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94) 신심이 깊은 건가요?](//cpbc.co.kr/CMS/newspaper/2011/03/rc/370319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94) 신심이 깊은 건가요? Q. 남편 때문에 고민입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냉담했던 사람인데 어떤 기도 모임을 다녀오더니 완전히 바뀌어 지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낮에 태양을 바라보면서 '태양 안에 성체가 안 보이느냐.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보인다'고 하지를 않나, 성당에서 성인상을 보고 오래 기도를 하면 성인상이 자기를 보고 웃는 것이 보인다는 등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방문하지 말라고 경고한 나주 율리아가 진정한 이 시대 성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밤마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기에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느님께 치유의 은사를 청한다고 하더군요. 사람들 병을 고쳐주고 유명해지고 싶다고 합니다. 도대체 남편이 왜 이러는 걸까요? 문제가 무엇일까요? A. 남편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셨겠습니다. 남편분의 문제는 여러 가지인 듯 합니다. 첫째는 지나친 신비주의입니다. 종교는 초자연적 현상을 받아들이는 정신적 장입니다. 동시에 종교는 현실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장이기도 합니다. 만약 종교적 행위가 현실을 떠난 초자연적인 것만 추구하게 된다면 즉, 지나치게 신비적인 것에만 집착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영적 손상'입니다.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갈망 이상으로 하느님을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병적 상태에 있을 때는 스스로 거짓된 하느님 상을 만들고 그것에 자신을 맡깁니다. 일종의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지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 경배를 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영적 환상을 제공해주고 일시적으로 영적 갈망을 채워주기에 중독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경고해도 계속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께서도 이런 지나친 신비주의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하고 선언할 것이다"(마태 7,22-23). 자매님께서는 남편분에게 성경의 이 부분을 보라고 하시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지나친 신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지나친 신비주의에 빠지는 두 번째 이유는 열등감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열등 콤플렉스에 대한 반응에 불과한데, 드러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고 했습니다.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생산적인 반응을 보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결실이 없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나친 신비주의는 열등감이 부정적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나 아닌 나', '될 수 없는 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불러온 현상입니다. 사람의 자아는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이 두 자아 사이의 틈새가 별로 넓지 않습니다. 현실적 자아를 대부분 수용하기에 자기 자신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느끼지 않아 이상적 자아에 대한 기대 수준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현실적 자아에 대한 불만이 높아 아예 무시해버리고 이상적 자아가 마치 자기 자신인 양 행세하는 병적 행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신비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고, 심지어 광신도 같은 모습도 보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분열형 인격장애'가 아닌지 알아보셔야 합니다. 분열형 인격장애를 가진 분의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신심취 혹은 천리안, 정신감응, 육감과 관련된 마술적 사고 또는 모든 일을 전부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 가까운 친구나 절친한 벗이 없는 것과 같은 사회적 고립,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힘이나 사람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또 몸과 마음이 따로인 듯한 느낌, 지나친 비현실감, 상식적이 아닌 이상한 의사소통, 편집성 사고, 다른 사람들을 대면할 때 보여주는 지나친 냉담함과 불충분한 감정 소통, 지나친 사회적 불안성 등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얼핏 보면 열심인 신앙인 모습이어서 주위에서 그 사람의 정신적 문제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쨌건 남편분이 지나치게 신비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시면 성당에서 다른 교우분들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봉사단체에서 활동하게 하시고, 증세가 심하다 싶으면 전문의 진단을 받으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cafe.daum.net/withdoban이힘2011.03.15
![[성경 속 상징] 51-술- 풍요로움, 성대한 잔치를 나타내](//cpbc.co.kr/CMS/newspaper/2009/06/rc/29959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51-술- 풍요로움, 성대한 잔치를 나타내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기억이 안 납니다." "술을 좀 마셔 그렇지 사람은 정말 좋아." 우리나라는 비교적 관대한 음주문화 탓에 알코올 관련 질병 발생률이 높다. 알코올 소비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15살 이상 술 소비량이 세계 2위로, 위스키와 같은 독주 소비량은 OECD 전체 회원국 중 1위라고 한다. 술은 뇌세포에 치명적 손상을 입힌다. 술을 급히, 많이 마시면 간이 알코올을 충분히 분해할 수 없고, 알코올은 혈액 공급량이 많은 뇌에 손상을 주게 된다. 전두엽은 학습, 단기 기억, 이성, 계획, 문제 해결, 감정 조절 등과 같은 고차원적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이며, 두정엽은 공간시각적 과정과 집중력 조절 등을 담당하는 부위다. 만성적이고 과도한 음주는 이들 부위에 신경생물학적으로 비정상적 활동을 일으킨다. 