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와 함께 걷는 특별한 십자가의 길서울 중화동본당, 이숙자 수녀 초청 작품 해설 특강중화동성당에 걸려있는 이숙자 수녀의 '십자가의 길' 중 제1처. 묵묵히 고통을 받아들이는 예수와 그의 모함하는 손가락이 그려져있다. 왼쪽 위의 눈치를 보고, 화를 내는 듯한 세 얼굴은 겁쟁이처럼 방관하는 우리를 의미한다."예수님과 성모님을 둘러싼 둥그런 가시면류관이 보이죠? 그것은 고통과 슬픔을 나누는 모자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서울 중화동본당(주임 윤재한 신부) 신자들이 16일 특별한 손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성당에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제작한 작가 이숙자(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를 초청해 해설 특강을 열었다. 이 수녀는 제대 십자가, 감실, 성바오로상 등 중화동성당 모든 성물을 제작했다. 성당 벽면에 걸린 아크릴화 십자가의 길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 수녀는 제1처 제작 당시 영감을 받은 성경 구절을 낭독한 뒤, 구도와 상징을 설명했다.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진 제5처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받쳐들고, 그 무게를 느껴보자"고 말했다. 묵상을 유도하는 그의 설명이 예수님의 고통을 실감케 한 것인지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신ㆍ구약을 넘나드는 주석 역시 신자들 이해를 도왔다. 제2처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요한 19,17)는 수난복음에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이사 53,4)는 구절을 곁들였다. 강의를 경청한 배영순(린다, 52)씨는 "예수님 고난을 다룬 작품을 많이 봤지만 작가 설명을 들으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 또한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며 "앞으로 다른 성물을 볼 때도 다양한 각도로 살피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재한 주임신부는 "작가 설명을 통해 그 뜻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묵상하기 위해 특강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내 작품을 나보다 더 오래 보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가족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특강 내내 신자들과 손잡고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듯 했다"며 활짝 웃었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1.03.22
하루 한 장 성경읽기 마태오 복음서 해설「마태오복음서」를 시작으로 4권의 '복음서'와 1권의 '행전'과 21권의 '서간'과 1권의 '묵시록'으로 구성된 '신약성경'이 시작됩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작성된 구약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살던 시대에 로마제국에서 오늘날의 '영어'에 해당하는 지위를 누리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작성돼 있습니다. 오늘은 신약성경의 첫째 책이자 4복음서 가운데 첫 번째 책인 「마태오복음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1)「복음서」와 「공관복음(共觀福音)」이란? 신약성경의 첫 4권은 '복음서'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예수님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깊이 묵상하여 이야기체로 서술한 책들입니다. 그런데 이 4권의 복음서들 가운데 3권인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서에는 상호간에 매우 유사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3권을 서로의 신학적 관점이 비슷하다 해서 '공관(共觀, Synopsis)복음'이라 불러왔습니다. (2)「마태오복음서」 저자 및 저술 연대와 장소 「마태오복음서」는 전통적으로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마태오'에 의해서 작성됐다고 믿어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아람어와 유다인 풍습에 정통한 유다계 그리스도인에 의해 시리아 지방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원 후 80~90년께 작성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3) 「마태오복음서」의 구조와 내용 「마태오복음서」는 아래와 같이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2,23: 유년기 설화 2) 3,1~7,29: 옛 율법과 새 율법 2-1) 3,1~4,25: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 2-2) 5,1~7,29: 산상 설교 3) 8,1~11,1: 제자 교육 3-1) 8,1~9,34: 병자들의 치유와 제자들의 모집 3-2) 9,35~11,1: 설교: 이스라엘에 대한 제자들의 사명 4) 11,1~13,52: 하늘나라 4-1) 11,2~12,50: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가르침 4-2) 13,1~52: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들 5) 13,53~18,35: 공동체 문제 5-1) 13,53~16,12: 갈릴래아 지방에서 예수님의 활동 5-2) 16,13~17,23: 수난을 당하실 메시아이신 예수님 5~3) 17,24~18,35: 공동체를 위한 지침들 6) 19,1~25,46: 종말론 6-1) 19,1~20,34: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6-2) 21,1~25,46: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활동 7) 26,1~27,66: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8) 28,1~20: 예수님의 부활 (4) 핵심 주제들 1)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곧 "임마누엘"(마태 1,23)이십니다. 2) 복음서들 가운데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한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라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3) 유일하게 "교회"(마태 16,18; 18,17)라는 낱말을 사용한 「마태오복음서」는 하늘나라의 완성인 종말이 교회와 더불어 시작된다며 교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이힘2009.09.08

