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성경 읽기(14~27일)▨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14일~27일) ▲2장(14일) : 여러분이 무엇인가 용서해 준 사람을 나도 용서합니다. 사실 내가 무엇을 용서하였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 )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3장(15일) :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 )입니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 ▲4장(16일)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 )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5장(17일) : 우리는 그리스도의 ( )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6장(18일) : ( )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7장(19일) :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 )을 가져올 뿐입니다. ▲8장(20일) :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 )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9장(21일) :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 )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10장(22일) :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고 일어서는 모든 오만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 )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 ▲11장(23일) :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 )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12장(24일) :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 )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13장(25일) :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 )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26일) :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 )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27일)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 )으로 사는 것입니다.임영선2010.02.09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18> '코린토 교회가 세워지다'](//cpbc.co.kr/CMS/newspaper/2011/06/rc/379256_1.0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코린토 교회가 세워지다'코린토에 18개월 머물며 담대히 복음 전파 ◇작가노트 ; 부유한 대상인으로 성장한 코린토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들을 더더욱 박해하게 된다. 어느날 밤 환영으로 나타나 바오로에게 큰 용기를 주는 주님, 그리고 코린토 교회를 매우 사랑했던 사도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선교하는 모습을 그렸다.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에서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아테네는 자신들의 교양과 빛나는 역사에 대해 크나큰 자긍심을 갖고 있어 그리스도 신앙의 전파를 위한 구심점이 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코린토로 향했다. 그 시절 코린토는 그 지정학적 위치 덕에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었다. 항구는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를 연결했고, 로마제국 동부와 서부 지역을 긴밀히 연결했다. 로마 원로원 대표가 그리스 코린토에서 지방총독으로 봉직할 정도였다. 바오로는 코린토가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있다면 곧 항구에서 주위 섬들로, 나아가 모든 지역으로 그리스도 신앙이 퍼져나갈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천막 만드는 아퀼라 부부 만나 바오로가 아테네에서 코린토에 이르는 80㎞를 육로로 갔는지, 아니면 더 빠른 해로를 택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후자라면 피레아 항구에서 코린토 운하로 곧바로 가는 배를 타고 가서 켕크레애 항구에서 내렸을 것이다. 사로니코에 있는 이 항구는 코린토 만에 있는 레카온 항구로 하나의 예인망으로 연결돼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가 100년 전 상품을 실은 배들을 코린토 운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설치했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부분의 작은 배들은 펠로폰네소스의 파도 치는 대양을 피하게 됐을 뿐 아니라 한 바다에서 다른 바다로 이어지는 여행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바오로가 코린토로 들어가 천막제조업자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만났을 때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이었던 부부는 바오로에 앞서 로마에서 코린토로 왔다. 부부는 자신의 집에 바오로를 유숙시키고 자신의 천막제조공장에서 일을 하도록 했다. 그것은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에게도 특별한 축복이었다. 이렇게 코린토의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믿음 전파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작업했다. 아퀼라는 폰토스 출신이고, 프리스킬라는 로마 출신이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로마황제 클라디우스는 주후 49년 칙령을 내려 모든 유다인은 로마에서 떠나라고 명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퀼라는 프리스킬라를 데리고 코린토에 정착했다. 이처럼 코린토 히브리 정착촌에는 로마에서 온 유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는 전과 다름없이 회당에서 그의 사업을 시작했다. 