다만 천주교에선 구약성경이 46권인 데 비해 정교회는 에즈라1ㆍ2서와 마카베오서를 분할해 총 49권이다. 또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하느님은 본질에서 한 분이지만 위격에서 삼위라는 의미를 담아 '성삼자' 교리를 신봉한다. 또 연옥의 존재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교리로 정하지는 않았다. 또 의례상 특징을 보면, 서방과 같이 칠성사를 보존하지만 십자성호 긋는 법처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세례와 견진 때 초대교회 관습대로 침례를 세 번 한다. 또 세례 후 즉시 주교가 아니라 일반 사제가 견진을 집전하고, 곧이어 양형 영성체를 한다. 이는 어린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해는 고해실이 아니라 지성소 앞 성화상 벽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고, 율리우스 역법을 쓰기에 부활과 성탄 등 교회력 날짜가 다소 다르다. 조직상으로도 9세기 포시우스 총대주교 시절에 완성된 「동방교회법전」을 토대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교회들로 구성돼 있다. 주요 성직은 주교와 사제, 보제(천주교회의 부제)로 이뤄져 있다. 두 교회는 이처럼 교리와 의례, 조직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서로 신학과 전례, 영성 전반에 대해 연구할 가치는 있다. 특히 천주교회가 라틴 교부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면, 정교회는 그리스 교부들이나 비잔틴 신학자들의 영성에 대한 연구에 치중했기에 천주교회는 고대 교부들과 중세 비잔틴 신학의 영성과 성과를 섭취할 필요가 있다. 또 입체 성상을 배격하고 그 대신에 평면 성화상, 곧 이콘을 발전시켜 예술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뤘을 뿐 아니라 영적 훈련 차원에서도 탁월한 위상을 정립했다. 그리스도 신비에 대해 묵상할 때 이콘은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천주교회도 이를 배격하지 않는다. 1982년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세계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결실로 「리마예식서」가 채택돼 발간됐다. 그 이후 정교회 전례와 성만찬예식은 개신교 예배 갱신에 추동력을 제공했다. 고대 동방전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정교회 전례는 천주교 전례혁신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도 연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11.01

소공동체는 본당 하부 조직 아니라 교회 그 자체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교회 비전과 본당 공동체 모델' 부산 지역 모임서울 제기동본당은 새로운 소공동체 모델 '두레자치회'와 말씀터를 통해 활성화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은 전원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두레 미사에서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모습.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소공동체소위원회(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11일 부산 남천1동 푸른나무교육관에서 '교회 비전과 본당 공동체 모델'을 주제로 두 번째 지역모임을 열었다.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 개회사로 시작된 이날 모임은 '소공동체는 교회의 희망'을 주제로 한 최덕기(전 수원교구장) 주교 발표, 소공동체 중심 본당에서 사목하는 서춘배(의정부교구 의정부본당 주임) 신부, 최경옥(서울 제기동본당 수녀원장) 수녀 사례발표로 이어졌다. 최 주교는 "소공동체는 본당 하부 조직이 아니라 교회 그 자체"라며 "소공동체는 교회가 본연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가야하는 새로운 길"이라고 강조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주제발표 소공동체는 교회의 희망 소공동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는 친교의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 성서적, 신학적으로 교회가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가장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며 현대사회에서 세상과 신자들 요청에 가장 잘 부응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후 친교의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론을 따라 교황들은 사목적 권고와 회칙을 통해 전 세계 교회에 소공동체를 건설할 것을 주문했다. 1975년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를 발표한 교황 바오로 6세는 소공동체를 '복음화의 못자리', '교회의 희망'이라고 평가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1988년)을 통해 지역 교회 권위자들이 △교회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평신도의 사목 책임을 높이는 본당 구조를 채택하고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나누고 봉사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초공동체를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적 친교의 진정한 표현이며 복음화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에는 소공동체 이전에 이미 공소라는 훌륭한 공동체가 있었다. 하지만 공소 공동체는 말씀이 중심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소공동체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교회 소공동체는 복음 말씀에 따라 우선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복음화되고 사회에 교회 정신을 실현시켜 나간다는 당위성을 바탕으로 한다. 또 초기교회 교우촌에서 보여준 공동체 정신을 유산으로 갖고 있다. 소공동체는 본당 하부 조직이 아니라 교회 그 자체다. 소공동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유행처럼 하나의 사목적 시도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가정교회'로서 교회 정체성을 실현하고 사명을 수행하는 작은 교회다. 이는 가난한 이들과 작은 이들이 주체가 되게 하는 교회의 새로운 원리로서 '함께하는 교회, 참여하는 교회, 증거하는 교회, 이웃에 열린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상을 잘 보여준다. 