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화랑] 신성태 서양화전, 이콘연구소 제6기 졸업전 신성태 서양화전과 이콘연구소 제6기 졸업전이 2월 9~15일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열린다. 문의 : 02-727-2336~7. ▨신성태 서양화전 희망으로, 40x31.8cm, 2010, 유화. 서양화가 신성태(가타리나, 59, 서울 명일동본당)씨가 정물과 풍경, 성화 등 밝고 따스한 기운을 한아름 담은 유화 20여 점을 선보인다. 신씨는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잘되게 하소서'(시편 90,17)라는 성경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이번 작품들을 그렸다. 본당에서 기도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붓칠 하나하나에 기도를 담았다. 신씨는 "제 그림을 만나는 분들 모두가 기분 좋은 기운을 얻고 갔으면 좋겠다"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들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1978년 효성여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신씨는 2007년과 2009년 제1,2회 개인전을 평화화랑에서 열었다. ▨이콘연구소 제6기 졸업전-영혼의 빛을 따라서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 제6기생들이 3년 과정을 마치고 마련한 졸업전시회다. 최경남(아녜스)씨 등 졸업생 8명은 "힘든 시간을 이겨낸 보람이 있다"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이콘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졸업전 주제는 '성모의 다양한 모습'이다. '수난의 성모(영원한 도움의 성모)', '비둘기의 성모', '야로슬라브의 성모' 등 비슷한 듯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성모 마리아 이콘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졸업생들은 성모 이콘 외에도 그동안 그려온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박수정 기자박수정2011.01.25
![[영성의 길 수도의 길]-(41)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35_1.1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41)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기도하고 일하며 교회와 세상에 그리스도 증거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하느님 찬미하며 출판 비롯 목공과 금속, 초, 유리화 공예 등 소임. 본당사목과 피정의 집 등 영성지도와 교육도 활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장. 촛불 5개는 5대양을, 배는 선교를, 물결 모양 W는 왜관수도원의 영문 첫 글자를 각각 상징한다. 아래 라틴어 글귀는 주지하다시피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회 모토다. 문장은 전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려는 선교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온종일 내리던 장맛비가 잠깐 그친 사이 왜관역에 내렸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성 마오로 쁠라치도 수도원(수도원장 이형우 아빠스)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아늑한 읍내를 걸어 수도원에 이르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옛 왜관성당을 지나 수도원으로 접어드니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아 2009년에 신축한 웅장한 성당과 수도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자신을 죽이는' 순교 영성과 자아포기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수도원은 중정 너머로 성당과 이어져 있다. #기도와 노동이 수도원 일상 수도원 일상은 기도와 노동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공동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오전과 오후 두 차례 각자 소임에 따라 일터에서 노동을 한다. 특히 독서기도와 아침기도, 아침 묵상, 미사, 낮기도, 저녁 묵상, 저녁기도,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끝기도로 새벽 5시부터 밤 8시까지 이어지는 기도는 수도생활의 정수다. 그 삶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베네딕도회 모토에 함축돼 있다. 왜관수도원이 교회, 나아가 사회와 만나는 가장 큰 접점은 역시 분도출판사(사장 선지훈 신부)다. 내년에 설립 50돌을 맞는 분도출판사를 통해 왜관수도원은 국내 성서학 및 신학 저술의 저변을 넓혔다. 그 사이 신간만 960여 종을 내놓았다. 인쇄소에 들어서니 편집 기획부터 시작해 제판과 인쇄, 제본으로 이어지는 일련 과정이 외주 없이 이뤄지는 분도출판사의 저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포켓용에 4ㆍ6판, 4ㆍ6배판 등 크기와 용도가 다양한 새 성경이 막 제본을 끝내고 잉크 냄새를 풍긴다. 각종 신학서적에서 문학서, 일반 단행본, 심지어는 낱장 인쇄물까지 없는 게 없다. 여기서 1년에 찍어내는 책만 해도 100만 부에 이른다. 인쇄소를 안내하던 지석영(베르나르도) 수사는 "하이델베르크사 4색 컬러 인쇄기에서 재단기, 접지기, 사철기, 정합기, 무선철기까지 다 최신식으로 설비를 갖췄다"며 "이처럼 좋은 설비를 갖춘 건 성경을 찍는데 교회에서 최고로 찍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수도원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쇄소 곁엔 '분도가구공예사'(대임자 이규단 수사)가 있다. 성당 비품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목재 비품을 만드는 그 현장이다. 수도자 2명을 포함해 총 26명이 일하는 삶의 터전이자 수도생활의 연장이다. 톱밥과 함께 자투리 목재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그 사이에 근사한 제대와 독서대, 감실대, 장의자 등이 놓여 있다.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벌써 문을 닫아도 한참 전에 닫았어야 할 공예사다. 하지만 기도하는 집에 필요한 비품을 제작하는 목공소이기에 수도원측은 갖은 정성을 다한다. 목공소를 둘러보다가 성물제작실, 금속공예실로 향했다. 성물 제작실을 맡고 있는 김신규(이냐시오) 수사는 마침 외출했다기에 잠깐 제작실에 들러 수사들을 형상화한 재밌는 토우와 성물을 보다가 곧바로 금속공예실로 향했다. 