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길 수도의 길]-(43)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1/08/rc/386028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43)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작고 겸손한 삶 추구성심의 프란치스코수녀회 수녀들이 지난해 12월 첫서원식을 주례하러 수녀원을 방문한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긴 장마가 끝난 뒤 모처럼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밝은 햇살이 내려앉은 노인요양원 '마음의 집'(경남 창원시 도계동) 2층 휴게실에서 할머니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성심의 프란치스코수녀회가 운영하는 마음의 집은 적게는 71살부터 많게는 95살 된 할머니까지 11명이 수녀 7명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햇살같이 따스한 노년을 보내는 곳이다. 수녀들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정부 보호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홀몸 어르신들을 한가족으로 맞아들여 임종까지 지극 정성으로 섬긴다. 수녀들의 헌신적 보살핌 덕분인지 어르신들도 표정이 평온해 보인다.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는 수심이 가득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얼굴이 환해지고 병세도 호전되는 게 눈에 보여요. 그 모습을 볼 때 저희들도 큰 힘을 얻습니다." - 심영길(다니엘라) 원장수녀 2002년 3월 문을 연 마음의 집은 정부 지원 없이 오로지 후원과 자원봉사자들 도움으로 운영하는 무료 양로시설이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수녀들의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요양보호사를 두지 않고 할머니들 목욕ㆍ식사ㆍ배변처리ㆍ빨래 등을 수녀들이 직접 하기에 인건비가 따로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정기적 후원금만으로는 끼니를 잇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늘 이 집에 '만나'를 내려주신다. 인터뷰 중 마침 점심시간이 돼 한 끼 신세를 졌다. 정갈하고 푸짐한 상차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닐곱 가지 나물을 넣은 비빔밥에 미역냉국, 양배추 겉절이, 감자전, 과일 등이 차려졌다. 푸짐한 밥상의 비결은 뭘까? "아침이면 문 앞에 누가 두고 갔는지도 모르는 쌀 포대나 반찬, 과일 등이 놓여 있고, 때때로 인근 농부들이 팔지 못하는 채소들을 그냥 가져가라고 합니다." 이날 식탁에 오른 양배추와 감자도 밭에서 수확하고 남은 것을 말 그대로 수녀들이 '이삭줍기'해 온 것이다. 원장수녀는 "한 번도 어르신들 끼니나 생활비 걱정을 해 본 적 없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들이 뭔가 아쉬움을 느낄 때면 하느님께서 항상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채워 주세요. 지난 겨울 가스비 낼 돈이 없어 고지서를 그냥 책상 위에 놓아두었는데 며칠 뒤 어느 신부님께서 돈을 보내주셨어요. 또 얼마 전 세탁기가 모두 고장 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어느 기관에서 뭐 도울 일 없냐고 전화를 했어요. 막내 수녀님은 '부족한 것을 생각만 해도 하느님께서 보내주셔서 말을 입에 올리기 무섭다'고 할 정도예요." 전 마산교구장 장병화 주교는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수녀들의 겸손한 삶에 반해 이탈리아 본원에 수녀 파견을 요청했다. 1989년 7월 22일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이후 행려인 무료급식소, 지역아동센터 운영 같은 사도직을 펼쳐왔다. "사실 제가 입회 전에 성소를 식별하기 위해 여러 수도회를 찾아다녀 봤는데, 다른 수도회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심 수녀는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거리 여성들이 구원을 받고 공동체를 이루면서 시작된 우리 수도회 전통 때문에 회원들이 더 낮아지고 겸손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수도원을 나오는데 회보에 실린 설립자 심플리치아노 신부 말씀에 시선이 멈춘다. "사랑은 참을성이 있기에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애덕은 가슴 깊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길 원합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수도회 영성과 역사-간음한 여인 구원한 예수님 사람-새 삶 원하는 거리 여인 공동체 '마르가리틴'이 모태이탈리아 작은형제회 소속 심플리치아노 신부(1827~1898)는 수도회 인근 '위로의 병원'에 격리, 수용돼 있는 거리 여인들을 찾아가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상담해 주고 있었다. 그때 한 여인이 도움을 청했다. "제가 비록 죄 많은 여인이오나 이토록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고통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 안으면 하느님께서 영적 기쁨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사회적으로 냉대 받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매춘 여성들의 가련한 모습에 연민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온 마음을 기울였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성심의 프란치스코수녀회 설립자 예수 성탄의 심플리치아노 신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예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구원해 주신 성경 내용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그런 여인들에게 그 누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수도원 장상과 의논하고 한 일이었지만 젊은 사제가 손가락질 받는 거리 여인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료 수도자들이나 가장 가까운 지인들이 던지는 따가운 시선은 매우 힘겨운 십자가였다. 또 속된 말로 '기둥서방'이라고 하는 악한 이들에게서 협박도 받았다. 그러나 이를 하느님 섭리로 받아들이고 거리 여인들을 위한 사목을 꾸준히 추진해 나갔다. "애덕은 천상의 딸처럼 아름답습니다. 애덕은 모든 이를 포용하며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아봅니다." 하느님은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준다.(마태 5,45 참조) 거리 여인도 사랑이신 하느님께는 소중한 딸이다.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깨닫고 있었다. 간음한 여인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프란치스칸 영성에 접목한 것이 심플리치아노 신부의 영성 세계다. 그는 '마르가리틴'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새롭게 살기를 원하는 거리 여성들을 함께 살게 했다. 그리고 이에 맞는 생활 규칙을 만들어 주고 수예와 재봉, 공예 등 기술을 가르쳤다. 비오 9세 교황은 심플리치아노 신부를 "모든 막달레나를 천국으로 데려가려는 사람"이라 부를 정도였다. 거리 여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에 속한다. 많은 이들의 냉대를 받는 만큼 그들 영혼의 상처는 깊고 아프다. 그러나 죄가 무거울수록 회심했을 때 받는 은총도 크다. 실로 이 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놀랍게 변화했다. 밖에서 이들의 삶을 지켜본 여성들 중에도 마르가리틴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요청에 따라 자연스럽게 1886년 설립된 수도회가 프란치스칸 3회에 속하는 성심의 프란치스코수녀회다. 수녀회는 현재 10여 개국에서 회원 500여명이 거리 여성들의 재활사업과 어린이 교육, 병자나 노인들을 위한 복지 등에 헌신하고 있다. 여느 수도회와 달리 수녀회 입회에 나이 제한이 엄격하지 않다. cpbc2011.08.09

제12회 PBC 창작생활성가제하느님 찬미하는 찬양사도들의 진정한 '축제'14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열린 제12회 PBC 창작생활성가제에서 '오늘도 걷는다'를 열창한 유성씨가 (재)평화방송 이사장 염수정 주교에게서 대상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고 있다. 요즘 TV 채널마다 서바이벌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환호하는 승자가 있고, 고개를 떨구는 패자가 있다. 하지만 14일 가톨릭대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열린 제12회 PBC 창작생활성가제에는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었다. 이날 무대는 노래 경연장(競演場)이 아니라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찬양사도들의 진정한 '축제'였다. 본선 무대에 오른 전국 12개 팀은 저마다의 탈렌트로 노래하고 춤추며 대회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생기 발랄한 고3 학생부터 머리 희끗희끗한 초로(初老)의 노신사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한 이날 성가제에서 참가자들은 "수상 여부에 관계없이 마음껏 노래할 수 있어 큰 은총이었다"고 말했다. 또 관객들은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찬양사도들의 열정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대회는 '찬양' '청원' '음성' '의지' '재회' '감사'라는 여섯 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12개 팀이 출품한 노래에서 추려낸 주제라서 그 의미를 더했다. 