두려움과 은총의 50년… 항상 하느님께 감사금경축 맞는 정진석 추기경사제수품 50돌, 정진석 추기경에게 듣는다대담=평화방송 · 평화신문 이윤자 신문이사18일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사제품을 받은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교회 교구장이 현직에서 금경축을 맞기는 지난 2000년 3월 윤공희 (당시 광주대교구장) 대주교에 이어 두 번째다. 정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지난 50년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시대를 이끌었던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이 되고, 또 추기경에 서임된 것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를 떠올릴 때는 신학교 입학 시절로 돌아가 눈물을 흘렸다. ▲1961년 사제품을 받고 50년, 반백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사제품을 받을 당시가 지금도 생각나시는지요? 어떤 사제가 되기를 꿈꾸셨고 그 꿈을 이루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 하느님 뜻에 따라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림으로써 영생이라는 구원을 받는 것이 인간이 사는 목표입니다. 그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제는 스스로 하느님 구원 진리를 깨닫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도 그 진리를 깨닫게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선발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제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또한 감격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1년 3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을 때, 내가 감히 그런 사제가 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6ㆍ25전쟁 때 죽을 고비를 넘기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 제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바로 그런 사제가 되라는 하느님 뜻이었습니다. 죄 많은 내가 어떻게 성스러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감정이 북받쳐 많이 울었습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수품 성구로 택한 성경 구절이 '나 너를 사랑하시는 줄을 너 알으시나이다'(요한 21,15)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묻자 베드로가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었죠. 제 마음이 베드로와 같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 보시기에는 잘못 투성이일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리라 믿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 오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가족과의 작별인사도 허락하지 않으셨죠. 그만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지난 50년, 적어도 겉으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척한 것 같습니다. 시늉은 한 셈이죠."하느님께서 뽑은 사람인 사제가 된다는 것은참으로 두렵고도 감격스러운 일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199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추기경님 삶에 큰 전환점이 됐을 것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사제품을 받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0년에 청주교구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주교가 됐습니다. 자격도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서울에서도 명동과 신학교만 알던 제가 로마 유학 중에 주교로 임명된 것입니다. 28년 만인 199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고향인 명동에 다시 오게 되니 꿈만 같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아주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구장 주교가 자리를 옮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마음이 아주 복잡했습니다. 전임 교구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워낙 큰 인물이다 보니 그분 후임이 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30년이 됐는데, 저를 과연 받아줄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시골에서 살던 제가 김 추기경님 자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십자가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가 짊어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십자가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겠다 싶으면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나타나 십자가를 같이 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느님은 내 능력을 아시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십자가를 허락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일매일 그런 체험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는 신념이 됐습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매일매일 절감하며 삽니다. 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사람들 덕분에 외롭다거나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교구장직을 수행하면서 살아온 삶이 보람되고 기쁩니다. 그 기쁨 역시 십자가를 함께 진 이들과 같이 누립니다." ▲24일은 교황청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신 지 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추기경으로서 지난 5년의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매 순간 두렵다는 생각뿐입니다. 다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데, 저는 돌아갈 것도 없습니다. 두렵다는 초심 그대로이니까요. 