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성당 대림특강 (2) 그리스도인의 기다림 안병철 신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성경에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은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것을 홍수로 쓸어버리셨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전하려는 핵심은 결코 비극적인 홍수 이야기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사건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노아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늘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신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첫 번째 시련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은 노아의 가족에게 희망을 보여주셨다. 홍수로 살 수 없게 된 땅이 하느님 축복으로 물이 빠지자 다시 살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보여주신다.노아의 방주는 희망의 메시지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알아듣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갓난아이에게 "사랑한다"거나 "엄마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 줄 알아?"하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아이는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젖을 먹여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이가 자라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은 우리가 알아듣고 행동하도록 기다려주시고 여백을 주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바로 욕심 때문이다. 인간은 허영과 욕심 때문에 부패한 세상을 만들고야 만다. 하느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죽을 때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자신의 죽음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모진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림' 때문이었다. 신앙과 믿음을 지키고 기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앙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결부되면 더 심각해진다. 목숨은 하나뿐인데, 믿음의 실체인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원한 삶을 주겠다는 하느님 말씀 또한 미래 지향적이기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 너희를 찾아오신다"는 것이 희망이다. 인간 역사는 심판을 받고나면 새 세상이 오고, 이후 다시 사람들 욕심으로 악이 가득 차게 된다. 역사의 부침과 일련의 사건들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최종적인 희망을 얻는다. 메시아(구세주)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하느님 아들로 오셨다. 이미 모든 희망이 성취된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다. 야고보서 5장에서는 "참고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을 현실로, 온전히 우리 것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다만, 우리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은 '죽음'이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도 하느님께서 죽음을 만드셨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분 모시려면 마음 비워내야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물고 살아계시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오지 않으신 하느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신 분, 늘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분을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실제 역사적으로 오신 예수님,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오신 분이다. 2000년 전에 오신 분이 지금도 영향을 주신다.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리 안에 계신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지만 못 알아보는 게 문제다. 아울러 예수님은 인류 역사 마지막에 오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의 완성을 향해 질주하는 게 인류 역사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위한 구원자이며, 천주교 신자만의 구원자가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이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모든 이와 더불어 살아야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대림시기는 하느님을 맞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내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늘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란 주님이 내 안에 딱 버티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언제나 만나려고 기다리신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머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때론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미워하는 이들 안에 그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0.12.07
아기 예수 프로젝트 기고 엄마가 체험하는 모든 것이 '태교'박종수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아기 예수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인 태교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생명의 시작은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 수정된 순간부터입니다. 따라서 시험관 아기 같은 인공 수정에 대한 가장 큰 윤리적 문제는 바로 폐기되는 잔여 수정란입니다. 폐기되지 않았다면 그 수정란은 아기가 되는 엄연한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식의 낙태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정된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가 된 수정란은 언제부터 교육이 가능할까요? 가끔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보며 "도대체 쟤는 누구를 닮은 거야?"하고 이야기합니다. 닮긴 누굴 닮겠습니까?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에는 두 사람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 유전자까지도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결혼하게 될 예비 부모님들이 받은 교육(지적, 정서적, 영적 등)이 바로 태교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아이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모 자신의 얼굴에 침뱉기이고, 아이로 하여금 가출 확률을 높일 뿐입니다. 그래도 생명이 잉태되면 뭔가 아이에게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태교라고 부릅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하는 교육이죠. 