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밥상] 영양은 듬뿍·탄소는 뚝… 정성으로 쪄낸 ‘환경친화’ 오곡밥](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2/24/v2d1771920971734.jpg)
[지구밥상] 영양은 듬뿍·탄소는 뚝… 정성으로 쪄낸 ‘환경친화’ 오곡밥<9>오곡밥 정월 대보름이 오면 꼭 해먹었던 밥이다. 나는 이 오곡밥을 참 좋아한다. 쫀득한 식감에 팥이 들어가 붉은 빛을 띠고 소금간이 적당한 밥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우리 집 식구 중 반은 찰밥을 좋아하고 나머지 반은 싫어한다. 그래서 해법을 찾았다. 현미 쌀과 백미 찹쌀을 섞어 전통 방식으로 찜기에 쪄서 오곡밥을 짓는다. 밥솥에 모두 넣는 방식으로 지은 밥과는 식감이 다르다. 곡물이 하나하나 살아있고 팥과 콩은 딱 알맞게 익어 고소함과 향긋함을 더한다. 최근에는 저속노화 요리법이 유행하면서 잡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주로 수입된 콩과 쌀을 소개해서 나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밥상의 행동이 결국은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곡밥은 이름대로 다섯 가지 잡곡을 섞어 밥을 짓는다. 붉은 팥과 찹쌀, 조, 수수, 콩을 섞어 단백질과 칼슘, 철분, 식이섬유가 풍부한 밥이 된다. 영양도 풍부한데 우리 땅에서 난 작물이니 이동 거리로 인한 탄소배출도 적다. 외국산과 비교하면 탄소배출량이 무려 37배나 적다. ‘그린포스트코리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수입 농산물의 경우 해상과 육상을 통한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이 국내산보다 월등히 많게 나온다. 영양이 풍부하고 탄소배출도 적은 오곡밥의 재료들은 농사에서도 환경친화적이다. 특히 콩류는 유엔이 매년 2월 10일을 ‘세계 콩의 날’로 정해 기념할 정도로 무척 중요한 인류의 식량이다. 콩은 영양분이 풍부한데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농업의 토대다. 공기 중 70% 이상은 질소다. 질소는 식물을 키우는 양분이다. 콩은 땅에서 양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고정한다. 여기서 만든 에너지를 뿌리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전달한다.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모아 콩에 양분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콩은 농약이나 비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잘 자라는 데다 땅도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작물이다. 지속 가능한 농업의 토대를 콩이 만드는 이유다.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땅이 회복되는 것뿐만 아니라 물의 오염도 막을 수 도 있다.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농사 방식을 보면 콩은 다른 작물들과 함께 심어 병충해를 막고 농장의 생물 다양성을 높인다. 오곡밥을 지으며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사순 시기는 단식과 금육의 시기다. 수난과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면역력을 챙기고 사순 시기를 든든하게 잘 나기 위해 오곡밥을 지어 이웃들과 나누는 밥상을 차려보자. 레시피 재료 현미 쌀 2컵, 찹쌀 2컵, 팥 1/2컵, 콩 1/2컵, 수수 1/2컵, 소금, 물 800㎖.(팥 삶은 물 포함) 사전준비 1. 팥 삶기 찬물에 팥을 넣고 삶는다. 한 번 우르르 끓어오르면 물은 버리고 새 물을 받아 다시 끓인다. 다시 부드럽게 익도록 물이 끓어 오르면 소금 1작은술과 다시마 한 조각을 넣고 40분간 삶아준다. 팥 삶은 물은 버리지 말고 따로 둔다. 2. 현미, 찹쌀, 콩, 수수 준비 하루 전날 깨끗이 씻어 각각 물에 담가 불린다. 조리순서 1. 찹쌀, 현미, 수수는 고루 섞는다. 찜솥에 담고 고르게 익히기 위해 가운데를 열어둔다. 2. 찜기에 물을 올리고 끓인다. 물이 끓어 오르면 찜솥을 올리고 30분간 강불에서 끓인다. 30분 동안 강에서 끓여야 하므로 물은 넉넉히 붓는다. 3. 팥 삶은 물과 밥물을 800㎖ 준비한다. 여기에 소금 1큰술을 넣어 섞어 둔다. 4. 30분 후 뚜껑을 열고 팥과 콩을 올리고 소금물을 부은 후 고르게 섞어준다. 5. 다시 20분간 강불에서 끓인다. 20분 후 다시 소금물을 붓고 20분 더 끓인다. 6. 20분 후 불을 끄고 10분간 뜸들인다. 7. 잘 섞은 후 밥그릇에 담는다. cpbc2026.02.25

임피제 임승필 신부 기억하는 기념관 제주에 건립교구의 신앙 역사와 교회에 헌신한 이들 새롭게 조명하고자 추진 제주교구가 8일 한림성당에서 임피제 신부와 임승필 신부를 기억하는 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열었다. 제주 한림본당 제주교구 한림본당(주임 최현철 신부)이 제주 지역 농촌 산업 부흥 운동을 이끈 임피제(맥글린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1928~2018) 신부와 성경 번역에 평생을 바친 임승필(1950~2003) 신부를 기억하는 기념관을 건립한다. 교구는 8일 한림읍 대림리 1814번지(한림성당)에서 교구장 문창우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사제 임피제·임승필 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열었다. 임피제 신부. 제주교구 한림성당 축성식 후 임피제 신부(앞줄에 앉은 사제단 왼쪽에서 네 번째)와 사제단, 신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림본당 첫 주임이었던 임피제 신부는 성이시돌목장 설립자로,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제주시 한림 지역의 농촌 산업을 부흥시켰다. 교구가 발행한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에 따르면, 임피제 신부는 곗돈이 깨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자, 돈을 벌기 위해 육지에 갔다가 실수로 물탱크에 빠져 죽은 신자를 보고 신심을 길러주는 일도 시급하지만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임 신부는 64년간 제주를 제2의 고향 삼아 한림 수직·신협·성이시돌 병원, 성이시돌 양로원·요양원·유치원·어린이집·젊음의 집을 건립하는 등 큰 발자취를 남겼다. 임승필 신부. 한림본당 출신인 임승필 신부는 신·구약 성경에 대한 새 번역 작업에 매진하다 2003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노고는 한국 교회가 독자적으로 번역한 신구약 합본 「성경」으로 신자들 곁에 남아있다. 임피제 신부와 성경 번역에 평생을 바친 임승필 신부를 기억하는 기념관. 파란선 안에 기념관이 건립 부지다. 본당은 교구의 신앙 역사를 비롯해 교회에 헌신한 이들의 사랑의 발자취를 새롭게 조명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후 12월 기념관 건축 허가를 받고, 올해 3월 건립에 들어갔다. 기념관은 한림성당 내 2개 동으로, 327㎡ 규모이며, 12월 말쯤 완공될 예정이다. 기념관 건립 봉헌금 약정계좌 : 신협 131-021-688057, 예금주 : 제주교구 한림성당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박예슬2025.03.19
![[금주의 성인] 성 골룸바노(11월 23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18/Igy1763455272834.jpg)
[금주의 성인] 성 골룸바노(11월 23일)543?~615년, 아일랜드 출생 이탈리아 선종, 신부, 선교사 골룸바노 성인. 굿뉴스 543년경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골룸바노 성인은 어머니 반대에도 어릴 때부터 수도생활을 결심했습니다. 시편을 주석할 정도로 똑똑했던 그는 북아일랜드 동쪽 콤갈 성인이 설립한 뱅거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이후 사제품을 받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40대까지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골룸바노는 수도원장 허락을 받고 동료 수도자 12명과 함께 유럽 대륙으로 ‘거룩한 순례’, 곧 선교 여정에 올랐습니다. 골룸바노 일행은 590년경 오늘날 프랑스인 갈리아 동쪽 부르고뉴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펼쳤습니다. 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느슨해진 성직자들과 왕족, 귀족들의 부도덕한 생활을 보속하기 위한 애덕 실천과 엄격한 금욕 생활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골룸바노 일행은 부르군트 왕국 지역을 다스렸던 군트크람누스의 환대로 안느그레의 폐허가 된 로마 요새에 집을 짓고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수도생활에 동참하면서 수도원이 더 필요했습니다. 이에 인근 뤽세이유를 거쳐 퐁텐에 세 번째 수도원을 세웁니다. 골룸바노를 따르는 이들은 프랑스·독일·스위스·이탈리아 등지에도 50여 개의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골룸바노가 로마 전례 대신 켈트 전례를 따르면서 프랑크족 주교들의 반발을 산 것입니다. 이에 골룸바노는 시노드 출석을 요구받았지만, 대신 편지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전례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윤리적으로 타락한 왕족에 대해 주교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610년경 부르고뉴 국왕 테오도리쿠스 2세의 부도덕한 결혼을 반대하면서 확대된 논쟁으로 골룸바노 일행은 모두 추방됐습니다. 낭트에서 겨우 탈출한 골룸바노 일행은 또 다른 게르만족의 복음화를 위해 남쪽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612년경 이탈리아 북부 랑고바르드 왕국에 도착해 아길룰프 왕의 환대를 받고 밀라노와 제네바 사이 작은 마을 보비오에 새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이들은 밀라노와 제노바 등지에도 수도원을 세우고, 그 일대를 학문과 문화, 영성의 중심지로 성장시켰습니다. 골룸바노는 죽을 때까지 정통 교리와 엄격한 영성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수도 규칙, 보속 규정인 「속죄집」, 강론집과 시, 아리우스 이단 반박문 등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권력자에겐 무서운 대상이었지만 공동체에서는 인정 많은 아버지였고, 많은 이가 존경했습니다. 골룸바노는 615년 11월 23일 성모님께 봉헌한 보비오 수도원 근처 동굴에서 생활하다 평화로이 선종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보비오에 있는 성 골룸바노 성당 지하에 모셔졌습니다.cpbc2025.11.19

회칙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월간 꿈 CUM] 꿈CUM 환경 출처: 월간 꿈CUM 제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 인간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 사람의 호흡으로 소리를 내는 관악기는 그 속이 꽉 차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으로 뭐든지 가득 채우려 애를 쓰는 동안 자연은 멍들게 되고 그로 인한 결과는 자명합니다. 욕심은 우리 삶이 목적 없는 배처럼 표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는 붕괴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바벨탑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무너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회칙 43~47항에서 인간의 욕심에 따른 결과로 인간 삶의 질이 저하되고 심지어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먼저 “환경 훼손, 현재의 개발 방식, 버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씀하십니다.(43항)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시도된 노력들이 오히려 우리가 예상치 못한, 그리고 원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황님은 다음과 같은 폐단이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혁신, 사회적 소외, 에너지와 그 밖의 공공 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와 소비, 사회적 붕괴, 폭력 증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 폭력의 증가, 마약 매매, 젊은이들의 마약 사용 증가, 정체성 상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지난 두 세기의 성장이 언제나 통합적 발전을 이끌지 못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입니다.”(46항) 교황님은 더 나아가 다양한 매체와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십니다. “오늘날 매체는 우리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며 지식과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매체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 두려움, 기쁨, 복잡한 개인적 체험을 직접 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러한 매체가 흥미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반면에, 인간관계에 매우 우울한 불만을 야기하거나 외로움이라는 해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47항) 과연 우리는 지금 수준 높은 삶의 질을 영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건전하고 안전한 차원의 사회 문화를 건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편리한 디지털 문화가 우리 각자를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 _ 이용훈 주교 (마티아, 천주교 수원교구장) 1979년 3월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988년 로마 라테라노 대학교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주교로 서품되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교와 자본주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2025.11.18
