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49- 오른쪽-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과 행동](//cpbc.co.kr/CMS/newspaper/2009/06/rc/298006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49- 오른쪽-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과 행동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차들은 오른쪽길 사람들은 왼쪽길' 초등학교 때 좌측통행 규칙을 익히기 위해 자주 불렀던 동요 가사다. '문화인은 좌측통행'이라는 표어도 있다. 그런데 이 보행자 좌측통행이 내년 7월부터는 '우측통행'으로 바뀐다. 좌측통행이 안전도가 떨어지고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 국민의 신체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이라고 한다. 봉건시대 유럽에서는 말, 마차 등 모든 교통수단이 왼쪽으로 다녔다. 왼손으로 고삐를 쥐고 좌측통행하면 마주 오는 이와 오른손으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눌 수 있다. 또한 오른손으로 무기 등을 들기도 수월하다. 그러던 것이 나폴레옹이 유럽지역을 지배하면서 우측통행이 보편화됐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대적했던 연합군 중 영국은 아직도 좌측통행을 유지하고 있다. 예로부터 여러 국가나 문명에서 오른쪽은 왼쪽보다 선호돼왔다. 인도와 유럽 언어에서도 오른쪽은 강하고 선하고 바르다는 긍정적 의미를 포함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도 오른쪽은 행운을 뜻하며 상징적으로는 남성과 관련된다. 또한 맹세와 같은 의미인 악수를 할 때도 오른손을 사용한다. 이것은 오른손으로 악수함으로써 우정과 신뢰가 견고하게 됐음을 뜻한다. 성경에서도 오른쪽의 의미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오른손은 그분의 능력과 지배의 상징이 된다. "주님, 권능으로 영광을 드러내신 당신의 오른손이, 주님, 당신의 오른손이 원수를 짓부수셨습니다"(탈출 15,6). 모세는 첫 사제의 임직식에서 희생제물로 드린 숫양의 피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랐다(레위 8,23).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자신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사제의 엄숙한 사명을 다짐하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관습은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에서도 나타난다(레위 14,14-18). 아버지가 자식을 축복하는 예식에서도 오른손은 왼손보다 선호된다. "요셉은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 위에 얹은 것을 보고는 못마땅하게 여겨, 아버지의 손을 잡아 에프라임의 머리에서 므나쎄의 머리로 옮기려 하였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아버지. 이 아이가 맏아들이니, 이 아이 위에 아버지의 오른손을 얹으셔야 합니다'"(창세 48,17-18). 또한 오른손은 특별히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과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사용됐다. "하느님, 당신 이름처럼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집니다. 당신의 오른손이 의로움으로 가득합니다"(시편 49,11). 오른편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영예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밧 세바는 아도니야를 위하여 청을 하러 솔로몬 임금에게 갔다. 임금은 일어나 어머니를 맞으며 절하고 왕좌에 앉았다. 그리고 임금의 어머니를 위해서도 의자를 가져오게 하여 그를 자기 오른쪽에 앉게 하였다"(1열왕 2,19).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날 때도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신다는 표현이 나온다(히브 1,3).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도 의인은 오른편 축복의 자리로, 악인들은 왼편에 두신다(마태 25,31-46). 조은일2009.06.09
![[아! 어쩌나?] (70) 복음말씀 때문에](//cpbc.co.kr/CMS/newspaper/2010/09/rc/350490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70) 복음말씀 때문에Q. 복음말씀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요즘 성경묵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루카복음 14장을 읽다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고민 중입니다. 루카복음 14장에는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라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A. 