태교의 영향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습니다. 만 3살 유아들에게 태내 기억을 자극하자 자신의 태명(胎名)을 기억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어 냈죠. 이것만 봐도 태아들이 엄마 뱃속에서 받는 각종 자극에 그대로 노출되고 그것을 기억하며 습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아기 때는 어떤 방법으로 교육이 가능할까요? 또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요? 유아기 때는 시각, 촉각 등 여러 자극을 통해 발달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태아기 때 받을 수 있는 자극은 청각과 엄마 뱃속을 통해 오는 진동 등의 촉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를 통해서 습득하는 간접 체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원리들을 가지고 여러 태교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음악, 좋은 말, 좋은 환경, 좋은 영양,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체험하는 것이죠. 좋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말을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됩니다. 좋은 환경, 좋은 영양은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이 모든 것은 그대로 태아에게 전해집니다. 유아부에서 마련한 임신부 태교 프로그램도 이러한 원리 안에서 제작됐습니다. 프로그램 시작인 축복미사를 통해 하느님 축복 속에 태아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선물인 생명과 관련된 영상물과 강의를 통해 하느님 신비를 느끼고, 성경필사나 묵주 만들기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맛들이고 태아를 위한 기도 선물을 준비합니다. 또 유아세례를 준비하기 위해 세례명을 짓고 대부모를 선택하며, 세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성화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태아에게 전해주고, 성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도 도모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역할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을 갖습니다. 각종 태교 프로그램이 많지만 정작 교회의 태교가 없다는 것을 반성하며 태아 신앙교육을 원하시는 부모님들을 위해 가톨릭 태교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태교 다이어리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샬롬, 우리 아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 발간)라는 책자입니다. 일반 태교북(태교다이어리, 태교일기)과 차별화해 엄마 아빠가 함께 태아를 위해 기도하며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태아 신앙교육을 통해 하느님 사랑 안에서 축복된 성가정을 이루시길 바랍니다.김은아2011.04.05
[출판]「사도 바오로와 그리스도 체험」 바오로처럼 논란이 많은 사도도 드물다. 개신교인들은 바오로에게서 신약성경의 '진짜 신학자'를 본다. 루터는 로마서를 주석하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화(義化, 개신교는 義認)신학'을 전개했다. 여성신학자들은 언뜻보면 여성에게 적대적인 듯한 바오로의 시각을 불편해 한다.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일으킨 '배신자'로 간주하곤 한다. 반면 동방교회는 바오로를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주창자로 본다. 그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 체험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바오로를 세례와 성찬례 신학자로 보는 이도 있고, 비의(秘儀)전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바오로에 대한 시각을 놓고 안셀름 그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 신부는 바오로를 둘러싼 주석학적 논점이나 바오로 신학 전체보다는 바오로 신학의 배후를 장식한 체험을 성찰하고 서술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사도 바오로와 그리스도 체험」이라는 책으로, 최근 우리말로 옮겨졌다. 지은이는 오늘 우리가 어찌해야 바오로와 유사한 체험을 할 수 있는지, 바오로의 신학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새삼 묻는다. 또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바오로 신학이 어떻게 도움을 줄지, 바오로는 어떤 체험으로 우리를 이끌고자 하는지, 바오로에게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찌해야 믿음의 본질을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 그리스도인의 신앙 체험은 다른 이들의 종교적 체험과 무엇이 다른지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를 위해 바오로의 정신적ㆍ종교적 환경, 회심 체험, 예수 그리스도 체험, 새 생명 체험, 소명 체험, 구원 체험, 신비 체험, 바오로와 심층심리학, 바오로와 여성, 바오로와 성, 바오로와 유다인, 바오로와 종교 간 대화 등을 다뤘다.(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이종한 옮김/분도출판사/90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2.07
![[특집/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이도기 바오로(1743~1798)](//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10_1.0_titleImage_1.jpg)
[특집/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이도기 바오로(1743~1798)전 재산 바쳐 충청도 내포지역 복음화에 힘써... 청양과 홍주, 공주, 정산 등지 두루 다니며 전교... 정사박해 때 붙잡혀 1년간 옥살이 끝에 1798년 순교... 가혹한 매질과 배교 회유에도 굳건히 신앙 지켜 "그 아내 돈을 판비(辦備, 준비)해 술과 안주를 갖춰 가지고 가서 먹으라 권하는데 답하되 '성모가 나를 십자가 위에 두어 계시니 (음식을 먹는 것이) 가하지 않다. 예수가 성가(聖架, 십자가) 위에 계셔 다만 독한 괴로움을 받으심을 듣고, 이러한 맛을 드심은 듣지 못한지라. 이제 나의 당한 바 십자가와 다름이 없으니 차마 먹지 못하겠노라.' 두세 번 권하니 면강해(억지로) 먹는지라. 앉으나 누우나 항상 대월(對越, 현실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마주 뵘)하더니 홀연 '주여', 이 회언(誨言, 훈계하는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 후 주와 성모께 감사함이 이상하더라. 겨울을 만나매 앉은 곳과 무릎 위가 심히 차서 견디기 어렵더니 성탄일에 또 일차 수형한 후에 난 상처와 무릎 위의 뜨겁기가 불같으니 '주님이 내 마음이 찰까 염려하시어 특별히 형벌로써 뜨겁게 한다'하더라." (「뎡산일기-이 바오로 도긔 순교전기」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에서) #1743년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나 박해시대에 신자들 사이에 영적독서와도 같은 형태로 전해지던 필사본이 있다. 54쪽 분량에 불과했지만, 비전(秘傳)으로 전해져 공동체 내 영적 갈증을 풀어줬다. 이 필사본을 통해 박해를 받던 신자들은 순교자에 대한 공경과 함께 신앙을 다져나갔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정산(뎡산)일기」다. 충청도 청양 출신으로 이웃한 정산에서 순교한 이도기(바오로, 1743~1798)라는 한 인물의 전 생애를 다룬 짤막한 책이었지만, 출생과 성장과정은 간단히 언급한 뒤 대부분을 수감생활과 신문과정, 신앙고백, 순교를 다뤘다.천사가 전하는 말 : 수 차례 고문과 회유에도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하기로 결심한 이도기에게 어느 날 천사들이 나타나 위로하고 있다. 이도기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 수난에 견줘 서술하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여러 차례 정산 장터로 끌려가 정산현감 최윤천과 군중 앞에서 심문을 받는 장면이 마치 빌라도 총독과 군중 앞에서 고난을 당하는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심문을 받는 시간 설정과 죽음의 순간에 이도기가 아버지 하느님을 부르는 모습 등도 성경 속 예수 수난을 빼닮았다. 