![[전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부활 담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01/vSt1775032872149.jpg)
[전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부활 담화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1. 부활, 우리의 희망 주간 첫날 새벽,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베드로와 다른 제자도 비어 있는 예수님의 무덤을 확인하게 됩니다.(요한 20,3-8 참조) '빈 무덤'을 목격했을 때 제자들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 20,9 참조). 하지만 비어 있는 무덤을 시작으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았던 슬픔과 좌절은 부활을 통해 기쁨과 희망으로 바뀌고, 제자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열어 준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2. 죄와 죽음의 세력,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죄와 죽음의 세력이 작용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와 경제, 정치적인 이유로 나라 간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배타적 자국 우선주의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세계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편, 급속히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은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 존엄을 해칠 우려가 제기되며 아울러 신성한 노동의 의미를 왜곡시킬 걱정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또한,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병들게 하는 심각한 생태 환경 문제와 기후변화 현상은 우리와 후손들의 암울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상처를 많이 입고 힘들어하는 이들은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입니다. 레오 14세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은 하느님의 마음에 충실한 교회의 복음적 특징입니다.”(레오 14세,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103항) 이러한 고통의 현실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시어 고통과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님을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3. 부활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부활 신앙을 믿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며 복음의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고 그것만을 목적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부활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에 맞서 생명의 존엄을 수호하며 건전한 생명 문화를 건설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을 수단화하는 기술과 경제 논리 속에서도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는 정의와 참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사회의 급격한 발전과 변화 속에서 소외된 이들, 특수 계층을 우선하는 구조적 경제의 틀로 인해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 인공지능과 기술 발전을 숭상하는 능률 제일주의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이들, 기존의 정의롭지 않은 사회 환경에 짓눌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희망과 생명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며 죽음을 넘어 생명을 지향하고, 절망을 넘어 희망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성심 안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에서 “생수의 샘인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는 구세주의 부활하신 몸에서 계속 열려 있습니다. … 그 안에서 우리는 … 당신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합니다.”(151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어주신 그 옆구리에서 토마스 사도는 자비롭고 사랑 가득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며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요한 20,27-28 참조)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성취된 무한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대가는 초자연적 부활로 이어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지극하신 예수님 성심 안에서 참된 부활의 기쁨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죽음의 세력에 굴복하지 말고, 세상에 참 빛과 희망을 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부활의 삶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시노드 이행 단계를 살아가며 ‘2027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수원교구가 부활 신앙 안에서 더욱 굳건히 하나 되어 주님을 널리 전하게 되기를 빕니다. 경청과 식별의 여정 안에서, 우리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cpbc2026.04.02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부활 담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01/a2t1775029584190.jpg)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부활 담화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 20,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기쁨과 은총이 우리 교구 모든 신자와 가정에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기쁨이 교회를 넘어 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에게 십자가상의 죽음은 실패와 절망만을 남긴 듯 보였습니다. 육중한 돌로 닫힌 무덤을 보면서 그 슬픔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무덤을 향해 걸어갔던 여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음을 보고 놀랍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빈 무덤 앞에서 비로소 여인들은 깨닫습니다. 그분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음을, 다시 살아나셨음을, 육중한 돌을 밀어내듯 죽음을 뚫고 생명으로 나가셨음을 체험합니다. 절망에 빠졌던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빈 무덤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면서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절망과 허무가 사라진 자리에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생명으로 가득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렇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감을 말합니다. 부활을 뜻하는 ‘파스카’(Pascha)가 ‘거르고 넘어가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듯, 부활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기쁨으로 ‘넘어간’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를 체험한 이들 역시 절망을 딛고 기쁨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라고 부활 신앙을 고백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 힘이 우리를 지탱해 주어 우리도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기쁨을 경축하는 온 교회와 함께 우리 모두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기쁨을 영위합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변화는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낙담한 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모습이 이를 말해 줍니다. 그들은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들어도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아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그들의 닫힌 눈과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고 의심에서 믿음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자신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들은 단순히 부활을 체험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삶으로 용기 있게 나아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셨듯,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복음을 산다는 것은 체험을 넘어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구체적인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셨듯, 의심에서 믿음으로, 옹졸한 마음에서 열린 마음으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단죄에서 자비로, 적대에서 연민으로, 자만에서 겸손으로, 계산적 사고에서 포용적 사고로, 부정적 사고에서 긍정적 사고로, 힘의 논리에서 사랑의 논리로 옮아감을 말합니다. 절망과 불안에서 용맹스럽게 다시 예루살렘을 향했던 제자들처럼 어제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변화되는 결심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부활의 증인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세상은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이 “우리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라고 자신 있게 부활을 증언한 것처럼, 우리도 변화된 삶의 모습을 세상에 증언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과소비, 물신주의로 병든 이 세대에, 새 생명에 대한 마지막 존엄마저 위협받는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 무력에 의한 평화를 부끄러움 없이 선전하는 이 세상에 맞서, 우리는 부활의 힘이 무엇인지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기쁨이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구원을 위한 은총임을 모두가 알게 됩니다. 전쟁의 먹구름으로 모두가 함께 살아갈 내일을 걱정하는 오늘입니다. 무거운 무덤의 돌을 밀어내고 생명으로 나아가신 주님께서 세상에 건네신 첫 인사가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우리 모두 부활의 힘을 굳게 믿고,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을 향해 평화와 희망을 전하는 이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이학주2026.04.02

