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24) 혼인 성사](//cpbc.co.kr/CMS/newspaper/2011/11/rc/396558_1.0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24) 혼인 성사하느님 안에서 부부로 사랑 · 일치 ▶혼인성사의 개념 혼인성사는 세례 받은 남녀 신자가 주례 사제와 두 증인 앞에서 전례를 통해 일생 부부로서 살아갈 것을 서약하는 성사다. 하느님께 서로 돕는 협력자로 창조된 남녀는 혼인성사로써 하느님 안에서 부부 간의 유일하고 영원한 관계를 맺고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며 자녀를 낳아 기르고 교육한다. ▶혼인 관련 교회 가르침 1)성(性) : 교회는 인간의 성(性)을 죄악시하거나 불결함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창조주 하느님의 업적으로서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축복의 하나로 높이 평가한다. 2)남녀의 구별성과 동등성 : 남성과 여성은 서로 구별되지만 다함께 동등한 존재로서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면서 상호 공존과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협력자'로 창조하셨듯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협력하는 가운데 하느님 창조 사업에 협력해야 한다. 3)혼인과 가정 :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에서 첫 번째로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을 제시한다. 공의회는 중혼ㆍ이혼ㆍ부당한 출산 거부 등 혼인과 가정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부부 공동체가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상호 간 인격적 합의로 맺은 영원한 계약의 공동체라고 밝힌다. 4)그릇된 성생활 : 교회는 성행위가 부부간 상호 사랑과 일치,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한다고 여기므로 혼인 생활에서의 성행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성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는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 바오로 사도가 강조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 몸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교회는 혼전성교ㆍ동성애ㆍ자위ㆍ혼외성교ㆍ근친상간 등과 같은 성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5)자녀 출산과 양육 : 교회는 인간 생명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수정란을 형성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보기에, 산모의 생명을 구하는 치료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로 태아 유산이 이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또 인공 피임이 아닌 여성의 자연 주기를 이용한 출산 조절을 허용하며, 대리모와 인공 수정을 통한 수태보다는 입양을 권고한다. ▶혼인성사 예식 「혼인성사 예식서」는 혼인성사의 중요성과 품위를 언급하면서, 미사 중 혼인 예식, 미사 없는 혼인 예식, 평신도가 주례하는 혼인 예식, 가톨릭 신자와 예비 신자 또는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혼인 예식, 혼인 예식과 혼인 고유 미사에 쓰이는 독서와 기도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1)혼인성사 준비 혼인성사를 받을 예비 신랑과 신부는 혼인성사 전에 유효하고 적법한 혼인 거행에 장애되는 사항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혼인 당사자는 혼인성사 전에 본당 신부와 면담을 해야 하고, 혼인 공고(婚姻公告)를 거쳐야 하며, 혼인 교리를 받으면서 혼인성사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고해성사와 같은 내적 준비도 갖춰야 한다. 2)혼인성사 예식 ①혼인성사 : 혼인성사는 세례 받은 두 남녀 신자의 상호 사랑과 이들의 결합을 강복하시는 하느님 사랑으로 이뤄진다. 혼인성사에서 두 남녀 신자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혼인하고, 일생 서로 사랑과 존경과 신의를 지키며, 하느님께서 주실 자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녀를 기르겠다고 서약한다. 혼인성사가 쌍방의 자유로운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하는 까닭은 하느님께서 혼인 제도를 제정하셨지만, 혼인하는 것이 남녀 신자 모두에게 의무적 강제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한 남녀 신자는 죽기까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신의를 지키며 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사 중 혼인 예식은 △시작 예식 △혼인 관련 독서와 복음(창세 1,26-28.31ㄱ; 에페 5,2ㄱ.25-32; 마태 19,3-6)으로 이뤄진 말씀 전례 △신랑과 신부가 어떠한 강박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으로 혼인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일생 신의를 지키고 사랑하며 존경할 것을 약속하는 신랑과 신부의 합의 △신랑과 신부의 합의를 받아들이는 사제의 수용 △반지 축복과 교환 △보편 지향 기도 △혼인 축복 등으로 이뤄진 혼인 예식 △성찬 전례 △마침 예식으로 이뤄진다. ②관면혼인 : 신자가 예비신자 또는 비그리스도인과 혼인을 할 경우 관면혼인이 가능하다. 관면혼인은 신자 아닌 배우자가 신자 배우자의 신앙생활과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보장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가능하다. 관면혼인 예식은 성찬 전례를 생략한 혼인성사와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 신자가 교회의 혼인 예식을 따르지 않고 혼인하거나, 교회의 허락 없이 미신자 또는 타 종교인과 혼인을 하면 교회법상 혼인 장애에 놓이게 된다. 혼인 장애에 놓인 신자들은 이를 풀지 않는 이상 성사생활을 할 수 없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퇴사자22011.11.22
하루 한 장 성경 읽기(20~26일)▨사도행전(20~26일) ▲6장(20일) : 그들은 ( )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사도들 앞에 세웠다. ▲7장(21일) :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하고 외쳤다. ( )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장(22일) :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 )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9장(23일) :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 ),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0장(24일) : 하느님께서 미리 ( )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11장(25일) : 바르나바를 ( )로 가라고 보냈다.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12장(26일) :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 )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임영선2009.12.15

나의 새해 신앙 다짐부족했던 지난 한 해 반성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 보따리를 풀다 보니 어느덧 새해다. 성직ㆍ수도자를 비롯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계각층 신자들은 임진년 한 해 무슨 신앙계획을 세웠을까? 지난해 부족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은총과 사랑 속에서 희망의 한 해를 꿈꾸며 주님께 드릴 신앙 다짐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본다. ▶소설가-김훈(아우구스티노) 지난해에 소설 「흑산」을 쓰면서 신앙과 세속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성(聖)과 속(俗)이 양극단에서 대척하는 것이라면 양쪽이 모두 공허한 것입니다. 속은 성을 동경하는 것이며 세속에서 발현되는 영성이 인간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개인도 교회도 세속을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신앙을 건설해야 하는 진리는 초월이 아니라 현세입니다. 다시, 어지러운 날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간성 안에 본래 그렇듯이 스스로 내재하는 영성을 묘사할 때 나는 때때로 기뻤습니다. 그런 행복이 올해에도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일상 속에서 경건을 회복하고 나의 세속을 깊이 성찰하는 일을 나의 신앙으로 삼으려 합니다. ▶선교사-김영주(프란치스코, 광주대교구 강진본당 성전공소) 찬미예수님, 고맙게도 주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고쳐 쓰시기 위해 선교사의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2012년은 선교사 생활 3년째. 그러나 자주 도구가 주인 행세를 하려는 유혹이 신앙의 걸림돌이자 선교사의 장애물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제가 선택한 성구 '그분은 커지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선교사의 길을 가렵니다. 그리고 혼자 생활하시는 공소 어르신들과 이웃들에게 관심과 배려, 따뜻한 웃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겠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살아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앞에서는 울고, 이웃 앞에서는 기쁘게 웃는 알차고 보람된 한 해가 되기를 꿈꿔봅니다. ▶신혼부부-장준석(라우렌시오)ㆍ박선영(프린치피아) 하느님께서 지켜보신 가운데 지난해 10월 결혼한 장준석(라우렌시오)ㆍ박선영(프린치피아)입니다. 우리 부부는 2012년을 감사와 믿음, 사랑이 가득한 한 해로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를 이렇게 맺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서로에게 지금보다 더 깊은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프린치피아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용기'(태명)가 태어날 때까지 엄마와 아이 모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용기가 씩씩하게 태어나 태명처럼 용기 있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또 용기와 함께 성가정을 이뤄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가정을 꾸려나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우리 용기를 위해 많이 기도해주세요. 