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대전교구 신합덕본당 설립 50주년 맞아](//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6477_1.0_titleImage_1.jpg)
[공동체]대전교구 신합덕본당 설립 50주년 맞아김대건 신부 본받는 공동체로 거듭나자... 대전교구 신합덕본당 설립 50돌 기념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118명에 견진성사 베풀어유흥식 주교가 신합덕본당 설립 50주년 감사미사에서 본당 신자들이 봉헌한 성경필사본을 들어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대전교구 신합덕본당(주임 이광근 신부)은 설립 50주년을 맞아 7일 충남 당진군 합덕읍 운산리 성전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와 당진지구장 이원순 신부, 역대 본당 봉직 사제단, 본당 출신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본당 수호자인 성 김대건 신부의 신앙을 본받는 공동체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아울러 유 주교 주례로 118명에게 견진성사를 베풀고 기쁨을 함께했다. 신합덕본당은 올들어 본당 설립 50주년의 해 선포식에 이어 설립 기도문 바치기, 묵주기도 100만 단 봉헌, 전 신자 성경 필사운동 등을 펼쳤으며, 이날 감사미사를 통해 설립기도문 기도 6만7288회, 묵주 기도 140만 단, 전 신자 성경필사본을 봉헌했다. 또 유 주교와 사제단, 평신도 등이 함께한 가운데 성당 입구 정원에 50주년 기념식수를 하고 본당 화합 한마당축제를 벌였다. 유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지난 50년간 신합덕본당에서 사목한 모든 사제와 수도자들, 평신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특별히 김대건 성인의 신앙을 본받는 신앙공동체로 100주년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61년 11월 합덕본당에서 분가, 버그네 본당으로 출발한 신합덕본당은 초대 주임 이규남 신부가 부임해 1972년 12월까지 12년간 사목하며 지역복음화의 씨앗을 뿌렸으며, 이후 9대 주임 이광근 신부에 이르기까지 38년간 사제들의 노고와 수도자들, 평신도들 기도로 공동체의 기틀을 다졌다. 또 1965년 12월 24일 성전을 신축 봉헌하면서 대전교구 복자성당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본당은 '버그네본당'에서 '운산리본당'으로 본당 명칭을 개칭했다가 '신합덕본당'으로 다시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75년 신평본당을 분할하기도 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1.09
![[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재발견] 중세 가톨릭, '암흑기'아니라 '황금기' 이끌어](//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3721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재발견] 중세 가톨릭, '암흑기'아니라 '황금기' 이끌어 중세시대 수도원은 서양 정신문명을 키워낸 어머니 뱃속 태반 같은 곳이다. 스위스에 있는 성베네딕도회 아인지델른수도원(9C 설립) 도서관에 들어선 순간, 인류의 지식과 정신을 축적해 놓은 장서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인지델른(스위스)=김원철 기자 "우리는 중세사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차라리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중세사학자 아베 긴야(1935∼2006) 맞는 말이다. 현대에 와서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제법 이뤄졌는데도, 사람들은 중세라고 하면 으레 '암흑기'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다. 인간 가치가 상실되고, 그리스도교에 의해 이성과 사고가 억압된 시대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 시각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서양 중세는 로마제국 멸망을 불러온 4, 5세기 게르만족 이동부터 14, 15세기 르네상스 때까지 약 1000년 기간을 말한다. 인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부르짖는 문예부흥운동(르네상스)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해 중세 1000년 문명을 배척했다. 고대 그리스ㆍ로마시대는 인간성이 존중된 시대였기에, 그 시대 고전을 비롯한 문화를 재생해 유럽 문명에 생기를 불어넣자는 게 르네상스다. 하지만 그들도 시대정신의 변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저질렀다. 옛것을 필요 없는 것인 양 몽땅 털어내고 새로 시작하려는 어리석음 말이다. 600년 고도(古都) 서울에 옛 건축물은 고사하고 근현대가 공존하는 풍광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도시 현실을 생각하면 그들 잘못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중세에 대한 왜곡이 심한 이유 중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특히 한국에서 더 심하다. 그 이유는 16세기 종교분열 이후 프로테스탄트들에 의해 더한층 굳어진 왜곡과 편견이 미국을 통해 그대로 유입됐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회와 학계에는 19세기 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밀려들 때 노골적으로 표출된 반가톨릭 정서가 여전히 존재한다.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의 저자 로널드 L. 넘버스는 "반가톨릭주의는 미국 역사에 가장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편견이다. 이런 편견이 강해져 가톨릭과 과학에 대한 통념(적대적 관계)으로 굳어졌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역사학을 비롯해 대부분의 서양 학문은 유학파들에 의해 미국의 것이 그대로 국내에 이식됐다. 개신교도 미국에서 들어왔다. 중세에 대한 한국사회 인식이 지극히 프로테스탄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탓에 한국교회사연구소장 김성태 신부를 비롯한 가톨릭 사학자들이 10여년 전 중세 그리스도교 역사를 편파적으로 기술한 중고교 세계사 교과서 수정을 위해 애썼지만 아직 눈에 띄는 개선이 없다. 아무튼, 중세를 덮은 '검은 천'을 몇 겹이나마 벗겨보자. 