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75- 결혼-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cpbc.co.kr/CMS/newspaper/2010/01/rc/323411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75- 결혼-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요즘은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한다. 또한 결혼 연령도 점차 늦어지는 추세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와 개인주의적 가치관, 육아문제 등이라 한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인간이 지켜야 할 중요한 규범이었고 유다인들에게 결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었다. "아내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는 탈무드 대목처럼 유다인들은 결혼을 해야 한 인간으로 온전해진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 결혼은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이다(창세 1,28). 일반적으로 유다인들은 동족끼리 결혼하는 것이 관례였다(창세 24,3-4). 그래서 가족은 씨족의 일부였으며, 조부모, 부모, 형제, 자매와 사촌들로 구성됐다. 예외적으로 다른 종족과 결혼을 하는 경우(창세 41,45 참조)는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었다(1열왕 11,1 참조). 그러나 유다인은 종교적 이유로 이방인과 결혼할 수 없었다(1열왕 11,4). 유다인들에게 결혼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자녀 출산에 있었다. 유다인 여성이 아들을 낳는 것은 사회적, 법적 지위를 얻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성경에는 자녀 출산에 집착하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자녀가 여성의 미래를 보장해줄 보험과도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남녀가 가정을 이뤄 자녀를 낳는 것은 하느님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창세 1-2장 참조). 성경에 보면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가 있었다(창세 38,8). 이런 관습은 가문의 대를 잇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성경시대에도 결혼이란 남녀 당사자의 문제일 뿐 아니라 두 집안, 가문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래서 당시 결혼은 대개 중매라는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재미있는 것은 중매로 결혼하게 된 신부 얼굴은 결혼식 당일이 돼서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결혼식은 가족 전체와 마을, 그리고 손님들과 행인들에게도 베푸는 큰 축제로 진행됐다. 결혼식 연회, 노래, 춤이 계속해서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결혼식에서는 결혼예복을 입는 것이 중요한 풍속이었다. 부잣집 잔치에는 손님들에게도 결혼예복이 제공됐다(마태 22,12 참조). 예수님은 설교에서 혼인예식 예복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회개에 비유하셨다(마태 22,2-14 참조). 잔치에 참가하는 손님들은 결혼이 성립하는 데 중요한 증인 역할을 했다(창세 29,22-23 참조). 이처럼 혼인잔치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부부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여기에 참석한 이들이 공식적으로 혼인 증인 역할을 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한 것도 카나 지방 혼인잔치에서였다(요한 2,1-12). 우리 삶에서 결혼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든 사회적 통계를 보면 결혼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에 이혼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결혼 후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들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서구적이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조은일2010.01.19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사순특강③] 최고가 되기 위한 선택두 봉 주교사랑에는 세 가지가 있다. 빨간 하트 모양 같은 남녀 간의 이성적 사랑과 그냥 마음이 가는 우리의 정(情) 같은 사랑,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고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사랑'이라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성경은 예수님 사랑 전체를 '아가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특수한 용어를 한국말로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은 그 예수님 사랑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사셨다. 그러한 예수님 사랑을 설명하는 데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잔을 부딪치며 외치는 '위하여'가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로마서 14장 8절을 보면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는 구절이 있다. 참 묘한 말씀이다. 누구를 위해 살라는 말씀인지 헷갈린다. 내 삶이 주님의 삶이라니, 날 위해 죽지도, 살지도 말라니 참 이상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바오로 사도 말씀인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코린 3,16)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당신의 최고 사랑을 잘 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위해, 하느님 영이 함께하는 이웃을 위해 사신 분이다. 고달픈 상황에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늘 기도드리며 자유롭게, 정의롭게, 지혜롭게 사신 분이다. 