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교구 다인본당 설립 50주년 감사미사더욱 성숙한 공동체 일궈내자 다짐다인본당 50주년 감사미사에서 한 신자가 시루떡을 봉헌하고 있다. 외국 소 수입에 맞서 '소몰이 시위'를 벌였던 가톨릭 농민운동 중심지 다인본당(주임 이춘우 신부)이 설립 50주년을 맞아 13일 경북 의성군 성당에서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를 주제로 봉헌된 이날 미사에서 신자들은 지천명(知天命)을 맞아 불모지와 다름없던 척박한 땅에 50년 동안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열매를 맺게 한 하느님 섭리에 감사드렸다. 권 주교는 강론에서 "1961년 설립된 다인본당은 221가구 신자 중 9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 농촌본당"이라면서 "50년간 우리 농촌을 대변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켜낸 공동체"라고 치하했다. 이어 "50주년을 계기로 더욱 성숙한 공동체를 일궈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이춘우 주임신부는 "하느님이 이끄시지 않았다면 50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며 "본당 50돌을 맞아 신자들이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재복음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인본당은 감사미사에 앞서 교구 최초로 경운기와 트랙터, 콤바인 등 20여 대 농기계 축복식을 가졌다. 해마다 농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농기계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추수감사미사를 겸한 미사에서는 공소와 농민공동체 별로 생산한 찹쌀과 감, 사과, 땅콩, 고추, 파 등이 봉헌됐다. 성당 마당에서는 신자들이 정성껏 지은 농산물 전시회가 열렸다. 미사 뒤 축하식에서는 본당 50년사인 「실록 다인본당 50년」을 봉헌하고, 역대 주임신부와 본당 출신 성직ㆍ수도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인본당은 50주년을 준비하면서 신자 재복음화를 위해 성경 통독반과 5분 교리반을 운영해왔으며, 냉담교우 회두를 위해 특강과 매일기도, 냉담교우 가정방문, 주임신부 초대편지 발송 운동 등을 펼쳤다. 설문조사도 실시해 본당 사목방향을 수립하는 한편 지난 3월 국화꽃(묘)을 나눠주고 길러 이날 봉헌하는 50주년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1948년 '사진쟁이'로 불리던 김시종(요한 크리소스토모)이 다인에 정착함으로써 출발한 다인공소는 그동안 예천ㆍ퇴강ㆍ의성ㆍ군위본당 등 여러 본당을 오가며 소속 본당이 바뀌다 1961년 5월 25일 본당으로 승격했다. 1985년 7월 정부의 부문별한 외국 소 수입으로 빚어진 소값 폭락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몰이 시위'가 벌어진 곳으로, 당시 이 지역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1.11.15
![[아! 어쩌나?] (145) Q.죽을 것만 같아요](//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9614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45) Q.죽을 것만 같아요Q.죽을 것만 같아요 마흔인 남자입니다. 아직 미혼인데 제가 너무 숫기가 없어서인지 아직도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다가 우연한 기회에 열심인 신자를 만나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됐습니다. 성당에 나가자마자 저를 보신 본당신부님께서 전례단에 가입하라고 하셨고, 저를 맞아주시는 것에 기쁜 나머지 수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독서대에서 성경 봉독을 하게 됐는데, 짧은 분량이건만 그 부분을 봉독하는 동안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글자가 춤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제가 어떻게 하고 내려왔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던 신자분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으셨는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열심인 분들에게 물어보니 오랫동안 냉담을 하다가 돌아와 마귀가 시샘을 하는 것이라면서 성수를 뿌리고 올라가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되는지요? 지금은 독서대에 올라가라고 할까봐 다시 냉담을 하고 있습니다. A. 형제님이 가진 고민은 형제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분이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비슷한 증상을 갖고 살고 있고요. 형제님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심한 편일 뿐, 마귀가 들렸거나 무슨 큰 문제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형제님이 가진 문제는 '공황증상'인듯합니다. 공황증상이란 특정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인 두려움이 있고, 그러한 대상이나 상황이 예견될 때 두려움이 유발돼 개인의 일상적 기능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들거나,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미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자기의 공포나 두려움이 비합리적이란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들을 피해 다니려고 하는 바람에 새가슴이라는 둥, 남자가 소심하다는 등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그런 증상이 나타나려고 하면 일시적으로 피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도망하거나 회피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도망하는 것은 두려움을 피해 달아나는 것을 말하지만 일시적 피난이란 증상이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자신의 통제 아래 증상을 경감시키려고 일부러 하는 것입니다. 