추기경직은 제게 참으로 두렵고 과분한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부족한 제가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주심에, 저녁만 되면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어떻게든 하느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사람이 되고자 나름 힘껏 노력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유능한 분이 이 자리에 계시면 교구도 더 발전하고, 신자들에게도 더 유익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만 합니다." ▲지난 5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인간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또 언제였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매일 저녁이 되면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기뻤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얼떨결에 주교 되고 추기경으로 서임…과분한 자리 알기에 초심 잃지 않고 늘 기도 ▲한국교회는 추기경님께서 사제품을 받으신 5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내적 신앙이 외형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50년간 한국교회는 기적과 같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50년 전 1%에 불과하던 복음화율이 지금은 10%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다음으로 높은 복음화율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교회가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것은 한국교회 신자 모두가 힘을 합쳐 하느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만큼 성직자와 수도자를 꾸준히 봉헌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한 해 배출하는 사제만도 150여 명에 이릅니다. 세계적으로 놀랄 일입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고요. 또 그렇게 탄생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당은 또 해마다 얼마나 많이 신설되는지 모릅니다. 성전을 새로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납니다. 신자들이 큰 희생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에는 10년 전부터 성경공부 바람이 불었습니다. 성경공부의 열매가 실생활로 이어지는 단계가 됐습니다. 매우 고무적입니다." ▲세계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를 봐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요? "인생은 순간입니다. 성경도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10) 라고 말합니다. 의술이 발달해서 아무리 수명이 늘어난다고 한들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덧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적인 현세에 얽매이지 말고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살기를 권합니다. 결국에는 흘러가버리고 마는 이런저런 일에 집착하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현세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이 될 때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진리를 향해 살아갑시다." 50년간 한국교회 비약적 발전 이룩한성직자·수도자·평신도 모든 분께 감사현세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 되기를 ▲대선배로서 후배 사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텐데요. "신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신학교를 지원할 당시의 초심을 끝까지 간직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 때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주실 겁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하느님께 알게 모르게 송구스러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뉘우치고 속죄한다는 것을 겉으로 표시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그런 뜻에서 단식이나 고행을 하면 유난스럽다고 핀잔을 받기가 쉽습니다. 사순시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순시기를 정한 것은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선행하라는 뜻에서입니다. 하느님께 송구스러운 것이 있으면 이번 사순시기에 고행과 자선으로 훌훌 털어버리세요.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은 기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질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하셨습니다. 요즘 재물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불의가 재물과 결부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질에서 초연해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악은 아닙니다. 선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로 다른 이들에게 선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물질을 다른 위해 쓰는 게 중요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퇴사자22011.03.08
![[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657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Q. 아량을 넓히려면 새내기 직장인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고요. 저는 직장에서 통큰 남자로 통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호인처럼 웃어 넘기니까 주위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남자로 알고 저와 결혼한 여자는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를 보고 새가슴이라느니 잘 삐친다느니 하면서 놀려댑니다. 