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147) Q.저는 가망이 없는 신자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2/04/rc/41136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47) Q.저는 가망이 없는 신자인가요?Q.저는 가망이 없는 신자인가요? 판공성사 때마다 저 자신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낍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면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정작 고해성사를 보려 성찰을 하면 늘 같은 죄를 반복하는 한심한 제 모습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제가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어떤 열심한 분이 저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기도생활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더 기도해야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온종일 기도만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A. 형제님 고민은 형제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많은 신자분이 하는 고민이고, 저 역시 젊은 시절 가졌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교리를 배우신 분들은 죄와 지옥 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고해성사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신앙생활은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이라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죄를 짓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죄를 짓지 않는 것에 국한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느님께 가기가 더 어려워지고, 신앙생활이 무거워지고 심리적으로 신경증적 억압현상이 생겨서 삶이 우울하고 힘겨워질 수도 있으니 주의할 일입니다. 우선 신앙생활에 대한 개념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아니라 내 인생에 희망과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맞아들이는 삶이라고 좀 더 눈을 들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사해주러 오는 분이시고, 죄의식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러 온 분이십니다. 우리가 자기 죄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한심한 모습만 보고 우울해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학행위, 병적 신심입니다. 형제님을 보고 믿음이 약하다고 하신 분은 정신적으로 그리 건강한 분이 아니니 멀리하시고 하느님을 만난 기쁨을 이야기하는 분들을 가까이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천사처럼 영적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안고 사는 한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선택하는 행동은 나의 의지만으로 하기가 어렵고, 많은 경우 무의식적 충동으로 하기에 머리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몸이 말을 안 들을 때가 잦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머리와 몸은 심리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때도 있고 의지의 심약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허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같은 죄를 반복해 짓고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죄는 필요없는 것, 절대적으로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으신데 일견 옳은 생각이지만 죄를 보는 시각을 좀 다른 각도에서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죄가 있는 곳에 은총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나는 터럭만큼 죄도 짓지 않는 순결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면 '루치펠 콤플렉스'에 걸립니다. 루치펠은 하느님을 거부한 대천사 사탄입니다. 자신이 완전하기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함부로 하고 싶은 교만 욕구에 걸려들어 회개없는 삶을 삽니다. 또 하느님 이름으로 일은 하지만 하느님은 뒷전이고 자신이 하느님 역할을 하려는 콤플렉스에 걸려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어두운 영혼이 되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죄의식은 불편하지만 나를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되이 서 있게 해주는 '은총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자기 성찰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죄를 짓고 살까, 나는 왜 이렇게 변화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가 하는 식으로 심하게 질책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 상태가 바로 심리적 연옥이자 지옥입니다. 