즉, 두려움에 눌려 '다리야 날 살려라'하는 식으로 도망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만약 형제님이 독서대에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 성당에 다니는 것마저 기피한다면 평생을 그렇게 도망하면서 살아야 될 테니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다시 나가서 한 번 더 시도해 보시고 안 되면 쉬었다고 다시 해보고 하면서 적응기를 갖는 것이 인생의 다른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불편한 감정들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시간이 가면서 병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대개 내담자들은 상담자들에게 털어놓기를 하는데, 상대방 조언을 듣지 못하더라도 내 안의 감정들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치료 효과를 갖습니다. 형제님도 신자들을 피하지 마시고 고충을 털어놓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만 형제님을 놀리는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뭐 그까짓 것 갖고 그래" "사나이가 소심하게스리"하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새가슴인데 형제님을 깎아내림으로써 자기 위상을 높이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형제님을 위축시키고 마음에 상처를 줄 위험이 크니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그저 말없이 들어주는 사람을 구하십시오. 세 번째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독서대에 올라가는 연습을 하기 바랍니다. 독서대에 올라가 눈을 감고 형제님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고, 그 사람들이 다 형제님을 존경하는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마음 안에 뿌듯한 감정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다면 자신감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렇게 끈질기게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날인가 독서대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올라가서 목소리가 좀 떨리고 다리가 좀 후들거리더라도 도망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근육운동을 자주 하시고, 다른 사람들과 활달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를 바랍니다. 또 어떤 생각에 너무 부정적으로 지나치게 몰두하지 마시고, 많이 웃고 낙천적 생각을 가지는 훈련을 하신다면 공황증상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 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퇴사자22012.03.27
 자이니찌(在日), 한국계 일본인과 조선계 일본인](//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9608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하) 자이니찌(在日), 한국계 일본인과 조선계 일본인이상원 신부(예수회, 일본관구 야마구치지구)지난해 3월 지진해일이 휩쓴 일본 도호꾸 지방을 찾아가봤다. 폐허가 된 주택가와 뼈대만 겨우 남은 일부 건축물뿐이었다.#일본은 행복한 나라? 어느 수녀회 국제회의가 일본에서 열려 각 나라 장상 수녀들이 모였다. 수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은 행복한 나라"라고 말했다. 일본 방문이 처음이라 겉치레만 눈에 먼저 들어왔을 테니 무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위태로운 나라다. 해마다 일본에선 고독사로 3만 명이, 자살로 3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지난 10년간 이라크 전쟁 희생자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지만, 통계로 보면 일본이 더 위험하다. 자살률을 보면 남성이 7할이고 여성이 3할이다. 특히 50, 60대 남성 자살률이 높다. 한데 자살미수 비율은 여성이 7할, 남성이 3할로 최근 역전됐다. 일본인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경제발전 덕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깊이 파고든 나라일수록 행복도 순위는 낮은 법이다. 자기 책임과 경쟁 논리에 철저한 자본주의 가치관은 사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가족과 그들 마음 안에까지 침투해들어간다. 결국은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나 노인들은 배제해 버리고 만다. 일본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거대한 세력과 날마다 싸우며 걸어가야 하는 그런 힘겨운 사회가 돼버렸다. #자이니치…, 한국계 일본인과 조선계 일본인 새로 부임한 성당에서 한 신자가 살짝 귀띔해준다. "신부님, 저 사람은 자이니치(在日)입니다. 원래는 한국인인데요, 귀화했어요." 이는 성당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통용되는 대화이기도 하다. '자이니치'란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을 뜻하지만, 귀화해 일본 국민이 돼도 자이니치라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닌다. 