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영적 식별은 왜 필요한가?](//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6541_1.0_titleImage_1.jpg)
[출판] 영적 식별은 왜 필요한가?늘 하느님 목소리를 파악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마누엘 루이스 후라도 신부 지음/박일 신부 옮김/가톨릭대학교출판부/2만 5000원 영적 식별은 왜 필요한가. 40년 넘게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 영성대학원에서 영성신학 교수를 지낸 마누엘 루이스 후라도(Manuel Ruiz Jurado, 예수회) 신부는 자신의 열망과 야망을 하느님의 목소리와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늘 하느님의 목소리를 파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때때로 말씀을 무질서한 감정들을 통해 받아들인 나머지 자신의 요구들로 덮어 씌운다. 게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은 급작스럽게 나타나거나 완전히 이해된 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밝혀지고 완성되는 경향이나 매력처럼 드러난다. 영적 식별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성소의 은총을 알아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영적 식별의 역사와 신학, 역사 흐름에 따라서 본 식별, 식별을 위한 기준 등 영적 식별의 신학적 기초를 찾아 세운 「영적 식별」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영적 식별」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과 사도직 등 교회 내에서 식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신학적 바탕에 의거한 식별을 연구한 책이다. 저자는 식별의 영역이 거의 어수선해졌고, 분명하게 밝히는 데 사용돼야 할 식별의 도구가 혼란의 도구로 바뀌었음을 지적한다.「영적 식별」은 '영적 식별과 영들의 식별' '고대 그리스도교에서의 식별' '우리 시대에 있어서의 식별' '성소 식별' 등 9장으로 구성했다. 또 시대의 징표와 교회 생활 속에서의 카리스마, 교리, 예언 등 성경에서 암시한 식별도 다뤘다. 다양한 시대에 걸쳐 영적 식별이 어떻게 적용됐는지 등을 담았다. 헤르마스, 오리게네스 등 교부들의 증언을 통해 그리스도교에서의 식별을 알아봤다. "가장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을 행하기로 결정했을 때, 사람에게 스며들어 오는 평화의 감정은 하느님과 인간 존재 사이의 조화에서 생긴다. (중략)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결정적인 방침을 혼란하게 하거나 평화를 빼앗는 것, 방향을 어둡게 하고 헛된 두려움을 일게 하는 것 등은 부정적 요소가 개입되고 있다는 표지일 것이다."(208쪽) 저자는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선택한 사람들을, 하도록 선택된 그 일을 위해, 그것을 할 수 있는 적합한 이들이 되도록 예비하시고 준비시키신다"(2코린 3,6)고 말한다. 1930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예수회에 입회한 저자 후라도 신부는 철학ㆍ문학, 교회철학 석사와 신학 석ㆍ박사학위를 받고 로마 예수회 역사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해왔다. 그레고리오대학 영성대학원장을 지낸 후 사제들을 대상으로 영신 수련 지도를 하고 있다. 옮긴이 박일 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퇴사자22011.02.08

기존 프로그램들 간 유기적 협조서울대교구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 내용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민병덕 신부)이 최근 발표한 '성서사목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는 서울대교구 각 본당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서사목 현황을 조사해 정리한 자료다. 통계 수치 위주의 양적 분석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세 차례 집단심층면접을 통해 각 성서공부 프로그램의 장단점과 보완점을 논의했다. 보고서는 성서사목 현황을 △성경읽기와 성경필사 등 사목자 권유로 이뤄지는 전신자 대상 성서교육 △사목자가 신자 재교육을 위해 강사를 초청해 이뤄지는 성서강의 △사도직단체에서 파견된 강사나 봉사자들을 통해 이뤄지는 사도직단체 연관 성서교육 등 3가지 형태로 분류해 살폈다. 서울대교구 내 10여 개 성서공부 프로그램 가운데 본당에서 주로 활용하는 것은 '가톨릭성서모임'으로 전체 41.7%에 달한다. #성서공부 프로그램 가톨릭성서모임 이용 가장 높아 자료를 제출한 본당 중 91.7%인 154개 본당이 '사도직단체 연관 성서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수는 283개로 나타났다. 프로그램 별 전체 분포 현황을 보면 가톨릭성서모임이 41.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성서백주간(17.7%), 가톨릭청년성서모임(15.5%)만이 10%를 넘었을 뿐 그 밖에 프로그램은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여정과 성서 40주간(각 6%), 성서 못자리나눔터(5.3%), 성경73(2.1%), 바오로 성서모임ㆍ새로나는 성서공부(2.1%), 은빛여정(0.7%)이 있었다. 시행 중인 프로그램을 한 단위로 보고 이를 합친 숫자로 사도직 단체별 빈도 및 비율을 나타낸 세부 프로그램 실시 현황을 살펴보면, 가톨릭성서모임은 473개 프로그램이 실시돼 전체 프로그램의 63%를 차지했다. 이어 청년성서모임이 14.1%를 차지했고 성서백주간(6.6%), 성서못자리나눔터가(5.6%), 여정(5.5%), 성서40주간(2.3%)은 10% 미만 수치를 보였다. #본당에서는 '사도직단체 연관 성서교육' 위주 '사도직단체 연관 성서교육'만 실시하는 본당이 77개(45.8%)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전신자 대상 성서교육'과 '사도직단체 연관 성서교육'을 함께 실시하는 본당이 23.2%였다. 세 가지 형태를 모두 실시하는 본당이 16.7%다. 전신자 대상 성서교육을 하는 본당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세부 프로그램은 성경 필사였다. '성서강의'는 44개 본당이 실시했고,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이는 강의는 14개 본당이 채택한 성서입문이었다. #심층면접에서 드러난 성서사목 과제 신자들이 성서를 공부할 때 어느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든 연계해 공부할 수 있도록 기존 프로그램들 간 유기적 협조와 관심이 필요하다. 성서공부 봉사자는 성서를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며, 함부로 해석해 전달하는 것보다 신자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산파 역할만 해야 한다. 본당은 특정 성서공부 프로그램만을 운영하기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 운영함으로써 신자 개개인이 적당한 프로그램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교구는 성서사목이 모든 본당 사목의 기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공동체 모임을 할 때 성경읽기부터 전반적으로 다시 시작한다면 모임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까지 공부할 수 있는 성서교재가 좋은 교재다.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있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교재는 하느님 백성들이 성서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모든 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성서교재를 개발하고 그에 맞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0.06.15
