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이는 별 [생활 속의 복음] 주님 성탄 대축일 (요한 1,1-18) 카라바조 '목자들의 경배'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이고, 그 반짝임은 시간적으로 상당히 오래전의 광채이다. 지금 보는 별은 이미 소멸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야에 포착된 별 하나가 무언의 신호처럼 자신을 향해 반짝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순간, 확률 차원에서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인 그 별은 관계 차원으로 진입하여 ‘단 하나’의 별이 된다. 공간과 시간의 격차에도, 별은 그 빛을 통하여 ‘나를 향해 반짝이는 별’로 다가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 결속력은 멀리 있는 행성을 가까이 있는 행성으로, 과거의 빛을 현재의 빛으로 재구성한다. 별과의 유대감은 저기와 여기(원근), 세월과 현실(시차)의 구분을 해체한다. 또 별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별과의 유대감은 내일과 다음날의 밤하늘에서도 반짝이는 별을 찾게 하기 때문이다. 특정해놓은 ‘그 별’이 아니더라도 별이 방출하는 ‘그 반짝임’을 통하여 유대감을 향한 갈망이 충족되길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반짝이는 별을 통해 과거를 오늘 보고 있고, 현재를 미래에도 보려고 한다. 성경은 약속-성취의 도식으로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고유한 역사를 기록한다. 일직선 시간 개념을 적용하는 유사종교의 접근 방식처럼 약속-성취의 도식을 삼시대 구분(성부 시대→성자 시대→성령 시대)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오류가 발생한다. 삼위일체 신앙에 따르면, 창조로부터 개시하는 구약 시대에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와 성령이 공동으로 활동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정점에 이른 신약 시대에 성자만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이 공동으로 활동하였다. 이는 ‘참 인간’으로 오신 구세주, 성자의 육화 신비에서도 감지된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보도와 연결되는 두 가지 수식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와 ‘동정 마리아를 통한 잉태’이다. 사도신경은 이를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표명한다. 교회 역사에 성모 공경이 활성화되면서 두 가지 수식어 중 마리아의 동정성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성자의 강생에서 일차적 요인은 성령의 역할이며, 이를 지원하는 이차적 배경이 마리아의 동정성이다. 성령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신앙의 확신을 제공하였고, 마리아의 ‘순명과 결단’(동정)으로 성부로부터 파견된 성자가 세상에 출생하였다.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성자의 강생은 세상의 시작부터 ‘함께 있었던’(먼) 하느님, 지금 ‘함께 있는’(가까운) 하느님, 보호하고 인도하며 ‘함께 있을’(어디서나) 하느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였다. 주님 성탄 대축일의 복음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한처음부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었던(먼) 아들 하느님이 ‘우리 사람과’ 함께 있는(가까운) 아들 하느님이 되셨고, 어둠 속에 헤매던 우리가 함께 있을(어디서나) 빛을 찾았다. ‘반짝이는 별’은 과거로부터 ‘있었던’ 별이고, 지금 보고 ‘있는’ 별이며, 내일도 밤하늘을 수놓고 ‘있을’ 별이다. 성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이렇게 인사해 보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5.12.17
![[신앙단상] 그리스도의 미사인 크리스마스, 성탄절](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2/16/1vn1765859689715.jpg)
[신앙단상] 그리스도의 미사인 크리스마스, 성탄절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 신앙생활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미사(Mass)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Christ)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시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희생 제사로, “파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Missa”에서 유래하였다. 그렇기에 성탄절은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땅에 파견되심을 기념하는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로 Christmas로 쓰이거나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ΧΡΙΣΤΟΣ)의 첫 글자를 따서 X-mas라 쓰이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는 마태오 복음서나 루카 복음서 등 신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탄생일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리스도께서 정확히 언제 탄생하셨는지는 알 수 없기에 불교의 ‘석가 탄신일’처럼 ‘성탄일’이라 하지 않고, ‘성탄절’이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동정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날이 3월 25일로 믿어진다”고 했는데, 여기에 기인하여 예수님 탄생을 9개월 후인 12월 25일이라고 보고 이날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초기 교회에서 전날 일몰에서 다음날 일몰까지를 하루로 보는 전통 기준에 따라 성탄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보다 훨씬 성대하며 대영광송을 바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를 봉헌한다.(12월 25일 저녁에 봉헌하는 미사는 성탄 낮 미사임) 5세기에 들어 레오 1세 교황은 ‘성육신의 신비(Mystery of Incarnation)’라는 이름으로 성탄 축일을 처음 공식화했다. 이후 식스토 3세 교황은 이 축일 바로 전에 자정 미사를 도입해 성탄 전례의 중심 요소로 자리 잡게 했다. 6세기에는 성탄 축일이 예루살렘에서도 기념되었으며,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탄절을 공휴일로 선언했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신자들이 비극을 견디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란치스코회는 예수님 탄생의 가난과 겸손을 강조하며, 하느님 모습이 처벌하거나 엄격한 신이 아닌, 겸손하게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희생된 예수님이라는 점을 부각해 위로하였다. 현재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성탄절은 예수님이 태어난 날, 선물을 주고 받는 날, 한 해의 마지막 공휴일이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가톨릭에서의 성탄절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을 축하하고, 예수님께 드리는 거룩한 희생 제사임과 동시에 초라한 마구간 구유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고, 겸손과 희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번 성탄절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생각하며 내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나의 겸손과 희생이 충분한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은 기뻐하며 신명이 날 것이고 또한 많은 사람이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입니다.”(「200주년 기념성서」 루가 1,14) 김기형(요셉)cpbc2025.12.17

