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 강론, 건전한 논란(?)을 기대하며 (상)](//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0898_1.0_titleImage_1.jpg)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강론, 건전한 논란(?)을 기대하며 (상)하느님과 백성의 거룩한 소통의 장 일선 사목 현장에 있는 사제들에게 사목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어렵습니까?"하고 물으면 사제 대부분이 "강론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강론에 대해 교우들이 보이는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사제의 강론에 실망하는 교우도 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이유부터 "강론 시간에 강론은 하지 않고 정치적인 발언을 해서 싫다"는 대답까지 다양하다. 강론을 듣기 싫어서 다른 본당을 찾는다거나 성당에 가지 않는다는 교우, 강론하는 도중에 격렬하게 항의하거나 강론 시간에 주보를 정독하는 교우도 있다. 심지어 묵주기도를 바치는 교우도 있다. 그렇다면 강론이 왜 서로에게 힘들며 같은 강론에 대한 교우들 반응도 천차만별일까? 이는 '강론'이 갖는 성격 때문이다.#강론은 말씀 선포의 연장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사제 강론이 '말씀 선포의 연장'(1154항)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은 '전례주년의 흐름을 통하여 거룩한 기록에 따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52항)하는 것으로 성격을 밝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을 살펴보면 강론과 관련된 소임을 가장 먼저 다룸으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현대 세계의 상황에서 강론으로 겪는 어려움의 배경을 찾기도 한다. 교령은 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제들은 주님께 받은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생략).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수하고 교리를 설명하거나, 당대의 문제들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을 끊임없이 회개와 성덕으로 부르는 것이 사제들의 소임이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상황에서 사제들의 설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적절하게 움직이려면 하느님 말씀을 일반적이거나 추상적으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영원한 진리를 구체적 생활환경에 적응시켜 설명해야 한다. #강론은 말씀의 선포인가, 주장을 펼치는 장인가? 이런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강론'과 관련한 논란(?)을 몇 가지로 정리해 성찰하자. 사제의 강론은 '말씀 선포의 연장'이다. 미사는 사적 신심 행위가 아니다.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공적이고 거룩한 제사이다. 이 공적 제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해 뜨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할 뿐이다. 사제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교회 이름으로 이 제사를 거행하며 하느님 백성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함으로써 세상과 이웃, 하느님과의 일치에 참여한다. 이 미사 가운데 '말씀 전례'가 있는데 이 때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기록' 곧 성경(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냥 독서가 아니라 선포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온 회중이 한 자리에서 듣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제도 교우도 그런대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강론을 '말씀 선포의 연장'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사제의 발언' 정도로 볼 것인지에 따라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말씀 선포의 연장'이라고 믿는다면 사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중한 소임을 수행하는 만큼 마땅히 열성을 다해 준비하고 기도해야 한다.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그 소임 앞에서 두려워했던 그 두려움으로. 동시에 교우들도 강론이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그 강론에 마음과 귀를 열고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물론 거짓 예언자도 있었고 예언자의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은 지도자와 백성도 있었다. #강론, 신앙의 신비 해설 강론을 사제도 교우도 '말씀 선포의 연장'이 아니라 '사제 개인의 발언' 정도로 여긴다면 사제는 아예 강론을 하지도 말아야겠고 교우도 강론을 들을 이유가 없다. 미사의 말씀 전례가 사제 개인의 혹은 교우 개인의 사사로운 주장의 각축장이 아니라 하느님과 백성 공동체의 거룩한 소통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론의 소재 및 주제 선정 문제가 발생한다. 평소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간관을 펼치거나 혹은 그에 맞춰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을 해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제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변함없으시고, 무한하시고, 절대적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건 부유한 사람이건 똑같이 비를 내리고 햇볕을 비추듯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라는 줄거리의 강론을 했다고 하자. 이를 받아들이는 회중 사이에는 그다지 논란이 일지 않을 것이다. 있다면 아마 "너무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혹은 처지에 따라서 "위로가 되었다" 정도쯤일 것이다. 이렇게 신앙의 신비를 해설하는 데에서는 논란이 적은데 그것은 신앙의 신비를 완전하게 해설하고 온전하게 이해해서라기보다 '신앙의 신비' 그 자체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신앙의 신비를 완전하게 인간의 언어와 체험으로 해설하겠는가? 누군들 인간의 이성으로 신앙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퇴사자22012.01.03