사실 저는 밖에서는 호인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일에 잘 삐치는 성격이라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제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밤새 고민할 때가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형제님은 베드로 성인에 대해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인간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던 분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것도 그렇고, 바오로 사도에게 힐난을 당한 것도 그렇고, 주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야단을 맞은 것도 그렇고 말 그대로 흠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신흥종교에 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가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량이 넓은 분이셨습니다. 비단 베드로 사도뿐 아니라 대제국을 이룬 역사 속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아량이 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민족의 왕임에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칭송받는 페르시아 왕은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백성을 존중하는 큰 아량을 보인 사람으로서 페르시아 대제국을 이룬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량이 좁은 지도자들, 내 편 네 편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하고 늘 적대감을 가지고 살았던 지도자들은 악명을 떨치거나 단명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만약 베드로 사도가 아량이 넓지 않은 분이셨다면 초기 가톨릭교회는 작은 종교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시쳇말로 '용서의 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른 사람들을 잘 용서해줬을 뿐만 아니라 자기용서를 잘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스스럼없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글을 올리실 수 있었습니다. 자기용서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는 용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인데, 이 중에서 자기용서는 생소하지만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입니다. 심리학자 베브스몰우드는 자기용서가 정신건강에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아량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큰 용서를 받았을 때 관대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용서를 받고나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 잘못한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격려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 율법적으로 삭막하게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 자신도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기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반면 자신의 인생에는 하자가 전혀 없어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까칠한 성격을 갖게 돼 아량이 좁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해 아주 심하게 몰아붙이고, 편을 갈라 생각하는 옹졸함을 보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고 하신 것은 바로 자기용서의 영성적 의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이 아량을 키우시려면 우선 자신의 잘못을 심하게 따지지 말고 자기용서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기용서에 대해 부연하자면, 고해성사를 보고 난 후에도 마음이 불편한 분들 역시 자기용서가 안 되는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해주셨다고 해도, 고해신부가 사죄경을 해줬다고 해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단죄를 합니다. 이 때문에 고해를 하고 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고, 보속이 너무 작다고 자학적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마음은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심리적 연옥'에서 산다고도 하는데,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자기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잘못한 이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힘2011.02.08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대전교구(상) 교구장에게 듣는다(유흥식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6313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대전교구(상) 교구장에게 듣는다(유흥식 주교)"그리스도인은 친교를 가져오는 친교 건설자가 돼야" 대전광역시와 세종시로 행정부가 들어섰거나 속속 들어설 계획이어서 '중도(中都)'라는 표현이 이제 결코 지나치지 않은 국토 중심부 대전교구. 한국교회사 초부터 '내포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과 함께 한국천주교회의 심장이 된 내포교회, 대전교구는 교구 설정 70주년을 향한 전반기 5년(2009~2013년)을 '친교의 교회' 건설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전반기 2년째인 올해는 '말씀을 증거하는 삶으로 친교의 교회 건설'을 사목지침으로 제시한다. 교구장 유흥식 주교에게 교구 중장기 사목 구상과 계획, 배경, 실천 등을 들었다. #첫 단계로 소공동체 건설에 주력 교회가 이뤄야 할 가장 우선하는 과제로 유 주교는 '친교의 교회' 건설을 꼽았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고독과 외로움이기에 전 교구 공동체가 삼위일체 하느님, 곧 친교의 하느님, 관계의 하느님, 공동체의 하느님으로 나아가는 데 사목의 방점을 찍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 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새천년기」를 통해 "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43항)은 교회의 첫 번째 임무"라고 밝힌 것을 상기시켰다. 유 주교는 "말씀을 생활로 증거하면 그 첫 번째 열매가 바로 친교를 가져온다"며 "그리스도인은 친교를 가져오는 친교의 건설자가 돼야 하고, 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친교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첫 단계로 소공동체 건설에 주력해온 유 주교는 "소공동체가 성공하려면 봉사자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난해부터 교구 사목국 주관으로 각 본당을 순회하며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구 내 성지성당을 제외하고 14개 지구 64개 본당이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했다. 