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657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Q. 아량을 넓히려면 새내기 직장인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고요. 저는 직장에서 통큰 남자로 통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호인처럼 웃어 넘기니까 주위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남자로 알고 저와 결혼한 여자는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를 보고 새가슴이라느니 잘 삐친다느니 하면서 놀려댑니다. 사실 저는 밖에서는 호인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일에 잘 삐치는 성격이라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제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밤새 고민할 때가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형제님은 베드로 성인에 대해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인간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던 분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것도 그렇고, 바오로 사도에게 힐난을 당한 것도 그렇고, 주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야단을 맞은 것도 그렇고 말 그대로 흠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신흥종교에 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가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량이 넓은 분이셨습니다. 비단 베드로 사도뿐 아니라 대제국을 이룬 역사 속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아량이 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민족의 왕임에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칭송받는 페르시아 왕은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백성을 존중하는 큰 아량을 보인 사람으로서 페르시아 대제국을 이룬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량이 좁은 지도자들, 내 편 네 편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하고 늘 적대감을 가지고 살았던 지도자들은 악명을 떨치거나 단명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만약 베드로 사도가 아량이 넓지 않은 분이셨다면 초기 가톨릭교회는 작은 종교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시쳇말로 '용서의 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른 사람들을 잘 용서해줬을 뿐만 아니라 자기용서를 잘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스스럼없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글을 올리실 수 있었습니다. 자기용서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는 용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인데, 이 중에서 자기용서는 생소하지만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입니다. 심리학자 베브스몰우드는 자기용서가 정신건강에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아량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큰 용서를 받았을 때 관대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용서를 받고나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 잘못한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격려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 율법적으로 삭막하게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 자신도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기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반면 자신의 인생에는 하자가 전혀 없어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까칠한 성격을 갖게 돼 아량이 좁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해 아주 심하게 몰아붙이고, 편을 갈라 생각하는 옹졸함을 보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고 하신 것은 바로 자기용서의 영성적 의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이 아량을 키우시려면 우선 자신의 잘못을 심하게 따지지 말고 자기용서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기용서에 대해 부연하자면, 고해성사를 보고 난 후에도 마음이 불편한 분들 역시 자기용서가 안 되는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해주셨다고 해도, 고해신부가 사죄경을 해줬다고 해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단죄를 합니다. 이 때문에 고해를 하고 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고, 보속이 너무 작다고 자학적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마음은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심리적 연옥'에서 산다고도 하는데,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자기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잘못한 이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힘2011.02.08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대전교구(상) 교구장에게 듣는다(유흥식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6313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대전교구(상) 교구장에게 듣는다(유흥식 주교)"그리스도인은 친교를 가져오는 친교 건설자가 돼야" 대전광역시와 세종시로 행정부가 들어섰거나 속속 들어설 계획이어서 '중도(中都)'라는 표현이 이제 결코 지나치지 않은 국토 중심부 대전교구. 한국교회사 초부터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과 함께 한국천주교회의 심장이 된 내포교회, 대전교구는 교구 설정 70주년을 향한 전반기 5년(2009~2013년)을 '친교의 교회' 건설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전반기 2년째인 올해는 '말씀을 증거하는 삶으로 친교의 교회 건설'을 사목지침으로 제시한다. 교구장 유흥식 주교에게 교구 중장기 사목 구상과 계획, 배경, 실천 등을 들었다. #첫 단계로 소공동체 건설에 주력 교회가 이뤄야 할 가장 우선하는 과제로 유 주교는 '친교의 교회' 건설을 꼽았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고독과 외로움이기에 전 교구 공동체가 삼위일체 하느님, 곧 친교의 하느님, 관계의 하느님, 공동체의 하느님으로 나아가는 데 사목의 방점을 찍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 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새천년기」를 통해 "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43항)은 교회의 첫 번째 임무"라고 밝힌 것을 상기시켰다. 유 주교는 "말씀을 생활로 증거하면 그 첫 번째 열매가 바로 친교를 가져온다"며 "그리스도인은 친교를 가져오는 친교의 건설자가 돼야 하고, 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친교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첫 단계로 소공동체 건설에 주력해온 유 주교는 "소공동체가 성공하려면 봉사자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난해부터 교구 사목국 주관으로 각 본당을 순회하며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구 내 성지성당을 제외하고 14개 지구 64개 본당이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했다. 