가톨릭이 중세의 정신적 지주였고, 학문ㆍ사상ㆍ문화의 중심축이었기에 중세 역사는 가톨릭 역사라고 불러도 괜찮다. 인문주의자들이 "고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다시 들여다본 그리스ㆍ로마 고전은 1000년 동안 누가 보존하고, 연구했는가. 바로 수도원의 도서관과 수사들이었다. 수사들은 성경과 신학서적 외에 고대문화의 계승자라는 사명감을 갖고 고대 작품들을 필사하고, 보존했다. "(11세기 몬테카시노수도원에서) 한꺼번에 많은 글이 복원되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런 글들은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 우리는 훗날 이 수도원에게 타키투스의 「연대기」와 「역사」,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 세네카의 「대화편」 (…) 그 외 필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유베날리스의 여섯 번째 풍자시 등을 보존한 것을 고마워할 것이다."(「가톨릭교회는 어떻게 서양문명을 세웠나」 61쪽, 토머스 E. 우즈 주니어 저) 성베네딕도회 몬테카시노수도원 수도자들은 인문주의자들보다 400여 년이나 앞서 '라틴문학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 불리는 문예부흥을 이뤄냈다. 476년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은 기록문화와 정치조직이 없는 야만족이었다. 교회가 그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교화시키지 않았더라면 살육과 파괴의 혼란 속에서 라틴고전이 몇 권이나 남아났을지 의문이다. 로마 멸망 후 프랑크족(프랑스), 서고트족(스페인), 앵글로색슨족(영국) 등 이민족들의 정신적 영도자 역할을 하며 문명을 재건한 게 가톨릭교회다. #교회, 과학과 학문 발전의 산실 특히 성베네딕도회 수사들은 페스트의 진원지라는 속설 때문에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늪지를 농토로 개간하고 농사기술을 보급했다. '손으로 하는 노동'을 중시한 베네딕도회 수사들이야말로 서양 농업과 공업의 아버지이다. 로널드 L. 넘버스가 "과학혁명의 자양분이 마련된 시기는 11∼13세기 중세 전성기"라고 말했듯이 교회가 천문ㆍ수학ㆍ물리ㆍ의학ㆍ지질ㆍ기계 등 과학 발전에 기여한 업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회화ㆍ조각ㆍ건축 등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실용과학 분야의 기여는 부차적이다. 학문과 사상의 발전 측면에서 볼 때 중세교회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대학교육 발상지는 교구와 수도원 부속학교들이다. 교회는 성직자들을 파견해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지식인들을 양성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이탈리아 사래르노대학과 보로그노대학, 프랑스 파리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 등이 모두 12세기 후반 가톨릭 품에서 형태를 갖춘 대학들이다. 그렇다고 이 대학들에서 신학만 가르친 게 아니다. 큰 대학에서는 시민법, 자연철학, 의학과 함께 7개 교양과목을 가르쳤다. 역사학자 로리 달리는 "교회는 유럽에서 지식보존과 양성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었던 유일한 기관"이라고 말한다. 또 교회의 자선활동은 세상을 바꿨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활발했다. 로마시대에도 자선활동은 있었다. 그러나 목욕탕이나 연희장 등을 지을 때 부자들이 돈을 희사하고, 시민들이 답례로 건물에 이름을 새겨주는 기부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돕는 자선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나온 '독창적' 행위였다. 20세기 경제사상사 사이먼 패튼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노동자들에게 먹을 것과 쉼터를, 불행한 사람에게는 자선을, 병과 기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제공했다. 이러한 것은 중세에 매우 흔한 일이었다. 우리가 병원과 진료소, 수사들의 하사기금, 그리고 수녀들의 자아희생을 헤아려보면 당시 불행한 사람들이 적어도 현재의 그런 사람들만큼 잘 대접받았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쇄신'은 교회의 또 다른 본성 중세는 르네상스의 빛에 가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왜곡에 막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중세 정신문명을 이끌어오는 동안 일부 성직자와 지도층의 과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직자 부패, 대사부 남용, 종교재판 등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교회는 험난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와 예수회 활약 등을 통해 개혁과 쇄신의 고삐를 다시 죄었다. 교회의 본성 가운데 하나가 쇄신이다. 교회사가들은 "교회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적인 동시에 인적인 실재이기에 신인양성(神人兩性)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신적 성격 때문에 어떠한 잘못도 없이 신성하지만, 인적 성격 때문에 잘못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교회의 공헌과 역할은 모른 체하고 그 과정에서 빚어진 과오만을 부각시켜 '암흑기'라고 폄훼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 인식 태도가 아니다.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김원철2012.01.31