일본은 미국이나 남미에 이주해 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과 그 자손들을 '일본계 미국인' 혹은 '일본계 브라질인' 등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는 왜 똑같이 일본에 이주해 국적을 취득한 이들을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이니치라 부르는 걸까? 귀화해서 일본 국민이 됐다 해도 절대로 일본인이라고는 부르려 하지 않는 사회적 풍조는 선을 그어놓고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는 데 있다. '너희들은 여기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마!'하는 차별의식이 뿌리 깊게 깔려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난 자이니치라는 단어밖에 없는 일본 사회를 향해 교회가 '한국계 일본인' 혹은 '조선계 일본인'이라는 단어를 쓰기를 제안한 적이 있다. 이런 내용으로 일본 가톨릭신문과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회보에 기고한 적이 있지만, 지금껏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무엇에 감사하고 있는지 성찰하라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가장 행복했던 점은 아메미야라는 사제를 만난 것이다. 대학원 과정에서 수강한 아메미야 신부의 구약성경 강독은 늘 긴장이 감돌았다. 원문은 히브리어, 교과서는 영어, 설명은 일본어, 이해는 한국어로 했다. 강독이 끝나면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시편 32편의 '고백하다'와 시편 33편의 '감사하다'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실은 같은 단어다. 고백이라는 감사, 감사라는 고백인 셈이다. 당신에게 고백하고 싶다는 것은 내가 감사하고 있다는 마음이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나는 고백한다는 뜻이 된다. 요즘 판공성사로 고민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선 무엇에 감사하고 있는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진정 감사하고 있다면 그것에 감사하지 못했던 데 대해 미안한 감사의 마음이 움틀 것이다. 그것을 고백한다. 감사의 고백성사가 될 것이다. 어떤 기도모임에서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감사가 뭐예요?" 모두 웃었다. 웃기려고 했나 싶어 쳐다봤더니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다. 감사가 무엇인지,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난 작은 소리로 읊으며 천천히 걷는다. 이른바 '미음완보(微吟緩步)'다. 걷지 않으면 숨이 짧아지고, 숨이 짧아지면 생각도 짧아진다. 몸이 지쳐 쉬고 싶을 때는 큰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서점엔 날마다 신간이 쏟아져 나오지만 죄다 읽을 수도,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책 제목과 겉표지만이라도 읽는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메모해 묵상 주제로 삼는다. 며칠 전 서점에 갔을 때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식사 후 수도원 성당에 앉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저놈은 왜 웃지 않고 무표정일까? 그랬나보다, 거울이니깐 그랬나보다. 내가 먼저 웃지 않으면 저놈은 웃질 못한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봤다. 귀엽다. 인구 12억 명에 가톨릭 신자 40만 명(0.3%)인 일본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슬픈 날은 슬퍼, 슬픈 날은 슬퍼. 기쁜 날은 기뻐, 기쁜 날은 기뻐.' 선교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생활이 아닌가 싶다. "아리가또우(ありがとう, 고맙습니다)". 퇴사자22012.03.27

복음적ㆍ통합적 이주사목 제안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올바른 이주사목 방향 교회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 대상 프로그램(2011년)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환대와 친교 차원을 넘어서는 통합적이고 복음적인 사목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맹상학(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 신부와 김선헌(한국외방선교회) 신학생은 최근 발표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정부 다문화 정책의 흐름과 올바른 이주사목 방향」 보고서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인성ㆍ영성ㆍ신앙교육에 초점을 맞춘 사목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이주사목, 특히 다문화가정 자녀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구는 12개(7개 수도회는 1개 교구로 간주)로 지난해(6개)에 비해 2배 증가했고, 기관은 40개로 지난해(10개)에 비해 4배가 됐다. 프로그램 내용을 살펴보면 학습지도 프로그램은 2010년 3개에서 2011년 19개로 630%, 한국어교육 프로그램은 2010년 4개에서 2011년 14개로 350% 늘어났다. 