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옻칠과 조각에 담긴 ‘영원의 숨결’이승원·안병철 초대전… 절두산·서소문 성지 박물관서 각각 개최 이승원 작 ‘인도하심’ 오랜 세월 수행하듯 작업해 온 두 작가의 신앙과 예술 세계가 서울대교구 내 성지 박물관에 나란히 펼쳐졌다. 이승원 작가 ‘영원을 향한 시간’ 이승원(마르타, 80) 작가 초대전 ‘영원을 향한 시간’은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에서 정통 금속공예를 배운 작가는 1979년 귀국해 국내 금속공예 1세대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유학 시절부터 금속공예와 함께 모시·삼베·창호지·옻칠 등 우리나라 전통 소재에 관심을 두고 서구적인 조형미에 한국적인 정서를 이질감 없이 조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뉘른베르크 미술대학 아카데미상을 연속 수상했고, 1992년 국제 은공예 트리엔날레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성미술품 및 생활과 밀접한 작품들을 창작해 왔고, 공예에서 저변을 확장해 옻칠화 작업을 해왔다. 이승원 작가 초대전 '영원을 향한 시간' 전경. 이번 전시에서는 금속공예에서 출발해 옻칠을 매개로 영역을 확장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신앙에 대한 성찰과 성경 묵상을 바탕으로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시간이 담겨 있는 작품들로, 옻칠화·설치·성물·금속공예 작품 총 60여 점이 소개된다. 옻칠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서양의 유화가 색을 칠하고 마르면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덮어 전체적인 색채의 균형을 맞춘다면 옻칠은 바탕 효과를 예상하면서 칠을 반복한다. 유화는 색칠의 효과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지만, 옻칠은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칠을 하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며칠간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후 마지막 부분에서 표면을 사포로 갈아내야만 은은한 광택과 깊이감을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수 개월 동안 수십 차례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옻칠 작업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묵상을 반복하는 구도의 삶과 닮아있다”며 “겹겹이 쌓을수록 고운 색채에 옻 특유의 무게감이 드러나는 옻칠 작품처럼 우리의 기도가 켜켜이 쌓여 영원을 향한 깊이 있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원 작 ‘은총의 나무’ 관장 원종현 신부도 “시간과 재료의 축적이라는 옻칠 작업으로 창작된 작품을 통해 작품의 표면을 넘어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신앙적 사유의 층위를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덕성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작가는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수학했다. 원광대와 청주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서울·의정부 가르멜 여자 수도원, 제주 성클라라 수도회 성당,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청량리성당,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승원 작 '마리아'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가 끝난 뒤 출품 작품과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성물과 금속공예품 등의 기증을 박물관 측과 협의하고 있다. 작가의 대표작이 포함돼 있어 교회 미술로서의 예술 가치와 전례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2-4504 안병철 작 ‘생명-영(影) XIX 4’ 조각가 안병철 ‘물성에서 생명으로’ 조각가 안병철(베드로, 69) 개인전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안병철: 물성에서 생명으로’. 초창기 조각·입체 작품부터 최근의 한지 작업까지 40년에 걸친 작업 변천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1980~1990년대 한국 조각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가의 미공개 초기작을 시작으로 대립하는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은유한 ‘문’ 연작, 자연·인간·순환의 질서를 탐구한 ‘생명’ 연작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부친인 1세대 근대 조각가 안찬주 선생의 작품도 최초로 공개한다. 안병철 작 ‘Flow of Life IV’ 작가는 철·스테인리스·브론즈·한지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의 물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특히 형태를 단순화해 본질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생명의 기원’ 연작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생명-영(影)’ 작품은 모든 세부 묘사를 덜어내고 매끈하게 연마되어 잘 닦인 거울 표면으로 빛과 공간, 관람자를 끌어들이며 작품 안에 비친 관람자 스스로를 마주 보게 한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외형을 넘어 움트는 생명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 순환의 흔적은 작품의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의 감각과 내면에 스며든다. 작품을 통해 수행하는 수도자에 본인을 비유하기도 한 작가는 “작가와 작품은 서로를 비추며 결국 닮아가는 존재”라며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느끼고 배우며 깊은 성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정을 그려낸다”고 말했다. 안병철 작 '생명-기원 VIII' 서울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한 작가는 서울시립대 조각학과 교수 및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지냈다. 1988년 경기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서울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수원 올림픽기념조각공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30일까지 매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7-2403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4.29
![[책꽂이]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 외 3권](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8/20/HAI1724137079392.png)
[책꽂이]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 외 3권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 / 생활성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는 11월 14일 치러진다.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수험생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지인들의 마음도 초조할 수밖에 없다.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는 은총과 지혜의 원천인 성경을 필사하며 묵묵히 수험생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돕는다. ‘성경 쓰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필사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다”(「계시 헌장」 21항)라는 교부들의 가르침대로, 성경을 쓴다는 것은 곧 하느님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지향을 갖고 성경 필사를 하면 혼자서는 지치기 쉬운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고 그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더구나 가족을 위해 바치는 진심 어린 기도에 담긴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잊지 말자. 청진상륙작전 / 김정선 / 서교출판사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기만작전 중 하나인 청진상륙작전을 소재로 70여 년간 묻혀 있던 비화를 엮은 소설이다. 신학생 출신인 최병해(마르코, 1914~1994) 중령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사흘 앞서 이뤄진 청진상륙작전의 유일한 생존자다. 이 작전에서 최 중령이 이끈 특공대 500명은 전원 사망했다. 지원을 약속했던 미군의 함포사격도, 후속부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최 중령은 미주리호 함상에서 한국군 가운데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수여한 동성훈장을 받았지만, 죽은 부하들을 떠올리며 바다에 버렸다. 같은 이유로 한국군에서 수여한 금성충무무공훈장과 종군기장도 받지 않았다. 70년이 지난 2020년에야 최 중령의 유가족인 세 딸(최효선 수녀 등)에게 이 훈장들이 전달됐다. 저자는 “세 자매가 선친에 대한 전기문을 써달라며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주섬주섬 꺼냈다”며 “조국을 위해 산화한 최병해 중령과 500인의 지워진 영웅들이 이룬 청진상륙작전이 현대사에 선명한 한 줄로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겪어보면 안다 / 김홍신 / 해냄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 「겪어보면 안다」는 소설가 김홍신(리노)이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경험하고 깨달은 삶의 소회를 엮은 책이다. 작가의 139번째 출간작이자 4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아프고 잃고 떠나보낸 뒤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참된 행복’을 주제로 40여 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환경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져도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에서, 따뜻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노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깊은 감명을 선사한다. 별다올 아침 산책 / 오세윤 / 북나비 저자 오세윤(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80여 년 세상 한 번 어지럽게 산 남자의 삶에 대한 수필이다. 1938년생인 저자는 38선 인접 북녘 바다 마을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았고, 공산 정권을 피해 월남했다 전란의 생지옥을 겪었으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 소아과 의사로 한평생을 살았다. 굴침스레 살아내며 보고 느끼고 사랑하며 산 세상을 글로 엮어 꾸준히 펴내고 있다. 이번 책에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 살아야 할 의미에 대해 썼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8.23

예수의 신성·인성 결합과 삼위일체 교리 제시[저는 믿나이다] (43)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 3세기 호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제시한 위대한 신학자들이다. 테르툴리아누스(왼쪽), 오리게네스 중세 삽화. 3세기 그리스도교는 로마 황제의 조직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지역 교회 주교들을 중심으로 교계제도가 든든히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비 신자 교육 기간도 3년으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2세기 때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던 성경 정경 목록 작업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처럼 3세기 교회는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면서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느님,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신앙 규범을 확정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 성경 정경과 사도들의 전승에 기초해 삼위일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규범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한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호교 교부들인 서방의 테르툴리아누스와 동방의 오리게네스입니다. 최초의 서방 호교 교부인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155~230?/240?)는 그리스도론에 있어 서방이 동방보다 몇 세기 앞서는 큰 신학 업적을 남깁니다. 그는 삼위일체 하느님에게 ‘성삼’(Trinitas), ‘위격’(persona)이라는 신학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라틴 교부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 다음으로 뛰어난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평신도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몬타누스주의 이단에 빠졌을 뿐 아니라 극단적인 윤리 생활과 지나친 엄격주의를 강조해 배우자 사별 후 재혼하는 것도 간음이며, 박해를 피해 숨는 것도 배교이며, 배교·살인·간음 등 대죄는 교회도 사해줄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을 강조해 반 교계제도를 주장했습니다. 교회는 이를 ‘테르툴리아누스주의’라 부르며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하지만 몬타누스주의 이단에 빠지기 전 초기 그는 신학 저술을 통해 교회의 신앙 규범 틀 안에서, 유일하신 하느님의 본질 안에서 아버지·아들·영이라는 고유한 실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오직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며 모든 것에 앞서서 발하신 그분의 말씀으로, 무에서 만물을 만드신, 세상의 창조주 외에는 다른 하느님이 없다고 믿어진다. 이 말씀은 그분의 아들로 불리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에 의해 여러 모습으로 보여졌으며, 예언자들 안에서 항상 그 말씀이 들렸고, 마지막 날에 하느님 아버지의 영과 권능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내려오셨으며, 그분의 태중에서 육이 되셨고, 그분께 잉태되어 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으며, 그 다음에 새로운 율법과 하늘나라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설교하시고 기적을 행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믿는 이들을 움직이시는 대리자 성령의 힘을 보내셨고,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성인들은 영원한 생명과 천상 약속의 열매를 누리도록 받아들이고 불경한 이들은 영원한 불로 단죄하시기 위함이며, 육의 회복과 함께 영혼과 육 둘의 부활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진다.”(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들의 규정」 13, ‘신앙의 규범’, 황치헌 신부 역,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289쪽) 아울러 테르툴리아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이 항구하게 결합하여 실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육이 영이 되거나 영이 육이 되지 않는다. 