전체 본당 가운데 61%가 교육을 마쳤고, 교육 수료 인원도 8284명에 이른다. 교육은 소공동체 봉사자교육과 순교영성교육, 선교교육 등으로 다채롭게 짜여졌고, 교육을 통해 교구는 소공동체 중심 사목으로 전환하고 있다. 유 주교는 내포교회 교우촌의 더불어 사는 삶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소공동체 운동에 주력하고 있다며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성지가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 이 시대에 맞는 은혜로운 곳으로 바뀌도록 성찬례와 고해성사를 통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성지별로 정기적 프로그램을 준비해 신자들의 영성 생활을 돕고 도보성지순례도 가족 또는 그룹, 단체별로 꾸준히 이뤄지도록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소공동체 교육을 끝낸 뒤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도록 5주간 순교영성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음이 삶의 원칙 되도록 애써 유 주교는 신앙생활의 근본을 성경에서 찾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성경 말씀이 '생활 말씀'이 돼 구체적 삶으로 옮기는 체험을 나누는 공동체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제 스스로도 항상 복음이 삶의 원칙이 되도록 애쓰며 복음 중심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함께하는 삶은 교회 생활의 근본입니다. 교회는, 신앙인은 하루도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멈출 수 없습니다. 본당에서도, 교구에서도 성경과 친하게 지내는 사목이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신앙의 스승인 사제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교육하고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모범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인이라면 늘 부딪히는 문제, 곧 성경 공부와 말씀 실천(증거)간 괴리와 갈등에 대해 질문하자 유 주교는 "성경 말씀을 오늘의 구체적 사회 환경에 적응하는 가르침이 바로 사회교리"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신자들에게는 「간추린 사회교리」 책을 50권 넘게 선물하면서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당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처럼 다양한 사회 안에서 복음적 원칙과 논리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 임무이기에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교리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전문가 양성을 위해 사회교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신부님도 계신다"고 덧붙였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어야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시작한 이웃 사랑 운동인 '한 끼 100원 나눔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인터뷰 주제였다. 유 주교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구체적 사랑의 행위를 통해 모든 이에게 전해진다"며 "'한 끼 100원 나눔'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실현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유 주교 자신도 한 끼를 먹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굶주리고 헐벗고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매달 9000원씩 적립하고 있으며, 수호천사 몫으로도 9000원을 더 보태 달마다 총 1만8000원을 자동이체하고 있다. 이처럼 2년 5개월 동안 전 교구가 한 끼 100원 나눔을 실천한 결과 14억 원을 모았고, 지난 5월 20일에는 한 끼 100원 나눔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유 주교는 현재 매달 5000~6000만 원 가량 모아지는 기금으로 대전과 충남 지역 초ㆍ중ㆍ고 학생 급식을 돕고 결핵을 앓고 있는 북녘 어린이들 치료도 도울 계획이다. 더불어 교구에서 선교사를 파견한 몽골과 에콰도르, 칠레 등지의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한편 본당별 사회복지활동도 체계적으로 후원할 예정이다. 유 주교는 끝으로 "우리 신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며 "다양하고 변화가 많은 세상, 돈 중심에 물질 중심인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가치를 지니고 살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를 꾸미고 싶다"고 다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cpbc2010.08.10
![[아! 어쩌나?] (91) 순종적인 신앙인?](//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980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91) 순종적인 신앙인?Q. 영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자입니다. 대부님은 아주 열심인 분으로, 늘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돼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저희 가정은 아버지가 아주 엄격하셔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살아왔는데, 신앙생활도 그렇게 해야 한다니 괜히 세례를 받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직 신앙인이 될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적 신앙인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오로지 주님 말씀에 의탁하고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에서 발간된 성인전 영향이 큽니다. 