전체 본당 가운데 61%가 교육을 마쳤고, 교육 수료 인원도 8284명에 이른다. 교육은 소공동체 봉사자교육과 순교영성교육, 선교교육 등으로 다채롭게 짜여졌고, 교육을 통해 교구는 소공동체 중심 사목으로 전환하고 있다. 유 주교는 내포교회 교우촌의 더불어 사는 삶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소공동체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며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성지가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 이 시대에 맞는 은혜로운 곳으로 바뀌도록 성찬례와 고해성사를 통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성지별로 정기적 프로그램을 준비해 신자들의 영성 생활을 돕고 도보성지순례도 가족 또는 그룹, 단체별로 꾸준히 이뤄지도록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소공동체 교육을 끝낸 뒤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도록 5주간 순교영성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음이 삶의 원칙 되도록 애써 유 주교는 신앙생활의 근본을 성경에서 찾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성경 말씀이 '생활 말씀'이 돼 구체적 삶으로 옮기는 체험을 나누는 공동체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제 스스로도 항상 복음이 삶의 원칙이 되도록 애쓰며 복음 중심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함께하는 삶은 교회 생활의 근본입니다. 교회는, 신앙인은 하루도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멈출 수 없습니다. 본당에서도, 교구에서도 성경과 친하게 지내는 사목이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신앙의 스승인 사제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교육하고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모범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인이라면 늘 부딪히는 문제, 곧 성경 공부와 말씀 실천(증거)간 괴리와 갈등에 대해 질문하자 유 주교는 "성경 말씀을 오늘의 구체적 사회 환경에 적응하는 가르침이 바로 사회교리"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신자들에게는 「간추린 사회교리」 책을 50권 넘게 선물하면서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당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처럼 다양한 사회 안에서 복음적 원칙과 논리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 임무이기에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교리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전문가 양성을 위해 사회교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신부님도 계신다"고 덧붙였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어야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시작한 이웃 사랑 운동인 '한 끼 100원 나눔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인터뷰 주제였다. 유 주교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구체적 사랑의 행위를 통해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며 "'한 끼 100원 나눔'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실현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유 주교 자신도 한 끼를 먹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굶주리고 헐벗고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매달 9000원씩 적립하고 있으며, 수호천사 몫으로도 9000원을 더 보태 달마다 총 1만8000원을 자동이체하고 있다. 이처럼 2년 5개월 동안 전 교구가 한 끼 100원 나눔을 실천한 결과 14억 원을 모았고, 지난 5월 20일에는 한 끼 100원 나눔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유 주교는 현재 매달 5000~6000만 원 가량 모아지는 기금으로 대전과 충남 지역 초ㆍ중ㆍ고 학생 급식을 돕고 결핵을 앓고 있는 북녘 어린이들 치료도 도울 계획이다. 더불어 교구에서 선교사를 파견한 몽골과 에콰도르, 칠레 등지의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한편 본당별 사회복지활동도 체계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다. 유 주교는 끝으로 "우리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며 "다양하고 변화가 많은 세상, 돈 중심에 물질 중심인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가치를 지니고 살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를 꾸미고 싶다"고 다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cpbc2010.08.10
![[아! 어쩌나?] (91) 순종적인 신앙인?](//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980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91) 순종적인 신앙인?Q. 영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자입니다. 대부님은 아주 열심인 분으로, 늘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돼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저희 가정은 아버지가 아주 엄격하셔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살아왔는데, 신앙생활도 그렇게 해야 한다니 괜히 세례를 받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직 신앙인이 될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적 신앙인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오로지 주님 말씀에 의탁하고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에서 발간된 성인전 영향이 큽니다. 사회의 위인전과 마찬가지로 성인전 역시 그 성인의 인격적 결함 같은 내용은 삭제되고 지나치게 이상화되고 미화된 경향이 있어 성인전을 읽은 분들은 성인이 되려면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례로 스페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가르멜수도원을 개혁한 분으로 유명하고,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나도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심장을 꺼낼 때 피가 흘러내린 기적으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생전에 다른 수도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시길, "수도자가 너무 온순하면 수도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답니다. 