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인본주의, 병든 시대문명 건강하게 되살릴 '힘'가톨릭대 '제1회 버나드 원길 리 가톨릭 인본주의' 국제포럼 가톨릭대가 6일 개최한 제1회 버나드 원길 리(Bernard Wonkil Lee) 가톨릭 인본주의 국제포럼은 고 이원길(베르나르도, 1917~2001)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의 삶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인간 삶의 참된 가치와 진리를 구현하는 '가톨릭 인본주의'가 추구하는 방향을 짚어보는 뜻깊은 자리였다. ▨ 버나드 원길 리의 인본주의 정신이덕효 신부 부친 고 이원길 옹의 생애를 설명한 다섯째 아들 이덕효(미국 워싱턴대교구) 신부는 "아버지는 자기 희생과 자신을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사신 분"이라며 "언제나 적극적이셨고 긍정적이었으며, 개척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대째 신앙을 이어온 성가정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사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영향 때문이었다"면서 "아버지가 전 생애를 통해 추구한 것은 가톨릭 인본주의 정신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신부는 "아버지와 같은 세대를 사신 분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지내온 분들"이라면서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느님께 의탁하며 언제나 삶의 희망과 긍정적 마음을 잃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어려운 이웃을 만날 때마다 그들을 도우려 팔을 걷어붙였고, 많은 이가 천주교 신자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신부는 이어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아버지는 4살짜리 저와 가족들, 심지어 키우는 개까지 데리고 매일 아침미사에 참례하셨던 분"이라며 "확고한 신앙인으로서 기도하고 복음을 읽으며, 본당에서 많은 일을 하셨다"고 말했다. 아버지 삶은 사제인 아들이 볼 때도 귀감이 돼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아버지의 인본주의적 생애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성경구절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와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를 들 수 있다"며 하느님께서 아버지에게 천상낙원의 영원한 삶을 허락하시길 기원했다. 장남 이덕선(마태오)씨도 "아버지는 낙천가로서 크든 작든 모든 것에서 행복을 찾은 행복한 분이셨고, 이 세상 삶을 최대한 즐기며 사셨다"면서 "일생을 통해 튼튼한 성가정을 꾸렸고 고향 동네 문맹을 퇴치했으며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 분"이라고 회고했다. ▨가톨릭 인본주의와 가족 '가톨릭 인본주의 관점에서 본 가족공동체의 문제와 복원 가능성'을 발표한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전 교육부장관) 교수는 "가정의 해체를 막으려면 중요 가치인 인간 존엄성과 자유, 주체성, 신앙과 사랑의 실천 등 공동선과 아울러 상실돼가고 있는 것들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21세기 가족의 몰락이라는 충격적 변화는 우리나라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며 "세계 최저 출산율과 무자녀 가정 급증, 독신자 수 증가가 그 증거"라고 한국사회 가정의 현실을 짚었다. 이어 "가톨릭교회는 가정을 모든 사회질서의 원형이자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본다"며 "가정을 고유한 근본권리를 지닌 최초의 자연사회로 여기고 사회생활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사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리려면, 가정 공동체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내다봤다. 문 교수는 또 "가톨릭교회가 '병든 시대문명을 건강하게 되살릴 힘은 결국 가정'이라고 선언했다"며 "사회 전반이 악에 물들어도 가정은 오염되지 않을 수 있는데, 그 까닭은 가정이 고유의 가치 즉,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가정의 고유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신자 개인이 절대자에 대한 의무를 인간사회에서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는 구체화된 행위지침을 교회가 제시할 것을 제안했다. 문 교수는 또 다른 대안으로 가족이 함께 교회 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장했다. 그는 "현재 모든 성당의 미사 관행은 가족을 연령과 학교 급별에 따라 철저하게 분리한다"며 "초중고 대학생이 모두 있는 열심인 집안 신자는 미사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다른 시간에 성당에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이런 관행을 바꿔 9시 미사에 참례한 학생과 부모가 10시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부모가 교사가 돼 가르치면 된다"면서 "또 11시 교중미사 뒤에는 그 미사에 참례한 학생을 모아 학부모가 12시 주일학교를 운영하면 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아울러 문 교수는 "교회가 젊은 청장년층 신자들의 건전한 교회활동과 사교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성가정을 이룰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교회가 좀 더 과감하게 젊은이를 위한 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정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 인본주의와 가족공동체'를 발표한 강완숙(서울대) 박사는 "기존의 차별적 제도와 관습을 깨고 모든 개인의 존엄과 가치에 입각한 사랑과 평등의 공동체적 연대라는 메시지를 전한 예수의 가르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전 지구적 생명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의 이념적 지향으로서 가톨릭 인본주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가톨릭 인본주의와 대학 가톨릭 대학들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과 가정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가톨릭 인본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서강대 신학대학원 이종진 신부는 '가톨릭계 대학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교회의 심장부」(1990)를 인용, "사회정의의 증진은 가톨릭 대학과 다른 대학을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라며 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실천적 사례를 발표했다. 