평소 순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작은 자극에도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것은 알코올이 전두엽의 충동 조절 기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밤 필름이 끊겼다'는 사실은 무용담(!)이 아니라 알코올이 뇌에 손상을 주고 있으니 술 공급을 끊어 달라는 우리 몸의 간절한 호소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술은 풍요로움, 성대한 잔치를 나타낸다. 이사악은 아들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한다.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창세 27,28).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기적을 행하신다(요한 2,1-12). 지중해 연안에서 포도주는 가난한 이들도 즐겨 마시는 음료수와 같은 것이었다. 축복의 의미로도 쓰인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시편 23,5).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그러나 성경에서도 과도한 음주는 경계한다. "술을 폭음하는 자들과 고기를 폭식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마라"(잠언 23,20). 술에 취하는 것은 불충한 종의 전형적 모습이다(루카 12,45). 술 취한 자는 비틀거리고 토하면서 비틀거리고(이사 19,14) 미친 것 같은 징후를 보인다(예레 51,7). 또 술에 취하면 옷을 벗고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낸다(하바 2,15). 술에 취한 노아는 그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었다(창세 9,20). 또한 술 취한 롯은 딸들과 근친상간을 맺게 된다(창세 19,30-38). 이처럼 술에 취하면 비윤리적 행동으로 연결되기 쉽다. 술 취해 있는 동안에 암살당한 왕도 있다(1열왕 16,9). 그래서 왕들에게 금주를 강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임금에게 어울리지 않고 독주를 탐하는 것은 군주에게 어울리지 않는다"(잠언 31,4 ). 술은 무엇보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고통 받는 모든 이의 권리를 해치게 된다"(잠언 31,5). 사도 바오로는 술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티토 2,3). 적당한 음주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레드 와인은 암 예방과 심장질환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조건이 있다. 적당히!임영선2009.06.23
[사설]"어르신은 가정과 사회 전체 행복의 원천" 우리나라가 전체 인구의 7%를 기준으로 하는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게 2000년이다. 그런데 10년이 흘러 어느덧 11%대로 들어섰다. 흔히 14%면 '고령사회'로 보는데, 현재 진행속도로 보면 10년 안에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교회로만 한정해 보자면, 전국 교구 고령화 비율은 2009년 말 현재 13.7%로,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회나 교회나 노년층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부족하다. 어르신들 경륜이나 지혜, 능력을 적극 활용하려 하기보다는 가정에 방치하거나 공원 등으로 내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는 가정 내 노인학대로까지 이어져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노년층 일자리 창출도 문제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고령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사회 전반과 교회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성경은 어르신들을 가리켜 그들은 "늙어서도 열매 맺는다"(시편 92,15)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사회에 가치와 전통을 전하고 젊은 세대의 성장을 촉진하는 소중한 인생학교다. 노년층은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적, 문화적, 도덕적,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어르신들을 "세대 간 연결 고리의 본보기이자 가정과 사회 전체 행복의 원천"(「간추린 사회교리」 222항)으로 본다. 따라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노년층에 대한 사목적 배려와 의료 봉사, 나아가 노년층이 여생을 활기차게 보내도록 '실버 봉사' 시스템을 만드는 데 교회 또한 합심해야 할 것이다.오세택2010.08.17
![[출판/책꽂이]「십자가로의 초대」 등 4권](//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7330_1.0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십자가로의 초대」 등 4권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슈테판 키흘레 신부 지음/이규성 신부 지음/분도출판사/9000원 전 세계를 변화시킨 영적 스승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의 삶과 부르심, 업적, 영성을 조명했다. 스페인 바스크 출신 귀족이자 기사로 훗날 예수회를 설립하는 이냐시오의 삶과 업적을 소개하고, 그의 영성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밝힌다. 또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영적으로 숙고한 뒤 하느님을 새롭게 바라보고 더욱 큰 의미와 평화를 찾아 나서도록 이끈다. 이냐시오의 영적 메시지는 그리스도교 전체의 삶과 활동을 쇄신했으며, 현대에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을 도와 충만하고 의미 있는 자기 실존을 발견하게 한다. ▨그리스도교 영성과 공동체 박현준 지음/우리신학연구소/1만5000원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특히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는 이들 사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담은 신간이다. 우리신학연구소 '신학총서' 제7권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공동체적 성격을 밝히고 그 영성이 구체적 삶과 역사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추적하고자 했다. 5개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하느님 체험과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 나타났던 개혁운동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다. 초대 교회와 수도원 운동, 종교개혁 좌파와 그리스도교 유토피아주의, 현대의 공동체운동 등을 다뤘다. ▨나를 채우시는 말씀 박일 신부 지음/가톨릭대학교출판부/1만 원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바탕으로 복음서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깊은 영적 묵상을 담았다. 