형제님이 묵상하신 내용은 사실 미신자 분들에게, 특히 유교적 성향이 강한 분들에게 비판받는 부분입니다. '하느님이 아무리 좋더라도 어떻게 자기 부모를 미워하란 말이냐'에서부터 '천주교는 집안 말아먹으라는 종교냐,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종교가 그런 가르침을 주느냐'는 말까지 여러 가지 비난 근거를 제공한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리고 비단 미신자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그 부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많은 분이 상담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복음에 나오는 주님 말씀 중에는 상당히 결연한 표현들이 많고 때로는 지금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어법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1년만 나이 차이가 나도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하는데, 주님 말씀은 무려 2000년 전 말씀이니 현대적 어법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무리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하신 말씀들은 일반대중들에게 하신 말씀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다를 때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일반대중들에게는 치유와 은사를 받는 것에 대한 말씀을 주로 하셨는데, 제자단에게는 수도자적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형제님이 묵상하신 루카복음 내용 역시 제자단에게 좀 더 수도자적 삶을 진지하게 살라고 요구하신 것으로 생각하시면 좋을듯합니다. 왜냐면 그 당시 제자들이 자리다툼을 벌이는 등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의 이 말씀이 일반 신자분들은 묵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상적 신앙생활의 목표로 묵상하되 그렇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거나 부담감을 갖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Q2. 저는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걱정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제 머릿속에는 늘 오만가지 걱정이 떠올라서 마음이 늘 무겁습니다. 내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할 수 있을까, 내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자식들은 다 성공할까 하는 생각부터 이 나라의 앞날이 어찌 될까 하는 생각 등 여러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위사람들은 저를 보고 걱정도 팔자라고 하면서 놀리기만 합니다. 제가 문제가 있나요? A. 대부분 사람은 머릿속에 걱정이란 짐 덩어리를 가득 채우고 삽니다. 그래서 인생길이 무겁다고 여기지요. 그런데 어떤 심리학자가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내용을 살펴보고 몇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이었고, 30%는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었으며, 12%는 건강에 대한 불필요한 걱정이었고, 10%는 사소한 일, 8%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중에서 96%가 불필요한 걱정이고, 4%만이 그럴듯한 걱정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걱정을 이고 살까요? 첫 번째 이유는 매스컴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일 보도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하다 보면 마음 안에서 불안감이 가시질 않고 늘 걱정스러운 생각이 떠나질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걱정의 악순환 때문입니다. 걱정이란 놈은 일단 시작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일정량의 걱정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할수록 점점 더 팽창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세 번째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해 그렇다고 합니다. 걱정을 많이 하는 분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인생은 공식대로 가야 해', 또는 '인생은 필연적인 법칙으로 이뤄져야 해'하는 신념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생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그래서 부정적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심이 약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온갖 걱정은 다 하면서 심하게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걱정거리를 모두 적어놓고 냉정하게 걱정을 해서 해결될 문제와 그렇지 못한 것들을 구분하는 훈련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힘2010.09.15