감실 제작 소임만 10년째인 김정배(이레네오) 수사는 "디자인에 따라 기본 틀을 만들고 거기에 동판을 씌우고 문양을 새기고 완성하는 주문생산과정에는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다"며 "보통 감실 1개 제작에 3~4주 정도 걸리는데 수도생활 영성하고도 잘 맞아 기도 연장선상에서 일한다"고 귀띔한다. 감실뿐 아니라 성작과 성합, 성반, 촛대 등 금속공예실에서 제작한 미사 도구가 공예실 초입 사무실에 전시돼 제각기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독일식 소시지 '분도햄' 생산 계획 수도회 가운데선 유일하게 20여 년째 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 중인 유리화공예실에선 김한경(리노)ㆍ조종운(쁠라치도) 수사가 한창 900가지 색유리를 재단하느라 여념이 없다. 중세 때 방식 그대로 유리 재단과 납으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각 성당이 처한 지리적 위치나 빛의 강도를 반영해 주문생산한다. 오는 7월 말 설치를 끝내야 하는 군종교구 공군 천성대성당 유리화 제작에 한창이다. 옛 왜관성당 사제관 1층에 자리한 초공예실에도 들렀다. 이영석(요한) 수사는 한창 밀랍 초를 담금질 중이었다. 석유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만드는 파라핀(양초)과 달리 토종꿀 생산농가에서 구한 벌집을 녹인 밀랍으로 정제하고 있다. 그래서 밀랍 초는 머리가 아프거나 그을음이 나지 않고 공기정화용으로도 좋아 요즘 성당이나 가정에서 기도할 때 인기품목으로 쓰이고 있다. 순대방에도 잠깐 들렀다. 우리식으로야 순대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독일식 소시지 생산 현장이다. 왜관수도원 본원 부원장이자 순대방 책임자인 강대봉(알빈) 수사는 수도원 내에서만 먹던 소시지를 '분도햄'이라는 이름으로 조만간 일반에 시판을 계획을 세웠다. 지난 5월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행사 당시 3시간 만에 1000개가 다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끈 분도햄은 주된 양념을 독일에서 직수입하되 일반 양념이나 돼지고기는 국내산으로 충당한다. 강 수사는 이참에 '분도식품'도 차려 사업자 등록도 할 구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왜관수도원은 대구대교구 내 본당사목도 맡고 있고,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 수녀원 등 수녀원엔 신부를 파견해 영적 지도를 맡고 있다. 서울ㆍ부산ㆍ요셉ㆍ왜관 피정의 집을 통해 평신도들의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대구 대명동 가톨릭 신학원, 가톨릭 교리통신교육회, 왜관 순심 남녀 중ㆍ고교를 통해 교육에 종사하고 있다. 사회사업으로는 분도노인마을과 구미 가톨릭 근로자센터를 통해 양로사업 및 노동사목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중국 내 북방사도직 활동과 함께 1987년 경기 남양주시 성 요셉수도원 설립, 2001년 미국 뉴튼수도원 인수, 2006년 전남 화순수도원 설립 등을 통해 저변을 넓히며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필요로 하는 곳에 이미 가 있는',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헌신하는' 그리스도 정신의 실천이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영성과 역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884년 6월 29일 설립된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지금도 전 세계 베네딕도회 21개 연합회와 5개 자치수도원, 2개 예속수도원 중에서 오틸리엔연합회에 속해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베네딕토(480~547년께) 성인이 저술한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고 △은수자처럼 홀로 살지 않고 공동생활을 하는 '회수도자(會修道者)' 전통에 따라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립수도회라는 네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함께 1884년 독일 보이론수도원 안드레아스 암라인(1844~1927년) 신부가 '안으로는 수도자, 밖으로는 선교사'라는 표어를 내걸고 설립한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선교 베네딕도회(Missionsbenediktiner)'다. 즉 베네딕도회적 수도생활과 전체 교회의 선교사명에 협력한다는 두 가지 요소를 기본사명으로 한다. 이같은 설립 정신에 따라 기존 교구 내에 수도원을 세우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학교 운영 및 문화예술활동 등을 통해 교구 전체 사목을 돕는다. 특히 기도와 형제애적 사랑 실천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상적 공동체를 형성해 교회와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집중한다.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파견된 것은 1909년 12월로, 서울 백동(현 혜화동) 낙산 아래에 수도원을 세웠다. 한국교회사는 이를 국내 첫 남자 수도회 설립으로 기록한다. 1920년 교황청에서 성 베네딕도회에 원산대목구를 위탁하고 대목구장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아빠스를 임명하자 1927년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겼다. 이와 함께 1922년 만주 간도지역이 원산대목구 관할로 들어오자 1928년 연길 수도원을 세웠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종료와 더불어 중국과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수많은 순교자를 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을 온 덕원ㆍ연길수도원 수도자들이 1952년 7월 왜관에 수도원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왜관 본원을 비롯해 대구ㆍ부산ㆍ서울분원과 요셉수도원, 화순분원, 뉴튼수도원 등 분원 6곳이 있다. 회원은 지난 2월 현재 145명에 이른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성소모임 ▲왜관수도원 본원 :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주일 오후 1시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134의1(본원 상원관), ▲서울 분원 :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6시~주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 54(서울 장충동 분원) 문의 : 054-970-2342ㆍ010-8353-2323(왜관수도원 본원), 02-2273-6394ㆍ010-9903-4180(서울 분원) cpbc2011.07.12