가톨릭대 신학대에서 오랫동안 영성신학을 가르쳐온 지은이가 지난 몇 년간 사제들을 대상으로 피정 강의한 내용을 다듬어 묶었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되새긴 묵상들은 바쁜 일상에서 따로 피정 기회를 갖기 어려운 평신도들을 영원의 길로 이끈다. 생일잔치에서 생긴 일(마르 6,17-29)을 시작으로 △어떤 반전(루카 16,19-31) △초대받지 않은 여인(루카 7,36-50) △용서한다면 아버지처럼(루카 15,11-32) 등 8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십자가로의 초대 론다 드 솔라 체르빈 지음/김애선 옮김/출판사 주심/1만2000원 암으로 투병해야 했고 19살 아들이 자살하는 아픔을 겪은 론다 체르빈 박사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과 가톨릭 성인 성녀들 삶을 통해 고통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는 지혜를 담은 책. 의심, 착취, 실패와 가난, 오류에 직면하는 경험, 두려움, 분노, 좌절, 신체적 고통, 외로움과 상실감, 가정 불화, 박해, 유혹 등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고통을 12개 장을 통해 다루고, 마지막 장에선 고통 중 기쁨을 다룬다. 사랑하는 주님 손에 있는 극심한 고통의 잔을 그토록 갈망하며 기꺼이 받아 마셨던 성인들을 동반자로 한 오랜 여정의 결과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1.16

성서와함께, 「성서사십주간」 전정판 출판기념식"더 깊은 성경 세계로 이끄소서"「성서사십주간」 전정판 7권(제대 아래)이 놓여진 가운데 김영남(가톨릭대 교수) 신부 주례로 전정판 출판기념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29년 성상을 교회 공동체와 함께한 성경공부 길잡이'성서사십주간'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1981~82년에 나온 첫 성서사십주간 교재(초판 전 5권)가 개정판(전 5권)으로 1991년에 발간된 지 19년 만에 '전정판'(전 7권)으로 선보인 것. 성서와함께(사장 김영자 수녀)는 21일 오전 서울 흑석동 성모교육원 영원한도움의성서연구소 경당에서 '성서사십주간 전정판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2002년 이후 햇수로만 7년간에 걸친 전정판 개정에 함께한 필진 25명과 감수진 6명, 애독해온 성서 가족들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전정판 발간의 뜻을 나누는 자리였다. 성서와함께는 김영남(가톨릭대 교수) 신부 주례와 백운철(가톨릭대 교수)ㆍ선지훈(분도출판사 사장) 신부 공동집전으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회원들과 가톨릭성서모임본부, 성서와함께 임직원 7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성서사십주간 전정판 출판기념미사를 거행하고, 주님 은혜로 얻은 결실인 '성서사십주간' 전정판을 주님 제단에 봉헌하며 감사 노래를 불렀다. 이어진 출판기념식에서 편저자 최안나(스피리타) 수녀는 전정판 발간이 요청된 동기와 기획과정, 실제 전정판 개정작업에 참여한 이들과 협동과정 등을 상세히 전한 뒤 "가톨릭성서모임과 성서와함께 출판사, 영원한도움의성서연구소 등 세 부서가 함께 바라보고 땀 흘리며 응답한 결실이다"고 털어놓았다. 필진으로 참여한 이기락(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 담당 총무) 신부는 "성경 연구 풍토나 성경공부 전반이 척박한 상황에서 '성서사십주간'은 한국교회 성서연구와 공부의 모체이자 효시가 됐다"며 "시대적 요청에 따라 오래 전에 나온 '성서사십주간'이 학술적 집필과 감수를 거쳐 모두 7권으로 완간된 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한소춘(프리시마) 가톨릭성서모임본부 대표 수녀도 "2006년 7월에 전정판 첫 권 「오경」을 만났을 땐 얼마나 반가웠는지 받은 그날 수녀원에 돌아오자마자 밤새워 읽었다"며 "앞으로 전정판이 복음 말씀에 더 깊이 다가가고, 더 깊은 성경의 세계로 이끄는 데 성서사십주간 전정판이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선지훈 신부도 "'성서와 함께'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함축한다"며 "'성서사십주간' 전정판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이 책이 우리 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정판으로 완간된 '성서사십주간'은 2006년 7월 「오경」 발간을 시작으로 「역사서1」, 「역사서2」,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 「복음서」에 이어 지난 1월에 나온 「행전ㆍ서간ㆍ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총 7권으로 완간됐으며, 「성서사십주간 성경지도」는 현재 출간을 준비 중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9.03.24

의로운 인권주의자, 하늘나라로민청학력 사건 등 인권 변호사로 활약, 신앙에 근거한 민주화 운동 펼쳐"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이사 58,8) 장례미사에서 봉독된 이 한 줄의 성경 구절이 한국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이돈명(토마스 모어) 변호사의 삶을 함축적으로 말해줬다. 11일 향년 89살을 일기로 선종한 이돈명 변호사의 장례미사가 15일 서울삼성병원에서 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와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장례미사와 민족사회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에는 김병상 몬시뇰 등 사제 20여 명을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김선수 회장, 서울대 백낙청 명예교수 등 교회 안팎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불이익 감수하고 시국사건 변론 자처 고인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함세웅 신부는 강론에서 "이 변호사는 1970~80년대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세상 한복판에 뛰어들어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억울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며 "우리도 고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이 변호사'가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고인은 1952년 제3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로 10여 년간 근무한 뒤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인권 변호사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부터였다. 이후 인민혁명당 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청계 피복노조 사건 등의 시국사건을 맡으며 인권변호사로 활발히 활동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을 변호하고 독재정권과 투쟁하면서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전신인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을 역임하며 신앙에 입각한 정의를 심고자 노력했다. 