물론 육과 영은 온전히 하나의 주체 안에 있을 수 있다. 이들로부터 예수가, 육으로부터 인간이, 영으로부터 하느님이 존재한다.”(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27.; 「교부들의 그리스도론」 460쪽) 이러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신학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451년 칼체돈 공의회의 교의 선포에 기초를 제공합니다. 서방 라틴 교회에서 테르툴리아누스가 활동하던 시기 동방에서는 오리게네스(185~253)가 호교 교부로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 레오니데스가 순교하자 그 역시 순교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과 철학 등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고신 극기에 힘썼습니다. 자주 단식하고, 맨바닥에서 자고, 두 벌의 옷을 갖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금욕 생활을 위해 스스로 거세를 했습니다. 이 일로 그의 사제품은 무효가 되고, 파문까지 받아 교회에서 내쫓기게 됩니다. 그는 로마 데치우스 황제 박해 때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의 200여 편 저술 가운데 가장 대표하는 책이 「원리론」입니다. 하느님, 세상, 인간, 성경 등 네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가장 오래된 신학 교과서로 고대 교회 「신학대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신학의 중심은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영이며 빛이며 절대적 원리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다스리는 분이시며, 성부의 선하신 형상인 ‘둘째 하느님’이신 성자는 성령과 함께 성부와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는 또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로고스인 ‘신성’과 예수의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된 ‘인성’이 결합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밀접하게 결합해 있기에 신성과 인성의 속성들을 서로 교환해 적용할 수 있다는 ‘신인 속성 교환’ 이론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신인 속성 교환 이론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인간 예수를 낳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속성들이 한 위격 안에서 서로 교환되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9.09
![[생활속의 복음] 본래의 약함 그리고 성령](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1/14/USo1768355820582.jpg)
[생활속의 복음] 본래의 약함 그리고 성령연중 제2주일 요한 1,29-34 니콜라 푸생 작 ‘그리스도의 세례’, 1641~1642년. 자연계의 생존 법칙인 ‘약육강식’과 대비하여 ‘강자 앞에서 약하게, 약자 앞에서 강하게’ 처신하는 자세를 비꼬는 ‘강약약강’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우리 사회는 재산·권한·능력·건강 등의 한시적 척도로 강자와 약자를 분류한다. 대부분 사람은 강자로의 진입을 인생의 최종 목표, 행복의 필수 요건으로 간주한다. 강자는 자신이 선점한 지위를 고수하려고, 약자는 강자 대열에 합류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부동의 이분법 구도로 고착되어 약자에서 강자로 변환할 수 없다는 체념은 다수의 약자에게 적지 않은 피해의식을 남긴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본래 약자라는 사실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보호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인간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고통으로 번민하며 살아가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약자로 생을 마감한다. 강자는 ‘본래의 약함’을 해소한 초인(超人)이 아니라, 본래의 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대와 문화가 설정해 놓은 상대적 척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신론자는 본래의 약함을 단호히 부정하거나 한시적 지표의 우세가 본래의 약함을 보완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신론자의 첫째 관문은 본래의 약함에 대한 긍정과 원초적인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수용이다.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약함’을 대표하는 어린양은 구약성경에서 속죄 예식의 번제물(탈출 29,39; 민수 28,9 참조)과 파스카 축제의 잔치 음식(탈출 12,5 참조)으로 사용되었다. 이 약한 어린양을 하느님께서 ‘목자가 팔로 모아 품에 안듯이’(이사 40,11 참조) 극진히 보살핀다. 곧 어린양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지다. 어린양 개념을 도입하는 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발언을 통하여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1베드 1,19)가 세상을 구원하였다. 세상의 죄를 없애는 ‘권능’(강함)과 ‘어린양’(약함)의 연결은 모순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역설(逆說)은 하느님의 자기 현현 양식이다. ‘전능한’(강한)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약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셨다.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성자 그리스도와 같이, 하느님의 전능성은 절대 강자의 권력 행사 방식이 아니라 ‘상호 대립’(강함-약함; 첫째-꼴찌; 높음-낮음)이 ‘상호 일치’(약함 안에 강함; 꼴찌 안에 첫째; 낮음 안에 높음)를 이루는 방식으로 발휘된다. 요한 복음은 ‘요한의 세례’와 ‘주님의 세례’를 ‘물의 세례’(본래의 약함에 대한 긍정)와 ‘성령의 세례’(보호·강화하는 하느님에 대한 확증)로 구분한다. 물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고, 성령의 세례는 물의 세례를 완성한다. 성령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지닌 본래의 약함 안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성령의 보호하고 강화하는 은사를 ‘생명’과 연결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의 세례는 본래의 약함을 긍정하는 이에게 생명(강함)을 선사한다. 2026.01.14

‘하느님의 말씀 주일’ 떠오르는 세 명의 성인예로니모, 대중 성경 보급 초석 안토니오, 사막에서 복음의 삶 프란치스코, 철저히 말씀 실천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신앙생활에서 성경이 지니는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는 날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삶의 형태가 변해도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과 성인들의 모범은 오늘날 신앙생활에도 기준점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성경에 충실했던 성인들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마리누스 반 레이메르스바엘 작 성 예로니모. 출처=가톨릭굿뉴스 성경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보급된 데에는 성 예로니모(345~420)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통해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포했다. 교서가 반포된 9월 30일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의 본문 비판과 함께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다진 위대한 학자다. 당시 대다수 서민들은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성경은 일부 라틴어 부분 번역을 제외하고 모두 그리스어로만 쓰여있었다. 성인은 번역 작업을 완수하고자 탄탄한 라틴어 소양과 그리스어·히브리어 지식을 활용했다. 그의 번역은 히브리어 문체에 충실하면서도 라틴어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일반 신자들에게도 성경은 공동의 유산이 됐고, 동시에 신학 용어의 원형을 이루면서 서양 문화사를 특징짓는 기념비가 됐다. 그가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은 ‘대중적’이라는 의미의 「불가타」(Vulgata)라고 불리게 됐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 “성경을 자주 읽으십시오. 그대의 손에서 거룩한 책을 절대 내려놓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예로니모 성인의 권고는 16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오늘날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수도생활 역사의 시조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둔 채 치열하게 복음을 살았다. 금욕생활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무장했던 성인은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과 싸우며 평생 주님만 따랐다. 성인의 일생은 ‘말씀’에 기초한다. 자기 보화가 하늘에 있음을 확신해 주님을 따랐고, 늘 성경을 신뢰하며 거기서 영감을 받아 힘을 얻었다. 성경에서 삶의 양식을 배웠으며, 영들의 식별 기술을 깨우쳤다. 제자들에게도 성경의 계명들을 마음으로 배우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유혹을 극복했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에 젖어드는 것이었고,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그의 참된 금욕 수행은 지속적인 기도, 성경에 대한 경청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오의 기억이 성경을 대신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1182~1226)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느님을 체험하고 성경 말씀을 접하면서 모든 재산을 버렸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7-10) 그런 자신을 주교에게 고발한 아버지와도 작별을 고하면서 철저히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 성인은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한센인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형제들과 어디에서든 평화를 전했다. 옷은 낡고 거친 수도복 한 벌만 가지고, 음식도 주어진 대로 만족했다. 인준 받은 ‘수도규칙’ 제1장의 시작은 이렇다. “작은 형제들의 수도규칙과 생활은 이러합니다. 즉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그대로 실천하며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성인은 오상까지 얻으며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게 됐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1.22

교회 공동체 안에선 모든 이가 동등한 형제[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8)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도망친 종 오네시모스를 형제로 받아줄 것을 주인 필레몬에게 권고하고 있다. 성 필레몬과 아피아, 아르키포스 이콘. 바오로 사도 서간 가운데 가장 짧은 글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레몬서)입니다. 이 서간은 이름 그대로 필레몬 개인에게 보낸 서간이지만, 콜로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가정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이기도 합니다.(2절 참조) 아울러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글로 인정받고 있는 일곱 서간 가운데 가장 뒤에 배치된 경전입니다. 그리고 필레몬서는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썼기에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필레몬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있을 때 썼다면 55년께, 카이사리아에 갇혀 있었을 때면 58~60년께, 로마에서 옥중 생활을 했을 때라면 61~63년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헬라어 신약성경은 ‘Προs Φιλημονα’(프로스 필레모나), 라틴어 대중성경 「불가타」는 ‘Ad Philemone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헬라어 필레몬(Φιλημων)은 사랑하다란 의미의 동사 ‘필레오’(φιλεω)에서 나온 말로 우리말로 ‘사랑하는 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당시 프리기아(오늘날 튀르키예)에서 흔히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내 ‘아피아’와 아들로 짐작되는 ‘아르키포스’ 함께 살았습니다. 아르키포스는 콜로새 교회에서 특정 직무를 수행했습니다.(콜로 4,17 참조)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설교를 듣고 회심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에페소에서 활발히 복음을 선포할 때 필레몬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그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하는 협력자’(1절)이자 ‘동지’(17절)가 됩니다. 필레몬은 콜로새 교회의 주요 인사였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위해 손님방을 하나 마련해달라(22절)고 부탁하고, ‘오네시모스’라는 종을 거느릴 만큼(16절) 부유했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스는 우리말로 ‘유익한’ ‘이로운’ ‘쓸모있는’이란 뜻입니다. 그는 필레몬의 집에서 물질적인 손실을 입힐 만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후 바오로 사도가 갇혀 있는 곳으로 도망쳤습니다.(18절) 하지만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권유로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스를 복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줍니다.(21절 참조) 필레몬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줘(2절) 신생 콜로새 교회의 성장을 적극 도와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5-7절)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7절) 16세기에 저술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필레몬은 아내 아피아와 함께 네로 황제 시대(54~68년) 때 콜로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필레몬 축일은 11월 22일입니다. 필레몬서는 총 23절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서를 쓴 배경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간 내용 정황상 필레몬의 종 오네시모스와 관련한 일 처리 때문에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레몬 집에서 도망친 오네시모스는 바오로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협력자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콜로 4,9)라 인정할 만큼 오네시모스를 곁에 둡니다. 하지만 오네시모스는 자유인이 아니라 도망친 종의 신분이었기에 체포돼 감옥에 갇힐까 봐 늘 불안에 떨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당시 로마법에 따라 도망자를 은닉해 개인 재산권을 침해한 중범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러나 오네시모스를 그냥 보내지 않고 그의 손에 필레몬에게 보내는 서간을 쥐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형제로 맞아 달라고 부탁합니다.(16-17절)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대가 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오네시모스를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은근히 요청합니다.(21절) 필레몬서는 초대 교회의 노예 제도에 관한 ‘복음의 관점’, 곧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서간에서 주인과 종에 관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코린 7,20-24; 에페 6,5-9; 콜로 3,22─4,1) 바오로 사도는 근본적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분리의 벽이 허물어져 더 이상 “종도 자유인도 없다”고 단언합니다.(갈라 3,28) 또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로마 12,10)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노예제도를 직접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히 전례 모임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하며 서로 형제임을 확언합니다. “당시 노예제도는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당연시하는 비인간적 제도의 희생자인 노예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8-9절, 14절) 다만 믿음과 사랑으로(5절)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또 그러한 변화가 불의한 사회 제도와 그 희생자와 관련하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인도한다.”(「주석 성경」 839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9.04