이를 통해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정산일기」는 이도기의 순교를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부각시키려 한다. 그래선지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는 1855년 2월 22일자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바랑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산일기」를 '세월이 흘러도 그 광채를 잃지 않는 보석'에 비유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이도기는 1743년 충청도 청양 태생으로 1797년 정사박해 때 붙잡혀 이듬해 순교했다. 향년 56살이었다. 그가 언제 입교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1784년 조선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고 같은 해 내포에 천주교가 전해져 활발하던 초창기에 입교했음은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그의 입교와 전교 활동은 순교자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과 결코 무관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활동시기가 이존창이 '내포의 사도'로 활동하던 시기와 거의 겹칠 뿐 아니라 그가 감옥에 갇혀 문초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자 옥졸들이 "이존창이 이미 처형됐으니 너도 곧 죽을 것이다"고 거짓으로 위협하는 대목을 보면 어느 정도 이존창과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는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미신자들을 입교시키는 데 쓰고 청양뿐 아니라 홍주(현 홍성)와 공주, 은진 등지를 두루 다니며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를 통해 입교한 신자들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홍주의 이세채, 보령의 김성옥, 청양의 이원경, 은진의 이상원, 공주의 김선룡 등이다. 이들은 관변 기록인 「사학징의」를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이도기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는죄목으로 전국 각지에 유배됐다. 이들 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도기를 통해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이 「정산일기」 앞부분에 드러나 있다. #천주교 신자들의 우두머리 이도기는 자신의 이름이 근방에 널리 알려지자 칠갑산을 넘어 정산으로 피신, 한 옹기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전교로 이 마을 사람들도 모두 입교했다. 그렇지만 그의 전교는 그곳에서 멈춘다. 1797년 정사박해가 시작되자 인근에 김이라는 성을 쓰는 외교인이 그를 천주교 신자들의 우두머리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겁을 먹은 아내는 도망가기를 권했지만, 그는 자신의 처신이 걸림돌이 돼 신입 교우들이 넘어질 것을 염려해 이를 거절하고 집에 남았다. 아내 권고를 마다하고 정산에 머물던 그는 1797년 6월 8일 체포된다. 포졸들은 그의 집을 뒤져 십자고상과 천주교 관련 서적 몇 권을 찾아낸 뒤 인근 숲속으로 끌고가 매질을 하며 주문모 신부 은신처와 동료 신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닦달했으나 헛일이었다. 정산현감도 고상과 책을 살펴보고 그에게 신앙의 스승과 제자들을 대라고 다그쳤으나 역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배교를 하라는 매질과 벼슬을 주겠다는 회유가 이어졌으나 그는 정산감옥과 장터에서 '한결같이'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했다. 심지어는 배교를 강요하는 현감 앞에서 용감하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인정에 끌려 마음이 약해질까 싶어 자녀들이 감옥에 면회오는 것을 막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다. 이에 그를 회유하지 못한 현감은 그를 체포한 지 1년을 막 넘긴 1798년 6월 12일 무수한 매질 끝에 그를 죽였다. 그 장면이 정산일기를 통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6월 10일 아침 포졸들이 와서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됐다고 알려주자, 이 바오로는 기쁨에 넘쳐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이윽고 포졸들에게 끌려가 정산 형장에 다다른 그는 그곳에서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는다. 주변에 모인 미신자들까지도 이 가혹한 형벌에 가세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배교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하례하나이다'하고 외쳤다. 이 바오로는 여러 차례 실신했고, 다리가 부러지기까지 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는 버려진 채로 남겨졌다. 이틀 뒤 저녁 무렵, 정산현감은 그의 죽음이 궁금했는지 가서 살펴보고 '죽지 않았으면 아주 죽이고 오라'고 명했다. 포졸들은 이 지시에 따라 그의 몸을 짓이겼다.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가 순교하던 날 밤 큰 광채가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유해는 정산현감의 명에 따라 묻혔는데, 7~8일 뒤 정산 인근에 사는 교우들이 그 시신을 비밀리에 발굴해 자신들이 살던 마을로 안장했다." #올곧은 신앙과 성모신심 돋보여 「정산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이도기의 믿음살이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에 대한 신심, 철저한 성모신심으로 요약된다. 옥중에서도 그는 현실을 뛰어넘어 천주를 뵙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고, 마지막 심문 때 극도의 고통 중에 있음에도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를 부르며 늘 천주 곁에 머무르려 했다. 옥중생활과 고난 또한 예수님과 성모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통해 이겨냈다. 「정산일기」라는 짧은 필사본은 그가 지녔던 올곧은 신앙과 지극한 성모 신심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정산일기 이도기의 삶을 기록한 전기다. 시기별로 그의 삶을 기록했기에 '일기'라는 표제를 붙였지만, 정확히는 일기가 아니라 전기다. 흔히 책 제목은 아호에서 따와 붙이지만, 「정산일기」라는 제목에 나오는 '정산'은 호가 아니라 그가 신앙을 뜨겁게 증거하고 순교하기까지에 이른 마을 이름이다. 「정산일기」를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는 최근에 낸 「정산일기」 해제를 통해 "내용상 이도기의 부인이나 그 후손들이 속한 공동체 구성원 중 하나가 구술(口述)을 종합해 엮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그러기에 「정산일기」는 상당부분 부인이나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손들의 구술을 통해 집필된 뒤 필사되는 과정을 거쳐 내용이 첨삭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집필 시기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블뤼 주교가 1854년 편지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미뤄 1830년대 이전에 저술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마지막 필사본은 1882년 경기도 연천에서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발견 혹은 헌정된 것으로, (재)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돼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10.18