소공동체 자체가 교회이기에 소공동체 사목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따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소공동체 운동'이란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소공동체는 특정 시기에 이뤄지다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공동체가 교회 본연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가야하는 새로운 길이고, '교회됨'(Being the Church)의 모습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소공동체는 살아있는 공동체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소공동체도 잘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자라지 않고 죽어 버릴 수도 있다. 끊임없는 돌봄이 필요하다.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는 △주교회의 노력 △소공동체 사목에 대한 교구 주교와 본당 주임신부 의지 △교구ㆍ대리구ㆍ본당 단위의 체계적 교육 △본당 소공동체 봉사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 등이 필요하다. ▨사례발표 1 소공동체를 통한 본당 공동체 활성화소공동체가 기초가 되는 본당 공동체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사목자들의 사목 비전 공유가 중요하다. 사제들과 수녀들이 모여 복음과 사목 나눔을 하며 일종의 소공동체 체험을 하면 서로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 신자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면 사목자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신자들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 복음을 안정적으로 선포할 수 있다. 제도나 구조 변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목자 마음이다. 그 마음에서부터 소공동체는 시작된다. 대개 본당 사목협의회 구조는 분과 중심이지만 의정부본당은 소공동체에서 뽑힌 대표(구역장)를 사목협의회 중심이 되게 했다. 구역 소공동체의 일차적 사목자는 구역장이다. 소박하지만 구역 나름대로 사목계획을 세우고 자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구역이 하나의 본당처럼 자치 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각 구역에 사목 지원금을 지급했고, 소공동체를 사목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또 구역ㆍ반장 교육과 모임을 강화하고 전 신자를 대상으로 매년 소공동체 복음화 교육을 실시했다. 소공동체는 신자들의 내적 태도를 강화시키고 면역성을 키우는 예방 차원 사목이다. 신자들 입장에서 소공동체는 참된 신앙생활을 익히는 학교이자 자조 모임이다. 소공동체는 본당의 축소판이고 작은 교회다. 소공동체는 모든 백성을 아우르며 교회 보편 사명을 추구하지만 단체는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만든다. 소공동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교회 본질을 담고 있다. 가난한 사람과 약한 이들을 품고 있다.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소공동체는 교회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소공동체를 통해 그들이 교회의 한 지체로서 존중받고 더 나아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세상 모든 이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성숙한 신앙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지는 것이다. 소공동체 활동은 신앙인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의 모든 것이다. 삶이 활동이고, 활동이 삶이다. 삶을 나누는 소공동체 모임은 감동적이다. 특별한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서로의 삶 속에서 하느님께서 얼마나 힘차게 역사하시는지 알아차리고 감사드리길 바란다. ▨사례발표 2 소공동체 중심 사목 성당에서 사목하며 제기동본당은 소공동체 모임 '말씀터'를 통해 신자들이 예수님 사랑을 체험하고 친교를 이루며, 그 사랑을 이웃과 사회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말씀터는 신자들이 말씀을 나누며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음의 보금자리다. 소공동체에서 사귀고 나누고 함께 활동하면서 그리스도 생명의 맥박을 느끼고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기동본당은 2009년 시작한 새로운 소공동체 모델 '두레자치회'와 말씀터를 통해 활성화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에 매주 신자 350여 명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주일미사 참례 인원 1000여 명 중 30~40%가 소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당이 소공동체 중심으로 개편된 후 부임한 내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신자들은 적극적이며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작은 이들'을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사제와 수도자ㆍ평신도가 삼위일체적 친교를 나누며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공동체가 바탕이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동본당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구역'이라는 대신 '두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공동체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두레자치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행사는 두레자치회가 중심이 돼 진행한다. 사목평의회 주체는 각 두레 대표인 두레자치회장들이다. 각 자치회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사목평의회에서 두레 활동을 비롯해 전출입 신자, 쉬는교우, 신영세자 말씀터 참석 현황 등을 발표한다. 또 사목지원부 각 분과에서 제안한 주요 안건에 대해 토의하고 합의를 도출한다. 사목평의회 및 두레 조직은 원형으로 구성돼 있다. 사목자를 중심으로 수도자와 총회장이 있고 그 둘레에는 두레자치회장들이 있다. 자치회장들은 구역 부회장(구역장), 반장, 각 분과 위원, 총무 등과 함께 팀을 이뤄 선교활동을 하고 세상을 향해 봉사한다. 사제가 아닌 신자, 특히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본당은 친교와 일치의 교회 공동체라는 것이 느껴진다. 또한 평신도의 자율성과 주체성이 드러난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에게 두레를 맡기는 것은 어찌 보면 본당 사제에게 대단한 도전이다. 그러나 그들 능력을 믿고 격려하며 기다려주고, 신뢰해야 소공동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임영선2012.09.11
