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130) 소심한 신앙인](//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8036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30) 소심한 신앙인Q. 소심한 신앙인 제 남편은 본래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난 후 더 소심해졌습니다. 이것도 죄고, 저것도 죄가 된다면서 가리는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무엇을 하자고 해도 고해성사를 보기 싫다고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도 점점 떨어져 나가고 본인도 외로워합니다. 열심한 신앙인이 되려면 정말 남편처럼 소심하게 살아야 하나요? 저는 남편과는 달리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데, 그런 저를 보고 남편은 세속적이라고 핀잔을 주네요. 제가 믿음이 약한 것인지 남편이 답답한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A. 많은 분이 신앙에 입문한 후 마음이 소심해지는 것 같다고 고민을 하십니다. 고해성사를 안 보려고 이것저것 피하다 보니 대인관계가 소홀해져 간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예 죄지을 것 다 짓고, 나이들어 힘 없을 때 세례받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본래 신앙생활은 신앙인을 대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 것, 제자들을 파견하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제자들을 대범한 사람들로 만드시려는 의도였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제자들은 아주 심한 소심증에 걸려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주님께 대한 심한 죄책감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평안'이었습니다. 주눅 들지 말고 소심하지 말고 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격려로 소심증을 치유한 제자들은 팔레스티나 지역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목숨을 걸고 선교에 나설 정도로 대범한 사도들이 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대범한 사도들이 만든 교회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면 길을 잘못들은 것이니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소심한 마음이 든다면 신앙과는 별개로 소심증일 가능성이 있으니, 소심증에 대한 심리치료적 조언을 좀 해드릴까 합니다. 소심증의 첫 번째 특징은 실수한 기억, 실패한 기억만 골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 하더라도 잘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과거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산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미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그런데 소심증인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잊는데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한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소심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는 말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실패한 기억이 많으면 중추신경이 마이너스(-) 방향으로 설정되고 마음 안이 패배의식으로 가득하기에 그런 말들이 별로 약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마이너스 모드를 플러스(+) 모드로 바꾸기 위해 과거 기억 중에서 괜찮은 기억들을 상상하게 하고, 그때 감동을 다시 맛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것을 '암시 효과'라고 하는데 마이너스 암시가 패인이 되듯, 플러스 암시는 사람을 사기충천하게 해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받은 표창장이나 공로패들은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필요한 심리치료 도구인 셈입니다. 소심한 분들의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무슨 일이든 잘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잘하려는 마음은 불안감과 불안한 기대감을 동반하고, 그것이 심리적 균형을 잃게 하기에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평신도주일에 강론하는 신자 중에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더듬거리거나 틀리게 하는 것은 실수를 안 하려는 마음, 잘하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이분들은 바오로 사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주 담대한 분, 스케일이 큰 분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분이 자신이 아주 약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 1-5절에는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하는 고백이 기록돼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고백은 역설적 치료법입니다. 약한 나를 고백해야 긴장감이 풀리고 자신을 스스로 옥죄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한 나를 하느님 앞에서 고백한다는 것은 운동선수들이 힘을 빼려고 노력하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소심한 분들, 하느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그런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하느님 앞에서 드러내는 기도로 마음을 치유하시길 바랍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힘2011.12.06
