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와 만남-성지순례기「오래된 영혼」펴낸 강금실 전 장관 "가치관 달라도 서로를 인정해야죠" "인생에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 밖에 없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에스더, 53) 변호사의 미니홈피 대문글이다.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복귀한 그가 '이탈리아의 방랑자'가 되어 돌아왔다. 로마와 바티칸, 수비아코, 피렌체, 아시시 등 성지를 누비며 기도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은 성지순례기 「오래된 영혼」을 펴냈다. "신자로서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웠어요. 신앙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신앙을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이니까요. 한 명이라도 누군가가 읽고 공감하면 고마운 일이죠." 그는 법무부장관을 지낸 후 사회적으로 더 비중있는 발언과 행동을 요구받았지만 스스로 바닥을 보는 듯한 한계를 느껴 정치권에서 물러났다. 지상 권력에 회의를 느낀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의 죽음에 마음이 쏠려 2004년 가톨릭 신자가 됐다. 이영애(글로리아) 의원이 대모다. 거대한 정치문화로 둘러싸인 사회에서 갈증을 느낀 강 변호사는 2008년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는 종교와 과학, 생명과 영성, 우주와 문명 등 생명문화 강의를 들으며 한국 정치사회 구조에 갇혀 있던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 인간 내면의 문제와 행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대학원 입학은 뜻하지 않게 성지순례라는 선물로 이어졌다. "복 받은 여행이었어요. 신부님들이 쪽집게 과외하듯이 설명해주시고 매일 성지에서 미사도 봉헌했어요." 문화탐방 프로그램으로 열흘간 이탈리아를 다녀온 것이다. 대학원 교수와 학생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체류 중인 신부들도 성지순례 일정을 함께하며 안내와 강론 등을 도맡았다. 강 변호사는 성지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생생한 숨결을 느꼈다. 그야말로 걷고 기도하며 생각하는 은총의 시간을 보냈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 앞에선 발길이 멈췄다. 유독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착하게 살라는 경고 메시지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안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오래된 영혼」에는 그가 가슴으로 만난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베네딕토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 등 오래된 영혼들과 만남을 잔잔히 풀어냈다. 어지러운 사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과 진정한 버림과 헌신, 믿음과 용서에 대해서도 묵상했다. "자신을 배신한 유다를 예수님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지혜로운 식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를 인정해야죠.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강 변호사는 "진정한 버림과 헌신을 이야기하기 전에 서로를 인정하고 분노를 참는 법을 익혀야 한다"며 "올해는 삶에 대한 식견을 넓혀 지혜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서 마음에 와닿는 성경구절을 발견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6)다. "마리아는 미혼모로 아기를 낳은 후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불평을 하거나 울부짖을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는 마음 속에 간직했어요. 사실 하루 전날 무지 화나는 일이 있어 분노를 표출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깊이 반성하고 새기면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화를 가라앉히는 계기가 됐죠.(웃음)" 강 변호사는 "미사와 피정, 성경 묵상 등이 많이 부족한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면서 "인간 사회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예수와 사도들의 이야기에 대해 더 공부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웅진지식하우스/1만3000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1.01.25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5)] 17. 바젤-페라라-피렌체 1431~45<상>](//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61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35)] 17. 바젤-페라라-피렌체 1431~45후스전 종결, 동방교회와 재일치 등 위해 1511년 에 발행된 「바젤 공의회 교령집」 속표지 그림. **배경 차기 공의회는 5년 후에 열어야 한다는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 결정에 따라, 교황 마르티노 5세(재위 1417~1431)는 1423년 4월 23일 파비아에서 공의회를 개최키로 하고, 자신을 대리해 회의를 주재할 사절을 현지에 파견합니다. 하지만 개회식 참석자는 대수도원장 2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사람이 더 도착했지만 그 수가 25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페스트가 파비아를 덮쳤습니다. 그러자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 장소를 이탈리아 중부 시에나로 옮깁니다. 이번에는 공의회 우위설을 내세우는 다수파와 교황권을 옹호하는 소수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의가 흐지부지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파비아-시에나 공의회는 '프레쿠엔스' 규정에 따라 다음 공의회를 7년 후인 1431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기로 하고 11개월 만에 해산합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 우위설을 지지하는 쪽이 아니어서 바젤 공의회 개최에 대해서도 마뜩잖았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소집일이 다가오면서 규정대로 공의회를 개최하라는 압박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하는 수 없이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을 공의회 의장으로 임명하는 등 조치를 취합니다만 공의회가 열리기 직전에 선종합니다. 후임 교황 에우제니오 4세(재위 1431~1447)도 공의회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 예정보다 4개월이나 늦은 7월 23일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바젤-페라라-피렌체 공의회라고 부르는 17번째 세계 공의회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교회 개혁, 얀 후스 추종자들인 후스파가 일으킨 후스 전쟁의 종결, 유럽 각국 간 평화 정착, 동방 교회와 재일치 등이 주요 목표였습니다. **공의회 개최와 경과 바젤 주교좌성당에서 개막한 공의회는 처음에는 주교가 한 사람도 없었을 정도로 참석자가 적었습니다. 게다가 개회식 당시 체사리니 추기경은 후스 전쟁에 참가하느라 바젤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대리가 개회식을 주재했습니다. 