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오두(synodu)' 사제들의 고충·고민 나눔, 시노드의 길을 찾다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에서 사제들이 본당에서 일어날 만한 다양한 사례의 갈등을 시노드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해결할 지 논의하고 있다. 두 번째 모임, 주제는 ‘관계와 소통’ 전국 16개 교구 사제 50명 모여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서로 털어놓아 행정과 역할에만 몰입하는 사목 폐단 시노드 정신으로 사제가 사목의 주체로서 설명·공감 통해 함께 걷는 사목자 지향 ‘성령 안에서 대화’ 익히고 체험해야 “레오 14세 교황님은 시노달리타스를 어떻게 생각하셔?” “교황님이 새로 바뀌었으니 시노달리타스 이행 단계는 이제 끝난 거지, 뭐.” 시노달리타스 선교사 노우재(부산교구 서동본당 주임) 신부가 최근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노 신부는 “시노달리타스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과제로만 여겨졌구나 싶었다”면서 레오 14세 교황이 6월 7일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강론에서 언급한 내용을 소개했다. “제가 교황으로 선출된 저녁, 광장에 모인 하느님의 백성들을 바라보며 ‘시노달리타스’란 낱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시노달리타스는 성령께서 교회를 형성하시는 방법입니다.”(레오 14세 교황) 17~19일 경북 왜관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에서 소속 교구, 서품 연차, 사목 분야가 서로 다른 전국 16개 교구 사제 50명이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다. 주교회의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한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이다.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에 참석한 사제들이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춤추며 몸을 풀고 있다.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 중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퀴즈정답을 맞힌 ‘동행’ 조가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관계를 돌아보기 △소통으로 나아가기 △시노드 교회를 살아가기를 주제로 ‘성령 안에서 대화’를 통해 조별 나눔 시간을 가졌다. 사제들은 주제별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경청했다. 3명의 사제가 발표한 후 2분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테이블 위에는 모래시계가 올려졌다. 사제들은 본당 공동체나 특수 사목지에서 동료 및 선후배 사제·수도자·신자들과 관계 맺기 어려웠던 순간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위계 중심의 교회 구조와 갈등을 회피하는 한국 사회 특성이 맞물린 채 고립된 환경에서 고독하게 사목을 이어가야 하는 현실을 공유했다. “모든 관계가 항상 어렵고, 숙제처럼 느껴진다” “소통과 환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일이 우선되다 보니 늘 밀린다” “본당의 사목평의회 구조 자체가 시노드 정신을 저해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갈등과 어려움을 피하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분위기에서 관계보다는 행정과 역할에 몰입하게 된다는 속내도 털어놨다. 이번 모임에는 사제들의 친교를 위해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마련됐다. ‘신오두(synodu) 신부의 고민, 시노드 스타일로 함께 풀어가기’(본당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을 시노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나누는 시간), ‘폭싹 풀었수다’(퀴즈 프로그램), 성경 넌센스 퀴즈 등에 참여했다. ‘첫 음 듣고 성가 제목 맞히기’ ‘MZ 신조어 맞히기’ 등 세대 간 소통을 돕는 활동도 큰 호응을 얻었다. 사제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풀고, 조별 대항 퀴즈를 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신오두(synodu) 신부의 고민’ 시간에는 본당 공동체에서 일어날법한 다양한 갈등 사례들을 어떻게 시노드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지 교구별로 모여 함께 고민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본당 신자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반목한다면?’ ‘본당 수도자와의 마찰로 어려움이 생길 때’ ‘본당 사목평의회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의 마지막 일정으로 19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대성전에서 정순택·옥현진 대주교와 박현동 아빠스 공동 집전으로 파견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전국 16개 교구의 사제 50명은 16~19일 경북 왜관 성 베네딕도 영성문화센터에서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에 참석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19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대성전에서 봉헌된 파견미사 강론에서 “권위주의적 성직중심주의는 지양해야 하지만 사제가 사목의 중심인 것은 불변의 사실”이라며 “사제가 교회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사제 개인의 에고(ego, 자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비움으로써 성령께서 자신을 채워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대주교는 “(과거에는) 사목적 리더십 양 떼를 이끌고 앞장서 가는 것이었다면, 시노드 교회에서는 본당 공동체 안에서 친절한 설명과 공감을 통해 함께 걸어가는 사목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사제는 “성령 안의 대화가 하느님 뜻을 식별하는 과정이라면, 나눔 안에서 경청과 소통, 공감과 위로를 느끼는 것에 그치기보다 하느님 뜻을 식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면서 “그러나 사제들의 나눔과 공감, 위로가 부각되다 보니 정작 ‘성령 안에서 대화’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익히기에는 제약이 많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의 전례와 묵상, 나눔에 대한 안내와 행사 기획 및 준비는 5명의 시노달리타스 선교사들(노우재·박용욱·김영식·최문석·박찬홍 신부)과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담당 옥현진 대주교) 연구원들이 함께 맡았다. 이 선교사들은 2024년 4월 교황청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본당 사제’를 주제로 열린 국제 모임에 참석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대의원으로 참여한 정순택 대주교와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주교회의 대표로 ‘한국 주교회의 단계의 시노드 모임’을 이끈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도 사제단 일원으로 이번 전체 일정에 참가, 사제들과 어깨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며 경청했다. 인터뷰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시노드에 스며들어야 “시노드 정신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노드 정신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스며들어 삶이 되고, 그 삶이 이어져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시노드 교회를 위한 본당 사제 모임에 참석한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이번 모임이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열린 만큼 사제들이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지금 이 순간의 만남 자체에 집중하며, 서로 경청하고 공감하고 이해했던 시간이 사제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모든 일정에 함께한 옥 대주교는 “사제와 신자뿐만 아니라 주교와 사제, 사제와 수도자 사이 관계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모든 세대 간 관계와 소통이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신학생들은 한국 사회의 문화 속에 성장하고, 한두 명밖에 낳지 않는 가정 환경에서 경쟁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런 환경에서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되어 고독한 지도자의 삶을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옥 대주교는 “가정을 꾸리는 이들은 남편과 아내, 자녀라는 삼위일체적 가족 구성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단점과 약점이 수정·교정되지만 사제들은 어렸을 때의 가정환경이 전부이기에 그런 면에서 열악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사제들 간 시노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옥 대주교는 시노달리타스 양성을 위한 시노달리타스 학교 및 조직 구성을 제안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이것이 하나의 일시적인 붐으로 끝나선 안 되기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끌고 가려하기보다는 주교와 사제·수도자·평신도가 함께 성령의 이끄심 속에 식별하며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6.24

신앙의 눈으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기품있는 노인들 일상 포착[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12. 노인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노인’, 유리건판, 연도 및 촬영지 미상,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신앙과 삶의 품격 온몸에 배어있는 노인들 예수회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자유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포착되는,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이라고 정의했다. 곧 향주덕의 삶, 하느님을 향한 삶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인 것이다. 그러면서 라너 신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찾아 얻게 하는 것은 실상 이념이나 고상한 말이나 자아 반영이 아니라, 이기심에서 나를 풀어주는 행위, 나를 잊게 해주는 남을 위한 염려, 나를 가라앉히고 슬기롭게 해주는 인내 등”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을 진지하게 깨달을 때가 노년기일 것이다. 물론 어리고 젊은 나이에 삶의 의미를 직관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노인이 되면 하느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논할 만한 삶의 경륜이 쌓인다. 그래서 구약성경 집회서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그들 또한 조상들에게 배웠고 이제는 네가 그들에게서 지각과 적절한 때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리라”(8,9)며 “풍부한 경험은 노인들의 화관이고 그들의 자랑거리는 주님의 경외함”(25,6)이라고 예찬한다. 이런 이유로 구약성경은 노인을 존경하라고 권고한다.(레위 19,32)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노인들을 적지 않게 촬영했다. 그는 단순히 나이 든 늙은이를 찍은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삶의 품격이 온몸에 배어있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이 얼굴에 드러나는 이들을 담았다. 비단옷이 아닌 하얀 무명옷을 입고, 가죽신이 아닌 짚신을 신었어도 베버 총아빠스가 사진에 담은 노인들은 한결같이 기품이 있다. 먼 곳 응시하는 깊은 눈은 삶을 달관한 듯 기품은 하루아침에 풍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일상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다. 신앙을 토대로 담백하고 성실하게 받아들여진 일상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숨은 은총 속에 사는 삶이라 하겠다. 신앙이 일상이 될 때 인생은 인내의 태도, 성실과 공평·책임감의 태도, 사랑이 깃든 몰아의 태도를 보여주게 된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노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한국사진 아카이브에 있는 ‘노인’<사진 1>은 삶을 달관한 표정이다. 먼 곳을 응시하는 깊은 눈은 담담하게 살아온 넓은 인생의 지평을 엿보게 한다. 선한 눈빛은 자신의 내심을 드러낸다. 구릿빛 피부는 노인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음을 웅변한다. 굳게 다문 듯하나 옅은 미소가 피어나는 것은 만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보여준다. 흑발과 백발이 뒤섞인 긴 수염은 위엄과 평정을 드러낸다. <사진 2>노르베르트 베버, ‘장기를 두는 노인들’, 유리건판, 1911년 2월, 홍릉 인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환갑이면 노인 대접을 받았다. “환갑의 기쁨은 담뱃대로 그치지 않는다. 이 잔칫날에는 아들딸과 손자 손녀, 친척과 친지들이 모두 부모 곁에 모인다. 다들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넨다. 물론 이 땅에 다른 주인(일본)이 다른 법도를 들여온 후에는 민족 정서를 마음껏 표출했던 옛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 옛날에 왕과 왕비의 환갑잔치는 가장 성대한 축제였다. 이날은 축제의 기쁨이 거센 파도처럼 방방곡곡에 넘쳐흘렀다. 아마 이런 시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죄수가 부모의 환갑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석방되었다가 잔치가 끝난 후 정직하게 다시 돌아와 수감되는 불문율 또한 새로운 체제하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75쪽) 베버 총아빠스 일행은 1911년 2월 25일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어느 집 앞에서 장기판에 빠져있는 노인들을 사진에 담았다.<사진 2> 노인 넷이 양지바른 담장 앞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판은 막판을 달리고 있다. 장기판 왼편 노인이 장기알을 움직이려 하자 그 옆의 노인이 훈수를 둔다. 이 훈수가 맘에 들지 않는지 장기를 두는 상대 노인이 주먹 쥐듯 왼손을 움켜잡는다. 그 옆의 노인은 이 장면이 재미있는지 담뱃대를 문 채 옅은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이 장면을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둘러서 지켜본다. 베버 총아빠스는 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인들의 신발에 주목했다. 장기를 두는 노인이 나막신을 벗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나막신은 일본 나막신과 판이하다. 일본 나막신은 두 개의 굽을 나무 밑장에 덧대지만, 한국 나막신은 통나무로 깎아 만든다. (⋯) 이 둔한 신을 처음 신으면 몸이 앞뒤로 기우뚱거려 몹시 위태롭다. 그러나 한국인의 몸놀림은 나막신을 신고도 안정적일 뿐더러 우아하기까지 하다. (⋯) 짚신은 가볍고 편해서 도보 여행에 좋고, 자갈투성이의 험한 산길에도 제격이다. 산행이 가볍고 잘 미끄러지지도 않는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99~100쪽)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짚신 삼는 노인’,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청계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신틀도 없이 짚신 삼는 노인의 솜씨에 감탄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5월 황해도 신천군 청계리를 방문했을 때 두건을 쓴 노인이 마당에 앉아 짚신을 삼고 있는 걸 촬영했다.<사진 3> 그는 신틀도 없이 짚신을 삼는 노인의 숙련된 솜씨에 감탄했다. 짚신을 삼는 것은 지나친 고역은 아니지만 삶을 유지하게 하는 일상의 노동이다. 양쪽 엄지발가락에 새끼를 꼬아 지탱하며 짚신 꼴을 만들어가는 노인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이마의 굵고 짙은 주름과 팔뚝에 불끈 솟은 핏줄이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노인의 수고를 보여준다. 베버 총아빠스가 본 짚신 삼는 노인은 가족을 향한 희생과 공동선을 향한 순종과 극기의 모습이었다.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지팡이를 짚은 노인’,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청계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베버 총아빠스는 청계리에서 또 한 분의 노인을 사진에 담았다.<사진 4>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다. 머리에 쓴 갓은 높이가 낮고 양태가 매우 좁고, 귀 밑에 끈을 달아 턱 밑에서 묶는 형태다. 고종의 갑신의제 개혁 이후 전형적인 남성들의 성장(盛裝)이다. 흑립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행전을 치고 버선발에 초혜를 신는 정갈한 차림이 당시 남성의 일상복이었다.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일상 사진들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모습을 그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담은 것이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12.31