교부 시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발전시킨 두 주역[저는 믿나이다] (38) 성 클레멘스 1세 교황과 헤르마스 헤르마스와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은 성경과 교회 전승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교리를 발전시켜 갔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이콘. 교부 시대 그리스도상의 특징은 그리스도인 마음에 자리한 ‘민중 신앙’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외경이 활발히 쓰이고 읽힌 시대에 예수의 생애에 대한 통속 신앙은 동정 탄생, 놀라운 별, 세례와 유혹, 변신(거룩한 변모), 저승에 내려가심 등 예수의 생애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헤르마스의 「목자」, 「클레멘스의 둘째 편지」, 「시빌라의 신탁」 등은 ‘고통받는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끌어안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박해받는 이들의 대중적인 그리스도상을 드러낸다. 예수를 예언자 중 하나로 본 에비온파, 양자설, 육화와 수난 문제를 비켜 가고자 했던 가현설, 인간의 보편적인 구원론을 설파하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이용했던 영지주의 등이 이단의 예이다. 영지주의와의 투쟁을 통해서 정통 신앙과 이단이 구분된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28쪽) 헤르마스의 저서들은 「디다케」, 「솔로몬의 시편」, 「바르나바의 편지」와 함께 전례·윤리·수덕·교리교육을 다룬 책입니다. 헤르마스는 비오 1세 교황(재위 140~155년?)의 형제입니다. 그는 사도 교부 시대 후반기인 130~140년께 「목자」를 저술합니다. 「목자」는 다섯 가지 환시와 열두 가지 계명, 열 가지 비유로 구성돼 있습니다. 「목자」는 고대 동방 교회에서는 성경의 정경으로 분류돼 전례 때 공식 봉독될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가서 탑을 세워라. (⋯) 그들은 이미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으며, 하느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 네가 그들과 한자리에 앉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그들이 행한 것을 행하고 견디어 낸 것을 견디어 내는 모든 사람도 그들과 함께 앉을 수 있을 것이다.”(하성수 역, 헤르마스 「목자」, 셋째 환시 중에서) “이 바위와 문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 하느님의 아들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 이전에 태어나셨으며, 창조 때는 아버지의 조언자이셨다. 이 때문에 바위가 오래되었다. (⋯) 그분은 종말 전 마지막 날에 나타났기 때문에 문이 새것이다. 이는 구원받아야 하는 모든 이가 문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 문은 하느님의 아들이고 주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느님의 아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분께 갈 수 없을 것이다.”(하성수 역, 헤르마스 「목자」, 아홉째 비유 중에서) 헤르마스 「목자」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표현으로 요한 복음서의 ‘로고스’나 ‘영’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육화한 로고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헤르마스 「목자」에 등장하는 ‘주님’과 ‘하느님의 이름’ 또는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 하느님 곧 천주 성부와 그 외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 두 위격에 대한 이해와 표현은 유다교의 유일신 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관념입니다. 여기서 20세기 저명한 신학자 알로이스 그릴마이어 추기경의 헤르마스 「목자」에 드러난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해석을 살펴봅시다. “‘오래된 바위’는 창조 전의 아들의 선재와 아버지의 조언자로서 창조의 중재자 역할을 상징한다. ‘문’은 세상 안에 아들이 계시된 것과, 아버지에게 가는 길을 준비하는, 그의 유일한 구원 업적을 말한다. 그는 유일한 문, 곧 주님께 이르는 유일한 통로이다. 비록 여기에 육화에 대한 아무런 암시가 없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구원에 있어서의 중재자 역할은 분명히 창조에 있어서의 중재자 역할과는 다르다. 하지만 구원 역시 하느님 아들의 ‘이름’과 연결된다.…헤르마스의 목자는 이름-신학을 하느님 아들의 선재와 중재자 역할을 인정하는 것과 명확하게 연결시킨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296쪽) 헤르마스보다 앞서 요한 사도가 아직 에페소에서 살아 활동하고 있을 때 로마의 주교로 사목했던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은 96년께 저술했던 최초의 교황 사목 서간인 「코린토인(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씁니다. 클레멘스 1세 교황은 이 사목 서간에서 자신의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을 펼칩니다. “사도들은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의 선포자들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며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오신 분들입니다. 따라서 그분들의 오심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질서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사명을 받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실히 확고해졌고, 그다음 성령께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나가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와 지방에서 말씀을 설교하면서, 그들의 첫 번째 사람들을 성령 안에서 미리 심사한 후 미래의 신자들을 위해 주교와 부제로 임명하였습니다.”(황치헌 신부 역,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75쪽)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은 「코린토인(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님의 메시아적 복음 선포 안에 이미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사도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구원 경륜에 동참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이처럼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의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한 ‘성경’과 ‘교회의 전승’을 토대로 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교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틀이지요. 리길재 전문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06

성인의 환대 영성으로 발달장애인의 꿈·행복 돌보는 ‘통진 프란치스코집’['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특별 희년' 프란치스칸 공동체 탐방] (1) 통진 프란치스코집 통진 프란치스코집 이용인들과 의정부교구 후곡본당 빈첸시오 회원들. 발달장애인 14명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2001년부터 꼰벤뚜알 수도회가 운영 맡아 2018년 법인 시설로 전환·전문 인력 갖춰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복지 시설 구성원들, 인근 본당 미사 참여하며 교류 성인 유해 모신 시설 내 경당, 특별 개방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의 한적한 언덕길 끝. ‘통진 프란치스코집’ 대문은 24시간 열려 있다. 남성 발달장애인 14명이 살아가는 이 작은 공동체는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지역 사회와 교회 안에서 프란치스코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특별 희년을 맞아 프란치스칸 공동체를 찾아간다. 그 첫 번째는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곳인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운영하는 ‘통진 프란치스코집’이다. 커피 내려드릴까요? 최근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딴 정동간(요셉)씨는 다소 어눌한 발음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영상으로 공부하고 수없이 연습한 끝에 얻은 자격증이다. 앞으로 시설을 찾는 이들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우기영(율리아노)씨는 김포시 장애인체육대회에서 다트와 국궁을 섞은 한궁 종목 개인전 우승자다. 대단하다는 말에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당장에라도 메달을 가져와 보여줄 듯한 표정에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옆에 있던 곽성용(모세)씨는 어린 조카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영화도 좋아하고 외식도 좋아한다. 음악만 나오면 가장 먼저 춤을 춘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그를 사람들은 ‘행복 바이러스’라 부른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 이 작은 공동체의 일상이다. 