인권옹호와 반독재 투쟁은 그에게 한국 민주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평가와 아울러 '한국 인권운동의 대부'라는 별칭을 안겨줬다. 그가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옥고를 마다하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1986년 5ㆍ3 인천사태와 관련해 수배 중이던 이부영 당시 민족통일연합 사무처장을 자신의 집에 숨겨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될 때 "나는 불의에 쫓기는 한 마리 양을 보호했을 뿐, 결코 범인을 숨겼다는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 최후진술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신앙적 신념으로 하느님 정의 추구 낙천적이며 순수한 성격의 고인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신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천주교 신앙이었다. 그는 평화신문과의 인터뷰(2004년)에서 "인간이 뿌리라는 신앙적 신념으로 유신독재 등 사회 불의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고자 노력했다"며 "나이가 들면서 하느님 뜻에 맞춰 살고자 하는 어린 종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민주주의는 본래 시끌시끌한 게 본질이며 겨울눈이 녹아 사방이 진흙밭이 되고 굳어지면 정상궤도에 오른다"며 "시국이나 노사문제 등도 대승적 관점에서 양보와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은 사람들이 잘해야지"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나라를 걱정했던 이 변호사. 후배들에게 '돈명이 할아버지'라 불리며 사랑과 존경을 받아 온 고인은 경기 남양주시 세종로성당 묘역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애도 메시지 한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11일 애도 메시지를 통해 "고인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이 변호사님, 일생을 잘 사셨습니다'하고 말씀하셨듯 한국 민주화를 위해 오롯이 헌신한 분"이라며 "평생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다 가신 고인께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백영민2011.01.18
[성경 속 상징] 48-희생- 하느님께는 첫 열매를 바쳐야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위험에 처한 주인을 대신해 목숨을 잃은 충성스런 개 이야기가 가끔 언론에 나온다. 불이 난 집에서 자고 있는 주인을 깨우고 자신은 불에 타 죽은 개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개처럼 충성스런 동물도 드문 것 같다. 요즘처럼 희생을 모르는 이기적 세상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희생은 교환과 연결되는 개념으로 생각됐다. 즉 신에게 희생물을 바치면 신에게서 그 이상의 것을 받는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인간이 신에게 올리는 희생 제물은 주로 첫 번째로 수확한 과실, 최초로 태어난 동물이나 첫 아이였다.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는 고대 관습은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희생 제사의 최고 형태였다. 그러나 점차 사람 대신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게 됐다. 근대에 와서는 윤리적 행위를 희생으로 여기기도 했다. 희생은 점차 인간사회 질서 유지와 자신 생명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 된 것이다. 성경은 희생을 자주 언급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빈손으로 자신에게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을 인간처럼 생각하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달에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탈출 23,15). 하느님께는 첫 열매를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 13,2). 최초로 태어난 남자 아이는 하느님의 소유물로서 대속하지 않는 한 하느님 백성의 처소에 머물 수 없다(탈출 13,13). 그러나 하느님은 페니키아나 가나안의 신들과는 반대로 인간이 희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대체로 구약의 희생에는 피의 희생으로서 제물을 죽인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낼 때는 제물이 될 동물을 희생시켜 봉헌했다. 죄를 범한 사람이 흠 없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은 자신의 죄를 그 제물에게로 옮기기 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피를 흘리지 않는 곡식물을 희생으로 드리는 경우에는 고운 가루로 만들었다. "누가 주님에게 곡식 제물을 예물로 바칠 때에는, 고운 곡식가루를 바쳐야 하는데, 거기에 기름을 따르고 유향을 얹어…"(레위 2,1). 그러나 점차 겉으로 드러나는 희생보다는 마음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저의 기도 당신 면전의 분향으로 여기시고 저의 손 들어 올리니 저녁 제물로 여겨 주소서"(시편 141,2). 신약에서 예수님은 최후 만찬에서 구약의 희생 제물 대신 자신을 구원의 희생으로 바쳤다.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치셨던 것이다(요한 1,29).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1코린 15,20). 하느님이 믿는 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피의 산 제물이 아니라 영적인 산 제물이다(1베드 2,5). 그 사람의 전 존재를 바친다는 완전한 봉헌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로마 12,1). 진정한 희생은 마음의 온전한 봉헌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실제적 행위로 연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희생은 공허한 것이 된다. 조은일2009.06.02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19> '제3차 선교여행'](//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033_1.0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제3차 선교여행'소아시아 에페소에 융성한 교회 꽃피우다 ◇작가노트 = 바오로 사도의 제3차 선교여행지인 에페소인들은 사냥의 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했다. 그래서 우선 아르테미스 여신의 거대한 신상과 에페소의 인상을 표현해봤다. 그리고 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 융성한 교회를 세우기를 간절히 원했던 바오로 사도를 떠올리며, 요한 묵시록에 언급된 일곱 교회의 하나인 페르가몬의 인상과 일곱 개의 별들로 이뤄진 화관과도 같은 일곱 교회의 빛을 나타냈다. 