![[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2) 성당의 공간: 장소와 빛](//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2465_1.0_titleImage_1.jpg)
[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2) 성당의 공간: 장소와 빛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리니메의 산 토마소 성당.하늘에 닿아 있고 천사가 오르내리는 곳 신앙 선조가 순교의 피를 흘린 해미읍성의 처형 장소는 그 근처 어떤 땅과도 같을 수 없다. 그곳은 거룩하게 구별된 땅이다. 하느님과 관련된 거룩한 땅,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배경이 된 장소를 성지라 부르듯 거룩한 집, 성당은 성별(聖別)된 장소에만 세워진다. 의식과 제구라는 대상, 사제라는 사람, 주일이라는 시간을 따로 구분하듯 성당은 거룩하게 선별된 장소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장소는 벽으로 둘러싸일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견고한 벽은 세속과 거룩한 것을 격리시켜준다. 고대 그리스 신전은 도시와 떨어진 언덕 위에 서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성당은 구별해 지어진 하느님의 장소이면서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상 안에 세워졌다.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당의 벽은 다른 세속적 건물의 벽과 다르다. 성당의 벽은 세속과 구별된 거룩한 장소를 만들어낸다. 그 벽은 바깥으로는 인간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안으로는 빛을 가득 채워 하느님 나라를 표현해야 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을 제일 처음 세운 사람은 야곱이었다. 야곱은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어 '이곳'을 거룩한 장소로 주위와 격리시켰다. "야곱은…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야곱은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창세 28,10-22). 여기에서 '이곳'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곳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곳이고, 그래서 두려운 곳이다. 이곳은 하늘에 닿아 있고 층계로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내리는 곳이다. 수직으로 세운 돌은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곧 거룩한 세계로 이르는 길, 상승과 초월을 나타냈다. 이처럼 야곱이 꿈꾼 계단은 이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문이자, 세계축(axis mundi)이었다. 빛은 벽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낸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하느님께서 만드신 빛을 통해 생명의 원천이신 '빛'을 본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빛은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을 이어주는 매개자"라고 했다. 성당 안의 모든 구조는 이러한 빛을 위해 존재한다. 고딕 건축 공간이 모든 건축물 중에서 특별히 거룩한 공간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높이와 튼튼한 열주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리미네 산 토마소 성당(San Tomaso, 12세기)은 원통형 벽면으로 장소를 끊어내고 그 위에 기둥을 뒀다. 그 위에 아치를 튼 다음 돔을 얹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벽과 아치와 기둥, 그리고 돔이라는 당시 몇 안 되는 구조 방식으로 하늘을 향하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리고 저 위에서는 빛이 비춰 들어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워준다. 아래 원형 벽은 사람을 에워싸고, 꼭대기 돔은 하느님이 만드신 하늘이 된다. 이렇게 장소와 빛이 성당을 소박하게 완성해냈다. 실바칸느 시토회 성당을 보라. 성당 내부 공간을 통합하는 것은 빛이다. 아니, 빛이 성당 공간 전체가 된다. 성당 저 높은 창에서 또는 한가운데 돔에서 조용히 쏟아 내리는 빛이 천장, 벽, 기둥 그리고 오목 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세부에 부딪히고 꺾이면서 부드럽게 빛나는 공기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돌의 육중함은 사라지고 부드러운 천처럼 느끼게 하는 빛, 그 빛은 돌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비춰준다. 이 성당의 벽면은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5.9)는 성경 말씀을 물질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성당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는 벽으로 구분된 거룩한 장소 안에 울려 퍼진다. 사제는 제물을 준비할 때 성반과 성작을 들어 올리며 저 높은 돔을 향해 기도드린다. 그리고 사제는 피조물인 인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들어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러면 돔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빛이 우리 모두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해서 높은 돔과 거기서 내리비추는 빛은 야곱이 보았던 '하늘에 닿아 있는 층계'이며,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이 된다. 성당 내부의 높고도 빈 공간과 빛은 바로 야곱이 세운 기념 기둥을 형상화한 것이다. 