[문화] 평화방송 TV 봄개편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 신설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인간은 왜 존재하고, 왜 미래를 희망하는가?''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나?' 서울대교구 서서울교구장대리 조규만 주교는 이처럼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하느님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잊혀지고, 과학과 인간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찾는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 ▶방송일시 : 화 오전 8시, 수(이하 재방송) 오전 9시, 금 오후 4시, 일 오후 6시 ▨행복한 신앙 영성심리상담가 홍성남(서울대교구 가좌동본당 주임, 사진) 신부가 우리 안에 담긴 심리적 문제를 신앙적으로 풀어보고, 더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방송일시 : 수 오전 10시 20분, 목(이하 재방송) 오후 2시, 토 밤 10시 30분, 일 오전 6시 20분 ▨최승정 신부의 TV 성서백주간 복잡하고 어려운 구약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서울대교구 홍은3동본당 최승정 주임신부가 해박한 역사와 문화 지식을 바탕으로 구약에 담긴 상세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구약에 담긴 하느님 뜻을 오늘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방송일시 : 화 오전 9시, 월(이하 재방송) 오후 9시, 금 오후 3시, 일 오전 8시 ▨박병규 신부의 요한묵시록 심판의 예언으로만 알려진 요한 묵시록. 그 안에 하느님이 담아주신 절절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시간이다. 요한 묵시록으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대구대교구 구암본당 박병규 주임신부와 함께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방송일시 : 월 오전 9시, 수(이하 재방송) 오후 3시, 금 오후 9시, 일 오전 9시 ▨수도원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 성독(聖讀) 성경을 온 마음으로 읽고 되새기는 '렉시오 디비나(聖讀)'는 오랜 수도(修道) 전통이 남겨준 가장 훌륭한 유산 중 하나이다. 고대 수도자들의 삶과 말씀을 체험해 온 성베네딕도회 허성준 신부가 수도 전통에 따른 성경 읽기와 묵상 방법을 통해 청취자를 하느님께 인도한다. ▶방송일시 : 월~수 오전 6시 30분, 월~수(이하 재방송) 낮 12시 30분, 목~토 오후 2시ㆍ7시 30분, 일 오전 7시 ▨가톨릭, 미디어를 말하다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미디어를 가톨릭 신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위원장 조환길 대주교)와 함께 방송ㆍ영화ㆍ출판ㆍ인터넷 등 오늘날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가톨릭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올바른 제작 방향도 모색해 본다. ▶방송일시 : 금 오전 11시, 토(이하 재방송) 오후 8시, 일 오후 2시, 화 오후 3시 ▨성숙한 신앙 교의신학 박사 정하권 몬시뇰이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신앙행위를 살펴보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성숙한 신앙인의 신앙 덕목이 무엇인지 일러주는 시간. ▶방송일시 : 목 오전 10시 20분, 토(이하 재방송) 오전 8시ㆍ오후 2시, 일 밤 10시 20분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와 신자는 세상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교황청이 발간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주고 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동호<사진> 신부가 교리서 3편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쉽게 풀어준다. ▶방송일시 : 화 오전 10시 20분, 수(이하 재방송) 오후 2시, 금 오후 10시 15분, 일 오후 5시 ▨현대인의 행복찾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한국. 공동체가 붕괴되고, 사회 전체가 경쟁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현대인은 갖가지 심리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우울증, 부부문제, 도박중독, 알코올 중독 등 현대의 다양한 심리적 질병과 이를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을 각 분야 전문가에게 들어본다. ▶방송일시 : 금 오전 8시, 일(이하 재방송) 오전 10시, 월 밤 11시, 수 오후 4시 이서연2011.05.24
![[성경속 상징]78-재- 덧없음과 무상, 슬픔과 재회](//cpbc.co.kr/CMS/newspaper/2010/02/rc/327145_1.2_titleImage_1.jpg)
[성경속 상징]78-재- 덧없음과 무상, 슬픔과 재회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사순시기가 시작되는 것과 함께 거행되는 참회 전례는 많은 상징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재의 수요일에는 재에 성수를 뿌린 다음 그 재를 신자들 머리에 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된 밥에 재 뿌린다'는 속담처럼 재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 재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던 교회의 공적 참회 제도가 10세기 말께 없어졌지만 재를 뿌리는 의식은 그대로 보존됐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1년 이 관습을 모든 교회에서 보존하기를 권고했다. 이 예식에서 성직자들이나 남자들에게는 머리 위에 재를 얹었고, 여자들에게는 재로 이마에 십자표를 그었다. 재는 덧없음과 무상, 슬픔과 참회의 상징이므로 사순절 회개의 전례에 안성맞춤이다. 재를 뿌리는 일은 구약성경이나 고대 이방인 문화권에서는 낯익은 의식으로, 슬픔과 속죄를 표현한다. 재를 축성하는 기도문은 12세기에, 그 전 해의 성지를 태워 재를 만들라는 지침으로 명문화된다. 재를 머리에 얹을 때 사제는 전통적으로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참조 창세 3,19) 혹은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등을 외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회개를 할 때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머리에 쓰고 베옷을 입는 관습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옷을 찢고 크게 통곡하며, 머리에 재를 뿌리고 나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리고 나팔 소리를 신호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었다"(1마카 4,39-40). 