다음 성경 구절은 예수님의 이러한 삶을 가장 잘 보여준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목숨은 숨을 쉬는 행동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늘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베푸는 삶을 사셨다. 바로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아무도 예수님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마저 바치신 예수님 사랑이 바로 최고 사랑이다. 그럼 우리도 그런 삶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나 반문해보자. 우리라고 하면 성직자, 수도자뿐 아니라 모든 신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려면 물론 용기가 필요하다. 믿음이 없는 이들 기준에서 삶의 우선순위는 '자신'이다. 내가 소유하고, 인정받고, 자신이 세상 중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아도 인간 욕심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유다.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도 이기적인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한숨을 쉬며 "당신 때문에 죽겠다"고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이들이 불행해 지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누구 것인지 다시 살펴보자. 우리는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 때 "두 손으로 받고 고맙다고 말씀드려라"하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기에 고마워하며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인데 우리가 마치 주인인 양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받은 삶이라는 선물을 내어주며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한다. 그럼 '내가 너무 손해 보는 거 아닌가? 바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맞다, 우리는 바보가 돼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스티커를 기억할 것이다. 김 추기경님도 그런 삶을 사셨기에 스스로를 '바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의 눈에는 그냥 바보겠지만, 사실은 주님을 닮은 바보, 지혜로운 바보인 셈이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 여기 초 한자루가 있다. 이 초는 나의 삶이고 초에 붙은 불은 바로 주님의 빛이다. 촛불을 이웃에게 전한다고 내가 손해를 보겠는가? 내 촛불은 여전히 밝고 옆 촛불이 더해져 주변이 더 밝아진다. 하느님 빛을 전하면 전할수록 우리 삶은 더 환한 기쁨을 얻게 된다.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살도록 하자. 우리는 바로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복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주님을 따라 사는 삶, 그것이 최고로 멋지게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정리=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김은아2011.04.05
마리아 학교 수강자 모집, 마산교구 '이상적인 본당…' 특강2011년도 마리아학교 수강자 모집, 28일까지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수녀회가 운영하는 마리아학교가 2011년도 수강자를 모집한다. 마리아학교는 하느님을 향한 순명의 삶으로 주님의 인류구원 사업에 동참한 '믿음의 여인' 성모 마리아의 진정한 모습을 알려주는 전문 교육과정이다. 1년 2학기 제로 전례 속의 마리아, 성경 속의 마리아, 교회 문헌 속의 마리아, 마리아의 4대 교의 등에 대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조규만 주교, 정영한 신부, 최경용 신부, 이정순 수녀 등이 강의한다. 마리아학교는 3월 8일 오후 2시와 10일 오후 2시 부산 본원 마리아센터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각각 개강한다. 28일까지 전화와 전자우편(listran@hanmail.net)으로 접수하며, 수강료는 20만 원(서울 마리아 학교 25만 원)이다. 문의 : 051-634-4845, 02-774-0448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마산교구 '이상적인 본당…' 특강, 24일 교구청 마산교구는 24일 오전 10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교구청 강당에서 자매교구인 오스트리아 그라츠교구 컨설팅 전문가 루드비히 카퍼 (Ludwig Kapfer) 교수 초청 '이상적인 본당과 교회조직체를 만들기 위한 특강'을 마련한다. 마산교구와 그라츠교구 자매결연 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되는 특강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본당과 산하 조직체, 사회복지 조직 등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마음으로 업무에 임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다. 서영호 기자 퇴사자22011.02.15
수원교구 청년 신앙생활 의식조사청년들 '교육'에 갈증 느낀다. 청년 신자들이 교리공부와 전례교육 같은 신앙교육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교구 청소년국(국장 이건복 신부)이 최근 청년 18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구 청년 신앙생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7%가 본당에서 실시하길 바라는 교육으로 교리교육을 꼽았다. 또 교리ㆍ성경교육 외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ㆍ행사는 전례교육(23.7%)이라고 대답했다. 정기적 청년연합미사(19.8%), 교구청년대회(15.8%), 성음악 교육(15.2%)이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설문조사는 수원교구가 설정 50주년(2013년)을 앞두고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기에 앞서 현실 진단 차원에서 실시됐다. 교구는 청년에 이어 초등부ㆍ중고등부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곧 발표할 예정이다. #교리교육을 원한다 청년들은 본당에서 해줬으면 하는 역할로 교리교육(65.7%)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어 인성교육(35.9%), 전례교육(25.7%), 성경교육(24.3%) 등을 원한다고 응답했다(중복 선택). 