![[선교지에서 온 편지]타이완-(중) '시오뉘마마'(수녀 엄마)](//cpbc.co.kr/CMS/newspaper/2012/05/rc/413232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타이완-(중) '시오뉘마마'(수녀 엄마)고민경 수녀(한국외방선교수녀회)이곳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나를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색칠하기 수업을 마치고 '작품'을 자랑하고 있는 아이들과 필자(오른쪽). "시오뉘마마, 자오안!"(좋은 아침이에요! 수녀엄마) 매일 아침 7시 30분 성당에 들어서면 어린아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지난해 본당 유치원에서 종교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얼굴을 익히고 친해졌다. 매일 아침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하루를 즐겁게 시작한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원장을 비롯해 교사와 원아들까지 신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교우들 손자와 손녀 두세 명이 다니고 있다. 종교수업을 하지 않았을 때는 아이들과 조금 서먹서먹했었다.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시아오펑이오우, 자오!(친구들,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이들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녀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나 보다. 게다가 말투도 다르니 더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당, 유치원, 거리를 가리지 않고 나를 보기만 하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교육을 열심히 한 보람이 느껴진다. 대만 유치원은 연령에 따라 시아오반(3~4살), 쫑반(5살), 따반(6살)으로 나눠서 수업을 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교리수업이 있는데 귀여운 시아오반 아이들은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한다. 한참 호기심이 많을 때라 질문이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빨리 대답을 못해줘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변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쫑반과 따반 어린이들은 교리교육이 비교적 수월하다. 말귀도 제법 알아듣고 질문에 대답도 잘 한다. 예수 성탄 대축일과 졸업 전 7월에 재롱잔치를 연다. 성탄절 재롱잔치 때는 함께 계신 수녀님들이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 솜씨를 선보인 적도 있다. 토요일은 빠과부락이 있는 산에 오르는 날이다. 빠과부락은 본당 관할 구역 내 7개 부락 중 생활형편이 좀 어려운 이들이 많다. 또 아이들도 많다. 이곳 신자들은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산에서 잘 내려오지 않기에 나는 토요일마다 한국인 부주임 신부님과 함께 간식거리와 교리자료를 챙겨들고 산에 올라간다. 병자 영성체를 하거나 아이들을 만나러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하며 갈 때는 늘 마음이 즐겁다. 여느 주일학교처럼 신부님 기타 연주에 맞춰 아이들과 즐겁게 성가도 부르고 성경내용을 바탕으로 한 그림 그리기, 교리교육 등을 하며 아이들에게 신앙심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이 부락에는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아이들 집이나 민박영업을 하는 교우집을 빌려 교리교육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산에서 지내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조금은 거칠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크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공부를 도와줄 가족이 없다. 가끔 거칠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도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가정방문을 하면 아이와 어르신만 살고 있는 집이 많다. 그나마 어르신들은 대부분 편찮아서 활동을 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돼주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성탄절 때 아이들 행동에 속이 상해서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부주임 신부님이 산에 사는 아이들을 데려오기로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준비했다. 미사를 마치고 밥을 먹고, 재롱잔치까지 마친 후 집에 돌아갈 때 선물을 나눠줬다. 아이들이 음식과 물건에 욕심을 많이 내는 편이어서 한 명 한 명에게 공평하게 선물을 줬다. 그런데 먼저 선물은 받은 아이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옆 친구와 바꾸라고 했더니 한 아이가 내게 오더니 해서는 안 될 나쁜 행동을 했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너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선물이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선물상자에 담으라고 말했다. 선물을 도로 내려놓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동안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마당에서 세차를 하고 있을 때 나쁜 행동을 했던 아이의 형제ㆍ자매들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는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 수녀님!"하고 인사를 했다. 또 "수녀님이 많이 보고 싶다"면서 "언제 산에 올 거냐"고 물었다. 해맑은 얼굴로 인사를 하는 그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이들은 속 좁은 수녀가 화낸 것은 모두 잊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은 몇 달 전 있었던 속상한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그날 '내일은 아이들을 보러 올라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후원계좌 : 국민은행 945201-01-126302 예금주 : (재)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퇴사자2201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