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신약외경 하권-행전, 서간, 묵시록초기사도들 관련 이야기 신약외경은 신약성경 27권에 속하지 않는 2~6세기 사이 문헌들을 일컫는다. 토마스 사도의 인도 선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순교 이야기 등 예수와 초기 사도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송혜경(비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박사는 2009년 「신약외경 상권-복음서」에 이어 행전과 서간, 묵시록편을 다룬 이번 책을 펴냄으로써 신약외경 상ㆍ하권을 마무리 지었다. 신약외경 하권은 첫째마당 행전, 둘째마당 서간, 셋째마당 묵시록, 넷째마당 본문과 주해로 구성돼 있다. 각 외경에 대한 정의와 특징과 배경, 다른 작품들과 관계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콥트어로 된 신약외경 원문을 직접 번역하고 각주를 달았다. 아울러 이해하기 어렵거나 신학적,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해제를 달아 독자들이 초대교회 삶과 역사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송혜경 역주/한님성서연구소/3만 5000원)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1.05.11
사순기획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 - 베로니카 수건하느님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 - 진품 여부 떠나 믿음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성화 사순절 한 가운데 서 있다.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의 길을 묵상할수록 참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을 상상하는 것만으론 그 고통을 실감할 수 없다. 예수의 수난은 실재했던 사건이다. 수난의 길에 남겨놓으신 예수의 자취를 통해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들은 성 십자가와 죄명패, 가시면류관, 못, 베로니카 수건 등이 현존하고 있다. 이 수난의 증거들을 모아 사순기획으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에는 '베로니카 수건'에 대해 알아본다. ▨ 그리스도의 참얼굴 '하느님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 너무 놀랍고 신비로워 감히 그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케이로포이에토스'(헬라어 αχειροποιτοζ-사람 손에 의해 그려지지 않은 그림)라 불렀던 성화. 바로 '베로니카 수건'이다. 라틴말 '베로니카'(Veronica)는 베라(vera,참된)와 이콘(icon,인상)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참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베로니카의 수건은 '참 얼굴을 담은 천'이라 직역할 수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는 것을 보고 한 여인이 마음이 아파 예수 얼굴을 닦아줬는데 그 얼굴이 그 천에 찍혔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 얼굴을 닦아준 여인이 바로 베로니카라고 하는데 여러 인물로 추정된다. 베로니카라는 여인은 예루살렘 출신 신심깊은 부인으로 예수를 보고 통곡하는 여인들 중 한 사람(루카 23,27)이라고도 하고, 예수의 옷자락 술을 만져 혈루증이 나은 여인(마태 9,20-22), 또는 라자로의 누이인 베타니아의 마르타라고도 하고, 자캐오의 부인(루카 19,1-10)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베로니카는 이후 그리스도 얼굴이 새겨진 수건으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14~37)를 치유시켰고 여러 기적을 일으켰다. 심지어 죽을 위험에 처한 이를 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임종 때 교황 클레멘스 1세(재위 90~101)에게 그 수건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베로니카 수건은 역사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94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확인됐다. 이전까지 에데사의 만둘리온에 보관돼 오다가 이 때 비잔틴 제국 황제 로마누스 1세(재위 920~944)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13세기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로마로 옮겨와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했다. 로마 순례자들에게 베로니카 수건은 '로마 7대 보물 중 하나'로 알려졌다. 1199년 제랄드 드 바리와 틸베리의 거베이스라는 두 순례자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베로니카 수건을 직접 보았다고 기록했다. 1297년 교황 인노첸시우스 3세는 베로니카 수건 앞에서 기도하면 대사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1300년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는 베로니카 수건에 감동을 받아 첫 성년(聖年)을 선포했다. 14세기 이후 교회는 행사 때마다 베로니카 수건을 내걸 만큼 대중적 신심을 불러 일으켰다. 베로니카 수건은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용병들이 로마 대약탈을 저지르면서 역사의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다가 1616년 교황 바오로 5세는 교황청 허락없이 베로니카 수건 복사품을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1629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복사품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복사품은 모두 회수해 파기토록 지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파문도 불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견해에 따라 진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은 2개가 있다. 하나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돼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수건은 대성전 돔을 받치고 있는 남서쪽 기둥 발코니에 있는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돼 있다. 