작가와 함께 걷는 특별한 십자가의 길서울 중화동본당, 이숙자 수녀 초청 작품 해설 특강중화동성당에 걸려있는 이숙자 수녀의 '십자가의 길' 중 제1처. 묵묵히 고통을 받아들이는 예수와 그의 모함하는 손가락이 그려져있다. 왼쪽 위의 눈치를 보고, 화를 내는 듯한 세 얼굴은 겁쟁이처럼 방관하는 우리를 의미한다."예수님과 성모님을 둘러싼 둥그런 가시면류관이 보이죠? 그것은 고통과 슬픔을 나누는 모자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서울 중화동본당(주임 윤재한 신부) 신자들이 16일 특별한 손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성당에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제작한 작가 이숙자(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수녀를 초청해 해설 특강을 열었다. 이 수녀는 제대 십자가, 감실, 성바오로상 등 중화동성당 모든 성물을 제작했다. 성당 벽면에 걸린 아크릴화 십자가의 길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 수녀는 제1처 제작 당시 영감을 받은 성경 구절을 낭독한 뒤, 구도와 상징을 설명했다.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진 제5처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받쳐들고, 그 무게를 느껴보자"고 말했다. 묵상을 유도하는 그의 설명이 예수님의 고통을 실감케 한 것인지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신ㆍ구약을 넘나드는 주석 역시 신자들 이해를 도왔다. 제2처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요한 19,17)는 수난복음에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이사 53,4)는 구절을 곁들였다. 강의를 경청한 배영순(린다, 52)씨는 "예수님 고난을 다룬 작품을 많이 봤지만 작가 설명을 들으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 또한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며 "앞으로 다른 성물을 볼 때도 다양한 각도로 살피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재한 주임신부는 "작가 설명을 통해 그 뜻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묵상하기 위해 특강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내 작품을 나보다 더 오래 보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가족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특강 내내 신자들과 손잡고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듯 했다"며 활짝 웃었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김은아2011.03.22
하루 한 장 성경읽기 마태오 복음서 해설「마태오복음서」를 시작으로 4권의 '복음서'와 1권의 '행전'과 21권의 '서간'과 1권의 '묵시록'으로 구성된 '신약성경'이 시작됩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작성된 구약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살던 시대에 로마제국에서 오늘날의 '영어'에 해당하는 지위를 누리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작성돼 있습니다. 오늘은 신약성경의 첫째 책이자 4복음서 가운데 첫 번째 책인 「마태오복음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1)「복음서」와 「공관복음(共觀福音)」이란? 신약성경의 첫 4권은 '복음서'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예수님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깊이 묵상하여 이야기체로 서술한 책들입니다. 그런데 이 4권의 복음서들 가운데 3권인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복음서에는 상호간에 매우 유사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3권을 서로의 신학적 관점이 비슷하다 해서 '공관(共觀, Synopsis)복음'이라 불러왔습니다. (2)「마태오복음서」 저자 및 저술 연대와 장소 「마태오복음서」는 전통적으로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마태오'에 의해서 작성됐다고 믿어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아람어와 유다인 풍습에 정통한 유다계 그리스도인에 의해 시리아 지방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원 후 80~90년께 작성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3) 「마태오복음서」의 구조와 내용 「마태오복음서」는 아래와 같이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2,23: 유년기 설화 2) 3,1~7,29: 옛 율법과 새 율법 2-1) 3,1~4,25: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 2-2) 5,1~7,29: 산상 설교 3) 8,1~11,1: 제자 교육 3-1) 8,1~9,34: 병자들의 치유와 제자들의 모집 3-2) 9,35~11,1: 설교: 이스라엘에 대한 제자들의 사명 4) 11,1~13,52: 하늘나라 4-1) 11,2~12,50: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가르침 4-2) 13,1~52: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들 5) 13,53~18,35: 공동체 문제 5-1) 13,53~16,12: 갈릴래아 지방에서 예수님의 활동 5-2) 16,13~17,23: 수난을 당하실 메시아이신 예수님 5~3) 17,24~18,35: 공동체를 위한 지침들 6) 19,1~25,46: 종말론 6-1) 19,1~20,34: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6-2) 21,1~25,46: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활동 7) 26,1~27,66: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8) 28,1~20: 예수님의 부활 (4) 핵심 주제들 1)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곧 "임마누엘"(마태 1,23)이십니다. 2) 복음서들 가운데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한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라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3) 유일하게 "교회"(마태 16,18; 18,17)라는 낱말을 사용한 「마태오복음서」는 하늘나라의 완성인 종말이 교회와 더불어 시작된다며 교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이힘2009.09.08