머리에 재를 쓴 사람은 슬픔에 빠진 비천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구약에서 예언자들은 선포한 회개의 메시지를 특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는 행동을 했다. 또한 예수께서도 갈릴래아 호수 주변 도시인 코라진과 베싸이다를 향해 그들의 뉘우치지 않는 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질책하실 때 참회의 표시인 이 상징을 인용하신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이처럼 재는 정화를 의미한다. 실제로 재는 태울 것을 다 태우기에 무균의 상태를 뜻한다. 아울러 재는 먼지와 같이 미소한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창세 18,27). 재는 탈 수 있는 것은 다 태워서 제거하기에 순수와 정결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황소의 나머지는 모두 진영 밖 깨끗한 곳에 있는, 재를 쌓아 두는 정결한 곳으로 내다가 장작불 위에 올려놓고 태운다. 그것은 재를 쌓아 두는 곳에서 태워야 한다"(레위 4,12). 성경에서 재는 인간의 죽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몸, 뒷날 우리는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될 것이다. 우리의 콧숨은 연기일 뿐이며 생각은 심장이 뛰면서 생기는 불꽃일 따름이다. 불꽃이 꺼지면 몸은 재로 돌아가고 영은 가벼운 공기처럼 흩어져 버린다"(지혜 2,2-3). 재는 불로 태운 것이다. 따라서 재를 받고 살아가는 사순시기는 불로 자신을 태우듯이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리고 살아야 하는 기간이다. 재는 자연으로 돌아가 훌륭한 거름이 되고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성장을 돕는다. 따라서 사순시기는 부활이라는 새 생명을 희망하는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다. 조은일2010.02.23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0)영화관을 기도와 묵상의 공간으로 만드는 영화- 클라우스 해로 감독의 '야곱 신부의 편지'](//cpbc.co.kr/CMS/newspaper/2012/06/rc/416820_1.0_titleImage_1.jpg)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 여행] (10)영화관을 기도와 묵상의 공간으로 만드는 영화- 클라우스 해로 감독의 '야곱 신부의 편지'편지 한 통이 전하는 감동과 영혼의 울림야곱 신부에게 온 편지를 읽어주는 레일라.1. 고대 그리스인들은 극장에 모여 연극을 정기적으로 공연하면서 그들이 겪는 삶의 불가사의한 사건들과 경험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그것들이 자신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삶이 주는 다양한 측면을 드라마에 담아 이렇게 저렇게 구성해보고 다시 해체시킨 다음 또 다시 재구성하는 순환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사색하고 탐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사색과 탐구의 전통은 영화를 오락이라기보다는 진지한 예술로 생각하는 감독들에 의해 영화를 통해서도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스크린에 드라마로 재현한 삶의 현실에 관객들은 자신들의 삶을 '반영'해보고 동시에 '반성'함으로써 일종의 마음 변화와 내일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스크린에 비친 현실을 통해 그 어떤 깨달음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일종의 심적 변화 체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해 말과 금년 상반기에 우리 신앙인들에게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크린에 비춰보고 '팔 괴고 곰곰이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영화 3편이 동시에 개봉돼 반갑기 그지없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 '신과 인간(Des Hommes Et Des Dieux, 2010)', '야곱 신부의 편지 (Postia Pappi Jaakobille, 2009)'다. 이 영화들은 우리 신앙인의 신념과 신앙에 대해 묵상하게 하고, 영화관을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 때 어떤 '심적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들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영화관이 기도와 묵상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 중 이번에는 '야곱 신부의 편지'에 주목해 보자. 2. 12년 전 종신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레일라 스텐이라는 여성, 감옥에 온 이후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던 그에게 어느 날 사면이 내려지고 당장 교도소를 떠날 처지가 된다. 그러나 교도소에 온 이후로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사니까 그렇게 살다가 죽으리라고 생각했던 레일라에게 갑작스레 주어진 사면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유일한 혈육인 언니에게 가야 할 처지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레일라는 편지를 읽어줄 조수로 그를 요청한다는 야곱 신부를 마지못해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눈이 먼 상태로 낡은 사제관에서 사는 노사제 야곱 신부를 만나는데, 12년 동안 감옥에서 세상과 단절하며 마음이 돌처럼 굳어 있던 터라 그에게 야곱 신부는 탐탁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심스러운 대상일 뿐이다. 더구나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편지로 보낸 기도 부탁의 내용을 읽어서 야곱 신부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에 따라 답장을 해주는 일인데 그 일에 대해서도 그는 냉소적이다. 손자가 군에서 제대를 하는데 직장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하며 손자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는 할머니의 편지에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며 답장을 적게 하는 야곱 신부가 '지나치다'고 느껴진다. 사소한 편지에 집중하며 마치 대단한 소명이나 받은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야곱 신부 모습이 그에겐 부질없게 느껴질 뿐이다. 