저희도 여러분을 위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방송인-이동우(마르코) 사람들은 희망이 있어야 행복하다고들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의 새해는 지난해보다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제게는 뚜렷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5% 정도의 시력만 남아 있는 1급 시각장애인 제가 희망을 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처음 진단받고서는 우울증을 겪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곁에서 따뜻하게 지켜주는 가족과 팬들 그리고 주님 덕에 다시금 일어났습니다. 제가 받은 큰 사랑과 다시 찾은 희망을 많은 분과 나누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TV와 라디오, 연극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많은 분께 희망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기대' 대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겁니다. ▶국회의원-고흥길(바오로, 한나라당 성남시 분당갑) 언제나 새해가 되면 타인에게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성경 말씀대로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을 곧잘 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관점에서 열심히 살려고 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지난 12년 동안의 의정 생활을 돌아보면서 새해에는 그동안 간과했던 모든 것들을 진솔하게 반성해 보겠습니다. 또 새해에는 하느님을 더욱 더 믿고 따라서 복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뒤로하고 새해에는 희망 가득한 소식으로 모든 이가 행복을 느끼며 평화를 누리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평화신문을 사랑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 평안이 가득하시고, 소망하시는 일이 모두 다 이뤄지시는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구역장-박인옥(아기예수의 데레사, 수원교구 조원솔대본당 주공1구역장) 한 살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이제는 한 가지씩 버리고 살아야 함을 느끼며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하느님 자녀로 살아온 지난 30년 동안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얼마나 주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나 생각해보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올해부터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 기도가 아닌 주님을 위한 기도, 내 주변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려 합니다. 또 힘든 시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가장들과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성서를 묵상하겠습니다. 2012년에는 한층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합니다. ▶장애인-김종호(요한, 수원 성남동본당 장애아부 주일학교) 새해에 저는 17살이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등하교와 성당 다니는 것을 늘 부모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혼자 성당 가는 것을 연습해 보려고 합니다. 길을 잃을까봐 겁도 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부딪혀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대견해하며 기쁘게 맞아주실 것 같습니다. 지금도 미사에 참례할 때면 괜히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선 주님이 저를 무척 사랑해주셔서 그런 것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앞으로 혼자 성당에 가면 주님께서는 아주 잘했다며 안아주고 사랑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려는 저에게 주님께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드릴 겁니다. 그동안 늘 함께 해주시는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일학교 교사-홍광표(라파엘, 춘천교구 샘밭본당) 신앙인이 된 지 겨우 4년 됐습니다. 군 복무 시절 심심해서 읽은 성경 구절이 마음에 닿아 세례를 받으려 했지만, 학업과 사회생활로 매번 교리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다가 재도전한 지 10년 만에 겨우 세례를 받았지요. 세례를 받고 혼자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려 했는데, 함께 세례를 받은 학생이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 주일학교에 나오겠다고 해서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신앙도 빈약하고 교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좌충우돌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학부형들과 충돌도 하지요. 처음 교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은 '최대한 맡은 일에는 구멍 내지 말기''아이들과 친해지기'였습니다만 올해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합니다. 바로 '웃음이 넘치는 주일학교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물론 몇 명 안 되는 인원이 웃어봐야 썰렁하기만 할 테니 냉담 중인 학생들을 설득해 좀 북적대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원로사목자-이계창 신부(대전교구) 2012년은 은퇴 5년째를 맞는 해입니다.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후로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떠한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그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미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냉담교우 회두와 연옥영혼을 위한 묵주기도 80~100단을 바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일에는 신학교를 찾아 신학생에게 고백성사를 주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일 또한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사목 일선에 있을 때는 시간이 부족해 소홀했던 독서량을 늘릴 계획이고, 특히 성서에 대해 더욱 깊은 고찰을 담은 책들을 읽어나갈 것입니다. 그간 대전ㆍ충남 가톨릭문학회에서 활동하며 매년 글을 써왔습니다. 이 글을 모아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는 2017년에 사제 생활을 돌아보는 책을 한 권을 집필할 계획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간 사제 연례피정을 지도한 경험 등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복지시설장-강성숙 수녀(레지나, 경기도 안산 본오종합사회복지관장) 지난해의 아쉬움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한 해를 다시 시작하는 지금 크고 작음을,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는 꿈을 꿉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나눔을 행하는 사람들 생각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내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을 그려가는 임진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압니다. 사람을 향한 복지도 말뿐이 아니라 정책을 통한 행동이 뒷받침돼야만 비로소 사람을 향한 사랑이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뜻을 모으고 큰마음을 이뤄 가난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들을 품어 주겠습니다. 새해에는 하느님의 큰 사랑이 마음 속에서 슬피 우는 가난한 우리 이웃들을 보듬어 주시어 그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곳에 하느님이 품어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 모두 함께하고 있기에. ▶여성총구역장-정찬수(마리로즈, 서울대교구 자양동본당) [[그림11]] 본당 전 구역을 돌며 봉헌하던 2년여간의 구역미사가 얼마 전 무사히 끝났습니다. 지역개발로 새 신자가 많이 늘었지만, 불협화음 없이 주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새해에도 본당 모든 가족이 성가정을 이루며 건강히 신앙생활하기를 기원합니다. 또 반 모임이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구역 간 화합을 위해 실시하는 성지순례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에서 조금은 멀어진 자녀가 다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공소 신자-노은옥(아델라, 원주교구 흥업본당 귀래공소) [[그림12]]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에 있는 귀래공소는 충청북도와 이웃해 있는 작은 신앙공동체입니다. 공소 식구도 40여 명 정도이고 50대가 젊은 축에 속할 정도로 어르신이 많습니다. 신부님이 한 달에 한 번 오셔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농사철에는 미사 참례자가 너무 적어 부끄럽고 민망할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는 농사일 때문에 미사를 거르기에 이들의 신앙을 저울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형제ㆍ자매들이 오랜만에 나오면 오히려 내 가족처럼 반기고 음식을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이런 신앙공동체를 너무 사랑합니다. 새해에는 주님의 은총 속에 공소 모든 이들이 주님의 날을 더욱 거룩하게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저희도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요. 늘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저희를 보살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더 많은 이들이 주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대학생-박은솔(엘리사벳, 숙명여대 화학과 4학년, 수원교구 광주본당) [[그림13]] 2월에는 드디어 대학생 딱지(?)