통진 프란치스코집 정동간씨가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있다. 김종윤 신부 제공 한센인 보살핀 프란치스코 성인 따라 ‘통진 프란치스코집’은 1993년 장애인을 위해 평생 헌신한 고 우총평(프란치스코)씨가 김포시 운양동에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2000년 통진읍으로 이전했고, 이듬해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운영을 맡았다. 이후 2018년 법인 시설로 전환하며 전문 인력을 갖춘 장애인 거주시설로 성장했다. 과거에는 수사들이 모든 케어를 도맡아 지원에 한계가 있었으나, 법인 전환 후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이 합류해 홍보·외부 지원 사업·개별 맞춤 서비스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시설장을 포함해 12명의 직원이 14명의 이용인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가 회개생활 초기 한센인을 만나고 돌봤던 정신이 이곳의 기준이다. 그런 분위기 덕에 24시간 교대 근무라는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장기근속 직원들이 적지 않다. 통진 프란치스코집 이용인(오른쪽)이 전문가 지도 아래 두쫀쿠를 직접 만들어 보고 있다. 김종윤 신부 제공 탈시설 너머 진정한 복지 실현하는 공동체 최근 장애인 복지 현장의 화두는 ‘탈시설’이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통진 프란치스코집은 작은 시설의 유연함으로 지역 사회 속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이곳 가족 중 절반 이상인 8명이 인근 직업재활시설과 일반 회사에 출퇴근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성지순례와 나들이는 물론, 최근에는 인근 통진본당 청년 미사에 참여하면서 신자들과의 교류를 넓혔다. 신자들은 본당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집 가족들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때론 직접 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이용인들이 좋아한다. 새로 맺는 관계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이들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손을 내민다. 시설 안에서도 음악수업과 생활체육·도자기 공예·캠핑·요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두쫀쿠’를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통진 프란치스코집은 그렇게 공동체와 신앙의 힘으로 탈시설의 파고(波高)를 헤쳐가고 있다. 시설장 김종윤 신부는 “탈시설은 시대적 흐름이지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도 있다”며 “시설 종사자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이 더 현실적이고 진정한 복지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희같이 지역 사회와 연결된 작은 공동체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진 프란치스코집 경당. 희년을 맞아 신자들에게 특별 개방했다. 희년 맞아 전대사 은총 얻도록 경당 열어 시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오는 장소가 경당이다. 올해 희년을 맞아 지역 신자들에게 경당을 특별 개방했다. 시설문은 24시간 열려 있고, 경당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개방한다. 필요하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 경당에는 성인의 유해도 모셔져 있다. 이곳을 순례하고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 지향 기도를 바치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더 많은 신자들이 방문해 전대사의 은총을 누리길 바라는 배려다. 이용인이 정성껏 내려주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산책로를 걷고, 전대사의 은총까지 누릴 수 있는 곳, 행복 바이러스에 물들 수 있는 ‘통진 프란치스코집’이다. [인터뷰 - 시설장 김종윤 신부] “장애, 극복 대상 아닌 하느님 영광 드러내는 부르심” 통진 프란치스코집 시설장 김종윤 신부. 3년 전, 대구에서 장애 판정을 받은 자녀와 함께 어머니가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통진 프란치스코집 시설장 김종윤 신부는 이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깊은 고민에 잠겼던 김 신부는 “복음이 이미 답을 주고 있었다”며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치유한 성경 속 태생 소경 이야기를 떠올렸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도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를 통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또 다른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원장에 취임한 김 신부는 본당 보좌로 2년간 사목한 후 통진 프란치스코집에서만 10년째 소임을 하고 있다. 통진 프란치스코집 시설장 김종윤 신부와 이용인들. “사회복지를 공부했지만, 처음에는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을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지체 장애인 형제가 제가 첫 미사 때 나눠준 상본을 보여주며 ‘신부님이 오시기를 오래전부터 기도했다’고 말하더군요. 그 순간 하느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부르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 신부는 “이분들을 행복하게 해드려야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었다”며 “하지만 이미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분들은 사소한 것에서도 만족할 줄 압니다. 물론, 돌발적으로 거친 행동도 나오곤 합니다. 저희가 있어야 하는 이유죠. 그러나 기다림과 인내, 조건 없는 환대,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특히 김 신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언에 나오는 ‘쓴맛이 단맛으로 변했다’는 말을 많은 분들이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 성인이 젊은 시절 큰 죄인으로 취급받던 한센인을 피해 다니다 회개 후 이들을 포옹하고 입 맞추며 한 말로, 마음속 거부감과 두려움의 쓴맛을 극복하고 그들과 만난 뒤 하느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체험을 단맛으로 표현한 고백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 말씀과 이끄심 안에서 우리 길을 충실히 걸어나갈 때, 피하고 싶은 것들이 단맛으로 변하는 체험을 말입니다. 더 많은 분이 저희 가족들을 만나면서 이 체험을 하셨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7.01
![[사도직 현장에서] 소년원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0)](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9/02/Iq01756794984563.jpg)
[사도직 현장에서] 소년원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10)유정수 신부(수원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 cbck 한국가톨릭교정사목전국협의회 회장) 교정사목자로서 구치소와 교도소뿐만 아니라 매주 소년원도 방문합니다. 제가 가는 곳은 법무부 소속 소년 보호기관인 안양소년원(정심여자중고등학교)입니다. 소년원은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촉법소년·범죄소년·우범소년)이 입원하는 시설로, 소년교도소와는 다른 곳입니다. 법률상 소년원이라고 쓰지만, 소년(남)과 소녀(여)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곳에는 대략 100여 명의 여자 원생들이 지냅니다. 방문할 때마다 “이 어린 친구들이 왜 여기에까지 오게 됐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단순한 개인 의지와 도덕성 결핍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물론 기질적으로 충동 조절이 어렵거나, 올바른 관계 맺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약 이들이 따뜻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이곳에 올 가능성이 훨씬 낮았을 거란 사실입니다. 무너진 가정, 반복된 방임과 학대, 가난, 혹은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 속에 휘말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이 퇴원 이후 돌아갈 환경조차 마땅치 않다는 사실은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토요일 오후, 아이들은 잠시나마 긴장을 내려놓습니다. 성가와 기도가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진지하게 미사와 교리, 성경 공부에 참여하고, 찬양 속에서 마음을 열어갑니다. 미술과 원예활동에서는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을 그림과 꽃에 담아내고, 간식을 나눌 때면 작은 미소가 번져 나옵니다. 저는 이들이 스스로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기를 바라며 정성껏 준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임을 아는 사목자로서 마음가짐을 가볍게 가질 수 없습니다. 소년법은 ‘응징’보다는 ‘회복의 가능성’을 믿는 제도입니다. 교정사목 역시 같은 마음으로 동행합니다. 무엇보다 법과 제도가 미처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할 것입니다. 유정수 신부(수원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 cbck 한국가톨릭교정사목전국협의회 회장)cpbc2025.09.29