더구나 그간 온 편지들을 소중하게 묶어서 침대 밑에 보관하고, 편지 하나하나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며 '하느님의 아들 딸 중 누구도 쓸모없거나 잊히지 않았음을 사람들이 알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며 '편지를 가슴으로 읽는다'는 야곱 신부의 말에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지금까지 자신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냉소적 시선을 보낼 뿐이다. 그래서 그는 한 묶음의 편지를 다 읽는 것이 귀찮아서 일부를 우물에 던져버리기도 하지만 편지 내용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야곱 신부를 보면서, 또한 아무런 욕심 없이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면서까지 그들을 돕는 야곱 신부의 마음에 차츰 공감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편지가 오지 않는다. 편지가 여러 날 동안 오지 않자 지금까지 평온함으로 편지를 통해 부탁하는 기도에 충실하며 행복해 했던 야곱 신부가 자제력을 잃기 시작해 급기야는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참 걸어가야 되는 성당에 가서 있지도 않은 혼인예식을 준비하다가, 세례식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마침내 제정신이 들어 "누가 늙고 앞을 못 보는 그런 신부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아무도 없겠죠" 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절망의 깊은 나락까지 빠졌던 야곱 신부는 성당에서 성찬식을 거행하고 난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와 평온을 되찾는다. 그 새로운 깨달음에 대해 그는 레일라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난 이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반대였나 봐요.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나 봅니다. 나를 지탱하게 하려는 주님의 방법이었죠. 나를 집으로 이끄는 방법이요." 무엇인가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희생이든 기도든 그것은 먼저 누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길을 잃지 않고 당신의 집으로 이끌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다는 야곱 신부의 고백에 레일라의 표정이 변한다. 결국 레일라도 편지를 기다렸던 야곱 신부를 위해 편지형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어린 시절 학대받은 이야기, 그것을 유일하게 막아줬던 언니의 이야기, 그런 언니를 괴롭히던 형부를 살해했지만 결국 언니를 불행하게 한 자신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처럼 읽어갈 때에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슬픔이 눈물이 돼 흘러내린다. 레일라의 편지 형식의 고백을 들은 야곱 신부는 바로 그것이 레일라의 이야기이자, 이미 오래 전부터 레일라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던 레일라의 언니, 리사 스텐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그간 리사가 보내온 편지 뭉치를 건네준다. 그제야 레일라는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없었던 자신을 이미 언니는 용서하고 있었고, 레일라 자신이 이렇게 야곱 신부에게로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언니의 집으로 가게끔 인도하려는 하느님 섭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을 알린 야곱 신부는 마치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듯 삶을 마감하고, 레일라는 언니의 편지 뭉치를 들고 가야 할 분명한 곳, 언니 집을 향한다. 3.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에는 연극적 요소와 영화적 요소가 혼재해 있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장소가 몇몇 장소로 제한돼 있다. 그 장소마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이다. 예컨대 감독이 언급한 대로 아름답지만 낡은 성당은 야곱 신부의 모습을 상징한다. 등장인물도 제한적이다. 배우 3명이 주로 나오고, 나머지 배우들은 지극히 절제돼 있다. 영화적 측면에서 보면 인물의 얼굴과 사물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인물의 심리변화와 사물이 주는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영화적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감독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 속에 담겨진 정신적 의미다. 관객은 야곱 신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레일라의 얼굴 표정을, 레일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야곱 신부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들 얼굴 표정에서 드러나는 심정이 무엇인지 살피게 된다. 그리고 장면과 장면 사이 사제관에서 소리를 내며 끓는 주전자는 클로즈업돼 따스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며 차를 준비하는 야곱 신부의 모습과 나아가 우리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또 '어디로 갈거냐?'며 레일라에게 묻는 교도관의 질문과 택시운전기사의 질문, 그 질문을 받는 레일라의 표정을 한참 동안 비추는 카메라는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있을 곳이 없는 레일라의 처지, 나아가 방향을 잃은 인생을 공감하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밝은 햇살이 그를 비추고, 가방과 언니의 편지 묶음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과 표정은 이제 가야 할 장소를 알고 있고 인생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모습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직접 보고 그 '상징적 의미를 느끼고 체험하는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빠른 템포의 극적 스토리나 감각적 영상을 보여주기보다는 다소 느리다 여겨질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지만 그 느림의 경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예술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과 영혼의 울림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 사이사이를 채우는 배경 음악은 영화의 화면과 어울려서 마음을 깊이 적신다. 마치 전례에 참석한 것처럼, 피정에 참여해서 깊은 묵상에 잠긴 후에 감동에 젖어 햇살을 바라보는 느낌(?)을 이 영화는 주고 있다. 4.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는 감옥보다도 더 어두운 '자신이라는 감옥' 이외에는 그 어느 곳도 있을 수 없었던 한 여인이 자신의 여정에서 만난 야곱 신부를 통해 자신은 오래 전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과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시는 하느님'(마태 19, 26 참조)께서 자신을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야곱 신부도 가장 연약하고 어려웠을 때 레일라를 만나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이자, 하느님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하느님께 복귀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담고 있다. 구구한 설명보다 직접 볼 때 비로소 제대로 마음 깊이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퇴사자22012.06.05