폐허 속에 빛나던 어둠과 빛 속에서 드러나는 페르가몬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기나긴 2차 선교여행의 노독에 지친 바오로 사도는 시리아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아직도 그를 힘들게 하는 몇몇 문제를 안고 있기는 했지만, 그리스도 형제들의 뜨거운 영접을 받게 돼 그는 참으로 기뻤다. 그러나 바오로는 거기에서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설립한 교회에서 유다인들이 말썽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제보들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새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또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다시 에페소로 가겠다는 약속도 지켜야 했다. 그래서 겨울이 지나자마자 주후 53년 봄, 교회의 축복을 받으며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여행을 떠났다.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 중심지 목적지는 에페소였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바오로는 남부 갈라티아 교회들을 방문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그가 매우 사랑했고 후원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었다. 데르베에는 그해 6월께 도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수행원으로 데르베 출신 가이오스를 합류시켰다. 그는 바오로의 새로운 제자로 합세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모금활동으로 '로기아(collection)'를 결성했다. 그는 그 지역 다른 교회들을 방문했으므로 프리기아를 거쳐 에페소에 도착했다.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에 있는 아주 오래된 도시다. 아마존 여족(女族)이 세웠고, 그들은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했다. 바오로 시대까지도 그곳에는 소아시아에 있는 우상숭배의 가장 큰 중심지였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거대한 상과 대리석 신전은 수많은 참배객을 그곳으로 끌어들였다. 신전 주위에는 아르테미스 여신과 다른 신들의 신상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세워져 성행하고 있었다. 동시에 에페소는 동방의 가장 큰 상업중심지로서, 그리고 지방총독이 있는 소아시아 행정수도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소아시아 에페소는 500개 도시와 농촌을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바오로는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래서 그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큰 문이 나에게 열려 있습니다"(1코린 16,9)라고 적고 있다. 지금까지 선교활동을 펼친 어디에서도 바오로는 에페소에서처럼 풍성하고 거대한 선교의 장을 만난 적이 없었다. 선교는 유다 회당에서 시작됐다. 유다 극단주의자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사도는 집에서 교리문답을 계속했다. 교인들 수가 늘어났고 가장 넓은 집에서조차도 자리가 부족하게 됐을 때 그는 선교 중심지를 티란노스라고 불리던 학교로 옮겼다. 아마도 티란노스는 새로운 교인들 중 한 사람이 감사 표시로 자신의 학교의 큰 교실을 빌려줬거나 기증해 바오로 사도가 가르칠 수 있도록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후 61년에 로마 감옥에서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에페소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사랑이 성장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도는 주님께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기도 중에 항상 그들을 기억했다.(에페 1,15-16 참조) #요한묵시록 일곱 교회 번창 바오로는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융성하게 교회가 설립되기를 열렬히 원했다. 요한 묵시록에서 언급된 스미르나, 에페소, 라오디케이아, 필라델피아, 사르디스, 티아티라, 페르가몬과 같은 교회였다. 이들 일곱 개 지역교회들은 일곱 개 별들로 된 화관처럼 에페소 모교회에 화관을 씌워줬다. 바오로는 로마에서 편지를 보내며 기쁨에 넘쳤을 것이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에페 5,8-9). 교회는 매우 성장했고, 각 도시마다 성체성사를 주관할 책임자들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원로들을 주교 명칭으로 서품했다. 주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 하느님의 교회를 사목하기 위해서였다. 에페소에 머무르던 거의 3년 동안 많은 시간을 이들 원로들 교육과 조직을 위해 할애해야 했다.(사도 20,28-31 참조) 이렇게 한 뒤 사도가 에페소를 떠났을 때에는 이들 원로들이 사목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어느 날 갈라티아 교회들에서 바오로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히브리 사람들이 바오로를 적대해 중상모략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열두 제자에 속하지 않으니 진정한 사도가 아니며,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그를 비난했던 것이다. 진정한 이유는 사람들이 할례가 모세 율법의 계명과 분리될 수 없고, 전에 우상숭배자였던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모세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고집했던 것이다. 이것은 갈라티아 그리스도인들을 교란시켰다. 만일 이러한 견해들이 널리 퍼졌다면, 그리스도교회는 유다교 이단이 될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모든 유다식 교리에 대응하는 서한으로 신약성경에 포함된 그 유명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보낸 것이다. 에페소에서 바오로가 직면하게 된 또 하나의 문제는 마법이었다.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힘으로 행했던 놀라운 기적들로 인해 마법에 종사하던 사람들 다수가 그에게 와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죄를 고백했다. 많은 마법사들이 자신의 마법서를 가져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태웠다. 이 책들은 5만 은화(영국 금화 1600 파운드에 해당)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 사도, 에페소에 잠들다 바오로 사도의 이같은 큰 성공은 우상숭배자들, 그리고 마법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던 사람들이 사도를 대적해 들고 일어나게 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맹수와 싸웠다"(1코린 15,32)고 말했으며, 로마서는 에페소에서 프리스카가 아퀼라와 함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로마 16,3-4)라고 전한다. 