예언서에 의거해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완수됨을 설교하고 그들이 설교를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부유한 대상인들인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위대한 메시아가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들은 그 다음 안식일에 바오로가 예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듣자마자 뒤집어 엎으며 소동을 벌이고, 그리스도에 대해 불경한 언사를 내뱉었다. #티티우스의 집에서 첫 교회 모임 바오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면전에서 하느님이신 주님의 성스러운 이름을 공격하는 것을 듣고 있을 수 없어 분노하며 그들에게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사도 18, 6)하고 말했다. 바오로가 회당에서 나오자 티티우스 유스투스가 그 앞에 나타나 회당 옆에 있는 자신의 집을 교회 모임을 위해 제공했다. 바오로는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바오로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를 따라 티티우스의 집에 모였으며, 그곳에서 바오로는 세례성사를 주기 위해 교리문답을 체계화했다. 코린토에 있는 첫 교회는 주로 전에 우상숭배자였던 이들과 몇몇 유다인들이 설립했다. 세례 교인들 중에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크리스포스는 후에 에기나섬의 첫 번째 주교로 수품했다. 코린토 히브리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자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주님은 바오로가 담대하게 대적하도록 투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어느 날 밤 환영으로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사도 18,9-10). 이러한 주님의 확증은 바오로에게 큰 용기를 줬다. 신자는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때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찬양과 함께 외쳤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시니 나는 두렵지 않네"(시편 118,6). 그리고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4). 실제로 주님은 앞서 우리가 말했듯이 히브리인들이 그를 갈리오노스 총독의 재판석 앞으로 끌고 갔을 때 모든 죄목에서 그를 벗어나게 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테살로니카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서한을 보내 그들이 당하는 박해에 강력히 대항하도록 그들에게 힘을 실어줬고 테살로니카에서 갑자기 추방당하면서 그들과 미처 논의하지 못한 몇 가지 문제를 그들에게 명료하게 알려줬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은 후에 신약성경에 포함됐고, 신약성경 27권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편지 바오로는 동료인 실라스, 티모테오와 함께 18개월 동안 일을 했고, 코린토 시내뿐 아니라 아카이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선교를 했다. 그것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 나타나며, 아카이아 교회에 인사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2코린 1,1 참조) 특별히 코린토 항구인 켕크레애에 있는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했으므로 포이베 봉사자에게 부제품(Deacon, 정교회에서는 보제품)을 줬음을 성경에서 알 수 있다.(로마 16,1)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를 매우 사랑했으며 당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도록, 그리고 정신적으로 교회를 강화시키고자 항상 돌봤다. 신약성경에 포함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이라는 두 편의 긴 서한이 그것을 나타내준다. 그리고 세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코린토를 두 번째로 방문한 것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바오로는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염려돼 코린토를 떠나기로 했다. 코린토 교회는 적임자들인 사제들로 잘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린토를 떠나며 바오로는 자신의 협력자들을 함께 데리고 떠났다.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자신의 장래 선교활동을 예비하도록 소아시아 에페소에 거처하게 했다. 그리고 그곳 회당에서 설교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에페소로 곧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바오로는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위대한 사도의 두 번째 선교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그림 정미연오세택2011.06.07
[생명의 문화] 생명문화의 학적 기반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생명이 죽어가고 삶이 부서지는 현대 문화의 위기에 대한 자각에서 구체화됐다. 이러한 인식은 멀리는 철학적 맥락에서, 가까이는 현대 문화의 위기 현상에 대한 비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간략히 언급하자면 여기에는 18세기 이래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기준이 된 서구 근대의 철학적 원리와 문화적 현상, 그 체계에 대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근대성 극복과 함께 새로운 철학적, 문화적 원리로서 생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란 관심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거론하는 까닭은 생명이란 문화적 토대를 떠나서는 올바르게 자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이해와 생명을 존중하려는 문화적 토대 마련, 인간 생명과 삶이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는 삶의 터전 위에서야 생명은 올바르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교회 내에서는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이 구체적으로 이런 문제를 거론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살림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지상 과제를 언급한 데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과잉으로 치닫는 현대 문화의 방향을 분석하고 교정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현대의 철학적 흐름과 경향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넘어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와 문화 현상은 유럽적 정신과 철학, 그 문화가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우 중국과 유럽이 맞선 1840년대 이후 동아시아 정세, 일본 근대화와 그를 통한 구한말의 역사적 경험이 빚은 결과다. 