대회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아크(인천교구 연합)와 아비스(서울 암사동본당)는 '찬양'을 주제로 밝고 경쾌한 노래를 불러 호응을 얻었다. 홍진우(알베르토, 부산 거제동본당)씨와 라우다떼(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는 '청원'을 담은 노래로 주님께 바치는 기도를 묵직한 울림으로 담아냈다. 특히 라우다떼는 PBC 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나의 기도를 통해서'를 불러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또 '음성'을 주제로 무대에 오른 로안(연합)과 이은주(엘리사벳, 서울 명동본당)씨는 성경 말씀을 고스란히 노랫말로 담아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대회에는 특히 이색 참가자가 많아 재미를 더했다. 최고령 참가자 김대성(스테파노, 58)씨는 10년 넘게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모금활동을 해온 '날개없는 천사가수'다. 김씨는 행인들이 넣어준 성금으로 청각장애 어린이들에게 보청기를 사주고, 심장병과 백혈병을 앓는 어린이들에게도 도움을 줬다. 김씨는 "성가는 다른 노래와 달리 하느님과 관계를 떠올리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해서 녹록지 않다"라며 "진정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늘 기도를 통해 성찰하며 성가제를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또 '노래하는 사회복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은주씨는 "아름다운 선율로 주님께 기도하고 싶어 참가했다"며 "앞으로 동료 사회복지사들과 마음을 모아 지역 어르신과 아이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대회는 '멘토' 선배들이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축하무대에서 절정을 이뤘다. 선배 찬양사도 장환진ㆍ박하얀ㆍ박우곤ㆍ석소영ㆍ박명선ㆍ김연기씨가 '12 찬양사도'라는 노래로 후배들을 응원하자 후배들이 열광적 환호로 답례했다. 선배 가수들은 대회에 앞서 열린 참가자 피정에 함께해 생활성가 의미와 찬양사도직 의무 등을 알려주며 문화 복음화 첨병이 돼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생활성가 가수 1세대인 신상옥(한국천주교CCM찬양사도협의회장)씨와 이형진, 권성일씨가 무대에 올라 '임 쓰신 가시관' 등 서로의 히트곡을 번갈아 불러 후배 가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참가자들과 선배 가수들은 흥에 겨워 한 목소리로 '축제'를 열창하며 뜨거운 열정을 재확인했다.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하느님 말씀과 거룩한 기도를 오색빛깔 찬양으로 엮어낸 미래의 찬양사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가팀 모두에 상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참가자들은 성적의 우열이 없음에도 호명될 때마다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다만, 명색이 '성가제'이니 만큼, 대회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무대를 선보인 유성(토마스, 26, 의정부교구 원당본당)씨에게 대상이 돌아갔다. 유씨가 열창한 대상곡 '오늘도 걷는다'는 매 순간마다 손을 내밀어 주고 빛을 비춰주시는 주님을 향해 걸어간다는 다짐을 담은 노래다. 유씨에게는 코스모스악기가 후원한 전자 키보드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지난해 열린 제2회 한국청년대회(KYD) 찬양팀장으로 활약하면서 찬양사도의 꿈을 키워왔다는 유씨는 "내 노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기쁘게 노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가제에 함께 한 (재)평화방송 이사장 염수정 주교는 "PBC 창작생활성가제에 줄곧 참석했는데, 이제는 '뜸'이 완벽하게 들어서 제대로 된 '맛'이 나는 것 같다"며 "참가자들이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는 마음으로 120%의 기량을 발휘한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성가제 사회는 이상철(서울 마장동본당 주임) 신부와 방송인 정원선(수산나)씨가 맡았다. 평화방송 TV는 22일 오후 3시 성가제 실황을 녹화 방송한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이정훈2011.05.17
![[인천교구 50주년] 성령으로 충만한 친교ㆍ나눔 공동체로 도약](//cpbc.co.kr/CMS/newspaper/2011/06/rc/379261_1.0_titleImage_1.jpg)
[인천교구 50주년] 성령으로 충만한 친교ㆍ나눔 공동체로 도약감사미사 이모저모6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거행된 인천교구 설정 50주년 감사미사는 한국교회의 네 번째 큰 교구로 성장한 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100주년을 전망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한 친교와 나눔의 공동체'로 도약을 다짐하는 디딤돌이 됐다. 특히 전 교구 공동체가 복음화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교구 쇄신과 도약을 이루려는 의지를 다지는 축제의 장이 됐다.50주년 감사미사에서 신자 대표가 교구민 모두의 결심을 봉헌하는 '더' 신앙 실천 운동 결의문을 선창하고 있다.# '은총의 희년' 감사 축제○…4만여 명의 인천교구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문학월드컵경기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국군 장병들 넋을 위로하는 묵념으로 시작된 1부 식전 행사는 교구 청년연합의 율동찬양에 이어 인기가수 인순이(체칠리아)씨 열창으로 축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오전 10시 45분. 교구 설정 50주년 기도가 봉헌되는 가운데 50주년 기수단과 십자가, 교구 전 본당과 46개 교구 신심단체 깃발에 이어 지난 3월부터 석 달 동안 교구 전 본당을 순례한 도보순례단이 입장. 그리고 수도자, 복사단, 신학생, 사제단에 이어 입장한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신자들 박수와 환호에 답례. 인천교구 가톨릭 남성ㆍ여성합창단과 소년소녀합창단 등 연합성가대가 만들어내는 장엄한 화음으로 시작된 감사미사에서 신자들은 2시간 여 동안 교구의 밝은 미래와 교구민 모두의 평화를 기원. 아울러 277명의 사제와 118개 본당, 약 45만 명의 교구 공동체로 성장하기까지 베풀어주신 하느님 은혜에 감사하며, 새 복음화 주역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다짐.# 교구 100돌 향한 새 출발 ○…50주년 감사미사를 통해 교구민들은 새복음화ㆍ재복음화ㆍ사회복음화를 위해 범교구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 최 주교는 강론에서 "미래세대 신앙교육과 해외선교(북한 포함)에 교구 역량을 우선적으로 기울이는 한편 이 땅에 성숙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자"며 복음화 비전을 제시. 미사 중에는 특별한 봉헌이 이어졌다. 교구는 50돌을 맞아 △교구 역사를 정리한 「인천교구 50년사」 △교구 전 본당을 순례한 '바다의 별 성모상' △50만 신자 달성을 목표로 교구민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한 묵주기도 1억 5000만 단을 봉헌. 아울러 50주년 기념 건축물(영성센터, 제2성모병원과 노인요양시설 마리스텔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청언성당) 조감도와 교구 운영 교육ㆍ의료기관, 사회복지시설, 특수사목기관, 최병록(막달레나) 씨가 서예로 필사한 성경 봉헌 등이 이어졌다. ○…교구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복음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메리놀외방전교회와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고, 초대 교구장 나굴리엘모 주교(메리놀회)와 오기백(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 신부에게 각각 감사패를 전달. 교구가 설립된 1961년부터 41년간 교구장직을 수행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8년 만에 방한한 나 주교는 반가워하는 교구민들에게 수화로 '사랑해요'라는 표시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오기백 신부는 "노동사목과 해양사목 등 지역사회 상황에 맞는 사목을 통해 복음화에 더욱 힘써 달라"고 당부. 이어 최 주교는 생명의 존엄성이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뜻을 잊지 않고 많은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있는 강수창(마르코, 갈산동본당)ㆍ정은숙(베로니카) 부부와 아홉 자녀, 박규열(아우구스티노, 상1동본당)ㆍ고향란(아나스타시아) 부부와 일곱 자녀 등 다자녀 가정을 비롯해 올해 새 생명으로 탄생한 아기 19명을 축복하며 축복장을 전달.# 50돌 맞아 신앙 결심 봉헌 ○…축하식 후에는 50주년을 맞아 교구민 모두의 신앙 결심을 봉헌하는 '더' 신앙실천운동 결의문 선언이 이어졌다. 신자들은 △하느님을 참되게 '더' 섬기고 △매일 15분 '더' 기도하며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더' 충실하고 △이웃 사랑, 이웃 선교에 '더' 힘쓰며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쁘게 '더' 생활하고 △ 5050 선교목표 달성을 위해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신앙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것을 결의. ○…미사 후 열린 축하식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청 국무원 장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 명의의 메시지를 통해 축하인사를 전했다. 