사도행전은 에페소 신전들 신상과 아르테미스 신상 제조자들이 야기한 소동 외에는 에페소에서 바오로가 겪은 위험들을 분명하게 적어 놓지 않았다. 바오로가 군중들에게 도시 수호자인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설득했다는 죄목으로 온 도시가 들고 일어났다. 많은 백성들이 대극장으로 모여 들었고 "에페소인들의 아르테미스는 위대하시다!"라고 외쳤다(사도 19,28-30 참조). 바오로는 극장으로 가 그들에게 말하고자 했으나, 평소 바오로에게 호의를 가졌던 그 도시 귀족들 중 몇몇은 성난 군중 앞에 나타나지 말도록 충고했다. 소요가 끝났을 때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했다. 언제나처럼 성 만찬을 거행했고, 그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충고의 말을 남기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주후 70년 7월 9일, 로마 장군 티토가 4개 군단 8만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파괴한 이후 신학자 요한 사도가 에페소로 일을 하러 왔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복음서와 13편에 이르는 서한들을 썼으며, 매우 연로해 평안히 눈을 감았다. 그의 무덤이 있는 장소에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성 요한을 추모하는 웅장한 성당을 지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성당의 잔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글 소티리우스 트람바스 대주교/그림 정미연오세택2011.06.14
![[공동체]재속 프란치스코회 75주년 기념 1차 심포지엄 가져](//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6466_1.0_titleImage_1.jpg)
[공동체]재속 프란치스코회 75주년 기념 1차 심포지엄 가져재속 프란치스칸 소명 되새겨... 10월 30일 전주 가톨릭센터 3층 강당에서 '재속프란치스칸의 사도직활동-회고와 전망' 주제 학술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국가형제회 혼돈과 위기에 빠진 사회에서 재속 프란치스칸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또 재속 프란치스칸의 영성은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오는 2012년 한국에 뿌리를 내린 지 75주년을 맞는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국가형제회는 10월 9ㆍ16ㆍ30일 세 차례에 걸쳐 75주년 기념 제1차 학술심포지엄을 갖고, 현대 사회에서 재속 프란치스칸의 소명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재속 프란치스칸의 영성과 삶'을 주제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은 서울과 경남 산청, 전주로 자리를 옮겨가며 각 지구별로 재속 프란치스칸의 영성과 그 현대적 의미, 현실과 전망, 사도직 활동의 회고와 전망을 각각 소주제로 다뤘다. 손진욱(요셉) 경남지구형제회 양성 담당은 재속 프란치스칸의 영성을 예수를 따르는 복음적 삶에서 찾고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따른 교회 쇄신에 집중했다. 끊임없는 회개와 순종, 소명에의 충실성, 가난한 이들과 함께함, 자기 비움과 낮춤, 세속적 삶의 포기, 가난, 평화, 형제애, 복음 선포 등을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을 통해 변화와 쇄신에 주목했다. 이어 현대의 재속프란치스칸들은 내적 성화와 훌륭한 형제회 생활은 물론 사도직 활동을 통해 교회와 세상 안에서 능동적 삶을 살고 정의로우며 형제적 사회가 이뤄지도록 누룩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은 경남창원형제회 홍성군(바오로)씨가 맡아 대사회적 소명과 자세, 교회 안팎 위협에 대처하는 자세 등을 거론했다. 이현주(가타리나) 국가형제회 양성 담당은 양성 교재와 방법에 있어서 현실과 전망을 살피고, 의식 변화를 통한 자기 양성과 덕행 닦기 운동을 제안했으며, 형제회 운영 변화를 촉구하고, 일상의 영속적 양성을 강조했다. 또 봉사자 양성을 위해 기초ㆍ심화 양성교사 연수 정례화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며 소명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정토론을 맡은 광주장성형제회 김영수(안셀모)씨는 재속 프란치스칸의 양성이 회원들의 영적 쇄신과 형제회의 내실을 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심연무(아우구스티노) 전주지구형제회장은 재속프란치스칸의 선교는 매일 생활 가운데서 좋은 표양이 되고 선교사들을 영적, 물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간접선교나 해외선교에 연대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약성경의 중심사상인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힘쓰고, 생태계 보호의 수호성인인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 따라 창조질서 보전을 통해 다면적 평화 생태학의 놀랍고도 적절한 모범이 될 것을 강조했다. 대전지구 루도비코형제회 문석기(폴리카르포)씨는 지정토론에서 영성생활과 사도직 활동의 균형을 이루고 하느님 나라 건설은 겸손한 기도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1.09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16) 초세기 교부들 중 오리게네스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 모습](//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7155_1.2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16) 초세기 교부들 중 오리게네스 문헌에 나타난 성모님 모습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오리게네스 교부는 초세기 200년께에 사셨던 대학자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발전하는 데 큰 공헌을 한 학자로 언어와 문화, 철학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그는 성경을 공부할 때 본문의 문자적 의미뿐 아니라 상징적ㆍ영성적 의미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도들이 불신앙을 겪는 동안 주님의 어머니는 그러한 불신앙으로부터 보호되었는가? 주님의 수난 동안 그분이 그러한 불신앙을 겪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그분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일 '모두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 버렸습니다' '만일 모두가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었고 속죄되었다면'(로마 3,23) 마리아도 그 순간에 불신앙을 겪었다는 것이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시므온이 그런 예언을 한 것입니다."