이 신부는 "「교회의 심장부」는 △대학공동체는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어야 하고 △가톨릭 교육은 전인적 형성을 위해 학생들에게 사랑하고 봉사하는 소명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또 더 넓은 세계에 말을 걸어 비록 여론과 마찰이 있더라도 사회의 참다운 선을 수호하는 데 필수적인 불편한 진리들을 말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외국 가톨릭 대학 교수들이 가톨릭 대학만의 이념과 정의 증진이라는 사명을 교육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례를 들었다. 이 신부 발표에 따르면, 예술사를 가르치는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매주 미술관을 찾게 한 뒤 감상문을 한 학기 내내 제출하게 하자 학생들이 '훈련받은 응시자'가 돼 작품에 대한 깊은 인격적 체험을 통해 창조적 배움의 단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과제를 하며 형성된 창조적 관상능력은 영성적 의식, 곧 자비심과 사회정의에 대한 의식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따라서 "우리나라 가톨릭 대학들은 비록 역사는 길지 않을지라도 전통과 이념을 굳건히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비전 수립 △학교의 역사와 사명ㆍ강점과 약점ㆍ희망 등에 대한 폭넓은 대화와 논의 △독서와 평가 △계획 수립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주제로 발표한 폴 코클리(미국 오클라호마대교구장) 대주교는 "가톨릭 인본주의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됐으며,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과 가치가 있다는 확신에 기원을 둔다"며 "가톨릭계 대학은 인간은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사랑을 위해 고귀한 사명을 갖고 창조된 존재라는 사실을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원길(베르나르도) 옹은 1917년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한 이옹은 황해도 여러 곳에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선친이 그가 16살 때 선종하자 연안반도의 작은 어촌마을로 이사했다.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을 내려와 1954년까지 강화군 교동도에서 살았다. 휴전으로 고향에 갈 수 없게 되자 서울에 정착한 이옹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큰아들 이덕선(마태오)씨와 삼남 이덕성(베드로)씨를 따라 1988년 미국으로 이민갈 때까지 문맹자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고, 갯벌을 천수답으로 개간해 수백 가정의 주민에게 농토를 만들어주는 등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았다. 그를 만난 이들은 이옹의 마음 씀씀이와 사랑 실천에 마음을 열어 세 군데에 천주교 신앙촌(공동체)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옹은 은퇴 후 말년을 보낸 미국에서도 다른 이들을 돕는 그의 소명을 펼쳐나갔다. 메릴랜드주 포토맥에 아름다운 수녀원을 지어 성가정의 작은자매수녀회(The Little Sisters of Holy Family)에 기증하는 등 가톨릭 인본주의 실천에 평생을 바쳤다. 이힘2011.10.11

마산교구장 2011년 사목교서 앞으로 3년 동안 마산교구 사목 방향과 지표를 '순교 영성으로 세상의 복음화를!'로 정하고자 합니다. 순교 영성은 일차적으로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순종이자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 영성입니다. 순교는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탄생시키기에 일찍이 떼르툴리아노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고 말했습니다. 순교 영성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강생, 철저한 순종, 십자가 죽음, 이 모든 것이 순교 영성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자기 비움은 이기심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사랑의 증거요 우리로 하여금 겸손과 봉사의 삶을 살게 하는 영성으로 작용합니다. 순교자였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 역시 하느님 뜻과 인간의 본능, 삶과 죽음, 찰나와 영원을 선택해야만 하는 절박한 삶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훌훌 벗어버렸고, 생명뿐 아니라 자신의 뿌리까지 바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처럼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하느님을 증거하는 시대를 살지는 않지만, 세속화된 세상에서 '신앙의 참 진리 수호'라는 소명과 책임은 막중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취미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갈라 2,20)는 고백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서 순교 영성은 출발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시류에 맞는 흐름을 거슬러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산교구는 다섯 분의 시복시성 대상 순교자(구한선 다테오, 신석복 마르코, 정찬문 안토니오, 박대식 빅토리노, 윤봉문 요셉)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교구민 모두가 순교 영성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해줍니다. 생활 속에 내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 바치는 수고와 노력을 할 때 우리 세상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 즉 복음의 빛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교구민 모두가 끝까지 하느님을 증거했던 순교자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순교 영성의 향기가 가득하길 기대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온전하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이러한 순교 영성을 통해 세상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실천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1. 순교하는 마음으로 성경쓰기와 읽기에 동참합니다. 2. 순교 영성 고취를 위한 교육과 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3. 교구 내 다섯 순교자 묘소를 자주 방문하고, 가능하면 도보로 순례합니다. 4. 순교자 현양사업을 위한 후원회의 조직과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cpbc2011.01.18