교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은총과 평화의 정표로써 사도적 축복을 내린다"고 축하.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축사에서 "50년 전 작은 씨앗이 이제 깊고 강한 뿌리를 지닌 큰 나무가 됐다"며 "당신 백성의 영적 생명을 늘려주시고, 강하게 만드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인사.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영상 메시지에서 "앞으로 더 성숙한 교구로 발돋움하고, 영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가까운 세상을 가꿔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인사한 뒤 인천교구 50주년 구호인 '인천교구 성령 충만'을 큰 소리로 외치자 교구민들은 박수로 환호. ○…교구 116개 성당과 신학교, 성지를 잇는 본당 도보순례 대장정을 완주한 배평환(요셉, 심곡본당)씨는 "한걸음, 한걸음 기도를 바치며 걸었다"며 "50주년을 맞은 교구 위상을 빛내고 지역사회에 하느님을 알리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감회를 피력.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문기득)가 주관한 본당 도보순례에는 총 2906명이 참가해 총 270㎞를 순례하고 이 가운데 74명이 전 구간을 완주. 서영호 기자 amotu@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cpbc2011.06.07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5) 정약종 아우구스티노(1760~1801)](//cpbc.co.kr/CMS/newspaper/2011/09/rc/390119_1.0_titleImage_1.jpg)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5) 정약종 아우구스티노(1760~1801)"천주님은 천지의 큰 임금이시니…"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읍 능내리) 정다산 유적지에 정씨 형제 생가가 복원돼 있다. 약종을 비롯한 정씨 형제들은 이곳에서 이벽, 이승훈, 황사영 등 신앙 선조들과 자주 서학(西學)을 논하며 천주 신앙에 눈을 떠갔다.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부친 재원의 3년 시묘(侍墓)살이를 끝내는 날, 형제들에게 말했다. "저는 아버님 제사를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자 맏형 약현은 "아버님이 그토록 천주교를 멀리하라 타일렀거늘, 그것을 끝내 버릴 수 없단 말이냐?"하며 약종을 꾸짖었다. 약종은 위로는 약현과 약전, 아래로는 약용을 둔 4형제의 셋째였다. 약종은 형의 질타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결심을 굳힌 터였다. "저는 형님이나 아우처럼 벼슬길에 나간 것도 아니고…. 천주는 천지의 임금이요 큰 아비이니, 초야에 묻혀 천주를 섬기고 교리를 실천하며 살겠습니다."#천주교에 눈뜬 마재의 정씨 형제들 경기도 마재(현 남양주시 조안읍 능내리)의 명망 높은 가문 후손인 정씨 형제는 누구보다 일찍 천주교에 눈을 떴다. 1784년 겨울 한양 수표교 부근 이벽의 집에서 첫 세례식이 거행될 때 약전과 약용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약종도 2년 후 형 약전한테서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고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정씨 형제는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다 발각돼 고초를 겪고, 이후 전라도 진산에 사는 외사촌 윤지충(바오로)이 조상제사를 폐한 죄로 1791년 신유년에 참형을 당하자 천주교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약전과 약용은 다시 문과에 급제해 관직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약종은 달랐다. 형제들이 천주교를 택하는 것을 보고 잘못된 교리라며 배척했으나, 어느 순간 자신이 찾아 헤맨 철학적 진리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깨닫고 오로지 거기에 매달렸다. 약종은 형제들과 달리 애초부터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과거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문예 공부에 거리를 두고 도교에 빠져 들기도 했다. 진리 탐구에 뜻을 둔 그의 학문적 열의와 신중함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약종은 벼슬과 권세에 대한 미련을 버린 터라 아내와 아들 철상(가롤로)을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그의 형과 아우만이 마재 강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근심어린 시선으로 약종을 배웅했다. 마재 강 건너편 양근 분원으로 이주한 약종은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하층민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교리를 가르쳤다. 충청도 출신 머슴 임대인(토마스)과 천민 출신 최기인 등에게 천주 신앙을 전했다. 불평등한 봉건적 신분제를 복음의 평등사상으로 타파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맏아들 철상, 둘째 아들 하상(바오로), 딸 정혜(엘리사벳)에게도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철저하게 가르쳤다. 황사영(알렉시오)은 북경 주교에게 보내려한 백서(帛書)에서 약종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세상일은 도무지 관여하지 않으며 특히 철학과 도덕 공부를 좋아했다. 그는 몸이 아프거나 배가 고프거나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였고, 교리에서 한 부분이 모호하게 되면 식욕도 잃고 잠잘 생각도 잊은 채 그침 없이 탐구하여 끝내는 그것을 밝혀내고야 말았다. 말 위에 있든 배 위에 있든, 깊이 묵상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무지한 이들을 보면 그들을 가르치는 데 온 정성을 다했는데…." 약종은 1794년 무렵부터 한양에 자주 올라와 교회 지도층 신자들과 왕래했다. 당시는 교황청의 조상제사 금지 조치로 인해 양반층 신자들이 천주교에 등을 돌리고, 대신 양반 특권을 포기한 사람들이나 중인 이하 신분층 인물들이 교회를 이끌어갈 때였다. 약종은 천주 신앙만이 진리라는 믿음에 한치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조상제사 폐지로 양반사회가 술렁이건, 형제들이 관직에 오르건 동요하지 않고 신앙에 정진할 수 있었다. 약종의 42년 생애에서 명도회(明道會) 초대회장 직책 수행과 한글교리서 「주교요지」 편찬은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조선 잠입에 성공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1796년경 교리연구와 전교활동을 위해 명도회란 평신도단체를 조직하고 약종을 초대회장에 임명했다. 약종은 그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특히 교리연구에 공을 들였다. 당시 교우들은 선교사 없이 신앙을 수용한 터라 교리지식이 일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명도회를 통해 신자들 교리지식 수준을 높이고, 그 신자들을 파견해 재교육과 선교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게 주 신부와 약종의 계획이었다. 명도회 집회 장소는 서울 약현에 있는 황사영(약종의 조카) 집을 중심으로 서울 각처 6곳으로 늘었다. 신자들은 이를 육회(六會)라고 불렀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약종은)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을 보면 혀가 굳고 목이 아프도록 힘을 다해 가르쳤는데, 아무리 어리석고 둔한 사람이라도 깨우치지 못하는 자가 드물었다"며 그의 교리지식을 높이 평가했다. 또 "그는 사람들이 별의별 도리를 다 물어도 마치 호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말이 끊어지는 일이 없었으며, 계속해서 어려운 문제를 설명하는 데도 조금도 막히는 일이 없었다"고 밝혔다. 최초의 한글교리서 「주교요지」는 그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매달린 교리연구의 독창적 결과물이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한문서학서는 양반이나 일부 중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종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교리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교요지」는 상ㆍ하 두 편 1책 96장으로 이뤄져 있다. 상편은 천주의 존재, 천주의 속성, 속론(俗論)ㆍ도교ㆍ민간신앙에 대한 비판, 상선벌악 순으로 서술돼 있다. 하편은 성경에 기초해 천지창조, 강생구속, 천주교 봉행 순으로 정리돼 있다. 1801년 5월 관헌들이 한신애(아가타) 집을 수색해 압수한 서적 중에 「주교요지」 1권이 있었던 것으로 미뤄 신자들이 이 교리서를 많이 필사해 읽었음을 알 수 있다. 1801년 신유년에 접어들자 박해의 먹구름이 또 밀려왔다. 어린 순조를 왕위에 올리고 수렴청정(垂簾聽政)에 들어간 정순왕후 김씨는 정적(政敵)인 남인들을 정계에서 몰아내기 위해 천주교 금지령을 내렸다. 서학에 연루된 양반들이 남인계에 많았다. 천주교인에 대한 검거가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약종을 꼼짝 못하게 옭아맨 책롱(冊籠)사건이 이 때 일어났다. 박해가 시작되자 머슴 임대인이 포천에 사는 홍교만(프란치스코)의 집에 숨겨두었던 약종의 책 농짝을 한양 황사영의 집으로 옮기려다 발각됐는데, 그 농짝에서 천주교 서적과 성물, 주문모 신부 서한, 황사영 서한, 정씨 형제 서한 등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노론 벽파는 이 증거들을 들이대며 남인 친서계를 공격했다. 