(오리게네스의 '루카복음에 관한 강론' 중) 오리게네스 교부는 시므온이라는 예언자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할 때 "이 아이 때문에 장차 가슴에 칼을 꽂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은 성모님이 신앙의 어둠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시므온은 어머니 아픔은 아들이 겪는 아픔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예언했다고 오리게네스는 해석한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를 '믿음의 어둠'으로 표현했다. 성모님은 완벽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조차도 믿음의 어둠을 겪었다. 성모님도 믿음의 어둠을 겪고 살아가신 분이다. 성모님을 완벽한 존재로 꾸미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성경은 그 분을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한다. 은총이란 말은 하느님의 사랑ㆍ총애를 의미한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총애를 잃지 않으신 분이지만, 우리와 똑같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신 분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서슴없이 불렀다. 후에 에페소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맞지 않다는 이견이 있었지만, 오리게네스 교부를 비롯한 많은 교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이 명칭은 성모님이 여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모가 낳은 예수님이 인간인 동시에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오리게네스 교부가 성모님에 대해 첫 번째로 주장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의 모성과 동정성은 신앙에서 필수적 요소라는 점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경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표현은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믿지 않는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당시 반대자들 중에는 예수를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생각했던 이들도 많았고, 심지어 로마 판테라라는 군인의 성폭행으로 낳은 사생아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이사야서 7장 14절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으로 이를 반박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여기서 표징은 기적이다. 여성(여인)이 아이를 낳는 게 기적이 아니라, 동정녀가 아이를 낳는 게 기적이라는 의미에서 여성을 동정녀로 번역하는 게 타당하다. 오리게네스는 사람들은 남자 아버지에게서 여성을 통해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판테라라는 이름 자체는 파르테노스라는 희랍어인데, 이 말은 동정녀, 처녀라는 뜻이다. 오리게네스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니냐고 반박한다. 또 원죄 없는 예수님의 잉태를 보증하기 위해서도 동정녀이신 성모님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타당하지 않느냐는 논리를 제시한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성모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완벽한 제자라고 했다. 성모님이야말로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 뜻에 따라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셨고, 그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분이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성모님의 성덕을 많이 찾아냈다. 성모님의 노래 '마니피캇'에는 구원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믿음, 희망이 잘 드러난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cpbc2010.08.17
하루 한 장 성경읽기-예레미야서 해설이제 「이사야서」에 이어 두 번째 '대예언서'인 「예레미야서」를 읽으실 차례가 됐습니다. 모두 52장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예레미야서」는 기원전 627년부터 587년까지 약 40년 동안 남부 유다 왕국을 무대로 예언자 '예레미야'가 펼친 활동과 메시지를 제자인 '바룩'이 받아 쓴 작품입니다(예레 36,4 참조). (1)「예레미야서」의 명칭 예레미야의 히브리어 이름은 '이르메야후'인데, 어원적 의미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으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룸'과 하느님의 이름 '야훼'가 합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야훼께서 일으키다' 혹은 '야훼께서 급히 보내다'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과 백성이 처한 위기를 내다보며 야훼의 뜻에 순응하고 의탁하지 않을 경우, 백성이 기다리는 '야훼의 날'은 구원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패배와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천성이 조용하고 온순했음에도 불구하고(예레 1,6 참조), 예레미야는 온갖 위협과 고난을 받으면서도 용감하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유다 백성의 미움을 받은 수난의 예언자였습니다. (2)「예레미야서」의 구조와 주된 메시지 「예레미야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여섯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 1,1~3: 도입부. 2) 1,4~19: 소명설화. 3) 2,1~25,38: 유다를 거슬러 내린 세 가지 신탁과 예레미야의 행동. 4) 26,1~45,5: 이스라엘과 유다에 내린 구원신탁. 5) 46,1~51,64: 주변 민족들을 거슬러 내린 신탁. 6) 52,1~34: 부록 (3)「예레미야서」의 시대 배경 벤야민 지방 아나톳에 살던 사제 출신으로(1,1), 아주 젊은 나이에 소명을 받은 예레미야가 활약하던 시기(기원전 627~587년)는 한 마디로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당시 절대 강자였던 바빌론과 이집트의 세력 다툼이 치열했고, 국내적으로는 우상숭배와 약한 이들에 대한 수탈 같은 불의와 악행이 자행되던 불행한 시기였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두 차례(기원전 598년과 587년)에 걸친 바빌론의 공격에 함락을 당하고, 유다 백성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당하는 비운을 맞이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일단의 패주병에게 사로잡혀 말년을 이집트에서 보냈습니다(예레 42~44장 참조).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가 이집트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4)「예레미야서」의 가르침 1)예레미야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인간 역사를 주관하는 주님이십니다(18,1~10; 27,5~7; 43,10; 46,1~51,64). 