![[생활 속의 복음] 고통 저 너머 행복해지기까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8/13/gij1755047739271.jpg)
[생활 속의 복음] 고통 저 너머 행복해지기까지연중 제20주일 (루카 12,49-5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과 ‘세례’를 말씀하시고, 이어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불과 세례의 말씀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 불을 지르시겠다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 의하면 ‘불’은 하느님 말씀을 의미합니다.(예레 20,9; 23,29) 따라서 불을 지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러 오셨다는 뜻이고,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나간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또 신약 성경에서 ‘불’은 하느님 나라가 오기 전에 세상이 겪게 될 종말의 심판을 뜻하기도 합니다.(마르 9,48; 마태 3,11; 7,19; 루카 3,16) 따라서 세상 구원을 위해 겪어야 할 종말의 심판이 곧 올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파괴하는 불이 아닌 인간 마음속을 밝게 비추고 따뜻하게 데워주며, 나쁜 것을 태우고 정화시켜 정결하게 하는 성령의 불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부정하시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이는 구원을 위해 받으셔야 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께서 치르셔야 할 과정으로 겪게 될 분열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신앙인으로서 겪어야 할 갈등과 분열을 각오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진리와 사랑과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이루시는 활활 타오르는 불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마음에 불을 지르고 태워 없애 참 평화를 이루시고자 우리를 일깨워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욕심에서 얻어지는 거짓 평화를 멀리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가까울수록 그리스도의 참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으로 여기고, 선이 아닌 것을 선으로 가장하며, 옳은 것이 아닌 것을 옳은 것으로 위장하고,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선과 옳음과 진리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실천하려면 혼란과 분열을 각오해야 합니다. 옳은 길을 가기 위해 반대 받는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박해와 고통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당당하고 단호하게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참 평화를 위해 온갖 거짓 평화와 맞서서 과감하게 깨뜨리며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시련과 분열 속에도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선택해야 할 것은 정의와 진실과 사랑입니다. 이기심과 안락함의 거짓 평화를 버리고 참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제도가 바뀌고 조직이 교체된다 해도 반드시 세상이 좋게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의 주체는 인간이기에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변화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변화의 불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변화에 앞서, 먼저 내가 바뀌는 변화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세상 구원이 이루어지는 변화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불을 우리 각자의 생활 안에서 일으키라고 깨우쳐 주십니다. 만일 지금 일상생활에서 신앙인답게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분열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 것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신앙인은 세상과 신앙의 중간에서 마음에 맞는 것을 그때그때 선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2025.08.13
![[생활 속의 복음]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26/NZB1764116884830.jpg)
[생활 속의 복음]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대림 제1주일 (마태 24,37-44) 출처: unsplash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누구나 마주하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하나는 추위이고, 다른 하나는 연말이다. 우리는 매서워지는 추위 속에서 심신의 온기를 바라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가운데에서 수고에 합당한 보상을 기대한다. 이 시기가 되면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마주하게 되는 두 가지 현실도 있다. 하나는 회개이고, 다른 하나는 성탄이다.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를 살아내는 시간인 대림 시기는 교회 전례력의 출발·시작이다. 시작이 반이듯 모든 형태와 종류의 출발·시작은 목적성을 명료하게 설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두 번째 오심(재림)이다. 미사의 영성체 예식 중에 다음의 대목은 이를 매번 강조한다.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대림은 좁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성탄)에 대한 성대한 경축을 준비하는 시기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최종 목적인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재림), 곧 신앙인의 유일무이한 희망을 되새기며 이를 자기 삶의 중심에 배치하는 시기이다. 인간의 출생과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첫 번째 오심을 ‘통하여’ 하느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최고치를 확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곧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우리는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던 구원의 실재를 직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기 예수님은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선물이며 동시에 구원이신 하느님 그분 자체이다. 신앙의 구조적 측면으로부터 선물은 과제를 부여한다. 다가오신 하느님을 향해 우리가 다가가야 하고, ‘함께 있는 하느님’(그리스도를 통하여) 앞에 ‘향해 있는 자신’(그리스도를 향하여)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 옆에 와 계신다는 의미에서 첫 번째 오심이 무상의 선물이라면, 두 번째 오심이자 최종적인 오심은 하느님 앞에 서게 될 우리에게 제시된 방향이며 이정표이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모습으로 세상에 ‘오실’ 두 번째 오심을 ‘향하여’ 신앙인은 그리스도께서 요청하신 회개와 믿음, 인내와 사랑의 열매가 자신의 현장 안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결단 앞에 서 있는 실존이다. 이를 집중적으로 의식하고 실천하는 때가 최종 목적이 미리 제시되고 있는 전례력의 시작 단계, 바로 대림 시기이다. 대림 시기는 달력의 시간 개념 안에서 ‘오셨던’ 아기 예수님을 경축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지만, 구원 역사의 시간 개념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 곧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자세와 태도를 재점검하는 기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림 제1주일의 복음은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실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깨어 있어라!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전한다. 2025.11.26