새로운 열정[월간 꿈CUM] 위대한 기적 출처: 월간 꿈CUM 현대 세계를 바라볼 때 과거 그리스도적이었던 나라와 민족들은 종교 무관심과 세속주의의 영향을 받아 매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근대 이후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나라들, 즉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는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아직 복음적 삶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첫 세례자를 배출한 후, 180년 만인 1970년대에 신자수가 1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매 10년마다 100만 명씩 증가하는 복음화율을 보여 왔지만 인구 비율로 볼 때 2000년대부터 그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더욱이 현재 약 500만 명의 천주교 신자 중 상당수가 냉담 중이거나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리스도교가 갖고 있는 핵심인 복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무엇이 복음적 삶인지를 모르면서 신앙생활에 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내적 쇄신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고 그분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기도가 무엇이고 왜 기도하며 생활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 교회가 무엇이고, 그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신자인 나는 누구이며, 어떤 권리와 의무가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이 무엇인지, 복음화가 교회의 근본 소명이고 신자의 근본 소명이라는 점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19차 라틴아메리카 주교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셨고 새로운 복음화에는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한국교회의 새로운 복음화의 방향과 내용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현대의 복음선교」 33항에서 제시하셨던 현대 세계 복음화의 세 가지 관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비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업과 기존의 신자들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재복음화’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다원주의 속에서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원주의의 여러 장점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복음의 가치를 그 안에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적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살아갈 수 있도록 현대인들에게 분명하면서도 확신에 찬 새로운 복음화가 요청되는 때입니다. 과연 지금의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은 새로운 방법과 표현을 추구하고 있는지, 새로운 열정이 생겨나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묵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새 출발했습니다.이후 각 지역교회에서는 공의회 정신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열매가 새로운 신심 운동으로 이어져 여러 형태의 신앙 쇄신 운동이 전파됐습니다. 그 결과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활성화와 더불어 선교의 열정도 생겨났습니다. 신앙 쇄신 운동은 신자들에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확신과 기도 생활 그리고 성경 읽기 등 신심 생활에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새로운 복음화의 방법, ‘새로운 열정’에 가득찬 모습이었습니다. 신앙 쇄신 운동은 그 후 선교에 열정을 쏟아 한동안 교회 내에서도 복음화율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는 새로운 열정이 식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인 중 하나는 신앙의 기초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대부분 신자들은 세례성사를 받은 지 40년 미만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고 구교우는 전체의 20%를 넘지 않습니다. 그만큼 신앙에 있어 뿌리가 약합니다. 또한 믿음의 확신과 경험 없는 신자들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치우쳐 있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교무금과 헌금을 내고, 판공성사를 보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열심한 신자들의 경우도 본당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면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신자들에게 “선교하십시오”라는 말은 그렇게 와닿는 말이 아닙니다. 선교는 해도 그만, 못하면 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선교는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서부터 동기가 부여되고 열정이 솟아올라야 하며 사명감이 생겨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기 부여나 사명감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만들어 줘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튼튼한 기초를 닦아 주는 교리교육과 세례성사를 받은 후에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신자 스스로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새로운 열정’이란 구원의 확신과 행복한 삶 안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신앙생활의 모습들을 재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열정이 생겨날 수 있는 신앙생활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보고 조명해 봐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열정’이 생겨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시기입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발전소 이사장) 복음화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0년 5월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시작, 복음화학교를 설립하여 재복음화 및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훈련 교육체계를 확립시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화방송 TV를 통해 복음화학교 강의를 했다. 전국의 본당 및 단체의 초대로 수백회의 특강과 견진교리, 피정 등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많은 글을 연재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복음화학교를 은퇴한 이후 ‘복음화발전소’를 설립, 삶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영성」 등이 있다. 2026.05.16

전쟁과 박해로 고통받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과 함께하다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ACN 한국지부 이사장 정순택(서울대교구장) 대주교가 10일 서울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 설립…보편 교회와 연대 기념 심포지엄 열고 현장 목소리 공유 2015년 7월 아시아 교회에서는 최초로 설립되어 신앙으로 인해 고통받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온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한국지부가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ACN 한국지부는 10일 서울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설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과 미사를 거행하고, 전 세계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수많은 박해 사례 가운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때문에 고통받는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년의 성과를 내세워 이야기하기보다 이 순간에도 절실히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ACN 설립 10주년 심포지엄을 위해 방한한 부르키나파소 교회의 전 와가두구대교구장 필리프 우에드라오고 추기경은 현지 박해 상황을 상세하게 전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시작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무차별 테러로 2024년 기준 8000명의 신자가 목숨을 잃었고, 220만 명이 실향민으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를 표적으로 삼은 공격으로 많은 사제와 교리교사·신자들이 살해당했다”면서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종교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데, 이는 이들이 표방하는 것이 종교가 아닌 이데올로기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박해를 ‘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 싸움’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부르키나파소 전 와가두구대교구장 필리프 우에드라오고 추기경이 10일 서울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린 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심포지엄에서 극단주의 세력의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부르키나파소 교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레지나 린치 ACN 본부 수석대표도 한국지부 10주년 기념차 방한해 “ACN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특히 교회는 사목적 돌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교리를 통해 인간 존엄을 수호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등 사회에서 강력하고 눈에 띄는 존재로 남아야 하기에 우리가 원조기금 조성과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포지엄 후에는 ACN 한국지부 이사장 정순택(서울대교구장) 대주교 주례와 초대 ACN 한국지부 이사장 염수정 추기경, 우에드라오고 추기경, 서상범(군종교구장) 주교 공동집전으로 한국지부 설립 1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정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ACN 한국지부가 10주년을 맞은 것은 단순한 교회 단체의 기념일을 넘어 한국 교회가 보편 교회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해 온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박해받고 도움받던 역사를 지닌 한국 교회는 박해받아 도움을 청하는 형제자매들을 마땅히 도와야 한다”면서 “고통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내놓으며 믿음을 증거하는 형제자매를 위해 사랑으로 믿음을 증거해나가자”고 격려했다. ACN 한국지부는 10년 동안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는 ‘사목 원조기구’로 활약을 이어왔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레바논·부르키나파소 등 전쟁과 박해로 사목에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를 지원하고, 몽골어 가톨릭 성경 번역 사업, 우크라이나 어린이 성경 지원 등 신앙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앞장서왔다. 또 본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코너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연을 전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다리 역할도 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 인터뷰 “신자들의 기도가 ACN 한국지부 10년의 시작이었다” “ACN 한국지부의 10년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신자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는 지부 설립 10주년을 맞아 1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교회에서 최초로 한국에 ACN 지부가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한 기도에 적극 참여하는 신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ACN 한국지부는 2015년 7월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염수정 추기경이 아시아 지역 최초로 ACN 지부 설립을 결단하면서 설립됐다. 아시아에서도 필리핀보다 한국 교회에 먼저 지부가 설립됐다. 박 신부는 “ACN 본부가 신자도 훨씬 많고 교회 역사도 긴 필리핀·인도 교회 등을 제치고 한국 교회를 택한 것은 숫자보다는 신자들이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참여하는지를 봤기 때문”이라며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과 사랑이 ACN 한국지부의 10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ACN 한국지부는 지난 10년간 신자들의 기도와 지원 속에 다양한 사목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신자들의 후원금을 ACN 본부에 전달해 전 세계 고통받는 교회를 위한 사목을 지원하고, 국내에서는 ‘100만 어린이 묵주 기도’ ‘ACN 십자가의 길’ 프로젝트도 펼쳤다. 2023년에는 몽골 교회를 위해 진행한 가톨릭 성경 번역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개신교 성경밖에 없던 몽골에 가톨릭 성경을 전하기도 했다. ACN은 정부나 교회 지원을 받지 않고 오직 신자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그 기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 신부는 “10년간 개인 기부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은총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며 “한국지부는 계속 박해받는 교회의 고통을 알리고 이들의 부활과 재건을 지원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CN 본부 레지나 린치 대표 인터뷰 “도움 받던 한국 교회, 이제는 희망 전하는 교회로” “ACN 지부가 있는 23개국 교회 가운데 도움을 받던 교회가 도움을 주는 교회로 전환한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ACN 한국지부의 존재는 박해받고 도움을 필요로 하던 한국 교회가 전 세계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교회로 전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ACN 한국지부 설립 10주년을 맞아 방한한 레지나 린치(68) ACN 본부 수석대표는 인터뷰에서 “아시아 최초로 설립된 ACN 한국지부의 10년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전했다. 