자기 성찰은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남을 판단할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오로지 자기 정진을 위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자 죄 중에 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회와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입니다. 형제님께 권해 드리고 싶은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루카복음(23,41-43)에 나오는 죄수 이야기입니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홍성남 신부 (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 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퇴사자22012.04.12
![[출판]한국교회 성서학계의 소중한 결실「성경지도」, 성서와함께에서 나왔다.](//cpbc.co.kr/CMS/newspaper/2010/09/rc/351660_1.0_titleImage_1.jpg)
[출판]한국교회 성서학계의 소중한 결실「성경지도」, 성서와함께에서 나왔다.카파르나움 회당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다보면 거룩한 신앙의 조상들이 살던 세상이 궁금해진다. 그곳이 어디쯤이고, 성조들은 어떤 경로로 움직였으며, 어디에 터전을 잡았고, 왜 하필이면 그곳이어야 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성경 지도는 그래서 필요하다. 이처럼 성경에 따른 영적 지도찾기에 목마른 이들을 위한 「성경지도」가 최근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편저로 출간됐다. 무려 7년간에 걸친 개정작업 끝에 지난해 3월 심화교재 8권, 초급교재 3권으로 완간된 '성서사십주간' 전정판의 '보조'교재로 세상에 나왔다. 엄밀히 보자면 보조교재지만, 「성경지도」는 279쪽에 걸쳐 지도 200여 장과 사진 400여 장을 통해 성경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아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저술로, 성서학과 고고학, 지리학의 성과를 한데 아우른 한국천주교회 성서학계의 소중한 결실이자 기도의 열매다. 지도와 사진을 한 줄기로 엮으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원대한 구원계획이 한눈에 들어온다. 30년간 성경공부 길잡이로 교회 공동체와 함께해온 성서사십주간 전정판 작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완결판이기도 하다. 「성경지도」는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며(지도 1-20) △창세기-말라키서(지도 21-129) △구약과 신약 사이(지도 130-133) △마태오복음서-요한묵시록(지도 134-162) 등 네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현대 이스라엘 지도를 시작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위치와 영역, 고대 근동의 자연, 팔레스티나 지형도, 이집트ㆍ이란ㆍ이라크, 예루살렘, 유적지 등이 두루 망라돼 있으며,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ㆍ중동, 현대 중동을 넘나든다. 이 방대한 지도와 사진 작업을 총지휘한 책임편집자는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구약신학을 전공한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장 최안나(스피리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로, 전임연구원 5명과 디자인팀, 교정팀의 밤샘 작업 끝에 이 책이 나오게 됐다. 이기락(가톨릭대 교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신부 등 3명이 구약 편을, 김영남(가톨릭대 교수) 신부 등 3명이 신약 편을 각각 감수했다. 말씀이신 주님 손을 잡고 새롭게 성경 여행을 떠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나를 찾고 하느님을 찾는 진정한 영적 지도찾기의 여정을 시작하는데 꼭 필요한 역저다. 최 수녀는 "성조들이 걸었을 길을 작은 지도 안에서 더듬어보며 지리적으로 먼 고대 근동, 중동지역이라는 땅을 한참 들여다보니 우리 삶이 펼쳐지는 땅, 우리 신앙이 가는 길과 닮아 있었다"며 "성경을 읽으며 함께 펴 놓고 읽는 이 보조자료가 모쪼록 말씀을 알아듣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성서와함께/5만 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09.28
![[신앙의 재발견]-(3)전례주년의 구성과 특징](//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5209_1.0_titleImage_1.jpg)
[신앙의 재발견]-(3)전례주년의 구성과 특징전례주년 따라 예수 수난·부활 되새겨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전례 유무에서 시작된다. 개신교는 전례가 없기에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전례주년이 없다. 교회가 1년 동안 전례적 성사를 거행하는 일정표인 전례주년은 시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현재화하는 것이다. 전례주년의 구성은 이동축일과 고정축일의 가장 큰 축일인 부활 대축일과 성탄 대축일로 이뤄져 있다. 부활 대축일은 춘분(양력 3월 21일경)이 지난 후 오는 보름 다음 주일이기에 매년 이동되며, 3월 23일부터 4월 27일 사이에 지내게 된다. 성탄 대축일은 초기 그리스도교회가 로마의 태양신 축제일을 예수 성탄 대축일로 지냄으로써 시작돼 12월 25일로 고정돼 있다. 이렇게 두 대축일을 기점으로 전례주년을 따지면 쉽게 시기들을 알 수 있다. 부활 대축일 앞에는 사순시기가 오고, 뒤로는 부활시기가 이어지며, 성탄 대축일 앞에는 대림시기가 있고, 뒤로는 성탄시기가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연중시기가 된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미사 전까지로 예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회개와 기도의 시기다. 