![[제13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너는 이것을 믿느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2/24/kS31771918020451.jpg)
[제13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너는 이것을 믿느냐?이서은(에드부르가, 서울대교구 고척동본당) 구글 제미나이 제작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나는 내가 조금은 유별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궁금한 게 참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건,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대개 눈살을 찌푸리거나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태어났지!’라는 대답을 듣곤 했다. 성에 차지 않는 대답에 나는 선생님들과 부모님께도 질문을 거듭했다. 어른들의 대답은 나름 다양했다. ‘신이 너를 포함한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이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 ‘그게 궁금하면, 이 책 읽어볼래?’와 같은. 하지만 그 모든 답변은 나의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진 못했다.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아니 선택할 수 없었던 나의 탄생에 대해서.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이런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셨다. 그러다 곧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이런 게 궁금한 내가 조금은 별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시선도 떠올랐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그 질문은 삶이 꽤 지겹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뜻 모를 회의감이 나를 다시금 간절히 묻게 한 것이다. 이때는 세상에 멋대로 던져졌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뱉고 나면 퍽 이상하게 들려 혼자 곱씹어야 했던 내 생각은 쉴 틈 없는 일상에서 점차 부정적으로 흘렀다. 허리가 부러질 듯 앉아서 공부하고 집에 가면 또 자습을 이어가야 했다. 성적을 잘 받지 않으면 부모님과 선생님께 혼이 났다. 선생님은 성적이 좋은 아이와 좋지 않은 아이를 차별했다. 친구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들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밟고 서야 할 경쟁자였다. 작은 소음에도 서로를 힐난할 정도로 예민했다. 결국 그즈음 같은 반 친구가 성적 스트레스로 손목을 그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 눈으로 목격한 첫 자해의 현장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그 친구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반 친구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마지막 정도는 내가 결정하고 싶었어.’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모두에게 질문을 건넸다. 우리, 고작 이렇게 살려고 멋대로 태어난 걸까? 친구의 질문은 일렁이던 나의 마음에 던져진 돌과도 같았다. 스스로 죽으려고 했던 그 애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무서우면서도, 어떤 날에는 삶의 마지막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참을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나는 마음에 들이치는 파도를 견디다 못해 결국 더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이대로 잠겨 죽기는 싫다는 최후의 선택이었다. 불쑥 치솟는 충동은 그렇게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 가두어졌다. 온통 새카만 나만의 세계는 안온했지만 때로는 두려웠다. 어디가 낭떠러지고 길인지 알 수 없는 불안에 떨었다. 그러다 불쑥 던져진 친구의 질문처럼 무언가가 그 어둠을 뚫었다. 그 사이로 빛이 샌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집 근처 선생님의 오피스텔에서 설렁설렁 영어 과외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일상에 지쳐 최소한의 사회성도 없던 나는 선생님과도 대화하기가 귀찮았다. 그런 나를 파악했는지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셨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선생님의 노력으로 조금은 자연스러운 사이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대뜸 종교 이야기를 꺼냈다. 목소리와 표정에서부터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혹시 천주교라는 종교 아니?” 나는 교회와 성당도 가끔 헷갈렸기에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어렸을 적 친가 친척들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가본 적은 있었다. 그때 고모들이 나를 개신교도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그러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어 그 후로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천주교는? 일가친척 통틀어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다. 외가는 할머니께서 불교 신자셨으니,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표정을 살피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나는 살짝 경직된 채 잠자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조금씩 풀어내시는 말 중에 순간 나의 귀를 사로잡은 내용이 있었다. 바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드셨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그 이유가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니, 이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는 유치한 마음으로 부모님 이야기부터 꺼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며 잔잔한 미소를 띠셨다. “당연히 부모님이 서은이를 낳아주셨지. 그것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그런데 그 이전부터 너를 사랑하셨던 분이 있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하셨다.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 정의로운 신. 그런데 나는 그 무렵 부모님이 나를 어긋난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느님도 그런 분이라고 여겼다. 그러자 바로 부정적인 마음이 솟았다.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을까? 철없는 투정이었다. 나는 다시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을 원망했듯이 신을 원망하기도 쉬웠다. 점점 굳어가는 내 표정을 보셨는지 선생님께서는 거기까지 말씀하시고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자꾸만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사실은 내가 초월적인 존재를 필요로 했음을 깨달았다. 타의로 인해 태어난 인간끼리 서로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게 싫었다. 적어도 신이 있다면, 미움의 화살을 서로가 아니라 그에게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님 이전에 신이 있었다니, 왠지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흥미로운 접근이었다. 그래서 다른 수업 날에는 질문거리를 잔뜩 정리해서 갔다. 선생님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는데, 공격적인 내 질문들에도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면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건가요?’ ‘하느님이 있는데 왜 세상에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예요?’ 같은.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신 답변은 모두 ‘사랑’이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로 귀결됐다. 고통과 사랑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내가 불만 어린 표정을 풀지 않자 선생님께서는 학교를 졸업하면 성당에 한번 나와보라고 권유하셨다. 결국 종교 이야기의 끝은 전도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든 건 정말이지 신기한 이끌림이었다. 그 후는 똑같았다. 나는 여전히 마음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지만,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그 희미한 빛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힘들고 삶에 회의를 느낄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가서 괴롭혔다. 그런데 그만큼 선생님의 인내심도 끝이 없었다. 그러자 공격적이었던 나의 질문들은 점차 누그러졌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뭐든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았다. 인간이 아무리 찔러도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튕겨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는, 그런 신기하고 큰 스펀지. 나는 그 옆을 맴돌며 어린아이 같이 툴툴댔다. 이렇게 어느 날 내 삶에 불쑥 나타나신 하느님과의 만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때가 됐다고 여기셨는지 아직 세례도 안 받은 나를 어느 한 성당으로 데리고 가셨다. 손을 잡고 이끌린 곳은 성당 내 성물방이었는데, 묵주 팔찌를 하나 고르라고 하셨다. 단순한 팔찌가 아니라는 묵주는 반짝반짝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예비신자도 아닐 때 묵주 팔찌를 선물 받게 되었다. 손목에 걸려 달랑거리는 묵주를 보며 문득 손목을 그었던 친구의 상처 자국이 생각났다. 함께 그 친구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조용히 바랐다. 이게 기도라는 건가, 제법 어색해하면서. 그 신기한 이끌림이 알고 보니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나는 마치 하느님께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계속해서 성당으로 이끌렸다. 가톨릭계 대학교에 진학해 학교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모두 받는 은총을 누렸고, 학교에서 성가대로 봉사할 기회가 있었으며 청년성서모임 공부를 마치고 대표 봉사자 등을 거쳐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의 자리로 초대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어둠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내가 문을 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를 잡아먹을 듯 들이쳐 마음속으로 숨게 했던 파도는 어느새 잔잔하게 바뀌어 있었는데, 문득 그 위에 내리쬐는 햇볕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의문에서 이제는 해방되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의 그늘은 제법 끈질겼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갑자기 차에 치인 것처럼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코로나 19와 함께 내게 들이닥쳤다. 잠시 느꼈던 해방감이 나의 얄팍한 신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하느님을 만난 후엔 우울감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신앙생활이 그저 겉치레에 불과했음을 간과했다. 나의 신앙은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도 같았다. 파도 한 번에도 위태롭게 쓸려나가던 모래성은 해일을 만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얄팍한 신앙이 깨지자 갑자기 일상생활이 어려워졌고, 잊고 지냈던 트라우마 같은 기억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기억 끝에 친구의 손목에 그어졌던 흉터 자국이 있었다. 그 자국이 이번엔 마치 내 마음에 새겨진 것 같았다. 성난 파도는 해일이 되어 미처 숨지 못한 나를 덮쳤다. 나는 구명정 하나 없이 그 바다를 부유했다. 어두운 바다는 온도만큼이나 뼈아프고 시린 깨달음을 주었다. 삶에 던져진 이유를 찾던 열여덟의 내가 스물여덟이 될 때까지 단 한 뼘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점점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결국 병원을 방문한 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병원도, 진단명도, 약도 모두 거북했지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점차 마음속 거친 파도는 잠잠해졌지만, 나를 스치는 따끔한 통증이 있었다. 물만 닿아도 아플 만큼 벌어져 있는 상처 자국, 오래전 보았던 친구의 손목 상처와 똑같은 모양의 자국이 내게 남겨졌음을 보았다. 나는 이렇게 갑자기 닥친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느님께 조금은 절박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치유를 위해 종교를 믿는다는 말이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픈 걸 알고 나자 신앙생활에 정성을 쏟는 그 마음을. 다양한 가톨릭 서적을 읽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으며, 열심히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봉사에 임했다. 그래도 공허함은 여전했다. 나는 이따금 내 마음의 바다에 뛰어들어 벌어진 상처의 고통을 안고 죽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날 어둠 속에서 본 빛줄기는 내가 꾸며낸 환상이었던가. 아니, 그랬다면 그때의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었다. 초월적인 존재를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도 않았을 테고, 손목의 묵주 팔찌를 돌리며 결국 자퇴한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을 테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지도 않았을 테고, 많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리지 않았을 테다. 철부지였던 내가 바뀔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한 의심이 있었다. 주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나는 이렇게 부족하고 약하기만 한데. 나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이토록 괴로울 리 없다는, 지극히 편협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기도를 통해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편에 지워지지 않는 그늘을 안고 피정과 연수를 찾아다니던 무렵이었다. 