서울 서원동본당 '3040 신자 모임' 만들어낀세대? 아니죠, 이어주는 세대죠!"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서원동본당 3040 첫 모임에 참석한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최선을 다해 활동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요즘 성당에서 30~40대 신자들이야말로 '낀세대'다. 30~40대는 청년단체에서 활동하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또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이나 성인단체는 대부분 50대 이상 신자들로 이뤄져 있어 함께 활동하기가 왠지 부담스럽다. 단체 활동에서 소외된 30~40대는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대교구 서원동본당(주임 김영환 신부)이 30~40대 신자들의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해 '서원동성당 3040모임'을 만들었다. 30~40대 신자 40여 명은 3일 첫 모임을 열고 서로 얼굴을 익혔다. 3040모임은 매달 첫째ㆍ셋째 주에 회합을 가질 예정이다. 첫째 주는 '나눔과 신앙재교육' 시간으로 강사를 초청해 자녀교육, 재테크, 건강상식과 같은 30~40대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 강의부터 성경교육, 소공동체 소개, 신부ㆍ수녀님과 대화 등 신앙생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셋째 주에는 등산, 축구, 영화관람 등을 함께 하며 친교를 다질 계획이다. 3040모임을 기획한 기획분과장 이규재(안토니오)씨는 "30~40대가 흥미를 가질만한 강의와 동아리 모임을 준비해 일단 그들이 성당과 친숙해지도록 만들겠다"며 "궁극적 목표는 30~40대가 사목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본당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당은 3개월 전부터 3040준비위원회를 꾸려 설문조사를 실시, 30~40대 신자들의 단체활동 실태를 파악했다. 조사 결과 단체활동을 하는 신자는 26%에 불과했고, 3040 모임이 만들어지길 원한다는 의견이 70% 가까이 나왔다. 이에 따라 준비위원회는 30~40대 신자들에게 모임을 소개하는 초청 편지를 두 차례 보내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첫 모임에 50대 이상 신자 10여 명이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사목회 부회장 주신호(미카엘, 56)씨는 "30~40대는 젊은층과 중장년층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30~40대 신자와 언제든 편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3040모임 안수현(베드로) 회장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30~40대 냉담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더 많은 이들이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세례를 받은 김기영(베드로, 41)씨는 "영세 후 마땅히 활동할만한 단체가 없어 아쉬웠는데 3040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었다"면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본당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0.10.12
![[성경 속 상징]46- 목자- 하느님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cpbc.co.kr/CMS/newspaper/2009/05/rc/295356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46- 목자- 하느님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지난 4월 5일 오전 경기도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미사가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날 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님 묘비를 축복했다. 묘비에는 김 추기경님 사목 표어인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와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 23,1)는 문구가 간단한 약력과 함께 써 있다. 이 시편 구절은 김 추기경님께서 가장 좋아했던 성경 구절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근동지방에서 양떼를 목초지에서 인도해 들짐승에게서 보호하는 목자는 높이 평가했다. 목자는 가축에게 풀과 물을 찾아주고 도둑이나 들짐승들에게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목자가 왕과 같은 존재로 나타난다. 예로부터 목자 일은 책임이 크고 때로는 위험한 직업이었다. 그래서 성경에서 목자는 하느님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하느님께서 친히 다윗을 향해 하신 말씀에도 잘 나와있다. "전에 사울이 우리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2사무 5,2). 그래서 하느님에게 인도된 사람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는다(이사 49,9-10). 또한 백성의 지도자들도 목자에 비유된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예레 3,15). 선한 목자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언급도 눈에 띈다.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에제 34,12). 목자에 대한 상징의 절정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로 시작하는 시편 23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목자'가 임금의 정식 명칭이나 칭호로는 쓰이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는 목자의 상징이 하느님께는 드물게 적용된다(마태 18,12-14).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사명을 착한 목자라는 비유로 드러내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예수님은 착한 목자를 삯꾼과 비교하며 착한목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하신다(요한 10,12-13).