[하루 한 장 성경읽기] 다니엘서 해설「다니엘서」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제 네 번째 '대예언서'인 「다니엘서」를 읽으실 차례입니다. 교훈적 이야기와 묵시문학이 독특하게 결합된 「다니엘서」는 전 백성의 그리스화를 천명한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 임금(기원전 174~164)의 박해로 고통을 받던 유다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작성된 '역사 묵시문학서'입니다. (1)「다니엘서」의 주인공들 이 책의 제목은 주인공인 '다니엘'의 이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은 심판하신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다니엘과 함께 등장하는 세 젊은이의 이름과 뜻은 각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난야'(주님께서 은총을 드러내신다), 둘째, '미사엘'(누가 하느님께 속해 있는가), 셋째, '아자르야'(주님께서 도와주신다)입니다. (2)「다니엘서」의 저자와 저술 연대 이 책은 스스로 '다니엘'이 저자라고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9,2; 10,2), 전통적으로도 예언자 다니엘이 기원전 6세기에 앞날의 예언을 적어 놓은 실제 역사 이야기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여러 저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이 기원전 164년께 최종 편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9,4~20 참조). 그 해에 시리아 셀레우코스 제국의 9대 왕으로 안티오쿠스 5세가 즉위했습니다. (3)「다니엘서」의 구성 「다니엘서」는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1,1~6,29: 다니엘과 세 친구 이야기 1-1) 1,1~21: 바빌로니아 왕국에 등용된 유다 젊은이들 1-2) 2,1~49: 네부카드네자르의 꿈을 해몽한 다니엘 1-3) 3,1~97: 불가마 속에서 신앙을 지킨 세 유다 젊은이 1-4) 3,98~4,34: 네부카드네자르의 두 번째 꿈 해몽과 실현 1-5) 5,1~6,1: 벨트사차르의 잔치 때 나타난 하느님의 뜻 1-6) 6,2~29: 사자 우리 속의 다니엘 2) 7,1~12,13: 다니엘이 본 묵시적 환시 2-1) 7,1~28: 네 짐승의 환시 2-2) 8,1~27: 숫양과 숫염소의 환시 2-3) 9,1~27: 70주간의 해석 2-4) 10,1~12,13: 네 왕국의 환시 3) 13,1~14,42: 다니엘의 다른 공적들 3-1) 13,1~64: 모함에 빠진 수산나를 구함 3-2) 14,1~22: 벨의 사제들의 음모를 밝힌 다니엘 3-3) 14,23~42: 뱀을 죽인 다니엘 (4)「다니엘서」의 가르침 시리아 임금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시절에 유다인들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첫째, 박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 이방 통치자와 군인들과 이방 주민들의 종교 관습을 유다인들은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둘째, 박해가 이미 일어난 다음이라면 유다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였습니다. 첫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다니엘서」는 유다교 신앙관습을 준수하기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장소인 이교인 궁정 안에서 유다교 신앙에 충실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교인 임금의 궁정에서 시종으로 지내자면 이교식 이름으로 개명(改名)하고 이교식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교식 이름은 대부분 이교신들의 이름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취하는 것은 우상숭배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다니엘과 세 청년들은 이교식 이름을 편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교식 음식을 먹는 대신에 그들은 채식 요리를 청해 먹음으로써 유다교의 음식 규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일어나 유다 종교 자체에 반대되는 명령을 받는 경우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유다교의 일상 기도(6장)와 정해진 규정에 따른 예배를 막거나 우상 숭배, 특히 신격화된 이방 임금을 섬기라고 강요하면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불가마 속에서도 그들을 구해 주실 것입니다(3장). 또 설혹 주님의 도움이 없더라도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3,18). 기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느님의 구원이 있든 없든,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을 저버릴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이힘2009.06.23
![[복음화의 산실 지금 우리교구는] 군 선교 60돌 맞은 군종교구](//cpbc.co.kr/CMS/newspaper/2011/09/rc/390802_1.0_titleImage_1.jpg)
[복음화의 산실 지금 우리교구는] 군 선교 60돌 맞은 군종교구60년간 영세자 38만 6180명 배출한 '선교 교구'지난해 10월 육군 제1사단 전진성당에서 봉헌된 군인주일 기념미사에서 장병들이 손을 맞잡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한국교회 유일한 속인(屬人)교구이자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청년 선교 교구인 군종교구. 영세자 연 3만 명을 내는 군종교구는 한국교회에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중추 역할을 한다. 2009년 교구 설정 20주년과 올해 군 선교 60주년이라는 징검다리 경사를 맞은 군종교구의 선교 노력과 결실에 대해 짚어본다. 또 지난해 9월 교구장에 착좌, 교구 새 수장이 된 유수일 주교에게 지난 1년의 소회를 듣는다. #젊은이 선교의 황금어장 주교회의가 발표한 「2010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20대 남성 영세자 중 89.8%가 군에서 세례를 받았다. 군 선교가 20대 젊은이, 특히 남성들에게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군종교구는 지난해 2만 8015명을 하느님 자녀로 탄생시켰다. 3만 611명에게 세례를 준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많은 영세자를 낸 것이다. 지난해 한국교회 전체 영세자 수가 14만 644명인 것을 감안하면 군종교구는 한국교회 성장에 1/5(19.9%) 몫을 해내고 있다. 이는 군종교구 없이 한국교회가 성장을 장담하기 어려우며 특히 청년 선교는 꿈꾸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반 사병의 경우 5주 가량 거쳐가는 신병훈련소에서 받는 교리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새 영세자들이 제대 후에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이어갈지도 의문이다. 교구 사목자들은 한국교회 전체 교구와 사목자, 신자들 관심이 더해질 때 군 영세자들이 냉담교우로 전락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교구 선교국장 이응석(방패본당 주임) 신부는 "군종교구는 20년 뒤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부단히 씨를 뿌리고 있다"며 "사제ㆍ수도자ㆍ신자가 모범이 돼 군 장병들에게 신앙에 대한 확신을 준다면 군 선교가 더 활성화할 수 있고, 제대 장병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 신자들 노력이 더해질 때 선교 효과 쑥?? 부대 관할지역 교구와 본당의 협조를 얻어 군 선교에 박차를 가한 본당이 눈에 띈다. 경북 영천 3사관학교 성바실리오성당(주임 손해락 신부)에는 올해 1월부터 대구가톨릭신학원 출신 선교사 10명이 거의 매주 성당에 찾아와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선교사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반 생도 교리교육을 담당하는데, 6주간 기본 교리교육이 끝나면 사제가 세례를 주고, 생도들은 곧바로 10주 동안 보충교리를 받으며 신앙을 다진다. 이런 식으로 지난 8개월 동안 200명이 넘는 생도가 하느님 자녀로 태어날 수 있었다. 생도들이 16주간 집중적으로 교리수업을 받으면 일반 교구에서 6개월간 교리공부를 하는 것과 양적ㆍ질적으로 손색이 없다. 선교사들이 친자녀 대하듯 생도들을 대하고 반 별로 맡아 책임감을 갖고 교리교육에 임하다 보니, 3사관학교 한 학년 정원 500명 중 100명 정도가 성당에 나와 교리교육을 받고 미사에도 참례한다. 기존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받고 오랜 냉담을 풀기도 한다. 경북 포항 해병대요람본당(주임 주용민 신부)도 인근 대구대교구 4대리구 대해ㆍ대잠ㆍ오천ㆍ효자 등 8개 본당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 덕분에 매월 120~200명 영세자를 내고 있다. 매주 한 본당씩 돌아가며 레지오 단원들이 해병대요람성당을 찾는다. 김밥이나 순대 등 부대에서 맛보기 힘든 간식을 준비해 가면 훈련에 지친 장병들이 단원들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성당으로 달려나온다. 단원들은 교리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군 생활의 고민도 들어준다. 본당 수녀들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윤 엘리사벳ㆍ홍 유디트(예수성심시녀회 대구관구 소속) 수녀는 사제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해병대 장교들 어려움을 들어주며 선교활동을 펼치기에 선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인터뷰 /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9월 15일로 착좌 1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감회를 들려주십시오. "군종 경험이 없는 제가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됐을 때 저도 놀랐습니다. 그러나 군종교구든 일반 교구든 결국 삶의 좋은 표양과 말씀선포와 기도로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은 같습니다. 