재의 수요일은 1091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베네벤토 교회 회의에서 모든 신자들이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받도록 권고함으로써 시작됐다. 머리에 재를 뿌리는 예식은 '네가 먼지임을 기억하라'(창세 3,19)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만들어졌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에 의해 완성됐다. 인간이 죽음의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회개를 호소하는 의미를 갖는다. 사순시기 마지막 주간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주님 수난과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이날 전례의 핵심은 축성된 나뭇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가 고대하던 죽음을 물리칠 메시아라는 신앙이다. 성지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부활 대축일 전까지다. 성지주일 전례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주님 만찬 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의 성삼일로 구분할 수 있다. 성목요일 오전에는 성유 축성 미사가 봉헌된다. 이날은 1년 동안 사용할 성유를 교구장이 축성하는데, 성유에는 축성성유ㆍ병자성유ㆍ예비신자를 위한 예비신자성유가 있다. 성목요일 저녁 주님 만찬 미사에서는 성체를 옮기는 예식이 거행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 후 올리브산에서 체포된 사건에 대한 기억에서 유래된다. 사제는 수난감실로 성체를 모시고, 십자가는 성당 밖으로 옮긴다.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를 그냥 두려면 천으로 가려야 한다. 성당 안에 있는 십자가를 가리는 이유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지 않고 수난을 받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금요일은 미사를 봉헌하지 않으며 주님 수난을 기념한다. 오후 3시경에 십자가의 길을 하고, 저녁쯤에 말씀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 예식으로 마감한다. 성토요일은 성금요일과 더불어 전례없이 침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진지하게 기억하고 기다려야 한다. 예수 부활 대축일은 자정 가까이 또는 그보다 조금 뒤에 부활 성야가 끝나고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은 교회 축일 중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은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거쳐야만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은 신앙생활의 목적이며 핵심이 되는 사건이다. 전례주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며 그리스도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고자 제정했다. 전례주년에 대한 이해없이 습관적 신앙생활만으로는 충분한 성사적 은총을 누리기 어렵다. 전례주년에 대한 의미를 알고 성사에 참례한다면 지금보다 더 살아 있는 역동적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정리=박정연 기자cecil@pbc.co.kr ※평화방송 TV '신앙의 재발견'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8시(본방송), 화요일 오후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4시, 일요일 오후 8시퇴사자22012.02.14
![[사람들]"보기만 했던 유리화, 직접 만들어보자."](//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6569_1.0_titleImage_1.jpg)
[사람들]"보기만 했던 유리화, 직접 만들어보자."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금요강좌로 '유리화' 과정 열어 신자들 호응... 신자들의 관심이 이젠 단순히 보는데서만 그치지는 않는 듯하다. 성당에 가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리화(Stained-glass)도 이제 '보고' '듣고' '체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9일과 20일, 서울 창천동 HK스테인드글래스㈜에선 유리화 제작 실습이 이뤄졌다.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주임 정연정 신부) 주최로 지난 10월 7일부터 8주간 진행되는 올해 하반기 금요강좌의 하나로, 유리화 강좌 수강생들이 직접 유리화를 제작해보는 기회였다. 수강생은 20여 명이었지만, 가족이나 친지들도 함께하는 바람에 20명씩 세 번으로 나눠 실습을 했다. 유리화조형작가 손승희(왼쪽에서 네 번째)씨 납땜 시범에 맞춰 수강생들이 직접 자신의 유리화 작품을 제작해 보고 있다. 직접 작품 모양을 구상한 뒤 색유리를 자르고 유리에 동테이프를 붙인 뒤 이를 납으로 이어붙여 작품을 만들어보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아 보였다. '가난한 이들의 성경(Poor Bible)'이라고도 불리는 유리화를 주제로 5차례 강의와 혜화동성당 견학에 이어 제작 실습을 해본 신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최규숙(글라피나, 47, 서울 등촌1동본당)씨는 "유리화 강좌를 듣고나니 그간 무심히 지나치던 유리화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다"면서 "이번에 유리화에 대한 맛을 들이고나니 앞으로 어떤 강좌가 개설될지 기다려진다"고 답변했다. 