채제공,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 정약전 등이 줄줄이 잡혀왔다. #차라리 하늘을 보면서 죽겠다 추국(推鞠, 의금부에서 임금 명에 따라 중죄인을 신문하던 일)이 시작됐다. 약종은 교주의 소굴과 무리를 대라는 추관의 신문에 굴복하지 않았다. "만물보다 높으신 천주를 공경하고 흠승하는 사람으로서 죽어도 후회가 없다"며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약종은 수십 번의 신문과 매질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추관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므로 무엇을 물어도 소용이 없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1801년 2월 26일(음) 참수형을 선고했다. 약종은 판결 당일 수레에 올라 서소문 밖 형장으로 나가면서 군중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은 비웃지 마시오. 저를 비난하지 마시오. 저처럼 오히려 하늘의 크신 주를 흠숭하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영원한 불행을 면할 수 있을 것이오." 약종의 확고한 믿음은 순교 순간에 더욱 빛을 발했다. 형리들이 목을 형구 밑에 대라고 하자, 그는 하늘을 우러르는 자세로 머리를 두고 "땅을 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보면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 뒤 칼을 받았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정약종 가족은 모두 순교자 약종(若鐘)은 진주 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과 해남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이복 맏형 약현(若鉉)과 중형 약전(若銓), 아우 약용(若鏞)이 있다. 약종은 같은 남인 집안인 이수정의 딸과 결혼했으나 사별하고, 유조이(체칠리아)를 두 번째 아내로 맞아들였다. 나머지 형제들도 남인 계열 집안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이벽(요한 세례자)은 약현의 처남이다. 이승훈(베드로)은 약전의 매부다. 약현의 딸 명련은 훗날 황사영(알렉시오)과 혼인했다. 약종의 부인 유조이와 철상(가롤로)ㆍ하상(바오로)ㆍ정혜(엘리사벳) 3남매도 모두 순교의 길을 걸었다. 철상은 부친 약종이 체포되자 감옥 근처에서 머물며 옥바라지를 하다 부친 순교일에 체포돼 한 달 뒤 순교했다. 유 체칠리아, 하상 바오로, 정혜 엘리사벳은 기해박해(1839년)때 순교하고 1984년 성인 반열에 들었다. cpbc2011.09.20

국외로 수출하고 있는 국내 가톨릭 서적들 국외로 수출 중인 국내 가톨릭 서적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을 다룬 가톨릭 서적은 국외에서 수입해 출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국내 가톨릭 서적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한국교회의 영적 보화를 수출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출판사 이용결(루카) 편집부장은 "아직 미미하지만 외국어로 번역되는 책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성장과 한국 신학의 토착화를 보여주는 기쁜 일"이라며 더 많은 분야에서 번역서가 출간되기를 기대했다. 국외로 수출하고 있는 국내 가톨릭 서적들을 모아봤다. 독일어 태국어 영어 스페인어 등다양한 언어로 번역 한구교회 알려 ▲「무지개 원리」(Blessing of the Rainbow) 한국형 자기계발서로 밀리언셀러에 오른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차동엽 신부가 지은 책이다. 2007년부터 대만어ㆍ태국어ㆍ영어ㆍ중국어에 이어 올해 초 스페인어로 번역 출간됐다. 다섯 개 언어로 번역이 이뤄진 것은 차 신부가 꾸준한 국외 강연을 통해 「무지개 원리」를 소개하면서 현지에서 출간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국외의 많은 자기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는 국내 출판계 현실에서 한국형 자기계발서가 수출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위즈앤비즈) ▲「성서 옆에 논어 놓고 논어 옆에 성서 놓고」(Jesus et ConfuciusㆍJesus und Konfuzius) 동양철학을 공부한 최기섭(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신부와 김형기(서라벌고 교감) 박사가 성경과 논어를 나란히 놓고 예수와 공자의 가르침을 풀어낸 책. 2008년 「Jesus et Confucius(예수와 공자)」란 제목으로 프랑스어판이 번역 출간돼 프랑스 국영 RFI라디오 방송에 소개됐다. 2005년 성서와 함께 출판사가 독일국제도서전에 이 책을 출품하면서 프랑스의 세계적 출판사 바이야르와 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독일어판 「Jesus und Konfuzius(예수와 공자)」은 독일 성오틸리엔 수도원 EOS 출판부 대표 신부가 프랑스어판을 접하면서 발간됐다. 유럽인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성서 옆에 논어 놓고…」는 성경과 논어에서 예수와 공자의 가르침이 담긴 대표적 구절을 뽑아 그 공통점과 차이를 살폈다.(성서와함께)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분」(The Lord Calls My Name)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증과 자살 유혹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영성 서적. 영성가 송봉모(예수회) 신부의 '성서와 인간' 열두 번째 권이다. 이 영문판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힘들어하는 영어권 이주민과 이주 노동자, 재외교포들을 위해 펴냈다. 부르심의 은총과 본질, 평신도 소명, 섬김의 자리를 찾는 이들, 참제자가 되기 위한 희생과 투신을 다뤘다. 예수의 제자로 부름받은 현대인들이 각자 삶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소개한다.(바오로딸) ▲「인사이드 한국천주교회」(Inside the Catholic Church of Korea)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가 한국천주교회 역사를 간추린 책으로 최근 영문판으로 발간됐다. 한국천주교회 설립부터 220여 년 역사를 박해시대와 개항기, 해방시기, 한국전쟁, 103위 한국 성인 탄생 등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엮어냈다. 번역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패트릭 맥뮬란 신부가 맡았다. 한국교회 성장 동력인 평신도의 역동적 모습과 관련 연보 및 사진 등을 실었다.(한국교회사연구소)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Prayer From the Heart) 영신수련을 지도하고 있는 정규한(예수회) 신부가 진정한 기도는 무엇이고, 신자들이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 영성 서적이다. 기도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돕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세계로 이끈다. 기도의 바른 개념과 실천 방법을 소개한 영문판 기도 안내서.(성서와함께) ▲「예수마음 기도」(Jesu-maum Prayer)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에 있는 피정의 집 예수마음배움터 관장 권민자(성심수녀회) 수녀가 예수마음 기도의 생성 과정과 기도의 중요성, 일상 생활에서 기도하는 법을 다룬 책이다. 예수마음배움터에서 10년 넘게 영성수련을 지도하고 있는 권 수녀는 기도란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을 하느님께 털어놓는 대화임을 일깨운다. 권 수녀는 2006년부터 태국과 중국, 인도, 독일을 찾아가 현지인을 대상으로 예수마음 기도 피정을 지도하고 있다. 태국어와 중국어, 영어로 번역됐으며, 독일어 출간을 앞두고 있을 만큼 국외 신자들에게 반응이 좋다.(성바오로)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0.10.26
![[사목일기]2. 주님 핵폭탄이 필요합니다.](//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6345_1.1_titleImage_1.jpg)
[사목일기]2. 주님 핵폭탄이 필요합니다.현요안 신부(제주교구 중문본당 주임, 가톨릭 문화기획 IMD 설립) 2008년 6월부터 1년 간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가 선포됐다. 2007년 KYD(한국청년대회)를 치르면서 문화영성의 힘을 느꼈던 터라 '바오로의 해'를 맞아 바오로 사도 영성을 현대에 맞게 풀어내 더 많은 이들과 문화사목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된 작품이 뮤지컬 '이마고 데이'(Imago Dei, 하느님의 모상)였다. 2006년 8월 미국 동북부 한인 성령대회 때 초청강사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행사를 마치고 브로드웨이를 찾아 뮤지컬 라이온 킹과 시카고, 맘마미아를 보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이같은 초대형 가족 뮤지컬을 만들리라 다짐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이마고 데이 오디션을 진행해 배우들을 뽑았는데 천주교 4명, 개신교 4명, 비신자 4명으로 이뤄졌다. 이들과 2008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제주 이시돌 피정센터에 마련한 합숙 훈련장에서 동고동락했다. 노래와 춤, 연기, 공동체 생활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TV와 신문, 술과 세속의 달콤함을 모두 끊고 오로지 연습에만 매달렸다. 이시돌 목장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 풀벌레와 전쟁, 한여름 더위, 밤하늘 별들은 이제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2008년 10월 17일 제주 연동성당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과 부산, 광주 등을 오가며 126회 공연 2만7000명 관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일년간 여정을 마쳤다. 