부족한 능력과 여러 결점에도 주님께 의탁하며 기쁘게, 그리고 열심히 주교로서 '섬김의 직분'을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군 선교 60주년의 영광스런 해입니다. "군 선교 60주년은 뜻깊고 감동적 의미가 있습니다. 군 선교는 6ㆍ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몇몇 교구 신부님들의 복음전파에 대한 순수한 사명과 열정으로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군종 사목이 조직을 갖추고 지원 사제도 증가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지난 60년 동안 영세자 수를 조사해 보니 38만 6180명이었습니다. 이는 전체 신자 수의 7.4%에 해당합니다. 군 사목이 우리나라 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한 것입니다. 이들 중 95%는 젊은 병사들이었습니다. 젊은이 복음화에 기여한 것이지요. 사제 성소자 증가와 전국 교구장님들의 기꺼운 협조, 군종 사제 지원자 증가, 장기복무 지원 사제 증가 등은 교구에 큰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최근 복음화율 증가만큼이나 냉담교우가 늘어 세례받은 장병의 제대 후 관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군종교구 사제들과 수녀님, 민간 선교사들과 교구 신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연 평균 2만 7000여 명이 하느님 자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 사정상 교리를 충분하게 가르친 후 세례를 줄 수 없고, 잦은 이동으로 후속 교육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늘 걱정입니다. 교구는 세례받은 장병이 제대 후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세례대장을 입력할 때 전역 일자와 정확한 거주지 주소를 등록한 뒤 전역일에 맞춰 영세자 거주지 본당에 세례 사실을 알려 교적 생성을 권고하는 통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군종교구의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영성의 기초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계명과 함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기도생활, 성경말씀 공부와 묵상, 성사생활, 교회 전례에의 충실한 참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성생활 활성화를 위해 내년부터 3년 동안 교구 사목 중심을 '신앙과 희망과 사랑'이라는 세 가지 덕의 추구에 두고자 합니다." ▲군 복음화를 위해 군종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군인 복음화'는 한국 모든 교구와 신자들의 공동 관심사입니다. 군종교구는 전국에 흩어진 군인들을 사목하기에 그야말로 '전국 차원'입니다.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이 '군 복음화의 중요성'과 '군 사목의 전국 차원'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군종 사목이 많은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청합니다. 특히 아들을 군에 보낸 가족들은 아들이 군에서 하느님을 더욱 많이 체험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재정적으로 열악한 군종교구를 많이 지원함으로써 군종사제들이 보다 원활하게 사목에 임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여름휴가를 동해안 군 휴양소에서 보냈는데, 군종병 두 명이 운전과 안내를 해줬습니다. 두 군데 들른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들이 제대한 아들 생각에, 또 현역으로 복무 중인 아들 생각에 밥값을 깎아주고 군종병들을 친아들 대하듯 애정의 눈길로 바라봤습니다. 이 체험이 가슴 깊이 스며들어옵니다. 아들을 군에 보낸 신자 부모님들은 같은 애정으로 군 장병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군 복음화는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이자 기도 제목입니다." 이힘 기자 이힘2011.09.27
 선교사 마테오 리치](//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6516_1.0_titleImage_1.jpg)
[선교, 할 수 있을까?](40) 선교사 마테오 리치중국 사상에 맞게 교리 재해석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담당) 지난 5월 11일은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선종한 지 꼭 4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학문적, 선교사적 업적은 대단하다. 그는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방식으로 중국 사상의 중심인 유학을 가톨릭으로 재해석하고, 가톨릭을 중국 사상과 문화에 심은 토착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업적보다 선교사로서의 삶을 찾아보면 그가 어떻게 중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배를 타고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 인도와 마카오를 돌면서 최종 목적지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과정은 온통 고난의 항해였다. 항해를 하다 폭풍우를 만나면, 배는 목적지를 잃고 돛과 밧줄은 썩어 버렸다. 또 승객 절반은 전염병으로 앓아누웠다. 당시 발달하지 않은 항해술과 조선 기술은 배를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풍랑을 만나면 바람에 따라 해로를 벗어나게 했다. 게다가 항해 중 6개월 동안 먹을 물도 오염되고, 식기는 녹슬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열기와 습기로 모든 물건이 썩거나 악취를 풍겼다. 복음 선포에 쉼 없이 매진 이런 배 안에서 마테오 리치는 헌신적으로 신앙의례를 행했다. 해가 뜨면 한 시간씩 기도를 드리고, 8일마다 한 번씩 고해성사를 보고, 양심성찰과 성인 호칭 기도 등을 바치면서 힘든 항해를 견디어 냈다. 역풍을 만나면 마테오 리치를 포함한 예수회 신부들은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직설적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당시 중국에서는 외국인들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고조돼 있었다. 이 때문에 리치를 포함한 예수회 신부들은 신변 안전에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 한밤중에 중국인들이 리치의 숙소에 침범해서 그를 죽이려고 방화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가 갖고 있던 것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한번 자신의 고향을 떠나면 결코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삶이 바로 선교사의 운명이었다. 이러한 어려움과 고난에 봉착하면서도 리치는 복음 선포에 쉼 없이 매진했다. 그는 중국 고위층과 학자 중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파했고, 때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주류에 진입했다. 영혼의 정의 정확히 언급 특히 성경말씀과 함께 그림이 그려진 성경을 활용하여 그들에게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했으며, 중국 사상에 맞게 교리를 재해석하기도 했지만, 결국 독자들은 가톨릭 교리에서 답을 얻었다. 예를 들어 「천주실의」에서 리치는 중국학자가 "신은 진실로 소멸함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신(神, 靈)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하면, 리치는 "인성은 유형과 무형의 양자를 겸하고 있으며, 바로 영혼이 신체(神體)임을 증명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계속해서 "사람은 하나의 심령이 있으며, 자유의지와 이지(理智)가 있고, 자유의지의 대상 범위는 선(善)이고, 이지의 대상은 진(眞)이다"고 정의했다. 이렇게 선(善)과 진(眞)은 형체가 없으며, 이것은 신체, 곧 영혼이라고 지적했다. 리치는 인간에게도 육체와 영혼의 결합과 함께 영혼의 정의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놀라운 증거는 그리스도교가 세계 종교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특수 소명(선교사의 소명)은 복음화를 위한 전적인 헌신으로 나타나고, 이 헌신은 선교사의 전인격과 전생애를 포함하고, 능력과 시간의 한계 없는 자기 봉헌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 65)cpbc2010.11.09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19) 교부들의 후기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의 모습](//cpbc.co.kr/CMS/newspaper/2010/09/rc/349595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19) 교부들의 후기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의 모습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교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 즉 성모의 신적 모성과 동정성에 대해 논의했고, 드디어 교회는 553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를 통해 공식 교의로 선포한다. 