건축물은 이렇게 우리가 드리는 미사 전례에 동참한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임을 새겨준다. 이것이 성당이다. 성당 안을 비추는 빛은 한 부분만 밝게 비춰서는 안 된다. 그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이어야 한다. 그 안에서 기도드리는 우리 '모두'를 감싸줘야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약간 어둡게 보여야 한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조금만 앉아 있으면 그 안이 밝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단지 밝기나 조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형광등을 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벽과 지붕을 크게 뚫어 밝기만 한 성당이 아니다. 검소하고 작은 성당이라도 아침에 비치는 투명한 빛이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 위에 떨어지고, 저녁노을의 금색 빛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도하고 있는 어떤 이의 어깨를 물들인다. 성당은 이렇게 장소와 빛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다.김은아2012.01.17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 지상중계③ '천주교와 유교'](//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206_1.0_titleImage_1.jpg)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 지상중계③ '천주교와 유교'유교의 신관, 구약 전통과 상응... 상제는 내재성과 초월성 포괄하는 최상의 존재로 이해... 계시 종교인 그리스도교와 창조개념이나 구원관 큰 차이 이석균(서울대교구 돈암동본당 보좌) 신부 한민족 의식에 가장 깊고 넓게 내재돼 있는 가치체계는 유교일 것이다. 천주교 역시 신앙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조선 후기 유학자들에 의한 해석학적 연구가 먼저 이뤄졌다. 이는 천주교 전파가 단순한 외래문화의 이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민족문화와의 통교 과정을 거쳐 수용됐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791년 조상의 신주단지를 파기하는 진산사건 이후 천주교와 유교의 대립적 흐름이 있기까지 둘 사이엔 대체로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유학사상이라는 기반에서 천주교를 수용하는 보유론(補儒論)이고, 또 하나는 유교의 공격에 천주교 신앙을 강력히 옹호하는 호교론이다. 보유론이 16~17세기 예수회원들, 특히 마테오 리치를 통해 시도된 선교방식이라면, 정약종의 「주교요지」로 대변되는 호교론은 박해에 대항해 천주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입장은 현대사회에서 유교와 천주교가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선 신관부터 짚어보자. 유교에서 천(天)을 내재성과 초월성을 포괄하는 최상의 존재로 이해했다는 것은 하느님을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존재로 이해한 구약 전통과 상응한다. 이러한 상응은 고대 상제-천이라는 개념 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원시유교에서 「시경」이나 「서경」에 나타나는 상제-천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창조적 원리를 지닌 존재이며, 의지와 뜻을 가진 인격적 존재이자 인간에게 상벌을 내리고 심판하는 주재적 하늘이다. 구약의 하느님 역시 명백히 우주적 창조주이자 인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인격적이고 주재적인 야훼 하느님이다. 하지만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 개념은 그 전제부터 상이점을 안고 있다. 유교에서 창조는 '무(無)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만물의 질료적 질서가 전제된 순환으로서의 창조와 사멸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계시'된 존재이고, 유교의 신은 '인정'된 존재라는 차원에서 대별된다. 계시의 결정적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다. 유교의 핵심에는 하늘과 인간의 하나됨에 대한 가르침이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자신을 유일한 방법으로 계시한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 이어 인간관을 살펴보자. 유교 사상과 이념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시작해 인간 문제로 끝맺는다. 그러기에 유교의 이상적 인간관은 주체적이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간 이해를 통해 인간이 하늘에서 본래적으로 부여받은 천명을 도덕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반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자기 초월이란 본질적으로 하느님 뜻에 일치해 거룩해지는 것, 곧 성화(聖化)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거룩함'이란 본래 하느님에게 속하는 완전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인간 완성은 하느님의 거룩한 완전성을 본받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이같은 인간 완성의 길에서 핵심적 요체가 되는 덕은 유교에서는 '인(仁)'이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랑'이다. 유교의 인과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인간 완성의 길에서 제시되는 덕이라는 면에서 상응한다. 그럼에도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자기 완성은 차이가 있다. 