특히 “가톨릭 신자가 소수인 한국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 형제를 돕고자 나서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며 “한국 교회 신자들의 관대한 지원과 기도는 전 세계 고통받는 교회 공동체에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들이 신앙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린치 대표는 ACN 한국지부가 본지의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코너를 통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도 관심을 표했다. 린치 대표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미디어가 그들의 목소리가 돼줘야 한다”며 “ACN 한국지부와 cpbc가 협력해 지원 창구가 돼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 목소리를 잃은 이들의 목소리가 돼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린치 대표는 1980년 ACN 독일지부에서 시작해 무려 45년째 ACN에서 일하고 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고통받는 교회를 돕는 데 헌신해온 것이다. 린치 대표는 “계속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희망의 힘’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83년 당시 34살의 젊은 로베르 사라 대주교(현 추기경)가 아프리카 기니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 무너져가던 교회를 지켜 재건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이라크의 니네베 공동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공격 속에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동반한 경험을 언급하며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면서 하느님을 따른다면 절망적인 상황도 극복해낼 수 있음을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린치 대표는 앞으로도 가난한 이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물적 지원을 넘어,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로 함께하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린치 대표는 “ACN은 앞으로도 하느님 도우심을 바탕으로 교회를 위해 계속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현민 기자장현민2025.07.16

평신도 주일, 신앙을 돌아보다평신도를 위한 책 평신도 주일이다. 하느님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 일상에서 올바르게 담아낼 수 있도록, 신앙인으로서 믿음의 깊이와 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들을 골라봤다. 한번 읽어 봅시다! - 가톨릭 신학과 교리 해설 / 조한규 신부 / 생활성서 신학과 교리. 단어만 놓고 보면 왠지 딱딱하고, 특히 신학은 평신도에게는 한참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번 읽어 봅시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신학과 교리를 설명하는 안내서다. 오랜 기간 신학생들을 가르쳐 온 서울대교구 조한규(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가 평신도 재교육은 물론이고 신학 입문까지도 가능하도록 쉽게 풀어썼다. 책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공생활·가르침·수난과 죽음·부활·승천 이후까지 모두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든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만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답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 대해, 곧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중요한 사항들을 살펴본다. 자연스레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구원의 역사와 복음이 전하는 의미,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중요성과 필요성 등을 짚는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성)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신앙) 중에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더 잘 믿기 위해서입니다.”(272쪽) 신앙인을 위한 철학 / 피터 크리프트 / 김형수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신앙인을 위한 철학」은 제목대로 철학에 관한 책이며, 대부분의 전제를 종교적 신앙보다는 철학적 이성에 호소하여 제시한다. 저자는 그러나 철학과 신학은 동일한 질문들을 다루며, 신앙의 조항들에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이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종교가 있는 사람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은 철학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철학의 각 분과에서 논란이 되는 관념들을 연대순이 아닌 주제별로 정리했다. 철학·존재·신·영혼·양심이 무엇인지, 정신·시간·인과관계·신·진화가 실재하는지,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알 수 있는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 죽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등 72개의 철학적 물음을 제기하고, 신학과 믿음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회의론자와 불가지론자는 우리가 신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유한한 존재가 어떻게 무한한 존재를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본질과 존재를 구분하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우리의 본질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신의 본질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신의 존재는 알 수 있다. 우리의 반려동물이 우리의 존재를 아는 것처럼 말이다.”(193쪽) 저자는 예수회가 설립한 미국 보스턴칼리지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특히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고대와 중세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연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느님이 주신 나의 이름은 / 김영선 수녀 / 바오로딸 신앙인들이 자신의 참자아와 고유한 소명을 찾고 참된 자유와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영성 묵상서다. 책 제목인 ‘하느님이 주신 나의 이름은’은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시며 품은 꿈, 즉 내 존재의 이유와 목적, 곧 나의 고유한 소명을 뜻한다. “내가 존재하게 된 이유, 내 존재의 목적이 바로 우리의 이름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그것을 ‘소명’이라고도 부른다. 소명(vocation)은 ‘부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보카레(vocare)’에서 나온 것으로 ‘~하도록 부름받은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름(소명)이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서 ‘우리가 ~을 하도록 창조하신 그 목적과 계획’을 가리키는 말이다.”(27쪽) 김영선(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의 ‘바오로딸 혜화나무’ 영성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은 △나의 이름은 △참으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선택과 결정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등 네 개의 주제로 나뉜다. 특히 저자 자신의 진솔한 체험과 성경 속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크고 작은 걸림돌과 디딤돌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 삶의 여정을 굳건한 신앙에 바탕을 두고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한다. 100일 동안 깊어지는 가톨릭 신앙생활 챌린지 북 / 가톨릭출판사 편집부 / 가톨릭출판사 “결국에는 그 침묵의 시간이 차츰 인내와 준비의 시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중략) 그(욥)의 물음은 비록 여전히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모두 해소된다.”(베른하르트 벨테 「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 중) 제목처럼 100일 동안 읽고 쓰는 습관을 통해 하느님 현존을 인식하고 신앙을 깊이 새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144년의 역사를 지닌 가톨릭출판사가 펴낸 도서 가운데 100권을 엄선해 각 책에서 두 편씩 짧은 글을 발췌했다. 성경·전례·교리·역사·인물·문학·기도·영성·인문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하느님을 발견하다 △하느님과 함께하다 △영혼을 정화하다 △사랑을 실천하다 등 네 개의 장으로 나눠 엮었고,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예비신자나 세례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자는 물론, 조용한 묵상과 기도를 통해 믿음의 깊이를 더하려는 신앙인들이 100일 동안 ‘신앙 루틴’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 대신에 나를 데려가 달라고. 아이들 대신에 내게 짐을 지워 달라고. 아이들의 식탁에 차려진 고통을 내가 받게 해 달라고. 나는 아버지가 되고 한참 지나서야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을, 그분이 자신의 고통스럽고 이른 죽음을 희생으로 받아들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브라이언 도일 「찬란한 존재들」 중)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1.05

예수 그리스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세운 대사제[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9)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신약 성경 경전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핵심 칭호인 ‘대사제’가 나온다. 대사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맏이로서 인류를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시다. 그리스도, 성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은 신약 성경 정경에 포함된 다른 서간들과 달리 보낸 이, 곧 글쓴이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 작업이 시작되던 2세기 때부터 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의심 없이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으로 여겼습니다. 교부들은 “우리의 형제 티모테오”(13,23)를 근거로 그렇게 믿어 왔습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를 히브리서의 저자로 볼만한 근거는 서간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무엇보다 서간의 마지막 인사와 경고(13,16-15) 내용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 흡사합니다. 또 그리스도께 대한 가르침에서 히브리서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 여러 일치점을 보여줍니다. 예로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히브 1,1-4; 1코린 8,6), 그리스도께서 수난과 죽음으로 낮추어졌다가 하느님 오른편으로 들어 올려졌다(히브 2,9; 로마 8,3.34; 필리 2,6-11),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옛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세우셨다(히브 7,19; 8,6-13; 2코린 3,1-18)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서방 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바오로 사도가 쓰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른 서간과 달리 히브리서에는 발신인의 이름이 없다는 점. 