![[성경 속 상징] 60-나무- 아낌없이 생명 주고 주님 은총 전해줘](//cpbc.co.kr/CMS/newspaper/2009/09/rc/310455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60-나무- 아낌없이 생명 주고 주님 은총 전해줘최근 숲의 효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여가와 휴식을 위한 공간에서 회복과 치유를 위한 공간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휘발성 물질인 피톤치드는 각종 감염 질환과 아토피 피부염 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백나무는 천연 살균제인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나무라고 한다. 나무는 잎의 활발한 광합성 작용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는 자연의 공기정화기 역할을 한다. 느티나무 한 그루는 1년 동안 이산화탄소 2.5톤을 흡수하고 1.8톤의 산소를 방출하는데, 이것은 성인 7명이 1년간 소비하는 산소량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 나무는 숲의 동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고 강우와 홍수 등 재해 위험을 막아주며 가뭄에는 지하수를 공급해 주기도 한다. 여러 해 자란 나무의 줄기는 좋은 목재가 돼 집이나 가구의 재료로도 쓰인다. 예로부터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고 열매를 맺는 나무는 생명의 상징이 됐다. 나무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생물보다 높이 성장하기에 하늘과 땅을 결합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많은 신화에서 나무는 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팔레스티나 지역은 건조한 지역이라 나무가 드물다. 그래서 성경시대에 목재로 건물을 짓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나무는 성경에서 우월함의 상징이 됐고, 백향목, 잣나무 등으로 지은 임금의 궁궐은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이 됐다. 성경에서 나무는 자연과 풍성함을 의미한다. 물가에 심어져 가뭄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늘 푸르른 나무에 대한 묘사에서처럼 생명의 상징이 된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8). 또한 나무는 하느님이 백성들과 동물들에게 은총을 전해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주님의 나무들, 몸소 심으신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이 한껏 물을 마시니 거기에 새들이 깃들이고 황새는 전나무에 둥지를 트네"(시편 104,16-17).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와 생명나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창세 2,9).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라고 경고하신다. 더불어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주셨으니 에덴동산의 나무들은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었다. 구약시대에는 나무에 달려 죽은 이는 저주받은 자라는 오랜 믿음이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인류 구원은 예수님이 지고 가신 나무십자가를 통해 실현됐으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하다. 나무는 또 축복, 선, 건강함의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성경은 하느님 축복으로 새로워진 이스라엘을 열매가 풍성한 나무에 비유하기도 했다(호세 14,5-7). 나무는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며 새롭게 창조된 질서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시편 96,12-13).조은일2009.09.22
![[특집/대림시기]대림1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종호(요나) 수사](//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8122_1.0_titleImage_1.jpg)
[특집/대림시기]대림1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종호(요나) 수사거룩한 부르심을 다시 기다리며... 종신서원 앞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종호 요나 수사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만 찾는 수도생활은 가난과 정결, 순명의 세 가지 복음적 포기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수도생활 영성은 흔히 순교 영성으로 표현돼 왔다. 내년 1월 15일로 종신서원을 하는 이종호 수사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삶의 모범을 찾으며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한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2005년 1월 5일. '칼 끝처럼'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안고 수도원에 들어섰다. 경북 성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과 군대를 거쳐 꼬박 6년을 지켜온 거룩한 부르심, 곧 성소의 결실이었다. 수도자로서 새 삶이 그를 기다렸다. 세상에 대해선 죽고 주님 안에선 살며 공동체 안에선 기도와 노동에 오롯이 전념하는 삶이었다. 이제 지ㆍ청원기 1년, 법정 수련 1년, 유기서원 4년을 거쳐 이종호(요나, 31) 수사는 종신서원을 앞두고 있다. 내년 1월 15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영원히 결속되고 하나의 몸이 된다. '죽을 때까지' 서원과 봉헌을 공동체 안에서 드러내고 완성하는 수도승으로서의 삶이다. 그래서 이 수사는 올 대림시기가 각별하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강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에 마음이 바쁘다. 12월 13일부터 종신서원일인 1월 15일까지 '대수련'이 예정돼 있어 마음이 더 설렌다. 