교부시대 후기에 들어서 교부들은 성모의 무죄한 잉태, 무죄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성모께 드리는 찬미가 '아카티스토스(Akathistos)'도 이 시기에 쓰였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나온 「올바른 성모신심」 부록으로 아카티스토스를 수록했는데, 이 찬미가를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콘스탄티노플의 젤마노 주교, 세르지오 주교 등이 성모 찬미가를 지은 후보자로 꼽힌다. 특히 마리아에 대한 강론을 많이 남긴 젤마노 주교는 성모신심이 탁월했고, 그의 글은 마리아 공경 혹은 마리아에 관한 회칙에 많이 인용됐다. 8세기께 기록에 보면, 비잔틴 전례 사순 제5주 토요일을 '아카티스토스 토요일'이라고 불렀는데, '아카티스토스'라는 말은 '앉지 않는다'는 뜻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서 불렀다는 의미로 '아카티스토스'라고 불렀다. 이 시기 뚜르의 주교 그레고리오는 특별히 성모의 중재기도로 이뤄진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방 교부로는 최초로 알렸다. 그는 성모께서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모였고, 성모를 무덤에 안장하자 성모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모 승천에 대해 말한다. 리비아 주교였던 테오테크노 역시 성모승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활하고 승천한 예수의 육신은 성모에게서 왔기에 성모 승천은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위해 하늘나라에 가서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고 했다면, 성모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는 것은 더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구약성경에 에녹이나 엘리야 승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모는 에녹이나 엘리야보다 더 순수하고 오점 없는 영혼을 지니신 분이기에 더 그러하다는 입장이다. 처음으로 자신을 일러 '종들의 종(Servus Serviorum)'이라는 표현을 쓴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성모 마리아는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진 위대한 산"이라 표현하며(이사 2,2 참조) 성모의 발현과 성모 중재기도의 효과에 대해 언급한다. 스페인 시빌리아 주교 이시도로는 처음으로 성모를 성령과 관련시킨다. 성모를 "성령의 물이 흘러넘치는 새로운 땅"에 비유한 그는 "시메온의 칼은 성모님의 순결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크레타 주교였던 안드레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죄인들의 피난처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성화 파괴자들에게 많은 박해를 받은 안드레아 주교는 성모의 인격과 성덕, 중재 역할에 대한 좋은 강론을 많이 남겼고, "성모 마리아는 원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오점 없이 깨끗하신 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성모의 거룩함은 그분의 내적 풍요로움과 덕성,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이뤄지는 특별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언급한다. 성모의 자비는 물론 하느님의 자비에는 비교할 바는 없지만, 성모께서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예수의 자비를 보면 어머니의 자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성모는 예수를 잉태하면서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킨 중개자라는 것이다. 그분의 중개는 율법과 은총 사이에서도 이뤄지고, 구약과 신약 사이에서도 이뤄진다. 성모의 또 하나의 역할은 이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과 연결시키는 중재자로서 어머니의 역할로 나타난다. 또 교부시대 막바지를 살아간 다마스쿠스 요한 주교는 성모는 하느님께 선택되셨고, 구약성경에 예언돼 있던 분이며, 그분의 탄생은 하느님 은총으로 이뤄졌고, 그분은 영적으로 충만한 분이라고 강조한다. 성모 승천의 특권을 출산 시 동정성의 신비와 연결시키고, 성모는 인간을 위한 중재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하느님에 대한 흠숭과 성모에 대한 공경을 구별한다. 교부들의 마리아론에 대해 학자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적 모성이 그 핵심이라고 평가하면서 교부들의 마리아론은 늘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마리아론은 항상 그리스도론과 관련해 언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0.09.07

십자가의 성요한 '영가', 기도의 붓으로 그리다서양화가 서소언씨 '그림으로…' 20일~11월 2일 가고 있는 목동들아 / 언덕 넘어 저쪽 양 우리로, / 혹시라도 보았거들랑 /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을, / 말해다오, 나는 앓고, 아프고, 죽어간다고.(「영가」 노래2) 「영가」 두 번째 노래. 16세기 중엽 시는 보스깐 운율법에 따라 읽을 때는 2→1→3→4→5행 순으로 읽는다. 상처 입은 영혼이 하느님을 애타게 찾는 사랑의 노래, 십자가 성 요한의 '영가(靈歌)'를 그림으로 만나는 이색 전시회가 열린다. 20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열리는 '그림으로 보는 영가, 그 사랑의 노래' 전시회다. 국내에서 영가가 그림으로 표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영가를 화폭에 담아낸 이는 서양화가 서소언(스테파노, 69, 수원교구 송전본당)씨다.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 4대 대작을 번역한 방효익(수원가톨릭대 교수 겸 분당요한본당 주임) 신부 권유로 처음 십자가의 성 요한 책을 손에 쥐었다. 2008년 방 신부와 '14처전'을 연 적이 있는 서씨는 흔쾌히 그림을 그리겠다고 대답했지만, 「어둔 밤」 「가르멜의 산길」 「사랑의 산 불꽃」 「영가」를 세 번 읽고 난 다음에야 그림을 그릴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방 신부는 서씨가 영가를 그림에 잘 담아낼 수 있도록 두 가지를 당부했다. 그림을 돈으로 생각하지 말 것과 그림을 그리는 동안 행동을 절제하고 하느님 생각에만 몰입하라는 것이다. 서씨는 바깥 출입도 자제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온종일 그림과 성경필사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없고 전부 잡생각만 들어있군요!" 어느 날 그림을 보러 방문한 방 신부는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들떠 있는 서씨와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서씨는 그날로 그동안 그린 작품 10여 점을 폐기했다. 그리고 다시 그림과 기도에 매달렸다. 혼절도 여러 번 하고,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아홉 달,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감금 생활을 했던 딱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영가 40개 작품과 어둔 밤 8개 작품, 사랑의 산 불꽃 12개 작품 등 총 52개 작품을 그리는 동안 책은 8번 통독했고, 성경도 완필했다. 서씨는 "그림을 그리면서 남을 저울질했던 나쁜 마음과 욕심을 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며 제가 정화됐습니다. 제가 변하지 않으면 이런 작품을 그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의 그림 옆에는 방 신부의 묵상글이 함께 전시된다. 방 신부는 이 전시를 '신학과 그림, 신앙과 그림이 만나는 장'이라고 소개했다. 방 신부는 20일 오후 5시 개막식에 앞서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대강의실에서 '십자가 성 요한의 영가를 푸는 열쇠'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다. 전시에 맞춰 그림과 묵상글을 함께 실은 책 「영가 묵상」(기쁜소식/1만5000원)도 발간될 예정이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cpbc2010.10.12