두려움과 은총의 50년… 항상 하느님께 감사금경축 맞는 정진석 추기경사제수품 50돌, 정진석 추기경에게 듣는다대담=평화방송 · 평화신문 이윤자 신문이사18일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사제품을 받은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교회 교구장이 현직에서 금경축을 맞기는 지난 2000년 3월 윤공희 (당시 광주대교구장) 대주교에 이어 두 번째다. 정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지난 50년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시대를 이끌었던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이 되고, 또 추기경에 서임된 것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를 떠올릴 때는 신학교 입학 시절로 돌아가 눈물을 흘렸다. ▲1961년 사제품을 받고 50년, 반백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사제품을 받을 당시가 지금도 생각나시는지요? 어떤 사제가 되기를 꿈꾸셨고 그 꿈을 이루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 하느님 뜻에 따라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림으로써 영생이라는 구원을 받는 것이 인간이 사는 목표입니다. 그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제는 스스로 하느님 구원 진리를 깨닫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도 그 진리를 깨닫게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선발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제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또한 감격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1년 3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을 때, 내가 감히 그런 사제가 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6ㆍ25전쟁 때 죽을 고비를 넘기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 제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바로 그런 사제가 되라는 하느님 뜻이었습니다. 죄 많은 내가 어떻게 성스러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감정이 북받쳐 많이 울었습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수품 성구로 택한 성경 구절이 '나 너를 사랑하시는 줄을 너 알으시나이다'(요한 21,15)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묻자 베드로가 한 대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었죠. 제 마음이 베드로와 같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 보시기에는 잘못 투성이일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리라 믿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 오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가족과의 작별인사도 허락하지 않으셨죠. 그만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지난 50년, 적어도 겉으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척한 것 같습니다. 시늉은 한 셈이죠."하느님께서 뽑은 사람인 사제가 된다는 것은참으로 두렵고도 감격스러운 일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199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추기경님 삶에 큰 전환점이 됐을 것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사제품을 받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0년에 청주교구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얼떨결에 주교가 됐습니다. 자격도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서울에서도 명동과 신학교만 알던 제가 로마 유학 중에 주교로 임명된 것입니다. 28년 만인 199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고향인 명동에 다시 오게 되니 꿈만 같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아주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구장 주교가 자리를 옮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마음이 아주 복잡했습니다. 전임 교구장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워낙 큰 인물이다 보니 그분 후임이 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서울을 떠난 지 30년이 됐는데, 저를 과연 받아줄지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시골에서 살던 제가 김 추기경님 자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십자가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가 짊어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십자가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겠다 싶으면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나타나 십자가를 같이 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느님은 내 능력을 아시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십자가를 허락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일매일 그런 체험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는 신념이 됐습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매일매일 절감하며 삽니다. 