그 사이 비신자 배우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고 개신교 신자 1명이 개종을 했다. 특히 주인공 바오로 사도 역을 맡았던 장재승씨는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뒤 견진성사와 혼인성사까지 받아 그야말로 겹경사가 났다. 문화사목의 첫 수혜자는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작품을 관람한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에게로 퍼져나갔다. 뮤지컬을 보면서 받은 감동은 사목자들과 신자들 신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특히 신자들은 뮤지컬을 보고난 뒤 바오로 서간과 사도행전 등 성경을 찾아 읽으며 성경과 친숙해지는 시간이 됐다고도 했다.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며 문화사목이야말로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현대사목의 중요한 흐름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마고 데이를 통해 교회 작품은 식상하고 재미없는 학예회 수준이 아니라 일반 무대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는 인식전환의 계기가 마련됐다. 주님, 인식전환의 핵폭탄이 된 이마고 데이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현요안 신부 (제주교구 중문본당 주임, 가톨릭문화기획 IMD 설립)박수정2010.08.10
[새 책] '바닥의 향기'황종렬 지음/ 두물머리미디어/ 7000원 인간이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 발밑에 있는 가장 낮은 바닥은 하느님이 지은 지구다. 바닥의 바닥, 또 그 바닥은 결국 하느님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통해 '땅은 친구이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책이 나왔다. '땅친구 기도의 영성과 실천'이라는 부제가 붙은 「바닥의 향기」는 성경 시편 저자들이 "주님은 바위"(시편 18,19, 28장 등 참조)라고 노래한 것처럼 주님이 우리 삶에서 우리를 서게 하고 살게 하는 존재임을 고백하도록 이끈다. 환경보전이나 생태영성에서 실천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이마가 땅에 닿는 깊숙한 절을 통해 우리 몸을 땅이신 하느님께 내어 맡기게 한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편안한 호흡과 함께하는 절을 통해 앉고 또 몸을 대고 바닥에 머물면서 우리의 원바닥이신 하느님이 우리를 서고 앉으며, 눕고, 걷고, 춤추게 하심을 기억하게 한다. 빈 바닥에 자신을 내려 놓음으로써 우리에게 바닥이 돼준 모든 존재, 함께 사는 모든 존재에 나를 낮춰 바닥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 예수님 생존 당시 통용됐던 아람어로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h)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adam)이란 단어가 나왔음을 알려주는 등 이론적 배경도 충실히 담았다. 생태신학자인 지은이 황종렬(레오) 박사는 책 머리에서 "땅친구 기도는 하느님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인간의 깊은 응답인 절의 복음화, 절의 가톨릭적 수행화의 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0.10.26
하루 한 장 성경읽기(17~23일)▨에제키엘서(17~23일) ▲7장(17일) : 파멸에 파멸이 겹쳐 오고 소문에 소문이 뒤따르는데 예언자에게 환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사제에게서는 가르침이, 원로들에게서는 ( )이 사라져 버리리라. ▲8장(18일) : 내가 바라보니, ( )처럼 보이는 형상이 있었다.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 아래는 불이고, 허리 위는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처럼 보였다. ▲9장(19일) :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 )에 표를 해 놓아라." ▲10장(20일) : 커룹마다 얼굴이 넷인데, 첫째는 ( )의 얼굴이고, 둘째는 ( )의 얼굴, 셋째는 사자의 얼굴,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11장(21일) : 그들의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 )을 넣어 주어, 그들이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그대로 지키게 하겠다. ▲12장(22일) :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 ( )은 어떤 것이든 더 이상 지체하지 않는다. 내가 ( )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3장(23일) : 너희는 거짓 환시를 보고 속임수 ( )를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도 주님의 말이라고 하는데, 나는 말한 적이 없다.이힘2009.05.12
![[사목일기] 형제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곳!](//cpbc.co.kr/CMS/newspaper/2010/12/rc/359973_1.1_titleImage_1.jpg)
[사목일기] 형제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곳!김민호 신부(수원교구 가남본당 주임)"여보세요? 저 △△반장 ○○○인데요, 오늘 저희 반모임에 신부님을 모시고 싶어서요. 와 주실 수 있으시죠?" "예, 곧 가겠습니다." 어느 반장님께서 반모임에 초대하는 전화였다. 내가 사목하는 가남본당은 시골 본당이기 때문에 신부가 직접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해 격려해주기를 원하는 반이 많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반모임에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반장님께서 초대를 해주셨는데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수 없어 정장 차림을 하고 반모임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보니 어르신 6~7분이 모여서 준비를 하고 계셨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귀가 어두워서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 다리가 불편하셔서 걷기조차 힘드신 어르신들…. 내가 봐도 참 이분들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반모임을 하는데 그 깨알 같은 성경 구절을 한 소절이라도 읽으려고 애쓰시는 어느 할머니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한 분 한 분의 정성어린 자유기도를 들을 때마다 마치 하늘나라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함께 나누는 시간, 어르신 중 한 분이 "내 나이 80에 이렇게 건강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 은총"이라며 앞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하셨다. 그 어르신의 소박한 고백에 참석한 모든 분께서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셨다. 당신 몸을 추스르기도 어려우실 텐데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뒤이어 모든 사람이 삶을 나누고 다 함께 기도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과 시간, 아마 어르신들께서 이 시간을 제일 기다리셨던 것 같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한 상 가득 과일과 음료, 약간의 주류들이 곁들여져서 마치 성대한 잔치에 참여한 기분이었다.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각 가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되고, 서로 어려움도 이야기하면서 나는 '사랑하는 우리 신자들이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사제인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반성하게 됐다. 신자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있는지, 사목자로서 그들의 가려운 부분 또 힘든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 진정한 목자가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조은일2010.12.07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23)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10)](//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79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23)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10)이단 단죄하고 교회일치 개혁 굳건히▨배경 보름스 협약(1122)으로 성직자 서임권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되고 교회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듯했습니다. 나아가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1123)는 성직자 쇄신을 비롯해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다양한 조치들을 발표함으로써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교회 개혁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외부 위협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교회 내부에 잠재돼 있던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개혁 노선을 달리 하는 추기경단 내부의 알력이 교황 선출 문제로 표출된 것입니다. 