사회의 위인전과 마찬가지로 성인전 역시 그 성인의 인격적 결함 같은 내용은 삭제되고 지나치게 이상화되고 미화된 경향이 있어 성인전을 읽은 분들은 성인이 되려면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례로 스페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가르멜수도원을 개혁한 분으로 유명하고,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나도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심장을 꺼낼 때 피가 흘러내린 기적으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생전에 다른 수도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시길, "수도자가 너무 온순하면 수도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답니다. 진정한 수도자가 되려면 당당하고 대찬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도원 벽에 걸린 데레사 수녀님 초상화는 온순한 비둘기 같은 인상이 아니라 사나운 매와 같은 인상입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강조하신 것은 영성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건강한 반항의식'을 갖고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항, 그러면 많은 분이 "그거 좋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반항적인 사람들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문제아란 편견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달심리학, 영성심리학에서는 반항은 내적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남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살면 내적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조건 대들고 삐딱하게 살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반항의 종류는 '건강한 반항'과 '병적 반항' 두 가지입니다. 병적 반항이란 낡은 것은 무조건 타파해야 한다고 배타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병적 반항은 심리적 퇴행의 산물이라서 내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고집이 심해 대인관계에도 좋지 않습니다. 또 필요없는 것에 신경을 써서 자기 인생을 축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합니다. 이에 반해 건강한 반항은 사람의 정신세계를 속박하려는 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경직된 신념을 깨뜨리고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건강한 반항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고 늘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삽니다. 교회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런 건강한 반항의식을 가진 분들이고, 그 대표적 주자가 바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이십니다. 형제님께 우화 한 가지를 알려 드리지요. 주님께서 사도를 한 사람 더 뽑으려고 하시면서 자격조건은 순종적 사람이어야 한다고 공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순종형 영성가들이 모여 심사받을 준비를 했답니다. 첫 번째 영성가가 나서며 말하길 "주님 저는 순종적 사람이란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해서 제 생각 제 욕구는 다 억누르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그건 맞도다. 그런데 너와 같이 살던 아이들 말로는 네가 뒤끝이 많아서 뭘 내주고는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너희는 나한테 뭐 줄건데'하며 달달 볶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고 천당 화장실이나 지키거라" 하셨답니다. 두 번째 영성가는 "주님 저는 순종적 신앙인이란, 세상을 멀리하고 가난하게 사는 삶이라 생각해서 사람도 안 만나고 옷도 헌옷만 입고, 먹는 것도 거칠게 먹고, 딴 마음이 들 때마다 저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는 당나귀와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왜냐면 당나귀도 맨땅에서 자고 풀잎만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질 당하면서도 주인밖에 모르니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영성가는 "주님 저는 성경을 달달 외워서 모든 대답을 성경 말씀대로 하고, 제가 입는 옷과 행동 모두 주님처럼 하려고 애썼습니다"하고 말하자 주님은 "너는 네 생각이 없이 남의 말만 따라 하니 구관조를 닮았고, 행동도 내 것을 흉내 낸다니 원숭이와 같구나. 이제부터 천당 동물원지기를 하여라"하고 명하셨답니다. 모든 부모님은 순종하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순종적이면 걱정합니다. 그런 마음은 하느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건강한 반항의식을 잘 키우면서 사시길 바랍니다.이힘2011.02.22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6> 성년기](//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416_1.0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성년기첫째 가는 죄인,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 받다 ◇작가노트 바오로 사도는 위대한 교부들을 만들어낸 사막에서 3년동안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사막으로 떠나는 바오로 사도의 출발은 정신의 사막에 빛을 비추는 마음의 결연함 일 것이다. 스테파노 사건과 예수님 지체인 교회를 박해한 사건은 바오로 사도를 평생 따라다닌 멍에였다. 그의 아픔과 비탄의 눈물이 됐던 두 개의 가시는 언제나 그를 괴롭혔다. 사도의 열정 속에 숨겨진 아픔을 재구성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박해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날부터 그의 삶이 변화됐기에 '다마스쿠스의 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의 올바른 변화와 동의어가 됐다. 교회사나 순교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거나 고문했던 수많은 핍박자들이 주님의 빛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들의 믿음을 공언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순교까지 했음을 보여 준다. '다마스쿠스의 길'은 모두에게, 심지어 범죄자에게나 가장 타락하고 방탕한 자에게조차 포기하지 않고 열려 있다. 다마스쿠스의 길에 나타나 사울을 구원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삶에 들어온다. 다마스쿠스로 인도하는 그 길을 우리도 뒤따라 가보자. 성 가까이에 다가섰을 때, 성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부터 수정 같은 물을 공급받는 다마스쿠스의 초원(Ghoufa)이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다. 