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은 군중을 보시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 아픔과 질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을 먹이신다(마태 9,35-37). 붙잡혀 가시면서는 제자들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흩어지리라고 염려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다"(마르 14,27). 초대교회 때 지역 교회 공동체 지도자를 목자라고 불렀다(에페 4,11) 이러한 명칭은 주님의 목자 직무에 동참하고 그분을 대리하여 직무를 수행함을 뜻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사제를 목자라고 부른다. 착한 목자의 상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 빈번히 나타나는 주제로서 고대 로마의 지하묘소 카타콤바 벽화나 석관의 부조, 모자이크화 등에 자주 등장한다. 조은일2009.05.19
과도한 육류 소비가 대재앙 초래구제역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요약) 최근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확산돼 소ㆍ돼지 등이 2백만 마리 넘게 살처분 당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려 생매장된 닭이나 오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집계조차 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축산 역사상 처음 있는 대재앙이다. 몇 년씩 정성들여 키운 어미 소와 함께 송아지까지 한꺼번에 파묻어야 하는 농민들이나 살처분 현장 수의사와 공무원들은 생매장 당하는 소ㆍ돼지들 비명 소리에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환청에 시달리며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해도 이런 대량 도살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요, 도리에 어긋나는 일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 가축은 공장 생산물이 돼버렸다 전통적으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구약성경에도 가축을 잡아 제사를 지내거나 식용으로 삼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세까지 가축은 각 가정에서 소비하거나 기껏해야 인근 마을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만 사육했다. 그런데 산업기술이 발달하고 대규모 축산 농장을 세우면서 가축은 더 이상 가축이 아니라 공장 생산물이 돼 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양의 육류를 소비하고 있다. 예전에는 드물게 명절 때나 제사 때만 겨우 고기 맛을 보았는데 지금은 수시로 고기를 포식한다. 이러한 왕성한 육류 소비에 맞추려고 단기간에 보다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온갖 인공적 수단을 동원한다. 우리나라는 움직일 틈이 없는 비좁은 축사에서 가축들에게 유전자 조작 옥수수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를 남용한다. 이로 인해 가축들 건강이 더 이상 병균에 저항할 정상적 면역력을 잃어버려 힘없이 무너져 버린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나친 육류 소비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상업적 욕심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곡물 부족으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이 가축 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선진국에서는 육류 과잉 섭취에서 비롯된 심장발작, 암, 당뇨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보다 더 많다. 과도한 육류 소비는 지구 생태환경에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중남미 대륙에서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열대 우림이 이미 가축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됐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과 미국, 호주 남부 목장지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막화의 주된 요인도 소를 방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육장에서 흘러나오는 축산폐기물도 환경을 훼손하는 주요 요인이다. 결국 우리가 육류를 과도하게 소비함으로써 이런 부작용을 일으켜 하느님이 태초에 설계하신 창조질서에 심각한 무질서와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하시며, 인간에게 다스리는 역할을 주셨다. 그러나 '다스리라'고 한 것은 피조물을 인간 멋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착취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온갖 생물이 고유의 존재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보살피라는 말씀이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방주에 온갖 생물들을 한 쌍씩 집어넣으시고 노아와 '함께 살아남게' 하셨다(창세 6,17-20). 