막 수능을 끝낸 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각디자인 전공 지망학생 조준영(프란치스코, 18)군은 "만들어보니까 재미는 있는데 어렵고 손으로 그리는 게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머니 이현주(율리아나, 46, 의정부교구 화정동본당)씨는 "유리화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신앙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성당 내 유리화가 나와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삶 안에 연결된 교회미술이라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제작한 작품은 십자가가 가장 많았고, 배와 성령, 보석, 꽃병, 나무 형상 이미지 등이었다. 다들 색채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고, 직접 만들어보면서 성취감도 느꼈다고 했다. 강좌는 25일 한국 유리화 역사를 주제로 한 강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강좌 강의를 맡은 유리화조형작가 손승희(소벽 막달레나, 43) 남서울대 겸임교수는 "유리화가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적으로 접목되는지 살펴보면서 호기심을 풀어주는 기회가 된 것 같다"며 "그렇지만 아직 대중화돼 있지 않아 성당이 아니면 일반인이 유리화를 많이 접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11.22
![[특집/베트남 소수부족 선교현장⑤]교육 통해 내일 여는 부온마투옷교구](//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214_1.0_titleImage_1.jpg)
[특집/베트남 소수부족 선교현장⑤]교육 통해 내일 여는 부온마투옷교구"오늘의 교육이 내일의 교회며 사회"... 교육에 온힘.. 소수부족 대부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에 의존... 마을별 지도자 양성과 집짓기 등 자선활동에도 힘써... 학교 다니는 산속마을 청소년 위해 무료기숙사도 운영 베트남 소수부족들도 커피농사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까진 에데족 일부에 한정돼 있다. 상당수 소수부족들은 여전히 약탈적 '화전'농법에 의존한다. 당장 생계를 위해선 화전밖에 없어서다. 화전을 통해 소수부족들이 재배하는 주작목은 캐쉬넛으로 불리는 견과류다. 하지만 수익률은 낮다. 그래서 캐쉬넛에 비해 수익률이 5배 가량 높은 고무나무를 재배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17개 기업으로 구성된 베트남고무기업협회도 태국에 비해 열세에 놓인 고무나무 재배면적을 늘려가고 있다. 문제는 1만 5000동(816원)~2만 동(1088원)에 이르는 묘목값과 3년 내지 5년이나 걸리는 긴 재배기간이다. 그 기간 생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 다시 화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베트남가톨릭교회의 성모 신심을 상징하는 '라방 성모상'. 베트남 중부 꽝찌성 성모발현지인 라방 성모성지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으로, 해마다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되면 라방성모성지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모여든다. #산속으로 떠나는 소수부족들 부온마투옷교구 관할 빈푹성 부당 예수성심 본당은 지역 내 소수부족 신자 수만 6000여 명인 큰 공동체다. 낀족을 포함하면 1만 명을 넘긴다. 공소 공동체 40곳을 주임신부와 보좌신부 2명이 수도자들과 함께 힘겹게 '지킨다'. 화전농법에 의존해온 부당 주민들은 최근 들어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외지인들, 주로 낀족에 캐쉬넛 농사를 짓던 땅을 팔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무런 '대안' 없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산속으로 들어가는 형제들, 교육 기회를 잃은 채 부모들을 따라가는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공동체엔 한숨만 깊어간다. 부당본당엔 소수부족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도 있지만 수용 가능한 인원이 10명밖에 되지 않아 아이들이 무기한 대기 중이다. 아이들 1인당 하루 세 끼 비용 1만 5000동(816원) 부담도 본당 입장에선 만만찮다. 그렇지만 기숙사를 더 늘려서라도 아이들 교육에 나설 작정이다. 부당본당 주임 응웬반하오 신부는 "사제가 부족해 성사를 주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며 "본당에서는 학교에 갈 기회를 놓친 소수부족들을 위한 문해교육과 교리교육을 하는 정도"라고 털어놓는다. 그나마 공안당국에서 단속이 나오면 수도자들은 산속으로 피해야 한다. 일부 본당에선 본당 신부가 요즘도 몇 주씩 소수부족 공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아직도 종교활동 전반에 대한 통제와 제약이 큰 셈이다. 이뿐 아니다. 최근 부당본당에서 분가한 닥냐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본당도 공소 20곳에 소수부족만 3100여 명에 이른다. 성직자들은 땅을 팔지 말고 다 함께 활로를 모색해보자고 권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별 지도자 양성교육에 들어갔다. 해마다 200~25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문해(文解)교육과 함께 교리교사 양성, 본당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신자재교육에 다 걸고 있다. 닥냐우본당엔 그나마 다른 본당에 있는 기숙사도 없다. 분가한 지 이제 2년 남짓해 재정이 너무 열악해서다. 최근 신설된 에뚤 바오로 본당은 아직 성당도, 사제관도 없다. 다만 3000㎡(907.5평) 규모 부지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본당 신자 3500여 명은 대부분 에데족이어서 언제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할지 기약이 없다. 