어디로 가면 당신이 계실까, 어떻게 하면 당신의 사랑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단 한 번만 그 빛을 다시 볼 수 있다면, 하고 정처 없이 떠돌던 날들. 그렇게 헤매다 한 수도원에 발길이 닿았다. 수도원은 매우 고요하고 정갈했는데,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라면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수도원 복도를 걷다 경당의 십자고상의 예수님을 살짝 엿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구글 제미나이 제작 그곳에서는 청년들에게 이냐시오식 관상기도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서툰 나 또한 함께 배울 수 있을 만큼의 쉽고 간단한 설명이었다. 말씀을 읽고 와 닿는 구절에 머물러 본 후 그 장면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날 내가 읽고 묵상한 성경 구절은 요한 복음 11장이었다. 나는 아까 기도드렸던 경당으로 이동해 조용히 기도에 집중했다. 11장의 내용 중 예수님께서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러 다시 베타니아로 가신 뒤 그곳에서 마르타와 마리아를 만나시는 장면에 머물렀다. 예전에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는 장면에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다시 조용히 이 부분을 읽고 묵상하다 보니 문득 한 구절이 유독 눈에 띄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믿음. 그 순간 예수님의 음성이 내 마음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생경한 감각이었다.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어떤 다른 존재가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주님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그런 직접적인 만남은 성인, 성녀들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지금 내 안에서 나에게 말을 거시는 이분은 누구실까.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나는 그간 뭐라고 응답했나. 영원히 사는 삶 따위는 필요 없다고, 나는 왜 당신을 믿어도 이렇게 죽지 못해 살아가느냐고 따졌었던가. 그러나 따져 들었던 대상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정작 나는 당신의 자녀가 되겠다고 맹세했으면서 과연 무엇을 믿었나. 내가 정말 당신의 사랑을 믿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느냐?’ 그 음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나는 어느새 눈을 꼭 감고 주님께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주님, 저에게 믿음을 주세요. 그 어떤 사랑도 믿을 수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탄생조차 괴로워했던 저를, 어리석게도 당신의 사랑을 믿지 않고 쉽게 삶을 등지려는 저를 돌보아주세요. 곧 눈가가 촉촉해졌다. ‘더 이상 괴로워 마라. 그저 너의 마음을 나에게 맡겨다오.’ 그분의 음성은 거짓말처럼 따뜻했다. 나는 마음속에서만 들리는 예수님을 붙잡고 싶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어떻게 하면 당신께 제 마음을 드릴 수가 있나요? 도와주세요. 그분 앞에서 정녕 나는 어린아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음속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벌어진 상처에 괴로워하며 헐떡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상처의 부위는 손목이었는데, 그곳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10년 전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던 친구의 모습과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똑같이 피를 흘리면서. 나는 그제야 그 친구가 상처 입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 친구가 생각났다. 죽지 않고 잘 있을까, 그래도 열심히 기도했는데. 장면 속의 나는 그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엎어져 있는 내 어두운 주변 곁으로 희미한 빛이 생겨나더니 그 형태가 곧 예수님으로 변했다. 그 따뜻한 눈빛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손목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의 무릎을 꿇고 내 옆에 앉으시더니 피가 흐르는 손목을 가볍게 쓰다듬으셨다. ‘상처 입은 마음이어도 좋다. 나에게 맡겨다오.’ 그러자 나는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주님을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저여도 괜찮을까요, 예수님.’ 이렇게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도요? 예수님께서는 대답 대신 지그시 웃으시더니 두려워 떨고 있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셨다. 그분 품에서 아이처럼 울던 나는 문득 내 손목의 상처가 당신에게로 옮겨간 것을 알았다. ‘예수님의 손목에 제 상처가 생겼어요.’ 예수님은 이번에도 내게 대답 대신 미소로 화답하셨다. 그렇게 나를 보며 웃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 장면에서 깨어났다. 나는 내가 본 모습처럼 울고 있었다. 앉은 자리에 눈물이 흥건했다. 눈물을 닦으며 조금 진정한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간 수없이 당신의 사랑을 믿어 달라고 하셨음을 깨달았다. 그 음성을 얼마나 많이 외면했던가.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당신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내가 믿는 것뿐이었는데. 십자가 위에서도 나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는 예수님인데. 이번에는 거짓말처럼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의 상처를 보아다오. 내 손목의 상처는 내 상처가 아니었다. 바로 당신의 상처였다. 어떤 견고한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가두던 세계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 무너짐 사이로 어둠은 걷히고 주님의 빛이 비쳤다. 벽이 조각조각 부서진 자리에 어느새 예수님이 서 계셨다. 빛은 사실 이미 내 안에 계셨음을. 나의 사랑을 믿어 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나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는 예수님,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안아주시는 예수님⋯. 그분은 그 모든 모습으로 처음부터 항상 내 안에 계셨다. ‘울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하셨다. 그 따스한 음성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렇게 내 첫 관상기도는 강렬한 체험으로 끝이 났다. 왜 태어났는지 애타게 묻던 나는 결국 그 빛으로부터 다시 태어났음을, 마침내 내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 눈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나는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며칠간은 현실인지 구분조차 힘들었고, 무엇보다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그 수도원에 초대해주셨던 수녀님께 이 체험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 체험을 전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는데, 수녀님은 그런 나를 보시고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간의 내 이야기까지 모두 들으신 수녀님께서 이제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느냐고 물어보셨다. 내 두 눈과 마주하는 수녀님의 눈동자에 다시금 예수님이 어른거렸다. 그날 이후로 예수님께서 성큼 내 곁으로 다가오신 느낌이었다. 아니면, 둔하던 내가 이제야 모든 곳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았거나. 찰나의 망설임이 스쳤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고 미소 지으셨던 것처럼 수녀님도 지그시 웃으시더니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시 태어난 거 축하해, 서은아.’ 예수님께서는 탄생과 삶의 무상함에 몸부림치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시어 새 삶을 선물해 주셨다. 그러나 그 삶 역시 태초부터 당신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믿음을 고백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 이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내가 이제야 당신으로부터 생겨났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결코 늦었다고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 나에게 알맞은 때에 불러주셨음 또한 알기에. 가장 찬란한 시간이라고 하는 10대와 20대를 어둠 속에 갇혀 보냈더라도 아쉽지 않은 건, 그저 당신의 사랑을 믿게 되었음에 감사하기 때문이리라.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신 예수님께서, 몸소 내 앞에 나타나시어 감싸안아 주시며 그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내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시는 듯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이제는 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신 당신을 믿는 일,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일, 절망하고 아픈 이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 일⋯ 그러나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또한 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생겨났지만 나약한 인간이기에 수없이 넘어지고 또다시 자신의 어둠에 갇힐 수도 있음을 안다. 이토록 강렬한 체험을 하고도 수없이 나의 부족함에 걸려 넘어졌던 나를 본다. 이웃을 미워하고, 나를 미워하고, 다시금 회의감에 빠졌던 나날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제는 영영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상흔이 내 안에 남았음을 안다. 그날 당신에게로 옮겨갔던 나의 상흔은 결코 나를 아프게 하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함을 안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 상흔을 통하여 나를,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안다. 그렇기에 영원토록 당신의 사랑이 모든 죽음을 이기리라. 오직 사랑, 사랑만이 나를, 또 우리를 살게 하리라.cpbc2026.02.24

성경과 문학의 만남으로 더 풍성해진 예수님 일대기모더니즘 사상 유럽 지배하던 20세기 성경과 상상력 더해 예수 생애 그려내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 정수민 옮김 / 가톨릭출판사 성경을 기반으로 문학적인 상상력을 더해 예수의 삶을 담아낸 책이 번역 출간됐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톨릭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집필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모리아크는 모더니즘 사상이 유럽 전반을 뒤덮던 20세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이 책을 썼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거의 1세기 만에 공개되는 셈이다. “토리노의 수의에 예수의 얼굴이 재현된 덕분에, 우리는 갑자기 드러난 그 모습을 보고 놀라운 기적을 느끼게 되었다. 한 세기 동안 가차 없는 비난의 채찍을 받았어도 예수의 얼굴은 흠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쉴 새 없이 공격당했지만 이 꺼지지 않는 불은 인간의 숲에서 계속해서 조용히 타오른다. (중략) 나는 내가 만지는 것만, 보는 것만, 본질에 동화된 것만 믿는다. 바로 이것이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다.”(‘서문’ 중에서)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는 성경을 토대로 공생활 시작부터 부활 때까지 예수의 행적을 충실히 좇는다. 열두 제자를 비롯해 성모 마리아, 니코데모, 마리아 막달레나 등 주변 인물들의 내면도 작가의 시선이 더해져 더욱 생생하게 표현된다. 모리아크는 유혹과 죄악으로 방황하는 이들이 스스로 신의 존재와 구원의 빛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신이자 인간이었던 예수를 증명한다. “몇 주 후, 예수는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 빛 가운데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완전히 떠나 버린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미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모퉁이에 숨어 자신을 박해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울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 이후로 모든 인간의 운명에는 그 속에 숨어 그 사람을 지켜보고 그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리라.”(373쪽) 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는 20세기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주로 ‘신이 없는 인간의 비참함’을 주제로 한 작품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체주의를 비난하고 파시즘을 규탄하는 저항 운동에 참가했고, 사회 평론가, 언론인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195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1958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했다. 대표작으로 「사랑의 사막」, 「테레즈 데케루」, 「검은 천사」 등이 있다. 윤하정 기자 윤하정2023.07.26
![[신앙단상] 성령의 불이 내 머리 위에 내린다면(김하윤 가타리나, 한국가톨릭젊은이성령쇄신연합 회장)](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2/24/WaN1735023125632.jpg)
[신앙단상] 성령의 불이 내 머리 위에 내린다면(김하윤 가타리나, 한국가톨릭젊은이성령쇄신연합 회장)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데도 요한 세례자에게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다.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도록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한 세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받을 수 있다. 성령 세례라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4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성령쇄신 봉사자들에게 하신 강론에서 “사도행전의 구절처럼 교회의 모든 사람이 성령 세례의 은총을 나누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나는 2016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때 성령 세례를 받았다. 소성전 한쪽에서 수사님 세 분께 기도를 받았다. 한 분이 심령기도로 안수 기도를 해주셨고 다른 한 분이 해석하시고 또 다른 한 분이 예언 말씀을 적어주셨던 것 같다. 심령기도(신령한 언어)는 이성 기도와 다르게 오순절 성령강림 때 여러 가지 언어로 사도들이 말했듯이 영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다. 그 기도는 하느님과 자신만이 알 수 있고, 해석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해석해줄 수 있다. 은사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 자신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은총(능력),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은총(능력)이 있다. 수사님이 안수 기도를 해주시는데 머리가 자꾸 뒤로 넘어가 힘을 주고 버티느라, 그리고 못 알아들으니 집중이 안 되었는데, 기도를 받고 나올 때 쪽지에 예언 말씀을 적어주셨다. ‘I will comfort you. John 8,12’라고 쓴 쪽지였다. 성경을 찾아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구절인데, ‘I will comfort you’는 예수님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기도받을 때는 무덤덤했는데 나오다가 뜨거운 울음이 복받쳐 다른 소성전에 가서 아무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기도하는 사이에서 폭포같이 펑펑 울었다. 내가 왜 우는지도 몰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언니들에게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와 창피해 숨어서 울고 나왔다고 했더니 은총 받은 거라고 축하해줬다. 성령 하느님이 내 무의식의 상처를 치유해주셔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힘쓸 때 마음 안에서 같이 작동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울고 나니 당시에는 개운했고 마음이 가벼웠다. 세계청년대회에 함께 다녀온 성령봉사자의 소개로 서울대교구 산하 청년 성령쇄신봉사회 ‘루하’에서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성령기도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성령기도회에서 성령 안수를 받는데 그것이 준성사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성령 세례를 받고 나면 신부님의 강론 말씀, 그날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오늘날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깨닫도록 귀를 열어주셔서 미사 참여가 즐거워지고 맛 들이게 된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로 삶을 살면서 하느님 자녀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으면서 그 비워진 마음에 하느님이 주시는 참 평화가 채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더 많은 분이 성령기도회에 참여해 성령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태어나는 은총을 누리셨으면 좋겠다.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김하윤 가타리나(한국가톨릭젊은이성령쇄신연합 회장)cpbc2025.01.07