![[성경 속 상징] 57- 비둘기- 초대교회부터 순결과 희망 나타내](//cpbc.co.kr/CMS/newspaper/2009/08/rc/306683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57- 비둘기- 초대교회부터 순결과 희망 나타내비둘기 하면 '평화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비둘기는 극한지역,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을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한다. 구조(區鳥), 시조(市鳥), 도조(道鳥) 등 전국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비둘기를 상징새로 삼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6월 환경부가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 비둘기를 포획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비둘기 알 수거, 먹이 공급 차단 등으로 개체 수를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비둘기 배설물은 건축물, 철탑과 전선을 부식시키며, 떨어진 깃털과 함께 온갖 병원균의 원천,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서울 도심에 서식하는 집비둘기는 약 100만 마리로 추정되며, 대부분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행사용으로 들여온 것이 무서운 속도로 번식해 현재와 같이 늘어났다고 한다. 인류가 있는 곳에 비둘기가 있었고, 수천 년 전부터 비둘기는 인간의 좋은 친구였다. 식탁에 닭고기가 오르기 전부터 비둘기는 중요한 식량이었다. 비둘기는 다른 애완 조류와는 달리 멀리서도 집을 찾아가는 귀소 본능이 있다. 비둘기를 전쟁에 전서구(傳書鳩)로 이용하게 되면서 전쟁 판도를 바꾸고 통신 혁명을 이뤘다. 고대문명은 비둘기를 숭배했다. 수메르인에게 비둘기는 신의 사자였다. 그리스 로마에서는 사랑, 생명,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중국에서도 비둘기는 장수, 신의, 질서, 효행의 상징이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마르 1,9-10). 성경을 주제로 한 성화에도 비둘기가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희생제물을 위한 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을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바치라고 했다. "날짐승 가운데에서 주님을 위한 예물을 골라 번제물로 바치려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가운데에서 예물을 골라 바쳐야 한다"(레위 1,14). 비둘기는 예루살렘 성전 구내나 뜰에서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사람들과도 친숙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둘기와 비둘기 새끼는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제물이었다(레위 5,7).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에도 부모는 이 노점에서 비둘기를 사서 하느님께 바쳤을지 모르지만 후년에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서 이런 비둘기 장수를 쫓아냈다(요한 2,16).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라고 당부하신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이처럼 비둘기는 순박함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또한 비둘기 울음소리는 슬프게 들리기에 불쌍한 인간의 슬픔을 비둘기 소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저는 제비처럼 두루미처럼 울고 비둘기처럼 탄식합니다. 위를 보느라 제 눈은 지쳤습니다. 주님, 곤경에 빠진 이 몸, 저를 돌보아 주소서"(이사 38,14). 비둘기는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결과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조은일2009.08.18
![[성경 속 상징]58-별- 밤하늘 별은 하느님 위엄의 증거](//cpbc.co.kr/CMS/newspaper/2009/09/rc/308106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58-별- 밤하늘 별은 하느님 위엄의 증거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는 사극이다. 특히 한 드라마는 별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극의 긴장도를 높인다. 미개한 민족은 때때로 일어나는 일식ㆍ월식을 두려워해 전쟁ㆍ전염병ㆍ기근 등의 전조라고 믿었다. 별은 예로부터 신비한 존재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유명하다. 원시시대 인류에게 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들은 모두 정령적 존재였고, 때로는 신이기도 했다. 바빌로니아 설형문자에서 신이 별 모양인 것도 이러한 사실을 나타낸다. 호주 원주민은 강자가 죽으면 큰 별이 되고, 약자가 죽으면 작은 별이 된다고 믿는다. 에스키모는 별을 조상이 환생한 것 또는 물고기나 짐승이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서양 천문학은 점성술을 모태로 생겨났다. 별의 이동을 자연력 및 농사철을 판단하는 데 이용했으며, 항해자와 여행자가 방위를 판단하는 데 별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동양과 서양의 천문지식이 발전했다. 특히 별과 별자리 기원에 관해서는 신화가 많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 신화가 가장 풍부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별은 자주 거룩함이나 영원성, 불사불멸, 희망 등을 상징한다. 세계 여러 신화에서는 특정한 별이 신과 결부돼 영웅이나 성인 등 신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것으로 나타난다. 별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성술의 신념도 별의 힘을 신의 의지로 관념화하는 데서 연유한다. 점성술에서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것을 지배하는 별에 의해 정해진다고 믿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이란 곧 별의 순회인 것이다. 바빌론이나 앗시리아 종교에서 별은 신적 세력들의 계시로 나타났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하늘의 별들에 나타나는 천상 신들 사이에서의 사건과 지상 사건 사이에는 대응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등장했고, 이는 점성술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밤하늘의 별은 하느님 위엄의 증거이다.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을 지어 주신다"(시편 147,4). 별은 하늘의 거룩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늘의 아름다움은 별들의 영광이고 별들은 주님의 드높은 처소에서 빛나는 장식이다"(집회 43,9). 또한 하느님께서는 별을 약속의 상징으로 보여 주셨다.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요셉의 꿈같은 경우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절을 하더군요'"(창세 37,9). 신약에서 하느님 의지를 나타내는 별의 출현은 중요한 일의 징조가 되기도 했다. 베들레헴의 별은 구세주 탄생을 예고한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마태 2,2). 사도 바오로는 별을 선택받아 부활하는 사람의 비유로 이용하고 있다. "해의 광채가 다르고 달의 광채가 다르고 별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별들은 또 그 광채로 서로 구별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1코린 15,41-42). 그리스도교 석관의 조각이나 성물 등에서 별은 영원한 축복을 상징한다. 교회 미술에서 별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기도 한다. 조은일2009.09.01
"평화방송.평화신문 경찰청 협약 실종경보""치매노인 실종경보"황월 할머니△황월(여) △나이 : 85살 △실종일시 : 2010. 7. 2 △실종장소 : 경기 수원 △특징 : 키 160㎝, 몸무게 50㎏, 보통 체격, 백발 컷트 머리, 왼쪽 입술 부위 사마귀, 틀니 착용에 구부정하게 걸음. 실종 당시 꽃무늬 티셔츠에 검정 몸빼바지 착용. △박종규(남) △나이 : 70살 △실종일시 : 2010. 7. 6 △실종장소 : 경북 포항 △특징 : 키 178㎝, 몸무게 70㎏, 보통 체격, 반백색 컷트 머리, 쌍커플이 진함, 손목에 작은 흉터, 검정색 작은 가방을 목에 걸고 다님, 실종 당시 가방 안에 성경책ㆍ장로 수첩 있음.백영민2010.07.20