체사리니 추기경이 두어 달 늦은 1431년 9월 바젤에 도착했을 때도 참석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그해 12월 바젤 공의회를 해산하고 18개월 후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에서 공의회를 소집한다는 칙령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바젤에서는 체사리니 추기경 주재로 공의회 첫 회기가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습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교황 칙령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회의를 속개한 교부들은 1432년 2월 2차 회기에서 공의회 우위설을 재확인하면서 교황이 회기 중에 있는 공의회에 대해 공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회의 장소를 옮기거나 해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독일 왕 지기스문트를 비롯해 부르군디와 영국, 밀라노 등 유럽 여러 나라 군주들도 공의회를 지지했습니다. 힘을 얻은 공의회 교부들은 그해 4월 제3차 회기에서 교황에게 공의회 해산 칙령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3개월 이내에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바젤로 출두하라고 통보합니다. 이런 상황이 2년 가까이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 공의회 교부들은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성사시킵니다. 후스 전쟁으로 10여 년간 중부 유럽을 위험에 빠뜨렸던 후스파와 1433년 11월 프라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입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후스파가 요구한 사항들 중 평신도에게도 성혈을 영할 수 있게 해주는 등 몇 가지 조건에 합의함으로써 타협을 이뤄냈습니다.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는 15세기 초 보헤미아 지방에서 널리 이뤄지던 관습이었는데 콘스탄츠 공의회가 1415년 보헤미아 지도자 얀 후스를 단죄하면서 양형 영성체를 금지시켰습니다. 이 조치는 후스의 화형과 함께 후스파가 봉기한 한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츠 공의회가 평신도의 양형 영성체를 금지시킨 것은 양형 영성체가 단지 교회 전통과 관습에 어긋나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양형 영성체 관습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구원된다'는 성경 말씀(요한 6,56 참조)을 글자 그대로 따르는 데서 비롯한 것이어서, 성체만 모셔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다 모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교회 가르침을 거부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 가르침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양형 영성체를 허용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바젤 공의회가 난제였던 후스 전쟁을 종식시키는 성과를 거두자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자신의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황은 1433년 12월 바젤 공의회에 대한 해산 명령을 철회하고 공의회 속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칙서를 발표합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제 공의회 우위설을 바탕으로 개혁안들을 계속 마련합니다. 교구 및 관구 회의의 정례적 개최, 성직자의 축첩 및 성직 매매 금지, 성무집행 정지의 난발 금지 등 같은 주목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교황 권한을 축소하는 조치들이 더 많았습니다. 교황 선거법을 일부 개정하고 추기경 수도 24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에 앞서 공의회 교부들은 이미 1432년에 공의회 의사 규정을 바꿔 종전에는 주교들과 대수도원장들에게만 주던 투표권을 신학자, 대학교수, 수도자와 본당 신부들에게도 허용했습니다. 한편 교황 에우제니오 4세는 1434년 여름부터는 로마 소요 사태를 피해 피렌체에 와 있었습니다. 교황은 바젤 공의회가 못마땅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계기가 왔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략 위협에 시달리던 동로마 황제 요한 8세 팔레올로구스가 동ㆍ서 교회의 재일치를 바탕으로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자 교회 일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사절을 보낸 것입니다. 문제는 회의 개최지였습니다. 바젤 공의회와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각기 서로 다른 장소를 제안했습니다. 동방 교회쪽에서는 교황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바젤 공의회에서 이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공의회는 기존 장소를 고수하는 다수파와 교황의 제안을 지지하는 소수파로 갈라졌습니다. 교황은 소수파의 입장을 승인합니다. 바젤 공의회의 다수파가 책임을 묻고자 교황을 소환하려 하자 교황은 이에 맞서 공의회를 이탈리아 북부 페라라로 옮길 것을 선언합니다. 1437년 9월이었습니다. 소수파는 교황 뜻을 따라 페라라로 옮겨 이듬해 1월 페라라에서 공의회를 속개합니다. 다수파는 바젤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1.10.18
[평화화랑] 신성태 서양화전, 이콘연구소 제6기 졸업전 신성태 서양화전과 이콘연구소 제6기 졸업전이 2월 9~15일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열린다. 문의 : 02-727-2336~7. ▨신성태 서양화전 희망으로, 40x31.8cm, 2010, 유화. 서양화가 신성태(가타리나, 59, 서울 명일동본당)씨가 정물과 풍경, 성화 등 밝고 따스한 기운을 한아름 담은 유화 20여 점을 선보인다. 신씨는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잘되게 하소서'(시편 90,17)라는 성경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이번 작품들을 그렸다. 본당에서 기도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붓칠 하나하나에 기도를 담았다. 신씨는 "제 그림을 만나는 분들 모두가 기분 좋은 기운을 얻고 갔으면 좋겠다"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들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1978년 효성여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신씨는 2007년과 2009년 제1,2회 개인전을 평화화랑에서 열었다. ▨이콘연구소 제6기 졸업전-영혼의 빛을 따라서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 제6기생들이 3년 과정을 마치고 마련한 졸업전시회다. 최경남(아녜스)씨 등 졸업생 8명은 "힘든 시간을 이겨낸 보람이 있다"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이콘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졸업전 주제는 '성모의 다양한 모습'이다. '수난의 성모(영원한 도움의 성모)', '비둘기의 성모', '야로슬라브의 성모' 등 비슷한 듯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성모 마리아 이콘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졸업생들은 성모 이콘 외에도 그동안 그려온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박수정 기자박수정2011.01.25