희망 찾아 길 떠나는 순례자[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84) 희망의 순례자인 교회 2025년 희년을 맞아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떠나며, 필자는 희년의 주제인 ‘희망의 순례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주제에는 교회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간직해야 할 두 단어가 담겨 있다. 먼저 ‘희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희년의 취지를 밝혔다. “다가오는 희년은, 우리가 너무도 간절히 바라는 쇄신과 새로 태어남을 미리 맛보게 하는 희망과 신뢰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희년의 표어를 ‘희망의 순례자들’로 선정한 이유입니다.” 교황은 2014년 시복식을 기해 한국 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한국 주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 주십시오.” 교황이 희망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이 시대가 어느 때보다 희망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아와 감염병·자연재해 등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경제와 정치의 위기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암울하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많은 젊은이가 절망에 빠져 있다.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인간 삶에 나타나는 폭력성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와 상처, 인간 삶의 연약함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공감을 촉구하였으며,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글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준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가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교회로서는 더없이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교회는 인류가 염원하는 것보다 더 큰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는 희망으로 구원받은 존재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4) 또한 교회는 언제나 희망을 찾았고, 자기가 찾은 희망을 증언하는 존재였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바로 그 희망을 오늘날 다시금 증언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희망을 찾지 않는 교회, 함께 꿈을 꾸지 못하는 교회, 희망을 증언할 수 없는 교회는 세상에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교회다. 다행히도 성령의 활동과 신앙인들의 노력으로 교회는 계속해서 희망의 증인이 되어 세상 곳곳에서 희망의 여명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순례’여야 한다. 희망은 찾는 사람, 궁리하고 모색하는 사람에게만 밝아오는 여명이다. 동방의 박사들이 잃었던 별을 찾아 다시 길을 재촉했을 때 별이 다시 떠오른 것처럼(마태 2,1-12 참조) 그리스도인은 희망을 찾아 길을 재촉하는 순례자들이다. 희망이라는 단어에는 인간 삶에서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어두운 그림자가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삶의 위기와 시련 그리고 인간 스스로는 찾을 수 없는 해결책⋯. 그러나 바로 거기서 희망은 빛을 발한다. 희망은 우리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우리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향하도록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련을 딛고 희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며, 교회 모든 구성원도 그들의 뒤를 따라 희망을 찾아 떠났던 순례자들이었다. 그렇기에 ‘희망의 순례자’는 바로 우리 각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희망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우리가 바로 세상에는 희망인 것이다. 2025년 희년을 희망차게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한민택 신부cpbc2025.01.21

새해를 맞으며[월간 꿈 CUM] 행복의 길 (8)해가 바뀔 때가 되면 여러 가지로 마음이 교차(交叉)되곤 한다. 아쉬움과 잘못에 대한 반성, 좋은 일에 대한 기쁨, 그리고 도움을 준 일과 도움을 받은 일에 대한 감사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용서와 화해를 구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도 있다. 이 모든 일이 이제는 과거 속으로 흘러갔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은 똑같은 하루다. 오늘 이 시간도 1년 365일 중 같은 하루의 시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감회에 젖는다. 그것은 시간이 구분되어 있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고전주의 극작가요, 시인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쉴러(Johan Christoph Friedrch von Schiller, 1759~1805)는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영겁(永劫)의 흐름 위에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분(分), 초(秒)라는 눈금을 새겨놓고 시간을 구분하면서 그 의미를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는 우리에게 개념상으로 존재하지만, 포착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는 그 순간에 곧장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 시편 90장 12절에서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라”라고 했다. 여기서 날수를 셀 줄 안다는 말은 나의 삶이 어디쯤 왔으며, 또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삶이 얼마쯤 남아있으며, 그리고 부모와 자식과 신앙인으로서 제 자리에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야 슬기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생일, 회갑, 결혼기념일, 졸업식, 시무식 등을 갖는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BC399)는 재판 과정에서 “철학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라는 아테네 법관들의 회유에 “음미(吟味)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찌개를 끓이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수시로 맛을 봐 가며 양념을 넣기도 하면서 간을 맞춘다. 우리의 삶도 요리하듯이 제대로 맛을 내고 있는지, 가끔 철학적인 사고로 음미해봐야 한다. 또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느님 말씀의 거울에 비춰가면서, 간도 맞춰봐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자라가 나이 많은 거북이에게 세배하러 갔다. 늙은 거북이는 절을 받으면서 “늘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살아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라가 “작은 것이라니요? 큰 것에 신경 쓰고 살아야 하지 않은가요?”하고 물었다. 거북이는 “아니야,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결과라네. 너도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열심히 기어가면, 껑충껑충 뛰는 토끼도 이길 수 있다네”라고 했다. 그렇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처럼, 힘이 있고 시간이 있고 의욕이 있을 때 작은 일에 충실하며 인생을 열심히 잘 살아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한 살씩 더 먹은 자로서, 올 한 해도 ‘날수를 세어가면서’ 복 받는 삶이 되도록 하자.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cpbc2025.01.20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약속하고 이행하신 하느님[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1) 탈출기 구약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은 유다인들이 지니는 하느님 신앙의 기초이다. 성경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 곧 죽음을 건너가게 하신 것은 한 민족을 창조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니콜라 푸생, ‘홍해 건너기’, 유화, 1634년께, 빅토리아국립미술관, 멜버른, 호주. “하느님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온 인류의 구원을 세심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시어, 언약을 맡기시려고 특별한 배려로 당신 백성을 뽑으셨다.”(「계시 헌장」 14) 모세의 인도로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은 이스라엘 자손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시킨 획기적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주님이 되시고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귀중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인격적 만남에서 비롯됐으며,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입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만남은 그 백성이 생명의 하느님과 함께 사는 약속의 땅을 향해 매진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박요한 영식, 「탈출기 1」 7쪽 참조) 구약 성경과 모세 오경의 둘째 책인 「탈출기」는 “이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름들이다”(주교회의가 간행한 「성경」에서는 “야곱과 함께 저마다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의 아들들 이름은 이러하다”)고 시작합니다. 책의 첫 문장 첫 단어를 제목으로 하는 고대 근동의 전통에 따라 히브리 성경에서는 책 이름을 ‘워엘레 셔모트’(이름들은 이러하다)라 부릅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이 이름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본」은 탈출기의 내용에 따라 우리말로 탈출을 뜻하는 ‘엑소도스’(Εζoδos)를 책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는 헬라어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엑소두스’(Exodus)라 표기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복음서 탈출기는 ‘구약 성경의 복음서’라고 일컬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하시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탈출기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1부(1─12장)는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노예살이 실태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파라오가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자 하느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파라오를 굴복시킵니다. 제2부(12─18장)는 이집트 탈출의 결정적 사건들이 전개됩니다. 제3부(19─24장)는 탈출기뿐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이 되는 주요한 사건을 다룹니다. 바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 조목입니다. 제4부(25─40장)는 계약의 궤와 성막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파스카 이집트인들에게 가장 공포의 밤이었던 열 번째 재앙을 치르는 날 밤, 히브리인들은 처음으로 ‘파스카’(해방절)를 지냅니다. 이날은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들을 모조리 죽이시면서 히브리인들을 ‘거르고 지나가셨음’(파스카)을 체험한 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해방된 민족, 하느님께 구원받은 백성으로 탄생한 이 사건은 길이 기념되고 경축 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실 땅에 들어가거든, 이 예식을 지켜라. 너희 자녀들이 너희에게 ‘이 예식은 무엇을 뜻합니까?’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여라. ‘그것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이다. 그분께서는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우리 집들을 구해주셨다.’”(탈출 12,25-27) 파스카 사건에 나타난 하느님의 이 위대한 구원 역사는 이스라엘이 지니는 하느님 신앙의 기초를 이룹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존재를 자기 역사 한가운데에서 활동하시는 현존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전능을 통해, 조상들과 맺은 당신의 언약을 변함없이 이루시는 하느님의 성실성을 통해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갈라진 갈대 바다를 건넘으로써 파스카를 또 한 번 체험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탈출 14,13-14) 이 내용은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셋째 독서(탈출 14,15─15,1)로 봉독 되며 파스카 축제에서도 중심이 되는 성경 본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 곧 죽음을 건너가게 하신 것은 한 민족을 새로 창조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탈출, 파스카 해방절을 기념해 새해가 시작하는 첫 달인 니산달(3~4월) 10일에 그해 출생한 파스카 어린 양을 선별해 14일에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전부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또 15일부터 한 주간 동안 누룩 없는 빵 축제인 ‘무교절’로 들어갑니다. 파스카의 어린 양의 피는 ‘속죄’의 의미를, 쓴 나물은 이집트 노예살이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일 지키시면서 성찬례 곧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파스카 어린 양으로 내어주심으로써 파스카 신부를 완성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이 모두 파스카를 기념하되, 유다인들은 미래를 지향하는 역사상의 파스카를,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결정적인 완성을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된 파스카를 기념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96)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6.28

