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냉담교우를 모셔오라]-(5) 냉담교우 모시기 0단계 : 준비하라](//cpbc.co.kr/CMS/newspaper/2010/07/rc/344882_1.0_titleImage_1.jpg)
[공동기획-냉담교우를 모셔오라]-(5) 냉담교우 모시기 0단계 : 준비하라선교 불씨 잘 타오르게 말씀ㆍ영성ㆍ인격의 땔감부터공동기획 평화방송 평화신문 / 미래사목연구소"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지금까지 한국교회 냉담교우 문제의 현황과 신자들이 냉담에 빠지는 주요 원인을 짚어봤다. 이제는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실전훈련을 쌓아 냉담교우 모시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그러나 선교를 하거나 냉담교우를 모셔오는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여기는 신자들이 많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은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냉담교우에게 성당에 다시 나가자고 권유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법도 하다. 본당 차원에서 냉담교우 모시기 운동을 펼치려 해도 정작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호부터는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의 '냉담교우 모시기 5단계 매뉴얼'을 토대로 냉담교우 모시기의 실제적 방법론을 살펴보고, 이를 본당 차원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모색해 본다.# 개인적 차원의 준비 선교를 잘하는 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거나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선교에 나서기 전에 미리 준비하며 자신을 가다듬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냉담교우 모시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모하게 달려든다면 허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네가 남들에게 불 붙이고자 하는 것은 이미 네 안에 불타고 있어야 한다"는 성 아우구스티노 말처럼 내 안에 선교의 불씨가 피어올라야 다른 이들 마음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다. ▨ 말씀 준비 선교를 잘하는 사람은 달변으로 사람을 낚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지혜로 사람을 얻는 것이다. 이들은 하느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느님을 멀리하고 있는 이들 마음을 움직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한다. 냉담교우를 회두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고 멋진 말로 상대방을 감화시키려다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 어리석게 보이더라도 하느님 말씀으로 진심을 담아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라는 말씀처럼 하느님 말씀으로 갈고 닦는 영적 무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평소 열심히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하고, 자주 묵상하는 습관을 들여 어디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핵심이 되는 구절은 완전히 외워두는 것이 좋다. 요컨대, 성경말씀을 간직하고 있으면 저절로 선교하려는 사명감이 생기고,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적절한 성경말씀을 가지고 선교할 수 있다.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 세상살이에 지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해줌으로써 마치 구원의 생명줄을 던져 이웃을 건져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냉담교우 회두에 나서려면 성경공부와 기도를 통한 영적 무장이 필요하다. 인천교구 선교왕으로 이름난 천순영(아녜스)씨가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하기에 앞서 성경을 읽고 묵주기도를 하며 하느님 도움을 청하고 있다. ▨ 영성 준비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선교는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 힘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냉담교우 회두에 나서기 전에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충만해져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냉담교우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영성 준비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공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금식기도로 준비하셨다(마태 4,1-11 참조). 마찬가지로 냉담교우를 모시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대상자를 위해 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선교 의욕을 충전할 수 있고, 복음 전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된다. 또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순응케 하는 힘이 있다. 아울러 대상자를 위해 자주 미사봉헌과 성체조배를 함으로써 내 자신의 사명감을 확인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 인격 준비 냉담교우를 찾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방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기는 인격적ㆍ신앙적 만남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긍정적 언어는 냉담교우를 만나기 위한 인격 준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복음을 전하는 이는 항상 '기쁜 소식'을 전하는 언어습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기쁜 소식이란 사람의 기를 살리고 신뢰를 형성하는 말을 의미한다. 곧 긍정적인 언어를 말한다. 냉담교우를 만날 때 상대방을 칭찬하고 축복해 주는 말이나 희망과 감사의 메시지를 담아 대화하면 마음의 문을 부드럽게 열 수 있다. 유머 역시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다. 긍정적 언어 습관을 기르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명심한다. ▶자신의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 언어로 발설된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은 먼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축복의 말을 습관화해야 한다. 즉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을 하고, 긍정적 유머를 던지는 것이다. ▶긍정적 제스처를 습관화한다. 아울러 적극적 태도와 환하게 미소 짓는 밝은 표정은 '하느님 은총 안에 기쁘고 행복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며 희망의 메시지다. 냉담교우가 방문자를 보고 '저 분은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사는구나. 나도 저 사람을 통해 은총을 나눠 받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돼야 한다. 이를테면 인천교구 선교대상을 받은 천순영(아녜스, 52, 주안8동본당)씨는 이웃에 사는 냉담교우가 "아주머니는 뭐가 그리 좋아서 항상 싱글벙글해요?"라고 물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느님을 만나면 항상 즐거워요"라며 성당에 함께 나가자고 권면했다. 다음호에서는 본당 차원에서 냉담교우 모시기 운동을 체계적, 효과적으로 전개하려 할 때 미리 점검하고 준비해야 할 사항을 짚어본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냉담교우 모시기 실전연습'냉담교우 모시기 0단계(준비)' 실전연습에 들어가보자. ▶말씀준비 성경 말씀 중에 암송할 수 있는 구절을 하나 크게 외쳐 본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각자 자신이 암송할 수 있는 성경 말씀을 준비한다. 다음에 제시한 성경말씀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외쳐도 된다. △사도 4,20 △1코린 2,4-5 △창세 1,28 △잠언 14,12 △요한 3,16 △이사 55,1 △1코린 9,23 등) ▶영성준비 평소 자주 하는 짧은 기도(화살기도)나 자신이 좋아하는 기도문을 소리 내어 외쳐 본다. 예시 : '오소서, 성령님', '성령이여 임하소서', '하느님 제 입시울을 열어주소서', '하느님 제게 용기를 주소서',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인격준비 나의 인격 요소 중에 장점은 무엇인지 확인하게 하고 자신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씩 짝을 지어 마주보고 한 사람이 먼저 상대방을 칭찬한다. 예를 들어 "자매님은 얼굴도 예쁘시고 옷차림도 잘 어울리세요"라며 칭찬하고 역할을 바꿔 다시 해본다. 밝은 미소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옆 사람과 짝을 지어 마주보거나, 혼자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밝은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한다. cpbc2010.07.27
![[출판]광주가톨릭대 교수 김혜윤 수녀,「구약성경 통권노트」](//cpbc.co.kr/CMS/newspaper/2009/08/rc/306667_1.0_titleImage_1.jpg)