유교의 자기 완성은 내재적 자기 수양을 통해 천인합일을 이루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자기 완성은 인간 자신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화(Sanctification)의 차원을 고려한다. 윤리-구원관 또한 차이점과 연계점이 있다. 유교의 인간은 '원죄'와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상술되기보다는 '본성적 선함'과 '자율적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된다. 유교는 성경에서처럼 인간의 피조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인간이 본래적으로 타고난 선을 '인의'를 통해 확충해 자율적 인격 완성을 지향한다. 이런 유교를 '수기치인(修己治人)' 또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학문이라 부른다. 유교의 언어로 말하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유교가 지향하는 최고의 이상적 인간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셈이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10.11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상>](//cpbc.co.kr/CMS/newspaper/2011/05/rc/377049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15)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성화상 공경' 논쟁 불식시키려 시나이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에 소장돼 있는 6세기 작품 성 베드로 성화상. ?배경 787년에 개최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이른바 '성화상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소집된 공의회였습니다. '성화상'이란 하느님이나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과 천사 등 거룩한 이들의 모습을 그림이나 판화, 모자이크, 조각 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말합니다. 박해 시기에 신자들은 물고기, 양, 새, 닻, 배, 어부, 목자 같은 다양한 상징들로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로마에 가면 옛 로마시대 지하 공동묘지(카타콤베)에서 이런 것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얻고 난 후에도 이런 상징들은 그리스도교의 신비와 신앙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지요. 그러나 세례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런 상징들만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비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좀 더 분명한 표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 모습, 성모 마리아와 사도들 모습, 성인들 모습을 담은 성화상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 벽에 걸리거나 그려진 성화상들은 장식물로서뿐 아니라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로도 활용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5세기에 와서 성화상은 일반 대중 사이에서 공경 대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신자들은 성화상에 입을 맞추고, 향을 드리는 등 공경의 예를 표시했으며, 등불이나 촛불을 그 앞에 켜놓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등 성화상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확산됩니다. 이런 성화상 공경은 서방 교회보다는 동방 교회에서 더 유행했는데, 수도자들이 아름다운 성화상을 만들어 활용하면서 수도원은 성화상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서방에서는 성화상보다는 성인들 유물을 공경하는 관습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성화상 공경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주된 반대 이유는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구약성경의 금령(탈출 20,4; 레위 26,1)에 위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방에서는 성화상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확산되면서 동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금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네스토리우스주의 이설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인간으로 그려진다면, 신성보다도 인성만을 강조한 네스토리우스주의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게다가 7세기 중반 이래로 그리스도교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슬람 역시 구약성경을 근거로 형상을 만드는 것을 철저히 금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면서 특히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지역 주교들이 성화상 금지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기에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이 비잔틴(동로마제국) 황제 레오 3세(재위 717~741)였습니다. 무슬림에게 빼앗겼던 수도를 되찾고 제국에서 이슬람 세력을 격퇴한 뛰어난 황제였던 그는 성화상 공경을 우상숭배 혹은 미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개혁하고 제국을 강화하는 일환으로 726년쯤에 성화상 공경을 금하는 칙서를 발표하고는 콘스탄티노폴리스 황궁문에 걸려 있던 예수 그리스도 초상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군중이 항의하며 폭동을 일으키자 황제는 강제로 진압해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체포해 징벌을 가했습니다. 