진정한 수도자가 되려면 당당하고 대찬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도원 벽에 걸린 데레사 수녀님 초상화는 온순한 비둘기 같은 인상이 아니라 사나운 매와 같은 인상입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강조하신 것은 영성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건강한 반항의식'을 갖고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항, 그러면 많은 분이 "그거 좋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반항적인 사람들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문제아란 편견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달심리학, 영성심리학에서는 반항은 내적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남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살면 내적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조건 대들고 삐딱하게 살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반항의 종류는 '건강한 반항'과 '병적 반항' 두 가지입니다. 병적 반항이란 낡은 것은 무조건 타파해야 한다고 배타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병적 반항은 심리적 퇴행의 산물이라서 내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고집이 심해 대인관계에도 좋지 않습니다. 또 필요없는 것에 신경을 써서 자기 인생을 축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합니다. 이에 반해 건강한 반항은 사람의 정신세계를 속박하려는 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경직된 신념을 깨뜨리고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건강한 반항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고 늘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삽니다. 교회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런 건강한 반항의식을 가진 분들이고, 그 대표적 주자가 바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이십니다. 형제님께 우화 한 가지를 알려 드리지요. 주님께서 사도를 한 사람 더 뽑으려고 하시면서 자격조건은 순종적 사람이어야 한다고 공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순종형 영성가들이 모여 심사받을 준비를 했답니다. 첫 번째 영성가가 나서며 말하길 "주님 저는 순종적 사람이란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해서 제 생각 제 욕구는 다 억누르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그건 맞도다. 그런데 너와 같이 살던 아이들 말로는 네가 뒤끝이 많아서 뭘 내주고는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너희는 나한테 뭐 줄건데'하며 달달 볶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고 천당 화장실이나 지키거라" 하셨답니다. 두 번째 영성가는 "주님 저는 순종적 신앙인이란, 세상을 멀리하고 가난하게 사는 삶이라 생각해서 사람도 안 만나고 옷도 헌옷만 입고, 먹는 것도 거칠게 먹고, 딴 마음이 들 때마다 저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는 당나귀와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왜냐면 당나귀도 맨땅에서 자고 풀잎만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질 당하면서도 주인밖에 모르니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영성가는 "주님 저는 성경을 달달 외워서 모든 대답을 성경 말씀대로 하고, 제가 입는 옷과 행동 모두 주님처럼 하려고 애썼습니다"하고 말하자 주님은 "너는 네 생각이 없이 남의 말만 따라 하니 구관조를 닮았고, 행동도 내 것을 흉내 낸다니 원숭이와 같구나. 이제부터 천당 동물원지기를 하여라"하고 명하셨답니다. 모든 부모님은 순종하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순종적이면 걱정합니다. 그런 마음은 하느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건강한 반항의식을 잘 키우면서 사시길 바랍니다.이힘2011.02.22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6> 성년기](//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416_1.0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성년기첫째 가는 죄인,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 받다 ◇작가노트 바오로 사도는 위대한 교부들을 만들어낸 사막에서 3년동안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사막으로 떠나는 바오로 사도의 출발은 정신의 사막에 빛을 비추는 마음의 결연함 일 것이다. 스테파노 사건과 예수님 지체인 교회를 박해한 사건은 바오로 사도를 평생 따라다닌 멍에였다. 그의 아픔과 비탄의 눈물이 됐던 두 개의 가시는 언제나 그를 괴롭혔다. 사도의 열정 속에 숨겨진 아픔을 재구성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박해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날부터 그의 삶이 변화됐기에 '다마스쿠스의 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의 올바른 변화와 동의어가 됐다. 교회사나 순교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거나 고문했던 수많은 핍박자들이 주님의 빛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들의 믿음을 공언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순교까지 했음을 보여 준다. '다마스쿠스의 길'은 모두에게, 심지어 범죄자에게나 가장 타락하고 방탕한 자에게조차 포기하지 않고 열려 있다. 다마스쿠스의 길에 나타나 사울을 구원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삶에 들어온다. 다마스쿠스로 인도하는 그 길을 우리도 뒤따라 가보자. 성 가까이에 다가섰을 때, 성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부터 수정 같은 물을 공급받는 다마스쿠스의 초원(Ghoufa)이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다. 야자수와 사과나무, 도금양(늘푸른 떨기나무) 같은 탐스러운 유실수들이 성곽을 둘러싸고 있다. 다마스쿠스는 해발 690m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그 도시를 아브라함 시대에도 있었다고 말한다(창세 14~15장 참조). 그러나 요셉은 다마스쿠스는 아람의 아들이며 샘의 손자인 우스(창세 10,23)에 의해 세워졌다고 기록한다. 고대 아랍 시인들은 다마스쿠스를 '동방 세계의 눈'으로, '사막의 진주'로 부른다. 아랍 전통에 따르면, 마호메트는 다마스쿠스를 천국으로 지칭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은 한 곳뿐이다. 다마스쿠스에서 살아 보면, 지상의 다른 어느 곳에 가도 이 같은 천국을 발견하지 못한다." 사울을 찌른 두 가시 다마스쿠스의 성문으로 들어가 보자. 그 문을 통해 바오로가 성으로 들어갔으므로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옛날의 '곧은 길'로 향하기로 하자. 그곳에는 사울이 기거했던 유다의 집이 있고, 그곳은 후에 그리스도 성전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인 자미(Jami)가 들어서 있다. 이곳으로 그리스도 사도 하나니아스가 사울을 찾아왔다. 