[출판]광주가톨릭대 교수 김혜윤 수녀,「구약성경 통권노트」구약 속으로 여행 안내서 성경 통독을 하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성경의 4분의 3은 구약성경에 속해 있다. 간략히 보면 구약은 오경과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나눠지지만, 그 방대한 분량과 그 안에 감춰진 함의를 속속들이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구약을 노트 정리하듯 짧은 지면에 요약하겠다는 기획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어찌 생각하면 무모한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성서학자인 김혜윤(베아트릭스,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수녀는 오랫동안 그 꿈을 꿨다. 성경을 통한 하느님과의 소통, 교회와의 소통, 주변과의 소통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구약 전체를 개관하는 김 수녀의 「구약성경 통권노트」가 최근 발간됐다. 꼭 알아 둬야 할 핵심만을 모아 쉽게 정리한 구약 성경 안내서다. 이 책은 구약 성경 46권, 그 각 권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전하고 구약의 구체적 윤곽을 간결하고도 심도 있게 파악하도록 이끌어준다. 또 구약 각 권이 끝날 때마다 말씀과 삶을 이어 주는 묵상글 형식의 맺음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여운과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지혜서가 제시하는, 한 사람의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 뜻을 찾고 따르는 하루'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단정하고 아름다우면, 인생 전체도 감동으로 가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 속에서도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다. 단,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기적은 오직 하느님이 함께 하실 때만 가능하다. 울프가 이 지혜를 알았다면,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무엇보다 이 책의 특별함은 구약 각 권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구약 전체 맥을 한눈에 아우를 수 있도록 짚어준다는 점이다. 딱딱하고 어렵기만 할 것 같은 구약 속으로 누구라도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도와주며, 성경과 우리 삶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면서 진리의 길을 찾도록 해준다. 1부 오경을 시작으로 2부 역사서, 3부 시서와 지혜서, 4부 예언서, 주해와 참고문헌으로 구성돼 있다.(생활성서사/1만50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9.08.18
![[성경 속 상징]69- 숫자 넷(4)의 상징-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 전체](//cpbc.co.kr/CMS/newspaper/2009/12/rc/318041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69- 숫자 넷(4)의 상징-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 전체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숫자 넷(4)은 한자의 죽을 사(死)와 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동양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는 숫자다. 실제로 우리나라 병원 건물 중에는 3층 다음이 5층인 곳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4층을 표시하는 버튼은 대부분 F로 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4는 완전함을 의미한다. 인도와 중국에서 숫자 4는 땅의 상징이어서 지리학에서도 중요한 요소였다. 보편성을 상징하는 4는 힌두교 사회에서 카스트 계급의 숫자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 체계에서 4는 최초의 입방체, 즉 밑면과 세 변을 가지는 사면체를 이루는 숫자이다.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종교의 힘을 상징하는 사각형은 전 세계 수많은 신성한 건축물의 기초가 됐다.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만들 때 항아리 네 개에 죽은 자의 내장을 담아뒀다. 고대 서구 전통에서는 물, 불, 흙, 공기 등 네 가지 원소가 있었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동ㆍ서ㆍ남ㆍ북에서 알 수 있듯이, 넷은 시간 전체, 공간 전체를 나타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4는 견고함, 포괄성, 조직성, 힘, 지성, 정의, 전능을 상징하는 수라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숫자 4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 전체를 나타낸다.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창세 2,10). 이처럼 성경 안에서 넷(4)이라는 수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전 우주, 전 세계를 표시한다. 또한 하늘의 하느님 옥좌 둘레에는 네 마리 생물 모습이 있어 전 자연, 전 세계의 힘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에제 1,4-14 ; 묵시 4,6). 네 생물 모습은 복음사가 각자의 상징을 이루고 있다. 그 상징은 각 복음서의 시작과 관계가 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묵시 4,7). 주님 발현에서 나타나듯이 숫자 4는 신적 요소를 상징하고 있다.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저마다 넷이었다. 그들의 날개 밑에는 사방으로 사람 손이 보였고, 네 생물이 다 얼굴과 날개가 따로 있었다. 그들의 얼굴 형상은 사람의 얼굴인데, 넷이 저마다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었으며 독수리의 얼굴도 있었다"(에제 1,4-10 참조). 신약성경에서도 4는 깊은 뜻을 지닌다. 복음서가 네 편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기쁜 소식, 곧 구원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 그래서 구원의 완성을 뜻한다. 이스라엘의 12부족은 인간, 사자, 황소, 독수리 등 네 가지 상징으로 분류됐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에서 네 명의 복음사가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상징이 됐다. 마태오 복음의 상징은 인간 얼굴로,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임을 의미한다. 마르코 복음의 상징은 사자이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설교로 시작하기 때문에 광야의 왕이라 할 사자가 상징이 됐다. 루카 복음은 사제 즈카리야가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루카 복음은 번제물의 상징인 황소가 상징이다. 요한 복음의 상징은 독수리이다. 마치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듯이 드높은 하늘의 하느님 곁에까지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네 복음서는 전 세계에 선포되는 복음이며, 구원의 상징이 된다. 조은일2009.12.01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9) 판관기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5326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9) 판관기의 하느님용서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여호수아가 죽고난 뒤 사무엘이 사울을 임금(왕)으로 세우기까지 판관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시기가 판관기다. 이민족과 계속 투쟁하는 시기로, 겉으로 보기엔 전쟁사지만 그 속에는 종교적 갈등이 내재돼 있다. 판관기는 일정한 양식으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진행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다→②하느님께서 이에 분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민족에게 넘기신다→③갖은 고생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④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용서하고 판관을 세워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민족 손에서 구해주신다→⑤하느님께서 세운 판관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평화롭게 다스린다→①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악한 짓을 저지른다→이하 반복. 이렇듯 판관이 바뀔 때마다 ①~⑤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판관기를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잘못을 되풀이하는지 답답하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그들 잘못을 매번 용서해주신다. 판관기는 언제나 용서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보여준다. 판관기에 나온 판관들을 살펴보자. 1. 판관 오트니엘(판관 3,7-11) ①이스라엘 자손들은 주 저희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겨, 주님 눈을 거스르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②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진노하시어, 그들을 아람 나하라임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덟 해 동안 쿠산 리스아타임을 섬겼다. ③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시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그가 곧 칼렙의 아우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다. ④주님 영이 오트니엘에게 내리니, 그는 이스라엘 판관이 돼 싸우러 나갔다. 주님께서 아람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으므로, 그의 세력이 쿠산 리스아타임을 억눌렀다. ⑤그리하여 이 땅은 크나즈의 아들 오트니엘이 죽기까지 마흔 해 동안 평온했다. 2. 판관 에훗(판관 3,12-30) ①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②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열여덟 해 동안 모압 임금 에글론을 섬겼다. ③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셨다. 