가장 최근에 검사한 것은 1907년으로 예수회 역사학자인 요셉 빌퍼트가 교황청 허락을 받고 수건을 덮은 2장의 유리를 옮기고 베로니카 수건을 본 것이었다. 그는 수건이 낡아 제대로 형상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교황청은 매년 수난 주일에 베로니카 수건을 담은 상자를 전시하고 있다. 수난 주일 오후 5시 저녁 미사 시작과 함께 수건에 대한 축복이 이뤄진다. 이후 성 베드로 대성전 내에서 간략한 행진이 거행된다. 수건에 새겨진 주님 얼굴 형상은 보기가 어렵고 다만 액자 테두리만 볼 수 있다.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의 '베로니카 수건'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이 1660년부터 보관하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이다. 1999년 저명한 성미술 학자인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 교수 하인리히 파이퍼 신부가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 성당의 베로니카 수건이 진품이라고 주장해 2006년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하는 등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17세기 도나토 다 봄바 신부가 작성한 「베로니카의 수건 입수 역사」 기록에 따르면, 1508년 한 순례자가 마노펠로 마을에 나타나 마침 수도원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자코모 레오넬리라는 의사에게 주님 얼굴이 담긴 수건을 건넸다. 이 수건은 레오넬리 집안 가보로 1608년까지 전해졌으나 군인 판크라치오 페트루치가 어느 날 몰래 훔쳐 달아났다. 몇 년 후 범인은 잡혔고 레오넬리 집안은 이 수건을 도나토 안토니오 데 파브리티스라는 의사에게 팔았다. 파브리티스는 이 수건을 카푸친 수도원에 기증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파이퍼 신부는 1506년 교황청의 대대적 보수공사가 진행될 때에 분실된 베로니카 수건이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첨단 장비로 조사한 결과 천은 1세기 때 것으로 예수께서 활동하던 시기 수건이며 사람 손으로 그린 흔적이 전혀 없고 토리노 수의에 찍힌 예수의 얼굴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수도원 중앙 제대 뒤편에 현시돼 있는 마노펠로 베로니카 수건의 예수님 얼굴은 왼뺨을 맞아 오른뺨보다 부어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마 위쪽 가운데와 관자놀이 쪽에는 가시관에 찔린 상처로 흘러내린 핏자국을 볼 수 있다. 또 오른쪽 눈두덩에도 폭행으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다. 얼굴이 한쪽으로 일그러질 만큼 폭행을 당했어도 예수님 눈은 바라보는 모두를 빨아들일 만큼 깊고 맑다. 진품 여부를 떠나 현존하는 베로니카 수건은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로 하루 몇 번이고 나락에 떨어지는 우리 믿음을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귀중한 성화임이 틀림없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이길재2012.03.13

'그분의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8일 주님공현대축일, 우주 창조주 경배하는 모든 백성 대표로 '그분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위대한 탄생(The Nativity Story)' 한 장면. 주일학교 아이들의 성탄절 성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연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베들레헴 말구유 옆에는 으레 이들이 서 있다. 8일은 이들이 '그분의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것을 기념하는 주님공현대축일이다. 예전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박사들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2). #페르시아 점성술사? 동방에서 왔다는 이 박사들 정체는 무엇인가. 성경이 제공하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설(說)은 많지만 아직까지 이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준 사람은 없다. 이들은 팔레스타인과 가까운 동쪽, 그러니까 바빌론이나 페르시아(이란)에서 온 점성술사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이들을 지칭하는 '박사'는 대학 최고학위인 박사(Ph.D.)가 아니라 현자 또는 꿈의 해석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마고스'를 번역한 것이다. 기원전 수세기 전부터 여러 왕조가 발흥한 고대 페르시아에는 천체(天體) 현상을 관찰해 인간의 운명이나 미래를 점치는 특정 계급이 있었다. 마기(Magu, Magi)라 불리는 이들은 이 지역에서 번성한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사제 역할을 맡았다.(마술을 뜻하는 'Magic'은 여기서 파생됐다) 또 기원전 500년대, 예루살렘을 잃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다 풀려난 유다인들(역대기하, 에즈라기 참조)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유다인들 일부는 유배생활이 끝났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기에 정착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하며 행방을 수소문한 것으로 미뤄, 그들은 메시아 사상을 알고 있는 유다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다인들에게 별과 메시아, 그리고 메시아 환난은 그리 생소한 얘기가 아니다. 아기 예수가 헤로데 왕의 영아 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듯이, 그들의 민족 지도자 모세도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는 이집트 파라오 명령이 떨어진 뒤 강가 갈대숲 왕골상자에 몸을 숨겨야 했다. 또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여정에서 발람(Balaam)은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고 예견했다. 