홍수가 온 땅을 뒤덮었을 때도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기억하셨다'(창세 8,1). '기억하셨다'는 것은 하느님 자비와 사랑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진다는 의미다. # 짐승들도 하느님 구원과 보살핌 대상 홍수가 끝난 후 하느님은 노아와 그 가족과 함께 모든 생물들이 '땅에 우글거리며 번식하고 번성하게 하여라'(창세 8,17)하고 축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 자손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도 계약을 맺으셨다(창세 9,9-11). 계약을 맺은 것은 하느님께서 짐승들의 멸망을 원하지 않고 그 생명을 지켜주실 것임을 약속하신 구원과 은총의 선언이다. 결국 창세기 가르침에 따르면 짐승들도 모두 하느님 구원과 보살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면 세상이 오늘날 어떤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지, 어떤 덫에 걸려 신음하는지, 또 어떤 아픔과 슬픔에 시달리는지 공감하고 동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 예배 위주의 관행적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복음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성찰함으로써 회심의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예수님처럼 시대의 가장 힘없는 이들, 고통 받는 피조물들 고통과 신음까지도 함께 호흡하며 삶의 궤적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먹는 데에도 인간답게 먹고, 그리스도인답게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cpbc2011.01.25
![[기획/하느님의 종 125위 복자 반열에, 제1부 땀의 순교자 최양업, 다락골에서 배티까지]-<5> '11년6개월,짧고도 긴 순례 여정을 마치고'](//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1585_1.0_titleImage_1.jpg)
[기획/하느님의 종 125위 복자 반열에, 제1부 땀의 순교자 최양업, 다락골에서 배티까지]- '11년6개월,짧고도 긴 순례 여정을 마치고'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숨 거둔 '땀의 순교자'... 제1부 글 싣는 차례 ① 미지의 땅 마카오로 떠나다 ② 조선 땅 배티로 돌아오다 ③ 조선 5개도를 본당사목구로 ④ 교우촌으로 향하는 길 위에 서다⑤ 11년 6개월, 짧고도 긴 순례 여정을 마치고 "저 혼자 여행을 하기엔 너무 허약합니다. 하루에 고작 40리(16㎞)밖에 걷지 못합니다. 갈 길이 먼 공소순방 때는 그래서 말을 타고 갑니다."(최양업 신부 1859년 10월 12일자 서한) #낮에는 걷고 밤에는 성사 집전 날이 갈수록 최양업 신부는 쇠약해지고 점차 지쳐갔다. 12년간 해마다 2749㎞(7000리)씩 걸어 교우촌을 순방하는 강행군 때문이었다. 낮에는 대략 31.4~39.3㎞(80~100리)를 걷고 밤에는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날이 새기 전에 다시 길을 떠나는 과로가 그의 몸을 서서히 갉았다.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 겨우 나흘 밤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목구역은 5개 도에 걸쳐 있었고, 충청ㆍ전라ㆍ경상 삼남(三南)지역 가운데 벽지와 오지는 거의 그의 차지였다. 최 신부는 1859년 말 시작돼 1860년 여름까지 이어진 경신박해로 성사 집전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도 밤마다 교우촌을 옮겨 다니며 신자들을 보살폈다. 박해가 심해 어쩔 수 없이 죽림(경북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대밭공소)에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최 신부는 박해가 잦아들자 다시 공소 순방에 나섰다. 사목 순방을 하느라 성무집행 연말보고조차 늦춰졌을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그 성과는 풍요로웠다. 최 신부가 1860년 9월 3일자로 스승 신부들에게 보낸 열아홉 번째 서한에 따르면, 고해성사를 본 신자가 1622명, 세례성사를 받은 이가 203명이었으며, 예비신자도 398명이나 등록했다. 사목보고를 한 뒤로도 최 신부는 10개월 간 공소 순방을 하느라 거의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그런 몸을 이끌고 그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에게 사목순방 결과를 보고하고자 길을 나섰지만 무리였다. 피로가 겹친 데다 장티푸스에 걸린 최 신부는 마침내 쓰러진다. 그리고 푸르티에 신부에게 마지막 사죄경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고나서 양떼를 따스하게 붙잡아주던 손을 내려놓고 숨을 거둔다. 흩어진 양떼를 찾아 성사의 은총을 전해주느라 길에서 산 '땀의 증거자'의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할 수 없음에, 더 도울 수 없음에 자책하던 목자는 의식이 없으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반복해 중얼거리며 자비한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토록 최 신부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교우들은 참 목자를 잃은 슬픔에 목이 멨다. 1861년 6월 15일, 그의 나이 41살이었다. 그리고 유해는 선종지에 가매장됐다가 훗날 배론에 안장됐다. 1849년 말 부푼 '희망을 안고' 조선에 발을 내디딘 지 꼭 11년 6개월 만이었다. 마지막 서한을 통해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하다"며 죽음을 예감하던 최 신부 기도는 참으로 애절하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잊지 마소서. 