하나니아스와 사울이 얼마 동안 함께 보냈는지, 그리고 하나니아스가 주님 편에서 사울에게 정확히 무엇을 드러내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울이 홀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사울 입장이 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그를 전율시킨 것은 자기 자신이 조금 전까지 핍박했고, 감옥에 가뒀고, 사형에 처했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실은 무죄하고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돌팔매에 상처투성이가 돼도, 자신을 죽인 자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도록 주님께 간구할 힘을 가졌던 스테파노의 빛나는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죽음에 동참했던 바로 그 사울을 위해서도 스테파노는 기도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 권위와 율법을 수호한다고 생각했던 사울의 마음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를 찌른 또 다른 가시는 더 날카로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네가 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들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나도 핍박한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곧 나의 지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주님이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말씀했던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고, 그의 동료들이 그를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도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예수님 박해에 가담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지체인 교회를 핍박했기에 주님을 핍박한 것이 됐다. 사도 바오로는 마음속에 박혀 있는 그 두 개의 가시를 결코 제거할 수 없었다. 죄인이라 고백 그는 자기 서간들에서 여러 번 그 사실을 언급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갈라 1,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1티모 1,13).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1코린 15,9).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1티모 1,15). 생애 마지막까지 그가 이처럼 느끼고 공공연하게 고백한 것을 보면, 수많은 아픔과 비탄의 뜨거운 눈물로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 앞에서도 그러한 고백을 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니아스는 다마스쿠스의 1대 주교가 됐다고 전해진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그때까지 그의 삶 속에서 자라 온 정신이 뿌리째 뽑히고, 삶의 새로운 원칙들을 그 안에 심어야 했을 때, 그러한 거듭남은 시간과 마음의 진정과 신중함, 과거 잘못된 믿음의 반성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2코린 10,5). 그리고 마침내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고 말했다. 그 모든 것 안에서 "새 인간"(에페 4,24)이 나온 것이다. 정신의 사막에서 이 같은 신중함의 필요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1,17)에 적힌 것처럼, 당연히 바오로를 아라비아로 향하도록 떠밀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라비아를 둘로 나눴다. 잘 알려진 아라비아 반도와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암석으로 된 아라비아로 나뉜다. 거기에는 나바티아 왕국이 있고 그들의 왕인 아레타스는 헤로데 안티파스와 원수 사이였다. 그러므로 바오로가 그곳으로 와서 변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적해 일어났던 유다인들에게 더 이상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큰 사건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가 가르친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가는 곳마다 항상 성경책을 지닌 채 풀 한 포기 없는 고지대 사막으로 향했다. 사막은 늘 위대한 예언자들과 성 대바실리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을 키워 낸 곳이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로마 1,1) 바오로는 주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경의 바리사이식 해석을 재검토하고 개정했을 것이다. 율법 학자들의 율법을 하느님 뜻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주문서로 배제했을 것이다. 모세 율법의 계명들의 외양만을 지키는 것은 구원은커녕, 인간의 몸을 취한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너그러운 사랑을 보증하지 못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훗날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하고 썼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보낸 3년 동안의 사색을 통해 바오로는 주님의 인도자로서, 세계 만방을 그리스도께 이끈 사도로서 그 빛나는 업적의 진지를 구축한다. 오세택2011.02.16
![[문화]서예가 정진숙씨 복음서 4권 사경으로 완결](//cpbc.co.kr/CMS/newspaper/2010/06/rc/339208_1.0_titleImage_1.jpg)
[문화]서예가 정진숙씨 복음서 4권 사경으로 완결"자신의 마음 닦고 참 자아 찾는 수행이죠." 회원전 통해 백지묵서 요한복음 공개... 나머지 신약 23권과 구약 46권 완성이 꿈 서예가 정진숙씨가 자신이 직접 사경한 절첩본 「백지묵서 마태오복음」을 내보이고 있다. 자신이 쓴 작품인데도 흰 장갑을 낀 채 사경을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모습이 무척 조심스러워 보인다. 우리나라 '사경(寫經)' 전통은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을 헤아린다. 특히 불경 사경은 상당수가 국보급 문화재로 남았다. 서기 754~755년에 씐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 화엄경」(국보 제196호)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성경 사경은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런 터에 서예문화대전 사경부문 초대작가인 서예가 월계(月溪) 정진숙(요안나 프란체스카, 52, 의정부교구 지금동본당)씨가 최근 요한복음 사경을 완성, 4권의 복음서 필사를 모두 마무리했다. 2001년부터 5년간에 걸쳐 공동번역성서 마태오복음 사경을 마쳤으나 2005년 말 새 성경이 나옴에 따라 2007년 10월 재차 복음서 사경에 들어가 올해 1월까지 2년 4개월 만에 완결하고, 최근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된 제5회 한국사경연구회 회원전에서 이 중 「백지묵서 요한복음」을 자신의 작품 4점과 함께 공개한 것이다. 이로써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 등 사경 4권이 모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절첩본(折帖本) 사경으로 완성됐다. 사경은 붓으로 경전을 베낀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이 마음을 닦고 참 자아를 찾는 수행이다. 그래서 마음과 몸, 도구 및 재료의 청정이라는 삼청(三淸)에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장애를 없애는 삼무(三無) 수련이 병행된다. 가로, 세로 1㎝ 안팎 공간 안에 한글 정자체로 써 내려간 복음서 4권 사경은 그래서 보면 볼수록 단정하고 아름다워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23년째 서예에 혼신을 쏟고 있는 작가가 사경에 빠진 것은 지난 2001년으로, 당시 한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문화강좌에서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장을 통해 사경을 접하게 된 게 계기였다. "사경을 접하고 2000년 전에 쓰인 신약성경이 한글로 전해져오기까지 신비를 느끼면서 모자라는 솜씨지만 성경을 붓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펜으로 쓴 필사본 성경은 많지만, 붓으로 쓴 필사본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신앙선조들이 쓴 필사본 성경이나 교리서는 현대인들이 알아보기 힘든 흘림체 글씨인 것도 이유입니다." 서예와 사경은 일맥상통했지만 사경은 서예와 또 달랐다. 퍼져 있는 듯한 글씨가 단단하게 응축되기까지, 글씨 안에서 골기(骨氣)가 느껴지기까지 쓰고 또 쓰며 혼신을 불어넣었다. 수없이 오자가 나오면 다시 쓰는 고행을 계속했다. 그런 가운데 한 말씀, 한 말씀이 와닿으면서 성경 사경이 축복으로 느껴졌다. 사경 자체가 감사이고 찬미였다. "사경하다가 사경(死境)을 헤맨다"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제 작가는 "앞으로 나머지 신약 23권과 구약 46권을 모두 완성하는게 꿈인데 아무래도 주위 여건이 사경에 몰두하도록 주어져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성경 전권 사경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06.08