반면 종교교육 프로그램은 2010년 13개에서 2011년 15개로 15% 증가하는 데 그쳐 학습지도ㆍ한국어교육 프로그램에 비해 종교교육 프로그램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정부 운영 다문화가족 지원 프로그램과 교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이 유사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교회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목보다는 정부 지원에 의존하거나 수도회 차원에서 하는 다문화사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교회 운영 프로그램 중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96개지만 그중 신앙교육 프로그램은 6.3%(6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2개 교구 중 4개 교구 산하 기관에서만 주일학교가 운영되고 있고 8개 교구 산하 기관에서는 주일학교를 비롯한 종교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보고서는 △지속적 선교 프로그램과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신앙 자립을 이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각 교구와 산하 기관이 구체적 사목전략을 수립해 한국사회에 맞는 복음적ㆍ통합적 이주사목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음적ㆍ통합적 이주사목이란 교회가 정부 지원에서 소외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돌보고, 사업적 프로그램보다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인성과 영성, 신앙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목을 말한다. 보고서는 교회가 운영할 수 있는 사목프로그램으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보육센터, 도서관, 유치원, 어린이합창단, 가톨릭스카우트, 영어캠프, 주일신앙학교, 성경공부 교실, 대안학교 등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또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과 선교는 교회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11년 현재 결혼이주여성은 약 20만 명, 다문화가정 자녀는 13만 명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맹 신부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은 그들 마음속에 하느님 사랑의 통로를 만들어주는 일"이라며 "이주사목 실무자들은 한국의 다문화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앙이 바탕이 된 새로운 이주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1.11.30

"의료 봉사와 나눔, 소명입니다"[낮은데로 임하소서] 충남 천안 연세우일치과 이연종(라파엘) 원장치대 재학시절부터 시작한 나눔과 봉사 지금까지1999년 한사랑나눔회 발족해 해외 의료봉사 시작매주 수요일 어려운 이웃들 위한 치과 봉사 활동 "육상선수가 평소 꾸준히 연습해야 잘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나눔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부자가 돼서 나누겠다는 사람은 평생 못 나누고 살아요." 충남 천안시 연세우일치과병원 이연종(라파엘, 63) 원장은 따뜻하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이다. "나눔은 금전적인 것만 아니라 재능과 시간도 내어놓는 것입니다. 재능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도 봉헌해야죠." 이 원장은 "나누는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라"며 "1000원도 좋다"고 했다. 그의 뒤로 사자성어가 보였다. '검이양덕(儉以養德)', 검소함으로써 덕을 기른다는 뜻이다. # 섬마을부터 연해주까지 '움직이는 치과' 그는 1990년대 후반 중국에 봉사활동을 가서 나이 여든이 넘은 조선족 할아버지 충치를 빼준 적이 있다. "모국에서 온 의사가 내 이를 빼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고마워요." 이 원장은 조선족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를 여전히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뒤늦게 사진을 공부해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95년 중국 북간도 조선족을 주제로 사진을 찍다가 동포들이 차별받는 실상을 접했다. 그 후로 동포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해졌다. 그는 1973년 연세대 치대 재학 시절부터 의료봉사 동아리 '해우회'를 조직해 치과진료 봉사를 다녔다. 같은 민족임에도 슬픈 이주 역사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조선족과 고려인, 탈북자들을 주로 찾아다녔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지역 피해 소년의 치아도 치료해줬다. 지금까지 20여 차례 동료 의사들과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페루 등지를 누볐다. 1999년에는 민족 간 분열의 골을 메우기 위해 한사랑나눔회를 발족해 본격적으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회원들과 함께 1년에 4~5차례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며 동포 수천 명을 진료했다. 내과, 안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행할 때는 조용한 마을에 종합병원이 들어선 것처럼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하루 2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기란 쉽지 않았다. 의료기구와 장비가 부족한데다 장소도 비좁았다. 하루 7시간씩 의자에 앉아 환자들의 아픈 이를 치료할 때면 인내심이 필요했다. 페루에서는 고산증 때문에 의료진이 쓰러져 약품만 전달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그는 힘들 때마다 요한복음 8장 29절을 묵상했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봉사 현장에서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의료 봉사를 소명으로 받아들인 거지요."#한 사람의 선행이 피워낸 나눔꽃 그는 국내 의료봉사에도 열심이다. 매주 수요일은 환자를 받지 않고 고아원과 양로원, 성당으로 환자를 찾아간다. 