일 중독으로 지친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자기 돌봄’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29. 노동 구약 성경은 노동과 관련하여 인간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다”(창세 3,19)라고 기술한다. 성경 구절의 맥락상 노동은 인간이 하느님의 금기사항을 어긴 데서 오는 죄의 결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노동하는 존재’라는 더 근원적 통찰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통해 끊임없이 수고해야 하지만, 인간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명활동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철학자 아렌트(1906~1975)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과 관련해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고대 노예제도를 통해 인간은 자연환경의 노동(labor)으로부터 해방되어 제작환경의 작업(work)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노동이 자연환경 속에서 적응하고자 하는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라면, 작업은 자연환경이 아닌 제작환경을 통해 인공 세계의 사물 대상과 관계하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을 의미한다. 즉 노동이 제작과는 무관한 생명활동의 영역이라면, 작업은 생산품을 만드는 제작활동의 영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의 인간은 더는 ‘노동하는 인간’(homo labor)이 아닌, ‘제작하는 인간’(homo faber)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노동과 작업의 분리는 근대의 자본 집약적 사회구조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인간이 작업을 통해 물건을 대량 생산하고, 교환을 통해 파생되는 잉여가치를 향유하게 됨으로써 현대의 노동은 작업의 결과인 ‘잉여가치’와 ‘잉여향유’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지젝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잉여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잉여향유’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이런 욕망이 인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소진케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번아웃’(burnout) 현상은 끝을 모르는 인간 욕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노동하는 인간은 과도한 작업과 과잉 활동을 통해 성과의 극대화를 꾀하는 ‘성과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전혀 ‘여유로움’이 없는 ‘조급함’으로 가득하다.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의 어휘에서 보듯이 ‘일’(ἀσχολία/negotium)과 ‘여가’(σχολή/otium)는 서로 대응 관계에 있으며, 피로는 과도한 일로 인해 충분한 여가를 갖지 못한 데서 오는 심신이 지친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을 ‘성과 중심’에서 ‘열매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열매 중심의 노동은 성과를 지향하기보다는 노동 그 자체로부터 의미를 찾고, 또 노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결실을 지향한다. 이는 전혀 여유로움이 없이 과도한 자기 긍정과 성과만을 지향하는 ‘성과 주체’가 아니라 자기 재능과 능력에 부합한 ‘열매 주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플라스푈러는 현대인의 ‘우울한 노동’을 경고하면서 현대인은 일 중독에 빠져 있으며, 이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강박적 사랑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일 중독자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기보다 오히려 일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일 중독으로 인해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 돌봄’이 아닐까 한다. cpbc2025.07.16

찬양 문화 활성화 위해선 저작권 등 하나씩 풀어나가야가톨릭찬양사도협회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가 6월 28일 개최한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에서 세션 2 ‘건강한 찬양 문화 생태계를 위한 여러 제안들’이 진행되고 있다. 기도의 언어이자 복음을 전하는 성가. 시대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생활성가곡이 때마다 나오고 있지만, 신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생활성가는 20년, 길게는 40년 전에 멈춰있다. 생활성가의 활성화는 현실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저작권 문제까지 겹치며 한국 가톨릭교회의 숙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에 가톨릭찬양사도협회(회장 강훈)는 6월 28일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에서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를 주제로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저작권 문제와 현실 주교회의 성경 저작권 사용 규정 등 혼선 애매한 규정으로 보급에 어려움 전례에 맞는 성가 보급의 필요성 강조 영적 울림 담을 수 있는 음악 환경 조성돼야 지속 가능한 찬양 문화 조성 위해선 뮤지션들의 생계 가능한 장기적 관점 필요 체계적 교육·양성과 예산 투자 등 이뤄져야 문화 사목 아우르는 기구·조직 있어야 교회 현장에서 “찬양사도들이 부른 노래는 왜 성가집에 없어요?” 살레시오교육사목센터장 겸 선교위원장 유지훈 신부는 “살레시오 청소년센터 보호치료 시설에서 매주 열리는 성가연습 시간에 아이들은 지르고 싶은 만큼 목소리를 높이며 성가를 부른다”며 “이는 단순한 음악활동이 아니라, 영적 해방의 시간”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유 신부는 상처받은 청소년들마저 감동한 찬양사도의 곡들이 교회 전례 체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찬양 문화는 복음을 접촉하게 하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제도와 현실 사이를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성음악아카데미 CCM 작곡과 교수 겸 본당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하얀(에우세비아) cpbc TV 음악감독도 전례에 충실하면서 함께 부를 수 있는 성가가 부족한 현실과 오류·저작권 문제에 봉착해 있는 공식 악보 구입의 어려움 등을 토로했다. 애매한 저작권 문제 가톨릭교회의 성가가 각종 찬양집이 넘쳐나는 개신교에 비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성가가 실려 있는 책의 출처와 악보 보급의 어려운 현실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이번 포럼 역시 2016년 주교회의가 승인한 ‘성가 작곡을 위한 성경과 전례문 등의 저작권 사용 규정’을 협회원 작품집에 적용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생긴 논란에서 시작됐다. 자신이 작곡·작사한 성가가 어느 순간 ‘주교회의’ 작사로 변경돼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서다. 성경 구절을 인용했기 때문에 작사는 성경의 저작권을 지닌 주교회의에 귀속된다는 이유다. 