지금은 신자 집 창고를 빌려 미사를 봉헌하며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처지다. #교육에 사목역량 다 걸기 '오늘의 교육이 내일의 교회, 내일의 사회다.' 부온마투옷교구 어디를 가나 이런 사목표어가 붙어 있다. 교육을 통해 내일을 열겠다는 사목적 의지에 다름 아니다. 선교도, 사목도, 사회복지도 모두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에 교육에 혼신을 다 쏟고 있다. 부온마투웃 시내 쩐니앗 지역 '데레사 기숙사'는 소수부족을 위해 설립됐다. 소수부족 기숙사로는 가장 많은 87명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이들은 주로 세당족과 에데족, 미넝족 등 8개 부족으로, 학교에 다녀오면 방과 후 활동 및 공부를 하며 미래를 꿈꾼다. 생활비는 전액 무료. 재원은 호아빈('평화'라는 뜻)수녀회에서 모두 부담하고, 일부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세당족인 사피아(스테파노, 16)군은 "기숙사에 온 지는 3년 정도 됐는데 예상보다 힘들지 않고 아주 행복하다"며 "대학에 들어가면 초등교육을 전공한 뒤 우리 부족에게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의욕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에 열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소수부족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대한 열의를 이끌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직은 고교 졸업 뒤에도 불과 한두 명만이 전문대에 들어가는 정도여서 수녀회는 기계ㆍ자동차 정비ㆍ간호ㆍ봉제 등 직업교육을 실시해 아이들이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족에게 돌아가더라도 부족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교육을 하고 있다. 에데족 출신인 허검(마리아, 13)양은 "뒤늦게 학교에 들어왔는데 수학이나 베트남어 공부가 특히 재밌다"면서 "가능하다면 앞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교리교육도 하는 수녀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데레사 기숙사 원장 응웬티투언(마리아) 수녀는 "소수부족들이 몰려사는 마을엔 학교가 거의 없어 아이들이 도시에 나와 공부를 하려면 기숙사가 꼭 필요하다"며 "공부도 공부지만 교리교육을 실시해 자신의 부족들에게 돌아가 교리교사 역할도 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부온마투옷교구 또한 소수부족 담당 부서를 두고 사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꼰뚬교구에서 분리된 지 8년 만인 1975년 신설된 소수부족 사목 담당 부서는 교구 관할지역인 다클락, 빈푹, 닥농 등 3개 성별로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들을 각 본당에 보내 교리교사를 양성하고, 교리교사들이 다시 교리교육에 나서는 방식이다. 꼰뚬교구에서 시행 중인 평신도 지도자 '자오푸'들도 있지만, 부온마투옷교구에선 선교사 양성에 더 비중을 둔다. 이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위원회'를 신설, 선교와 재복음화, 자선활동, 베트남어 교육, 지도자 양성, 피정ㆍ교육을 도맡고 있다. 특히 자선활동은 집짓기 사업과 오염되지 않은 식수 공급, 난방시설 제공, 이불ㆍ의류 나눔, 장학금 지급 사업 등 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이 가운데 1채당 미화 2000달러(227만 1000원 상당) 가량 드는 집짓기 사업에 가장 공이 많이 드는데 지난 3년간 20채를 지었다. 송아지 한 마리를 분양하고 이를 키워 어미소로 되갚는 삶의 질 개선사업에도 15가구가 참여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뿐 아니라 소수부족어 성경 및 교리서 번역사업도 꾸준히 추진되고 있으며, 미사전례서 번역, 3박 4일 코스 지도자ㆍ선교사ㆍ교리교사 양성 사업과 복음 나눔 피정도 연간 여덟 차례 이뤄지고 있다. 홀몸어르신 지원사업은 미화 500달러(1000만 동, 56만7750원)의 재원을 조성, 매달 이자 수입(12만 동, 6528원)으로만 각 가정에 쌀 10㎏과 젓갈ㆍ부식 등을 한 달에 한 차례씩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고, 홀몸어르신들이 더 늘어나면 양로원도 지을 계획이다. 소수부족 담당 부서 책임자인 응웬민하오 신부는 "다수부족인 낀족 신자를 훈련시켜 소수부족 지도자를 양성하도록 파견하고, 소수부족 지도자들이 다시 자신의 부족을 돌보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와중에서 복음도 전하고 소수부족들의 삶의 질도 향상시키는 게 우리 교구의 목표"라며, 베트남 교회 소수부족 사목과 선교에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끝> 부온마투옷(베트남)=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후원계좌우리은행 1005-501-638288 예금주 : (재)기쁨나눔 오세택2012.07.10
![[사제의 해-성경의 땅을 가다] (2)](//cpbc.co.kr/CMS/newspaper/2010/04/rc/333651_1.2_titleImage_1.jpg)