![[성경 속 상징]81-겉옷(외투)-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생존과 직결](//cpbc.co.kr/CMS/newspaper/2010/03/rc/330371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81-겉옷(외투)-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생존과 직결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옷은 사람의 신체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옷은 그 사람 신분이나 성별 및 민족의 특징을 나타낸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옷은 맵시를 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옷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음식, 집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특정한 옷을 입으면 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사자 가죽을 걸치면 사자와 같은 센 힘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옷은 풍습과 민족에 따라 다양하며, 그 민족이 지켜온 전통과 깊게 연관돼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행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복의 경우 주변 나라들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외투를 입고 예를 갖췄다. 엘리사가 예언자 소명을 받을 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외투를 입게 했다. 이처럼 외투를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는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소유하신다는 상징이 됐다.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1열왕 19,19). 예수님은 폭력을 포기하라는 설교에서 겉옷에 대해 언급한다.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은 생존과도 직결되는 것이었다. 팔레스티나 지역은 대체로 일교차가 무척 심하다. 밤이나 겨울이 되면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저녁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외투가 필수였다. 이불 역할을 하는 셈이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 되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기도 했다. 그런데 겉에 입는 외투는 워낙 비싸다 보니 가난한 이들은 한 벌을 가지고 가족이 돌려 입거나 담보로 잡힌 채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처럼 근동지역에서는 여러 벌 겉옷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유한 사람의 척도가 됐다. 부자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루카 16,19). 자색 겉옷은 예로부터, 그리고 로마시대에 황제와 귀족들의 특권이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세간 같은 것을 담보로 잡았는데 가장 흔한 담보물은 겉옷이었다. 담보물이 밤에 덮고 자는 겉옷이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줘야 했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 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탈출 22,25-26).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이는 모두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게 된다고 가르쳤다(갈라 3,27). 초대교회부터 세례식 때 겉에 입었던 세례복은 부활의 영광과 옛 죄인의 모습이 변화되는 것을 상징했다. 따라서 신자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부활과 구원의 영적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다.조은일2010.03.23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9. 공의회 선구자들](//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6732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9. 공의회 선구자들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구적 신학자들인 로마노 과르다니 신부(왼쪽부터). 앙리 드 뤼박 추기경, 이브 콩가르 추기경, 칼 라너 신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교회 모습과 신자 생활은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과 담을 쌓고 '구원의 방주'라고 여기는 요새 속에서 폐쇄적이고 정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구체적 삶과는 무관하게 불변하는 진리를 일방적으로 고고하게 선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와 영향을 미쳤고 21세기인 오늘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격언이 의미하듯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또한 그 공의회에 이르는 길을 놓은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 교회에 대한 이해, 세상과 교회의 관계,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은 이들 선구적 신학자들이 이룬 신학적 결실이 밑거름이 됐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공의회에 기여했지만 그들 가운데서 대표적 몇몇 신학자들의 이름이라도 알아두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탐구하는 이 자리에 적합할 것입니다. 