저희 눈이 모두 당신의 자비에 쏠려 있습니다. 저희의 모든 희망이 당신의 자비 안에 있습니다.…" 최 신부의 열절한 기도는 여기에서 멈춘다. 배티성지 내 산상제대로 오르는 길목에 세워진 최양업 신부의 동상. '길의 사도'이자 '땀의 증거자'로 산 최 신부의 삶을 형상화하고자 성경을 끼고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가는 형태로 제작했다. 최 신부 선종지는 아직 미궁에 빠져 있다.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푸르티에 신부 서한과 페롱 신부 서한이 최 신부가 선종한 땅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서다. 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준 푸르티에 신부는 1861년 10월 21일자 서한을 통해 "그가 누워있는 집이 저의 거처(배론신학교)에서 170~180리(66.8~70.7㎞) 떨어져 있었다"거나 그해 11월 2일자 서한에서 "그는 중병에 걸려 제가 살고 있는 산(배론 구학산)에서 170리(66.8㎞) 떨어진 어느 한 교우의 집에 간신히 도착했다"고만 언급한다. 또 페롱 신부도 같은 해 서한을 통해 최 신부가 선종한 것이 "배론신학교에서 약 120리(47.1㎞) 떨어진 한 작은 교우공동체"라고 언급할 뿐이다. 19.6㎞(50리)라는 거리 인식의 차이는 신학교 교장으로 있던 푸르티에 신부와 교우촌 순방 길에 익숙했던 페롱 신부가 달려간 노선이 달랐기에 벌어진 현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 바시리오 이력서'(1939년) 등을 비롯한 문헌과 구전 등을 통해 최 신부 선종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최 신부 선종지는 경상도 문경으로 보는 설(주재용 신부, 정양모 신부 등)이 유력하지만, 충청도 진천으로 보는 견해(류한영 신부 등)도 만만치 않다. 또 최 신부 발병지와 선종지를 구분해 발병지는 문경이 분명하지만, 선종지는 진천 배티라고 주장하는 설(정규량 신부)도 있다. 다만 '대동여지도'나 요즘 항공촬영 축적 지도를 통해 분석해본 결과, 최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준 푸르티에 신부가 배론신학교에서 이동한 거리가 170~180리였다는 기록은 배론에서 문경읍까지 실측결과가 거의 일치해 문경선종설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여하튼 그의 죽음은 당시 조선교회에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페롱 신부는 최 신부가 선종한 지 한 달 열흘이 지난 7월 26일자 서한에서 "그의 죽음은 조선 교회 전체의 초상이다"며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기까지 사목적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기술한다. 왜냐면 최 신부는 그간 선교사들이 방문하지 못하는 남쪽 오지 교우촌 순방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문본 기도서나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도 어려움에 부딪혔다. 선교사들은 무엇보다 '친구'를 잃는 아픔으로 눈물에 젖었다. 베르뇌 주교도 1861년 9월 4일자로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인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최 신부는) 12년간 거룩한 사제의 모든 본분을 지극히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감화하고 성공적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기를 그치지 않았다"며 최 신부의 신심과 열심, 평소 사제로서 분별력을 칭송하고 그를 잃은 아쉬움을 표명했다. 더불어 "그가 성무를 집행하던 구역은 크나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서양 사람이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마을이 포함돼 있어 그의 죽음은 저를 몹시 난처하게 한다"면서도 "그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신 천주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 조선 복음화를 그리도 갈망하던 최 신부가 선종한 지 이제 150주년을 맞는다. 그간 한국교회 첫 사제인 김대건(1821~46) 신부에 가려있던 최 신부는 2005년 12월 시복대상자 '하느님의 종' 125위 가운데 증거자로는 유일하게 선정돼 시복재판이 개시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그리고 3년 6개월이 지나 2009년 6월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자료가 제출됨으로써 한국교회에는 최 신부를 비롯해 하느님의 종 125위에 대한 기도와 공경, 현양운동이라는 과제가 남게 됐다. 이처럼 빛나는 삶을 산 최 신부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있을까. 최 신부의 사목적 삶과 선교 열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참으로 깊고도 풍부하다. #선교열정, 순교정신 본받아야 그는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자신의 한 생애를 오롯이 봉헌한 땀의 증거자였다. 그의 순례영성은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숨을 거둔' 데서 잘 드러난다. 교우촌을 중심으로 한 공소 순방을 통해 '기다리는 사목'이 아니라 '찾아나서는 사목'을 통해 강생의 신비를 살았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또 신자들의 수계생활을 위해 이 교우촌에서 저 교우촌으로 끊임없이 순례한 참 목자였다. 