그 이후 지난 150여 년은 우리에게는 제국주의 횡포와 착취, 야만적 행태를 극복하고 대응해온 시기였다. 1970년대 이래 이뤄진 우리 문화와 사회적 업적은 그런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를 통해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룩한 것도 사실이며, 일정부분 세계의 주목과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에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제와 의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의 터전인 생태계와 삶의 터전인 문화를 최소한으로 지키는 데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지닌 생명에 대한 의무와 과제는 적극적으로 창조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그 목적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투신하고 헌신하는데 있을 것이다. 동물의 생명과 달리 인간 생명은 다층적이며, 의미론적일 뿐 아니라 실존적이며 존재론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과 삶은 영성적이며 초월적인 영역까지도 지니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아니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 생명은 생리적 층위를 넘어 존재론적이며 초월적 영역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문화를 위한 우리 과제는 여기에 있다. 성경의 모든 가르침이 결국 창조된 생명의 신비를 달성하고, 생명의 의미와 목적을 구현하는 데 있기에 끊임없이 생명을 살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함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하느님 뜻을 저버리는 불의를 넘어 정의를 말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은 정의를 넘어 적극적으로 자신을 비워가는 가운데 이뤄지는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의 근본 가르침은 자기비움(kenosis)을 통한 이웃 사랑과 그를 통해 이뤄가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만남에 있다. 그것은 결국 생명을 살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문화는 위기에 빠져있다. 현대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에는 물론, 생명을 살리는 길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것은 많은 철학자들 지적처럼 근대 이래 철학이 과잉으로 작동하기에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 문화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삶을 다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만 규정하고 있다. 진리를 이해하고, 참된 지식을 얻는 길을 다만 사물적 존재자에서 객체적 지식을 구하는 현대 학문의 흐름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이로써 개별적 생명 현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생명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제도와 민주주의란 정치체제는 최소한의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마치 최고의 체제인 양 치부함으로써 순차적으로 되풀이 되는 권력 과잉과 거기에서 소외된 이들의 요구는 무시되고 있다. 그래서 시민과 시민사회, 공공성이 사라진 사회로 치닫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풍토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몰가치화하는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복음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것은 이런 반생명적인 문화적 흐름, 인간과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객체주의적 경향을 벗어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참된 생명의 문화는 이러한 반생명적 흐름, 몰생명적 철학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되며, 이로써 생명의 의미를 존재론적이며 초월론적으로 정초하는 방향에서 다듬어질 것이다. cpbc2011.05.31
[출판]신약외경 하권-행전, 서간, 묵시록초기사도들 관련 이야기 신약외경은 신약성경 27권에 속하지 않는 2~6세기 사이 문헌들을 일컫는다. 토마스 사도의 인도 선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순교 이야기 등 예수와 초기 사도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송혜경(비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박사는 2009년 「신약외경 상권-복음서」에 이어 행전과 서간, 묵시록편을 다룬 이번 책을 펴냄으로써 신약외경 상ㆍ하권을 마무리 지었다. 신약외경 하권은 첫째마당 행전, 둘째마당 서간, 셋째마당 묵시록, 넷째마당 본문과 주해로 구성돼 있다. 각 외경에 대한 정의와 특징과 배경, 다른 작품들과 관계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콥트어로 된 신약외경 원문을 직접 번역하고 각주를 달았다. 아울러 이해하기 어렵거나 신학적,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해제를 달아 독자들이 초대교회 삶과 역사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송혜경 역주/한님성서연구소/3만 5000원)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1.05.11