체장수 책 두 권이 바꾼 운명… 춘천 산골에 신앙공동체 일구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춘천의 엄주언 말딩, 1920년 기적을 만들다 - (2) 체장수의 책, 엄말딩의 결심 춘천시 신북읍에 자리한 천전리 샘밭성당 전경. 이 지역은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교우촌을 이룬 곳이었고, 엄주언은 이곳을 왕래하던 체장수를 통해 신앙 서적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천주실의」 「주교요지」 읽고 깊은 감명 어려서 영특했고 한학 익히며 성장 천진암 머물며 교리 배우고 세례 받아 돌아온 고향에서 냉대가 존경으로 화전 일구고 밤엔 교리·성경 가르쳐 ‘장차 큰일 할 사람’ 칭송이 자자 춘천, 자생적 신앙의 터전 앞선 연재에서 신유박해(1801) 이후 많은 천주교인이 춘천으로 숨어들거나 정착해 살았을 가능성과 그 증거로 정약용의 두 번의 춘천 여행을 살펴보았다. 그 정황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황심 추국 사건’을 들 수 있다. 황심은 1797년부터 세 차례나 조선 교회의 서신을 북경 주교에게 전달했고, 1801년에는 배론에서 황사영을 만난 뒤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춘천에서 처형당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신유박해 때 황심이 가족과 함께 춘천 북산면 쪽으로 옮겨 살다가 화를 입었다는 점이다. 북산면은 이벽 후손들이 살던 천전리와 북쪽으로 맞닿은 지역이고, 마적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의 동네들이다. 즉 “춘천에도 교우들이 있었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도는 게 아니라, 박해의 서늘한 그늘이 실제로 이 산골까지 내려왔다는 뜻이 된다. 그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춘천이 자생적으로 신앙의 씨앗을 품어 온 터전이었음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1880년대 춘천의 교우촌이나 공소를 언급한 기록에서 천전리 ‘샘밭’과 인근 지명이 반복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믿음은 꺼지지 않고, 오롯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운명적 만남: 체장수와 두 권의 책 이제 여기서 평신도 엄주언의 삶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지가 비로소 설명된다. 곰실본당(1920)을 ‘춘천 천주교의 출발점’으로만 부르는 말이 얼마나 성급한지, 그 말의 뒤에 숨은 시간의 층이 얼마나 두꺼운지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두꺼움 위에 우뚝 선 사람이 엄주언(嚴柱彦, 마르티노, 1872~1955)이었다. 엄주언의 출생은 기록과 기억이 서로 어긋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1873년 1월 8일(음력 1872년 12월 10일) 태어났고, 출생지도 한동안 동면 장학리 노루목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서면 월송리 출생으로 알려지면서 ‘어디서 태어났는가’의 좌표가 흔들렸다. 나는 이 흔들림이 오히려 진짜 같다고 느낀다. 박해의 끝물, 가난한 농촌, 평신도의 신앙의 길은 늘 공식 문서보다 구전과 가족 기억에 더 많이 기대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는 비교적 고르게 전해진다. 그는 어려서 영특했고 한학을 배우며 글에 기대어 자랐다는 점이다. 그의 내면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열아홉 무렵에 찾아온다. ‘체장수’의 권유로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멈칫하게 된다. 어떻게 일개 체장수가 그런 책을 품고 다녔을까. 그리고 그 위험한 책을, 하룻밤 묵어가는 주인집 젊은이에게 선뜻 권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은 앞에서 살핀 ‘춘천의 오래된 교우촌’이라는 배경을 놓고 보면 조금씩 풀린다. 천전리 샘밭과 인근에 교우촌·공소의 흔적이 이어져 왔다면, 천주교인이었던 체장수는 그 지역과 왕래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월송리는 천전리와 멀지 않고, 북한강이 사이에 있었지만 충적지와 옥산포에서 배를 통해 쉽게 오가던 지척이었다. 장터와 마을을 잇는 길 위에서, 책 한 권은 때때로 사람보다 더 멀리 이동한다. 체장수는 그 길을 가장 자주 걷는 타인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체를 손보며 세상 소식을 엮는 사람, 어느 날은 체 대신 얇은 책 두 권을 봇짐에서 꺼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엄주언이 느꼈을 충격은 전승 속 탄식 한 줄로 남아있다. “세상 부모도 공경 못 하면 불효의 죄를 짓는 것인데,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천주님을 모르고 미신을 섬기며 살아왔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이 문장은 묘하게 낯익다. 남인 선비들이 서학을 ‘지식’으로 접하다가 어느 순간 ‘신앙’으로 넘어가며 삶이 통째로 흔들리던 그 전환과 닮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약종의 「주교요지」는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에게 빠르게 길을 열어준다. 책은 머리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붙잡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천주실의」. 엄주언 등과 같은 초기 신앙인들은 「천주실의」,「주교요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뒤 신앙 공동체 형성에 기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마음 속 성지 천진암에 가다 그 뒤로 엄주언은 아마 체장수를 기다렸을 것이다. 봇짐에 체만 담은 사람이 아니라 질문과 답을 담아 다니는 사람, 어쩌면 스승이자 인도자였을 것이다. 이야기들이 쌓일수록 젊은 마음은 ‘보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신앙이 자라나면, 신앙은 발 딛고 설 자리를 찾는다. 신과 관련된 장소(천진암), 사람(이벽과 정약용 형제들), 그리고 흔적들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천진암으로 향한다. 1891년 무렵, 엄주언은 직접 천진암을 방문했다. 한때 천주교의 요람으로 기억되었으나 박해가 거세지던 당시 스님들까지 처형당하고 폐찰된 채 방치되었던 곳이다. 그 ‘마음속 성지’가 현실의 길로 다시 열리기 시작한 건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신앙의 자유가 일정 부분 허용되면서부터다. 엄주언이 천진암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역사적 ‘틈’ 덕분이었다. 이후 그는 천진암으로 이주하자고 가족에게까지 제안했으나 두 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몇 해 뒤 반대하던 두 형이 세상을 떠나자, 1893년 그는 맏형과 함께 천진암까지 두 발로 걸어가 한 달을 머물며 교리를 배운다. 그해 늦가을에는 막 가정을 꾸린 아내 윤희자(아가타)를 포함한 가족 7인을 이끌고 아예 천진암으로 터전을 옮긴다. 가족들은 움막 같은 거처에서 어렵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한다. 여기서 하나의 논쟁점이 남는다. 엄주언의 영세(세례) 시기와 집전 사제 문제다. 전승에는 1894년 엄주언이 형과 함께 프랑스 사제 ‘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다만 1894년 당시 성이 ‘목’인 프랑스 선교사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이를 리굴로(A. P. Rigoulot, 목) 신부와 연결하는 추정도 있으나, 그는 1897년 9월 26일 사제품을 받고 1898년 1월 5일 입국했기에 1894년의 집전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영세 시기가 1894년이 맞는다면 집전자는 리굴로가 아닌 다른 선교사였을 수 있다. 그동안 두세(C. E. Doucet, 정가미) 신부일 가능성도 거론되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산간 전교 활동과 1890년대 전후의 행적을 고려할 때 조제프 알릭스(Josheph Alix, 한약슬) 신부가 세례를 줬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불분명함이 그의 삶을 흐리게 하진 않는다. 누가 세례를 줬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왜 그 길을 택했는가’이기 때문이다. 냉대 이겨내고 고향 춘천에 정착 엄말딩은 천진암에서 3년을 보낸 뒤 고향 춘천으로 돌아오지만 기다린 것은 환대가 아니라 ‘천주학쟁이’라는 냉대였다. 거처를 장학리 노루목으로 옮겨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처가 친척의 도움으로 대룡산 자락 고은리 윗너부랭이의 폐가를 사서 이주한다. 쌀 한 가마, 콩 두 가마를 빌려 연명하고, 떡갈나무 잎을 따 죽을 쑤어 먹으며 화전을 일구었고, 이웃의 놀림과 수모도 견뎌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금주하며 근검하게 살았고, 밤이면 글을 아는 이들을 모아 교리와 성경을 가르쳤다. 한학을 배운 사람의 힘은 지식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으로 드러난다. 생활이 곧 설교가 되고, 절제가 곧 신앙의 언어가 된다. 시간이 쌓이자 사람들은 그를 대할수록 존경을 품기 시작했다. ‘장차 큰일 할 사람’이라는 칭송이 늘어났다는 전언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던 것이다. 곰실의 첫 씨앗은 거대한 성당이 아니라 이런 습관과 생활에서 시작되었다. 엄주언은 단지 ‘신자가 된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공동체의 형식으로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책으로, 이야기로, 발걸음으로 옮겨 다니던 믿음이 마침내 춘천의 한 산골에서 ‘삶의 방식’으로 싹튼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은 굵은 줄기가 되어 공소라는 이름과 강당이라는 공간을 얻고, 마침내 문서 속 역사로 자리를 잡게 된다. <계속> 이현준(프란치스코, 한림대 강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3.03
![[특별기고]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02/tiW1780360450650.jpg)
[특별기고]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레오 14세 교황 첫 회칙 「고귀한 인류」 톺아보기 (김태오 신부)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바티칸에서 회칙 「고귀한 인류」를 직접 발표하고 있다. OSV AI 시대, ‘사랑의 문명’을 재건하는 인간의 소명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가 5월 25일 교황과 주요 참석자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바티칸 새 시노드 홀에서 반포되었다. 「고귀한 인류」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35주년을 맞이한 지난 5월 15일에 서명되었고, 25일 공개 발표회와 함께 반포됐다. 공개발표회는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 안나 로울랜즈(영국 더럼 대학교 신학자) 교수, 크리스토퍼 올라(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 창업자), 레오카디 루숌보(캘리포니아 산타 클라라 대학교 예수회 신학대학원 정치신학 및 가톨릭 사회학) 교수,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회칙은 AI와 인간 존엄 관련 그리고 세계 평화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다룬 첫 사회 회칙이다. 그 배경에는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명이 인간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새로운 것들(res novae)”에 직면한 인류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이 놓여있다. 이번 회칙의 주요 내용은 소주제에 명시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 인간존재 보호함(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교황은 첫 회칙 공개발표회 마무리 발언에서 AI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위험요소에 대한 자신의 무거운 책임감을 표명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하나는 ‘AI를 무장해제(disarm)하는 것’이다.(회칙 110항 참조) 무장해제라는 강력한 언어를 교황이 선택한 이유는 AI 시대에 인류를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AI 시대에 기술을 가진 권력자가 자동으로 통치권을 갖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AI는 누구든 환영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AI의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교황의 AI 무장해제는 기술을 독점적 통제에서 해방하고, 토론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예로, 평화와 인류를 위한 핵 군축과 공동이익을 위한 핵에너지의 공동사용이다. 교황이 강조한 다른 하나는 AI가 ‘인류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I는 공동선을 건설하고 사랑의 문명(civilization of love)을 재건하는 ‘역사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 교황의 목소리다.(회칙 90항 참조) 교황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 이야기처럼, 모든 이가 함께 벽돌 하나하나를 쌓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의로운 공존을 이루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AI 시대에 소수의 특권층만이 아닌 인류 공동의 집을 위한 미래를 함께 건설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마니피캇의 성모님을 찬양하면서 발언을 마쳤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발표한 회칙 「고귀한 인류」. OSV 회칙의 구성 및 내용 회칙의 구성은 전체적 맥락을 요약한 서론과 결론, 그리고 본문 5장을 합해 총 5장 24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의 전개가 매우 진솔하고 세부적이며 논리적이다. 