오래전부터 천안소년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소년범들 치아도 치료해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매달 두 차례 병원 직원들과 이주민과 다문화가정 아이들 충치를 봐준다. 불평하는 직원은 없다. 채용 면접 때 봉사활동에 대해 미리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시골 성당이나 고아원에 무료진료를 나갈 때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가 환자들을 진료하는 동안 아이들은 주위에서 뛰어놀았다. 그런 게 산교육이라고 생각했다. 3남매 중 큰아들은 치대에 진학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 원장 역시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어려운 사람들과 먹을 것을 나누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는 "나누는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간접 선교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눔"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2.01.31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1. 교황 요한 23세와 공의회 개막](//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0902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1. 교황 요한 23세와 공의회 개막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다교황 요한 23세가 1961년 12월 25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공표하는 교회 헌장에 서명하고 있다. [CNS자료사진]▨공의회 소집 발표와 준비 1959년 1월 25일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마치는 예식을 집전하고 난 교황 요한 23세는 대성전 옆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추기경들에게 뜻밖의 발언을 했습니다. 로마 교구 시노드와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공표한 것입니다. 교황은 이 공의회가 '일치 공의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갈라져 나간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들도 초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직에 오른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78살 노 교황의 발언은 교회 안팎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는 교회가 공의회를 논할 때가 아닌 듯했습니다. 설사 공의회가 필요하다 해도 '과도기' 교황인 요한 23세 때는 아니라는 게 대다수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소집에 대한 요한 23세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교황은 지금이 '아조르나멘토'(aggiorna mento), 곧 쇄신의 때라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이제 새로운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변치 않은 구원의 진리에 속하는 것과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구별하고 이 세상에서 희망의 징표들을 식별해 내야 할 때라고 보았습니다. 요한 23세는 약 4개월 후인 1959년 5월 17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공의회를 위한 예비준비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예비준비위원회는 전 세계 주교들에게서 의견을 받아 정리해 공의회에서 논의할 주제들을 분야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맡았습니다. 교황은 이어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인 6월 29일 첫 회칙 「베드로좌(Ad Petri Cathedram)」를 통해 공의회 소집 목적이 신앙을 증진하고 전통을 쇄신하며 교회 규율을 현대에 맞게 맞추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교황은 7월 24일 교황청 국무원장이자 공의회 예비준비위원회 위원장 타르디니 추기경에게 보낸 서한에서 새 공의회 이름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밝혔습니다. 공의회 소집과 관련, 일부에서는 1879년에 중단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연장선에서 소집되는 공의회일 것으로 억측하기도 했는데, 공의회 이름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밝힘으로써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는 다른 새로운 공의회가 될 것임을 시사한 것입니다. 예비준비위원회의 공의회 토의 안건 분류 작업이 끝날 때쯤인 1960년 6월 5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교황은 자의교서 「하느님의 드높으신 뜻」을 발표, 공의회 준비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합니다. 공의회에서 심의할 의안을 준비할 10개 준비위원회와 이를 총괄하는 중앙위원회를 구성한 것입니다. 이 준비위원회 위원장들은 교황청 각 부서장 추기경들이 맡았습니다. 또 교황청 부서 편제에 없는 평신도 사도직 분야를 담당할 준비위원회가 별도로 설치됐습니다. 그리스도교 일치에 관한 사안은 몇 주 전에 신설한 그리스도교 일치사무국이 담당했습니다. 교황은 이 교서에서 새 공의회 이름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공식 발표합니다. 중앙위원회와 분야별 준비위원회들이 의안 초안 작업을 거의 마무리할 때 쯤인 1961년 12월 25일 교황 요한 23세는 교황 헌장 「인간의 구원」을 발표, 이듬해인 1962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집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공표합니다. 