![[금주의 성인]성 요셉 마리아 톰마시(St. Joseph Mary Tommasi, 1월 1일)](//cpbc.co.kr/CMS/newspaper/2009/12/rc/320321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성 요셉 마리아 톰마시(St. Joseph Mary Tommasi, 1월 1일)성경, 철학 연구 저서 남겨 교황청 신학자 풍부한 학식에 겸손함 갖춰1649~1713,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생. 추기경 성 요셉 마리아 톰마시는 부유한 공작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성인 부모는 부와 명예를 전혀 내세우지 않고 검소한 생활로 자녀들에게 철저한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그 영향으로 성인의 여자 형제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녀원에서 살았으며 모두 수녀가 됐다. 성인 역시 여느 또래와 달리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두터웠다. 또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을 좋아했다. 성인은 학습 능력이 뛰어난데다 좋은 교육까지 받아 철학, 어학, 음악 등 공부하는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를 가르치던 교사들은 한결같이 성인이 훗날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성인은 기도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수도자의 길을 꿈꿨다. 그는 16살 되던 해에 수도회에 입회해 오로지 기도와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몇 년 뒤 로마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다니며 신학을 공부했다. 학식이 풍부한데다 겸손한 성품까지 갖춘 그는 25살에 사제로 서품됐다. 그는 사제품을 받은 뒤 그리스 철학, 성경 연구에 더욱 매진, 많은 책을 남겼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거울」, 「시편」, 고대 전례를 연구한 「코디체스 사크라멘토룸」 등이 있다. 성인은 1697년 교황 부름을 받고 교황청에서 일을 시작했고 1704년에는 교황청 신학자로 임명됐다. 그리고 1712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성인 주위에는 가난한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성인이 언제든지 그들을 환영하며 있는 것을 다 내주었기 때문이다. 또 성인은 어린 아이들에게 교리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 추기경이 된 후에도 본당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직접 가르쳤다. 성인은 1713년 선종했다. 1971년 유해를 옮기려 성인 무덤을 팠을 때 유해는 썩지 않고 선종 당시 그대로였다. 성인은 198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27일 : 성 요한 스톤(순교, 영국), 성녀 파비올라(증거자, 로마), 성 막시모(주교, 알렉산드리아) ▲28일 : 성 안토니오(수사, 판노니아), 성 돔니오(사제, 로마), 성 체사리오(순교) ▲29일 : 성 마르첼로(수도원장, 시리아), 성 에브룰포(수도원장, 프랑스), 성 토마스 베케트(순교, 주교, 영국) ▲30일 : 성 리베리오(주교, 이탈리아), 성 에그윈(주교), 성녀 아니시아(순교), 성 사비노(순교, 주교) ▲31일 : 성녀 골룸바(순교, 동정, 에스파냐), 성녀 멜라니아(자선가, 로마), 성 요한 프란치스코 레지스(사제, 선교사, 프랑스), 성 포텐시아노(순교, 주교, 프랑스) ▲1월 1일 : 성녀 에우프로시나(동정, 알렉산드리아), 성 오딜로(수도원장, 프랑스), 성 에우젠도(수도원장, 스위스) ▲2일 : 성 마카리오(수도원장, 알렉산드리아),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사제, 로마)박수정2009.12.22
하루 한 장 성경읽기(21~27일)▨에제키엘서(21~27일) ▲42장(21일) : 그곳에서는 곧바로 ( )로 나가지 못한다. 그들이 주님을 섬길 때에 입는 옷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 옷을 거기에 벗어 놓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야, 백성이 모이는 곳으로 가까이 갈 수 있다. ▲43장(22일) : ( ) 되는 날부터는 사제들이 이 제단 위에서 너희의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44장(23일) : 사제들은 죽은 이에게 다가가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 형제나 시집가지 않은 누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 )하게 만들어도 된다. ▲45장(24일) : 너는 초이렛날에도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모르고 죄를 지은 이를 위하여 그와 같이 하여라. 너희는 이렇게 주님의 집을 위하여 ( ) 예식을 거행하여라. ▲46장(25일) : 제후가 자기의 상속 재산에 든 것을 자기 신하에게 선물할 경우, 그것은 해방의 해까지만 그 신하의 소유가 되고, 그 뒤에는 ( )에게 되돌아간다. ▲47장(26일) :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 )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48장(27일) : 도성의 대문들은 이스라엘의 지파 이름을 따서 부른다. 그래서 ( )에 대문이 셋 있는데, 하나는 르우벤 대문, 하나는 유다 대문, 하나는 레위 대문이다.이힘2009.06.16
![[기획] 교정사목의 버팀목, 신자 교도관들](//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113_1.0_titleImage_1.jpg)
[기획] 교정사목의 버팀목, 신자 교도관들높은 울타리 안에서 선교사로교도관들이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업무 부담을 잠시 잊고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고 있다. '교도관 생활 30년이면 15년은 징역살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일터는 세상과 격리된 높은 울타리 안이고, 늘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은 죄를 지은 수용자들이다. 교도관은 녹록지 않은 직업이다. 천주교 전국교정사목협의회장 홍기환 신부는 교도관을 가리켜 "참으로 특별한 곳에서 참으로 특별한 사람들과 참으로 특별한 만남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신앙을 갖고 있는 교도관들은 여러 의미에서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수용자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신앙인이자, 상처받은 수용자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울타리 안의 선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정사목에서 이들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다. 11~12일 대전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열린 전국 신자 교도관 모임 성심회 정기총회를 찾아 그들의 사명과 신앙을 들여다봤다. # 철창 안에서 피어나는 기도 "당신은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을 더욱 소중히 여기시오니/ 수감되어 상처받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수용자들의 죄는 그들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에는 각박하고 차가운 우리 사회의 공동 책임이오니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어지고/ 이 사회의 참 인간화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빛이 되게 하소서."('수용자를 위한 기도' 중에서) 포항교도소 교도관 황진호(베드로)씨는 출근해서 제복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친다. 그의 한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다. 퇴근할 때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관사로 걸어간다. 황씨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오늘 내가 수용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지, 신앙인으로서 모범을 보이며 그들의 교화를 위해 힘썼는지를 반성하곤 한다"고 말했다. 비단 황씨만이 아니다. 총회에서 만난 교도관들 대부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교정현장에서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고 있다. 근무 특성상 밤낮이 바뀌기 일쑤고, 순환근무 탓에 휴일이 평일이 돼버리고, 과중한 업무 때문에 점심식사를 20분 안팎에 해결해야 할 때도 교도관들에게 기도는 청량제와도 같다. 지친 심신을 지탱해주는 힘이자, 수용자들 교화를 위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교도관 A씨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수용자를 대할 때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주모경을 외운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죄를 짓고 왔든 선입견 없이 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애원하듯 기도한다"고 털어놨다. 