십자가를 함께 짊어진 사람들 덕분에 외롭다거나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교구장직을 수행하면서 살아온 삶이 보람되고 기쁩니다. 그 기쁨 역시 십자가를 함께 진 이들과 같이 누립니다." ▲24일은 교황청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신 지 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추기경으로서 지난 5년의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매 순간 두렵다는 생각뿐입니다. 다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데, 저는 돌아갈 것도 없습니다. 두렵다는 초심 그대로이니까요. 추기경직은 제게 참으로 두렵고 과분한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부족한 제가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주심에, 저녁만 되면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립니다. 어떻게든 하느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사람이 되고자 나름 힘껏 노력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 유능한 분이 이 자리에 계시면 교구도 더 발전하고, 신자들에게도 더 유익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만 합니다." ▲지난 5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인간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또 언제였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매일 저녁이 되면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기뻤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얼떨결에 주교 되고 추기경으로 서임…과분한 자리 알기에 초심 잃지 않고 늘 기도 ▲한국교회는 추기경님께서 사제품을 받으신 5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내적 신앙이 외형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50년간 한국교회는 기적과 같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50년 전 1%에 불과하던 복음화율이 지금은 10%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다음으로 높은 복음화율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교회가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것은 한국교회 신자 모두가 힘을 합쳐 하느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만큼 성직자와 수도자를 꾸준히 봉헌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한 해 배출하는 사제만도 150여 명에 이릅니다. 세계적으로 놀랄 일입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고요. 또 그렇게 탄생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본당은 또 해마다 얼마나 많이 신설되는지 모릅니다. 성전을 새로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납니다. 신자들이 큰 희생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에는 10년 전부터 성경공부 바람이 불었습니다. 성경공부의 열매가 실생활로 이어지는 단계가 됐습니다. 매우 고무적입니다." ▲세계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를 봐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요? "인생은 순간입니다. 성경도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10) 라고 말합니다. 의술이 발달해서 아무리 수명이 늘어난다고 한들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덧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적인 현세에 얽매이지 말고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살기를 권합니다. 결국에는 흘러가버리고 마는 이런저런 일에 집착하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현세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이 될 때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진리를 향해 살아갑시다." 50년간 한국교회 비약적 발전 이룩한성직자·수도자·평신도 모든 분께 감사현세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 되기를 ▲대선배로서 후배 사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텐데요. "신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신학교를 지원할 당시의 초심을 끝까지 간직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 때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주실 겁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하느님께 알게 모르게 송구스러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뉘우치고 속죄한다는 것을 겉으로 표시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그런 뜻에서 단식이나 고행을 하면 유난스럽다고 핀잔을 받기가 쉽습니다. 사순시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순시기를 정한 것은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선행하라는 뜻에서입니다. 하느님께 송구스러운 것이 있으면 이번 사순시기에 고행과 자선으로 훌훌 털어버리세요.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은 기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질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하셨습니다. 요즘 재물이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불의가 재물과 결부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질에서 초연해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악은 아닙니다. 선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로 다른 이들에게 선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물질을 다른 위해 쓰는 게 중요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퇴사자22011.03.08