이 밖에 인도나 중국에서 온 현자라는 설도 있다. 최근 소설가 이병천씨가 상상력을 동원해 '하늘의 아들'이라 믿는 동이족 고조선 유민이 서쪽 하늘에 뜬 별 하나를 보고 유다 땅을 찾아가는 구만 리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 「90000리」를 펴내기도 했다. #세상 모든 백성에게 구원의 빛 드러내 흔히 동방박사가 3명이라고 하지만 복음서에 숫자는 언급돼 있지 않다. 아기 예수에게 바친 예물 종류가 3가지인 것으로 미뤄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라는 이들 이름 역시 6세기경에 붙여진 것이다. 초세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별'과 동방박사들 정체에 대해 연구했지만 역사적 사실로 정립할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따라서 복음서에 더 이상의 언급이 없는 이상 어느 것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다. 동방박사 이야기에서 아기 예수는 유다인만의 빛이 아니라 동쪽 지방, 나아가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빛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교황 레오 1세(440-461 재위)는 "세 현자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페르시아 병사들이 예수탄생기념성당을 파괴하지 않은 이유 서기 614년, 제국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던 페르시아 군대가 예루살렘까지 진격했다.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교회를 파괴했다. 전승에 따르면, 샤흐르바라즈 장군도 병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8㎞ 떨어진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당에 도착했다. 병사들이 성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각종 성상과 부조물들을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샤흐르바라즈 장군이 소리쳤다. "모두 멈춰라!" 페르시아 전통 복장을 한 점성술사(동방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모습의 모자이크가 성당 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점성술사들은 신통한 영적 능력이 있는 그들 조상이었다. 장군과 병사들은 그 모자이크 앞에서 절을 하고 그대로 물러갔다. 요즘도 순례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성당은 성녀 헬레나(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모친)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와서 예수님 탄생지로 알려진 동굴 위에 339년 봉헌한 성당터에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어 완공한 것이다.김원철2012.01.03
![[성경 속 상징] (82) 소금-인간과 하느님 잇는 매개물](//cpbc.co.kr/CMS/newspaper/2010/04/rc/331951_1.3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82) 소금-인간과 하느님 잇는 매개물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이스라엘 사해에 가면 수영을 못해도 걱정이 없다. 저절로 몸이 둥둥 뜬다. 염분 함유율이 바닷물의 약 5배나 되기 때문이다. 소금은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경제적ㆍ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옛날부터 교역에서 소금이 화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로마시대에는 관리ㆍ공무원ㆍ군인 급료를 소금으로 지급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영어의 샐러리(salary, 봉급)는 라틴어의 샐러리움(salarium, 소금 지급)에서 유래한다. 소금은 깨끗하게 하는 힘, 거룩한 힘을 갖는다. 더러움을 씻는 소금은 마귀를 내쫓는 일이나 질병 치료에도 사용됐다. 성경에도 소금에 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소금이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며, 죽음과 유산(流産)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 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2열왕 2,21). 소금은 인간과 하느님을 잇는 상징적 매개물이다. 하느님에게 희생 제물을 바칠 때 희생되는 수소와 숫양에 제사장이 소금을 뿌리도록 지시하고 있다. "네가 그것들을 주님 앞에 바치면, 사제들은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주님에게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에제 43,24). 소금은 또한 사람과 하느님, 사람과 사람의 굳은 유대감을 상징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느님과 사람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거룩한 인연을 '소금의 계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금은 하느님과 언약에서 변하지 않는 신의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민수 18,19). 로마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 입술에 소금을 뿌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어린 생명을 여러 가지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소금이 생명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세의 율법은 모든 희생제물에 소금을 사용하라고 명령한다(레위 2,13). 소금이 하느님 분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온 땅이 유황과 소금으로 불타 버려 씨를 뿌리지도 못하고 뿌린 씨가 나오지도 못하는구나. 이곳은 어떤 풀도 돋아나지 않아, 마치 주님께서 당신의 분노와 진노로 멸망시키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츠보임의 처지와 같구나"(신명 29,22). 신약의 산상설교에서는 소금의 보존력이 비유로 사용됐다. 예수님은 세상 악행과 제자들 사명을 대조시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사도 바오로는 부패를 막는 소금의 힘을 염두에 두고 신앙의 충실성을 강조한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콜로 4.6). 이와 같이 소금의 힘은 어떤 경우에는 선하고 신성한 힘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고 사악한 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cpbc2010.04.06