![[영성의 길 수도의 길]-(41)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35_1.1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41)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기도하고 일하며 교회와 세상에 그리스도 증거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하느님 찬미하며 출판 비롯 목공과 금속, 초, 유리화 공예 등 소임. 본당사목과 피정의 집 등 영성지도와 교육도 활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장. 촛불 5개는 5대양을, 배는 선교를, 물결 모양 W는 왜관수도원의 영문 첫 글자를 각각 상징한다. 아래 라틴어 글귀는 주지하다시피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회 모토다. 문장은 전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려는 선교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온종일 내리던 장맛비가 잠깐 그친 사이 왜관역에 내렸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수도원장 이형우 아빠스)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아늑한 읍내를 걸어 수도원에 이르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옛 왜관성당을 지나 수도원으로 접어드니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아 2009년에 신축한 웅장한 성당과 수도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자신을 죽이는' 순교 영성과 자아포기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수도원은 중정 너머로 성당과 이어져 있다. #기도와 노동이 수도원 일상 수도원 일상은 기도와 노동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공동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오전과 오후 두 차례 각자 소임에 따라 일터에서 노동을 한다. 특히 독서기도와 아침기도, 아침 묵상, 미사, 낮기도, 저녁 묵상, 저녁기도,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끝기도로 새벽 5시부터 밤 8시까지 이어지는 기도는 수도생활의 정수다. 그 삶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베네딕도회 모토에 함축돼 있다. 왜관수도원이 교회, 나아가 사회와 만나는 가장 큰 접점은 역시 분도출판사(사장 선지훈 신부)다. 내년에 설립 50돌을 맞는 분도출판사를 통해 왜관수도원은 국내 성서학 및 신학 저술의 저변을 넓혔다. 그 사이 신간만 960여 종을 내놓았다. 인쇄소에 들어서니 편집 기획부터 시작해 제판과 인쇄, 제본으로 이어지는 일련 과정이 외주 없이 이뤄지는 분도출판사의 저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포켓용에 4ㆍ6판, 4ㆍ6배판 등 크기와 용도가 다양한 새 성경이 막 제본을 끝내고 잉크 냄새를 풍긴다. 각종 신학서적에서 문학서, 일반 단행본, 심지어는 낱장 인쇄물까지 없는 게 없다. 여기서 1년에 찍어내는 책만 해도 100만 부에 이른다. 인쇄소를 안내하던 지석영(베르나르도) 수사는 "하이델베르크사 4색 컬러 인쇄기에서 재단기, 접지기, 사철기, 정합기, 무선철기까지 다 최신식으로 설비를 갖췄다"며 "이처럼 좋은 설비를 갖춘 건 성경을 찍는데 교회에서 최고로 찍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도원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쇄소 곁엔 '분도가구공예사'(대임자 이규단 수사)가 있다. 성당 비품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목재 비품을 만드는 그 현장이다. 수도자 2명을 포함해 총 26명이 일하는 삶의 터전이자 수도생활의 연장이다. 톱밥과 함께 자투리 목재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그 사이에 근사한 제대와 독서대, 감실대, 장의자 등이 놓여 있다.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벌써 문을 닫아도 한참 전에 닫았어야 할 공예사다. 하지만 기도하는 집에 필요한 비품을 제작하는 목공소이기에 수도원측은 갖은 정성을 다한다. 목공소를 둘러보다가 성물제작실, 금속공예실로 향했다. 성물 제작실을 맡고 있는 김신규(이냐시오) 수사는 마침 외출했다기에 잠깐 제작실에 들러 수사들을 형상화한 재밌는 토우와 성물을 보다가 곧바로 금속공예실로 향했다. 감실 제작 소임만 10년째인 김정배(이레네오) 수사는 "디자인에 따라 기본 틀을 만들고 거기에 동판을 씌우고 문양을 새기고 완성하는 주문생산과정에는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다"며 "보통 감실 1개 제작에 3~4주 정도 걸리는데 수도생활 영성하고도 잘 맞아 기도 연장선상에서 일한다"고 귀띔한다. 감실뿐 아니라 성작과 성합, 성반, 촛대 등 금속공예실에서 제작한 미사 도구가 공예실 초입 사무실에 전시돼 제각기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독일식 소시지 '분도햄' 생산 계획 수도회 가운데선 유일하게 20여 년째 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 중인 유리화공예실에선 김한경(리노)ㆍ조종운(쁠라치도) 수사가 한창 900가지 색유리를 재단하느라 여념이 없다. 중세 때 방식 그대로 유리 재단과 납으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각 성당이 처한 지리적 위치나 빛의 강도를 반영해 주문생산한다. 오는 7월 말 설치를 끝내야 하는 군종교구 공군 천성대성당 유리화 제작에 한창이다. 옛 왜관성당 사제관 1층에 자리한 초공예실에도 들렀다. 이영석(요한) 수사는 한창 밀랍 초를 담금질 중이었다. 석유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만드는 파라핀(양초)과 달리 토종꿀 생산농가에서 구한 벌집을 녹인 밀랍으로 정제하고 있다. 그래서 밀랍 초는 머리가 아프거나 그을음이 나지 않고 공기정화용으로도 좋아 요즘 성당이나 가정에서 기도할 때 인기품목으로 쓰이고 있다. 순대방에도 잠깐 들렀다. 우리식으로야 순대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독일식 소시지 생산 현장이다. 왜관수도원 본원 부원장이자 순대방 책임자인 강대봉(알빈) 수사는 수도원 내에서만 먹던 소시지를 '분도햄'이라는 이름으로 조만간 일반에 시판을 계획을 세웠다. 지난 5월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행사 당시 3시간 만에 1000개가 다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끈 분도햄은 주된 양념을 독일에서 직수입하되 일반 양념이나 돼지고기는 국내산으로 충당한다. 강 수사는 이참에 '분도식품'도 차려 사업자 등록도 할 구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왜관수도원은 대구대교구 내 본당사목도 맡고 있고,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 수녀원 등 수녀원엔 신부를 파견해 영적 지도를 맡고 있다. 서울ㆍ부산ㆍ요셉ㆍ왜관 피정의 집을 통해 평신도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대구 대명동 가톨릭 신학원, 가톨릭 교리통신교육회, 왜관 순심 남녀 중ㆍ고교를 통해 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사업으로는 분도노인마을과 구미 가톨릭 근로자센터를 통해 양로사업 및 노동사목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중국 내 북방사도직 활동과 함께 1987년 경기 남양주시 성 요셉수도원 설립, 2001년 미국 뉴튼수도원 인수, 2006년 전남 화순수도원 설립 등을 통해 저변을 넓히며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필요로 하는 곳에 이미 가 있는',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헌신하는' 그리스도 정신의 실천이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영성과 역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884년 6월 29일 설립된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지금도 전 세계 베네딕도회 21개 연합회와 5개 자치수도원, 2개 예속수도원 중에서 오틸리엔연합회에 속해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베네딕토(480~547년께) 성인이 저술한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고 △은수자처럼 홀로 살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는 '회수도자(會修道者)' 전통에 따라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립수도회라는 네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함께 1884년 독일 보이론수도원 안드레아스 암라인(1844~1927년) 신부가 '안으로는 수도자, 밖으로는 선교사'라는 표어를 내걸고 설립한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선교 베네딕도회(Missionsbenediktiner)'다. 