[사제의 해-성경의 땅을 가다] (2)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3월 9일 오후 1시 15분 인천공항, 뮌헨으로 향하는 루프트한자 항공기가 굉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창밖 활주로에는 각국 비행기들이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잠시 후 약속이라도 한 듯 편두통이 찾아왔다. 비행기를 타면 늘 찾아오는 현상이다. 진통제는 없어도 괜찮다. 이륙 후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면 자연히 사라지니까. 찌릿한 통증도 살아 숨쉬고 있는 징표라 생각하면 마냥 나쁘지 만은 않다. 이른 아침 서둘러 짐을 챙겨나와 출국수속을 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이제야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이니 편두통이 지나간 후의 평온을 잠자코 기다릴 뿐이다. 지난해 말, 사제의 해를 기념해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과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공동으로 그리스, 터키, 이집트, 이스라엘을 찾아가는 쿠르즈 성지순례를 기획했다. 150여 명이 성지순례 참가 신청을 했고 마감 후에도 몇십 명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믿음조 민병덕 신부님(서울대교구 사목국장), 희망조 허영민 신부님(의정부교구), 평화조 조정래 신부님(군종교구 삼위일체본당), 그리고 사랑조는 내가 담당사제로 함께했다. 어제 오전 믿음ㆍ희망조 68명이 먼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그리스로 떠났고 오늘은 사랑ㆍ평화조 81명이 순례길에 오르는 것이다. 나는 아침 9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모임장소인 J카운터 주위로 순례객들이 모여들었다. 열흘 전 발대미사 때 만나 인사를 나눈 사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다들 서먹한 분위기다. 그러나 순례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자연스레 친숙해질 것이다. 순례객 가운데는 낯설고 먼 길을 떠나는 이의 셀렘과 더불어 약간의 긴장감도 감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출발기도를 했다. 나는 기도를 이끌기 위해 의자 위로 올라갔고 순례객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방금 전까지 어수선하던 공항에 성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중략) 이 순례가 아브라함을 광야로 불러내시어 당신의 길을 따라 길을 걷게 하였듯이 저희를 불러주신 분이 주님이심을 깨닫고 당신을 만날 희망으로 이 시간을 앞당겨 살게 하소서." 우리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이 순례에 함께 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대규모 인원이 함께 움직이는 성지순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안전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긴박한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기도하고 모든 것을 맡겨 드릴 수밖에 없다. 기도를 마치고 출국장으로 향하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신부님! 만나게 돼 기쁘고, 성지순례를 함께 가게 돼서 정말 행복합니다." 첫 만남의 인사치례로 들릴 수도 있지만 상쾌한 이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진다. 말은 참 신비롭고 때로는 큰 힘을 발휘한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지 않은가.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에페 4,29).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다시 새겨본다. 어느새 우리가 탄 비행기는 저녁노을을 내려 보며 날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한 처음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손수 인간을 지으신 후 "참 좋다"고 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향한 찬미와 찬양이 넘치는 풍경이다. 누구나 높이 올라가 아래를 보면 세상과 사람의 존재가 미소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유명한 음악가가 고향인 그리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유럽 대륙을 내려다 본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지도에는 분명히 국경선이 굵게 그려져 있는데 하늘에서는 그저 아름다운 산과 들만 보이지요." 인간이 구분해 놓은 구분과 구별의 선은 고립과 고독을 만들어낸다. 사람과 사람을 막아놓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언제쯤 올까. 독일 뮌헨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우리 일행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아! 차가운 밤공기와 낯선 풍광에 비로소 지구 반대편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한국 시각으로 낮 1시경 인천공항을 떠나왔으니 17시간 만에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부터 순례 시작이다.cpbc2010.04.21
![[아! 어쩌나?] (142) Q. 왜 배가 아플까요?](//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7483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42) Q. 왜 배가 아플까요?Q. 왜 배가 아플까요? 봉사하는 단체에 새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새 회원이 들어오지 않아 분위기가 답답했는데, 새로 사람이 들어오고 나니 다들 기분전환이 된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원 전체가 새 회원 집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모습이더군요. 집도 좋고 남편도 점잖은데다, 아이들도 공부를 잘해 보통 엄마들이 바라는 그런 가정을 가진 자매였습니다. 그 자매는 자기 집 자랑을 한 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자매를 다른 회원들이 칭찬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그 자매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제 배가 아픕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그 자매 결점을 끄집어내는 등 자꾸 험담하게 됩니다. 