사순기획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 - 베로니카 수건하느님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 - 진품 여부 떠나 믿음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성화 사순절 한 가운데 서 있다.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의 길을 묵상할수록 참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을 상상하는 것만으론 그 고통을 실감할 수 없다. 예수의 수난은 실재했던 사건이다. 수난의 길에 남겨놓으신 예수의 자취를 통해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고자 한다.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들은 성 십자가와 죄명패, 가시면류관, 못, 베로니카 수건 등이 현존하고 있다. 이 수난의 증거들을 모아 사순기획으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에는 '베로니카 수건'에 대해 알아본다. ▨ 그리스도의 참얼굴 '하느님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 너무 놀랍고 신비로워 감히 그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케이로포이에토스'(헬라어 αχειροποιτοζ-사람 손에 의해 그려지지 않은 그림)라 불렀던 성화. 바로 '베로니카 수건'이다. 라틴말 '베로니카'(Veronica)는 베라(vera,참된)와 이콘(icon,인상)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참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베로니카의 수건은 '참 얼굴을 담은 천'이라 직역할 수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는 것을 보고 한 여인이 마음이 아파 예수 얼굴을 닦아줬는데 그 얼굴이 그 천에 찍혔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 얼굴을 닦아준 여인이 바로 베로니카라고 하는데 여러 인물로 추정된다. 베로니카라는 여인은 예루살렘 출신 신심깊은 부인으로 예수를 보고 통곡하는 여인들 중 한 사람(루카 23,27)이라고도 하고, 예수의 옷자락 술을 만져 혈루증이 나은 여인(마태 9,20-22), 또는 라자로의 누이인 베타니아의 마르타라고도 하고, 자캐오의 부인(루카 19,1-10)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베로니카는 이후 그리스도 얼굴이 새겨진 수건으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14~37)를 치유시켰고 여러 기적을 일으켰다. 심지어 죽을 위험에 처한 이를 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임종 때 교황 클레멘스 1세(재위 90~101)에게 그 수건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베로니카 수건은 역사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94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확인됐다. 이전까지 에데사의 만둘리온에 보관돼 오다가 이 때 비잔틴 제국 황제 로마누스 1세(재위 920~944)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고 한다. 이후 13세기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로마로 옮겨와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했다. 로마 순례자들에게 베로니카 수건은 '로마 7대 보물 중 하나'로 알려졌다. 1199년 제랄드 드 바리와 틸베리의 거베이스라는 두 순례자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베로니카 수건을 직접 보았다고 기록했다. 1297년 교황 인노첸시우스 3세는 베로니카 수건 앞에서 기도하면 대사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1300년 교황 보니파시우스 8세는 베로니카 수건에 감동을 받아 첫 성년(聖年)을 선포했다. 14세기 이후 교회는 행사 때마다 베로니카 수건을 내걸 만큼 대중적 신심을 불러 일으켰다. 베로니카 수건은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용병들이 로마 대약탈을 저지르면서 역사의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다가 1616년 교황 바오로 5세는 교황청 허락없이 베로니카 수건 복사품을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1629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복사품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복사품은 모두 회수해 파기토록 지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파문도 불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견해에 따라 진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은 2개가 있다. 하나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돼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수건은 대성전 돔을 받치고 있는 남서쪽 기둥 발코니에 있는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돼 있다. 가장 최근에 검사한 것은 1907년으로 예수회 역사학자인 요셉 빌퍼트가 교황청 허락을 받고 수건을 덮은 2장의 유리를 옮기고 베로니카 수건을 본 것이었다. 그는 수건이 낡아 제대로 형상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교황청은 매년 수난 주일에 베로니카 수건을 담은 상자를 전시하고 있다. 수난 주일 오후 5시 저녁 미사 시작과 함께 수건에 대한 축복이 이뤄진다. 이후 성 베드로 대성전 내에서 간략한 행진이 거행된다. 수건에 새겨진 주님 얼굴 형상은 보기가 어렵고 다만 액자 테두리만 볼 수 있다.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의 '베로니카 수건'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이 1660년부터 보관하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이다. 1999년 저명한 성미술 학자인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 교수 하인리히 파이퍼 신부가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 성당의 베로니카 수건이 진품이라고 주장해 2006년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하는 등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17세기 도나토 다 봄바 신부가 작성한 「베로니카의 수건 입수 역사」 기록에 따르면, 1508년 한 순례자가 마노펠로 마을에 나타나 마침 수도원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자코모 레오넬리라는 의사에게 주님 얼굴이 담긴 수건을 건넸다. 이 수건은 레오넬리 집안 가보로 1608년까지 전해졌으나 군인 판크라치오 페트루치가 어느 날 몰래 훔쳐 달아났다. 몇 년 후 범인은 잡혔고 레오넬리 집안은 이 수건을 도나토 안토니오 데 파브리티스라는 의사에게 팔았다. 파브리티스는 이 수건을 카푸친 수도원에 기증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파이퍼 신부는 1506년 교황청의 대대적 보수공사가 진행될 때에 분실된 베로니카 수건이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첨단 장비로 조사한 결과 천은 1세기 때 것으로 예수께서 활동하던 시기 수건이며 사람 손으로 그린 흔적이 전혀 없고 토리노 수의에 찍힌 예수의 얼굴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수도원 중앙 제대 뒤편에 현시돼 있는 마노펠로 베로니카 수건의 예수님 얼굴은 왼뺨을 맞아 오른뺨보다 부어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마 위쪽 가운데와 관자놀이 쪽에는 가시관에 찔린 상처로 흘러내린 핏자국을 볼 수 있다. 또 오른쪽 눈두덩에도 폭행으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다. 얼굴이 한쪽으로 일그러질 만큼 폭행을 당했어도 예수님 눈은 바라보는 모두를 빨아들일 만큼 깊고 맑다. 진품 여부를 떠나 현존하는 베로니카 수건은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로 하루 몇 번이고 나락에 떨어지는 우리 믿음을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귀중한 성화임이 틀림없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이길재2012.03.13