[출판단신]종이, 우울증 벗어나기 ▨종이 종이를 주제로 한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의 미발표 신작 시 76편을 모은 시집이다. 시인은 "인간의 선한 본성, 그 아름다움에 종이라는 사물을 대면시켜보고, 따뜻함, 영원함, 영성적 노동, 모성, 순수 등과 같은 감정의 물질들을 하나의 원소로 종합한 것을 '종이'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시집에서 모든 사물은 종이로 수렴된다. 예술혼, 그윽한 빛, 첫사랑, 성소, 용서 등 종이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도 시인의 손을 거치니 종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펼쳐진다. 또 종이를 노래하는 그의 시에는 파괴돼가는 자연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라져가는 감수성에 대한 슬픔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은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그리워하고 그 본성을 되찾아 보려는 한 톨의 씨앗이자, 한 시인의 종이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했다.(신달자 지음/민음사/8000원) ▨우울증 벗어나기 우울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일가족을 살해했다는 끔찍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로까지 여겨지는 우울증을 이제 단순히 마음의 감기쯤으로 치부하기엔 심각한 수준이다. 영성의 대가 안셀름 그륀(독일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신부는 최근 국민병이 돼가는 우울증을 크게 걱정하며 이를 기도와 묵상과 같은 영성으로 다루는 법을 고민했고, 그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그륀 신부의 「우울증 벗어나기」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적 측면이 아닌 영성의 눈으로 우울증을 바라보며 성경에서 찾아낸 치유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이들이 20가지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라 △사랑하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움켜쥔 그 손, 놓아 버려라 △자신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지 마라 △겸손으로 우울증과 화해하라 등의 처방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우울증 치료를 영성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이민수 옮김/분도출판사/8000원) 박수정 기자박수정2011.05.17
![[성경 속 상징] 72- 돌- 신적 능력이나 강한 마음](//cpbc.co.kr/CMS/newspaper/2009/12/rc/321051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72- 돌- 신적 능력이나 강한 마음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예로부터 돌은 단단함과 특이한 형태로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돌은 일상생활의 도구로 이용됐다. 청동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생활도구 대부분을 석기에 의존했다. 또한 돌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양식의 무덤의 중요한 재료가 됐다. 원시인들은 돌은 생명과 생산력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은 생명의 탄생, 풍요와 수호 등 신비로운 권능을 가진 존재로서 신앙의 대상이 돼왔다. 이집트에서도 돌은 영원의 상징이었다. 인간 육체는 사멸해도 돌에 새겨진 모습과 이름이 생명의 지속을 보증한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형상의 암석은 생식력을 가진 것으로 믿었다. 당산과 선돌은 마을을 수호하고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신석(神石)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돌이 병을 낫게 하거나 마귀를 쫓는 행운을 가져온다는 신앙은 보석을 몸에 지니는 풍습을 낳게 했다. 하늘의 돌,즉 운석(雲石)에는 초인간적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성경에도 돌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한다. 구약에서는 돌을 숭배하는 유다인들의 잘못된 믿음을 비난하고 있다.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거나, 신상이나 기념 기둥을 세워서는 안 된다. 또 조각한 돌을 너희 땅에 놓고 그것에 절해서도 안 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26,1). 성경에서 돌은 자주 신적 능력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 28,11-12).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도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만들려거든, 다듬은 돌로 쌓아서는 안 된다. 너희가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하게 된다"(탈출 20,25). 또한 성경에서 돌은 강한 마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들에게 다른 마음을 넣어 주고, 그들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에제 11,19).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집의 건축에 빗대 살아 있는 돌에 비유하기도 한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5). 예수님께서도 스스로를 집 모퉁이 머릿돌에 비유하신다(루카 20,17-18).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흰 돌은 장차 천국에서 맞게 될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묵시 2,17). "승리하는 자에게 흰 돌을 준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 앞에서 무죄 선언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영적 승리,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하는 상급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부들도 성경주해에서 '흰 돌'을 세례성사로 깨끗해진 하얀 몸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어떤 돌로 어떤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가?조은일2009.12.29