그동안 저 자신이 기도생활 안에서 늘 마음의 평안함을 갖고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다른 자매들이 저를 질투해도 개의치 않고 살아왔는데 새로 들어온 자매가 이런 제 마음을 흔들고 있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그 자매가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흔들리는 저 자신이 실망스럽습니다. 저보다 새 회원을 더 신경 쓰는 듯한 기존 회원들마저 왠지 야속하단 마음도 듭니다. 이런 제 마음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A.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배는 우리가 먹은 것들을 소화할 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일이 잘 풀리면 뭐라고 하나요? '속 시원하다'고 표현합니다. 배가 단순한 소화기능 이상을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세상사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위장이 긴장합니다. 그래서 배가 아프거나 심한 경우 위경련이 일어나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배가 아픕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심한 질투를 느낄 때 배가 아픈 것입니다. 질투는 구약성경에서도 언급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감정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카인과 아벨 이야기지만, 모든 민족사 안에서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흔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의 질투는 어디서부터 시작이 됐는가?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가족 안에서 출생서열에 따라 부모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질투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성장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도와 유사한 공동체가 형성되면 마음 안에서 다시 그 감정이 올라와 어린 시절의 질투를 반복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본당에서 본당신부는 신자들의 정신적 아버지이고 본당수녀들은 정신적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되는데, 신자들 역시 본당 안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의존적이 됩니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끼리 주님 앞에서 자신의 영성 성장을 위한 묵상 시간을 갖기보다는 본당신부나 수도자들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사목자가 특정한 단체나 개인에게 잘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한 무리가 돼 심하게 비판을 하는데, 이런 일련의 행위는 바로 어린 시절의 질투가 재발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일반 단체에서도 빈번히 나타나 회원 간 반목을 유발하곤 합니다. 자매님이 가진 감정은 바로 질투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회적 비교에서 생기는 질투'라고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얼마나 뛰어나든 상관없이 열등감에 시달리는 증상을 보입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이 자기보다 더 뛰어날 경우 심한 질투심을 느낍니다. 이것을 '살리에르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뛰어난 음악가이면서도 천재 모차르트를 만나 심한 심리적 혼란을 겪어야 했던 살리에르의 이름을 딴 증후군인데, 질투를 말하는 용어입니다. 이런 질투심은 험담을 유발합니다. 자신은 합리적으로 비판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질투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자기 감정을 부인하려 하는데, 그럴수록 질투는 더 왜곡돼 생각과 감정을 혼란 상태에 빠뜨리고 심리적 실타래가 더 심하게 꼬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신체까지 미쳐 배가 아픈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질투는 일종의 습관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질투심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을 꼬인 마음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감정인 질투를 그냥 바라보고 인정해야 질투의 감정에 덜 휘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대화를 나누면서 감정을 풀어준다면 엉뚱하게 배 아픈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 daum.net/withdoban퇴사자22012.03.06