를 뗍니다. 제 동기들 대부분은 취업 준비에 바쁘지만 저는 계속 공부를 하려 합니다.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가서 어학코스를 밟은 뒤 9월 UNT(University of Texas) 대학원에 진학해 제 전공인 화학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타국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체험해 더욱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하려는 제 계획에 많이 설렙니다. 더불어 주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은 저를 지탱해주는 근원이었기에 타국에서도 활발한 성당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한인성당이 여의치 않으면 미국 성당에 나가 외국인 신자들과 교류하며 신앙을 나눠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또 떨어져 지낼 부모님과 언니가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직장인-인수호(미카엘, 인천교구 논현1동본당) [[그림14]] 주님 도구로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먼저 묵상해 봅니다. 새로 완공한 성전에 입당한 본당 공동체와 더불어 새해에는 어느 해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랑을 실행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신심봉사 활동에 충실하면서, 영적으로 더 충만한 삶을 가꾸기 위해 체계적 성경교육과 교리교사 교육을 수강하고, 그동안 결단하지 못한 꾸르실료를 이수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 제게 오늘의 건강과 행복을 선물해 주신 생명의 은인 고 최분도(Benedict Zweber, 1932~2001) 신부님의 사목활동과 사회적 업적을 정리하고 알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하느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새해에는 30여 년간 직장생활을 접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에 다소 두려움도 있지만, 항상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의지하며 우리 집 가훈인 이웃사랑을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어르신-최춘난(데레사,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그림15]] 신앙인이 된 지 60년이 넘었습니다. 올해 다짐을 생각하려 하니 그간 제가 걸어온 신앙생활이 눈에 밟히네요. 어려서 살던 동네가 평택인데 그곳은 천주교 교우 집안이 많아 자연스레 입문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영세 후 열심히 성당 생활을 했고, 천안의 하나뿐인 성당에 가는 길에 6ㆍ25가 발발했습니다. 그 후에는 줄곧 명동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서울 중구에 백병원이 생길 무렵, 명동본당 레지오 단원들에게 자원봉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5년이 넘는 기간 원목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주 한 차례 병원을 찾아가 환자를 위해 기도를 바치며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 나이 새해에 77살이 되는데,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는다면 계속해 봉사활동을 할 것입니다. 현재 허리 수술과 무릎 수술을 받아 몸이 편하지는 않지만 주님이 이끄는 대로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본당 사무장-김선중(미카엘, 군종교구 국군중앙주교좌본당) [[그림16]]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이라고 위안을 삼고 아예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계획 없이 살아온 저에게 잘하라는 주님 뜻이려니 생각하고 새해에 작은 소망을 빌어 봅니다. 우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네요. 두 번째는 한 달에 하루는 성지순례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저희 성당에 성지 순례차 방문하시는 분 중에는 부산과 같이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을 보고 우선 가까운 성지부터 순례할 계획입니다. 세 번째는 새해부터 시작되는 금요일 영성의 밤 행사를 통해 기도생활이 몸에 배도록 해주십사 기도할 것입니다. 더불어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도록 주님께 청하려 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시장상인-홍순용(이냐시오, 서울대교구 남대문시장본당) [[그림17]] 저희 성당은 '우리물터'라는 노숙자 목욕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저는 그곳 봉사자로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어려움이 많지만 이 일은 주님의 사업입니다. '저의 작은 도움이 힘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소서'하고 기도드리면 주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도와주셨으며 함께 해주셨으니 저에게는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만큼 저를 더 사랑하시기에 주시는 은총으로 알고 감사히 지냅니다. 요즘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코헬 3장)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지금은 봉사하고 있지만 저 역시 어쩌면 봉사를 받아야 하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봉사자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또 앞으로 다가올 나를 위한 이기적 봉사에서 지금까지 여러 사람에게 받은 많은 도움과 주님의 도우심을 알게 됐기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보잘것없는 사람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힘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저희 모두를 이끌어 주시며 항상 저희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주민-박동월(요안나, 중국 출신, 서울대교구 성북동본당) [[그림18]]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새해 다짐을 하려니 어색하기만 합니다. 주일미사는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지만 아직 제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올해는 다른 이주민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모든 이주민이 한국사람들과 잘 사귀어서 어우러지며 편안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또 아이가 아직 어려서 본당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본당 신자들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꼭 하고 싶습니다. 저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분들을 도우면 지금보다 더 기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에는 모든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해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어린이-정규성(크리스토폴, 서울 신용산초등학교 5학년, 서울 한강본당) [[그림19]] 8살 때 처음 성당엘 갔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간식을 먹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세례를 받고 바로 복사를 섰습니다. 신기하게도 복사를 서면서 참을성도 생기고 행동도 바르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제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 느낌이 좋아 지금까지 계속 미사 참례를 거르지 않으며 기도를 드립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제대에서 복사를 설 때 가장 빛나고 예쁘다고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제대에서 신부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해에는 기도할 때 주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복사생활도 열심히 하고, 미사참례도 잘 할 것입니다. 멋진 새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김진영(안젤로, 전주 숲정이본당) [[그림20]] 1년 동안의 긴 고3 생활을 지나 어느덧 새해가 왔습니다. 문득 지난해 이맘때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떠올려봤습니다. 1년 내내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 한 해 동안 노력한 성과가 잘 이뤄지길 빌었습니다. 그야말로 열심히 공부하며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그래도 미사참례를 거르지 않으려 애쓰며 기도 안에서 지냈습니다. 올해 어엿한 대학생이 되면 성당 친구들과 더욱 돈독히 지내면서 자칫 소홀했던 신앙생활을 이어갈 겁니다. 또 저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두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주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새해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지혜2011.12.27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제2부] (7) 공의회 이후 변화(3)](//cpbc.co.kr/CMS/newspaper/2012/02/rc/405212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제2부] (7) 공의회 이후 변화(3)교회 일치 끌고, 종교간 대화 밀고오늘날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교회 일치 및 종교간 대화 협력 노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실이다. 사진은 2011년 10월 27일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 [CNS]▨교회 일치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발표할 때부터 새 공의회가 일치를 위한 공의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교회 일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 사안이었습니다. 