로마노 과르디니, 앙리 드 뤼박, 이브 콩가르, 칼 라너 같은 신학자들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주로 독일에서 활동한 과르디니(1885~1968) 신부는 하느님 계시와 교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전례 쇄신 등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계시를 하느님이 '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교회를 통해 대대로 전해져 오는 하느님에 관한 객관적 진리를 계시로 이해하던 당시 사조와는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과르디니에게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인격적 만남의 증인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과르디니는 또 성찬례 거행에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이런 꿈은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서 현실화했습니다. 프랑스 출신 예수회원인 앙리 드 뤼박(1896~1991)은 그의 '새로운 신학(新神學)'으로 한때 교회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추기경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주류를 이루던 스콜라신학(혹은 네오스콜라신학)의 이성 중심의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방법에서 탈피해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신학에 적용했습니다. 이를 통한 성경 주석과 초대 교회 교부들에 대한 연구는 그의 신학적 토대가 됐습니다. 드 뤼박은 특히 자연과 초자연(은총)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스콜라 신학에서는 자연 세계와 은총 세계를 엄격히 구별했지만 그는 은총이 배제된 순수한 자연이란 없다면서 오히려 자연을 통한 초자연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원초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존재입니다. 그의 이런 관점은 무신론이나 타 종교와 대화의 길을 터놓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다른 프랑스 신학자 이브 콩가르(1904~1995)는 교회 쇄신, 교회 일치,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큰 영향을 미친 신학자입니다. 당시 지배적 관념은 불변하는 진리를 지닌 교회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콩가르 신부는 '변화에 열려 있는 역사적으로 역동적인 교회관'을 강조했습니다. 마치 인간이 성장하고 발전하듯이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도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또 그리스도교 분열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종래의 가톨릭 옹호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는 또한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신도의 신원과 역할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교계적 위계 중심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평신도 역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 곧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왕직과 예언자직에 참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교회의 눈에, 콩가르 신부의 이런 혁신적 신학사상은 위험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등 여러 차례 교회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은 그를 자유롭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위원회의 신학 고문으로 위촉하기까지 했습니다. 교회헌장, 계시헌장, 일치교령, 선교교령 등 여러 공의회 문헌 작성에 기여한 콩가르 신부는 90살 때인 1994년에 추기경에 임명됐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가톨릭 신학자로 꼽히는 독일 출신 칼 라너(1904~1984)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전문위원으로 위촉됐으나 나중에 사임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주류를 이어오던 스콜라신학은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객관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라너에게 하느님은 인간이 이성으로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보다 훨씬 크신 하느님은 거룩한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하느님을 향해, 곧 초월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이 하느님을 인간은 구체적인 이웃 사랑을 통해서 체험합니다. 라너 신부는 특히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으로 유명합니다. 이 이론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모든 이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을 알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간단히 살펴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구자들에게는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혁신적 사상으로 교회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다른 신학자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 정당성을 입증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오해와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신학적 연구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그리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랑에서 이들 선구적 신학자들은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현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고 신빙성 있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려면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를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 생활 양식 등 상황을 고려해 적합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이는 또한 쇄신과 적응, 개방과 대화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이들 신학자들은 참으로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02.28