바오로 사도가 즐겨 사용한 “그리스도 예수님”,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평화”란 표현이 히브리서에는 없다는 점. 구약 성경 인용 때 바오로 사도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또는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고 했는데, 히브리서는 “성경”이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고 한 점.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대사제’라 하며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구원을 설명할 때 믿음보다 경신례와 관련된 용어를 자주 사용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직접 복음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갈라 1,12), 히브리서는 “주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을 들은 이들이 자신에게 확증해 주었다”(2,3)고 말해 차이를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들 중 한 명이 히브리서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어떤 이는 레위 출신의 바르나바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다계 그리스도인인 아폴로라고도 합니다. 또 교리에 정통했던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라고도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가끔 자신을 ‘우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불분명하지만 받은 이는 당연히 히브리인들, 곧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히브리서에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거나 구약성경 속 이스라엘에 비유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초대 교회를 이스라엘의 광야 세대로, 새 계약과 옛 계약, 레위인의 대사제직을 그리스도의 대사제직과 비유합니다. 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모세의 율법이 규정한 희생 제사 틀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성경학자들은 초대 교회에 유다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단지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방계 그리스도인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교회였다고 설명합니다. 히브리서는 대략 60~90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간에 언급된 티모테오가 감옥에서 풀려나 선교 여행을 하던 시기라면 1세기 후반이기 때문입니다. 또 로마의 클레멘스가 95년께 히브리서를 사용했기에 이보다 더 늦게 집필 시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Εβραιουs’(프로스 에브라이우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Hebraeos’,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 표기합니다. 히브리서는 총 1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1,1─4,13)·그리스도의 사제직(4,14─10,18)·그리스도인의 삶(10,19─13,25)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계시가 어떤 것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완성된 영원한 구원의 약속은 천사들이 선포한 말씀을 능가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신임받은 사제이시며(3,1-6) 모든 사람과 굳게 결속된 자비로우신 사제이십니다.(4,14─5,10) 그분께서는 아론의 사제직을 이어받으셨지만(5,4-5) 그분의 사제직은 아론의 것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은 구약의 모든 제사를 대체하는 유일한 ‘참 제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천상 사제가 되시고(9,24) 죄를 없애는 정화를 실현하셨으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습니다.(9,15; 13,20)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로, 하느님 자신이 당신의 아드님을 통해 인류에게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셨습니다.(2,10) 그리스도인은 ‘단 한 번’(7,27; 9,12;10,10) 봉헌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4,3)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본보기로 삼아 형제들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찬양 제물”(13,15)로 삼아 지속해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고서, 또 형제들과 하나 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다다를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9.10

종교와 문학은 한 몸… ‘복 많은 집’ 안주인, 남편과 함께 세례 받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학을 통한 사도적 삶,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 (3) 하느님의 자녀 되어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복 많은 집’이라 불렸던 보문동 집에서의 박완서.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동네서 ‘복이 넘치는 집’으로 불리던 때 감사와 두려움에 ‘종교 가져볼까’ 생각 비인간적 장례 문화에 회의 느끼다 천주교의 존엄한 장례미사에 마음 열어 신앙의 힘으로 아픔 치유하고 독자들에게 사랑과 용서의 가치 전해 ‘복 많은 집’ 박완서가 가정을 이루고 살던 서울 보문동의 한옥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서울 잠실의 아파트로 이주하면서 집을 팔려고 내놨더니 내놓기가 무섭게 금방 팔렸더랬다. 새로이 아파트가 많이 생기던 때라 주택, 특히나 오래된 한옥은 인기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말 그대로 언제나 복이 넘치는 집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당시로는 드물게 연애결혼에 골인하였는데 남편은 조용하면서도 아내의 말이라면 뭐든 다 좋다고 해주는 푸근한 사람이어서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다. 자식들은 또 어떠한가. 오남매 가운데 누구 하나 속 썩인 자식이 없었다. 중고등학교부터 입학시험을 치러 보내던 때였는데 단 한 번도 낙방한 적이 없었고 좋은 대학교에 척척 붙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나이 마흔에 등단한 뒤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는 일마다 잘되고 조금의 근심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일만 계속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호사다마라고 어쩌다 불행이 한 번 닥칠 수도 있겠지. 그러려면 어딘가 기댈 구석이 있어야 할 텐데. 종교를 한 번 가져볼까?’ 넘치는 행복을 어딘가에 감사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간 공짜로 복을 마음껏 누리려 하느냐고 저 높은 곳 어디에선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 또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불행에 대비해 기도할 든든한 백 하나쯤 있어야지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의 집안에는 딱히 종교가 없었다. 그의 고향은 개성 인근의 ‘박적골’이라는 시골 동네였다. 워낙 깊은 두메라 일제강점기였는데도 일본 사람을 직접 본 일이 없었고 할아버지가 개성에 나가 사오신 물감으로 ‘덕국(德國, 독일)’이라는 나라 밖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 정도였다고 한다. 박완서의 할아버지는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남자아이는 서당에 보내 한문을 배우게 하고 여자아이는 집에서 한글을 배우게 하는 분이었다.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 간에 화목하며 남녀가 함부로 섞이지 않고 가난한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는 지극히 유교적인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그런 보수적인 집안에서도 당차게 자녀 교육을 서울에서 시킨 어머니는 근심이 있을 때면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빌었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에도 빌었다. 6·25전쟁을 겪으며 가족이 희생되는 아픔을 절에 가 달래다가 말년에는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이런 성장 배경 속에 박완서도 처음에는 한 가지 종교에 정착하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처음엔 개신교 교회에 나가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집 근처 성당을 찾게 된 것이다. 그가 세례를 받게 되자 ‘작가가 종교에 깊이 빠지면 문학에 소홀하게 된다’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종교와 문학은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종교와 문학으로 개인의 아픔을 치유하였고, 이는 가톨릭 신자는 물론 신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도 힘과 용기를 주었다. 문학의 힘을 빌려 사랑과 감사, 회개와 용서 등 종교의 가치를 세상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종교의 힘으로 작품은 더욱 풍성해졌다. 박완서에게 종교와 문학은 한 몸이었다. 어머니 홍기숙 여사.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 덕에 박완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현대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6·25전쟁으로 아들(박완서의 오빠)을 잃고 고통받다 말년에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됐다. 이러한 어머니의 종교와 삶, 죽음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단편 「부처님 근처」를 썼다.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나의 마지막 길은 장례미사였으면 그가 천주교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항간에 가족을 연이어 잃은 슬픔을 겪은 후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박완서가 세례를 받은 것은 그 전인 1984년이었다.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느낀 죄책감 때문이었다. 박완서는 결혼 후 줄곧 시어머니를 모시고 한집에 살았다. 시어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시절 박완서가 딸을 내리 넷을 낳고 마침내 다섯 번째에 이르러 아들을 품에 안을 때까지 성별에 상관없이 손주 다섯을 직접 업어 키워주신 분이었다.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배려가 몸에 배어있던 시어머니는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하고 글도 깨치지 못한 분이었지만 박완서는 그런 시어머니를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분으로 존경했다. 26년 넘게 함께 살던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돌아가신 후 맞닥뜨린 장례 절차는 그를 몹시 괴롭게 했다. 박완서 부부는 당시에 주위에서 하던 대로 장의사를 불러 장례를 치렀는데 고인에게 관은 얼마짜리, 수의는 얼마짜리를 해드려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흥정을 하려 들었다. 심지어 고인의 저승길에 노잣돈이 두둑해야 한다며 수의를 입힌 옷가지 이곳저곳에 두툼한 지폐를 찔러 넣게 하고, 선산에 오르는 영구차가 멈출 때마다 마치 혼인하는 신부 집에 함을 들이는 양 돈을 깔아 움직이게 하였다. 그렇게 상주가 돈을 내놓을 때마다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는 장의사의 손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살아생전 사람을 소중히 대한 시어머니의 마지막을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모시는 것에 박완서는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간 가 본 문상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을 떠올려 보았다. 나도 죽으면 저런 대접을 받고 싶다 할 정도로 인상 깊은 장례식은 거의 천주교 의식의 장례미사였는데, 고인이 부자든 가난하든 따지지 않고 이승에서의 죽음에 대한 절망보다 훗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예식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에게 해드린 것 같은 대접을 나는 받고 싶지 않았다. 종교를 가지는 데 있어 어찌 보면 이기적인 계산일 수도 있지만 시어머니라면 괜찮다고 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박완서 가족의 식사 모습. 남편 호영진씨와 아들 원태씨. 가톨릭평화신문 DB 평화의 인사를 통해 신비를 체험하다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을 때 박완서에게 천주교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종교 이전에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또 성경 말씀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잘못을 덮어놓고 꾸짖지 않고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평화의 인사만큼은 새로웠다. 주위에 누가 앉았는지 미사를 하는 동안엔 전혀 모르다가 평화의 인사 시간이 되면 비로소 몸을 돌려 교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신비롭기까지 했다. 한 번은 바로 옆에 앉은 형제에게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를 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을 한 이가 내 남편이었다니! 그이에게 이런 얼굴이 있었던가! 평생을 한 이불 덮고 산 남편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살아왔었다. 그가 번 돈은 내 돈이요, 내 생각은 그의 생각이 된다는 걸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와 한 몸이라 여겼던 남편을 독립적인 ‘남’이라 바라볼 수 있는, 관습을 깨는 새로움의 신비를 체험하며 박완서는 ‘정혜 엘리사벳’으로 거듭 났다. 그의 손에 이끌려 함께 성당에 나간 남편 호영진은 ‘하상 바오로’로 세례를 받게 된다. 53세 때의 일이었다. <계속> 정혜린 클라라(프리랜서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1.28