![[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657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89) 아량을 넓히려면Q. 아량을 넓히려면 새내기 직장인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고요. 저는 직장에서 통큰 남자로 통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호인처럼 웃어 넘기니까 주위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남자로 알고 저와 결혼한 여자는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를 보고 새가슴이라느니 잘 삐친다느니 하면서 놀려댑니다. 사실 저는 밖에서는 호인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일에 잘 삐치는 성격이라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제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밤새 고민할 때가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형제님은 베드로 성인에 대해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인간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던 분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것도 그렇고, 바오로 사도에게 힐난을 당한 것도 그렇고, 주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야단을 맞은 것도 그렇고 말 그대로 흠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신흥종교에 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가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량이 넓은 분이셨습니다. 비단 베드로 사도뿐 아니라 대제국을 이룬 역사 속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아량이 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민족의 왕임에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칭송받는 페르시아 왕은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백성을 존중하는 큰 아량을 보인 사람으로서 페르시아 대제국을 이룬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량이 좁은 지도자들, 내 편 네 편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하고 늘 적대감을 가지고 살았던 지도자들은 악명을 떨치거나 단명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만약 베드로 사도가 아량이 넓지 않은 분이셨다면 초기 가톨릭교회는 작은 종교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시쳇말로 '용서의 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른 사람들을 잘 용서해줬을 뿐만 아니라 자기용서를 잘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스스럼없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글을 올리실 수 있었습니다. 자기용서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는 용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인데, 이 중에서 자기용서는 생소하지만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입니다. 심리학자 베브스몰우드는 자기용서가 정신건강에 아주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아량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큰 용서를 받았을 때 관대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용서를 받고나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에 잘못한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격려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 율법적으로 삭막하게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 자신도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기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용서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반면 자신의 인생에는 하자가 전혀 없어 용서받을 일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까칠한 성격을 갖게 돼 아량이 좁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해 아주 심하게 몰아붙이고, 편을 갈라 생각하는 옹졸함을 보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고 하신 것은 바로 자기용서의 영성적 의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이 아량을 키우시려면 우선 자신의 잘못을 심하게 따지지 말고 자기용서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기용서에 대해 부연하자면, 고해성사를 보고 난 후에도 마음이 불편한 분들 역시 자기용서가 안 되는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용서를 해주셨다고 해도, 고해신부가 사죄경을 해줬다고 해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단죄를 합니다. 이 때문에 고해를 하고 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고, 보속이 너무 작다고 자학적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마음은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심리적 연옥'에서 산다고도 하는데,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자기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잘못한 이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힘2011.02.08