![[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3) 빛의 성당Ⅰ: 로마네스크 교회 건축](//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4626_1.0_titleImage_1.jpg)
[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3) 빛의 성당Ⅰ: 로마네스크 교회 건축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빛 머금은 육중한 돌이 만드는 빛의 공간로마네스크 성당의 빛.나는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을 이 장면<사진1> 하나로 이해하고 있다. 너무나도 겸손한 작은 제대 뒤로 빛나는 작은 창문이 하나 나 있다. 이 창은 아주 작지만 돌은 꽤 두껍고 나팔처럼 안쪽으로 비스듬히 벌리고 있어서 작은 창을 뚫고 들어오는 빛은 강렬하다. 그리고 창을 둘러싼 비스듬한 돌마저도 밝은 빛이 돼 버렸다. 이 빛은 둥그렇게 에워싼 벽면을 타고 번진다. 그러나 그냥 번지지 않고 벽면을 끊는 구조가 가로막은 어두운 선을 넘어 차례로 번진다. 제대를 감싸는 볼트(vault, 둥근 천장)와 벽에는 빛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 눈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로 빛이 볼트와 벽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도 느껴진다.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빛이 창에 응고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 빛이 창에 응고하고 벽에 번지는 모습은 빛의 기울기와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얇거나 유리 같이 투명한 재료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빛의 공간, 이 공간에서는 돌이 빛이 된다. 오직 육중한 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이것이 로마네스크 성당의 진수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 평면을 따라 가운데 회중석을 길게 두고 그 좌우에는 아치가 있는 기둥 열을 세웠으며, 다시 그 위 높은 곳에 창을 뒀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 지붕은 목재로 만들어져서 회중석의 폭도 한정됐고, 내구성이 없었다. 그러던 것을 로마네스크 성당에서는 넓고 높은 공간을 만들려고 그 위를 돌로 만든 로마 건축의 볼트로 덮었다. 그런데 이 돌로 된 둥근 볼트는 무게가 대단했다. 알자스 성 베드로ㆍ성 바오로성당<사진2>에서 보듯이, 이를 지탱하려면 긴 볼트를 가로지르는 아치가 천장을 돌아 좌우에 줄지어 선 아치 기둥에 붙어 내려와야 했다(전동성당이 이와 비슷하다). 회중석 옆에 뚫려 있는 아치는 보통 두세 겹이다. 각기둥으로 받치는 아치가 있고, 그 밑에 약간 폭이 좁은 아치가 이를 보강하면서 반원형 기둥을 타고 내려온다. 위에 있는 아치의 단면은 넓고 아래에 있는 반원기둥의 단면은 좁아서, 그 차이를 주두(기둥머리)가 자연스럽게 줄이고 있다. 주두에는 흔히 성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조각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하고도 건물 전체가 옆으로 밀려나지 않게 성당 외벽을 두껍게 해 지탱하게 했다. 내부는 견고한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견고한 돌벽이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고, 성당의 안과 밖이 각각 다른 세계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벽이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를 다 받아야 했으므로 로마네스크 성당에는 창문을 마음대로 크게 낼 수 없어 내부 공간이 어둡고 어두운 중량감이 감돈다. 그러나 성당 안에 있으면 처음에는 어둡던 공간이 우리 눈이 천천히 열리면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돌벽과 기둥, 천장이 흐릿하게 빛을 반사하며 자기를 주장한다. 그리고 돌은 빛을 자신 안에 담는다. 거칠고 무거운 돌이 공간을 부드럽게 피막처럼 감싼다. 고딕 성당에서는 물질이 빛을 위해 있고 유리벽으로 빛나고 있다면 로마네스크 성당에서는 빛이 돌의 질감을 드러내고 형태를 드러낸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빛은 말하는 돌과 침묵하는 돌, 매끄러운 돌과 거친 돌, 재빠르게 움직이는 형태가 들어있는 돌과 내면의 깊이를 전하는 모양을 낸 돌을 모두 다 조용히 드러낸다. 돌은 빛을 위해서도 있고, 빛은 돌을 위해서도 있다. 이에 비하면 고딕 건축에서는 돌의 형상은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로마네스크 성당에는 순례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녀도 미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제대 주변에 통로를 두고 방사하는 모양으로 제실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성당 뒷면 마당에서 보면 반원형의 구조체가 빙 돌아 붙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관은 고딕과 달리 입방체, 원기둥, 원추 등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 요소들은 중심은 높고 크며, 그 주위로 작고 낮은 부분이 차례로 덧붙는다. 때문에 만드는 방식의 논리가 명쾌하고, 땅에 의연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느낌이 아주 강하다. 또 형태는 단순하고 형태의 윤곽이 뚜렷하며, 공간은 기하학적이다. 고딕 건축은 다양한 장식으로 벽의 물질적 존재감을 가능한 한 없애면서 거대해지고자 했다. 그러나 로마네스크 건축은 밖으로는 닫혀 있지만, 그 대신 안에서는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고딕 대성당처럼 도시 안에 세워지지 않고 시골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예가 많아,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성당은 전원이나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과 일체가 된 예가 많다. 또 그 지방에서 나는 돌을 사용해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은 규격화된 느낌을 주는 고딕 성당과 크게 다른 점이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대체로 10세기 말에서 13세기 초 사이 약 200년간 건설된 교회건축이다. 이 시기에 유럽은 로마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중세로 탈피하고자 했다. 