먼저 제1장은 교회의 사회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개괄적으로 제시하고(17~24항), 레오 13세 교황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회 교리 전통을 재조명하면서(28~45항), AI 시대 또한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임을 밝힌다. 사회 교리는 고정되고 정체된 매뉴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발전하는 “복음에 충실한 역동적 성격(dynamic character)”이다.(45항) 제2장은 먼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실체와 같은 사회 교리의 기초와 원리를 설명하며(46~58항), AI 시대의 “새로운 것들(new things)”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 교리의 핵심 원리들을 다시 정리한다(59~81항). △공동선(common good) △재화의 보편 목적(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보조성(subsidiarity) △연대성(solidarity) △사회정의(social justice)다. 회칙의 주요 내용은 제3장과 제4장에 있다. 제3장에서 교황은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technocratic paradigm)의 지배가 점점 커지는 위험을 분석하며(92~96항), 기술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인간의 주체성(지성, 양심, 자유 등)을 강조한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만들어진(built)’ 것이라기보다 ‘배양된(cultivated)’ 것에 더 가까워(98항)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다. 한마디로 AI는 “가치 있는 도구이지만 경계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AI 사용에 대한 책임성, 투명성, AI 거버넌스는 명확한 기준과 실질적 감독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108항), 앞서 언급한 AI ‘무장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110항) 마지막 부분은 우리 마음에서 투쟁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시와 두 사랑(Two cities and two loves)”을 언급한다. “두 사랑이 두 도시를 세웠다. 곧 하느님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시를 세웠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하느님 사랑이 하늘의 도시를 세웠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5일 회칙 「고귀한 인류」에 최종 서명하고 있다. OSV 제4장은 공동선으로서 진리·노동·자유의 보존을 강조하며, 전환의 시대에 사회 주요 분야에서 추진해야 할 인간 중심적 AI 활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AI 시대에 교육·노동·어린이·노동시장·금융·경제·가족과 청년 등 각 분야에서 야기될 수 있는 중요한 위험 요소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해법을 제안한다.(139~169항) 또 의존성과 상업화로부터 인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교황은 과거의 노예제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176항) 마지막 부분은 디지털 경제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에 대한 규탄이며,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제도·기업·중간조직·시민)이 강조된다. 제5장은 평화와 사랑의 문명에 관한 전망으로 나아간다. 교황은 AI 군비경쟁과 자율살상무기 개발을 강하게 경고하면서 ‘힘의 문화’가 아니라 ‘사랑의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182~211항) 교황은 회칙 서론에서 언급했던 성경적 이미지의 두 가지 상반된 길을 비교하면서, 권력과 교만에 의지하여 바벨탑을 쌓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느헤미야 시대처럼 인내하고 함께하면서 인간성과 공동선을 지키자고 요청한다. 결국 이번 회칙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레오 14세 교황이 언급한 바벨탑인가 아니면 느헤미야의 성벽 쌓기인가? 또한 힘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할 것인가? 김태오 신부(마리아수도회, 목포가톨릭대 교수)cpbc2026.06.02

책꽂이 _ 사람 관계에 도움 될 만한 책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자고로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법. 가정의 달을 맞아 스스로는 물론이고 가족·이웃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봤다. 일상을 새롭게 바꾸려면 / 안셀름 그륀 신부 / 황미하 옮김 / 성서와함께 2025년도 3분의 1이 지났다. 오래전에 작심삼일로 잊힌 새해 다짐은 차치하고 일상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에 사로잡혀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는 되풀이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온화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경우 회복이 필요한 지점부터 살펴보라고 권한다.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는 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의 가치를 알려 주고, 집중해서 일하고 싶은 이에게는 질서를 세우거나 행동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일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커다란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장마다 끝 부분에 저자의 제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방법들을 함께 실었다. “일을 마치면 그 문을 닫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집 안의 문들도 열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바깥일의 ‘문’을 닫지 않는 사람은 늘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영혼에 해롭습니다.”(159쪽) 산티아고 순례길 / 김아라·김창현 / 눈빛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번도 못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고 하던가. 이번 책은 부녀가 함께 엮었다. 2022년 봄과 2023년 가을, 홀로 산티아고의 모습을 담은 아버지의 사진에 딸이 글을 쓴 형식이다. 서로 이해하기 힘든 이른바 ‘꼰대 세대’인 아버지와 ‘MZ 세대’인 딸이 작업하는 동안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가족의 죽음과 상실로 겪은 방황과 갈등을 서서히 극복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은 아버지 김창현(아가피오)씨는 역사가 및 사진가이고, 글을 쓴 딸 김아라씨는 ‘마음과사람 상담소’ 소장이다. 만화 신약 성경 1·2 / 황중선 / 바오로딸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 신약 성경」이 출간됐다.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네 복음서의 이야기를 골고루 실었고, 읽기 쉽고 재미있게 편집했다. 성경을 담았지만 글자보다 그림이 많고, 등장인물의 표정과 장면의 색감이 다채롭다. 총 2권으로, 1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부터 유년시절·공생활·가르침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2권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수난과 죽음·부활이 전개된다. 사도행전 내용도 함께 수록돼 예수님 승천 후 사도들의 활약상과 사도 시대의 교회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재미있는 성경만화」(전 8권) 「굴뚝으로 들어간 니콜라오」 등의 책을 펴냈다. 바람타고 머물러요 / 임현아 / 레벤북스 「바람타고 머물러요」는 알 수 없는 힘이 인도하는 인생의 여행길에서 만남의 소중함을 담은 책이다. 꽃과 별, 부엉이와 거북이, 곰과 사슴 등이 등장하는 동화책 같지만 내용이 단순하지는 않다. 책 속의 ‘바람’은 진정 원하는 ‘바람(꿈)’을 상징하고 ‘별’은 소중한 ‘인연’들이다. 저자가 어릴 적 경험한 사랑과 이별을 서정적인 언어와 시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책의 내용을 영문으로 함께 수록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5.05.07
![산 자를 위한 위로의 레퀴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3)](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fdT1715067341708.jpg)
산 자를 위한 위로의 레퀴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3) 연중 제3주일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면서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2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힘들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오늘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경과 민족, 문화와 종교를 넘어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며, 특히 개발도상국과 분쟁·재난 지역에 있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핵심은 단순한 동정이나 일회성 시혜가 아니다. 문제를 연대(solidarity)와 공동 책임의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데 있다. 이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길이며, 부유한 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서로 돕고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함으로써 ‘보편 교회의 일치’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신자로서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책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 또한 해외 원조 주일의 중요한 목적이다. 세속적으로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돕는 날도 아니다. 주님을 같이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뜻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이 하느님께 간절히 바쳐온 기도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깊어진 신앙과 감사의 기도는 주님 안에서 우리 역시 함께 받는 숨겨진 선물이 된다. 종교와 문화, 인종이 다른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정성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작은 기쁨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답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흔히 듣는 ‘레퀴엠(Requiem)’은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다. 레퀴엠은 가톨릭 장례미사에서 불리는 통상문과 고유문을 바탕으로 한 음악 형식을 말한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비밀스러운 작곡 위촉과 작곡가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드라마틱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미완으로 남은 부분을 제자 쥐쓰마이어가 완성했음에도 역사상 최고의 레퀴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다. 라틴어 대신 독일어 성경의 가사를 사용한 이 작품은 다른 레퀴엠과 달리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고통받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를 담고 있다. 브람스는 인간의 상실과 슬픔 앞에서 심판·저주·공포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음악의 시작과 끝을 모두 살아있는 이들을 향한 위로로 채웠다. 브람스의 음악은 흔히 절대음악, 낭만적인 선율, 풍부한 화성, 그리고 클라라 슈만과의 길고 열렬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힘든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개인적 상실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는 자선을 ‘시혜’나 ‘공덕’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 곁에 함께 머무는 공감과 연대로 재정의했다. 브람스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독일 레퀴엠’ //youtu.be/jeCtv_2Zgu0?si=ne5RIvVvjttEXK84 해외 원조 주일은 “우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날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는가”를 묻는 날임을 상기하자. 작곡가 류재준cpbc2026.01.21
![[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06/vlE1746515454670.jpg)
[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년 2월 헌법재판소는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 권리를 보장했다. 그동안 성별 고지를 막아온 배경에는 오랜 남아선호 문화가 있었다.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아들, 특히 장남에게 의존하는 전통은 자연스럽게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딸은 결혼과 동시에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는 ‘출가외인’으로 여겨진 반면, 아들은 재산을 상속받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성경에서도 ‘장자권’은 두 몫의 상속권과 영적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을 얻을 때까지 아이를 낳는 부모도, 노후를 자식에게만 의지하는 부모도 찾아보기 어렵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자녀와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장남’(19.0%)보다는 ‘형편이 되는 자녀’(42.3%)나 ‘마음이 맞는 자녀’(24.9%)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인들 스스로 장남이나 아들에게 의지하는 노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음을 보여준다. 실제 노인 절반 이상이 부부만 함께 살고, 1/3은 홀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합계출산율이 0.7~0.8명대에 불과한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 노인세대의 현실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자기 돌봄(self-care)’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자녀나 가족이 아닌 스스로 노후를 돌봐야 하는 시대에 자기 돌봄은 필수적이다. 자기 돌봄은 단순히 자신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삶의 전 영역에서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며, 질병 발생 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노년으로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 자기 돌봄은 자녀나 국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의 역량이다. 자기 돌봄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신체적 돌봄’으로, 적절한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심리 정서적 돌봄’으로, 충분한 휴식과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통해 내면의 긴장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셋째는 ‘관계적 돌봄’으로, 가족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지지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적 자기 돌봄’으로, 기도와 명상, 자기 성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적 평안을 찾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맞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고 그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실천적 태도를 포함한다. 영적 자기 돌봄은 신앙인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돌봄의 영역이다. 독거노인 200만 명을 넘어선 100세 시대, 우리는 더 이상 자녀나 타인에게 기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자기 돌봄의 여정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절대자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는 데서 시작된다. 신앙 안에서 나를 정성껏 돌보는 일은 내 안에 머무시는 주님을 소중히 모시는 일과 같다. 나의 신앙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점검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진정한 자기 돌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맞이할 노년을 복된 시간으로 바꾸는 가장 확실한 열쇠다.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cpbc2026.01.21