당시 교황은 그레고리오 2세(재위 713~731)였습니다. 황제는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성화상 공경을 금하는 자신의 새 정책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교황은 승인해 주지 않으면 로마로 쳐들어가 체포하겠다는 황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구약의 우상숭배와 성화상 공경이 다르다며 그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레오 3세 황제는 731년 1월 17일 원로원을 비롯해 국가 주요 공직자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게르마누스를 불러다 놓고 성화상을 소유하거나 성화상에 공경을 표하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자를 국가 반역자로 여긴다는 칙령을 총대주교 이름으로 발표할 것을 지시합니다. 성화상 공경이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점을 이미 밝힌 바 있는 총대주교가 이를 거부하자 황제는 총대주교를 내쫓고 측근을 후임에 앉혀 칙령을 발표토록 합니다. 이로써 황제는 교회 이름으로 성화상 공경 금지를 정당화한 것이지요. 이에 따라 성화상 파괴 행위가 무섭게 자행되고,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탄압이 이어집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2세 후임인 교황 그레오리오 3세(재위 731~741)는 황제의 이런 성화상 금지 조치에 맞서 로마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해 성화상 파괴자들을 파문하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교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화상 파괴 운동은 계속되고 레오 3세 황제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재위 741~775) 때에 이르러 더 한층 격화됩니다. 그는 75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 보스포로스 해협 해안 히에레이아에 있는 황실 궁전에서 주교 338명이 참석하는 교회회의를 엽니다. 로마 주교인 교황은 초청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또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는 공석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들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공식성 혹은 대표성이 없는 회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는 성화상 공경을 우상숭배로 규정합니다. 그리고는 대중들의 성화상 신심에 깊은 관련이 있었던 수도자들을 우선적으로 박해하고 수도원들을 폐쇄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거세게 계속되던 성화상 파괴 운동은 콘스탄티누스 5세의 아들 레오 4세(재위 775~780)가 비잔틴 황제가 되면서 주춤해집니다. 레오 4세의 아내 이레네 황후가 신심 깊은 성화상 공경자여서 그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레오 4세가 죽고 10살 된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재위 780~797)가 제위에 오르자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펼친 황후 이레네는 성화상 파괴 논쟁을 종식시키고 성화상 공경의 옛 전통을 확인하는 세계공의회를 열기로 합니다. 황후는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와 함께 로마 교황 하드리아노 1세(재위 772~795)에게 이를 알리고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지요. 교황은 여기에 동의하고 사절들을 파견하겠다고 답변합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바오로 4세는 원래 성화상 파괴주의자였지만 갑자기 총대주교직을 사임하는 바람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가 공석이 돼 버렸습니다. 이레네 황후의 비서로 평신도였던 타라시우스가 주교로 축성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됩니다. 784년 말쯤이었습니다. 타라시우스 총대주교는 마침내 786년 8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사도들의 성당에서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그러나 성화상 파괴를 지지하던 군인들이 난입해 공의회를 해산시켜 버립니다. 이레네 황후의 개입으로 사태가 수습되고 마침내 이듬해인 787년 9월 24일 니케아에서 공의회가 열립니다. 이 공의회가 일곱 번째 세계공의회인 제2차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11.05.17
 2000년 전 바오로 사도의 숨결이](//cpbc.co.kr/CMS/newspaper/2010/05/rc/335307_1.3_titleImage_1.jpg)
[사제의 해- 성경의 땅을 가다](4) 2000년 전 바오로 사도의 숨결이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코린토 운하에 도착했다.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이 운하는 뱃길 320km를 단축시킬 수 있어 로마시대 여러 황제들이 운하 건설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6000여 명의 노예를 동원해 운하를 건설하려던 네로 황제의 계획이 이민족 침입으로 중단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893년 마침내 뱃길이 열렸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데 저 멀리 운하를 통과하는 배가 보였다. 다리 아래 까마득한 절벽과 검푸른 바다가 아찔하다. 운하에서 잠시 휴식을 마치고 버스는 코린토 유적지를 향해 달렸다. 코린토 시에서 약 8km 떨어진 아크로코린토 산기슭에 코린토 유적지가 있다. 코린토는 그리스 남북 육상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해상교통의 요지로, 고대부터 상업과 무역으로 번영을 이뤘다. 