![[성경 속 상징]74- 올리브 기름- 하느님 생명의 축복과 풍요](//cpbc.co.kr/CMS/newspaper/2010/01/rc/322613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74- 올리브 기름- 하느님 생명의 축복과 풍요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지중해식 요리에는 동물성 지방 함유량이 많다. 그런데도 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심장 관련 질병 발생률은 낮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유럽인들이 건강식품으로 꼽는 올리브오일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올리브기름에 포함된 물질이 적혈구를 보호해 심장병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올리브기름 성분이 뇌 속의 치매 유발 단백질을 죽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발견돼 이 성분으로 치매 백신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성경시대에도 올리브기름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음식에 많이 쓰였고, 등잔기름, 약, 향수, 비누재료 등 일상용품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또 올리브기름을 신체나 머리에 붓는 기름으로도 사용했다(탈출 29,7). 팔레스티나 지방은 여름에 매우 덥고 건조해 목욕한 뒤에 올리브기름을 몸에 발랐다(2사무 12,20). 먼길을 여행하고 난 뒤 몸에 기름을 바르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원기가 회복됐다. 그래서 예로부터 올리브기름은 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는 장면이 나온다(루카 10,34). 보통 술은 상처를 소독하고 기름은 아픔을 누르는 역할을 한다(이사 1,6).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올리브기름은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환자에게 베푸시는 도움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은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셨다(마르 6,13). 야고보 사도는 교회 원로들에게 아픈 이를 찾아가서 기름을 붓고 기도해 주라고 권유한다(야고 5,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현재의 병자성사는 이러한 성경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올리브기름은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도 사용했다(루카 23,56). 옛날 사람들도 결혼식 같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몸단장을 했다. 그럴 때 올리브기름에 향료를 첨가한 향유를 사용했다. 성경에서 특별히 올리브기름을 바르는 것은 기쁨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상중(喪中)에는 기름을 바르지 못했다(2사무 14,2). 또한 주인은 최고 환영의 표시로 손님 머리에 향유를 바르기도 했다(마태 26,7).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식탁에 앉아 계시는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손님 발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헌신과 존경을 상징한다(루카 7,28-46). 또한 특별한 직무를 부여받을 때 축성식에서 올리브기름을 머리에 붓는 의식을 했다. 이처럼 도유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세속에서 벗어나 성스럽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왕의 즉위식에서도 대사제가 기름을 바르는 도유식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이처럼 올리브기름은 하느님 생명의 축복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올리브기름은 성경시대에 연료로도 쓰였다. 등잔은 기름을 많이 담을 수 없어서 불을 오래 밝히려면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기름을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마태 25,1-13). 올리브기름은 전쟁 때 방패에도 발랐는데, 적군의 화살이나 창이 닿으면 미끄러지게 하려는 조치였다. 이래저래 올리브기름은 성경시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고, 많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했다.조은일2010.01.12
![[성경 속 상징] 76- 순례- 거룩한 곳으로의 여정을 의미](//cpbc.co.kr/CMS/newspaper/2010/01/rc/32414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76- 순례- 거룩한 곳으로의 여정을 의미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성지순례는 대개 종교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 관습이자 전통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지순례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 즉 성지와 순교자들 유해가 안치된 곳이거나 성인들 유적지인 성역을 방문해 경배를 드리는 신심행위를 말한다. 신자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들 성지를 찾아 축제와 예배에 참석하면서 그 장소에 얽힌 종교적 전승을 실존적으로 체험하고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과 일체감을 확인하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의 개입이 분명히 드러난 지역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둘러본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순례는 높은 데에서 우리를 굽어보시는 분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주신 하느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라며 성지순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종교에서 영적 중심지로 가는 여행은 속죄와 정화, 새로운 삶으로 상승을 상징한다. 구약성경에서 순례는 개인이나 가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는 절기들에 참여하기 위해 연례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중심이 된다. 신구약에서 순례는 어떤 거룩한 곳으로의 여정을 의미한다. 구약의 순례는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후 널리 행해진 예배 행위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중요한 공동체 예배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행해졌다. 