예루살렘 피자발라 추기경, “전쟁에 하느님 이름 쓰는 중죄 범하지 말라” 경고미 국방부, 전쟁 정당성 부여에 시편 구절 인용 성지 이스라엘의 대표 교회 지도자인 예루살렘 라틴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 정당화에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OSV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해당한다”며 “하느님은 분쟁 속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종교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가톨릭 매체 OSV News에 따르면, 피자발라 추기경은 15일 국제 오아시스 재단이 주최한 웨비나 연설에서 이같이 밝히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이용하는 거짓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이후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과 관련한 발언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피자발라 추기경이 이처럼 강력 경고하고 나선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성경 메시지로 미국이 전쟁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10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전쟁 상황을 전하면서 시편 144편 1절 “나의 반석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내 손에 전투를, 내 손가락에 전쟁을 가르치시는 분”을 인용해 발언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만약 이 전쟁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중동 전역에서 죽어가고 고통받고 아파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받는 이들 가운데 계시다”면서 “이 분쟁에는 종교적 색채가 있지만, 그것은 조작된 것이며, 종교를 끌어들이려는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동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폭력이 “오늘 우리가 처한 인간적 파괴 상태”를 낳았다고 말했다. “폭력 위에 세워진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그것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주변에 공허를 만들어냅니다. 두려움, 원한, 증오. 이는 그리스도교 언어로 말하면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최근 브리핑에서 시편 구절을 인용해 전쟁 발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또 오늘날 전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보 또한 “분쟁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기자의 역할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독자가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가능한 한 정확한 해석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피자발라 추기경의 발언 이튿날 언론을 향해 “특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언론이 선전 도구가 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며 전쟁 ‘선전’을 반복하거나 권력자의 ‘대변자’가 되지 않도록 뉴스를 검증할 것을 촉구했다. 계속되는 폭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앞에서 한 이란 여성이 망연자실한 채로 잔해 더미 위에 앉아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또 가자지구 상황도 낱낱이 전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정보 차단 현실과 함께 인도주의적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약 200만 명이 피란 상태에 있으며, 영토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기본적인 항생제를 포함한 의료 물자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가자는 잊혀졌지만 상황은 여전히 절박합니다. 서안지구에서는 거의 매일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00만 명의 피란민이 모든 것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80%는 파괴된 상태이며 재건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36개의 병원이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약품이 부족하고, 항생제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하수구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사진으로는 그 냄새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피난민으로 전락한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피난 텐트가 밀집한 집에서 슬픔에 젖어있다. OSV “이 비극적인 상황이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악순환입니다. 하마스가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철수하지 않으면 하마스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교착 상태에 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포스트는 16일 미사일과 요격체 파편이 예루살렘 구시가지 일대, 유다인 구역, 통곡의 벽 인근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이정훈2026.03.19

위대한 스승 : 아우구스티누스 (01)[월간 꿈 CUM] 교회의 꿈CUM _ 예수, 그 이후 (42) 이탈리아 로마 성 아우구스티누스 대성당 많은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오해라는 나뭇가지 끝자락에 꽃을 피워보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적으로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야 금욕적인 신앙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레이보이가 아니었다. 물론, 「고백록」에 기록되어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가 17살 때 한 여인과 동거해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 방탕하게 놀아났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354년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아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당시 동거는 흔한 일이었다. 서기 300년대 중반 북아프리카에서는 17세 남성이 비슷한 또래 여성과 함께 사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고,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성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이 적었다. 세속적 쾌락과 향락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는 매우 엄격한 종교인이었다.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마니교는 어떤 종교였을까. 마니교의 어떤 점이 당대 지식인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을 뒤흔들었을까. 당시 지식인이라면 마니교가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삼위일체, 죽은 이가 살아났다는 부활 신앙, 예수의 몸과 피를 나눈다고 알려진 전례 등 그리스도교는 당시 지성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지식인들의 갈증을 한방에 풀어준 종교가 있었다. 마니교였다.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듯, 불교가 붓다(佛)의 가르침이듯, 마니교는 마니의 가르침이다.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 1882~1944)이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김희숙·정보라 옮김, 생각의 길, 2018)에서 정리한 마니교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페르시아인 마니(Mani)는 실존 인물로 3세기 초에 오늘날 이라크 남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오늘날 뉴욕만큼이나 국제적이고 다국어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성장한 마니는 불교, 그리스도교, 미트라교, 유대교에 고대 바빌론의 여섯 개 미신을 살짝 섞어서 자신만의 혼성 철학을 추출해냈다. 실제로 마니는 자신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붓다, 예수, 조로아스터로 이어져 내려온 예언자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마니는 여기에 악한 신과 선한 신이 인간의 영혼을 놓고 영원히 싸우고 있다는 고대 페르시아 신화를 섞어서, 악한 신은 구약성경의 야훼와 연결하고, 선한 신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본래 혐오스럽고 천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끊임없는 육신의 고행을 통해 세속적인 야망을 버리려 노력해야 하고,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섭생과 행실 규율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악의 신의 마수에 걸려 지옥 불에 타게 되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 이상한 사람 마니는 자신의 사상을 모든 인류에게 설파하겠노라고 장담했다. 먼저, 인도와 중국을 방문했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마니가 성공을 거두자 수입원을 잃게 된 페르시아 승려들은 마니를 박해하고 죽였다. 하지만 마니교는 붕괴되지 않았다. 선지자의 사상은 빛가루가 되어 유럽과 아시아 땅으로 멀리멀리 흩뿌려졌다.” 그렇다면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마니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마니교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입교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20세에 ‘듣는 자’ 단계로 입교한 후, 9년이 지나도 다음 단계인 ‘선택된 자’로 승급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돌연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내막이 불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폴 존슨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첫 번째 요인은 ‘건강문제’다. 그에게는 심신질환(심리적인 원인으로 신체에 일어나는 병적인 증상)이 있었는데, 이러한 건강 결핍은 마니교 교리에 따르면 악에 사로잡힌 사람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였다. 두 번째 요인은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의 영향이다. 삶의 진리를 깨닫고 영적인 해방을 원하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암브로시우스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교회는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함께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의 추종자가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와 자신의 신앙을 실천에 옮기고, 동시에 신앙적 사유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당시 기세를 떨치고 있었던 이단들의 주장에 대항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신앙을 정립한다. 이때 저술된 그의 저서들은 이후 가톨릭 신학의 주춧돌이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우리나라 조선 시대 이황과 기대승의 이른바 ‘사칠논쟁’(四七論爭)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유명한데, 이야기 위주로 전개되는 이 원고에서는 그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 정립 역사에 대해 궁금한 독자라면 이 부분에 대해별도로 자세히 들여다 보기를 권한다. 성적인 문제에 대한 관대함, 해방된 인간을 강조한 펠라기우스적 주장과 인간을 무력한 아이로 보고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종교적 엄격함을 견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불꽃 튀며 맞붙는 그 지점이 흥미진진하다. 이 논쟁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주장의 핵심은 하느님의 은혜가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가 정립한 ‘죄’ 및 ‘악’과 관련한 사유는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식의 도약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여겼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악용하여 세상의 악한 일들이 일어났으며, 악은 더 큰 선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입장은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졌고, 오늘날 우리도 이 논증을 기반으로 사유하고, 믿는다. 이밖에도 죄와 벌, 구원 등 대부분 우리가 믿고 있는 교리가 상당 부분 아우구스티누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의 위대한 스승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이단에 대적해 그리스도교의 주춧돌을 놓고, 정통 신앙을 수호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나, 생애 마지막 순간에 혼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025.12.07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저는 믿나이다] (49) 하느님의 어머니 가톨릭교회는 세 번째 보편 교회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성모 마리아의 칭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심을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하느님의 어머니’, 모자이크, 튀르키예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가톨릭교회의 정통 교리가 선포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 고백을 하기에 이르는 데에는 고대 교회의 두 신학파가 크게 공헌했습니다. 