정식으로 베네딕도회원으로서 새롭게 태어남이 예수님의 탄생날인 성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기쁨으로 그렇다고 해서 종신서원으로 모든 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공동체와 결합돼 지체가 되고 공동체와 한 몸을 이룸으로써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기쁨을 안고' 종말론적 공동체를 이뤄나갈 것이기에 힘을 낸다. 이 수사의 소임은 유리공예실에서 빛의 예술인 유리화를 만드는 일이다. 유리화는 무려 900여 가지 유리 색깔 가운데서 제각각인 현장 상황에 맞는 색깔을 찾아내고 실측과 디자인, 조립, 납땜을 거쳐 설치를 마무리하는 제작 과정을 거친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어찌보면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성당 위치와 일조량이 어떤지, 주위 환경이나 햇볕 강약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하고 그때그때 현장에 맞는 유리 색깔을 찾아내고 디자인하고 납틀에 끼워넣어 조립하고 납땜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성당에 유리화 설치를 마치고 나면 뿌듯하기 그지 없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마음 밭에 성경 말씀 뿌리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만이 전부는 아니다. 수도자로서 노동은 수도승 생활의 일부분이자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공동번역 성서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1,21)라는 성경 말씀을 항상 마음 밭에 새기며 공동체 안에서 서원과 봉헌의 삶을 살고자 한다. 이 수사는 기존 소임과 함께 지난 3월 말부터 서울대 인문대 종교학과에서 주관하는 종교과 중등교원 양성소에서 종교교사 교육 과정을 밟고 있다. 매주 목요일 서울분원에 올라와 사흘간 공부를 하고 주말이면 다시 왜관수도원으로 내려가 기도생활과 노동에 전념한다. 하기는 수도생활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새벽 5시면 깨어 독서 기도와 아침 묵상, 아침미사, 식사, 소임, 낮 명상, 낮 기도, 점심, 침묵, 소임, 성체조배, 저녁기도, 성독(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공동 쉼, 끝기도로 이어지는 단순한 삶이다. 매주 목요일이나 주일엔 30분이나 1시간 늦게 기상하는 게 '꿀맛처럼' 달 정도로 공동체생활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 수사는 늘 수도자로서 마음을 '심해처럼' 가라앉히려 한다. 그리고 '삶으로써 증거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공동체 생활은 사실 쉽지만은 않지요. 서로 부딪히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수도생활 가운데서도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욕심과 본성을 버리고, 모난 부분은 깎아내고, 패인 곳은 채우며 형제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이 수사는 그 와중에서 '성직수사'가 아닌 '평수사'로서 삶을 선택했다. 함께 종신서원을 받는 동기 5명 가운데 4명이 성직수사의 길을 선택했고, 그만이 평수사의 길을 간다. "평수사로서 노동하며 사는 게 제겐 무척 큰 행복입니다. 노동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요. 살면 살수록 평수사로서의 삶이 매력이 있어요. 소임은 쳇바퀴 돌 듯하지만 기도와 노동을 통해 날마다 저를 봉헌합니다. 그게 베네딕도회를 선택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종교교사 교육을 받고자 아침 일찍 수도원을 나서는 이 수사의 얼굴엔 종신서원을 고대하는 마음,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모를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다리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1.23
가계치유, 신자 현혹하는 미신행위다 [신간] 죽은 이를 위한 올바른 기도-가계치유의 문제점 일명 가계치유(家系治癒)라 불리는 이설(異說)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죽음에 관한 올바른 교회 가르침을 제시한 소책자 「죽은 이를 위한 올바른 기도- 가계치유의 문제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발행)이 발간됐다. 가계치유는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유전돼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기도와 미사로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 이설적 행위가 교회 일각에서 나타나 문제가 된 바 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등은 이설이 암암리에 퍼져 나가면서 폐해가 속출하자 3년 전 사목서한을 통해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소책자에 기초해 가계치유의 문제점과 그리스도교 죽음관을 살펴본다. ▶가계치유란 조상의 죄과가 후손들에게 유전돼 육체적ㆍ정신적ㆍ영성적 악영향을 끼쳐 고통과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일부 구절, 즉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대 사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탈출 20,5), "(주님은 조상들의 죄악을)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아들을 거쳐 삼대 사대까지 벌한다"(민수 14,18) 등을 근거로 삼는다. 가계치유가 국내에 유입된 시기는 1990년대 말경이다. 개신교 기성 교단들은 교단 안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이미 이단으로 간주하고 대응한 바 있다. 가톨릭 쪽으로는 미국에서 유입된 관련 서적이 일부 성령쇄신운동 계통의 기도회 등을 통해 신학적 비판 없이 받아들여져 확산됐다. 특히 원인 모를 불행을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 한국적 정서가 이설의 확산을 부추긴 면이 있다. 이 이설로 인해 신자들 사이에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고,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소책자는 "각 교구에서 활동하는 공식 단체의 경우 이미 초기에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설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으나, 교회를 벗어난 기도회나 사적모임을 통해서 지금도 계속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계치유는 명백한 오류다 우선, 가계치유는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잘못된 주장을 펴고 있다. 