동정 생활과 순교로 오롯이 자신 봉헌한 복자[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20) 윤점혜(아가타) 윤점혜(아가타) 복자화. 동정녀이자 순교자인 복자 윤점혜는 주문모 신부와 여회장 강완숙(골룸바)의 지도 아래 동정녀 공동체의 책임자로서 동정녀들을 완덕으로 이끌었다. 1795년 6월 28일 최인길(마티아)·윤유일(바오로)·지황(사바)이 체포돼 순교했다. 이들은 전날 밀고자 한영익에 의해 조선에 입국해 사목 중이던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의 신원이 발각돼 주 신부 체포령이 떨어진 것을 극적으로 전달받고 주 신부를 강완숙(골룸바, 당시 34세) 집으로 피신시킨 후 포졸들에게 잡혀 목숨을 잃었다. 이를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을묘년 주문모 신부 체포 실패 사건이라 해서 ‘을묘실포사건’(乙卯失捕事件), 줄여서 ‘을묘사건’, 또 장소를 가리켜 ‘북산사건’이라 부른다. 을묘사건 이후 강완숙의 집은 조선 교회 사목의 핵심 거점이 된다. 강완숙은 주 신부의 신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인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남대문 인근 창동에서 살다가 1799년에는 인사동으로, 1800년 3월에는 훈동(관훈동, 충훈부 후동으로도 불림)으로 자주 이사했다. 주 신부는 강완숙의 집에만 머물지 않고 충청도 연산에 있는 이보현의 집, 한양 계산동 최인길의 집, 창동 김 우르술라의 집과 정약종의 집, 남대문 현계흠의 집, 벽동 정광수의 집, 광통교 김가의 집,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철종의 할아버지인 은언군이 강화도에 유배되면서 폐궁이 된 전동 양제궁, 김종교의 행랑채, 황해도 등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교우들을 돌봤다. 6년간 주문모 신부를 모신 강완숙의 공로 중 하나는 동정녀와 과부들을 위한 여성 공동체를 조직 운영한 것이다. 강완숙은 딸 홍순희(루치아), 윤운혜(루치아)의 언니 윤점혜(아가타), 정광수(바르나바)의 동생 정순매(바르바라), 배교자 심낙훈의 동생 심아기(바르바라), 이합규의 누이 이득임, 정분이의 친척 박성염, 조섭의 누이 조도애(아나타시아), 김월임, 이어린아기의 딸 김경애 등 9명의 동정녀를 교육하고 돌봤다.(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378쪽 참조) 동정녀 윤점혜와 정순매는 사돈 간이다. 신앙인 된 후 동정 지키기로 결심 이번호에 소개할 인물은 강완숙의 집에 살면서 그의 지도를 받은 복자 윤점혜(아가타, 1778?~1801)이다. 윤점혜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양근 한감개(오늘날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머니 이씨에게 가톨릭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을묘사건으로 순교한 복자 윤유일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윤유오(야고보)가 그의 사촌 오빠다. 윤점혜는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된 후부터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기로 마음먹고 동정 생활을 했다. 하지만 조선의 풍속은 그를 동정녀로 살도록 두지 않았다. 조선 사회는 혼인하지 않는 것을 불효로 여겼다. 더욱이 과부나 홀로 사는 여성을 강제로 보쌈해 약탈혼을 하는 풍속이 횡행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이 동정을 지키고 산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삶이었다. 그럼에도 윤점혜는 남장을 하거나 과부 행세를 하며 순교할 때까지 동정을 지켰다. 윤점혜는 사촌 오빠 윤유일로부터 주문모 신부가 1795년 조선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 신부 곁에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이사했다. 2년 뒤 그는 주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동정녀 공동체의 책임자·여교우들의 모범 그는 어머니가 선종하자 강완숙의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신앙심뿐 아니라 효심도 깊었다. “윤점혜 아가타는 어머니가 임종하실 때에 성사를 받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성모님 곁에서 시중을 들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 ‘그 꿈이 정말이라면 열심히 연도를 바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자, 아가타는 그때부터 매일 어머니를 위해 연도를 바쳤습니다.”(조선 교우들이 북경교구 주교에게 보낸 1811년 신미년 서한 중에서; 차기진, 「고난의 밀사」245쪽) 윤점혜를 비롯한 초기 조선 교회 동정녀들의 삶은 사도 시대 여교우들의 활동과 흡사했다. 우선 그들은 여성들을 교육하고 돌보았다. 그리고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고 자선을 했다. 또 교회 집회 장소로 자신의 집을 기꺼이 제공했고, 선교 활동에도 협력했다. 더불어 교회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헌신적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윤점혜는 주문모 신부와 여회장 강완숙의 지도 아래 동정녀 공동체의 책임자로 임명돼 다른 동정녀들을 완덕으로 이끌었다. 그는 교회 가르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극기와 성경 읽기, 묵상을 즐겨 동정녀들뿐 아니라 여교우의 모범이 됐다. 그는 수호성인인 아가타처럼 순교할 수 있도록 늘 기도했다. 윤점혜는 동정녀들과 함께 매달 첨례와 송경을 적게는 6~7차례, 많게는 10여 차례 하고, 첨례 날에는 강학모임에 참여했다. 신앙 고백하며 의연하게 순교 1801년 신유박해 때 윤점혜는 동정녀들과 함께 잡혀 포도청과 형조에서 심문과 형벌을 받았다. 그는 혹독한 형벌에도 교우들을 밀고하지 않고 배교를 거부했다. 그는 심문관에게 “10년 동안이나 깊이 빠져 마음으로 굳게 믿고 깊이 맹세하였으니, 비록 형벌 아래 죽을지라도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신앙 고백을 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고향인 양근으로 이송돼 1801년 7월 4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대략 23세였다. 그의 순교를 목격한 교우들은 “목에서 흐른 피가 우윳빛이 나는 흰색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양근 감옥에서 함께 갇혀 있던 한 여교우는 “아가타는 말하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 사형을 앞둔 사람 같지 않고, 태연자약하여 이 세상을 초월한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순교자이자 동정녀인 복자 윤점혜는 당시 사회 풍속과 관습의 한계를 뛰어 넘어 신앙 안에서 인격적 자주성을 실천한 여성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 *첨례(瞻禮)는 일반적으로 전례력 축일을 가리킨다. 또 매월 첫 주간 요일마다 행한 신심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박해 시대 교우촌 신자들은 주일 미사를 대신해 ‘첨례경’을 외우기도 했다. *송경(誦經)은 기도문을 소리 내어 외우는 행위이다.리길재 전문2026.05.13

신앙으로 하는 훈육[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12) 하느님의 훈육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 「적절한 좌절」이란 책 소개를 들은 적이 있다. 요지는 이러했다. ‘애착 과잉’, 과도한 보살핌으로 인해,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마땅히 거쳐야 할 ‘적절한 좌절’의 단계를 거치지 못해 정서적 비만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나친 애착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좌절과 실패, 상실을 겪음으로써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며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사소한 갈등에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의 요지에 공감이 가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 삶에 좌절이 없을 수 없다. 부모 입장에서 좌절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얼마나 큰 괴로움일까. 그런데 좌절하지 않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좌절을 딛고 나갈 준비를 못 하도록 막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넘어질 때 당장은 아프지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응원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훈육 방식은 어떠할까? 성경을 읽다 보면 하느님께서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아는 분이심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애착 과잉으로 자녀를 키우지 않으신다. 그보다는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자녀들이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도록 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늘 승승장구하는 완전무결한 영웅들이 아닌, 삶에서 닥치는 수많은 시련과 위기를 통해 쓰러지고 가슴이 찢긴,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 길을 나선 이들이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서를 통해 말씀하신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히브 12,5-6) 또한 시련을 하느님의 훈육으로 여기며 견뎌내라고 권고하신다. 잠언도 이렇게 전한다. “아이를 훈육하는 데에 주저하지 마라. 매로 때려도 죽지는 않는다. 아이를 매로 때리는 것은 그의 목숨을 저승에서 구해 내는 일이다.”(잠언 23,13-14) 물론 아이를 폭력으로 대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자녀를 엄하게 훈육하는 것은 필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보다, 세상에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음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할 때, “그래, 넌 열심히 공부해라. 기도는 내가 할 테니”라고 타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럴 때에는 어른의 말씀을 따르자. 오랜 지혜를 갖고 있는 어른인 교회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아이가 올바른 양심을 갖추도록,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도록, 세상에서 닥치는 시련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도록 신앙으로 훈육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교회가 의무로 지우는 것은 단순한 짐이 아닌, 오랜 경험과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안에는 하느님의 뜻과 지혜가 담겨 있다. 젊은 날은 한때다. 인내로 그 시절을 감내하며 지낼 때, 인간답게 성장할 수 있다. 아이가 불만을 표출할 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되,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와 용기를 줄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우리를 훈육하셨다. 한민택 신부cpbc2025.08.19