![[은총의 사순시기-회개] '사형수' 정 프란치스코씨의 사순절](//cpbc.co.kr/CMS/newspaper/2011/03/rc/371830_1.0_titleImage_1.jpg)
[은총의 사순시기-회개] '사형수' 정 프란치스코씨의 사순절조금만 더 일찍 예수님을 만났더라면…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구치소 마당 한편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쇠창살 너머의 예수님은 오늘도 죄인들을 회개의 자리로 부르신다. 세상에선 '사형수', ○○구치소에선 법정 최고형을 받은 기결수라고 해서 '최고수'로 불리는 40대 후반 정 프란치스코씨는 며칠 전 접견실에서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김성은 신부와 면담을 했다. 정씨는 좁은 독방에서 홀로 기도하며 묵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의 고백에는 사형수 신분으로 느끼는 사순절 의미, 삶과 신앙, 회개와 반성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김 신부와 정씨가 나눈 대화 내용을 정씨 동의를 얻어 소개한다.-프란치스코 형제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구치소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사순시기'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순시기가 돌아오면 특별한 마음이 들죠? "사실 사형수에겐 1년 365일이 사순시기입니다. 죽음에 대한 묵상을 따로 하지 않아도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죠. 사형 확정 후 처음 몇 년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가 몹시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인정하고 나니까 자연스레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에 동참하게 되더라고요. '주님, 저 같은 죄인을 위해서도 십자가 희생 제물이 되길 원하셨습니까? 이제 제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말씀해 주십시오'하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세례를 받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1996년 10월 사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당시 제 어깨 위에 얹힌 십자가 무게가 마치 큰 산 같았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선고를 받고 2개월 후 무작정 신부님께 세례를 달라고 졸랐어요. 신부님은 교리준비가 안 돼서 세례를 줄 수 없다고 하셨지만, 제 뜻이 하도 완강하니까 '외상'으로 허락해 주시더군요. 세례식 때 하느님께서 저를 얼마나 기다리셨고,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시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돌아온 탕자를 반겨주시는 아버지 모습 같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은혜롭고 행복한 날이었어요." -세례를 받고나서 가장 먼저 청한 기도가 무엇이었어요? "저처럼 큰 죄를 지은 죄인은 감히 '용서해주십시오'하는 기도를 할 수가 없어요. 성전에서 바치던 세리의 기도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처럼 그저 엎드려 빌 뿐이죠. 죄에 대한 성찰을 통해 회개 단계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릴 수 있었어요." -요즘도 과거 죄에 대해 묵상하나요? "그 날의 죄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하는 게 제 삶입니다. 저는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었어요. 조직 보스 지시로 폭력을 저질렀어요. 그러던 중 경찰 추적을 받게됐죠. 그런데 함께 일을 공모했던 동료가 위기를 느끼고 경찰에 자수를 했어요. 그의 배신에 격분한 나머지 동료와 그의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말았어요. 화를 누르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만거죠." -예수님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사셨을텐데…. "당연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그런 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어요. 살인죄만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크고 작은 죄에 빠져 사느니 확실한 삶의 전환점을 맞을 필요도 있으니까요. 썩은 부위는 과감하게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기쁨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마음에 품고 있는 성경구절이 뭐예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 입니다."(2갈라 2,19-20) -교리신학원 통신과정을 이수하고 '구치소의 선교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형 확정 후 '외상' 세례를 받을 당시 죽을 때까지 열심히 교리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교리공부를 하면서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받아본 적 없는 100점짜리 시험지를 받고는 어찌나 신이 났던지. 옆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을 땐 성경 말씀보다 제 신앙 고백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예수님 믿고 복음을 나누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한 일이고 그야말로 산 증인인 셈이니까요. 하지만 교정 행형법이 바뀌면서 요즘은 모든 사형수가 독방생활을 해요. 일반 수용자들과 마주할 기회가 없어져 복음 나눔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예요. "얼마 전 접견장에서 누님들이 '사형수를 둔 가족은 똑같이 사형수 심정으로 살아'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피해자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가해자 가족들 역시 평생 죄인 심정으로 사는 걸 생각하면 제겐 또 다른 형벌입니다. 그럼에도 지난 17년간 항상 웃는 얼굴로 못난 동생을 찾아주는 누님들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부활대축일 맞이하시길 기도할게요. "2년 전 '집행자'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가 인터뷰에서 '사형수들이 죄를 짓고도 반성하는 기미 없이 너무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형수들이 살아 있다는 자체로도 불편을 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고 사는 문제야 이미 제 영역을 떠난 일이고, 다만 죽기 전에 완전한 회개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자기 몸에 예수님 죽음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결국 그 몸 안에서 예수님 생명도 지니게 된다고 했으니 예수님과의 관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예수님 십자가 희생 덕에 덤으로 사는 생명이니 가치있게 살려고 노력해야지요." 정리=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1.03.29