교황 호노리오 2세가 선종한 직후인 1130년 2월 14일이었습니다. 신진 개혁 세력으로서 교회의 사목적 쇄신을 강조해온 프랑스계 추기경들이 그레고리오 파파레스키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그가 인노첸시오 2세(재위 1130~1143) 교황입니다. 그러자 몇 시간 후 교황 선출에 따른 법적 하자가 있다고 반발한 다수의 다른 추기경들이 유다계로서 로마의 유력 귀족가문 출신인 피에트로 피레르레오니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그가 대립 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재위 1130~1138)입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 교황 지지자들은 사목적 쇄신보다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더 중시한 이른바 정통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다수의 추기경들과 유력 가문의 지지를 얻고 있는 아나클레투스 2세 교황이 우세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지지했던 프란지파니라는 로마 유력 가문이 변절하는 바람에 인노첸시오 2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인노첸시오 2세의 지지세력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프랑스 왕과 주교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영성가이자 교회학자인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가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스페인 주교들과 영국 왕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마그데부르크의 성 노르베르토(1080~1134) 대주교의 지지를 받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로타르 3세의 지지를 얻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마침내 인노첸시오 2세는 로타르 3세와 함께 1133년 로마로 입성해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로타르 3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을 집전합니다. 하지만 바티칸에서 버티고 있던 아나클레투스 2세를 몰아내지는 못합니다. 황제가 철군하자 다시 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인노첸시오 2세는 이번에는 피사에서 지내다가 1137년 여름에 황제 군대와 함께 로마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바티칸에서 요지부동이던 아나클레투스 2세는 1138년 초에 선종하고 맙니다. 지지자들은 후임 교황으로 빅토리오 4세를 선출합니다. 그러나 빅토리오 4세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간곡한 권유 등으로 대립 교황직을 내놓고 인노첸시오 2세에게 순명을 서약합니다. 이리하여 대립 교황으로 10년 가까이 계속된 교회 분열이 자연스럽게 정리됐습니다. 인노첸시오 2세 교황은 대립 교황으로 인한 분열의 잔재를 청산하면서 일치와 개혁을 도모하고 아울러 교회 안에 새롭게 대두하고 있던 이단 문제를 처리하고자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이것이 10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입니다. ▨공의회 개최와 결과 공의회는 1139년 4월 4일(8일이라는 주장도 있음) 개막해 4월말까지 계속됐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과 영국 등 서방 거의 모든 나라에서 대주교, 주교, 대수도원장 등 500~1000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인노첸시오 2세는 개막 연설에서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가 제정한 모든 법령을 무효화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을 파직했습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가 서품한 주교들에게는 주교직을 박탈했습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 편에 서서 끝까지 반기를 든 시칠리아 왕국 로제르 왕에 대해서는 파문 조치를 내렸습니다. 공의회는 또한 당시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표적인 두 이단 페트로브루스파와 헨리코 파를 단죄하면서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30개 조항으로 된 법규를 제정했습니다. 대립교황 및 이단들에 관한 조항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1123년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 결정 사항들 및 그 이후에 열린 교회회의들의 결정 사항을 반복하고 재확인하는 내용들입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성직자ㆍ수도자 생활과 관련, 차부제 이상의 성직자는 결혼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런 결혼은 불법이자 무효라고 규정합니다(6조). 성대서원한 수도자들의 결혼 역시 불법이자 무효입니다(7~8조). 성직자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물의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검소하고 단정한 차림을 해야 하며(4조), 성직록의 상속은 금지됩니다(16조). 성직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독성죄로 자동 파문의 벌을 받습니다(15조). 수도자들과 주교좌 참사들은 민법과 의학을 배우는 것이 금지됩니다(9조). 견진성사와 병자성사, 장례미사는 돈을 받고 집전하는 것이 금지됩니다(24조).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사회 교리 혹은 사회 윤리에 해당하는 규정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리대금이나 혈족간 혼인이 금지되고(13, 17조),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마상 무술경기가 금지됩니다. 어기면 교회 묘지에 묻힐 수 없습니다(14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1095년에 공포하고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도 확인한 '신의 휴전' 규정이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에 확대 적용됩니다(12조). 상인을 비롯해서 시골 농부ㆍ순례자ㆍ성직자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특별히 금지됩니다(11조). 방화도 엄격히 금지되며 방화범은 1년 동안 십자군에 참여하거나 산티아고 혹은 성지 순례를 통해 참회해야 사면받을 수 있습니다(18~20조). 거짓 참회 또한 엄중 경고를 받습니다. 그런 이들은 바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2조). ▨이단 단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득세하던 두 이단을 단죄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브레시아 출신의 아르놀드(1100~1155)가 있었습니다. 브레시아의 수도원 원장인 그는 급진적 교회 개혁을 주장한 나머지 이단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절대적 가난을 요구하면서 교회 또한 현세 권력과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공의회에서 단죄받고 이탈리아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피에르 드 브뤼스가 이단 주장을 내세우다 파문을 당했습니다. 순회 설교가 사제인 그는 성직자의 태만과 속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도권과 성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복음서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성경을 배척했으며 스스로 믿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유아 세례를 배격했지요. 그뿐 아니라 미사와 실체변화도 부인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또 십자가는 수난의 상징이기에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단 추종자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페트로브루스파라고 불렀습니다.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피에르와 페트로브루스파 이단을 파문하면서 성체성사와 유아 세례, 사제직, 혼인을 배격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23조). 말하자면 공권력을 통해 이단을 단속토록 한 셈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11.07.12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5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4)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인간 있는 곳 어디나 계신 하느님신학자 하센휘틀은 "현대신학의 위기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2000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차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또 하느님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지리적 거리감까지 더해져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때 삼중고를 겪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체험의 사전적 뜻은 '몸소 경험함, 특정한 인격이 직접 경험한 심적 과정'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한 뒤 「신학대전」 집필을 멈췄다.