'그분의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8일 주님공현대축일, 우주 창조주 경배하는 모든 백성 대표로 '그분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위대한 탄생(The Nativity Story)' 한 장면. 주일학교 아이들의 성탄절 성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연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베들레헴 말구유 옆에는 으레 이들이 서 있다. 8일은 이들이 '그분의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것을 기념하는 주님공현대축일이다. 예전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박사들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2). #페르시아 점성술사? 동방에서 왔다는 이 박사들 정체는 무엇인가. 성경이 제공하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설(說)은 많지만 아직까지 이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준 사람은 없다. 이들은 팔레스타인과 가까운 동쪽, 그러니까 바빌론이나 페르시아(이란)에서 온 점성술사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이들을 지칭하는 '박사'는 대학 최고학위인 박사(Ph.D.)가 아니라 현자 또는 꿈의 해석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마고스'를 번역한 것이다. 기원전 수세기 전부터 여러 왕조가 발흥한 고대 페르시아에는 천체(天體) 현상을 관찰해 인간의 운명이나 미래를 점치는 특정 계급이 있었다. 마기(Magu, Magi)라 불리는 이들은 이 지역에서 번성한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사제 역할을 맡았다.(마술을 뜻하는 'Magic'은 여기서 파생됐다) 또 기원전 500년대, 예루살렘을 잃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다 풀려난 유다인들(역대기하, 에즈라기 참조)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유다인들 일부는 유배생활이 끝났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기에 정착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하며 행방을 수소문한 것으로 미뤄, 그들은 메시아 사상을 알고 있는 유다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다인들에게 별과 메시아, 그리고 메시아 환난은 그리 생소한 얘기가 아니다. 아기 예수가 헤로데 왕의 영아 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듯이, 그들의 민족 지도자 모세도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는 이집트 파라오 명령이 떨어진 뒤 강가 갈대숲 왕골상자에 몸을 숨겨야 했다. 또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여정에서 발람(Balaam)은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고 예견했다. 이 밖에 인도나 중국에서 온 현자라는 설도 있다. 최근 소설가 이병천씨가 상상력을 동원해 '하늘의 아들'이라 믿는 동이족 고조선 유민이 서쪽 하늘에 뜬 별 하나를 보고 유다 땅을 찾아가는 구만 리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 「90000리」를 펴내기도 했다. #세상 모든 백성에게 구원의 빛 드러내 흔히 동방박사가 3명이라고 하지만 복음서에 숫자는 언급돼 있지 않다. 아기 예수에게 바친 예물 종류가 3가지인 것으로 미뤄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라는 이들 이름 역시 6세기경에 붙여진 것이다. 초세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별'과 동방박사들 정체에 대해 연구했지만 역사적 사실로 정립할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따라서 복음서에 더 이상의 언급이 없는 이상 어느 것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다. 동방박사 이야기에서 아기 예수는 유다인만의 빛이 아니라 동쪽 지방, 나아가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빛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교황 레오 1세(440-461 재위)는 "세 현자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페르시아 병사들이 예수탄생기념성당을 파괴하지 않은 이유 서기 614년, 제국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던 페르시아 군대가 예루살렘까지 진격했다.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교회를 파괴했다. 전승에 따르면, 샤흐르바라즈 장군도 병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8㎞ 떨어진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당에 도착했다. 병사들이 성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각종 성상과 부조물들을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샤흐르바라즈 장군이 소리쳤다. "모두 멈춰라!" 페르시아 전통 복장을 한 점성술사(동방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모습의 모자이크가 성당 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점성술사들은 신통한 영적 능력이 있는 그들 조상이었다. 장군과 병사들은 그 모자이크 앞에서 절을 하고 그대로 물러갔다. 요즘도 순례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성당은 성녀 헬레나(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모친)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와서 예수님 탄생지로 알려진 동굴 위에 339년 봉헌한 성당터에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어 완공한 것이다.김원철201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