![[성경 속 상징]64-나팔-죽은 이들의 부활 알리는 소리](//cpbc.co.kr/CMS/newspaper/2009/10/rc/314175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64-나팔-죽은 이들의 부활 알리는 소리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나팔은 고대 사회 악기 중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그래서 무엇을 선포하거나 신호를 주는 목적으로 나팔을 자주 사용했다. 나팔은 음정을 낼 수 있는 공기관의 길이가 짧아 음정 수가 매우 제한돼 있다. 나팔은 산양이나 소의 활 모양으로 굽은 뿔로 만들었다. 성경에서도 나팔에 대한 언급은 많이 등장한다. 나팔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주로 전쟁 때였다. 전쟁을 소집하거나 공격의 개시나 마침을 알릴 때 사용했다. 혹은 적들의 공격을 경고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벤야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한가운데를 떠나 피난하여라. 트코아에서 나팔을 불고 벳 케렘 위에 봉화를 올려라. 북쪽에서 재앙이, 엄청난 파괴의 조짐이 보인다"(예레 6,1). 전쟁의 승리를 선포할 때도 사용했다. "요나탄이 게바에 있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수비대를 치자, 필리스티아인들이 그 소식을 들었다. 사울은 '히브리인들은 들으시오!' 하면서 온 나라에 나팔을 불었다"(1사무 13,3). 나팔소리는 힘과 능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나팔은 예배 시작 시간을 알렸으며 회중의 찬양에 반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별한 절기들은 나팔이 울려퍼짐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나팔이 예배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경우는 속죄일이었다. 옛날에는 나팔에 속죄의 기능을 갖고 하느님을 달래는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은 시나이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말고, 돌이나 활에 맞아 죽게 해야 한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숫양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거든, 백성을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라"(탈출 19,13). 어떤 사건들에 대한 공적 관심을 유도하는 목적으로도 나팔을 사용했다. 왕이 등극할 때 나팔을 불었다. "예후는 '그 사람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면서,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임금으로 세운다"고 말하였소.' 그러자 그들은 재빨리 저마다 제 겉옷을 벗어 예후의 발밑 층계에 깔고는 나팔을 불며,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하고 외쳤다"(2열왕 9,12-13), 혹은 공개적 거부(2사무 20,1)나 집단적 맹세 등을 선포하기 위해서도 나팔을 사용했다. 나팔은 특별한 축제에서 기쁨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집안은 함성을 올리고 나팔을 불며, 주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2사무 6,15). 따라서 나팔은 공적 예식에 사용된 악기였다. 신약성경에서 나팔은 부활을 상징적으로 알린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은 부활해서 영원히 살게 된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52-53). 그래서 중세 미술에서 나팔은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예언하는 상징이 된다. 특히 최후의 심판을 그린 작품에 나팔이 등장한다.조은일2009.10.27
[아! 어쩌나?] (90) 슬퍼야 행복한가?Q. 슬퍼야 행복한가?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 병을 고치기 위해 성경묵상을 하고 있는데, 복음 내용 중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5장 산상 설교에서 행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중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온종일 우울하고 슬픈데, 그게 행복하다는 뜻인지요.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요? A. 성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퍼할 줄 아는 사람 즉, 마음에 연민을 갖고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연민은 그리스도교인 덕목 중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사업이 바로 연민으로 시작이 됐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심지어 당신을 해코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당신이 마음 가득 가지신 감정은 바로 연민입니다. 연민이 공동체가 완성되는 길이고 개인이 구원받는 길이란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연민을 키우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베드로 사도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병자들이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이라도 만지길 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엇이 그처럼 큰 치유능력을 일으키는 걸까요? 베드로 사도가 가진 연민의 힘이 그런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사셨기에 그토록 큰 연민을 가진 것일까요? 참된 자기인식을 통해 깊고 큰 연민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영성심리학자 윌키오는 참된 자기인식에 대해 "참된 자기인식이란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빛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둠이란 것, 어떤 면은 성인이지만 어떤 면은 악인이란 것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는 것이 참된 자기인식이고, 이러한 참된 자기인식을 가질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과 연민의 정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어두운 면, 자신이 스승을 버리고 배신한 것과 자신의 나약함에 대해 온몸으로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즉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빠질 수 있는지 뼈저린 경험을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질 수 있었고 그 깊은 연민이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더 열심인 신앙인이 되기 위해 매일같이 자기성찰을 하고 보속하는 삶을 살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지고 하느님을 뵙기가 무섭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자꾸 까칠해져간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자기성찰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자기성찰이란 영성수련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성찰을 마치 재판관이 죄수 다루듯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 무슨 죄를 지었고, 몇 번이나 지었고 하면서 자기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성찰이 아닌 자기재판을 하게 되면 마음 안에 연민은 말라버리고, 병적 죄책감만 생기는 정신적 부작용을 낳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많이 하는데 하느님은 더 멀어지고, 봉사는 많이 하는데 성격은 까칠해지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그럼 건강한 자기성찰이란 어떤 것인가? 위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그림자, 자신 안의 어둠을 그냥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인이 될 가능성과 악인이 될 가능성이 모두 다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메마른 땅에 샘이 솟듯이 연민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건강한 자기성찰을 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회적 범죄인들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보면 됩니다. 