유다인 남자들은 일 년에 최소한 세 차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순례자들이 여행했던 장소는 예배 중심지인 동시에 정치적 중심지였다. 순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성전에 올라가는 15개 시편에서 잘 나타난다(시편 120~134장).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의 순례에 대한 성서적 원형은 아브라함이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1-3). 따라서 믿음의 삶이란 처음부터 순례의 길로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 환시로 받은 말씀을 전하면서 순례를 미래의 구원과 연관지어 묘사하고 있다(이사 2,2-4). 복음서에서 순례 이미지는 특별히 예루살렘을 향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여행에서 강조된다. 복음서는 또한 예수님을 순례자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선언한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신약성경은 순례자 이미지들을 통해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 삶을 강조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성경의 성조들을 언급하기도 한다(히브 11,8-10). 또한 신자들 공동체는 보통 격리되고 핍박받는 유배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그네나 행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1베드 1,17). 시공을 초월해서 하느님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신자들은 상징적 의미에서 순례자들로 묘사된다. 이 세상이 바로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신자들은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여행 중에 있는 백성들이다. 따라서 순례자는 현세 고통을 넘어서 미래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조은일2010.01.26
성체성사, 희생과 사랑](//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4421_1.0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교리](21)성체성사, 희생과 사랑십자가 예수 희생 기억, 그 사랑에 감사 발랭탱 드 블로냐 작 '최후의 만찬'(1625-26년). ▶성체성사의 명칭 성체성사와 관련된 명칭에는 '빵의 나눔','주님의 만찬', '미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미사는 라틴어 '미사(Missa)'를 있는 그대로 음역한 것인데, 이는 미사 중에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체성사의 개념 교회는 날마다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성체성사는 십자가에서 수난하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겪으신 희생을 기념하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는 은총에 감사드리는 성사다. ▶성체성사의 기원 1)구약의 제사 구약성경에서 제사는 인간이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며 하느님을 흠숭하는 경신례를 말한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그분께 사랑과 은총과 축복을 간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파스카 만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체험한 고통과 슬픔과 억압을 기억하고 현재 은총에 감사드리며 미래의 바람과 소망을 기원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2)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신 다음 당신을 다시 찾아 나선 군중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고 당부하셨다. 이어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요한 6,33)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 자신이 바로 '생명의 빵'(요한 6,35)이라 선언하셨다. 3)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명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 나눠 주시며 당신의 '몸과 피'라고 말씀하셨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하고 분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 구원을 위해 겪으실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암시하는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나눠 주셨으며,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셨다. ▶성체성사의 은총과 참례 자세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파스카를 기념하고, 예수 그리스도 현존을 체험하며, 삼위일체 하느님, 교회 공동체 구성원, 이웃들과 사랑과 일치의 친교를 나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잘못한 죄에 대해 속죄하고, 하느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총을 간구한다. 성체성사에 참례하면서 우리는 내ㆍ외적 준비를 해야 한다. 잘못과 죄에 대한 성찰과 회개가 요청된다. 또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을 준비해야 한다. 성체를 영하기 위해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공복재(空腹齋) 혹은 공심재(空心齋)를 지켜야 하고, 필요한 경우 성체성사 전에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성체성사의 구조와 의미 성체성사, 곧 미사는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시작 예식ㆍ말씀 전례ㆍ성찬 전례ㆍ마침 예식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시작 예식은 신자들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봉헌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예식이다. 