바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 안티오키아 학파입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관념과 사변적 성향이 강해 성경과 교리 내용을 은유와 비유(우의-寓意)로 설명했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과 교리 내용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자의-字意)로 해석했습니다. 이 두 학파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신학 논쟁 끝에 4세기 교회는 두 차례의 보편 교회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문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선포했습니다. 5세기 들어 교회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교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온전히 일치해 ‘하나의 본성’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구분되고, 의지적 결합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두 학파 간 대립은 마리아께 대한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 테오토코스) 칭호를 둘러싼 논쟁으로 표출됐습니다.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된 네스토리우스(381~451)는 성전이 하느님의 거처이듯 마리아는 하느님이 거하는 인간 예수를 낳았을 뿐이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Χριστοτοκος)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380~444)는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요한 복음 1장 1절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바탕으로 인간 예수가 바로 성자 그리스도이시기에 성모 마리아를 당연히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3세기 이후 200여 년 동안 별 문제 없이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러온 그리스도인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신자들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비롯한 안티오키아 학파 신학자들을 비난하고 반발했지요. 성 치릴로는 교황에게 네스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며 이단으로 고발합니다. 이에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은 430년 8월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교회에서 추방합니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불복해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공의회 소집을 요청합니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31년 6월 22일 에페소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공의회를 개최했습니다. 3명의 교황 사절을 비롯한 주교 198명이 참석했습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느님이자 영혼과 육신을 갖춘 온전한 인간이라는 치릴로의 주장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며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432년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 선종 후 즉위한 성 식스토 3세 교황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간의 대립을 종식하고 교회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화해를 주선합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교회 주교들은 교황 뜻에 따라 일치를 이루며 안티오키아의 요한이 433년 봄에 작성한 일치 정식 서한을 교황에게 보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지닌 완전한 인간이시며, (모든) 시대 이전에 신성에 따라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마지막 날에 우리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 인성에 따라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바로 이분께서 신성에 따라서는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인성에 따라서는 우리와 본질이 같으심을 고백합니다. 두 본성이 일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이신 아들, 한 분이신 주님을 고백합니다.”(덴칭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100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요약하면, ‘마리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에 그분의 어머니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시다는 정통 교리를 확립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에페소 공의회를 다음과 같이 공적으로 평가합니다. “네스토리우스 이단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인간적 위격이 하느님의 아들의 신적 위격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맞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와 431년 에페소 제3차 세계 공의회는 ‘말씀’은 영혼으로 생명력을 지니게 된 육신을 위격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일치시키심으로써 인간이 되셨다고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 외에 다른 주체를 가지지 않는다. 이 제2 위격은 잉태 때부터 인성을 취하시어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에페소 공의회는 431년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태중에 인간으로 잉태함으로써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0.29

현세에서 선행에 힘쓰며 교회 가르침에 맞게 살아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7)티토에게 보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생각해 현세에서 함부로 살지 말고 선행에 힘쓰며 교회의 건전한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티토 성인. 성경학자들은 경전 내용과 교리 가르침이 비슷한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과 티토에게 보낸 서간(이하 티토서)을 ‘사목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이들 세 서간은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보낸 개인 서간일 뿐 아니라 원로 사목자가 젊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직분과 실천해야 할 삶의 지침을 제시한 ‘공적 서간’입니다. 아울러 사목 서간들을 바오로 사도의 친필 서간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 대다수 성경학자는 이들 세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가 쓴 ‘제2 바오로 서간’으로 규정합니다. 티토에 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티토는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에 몇 차례 나오지만, 루카가 쓴 사도행전에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티토는 헬라스 곧 그리스 사람으로 바오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49년께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예루살렘 사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날 때 티토를 유다인이 아닌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로서 데려갑니다.(사도 15장 참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티토가 안티오키아 출신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고 어머니가 유다인이었던 티모테오와 달리 티토는 온전히 이방인이어서 바오로 사도에게서 할례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도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티토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주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됩니다.(갈라 2,1-3) 티토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리스 철학과 시학을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세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통역자이자 비서·협력자로 활동하게 되지요. 에페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바오로 사도를 대신해 코린토로 가서 코린토 신자들이 겪는 갈등과 교리적 의문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뿐 아니라 할례와 정결례 등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자들과 자신들의 광신적 생각과 이론을 전파하던 영지주의자들을 힐난하고 바오로 사도의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코린토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 일로 티토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큰 호감을 얻습니다.(2코린 7,7 참조) 그래서 마케도니아에서 티토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티토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가 여러분의 그리움과 여러분의 한탄, 그리고 나에 대한 여러분의 열정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위로 말고도, 우리는 티토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이 여러분 모두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토는 여러분이 모두 자기를 두려워하고 떨면서 맞아들여 순종한 것을 회상하며, 여러분에게 더 큰 애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2코린 7,7.13.15)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티토를 “내 동지이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2코린 8,23)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티토를 “나의 착실한 아들”이라며 그를 사랑했지요.(티토 1,4)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대한 티토의 믿음과 복음 선포에 관한 그의 열정과 능력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뒤를 이어 크레타 섬에 있는 여러 공동체의 조직을 마무리 짓도록 책임을 맡깁니다.(티토 1,5) 티토는 바오로 사도의 지시에 따라 크레타 섬에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했습니다.(티토 1,5) 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인 된 새 신자들에게 옛 생활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직하고 착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이후 티토는 바오로 사도가 파견한 아르테마스와 티키코스에게 임무를 넘겨주고 니코폴리스에 있는 바오로 사도를 찾아갑니다.(티토 3,12)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당부로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인 아드리아해 동쪽 달마티아로 가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2티모 4,10) 교회 전승에 따르면 티토는 달마티아에서 크레타 섬으로 돌아와 초대 주교로 사목하다 93세 나이로 선종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니티나에 안장됐고, 823년 사라센인들이 이곳을 침공할 때 그의 유해(머리)를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티모테오와 함께 1월 16일을 그의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 대부분은 티토서가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에 의해 쓰였다고 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Τιτον’(프로스 티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Titu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티토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티토서는 총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티토서는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교회 제도와 지도자와 신자들의 올바른 태도에 관해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티토서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내용과 유사하게 유다인들의 잘못된 가르침, 어리석은 논쟁, 율법 논란으로 말미암은 해악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 재림의 날을 생각하며 현세에서 함부로 살지 말고 건전한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선행’에 힘쓸 것을 강조합니다.(2,11-15)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8.28