[공동체]서울 목5동본당,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상 축복식 가져 이영춘 주임신부와 작가 강희덕 고려대 교수, 사목회 임원진이 김대건 성인상을 제막하고 있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5일)을 맞아 서울 목5동성당에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상이 설치됐다. 목5동본당은 10일 교중미사 후 성당 정문 왼쪽 경내에서 이영춘 주임신부 주례로 김대건 성인상 축복식을 갖고, 김대건 성인을 통해 전구를 청하는, 특히 사제들을 위해 전구를 청하는 기도 공간이 되기를 기원했다. 지난 2,3월 구상을 거쳐 3개월간에 걸쳐 제작된 김대건 성인상은 폭 150㎝에 두께 100㎝, 높이 320㎝ 크기에 무게도 5t에 이르는 대작으로, 경기도 포천에서 가공한 화강암을 가져와 한쪽 면에 김대건 성인 모습을 새겨넣었다. 부조이긴 하지만 거의 환조에 가까울 정도로 입체감을 준다.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210cm 큰 키의 김대건 성인이 왼손에 성경을 끼고 오른손에 빨마가지(종려나무)를 든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김 신부의 선구적 사목 활동과 조선 복음화에 대한 열정, 의지를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성인상 제작은 한국가톨릭미술가회장 강희덕(가롤로, 63) 고려대 미술학부 교수가 맡았다. 이영춘 주임신부는 축복식에서 "새로 제작된 김대건 성인상은 특별히 교우들의 각별한 기도와 봉헌으로 모셔졌기에 더욱 값지다"며 "새로 봉헌된 김대건 성인상이 성인께 전구를 청하는 열심한 기도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축복식에는 김태기(아론) 총회장과 한승호(발렌티노) 수석부회장, 최선국(토마스) 부회장 등 사목회 임원진과 봉헌자 200여 명이 함께했다. 종전 같은 자리에 봉안돼 있던 작은 김대건 성인상은 신설 본당인 목4동성당에 모셔졌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07.12
 뿌리-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과 연관도](//cpbc.co.kr/CMS/newspaper/2009/10/rc/312609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62) 뿌리-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과 연관도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성경시대는 농업사회였다. 그래서 그들 삶은 식물을 재배하는 능력에 의존했다. 식물 성장은 견고한 뿌리조직에 달려 있다. 뿌리의 1차 기능은 식물체를 고정하고 물과 물속에 녹아 있는 무기염류를 흡수하며 양분을 저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안정과 성장의 한 상징으로 깊게 뿌리 내린 식물 이미지를 사용한다. 또한 반대로 심판과 파괴를 위한 상징으로 말라버리고 뿌리가 뽑힌 식물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을 종종 물가에 심은 뿌리 깊은 나무에 비유한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7-8).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무더운 날씨나 가뭄 중에도 잎사귀가 푸르게 남아 있으며,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의인들 믿음은 역경 속에서도 그들을 지탱시켜주며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신다. 구약성경은 때때로 이스라엘과 연관지어 뿌리 이미지를 사용한다. "당신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하나를 뽑아 오시어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당신께서 자리를 마련하시니 뿌리를 내려 땅을 채웠습니다"(시편 80,9-10).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약속을 어겼을 때 하느님 심판이 그 민족의 생명력과 우월함을 빼앗아 그의 백성을 뿌리채 뽑아버리셨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셔서, 갈대가 물속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만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이스라엘을 뽑아, 그들을 유프라테스 강 저쪽으로 흩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들이 아세라 목상들을 만들어 주님의 분노를 돋우었기 때문입니다"(1열왕 14,15).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하느님은 모진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며 기회를 다시 주신다.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다시 영광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호세 14,6). 이처럼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묘사하기 위해서 시들어 버렸거나 뿌리가 뽑혀 버린 식물 이미지를 자주 사용했다(호세 9,16). 예수님도 심판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뿌리가 뽑힌 식물 상징을 사용하셨다(루카 3,9).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써 그 뿌리가 말라버리게 하셨다(마르 11,20-25). 이 나무는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 세대를 대표했다. 그 뿌리가 말라버린 것은 이 세대가 곧 경험하게 될 심판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식물 뿌리가 바로 그 식물의 생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성경은 때때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근원을 묘사하기 위해 이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사야에 따르면 종말의 가장 이상적인 왕은 이새의 '뿌리'로부터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그가 다윗 혈통으로부터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이사 11,10).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을 뿌리에 묘사했다(로마 11,16). 그는 또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종류의 악의 뿌리라고 경고했다(1티모 6,10). 조은일2009.10.13