입당, 인사,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가 있다. △말씀 전례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신앙 고백으로 응답하며 온 세상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예식이다. 제1독서, 화답송, 제2독서, 복음 환호송, 복음, 강론,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가 있다. △성찬 전례 :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며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신자 상호 간에 일치를 이루는 예식이다. 크게 예물 준비, 감사 기도, 영성체 예식으로 나눌 수 있다. 감사 기도는 미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성부ㆍ성자ㆍ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구원 사업을 기념하며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말씀하신 대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이 되는 성변화(聖變化)가 이뤄진다. 이어 사제는 교우들이 성체와 성혈을 흠숭할 수 있도록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드는 성체거양을 한다. 영성체 예식 중 빵 나눔, 곧 성체를 쪼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상징하고 한 부분을 떼어 성혈에 넣는 것은 십자가 죽음으로 갈라졌던 몸과 피를 합침으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의미한다. 이 예식은 우리 모두가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모셔 서로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침 예식은 신자 모두가 하느님 축복을 받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파견하는 예식으로, 강복과 파견이 있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퇴사자22011.11.01
![[대림기획] 15년간 새 성전 봉헌 기다린 대전교구 태안본당 공동체](//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6517_1.0_titleImage_1.jpg)
[대림기획] 15년간 새 성전 봉헌 기다린 대전교구 태안본당 공동체 믿음이 있기에 기다림은 희망이요 기쁨다시 차가운 계절입니다. 손발이 얼 정도의 시린 바람조차도 마음을 얼게 하지 못하는 것은 또다시 따뜻한 봄이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도 고난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실 메시아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칠 것'(이사 9,1)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마침내 기쁨의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도로 기다리는 이들이 우리 곁에도 있습니다. 2011년 대림시기,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림1]1996년 성전 건립 준비… 2006년 드디어 완공했지만봉헌 앞두고 기름유출 사고로 지역 절망에 빠져고통 함께 나누며 빚 모두 갚아… 11월 27일 '잔치' "그렇게 기다려온 '그날'에 이 노래를 부르는 생각만 해도 벌써 눈물이 쏟아질 것 같네요." 성전 봉헌 노래 '손에 손을 맞잡고'의 가사를 읽어내려가던 대전교구 태안본당(주임 최익선 신부) 신자 강민주(요안나, 56)씨 얼굴에 벅찬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느 본당, 어느 신자들이 새 성전 봉헌을 기뻐하지 않을까마는 태안본당 신자들 마음은 유난히 간절하다. 1996년 10월 낡고 좁은 성당을 새로 짓기로 결정한 이후, 길고 길었던 15년간의 기다림을 끝내게 됐기 때문이다. 시내 한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성당은 태안 읍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다. 신자 40여 명으로 구성된 성전건립준비위원회가 디자인과 건축에 공을 배로 들였던 이유다. 예상 건축비는 50억 원. 대부분 물고기를 잡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해온 신자들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건축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를 매주 열고, 지역 특산물을 내다 팔며 준비한 약간의 자금에 대출금을 보태 2004년에야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는 2년 만에 끝났다. 성당은 멋스러운 붉은 벽돌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수목이 어우러져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진 성당 마당은 지역주민들도 즐겨찾는 명소가 됐다. 신자들은 "이제 빚만 다 갚고 봉헌식을 열면 정말 '우리 성당'이 된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신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어르신들은 썰물 때가 되면 개펄에 나가 조개를 줍고 굴을 따서 번 일당 5만 원을 쪼개고 쪼개 성당에 냈다. 2007년 겨울, 푼푼이 낸 돈을 모아 40억 원을 갚았다. 마침내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12월 7일, 태안 기름유출사건이 일어났다. 검은 기름 1만 2547ℓ가 해안으로 끝도 없이 밀려왔다. 태안 사람들은 한순간에 바다라는 가장 큰 일자리를 뺏겼다. 지역엔 절망감이 가득했다. 신자들은 본당 빚을 갚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성당을 찾는 발걸음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때, 희망의 씨앗이 외지에서 날아들었다. 매일 수천 명이 태안을 찾아 돌에 낀 까만 기름을 닦았다. 본당은 고생하는 봉사단원들에게 떡국을 끓여 대접했다. 그러고 나면 봉사자들은 꼭 '적지만 내 마음'이라며 봉투를 쥐어주고 떠났다. 어느 이름 모를 여성이 '아버지 뜻'이라며 떡국을 끓이던 신자에게 건네고 사라진 봉투에는 1000만 원 수표가 들어 있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은 성당 빚을 갚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전국 본당이 태안본당을 위해 보내온 성금이 피해 가정에 전해졌지만 많은 신자들은 이를 고스란히 본당에 봉헌했다. 