탈출기 20장 4-6절은 전체적 문맥에서 볼 때, 죄의 대물림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흠숭과 예배를 드릴 것을 강조한 구절이다. 또 이 구절은 "하느님께서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신다"(탈출 20,6)는 내용의 말씀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가계치유 추종자들은 한 사람의 죄가 다른 이들과 공동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죄의 연대성'을 죄악의 대물림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울러 가계치유는 가톨릭교회의 원죄교리에 혼란을 조장하고, 세례성사의 은총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오류다. 이 이설은 인간의 윤리적 죄를 생물학적 유전으로 잘못 적용하고 있다.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고 새롭게 태어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63항 참조)는 교리에도 벗어나 있다. 소책자는 "가계치유 주창자들은 '가계치유를 위한 미사를 자주 봉헌하고 예물을 많이 바쳐야 한다'며 거액의 미사예물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이는 기복적, 주술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설사 후손이 조상의 죄를 안다고 해도 그 죄를 대신 고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릇된 신심 경계해야 종교는 고통과 불행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무조건 고통을 피하려는 기도와 태도는 교회 가르침에 벗어난 것이다. 더욱이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환경 탓,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삶의 주체인 자기 자신은 물론 이성과 자유, 책임을 주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다. 교회는 은총 가운데서 죽은 이는 더 이상 정화(淨化)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곧바로 하느님 품인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쳐왔다. 또 은총의 상태에서 죽었으나 정화가 필요한 이는 그 정화가 끝난 뒤에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은 이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유익하다고 가르친다. 그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다양한데, 이러한 기도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믿고 있는 '성인들의 통공' 교리에 바탕을 둔다. 교회는 매일 미사성제를 거행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며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특히 한국교회에는 오래 전부터 바쳐 온 죽은 이를 위한 위령기도(연도)가 있다. 장례미사와 삼우(三虞)미사를 포함한 위령미사와 기일미사 등은 죽은 이들을 위해 드리는 교회 정성을 잘 보여준다. 소책자는 "그리스도인들은 가계치유와 같은 그릇된 신심을 경계하고, 교회의 소중한 신앙유산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천상 예루살렘을 향한 지상 순례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김원철2010.12.14
[생명 문화] 정의와 생명존중신승환 교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가톨릭대 철학과)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70만부 가깝게 판매됐다고 해서 화제다. 철학 저서가 1000여권 정도 팔리면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로 열악한 독서 환경에서 가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성 판단이 난무하고 있다. 어느 판단이 옳은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라도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이나 정의에 대한 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며칠만이라도 신문을 훑어보면 우리 사회의 불의와 인간에 대한 무시, 생명을 너무도 우습게 여기는 풍조에 개탄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용산 철거민에 대한 강압적 퇴거로 일어난 퇴행적 모습은 물론이고, 수시로 일어나는 인권침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과 급격히 늘어날 뿐 아니라 더욱 열악해지는 비정규직, 개발 위주의 정책 때문에 파괴되는 생태계 등 어느 한 순간이라도 정의가 실현되고 인간의 생명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법을 지키고 공정사회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 권한을 위임받은 곳에서 더 심하게 불의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지 않은가. 민간인 불법 사찰과 양천경찰서 사건, 법을 지킨다는 검찰이 저지르는 탈법과 스폰서 검사 스캔들, 인권위원회 사건 등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퇴행적 사건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더욱이 무자비한 대북정책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극대화되고 있다. 지난 5일 인권주일을 맞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런 현실을 개탄하면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자연환경 보존과 공동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사람의 구원과 생명의 가치 수호에 있기에, 또한 이 세계에 하느님 나라를 재현하기 위해 일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너무도 당연한 담화다. 그런 관점에서 샌델의 저서가 불러일으킨 현상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지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만연한 이 세계, 과학기술문명이 흘러넘치지만 물신주의가 과잉으로 치닫는 문화를 강력히 비판하지 않았던가.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을 징표로 드러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죽음의 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이 끊임없이 투쟁한 것도 정의였지 않은가. 정의와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리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은 다만 생물학적 목숨에 대한 것일 수 없다. 