그가 곧 벤야민 지파 게라의 아들 에훗이다. ④그날 이렇게 모압은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했다 ⑤그 뒤 이 땅은 여든 해 동안 평온했다. 판관에 따라 서술 내용과 분량에 차이가 나지만 판관기는 대체로 이와 같은 양식을 따르고 있다. 판관기에 나오는 판관으로는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 톨라, 야이르, 입타, 입찬, 엘론손, 압돈, 삼손 등이 있다. 많이 들어 본 익숙한 판관들도 있지만 생소한 판관들도 있다. 판관 드보라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여성 판관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보라 판관 시대에는 여성 활약이 두드러졌다. 드보라에겐 바락이라는 장군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적장 시스라를 무찌르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야엘이라는 여인이었다. 성경은 야엘을 이렇게 칭송하고 있다.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 야엘은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 천막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판관 5,24). 판관 기드온은 여루빠알로도 불렸는데 이는 그가 '바알제단을 허물었다'는 뜻이다(판관 6,31-32). 이와 함께 판관기에 나타나지 않은 판관도 있는데 이는 엘리와 사무엘이다. 사무엘기에 등장하는 두 판관은 지금까지 설명했던 판관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전 판관들은 적을 무찌르는 공헌을 세운 무사로서의 판관이었지만 엘리와 사무엘은 예언자, 사제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와 사무엘은 판관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그들 뒤를 이은 아들들이 모두 잘못을 저질러 불행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우리는 판관기에서 3가지를 묵상할 수 있다. 첫째, 똑같은 죄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 모습과 그럼에도 매번 용서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죄를 지은 형제를 7번 용서해주면 되겠냐는 베드로 질문에 77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8,21-22). 용서하시는 하느님 모습은 판관기에 잘 드러나 있다. 둘째, 사무엘 판관 때 생긴 이스라엘 왕정제다. 사무엘 뒤를 이을 아들들이 사무엘의 모범을 따르지 않자 이스라엘 원로들은 사무엘을 찾아가 새로운 왕을 세울 것을 청한다. 사무엘은 왕정제 폐단을 설명하며 이들을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지시했고 이때부터 이스라엘 판관 시대는 막을 내렸다. 셋째, 남성과 여성처럼 어떤 성(性)에도 속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판관기에 나타나는 이방인들 신은 바알과 바알의 아내 아스다롯이 있다. 하지만 하느님은 바알신과 달리 배우자가 없고 여성과 남성으로 구별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같은 성(性)은 하느님께서 창조한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성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8.02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17> '베로이아에서 아테네로'](//cpbc.co.kr/CMS/newspaper/2011/05/rc/377740_1.0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베로이아에서 아테네로'주님 은총 없이는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작가노트 = 철학과 정치, 학문, 예술의 도시 아테네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토론을 했다. 사도는 우상숭배에 젖어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참 하느님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청중들은 흥미롭게 그의 연설을 경청했으나, 예수님의 부활을 얘기하자 조롱하기 시작한다. 연설을 중단하게 되는 쓴 경험을 통해 사도는 주님 은총 없이는 믿음이 뿌리내릴 수 없음을 확인한다. 돌멩이 위에서 솟아나는 풀잎을 통해 주님 은총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그렸다. 밤을 틈타 바오로 사도는 실라스, 티모테오 등 협력자들과 함께 테살로니카를 떠났다. 열두 시간을 걷는 강행군 끝에 사도와 일행은 테살로니카에서 남서쪽으로 80㎞ 가량 떨어진 도시 베로이아에 이르렀다. 마케도니아 제3 행정구역에 속하는 이 조용한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사람들을 변호하는 자'라는 뜻)의 고향인 고대도시 펠라(Pella) 가까이에 있다. 그 용감한 군 통수자인 알렉산더 대왕은 이곳 베로이아를 출발해 고대 그리스 문화와 학문을 소아시아와 페르시아를 넘어 아시아에 전파했다. 바오로도 아시아에서 이곳으로 와서 그리스도교 문명과 한 분인 참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제국 백성들에게 보급했던 그리스어를 사용해 서방에 전파했다. 베로이아에는 하나의 작은 히브리 정착촌과 유다인 회당이 있었다. 바오로는 자주 그곳에 가서 유다인들에게 성경에 근거해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실현됐음을 증명했다. 베로이아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 유다인 동포들보다는 친절했다. 그들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 또 이들만이 아니라 전에 우상숭배자였던 남자와 부인들, 그리고 상류층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됐다. 이들 가운데에 후에 바오로의 수행자가 된 베로이아 사람 피로스의 아들 소파테르도 있었다.(사도 20,4 참조) #훼방꾼에게 쫓겨 아테네로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테살로니카 히브리인들이 베로이아에서 활동하는 바오로의 선교 사실을 알게되자 이들의 활동을 저지하려 훼방꾼들을 보냈다. 그리스도인들은 조심스럽게 바오로를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시키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바오로는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베로이아에 남아 교회를 공고히 하도록 하고, 적에게 쫓기는 자신은 마케도니아를 떠나 그리스 중부로 가기로 결정했다. 베로이아 신자들 호위를 받으며 가까운 항구인 오늘날 엘레프테로호리온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피레아(Piraeus, '피레에프스'의 옛 이름) 항구로 갔다. 이제 그의 앞에 고대 세계, 그 오래되고 영광스러운 도시가 펼쳐진다. 아테네(Athenae) 여신의 도시! 여신의 이름을 본따 아테네로 불리는 도시! 대 철학자의 도시! 비극 작가들의 도시! 예술의 도시! 한 작은 민족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학문과 예술, 철학, 정치 등 여러 방면에서 인류정신사의 최고봉에 도달한 경우는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경우다. 그것이 아테네라 불리는 기적이다. 오늘날도 고대문명의 잔해 앞에 서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바오로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고대 그리스문화의 비길 바 없는 예술품을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감동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바오로가 아테네에 발을 내디뎠을 때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황금시대의 아테네가 아니었다. 로마제국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제국의 한 지역이었을 뿐이다. 도시는 쇠퇴기에 있음에도 로마 귀족사회와 로마 황족들에게 계속해서 매력을 끄는 도시로 남아 있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아우구스투스, 또 다른 황제들도 아테네의 훌륭함에 존경을 나타냈다. 바오로는 아테네인들의 생각과 관습을 알고자 며칠 동안 도시를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세워져 있는 우상을 보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충격을 받고 실망했다. 그리고서 단 한 분인 참 하느님에 대해 유다인 회당에서 적은 수의 유다인들과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또 갖가지 신을 숭배하는 이전 우상숭배자들과도 아고라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던 낮은 언덕 아레오파고스(Areopagos) 아래에 있는 아고라(Agora)는 오늘날까지 잔재가 남아있으며, 외국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바오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도 그곳에서 만났다. 이들은 바오로가 예수와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바오로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외국의 신들에 관해 말한다고 여겼으며 의문을 품었다. 저 떠버리가 우리에게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그들은 바오로가 가르치는 것을 정확히 알고자 바오로의 손을 잡고 아레오파고스로 데려갔다. 그곳은 고대도시의 최고 법정으로 대법관 회의가 열렸던 곳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보는 아레오파고스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바오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라고 했다. 바오로는 처음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공공장소에서 설교를 했다. 아레오파고스 위에 서서 온 도시를 내려다 봤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크로폴리스 신전 입구와 파르테논이 보였고, 파르테논 왼쪽에는 빛나는 투구를 쓴 아테네 여신의 거대한 청동상이 보였을 것이다. 여신은 한 손에 번쩍이는 방패를, 다른 손에는 금빛 창을 갖고 있었다. 