즉 베네딕도회적 수도생활과 전체 교회의 선교사명에 협력한다는 두 가지 요소를 기본사명으로 한다. 이같은 설립 정신에 따라 기존 교구 내에 수도원을 세우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학교 운영 및 문화예술활동 등을 통해 교구 전체 사목을 돕는다. 특히 기도와 형제애적 사랑 실천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상적 공동체를 형성해 교회와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집중한다.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파견된 것은 1909년 12월로, 서울 백동(현 혜화동) 낙산 아래에 수도원을 세웠다. 한국교회사는 이를 국내 첫 남자 수도회 설립으로 기록한다. 1920년 교황청에서 성 베네딕도회에 원산대목구를 위탁하고 대목구장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아빠스를 임명하자 1927년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겼다. 이와 함께 1922년 만주 간도지역이 원산대목구 관할로 들어오자 1928년 연길 수도원을 세웠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종료와 더불어 중국과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수많은 순교자를 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을 온 덕원ㆍ연길수도원 수도자들이 1952년 7월 왜관에 수도원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왜관 본원을 비롯해 대구ㆍ부산ㆍ서울분원과 요셉수도원, 화순분원, 뉴튼수도원 등 분원 6곳이 있다. 회원은 지난 2월 현재 145명에 이른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성소모임 ▲왜관수도원 본원 :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주일 오후 1시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134의1(본원 상원관), ▲서울 분원 :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6시~주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 54(서울 장충동 분원) 문의 : 054-970-2342ㆍ010-8353-2323(왜관수도원 본원), 02-2273-6394ㆍ010-9903-4180(서울 분원) cpbc2011.07.12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내 마음 밭은 어떤 밭일까?](//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2446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내 마음 밭은 어떤 밭일까?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선본당 주임)한 여인이 상점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계산대에 하느님이 서 계셨습니다. 여인은 깜짝 놀라 여쭈었습니다. "아니 하느님, 여기서 뭘 하고 계셔요?"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팔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여인은 이왕이면 자기가 원하는 최고의 것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평화와 사랑, 행복과 지혜, 자유를 사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평화, 사랑, 행복, 지혜, 자유 같은 열매는 팔지 않고 그 씨앗을 팔고 있단다. 그러니 네가 이 씨앗을 사가지고 가서 잘 가꾸면 그와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많은 것을 청합니다. 때로는 노력 없이 좋은 결과만 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청원을 완성된 결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씨앗의 형태로 우리 마음에 뿌려주십니다. 물고기를 청하면 물고기 잡을 그물을 주시고, 평화를 청하면 평화를 그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씨앗을 주십니다. 그 씨앗을 우리 마음 밭에 심어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워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 먹었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버렸습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음 밭이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 같은 사람은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마음 밭이 옥토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느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 마음 밭에 씨를 뿌리십니다. 천둥, 번개와 벼락을 통해 죄인들에게 회개의 씨앗을 뿌리고, 고통 받는 이웃을 통해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시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세례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등 성사를 받을 때 하느님은 당신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성경을 읽을 때도 당신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리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수도 없이 우리 마음 밭에 뿌려졌습니다. 우리 마음 밭이 좋은 땅이었다면 지금쯤 좋은 열매를 아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밭이 좋은 밭이라면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착함, 신용, 온유, 절제(갈라 5,22)를 풍성하게 맺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제의 강론을 통해서도 우리 마음 밭에 씨를 뿌리십니다. 그런데 똑같은 강론을 들어도 신자들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깊은 감동을 느끼고 생활 속에서 많은 열매를 맺지만, 어떤 신자들은 강론을 들으나마나 '소귀에 경 읽기', '굳세어라 금순아'입니다. '신부님이 뭐라고 강론을 하든 내 방식대로 살겠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사제를 통해 아주 좋은 씨앗을 뿌려주셔도 이런 신자들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똑같이 피정을 받고, 똑같은 강론을 듣고, 똑같이 기도를 하고, 똑같은 훈화를 들어도 열매를 맺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어떤 이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지금 내 마음 밭은 어떤 밭입니까?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에 덮인 밭입니까? 아니면 좋은 밭입니까? 하느님이 내 마음 밭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는데 평화롭지 못하면 그것은 분명 내 마음 밭이 돌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 밭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셨는데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분명 마음 밭이 가시덤불로 덮여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생활 속의 복음'을 읽는 독자들에게 뿌려질 하느님 말씀의 씨앗도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조은일2011.07.05