일치기도주간-천주교와 개신교(상)같은 신앙 고백에도 방식은 서로 달라 천주교와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는 같은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러나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이면서도 천주교와 개신교는 교리와 실천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대화와 일치 노력에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일치 기도 주간'을 맞아 그 차이는 무엇이며 특히 이와 관련해서 개신교 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인지를 3회에 걸쳐 알아봅니다. **성경만으로?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에 최고 권위를 부여합니다. 성경은 글로 쓰인 하느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천주교도 마찬가지지요. 다만 가톨릭은 성경만이 아니라 성전(聖傳) 곧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도 똑같이 존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만으로!'를 외치며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한 신학자에 따르면 '성경이 어떻게 해서 성경이 됐느냐'고 되묻는 것이 좋은 답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살펴봅니다. 가톨릭에서는 구약 46권 신약 27권, 모두 73권을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등 모두 66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지요. 이렇게 66권을 성경으로 최종 선언한 것은 1647년 웨스터민스터신학자 총회에서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공동체, 곧 교회 공동체가 선언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교회를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이 글로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가 '이것은 성경이다. 이것은 아니다'하고 결정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교회는 무슨 권위로 '성경이다' '아니다'를 가려낼 수 있었을까요?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20,30)고 기록합니다. 또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21,25)고 적고 있지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이런 행적과 가르침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에 전해진 것입니다. 교회는 글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에 전해진 예수님 말씀과 행동에 비춰,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성경이다', '아니다'를 가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교회에 맡겨진 말씀을 가톨릭교회는 성전, 곧 거룩한 전통이라고 부릅니다 .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경 곧 글로 기록된 하느님 말씀과 성전 곧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에 전해지고 위탁된 말씀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계시헌장 9항)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음만으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거리에서 혹은 전철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 말은 마르틴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일으키면서 외친 '오직 믿음만으로!'란 구호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천주교회는 믿음만 있어서는 안 되고 믿음에 상응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통적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큰 차이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지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루터교의 대화가 촉진되면서 이런 대립된 생각이 상당 부분 해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지난 1999년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세계연맹은 이 부분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이뤘습니다. 그 핵심 내용을 조금 쉽게 푼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곧 구원받는다. 이 믿음은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다. 이 은총의 힘으로 이제 우리는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과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냄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이 대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믿음은 또한 바른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 2,17)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해서 가톨릭교회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명제가 있습니다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제하고 완성한다.' 이 말은 하느님 은총은 인간의 협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은총이 우리를 이끌어 우리가 하느님 은총 안에 살려면 우리 자신이 바르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가톨릭이 믿음만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