사제직에 대한 그의 투신은 끊임없는 박해와 체포 위기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모든 간난신고를 그는 사제직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냈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친척, 친지들에게조차 외면당하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교우들, 나아가 동포들에 대한 연민으로 끝없이 번민했고, 동포들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 끊임없는 기도를 바친 기도의 사제였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도 최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자비로우신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 바치게 하소서!"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06.28
수원교구 고색동본당 수원교구 고색동본당(주임 이원태 신부)은 27일 오전 11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376-5 현지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한다. 대지면적 1889㎡, 연면적 2447.46㎡ 지하 1층ㆍ지상 3층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 성당은 △지하 1층 강당, 연도실 △1층 사무실, 교리실, 수녀원 △2층 성당, 사제관 △3층 성가대석 등을 갖추고 있다. 종탑 외부는 대천사 모자이크로, 외벽 창문은 성부ㆍ성자ㆍ성령ㆍ착한목자 등 성경 내용을 형상화한 유리화로 장식했다. 1970년 세류동본당에서 분리, 설정된 본당은 기존 성당이 낡고 오래된 데다 수원시 도시계획안에 포함돼 현재 위치로 이전, 신축했다. 2004년 8월 기공식을 하고 1년여의 공사 끝에 2005년 8월 준공했으나, 채무가 많아 봉헌식을 하지 못하다 올해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봉헌식을 갖게 됐다. 신자들은 묵주기도 500만 단 봉헌, 바자 등을 통해 성전 봉헌을 준비해왔다. 본당은 40주년을 맞아 역대 신부 초대미사, 전 신자 성지순례, 예술제 등을 마련했으며, 이달 말까지 성당에서 '본당 역사 사진전'을 개최하는 한편 「40년사」를 발간할 계획이다. 신자 수는 1215가구 3347명이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10.06.15

인터넷 성서백주간 제1기 졸업생 23명 감사미사사이버 세상에 '성경 금자탑'을 쌓다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성서 백주간'을 마친 졸업생들이 졸업 감사미사를 봉헌한 뒤 카페지기 이중섭 신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터넷 성서 백주간'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1992년 3월 국내에 '성서 백주간' 프로그램이 도입된 이후 '온라인' 성서 백주간 졸업생이 배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구약 76주간, 신약 45주간 등 총 121주간에 성경을 인터넷으로 완독한 셈이다. 온라인 성경 공부는 이중섭(청주교구 성모성심본당 주임) 신부의 공이 컸다. 2005년 10월 27일 이 신부가 카페 지기를 맡아 포털사이트 '다음'에 카페 '성서 백주간을 사랑하는 사람들'(http://cafe.da um.net/catholicbible100)을 개설한 게 계기였다. 교구를 초월해 1기생으로 60여 명이 가입한 이후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해외에서도 회원으로 가입해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카페가 개설된 지 3년 5개월 만에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수강한 노정우(데레사)씨를 포함해 첫 졸업생 23명이 14일 청주 성모성심성당에서 '인터넷 성서 백주간 제1기 졸업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새로운 성경 공부 여정에 들어갔다. 1기+ 과정으로 심화 과정을 시작했다. 인터넷 성서 백주간은 매주간 읽어야 할 분량을 읽고 난 뒤 묵상과 함께 복습문제를 매주 수요일에 올리고, '묻고 답하기' 꼭지를 통해 이 신부가 직접 댓글을 달아주고 수강상황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카페엔 강좌와 함께 한 줄 메모장, 이 신부 주일강론, 기도문 모음, 시 모음, 사진방, 음악방, 폰앨범 등 꼭지를 둬 수강생끼리 친교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또 성경 각 권을 마칠 때마다 청주 분평동ㆍ성모성심 성당에서 이뤄져온 종합강의를 통해 온ㆍ오프 라인 강의를 병행한 신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정태건(아우구스티노)씨는 "20여 년 전 세례를 받았지만 주일미사만 지내는 '발바닥 신자'였다"며 "그러던 차에 인터넷에서 성경을 공부하며 읽고 또 묵상하다보니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1기 졸업생들은 40~50대 중ㆍ장년층이 대다수지만, 70대인 권녕숙(베로니카, 74) 할머니도 갈수록 침침해지는 노안을 딛고 신ㆍ구약 완독을 마무리했다. 지난 2월 초 파푸아 뉴기니로 선교를 떠나려다가 비자가 나오지 않아 출국이 미뤄진 장순환(효은, 보혈선교수녀회 전 한국지부장) 수녀도 이날 인터넷 성서백주간 졸업생이 됐다. 이 신부는 "시간을 내지 못해 성경공부에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다들 어렵게 시작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통해 말씀으로 사는 삶, 하느님 중심적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9.03.17
![[자살예방상담 매뉴얼]이 전하는 자살예방상담법](//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260_1.1_titleImage_1.jpg)