작가와 함께 걷는 특별한 십자가의 길서울 중화동본당, 이숙자 수녀 초청 작품 해설 특강중화동성당에 걸려있는 이숙자 수녀의 '십자가의 길' 중 제1처. 묵묵히 고통을 받아들이는 예수와 그의 모함하는 손가락이 그려져있다. 왼쪽 위의 눈치를 보고, 화를 내는 듯한 세 얼굴은 겁쟁이처럼 방관하는 우리를 의미한다."예수님과 성모님을 둘러싼 둥그런 가시면류관이 보이죠? 그것은 고통과 슬픔을 나누는 모자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서울 중화동본당(주임 윤재한 신부) 신자들이 16일 특별한 손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성당에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제작한 작가 이숙자(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를 초청해 해설 특강을 열었다. 이 수녀는 제대 십자가, 감실, 성바오로상 등 중화동성당 모든 성물을 제작했다. 성당 벽면에 걸린 아크릴화 십자가의 길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 수녀는 제1처 제작 당시 영감을 받은 성경 구절을 낭독한 뒤, 구도와 상징을 설명했다.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진 제5처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받쳐들고, 그 무게를 느껴보자"고 말했다. 묵상을 유도하는 그의 설명이 예수님의 고통을 실감케 한 것인지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신ㆍ구약을 넘나드는 주석 역시 신자들 이해를 도왔다. 제2처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요한 19,17)는 수난복음에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이사 53,4)는 구절을 곁들였다. 강의를 경청한 배영순(린다, 52)씨는 "예수님 고난을 다룬 작품을 많이 봤지만 작가 설명을 들으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 또한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며 "앞으로 다른 성물을 볼 때도 다양한 각도로 살피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재한 주임신부는 "작가 설명을 통해 그 뜻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묵상하기 위해 특강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내 작품을 나보다 더 오래 보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가족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특강 내내 신자들과 손잡고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듯 했다"며 활짝 웃었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1.03.22
![[성경 속 상징]70- 열둘(12)- 일곱이나 열처럼 완전함 나타내](//cpbc.co.kr/CMS/newspaper/2009/12/rc/31959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70- 열둘(12)- 일곱이나 열처럼 완전함 나타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열두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조석을 굶는다"는 속담이 있다. 재주가 무척 많은데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12라는 숫자를 가장 크고 많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집이 크면 열두 대문, 산이 커서 1만2000봉, 발이 길어 열두 발 상모라 불러왔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숫자 12를 행운의 수로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로 바빌로니아에서 12는 불운을 나타내는 숫자다. 성경에서도 열둘(12)이라는 수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가장 중요한 숫자들 중 하나이다. 성경에서 이 숫자의 중요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왔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아 사도로 삼으셨는데, 온 인류의 전체 구원을 위해서였다. 성경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도 일곱이나 열처럼 완전함,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일 년이 열두 달로 이뤄져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모세는 이집트 탈출 후에 열두 지파 수를 따라 시나이 산 위에 열두 개 기둥을 세웠다.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탈출 24,4).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돌 열두 개로 기념비를 세웠다. "여호수아는 요르단 강 한복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의 발이 서 있던 곳에 돌 열두 개를 세워 놓았다. 그것들은 오늘날까지 거기에 있다"(여호 4,9). 대사제 예복 가슴받이에는 열 두개 보석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각 지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에 따라, 곧 그들의 이름 수대로 열둘이 되었다. 인장 반지를 새기듯 각자의 이름을 새겨 열두 지파가 되게 하였다"(탈출 39,14). 솔로몬은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관을 두었고, 솔로몬의 여러 건축 사업에는 열둘이라는 숫자와 치수들이 항상 포함됐다(1열왕 4,7).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와 싸울 때도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1열왕 18,31). 열둘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은 신약성경에도 나타난다. 우선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데서 잘 나타난다(마르 3,13-19). 여기서 12의 의미는 이스라엘 전체 구원을 상징한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열둘의 상징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마르 6,43).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언젠가는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태 19,28). 열둘이라는 상징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곳은 역시 요한묵시록이다. 하늘에 큰 표징과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다(묵시 12,1). 또 열두 성문의 열두 천사, 도성 성벽의 열두 초석, 어린 양의 열두 사도 이름 등이 등장한다(묵시 21,14). 그 밖에도 12라는 숫자가 수없이 나타난다.조은일2009.12.15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1472_1.1_titleImage_1.jpg)