이때는 사회ㆍ경제 안정, 농업기술 진보로 생산력이 증가하고, 인구도 급속히 증가해 그리스도교가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 탄생 1000년에는 하느님 심판이 다가온다고 믿었기에, 세상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이에 따라 순례라는 '걷는 열광'과 수도원이라는 '숨는 열광' 형태로 성당과 수도원이 많이 세워졌다. 중세에는 건축이 눈에 보이는 '문화'의 형태였다. 그리고 건축은 시대와 지식의 구조적 상징으로 읽혀지는 텍스트였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서구가 성립하기 시작하던 시대의 전형적 예술 공간이다. 흔히 로마네스크 건축은 고딕 건축으로 발전되기 이전의 준비 단계에 있는 건축으로 잘못 알기 쉬우나 결코 그렇지 않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건축의 구조와 재료 안에서 이러한 '문화'의 형태를 눈에 보이게 하고, 조각ㆍ회화ㆍ성물ㆍ장식ㆍ기도서 등 다양한 표현 영역을 처음으로 표현한 거대한 텍스트였다. 중세의 건축과 조각과 회화를 분리할 수 없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남정률2012.02.08
![[대림특집] 우리들의 기다림 / 평신도 선교사 이야기 -이현경 선교사](//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7334_1.0_titleImage_1.jpg)
[대림특집] 우리들의 기다림 / 평신도 선교사 이야기 -이현경 선교사예수님 사랑에 반해 결혼도 잊고 선교 투신이현경 선교사가 98살 김효선(안나) 할머니 집에 방문해 안부를 묻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에는 마흔여덟 살 노처녀가 산다. 그의 집은 일반 가정집이 아니라 하느님 별장이라 불리는 '공소'다. 노처녀의 유일한 소원은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공소 신자들이 스스로 '선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 노처녀는 안동교구 점촌본당(주임 정일 신부) 산북공소 이현경(프란치스카, 한국순교성인선교회) 선교사다. 그는 2002년부터 일생을 선교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은 중견 선교사다.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어 결혼도 하지 않았다. 선교사로서 첫 발은 전남 해남과 진도 등에 있는 공소에서 내디뎠다. 산북공소에는 2009년 초에 왔다. 이 선교사가 산북공소를 처음 찾았을 때 이곳 신자들은 50년 가까이 선교의 '선'자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본당에서 사제가 오면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가 없으면 없는대로 공소예절을 했다. 어림잡아 평균 나이 일흔 다섯이 넘는 공소 신자들은 부활절에 달걀을 삶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본당에서 갖다 주고 해주는 대로 따르면 되는 줄 알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순진하셔요. 여기 처음 왔을 땐 신심단체라곤 레지오 마리애 딱 한 개뿐이었어요. 30여 명 신자분들의 주일 봉헌금이 3만 원도 채 안 됐었다니까요." 산북공소는 수십 년을 선교사 없이 신앙을 지켜온 곳으로, 자존심과 고집이 센 신앙 공동체였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어르신들은 처음엔 변화를 꺼렸다. 하지만 그가 부임한 뒤 공소 차원에서 처음으로 추수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여름신앙학교와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 웃음소리가 공소에 흘러넘치자 어르신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는 대림시기에는 손재주 있는 할머니들과 함께 대림환을 만들어 가정방문 순회기도를 하는가 하면, 앙증맞은 구유를 만들어 선보였다. 그러자 난생 처음 보는 대림환과 구유 속 귀여운 아기 예수 모습에 어르신들은 넋을 잃고 신기해했다. 그가 공소에 온 뒤부터는 성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12월마다 오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기다림과 설렘, 회개의 기도 속에 오시는 예수님으로 변화됐다. 그는 자신을 "선교사 같지 않은 선교사"라고 말했다. 10년 차 선교사이지만 지금도 선교 잘 하는 선교사가 부럽다고 했다. 원래 선교사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물 흐르듯, 주님 부르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선교사가 됐다. 그는 1987년, 20대 중반에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가정에 우환이 생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세례를 받고 성경공부를 하게 됐고 또 봉사자가 됐다. 그러다 한 선배 권유로 서울 가톨릭교리신학원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5년 동안 주말마다 시골 공소에 가서 학생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삶의 전환기가 있었어요. 귀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았어요. 암은 아니었는데 어려운 수술이었지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내 몸을 가눌 수 없고 온전히 내어 맡기는 체험을 하게 되면서 몇 년 만이라도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 계획하지 않은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선교사였어요." 이 선교사로 인해 산북공소에 분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은 신자들 마음가짐이다. 시시하고 재미도 없어 축 처졌던 공소에 활기가 넘치자 냉담교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냉담교우와 외짝교우들은 가족들을 예비신자 교리반으로 이끌었고 세례를 받은 이들도 생겨났다. 얼마 전에는 한 신자 시각장애인의 개안수술을 도우려 어르신들이 손수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던 날 신자들은 부둥켜안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처럼 받는 공동체에서 주는 공동체로의 변화는 어르신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그는 예비신자가 생기면 일일이 가정을 방문해 교리를 가르친다. 산북공소를 비롯해 그는 인근 동로공소와 창구공소 등 세 공소에서 7명의 예비신자를 돌보고 있다. 현재 예비신자들이 모두 젊은(?) 50대라는 그의 말은 이곳 공소에 '밝은 희망'을 예고하는 것처럼 들린다. "선교사로 살면서 받은 가장 큰 은총은 누구나 하느님 안에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에요. 쉽지만은 않은 생활이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올해도 어르신들과 구유를 만들며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릴 거예요."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