 죄와 벌](//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956_1.2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8) 죄와 벌일곱 번 죄도 여덟 번 용서하시니우리는 성경에서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의 죄와 그런 인간을 변함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사랑을 만난다. 이는 우리 삶의 역사에서도 재현된다. 창세기 태고사를 중심으로 인간의 죄와 하느님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의 죄 창세기 3장에 최초의 사람과 그 아내가 저지른 첫 번째 범죄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과 그 아내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어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는다. 하느님께서 선악과만은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은 인간이 무엇이든 자유의지대로 다 할 수 있어도 하느님 명령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4장에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두 번째 범죄 이야기가 나온다. 형 카인은 하느님께서 양치기인 아벨의 제물을 더 굽어보시자 아벨을 시기하여 살해한다. 그래서 카인은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삶을 벌로 받는다. 하느님은 카인에게 다른 이들의 살해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받을 표를 찍어 주신다. 이 표는 엄청난 죄를 지은 카인을 여전히 돌보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자비, 용서의 표이다. 창세기 11장은 사람들이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았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자세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류 공동체 전체의 죄상(罪狀)을 말한다. 하느님은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고, 홍수로 타락한 인류를 쓸어버리셨다. 또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으셨다. 하지만 죄와 벌을 이야기하는 성경 말씀은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통해 이뤄지는 구원과 함께 전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창세기 태고사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성찰하기 위해 최초의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지은 죄를 설화양식을 빌어 기록했다. 둘째, 인간의 죄를 죄 자체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 구원과의 상관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셋째, 태고사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면 마치 인간 죄의 원인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실상 인간 죄의 원인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 부여받았으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죄에 대한 가르침 죄는 하느님과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인간 공동체를 거스르는 삼중적 차원을 갖는다. 죄는 우선 원죄와 본죄로 구분한다. 원죄는 최초의 사람과 그 아내가 지은 죄가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쳐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 죄라고 이해된다. 반면, 본죄는 자기 자신이 동의해 저지른 죄이다. 아울러 대죄는 인간이 완전한 인식과 자유의지의 동의로 하느님 뜻과 반대되는 중대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소죄는 일반적으로 하느님 법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이나 불완전한 동의로 불순종한 것이다. 이웃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하느님을 배반한 대죄를 범한 사람은 고해성사 때 자세히 고백해야 한다. 대죄를 용서받으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하지만 소죄는 하느님 은총을 잃지 않을 정도의 죄, 즉 용서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이므로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나 영성체로도 용서받을 수 있다. ▶인간의 회개와 하느님 은총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죽을죄를 범한 경우라도 '회개'한다면 다시금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회개란 하느님과 그분 뜻에서 벗어나 살던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행위다. 인간 영육의 차원, 내외적 차원 모두를 포함하는 전인격적이고 전존재적 행위다. 그런데 인간이 회개하려면 먼저 하느님 은총이 필요하기에 용서를 청할 때 회개의 은총도 함께 청해야 한다. 회개는 하느님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느님 은총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 그분 은총에 마음이 열려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인간은 죄를 지었더라도 다시금 회개하는 삶을 통해 참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조은일201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