신앙인의 눈길 끄는 반 고흐와 에곤 실레올겨울 인기 전시회서 만날 수 있는 종교 관련 작품들 반 고흐 작 ‘착한 사마리아인’, 1890년. 겨울방학을 맞아 볼만한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국내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컬렉션 가운데 특히 신앙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작품을 살펴본다. 반 고흐 ‘착한 사마리아인’ 루카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여러 화가가 화폭에 담았다. 그 가운데 손꼽히는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가 1849년에 완성한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흥미롭게도 이 그림은 네덜란드 출신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다시 그려 더 유명해졌다. 들라크루아는 강도를 당해 초주검이 된 이를 자신의 노새에 태우려는 사마리아인의 힘겨운 자세와 사실적인 근육, 붉은 옷 색깔 등을 통해 그 자비의 마음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림에는 두 사람 옆으로 지나간 사제와 레위인도 보인다. 1890년 5월에 제작된 반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인’은 원작의 좌우를 뒤바꾼 형태로, 특유의 물결치는 듯한 두툼한 붓질과 남프랑스에서 작업한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강렬한 태양 빛이 두드러진다. 반 고흐가 숨을 거두기 불과 두 달여 전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것으로, 그의 종교적 염원과 내면의 고통, 구원과 영혼의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작품을 비롯해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품 70여 점이 소개되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16일까지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로, ‘반 고흐’ 하면 바로 떠오르는 명화들은 없지만 뉘넨-파리-아를-생레미-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어지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에곤 실레 작 ‘어머니와 두 아이 Ⅱ’, 1915년. 에곤 실레 작 ‘골고타 언덕’ 에곤 실레 ‘골고타 언덕’과 ‘피에타’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1890~1918)가 ‘골고타 언덕’과 ‘피에타’를 모티브로 그린 작품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은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의 소장품 19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세기 전환기 유럽에서는 역사와 종교 등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인간’을 다각도로 조명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클림트를 중심으로 비엔나 분리파 화가들이 앞장섰다. 실레 역시 내면의 소용돌이를 독특한 화법으로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성경이나 기존의 성미술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표현한다. 먼저 그의 초기작인 ‘골고타 언덕’은 여러 요소를 활용해 자연을 종교적인 장소로 담아낸 그림이다. 십자가 옆으로는 바람에 나부끼는 앙상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색색의 띠로 묘사된 어두운 구름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지는 석양과 함께 언덕의 풍경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1915년에 제작한 ‘어머니와 두 아이 Ⅱ’는 ‘피에타’에 빗댄 작품이다. 그림 속 어머니는 얼굴과 맨발을 제외한 몸 전체를 초록색 천으로 가리고 있고, 꺼진 눈과 입은 해골을 연상케 한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누운 아이도 죽어있는 듯하다. 공중에 떠 있는 아이의 옷은 다채로운 패턴으로 희망을 드러내지만, 얼굴에서는 역시 절망감이 엿보인다. 내내 불편했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자리한 불안과 상실감을 ‘피에타’를 빌려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3월 3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에곤 실레를 중심으로 클림트부터 콜로만 모저, 오스카 코코슈카 등 오스트리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세기말 비엔나의 사회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윤하정 기자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31
![[전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16/qP51744803635189.jpg)
[전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ㄴ)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ㄴ) †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친애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신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1. 부활의 신비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셨던 무덤을 방문합니다. 하지만 무덤을 막아놓았던 돌은 이미 치워져 있었고 무덤 안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믿고 따랐던 분을 잃은 사건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고통 속에 잠겨 있던 이들에게 ‘빈 무덤’ 사건은 또 다른 충격과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빈 무덤을 바라보며 놀라워할 뿐, 아직 주님의 부활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라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 20,9 참조).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가려져 있던 제자들의 눈과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어 부활의 신비를 깨닫게 하시고, 불신으로 꿈틀거리던 마음에 확고한 믿음을 주시어 옛 삶에서 벗어나 부활을 증거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요한 20장, 루카 24장 참조). 2.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았던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건네시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던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빛과 희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죽음 속에 머무르지 않고 ‘부활’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초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 곁에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며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3.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한 관심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자국 중심의 첨예한 자본주의 계산법을 바탕으로 전쟁 무기, 첨단 기술과 경제력을 앞세운 강대국들은 전쟁과 환경파괴로 인하여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음에도, 또한, 환경파괴로 인하여 후손들의 삶의 터전이며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가 크게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당장 눈앞에 놓인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삶의 터전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연대해 나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고자 하는 이들 곁에 머무르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4.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기도와 실천 우리나라와 온 국민은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큰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 사회는 정치적 이념과 진영 갈등으로 극심한 분열, 불목, 다툼, 폭력을 마주해야 했고, 나라 안팎으로도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큰 시련과 난관에 봉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와 국민이 정치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민주주의가 보다 무르익기 위한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2.3 계엄령 이후 격동의 시간을 보내며 우리 국민은 양극으로 갈라져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되어 극심한 불목과 분열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긴 숙고 끝에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였고, 우리나라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을 잘 선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 국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권력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것입니다. 조기 대선을 치르며 다시 일어서야 하는 우리 사회의 건실한 미래를 위하여 교구민들께서 열성을 다해 기도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5. 부활의 기쁨을 살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와 함께 우리는 정기 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년을 지내며 자비롭고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게 됩니다. 사순 시기를 마치고 부활의 기쁨에 머무르는 신앙인은 주님께 희망을 둔 ‘희망의 순례자’로서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앞서 열리게 될 ‘수원 교구대회’를 준비하며 청년들이 실천하는 영성운동에도 온 교구민이 동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인류의 빛이며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서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희망의 순례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함께 하도록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의 전구(轉求)를 청하도록 합시다.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5년 4월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이상도 선임2025.04.14
![[제12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비로소](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3/04/dn41741071742676.jpg)
[제12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비로소최태영(안테로, 부산교구 당감본당) 비로소 (부사) 1.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건이나 사태가 이루어지거나 변화하기 시작함을 나타내는 말. 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고 있었음을 당시에는 알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야 그렇구나 깨닫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계심을, 늘 저와 함께하심을 믿으니까요. 학창시절 저는 학교폭력을 심하게 당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송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저는 이사한 후 무리가 모여 한 친구를 괴롭히는 걸 참지 못하고 그러면 안 된다며 맞섰습니다. 심지어 치고받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저만 혼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열심히 해명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저만 체벌받고 반성문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무기력해졌고, 이른바 일진 무리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의 강도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다고 맞았고, 무언가를 하면 나댄다며 맞았습니다. 일진들은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 복도를 걷다가 퍽 소리가 나도록 뒤통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어른들의 무관심이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은 그저 친한 친구들 사이의 장난으로 치부하며 저의 상황을 외면했습니다. 심지어 몇몇 선생님은 ‘네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다.’ ‘네가 문제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라며 되레 저를 문제아로 몰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 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버지도 제게 선생님들과 같은 말씀을 했었습니다. 어른들의 이런 말에 저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습니다. 저는 세상 어디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빛 한 점 없이 어둠만 가득한 곳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조차 안 보이는 현실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누차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목의 상처를 어머니께 들켰을 때는 간지러워서 박박 긁다가 잘못해 할퀸 자국이라고 거짓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저는 더더욱 낙담했습니다. 차라리 죽으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그마저도 뜻대로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하느님께 제발 저를 죽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마음의 문을 굳게 잠갔습니다. 도와달라는 기도도, 차라리 저를 거두어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지 않는 하느님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직접적 학교폭력은 없었지만, 왕따가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오히려 혼자라서 편했고, 혼자이고 싶었습니다. 나름 좋았던 성적은 고등학생 때 곤두박질쳤습니다. 공부보다는 글, 특히 소설에 심취했습니다. 틈이 나면 공책에 글을 끄적거렸습니다. 무수한 망상을 표현하는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공책에 글을 적을 때나 소설을 읽을 때에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소설의 세계는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도피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할머니께서 주말마다 같이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자고 계속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게 할머니는 부모님보다 가깝고 편한 존재였습니다. 