청소년국장 이건복 신부는 기초적 신앙교육에 대한 청년들 갈증에 수긍하면서도 "그렇다고 본당에서 초중고등학생과 같은 방식으로 청년 교리교육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청년들은 본당에 교리교육을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해 깨우쳐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대신 교구와 본당은 하느님을 모르는 청년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신앙 리더 청년을 양성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교리ㆍ성경교육 외에 청년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이나 행사를 묻는 질문에 23.7%가 전례교육을 꼽았다. 정기적 청년연합 미사(19.8%), 교구 청년대회(15.8%), 성음악 교육(15.2%)이 뒤를 이었다. 체계적 교육이 아닌 선배 전례단원을 통해 이뤄지는 도제식 전례교육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은 또 신앙 성장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성경공부ㆍ신앙교육(31%)을 가장 많이 꼽았다. 기도(28.1%)와 성경읽기(24.1%)도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본당 청년회 내에서 만들어지길 원하는 동아리(주관식 문항, 197명 응답)로 성경모임을 선택한 청년이 6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음악모임 54명, 봉사모임 28명, 운동모임이 25명이었다. 청년들은 음악ㆍ운동 등 취미모임보다 성경ㆍ봉사모임과 같은 신앙성숙과 나눔을 추구하는 모임을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들은 신앙생활이 중ㆍ장년이 됐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39.4%), '많은 도움이 될 것'(42.6%)이라는 응답이 대부분이었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개인 신상 문제가 냉담 주 원인 유아세례 비율이 5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답도 있었다. 청년 51.7%는 결혼하고 나면 자녀도 당연히 가톨릭 신자가 돼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나머지는 '가능하면 그렇게 되길 바란다'(36.6%), '자녀 판단에 맡길 것'(11.7%)이라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자녀가 당연히 신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청년 비율은 2009년 수원교구 유아세례 비율(53.3%)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응답자들은 청년층이 냉담하는 이유로 53.3%가 학업ㆍ취업ㆍ군 입대 등 개인 신상 문제를 꼽았다. '종교 지식과 영성 부족'(22.1%), '본당 활동이 힘들거나 마땅히 활동할 곳이 없어서'(15.4%)도 이유로 들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과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스텔라)와 관련된 질문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청년들은 김 추기경이 국민적 추앙을 받은 이유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사회봉사를 열심히 한 데다'(50.4%) '신앙의 힘으로 하느님 뜻을 실천하려 노력했기 때문'(37%)이라고 응답했다. 김연아 선수가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경기 전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을 묻는 질문에는 '성숙한 신앙 태도'였다는 응답이 45.7%로 가장 많았다. 이번 설문조사는 2000명에 가까운 청년들 신앙생활 의식을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조사해 여러 가지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지만 한계도 지니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청년 중 94%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미사에 참례하는 건실한 신자다. 따라서 청년 미사참례율이 10%가 채 안 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조사결과가 전체 신자 청년들의 신앙의식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볼 수 없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냉담 원인도 실제로 냉담을 하고 있는 청년이 아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들 생각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건복 신부는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청년 신앙활성화를 위해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면서 "청년들 의식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사목정책을 수립하면 보다 많은 청년들을 교회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0.09.28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1. 끝나지 않은 공의회](//cpbc.co.kr/CMS/newspaper/2011/12/rc/400218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1. 끝나지 않은 공의회삶에서 완결해야 할 '쇄신과 적응'1962년 가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인 주교들. 교회사에서 21번째 세계 공의회로 기록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이전 공의회들과는 사뭇 다른 공의회였습니다. 이 다름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공의회 소집 동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전 공의회들은 공의회를 소집해야 할 상당하고 긴급한 사유가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이단 문제, 교회 분열, 세속 권력의 간섭 배제, 교회 생활의 폐해 근절과 규율 확립 같은 것들이 공의회 소집의 주요 동기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 소집의 특별한 동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더욱이 만 77살 고령에 교황이 된 요한 23세에 대해서는 다들 '과도기' 교황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23세가 1959년 1월 25일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둘째, 공의회 결실인 문헌들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전 공의회들은 교리적 측면에서 정통과 이단의 경계를 확실히 했습니다. 