이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전문가들마저 복잡하고 애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영성지도 유상우(부산교구, 가톨릭대학교 교회법대학원 연학) 신부는 “저작권 사용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항 안에서도 다른 논조가 발견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고, 애매한 규정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애매하다는 말은 권한을 가진 자의 해석이 자유롭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규정이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별 창작자가 저작권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과정과 재정 등 복잡한 문제 앞에서 (사)인천가톨릭문화원이 나섰다. 저작권 문제 해결부터 출판·유통에 이르기까지 일괄 책임을 맡아 진행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사제중창단 ‘위로’ 대표 한덕훈(인천교구 대야동본당 주임) 신부는 “하지만 제작·검수·보관·유통·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한 곳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정확한 체계나 시장 점검이 불가능하다”며 “성가를 조금 더 친숙하고 편안하고 다양하게 보급할 수 있는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해서라도 악보집 편찬 작업은 중요하다”며 “지면으로 만드는 책을 비롯해 전자책이나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접근으로 성가를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 신부도 “이는 한 개인이나 한 단체 정도가 착수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가 6월 28일 개최한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 주제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에서 찬양사도들이 성가를 부르고 있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이 6월 28일 주교회회의에서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 주제로 열리고 있다. 찬양사도들이 말하는 현실 일부 사목자들은 성가가 활성화되기 위해 전례 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곡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영성지도사제 신기룡(안동교구 예천본당 주임) 신부는 “말씀과 찬양으로 이뤄진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는 성찬례의 중요성이 크고, 전례 시기에 맞게 움직인다”며 “성가도 전례에 맞는 보급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1세대 찬양사도 김정식(로제)씨는 “교회는 창작자들을 교리와 전례 안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며 “더 많은 음악적 깊이와 영적 울림을 담을 수 있는 음악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복잡한 가사 저작권 협의나 불분명한 정산 기준은 창작 의욕을 위축시키고, 실질적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교회가 창작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긍정과 실질적인 배려는 단지 한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새로운 노래’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더 깊이 체험하는 통로를 여는 일”이라고 밝혔다. 가톨릭생활성가 찬양그룹 ‘열일곱이다’ 보컬 팀장 안두호(레오)씨는 교회 내 공식적인 매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부분 개별 인맥을 이용해 활동하고 있는 찬양사도들의 열악한 현실을 전했다. 안씨는 “성가 음원 제작에는 예상보다 많은 비용과 기술적인 여건이 필요한데, 대부분 생업을 유지하면서 모든 과정을 찬양사도 개인이 감당하고 있다”며 △교구 차원에서 창작·음원 지원사업 도입 △성가 음원·악보·영상 아카이브 플랫폼 구축 △찬양사도와 본당을 연결하는 ‘쇼케이스 콘서트’ 추진 등을 제안했다. ‘디이에스 워십’ 리더 겸 프로듀서 김성빈(대건 안드레아)씨는 수원교구 WYD 발대미사 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밴드와 함께 부른 찬양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찬양뿐 아니라 음향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찬양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고, 신앙의 깊이를 확장시킬 수 있다”며 “음향도 큰 몫을 차지하지만 개인 찬양사도 중 음향시설을 갖추고 활동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찬양사도 스스로도 신앙과 음악 사이의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찬양 문화 형성을 위해 저작권과 홍보·재정 문제 등 찬양사도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찬양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가족찬양중창단 신상옥 패밀리 신상옥(안드레아)씨는 “찬양 자체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복음의 전달자”라며 “신학·성서·역사·정치·경제 등 다양한 영역과 본당 단체들의 피정이나 신앙교육의 밀접한 연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속 가능한 찬양 문화를 위해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생계까지 가능하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예산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이로물로(로물로) 미디어본부장은 “찬양의 범주보다 확장된 가톨릭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찬양 문화의 발전 및 지속 가능한 구조를 위해 ‘교구 차원의 문화 사목 담당 부서’ 설치를 제안했다. 또 찬양을 비롯해 연관된 문화 사목을 아우르는 전국 단위 네트워크 구축과 음악·신학·전례 교육을 포함한 가톨릭 문화의 리더 양성과정 확대도 제안했다. 강훈(바오로) 회장은 “오늘날은 교회 내 봉사와 더불어 시대상을 반영한 직업으로서 교회 음악가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며 “찬양 전문가들은 음악적 소양이 커진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영성이 깃든 성가들을 제공할 수 있고, 이는 교회 문화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경 저작권은 비단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방송·출판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활발한 선교를 위해 저작권은 주교회의가 가지되 창작자들이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7.01

부활 제2주일에 지내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환시 체험한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 자비 신심 전파 자비의 성모 수녀회 내 2000년 대희년 기념 성당. 하느님 자비의 상본을 중심으로 좌우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가 자리하고 있다. 가운데 금빛 지구본 감실은 한국에서 봉헌한 작품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부활 제2주일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떠올리며 부활 시기 중에 이날을 지낸다. 이날 보편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각 기도문도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고유기도로 변경해 바친다. 이는 ‘자비의 사도’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1905~1938)가 받은 예수님의 메시지에 기인한다.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 1905년 폴란드의 가난한 농부 가정에서 태어난 코발스카는 1925년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해 마리아 파우스티나라는 수도명으로 서약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성녀는 입회해서도 주방, 정원사, 문지기 등의 소임을 맡으며 낮은 곳에서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기도에 대한 열정과 일에 대한 근면성, 순종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특별했던 그는 ‘계시’, ‘환시’ 같은 특별한 은사를 체험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하느님 자비를 전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폐결핵으로 33세라는 이른 나이에 선종하기까지 고해사제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메시지들을 일기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했다. 