생명은 생물학적이기도 하지만, 인간 생명은 그 이상의 영역을 필요로 한다. 우리 생명은 삶의 지평에서 이뤄지며, 정의로움과 사랑, 평화가 사라지고 그 의미의 세계가 훼손될 때 결코 올바르게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목숨이며 삶이면서, 의미이며 정의며 평화와 사랑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가치를 지킨다고 말한다면 불의한 세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이며,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해야 할 일을 아름다운 말로 치장하는 거짓된 행동일 뿐이다.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가 과잉으로 작동하며 과학기술과 정치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진 사회에서 정의란 단순히 분배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샌델 역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연대, 공동선을 지키고 키워나갈 덕목의 실천에서 정의의 의미를 찾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경제와 성장, 더 많은 풍요로움과 외적 성공을 위해 생명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인간의 삶이 부서지거나 희생돼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가 지닌 지나친 성공위주의 삶과 물질적 풍요로움에 치우쳐진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그대와 나, 우리가 하는 것이다. 언제 하는가. 지금 당장,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 얼굴을 타고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그냥 말이 아니다. 아니 그냥 말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가치, 어떤 신념과 이념도 사람의 존재를 무너뜨리거나, 그 존재 근거를 부정한다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며, 부정돼야하는 것이다. 생명은 목숨이며 삶이다. 생명은 의미이며 가치이고, 평화이며 정의이다. 정의 없이 생명은 생명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생명을 존중한다면, 삶을 파괴하지 말라. 생명을 지키겠다면 삶과 존재를 지켜야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네 삶과 네 자신을 바꾸어라." 존경하는 요한 23세 교황님 말씀이다. cpbc2010.12.14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7) 모세의 하느님 2](//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7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7) 모세의 하느님 2"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스스로 밝힌 당신의 이름, '야훼'가 의미하는 바가 몇 가지 더 있다. '나는 있는 나다'라는 하느님 이름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는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느님은 곧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은 '야훼' 하느님이 약속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약속의 하느님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ㆍ탄생하고 소멸ㆍ죽음을 맞는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보다 나은 희망의 목표와 의의를 제시하고 그것을 이룩해주시는 분으로서 하느님이다. 분명히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은 모세 이전이나 이스라엘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야훼라는 이름은 모세에게 와서 비로소 불릴 수 있었다. 이것은 모세가 이룩한 업적이다. 독창적으로 그 이전 신의 이해를 재구성하면서 고유한 하느님 칭호와 모습을 알려줬다. 모세가 하느님 이름을 계시로 알아낸 업적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업적은 파스카 전례다. 파스카는 이미 유목민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의식이었지만 모세에 의해 의미가 커졌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 "집집마다 양을 한 마리씩 끌어다가 파스카 제물로 잡아 대야에 받은 피를 우슬초 묶음에 묻혀 문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시오. 야훼께서 이집트인을 치며 지나가시다가 문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는 그 문을 그냥 지나가시고 파괴자가 당신들의 집에 들어가 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오. 당신들은 이것을 당신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가게 되거든 이 예식을 지키시오. 당신들의 자녀들이 이것이 무슨 예식이냐고 묻거든 이것은 야훼께 드리는 파스카 제사라고 일러주시오"하고 말했다.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풍습은 다른 유목민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성경이 전하는 바로는 이미 아브라함 시절, 더 나아가 카인과 아벨 시절에도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아브라함의 이사악 제사도 파스카와 연관이 있다.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하고 대답했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하고 대답했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창세 22,1-14). 그로부터 유목민은 오랫동안 파스카 제사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파스카 제사는 자신의 가축들을 전염병이나 맹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길 청했던 제사 의식이었다. 요즘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광우병 등을 보면 유목민에게 돌림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사악 제사가 재산을 잃는 경제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제사였다면 모세에 의한 파스카는 한층 진화된 제사 의식이 됐다. 하루는 모세가 사막에서 목동을 만났다. 목동은 매일 저녁 가장 좋은 우유를 나무 그릇에 담아 하느님께 바쳤다. 