시시콜콜한 얘기, 시답잖은 얘기도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항상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저에게 늘 ‘안테로가 제일 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라는 할머니의 응원은 저와 세상을 이어주는 한줄기의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성당 가자는 말씀은 정말 귀찮았습니다. 저에게 미사는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노래들로 가득한 성전에서의 미사는 당시의 저에게 진짜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노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미사 시간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이 분심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말이죠. 그래서인지 미사드리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재미없는 미사를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혹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혹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제대를 보며 진심을 다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강론 시간에는 폰을 장궤틀 밑에 몰래 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일요일 아침 8시면 전화를 하셨습니다. 때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빠지기도 하고, 간다고 대답해놓고 다른 데를 가기도 했으며, 영성체 때 도착해서 처음부터 미사드린 것처럼 꾸미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다 아시면서도 꾸중 없이 늘 따뜻한 어조로 성당을 가자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실까, 제발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성당이 뭐가 좋다고....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이런 얘기를 드리면 꼭 대화의 끝은 ‘그런 안 좋은 마음들을, 혹은 좋은 마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러 가자’였습니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겐 혼자 있으면서 누구에게도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군 입대 이후, 할머니께서는 훈련소 때는 물론 광명시에 있는 부대의 성당에까지 많은 간식비를 계속 보내주셨고, 항상 성경 말씀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성당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정성이 감사했지만,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아까울 만큼 저는 성당을 가기가 싫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군대에서 종교생활을 한 유일한 이유가 부대 안에서는 먹지 못했던 간식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군 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호의나 도움도 싫었습니다. 언젠간 저 사람도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군대에서 겪은 일들, 겪은 사람들 또한 저를 괴롭혔기 때문에 혼자만의 삶이 좋다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군 생활 중에 일어났습니다. 전역을 두어 달 앞 둔 시점에 저는 박격포 실사격 훈련을 나갔습니다. 인수인계 차원에서 후임과 역할을 바꿔, 제가 부사수로 훈련에 임했습니다. 설치한 포를 해체할 때였습니다. 통제간부의 마지막 철수명령이 떨어진 후 박격포를 해체할 때 당연히 발사된 줄 알았던 포탄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제 발 바로 앞에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연습용 고무탄이 아닌, 실제 포탄이었던 지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몸도 얼어붙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주변 동료들이 저를 끌어내다시피 해서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포탄은 불발탄이라서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진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소리를 끝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위로나 어떤 말로도 저는 평온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살았지?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겪은 거지? 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한 달 내내 이런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후회와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지? 왜 나는 이렇지? 바뀌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나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22년을 혼자 살아온 저에게 답을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날은 의무적으로 안부 차 연락한 게 아니라, 그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할머니께 제가 겪은 일을 말씀드리고 한 달 동안 쌓였던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31살이 된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그날의 일을 모르십니다. 할머니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산 게 후회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에도 그저 묵묵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할머니’라는 저의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할머니께서는 딱 한마디 말씀하셨습니다. “안테로야, 하느님께서 지켜주셨구나. 몸 건강히 돌아오너라.” 이 말을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셨다는 말. 지금까지 제 물음과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고, 내가 너무나도 못나서 버린 분이신데..... 하느님은 없다고 생각하던 저였는데..... 할머니의 이 말씀 한마디에 흔들리고 혼란스럽던 저의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몇 주 후 제대를 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가 인사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저를 꼭 안고 이번 주일에 같이 미사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홀린 듯이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성당을 가면서 할머니께서는 꼭 잡은 제 손을 미사가 끝날 때까지 놓지 않으셨습니다. 미사 후 수녀님께 본당에서 새로 활동할 청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본당 청년회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들어가보니 청년회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람이 두려웠으며, 어쩔 줄 몰라 혼자서 하는 버릇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도 나를 해코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여전히 맴돌았습니다. 청년회 활동 중 전례 봉사도 하게 되고, 사람과 부딪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시 본당 청년회장과 부회장으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 본당 청소하는데 같이 하지 않을래? 청년회 멤버십 트레이닝에 같이 가지 않을래? 성지순례 겸 피정 가는데 같이 하지 않을래? 별도 일정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주일미사 때도 ‘당연히 올 거지?’ 라며 계속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든 생각은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였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본당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피정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휴대폰을 반납하고 지내는 그 생활에 매력을 느꼈고, 그 후로 청년을 위한 피정 프로그램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피정들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나눔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아픔을 나누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나의 약점이나 치부를 드러내기 싫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과거 이야기를 하면 내가 그때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런 아픔을 겪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게 선택 주말, 청년성서모임 등을 하던 어느 날 본당에서 사순 피정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피정에서 저는 ‘기도’에 대해, ‘하느님과의 대화, 관계’에 대해 조금 맛을 봤습니다. ‘기도란, 대화란 청원하는 것이,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하느님께 이거 해달라, 이렇게 해달라, 왜 안 해주느냐고 어리광만 부린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청년회 지도신부님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하느님께 무언가 이루어달라고 조르는 기도가 아니라 그저 제가 겪었던 일을 말하기도 하고, 성경을 읽으며 그 순간 끌리는 구절을 계속 읊조렸습니다. 이게 완전한 기도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하느님과의 첫 대화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기도는 바뀌었습니다. ‘눈앞에 원하는 것을 이뤄달라’가 아니라 ‘바뀌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혼자 살아가는 삶 대신 다 같이 함께 어울리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저를 왜 광야에 버려두었습니까, 왜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원망하는 대화가 아닌, ‘하느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진심으로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대화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묵주와 성경만 가질 수 있었던 사순 피정에서의 이 말씀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복음 16장 33절 이후 나의 ‘아픔’에 집중하지 않고, 아픔을 ‘나눔’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사실을, 또 아픔을 나누면 진심을 다해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글 쓰는 것으로 인해 아픔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글쓰기는 저에게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도피처였습니다. 부산교구가 청소년·청년 문예 공모전을 실시한다는 것을 주보에서 보고,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총 7편의 시를 쓰면서 고민하고, 쓴 시를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글을 쓰면 다시 예전처럼 현실을 피하는 게 버릇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무색하게 너무나 재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쓰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순간이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글 쓰는 즐거움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스럽게 나간 성당, 당연스럽게 활동한 청년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다 생각한 것은 어느 것 하나 당연하게 이루어진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 성당을 나간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저를 끊임없이 이끌고 계셨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외면했고, 버림받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제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끝없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있었고,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이 곁에 있음에도, 그 모든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몇 번 넘어지는지 세지 않습니다. 몇 걸음을 걸었는지 헤아립니다’라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역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 삶은 다이내믹하게는 아니더라도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함과 무서움으로 점철된 제 삶이 조금씩 안정되고 경외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 머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읍 - 최태영 안테로 뜨거운 뙤약볕에 그늘을 만들고자 성읍을 쌓아올려 맘 편히 쉬고 싶어 하늘을 가리고자 높이높이 쌓다 보니 울창한 정글 숲에 맹수를 막고자 성읍을 쌓아올려 맘 편히 쉬고 싶어 누구도 못 부수게 튼튼하게 쌓다 보니 무수한 사람들의 비난을 듣기 싫어 성읍을 쌓아올려 맘 편히 걸어 잠가 함부로 넘지 못하게 가시 돋게 쌓다 보니 당신께서 오시어 쌓아올린 그 성읍 당신의 손길로 손수 무너뜨리어 멈춰선 저를 당신 말씀으로 이끄시네 이 모든 것을 깨달았음에도 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고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하느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계심을, 늘 저와 함께하심을 비로소 깨달았으니까요. 최태영 (안테로, 부산교구 당감본당) cpbc2025.03.04