후임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1964년 1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정교회 수석 총대주교인 아테나고라스 1세와 역사적 회동을 한 데 이어 그해 9월 13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에 탈취해 보관하고 있던 사도 성 안드레아 유해를 그리스 파트라에 반환했습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그리스 정교회 수호성인이었습니다. 교황은 이를 통해 정교회와 화합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교황은 공의회 폐막 전날인 1965년 12월 7일 1054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플과의 상호 파문을 911년 만에 철회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합니다. 공의회가 끝난 후 바오로 6세는 1967년 7월 터키를 방문, 이스탄불에서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와 다시 만났고, 그해 12월에는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가 처음으로 바티칸을 방문합니다. 이에 앞서 교황은 1966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를 만났고, 이 만남을 계기로 성공회와 가톨릭 교회의 쟁점들을 논의하기 위한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위원회(ARCIC)가 설립됩니다. 바오로 6세는 1969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본부를 찾았고, 1973년에는 로마에서 칼케돈 공의회(451년) 때 갈라져 나간 고대 동방교회인 이집트 콥트 교회 총대주교 쉐누다 3세와 그리스도 신앙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합니다. 교황은 또 공의회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했던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을 공의회가 끝난 후에는 교황청 상설기구로 설치해 일치 문제를 관장하게 합니다. 이 일치 사무국은 1988년 교황청 기구 개편과 함께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약칭 일치평의회)로 개편돼 오늘에 이릅니다. 보편교회 차원의 일치 노력은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 교황 때 더욱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정교회와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79년에는 이스탄불을 방문, 디미트리오스 1세 총대주교를 만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가톨릭-정교회 합동 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교황은 또 1987년에는 디미트리오스 1세를 바티칸으로 초청한 데 이어 1995년 그 후임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를 초청했습니다. 루마니아(1999)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2001)를 방문했을 때나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시나이, 예루살렘, 시리아, 그리스까지 성경의 세계를 순례했을 때 정교회와 고대 동방교회들과 일치도 주요 사안이었습니다. 특히 1995년에 발표한 회칙 「하나되게 하소서」는 교회 일치를 위한 교황의 염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문헌입니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는 1978년 이후 해마다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는 가톨릭 대표단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가 있는 이스탄불을 방문하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축일에는 정교회 대표단이 로마를 방문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교회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갈라져 나간 개신교 교회들과의 일치 노력 역시 꾸준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교황청 일치평의회는 신앙교리성 등 유관 부서와 협조하면서 정교회와 고대 동방교회들뿐 아니라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회, 복음주의교회 등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일치를 위한 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1999년에는 루터교와 함께 '신앙에 의한 의화에 관한 공동 선언'을 발표, 16세기 종교 분열의 한 원인이 된 의화 교리 문제에 있어서 원칙적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 공동 선언은 2006년 7월 서울에서 가톨릭교회와 세계감리교협의회 그리고 루터교 세계연맹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일치 노력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정교회 일부 교회들은 특히 동유럽 지역에서 가톨릭교회가 정교회 신자들을 개종시키려 한다며 탐탁치 않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성공회와의 일치 노력은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 서품을 인정한 것이 암초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종교간 대화 종교간 대화 노력 역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새롭게 시작됐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공의회가 진행중인 1964년 6월 타종교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 비그리스도교 사무국을 설치했습니다. 공의회가 비그리스도교 선언 「우리 시대」(1965년 10월 28일)를 발표한 후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 타종교와 대화를 추진해 온 사무국은 1988년 교황청 기구개편과 함께 종교간대화평의회로 개편했습니다. 종교간대화평의회는 보편교회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과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대하고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고 있습니다.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이 해마다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의 축제일에 경축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아시시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을 열었고, 아시시 25주년을 맞아 지난해 10월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역시 아시시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기도 모임을 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교회일치과 종교간 대화 한편 한국 천주교회의 일치 노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일치 교령 「일치의 재건」(1964년 11월 21)을 반포한 이듬해인 1965년 7월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위원회(이하 일치위원회) 설립과 함께 본격화했습니다. 1968년 1월 일치 기도 주간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처음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합동 기도회를 개최하고, 각 교파 대표자 간담회도 마련합니다. 이후 합동 기도회, 순회 기도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일치 노력은 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민주화, 통일, 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협력하는 형태로 추진돼 왔습니다. 주교회의 일치위원회는 1990년대부터는 그리스도교 일치 분야만이 아니라 종교간 대화와 협력 분야까지 담당하면서 이름도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협력은 오늘날 일치 기도 주간 합동 기도회뿐 아니라 신학자 간담회와 워크숍, 신학생 만남, 종교 상호 방문, 여성 수도자 모임(삼소회)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이나 종교간 대화와 협력 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과 일치와 협력, 타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공의회 문헌들을 살펴볼 때에 더욱 자세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02.14
은평의마을 발자취1981년 은평의마을 초창기 시절 공동우물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부랑인들."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은'혜롭고 '평'화롭다는 뜻의 은평의마을이 반세기 동안 묵묵히 지켜온 성경 구절이다. 남성 부랑인의 보금자리인 은평의마을 역사는 1961년 6월 갱생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서울시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삶을 연명하는 부랑인들을 위해 시립갱생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질병으로 고통받고 자활능력이 떨어지는 부랑인들을 집단으로 수용만 했을 뿐 치료와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서울시는 마리아수녀회에 운영을 위탁했고, 마리아수녀회를 설립한 소 알로이시오 슈왈츠(1930~1992) 몬시뇰이 1981년 시설장으로 부임해 갱생원을 꾸려나갔다. 소 몬시뇰은 같은 해, 갱생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남자 수도회 '그리스도수도회'를 설립했고, 이후 수도회 수사들이 부랑인들을 돌봤다. 지상 5층 규모 현대식 생활관을 완공한 데 이어 1995년에는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동을 건립했다. 1996년 3대 시설장 김규한 신부가 취임한 후 시설명을 은평의마을로 바꿨다.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을 걷어내고, 성모동산과 작은 동물원, 기차 카페를 만들어 열린 공간으로 꾸몄다. 이후 전문자활교육센터와 중증 장애인을 위한 생활시설, 중증환자 케어 전담실 등을 갖추면서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마리아수녀회는 해외지원이 줄어듦에 따라 운영권을 포기했고, 서울시는 올해 초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운영을 위탁했다. 현재 은평의마을에는 입소자 1004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직원 118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백영민2011.06.07