손빈(孫臏)의 병법으로 요셉처럼 말하다![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4) 사마천의 「사기」 「손자오기열전」은 병법의 대가 손무(손자), 손빈, 오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손빈(孫臏)은 손무(손자)의 5대손인데 ‘臏(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정강이 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처럼 손빈은 오나라에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다리를 잃은 불구였습니다.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수레를 타고 군사를 지휘했던 병법의 대가, 손빈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으로 삶의 지혜를 더듬어 봅니다. 어느 날 오나라에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두 다리를 잃은 손빈에게 제나라 사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신은 손빈을 몰래 빼내어 제나라로 데리고 갑니다. 제나라에서 전기라는 장군의 빈객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수레를 몰고 활을 쏘는 내기를 할 때마다 전기는 번번이 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상황을 판단한 손빈이 한 말이 아래 구절입니다. 말의 속도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상중하 등급의 무리가 있다. 馬足不甚相遠 馬有上中下輩 경기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3대가 한 조가 되어 상대 수레와 순서대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었는데 전기의 문제는 상·중·하급의 수레를 늘 순서대로 맞붙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이 등급마다 조금씩 빨랐으니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죠. 병법의 대가 손빈이 전기에게 많은 돈을 걸게 한 후 상황을 판단하여 다시 계책을 마련해 줍니다. “제일 느린 하급 수레를 상대의 상급과 붙게 하고, 상급 수레는 상대의 중급, 그리고 중급 수레는 상대의 하급 수레와 붙게 하십시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 1패 뒤 2승으로 내기에서 이기게 되는 것이죠. 같은 말과 수레이지만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한 쪽 방향만을 고집하면 어리석은 이가 됩니다. 그것에 허점이 있다면 같은 조건이라도 방식을 달리하면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할 때도 완전 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패턴’을 파악한 후 ‘분해’하여 ‘재결합’한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재료라도 분해하여 재결합하면 새로운 창조적 예술이 무한히 탄생하듯, 우리가 사는 삶도 환경과 조건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어 재결합해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나보다 강한 타자가 있고, 살다 보면 나보다 부자인 타자가 있으며, 살다 보면 나보다 앞서 있는 타자가 있습니다. 내 의자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대상들입니다. 인간은 현실 사회의 경쟁 속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 또한 내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운명입니다. 그런 조건과 환경에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하던 방법으로만 삶을 살면 늘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5) 이 구절은 요셉이 이집트에서 형제들에게 한 말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고, 누명으로 감옥까지 떨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재상이 되어 형제들과 모든 가족 무리들이 이집트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연약한 요셉을 앞서 보내신 이유였습니다. 하느님은 병법의 대가처럼 약한 요셉을 앞서 이집트에 보내어 다른 어떤 민족보다 큰 민족이 되도록 계책을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1패 뒤에 얻은 2승, 3승의 승리였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늘 패배자 같고 실패자로 살아가시나요? 환경과 처지를 탓해도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우리의 병법가로 모시고 오늘 하루 삶의 가치와 배열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버렸던 가치를 앞서 보내고, 순서를 바꾸면 비록 지금 내 삶이 1패 할지라도 일생, 영생은 2승, 3승 하여 승리할 것입니다. 삶의 배열과 조합을 바꾸는 것, 그 안에 창조적 인간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손빈처럼 빈(臏)의 처지로 무릎 꿇고 있지만, 손빈의 병법으로 요셉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 나를 그리고 세상에 버려진 가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07.15

초기 교회에서 이방인 포용에 앞장선 야고보 [저는 믿나이다] (2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 교회 전승은 작은 야고보로 불리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열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페드로 오렌테 작 ‘작은 야고보 사도의 순교’, 유화, 1639년, 스페인 발렌시아 벨 예술 박물관.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세 명 등장합니다. 이들 중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인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제베대오의 아들을 ‘큰(大) 야고보’라 하고, 알패오의 아들을 ‘작은(小) 야고보’라 부릅니다.(마태 10,3;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나머지 한 명은 예수님과 형제(마르 6,3; 마태 13,55-56)이며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갈라 2,9)으로 존경받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19)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봅니다.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이 둘을 동일 인물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경전 중 하나인 ‘야고보 서간’을 알패오의 아들로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가 쓴 것으로 여겨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 사이에선 알패오의 아들과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요한 7,5)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라는 복음서의 증언처럼 예수님의 형제 곧 친척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라는 말을 들으며 배척당하셨을 때에는 이미 열두 사도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셨다고 설명합니다.(마르 6장 참조) 그리고 무엇보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주님의 형제들을 언제나 구별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사도 1,13-14; 1코린 9,5; 15,5-8) 또 야고보 서간의 저자는 ‘알패오의 아들’ ‘주님의 형제’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어 같은 인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상 신약 성경에서 그가 작은 야고보라 불렸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행적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 다른 하나가 있네요. 그의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 죽음을 지켜봤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빈 무덤을 목격한 성모님 친척인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55-56)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루카 24,9-10) 등이 소개됩니다. 이제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교회 전통에 따라 작은 야고보 사도를 소개합니다. 이미 밝힌 대로 교회 전통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활동했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봅니다. 그는 큰 야고보라 불리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가 44년 4월께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돼 순교한 후 예루살렘 교회를 맡아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사도 12장 참조) 그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열어 이방인들을 할례 없이 교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당시 교회 구성원의 한 축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한 축인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 율법을 따를 것과 할례를 받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했지요. 그래서 사도들은 이 난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때 작은 야고보 사도는 모든 사도가 동의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모세의 정결례 법’만은 준수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 우상숭배 행위와 불륜, 그리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사도 15장 참조) 이처럼 작은 야고보 사도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초기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야고보 서간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실천할 것을 권고합니다. 야고보 서간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삶에서, 무엇보다 이웃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에서 완성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26) 1세기 말 저서 「유다 고대사」에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작은 야고보 사도가 62년 예루살렘 최고 의회 대사제 아나니아(사도 23장 참조)의 명으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반면 에우세비오 「교회사」는 야고보 사도가 성전 꼭대기에서 내던져졌음에도 죽지 않아 몽둥이질을 당해 순교했다고 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5.28

전쟁 상처 위에 세운 ‘화해의 집’[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27.안동교구 점촌동본당 동로공소 동로공소 제단. 소박하게 꾸며진 제단이 어떤 화려함보다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준다. 동로공소는 적성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안동교구 점촌동본당 동로공소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 여우목로 2797-6(적성리 571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로(東魯)는 ‘동쪽 노나라’라는 뜻이다. 노나라는 공자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따라서 동로를 ‘동쪽 유교의 본고장’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동로는 삼국시대 때부터 영남 동북부권으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었다. 소백산맥 줄기인 하늘재를 넘어 꼭두바위 고개를 곧장 오르면 해발 620m의 여우목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동로면 적성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여우목’은 말 그대로 여우가 다니는 고갯길이다. 여우가 다닐 정도면 상당히 깊은 오지다. 이 깊은 산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에 조선 왕조의 박해를 피해 교우촌을 이루고 숨어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여우목 교우촌을 처음 일군 이가 성 이윤일(요한)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도 홍주에서 상주 상골을 거쳐 문경 최동북단에 위치한 여우목으로 숨어들었다. 곧이어 서치보(요셉) 가족도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충청도 청원에서 이곳으로 피신했다. 또 순교자 박경화(바오로)와 그의 아들 박사의(안드레아) 가족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 여우목에 정착했다. 동로공소는 6·25전쟁 당시 적성리 전투로 무너진 성의 돌들로 지었다. 동로공소 전경. 동족상잔의 비극 서린 돌들로 지어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11월 18일 문경 관아 포졸들이 여우목 교우촌을 습격했다. 교우촌 회장 이윤일을 비롯한 많은 교우가 체포됐다. 이들은 문경 관아에서 3일간 뭇매를 맞은 뒤 상주로 이송됐다. 상주에서 한 달여 옥살이하면서 이윤일은 9차례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이윤일은 1867년 1월 경상 감영이 있는 대구로 압송됐고, 1월 21일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서치보는 여우목에 들어온 이듬해 선종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서인순(시몬)과 서익순(요한), 서태순(베드로)은 1860년께 경산 모개골 교우촌으로 이주했다가 병인박해 때 체포돼 1868년 대구 감영에서 옥사했다. 동로공소가 자리한 적성리는 6·25전쟁 격전지였다. 1951년 1·4 후퇴 며칠 뒤인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국군 300여 명이 북한군 3000여 명을 상대로 1대 10의 치열한 전투를 벌여 기적같이 승리했다. 국군이 전사자 3명, 부상자 4명뿐인 것에 비해 북한군은 전사자 1057명, 부상자 900여 명에 달했다. 마을 주민 100여 명이 죽창과 곡괭이를 들고 합세해 국군을 도왔다. 군과 주민들이 함께 이룬 승리였다. 제6대 점촌동본당 주임으로 1956년 7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사목한 아르놀도 렌하르트(Arnold Lenhard, 한국명 노도주, 1905~2003) 신부가 적성리 격전지 1653㎡(500평)를 사들여 그 위에 건평 132㎡(40평) 건물을 지어 1960년 11월 27일에 동로공소를 설립했다. 동로공소는 적성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언덕에 자리한다. 북서쪽으로는 소백산맥이, 그 반대편으로 태백산맥이 우뚝 솟아 있다. 공소 뒤편으로는 백두대간 황장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천주(天柱)봉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풍수를 모르는 이가 봐도 명당 중의 명당이다. 렌하르트 신부는 적성리 전투 당시 북한군의 공격으로 무너진 방공호 축대의 돌들로 동로공소 외벽을 장식했고, 창문과 양철 지붕은 공평성당 자재를 옮겨와 사용했다. 어떤 이들은 방공호 축대 돌들이 아니라 적성리 전투 때 북한군이 미군의 포격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돌들이라고 했다. 그 돌의 쓰임새가 어떠했든 동로공소는 동족상잔 비극의 상처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름 모를 많은 젊은이가 그 돌 위로 비참히 쓰러져 세상을 마감했고, 그들의 피가 공소가 서 있는 대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비극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받아들인 침묵의 증거물들로 하느님의 집을 지어 그 집 안에서 지금까지 ‘화해’와 ‘평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인 상호 작용을 한다. 둘은 결코 나뉠 수 없다. 단 먼저 화해해야 한다는 순차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아마도 중국 간도 연길수도원 선교사로 활동하다 공산 당국에 체포돼 2년 넘게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했던 렌하르트 신부는 같은 민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선 먼저 기도 안에서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비극의 현장 위에 그 목격 증거물인 돌들로 공소를 지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움 간직 지금의 동로공소는 2010년 12월 수리비 1000만 원을 들여 개축했다. 2011년 7월 동로공소 공원화 추진 사업에 의해 잘 조성된 돌계단을 따라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면 제일 먼저 성모상이 반겨준다. 그 뒤로 돌집 동로공소가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성당 건축사에 있어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 이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외형을 화강석과 같은 단단한 돌로 치장하고 종탑을 정면 중앙에 배치하는 성당 건축 양식이 두드려졌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든든한 성채처럼 성당에서 하느님의 견고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 성당 내부도 공간을 나누는 기둥들을 없애버리고 강당 형태의 밋밋한 구조로 마감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성당 기능을 우선해 형태미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 시기 지어진 대표적 성당이 춘천 죽림동주교좌·원주 원동주교좌·서울 돈암동·김포성당 등이다. 동로공소 또한 당시 유행하던 이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단단한 돌로 외벽을 장식했고, 종탑을 입구 정면에 뒀다. 내부도 강당식으로 기둥 하나 없이 단순하게 지어졌다. 때때로 화려함보다 단순함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더 자극한다. 비움으로써 투명해지듯 전례에 꼭 필요한 것만 채워져 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성당으로 감동을 준다. 동로공소가 그렇다.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화려하다. 예수 성심상을 지나 공소 안으로 들어서면 사물이 비칠 만큼 윤이 나는 나무 바닥에서 공소 교우들의 정성을 느낀다. 제대 위에 펼쳐진 성경이 교우들의 열성을 웅변한다. 제대와 십자가, 예수 성심상, 성모상으로 꾸며진 소박한 제단이 아름답다.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풍금이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음향을 채워주고도 남는 듯하다. 동로공소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는 말씀처럼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임을 느끼게 해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6.07.01