철학과 학문으로 무장된 바오로는 가장 뛰어나고 선택받은 아테네 청중 앞에서 우상 숭배의 어둠에서 아테네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빛과 사랑, 삶이고 한 분인 참 하느님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설교는 바오로 사도가 이 오래된 고대도시에서 봤던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에 대해 말하며 시작했다. "당신들이 알지 못했던 바로 그 신에 관해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왔습니다"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학생 시절에 공부하며 외웠던 그리스 철학자들 말을 인용해 '하느님 본성은 하느님 창조물을 통해 드러나며 신과 교통하기 위한 인간 영혼의 추구'라는 의미들을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 영혼이 신의 속성을 가졌음을 발견했다. 아레오파고스에서의 바오로 설교는 고대 수사학의 백미로 특징지워진다. 정확한 아티카 방언을 성공적으로 사용했고, 특정 청중을 고려했으며, 때와 장소에 적합한 설교였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22절에서 31절에 기록된 이 훌륭한 연설문은 독자 여러분도 차근차근 읽어보기 바란다. 청중들은 흥미롭게 설교를 경청했으나, 바오로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말하자 청중은 웃음을 터뜨리며 조롱한다. 바오로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연설을 계속할 수 없어 중단하게 됐다. #아테네에 첫 교회를 세우다 누군가 사도에게 말했다.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하고 말했다.(사도 17,32) 바오로는 이 말을 알아듣고 슬퍼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아레오파고스에서 이뤄진 설교는 바오로에게는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 주님 은총이 없이는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함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 이유를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2테살 3,2)하고 말한다. 만일 사람이 '이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하느님의 지혜를 갈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은 그 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바오로가 집으로 가려고 떠날 때, 몇몇 사람은 그를 따라왔다. 바오로가 뒤를 돌아보자 교양 있고 점잖은 한 남자가 자신을 대법관인 디오니시오라고 소개했다. 그들 속에 한 친절한 귀부인인 다마리스도 있었다. 그 외에도 다른 몇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바오로는 그들을 맞아들여 새로이 입교한 형제들과 함께 밤늦도록 머물며 예수에 대해 그들에게 말했다. 이들이 아테네에 첫 교회를 세웠다.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던 디오니시오는 아테네 주교로 수품됐다. 오늘날 아테네에 가장 품격이 높은 지역에 사는 아테네인들은 그의 이름을 딴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고, 주후 95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때 화형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그를 그들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기념하고 있다. 또 해마다 수많은 신자들은 아레오파고스에 모여 아테네 교회 설립자로서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며 그의 축일을 지내고 있다.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그림 정미연오세택2011.05.24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4) 제1차 콘스탄티노플로스 공의회(상)다시 분열된 교회, 일치를 위해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개최된 성 이레네 성당. 장방형 십자가 형태의 이레네 성당은 4세기 초까지 아프로디테의 신전이었다가 성당으로 개조했다.325년 니케아 공의회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싶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내쫓았던 아리우스파 주교들을 3년 만인 328년에 다시 측근으로 불러들입니다. 이때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니코메디우스 주교 에우세비우스입니다. 아리우스와 친구였던 에우세비우스 주교는 성자종속설 경향에 기울어져 있던 동방 주교들의 세를 규합해 정통파인 니케아 신경의 옹호자들에게 맞섭니다. 335년 티루스 시노드, 340년 로마 시노드, 341년 안티오키아 시노드와 로마 시노드 등 교회회의들이 잇달아 열리고 친아리우스파와 정통파가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여기에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망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지요. 제국의 동방은 니케아 공의회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교들을 지지하는 콘스탄티우스가, 정통파 주교들이 주로 있는 서방은 콘스탄스가 각각 다스리게 됩니다. 교리상의 분열이 정치적 분열과 겹쳐져 대립이 심화됩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로마 주교인 교황 율리오 1세는 동방과 서방 주교들이 함께 참석하는 공의회를 사르디카(오늘날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합니다. 342년 혹은 343년에 소집된 사르디카 공의회에는 대략 서방에서 90명의 주교가 동방에서는 80명의 주교가 참석합니다. 하지만 공의회는 참석 주교들의 자격 문제로 삐그덕거리더니 동방 주교들이 불참을 선언하고 맙니다. 반쪽이 된 사르디카 공의회에서 서방 주교들은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면서 동방 주교들이 이전에 단죄한 아타나시오 주교를 복권시킵니다. 아타나시오는 니케아 공의회 때 정통파를 이끈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데르 주교 밑에서 부제로 있으면서 정통파가 승리하는 데 기여한 인물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대주교가 된 후 아리우스파 등 반대파들에 밀려 여러 차례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정통신앙을 끝까지 수호한 성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토대인 '아타나시오 신경' 저자이기도 합니다. 한편 동방에서는 성자가 성부에 비해 열등하다는 급진적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니케아 공의회의 선언에 따라 배격하지만 동시에 성자와 성부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니케아 공의회 표현도 반대하는 다른 표현 양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성자는 성부와 같은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으로서 본질이 같지 않고 유사하다는 '유사본질'설이 그것입니다. 이 주장을 반(半)아리우스주의(Semi-Arianism)라고 부릅니다. 아리우스 주장을 절반쯤 따른다는 뜻이지요. 이제 성자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은 동일본질(니케아 정통파), 유사본질(반아리우스파), 성자종속(아리우스파)로 삼분됩니다. ◇리미니-셀레우키아 공의회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세를 규합한 유사본질파 주교들은 제국의 황제 플라비우스 율리우스에게 압력을 가해 다시 한 번 공의회를 소집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359년 두 곳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서방에서는 이탈리아 리미니, 동방에서는 오늘날 이라크 땅인 셀레우키아에서지요. 리미니에 모인 서방 주교들은 400명이 넘었고, 셀레우키아에 모인 동방 주교들 또한 약 150명이나 됐습니다. 참석자 수로만 본다면 가장 규모가 큰 공의회였습니다.유사본질파 주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공의회에서 관철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을 품지만 황제는 오히려 또 다른 안을 제안합니다. '성자는 성경에 따라 성부와 유사하다'는 정식(定式)을 주교들에게 합의의 초안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경을 전거로 내세우며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합의에 이르도록 한 것입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단지 제안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안을 따르도록 강요합니다. 교리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교리 일치를 통한 주교들의 화해가 또한 제국 질서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황제는 압력을 행사해 리미니와 셀레우키아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550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내고는 360년 1월 1일에 제국에서 마침내 교회 평화가 회복됐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부와 성자의 신성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네 파로 나뉘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니케아파(정통파), 유사본질파(반아리우스파), 유사파(리미니-셀레우키아 공의회 지지파), 그리고 엄격한 아리우스파로. ◇카파도키아 교부들과 성령피조설파한편 3세기 중엽 소아시아 오늘날 터키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에는 유명한 교부(敎父, 고대와 중세의 저명한 교회 학자를 '교부'라고 부름) 삼총사가 있었습니다. 카이사리아의 주교 바실리오(329/331~379), 나지안즈의 주교 그레고리오(329/339~389/390) 그리고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오(335/340~394/395)였습니다. 