하느님 자비 신심 오늘날 ‘하느님 자비’ 상본으로 널리 알려진 성화도 파우스티나 수녀가 체험한 강렬한 환시에 기인한다. 이 환시에서 예수님은 한 손으로 자신의 성심 근처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강복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예수 성심에서는 붉은색과 흰색 빛이 나왔다. 두 빛줄기는 창에 찔린 성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를 상징한다.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러한 자신의 성심에 대한 공경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맡겼고, 이를 이행하면 영혼 구원을 약속했다. 이 신심의 이름이 ‘하느님 자비’이다. 그는 일기에서 “하느님 자비를 비는 5단 기도를 끊임없이 바쳐라. 그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누구나 임종할 때에 크나큰 자비를 받을 것”이라고 전하며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를 전파하기도 했다. 파우스티나 성녀와 자비의 예수님. 가톨릭평화신문 DB 자비의 사도, 성녀 파우스티나 하느님의 자비 신심은 파우스티나 수녀의 환시 직후부터 전파되기 시작했고, 사후에도 계속됐다. 대희년을 맞은 2000년 부활 제2주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제정했다. 교황은 “파우스티나 수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자비의 메시지는 주님 부활 대축일의 복음을 보다 심도 있게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에게 커다란 빛을 주는 은사이며, 우리 시대 모든 사람에게 큰 빛으로 드러난다”고 밝혔다. 성녀가 전한 자비 신심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일깨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말과 행동, 기도로써 자비를 실천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자비 주일을 지내고, 자비 기도를 봉헌하고, 자신의 신심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일 등이 권고된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는 전대사도 받을 수 있다.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주님의 기도·사도신경·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바치면 된다.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은 우리 또한 다른 이들을 용서하려는 마음을 갖고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녀를 통해 “서로 자비로운 행동을 하고, 자비로운 말과 기도로써 자비를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말과 기도와 행동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우리 영혼에 스며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려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이날을 합당하게 보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하느님의 자비만이 우리의 얼음같은 마음을 녹이고, 바위같이 단단한 마음도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게 한다(일기 370 참조). 하느님 자비, 시대의 요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시성식에서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20세기 격변의 상황을 돌아보며 “비극적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비의 메시지가 우리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하느님 자비는 시대의 요청이다. 작은 이기심부터 인간 존엄성 훼손, 생태계 파괴, 전쟁까지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필요한 때다. 지난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표어도 ‘자비로이 부르시니’이다. 교황은 2015년 3월 13일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고 4월 11일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을 반포했다. 교황은 「자비의 얼굴」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종 학살, 집단 살육이 자행된 20세기에 이어 여전히 계속되는 비극적 상황들을 우려하며 특히 가난한 이들을 걱정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첫 번째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에서 가난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삶과 성경 속에 나타난 ‘자비’를 조명하며 하느님이 왜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셨는지 고찰했다.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는 부르심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깨달아야 한다”며 “모든 인간의 존엄성은 나중이 아닌 ‘오늘’ 당장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6.04.09

나팔 불며 복음 전하던 19세 청년… 11년간 공소 16곳 세워 [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26. 안동교구 가은본당 농암공소 농암공소는 매주 수요일 평일 미사가 봉헌되어 성체를 모신 감실이 있을 만큼 안동교구에서 가장 활성화된 공소로 손꼽힌다. 농암공소 제단. 농암공소 입구. 김한중 평신도 선교사가 매일 쓸고 닦고 아름답게 가꿔 깔끔하다. 안동교구 가은본당 농암공소는 19살 된 신상철(아우구스티노) 전교회장에 의해 설립된 공소이다. 2015년 새로 지은 농암공소 전경. 안동교구 가은본당 농암공소는 경북 문경시 농암면 농암길 71에 자리하고 있다. 농암리(籠岩里)는 경북 문경시 서남단에 자리한 마을로 동쪽으로는 상주 은척면, 서쪽으로는 상주 화북면, 남쪽으로는 상주 외서면, 북쪽으로는 문경 가은읍과 접해 있다. 소백산맥 줄기에 있어 사방으로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농암천이 마을을 끼고 흐르고 있다. ‘농암’은 마을에 있는 바위가 마치 장롱처럼 생겼다 해서 ‘농바위’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농암공소는 점촌본당 신상철(아우구스티노) 전교회장이 1956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안동교회사연구소가 펴낸 「안동가톨릭사학-공소 교회와 교구 사제단」 307쪽을 보면 농암공소가 1955년에 설립됐다고 기록돼 있다. 더불어 안동교구 홈페이지에는 1961년 4월에 설립됐다고 나와 있어 정확한 고증이 요구된다. 구교우 신상철, 문경 전교 선구자 신상철 전교회장은 문경 농암면 율수리 출신으로 5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구교우였다. 부산교구 신동원(다니엘) 신부가 그의 막내 아들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신 전교회장의 선조들은 상주 웃갈골 깊은 산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로 숨어들어 교우 7~8가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포졸에 쫓겨 충북 괴산군 청천면 시거리 옹기점에 정착했다. 이후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농암으로 이주했다. 신 전교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했다가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교우들이 많은 것을 보고 전교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길로 고향 농암으로 내려와 이 동네 저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56년 점촌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아르놀도 렌하르트 신부의 눈에 띄어 전교회장으로 발탁, 가은읍 일대뿐 아니라 안동교구 여러 지역에 가톨릭 신앙을 전하고 공소를 설립했다. 신 회장이 점촌 농암 마을에서 처음 복음을 전할 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는 농암면사무소(오늘날 농암면 행정복지센터)와 농암 시장이 있는 중심 거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팔을 불었다. 나팔을 한참 불면 어린아이·학생·아저씨·아주머니·총각·처녀·할아버지·할머니 모두가 모여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단 가톨릭교회를 소개하는 책을 무료로 나눠줬다. 그리고 “미신 행위를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간다”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다음에 나팔 소리가 나면 소리 나는 곳으로 오라”며 떠났다. 신 회장은 무엇보다 문경 일대에서 성행하던 미신을 없애는 데 힘썼다. 