![[성경 속 상징]59-물- 소생케 하는 힘이나 하느님 은총](//cpbc.co.kr/CMS/newspaper/2009/09/rc/309663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59-물- 소생케 하는 힘이나 하느님 은총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물은 인간 생명을 위해서나 동식물을 위해서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초기 문명은 물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곳에서 발달했다. 예로부터 물에는 성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또한 옛날 사람들은 물에는 몸과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영적 위력이 있다고 믿었다. 성경의 땅인 팔레스티나 지역은 물이 귀하다. 북쪽에 갈릴래아 호수가 있고, 거기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요르단 강이 있다. 그러나 이 강은 비가 얼마 내리지 않고 요르단 계곡을 관통해 사해(死海)로 흘러든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이 살던 곳은 주로 이 계곡의 서쪽 산악 지방이었다. 다른 하천들도 규모가 작고, 많은 하천이 우기에만 물이 있다. 성경에서 물은 생명의 원천, 소생케 하는 힘이나 하느님 은총의 상징한다. 또한 성경에서 물은 정화의 의미도 지닌다. 그래서 시체를 만지거나 해서 부정을 탄 사람은 잿물에 몸을 씻어 부정을 벗어야 했다(민수 19,1-22). 물이 귀한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물을 얻는 문제는 농사짓는 사람들과 양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분쟁의 핵심이었다(창세 4,2). 물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노아의 홍수에서 보듯이 심판을 상징하기도 한다(창세 7장). 하느님께 불충실할 때 가뭄이나 홍수가 징벌의 도구로 자주 등장한다(1열왕 17,12).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늘은 비를 내리지 않아 땅을 메마르게 한다(신명 11,17). 그러나 물은 무엇보다 더러운 것을 씻어 청결하게 한다(에제 16,4-9). 이런 물의 사용은 손님을 접대할 때 주요한 관습의 하나였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창세 18,4). 신약에서 물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명수이다.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1코린 10,4). 그리스도 자신이 영원한 생명의 물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물의 상징적 의미는 그리스도교 신자 세례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세례는 신체가 아니라 영혼과 양심 그 자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1베드 3,21). 이처럼 생명수로서 물의 상징적 의미는 세례 안에서 아주 충만하게 표현된다. 세례의 물을 통해 신자들은 영혼의 죄를 씻어 버리고 그리스도 자녀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세례 때에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은 세례를 받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로마 6,3)조은일2009.09.15

제1회 생활성가포럼-우리시대 생활성가를 말한다생활성가 공식 담론 자체가 큰 수확 '우리시대 생활성가를 말한다'를 주제로 11월 26일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에서 열린 제1회 생활성가 포럼 현장 열기는 뜨거웠다. 그동안 교회 내에서 생활성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만큼 생활성가를 두고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쏟아졌다. 특히 포럼 참가자들은 미사 전례에서 생활성가를 사용하는 데 있어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제시한 전례헌장 「거룩한 공의회」(1963)와 「성음악훈령」(1967)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지만 사목적, 음악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의견이 엇갈렸다. 또 생활성가라는 용어사용에 있어서도 생활찬미가,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동시대 교회음악) 등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됐다. 참가자들은 "논의된 문제들이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지만 교회음악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활성가와 관련된 문제를 공식적으로 담론했다는 것 자체가 큰 수확"이라며 "생활성가가 한국 교회음악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포럼 주요내용 요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제1회 생활성가포럼에서 생활성가 가수들이 노래하고 있다.생활성가와 전례음악 '생활성가의 전례음악적 접근'을 발표한 김종헌(대구대교구) 신부는 "한국 교회음악이 전례성가와 비전례성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세속음악과 다를 바 없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며 생활성가 역시 전례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곡과 사용될 수 없는 곡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신부는 "성음악훈령에 따르면 전례문과 성경을 인용해 곡을 썼거나 찬미가를 만들었다면 이는 어떤 형식이든 관계없이 전례음악으로 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그 음악이 찬미와 감사의 내용을 담아야 하고 공동체 기도와 전례행위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로제리오)씨는 "성가라는 장르를 교의적 해석에만 얽매여 규정하기보다 새로운 성가형식을 고려해야 한다"며 "성경이나 전례 내용이 아니더라도 복음적 내용을 담고 있거나 영성을 추구하는 내용이 담긴 성가를 전례에 사용해도 좋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민경철(광주대교구) 신부 역시 "많은 이들에게 신앙적 은총과 감동을 주는 CCM이 전례음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CCM에 대한 편견과 막연한 거부감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성렬(한국세실리아 성음악협회 임원)씨는 "누가 봐도 미사전례에 쓰일 수 없는 곡들이 미사 때 불리는 것은 교회 구성원들이 성음악과 전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생활성가 가수든 성가대원이든 교회음악을 하는 이들이라면 전례헌장과 성음악훈령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생활성가 용어정의 포럼 참석자들은 생활성가 용어를 정립하는 데에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대부분 생활성가가 CCM의 한 종류라는 데는 동의했다. 현정수(수원교구) 신부와 김건정(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성음악분과위원)씨는 한국천주교 성음악지침 21항을 언급하며 "CCM은 복음성가, 생활성가, 영가, 젠 성가, 떼제 성가 등 현대에 불려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동(同)시대 교회음악"이라고 말했다. 민경철 신부는 "생활성가가 CCM이란 용어로 불리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종헌 신부는 "전례에서 사용되는 찬미가는 찬미가라고 부르고, 전례에서 사용될 수 없는 곡은 생활찬미가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김 신부는 "이는 생활 속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모임에서 노래하고 신자 간 친교를 돕고 선교를 위해 부르는 찬미가를 뜻한다"고 설명했다.