대구대교구 100주년 경축행사 이모저모 100년 믿음으로 생명·사랑 나눔 신앙 대축제 7일부터 8일간 대구시 중구 남산동 교구청 일대에서 열린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경축대회는 백년의 믿음을 발판 삼아 생명과 사랑을 나누는 신앙 대축제였다. 교구청에는 교구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뜨거운 신앙의 열기가 이어졌다. 경축대회는 15일 100주년 기념 감사미사를 봉헌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교구민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나눔과 섬김의 길을 걸어온 신앙 선조들과 해외교회 은인들을 기억하며, 새 시대 새 복음화의 주역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다짐했다.교구민 3만여 명, 100년 은총과 사랑에 감사생명나눔·청년대회·청소년축제 등 다채새 시대 새 복음화 주역으로서 빛과 소금 다짐 15일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감사미사가 거행된 대구시민운동장. 대구 경북지역 신자 3만 명이 운집해 성황을 이뤘다. 서시선 명예기자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 교구에 베풀어주신 당신 사랑에 감사드리나이다." 15일 25℃가 웃도는 대구시민운동장. 관중석을 가득 메운 교구민 3만여 명의 교구 100주년을 위한 기도문이 울려 퍼졌다. 지휘자 곽민제 신부의 손가락이 올라가자, 수도자 및 평신도로 구성된 연합성가대의 시작 성가가 웅장하게 흘러나왔다. 한국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500여 명이 가톨릭스카우트 대구지구연합회 대원 290여 명의 예도를 받으며 입장했다. 제단 위에는 교구 수호성인인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성화와 성 이윤일 요한의 초상화가 걸렸다. 교구민들은 영성 운동과 생명사랑나눔 운동의 결실을 봉헌하면서 420명의 사제와 156개 본당, 45만여 명의 교구 공동체로 성장하기까지 베풀어주신 하느님 은혜에 감사 기도를 바쳤다. 미사 후 열린 축하식에서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우리 주교님들이 뙤약볕에서 노랑노랑하게 잘 구워져 하느님께서 잘 보아주리라 생각한다"고 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 주교는 "더 말씀을 드리면 고문이 될 것 같다"며 준비해온 축사를 접고, "하느님이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길 축원한다"고 짧은 축하인사를 건넸다. ○…감사미사에 앞서 대구가톨릭대 대신학원 운동장과 성김대건기념관에서 열린 생명사랑나눔 대축제(7~8일)는 한 세기 동안 국내외 은인들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해외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자리였다. 각 대리구와 수도회는 장터를 열고, 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는 다양한 체험 행사를 마련했다. 또 다문화 가족을 초대해 필리핀ㆍ중국ㆍ베트남 의상 입어보기 및 음식 만들기 체험, 가족노래자랑 잔치를 벌였다. 11일 대신학원 대강당에선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초청 '파리외방전교회와 대구대교구' 강연회가 열렸다. 8일부터 14일까지 교구청 내 교육원과 꾸르실료 교육관 마당에서는 '은총의 100년, 희망의 100년'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가 이어졌다. 대구대교구 예술가 200여 명이 10개월 동안 준비한 사진, 미술, 도예, 닥종이, 공예, 전례꽃꽂이 등 수준 높은 작품 370점이 선을 보였다. 역대 교구장들을 닥종이 공예로 표현하고 계산주교좌성당을 미니어처로 제작하는 등 교구 초창기 풍경을 예술로 승화시켜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제8대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한 가톨릭문인회원 45명은 신앙시를 발표했다. ○…"어떤 피조물도 우리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어~ 예~" 14일 성김대건기념관에는 청소년 3000여 명의 환호가 끊이질 않았다. 조환길 대주교와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다. 노진희(엘리사벳)양과 이승환(베드로)군이 독서를 랩으로 열창하자, 청소년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뜨거운 함성을 쏟아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수녀들은 열띤 연극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전재현 청소년담당 신부는 강론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친구들을 끊임없이 '너 어디 있느냐?'고 부르신다"며 "하느님 부르심에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소년미사에 함께한 볼리비아 뉴플로 데 챠베스 감목대리구 보니파시오 레이만 주교는 "여러분의 신앙은 순교자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그 신앙을 잃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가길 바란다"며 "겁내지 말고, 하느님께 '예'라고 답하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생활성가 경연대회 'JAM (Jesus & Music) 페스티벌'에서 밴드 경연을 벌인 청소년들은 미사 후 진행된 평화방송 라디오 '신신우신' 공개방송에서 뜨거운 열기를 이어갔다. 공개방송 무대에는 대구대교구 사제밴드 '기쁨과 희망', 가수 달마시안, 간미연, JK 김동욱이 올라와 100주년 축하 무대를 달궜다. 10일에는 청년대회가 열렸다. 청년 1600여 명은 교구 시설을 비롯한 관덕정ㆍ계산주교좌성당 등 18곳을 돌며 교구 100년 흔적을 되짚는 진지한 시간을 가졌다. 청년들은 18개 지정된 장소를 돈 후 교구청에 모여 폐막미사를 봉헌하고 미니콘서트를 통해 친교 시간을 가졌다. ○…경축대회 기간에 시끌벅적한 축제 열기를 뒤로 하고, 말씀과 기도의 향기에 푹 빠진 이들도 있었다. 많은 신자들은 역대 교구장들이 묻힌 교구 성직자 묘역에서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오순화(베르나데트, 61, 지산본당)씨는 "어려운 상황에서 교구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역대 교구장님들의 원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신앙 선조들과 세상을 떠난 사목자들을 생각하면 신앙생활을 너무 편안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14일 교구청 교육원 대강당에서는 성서사도직위원회가 마련한 성경암송발표대회가 열렸다. 교구 100주년을 경축하며, 성경을 통한 '말씀의 생활화'를 이루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말 예선을 통과한 40명은 주어진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경합을 벌였다. 대상을 받은 한예림(보나, 중1)양은 "잘 안 외워져서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성경 말씀을 이해하면서 외운 게 도움이 됐다"며 해맑게 웃었다. ○…경축대회 기간에 자리를 빛낸 특별한 손님들이 있었다. 교구가 성장하기까지 인적ㆍ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자매교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대교구와 대만 대중교구, 협력교구인 볼리비아 산타크루스대교구ㆍ일본 나가사키대교구ㆍ홍콩교구ㆍ필리핀 파라나키교구의 교구장 주교 및 사제, 관계자 등 50여 명이 그들이다. 경축대회 일정을 함께하며 성지를 순례한 이들은 "교구가 이렇게 성장해온 것에 무척 놀랐다"면서 "기쁨이 넘치고 생동감있는 신앙이 인상적이다"고 입을 모았다.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조르주 콜롱브 신부는 "젊고 생기가 넘치는 신자들 모습을 보는 게 기쁘고 즐거웠다"며 "앞으로 100년도 활력이 넘치는 교회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그는 "예전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을 통해 한국 소식을 알았지만, 이제는 한국외방선교회가 파견한 사제들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다"며 "우리 관계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지금도 기도와 일치 안에서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볼리비아 산타크루스대교구 브라울리오 가르시아 보좌주교는 "신앙에는 국경이 없고, 대구대교구민의 기쁨이 곧 우리의 기쁨"이라며 "볼리비아교회를 위해 사제와 수도자들을 파견하고 있는 교구와 예수성심시녀회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대구대교구 제3대 교구장을 지낸 하야사카 대주교 가족을 비롯한 고 서정덕ㆍ최덕홍ㆍ최영수 대주교 유족들도 경축대회에 함께해 100주년을 축하했다. ○…경축대회에 참가한 전영귀(클라라, 매천본당)씨는 "가난한 나라에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서 고생하셨을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한민자(모니카, 서제본당)씨는 "신앙 선조들의 희생과 나눔을 기반으로 우뚝 선 우리 교구가 자랑스럽다"며 "신앙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 200주년에는 이 땅에 더 큰 복음화 결실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구 사무처장 하성호 신부는 "이웃과 나누는 마음이 축제가 됐다"며 "나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하 신부는 이어 "젊은이들의 신앙 축제를 통해 살아있는 활기를 체험했고, 전시회와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있다는 큰 기쁨과 은총을 느꼈다"면서 "지역민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한마당 대축제였다"고 평가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서시선 명예기자 sisun@ [[그림11]] 이지혜2011.05.17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26)병자성사](//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8038_1.0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26)병자성사영육간 치유 은총 얻고 주님 만날 준비병자성사는 치유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성사다. 그림은 '라자로를 살리심'(1611년, 그리스)▶병자성사의 개념 병자성사는 성사의 은총으로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혼과 육신을 치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성사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일생에 단 한 번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고 해 종부성사(終傅聖事)라고 불렀는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본래의 의미를 복원,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 때에는 횟수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다고 해 현재는 병자성사(病者聖事)라 부른다. 사실상 예수님과 초대교회 공동체는 죽기 직전 병자만을 돌본 것이 아니라 앓는 모든 이들을 돌보고자 했다. 