이들에게서 성부와 성자의 신성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핵심 개념들이 다듬어져 나왔는데, 본성(본질 또는 본체)과 위격의 구별이 그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신적 본성 또는 본질이 같지만 위격으로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지요.이와 함께 삼위일체의 성령에 관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성령을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설(異說)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른바 성령피조설파(Pneumatomachi)입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한 신경에 "또한 성령을 믿나이다"라고만 돼 있어서 성령과 성부 및 성자와의 관계가 확실치 않은데다 아리우스파가 성령 또한 성자와 마찬가지로 피조물로 이해한 것 등이 성령피조설파가 생겨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피조설파는 마케도니우스파(Macedoniani)라고도 부릅니다. 이 설을 내세우는 이들이 360년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였던 마케도니우스의 추종자들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마케도니우스가 정말로 성령피조설을 내세웠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379년 테오도시우스가 로마제국 황제가 됩니다. 훗날인 392년에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유일한 합법적 종교로 선포하게 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교리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교회가 분열에서 벗어나 일치를 이루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이렇게 해서 소집된 공의회가 381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개최된 두 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11.03.01
![[생활 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가장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cpbc.co.kr/CMS/newspaper/2010/12/rc/362405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가장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지난해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된 새해를 잘 살아갑시다. 20여 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툰 어느 외국 신부님이 한해를 마치는 송년미사 중에 이런 강론을 했답니다. "2010년 새 년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년이 다 가고 새 년이 돌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한국에서 20년을 살았는데 그 중에는 기뻤던 년도 있었고 슬펐던 년도 있었습니다. 좋았던 년, 나빴던 년, 나를 슬프게 했던 년, 기쁘게 했던 년 등 정말로 각양각색의 온갖 년들이 다 지나갔지만, 이제 새로 오는 년은 축복의 년이길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지나간 해 중에 그래도 지난해 1년은 정말로 감사로운 해였습니다. 하루를 기준으로 봐도 하루 24시간 중 슬픈 시간보다는 기쁜 시간이 많았고 한 달 30일 중 괴로웠던 날들보다는 기뻤던 날들이 훨씬 많았고, 1년 365일 중에 기뻤던 날들이 속상했던 날들보다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로, 암이나 중병으로, 또 어떤 사람은 이웃을 잘못 만나 큰 고생을 했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았으니 다행이었고, 어떤 부부는 싸우고 미워하다 못해 이혼하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는데 우리 가정은 여전히 화목하게 살고 있으니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일일이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이 감사로운 한 해였던 것입니다. 오늘 시작된 새해도 복 많이 받는 감사로운 한 해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천주교회는 새해 첫날을 '평화의 날'로 정하고 동시에 성모님 축일로 지냅니다. 왜냐면 성모님처럼 사는 길이 복 받는 삶이기 때문이고, 성모님처럼 살아야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복을 많이 받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모님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여인 중에 복되시며…" 매일 외는 기도인 성모송에 나오는 말입니다. 성모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복된 분이라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 많이 받았던 분이 성모님이기에 교회는 복 많이 받고 싶은 새해 첫날을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정한 것입니다. 왜 성모님이 그렇게 복되신 분이셨을까요? 돈이 많아서? 얼굴이 예뻐서? 지식이나 권력이 많아서? 아닙니다. 그럼 아무런 고통도 질병도 없고 근심거리도 없어서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성모님이 복되신 이유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부귀권세가 없어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성모님은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성모님이 복되신 또 하나의 이유는 작은 일에도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특별히 크고 두드러진 일을 한 게 없어서인지 성경에도 성모님 이야기는 불과 몇 줄 안 됩니다. 성모님 이야기를 더 이상 길게 쓸 사건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큰일이 아니라 작은 일, 곧 나타나지도 않고 두드러지지도 않는 작은 일에 성실하면 성모님처럼 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 아침 강에 사는 자라가 어른 거북에게 세배를 하러 갔습니다. 세배를 받은 거북은 "올해는 사소한 것을 중히 여기고 살게나"하고 덕담을 했습니다. 자라는 "사소한 것은 작은 것 아닙니까? 큰 것을 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묻자 거북은 "아닐세. 내가 오래 살면서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이더군. 사소한 일을 잘 챙기는 것이 잘 사는 길이야"하고 말했습니다. 자라가 못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거북이 설명을 계속했습니다. "누구든 그가 사소한 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네. 사소한 일에 분명하면 큰일에도 분명하지. 사소한 일에 부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부실하다네." 자라는 일어서서 거북에게 또 한 번 넙죽 절을 했습니다. "어른의 장수 비결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사소한 것을 중히 알아보는 지혜가 바로 장수의 비결이었군요." 성모님처럼 복되기를 바라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성모님처럼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 성모님처럼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cpbc2010.12.28
전국 신학교ㆍ수도원 문 활짝 연다전국 교구와 남ㆍ여 수도회 성소주일 행사 종합 제48차 성소주일(15일)을 맞아 전국 교구와 남ㆍ여 수도회는 신학생, 수도자와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로 그들을 초대한다. 모든 교구 성소주일 행사는 15일 열린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교 구 ▲서울대교구= 오전 10시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미사(주례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조규만 주교), 묵주 만들기ㆍ수단 입어보기ㆍOX퀴즈, 성소상담, 제의 및 제구 전시. 문의 : 02-727-2123 ▲춘천ㆍ원주교구= 오전 10시 충북 제천 배론성지, 미사(주례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 보물찾기ㆍ사생대회ㆍ'성소주일'로 사행시 짓기, 수도회 소개, 신학생들이 준비한 공연. 문의 : 033-240-6073 ▲대전교구= 오전 10시 30분 충남 연기군 대전가톨릭대 교정, 미사(주례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 '길'을 주제로 하늘묘원(성직자묘원)ㆍ십자가의 길 등 걷기, 수도회 소개, 신학교ㆍ기숙사 개방. 문의 : 041-861-7101 ▲인천교구= 오전 10시 30분 인천 강화군 인천가톨릭대 교정, 미사(주례 교구 총대리 정신철 주교), 신학생들이 준비한 풍물놀이, 밴드ㆍ중창단 공연, 수도회 소개. 문의 : 032-765-6965 ▲수원교구= 오전 9시 경기 화성 수원가톨릭대 교정, 미사(주례 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 인성ㆍ영성ㆍ지성을 기를 수 있는 '나는 예신이다' 게임, 예비신학생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 문의 : 031-241-7969 ▲의정부교구= 오전 10시 경기 양주 한마음청소년수련원, 고등학생ㆍ성인 예비신학생 대상 성소주일 피정, 미사(주례 성소국장 상지종 신부). 문의 : 031-870-1723 ▲부산교구= 오전 10시 부산 부곡3동 부산가톨릭대 교정, 미사(주례 교구 총대리 손삼석 주교), 예비신학생 지원자반(고3, 성인)은 14일부터 1박 2일간 신학생들과 함께 신학교 체험. 일반 예비신학생은 15일 당일 포스트 게임. 문의 : 051-629-8760 ▲마산교구= 오전 10시 교구청, 미사(주례 성소국장 강철현 신부), 점심식사 후 신학생 1명과 예비신학생 3명이 한 조가 돼 창원 무악산 둘레길 걷기. 문의 : 055-249-7061 ▲안동교구= 오전 10시 30분 경북 문경성당, 교구 초등학생 대상으로 문경성당에서 진안리성지 기도굴까지 4.5㎞ 도보순례. 순례 중간 중간 지점에서 올해 선종 150주년 맞은 최양업 신부 일생을 공부하며 기도. 문의 : 054-858-3114 ▲광주대교구= 오전 9시 30분 전남 나주 광주가톨릭대 교정, 미사(주례 전 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포스트 게임, 신학생들이 준비한 공연. 