그래서 공의회 결과물인 교령이나 법령은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이단인지를 분명히 하면서 이단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단죄했습니다. 또 교회 규율과 관련해서도 이런 면에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법적 규율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에 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은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4개 헌장을 비롯해서 9개 교령과 3개 선언으로 이뤄진 16개 공의회 문헌들은 일반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법적 성격을 띠는 조문들에서조차 이전 문헌들에서 볼 수 있는 제재나 단죄, 처벌 같은 내용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리상 오류를 단죄하고 교회 생활의 폐해를 척결하기보다 시대의 도전과 요구에 대해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신학적 종교적 답변을 제공하려 했음을 공의회 문헌들은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로운 공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로움은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가 공의회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라는 이탈리아 말에서 잘 나타납니다. 흔히 '현대화'로 번역되는 아조르나멘토는 다른 식으로는 '쇄신과 적응'이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아조르나멘토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하여 사회나 시대 상황에 적합하게 맞춰나간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23세는 아조르나멘토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방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라'는 표현으로 멋지게 풀이했습니다. 여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움이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의 비범함이 있습니다. 요한 23세의 눈에 교회는 정적이었고 고착화돼 있었습니다. 바깥 세상은 변하는데 교회는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제 새로운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시대의 징표들을 식별하여(마태 16,3 참조) 쇄신을 이뤄야 할 때, 아조르나멘토의 때가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선포하는 신앙 진리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진리 자체는 불변하지만 그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돼야 함을 이해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이전까지 교황을 최고 정점으로 그 아래 주교들과 또 그 아래에 신부들과 부제들이 포진하고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적 교회관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는 이런 위계적 교회관보다 교회를 신비체로 보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하느님 자녀로서 똑같은 품위를 누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친교의 공동체로 이해했습니다. 공의회는 나아가 세상을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이제 세상은 이전처럼 교회가 담을 쌓고 멀리해야 할 부정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나름대로 질서를 갖고 있지만 그 질서는 복음 정신으로 개선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교회는 비록 현세에서 나그네살이를 하지만 현세 질서를 하느님 뜻에 맞도록 개선하는 일은 또한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 현세질서를 개선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평신도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평신도는 나름대로 교회 성장을 위해 봉사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속에 살면서 누룩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공의회는 이렇게 평신도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했습니다. 공의회 정신인 아조르나멘토, 곧 쇄신과 적응은 이렇게 교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면서 교회 생활 전반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를 들 수 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 전례가 라틴어로만 거행됐습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등지고 홀로 미사를 거행했고, 신자들은 말하자면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니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참석'하면서 자기가 드리고 싶은 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미사 중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자국어로 사제가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공동체 미사 전례를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드리는 미사 전례입니다.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게 된 성경 공부가 강조된 것, 평신도들이 교구 사목평의회나 본당 사목평의회를 통해 교회 활동에 참여하고, 미사 독서나 성체분배 같은 성직자들에게만 허용했던 직무들이 평신도들에게까지 확대된 것도 공의회 결실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타그리스도교와 타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를 달리했습니다. 