교회 공동체는 병자성사를 통해 자애로우신 주님께서 병자의 고통을 덜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며 치유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병자성사의 기원 성경에 병자성사와 관련된 말씀이 많지 않지만, 그 기원과 제정에 연결되는 말씀과 행적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다. 구약에서는 '기름 부음', 곧 '도유'가 사제, 임금, 예언자와 같이 사람을 성별하거나, 성막(성전)에 있는 모든 기물을 성별하는 예식에 사용됐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도유 예식'이 병자와 관련해 사용된 경우가 있다. 레위기를 보면 악성 피부병에 걸린 환자의 몸과 머리에 기름을 발라 정결하게 하고 속죄 예식을 거행한 기록이 나타난다(레위 14,1-32). 신약에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행적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센병 환자ㆍ중풍 병자ㆍ하혈 병자ㆍ눈 멀고 귀 먹고 말 더듬는 환자ㆍ수종 병자ㆍ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고, 라자로와 같이 죽은 이들도 다시 살리셨다. 예수님은 치유 기적을 베푸시면서 아픈 몸과 함께 병든 마음과 영혼까지 치유해 주셨다. 예수님께 파견을 받은 열두 제자들 역시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3). 야고보서간은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야고 5,14-16)하고 언급하면서 초대교회 공동체가 병자를 어떻게 돌보았는지 전해 준다. ▶병자성사의 효력과 중요성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직접 고쳐 주셨고, 제자들 역시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야고보서는 앓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라고 권고했다. 이에 교회는 병자성사를 거행하며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놓인 사람과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전례헌장 73항) 신자들이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고 영적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주님께 치유와 구원의 은총을 간구한다. 병자성사는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자는 병자성사로써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 힘과 용기를 청하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용서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병자성사를 통해 육체적ㆍ영적 치유의 은총을 받고, 회개를 통해 하느님과의 만남과 구원을 준비할 수 있는 은혜를 얻기 때문이다. 병자성사를 받으려면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는데, 고해성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해성사 없이 병자성사를 거행한다. 이는 만약 의식이 있었더라면 본인이 직접 성사를 신청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병자성사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병자가 의식이 있을 때 미리 받는 것이 좋다. ▶병자성사 예식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종부성사에서 병자성사로 전환하면서 고해성사, 노자 성체, 병자 도유로 이어지는 예식에 맞게 병자 도유 예식 기도문을 병자들이 처한 상황에 부응하는 기도문으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교황청 예부성성(현 경신성사성)은 1972년 「병자성사 예식서」(Sacram Unctionem infirmorum)를 반포했다. 「병자성사 예식서」는 병자 방문과 병자 영성체, 병자성사 예식, 노자 성체, 죽을 위험이 임박한 환자에게 성사를 주는 예식, 병자 견진성사, 임종을 돕는 예식, 병자를 위한 예식에 사용되는 독서와 기도문으로 구성돼 있다. 교회는 병자를 돌보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병자들을 방문해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신앙인의 본분이라고 강조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퇴사자22011.12.06
![[아! 어쩌나?] (130) 소심한 신앙인](//cpbc.co.kr/CMS/newspaper/2011/12/rc/398036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30) 소심한 신앙인Q. 소심한 신앙인 제 남편은 본래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난 후 더 소심해졌습니다. 이것도 죄고, 저것도 죄가 된다면서 가리는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무엇을 하자고 해도 고해성사를 보기 싫다고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도 점점 떨어져 나가고 본인도 외로워합니다. 열심한 신앙인이 되려면 정말 남편처럼 소심하게 살아야 하나요? 저는 남편과는 달리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데, 그런 저를 보고 남편은 세속적이라고 핀잔을 주네요. 제가 믿음이 약한 것인지 남편이 답답한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A. 많은 분이 신앙에 입문한 후 마음이 소심해지는 것 같다고 고민을 하십니다. 고해성사를 안 보려고 이것저것 피하다 보니 대인관계가 소홀해져 간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예 죄지을 것 다 짓고, 나이들어 힘 없을 때 세례받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본래 신앙생활은 신앙인을 대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 것, 제자들을 파견하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제자들을 대범한 사람들로 만드시려는 의도였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제자들은 아주 심한 소심증에 걸려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주님께 대한 심한 죄책감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평안'이었습니다. 주눅 들지 말고 소심하지 말고 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격려로 소심증을 치유한 제자들은 팔레스티나 지역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목숨을 걸고 선교에 나설 정도로 대범한 사도들이 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대범한 사도들이 만든 교회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면 길을 잘못들은 것이니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소심한 마음이 든다면 신앙과는 별개로 소심증일 가능성이 있으니, 소심증에 대한 심리치료적 조언을 좀 해드릴까 합니다. 소심증의 첫 번째 특징은 실수한 기억, 실패한 기억만 골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 하더라도 잘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과거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산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미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그런데 소심증인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잊는데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한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소심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는 말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실패한 기억이 많으면 중추신경이 마이너스(-) 방향으로 설정되고 마음 안이 패배의식으로 가득하기에 그런 말들이 별로 약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마이너스 모드를 플러스(+) 모드로 바꾸기 위해 과거 기억 중에서 괜찮은 기억들을 상상하게 하고, 그때 감동을 다시 맛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것을 '암시 효과'라고 하는데 마이너스 암시가 패인이 되듯, 플러스 암시는 사람을 사기충천하게 해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받은 표창장이나 공로패들은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필요한 심리치료 도구인 셈입니다. 소심한 분들의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무슨 일이든 잘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잘하려는 마음은 불안감과 불안한 기대감을 동반하고, 그것이 심리적 균형을 잃게 하기에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평신도주일에 강론하는 신자 중에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더듬거리거나 틀리게 하는 것은 실수를 안 하려는 마음, 잘하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이분들은 바오로 사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주 담대한 분, 스케일이 큰 분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분이 자신이 아주 약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 1-5절에는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하는 고백이 기록돼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고백은 역설적 치료법입니다. 약한 나를 고백해야 긴장감이 풀리고 자신을 스스로 옥죄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한 나를 하느님 앞에서 고백한다는 것은 운동선수들이 힘을 빼려고 노력하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소심한 분들, 하느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그런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하느님 앞에서 드러내는 기도로 마음을 치유하시길 바랍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힘2011.12.06
![[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2) 성당의 공간: 장소와 빛](//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2465_1.0_titleImage_1.jpg)