야자수와 사과나무, 도금양(늘푸른 떨기나무) 같은 탐스러운 유실수들이 성곽을 둘러싸고 있다. 다마스쿠스는 해발 690m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그 도시를 아브라함 시대에도 있었다고 말한다(창세 14~15장 참조). 그러나 요셉은 다마스쿠스는 아람의 아들이며 샘의 손자인 우스(창세 10,23)에 의해 세워졌다고 기록한다. 고대 아랍 시인들은 다마스쿠스를 '동방 세계의 눈'으로, '사막의 진주'로 부른다. 아랍 전통에 따르면, 마호메트는 다마스쿠스를 천국으로 지칭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은 한 곳뿐이다. 다마스쿠스에서 살아 보면, 지상의 다른 어느 곳에 가도 이 같은 천국을 발견하지 못한다." 사울을 찌른 두 가시 다마스쿠스의 성문으로 들어가 보자. 그 문을 통해 바오로가 성으로 들어갔으므로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옛날의 '곧은 길'로 향하기로 하자. 그곳에는 사울이 기거했던 유다의 집이 있고, 그곳은 후에 그리스도 성전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인 자미(Jami)가 들어서 있다. 이곳으로 그리스도 사도 하나니아스가 사울을 찾아왔다. 하나니아스와 사울이 얼마 동안 함께 보냈는지, 그리고 하나니아스가 주님 편에서 사울에게 정확히 무엇을 드러내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울이 홀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사울 입장이 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그를 전율시킨 것은 자기 자신이 조금 전까지 핍박했고, 감옥에 가뒀고, 사형에 처했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실은 무죄하고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돌팔매에 상처투성이가 돼도, 자신을 죽인 자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도록 주님께 간구할 힘을 가졌던 스테파노의 빛나는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죽음에 동참했던 바로 그 사울을 위해서도 스테파노는 기도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 권위와 율법을 수호한다고 생각했던 사울의 마음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를 찌른 또 다른 가시는 더 날카로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네가 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들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나도 핍박한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곧 나의 지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주님이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말씀했던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고, 그의 동료들이 그를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도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예수님 박해에 가담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지체인 교회를 핍박했기에 주님을 핍박한 것이 됐다. 사도 바오로는 마음속에 박혀 있는 그 두 개의 가시를 결코 제거할 수 없었다. 죄인이라 고백 그는 자기 서간들에서 여러 번 그 사실을 언급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갈라 1,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1티모 1,13).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1코린 15,9).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1티모 1,15). 생애 마지막까지 그가 이처럼 느끼고 공공연하게 고백한 것을 보면, 수많은 아픔과 비탄의 뜨거운 눈물로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 앞에서도 그러한 고백을 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니아스는 다마스쿠스의 1대 주교가 됐다고 전해진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그때까지 그의 삶 속에서 자라 온 정신이 뿌리째 뽑히고, 삶의 새로운 원칙들을 그 안에 심어야 했을 때, 그러한 거듭남은 시간과 마음의 진정과 신중함, 과거 잘못된 믿음의 반성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2코린 10,5). 그리고 마침내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고 말했다. 그 모든 것 안에서 "새 인간"(에페 4,24)이 나온 것이다. 정신의 사막에서 이 같은 신중함의 필요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1,17)에 적힌 것처럼, 당연히 바오로를 아라비아로 향하도록 떠밀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라비아를 둘로 나눴다. 잘 알려진 아라비아 반도와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암석으로 된 아라비아로 나뉜다. 거기에는 나바티아 왕국이 있고 그들의 왕인 아레타스는 헤로데 안티파스와 원수 사이였다. 그러므로 바오로가 그곳으로 와서 변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적해 일어났던 유다인들에게 더 이상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큰 사건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가 가르친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가는 곳마다 항상 성경책을 지닌 채 풀 한 포기 없는 고지대 사막으로 향했다. 사막은 늘 위대한 예언자들과 성 대바실리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을 키워 낸 곳이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로마 1,1) 바오로는 주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경의 바리사이식 해석을 재검토하고 개정했을 것이다. 율법 학자들의 율법을 하느님 뜻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주문서로 배제했을 것이다. 모세 율법의 계명들의 외양만을 지키는 것은 구원은커녕, 인간의 몸을 취한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너그러운 사랑을 보증하지 못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훗날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하고 썼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보낸 3년 동안의 사색을 통해 바오로는 주님의 인도자로서, 세계 만방을 그리스도께 이끈 사도로서 그 빛나는 업적의 진지를 구축한다. 오세택201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