생활성가 활성화를 위한 제언 ▲주성렬씨: 미사곡에 쓰일 수 없는 곡이 미사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 차원의 행정적 장치가 필요하다. ▲현정수 신부: 생활성가에서 전례성가와 비전례성가를 구분해 전례성가로 편입될 경우 교회 인준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김민수(서울대교구) 신부: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생활성가 콘텐츠를 다양화해야 한다. 신자들 생활문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콘텐츠화시켜 디지털문화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배상희(대구대교구) 신부: 연주자와 전례담당자, 음향기사 등을 양성하는 교회음악 관련 전문교육기관을 만들고 장기적 교육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손다니엘라(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생활성가를 교회문화의 토착화라는 측면에서 더욱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신상옥씨(생활성가 가수): 이제 생활성가는 일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각 교구와 미디어 매체에서 생활성가를 보급하려는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이지혜2010.11.30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대구대교구(중) - 100주년 기념사업](//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9061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대구대교구(중) - 100주년 기념사업 2차 시노드 개최ㆍ대성당 건립 등 새 도약 발판 마련 내년 봄 교구 설정 100주년을 앞둔 대구대교구는 '다시 새롭게 2011'를 표어로 내걸고 새로운 세기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새 시대 새로운 복음 정신으로 100주년을 맞기 위해 개인과 공동체의 내적 쇄신과 더불어 도약을 꾀하고 있다. 2008년 1월 교구 설정 100주년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100주년을 향한 준비 신호탄을 쏘아올린 교구는 3년간 성찰(2008)ㆍ비전(2009)ㆍ도약(2010)의 해를 지내며, 내적 결실을 위한 은총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2월에는 홍보ㆍ영성ㆍ재정ㆍ생명사랑 나눔ㆍ시노드ㆍ대성당ㆍ100년사 등 7개 분과로 구성된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본부를 출범시켜 교구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100주년을 앞두고 최근 새 교구장을 맞은 교구는 지금까지 추진해오던 △제2차 교구 시노드 △100주년 기념 대성당 건립 △100년사 편찬 등 세 가지 기념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지난 2월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본부 출범식 후 각 분과 위원들과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가 성모당 앞에서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숫자 100을 만들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제2차 교구 시노드 교구는 1997~1999년 '함께 가자 생명의 길로!'를 지표로 제1차 시노드를 개최했다. 그 결과로 '친교의 교회'를 구현하고자 본당 조직을 재정비했고, 소공동체 운동을 교구 사목방향으로 설정했다. 교구는 교회 쇄신을 도모한 1차 시노드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2차 시노드를 개최키로 결의했다. '새 시대, 새 복음화'를 지표로 삼은 제2차 교구 시노드는 1차 시노드 정신을 심화하고, 구체적 현안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교구는 지난해 4월 △새 복음화 전망 △성숙한 교회 공동체 실현이라는 두 의제를 선정하고, 주제별 연구위원회로 이뤄진 연구위원단을 구성했다. 시노드 의제에 포함된 주제는 '젊은이 복음화' '새 시대 선교'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 관심과 배려' '본당 공동체' '교구와 대리구 및 사제생활' 등이다. 시노드는 청소년과 청년 사목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냉담교우 및 예비신자 관리 방안을 비롯해 소공동체 운동을 점검하는 한편 새 시대 사목 환경도 조망할 예정이다. 시노드 준비위원회는 본당별 토론마당 및 세미나,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의안 작성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과 시노드 본회의에 상정할 의안 작성을 마무리했다. 현재 시노드 본회의 운영을 위한 지침서를 작성하고 있으며, 조만간 대의원을 선출해 내년 봄에 본회의를 개막할 예정이다. ▨100주년 기념 대성당 건립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범어동성당 터(2만2000여㎡)에 건립될 100주년 기념 대성당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지난 100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립 기금 봉헌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신앙을 다지는 기념비적 사업이다. 대성당은 교구 성유축성미사, 사제서품식 등 중요한 전례기능을 수행할 공간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교구민과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개방할 계획이다. 2000석 규모 대성당과 소성당ㆍ대강당ㆍ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교구는 내년 상반기에 설계를 확정한 뒤 하반기에 첫 삽을 뜰 계획이다.▨교구 100년사 편찬 교구의 한 세기 역사를 집대성할 「교구 100년사」는 자료 수집 및 초안 작업을 끝내고 정리 단계에 있다. 내년에 발간되는 「교구 100년사」는 연대표ㆍ화보집ㆍ통사ㆍ본당 발전사 등 4개 장으로 이뤄졌다. 신자들은 교구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연구자들은 전문적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구사를 주제별로도 정리했다.▨영성ㆍ생명사랑 나눔 운동 이 밖에도 하느님ㆍ이웃ㆍ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자는 '은총의 100주년 1ㆍ3운동'을 펼치고 있다. 신앙생활 정착을 위해 매일 성경쓰기와 기도, 희생과 봉사, 절제와 극기를 실천하자는 운동이다. 100일 기도 봉헌과 성모당 릴레이 순례, 말씀의 생활화를 위한 '성경 암송 발표대회'등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는 △장기기증 운동 △해외 극빈국 아동 결연 사업 △한끼 100원 봉헌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교구 사무처장 하성호 신부는 "세속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신앙인들이 세속화된 모습으로는 사회를 복음화할 수 없다"며 "10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신앙인들이 먼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신앙을 쇄신하고 새로운 교회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cpbc2010.11.30