[교회건축을 말한다] 제1화 (2) 성당의 공간: 장소와 빛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리니메의 산 토마소 성당.하늘에 닿아 있고 천사가 오르내리는 곳 신앙 선조가 순교의 피를 흘린 해미읍성의 처형 장소는 그 근처 어떤 땅과도 같을 수 없다. 그곳은 거룩하게 구별된 땅이다. 하느님과 관련된 거룩한 땅,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의 배경이 된 장소를 성지라 부르듯 거룩한 집, 성당은 성별(聖別)된 장소에만 세워진다. 의식과 제구라는 대상, 사제라는 사람, 주일이라는 시간을 따로 구분하듯 성당은 거룩하게 선별된 장소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장소는 벽으로 둘러싸일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견고한 벽은 세속과 거룩한 것을 격리시켜준다. 고대 그리스 신전은 도시와 떨어진 언덕 위에 서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성당은 구별해 지어진 하느님의 장소이면서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세상 안에 세워졌다.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당의 벽은 다른 세속적 건물의 벽과 다르다. 성당의 벽은 세속과 구별된 거룩한 장소를 만들어낸다. 그 벽은 바깥으로는 인간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안으로는 빛을 가득 채워 하느님 나라를 표현해야 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을 제일 처음 세운 사람은 야곱이었다. 야곱은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부어 '이곳'을 거룩한 장소로 주위와 격리시켰다. "야곱은…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야곱은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창세 28,10-22). 여기에서 '이곳'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곳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곳이고, 그래서 두려운 곳이다. 이곳은 하늘에 닿아 있고 층계로 하느님의 천사가 오르내리는 곳이다. 수직으로 세운 돌은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곧 거룩한 세계로 이르는 길, 상승과 초월을 나타냈다. 이처럼 야곱이 꿈꾼 계단은 이 땅과 하늘을 결합하는 문이자, 세계축(axis mundi)이었다. 빛은 벽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낸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 하느님께서 만드신 빛을 통해 생명의 원천이신 '빛'을 본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빛은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을 이어주는 매개자"라고 했다. 성당 안의 모든 구조는 이러한 빛을 위해 존재한다. 고딕 건축 공간이 모든 건축물 중에서 특별히 거룩한 공간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높이와 튼튼한 열주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리미네 산 토마소 성당(San Tomaso, 12세기)은 원통형 벽면으로 장소를 끊어내고 그 위에 기둥을 뒀다. 그 위에 아치를 튼 다음 돔을 얹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벽과 아치와 기둥, 그리고 돔이라는 당시 몇 안 되는 구조 방식으로 하늘을 향하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리고 저 위에서는 빛이 비춰 들어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워준다. 아래 원형 벽은 사람을 에워싸고, 꼭대기 돔은 하느님이 만드신 하늘이 된다. 이렇게 장소와 빛이 성당을 소박하게 완성해냈다. 실바칸느 시토회 성당을 보라. 성당 내부 공간을 통합하는 것은 빛이다. 아니, 빛이 성당 공간 전체가 된다. 성당 저 높은 창에서 또는 한가운데 돔에서 조용히 쏟아 내리는 빛이 천장, 벽, 기둥 그리고 오목 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세부에 부딪히고 꺾이면서 부드럽게 빛나는 공기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돌의 육중함은 사라지고 부드러운 천처럼 느끼게 하는 빛, 그 빛은 돌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비춰준다. 이 성당의 벽면은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5.9)는 성경 말씀을 물질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성당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는 벽으로 구분된 거룩한 장소 안에 울려 퍼진다. 사제는 제물을 준비할 때 성반과 성작을 들어 올리며 저 높은 돔을 향해 기도드린다. 그리고 사제는 피조물인 인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들어 '저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러면 돔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빛이 우리 모두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해서 높은 돔과 거기서 내리비추는 빛은 야곱이 보았던 '하늘에 닿아 있는 층계'이며,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곳'이 된다. 성당 내부의 높고도 빈 공간과 빛은 바로 야곱이 세운 기념 기둥을 형상화한 것이다. 건축물은 이렇게 우리가 드리는 미사 전례에 동참한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임을 새겨준다. 이것이 성당이다. 성당 안을 비추는 빛은 한 부분만 밝게 비춰서는 안 된다. 그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이어야 한다. 그 안에서 기도드리는 우리 '모두'를 감싸줘야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약간 어둡게 보여야 한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조금만 앉아 있으면 그 안이 밝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단지 밝기나 조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형광등을 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벽과 지붕을 크게 뚫어 밝기만 한 성당이 아니다. 검소하고 작은 성당이라도 아침에 비치는 투명한 빛이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 위에 떨어지고, 저녁노을의 금색 빛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도하고 있는 어떤 이의 어깨를 물들인다. 성당은 이렇게 장소와 빛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다.김은아2012.01.17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 지상중계③ '천주교와 유교'](//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206_1.0_titleImage_1.jpg)
[특집]한국교회사연구소 2011 하반기 공개대학 지상중계③ '천주교와 유교'유교의 신관, 구약 전통과 상응... 상제는 내재성과 초월성 포괄하는 최상의 존재로 이해... 계시 종교인 그리스도교와 창조개념이나 구원관 큰 차이 이석균(서울대교구 돈암동본당 보좌) 신부 한민족 의식에 가장 깊고 넓게 내재돼 있는 가치체계는 유교일 것이다. 천주교 역시 신앙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조선 후기 유학자들에 의한 해석학적 연구가 먼저 이뤄졌다. 이는 천주교 전파가 단순한 외래문화의 이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민족문화와의 통교 과정을 거쳐 수용됐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791년 조상의 신주단지를 파기하는 진산사건 이후 천주교와 유교의 대립적 흐름이 있기까지 둘 사이엔 대체로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유학사상이라는 기반에서 천주교를 수용하는 보유론(補儒論)이고, 또 하나는 유교의 공격에 천주교 신앙을 강력히 옹호하는 호교론이다. 보유론이 16~17세기 예수회원들, 특히 마테오 리치를 통해 시도된 선교방식이라면, 정약종의 「주교요지」로 대변되는 호교론은 박해에 대항해 천주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입장은 현대사회에서 유교와 천주교가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선 신관부터 짚어보자. 유교에서 천(天)을 내재성과 초월성을 포괄하는 최상의 존재로 이해했다는 것은 하느님을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존재로 이해한 구약 전통과 상응한다. 이러한 상응은 고대 상제-천이라는 개념 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원시유교에서 「시경」이나 「서경」에 나타나는 상제-천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창조적 원리를 지닌 존재이며, 의지와 뜻을 가진 인격적 존재이자 인간에게 상벌을 내리고 심판하는 주재적 하늘이다. 구약의 하느님 역시 명백히 우주적 창조주이자 인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인격적이고 주재적인 야훼 하느님이다. 하지만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 개념은 그 전제부터 상이점을 안고 있다. 유교에서 창조는 '무(無)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만물의 질료적 질서가 전제된 순환으로서의 창조와 사멸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계시'된 존재이고, 유교의 신은 '인정'된 존재라는 차원에서 대별된다. 계시의 결정적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다. 유교의 핵심에는 하늘과 인간의 하나됨에 대한 가르침이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자신을 유일한 방법으로 계시한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 이어 인간관을 살펴보자. 유교 사상과 이념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시작해 인간 문제로 끝맺는다. 그러기에 유교의 이상적 인간관은 주체적이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간 이해를 통해 인간이 하늘에서 본래적으로 부여받은 천명을 도덕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반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자기 초월이란 본질적으로 하느님 뜻에 일치해 거룩해지는 것, 곧 성화(聖化)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거룩함'이란 본래 하느님에게 속하는 완전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인간 완성은 하느님의 거룩한 완전성을 본받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이같은 인간 완성의 길에서 핵심적 요체가 되는 덕은 유교에서는 '인(仁)'이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랑'이다. 유교의 인과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인간 완성의 길에서 제시되는 덕이라는 면에서 상응한다. 그럼에도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자기 완성은 차이가 있다. 