이해선(시몬, 76)ㆍ권영오(안나, 68)씨 부부도 그 중 하나다. 성전건립 준비위원으로 누구보다 본당 사정을 잘 알았던 이씨는 "우리 본당이 빚 때문에도 힘들고, 그 많은 봉사자들 챙기느라고 고생하는데 이렇게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한다. 사고 직후 부임한 최익선 주임신부는 가가호호 방문으로 신자들 보듬기에 나섰다. 신자들은 최 신부가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었다. 때맞춰 시작한 소공동체 활동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가까운 지역 주민 4~5명으로 구성된 소공동체는 서로 위로하며 아픔을 나눴다. 빠르진 않았지만 성당은 차츰 북적이기 시작했고, 미사를 참례하는 신자들 얼굴도 서서히 밝아졌다. 함께 고생하고, 낯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은 순간들은 '말 못할 고통'을 '잊지 못할 감동'으로 바꿔 나갔다. 신자들은 그때 고초를 함께 겪은 것이 공동체로서 돈독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11월, 본당은 마침내 모든 빚을 갚았다. 맑은 바다가 기름으로 물들었다 또다시 살아나는 동안, 부지런히 꽃게와 조개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빚을 다 갚은 것이다. 성전 봉헌식은 기름유출사태 이후 동네에 처음 들리는 잔치 소식이다. 신자들은 들뜬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고, 이날 봉헌할 성경 필사 준비에 한창이다. '까막눈' 할머니들은 본당이 특수제작(?)한 한글 따라쓰기 공책에 기도문을 적고 있다. 호미, 곡괭이만 잡아온 투박한 손으로 처음 연필을 잡고 꾹꾹 눌러쓰다 보니 종이가 다 찢어질 정도다. 침침한 눈에 돋보기를 대고, 손목이 시큰할 때까지 적어낸 공책을 본 최 신부의 소감은 한마디로 "기가 막힌겨!" 였다. 태안성당이 지역사회에 '고난이 있어도 결국 사람 사는 곳에 생명과 희망이 있다'는 복음적 가치를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신자들의 희망이다. 최 신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쳤던 신자들이 새성전 봉헌을 통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다림의 끝인 성전 봉헌식은 대림 제1주일인 27일이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1.11.22

인간 생명에 대한 사랑의 가지들 뻗어나가 거목 되길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제6회 생명의 신비상 15일 서울 명동 서울로얄호텔에서 열린 제6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은 인간 생명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자리였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인간 생명의 터전인 생태계 보존을 위한 저술, 소외된 한센병 환우을 위한 보살핌, 단체를 통한 생명운동…. 수상자들의 활동 분야는 각기 달랐지만 생명을 수호하려는 큰 뜻은 하나였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시상식 축사에서 "성경은 산모 뱃속에서 잉태됐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 생명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고 강조하고, 수상자들에게 교황 베네딕토 16세 축복을 전했다. 또 손병두(요한 보스코) 한국방송 이사장은 생명의 신비상이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했다. 수상자 4명의 시상식 강연을 요약한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성체줄기세포의 한계 극복을 위한 원천 기술 연구(오일환 교수, 가톨릭대 의대 기능성세포치료센터 소장) 10여 년 전만 해도 배아줄기세포가 주류를 이뤘던 줄기세포 연구의 중심이 지금은 성체줄기세포로 옮겨왔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 생명인 배아를 파괴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반면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그런 문제점이 없다. 성체줄기세포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의 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치료법들을 개발하고, 손상받은 장기를 재생하는데 필요한 재생력을 성체줄기세포가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최근에는 성체줄기세포의 유전학적 조절기전과 몸 안에서의 미세환경 조절을 통해 줄기세포의 기능을 높이고 재생을 촉진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성체줄기세포 재생력 강화 △성체줄기세포의 미세환경 적중을 통한 치료효과 항진 기술 △성체줄기세포의 역분화 기술 △제대혈줄기세포의 이식치료 기술 △제대혈줄기세포의 효율 증진 방안 등이다. 차세대 줄기세포 치료를 위한 원천 기술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 난치병 환자들 인권이 상업적 이해로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 국내 허가가 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외국에서 받다가 사망하거나 줄기세포 연구가 금융권 투자와 결부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줄기세포 연구는 금전적 이익이 아닌 인간 생명 자체를 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가능성과 한계를 가진 지구에서의 삶의 전략(전헌호 신부,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인류는 지구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없다. 우주를 탐험할수록 지구의 소중함은 더욱 부각된다. 과학문명이 가장 발달한 21세기 들어 인간 힘으로 못할 것이 없다는 기세로 모든 사물과 사건, 사람을 대하고 있다. 그 결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지구가 난개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생태계 질서에 큰 혼란이 초래됐다. 인간 삶은 존재가치를 상실했고, 윤리적 삶의 토대는 붕괴됐다. 우리는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지구적 존재다. 