그러나 풍요로운 코린토는 타락과 방탕, 향락의 도시로도 유명했고 우상숭배도 극에 달한 곳이었다. 드디어 버스 창 너머로 해발 575m에 위치한 아크로코린토가 보였다. 고대 코린토인들은 지진과 잦은 외부 침입을 피해 이 산 위에 요새를 짓고 살았다. 당시 산비탈에 많은 사원과 신전이 있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배가 들어오면 항구에서 아프로디테 신전에 이르는 길에 수백 명의 신전 창녀들이 줄을 지었다고 한다. 코린토 유적지 초입에 아담한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미케네 시대에 이르는 유물,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시저 일족의 동상 등 코린토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코린토 유적지 안에는 기원전 6세기께 태양신 아폴로를 위해 지어진 신전이 있다. 건축 당시에는 38개 기둥이 있는 신전이었으나 지금은 7개의 기둥과 흔적만 남아 있다. 넓게 펼쳐진 아고라 터는 당시 크게 번성한 코린토의 생활과 문화를 전해주는 듯했다. 사도 바오로는 2차 전도여행 때 그리스 남부 아카이아에 건너가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사도 18,1-17). 당시 코린토는 그리스인과 로마인, 유다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사는 다원사회였다. 유다인들에게 종교 이단자로 고발된 바오로 사도가 아카이아 총독 갈리오의 재판을 받았던 그 자리에 서서 그 옛날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긴 수염, 마른 뺨의 평범한 얼굴, 빛나는 눈빛, 보통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넘치는 열정으로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 바오로의 모습을. 바오로는 코린토에서도 손수 일을 해 생계비와 전도 비용을 마련했다. 그는 이곳에서 폰토스 출신 유다인 부부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만나 그들과 함께 지내며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 로마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해 코린토로 온 이들 부부는 바오로 사도의 선교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2000년 전 지금 이곳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하느님 말씀을 증거했을 것이다. 순간 바오로 사도의 숨결이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뒤로하고 굳은 믿음으로 오직 한 가지 목표, 주님만을 향해 전력한 열정적인 바오로 사도의 삶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본다.cpbc2010.05.06
![[문화] 평화화랑 전시](//cpbc.co.kr/CMS/newspaper/2011/09/rc/388977_1.0_titleImage_1.jpg)
[문화] 평화화랑 전시 라이사 수녀 성화전과 이춘지 서양화전이 14~20일, 이명숙 작품전과 손숙희 작품전이 21~27일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열린다. 문의 : 02-727-2336 ▨라이사 수녀 성화전 미술 공부를 하러 프랑스 파리로 떠났던 여학생이 수도자가 돼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여전히 붓이 들려 있다. 라이사(프랑스 사도 성요한 관상수녀회) 수녀는 1995년 파리 MJM 응용미술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파리 아틀리에 오딜과 파드리스 드 프로콩딸 미술연구소에서 공부한 재원이다. 그런 그가 2000년 관상수도원에 들어갔다. 라이사 수녀는 "입회 전에 미(美)의 추구를 통해 철학과 신학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면 입회 후에는 깊은 침묵과 묵상 안에서 주님 사랑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어둠에서 빛으로'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밝은 빛을 머금은 듯한 유화 30여 점이 걸린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버리고 수도자가 된 그가 주님 안에서 새롭게 찾은 희망의 빛이 가득하다. ▨이춘지 서양화전 2012년도 달력에 들어갈 성화 12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서양화가 이춘지(데레사)씨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1년 여간 그린 작품들이다. 이씨는 "성화를 그릴 영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에 성경공부에 매진하며 그려온 그림"이라고 말했다. 풍경화를 주로 그리던 이씨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성화다. 그래서인지 때묻지 않은 개성이 묻어 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4월 달력에는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8월에는 기도하는 성모님, 12월에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담는 식이다. 노란색, 하늘색, 분홍색 등 따뜻하고 밝은 색채를 주로 사용해 파스텔화처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명숙 작품전 서양화가 이명숙(루치아)씨는 지난해 12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과 허리 등을 크게 다친 이씨는 5개월간 꼼짝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신앙과 작품세계에 큰 전환점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전에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전시를 열었지만 이제는 나를 살려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신 주님을 위한 전시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병상에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전시기획 의도부터 전시 타이틀까지 모두 바꿨다. 