단죄하고 배척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협력하는 전향적 자세로 돌아섰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아조르나멘토를 기치로 내세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결실들입니다. 여기에는 근간이 되는 신학적 원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생의 원리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를 구원하시려 몸소 사람이 되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에 구원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50년 전인 1962년 10월 11일에 개막해 3년 후인 1965년 12월 8일에 폐막했습니다. 그러나 공의회의 결실인 16개 문헌들에서 드러나는 아조르나멘토 곧 쇄신과 적응의 정신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의회의 가르침들에 비추어 계속해서 구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끝나지 않은 공의회입니다.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30년 이상 신학을 가르친 한 예수회 신학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21세기를 위한 21번째 공의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공의회 정신을 사는가'하는 자성의 물음을 계속 제기하면서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제2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탐구 여정을 시작합니다. 올해는 마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의 해이기도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1.12.27
사랑의 증거자인 순교자 삶과 영성 조명 윤호병 시집「파스카 오래된 말씀의 집」 "신부님은 바보, 바보 신부님, 그렇지요? (중략) 친구를 대신해서 죽는 죽음이 가장 큰 사랑이기는 하지만, 신부님, 바보 신부님, 가죠프니체크는 쌩판 모르는 사람이었잖아요?"('바보, 바보 성인, 콜베 신부님' 중에서) "병인박해-그 흉흉한 소문 속에서 지게 발채에 남모르게 「성경」을 숨기고는, 꼭두새벽 백여 리 첩첩산길 넘고 넘어 청주 어디쯤 주일미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는 했다는 증조부의 마음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숨죽이며 종일을 오갔을 그 마음은…"('파스카, 오래된 말씀의 집' 중에서) 윤호병(빈첸시오, 61) 시인이 성인의 삶과 성경 묵상, 신앙에 대한 단상을 산문시로 담아낸 시집 「파스카 오래된 말씀의 집」을 냈다. 지난해에 펴낸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는 밤」에 이은 다섯 번째 가톨릭 시집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다 순교한 성인들 삶을 묵상하며 쓴 시다. 김대건 신부와 콜베 신부, 몰로카이의 다미안 신부,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를 비롯해 성경 속 인물들도 등장한다. 사랑의 증거자인 순교자의 삶과 영성에 운율을 입혔다.(1,2부) 평소 깨달음을 주는 위인들의 촌철살인 같은 명언(3부)과 에세이 산문(4부)도 실었다. 시와 관련된 성화와 성인들 사진도 함께 실었다. 문학적 자전도 수록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뒤뜰에 서서 지난날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또 한 권의 시집을 엮어보았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 하나로 아낌없이 실천하다가 순교하신 성인들, 그분들의 거룩한 모습을 한 분 한 분 어렴풋이나마 떠올려보면서."(서문 중에서) 추계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인 시인은 서울대와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과 문학이론을 전공했다.(이종/1만 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0.09.28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42)] 19.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개혁과 의의)](//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8042_1.2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42)] 19.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개혁과 의의)교회 개혁, 쇄신으로 가톨릭 정통 교리 확립 ▨ 공의회 이후 개혁 1545년 12월 13일에 개회한 트리엔트 공의회는 1563년 12월 4일 폐회하기까지 18년에 걸쳐 25차 회기를 통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교리 문제와 교회 개혁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에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사도좌에 넘긴 사안들이 있었습니다. 신앙에 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이른바 금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 공의회에서 결정한 교리와 전례에 따라 교리서와 미사경본을 간행하는 일,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위한 기도서 성무일도를 발간하는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비오 4세 교황은 1564년 3월 칙서릍 통해 공의회에서 준비한 자료를 토대로 금서 목록을 간행합니다. 이어 공의회 결정들을 올바로 해석하고 시행하는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 해석 추기경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비오 4세는 또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 신학자들이 휴대할 수 있도록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를 요약한 「트리엔트 신앙 고백」을 발간합니다. 나아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결정한 규정과 어긋나는 모든 특전이나 관면, 권한 등이 폐지됐음을 공식으로 선포합니다. 