죄가 아니라 사람을 보기 위한 그의 필사적 노력이다. # 울타리 안의 선교사 교도관 B씨는 자살을 시도했던 한 수용자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경제사범으로 도피생활을 하다 체포돼 복역하는 수용자였다. B씨는 그에게 주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줬다. "하느님 믿어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가르치려하기보다는 신앙인으로서 그를 대했다. 이런 B씨의 진심이 수용자에게 전해졌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그의 마음이 풀렸다. 2005년 세례를 받았다. 그 다음 해에는 견진성사를 받고 성경필사를 시작했다. 그는 "덕분에 교도소가 하느님 사랑이 감도는 '수도원'이 됐다"며 B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2008년 출소해 식당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신앙을 가진 교도관은 교도관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수용자들 교화에 힘쓴다. 교정기관에서 열리는 세례식에서 대부를 서는 교도관이 많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법 테두리로 묶어진 수용자와 교도관의 관계를 뛰어 넘어 같은 신앙 안에서 신앙인으로 만나고 있다. 신자 교도관들은 1993년 10월 자발적으로 '천주교 전국 교도관 성심회'를 만들어 교정의 본뜻이 교정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서울구치소, 대전교도소, 대구구치소 등 전국 40여 개 교정기관 700여 명의 교도관들로 이뤄진 성심회는 매년 한 차례 정기총회와 피정, 성지순례 등을 통해 신자 교정인으로서의 신원을 다지고 있다. 이번 정기총회 참석한 200여 명의 교도관과 전국 교정사목 전담 사제들은 성심회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교도관들은 서울ㆍ대전ㆍ대구ㆍ광주ㆍ부산 등 5개로 나뉜 지부를 권역별로 세분화해 회원 간 교류를 활발히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태식(요셉, 대전지방교정청 직업훈련과장) 회장을 비롯해 조종윤(로베르토, 전 광주지방교정청장) 1대 회장 등이 참석해 후배 교도관들을 격려했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1.06.14

명동성당 대림특강 (2) 그리스도인의 기다림 안병철 신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성경에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은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것을 홍수로 쓸어버리셨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전하려는 핵심은 결코 비극적인 홍수 이야기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사건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노아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늘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신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첫 번째 시련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은 노아의 가족에게 희망을 보여주셨다. 홍수로 살 수 없게 된 땅이 하느님 축복으로 물이 빠지자 다시 살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보여주신다.노아의 방주는 희망의 메시지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알아듣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갓난아이에게 "사랑한다"거나 "엄마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 줄 알아?"하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아이는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젖을 먹여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이가 자라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은 우리가 알아듣고 행동하도록 기다려주시고 여백을 주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바로 욕심 때문이다. 인간은 허영과 욕심 때문에 부패한 세상을 만들고야 만다. 하느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죽을 때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자신의 죽음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모진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림' 때문이었다. 신앙과 믿음을 지키고 기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앙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결부되면 더 심각해진다. 목숨은 하나뿐인데, 믿음의 실체인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원한 삶을 주겠다는 하느님 말씀 또한 미래 지향적이기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 너희를 찾아오신다"는 것이 희망이다. 인간 역사는 심판을 받고나면 새 세상이 오고, 이후 다시 사람들 욕심으로 악이 가득 차게 된다. 역사의 부침과 일련의 사건들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최종적인 희망을 얻는다. 메시아(구세주)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하느님 아들로 오셨다. 이미 모든 희망이 성취된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다. 야고보서 5장에서는 "참고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을 현실로, 온전히 우리 것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다만, 우리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은 '죽음'이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도 하느님께서 죽음을 만드셨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분 모시려면 마음 비워내야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물고 살아계시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오지 않으신 하느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신 분, 늘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분을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실제 역사적으로 오신 예수님,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오신 분이다. 2000년 전에 오신 분이 지금도 영향을 주신다. 또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우리 안에 계신다. 예수님이 곁에 계시지만 못 알아보는 게 문제다. 아울러 예수님은 인류 역사 마지막에 오시는 분이다. 그리스도의 완성을 향해 질주하는 게 인류 역사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위한 구원자이며, 천주교 신자만의 구원자가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이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모든 이와 더불어 살아야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대림시기는 하느님을 맞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내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늘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한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란 주님이 내 안에 딱 버티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언제나 만나려고 기다리신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머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때론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미워하는 이들 안에 그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0.12.07