성탄 특집 -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당 순례"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별에 대한 추억과 희망을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을 것이다. 항상 그곳에 있지만 없는 듯하고 어느 순간 밤하늘을 보면 반짝임으로 교감하는 별. 숱한 전설과 슬픔을 품고 순수와 용기, 희망을 비쳐주는 별은 인생을 서정에 물들게 하는 참 고마운 존재다.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밤인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 탄생 별을 보며 더없이 기뻐한 동방 박사들처럼 '천상의 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인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당을 지면을 통해 순례한다.▨ 다윗 왕이 태어나 자란 고향 "Hic de Virgine Maria Jesus Christus Natus est."(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놀랍고도 복된 문장이다. 이 말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성당이 바로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당이다. 이 성당은 구세주 탄생을 기념해 매일 성탄 미사가 끊이지 않고 봉헌되고 있으며 하루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예수 탄생 동굴로 몰려와 별자리에 손을 얹고 그리스도를 경배한다. 예수님 탄생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8km 떨어진 언덕 위 작은 마을이다. 오늘날 '베이트람'이라 불리는 베들레헴은 구약시대에 한때 '에프라타'로 불렸다. 베들레헴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죽음(창세 35,16-20)과 관련해 창세기에 그 이름이 나올 만큼 아주 오래된 도시로 다윗 왕이 태어나 자란 고향(1사무 16,1-16)이기도 하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에 태평성대를 이뤄줄 메시아가 장차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미카 5,1)으로 기대했고, 신약성경은 그 예언이 성취됐음을 선포하듯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마태 2,1;루카 2,4-7)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탄생기념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이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와서 예수님 탄생지로 전승돼 온 동굴 위에 지어 339년 5월 31일 봉헌한 성당이다. 그러나 이 성당은 510~529년 사이 화재로 소실됐고, 성당 중앙 통로 바닥의 모자이크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지금의 예수탄생기념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재위 527~565)가 531년 완공했다. 1500년 가깝게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성당이다. 지금의 요새형 성당 외형은 12세기 초 십자군이 베들레헴을 탈환한 후 재보수했다. ▨ 한 믿음으로 평화가 넘치는 곳 이 성당이 이슬람에게 피해를 입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성당 정면에 있는 모자이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인 조상들 복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군은 이 모자이크를 보고 너무나 감동해 성당을 허물지 않고 참배했고, 이스라엘을 점령한 페르시아 오마르 칼리프도 638년 이 성당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코란에 동정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종이며 예언자인 예수를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낳았다고 하는데, 이 올리브 나무가 바로 베들레헴에 있다는 이슬람 전승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황금 모스크와 헤브론 성조 사원을 순례한 후 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당를 방문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그리스도인, 무슬림 구분없이 오직 한 믿음으로 평화가 넘치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곳 성당이다. 이 성당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예수 탄생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각각 소유권을 갖고 있다. 중앙 제대 왼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오른쪽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다. 예수 탄생 동굴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지만, '예수 탄생 별'이라 불리는 동굴 바닥의 은색 별은 가톨릭에서 관리한다. 또 예수 탄생 동굴에서 3~4m 물러서서 두 계단을 내려가면 '구유동굴'이 있다. 아기 예수를 구유에 눕힌 곳이라고 하는 이 곳과 '무죄한 어린이들의 경당', '성 요셉 경당'은 가톨릭 소유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가 하나되기를 희망하셨지만 당신의 탄생지조차 세 교회의 소유로 쪼개져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콘크리트 장벽에 갇힌 베들레헴 성당 왼편에는 188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세운 근대식 건축물인 '가타리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에서 매년 성탄 자정 미사를 봉헌한다. 가타리나 성당 지하에는 예로니모 성인이 34년간 은거한 동굴이 있다. 성인은 이 곳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완간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불가타 역본'이다. 오늘날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콘크리트 장벽에 갇혀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장벽에는 이스라엘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낙서들이 있다. 그 중 "우리의 육체는 가둘지언정 정신은 가둘 수 없다"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또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처지를 사나운 사자의 입에서 무참히 죽어가는 비둘기 모습으로 표현한 벽화가 가슴을 쓰리게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베들레헴을 빠져나오면서 복음서를 편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0-14).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이길재2010.12.21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원주교구 - 교구장에게 듣는다(김지석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0/07/rc/342508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원주교구 - 교구장에게 듣는다(김지석 주교)"중장기 사목 2단계, 성체신심 중심으로 자신을 성화" 원주교구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를 3단계로 나눠 교구 중장기 사목 계획을 세우고 교구 설정 50주년(2015년)을 준비하고 있다. 1단계 '우리의 터전인 가정, 이웃, 환경(2006-2008)'을 마치고 2단계 '우리의 교회(2009-2011)'를 추진하고 있는 원주교구는 2010년 사목교서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성서와 함께하는 해'를 사목지표로 제시했다. 교구장 김지석 주교에게서 교구 중장기 사목 계획의 배경과 원주교구 현황 등을 들어본다.▲2015년이면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습니다. 50주년을 맞아 교구 중장기 사목 계획을 세우셨는데요, 전체적 틀과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5년 교구 40주년을 지내면서 새로운 5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3단계의 교구 중장기 사목 계획을 세웠습니다. 1단계는 우리 가정과 이웃, 환경에 초점을 맞춘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2단계에서는 봉사하고 성경을 늘 가까이하면서 성체신심을 중심으로 자신을 성화하는 해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후 3단계(2012-2014)에서는 특별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사목에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이후 2015년에는 교구 100년을 향한 시작의 해를 맞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올해 사목지표를 '성서와 함께하는 해'로 정하셨습니다. 공부에 왕도가 없다지만 성경을 가까이하고자 할 때 실천하기 쉬운 방법은 없을까요? "가정에 성경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만을 위한 성경이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책도 책꽂이에만 꽂혀 있으면 쉽게 꺼내 볼 수 없습니다. 