[자살예방상담 매뉴얼]이 전하는 자살예방상담법"죽고싶다"는 말 흘려 듣지 말아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2009년 기준, 자살로 인한 연 사망자 수 1만5438명. 34분마다 1명씩 숨을 거두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3월 개소한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이하 센터)가 10개월여 만에 「자살예방상담 매뉴얼」을 펴냈다. 센터에 접수된 실제 상담 사례를 분석한 「자살예방상담 매뉴얼」(이하 매뉴얼)은 보다 효과적인 자살 예방을 위한 자료집이다. 실제 사례를 자료로 활용한 매뉴얼은 이 책이 처음이다. 매뉴얼이 제시한 한국사회 자살 실태에 대해 살펴보고,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법과 교회 가르침 등을 알아본다. #한국의 자살 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10대 사망원인 중 4위(2009년)에 해당한다. 고혈압(10위)과 당뇨병(5위)보다 높으며, 빈번히 발생하는 교통사고(6위)보다도 높아 자살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살자 수는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루 평균 42.2명꼴로,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살자 1만5438명은 1999년과 비교해 107.5%나 늘어난 수치다. 성별을 보면 남자(7747명, 2007년)가 여자(4427명)보다 2배 가량 많고, 자살률은 연령이 높을수록 증가한다. 자살 시도율은 청소년기가 가장 높다. 자살 사망자는 40대가, 자살률은 60대 이상 노년층이 가장 높다. 청소년 사망자의 1/4 이상이 자살이라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자살 원인으로는 고통과 스트레스, 자기로부터의 도피가 첫 번째로 꼽혔다. 암 등 질병과 정신적 고통, 사랑하는 이의 배신이나 거절로 인한 절망감, 가정불화나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 어려운 입시준비 고통에서 벗어나려 자살을 감행한다. 자신만 없어지면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 극심한 적개심과 분노, 복수심도 자살 원인이다. 큰 실패 뒤 책임을 지겠다는 자기 처벌 의지, 죽은 친족과의 재결합, 정신질환으로 이유 없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 예방 상담기법 전문가들은 상담자들이 전화 또는 인터넷, 면접 등을 통해 자살예방 상담을 할 때 내담자가 "죽고 싶다. 그동안 친구도 없이 왕따를 당해왔다. 칼로 손목을 그었으나 무서워 세게 긋진 못했다"는 등 자살에 대한 직ㆍ간접적 메시지를 보낼 때 잘 경청해 대응할 것을 권했다. 경청을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자살 위험성을 평가하고 내담자의 감정에 대한 수용과 지지, 공감을 통해 충격을 완화시켜야 한다. 전화상담은 먼저 △관계를 형성하고 △내담자의 문제를 규명하며 △감정을 탐색하고 △이전 대처방법을 찾고 △대안을 찾는 5단계 형태로 진행해야 바람직하다. 면접상담을 할 때는 상담 전용 공간에서 주 1회가량 1시간을 기준으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면접 상담은 표정이나 동작 등 비언어적 의사표현을 파악할 수 있고, 내담자와 상담자 간에 친밀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화를 통해 가장 시급한 위험요소(흉기 등)를 제거해야 한다. 내담자는 자살의 세 가지 실현요소인 '충동성'과 '양가감정'(두 극단적 감정이 양립할 수 없음에도 함께 존재하는 경우), '단절' 여부를 파악해 하나라도 강하게 작용하면 강도를 완화시켜 자살 시도를 막을 수 있다. 사이버상담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상담할 수 있고,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사이버상담실을 방문하기 때문에 상담에 임하는 자세가 더 적극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성이 아닌 문자를 통한 상담이기에 상담자는 내담자의 정서적 표현에 괄호를 치고, 주된 호소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공감과 지지, 설명과 질문, 정보제공 등을 포함한 글로 답해야 한다고 권했다. #자살예방을 위한 종교 상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도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2258항)고 밝히고 있다. 또 "자살은 다섯째 계명이 금하는 살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중하고도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행위이며, 인간 존엄성과 창조주의 황금률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중대하게 거스르는 행위"(2261항)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예방을 위한 종교적 상담은 내담자가 자신ㆍ타인ㆍ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끄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권했다. '하느님-이웃-자기'라는 관계 구조 안에서 개인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개인 및 공동체적 행복과 내적 치유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사목상담자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는 성경 말씀처럼, 내담자가 어려움을 호소할 때 그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