1565년 12월 9일 비오 4세 교황이 선종하고 후임 교황에는 로마 종교재판관으로 이름을 떨친 보스코 바렌고 추기경이 선출됩니다. 그가 성 비오 5세(재위 1566~1572) 교황입니다. 종교재판관으로 이단 척결에 단호함을 보여 유화적인 선임 비오 4세 교황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지만, 비오 5세 교황은 선임 교황의 개혁 노선을 따라 공의회와 선임 교황이 남긴 과제를 계속 수행해 나갑니다. 본당 신부들을 위해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와 규범인 「로마 교리서」를 발간했으며,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위한 기도서 「로마 성무일도」를 간행했습니다. 「로마 미사경본」도 간행, 서방 교회 전체가 통일된 로마 전례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비오 5세 교황은 교황청을 수도원처럼 꾸며 검소하게 생활하고 공의회에서 결정한 성직자 상주 의무를 엄격히 적용해 장기간 임지를 비우는 주교들에게는 사목직과 성직록을 박탈하기도 했습니다. 공의회의 개혁 정신은 비오 5세 후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재위 1572~1585) 때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달력 그레고리오력을 도입한 교황으로도 잘 알려진 그레고리오 13세는 상주 교황대사 제도를 도입, 교황대사들을 통해 트리엔트 공의회 개혁 교령들이 지역 교회에서 제대로 시행되는지 지도, 감독토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이 유럽 각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또 로마에 신학원을 재건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신학원을 신설 또는 통합 확대해 공의회에서 역점을 둔 성직자 양성 교육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레고리오 13세 후임 교황 식스토 5세(재위 1585~1590)는 공의회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머리 개혁' 곧 교황청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식스토 5세는 1588년 1월 반포한 교황령을 통해 15개 성으로 이뤄진 교황청 편제를 확립했습니다. 9개 성은 보편 교회 업무를 , 6개 성은 교황국 통치를 담당토록 했습니다. 이에 앞서 1585년 12월 교황과 주교들과의 일치 증진을 위해 사도좌 정기방문(앗리미나, ad limina)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와 인접 국가들 주교들은 3년에 한 번, 그밖의 유럽 주교들은 4년에 한 번, 아메리카 같은 나머지 지역 주교들은 5년에 한 번 로마를 방문해 지역 교회 상황을 보고하며 신앙의 유대를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시행되고 있는 앗리미나가 이때 처음 시작된 것입니다. 교황들의 개혁 못지않게 지역 교회 주교들도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 노선에 따라 교회 생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교구 신학교 설립, 주일 및 축일 강론, 주교들의 임지 상주 및 교구 순시 같은 사목 조치들이 각 교구에서 이뤄졌습니다. 특히 교황 비오 4세의 조카로서 밀라노 대교구장을 지낸 성 가를로 보로메오(1538~1584) 추기경은 개혁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는 공의회 개혁의 효과적 실현을 위해 대교구를 12개 지역으로 나눠 교구장 대리들에게 맡기면서 그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사제 양성을 위해 신학교와 부속 소신학교를 세우고 별도로 교리학교도 세웠습니다. 보로메오 추기경이 교회 개혁 내용을 요약해 1582년에 간행한 「밀라노 법령」은 스페인과 프랑스 지역 교회들에 유용한 길잡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의의 19번째 세계 공의회로 기록되는 트리엔트 공의회는 무엇보다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 주장에 맞서 가톨릭 정통 교리를 확립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공의회는 은총과 의화 교리, 원죄 교리, 성경 경전, 성체성사와 실체변화, 일곱 성사와 전례, 연옥 교리 등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를 정립했습니다. 주요 교리와 관련해서 일부 부족한 점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론과 교황 수위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교황 수위권 문제를 제대로 다룰 상황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지닙니다. 공의회 우위설이라든가 또는 주교들도 교황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게서 권한을 직접 받았다는 주교 신수설 같은 이론들이 당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자칫하다가는 공의회가 파국으로 끝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공의회는 또 프로테스탄트들의 개혁에 맞서 개혁 교령들을 통해 가톨릭 개혁과 쇄신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개혁 교령들은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는 진보적 주교들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특히 머리인 교황청 관리들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지만 그럼에도 교회 생활의 폐해와 악습을 청산하고 제도와 규율을 정비해 개혁과 쇄신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한편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개혁이 머리(교황청)보다 지체(지역 교회와 본당, 수도회) 개혁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지만 공의회 이후에 개혁 성향들의 교황들이 잇따라 선출돼 공의회의 개혁 노선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발표한 수도생활에 관한 개혁 교령과 자선 활동에 대한 권면 등은 기성 수도회들의 개혁을 촉발시키는 한편 사회복지와 자선 사업에 투신하는 새로운 수도회들을 탄생시키는 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혁 수도회인 맨발의 가르멜회가 탄생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실천을 쇄신하는 밑거름이 됐고 이후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 거의 400년 동안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