![[아! 어쩌나?] (91) 순종적인 신앙인?](//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980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91) 순종적인 신앙인?Q. 영세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자입니다. 대부님은 아주 열심인 분으로, 늘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돼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저희 가정은 아버지가 아주 엄격하셔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살아왔는데, 신앙생활도 그렇게 해야 한다니 괜히 세례를 받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직 신앙인이 될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적 신앙인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오로지 주님 말씀에 의탁하고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에서 발간된 성인전 영향이 큽니다. 사회의 위인전과 마찬가지로 성인전 역시 그 성인의 인격적 결함 같은 내용은 삭제되고 지나치게 이상화되고 미화된 경향이 있어 성인전을 읽은 분들은 성인이 되려면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례로 스페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가르멜수도원을 개혁한 분으로 유명하고,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나도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심장을 꺼낼 때 피가 흘러내린 기적으로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생전에 다른 수도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시길, "수도자가 너무 온순하면 수도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답니다. 진정한 수도자가 되려면 당당하고 대찬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도원 벽에 걸린 데레사 수녀님 초상화는 온순한 비둘기 같은 인상이 아니라 사나운 매와 같은 인상입니다. 데레사 수녀님이 강조하신 것은 영성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건강한 반항의식'을 갖고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항, 그러면 많은 분이 "그거 좋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반항적인 사람들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문제아란 편견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달심리학, 영성심리학에서는 반항은 내적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남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살면 내적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조건 대들고 삐딱하게 살라는 말이냐고 반문할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반항의 종류는 '건강한 반항'과 '병적 반항' 두 가지입니다. 병적 반항이란 낡은 것은 무조건 타파해야 한다고 배타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병적 반항은 심리적 퇴행의 산물이라서 내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고집이 심해 대인관계에도 좋지 않습니다. 또 필요없는 것에 신경을 써서 자기 인생을 축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합니다. 이에 반해 건강한 반항은 사람의 정신세계를 속박하려는 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경직된 신념을 깨뜨리고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건강한 반항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고 늘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삽니다. 교회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런 건강한 반항의식을 가진 분들이고, 그 대표적 주자가 바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이십니다. 형제님께 우화 한 가지를 알려 드리지요. 주님께서 사도를 한 사람 더 뽑으려고 하시면서 자격조건은 순종적 사람이어야 한다고 공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순종형 영성가들이 모여 심사받을 준비를 했답니다. 첫 번째 영성가가 나서며 말하길 "주님 저는 순종적 사람이란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해서 제 생각 제 욕구는 다 억누르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그건 맞도다. 그런데 너와 같이 살던 아이들 말로는 네가 뒤끝이 많아서 뭘 내주고는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너희는 나한테 뭐 줄건데'하며 달달 볶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고 천당 화장실이나 지키거라" 하셨답니다. 두 번째 영성가는 "주님 저는 순종적 신앙인이란, 세상을 멀리하고 가난하게 사는 삶이라 생각해서 사람도 안 만나고 옷도 헌옷만 입고, 먹는 것도 거칠게 먹고, 딴 마음이 들 때마다 저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는 당나귀와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왜냐면 당나귀도 맨땅에서 자고 풀잎만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질 당하면서도 주인밖에 모르니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영성가는 "주님 저는 성경을 달달 외워서 모든 대답을 성경 말씀대로 하고, 제가 입는 옷과 행동 모두 주님처럼 하려고 애썼습니다"하고 말하자 주님은 "너는 네 생각이 없이 남의 말만 따라 하니 구관조를 닮았고, 행동도 내 것을 흉내 낸다니 원숭이와 같구나. 이제부터 천당 동물원지기를 하여라"하고 명하셨답니다. 모든 부모님은 순종하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순종적이면 걱정합니다. 그런 마음은 하느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건강한 반항의식을 잘 키우면서 사시길 바랍니다.이힘201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