문의 :062-380-2280 ▲전주교구= 오전 10시 전주 성심여고 강당. 문의 :063-230-1069 ▨남자 수도회 ▲가르멜 수도회= 14~15일 경남 창원 진동면 가르멜 수도원, 성소자ㆍ수도자가 1박 2일 함께하는 수도생활 체험 피정. 문의 : 011-838-7408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15일 오후 1시 대구 월배 수도원, 중 1~ 30살 이하 남성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문의 : 011-749-1670 ▲살레시오회ㆍ살레시오 수녀회= 15일 오전 10시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시작 전례, 환영과 만남, '함께 뛰기'를 주제로 한 친교와 나눔 프로그램. 문의 :02-828-3500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15일 오전 9시 경북 칠곡군 본원,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미사, 수도원 개방. 문의 : 010-8353-2323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ㆍ자매회= 15일 오전 9시 충북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장애우 가족들과 함께하는 운동회, 꽃동네 견학, 수도복 입어보기, 장애체험, 파견미사. 문의: 011-806-6879 ▨여자 수도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 수도원= 1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명동 본원, 20살 이상 미혼 여성 선착순 50명 대상. '와서 보아라!' 주제 강의, 수련 수녀들과 기쁜 한마당, 종신서원 예비반 수녀들과 대화, 미사. 문의 : 02-3706-3233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14~15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본원, 34살 미만 미혼 여성 대상 수녀원 체험 피정, 수녀들과 함께 전례 참례 및 대화. 문의 : 016-9876-0418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15일 오전 10시 서울 방배동 본원, 수도자가 되는 과정(지원기, 청원기, 수련기, 서원문 작성)을 간단하게 체험한 후 수도복 입어보기. 성경ㆍ교리상식 골든벨 퀴즈, EM(유용 무생물) 비누 만들기 등 . 문의: 010-5401-9742 ▲예수 수도회= 15일 오후 1시 서울 오류동 수녀원, 35살 미만 남ㆍ여 청년 선착순 100명 대상으로 영신수련ㆍ의식 성찰 강의, 기도방법 안내, 미사. 문의: 010-8910-1198 임영선2011.05.11
![[생활 속의 복음] 성령강림대축일-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cpbc.co.kr/CMS/newspaper/2011/06/rc/379301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성령강림대축일-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사람은 누구나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것을 얻으려고, 더 큰 행복을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물질에서 행복을 얻으려던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지식이나 힘, 명예나 쾌락 등에서 행복을 찾던 사람들도 행복하지 못했고 건강에서 행복을 얻으려던 사람들도 건강만으로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더 나아지고 싶고 더 행복해지고 싶은 데 잘 안 됩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나약한 인간의 힘만으로 안 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특히 기적 같은 독특한 신앙체험이 있으면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고 행복도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한 명이 꿈에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됐답니다. 갓 영세한 신자 한 명은 꿈에 성모님을 보고는 확고한 신앙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을 딱 한 번만 보았으면, 꿈속에서라도 좋으니 예수님 목소리를 딱 한마디라도 들어본다면,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먼 발치에서 예수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만져보았으면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손으로 만져보고 예수님 얼굴을 두 눈으로 보고 예수님 목소리를 귀로 들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더 잘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자그마치 삼 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수없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무수히 만져보고, 수 천 번도 넘게 예수님 말씀을 똑똑히 들었지만 신앙심이 깊어졌던 것도 아니고 삶이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지식이 풍부하고 신앙체험이 많으면 더 깊은 신앙심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제자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자들만큼 많이 알고 많은 체험을 한 사람들도 없지만 그들처럼 형편없던 신앙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을 예수님한테 직접 듣고도, 그 놀라운 기적을 생생하게 체험하고도,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변치 않던 완고한 마음이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의심 없는 믿음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이 알고, 많이 체험한다고 해서 신앙심이 깊어지고 행복이 커지는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출세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신앙심을 깊게 하거나 행복을 더 크게 만들어 가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지식과 체험, 노력이기에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데는 별 힘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태산같이 믿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자 제자들은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어서 다락방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이 그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불혀 모양의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뜨거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180도 변했습니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자로, 불안에 떨던 마음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미지근한 믿음에서 확실한 믿음으로, 고통에 짓눌린 찌든 삶에서 기쁨에 넘치는 은총의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더 나아지려하고 더 행복해지려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잘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예수님 옷자락을 만진다고 해도 그 자체로 신앙심이 더 깊어지거나 행복이 더 커지지는 않습니다.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00년 전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신다면 틀림없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저희 삶의 그 모든 것, 해로운 것뿐이리라."(성령송가 중에서) 조은일2011.06.07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2> 코린토, 테살로니카, 필리피 등지](//cpbc.co.kr/CMS/newspaper/2011/01/rc/363842_1.0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코린토, 테살로니카, 필리피 등지유럽 최초로 필리피에 복음을 전하다 아테네대학을 졸업하고 병역 의무를 다하려고 간 곳이 바로 코린토였다. 사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고대 코린토 가까운 곳에 신병훈련소가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행군을 했다. 사도는 두 번째 전도여행 중 일 년 반을 이곳에 머무르고, 그 유명한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 주후 56~57년에 이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이다. 폐허만 남은 고대 코린토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아카이아 지역 로마총독 갈리오의 재판정 단상 앞에 서서 사도행전 18장을 떠올렸다. 코린토의 유다 광신자들이 사도를 벌하라고 로마 총독 앞에 끌고 갔던 곳, 그 대리석 단상이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다. 유다인들에게 고발당한 사도는 로마총독의 석방 판결을 듣고 아마 크게 고무됐으리라.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사도 18,14-15).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풀려나 전도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고대 광장으로 향하는 길을 한참 가면, 아퀼라와 프리스킬라의 집과 천막공장이 있다. 코린토에 머무는 동안 사도는 자신과 일행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그 공장에서 일을 했다.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공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했으며,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그리스도를 믿는 코린토인들이 늘어난다. 유다인 회당장인 크리스포스도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코린토 교회는 이렇게 세워졌다. 