[조규만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7)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섬기는 메시아, 십자가의 메시아 ▨ 예수님은 누구신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일도 어렵지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와 함께했던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내는 방법은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복음서는 역사서도 아니요, 예수님 전기나 자서전도 아니다. 제자들 신앙이 깃든 진술서다. 4복음서를 토대로 예수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가 선언한 하느님 나라 메시지와 세례 운동을 이어 받아 백성들과 더불어 그들 속에 살며 공생활을 하셨다. 예수님은 백성들에 대한 그의 처신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셨다. 죄인들,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들과 사귀며 유다교 안식일 계명을 위반하고 정결례법을 폐기했다. '보라, 이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좋아하고,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웃음과 조롱의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사람들의 하느님, 곧 모든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세리들과도 함께하셨다. 율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초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셨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율법 실천 문제와 관련해 당대 율법학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다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데 '인간의 완고함'이나 오해가 있다면 이를 가차 없이 문제 삼을 만큼 철저히 하느님 중심으로 사셨다. 예수님의 기적과 구마활동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의 영육 모두에 해당되는 것을 보여주는 전인적 구원행위였다. 예수님의 이런 공적활동은 처음부터 사람들 감탄을 자아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태도를 거부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로 보았다. 예수님은 특히 유다교 지배계급에게서 적대감과 미움을 샀고, 이로 말미암아 거짓 예언자로 몰려 사형에까지 이르렀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공적활동에 내재하는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과연 누구였는지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메시아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모독자, 거짓 예언자, 반란자로 이해했다. 헤로데는 그를 바보로 취급했고(루카 23,6-12), 그의 친척들조차 한때 그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다(마르 3,21). 성경 작가들도 예수가 누구인가 규명하려 수많은 칭호를 사용했다. '하느님의 아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임마누엘',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 양', '예언자' 등 100여 가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묘사한다. '인도주의자', '방랑 설교가', '비타협주의자', '자유인'…. 이러한 여러 칭호들은 예수님을 어느 한 도식이나 틀에 맞춰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일까. ▨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란 '기름을 발리운 사람'이란 뜻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기름을 바르게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지상활동 중에 자신을 왕, 곧 메시아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이에 대한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 칭호를 한 번도 자신에게 적용한 적이 없다. 예수님에게 이 칭호를 붙여준 사람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제3자들이다. 예수님은 제3자들이 붙여준 이 칭호의 의미와 내용을 수정하거나 비판했다.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메시아로서의 품위에 대해 침묵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치유의 기적을 행한 다음에 그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을 다짐시킨다. '선생님은 메시아입니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님 대답은 이상하게도 엄중한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재판과정에서 자기가 메시아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에게서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마태 27,11), 즉 메시아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한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 대답은 "예"도 "아니오"도 아닌 "그것은 네 말이다"였다. 빌라도가 의미하는 메시아는 분명 정치적 인물로서 구세주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메시아와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답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한결같이 고백하는데, 그 메시아는 새로운 의미의 메시아다. 예수님이 거슬러 싸웠던 것은 어떤 정치세력도 아니고, 로마 통치자도, 헤로데도 아니었다. 그의 적수는 악이라고 하는 사탄의 세력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도 않았고, 폭력을 사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길 누누히 당부한 예수님은 메시아에게 지배권이 불가결의 요소라면, 그 지배권은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봉사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메시아였다. 이런 새로운 이해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했고, 빌라도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제자들이나 치유를 받은 사람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당부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메시아일까. 정리=박정연 기자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10.04