이어 1962년 2월 2일 자의교서 「공의회」를 통해 공의회 개막일을 10월 11일로 확정, 발표합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8월 6일 공의회 진행 절차에 관한 지침을 담은 자의교서 「다가오는 공의회」를 발표, 공의회 준비를 사실상 완료합니다. 이에 따르면, 공의회는 전체회의(총회), 분과위원회, 장엄 공개회의로 구분됐습니다. 주교들은 준비위원회에서 작성한 초안을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나서 전체회의에서 논의한 후 통과, 거부 또는 수정 결정을 내립니다. 거부 또는 수정 요청이 들어온 안은 위원회의 재작성 혹은 수정을 거쳐 다시 전체회의에 회부되고, 전체회의에서 최종 통과된 문건은 장엄 공개회의를 통해 교황이 공식 선포하도록 했습니다. ▨공의회 개막과 제1차 회기 1962년 10월 11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회했습니다. 전세계 2908명 교부들 가운데 2540명이 참석한 역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유럽이 거의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아프리카에서 379명, 아시아에서도 300명이 참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해 모두 9명 주교가 참가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개회 연설에서 공의회가 그리스도와 일치해 인류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욱 폭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단죄가 아니라 자비의 마음을, 갈라진 형제들에 대해서는 일치를 위한 노력을 당부했습니다. 공의회는 주교들에게 소속 분과위원회를 배정한 후 10월 22일 첫 안건으로 전례에 관한 의안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전례에 모국어 사용, 미사에서 말씀 전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등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양측의 입장이 대립해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11월 14일에는 계시에 관한 초안 '계시의 원천들'이 전체회의에 회부됐습니다. '원천들'이라는 표현 자체가 계시의 원천으로 성경과 성전 두 가지를 명백히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성경만을 계시의 유일한 원천으로 보는 개신교와의 일치를 주장하는 진보파에서는 반대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이 초안으로 심의를 계속할 것인지에 관한 표결에서 반대 1368표, 찬성 822표가 나왔습니다. 반대표가 과반수를 넘었지만 3분의 2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될 판이었습니다. 그때 교황이 개입했습니다. 과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안건을 그대로 상정해서는 안 되기에 초안을 수정, 재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11월 23일에는 매스미디어에 관한 안건이 상정됐지만 핵심이 없고 너무 장황해 수정이 요청됐고, 며칠 후 동방교회와의 일치에 관한 초안이 회부됐지만 동방 교회에서 가톨릭으로 돌아온 교회들(uniate, 귀일 동방 가톨릭교회) 입장 위주이고 정교회 입장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 논란이 계속됐습니다. 핵심 안건으로 관심 대상이었던 교회에 관한 초안은 12월 1일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역시 논란이 많았습니다. 교회를 법규범으로 통치하는 사회 조직처럼 이해하고 있고, 개선주의 색채가 나며,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관, 인류에 대한 교회의 사명 등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초안 재작성이 요청됐습니다. 결국 제1회기 폐회일인 12월 8일까지 전체회의에 회부된 의안 중 최종 통과된 문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약 두 달 동안의 1차 회기가 별 소득 없이 끝난 것입니다. 교황은 폐회 기간 중에 초안들을 다시 검토하고 수정 작업을 지휘하는 역할을 담당할 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1차 회기를 폐회합니다. 다음 회기는 9개월 후로 예정됐습니다. 교황은 폐회 연설에서 의견 일치를 보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면서 공의회가 휴지기에 들어가는 것은 "활동의 중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것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회기를 개회하지 못한 채 1963년 6월 3일 위암으로 선종합니다. 82살이었습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교황은 공의회 소집을 결심했을 때부터,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돼 요한 23세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지 모릅니다. 임기 중에 공의회를 마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쇄신의 토대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치 주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처럼 말입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2000년에 시복됐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01.03
![[특집/성서주간에 만난 사람]청주교구 성모성심본당 주임 이중섭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7302_1.0_titleImage_1.jpg)