이 도시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웅장한 '바오로 사도 성당'은 이 도시를 그리스도 신앙으로 이끄신 사도께 드리는 경건한 찬미와 감사의 표시다. 코린토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병역 의무를 이행한 곳 역시 바오로 사도 흔적이 남아있는 테살로니카였다. 그리스 북쪽에 있는 테살로니카는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 제2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의 여동생인 테살로니키 왕비를 기리기 위해 카산드로스 왕이 세운 도시다. 주후 50~51년에 바오로 사도는 소수 유다인을 제외한 테살로니카의 많은 우상숭배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했고, 그 결과 테살로니카 교회는 당대에 가장 활기찬 그리스도 교회들 가운데 하나로 발전했다.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보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 활동과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고대 도시들이 있는 그곳에는 오늘날까지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는 성당들이 많이 남아 있어 오늘날에도 전례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 지역에 뿌리를 둔 마을뿐 아니라 모든 도시들이 바오로 사도와 연관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테살로니카와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뒤에 내가 군종신부로 봉사했던 사단이 마케도니아의 필리피 근교였다는 것도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리포스 왕에 의해 기원전 365년에 세워졌으며, 필리피라는 도시 이름은 설립자에게서 따왔다. 이 곳은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유럽 최초의 도시다. 세례를 받은 초대 교인들 가운데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주색 옷감을 파는 리디아가 있었는데(사도 16,14)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바오로 사도와 그 일행들을 머무르게 하고, 유럽에서는 최초로 '가정집 교회'를 시작했다. 그 이후에 웅장한 성당들이 세워졌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일곱 개 고대 성당 잔해들을 찾아냈는데, 그 중 제일 큰 성당은 길이 130m에 폭 50m 규모였으며, 그 옆에 사도 바오로가 갇혔던 감옥의 흔적도 남아 있다. 사도행전에서 설명하는 그 사건 이후에 그 도시의 부호들이 사도를 그의 일행 실라스와 함께 투옥시켰던 감옥이다. 감옥 내부를 보려고 입구에서 고개를 숙이면 바오로 사도와 실라스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인내하기에 합당하게 여겨졌음에 감사해서 불렀던 찬송이 들리는 듯하다.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리고 감옥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사슬을 풀어놓은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간수장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게 됐다(사도 16, 25-34 참조)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인연에 덧붙여 사제서품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 사도가 내 삶에 특별한 분이 된 것은 바로 서품식 때문이다. 성직에 입문하기로 했을 때 내 서품식 날짜는 6월 27일로 정해져 있었지만, 갑작스런 대주교님 사정으로 정해진 날짜에 서품식을 거행할 수 없었다. 결국 서품식은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축일인 6월 29일 거행됐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내 생애에 깊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후 선교사가 돼 내 생애 후반부를 한국에서 보내며 여러 도시에 성당들을 건축하게 됐다. 그 중 한 성당을 인천에 세웠고, 사도 성 바오로 이름으로 헌정했다. '성 바오로 성당'은 축복받은 정교회 공동체 일원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다. 2008년에 나는 한국 풍습에 따라 서울에서 팔순 잔치를 하고, 한국대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교회 세계 총대주교청 '주교시노드'는 내가 한국대교구장에서 은퇴하는 것을 승인했지만, 동시에 나를 피시디아의 대주교이며 시디와 안탈리아의 주교로 선출했다. 사도행전 13장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사도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부터 소아시아에서 그의 위대한 전도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첫 번째 전도여행을 마친 뒤 아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은 사도의 탄생지인 타르수스가 있는 킬리키아 지역과 이웃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그의 위대한 일생을 소개한다는, 쉽지 않은 과제에 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개인적 인연 때문이다. 주님 사랑으로 내 삶은 아뜸이신 사도와 맺어져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주님 뜻이고, 바오로 사도도 허락했으므로 가능했다고 나는 믿는다. 바오로 사도와 나의 개인적 인연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치도록 하고, 이제 다음 글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삶과 중요한 업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인터뷰 ; 화가 정미연씨 "예수님의 특별한 이끄심이었어요." 지난해 9월 사도 바오로 전도여행지를 순례하고 삽화를 그린 화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56)씨는 "터키 여행 열흘, 크레타섬 전교회 관상수도원 생활 열흘, 그리스 여행 열흘 여정을 통해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정은 물론이고 정교회 수도생활의 깊숙한 속내와 문화를 들여다 보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비잔틴 예술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처음 알았다"는 작가는 "그 영성, 초월자의 내면까지 드러내는 표현력이 너무도 깊었다"고 순례소감을 전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의 진면목을 봤다"는 작가는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님 배려로 일반 순례자들은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수도원 안에까지 들어가 정교회의 그 깊은 영성의 맛과 향기를 고스란히 느끼고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정을 접하면서 대주교님과의 인연이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고 말했다. 정미연 작가는 또 "현지에서 바오로 사도의 숨결을 낱낱이 보고 느끼는 감동과 전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이었고, 특히 교회사 교수님들이 순례지마다 일일이 설명해줘 감동은 세 배, 네 배 컸다"고 털어놓았다. 작가는 "순례를 통해 바오로 사도의 삶과 영성이 얼마나 내 삶 속에 가까이, 또 깊이 들어왔는지 모른다"며 "삽화 연재가 끝나는대로 바오로 사도의 삶과 선교 여정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sebastiano@pbc.co.kr 오세택2011.01.11
![[문화]한국순교복자수도회 '대월 아카데미' 첫 개설](//cpbc.co.kr/CMS/newspaper/2010/01/rc/324133_1.0_titleImage_1.jpg)
[문화]한국순교복자수도회 '대월 아카데미' 첫 개설21세기 문화복음화 '새로운 마당' 연다... 대월기도와 성경공부, 사진교육 등 5개 과정 개설... 하느님 말씀을 몸으로 기도하는 대월기도는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하느님과 대면하도록 이끄는 영신수련이기도 하다. 사진은 전례무 지도자 한영옥씨 지도로 대월기도를 익히는 평신도들. 빵의 형상으로 오셔서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강생 신비를 사는 '면형무아(麵形無我)'를 수도영성 목표이자 정점으로 하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우리나라 첫 본토인 남자수도회인 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초창기 회원들의 땀과 손길이 배어있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피정의 집 복자사랑(원장 김선규 수사)에 '문화 복음화'의 장이 펼쳐진다. 21세기 문화와 영성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영적, 문화적 갈증을 예술문화를 통해 풀어주고, 예술 표현을 통해 하느님과 대면하는 '대월(對越)의 삶'을 구현하도록 이끌 '대월 아카데미'다. '대월'은 순간을 성화하는 수도회 정신인 점성(點性)과 육신 안팎의 침묵(沈默)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 순간을 뜻한다. 오는 3월 2일 개설돼 5개월 과정으로 진행된다. 교육 프로그램은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하느님을 대면하도록 이끄는 영신수련인 대월기도(몸기도) △하느님 말씀을 익히는 도상(圖像)인 이콘 △가톨릭 성음악 역사를 증거하는 악기 리코더ㆍ오카리나 △가톨릭 전례를 풍요롭게 할 국악 연주과정인 장구ㆍ가야금ㆍ해금 △대월기도를 수강하는 이들을 위해 개설되는 성경공부 과정인 성서40주간 △세상 아름다움 너머에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체험한 영상을 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사진 교육 등으로 꾸며진다. 이 교육과정 가운데 가톨릭 아도라레무용단 안무자인 한영옥(로사)씨가 이끌 대월기도는 수도회원들이 먼저 1년간 교육을 받고나서 그 전례적 풍요로움을 체득한 뒤에 교육이 이뤄지게 됐다. 한국무용을 기도로 승화시킨 기도 형태로, 성경 말씀을 단어화해 만든 체화(體話, 몸말)와 말씀을 묵상하며 드리는 기도인 찬양무로 이뤄져 있으며, 초급반 과정과 전공자 대상 중급반이 개설된다. 아울러 노인대학 어르신들을 위한 면형반도 개설한다. 작가 허영(리오바)씨 지도로 올바른 교회미술 정신을 보급할 이콘 교육은 입문과정반과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중급과정반으로 나눠 개설한다. 리코더ㆍ오카리나 교육은 연주자 이태윤(안드레아)씨가 지도한다. 국악(산조)과 오선악보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과정인 장구와 가야금, 해금 연주교육은 송숙희(유스티나), 오혜란(루치아), 이정미(오타줄리아)씨 등이 강사로 나온다. 이와 함께 성서40주간은 변종승(요한) 신부가, 사진반은 김선규(프란치스코) 수사가 각각 이끈다. 김 원장수사는 "하느님에게 받은 개인 소질을 개발하고 성장시켜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함으로써 행복하고 풍요로운 영적 삶에 자양분이 되게 하려는 목적"이라며 "특히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공동선에 이바지하고 거룩한 전례를 보조하며 전문인을 양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접수는 2월 중. 문의 : 02-762-2067, 017-246-5359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01.26