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니 그동안 자신이 이야기했던 하느님은 한낱 지푸라기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낫다고 고백했다. 요즘 하느님을 체험하고 종교적 성스러움을 체험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종종 사적계시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신비가이자 영성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 수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수녀는 하느님을 체험한 사실을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편지를 써서 자신의 체험을 전했다. 편지를 받은 성인은 수녀의 체험이 참된 영의 체험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겸손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이들, 특히 사적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체험은 어떤 지식을 직접 만나고 부딪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체험을 통한 지식을 직접적 지식, 1차적 지식이라고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독서나 다른 이들의 설명 등을 통해 얻는 지식을 간접적 지식이라고 한다. 체험을 통한 지식은 직접적인 만큼 그 영향은 강하다. 체험은 사물을 인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우리 안에 자리잡을 때 비로소 체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체험은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객관성이다. 체험이 객관적이라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예수 부활을 예로 들겠다. 제자들이 예수 부활을 체험한 것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이지 제자들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체험하는 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떤 실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체험의 주관성이다. 체험에는 체험자의 주관적 요소가 늘 작용한다. 셋째, 실천적 성격이다. 사람들은 체험을 통해 예전에 가졌던 이론과 지식을 수정하고 체험으로 얻은 지식으로 삶을 조정해 나간다. 넷째, 체험은 역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든 체험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 학교 교육, 종교, 경제, 문화 등을 바탕에 두고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체험은 긍정적 성격과 부정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체험은 우리에게 고통과 실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은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부 깊은 곳에서 영원한 것을 갈망한다. 유한하다는 한계성과 영원에 대한 갈망에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은 신경(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오신경 등)이다. 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하고 고백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 믿음을 드러낸다. 이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하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은 이처럼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은 모두 끊어버리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들, 유혹을 끊겠다는 것이다. 이 유혹은 돈에 대한 유혹, 성과 쾌락에 대한 유혹, 권력과 명예욕에 대한 유혹으로 압축된다. 사순절을 통해 예수가 가르쳐준 것은 이 유혹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만이 유혹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기위해 우리는 단식하고 자선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체험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돼 이집트 탈출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스라엘 신앙도 체험에서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75살 나이에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는 모험을 강행한다. 성경은 이를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 조상으로 여겼고 이 조상의 하느님을 두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엘 또는 엘로힘이라 불렸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다. 하느님은 한 분이지만 복수형으로 쓴 것은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엘로힘은 하느님의 초월성, 위대함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특성은 토지의 신이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 있다. 당시 사람들은 신을 믿을 때 어떤 지역에 한정돼 있는 신을 믿었다. 하지만 유목민인 이스라엘 민족은 붙박이 신을 섬길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어느 한 곳에 한정돼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인간을 만나주는 인격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종교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일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에 이어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6.21
![[교황주일 특집] 교황 베네딕토 16세](//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04_1.0_titleImage_1.jpg)
[교황주일 특집] 교황 베네딕토 16세새 복음화 씨앗 뿌린 평화의 사도 교황주일은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인 교황을 기억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또 교황을 위한 특별헌금을 걷어 교황 사목활동을 돕는다. 한국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은 교황주일로 지내고 있다. 교황주일을 맞아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걸어온 길을 짚어봤다. 올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6주년이자 사제수품 60주년(29일)이 되는 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4월 19일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새 교황 탄생을 기다린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보수주의자,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교황은 교황청이 보수화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평화의 사도로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4월 19일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후 그에게는 보수주의자ㆍ원칙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교황이 되기 전 20년 넘게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자리를 지켜왔던 그는 한결같은 태도로 가톨릭교회 정통 가르침을 수호해왔기 때문이다. 여성사제 임명ㆍ사제 독신주의 철폐와 같이 교회 전통을 흔드는 움직임이나 낙태ㆍ동성애ㆍ인간복제ㆍ이혼 등 교회 윤리에 반하는 주장엔 늘 단호했다.중동사회 평화화 화합의 중재자 일각에서는 교황을 보수 강경주의자로 몰아가며 교황청의 보수화를 우려했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우려에 그쳤다. 베네딕토 16세는 여전히 원칙을 강조하는 가톨릭 신학자로 평가받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평화의 사도로서 교황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름을 이해하며 다가갔고, 기존 가르침을 지키면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했다. 교황은 이달 초 방문했던 크로아티아까지 모두 16번의 해외 사목방문을 통해 가정과 생명, 화해와 용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전통과 문화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새 복음화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가톨릭에 뿌리를 둔 유럽사회가 신앙으로 재무장할 것을 강조했다. 교황은 또 정치ㆍ종교적 분쟁으로 얼룩진 중동사회에 평화와 화합의 중재자로 적극 나섰다. 