어렵사리 퇴원한 이씨는 5개월을 꼬박 매달려 '십자가를 향한 사랑의 묵상전'을 준비했다. 캔버스에 칼로 긁어 만든 얼개 위에 수건과 면봉으로 자국을 내 예수 그리스도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이 메인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씨는 전시 수익금을 성지, 수도자, 신학생을 위한 후원금으로 봉헌할 예정이다. ▨손숙희 작품전 도예가 손숙희(라우렌시아)씨는 자연에서 얻은 흙과 다양한 색의 유약으로 도판ㆍ접시ㆍ항아리 등에 그림을 그려 1250~1260℃에서 구워낸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고온에서 얻은 오묘한 빛깔로 성가정과 자연 등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대구가톨릭대 미술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명지대 산업대학원에서 도자기기술학 및 유약을 연구한 손씨는 도예방을 운영하며 대구가톨릭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도동성당 '오병이어'(아트타일벽화), 마산 장평성당 '자비의 성모상'(석상), 안동 강구성당 감실, 전주 우아동성당 도자벽화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1.09.06
이달의 교계잡지▨가톨릭 디다케='잊지 못할 새해 맞이'를 특집으로 △나는 일곱 살짜리 선생님 △희망이란 지팡이를 안겨준 지난 새해 △내 생애 가장 바쁜 새해, 내 생애 가장 기쁜 새해를 실었다. 교사, 영성을 묻다에서는 신앙이 없는 교사회에 대해 다뤘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현대 영성에선 토마스 베리와 4대강(유정원)을, '통일 대비 어떻게?'에서는 통일사목의 현주소를 점검했다. 사목방문 동행기에서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를 만나봤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이번 호에 신설된 '돌아보고 헤아리고'에서는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노길명 교수의 '한국 천주교회의 이미지와 새 복음화'를 실어 한국교회가 왜 호감을 많이 받는지에 대해 분석했다. '한국교회의 인물상'에서는 부여 금사리본당과 황해도 매화동본당 등에서 사목하다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사제관에서 공산정권에 납치돼 행방불명된 이여구 신부의 생애를 돌아봤다.(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포콜라레 일치를 위한 정치운동 국제본부 마르코 파투쵸 대표 방한 소식과 보편적 형제애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한 예비 정치인 양성 학교 '일치를 위한 정치 학교' 소식을 실었다. 평화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 하ㆍ하ㆍ하(하나됨을 위한 하모니, 하느님의 포콜라레)를 소개했다.(마리아 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지금 여기에서는 최창무 대주교(전 광주대교구장)의 새로운 복음화와 레지오 마리애를 게재했다. 동양철학과 그리스도교에서는 종교 간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다뤘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성당에서는 이탈리아 라벤나 아폴리나레 누오보 대성당을 찾았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아침 뜨락에서는 '새해에는 더 행복한 삶을 꿈꾸며'(허영엽 신부)를, 영성 에세이1에서는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를 게재했다. 전례력에 따른 말씀과 묵상은 성탄 시기부터 연중 제4주간까지 실었다.(가톨릭출판사/한글ㆍ영문판 각 권 900원) ▨사목정보=당신은 '가난'하십니까?-그리스도의 가난을 특집 주제로 △가난의 정신을 사는 구체적인 길 △가난의 그리스도교적 의미 △권정생, 가난한 이웃과 함께 가난해지는 삶을 선택한 사람을 실었다. 일본 가고시마교구장 코리야마 켄지로 주교와의 특별대담을 게재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새벽 영성을 주제로 △새 날,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다(허성석 신부) △새벽 사람들을 만나다(김용기) △새벽, 그 기적 같은 시간(류영혜) 등을 게재했다. 연재물로 정길연의 일상 스케치에서는 스마트폰 유감을, 가톨릭 상식 틱!톡!에서는 동방 박사, 아기 예수님을 만나다를 다뤘다. 이 사람에선 '울지마 톤즈'로 세상을 울린 구수환 피디를 소개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이번 달 새로봄의 주제는 세상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로 △영화를 통해 소외된 이들의 징검다리가 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디딤돌 △하느님과 나를 이어 주는 영혼의 사다리 등을 실었다. 길 위에 핀 사람꽃에서는 빙그레 식품점을, 가정과 성경에서는 열두 살이 된 딸과 함께를 게재했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새해가 밝았어요! 2011년 새해에는…'을 주제로 새해 특집을 꾸몄다. 성인들을 찾아라!에서는 교황이었던 성인들을, 신나는 구약성경에서는 감옥에 갇힌 요셉을 다뤘다. 성경 속 과학 이야기에서는 소돔, 고모라와 소금 호수 이야기를 실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는 사도들의 고민(송봉모 신부)을 알아보고, 조선의 유학자들에서는 정암 조광조(금장태 교수)를 소개했다. 세상 속 신앙 읽기에서는 개신교 신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송용민 신부)를 다뤘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너희가 그들에게 주어라'를 특집 주제로 △성체를 모시고도 나누지 않으시나요? △아이티를 돌아보면서 △신앙과 후원을 유산으로 등을 싣고, 신앙의 프런티어에서는 방송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일한다는 신영일 아나운서를 인터뷰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공동체에서는 프랑스어 성경 모임 '수플'을 만나봤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0.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