그는 예비 신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예부터 모셔왔던 성주단지나 토주단지, 삼신 바가지 등을 없애고 성수를 뿌리며 가정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줬다. 또 환자 방문과 죽은 이를 위한 연도뿐 아니라 상장례를 정성껏 도와줬다. 그의 가식 없는 삶에 많은 주민이 감화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신 회장은 1956~1967년 농암면·가은면·은척면 등지로 다니면서 전교해 16개 공소를 설립하고, 수백 명의 예비 신자를 모집해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줬다. 렌하르트 신부가 20세도 안 된 어린 신상철을 전교회장으로 임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성당에서 미국 구호물자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더욱 가난해진 주민들이 구호 물자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이들을 ‘밀가루 신자’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렌하르트 신부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외교인이 외교인을 가르치지 못하게’ 직접 가톨릭 교리를 가르쳤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교육과 평신도 양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목 활동에는 평신도와 헌신적인 수녀들이 필요하다. 사도 시대에 그랬듯이 믿음직한 ‘종신 부제’들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배운 사람들이며 신심이 깊고 현명하며 연륜이 풍부하다. 그들이 신자 공동체 안에서 혼인해 살고, 공소를 건립해 그곳에서 성체를 분배하며, 강론하고 가르쳐야 한다. 한국 선교의 인적 자원은 시대의 통상적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외교인들은 너무 활동적이어서 전교회장이나 레지오 마리애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다. 사제에게는 직접적인 교회의 조력자, 교회의 종신 부제가 필요하다.”(렌하르트 신부, ‘점촌본당 연대기’, 1956~1957년. 「분도통사」 1639쪽) 그러면서 렌하르트 신부는 성당에서 구호 물자를 나눠주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구호 물자의 분배가 우리 신부님과 전교회장의 명예에 먹칠한다’는 한 평신도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제야 한국 선교에 서광이 비친다고 생각하는 선교사들이 많다. 이때를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가 한국 교회를 예비 신자로 채우기 위해 10만 톤의 양곡을 보내셨는지는 의문이다. 남한의 가난한 실향민들이 고맙게 받아 쓸 구호물자에 대해 교회가 한 번쯤은 강한 불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앞의 책) 신 회장은 농암공소를 설립하고 정해웅(요셉)씨 집에서 교우들과 예비 신자들과 함께 주일마다 공소 예절을 했다. 이때 참여한 인원이 20명이나 됐다고 한다. 공소를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 제3대 가은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성 베네딕도회 최영호(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가 1965년 지금의 공소 땅을 사들여 그해 벽돌집을 지어 공소 건물로 사용했다. 봉헌 50주년, 새 공소 건물로 도약 농암공소 봉헌 50주년을 맞은 2015년 공소 교우들의 숙원이던 새 공소 건물을 지었다. 공소 건축비 3억 원을 정인식(바오로)씨가 전액 봉헌했다. 이 봉헌금으로 2015년 4월 공사를 시작해 6개월 만에 완공, 그해 10월 19일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새 공소 축복식을 거행했다. 권 주교는 이날 농암공소 교우들에게 “하느님께 봉헌한 거룩한 이 집을 기도하는 장소, 말씀을 공부하는 장소, 예수님 가르침을 전하는 선교의 장소로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건축 면적 238㎡(72평)로 웬만한 시골 성당 규모인 농암공소는 농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담장을 없애고 너른 마당을 조성해 누구나 부담 없이 공소를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붉은 벽돌로 외벽을 장식하고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를 설치하고, 마당에 성모상과 종탑을 꾸며 이곳이 가톨릭교회임을 알려준다. 공소 내벽은 흰색 칠감으로 마감돼 있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장식돼 있다. 창은 한지 그림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제단과 회중석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마감돼 있다. 제단은 제대와 감실, 독서대, 십자가, 성모상으로 꾸며져 있다. 농암공소는 안동교구 공소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공소로 손꼽힌다. 공소에서 봉헌되는 주일 미사에만 50~60명의 교우가, 매주 수요일 거행되는 평일 미사에도 평균 20~30명이 참여한다. 2024년 1월부터 파견돼 상주하고 있는 김한중(요셉) 선교사는 교우와 예비 신자들을 대상으로 교리와 성경을 가르치고, 쉬는 신자와 환자들을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6.06.24

낙태에 눈물 흘린 아일랜드 교회도란 주교 인터뷰 “생명권은 타협할 수 없는 진리” 경종 울려 더블린 아일랜드 의사당 앞에서 열린 낙태 반대 시위에서 십자가와 묵주가 달린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OSV “어제 참이었던 것은 오늘도 여전히 참된 진리입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하느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생명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낙태가 수년째 합법인 여러 나라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신실한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희망이 지금 우리에게도 생명의 복음을 정치 영역과 사목적 실천 속에서 새롭게 선포할 용기를 줍니다. 교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성과 태아, 어려움에 처한 가정,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목적 방법들을 모색할 것입니다.”(아일랜드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 케빈 도란 주교) 아일랜드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 케빈 도란 주교는 아일랜드의 여성 낙태 건수는 훨씬 많이 증가했지만 국가는 이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가 ‘낙태 합법화’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2019년 이미 낙태가 합법화된 이후 교회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아일랜드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 케빈 도란(Kevin Doran) 주교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태아는 한 인간이며 사랑”이라면서 “낙태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휘말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는 2018년 5월 25일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를 합법화했다. 전체 인구의 87%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 국민은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에 66.4%가 찬성, 33.6%가 반대했다. 이 결과는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에 충격을 줬고, 교회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투표 다음 날, 도란 주교는 “낙태를 지지한 현실 앞에서 여성과 태아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이들의 슬픔에 함께한다”며 “우리는 수태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존엄성을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는 성경 구절로 희망을 전했다. 당시 폐지된 헌법 제8조는 낙태 금지를 명시하며, 임신부와 태아의 생명권을 동등하게 보호하고 낙태 시 최대 14년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개정 이후 아일랜드에서는 임신 12주 이내라면 어떤 이유로든 낙태가 가능해졌다. 법이 허락한 반생명 문화는 언젠가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 낙태 합법화 후 7년이 지난 지금, 아일랜드 교회는 생명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