성경 필사나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자신만의 성경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가까이하다 보면 결국 그 말씀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성경말씀에 따라 생활할 수 있습니다." ▲2009년 사목교서에서 특별히 새터민과 결혼이민자를 위한 사목에 힘쓰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이들에 대한 사목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까? "과거에는 교구에 이주민, 결혼이민자 수가 적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처할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단일민족'이라며 우리 것만 챙기는 자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들의 고유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이 우리 고유 문화와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아직까지 커다란 사목적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부족한대로 우리는 사회적으로는 물론 신앙인으로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주교구는 교세에 비해 사회복지 활동이 매우 활발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대 교구장이신 지학순 주교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목에 주력하셨습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최기식 신부와 많은 이들 도움으로 더욱 확대됐습니다. 교구의 관심과 사제들 노력으로 이제 교구 사제 100명 가운데 10%가량이 사회복지 전담 사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라가 할 일도 있지만 사회에 봉사하는 것 역시 교회의 가장 큰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주교구는 농촌지역이 넓은 교구 특성상 공소도 많습니다. 신앙의 못자리인 공소사목에 대한 교구장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원주교구는 지역은 넓고 인구는 적은 게 현실입니다. 도시 몇 군데 외에는 신자도 적고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공소 회장들과 봉사자들이 열심히 공소 공동체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에 교구는 몇년 전부터 은퇴 수녀들이 공소에 와서 생활할 수 있도록 파견해줄 것을 각 수도회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공소에서 수녀들이 기도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모습 자체가 선교가 되고 신자들에게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둔내ㆍ청일공소 등은 수녀들이 상주하면서 신자가 늘고 공동체가 커져 본당으로 승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 환경, 대북관계 등 여러 현안으로 사회가 분열되고 시끄럽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이와 같은 사회 문제에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지만 윤리 문제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보려면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가르침에 부합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교회의 절대적 의무입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끝으로 교구민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원주교구는 모든 면에서 작은 교구입니다. 교우가 전부 모여도 100명 내외인 공동체도 많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장점도 있습니다.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가족처럼 지내고, 사목자는 신자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까닭에 교우 중에는 이곳을 떠나도 마음은 늘 함께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자들도 교구에 대한 변하지 않는 자긍심을 갖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원주교구 현황 및 약사▲현황 원주교구는 강원도 원주ㆍ태백ㆍ삼척시 전역과 동해시 일부(북삼ㆍ북평ㆍ삼화ㆍ송정ㆍ천곡동), 영월ㆍ정선ㆍ횡성군 전역과 평창군 일부(평창읍ㆍ대화ㆍ방림ㆍ미탄면), 충청북도 제천시와 단양군 등 5개 시, 5개 군을 관할한다. 관할 면적은 8186㎢. 성직자는 100명(주교 1명 포함)이며, 본당과 공소는 각각 44곳이다. 2009년 12월 31일 현재 신자는 6만8892명(관할지역 인구 82만724명)으로 전년에 비해 1.8% 증가했고, 인구 대비 신자 비율(복음화율)은 8.38%다. 연령대별로는 △1~6살(1440명) △7~19살(9570명) △20~39살(1만9257명) △40~59살(2만3868명) △60~79살(1만2285명) △80살 이상(2472명)으로, 20살 미만 신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교구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유치원 12개와 진광중ㆍ고등학교가 있으며, 의료기관은 가톨릭병원이 있다. 원주교구의 가장 큰 특징은 교구 규모에 비해 사회복지 사업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는 점이다. 종합사회복지관 7개를 비롯해 아동ㆍ청소년ㆍ장애인ㆍ여성ㆍ다문화가정ㆍ어르신 복지시설 등 크고 작은 사회복지 시설 6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성지로는 최양업 신부 묘와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 우리나라 최초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있는 배론성지가 유명하다. ▲약사 원주교구는 1965년 3월 22일 춘천교구에서 분리되고 6월 29일 초대 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교구장에 착좌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본당은 13곳, 사제는 20명(한국인 9명, 골롬반외방선교회 11명), 신자는 1만3390명이었다. 관할지역 대부분이 산악 및 어촌, 탄광촌 등으로, 문화ㆍ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곳이었다. 교구는 1966년 신협 운동을 전개하고 원주가톨릭센터를 세우는 한편 교구 내 문맹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신자는 물론 지역주민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1965년 막을 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 원주교구는 1970년대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야할 길을 잃지 않았다. 교구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1971년 10월 5일 교구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 1500여 명이 원동주교좌성당에 모인 가운데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특별 미사'를 봉헌했다. 이후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지학순 주교의 체포는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됐고, 1970년대 원주교구가 중심이 된 일련의 사건들은 원주를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만들었다. 교구는 또한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1972년 남한강 유역 집중 호우로 44억 원이라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자 국제까리따스에 원조를 요청한 교구는 '원주교구 재해 대책 사업위원회'를 구성, 지연ㆍ혈연ㆍ종교를 초월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데 온갖 정성을 쏟았다. 1993년 6월 제 2대 교구장에 착좌한 김지석 주교는 거시적 관점의 중장기 사목 및 선교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백영민 기자 cpbc2010.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