하느님의 약속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0) 창세기 창세기는 천지 창조부터 성조들의 역사가 끝나기까지 인간의 구원을 갈망하시는 하느님과 인간이 펼치는 드라마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1508~1512, 프레스코, 시스티나 소성당, 바티칸. 지금까지 가톨릭 성경에 드러난 구세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가톨릭 신ㆍ구약 성경 각 권의 주요 내용과 구조, 문학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책이나 문서의 시작 말 첫 단어를 그 책과 문서의 이름으로 하는 방식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된 관습입니다. 창세기의 첫 낱말인 “한처음에”는 히브리어로 ‘브레쉬트’입니다. 「70인 역본」에는 이를 헬라어로 ‘게네시스’(Γενεσιs)라 번역했습니다. 창세기는 세상(우주)과 인류의 생성에 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어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는 ‘Liber Genesis’(생성의 책)라 했고, 한국 교회는 ‘창세기’(創世記)라 옮겼습니다. 창세기 구조 창세기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1─11장)는 원역사(元歷史)로 세상과 인간 창조, 죄의 시작과 인류의 타락, 홍수, 민족들의 분열, 하느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심을 다룹니다. 후반부(12─50장)는 성조사(聖祖史)로 아브라함(12─25장), 이사악과 야곱(25─36장), 요셉(37─50장)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축복 약속(후손과 땅을 주겠다, 항상 함께 계시겠다)과 구원의 역사를 다룹니다. 이처럼 창세기는 천지 창조부터 성조들의 역사가 끝나기까지 인간의 구원을 갈망하시는 하느님과 인간이 펼치는 드라마를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아울러 창세기는 하느님의 약속과 구원을 위한 서막입니다. 창세기는 모세오경을 거쳐 여호수아기에 이르러 약속의 땅에 정착할 때까지 진행되는 대장정의 출발점이며, 신약 성경까지 연장되는 구원 역사의 시작입니다.(박요한 영식, 성서와함께 총서 구약 6 「창세기 1」, 15쪽 참조) 하느님 창세기에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고유 명사)인 ‘야훼’와 일반 명칭(보통 명사)인 ‘엘로힘’이 등장합니다. 창세 1,1─2,4a의 창조 이야기에는 시종일관 ‘엘로힘’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창세 2,4b─3,24의 낙원 이야기에는 ‘야훼 엘로힘’을 표기합니다. 또 창세기 4장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는 ‘야훼’가 등장하고, 창세기 5장 족보에는 1절에서 ‘엘로힘’으로 시작한 다음 29절에선 ‘야훼’로 바뀝니다. 야훼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직접 알려주신 당신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흠숭할 이름을 감히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어서 히브리어 모음만으로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야훼는 우리말로 “나는 있는 나다”(Ego sum qui sum, 탈출 3,13-15)라는 뜻입니다. 창세기는 야훼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시며 활동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어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느님이라고 밝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심으로써,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러할, 변함없고 영원한 당신의 성실함도 동시에 알려 주신다. 당신의 이름을 “나다”라고 알려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그들 곁에 늘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알려 주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7) 인간 창세기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외한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직접 ‘빚으시고’, 당신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습니다.(창세 2,5-7 참조) 하느님의 숨은 ‘생명의 숨’입니다. 이 생명의 숨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근본으로 구별 짓습니다. 하느님의 숨을 받아들여 생명을 얻은 인간은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다른 모든 피조물과 조화롭게 살고 책임을 지는 신분이 됩니다. 원죄 창세기 2─3장은 원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원래 독립된 이야기로 작성됐으나, 나중에 모세 오경 전체를 편집할 때 창세기의 이 부분에 들어오게 됐다고 성경학자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동산에 데려다 놓으시고 모든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만은 절대로 따 먹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리십니다. 그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경고까지 하십니다. 이는 창조주께 속해 있는 인간은 창조 질서와 자유의 사용을 규제하는 윤리적 규범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자유 의지’로 그 열매를 따 먹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느님께 불순종해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죄와 죽음이 비롯됩니다. 창세기에서 원죄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첫 죄를 가리키며, 이 죄로 인해 인간은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지은 죄는 ‘개인의 죄’이지만, 그 죄가 타락한 상태로 전달될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류는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와 연관돼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로마 5,19) “이 죄는 인간 번식을 통해, 곧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인간 본성의 전달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이 때문에 원죄를 유비적으로 ‘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원죄는 ‘범한’ 죄가 아니라 ‘짊어진 죄’이며 ‘행위’가 아니라 ‘상태’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04)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6.21

황제 숭배와 밀교·미신 성행에 맞서 복음 선포한 교회[저는 믿나이다] (19) 초대 교회 성장의 장애물들 사도 시대 교회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성행하던 황제 숭배, 밀교 의식, 가정 내 미신 등 각종 우상 숭배의 유혹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삶으로 증거했다. 사진은 페르가몬 트라야누스 신전 유적. 구글 캡처 예루살렘에서 태동한 그리스도교는 1세기 말 팔레스티나 지역은 물론 시리아·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 일부, 갈리아(프랑스) 남부, 에스파냐 일부까지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에서는 교회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이토록 짧은 시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로마 제국이 통일돼 있었고, 둘째,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으며, 셋째, 로마 제국 전역에 깔린 도로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사회 문화 환경보다 종교 환경이 그리스도교 선교와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합니다. 당시 종교 환경은 황제 숭배·밀교 의식·가정 미신 성행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이러한 배경은 사실 복음 선포에 가장 큰 장애였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장애들을 삶으로 잘 극복하면서 교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룬 로마의 황제들은 제국 내 수많은 민족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수단으로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황제를 세상 구원자로 여겨 그에게 제사를 지냈고, 주화에 황제의 초상을 새겼습니다. 요한 묵시록을 저술할 시기에 로마 제국을 통치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는 자신을 ‘주님이요 신(domonus et deus)’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로마인들에게 자신을 ‘신들의 아버지’(도미티아누스)로 숭배하게 하고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의 유피테르 신상을 자신의 흉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신의 어머니’로 선포했습니다. 그녀의 주화는 왕홀을 손에 들고 왕관을 쓴 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데메테르 여신의 모습에 ‘신성한 카이사르의 어머니’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신으로 받들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구원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황제 숭배에 맞선 초대 교회의 흔적을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요한 묵시록은 황제 숭배가 성행하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상황을 보여줍니다.(묵시 1―3장) 당시 페르가몬은 로마의 여신과 황제에게 신전을 봉헌한 첫 번째 도시였습니다. 에페소 역시 페르가몬에 이어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는 거대한 신전을 지었습니다. 사목 서간은 스스로 신이라 하는 세속 황제에 맞서 하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위엄을 드러내는 신앙 고백을 관용어처럼 표현합니다. 일례로 티토에게 보낸 서간 2장 13절을 들 수 있습니다.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에서 그리스도 대신 황제를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 제국에선 밀교 의식이 성행했습니다. 밀교의 사제들은 마법을 행하거나 환각에 취해 무절제한 광란의 제의를 거행했습니다. 당시 미트라스를 최고 신으로 숭배하던 밀교에선 생산력을 늘린다며 황소를 죽여 피를 나눠 마셨습니다. 또 일부 밀교에서는 무아경에 빠지기 위해 자기 몸에 피가 흥건해질 때까지 채찍질하고 칼로 자해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밀교와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교회의 성찬 예식은 밀교의 제례 의식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경건했습니다. 전례 인식의 차원이 달랐습니다. 기도할 때 손을 들거나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거나 하는 것은 단지 동방에서의 공통된 종교적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각 가정과 가문에선 각종 미신이 행해졌습니다. 집안 곳곳에 나무나 돌로 만든 형상을 모셔다 놓고 기름을 바르고 향을 피우고 절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서는 공공 축제에 참여하거나 이교도의 집을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우상 숭배와 관련된 직업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교회는 황제 숭배를 공공연히 해야 하는 정치인·교사·신상을 만들거나 신전 벽화를 그리는 조각가나 화가는 물론 사람을 죽이는 군인과 검투사 등을 교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 직업을 포기해야만 세례를 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돼 당시 로마 시민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조국이 없는 무리’ ‘인간 혐오자’라 비난하며 반사회적 사람으로 여겨 이교인과 유다인 다음의 가장 하층민으로 취급했습니다. 반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혐오와 우상 숭배에 물들 모든 위험 속에서도 더더욱 세상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이교도들, 이방인들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 가정,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를 일구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땅끝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교회가 사도들과 그 제자들에게서 이어받은 가르침과 신앙을 교회는 충실히 간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온 세상 곳곳에 퍼져 있지만 같은 한집안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온 교회는 마치 한 영혼과 한마음만을 지니고 있듯 이것을 믿고, 또한 흡사 하나의 입만을 가진 듯 일치된 목소리로 그것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전수합니다.”(성 이레네오 「이단 논박」 1,10,1-2) 리길재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5.03.18
![[신년사]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겠습니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2/24/Qgk1735023719804.jpg)
[신년사]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겠습니다”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시몬 신부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을사(乙巳)년이며 푸른 뱀의 해입니다. 성경 안에서 뱀은 여러 번 등장하지만 특히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중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고 염려하시며 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우리는 뱀과 비둘기라는 자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루가 다르게 많은 변화와 도전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순수함의 상징인 비둘기 같은 영을 지니면서도 때와 상황에 따라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자기를 변화시켜 나가는 현명한 생활을 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2025년에도 균형 잡힌 삶을 잘 살아내라는 주님의 사랑 깊은 인생 조언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론적으로는 알아들을 것 같은 이 말씀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렵기만 합니다. 2021년부터 3년여 간 교회 지도자들은 한데 모여 지혜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토론하며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이것은 시노드적 방법입니다. 시노드는 오늘날 개인주의 강화와 다원주의라는 시대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고립된 개인의 폐쇄적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적 관심과 친교로 초대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다양성’의 토대 위에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고, ‘관계’와 ‘유대’라는 키워드를 중요시합니다.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이런 시노드적 교회 생활 방식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단절된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는 단절되고 고립된 개인과 단체, 그리고 사회를 연결해내는 다리입니다. 특히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해야 한다는 구원자 예수님의 의지를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도구라고 자부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힘들고 어려운 곳은 어디인지, 빛이 필요한 어두운 곳은 어디이며 소금이 있어야 하는 썩고 음습한 곳은 어디인지 찾아내고 알리며 도움을 주고 협력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 중심의 태도와 편 가르고 분노를 일으키는 집단 무의식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하고 냉소적이며 서로를 증오하는 어둠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썩어가고 더러워질수록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본래 주신 ‘보시니 좋더라’는 세상을 그리워하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복음과 영성이 필요하고 기도의 힘과 사랑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요구됩니다.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이럴 때 더욱 가치 를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노래와 시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와 에밀리 엘리자베스 디킨슨의 ‘내가 만일’이란 시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사랑의 행동, 도움의 손길, 그리고 힘든 이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어딘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매주 전달되는 신문의 글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날아가는 라디오 안에서, 그리고 TV 영상과 모바일 cpbc+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는 사랑·복음·생명의 가치를 외치고, 주님이 주신 구원 사명을 세상 끝날까지 전할 것입니다. 2025년 한 해도 주님이 주시는 은총과 평화 안에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cpbc2024.12.24