[특집/성서주간에 만난 사람]청주교구 성모성심본당 주임 이중섭 신부이중섭 신부가 지난해 3월부터 편집 출간 중인 대역성경 가운데 한 권을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5개 국어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대역판 성경이 지난해 3월부터 나오고 있다. 성경을 펼치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우리말(새 성경)과 라틴어, 그리스어, 영어, 우리말(공동번역)이 양쪽에 펼쳐지고, 히브리어 성경은 책 말미에 덧보태져 있다. 성경 분량이 짧으면 때로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 내용도 포함되곤 한다. 이 대역성경 편집 주간을 맡고 있는 주역은 1995년 파리가톨릭대학 구약성경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중섭(청주교구 성모성심본당 주임) 신부다. 한 권을 펴낼 때마다 250만 원씩 드는 재정적 어려움에도 이 신부는 '소명' 하나로 대역성경을 꾸준히 내고 있다. 이 신부는 "대역성경 편집은 성경 연구와 신자들의 성경 읽기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고 말문을 뗐다. 그 근거로 오리게네스 교부가 212년께 히브리어와 70인역 그리스어, 아퀼라 역, 심마쿠스 역, 테오도시온판 성경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편집한 「헥사플라(Hexapla)」를 든 이 신부는 "「헥사플라」는 성경학자들의 연구는 물론 성경 원문을 여러 나라 말로 올바르게 번역하는데 기여했으며, 신자들 성경 읽기에도 크게 이바지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5개 국어 대역성경을 내놓은 이 신부는 우리나라 성경 연구와 공부를 진작시키고자 이 대역성경을 1권당 100부씩 펴내 전국 7개 대신학교 도서관에 각각 10부씩 총 70부를 기증하고 나머지는 후원자들에게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5개 국어 대역성경은 모두 6권. 지난해 3월에 제11권 「다윗의 노래」(시편)가 맨 먼저 나왔고, 그 뒤 제1권 「한 처음에」(창세기), 제2권 「탈출기ㆍ레위기」, 제3권 「민수기ㆍ신명기」, 제4권 「여호수아ㆍ판관ㆍ룻기」, 제5권 「사무엘서 상ㆍ하」가 지난 9월 말까지 차례차례 출간됐다. 대역성경에는 기원전 2세기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히브리어 성경 원문과 70인역 그리스어 성경, 6세기 초 성 예로니모 번역본인 라틴어 불가타(Vulgata) 성경, 영어 성경(New American Bible), 우리말 공동번역 성경, 2005년 말 한국천주교회에서 나온 「성경」이 모두 망라돼 성경을 연구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이제는 여섯 일곱 권의 원어 성경을 일일이 꺼내놓고 연구하고 읽어야 하는 불편이 해소된 것이다. 장차는 구약성경에서 15권이 더 나오고, 신약성경도 5권이 대역성경을 나온다. 다만 신약에는 히브리어가 빠지고 그리스어 신약성경 판본을 넣어 성경과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성경 차례로 대역성경을 편집한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6월에 사제품을 받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성경이 없어 교수신부님이 복사해준 성경을 갖고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공부해야 한다는게 안타까워 시작하게 됐습니다. 발간 비용은 저희 본당 '성서백주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여러 성직자와 수도자들, 성경을 공부하는 평신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또 일선 본당사목을 하면서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지만, 원어성경이 없어 성경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컸던 것도 이유가 됐다. 이 신부는 "어느 사회든 발전을 하려면 사회자본(인프라)이 바탕이 돼야 하듯 한국천주교회도 40년이 넘은 성경공부 열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성경 연구가 절실하고 대역성경은 그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본다"며 "대역성경은 성경연구자나 신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성경인 만큼 교회에서도 큰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후원 계좌 : 우체국, 300434-02-008763(이중섭)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1.16
![[출판]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061_1.0_titleImage_1.jpg)
[출판]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요한복음 심오한 내용 알기 쉽게 설명(송봉모 지음/바오로딸/1만 3000원) 요한복음서는 쉽게 읽히면서도 깊게 이해해야 하는 말씀으로 여겨진다. 예수의 사실적ㆍ육적 측면을 다룬 세 복음서(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와 달리 예수의 신학적ㆍ영적 측면을 담고 있어서다. 성서학자 카르손은 요한복음서에 대해 "어린아이라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면서도, 탁월한 사람들이 정신력을 집중해야 할 만큼 복잡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성서학자 레온 모리스는 "어린아이도 건너갈 만큼 얕은 웅덩이일 수도 있고, 코끼리도 헤엄쳐 가야 할 만큼 깊고 거대한 강물이기도 하다"고 했다. 요한복음서가 이해하기 어려운 '원로의 복음서'나 코끼리도 헤엄쳐 건너가야 할 만큼 깊이 있는 복음서로 불리는 다른 이유는 이 복음서에 심오한 신학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는 삼위일체 교리의 틀을 세운 중요한 근거들을 담고 있으며, 다른 복음서들이 한 번도 주장하지 않은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미사 때 암송하는 신앙고백문(사도신경)도 요한복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비유와 상징, 담론(예수가 등장 인물과 함께 대화하다 나중에 홀로 강론하는 방식) 형식의 문학적 기법은 심오한 사상만큼이나 정교하다. 