따라서 그 어떤 인간의 힘과 권력도 하느님 계획을 바꿔놓을 수 없습니다(27,8~11; 51,58).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처벌하시기 위해, 당신이 직접 북쪽 이방 민족을 불러일으키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1,15; 4,6.28; 6,6.9.19). 그러나 하느님의 개입은 무조건 백성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뉘우치게 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3,14~18; 16,14~15; 24,4~7; 29,10~14). 2)하느님 앞에 선 인간: 인간은 "악을 저지르는 데는 약삭빠르면서도 선을 행할 줄은 모른다"(4,22; 참조: 5,1; 17, 9). 그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음의 고집'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3,17; 7,24; 9,13; 11,8). 악으로 기울어져 완고해진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죄를 벗기 위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너희 마음의 포피를 벗겨내어라!"(4,4).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굳게 감싼 악과 죄를 벗겨 내실 것이며, 새로운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새겨주실 것입니다. 비로소 그때 인간은 하느님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31,31~34).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전적으로 하느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히브리서」는 이 새로운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됐다고 풀이해 줍니다(히브 8,8~12; 10,16~1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기록된 성경을 구약이라 칭하고, 이후에 기록된 성경을 신약이라 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사순 시기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읽게 된 것은 우연일까 묵상하게 됩니다. 혹시 성경공부를 하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 섭리가 있지 않을까요. 이번 사순 동안 우리 마음을 보다 열어서 '마음의 할례'인 세례 성사의 은총이 우리 안에서 더욱 향기를 풍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이힘2009.03.03
![[성경 속 상징] 47-피-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계약 맺어](//cpbc.co.kr/CMS/newspaper/2009/05/rc/296362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47-피-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계약 맺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처음 천주교가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에 전래됐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식인종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미사 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체성사를 오해한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피는 불안과 공포, 흥분의 상징이다. 고대인들은 피, 특히 사람 피는 건강에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7세기께 이란 지역 기마전사들인 스키타이족 전사들은 전투에서 적군의 피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효심 깊은 자식이 어버이의 병을 고치려고 자기 피를 마시게 했다는 우리나라 민담도 전해진다. 구약성경에서는 단호하게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사람의 피는 고사하고 동물의 피를 먹는 것조차 금기시된다(창세 9,3-4). 이러한 금지가 율법에도 그대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레위 7,27-28). 짐승의 피를 따로 마셔도 안되고 피가 든 살코기를 먹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사람의 피를 결코 흘려서는 안 된다는 명령도 중요한 율법이다.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창세 9,5). 남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물론 살인을 뜻한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다. 짐승의 피를 먹지 못하는 이유는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피는 먹어서는 안 된다. 피는 생명이고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신명 12,23). 그리고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다. 생물에 생명을 주고 또 거두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창세 3,19). 따라서 생명과 직결된 피를 먹지 않는 것은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짐승의 피를 먹는 행위는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행위이다(1사무 14,33). 성경에서 살인은 생명에 대한 하느님 주권을 침해하고 하느님 모상인 인간을 죽임으로써 하느님께 직접 도전하는 것이다(창세 9,6).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남의 피를 쏟아 죽이는 자에게 벌을 내리신다(시편 5,7). 월경과 출산도 본의는 아닐지라도 피를 흘렸기에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레위 12,1-8). 그러나 생명의 상징인 피는 인간에게 속죄와 정화와 해방, 생명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피는 제단과 성소와 성전을 정화하고 속죄하는 데에 쓰였다(레위 16,15-1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시며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7-28). 여기서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구원을 가져다 준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로마 3,2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의 피로 맺어진 계약 대신에, 당신의 피로써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다. 따라서 미사 때마다 신자들은 새 계약의 피를 마심으로써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조은일2009.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