![[성경 속 상징] 67- 숫자 삼(3)의 상징- 완성과 완전함, 하느님의 세계](//cpbc.co.kr/CMS/newspaper/2009/11/rc/316476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67- 숫자 삼(3)의 상징- 완성과 완전함, 하느님의 세계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모든 종교에서 3이란 숫자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나 불교에서 쓰는 삼세인과(三世因果)라는 심오한 관념을 보더라도 3이란 숫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구체적 효과가 무엇이든지 삼중 반복 형식은 모든 문화를 초월해서 민속 문학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고대신화 속에서도 여신들은 대체로 세 명이 한조로 나온다. 그 이유는 인간의 세 가지 속성을 나타내거나 사람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3차원의 세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점술을 위해 주사위를 던졌을 때도 세 번 연속으로 같은 수가 나오는 것을 길조로 여겼다. 따라서 대부분 문화권에서 3이란 숫자는 행운의 숫자이자, 시작과 중간과 끝을 의미하는 수로 사용했다. 3은 일련의 사건들의 형태가 이뤄지는 데 필요한 최소 숫자이다. 어떤 사건이 한 번이나 두 번 발생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번 연속으로 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신호가 된다. 성경에서도 3이란 숫자는 완성과 완전함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3이란 숫자는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 예는 삼위일체 하느님이다. 그래서 숫자 3은 '하느님의 세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하느님이 사제의 축복에 관해 모세에게 명령하시는 장면에서도 축복을 세 번에 걸쳐서 하라고 당부하신다(민수 6,22-27). 예수님도 광야에서 사탄에게 세 차례 유혹을 받으신다(마태 4,1-11). 또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이 기간도 3일이다. 여기서 3이란 숫자는 최종적 목적과 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요한 2,19-22). 또 성경에서 어떤 사건이 세 번 발생한다면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한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 그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완전히 부인했음을 의미한다.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예수의 운명에 관해 물어본다. 세 번이나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려고 했다.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이를 거절했다. 이러한 반복은 그들의 거절이 매우 단호한 것임을 의미한다(루카 23,13-25). 그리스도교 전례에서는 세 번 되풀이하는 것이 예사로 돼 있다. 미사 때 참회예식에서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하고 세 번 반복하는데, 이는 잘못을 완전하게 참회한다는 뜻이다. 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세 번 노래하는데, 이 역시 하느님이 가장 거룩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조은일2009.11.17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20) 교부들의 중세기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 모습](//cpbc.co.kr/CMS/newspaper/2010/09/rc/350484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20) 교부들의 중세기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 모습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8세기 중엽부터 루터 종교개혁 이전까지인 중세기 교부들의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 시대는 이미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요, 동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했다는 것이 제2차 니케아공의회(787년)에서 확정된 시기라서 이와 관련된 내용은 더는 언급되지 않는다. 중세기는 베르나르도, 알베르토, 토마스 데 아퀴노,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등 대 신학자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성모님에 관한 논의는 주로 원죄에서 자유로운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와 마지막 생애, 즉 승천에 관한 것이었다. 또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던 때이기도 하다. 베네딕도회 베다 주교는 성모가 천사와 많은 사람에게 찬양을 받았다는 점을 주목하고 그분은 어느 여인보다 고귀한 분이라고 찬양한다. 성모를 하느님의 어머니, 예수 그리스도 인류 구원사업의 첫 번째 협력자라고 말하지만 결코 여신은 아님을 강조한다. 베다 주교는 비잔틴교회가 성모를 여왕으로 찬양했던 것과 달리 지상에서의 그분 삶의 겸손을 찬양하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 특별한 권한을 지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해 많은 이들에게 축복과 찬양을 받았지만 결코 지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하느님 뜻에 마음을 쏟았던 겸손과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베다 주교는 하와에게서 교만을 보고 성모에게서 순종을 본다고 비교해 설명한다. 그는 더 나아가 성경에 근거해 성모와 교회의 유사점을 끌어낸다. 성모와 교회 모두 동정이요, 어머니라고 강조한다. 또한 성경(루카 1,41)에 근거해 성모가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 요한 세례자가 모태에서 성화됐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성모가 주님의 어머니로 당연히 원죄로부터 성화됐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뛰어난 마리아론 학자이며 서방교회 마리아론에 많은 영향을 준 암브로시오 아우트페르트는 마리아의 승천 축일, 봉헌 축일 등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당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축일보다 성모승천, 정결례 축일 등이 더 강조됐다. 그는 성모를 순교자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더 나아가 예수를 사랑하는 데 멈추지 않고 모든 이들을 사랑한 우리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중세 후기 성모의 승천과 무죄한 잉태에 관한 논쟁은 더 활기를 띈다. 이 시대 대부분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원죄없이 태어나신 분으로, 이 세상 어떤 이도 원죄를 면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모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며, 원죄없이 태어나신 분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면 프란치스코회 둔스 스코투스는 성모가 원죄없이 잉태됐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둔스 스코투스를 지지하는 프란치스코회와 토마스 데 아퀴노를 지지하는 도미니코회 간 대결로 치닫게 했다. 한편 이 시대 대중들의 마리아 신심은 하느님을 엄격한 아버지로, 성모를 자애로운 대왕대비로 간주하는 외경에 바탕을 둔 허황된 성모 신심이 횡행했다. 토마스 데 아퀴노의 스승인 알베르토는 당시 예수와 성모를 동격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하느님과 인간인 성모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음을 역설하며, 성모가 하느님 은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 은총이 전해지는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모범적 신학자인 토마스 데 아퀴노 역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그는 「신학대전」에서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에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다. 성모가 구원자의 모친이 됐을 때 원죄가 사해졌다는 것이다. 성경은 지극히 거룩한 성모가 출산 전은 물론 출산 후에도 동정이라고 말한다. 이는 성자의 권위를 위해, 그 어머니의 영예를 위해서도 합당한 일이다. 동정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으로서, 인간으로서 완벽성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또 혼인한 동정녀에게서 아이가 태어나야 혼인도, 동정도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조은일201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