어떤 본당에서 건강한 신앙인 콘테스트가 열렸습니다. 건강한 신앙인을 사목회장으로 선발한다는 공지와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본당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후보자들이 면담실에서 기다리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본당신부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책상 위 신문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신문 기사 중에 흉악범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서 모두 입에 침이 튀도록 쳐죽일 놈이라는 둥 저런 놈은 아예 씨를 말려야 한다는 등 분기탱천해 입담을 푸는데, 느닷없이 본당신부가 들어왔습니다. 본당신부는 "여러분 중에는 총회장이 되실 분이 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아니 왜 우리를 폄하하는 것이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는 "총회장직을 하려면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다 들어야 하는데, 여러분처럼 화가 많으면 화병에 걸려서 일찍 돌아가실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여러분 건강을 생각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니 마음 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구석에서 조용히 흉악범을 위해 기도한 사람을 총회장으로 뽑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병적인 자기성찰은 감당키 어려운 분노를 불러오지만, 건강한 자기성찰은 연민을 불러옵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cafe.daum.net/withdoban이정훈2011.02.15
 창조의 하느님 : 우주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7481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2) 창조의 하느님 : 우주의 하느님종교와 과학은 상호 협력 관계환경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 창조론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만든 화학제품은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고, 과학기술은 치유 목적이라는 미명으로 인간 복제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은 과연 누구이고 또 자연은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서 왔는가'와 같이 세상과 인간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갈구해 왔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제시하는 인간과 자연의 기원은 창조론이다. 창조론은 성경에 근거해 인간과 세상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답변해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계몽주의자와 자연과학자는 창조론을 공격했고, 이에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단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잦아들고 있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을 연구하는 반면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차이를 교회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신학과 과학을 상호의존적ㆍ협력적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창조론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한다. 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이론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화다. 신화는 어떤 사실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얘기해주고 열거한다. 그렇기에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무조건 옳다는 정언적 성격을 띈다. 또 시간이나 논리를 떠나 그 자체로 정당성을 지닌다. 신화에서는 대부분 시초에 혼돈이 등장한다. 이 혼돈으로부터 만물이 분출되고, 창조는 이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세우는 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인 신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서술된다. 몇 가지 신화를 살펴보자. 바빌론의 신화 「에누마 엘리쉬」는 신이 귀찮은 것을 떠맡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묘사했다. 여기서는 인간창조가 매우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프로메테우스와 에페메테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를 '남자를 못살게 하려고 만들어진 존재'로 묘사한다. 신화뿐 아니라 고대 희랍철학 역시 세상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세상의 기원을 최초로 탐구한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 학자들을 밀레토스학파 또는 이오니아학파라고 한다. 이들은 신들을 언급하지 않고도 우주를 다스리며 우주의 변화 과정을 규제하는 어떤 비인간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물이 어떻게 창조됐는가보다는 사물의 근원에만 관심을 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연보다 인간 자체에 관심을 돌리고 인간을 최고의 학문 대상으로 여겼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가졌다. 인간 영혼의 이성적 부분은 세계 조물주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비이성적 부분은 육신을 만든 신들에 의해 창조됐다고 생각했다. 플라톤 사상은 여러 세기 후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새롭게 발전됐다. 플로티누스는 고대 희랍철학과 여러 종교를 혼합해 창조를 하나의 유출로 설명했고, 2~3세기 그리스도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신의 유일성을 고수하면서 모든 사물은 스스로의 창조 행위가 아닌 신의 창조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이 신으로부터 유출돼 흘러나온다고 본 것이다. 그 예로 태양을 들었다. 태양은 절대 고갈되지 않고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 이처럼 신은 만물의 원천이며, 만물은 신을 드러낸다. 또 그는 악을 세계질서에서 한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악은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어두운 그림자 부분과 같다는 것이다. 현대과학은 우주 기원을 빅뱅이론으로, 인간 기원을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과학은 생명 현상, 생물의 진화와 그 방식에 대해 질문하지만 신학은 그 궁극적 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 두 학문은 서로 다르다. 생명의 시작에 관한 그리스도교 창조는 연대기적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신학자 프랑수아 바리용 역시 "물리적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학자 소임이고, 물리학자는 창조주라는 가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번개, 바람, 지진 생물의 진화 등 세상 현상들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과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적 의미는 물론 그것들의 근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조의 신비에 다가가는 길을 찾을 곳은 과학이 아니다"하고 말했다. 이처럼 과학과 그리스도교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역할과 소임을 갖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점을 분명히 하며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숭배와 거짓 절대주의로부터 정화할 수 있다. 양자는 각기 타자를 보다 넓은 세계로, 양자가 그 안에서 번영할 수 있는 세계로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또 생명의 기원과 진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8.23