“교회에 더욱 헌신하고 싶다”… 포르투갈 교회는 ‘청년’이 주인공[세계청년대회 개최지를 가다] 리스본 WYD (1) 역사를 바꾼 포르투갈 청년들돛을 올린 작은 나무배들이 대서양을 향해 출항했다. 천천히 흐르는 강을 따라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이들이었다. 배에 탄 이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결연한 의지가 서린 얼굴도 있었고,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움켜쥔 이도 있었다. 설렘과 함께 폭풍과 암초,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항해에 대한 두려움이 따라붙었다. 수평선 너머는 여전히 인간의 계산을 벗어난 영역, 지도에 비어 있는 바다로 향한 여정이었다. 이날은 영광스러운 선교와 교역의 시작으로 기억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식민지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훗날 ‘항해왕’이라 불리게 된 포르투갈 왕자 엔히케가 연 ‘대항해 시대’의 서막이다. 대항해 시대는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웅장한 금속 뱃고동 소리와 함께 시작되지 않았다. 대신 밧줄이 풀리는 마찰음과 목재 선체가 물을 밀어내는 둔탁한 울림이 테주 강 하구에 번졌다. 15세기 초 포르투갈 최대 항구도시 리스본의 풍경이다. 600년이 지난 2023년 이곳 리스본에 지구촌 모든 대륙에서 온 젊은이들이 모였다. 한때 이 항구에서 시작된 항해는 세계를 재편했다. 그 항해는 복음과 향신료를 실어 나르며 ‘제국’을 키웠다. 그 기억 위에서 이제 가톨릭교회는 ‘만남의 문화’를 말하고 있다. 정복이 아닌 포옹으로, 확장이 아닌 연대로 향하는 또 다른 항해.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향한 여정에서 역대 WYD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공동기획 ‘개최지를 가다’. 포르투갈 교회 첫 편에서는 ‘역사를 바꾼 포르투갈 청년들’을 조명한다.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봉사자들이 그해 8월 6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환호하고 있다. 2023 리스본 조직위원회 제공 평화를 향한 항해 WYD WYD 개막 전인 2023년 7월 26일, 리스본이 노랗게 물들었다. WYD에 참가한 모든 순례자를 위해 헌신하는 2만 4000여 명 봉사자들이 입은 노란색 티셔츠가 발대미사 장소 일대를 노란빛으로 만든 것이다. 이들은 본대회 기간 곳곳에서 참가한 순례자들의 손과 발이 될 예정이었다. 같은 색 티셔츠 속 피부색은 달랐고, 사용하는 언어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이같은 화합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기원을 따라가다 보니 한 문서에 닿았다. 포르투갈 청년들과 사목·신학자들이 리스본 WYD를 준비하면서 작성해 만든 ‘2023 리스본 WYD 기초 문헌’(이하 문헌)이다. 이 문헌은 단순히 WYD의 의미를 넘어 리스본 WYD의 방향성을 천명하고 있다. “WYD는 단지 하나의 행사나 축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를 위한 사목적 과정이다. (중략) 이는 단지 포르투갈 교회를 위한 사건을 넘어, 보편 교회를 위한, 특별히 오늘날 살아가는 전 세계 젊은이들을 위한 시간이다.”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본대회가 열리기 전, 코임브라교구대회에서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춤을 추고 있다. 2023 리스본 WYD 조직위원회 제공 2023 리스본 WYD 여정을 관통하는 주제 성구는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루카 1,39 참조)였다. 문헌은 이에 대해 “출발의 도시이자 도착의 도시인 리스본은 2023년 WYD를 위해 의미심장한 상징적 맥락을 제공한다”며 “항해자들의 ‘떠남’이 만남과 세상에 대한 개방을 환기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리스본을 “만남과 어긋남들로 특징지어진 과거에 대한 기억과 예언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만남과 어긋남. 대항해 시대는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했지만, 기쁜 소식이 언제나 기쁘게 느껴진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구원의 언어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지배의 언어였다. 그럼에도 문헌은 “이 도시는 전 세계 젊은이들을 맞이하며, 다양성을 하나의 선물로 만들도록 그들을 초대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긴장을 넘어 형제애와 평화를 향한 또 다른 항해의 여정을 제시한 셈이다. 샬롬 공동체 - 국경 넘어 하나 된 젊은이들의 ‘신앙 보금자리’ 청년들이 샬롬공동체 기도 모임에 참여해 하느님을 향한 찬미를 드리고 있다. 리스본 WYD가 끝난 지 약 2년여가 지난 2025년 겨울. 이곳은 여전히 환대와 포옹의 공간이었다. 그해 12월 6일 포르투갈 교회 신자들은 물론 브라질·폴란드·이탈리아·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이 신앙 보금자리로 삼고 활동하는 한 본당을 찾았다. 리스본 중심지인 에두아르두 7세 공원 인근에 자리한 리스본총대교구 예수성심본당이다. 한적한 성당 복도를 따라가다 보니 빛이 새어나오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젊은이들의 하느님을 향한 찬미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독특한 선율과 리듬을 반복하는 이들의 찬미는 낯설면서도 강렬했다. 순간 가톨릭 성당이 아니라 다른 신앙 공동체에 들어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1982년 브라질 포르탈레자(Fortaleza)에서 선교적 카리스마를 갖고 탄생한 ‘샬롬 공동체’의 아름다운 문화였다. 이들은 2021년 리스본을 선교지로 정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샬롬 공동체’의 이색적인 찬미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느새 젊은이들은 신앙의 분위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환대와 사랑으로, 유학 등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타지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의 ‘신앙 거점’이 되고 있었다. 리스본 WYD는 개최 직전 1년 연기되는 상황까지 맞았다. 인류를 강타한 코로나 19 팬데믹 탓이었다. 리스본 내에서 사목의 중심이던 본당은 팬데믹 시기, 매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 수가 10여 명까지 줄었다. 그러나 WYD를 개최하고 나서, 오늘날 이곳은 100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본당 주임 레오나르도 도넬레스 데 알메이다 신부는 “신자가 10배 가까이 늘기까지 그 사이에는 분명 리스본 WYD가 있다”고 증언했다. WYD 이후 젊은이 사목에 더욱 집중 ‘샬롬 공동체’의 선교사이기도 한 알메이다 신부는 “우리는 리스본 WYD의 영성적인 부분을 담당했다”며 “WYD 이후 젊은이 사목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한 총대교구가 샬롬 공동체에 이 본당을 맡겨, 도시 중심부에서 사목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총대교구가 이들에게 맡긴 젊은이 사목이란 “젊은이들을 위한 행사를 더 많이 만들고 모든 관심이 이들을 향하게 하며, 그들을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두는 작업”이었다. 알메이다 신부는 “WYD가 포르투갈 교회 젊은이들에게 남긴 것은 ‘주도성’이라 할 수 있다”라며 “젊은이들이 교회와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샬롬 공동체 청년회에서 활동하는 다니엘 산토스 알메이다(30)씨는 “리스본 WYD에 참여했을 때 각국에서 온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나누면서 교류할 수 있었던 게 가장 인상 깊었다”면서 “이러한 경험을 통해 교회에 더욱 헌신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그는 WYD 이후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있다. 알메이다씨는 “흔히 직장 동료들이 ‘다니엘, 당신이 조금이라도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삶 속에 더해진 신앙의 의미를 이렇게 전했다. “변호사라는 제 직업도 사랑하지만, 교회에 시간을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가 저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기에 저는 행복합니다.” 청년회는 찬미와 성경공부 시간으로 이뤄진 기도모임 이후 친교를 다졌다. 젊은이들은 포르투갈의 명물 에그타르트(나타)와 와인을 비롯해 피자와 맥주 등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모두가 같은 하느님 자녀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한창 웃음꽃을 피워나가는 중이다. 이 자리에 함께한 폴란드인 우르술라 로젝(26)씨는 포르투갈 유학길에 올랐다. 로젝씨는 “친구의 권유로 피정에 참여했다가 자연스럽게 샬롬 공동체 청년회에 계속 함께하고 있다”며 “타지에서 느끼는 친절과 따뜻한 환대는 그 자체로 훌륭한 경험”이라고 소회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누구보다 진실한 관계라고 느껴진다”면서 “우리는 단순히 기도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삶을 나누며 더 깊이 연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폴란드에 있을 때는 부끄러워서 노래를 조용히 부르는 편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마음껏 노래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좋다”며 “2027 서울 WYD에 참여해 처음 가보는 아시아에서 교황님을 뵙고, 더욱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고 기대했다. 다양한 대화·나눔으로 친교 형성 샬롬 공동체에서는 이달에만 세 쌍이 혼인성사로 하느님 앞에 성가정을 이루게 됐다. 이사벨 데시데리오 브라케하이스(32) 선교사는 “젊은이들은 여러 곳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WYD에서 주님을 체험한 후 ‘교회’로 돌아온 이들은 다양한 대화와 나눔으로 친교를 형성한다”고 했다. 그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샬롬 공동체 기도모임에 참여하면서 많은 젊은이가 성체성사에 온전히 참여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을 살아가기 위해 혼인성사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미소 지었다. “젊은이들이 신앙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아주 구체적인 증거”였다. 준비 과정부터 시노달리타스 정신 강조 조직위 주요 책임자 모두 평신도로 구성 ‘동반자 학교’로 대회 후 영적 성장 도와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서 전 세계 청년들이 환호하며 일치와 친교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Todos, todos, todos.” 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위 동안 자주 강조하던 표현이 있었다. 스페인어 “모두, 모두, 모두”(Todos, todos, todos)는 리스본 WYD에서도 여지없이 강조됐다. 2023 리스본 WYD 총괄 코디네이터 아메리코 아귀아르(세투발교구장) 추기경은 WYD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이와 관련지어 말했다. “포르투갈 교회는 WYD에 모든 젊은이가 초대받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대를 받은 젊은이가 거절할 수도 있었죠.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환영한다는 느낌을 WYD에서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실제 포르투갈 교회는 세계 모든 젊은이를 리스본으로 초대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아귀아르 추기경은 “당시 리스본총대교구장이셨던 마누엘 클레멘테 추기경님께서는 ‘행사의 맨 앞줄에 성직자들이 서 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평신도들, 특히 젊은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대회를 준비하고 꾸리는 리스본 WYD 조직위원회의 주요 7개 조직의 책임자도 모두 ‘평신도’로 구성했다. 다시금 “모두, 모두, 모두”라는 메시지, 즉 ‘함께 걷는 길’을 의미하는 시노달리타스가 WYD 준비 과정에서부터 구현된 것이다.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봉사자들이 그해 8월 6일 파견미사 이후 포르투갈 알제스 해안 산책로에서 교황을 기다리고 있다.2023 리스본 WYD 조직위원회 제공 아귀아르 추기경은 이제 와 단언했다. “우리 교회는 여러 모임을 통해 평신도들이 더욱 전문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리스본 WYD는 성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조직위원회뿐만이 아니었다. 리스본총대교구 청소년 국장도 사제가 아닌 평신도 조앙 클레멘테씨가 지금까지 맡고 있다. 클레멘테 국장은 “많은 젊은이가 조직위원회 안에서 WYD를 주도적으로 꾸려나갔다”며 “숙식 문제부터 안전과 편의시설까지 다양한 운영 영역에 젊은이들의 손길이 닿았고, 그것이 큰 열매를 맺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는 WYD 이후에도 젊은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말하고 싶어하는지 들을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이후 여러 젊은이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고, 그렇게 만난 약 200명의 젊은이가 한목소리로 요청한 것은 ‘양성’이었다. ‘교회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젊은이들의 요청에 응답해 생겨난 것 중 하나가 ‘동반자 학교’다. 클레멘테 국장은 “동반자 학교는 어르신부터 젊은 세대까지 서로에게 동반자가 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며 “2년 동안 신학과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신앙, 심리와 윤리, 영적인 교육, 각 젊은이에게 맞춘 동반 지도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2025년 12월 10일 방문한 동반자 학교에서는 온·오프라인 교리 교육이 한창이었다. 젊은이부터 중년·노년 세대가 모여 신앙을 나누고 있었다. 수도자들도 참여해 한 자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교육 내용을 필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동반자 학교 학생 플리니오 알부케르케(37)씨는 “평신도 신심단체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고 있다”며 “평소 동행하는 청소년들에게 교회 가르침을 잘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참여하고 있는데, 유익한 수업 내용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과 우정도 쌓을 수 있어 즐겁다”고 전했다. 2023 리스본 WYD에만 약 2만 5000명이라는 수많은 국제 봉사자가 참여했다. 