교황은 2009년 요르단ㆍ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을 사목방문하고 2010년에는 로마에서 중동 주교시노드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중동 현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다.유다교 이슬람교 지도자와 대화 종교ㆍ종파간 화합에도 두 팔을 활짝 벌린 교황은 유다교ㆍ이슬람교 지도자들과 대화했고 동방 가톨릭 및 정교회 수장들과도 잇달아 만나 그리스도교 형제적 친교를 나눴다. 또 2009년에는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성공회 신자들과 성직자들을 받아들였다. 교황은 교황령 「성공회 신자 단체」를 발표하면서 성공회의 영적ㆍ전례적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로마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한 교회법적 틀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교황은 외교관계가 단절된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007년 중국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고 중국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5월 24일)을 제정하는 등 중국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또 2008년 교황청 산하에 중국교회 문제를 연구하는 중국교회특별위원회를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사제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 사죄 가톨릭교회 모범인 성인들의 삶을 본받으며 살 것을 강조한 교황은 2008년 바오로 성인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해 바오로의 해를 선포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불린 바오로 성인의 회심과 믿음, 선교 정신을 따를 것을 주문했다. 이듬해에는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 선종 150주년을 맞아 사제의 해를 선포, 사제들에게 쇄신과 성화를 당부했다. 한편 교황은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잇달아 터져나온 사제 성추행 사건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교황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며 가톨릭교회 잘못에 대해 대중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교황 베네딕토 16세 약력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 출생 ▲1951년 사제수품 ▲1957년 신학박사 학위 취득 ▲1959~1969년 본ㆍ뮌스터ㆍ튀빙겐대 교수 재직 ▲1977년 뮌헨ㆍ프라이징대교구장 및 추기경 임명 ▲1981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임명 ▲2005년 교황 선출 ▨교황 베네딕토 16세 문헌과 저서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년 교황 즉위 9개월 만에 발표한 첫 회칙으로, 하느님 구원 역사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본질과 이를 근거로 한 교회의 자선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사랑의 본질이 점점 왜곡, 변질돼가는 세태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사목의지를 드러냈다.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 2007년 두 번째 회칙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전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았습니다'(로마 8,24)는 말씀을 확신하며 신앙이 곧 희망이고 이 희망은 기도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려줬다. ▲「진리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년 교황의 3번째 회칙이자 첫 사회회칙이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빚어지는 문제에 대해 교회가 제시했던 사회교리를 재확인했다. 경제적ㆍ사회적 발전은 진리를 필요로 하며, 이 진리는 사랑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권고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 2007년 2005년 바티칸에서 열린 제11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정기총회 후속 문헌이다. 신앙의 신비이자 사랑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다루며 성체성사에서 비롯되는 영적 예배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 2011년 2008년 바티칸에서 열린 제1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정기총회 결과를 다룬 후속 문헌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성경과 친숙해질 것을 당부하면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영성은 교회 안에서 선포된 하느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저서 ▲「나자렛 예수」, 2006년 예수의 탄생과 수난, 부활은 물론 예수가 남긴 가르침을 신학ㆍ역사적으로 재해석했다. 예수의 실체를 둘러싼 다양한 주장에 응하는 교황의 답변으로, '교황의 반(反) 다빈치 코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32개 언어로 번역된 밀리언셀러다. 박수정2011.06.21
![[성경 속 상징] 52-바람- 신약에서 하느님 성령과 연관](//cpbc.co.kr/CMS/newspaper/2009/06/rc/30029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52-바람- 신약에서 하느님 성령과 연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바람은 기압 변화로 일어나는 공기 움직임이다. 바람을 가장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생물은 조류다. 새는 날개를 치며 날기도 하지만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바람의 힘으로 장시간 공중을 날 수 있다. 바람은 구름을 부르고 비를 가져오므로 사람들, 특히 농경민이나 범선으로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친 바람은 사람에게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처럼 바람은 인간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므로 옛부터 사람들은 바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종종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가운데는 하늘 신은 바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한다고 생각하는 부족이 있다. 바람을 죽은 사람 영혼 활동과 결부시키는 사회도 있다. 도시에서는 바람의 직접적 영향은 적지만 농촌ㆍ산촌ㆍ어촌 사람에게는 생명에도 관계되는 큰 영향을 준다. 특히 해안지대에서는 바람 방향과 세기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바람의 이름도 생활과 깊은 연관을 맺고 지어진 것이 많다. 사람들은 바람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고, 신의 왕래로 여기며, 특히 피해를 주는 바람을 두려워한다. 옛날 자연상태를 벗어나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은 자연현상이 생기는 본래 원인을 몰랐으므로 바람의 술렁거림과 폭풍의 포효를 인격화해서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을 대지가 쉬는 숨, 우주 활동으로 여겼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언가 보다 높은 힘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구약성경에서 심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하느님 현존과 관계가 있다. "커룹 위에 올라 날아가시고 바람 날개 타고 떠가셨네"(시편 18,11). 에제키엘이 경험한 하느님 오심은 북에서 불어오는 폭풍에 의해 예고된다.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에제 1,4). 욥이 고난을 당하는 중에 하느님 음성을 들을 때도 바람은 하느님 현존과 함께 나타난다.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욥 38,1). 또한 폭풍은 하늘의 벌과 위협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라, 주님의 폭풍이, 그 노여움이 터져 나온다. 회오리치는 폭풍이 사악한 자들의 머리 위로 휘몰아친다"(예레 23,19). 신약성경에서 바람은 하느님 성령과 연관된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 바람에 비유해 언급하신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7-8). 이처럼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바람과 연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든 창조설화를 상기시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오순절 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성령 강림을 체험했을 때도 바람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이에 바람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령의 싱징이 됐다. 임영선2009.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