요한복음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같은 내용과 형식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서가 갑자기 거대한 산처럼 다가온 것 같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신약성경을 전공한 송봉모(예수회, 서강대) 신부가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을 통해 요한복음에 담긴 심오한 내용들을 알기 쉽고 또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송 신부는 이 책에서 요한복음 1~4장에 담긴 내용들을 다뤘다. 예수의 제자들과 세례자 요한(1,35-51;3,22-29), 카나 혼인잔치 기적(2,1-11), 니코데모를 가르치심(2,23-3,21),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4,1-42)에서 드러난 요한복음 핵심을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주고 있다. 자신의 신앙체험과 다양한 일화, 시(詩)를 곁들여 독자들 이해를 도왔고, 또 사목현장에서 겪었던 일과 복음 내용을 비교하며 독자들이 복음 말씀을 좀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송 신부는 "신약성경 전공자로서 할 수 있는 한 쉽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요한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성령께 도움을 청할 것을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1.06.14

"노숙인들 안에서 예수님 찾아요"자선주일에 만난 사람/ 무료급식소 봉사 서정기·정철씨 형제 20년 넘게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서정기(오른쪽), 정철씨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백영민 기자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시장 안에 있는 무료급식소 하상 바오로의집. 서울 전역에서 몰려든 노숙인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입 안에 떠 넣는다. 라디오에선 해바라기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흘러 나온다. 노숙인들 사이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바쁘게 오가는 두 남자가 있다. 서정기(보니파시오, 63, 의정부교구 퇴계원본당)ㆍ정철(라파엘, 60, 서울 가락시장본당)씨 형제다. 서씨 형제는 무료급식소에서 식재료를 나르고, 배고픈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지 21년이 됐다. 아픈 이들은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보내고, 잘 걷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손을 잡아 배웅도 해줬다. 옷차림이 남루한 노숙인에게는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보냈다. 술 취해 행패를 부리는 노숙인들에겐 군기반장 역할을 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성경구절이 와 닿아서 이렇게 지금까지 봉사를 하게 됐어요. 노숙인들 안에서 예수님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허허"(형 서정기) 서씨 형제는 1990년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봉사를 시작했다. 함께 건어물 장사를 한 이들은 점심시간마다 틈틈이 급식소에 들러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건어물 가게보다 급식소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났다. "주위 사람들이 미쳤냐고 했어요. 돈 벌러 시장에 오는 사람들이 생업은 전폐하고 봉사만 한다면서…."(형 서정기) 동생 서씨는 "손에 쥐고 있던 욕심을 내려놓고 봉사에 전념하니 삶이 더 행복해졌다"면서 "내 능력으로 하느님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기쁠 따름이다"고 말했다. 동생은 암투병 중이다.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2003년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간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그런데 최근 암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건어물 가게는 정리했지만 봉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는 병도 친구 삼아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느님 빽이 든든해 걱정없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급식소 수녀들과 본당 교우들 도움으로 돈 걱정 없이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는 확신이 생겼다. "전 마냥 웃을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의 기도로 살아 있으니까요. 이 나이에 이렇게 좋은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도 행복합니다. 아프다고 집에서 쉬면 더 아플 것 같아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 5일 하루 10시간을 봉사하는 이들은 "우리 맘대로 될 일은 아니지만 훗날 동생이랑 손 잡고 하느님 나라에 가고 싶다"며 "몸이 건강할 때까지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동생 서씨가 1624시간 자원봉사활동으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장시간 활동 자원봉사상'을 받은 데 이어, 형이 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같은 상을 받았다.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