아기 예수 프로젝트 기고 엄마가 체험하는 모든 것이 '태교'박종수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아기 예수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인 태교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생명의 시작은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 수정된 순간부터입니다. 따라서 시험관 아기 같은 인공 수정에 대한 가장 큰 윤리적 문제는 바로 폐기되는 잔여 수정란입니다. 폐기되지 않았다면 그 수정란은 아기가 되는 엄연한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식의 낙태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정된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가 된 수정란은 언제부터 교육이 가능할까요? 가끔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보며 "도대체 쟤는 누구를 닮은 거야?"하고 이야기합니다. 닮긴 누굴 닮겠습니까?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에는 두 사람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 유전자까지도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결혼하게 될 예비 부모님들이 받은 교육(지적, 정서적, 영적 등)이 바로 태교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아이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모 자신의 얼굴에 침뱉기이고, 아이로 하여금 가출 확률을 높일 뿐입니다. 그래도 생명이 잉태되면 뭔가 아이에게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태교라고 부릅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하는 교육이죠. 태교의 영향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습니다. 만 3살 유아들에게 태내 기억을 자극하자 자신의 태명(胎名)을 기억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어 냈죠. 이것만 봐도 태아들이 엄마 뱃속에서 받는 각종 자극에 그대로 노출되고 그것을 기억하며 습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아기 때는 어떤 방법으로 교육이 가능할까요? 또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요? 유아기 때는 시각, 촉각 등 여러 자극을 통해 발달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태아기 때 받을 수 있는 자극은 청각과 엄마 뱃속을 통해 오는 진동 등의 촉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를 통해서 습득하는 간접 체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원리들을 가지고 여러 태교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음악, 좋은 말, 좋은 환경, 좋은 영양,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체험하는 것이죠. 좋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말을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됩니다. 좋은 환경, 좋은 영양은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이 모든 것은 그대로 태아에게 전해집니다. 유아부에서 마련한 임신부 태교 프로그램도 이러한 원리 안에서 제작됐습니다. 프로그램 시작인 축복미사를 통해 하느님 축복 속에 태아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선물인 생명과 관련된 영상물과 강의를 통해 하느님 신비를 느끼고, 성경필사나 묵주 만들기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맛들이고 태아를 위한 기도 선물을 준비합니다. 또 유아세례를 준비하기 위해 세례명을 짓고 대부모를 선택하며, 세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성화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태아에게 전해주고, 성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도 도모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역할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을 갖습니다. 각종 태교 프로그램이 많지만 정작 교회의 태교가 없다는 것을 반성하며 태아 신앙교육을 원하시는 부모님들을 위해 가톨릭 태교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태교 다이어리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샬롬, 우리 아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 발간)라는 책자입니다. 일반 태교북(태교다이어리, 태교일기)과 차별화해 엄마 아빠가 함께 태아를 위해 기도하며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태아 신앙교육을 통해 하느님 사랑 안에서 축복된 성가정을 이루시길 바랍니다.김은아2011.04.05
[출판]「사도 바오로와 그리스도 체험」 바오로처럼 논란이 많은 사도도 드물다. 개신교인들은 바오로에게서 신약성경의 '진짜 신학자'를 본다. 루터는 로마서를 주석하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화(義化, 개신교는 義認)신학'을 전개했다. 여성신학자들은 언뜻보면 여성에게 적대적인 듯한 바오로의 시각을 불편해 한다.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일으킨 '배신자'로 간주하곤 한다. 반면 동방교회는 바오로를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주창자로 본다. 그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 체험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바오로를 세례와 성찬례 신학자로 보는 이도 있고, 비의(秘儀)전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바오로에 대한 시각을 놓고 안셀름 그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 신부는 바오로를 둘러싼 주석학적 논점이나 바오로 신학 전체보다는 바오로 신학의 배후를 장식한 체험을 성찰하고 서술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로 나온 책이 「사도 바오로와 그리스도 체험」이라는 책으로, 최근 우리말로 옮겨졌다. 지은이는 오늘 우리가 어찌해야 바오로와 유사한 체험을 할 수 있는지, 바오로의 신학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새삼 묻는다. 또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바오로 신학이 어떻게 도움을 줄지, 바오로는 어떤 체험으로 우리를 이끌고자 하는지, 바오로에게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찌해야 믿음의 본질을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 그리스도인의 신앙 체험은 다른 이들의 종교적 체험과 무엇이 다른지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를 위해 바오로의 정신적ㆍ종교적 환경, 회심 체험, 예수 그리스도 체험, 새 생명 체험, 소명 체험, 구원 체험, 신비 체험, 바오로와 심층심리학, 바오로와 여성, 바오로와 성, 바오로와 유다인, 바오로와 종교 간 대화 등을 다뤘다.(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이종한 옮김/분도출판사/90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2.07
![[특집/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이도기 바오로(1743~1798)](//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2910_1.0_titleImage_1.jpg)
[특집/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이도기 바오로(1743~1798)전 재산 바쳐 충청도 내포지역 복음화에 힘써... 청양과 홍주, 공주, 정산 등지 두루 다니며 전교... 정사박해 때 붙잡혀 1년간 옥살이 끝에 1798년 순교... 가혹한 매질과 배교 회유에도 굳건히 신앙 지켜 "그 아내 돈을 판비(辦備, 준비)해 술과 안주를 갖춰 가지고 가서 먹으라 권하는데 답하되 '성모가 나를 십자가 위에 두어 계시니 (음식을 먹는 것이) 가하지 않다. 예수가 성가(聖架, 십자가) 위에 계셔 다만 독한 괴로움을 받으심을 듣고, 이러한 맛을 드심은 듣지 못한지라. 이제 나의 당한 바 십자가와 다름이 없으니 차마 먹지 못하겠노라.' 두세 번 권하니 면강해(억지로) 먹는지라. 앉으나 누우나 항상 대월(對越, 현실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마주 뵘)하더니 홀연 '주여', 이 회언(誨言, 훈계하는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 후 주와 성모께 감사함이 이상하더라. 겨울을 만나매 앉은 곳과 무릎 위가 심히 차서 견디기 어렵더니 성탄일에 또 일차 수형한 후에 난 상처와 무릎 위의 뜨겁기가 불같으니 '주님이 내 마음이 찰까 염려하시어 특별히 형벌로써 뜨겁게 한다'하더라." (「뎡산일기-이 바오로 도긔 순교전기」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본에서) #1743년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나 박해시대에 신자들 사이에 영적독서와도 같은 형태로 전해지던 필사본이 있다. 54쪽 분량에 불과했지만, 비전(秘傳)으로 전해져 공동체 내 영적 갈증을 풀어줬다. 