![[냉담교우를 모셔오라 II]-(3)냉담교우 방문 때 이런 선물 어때?](//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794_1.0_titleImage_1.jpg)
[냉담교우를 모셔오라 II]-(3)냉담교우 방문 때 이런 선물 어때?"정성 담긴 선물 들고 찾아가면 닫혔던 마음의 문 쉽게 열리죠"동천 성바오로본당, 잼 만들어 가정 방문백 마디 말보다 호소력 강해 친밀감 회복비누ㆍ반짇고리 등 부담없는 선물 바람직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할 때 직접 만든 음식이나 정성이 담긴 선물을 갖고 가면 방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이다. 수원교구 동천 성바오로본당 신자들이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할 때 전달하기 위해 직접 만든 딸기잼을 병에 담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똑똑똑) 안녕하세요. 제가 전을 부쳤는데 맛 좀 보세요." "고마워서 어쩌나…."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선교 강사로 활동하는 김정선(로사, 춘천교구 포천 이동본당)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할 때면 직접 만든 음식을 싸들고 간다. 처음엔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 냉담교우도 정성이 담긴 선물을 들고 가면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찾아가 민숭민숭하게 '성당에 나오세요'하는 것보다 이왕이면 집에서 만든 간단한 음식을 들고 가서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말하는 게 훨씬 쉽죠." 수원교구 동천 성바오로본당 신자들은 3개월마다 딸기, 자두, 복숭아, 사과 등 제철과일로 만든 잼을 들고 냉담교우와 새로 이사 온 교우집을 방문한다. 잼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상당수 냉담교우들이 성당에 다시 나오겠다고 흔쾌히 약속한 것이다. 또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이사와 성당이 낯설 수밖에 없는 전입 신자들도 잼 선물 덕에 쉽게 거리감을 좁힌다. 동천 성바오로본당 정현순(프란체스카로마나, 44)씨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잼을 들고 방문한 본당교우들 덕분에 성당에 다시 나왔다"며 "제가 받은 잼의 감동을 다른 교우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례를 받고 1년 만에 냉담을 했던 서 마리아(38)씨가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교우의 편지와 선물이 계기가 됐다. 서씨는 갑자기 이사를 하는 바람에 친하게 지내던 대모와 멀리 떨어지게 됐고, 새 성당에서는 왠지 소외감이 느껴져 한동안 신앙생활에 소홀했다. "내성적 성격 탓에 이사 온 지 몇 달이 되도록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는데, 이웃 자매님이 어느 날 손수 만든 음식을 싸들고 찾아왔더라고요." 일반적으로 '냉담교우 모시기 5단계'에서 '사랑의 편지 전달'(2단계)을 통해 냉담교우의 관심을 유도하고 다소 친밀감을 회복한 후 대상자의 집을 직접 방문(3단계)하는 것으로 냉담교우와 화해를 위한 여정을 본격화한다. 미래사목연구소 김정선 선교사는 "냉담교우 가정을 찾아갈 때는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선물을 갖고 가면 효과적"이라며 "과일이나 음료수,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피로회복제,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사갖고 가는 것도 좋다"고 설명했다. 정성어린 선물은 백 마디 말보다 호소력이 강하고 상대방과 관계를 친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할 때 선물을 갖고 가면 방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대화 물꼬를 틀 수 있게 해준다. 본당에서 비누, 물티슈, 쟁반, 부채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방문 선물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수원교구 산본본당은 지난해 가을과 올해 사순시기에 냉담교우 모시기 운동을 할 때 작은 케이스에 실과 바늘, 단추 등 바느질 도구가 들어 있는 '반짇고리'를 제작해 호응을 얻었다. 산본본당 김은형(헬레나) 선교분과장은 "구역별로 아이디어를 짜내 작은 화분이나 예쁜 초, 롤케이크 등을 사서 냉담교우를 방문할 때 선물했다"고 말했다. "냉담기간이 길고 가족 모두가 냉담을 하는 가정에는 교회 월간지를 일괄 구입해 매달 예쁘게 포장해서 전달했는데, 어떤 냉담교우는 한 번 받아보고 곧장 냉담을 푼 경우도 있어요." '고소한 신앙의 맛을 다시 한 번 느껴보라'는 뜻에서 참기름을 전달하거나 손뜨개 바늘로 직접 떠서 만든 친환경 아크릴 수세미를 선물하는 본당도 많다. 김정선 선교사는 "방문에 앞서 본당 주보와 함께 성경구절이나 좋은 말씀을 담은 카드, 감동적 신심서적이나 소책자를 정기적으로 전해주면 친밀감을 쌓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11.06.21

최기산 주교, 성경묵상집 제3권 「희망을 부르는 말씀」출간하느님 사랑 신뢰하는 사람이 희망 간직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성경묵상집 제3권 「희망을 부르는 말씀」을 출간했다. 「행복을 부르는 말씀」(2008년 1월), 「승리를 부르는 말씀」(2008년 9월) 에 이은 구약성경 묵상 시리즈 완결판이다. 「희망을 부르는 말씀」은 제1권(창세기~느헤미야기)과 제2권(토빗기~예레미야서)에 이어 구약의 애가서부터 말라키서까지 최 주교 자신이 성경을 매일 읽으며 곱씹어 볼수록 와 닿던 구절들을 나름대로의 묵상과 해설, 다양한 에피소드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행복을 부르는 말씀」이 '하느님 말씀 안에 사는 것이 행복'임을, 「승리를 부르는 말씀」이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이 승리하는 인생'임을 강조했다면, 「희망을 부르는 말씀」은 '하느님 사랑을 신뢰하는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치 청개구리처럼 주님을 배반하다 그 벌로 모진 고생을 겪은 후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빌기를 반복했다. 최 주교는 이 같은 구약 묵상을 통해 '하느님만이 나의 희망, 나의 피난처'라는 진리를 전한다. 최 주교는 머리말에서 "세 권의 묵상집을 통해 내가 깨닫고,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절망과 고뇌 속에서도 희망을 간직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권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은 이, 매일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필사하면서도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하느님 말씀을 쉽게 이해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도와준다. 강론 잘하기로 유명하고, 본당 신부와 신학교 교수 시절부터 강론집과 복음예화집 등 비교적 '쉽게 읽히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명성답게 단숨에 읽힐 정도로 쉽게 썼다. 아무 쪽이나 펼쳐 읽고 묵상해도 크게 무리가 없고 공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위즈앤비즈/1만 원) 문의 031-985-2804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0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