유교의 자기 완성은 내재적 자기 수양을 통해 천인합일을 이루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자기 완성은 인간 자신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화(Sanctification)의 차원을 고려한다. 윤리-구원관 또한 차이점과 연계점이 있다. 유교의 인간은 '원죄'와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상술되기보다는 '본성적 선함'과 '자율적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된다. 유교는 성경에서처럼 인간의 피조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인간이 본래적으로 타고난 선을 '인의'를 통해 확충해 자율적 인격 완성을 지향한다. 이런 유교를 '수기치인(修己治人)' 또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학문이라 부른다. 유교의 언어로 말하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유교가 지향하는 최고의 이상적 인간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셈이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10.11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상>](//cpbc.co.kr/CMS/newspaper/2011/05/rc/377049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15)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성화상 공경' 논쟁 불식시키려 시나이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에 소장돼 있는 6세기 작품 성 베드로 성화상. ?배경 787년에 개최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이른바 '성화상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소집된 공의회였습니다. '성화상'이란 하느님이나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과 천사 등 거룩한 이들의 모습을 그림이나 판화, 모자이크, 조각 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말합니다. 박해 시기에 신자들은 물고기, 양, 새, 닻, 배, 어부, 목자 같은 다양한 상징들로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로마에 가면 옛 로마시대 지하 공동묘지(카타콤베)에서 이런 것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얻고 난 후에도 이런 상징들은 그리스도교의 신비와 신앙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지요. 그러나 세례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런 상징들만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비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좀 더 분명한 표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 모습, 성모 마리아와 사도들 모습, 성인들 모습을 담은 성화상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 벽에 걸리거나 그려진 성화상들은 장식물로서뿐 아니라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로도 활용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5세기에 와서 성화상은 일반 대중 사이에서 공경 대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신자들은 성화상에 입을 맞추고, 향을 드리는 등 공경의 예를 표시했으며, 등불이나 촛불을 그 앞에 켜놓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등 성화상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확산됩니다. 이런 성화상 공경은 서방 교회보다는 동방 교회에서 더 유행했는데, 수도자들이 아름다운 성화상을 만들어 활용하면서 수도원은 성화상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서방에서는 성화상보다는 성인들 유물을 공경하는 관습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성화상 공경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주된 반대 이유는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구약성경의 금령(탈출 20,4; 레위 26,1)에 위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방에서는 성화상 공경이 대중신심으로 확산되면서 동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금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네스토리우스주의 이설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인간으로 그려진다면, 신성보다도 인성만을 강조한 네스토리우스주의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게다가 7세기 중반 이래로 그리스도교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슬람 역시 구약성경을 근거로 형상을 만드는 것을 철저히 금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면서 특히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지역 주교들이 성화상 금지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기에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이 비잔틴(동로마제국) 황제 레오 3세(재위 717~741)였습니다. 무슬림에게 빼앗겼던 수도를 되찾고 제국에서 이슬람 세력을 격퇴한 뛰어난 황제였던 그는 성화상 공경을 우상숭배 혹은 미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개혁하고 제국을 강화하는 일환으로 726년쯤에 성화상 공경을 금하는 칙서를 발표하고는 콘스탄티노폴리스 황궁문에 걸려 있던 예수 그리스도 초상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군중이 항의하며 폭동을 일으키자 황제는 강제로 진압해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체포해 징벌을 가했습니다. 당시 교황은 그레고리오 2세(재위 713~731)였습니다. 황제는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성화상 공경을 금하는 자신의 새 정책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교황은 승인해 주지 않으면 로마로 쳐들어가 체포하겠다는 황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구약의 우상숭배와 성화상 공경이 다르다며 그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레오 3세 황제는 731년 1월 17일 원로원을 비롯해 국가 주요 공직자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게르마누스를 불러다 놓고 성화상을 소유하거나 성화상에 공경을 표하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자를 국가 반역자로 여긴다는 칙령을 총대주교 이름으로 발표할 것을 지시합니다. 성화상 공경이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점을 이미 밝힌 바 있는 총대주교가 이를 거부하자 황제는 총대주교를 내쫓고 측근을 후임에 앉혀 칙령을 발표토록 합니다. 이로써 황제는 교회 이름으로 성화상 공경 금지를 정당화한 것이지요. 이에 따라 성화상 파괴 행위가 무섭게 자행되고,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탄압이 이어집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2세 후임인 교황 그레오리오 3세(재위 731~741)는 황제의 이런 성화상 금지 조치에 맞서 로마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해 성화상 파괴자들을 파문하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교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화상 파괴 운동은 계속되고 레오 3세 황제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재위 741~775) 때에 이르러 더 한층 격화됩니다. 그는 75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 보스포로스 해협 해안 히에레이아에 있는 황실 궁전에서 주교 338명이 참석하는 교회회의를 엽니다. 로마 주교인 교황은 초청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또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는 공석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들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공식성 혹은 대표성이 없는 회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는 성화상 공경을 우상숭배로 규정합니다. 그리고는 대중들의 성화상 신심에 깊은 관련이 있었던 수도자들을 우선적으로 박해하고 수도원들을 폐쇄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거세게 계속되던 성화상 파괴 운동은 콘스탄티누스 5세의 아들 레오 4세(재위 775~780)가 비잔틴 황제가 되면서 주춤해집니다. 레오 4세의 아내 이레네 황후가 신심 깊은 성화상 공경자여서 그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레오 4세가 죽고 10살 된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재위 780~797)가 제위에 오르자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펼친 황후 이레네는 성화상 파괴 논쟁을 종식시키고 성화상 공경의 옛 전통을 확인하는 세계공의회를 열기로 합니다. 황후는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와 함께 로마 교황 하드리아노 1세(재위 772~795)에게 이를 알리고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지요. 교황은 여기에 동의하고 사절들을 파견하겠다고 답변합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바오로 4세는 원래 성화상 파괴주의자였지만 갑자기 총대주교직을 사임하는 바람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가 공석이 돼 버렸습니다. 이레네 황후의 비서로 평신도였던 타라시우스가 주교로 축성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됩니다. 784년 말쯤이었습니다. 타라시우스 총대주교는 마침내 786년 8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사도들의 성당에서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그러나 성화상 파괴를 지지하던 군인들이 난입해 공의회를 해산시켜 버립니다. 이레네 황후의 개입으로 사태가 수습되고 마침내 이듬해인 787년 9월 24일 니케아에서 공의회가 열립니다. 이 공의회가 일곱 번째 세계공의회인 제2차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1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