이 필사본을 통해 박해를 받던 신자들은 순교자에 대한 공경과 함께 신앙을 다져나갔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정산(뎡산)일기」다. 충청도 청양 출신으로 이웃한 정산에서 순교한 이도기(바오로, 1743~1798)라는 한 인물의 전 생애를 다룬 짤막한 책이었지만, 출생과 성장과정은 간단히 언급한 뒤 대부분을 수감생활과 신문과정, 신앙고백, 순교를 다뤘다.천사가 전하는 말 : 수 차례 고문과 회유에도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하기로 결심한 이도기에게 어느 날 천사들이 나타나 위로하고 있다. 이도기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 수난에 견줘 서술하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여러 차례 정산 장터로 끌려가 정산현감 최윤천과 군중 앞에서 심문을 받는 장면이 마치 빌라도 총독과 군중 앞에서 고난을 당하는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심문을 받는 시간 설정과 죽음의 순간에 이도기가 아버지 하느님을 부르는 모습 등도 성경 속 예수 수난을 빼닮았다. 이를 통해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정산일기」는 이도기의 순교를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부각시키려 한다. 그래선지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는 1855년 2월 22일자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바랑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산일기」를 '세월이 흘러도 그 광채를 잃지 않는 보석'에 비유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이도기는 1743년 충청도 청양 태생으로 1797년 정사박해 때 붙잡혀 이듬해 순교했다. 향년 56살이었다. 그가 언제 입교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1784년 조선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고 같은 해 내포에 천주교가 전해져 활발하던 초창기에 입교했음은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그의 입교와 전교 활동은 순교자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과 결코 무관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활동시기가 이존창이 '내포의 사도'로 활동하던 시기와 거의 겹칠 뿐 아니라 그가 감옥에 갇혀 문초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자 옥졸들이 "이존창이 이미 처형됐으니 너도 곧 죽을 것이다"고 거짓으로 위협하는 대목을 보면 어느 정도 이존창과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는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미신자들을 입교시키는 데 쓰고 청양뿐 아니라 홍주(현 홍성)와 공주, 은진 등지를 두루 다니며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를 통해 입교한 신자들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홍주의 이세채, 보령의 김성옥, 청양의 이원경, 은진의 이상원, 공주의 김선룡 등이다. 이들은 관변 기록인 「사학징의」를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이도기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는죄목으로 전국 각지에 유배됐다. 이들 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도기를 통해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이 「정산일기」 앞부분에 드러나 있다. #천주교 신자들의 우두머리 이도기는 자신의 이름이 근방에 널리 알려지자 칠갑산을 넘어 정산으로 피신, 한 옹기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전교로 이 마을 사람들도 모두 입교했다. 그렇지만 그의 전교는 그곳에서 멈춘다. 1797년 정사박해가 시작되자 인근에 김이라는 성을 쓰는 외교인이 그를 천주교 신자들의 우두머리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겁을 먹은 아내는 도망가기를 권했지만, 그는 자신의 처신이 걸림돌이 돼 신입 교우들이 넘어질 것을 염려해 이를 거절하고 집에 남았다. 아내 권고를 마다하고 정산에 머물던 그는 1797년 6월 8일 체포된다. 포졸들은 그의 집을 뒤져 십자고상과 천주교 관련 서적 몇 권을 찾아낸 뒤 인근 숲속으로 끌고가 매질을 하며 주문모 신부 은신처와 동료 신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닦달했으나 헛일이었다. 정산현감도 고상과 책을 살펴보고 그에게 신앙의 스승과 제자들을 대라고 다그쳤으나 역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배교를 하라는 매질과 벼슬을 주겠다는 회유가 이어졌으나 그는 정산감옥과 장터에서 '한결같이'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했다. 심지어는 배교를 강요하는 현감 앞에서 용감하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인정에 끌려 마음이 약해질까 싶어 자녀들이 감옥에 면회오는 것을 막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다. 이에 그를 회유하지 못한 현감은 그를 체포한 지 1년을 막 넘긴 1798년 6월 12일 무수한 매질 끝에 그를 죽였다. 그 장면이 정산일기를 통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6월 10일 아침 포졸들이 와서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됐다고 알려주자, 이 바오로는 기쁨에 넘쳐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이윽고 포졸들에게 끌려가 정산 형장에 다다른 그는 그곳에서 다시 혹독한 형벌을 받는다. 주변에 모인 미신자들까지도 이 가혹한 형벌에 가세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배교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성모 마리아님, 당신께 하례하나이다'하고 외쳤다. 이 바오로는 여러 차례 실신했고, 다리가 부러지기까지 매를 맞았다. 그리고 그는 버려진 채로 남겨졌다. 이틀 뒤 저녁 무렵, 정산현감은 그의 죽음이 궁금했는지 가서 살펴보고 '죽지 않았으면 아주 죽이고 오라'고 명했다. 포졸들은 이 지시에 따라 그의 몸을 짓이겼다.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가 순교하던 날 밤 큰 광채가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유해는 정산현감의 명에 따라 묻혔는데, 7~8일 뒤 정산 인근에 사는 교우들이 그 시신을 비밀리에 발굴해 자신들이 살던 마을로 안장했다." #올곧은 신앙과 성모신심 돋보여 「정산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이도기의 믿음살이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에 대한 신심, 철저한 성모신심으로 요약된다. 옥중에서도 그는 현실을 뛰어넘어 천주를 뵙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고, 마지막 심문 때 극도의 고통 중에 있음에도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를 부르며 늘 천주 곁에 머무르려 했다. 옥중생활과 고난 또한 예수님과 성모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통해 이겨냈다. 「정산일기」라는 짧은 필사본은 그가 지녔던 올곧은 신앙과 지극한 성모 신심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정산일기 이도기의 삶을 기록한 전기다. 시기별로 그의 삶을 기록했기에 '일기'라는 표제를 붙였지만, 정확히는 일기가 아니라 전기다. 흔히 책 제목은 아호에서 따와 붙이지만, 「정산일기」라는 제목에 나오는 '정산'은 호가 아니라 그가 신앙을 뜨겁게 증거하고 순교하기까지에 이른 마을 이름이다. 「정산일기」를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는 최근에 낸 「정산일기」 해제를 통해 "내용상 이도기의 부인이나 그 후손들이 속한 공동체 구성원 중 하나가 구술(口述)을 종합해 엮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그러기에 「정산일기」는 상당부분 부인이나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손들의 구술을 통해 집필된 뒤 필사되는 과정을 거쳐 내용이 첨삭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집필 시기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블뤼 주교가 1854년 편지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미뤄 1830년대 이전에 저술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마지막 필사본은 1882년 경기도 연천에서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발견 혹은 헌정된 것으로, (재)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돼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