하루 한 장 성경읽기 마태오 복음서 해설「마태오복음서」를 시작으로 4권의 '복음서'와 1권의 '행전'과 21권의 '서간'과 1권의 '묵시록'으로 구성된 '신약성경'이 시작됩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작성된 구약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살던 시대에 로마제국에서 오늘날의 '영어'에 해당하는 지위를 누리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작성돼 있습니다. 오늘은 신약성경의 첫째 책이자 4복음서 가운데 첫 번째 책인 「마태오복음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1)「복음서」와 「공관복음(共觀福音)」이란? 신약성경의 첫 4권은 '복음서'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예수님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깊이 묵상하여 이야기체로 서술한 책들입니다. 그런데 이 4권의 복음서들 가운데 3권인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서에는 상호간에 매우 유사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3권을 서로의 신학적 관점이 비슷하다 해서 '공관(共觀, Synopsis)복음'이라 불러왔습니다. (2)「마태오복음서」 저자 및 저술 연대와 장소 「마태오복음서」는 전통적으로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마태오'에 의해서 작성됐다고 믿어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아람어와 유다인 풍습에 정통한 유다계 그리스도인에 의해 시리아 지방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원 후 80~90년께 작성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3) 「마태오복음서」의 구조와 내용 「마태오복음서」는 아래와 같이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2,23: 유년기 설화 2) 3,1~7,29: 옛 율법과 새 율법 2-1) 3,1~4,25: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 2-2) 5,1~7,29: 산상 설교 3) 8,1~11,1: 제자 교육 3-1) 8,1~9,34: 병자들의 치유와 제자들의 모집 3-2) 9,35~11,1: 설교: 이스라엘에 대한 제자들의 사명 4) 11,1~13,52: 하늘나라 4-1) 11,2~12,50: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가르침 4-2) 13,1~52: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들 5) 13,53~18,35: 공동체 문제 5-1) 13,53~16,12: 갈릴래아 지방에서 예수님의 활동 5-2) 16,13~17,23: 수난을 당하실 메시아이신 예수님 5~3) 17,24~18,35: 공동체를 위한 지침들 6) 19,1~25,46: 종말론 6-1) 19,1~20,34: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6-2) 21,1~25,46: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활동 7) 26,1~27,66: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8) 28,1~20: 예수님의 부활 (4) 핵심 주제들 1)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곧 "임마누엘"(마태 1,23)이십니다. 2) 복음서들 가운데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한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라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3) 유일하게 "교회"(마태 16,18; 18,17)라는 낱말을 사용한 「마태오복음서」는 하늘나라의 완성인 종말이 교회와 더불어 시작된다며 교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이힘2009.09.08

두려움과 은총의 50년… 항상 하느님께 감사금경축 맞는 정진석 추기경사제수품 50돌, 정진석 추기경에게 듣는다대담=평화방송 · 평화신문 이윤자 신문이사18일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사제품을 받은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교회 교구장이 현직에서 금경축을 맞기는 지난 2000년 3월 윤공희 (당시 광주대교구장) 대주교에 이어 두 번째다. 정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지난 50년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시대를 이끌었던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이 되고, 또 추기경에 서임된 것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를 떠올릴 때는 신학교 입학 시절로 돌아가 눈물을 흘렸다. ▲1961년 사제품을 받고 50년, 반백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사제품을 받을 당시가 지금도 생각나시는지요? 어떤 사제가 되기를 꿈꾸셨고 그 꿈을 이루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 하느님 뜻에 따라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림으로써 영생이라는 구원을 받는 것이 인간이 사는 목표입니다. 그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제는 스스로 하느님 구원 진리를 깨닫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도 그 진리를 깨닫게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선발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제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또한 감격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1년 3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을 때, 내가 감히 그런 사제가 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6ㆍ25전쟁 때 죽을 고비를 넘기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 제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바로 그런 사제가 되라는 하느님 뜻이었습니다. 죄 많은 내가 어떻게 성스러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감정이 북받쳐 많이 울었습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수품 성구로 택한 성경 구절이 '나 너를 사랑하시는 줄을 너 알으시나이다'(요한 21,15)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묻자 베드로가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었죠. 제 마음이 베드로와 같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 보시기에는 잘못 투성이일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리라 믿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 오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가족과의 작별인사도 허락하지 않으셨죠. 그만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지난 50년, 적어도 겉으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척한 것 같습니다. 시늉은 한 셈이죠."하느님께서 뽑은 사람인 사제가 된다는 것은참으로 두렵고도 감격스러운 일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199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추기경님 삶에 큰 전환점이 됐을 것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사제품을 받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0년에 청주교구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주교가 됐습니다. 자격도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서울에서도 명동과 신학교만 알던 제가 로마 유학 중에 주교로 임명된 것입니다. 28년 만인 199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고향인 명동에 다시 오게 되니 꿈만 같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아주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구장 주교가 자리를 옮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마음이 아주 복잡했습니다. 