이만큼의 봉사자들이 함께한 덕분에 장애인 순례자들도 WYD 안에서 배제되지 않고 주역이 됐다. 아귀아르 추기경은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아 WYD 현장에 직접 오거나, 몸이 매우 불편해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경우에는 비대면 방식을 통해 참여했다”며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라 특별히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수어로 노래하는 성가대도 있었다”고 말했다. WYD 기간에는 포르투갈 교정 시설에 수감된 이들이 만든 고해소도 화제가 됐다. 죄를 지은 자라고 하더라도, WYD에서만큼은 배제되지 않은 것이다. 리스본 WYD 재단법인 ‘여정’은 지금까지 WYD 수익금을 청년들이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에 투자·지원하고 있다. 포르투갈 전역에서 활발히 들어오는 제안서들은 WYD가 일회성 종교행사가 아니라, 지역 젊은이들과 사회에 지속적인 변화를 남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떠남’, 화합과 희망 “팬데믹의 트라우마로 이미 시험대에 오른 인류가 전쟁의 비극으로 더욱 고통받는 이 어려운 시기, 성모 마리아는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만나는 길을 보여줍니다. 저는 여러분이 2023년 8월 리스본에서 경험하게 될 이 시간이 젊은이 여러분과 인류 전체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 제37회 ‘세계 젊은이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에서 리스본 WYD의 의미를 이렇게 조명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복음화 시대를 발표한 것이다. 교황은 “이웃이 구체적이고 시급한 필요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며 “노인·환자·수감자·난민 등 세상에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군가의 방문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재해석된 15세기 초 ‘떠남’의 의미다. 그러면서 ‘건강한 조급함’을 거듭 상기했다. 교황은 “건강한 조급함은 우리를 항상 더 높은 곳으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며 “반면 건강하지 못한 조급함은 생명을 메마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가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태도, 친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하는 모습, 연인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인내심이 부족한 경우” 등이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진정으로 나아갈 때, 파편화된 인류 안에서도 새로운 화합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만남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발견한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박예슬2026.03.11

열혈당원 출신 유다 타대오와 시몬[저는 믿나이다] (30) 유다 타대오와 시몬 사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 타대오와 시몬 사도는 열혈당원으로 활동하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됐다. 엘 그레코 작 ‘성 유다 타대오, 성 시몬 사도’, 유화, 1608~1614, 스페인 톨레도 대성당. 유다 타대오 야고보의 아들 유다 타대오 사도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습니다. 그의 이름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선 ‘타대오’(마태 10,3; 마르 3,18)로,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선 ‘야고보의 아들 유다’(루카 6,16; 사도 1,13)로만 소개됩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타대오와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같은 인물로 여겨왔습니다. 복음서들이 사도의 이름을 달리 표기한 것에 대해 여러 성경학자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혼돈하지 않도록 일부러 ‘타대오’라고 기록했을 것이라 설명합니다. 복음서에 열두 사도 명단 외에 이 유다의 이름이 딱 한군데 있는데, 바로 요한 복음 14장 22절로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라고 나옵니다. 이 표현으로 미뤄 사도 시대 초기 교회에서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유다 이스카리옷을 구별하고자 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 가운데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 이름뿐 아니라 그리스식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타대오는 ‘가슴’을 뜻하는 아람어 ‘타다’에서 비롯돼 ‘넓은 마음’을 뜻한다고도 하고, ‘하느님의 선물’을 뜻하는 헬라어 ‘테오도로스(Θεόδωρος)’의 축약형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유다 타대오와의 대화는 복음서에 딱 한 차례 나옵니다. 마지막 만찬 때 그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요한 14,22-24) 교회 전승에 따르면 유다 타대오 사도는 시몬 사도와 함께 열혈당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열혈당원(ζηλωτής, 젤롯)은 ‘토라’ 곧 모세의 율법에 대한 열성이 빼어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항해 이스라엘 민족 독립을 쟁취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자 무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6년에 갈릴래아 출신 유다가 주도한 반란을 계기로 민족주의 저항단체인 열혈당을 결성했지요. 이 내용은 사도행전 5장 37절에 짧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위경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는 유다 타대오 사도가 시몬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하다 페르시아에서 창에 찔려(도끼로 참수형을 받았다고도 함) 순교했습니다. 시몬 사도 열두 사도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는 우리말 공관 복음서에는 시몬 사도를 모두 ‘열혈당원’으로 옮겨놓았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본문 성경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의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는 시몬 사도를 ‘가나안 사람’(마태 10,4 ‘Σίμων ὁ Κανανίτης’, ‘Simon Chananaeus’, 마르 3,18 ‘Σίμωνα τὸν Κανανίτην’, ‘Simonem Chananaeum’)이라고 밝힙니다. 따라서 시몬 사도는 가나안 출신 열혈당원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시몬 사도가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 혼인 잔치의 신랑이었다는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천사에게서 예수님 탄생을 전해 들은 목동 중 한 명이었다는 설도 내려오고 있지요. 복음서의 문맥에 따라 시몬 사도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야고보·요한과 함께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잡이하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울러 그가 부르심을 받기 전에 열혈당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유다인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했고, 율법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몬 사도는 로마인의 협력자로 유다인들에게 세금을 거두던 마태오 사도와 분명 결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열혈당원의 시조는 ‘피느하스’입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한 한 이스라엘 사람을 모든 공동체가 보는 앞에서 살해했습니다.(민수 25,6-13) 카르멜 산에서 바알 사제들을 죽인 엘리야 예언자(1열왕 18장)나 마카베오 가문의 시조로 유다교 신앙을 말살하려는 셀레우코스 임금 안티오코스 4세에 반기를 들고 무력 항쟁을 벌였던 마타티이스도 젤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젤롯 곧 열혈당원이 율법과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을 했다면 반대로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은둔생활을 한 부류도 있습니다. 바로 ‘하시딤’입니다. 하시딤은 헬레니즘에 저항해 마카베오 시대 때부터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에 안티오코스 4세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도망가지 않고 부동자세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천 명이 이렇게 순교한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시몬 사도에 관해 신약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카나 출신 열혈당원이었다는 것뿐입니다. 위경 「시몬과 유다 수난기」 는 시몬 사도가 유다 타대오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톱질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6.04
![[금주의 성인] 성 아론 (7월 1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6/24/f3a1750755786821.jpg)
[금주의 성인] 성 아론 (7월 1일)연대 미상, 구약 인물, 사제 아론 성인. 굿뉴스 아론 성인은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체험했던 이집트 탈출 사건과 광야 여정에서 모세와 함께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아론은 레위 지파의 첫 사제입니다. 성경은 아론을 모세의 형제이자 공동 지도자, 이스라엘의 합법적 사제의 시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레위 지파 후손으로 아므람과 요케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모세가 그의 동생이고(탈출 6,20), 미르얌은 그들의 누이였습니다.(민수 26,59)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려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세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여든세 살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벌인 파라오와의 담판에서 아론은 모세의 대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 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 여정에서도 그는 모세와 함께 공동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으며, 갈증과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불평을 듣고(탈출 16,2),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자비와 구원을 선포했습니다.(탈출 16,6-7) 아론은 시나이 산에 이르러 주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탈출 29,4-9) 성대한 임직 예식을 통해 사제로 축성되었는데, 그의 사제직은 여러 징표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또 파란 광야에서는 모세와 더불어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정찰대를 맞이해 보고를 들었고,(민수 13,25-29)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함께했던 아론은 카데스를 떠나 호르 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돔 땅 경계 부근의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아론은 선조들 곁으로 간다. 너희가 므리바의 샘에서 나의 분부를 거역하였으므로, 아론은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 엘아자르를 데리고 호르 산으로 올라가서,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아자르에게 입혀라. 그는 거기에서 죽을 것이다.”(민수 20,24-26) 아론은 하느님 말씀대로 호르 산 꼭대기에서 눈을 감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슬퍼하며 30일 동안 곡을 했습니다.(민수 20,27-29) 아론의 선종일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0년 되는 해 다섯째 달 초하룻날이었고, 당시 그의 나이는 123살이었습니다.(민수 33,38-39)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7월 1일 목록에서 모세의 형제이자 레위 지파의 첫 사제인 아론이 호르 산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cpbc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