따라서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잘 파악하고, 그 범위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 범위를 넘어설 경우, 생존경쟁과 투쟁 그리고 무질서와 생명경시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삶의 장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교육을 해야 하고, 절제ㆍ양보ㆍ나눔ㆍ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한편에는 마음껏 살고자 하는 생명에의 의지ㆍ성장ㆍ성취ㆍ번영을, 다른 한편에는 절제ㆍ양보ㆍ나눔ㆍ이웃 사랑을 두고 양편 간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아득히 멀지만 지금까지의 공부와 연구로 알아낸 것만으로도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사람은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이기에 창조는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 창조질서를 존중하고 나와 이웃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삶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 열심히 일하고 나눠야 한다는 것 등이다. 문제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는 것이 먼저이고 실천하는 것은 그 다음이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는 앎은 무기력하고 사용되지 않는 지도와 같은 것이다. 알게 된 진리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외칠 것이다. ▨기쁜 초대(엠마 프라이싱거 여사, 대구대교구 구라복지사업) 193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부모와 형제들에게 한국에 가서 2년만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1961년 고향을 떠났다. 떠나기 전,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한국인 교수에게 한국말을 몇 마디라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면서, 한국에 가면 살지 못하고 며칠 만에 돌아올 거라고 했다. 한국에 와 보니 정말 가난했다. 그렇지만 몹시 기뻤고, 잘 왔다고 생각했다. 1961년 8월 처음으로 환센병 환자가 사는 은양원에 가게 됐다. 다녀온 그날 밤, 2년만 환자들을 돌보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약속이 평생으로 바뀌었다. 주님께서 이 먼 곳으로 불러주심이 말할 수 없이 기뻤고, 그때부터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겼다. 1965년 경북대병원 피부과 과장님 협조를 받아 전문적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외래 진료실을 짓고, 침실, 수술실과 물리치료실을 갖췄다. 이동 진료반을 운영하고, 환자 자녀들 공부도 뒷받침해줬다. 한국에 올 때만 해도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환센병이 이제는 낫는 병이 됐고, 병의 이름도 나병에서 한센병으로 바뀌었다. 여러 구라 기관들이 함께하는 덕분에 구라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에 오자마자 만났던 환센병 환우들이 "당신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준 사람이다"고 말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50년째 되는 지난해 어느 날, 그때 만났던 환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똑같이 말했다. "엠마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준 분이요." 이 모든 것을 하느님 영광으로 돌린다. ▨생명수호의 길, 한 번에 한 걸음씩(메리 필라 베르조사 수녀, 필리핀 생명운동재단 명예 이사장) 1974년 설립된 필리핀 생명운동재단은 필리핀 전역의 프로라이프 단체들 활동을 조율하고, 생명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인간생명 존엄성에 대한 필리핀 국민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생명운동재단은 수태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이 존중받도록 하는데 선구적 조직이 되고자 한다. 재단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베로니카 프로젝트 : 낙태와 유산, 피임, 불임수술, 가정폭력 등 극심한 가난과 무지로 상처입은 여성과 남성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자연출산조절법을 교육하며, 매년 낙태아 묘를 방문한다. △라헬 프로젝트 : 위기 임신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임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라헬의 모임을 통해서는 낙태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과 구조활동,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미카엘 프로젝트 : 수정부터 죽음에 이르까지 인간생명 수호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낙태ㆍ이혼ㆍ동성애혼ㆍ안락사 등 반생명 법안들이 입법화되지 않도록 로비활동을 하며, 지역사회 조직과 지부 건설을 통해 다양한 계층 사람들이 생명수호 활동에 나서도록 돕는다. △여호수아 프로젝트 : 태아의 생명권(태어날 권리, 어머니 자궁 안에서 보살핌을 받을 권리 등)을 수호하는 프로그램이다. 낙태병원 앞에서 묵주기도 대회을 열고, '영적 입양'을 통해 낙태 위기에 처한 태아가 무사히 태어나도록 기도한다. △엘리사벳 프로젝트 : 부부 관계와 부모 책임감을 향상시키는 자연주기법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한다. △가브리엘 프로젝트 : 생명ㆍ가정ㆍ사랑ㆍ성ㆍ혼인 등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프로그램이다. 십대를 위한 성 프로그램 실시, 생명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비치한 지원센터와 도서관 운영, 방송을 통한 상담, 음란물을 퇴치하기 위한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낙태ㆍ피임ㆍ불임수술로 상처받은 남성을 위한 라파엘 프로젝트와 책임감 있는 아버지, 형제 및 지도자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돕는 야곱 프로젝트 등이 있다. 남정률201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