모세는 불쌍한 목동을 깨우쳐주고 싶어서 하느님은 순수한 신이시기에 우유 같은 것은 드시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목동은 하느님께서 우유를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돼 실망했고, 모세는 목동을 "하느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았으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고 위로했다. 며칠 후 모세가 외딴 곳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하느님이 나타나시어 "모세야, 사실 네가 틀렸다. 내가 순수한 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동이 나에게 바치는 우유를 그의 사랑의 표시로 항상 고맙게 받아들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느님은 신자들이 정성껏 바치는 예물을 다 받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다만 그 예물을 다른 필요한 사람과 나눌 뿐이다. 삼라만상이 다 주님 것인데 우리가 내는 그 예물이 그분에게 얼마나 소용이 되겠는가? 하느님은 예물을 바치는 정성과 마음을 보신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봉헌했지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제물을 마다하시고 손수 제물로서 양을 마련해 주셨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축복해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마다하시면서, 하느님은 인류를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기꺼이 십자가 희생 제물로 내놓으셨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 큰 사랑을 깨닫기에는 우리 가슴과 머리는 너무 좁다. 파스카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의미가 격상된다. 예수님은 파스카 축제를 유한한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도약하는 신앙의 파스카로 의미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미사가 바로 격상된 파스카 제사다. 오늘 우리가 하지 못한 좋은 일은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영원히 하지 못한 것으로 남는다. 우리가 오늘 한 일은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영원한 것으로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세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 진정한 모세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던 모세 이상의 예언자이심을 고백한다. 모세는 하느님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돌봐 주셨던 부족의 수호신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 주시는 민족의 하느님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구원이란 고통스러운 식민지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리=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7.1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 이모저모-4월 30일 로마 고대 전차 경기장, 전야제복자,우리와 함께 하시리라4월 30일 저녁 로마 시내 고대 전차경기장(Circus Maximus)에서 열린 전야제는 순례자 30만 명이 모인 가운데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추억하고 요한 바오로 2세 제안으로 추가된 묵주기도 '빛의 신비'를 바치는 축제와 기도의 향연으로 진행됐다.순례자 30만 명 한마음 빛의 신비 기도 바치는 축제교황과 인연 맺었던 인물들 회고, 증언으로 절정 이뤄로마 시내 8개 성당서도 철야기도회 열려 시복식 축하 ○…전야제 제1부 '기억의 향연'은 성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 로마교구 합창단이 '그리스도 당신은 제 생명입니다'를 부르며 시작했다. 교구 청년 30여 명은 로마 시민에게 인사하는 마리아 상에 촛불을 봉헌했고, 요한 바오로 2세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이 고대 전차경기장 곳곳에 세워진 6개의 대형 화면을 통해 소개됐다. 화면에 요한 바오로 2세 모습이 등장할 때마다 순례자들은 환호와 함께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제1부 행사의 절정은 요한 바오로 2세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의 회고와 증언이었다. 20년 넘게 교황청 공보실장을 지낸 호아킨 나바로-발스 전 대변인은 "그분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때때로 볼 수 있었는데 주변에는 종이 조각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며 "그 종이들은 수많은 이들이 교황에게 보내온 기도 지향이었다"고 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전구로 파킨슨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된 프랑스의 마리 시몽-피에르 수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을 때에 교황님이 저와 같은 병을 앓으시면서도 텔레비전에 당당하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고 고통 속에서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교황 개인 비서를 지낸 폴란드 스타니슬라오 즈비시 추기경은 "4월 29일 관을 개봉했을 때 마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부활한 것 같았다"며 "교황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찬가로 막을 올린 제2부 '빛의 신비'는 로마교구 총대리 아고스티노 발리니 추기경 주재로 세계 5대륙 성모성지를 위성으로 연결해 묵주기도 빛의 신비 5단을 바치는 형태로 이어졌다. 묵주기도에는 각 단마다 청소년, 가정, 복음화, 민족간 평화와 희망, 교회 등 특별한 지향이 담겨졌다. 또 각 단을 시작하는 주님의 기도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폴란드어 등 6개 언어로 바쳐져 대륙과 민족, 언어를 뛰어넘어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장엄한 장면이 연출됐다. 묵주기도 후에는 모두가 일어나 라틴어로 성모찬송가(살베 레지나)를 함께 부르며 촛불을 높이 들어 전차 경기장은 마치 은하수가 펼쳐진 밤하늘을 연상케 했다. ○…전야제가 시작하는 시각인 4월 30일 저녁 8시에 맞춰 성 바르톨로메오성당, 성녀 아나스타시아성당 등 로마 시내 8개 성당에서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을 위한 철야 기도회가 열렸다.