![[축하메시지] 한국평협 최홍준 회장 등](//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12_1.2_titleImage_1.jpg)
[축하메시지] 한국평협 최홍준 회장 등 진리 선포와 복음화 향한 더욱 힘찬 발걸음 내딛길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최홍준 회장 축하와 감사, 평신도에 대한 사랑을 부탁합니다! 창간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한 평화신문과 신문 종사자, 평화방송 모든 분에게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쳐 드립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동시에 이 매체가 우리 신앙생활의 동반자로서 소명과 사명을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신자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사도직의 소명과 함께 선교사명을 하느님께 직접 받는 것과 같이, 교회 언론 또한 복음화의 소명과 사명을 안고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렸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평화신문은 소식을 전달하는 소임뿐만 아니라, 신학의 깊은 부분은 쉽게 풀어주고, 교회의 높고 먼 위치의 부분은 일반 신자가 더 잘 접근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몫도 성심껏 해주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에 개막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내용을 현실 감각에 맞춰 풀이해주는 노력은 이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 많이 쏟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에게도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교회 신문과 교회 방송에도 관심을 둬주셨으면 합니다. 주일미사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면서 주보를 놓고 가는 신자가 없었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 교회 매체를 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전국가톨릭경제인협의회 유영희 회장 청년으로 성장한 평화방송ㆍ평화신문.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는 소명으로 지난 25년을 지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는 소명의 실천이 얼마나 힘들고 또 중요한 일인지는 지난 25년 역사가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소명을 다하기 위해 진력해 온 방송과 신문 관계자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교회가 당대의 인류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은 지난한 일입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신문의 이름에서 지향하는 평화와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조직에 대한 어두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현실은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십자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 십자가 너머에서 부활을 맞으셨듯이 쓴 말 속의 달콤함을 알게 하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지혜가 오늘날 하느님 백성들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반세기를 향한 용기있는 발걸음을 응원합니다.한국가톨릭여성단체협의회 김연숙 회장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합니다. 더욱이 신앙의 해에 맞이하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25돌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사 모든 분에게 주님 사랑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서는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에서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참으로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라고 하셨습니다. 내적, 외적으로 신앙의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와 신앙인들이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좋은 안내자가 돼주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점에서 교회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 교리서 공부나 성경말씀 해설은 아주 시의적절하고 유익한 내용이어서 감사한 일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도 한 줄기 말씀의 빛으로 정화되고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 줍니다.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말씀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리고 세상 속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는 평신도들 모습도 조금 더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김태식 회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창립 25주년을 언론인으로서, 시청자로서 그리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반세기 연륜을 쌓아오면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이제 한국 천주교회 대표적 교회 언론으로서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류 열풍은 세계 각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회의 국제적 위상 또한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우리 교회를 세계에 알리는 국내 미디어 역할은 아직까지 매우 미비한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 영자 매체나 외국 언론들이 중요 사안을 보도하기는 하지만, 매체 특성상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외국 언론의 경우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 독자 입맛에 맞게 다루기 때문에 우리 뉴스를 우리 시각으로 정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기회를 빌려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SNS 등 첨단 매체를 통한 선교와 보도 활동에 중점을 두는 한편, 세계인에게 한국교회를 정확하게 알리는 소명도 다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국제적인 뉴스 미디어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꾸르실료 한국협의회 정주영 회장 사반세기 세월은 축하를 받을 만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삶의 기본 요소가 됐습니다. 그래서 전파와 활자를 통한 복음선포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세월 여건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서도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앞으로 25년 후 금경축을 맞이할 때에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특히 지금은 하느님 백성 모두가 신앙의 해를 살면서 증거자 역할을 더욱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고 그렇게 사는 것을 몸에 익혀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청년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세상 복음화 사명을 완수하는 데 선봉에 서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한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김현조 회장 창립 25주년을 맞은 평화방송ㆍ평화신문과 종사자 모든 분께 축하 인사드립니다. 세상을 이끄는 힘의 중심이 사상과 경제를 넘어 여론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는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위치가 정말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세속 언론들은 지배욕으로 주도권 다툼과 편 가르기에 빠져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직 진리 자체인 하느님을 증언하고 복음전파의 사명 수행을 위해 노력해온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모든 언론의 귀감임이 분명합니다. 역경의 나날인 신문팔이 소년 신세를 거쳐 청년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악이 아무리 날뛰어도 한 번도 선이 패배한 적이 없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저희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보호하는 하느님의 표징으로서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교회는 물론 더 큰 사회적 소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ME한국협의회 대표 이제빈,윤봉희 부부, 최준웅 신부 한국 ME 20만 가족과 함께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복음을 전하는 언론매체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 증진을 위해 경영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어려움에도 난관을 잘 극복해오셨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다양한 활동과 소식을 체계적으로 현실감 있게 보도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일깨워주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환경문제와 관련된 심층 보도는 복음화 사명을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미사 전례와 기도 등 영성 관련 글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스승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도착하는 평화신문을 기다리며 우편함을 바라보는 이유이겠지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사회의 밝은 면을 보도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도 희망을 품게 해 주십시오. 사회의 어두운 곳에는 착한 손길이 이어져 밝은 곳으로 변화해 가도록 해주십시오.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김칠연 단장 세상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모든 분께 주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25년은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영적 성장에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달된 교구장님 사목 지침은 단원들의 활동 목표가 됐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봉사활동 사례는 우리를 채찍질했습니다. 자칫 활동으로 소홀할 수 있는 단원들에게 영성 칼럼과 신부님 강의는 우리가 주님 포도밭의 일꾼으로서 삶의 영성을 일깨워줬습니다. 활동 대상자 가정을 방문하면 평화신문을 종종 발견합니다. 병원을 방문해보면 평화방송을 통해 위로를 얻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항상 친구 같은 방송, 친구 같은 신문으로 함께해 주시고 빛과 소금이 필요한 곳의 소식을 자주 들려주십시오.레지오 마리애 대구 세나뚜스 류해석 단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창립 25주년을 마음속 깊이 축하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창립 이후 안으로는 국내외 보편교회 소식과 입장을 대변하고, 신자 재교육의 장이 되어 왔습니다. 밖으로는 사회적 사건에서 교회 견해를 밝히는 정론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대표적인 가톨릭계 주간지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정보화 시대를 사는 지금, 대중매체에 의한 복음화가 더욱 촉망받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방송과 신문이라는 매체는 주님 오시는 길을 미리 닦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내면서 예언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복음화의 도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에 갈채와 성원을 보내며 앞으로 미디어를 통한 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은총의 시기에 전국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함께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광주 세나뚜스 김광희 단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대를 인정하고 이웃과 자연과 상생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사회의 어둡고 외로운 곳에 새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사회의 약자들 편에서 노력하신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독선과 편견, 불편부당함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사회적 공기(公器)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은일201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