전임 교구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워낙 큰 인물이다 보니 그분 후임이 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30년이 됐는데, 저를 과연 받아줄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시골에서 살던 제가 김 추기경님 자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십자가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가 짊어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십자가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겠다 싶으면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나타나 십자가를 같이 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느님은 내 능력을 아시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십자가를 허락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일매일 그런 체험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는 신념이 됐습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매일매일 절감하며 삽니다. 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사람들 덕분에 외롭다거나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교구장직을 수행하면서 살아온 삶이 보람되고 기쁩니다. 그 기쁨 역시 십자가를 함께 진 이들과 같이 누립니다." ▲24일은 교황청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신 지 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추기경으로서 지난 5년의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매 순간 두렵다는 생각뿐입니다. 다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데, 저는 돌아갈 것도 없습니다. 두렵다는 초심 그대로이니까요. 추기경직은 제게 참으로 두렵고 과분한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부족한 제가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주심에, 저녁만 되면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어떻게든 하느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사람이 되고자 나름 힘껏 노력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유능한 분이 이 자리에 계시면 교구도 더 발전하고, 신자들에게도 더 유익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만 합니다." ▲지난 5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인간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또 언제였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매일 저녁이 되면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기뻤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얼떨결에 주교 되고 추기경으로 서임…과분한 자리 알기에 초심 잃지 않고 늘 기도 ▲한국교회는 추기경님께서 사제품을 받으신 5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내적 신앙이 외형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50년간 한국교회는 기적과 같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50년 전 1%에 불과하던 복음화율이 지금은 10%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다음으로 높은 복음화율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교회가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것은 한국교회 신자 모두가 힘을 합쳐 하느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만큼 성직자와 수도자를 꾸준히 봉헌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한 해 배출하는 사제만도 150여 명에 이릅니다. 세계적으로 놀랄 일입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고요. 또 그렇게 탄생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당은 또 해마다 얼마나 많이 신설되는지 모릅니다. 성전을 새로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납니다. 신자들이 큰 희생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에는 10년 전부터 성경공부 바람이 불었습니다. 성경공부의 열매가 실생활로 이어지는 단계가 됐습니다. 매우 고무적입니다." ▲세계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를 봐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요? "인생은 순간입니다. 성경도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10) 라고 말합니다. 의술이 발달해서 아무리 수명이 늘어난다고 한들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덧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적인 현세에 얽매이지 말고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살기를 권합니다. 결국에는 흘러가버리고 마는 이런저런 일에 집착하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현세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이 될 때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진리를 향해 살아갑시다." 50년간 한국교회 비약적 발전 이룩한성직자·수도자·평신도 모든 분께 감사현세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 되기를 ▲대선배로서 후배 사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텐데요. "신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신학교를 지원할 당시의 초심을 끝까지 간직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 때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주실 겁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하느님께 알게 모르게 송구스러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뉘우치고 속죄한다는 것을 겉으로 표시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그런 뜻에서 단식이나 고행을 하면 유난스럽다고 핀잔을 받기가 쉽습니다. 사순시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순시기를 정한 것은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선행하라는 뜻에서입니다. 하느님께 송구스러운 것이 있으면 이번 사순시기에 고행과 자선으로 훌훌 털어버리세요.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은 기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질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하셨습니다. 요즘 재물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불의가 재물과 결부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질에서 초연해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악은 아닙니다. 선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로 다른 이들에게 선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물질을 다른 위해 쓰는 게 중요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퇴사자2201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