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성경말씀 봉독, 침묵과 성체조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보낸 메시지 낭독 순서로 진행된 철야 기도회에서는 제대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 성화상을 모셔놓고 젊은이들이 세계 각 나라를 상징하는 촛불을 봉헌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장관 이반 디아스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을 맞아 4월 30일 '선교사인 교황'을 주제로 인류복음화성 앞 광장에서 선교 박물관 전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각국 외교사절들이 참석한 기념행사에서 이반 디아스 추기경은 재위 기간 중 104회나 해외 사목방문을 나선 요한 바오로 2세를 "선교사 교황"이라 부르며 교황 가르침과 선교 열정을 본받아 만민 선교, 특히 아시아 선교에 적극 나설 것을 강조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각별한 마리아 신심과 아시아 선교의 중요성을 반영한 것인지, 이날 기념식에서는 중국 출신 소프라노 살리 리(37)씨가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열창해 큰 박수를 받았다. 살리 리씨는 "아이를 가져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라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한편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은 시복식 3일 전부터 행사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로마 거리 곳곳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얼굴 사진과 아기를 들어 올리는 사진 등이 걸려 있어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이 또한 로마의 축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로마=이창훈 기자박수정2011.05.03
하루 한 장 성경읽기 해설(오바드야서, 요나, 미카서 해설)'12소(小)예언서들'을 읽게 되면서 지면상으로 더 자주 만나게 되네요. 이번에는 3권의 상대적으로 짧은 예언서인 「오바드야서」와 「요나서」 「미카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1)「오바드야서」 히브리어 낱말 291개, 21개의 구절로만 이루어진 네 번째 소예언서 「오바드야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짧지만 영감으로 충만한 이 책의 저자인 '오바드야(야훼의 종)'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기원전 587년경 팔레스티나에 남은 유다인들을 상대로 에돔인들이 약탈을 일삼았을 때 예언자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오바드야서」는 다른 예언서와는 달리 이스라엘이나 유다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신, 에돔을 심판하는 신탁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서 종종 복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돔은 하느님 백성을 위협하다가 하느님의 분노를 사 멸망해버리는 그런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에돔에 대한 복수 역시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민족은 절대로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신 백성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을 상징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2)「요나서」 예언자의 말씀 모음집이 아닌 예언자에 대한 설화로 이뤄진 독특한 예언서가 바로 다섯 번째 소예언서인 「요나서」입니다. 「요나서」는 북이스라엘의 예로보암 2세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 요나 당대에 작성된 것처럼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유배 이후 기원전 4세기께 하느님 구원의 보편주의를 주장하는 현인들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유배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은 에즈라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유다 중심의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선민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오만한 모습을 요나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비판하고, 하느님 자비와 구원의 보편성을 설파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요나서」입니다. 4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1. 1,1~2,11: 니네베 구원에 대한 소명 1-1. 1,1~16: 요나의 소명과 불순종 1-2. 2,1~11: 요나의 회개와 기도 2. 3,1~4,11: 니네베 사람들 회개와 구원 2-1. 3,1~10: 요나의 순종과 니네베의 회개 2-2. 4,1~11: 요나의 불평과 하느님 자비(3)「미카서」 소예언서의 예언자들 중 호세아와 아모스와 함께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미카(누가 주님과 같으랴)'의 시적인 말씀을 모아놓은 「미카서」에는 하느님과의 수직 관계를 강조한 「호세아서」의 메시지와 이웃과의 수평 관계를 강조한 「아모스서」의 메시지가 고루 포함돼 있습니다. 남유다의 평원지대에 위치한 마을 모레셋 갓(브에르세바와 라키스의 중간) 출신인 미카는 직업 예언자들과는 달리 세련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지배계층에 대해 소농들의 권리와 사회정의를 주장한 농촌 예언자였을 뿐만이 아니라, 최후 심판의 예언자이기도 했습니다. 「미카서」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으면서 극심한 빈부 차이와 계층 간 대립 등 사회적 불의를 일으켰기에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징벌은 단순히 하느님의 냉혹한 분노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유다 백성을 회개로 이끌기 위한 호소임을 미카는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심으로써 인류에 대한 당신의 자비가 한결같고 영원하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라고 예언자는 신념을 갖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바라보고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내 하느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시리라"(미카 7,7).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장 비서)이힘200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