예수님이 직접 뽑으시고 파견한 사도들 위에 세워진 교회[저는 믿나이다] (22) 사도는 누구인가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부르시고 선택하신 제자로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자들이다. 열두 사도 이콘. 그리스도교 초기 사도 시대 복음 선포 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습니다. 교부 시대로 넘어가기 전 ‘사도’라는 말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 열두 사도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 가운데 열둘을 세워 사도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마르 3,13-19; 마태 10,1-4; 루카 6,12-16) 그런데 사도행전과 신약 성경 서간들에서는 이 열두 사도에 속하지 않는 바오로나 바르나바에게도 사도라 부릅니다.(사도 14,14) 어떻게 이들도 사도로 불렸을까요? 사도(使徒)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s)’의 한자어로, 우리말로는 ‘파견된 자’ ‘파견된 제자’라 옮길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분이시죠.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열두 사도를 통해 계속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그러므로 사도들의 파견은 예수님 파견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마태 10,4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복음서를 살펴보면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파견하시는 내용(마르 6,7-13; 마태 10,5-15; 루카 9,1-6)을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직접 불러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직접 사도들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과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 선택하신 제자로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훗날에는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사도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끝날까지 증언할 사명을 받고 파견된 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받은 당신의 사명에 열두 제자를 참여시키십니다.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요한 5,19.30) 당신을 파견하신 성부에게서 모든 것을 받으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사람들도 그들에게 직무를 맡기시고 그것을 수행할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자신들이 ‘새 계약의 일꾼’(2코린 3,6), ‘하느님의 일꾼’(2코린 6,4), ‘그리스도의 사절’(2코린 5,20),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1코린 4,1)의 자격을 하느님께 받았음을 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59항)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해야 할 복음은 교회를 위해 모든 시대에 모든 삶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들은 후계자들인 주교들을 세우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성령과 사도들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 의해서 사도들과 교회에 파견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광 중에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세워지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 충만함에서 성령을 사도들과 교회에 부어주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46항) 성령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양육하고 치유하는 성사를 통하여, 사도들이 받은 가장 뛰어난 은총을 통하여, 선을 행하게 하는 덕행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특별한 은사를 통하여 교회를 생동적으로 이끄십니다. 이에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새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세례의 은총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선물을 베풉니다. 이 안수로 성령 강림의 은총이 교회 안에 영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와 사도들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을 거룩하게 전승하여 성령의 이끄심대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퉁이의 머릿돌을 기초로 사도들을 통해 지어졌고, 그 기초 때문에 견고한 결속력을 지니게 되어 ‘하느님의 집’ 곧 ‘하느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성령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교회는 사도들의 설교와 복음 선포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 거룩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들 위에 세워졌으므로 사도적이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뽑으시고 선교에 파견하신 증인들인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 교회는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고귀한 유산, 사도들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보존하고 전한다. -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도들의 사목직을 이어받아 그들을 계승한 사람들, 곧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회의 최고 목자와 하나 되어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이 명령을 수행하는 주교단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거룩하게 되며 지도를 받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57항)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4.08

헤로데 왕의 친로마 정책과 폭정[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7) 헤로데 주세페 아르침볼도, ‘헤로데’, 유화, 1580년경, 개인 소장. 구글 캡쳐 기원전 63년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합니다. 동방 원정에 나섰던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은 유다 하스모네아 왕조의 아리스토불로스 2세 임금을 왕좌에서 끌어내고 그의 형인 히르카노스 2세를 영주로 임명합니다. 동생에게 왕좌를 빼앗겼던 히르카노스 2세가 권력을 되찾는 데에는 심복 헤로데 안티파테르의 지략이 컸습니다. 안티파테르는 유다교로 개종한 이두매아인이었습니다. 그는 히르카노스 2세를 조종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60년 동방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와 함께 삼두정치를 폅니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는 기원전 55년 크라수스가 죽은 후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서로 전쟁을 벌입니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했지요. 이때 안티파테르는 히르카노스 2세에게 폼페이우스를 배신하고 카이사르 편에 서게 합니다. 승패가 기운 것을 직감한 안티파테르는 유다 군대를 보내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을 도와 기원전 47년 클레오파트라 7세를 왕좌에 올리는 데 힘을 보탭니다. 안티파테르는 그 공로로 ‘유다 총독’이 됩니다. 로마의 1인 통치자가 된 카이사르가 기원전 44년 암살당하자 그 빈틈을 이용해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아들 안티고노스가 무장봉기를 일으킵니다. 기원전 43년 안티파테르가 독살당하자 아들 헤로데가 발 빠르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차지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명분으로 권력을 차지한 그는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손녀인 마리암네와 약혼해 하스모네아 왕가와 인척이 됩니다. 그런 후 로마로 달려가 필리피 전쟁에서 승리해 동방 지배권을 차지한 안토니우스의 지지를 얻어냅니다. 안토니우스는 헤로데의 형 파사엘과 헤로데에게 유다와 갈릴래아 영주로, 히르카노스 2세를 예루살렘의 대사제로 임명합니다. 기원전 40년 로마 제국과 경계를 이루던 파르티아 왕국이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점령합니다. 이 틈을 타 안티고노스는 예루살렘을 되찾지요. 헤로데는 잽싸게 피신했으나 파사엘과 히르카노스 2세는 체포됩니다. 유다 임금이 된 안티고노스는 큰 아버지인 히르카노스 2세의 귀를 자른 다음 파르티아 왕국에 포로로 넘깁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제직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파사엘은 감옥에서 자살합니다. 마사다로 피신했던 헤로데는 다시 로마로 건너가 안토니우스에게 안티고노스를 고발하고, 자신의 약혼녀 동생인 아리스토불로스 3세가 유다를 다스릴 권리가 있다고 호소합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원로원을 설득해 기원전 40년 헤로데를 ‘유다와 사마리아의 임금’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로마가 벌이는 파르티아인들과의 전쟁에 유다 왕국이 참전하라고 헤로데에게 명합니다. 기원전 39년 팔레스티나로 돌아온 헤로데는 로마군과 연합해 반로마 독립주의자들을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37년 헤로데는 로마 제11군단과 6000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석 달간 포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고 대살육을 벌였습니다. 이때 안티고노스도 참수됐습니다. 이 일로 유다 왕국은 로마의 보호령이 됐고, 유다인들은 헤로데를 ‘로마인의 노예 이두매아인’이라고 능멸했습니다. 헤로데는 유다 왕국을 정략적으로 통치했습니다. 헤로데는 로마인들에게 ‘아우구스투스의 종’이라 불릴 정도로 입안의 혀처럼 굴었지요. 로마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과도한 세금 징수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또 사마리아를 ‘세바스테’로 재건하고 지중해변에 ‘카이사리아’ 항구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안에 안토니오 요새를 지어 로마군을 주둔시켰지요. 유다인에겐 당근과 채찍을 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크게 개축합니다. 또 해마다 유다교의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헤로데는 대사제직 만큼은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경우 유다인들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명망이 부족하고 영향력이 없는 사제 가문에서 대사제를 골라 임명했습니다. 율법에 충실한 유다인들은 헤로데를 능멸했으나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 유다인들은 헤로데를 ‘대왕’이라 부르며 지지했습니다. 헤로데는 무자비한 통치자였습니다. 그의 잔혹함은 혈통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는 늘 마카베오, 곧 하스모네아 집안을 경계하고 미워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마리암네와 그녀가 낳은 자기 자식들, 그리고 처남인 아리스토불로스 3세를 살해했습니다. 수백 명의 바리사이를 교수형에 처했고, 300여 명의 사관을 사마리아에서 반역을 꾸몄다는 이유로 처형했습니다. 헤로데는 언제 어디서 암살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죽이려 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11개 전략 요충지에 요새를 지어 도피처로 사용했습니다. 잔혹한 헤로데의 이런 모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로데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돼지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헤로데는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33년간 유다인의 왕으로 팔레스티나를 다스렸습니다. 그의 말년은 비참했습니다. 고름과 구더기가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병에 걸려 고생하다 기원전 4년에 죽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5.31

아브라함 (6)[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10) 성경을 읽으며 말씀이 지닌 매력을 느낄 때는, 결국 그 말씀의 힘을 체험할 때이다. 이 말씀의 힘은 하느님 자체에서부터 흘러나오며,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의 뜻을 실현시키신다. 이는 창세기 처음부터 굳건하게 선포되고 있는 진리이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고 명하시자, 그 즉시 빛이 생겨난다. 이렇게 힘있게 그 뜻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을 이루기에, 성경 안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하느님 말씀의 실현을 시적인 표현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주고 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 5,10-11 참조)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체험했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선포했던 내용의 골자는 하느님의 말씀은 한마디의 소실됨 없이 모두 실현을 이룬다는 점이었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1사무 3,19) 그러나 거침이 없을 것 같은 하느님의 말씀과 그 뜻의 실현은 때때로 난관에 직면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느님 말씀은 바로 인간이라는 어려움을 만난다. 이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아브라함 이야기의 진면목이기도 한다. 하느님의 뜻은 굳건했지만, 그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인간은 한없이 부족했다. 이는 아브라함이 사라이를 향해 누이라고 부르며 그녀를 이집트인들에게 내어주는 모습 안에서 잘 드러난다.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당신 덕택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시오.”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집트인들이 보니 과연 그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파라오의 대신들이 사라이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그 여자를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파라오의 궁전으로 불려 갔다.(창세 12,13-15) 아브라함이 사라이를 이집트인들에게 내어주었던 행동은 아브라함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던 하느님의 뜻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하느님 뜻의 실현은 그 누구도 아닌 아브라함 자신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달리 말해, 하느님에게 선택되어 그분 약속의 전달자였던 그 당사자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데에 첫 장애물이 된 셈이다. (Jan Provost - Abraham, Sarah, and the Angel) 하느님 약속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던 이는 바로 아브라함 자신이었다. 얼마나 역설적인 신앙의 장면인가. 주님을 따르고 그 뜻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던 자 스스로 그 실현의 가장 첫 번째 장애물이 된 셈이다. 우리는 사실 이러한 모습을 우리 자신의 신앙 안에서 수없이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본당의 사목을 정성스레 이끌어온다고 했지만, 정작 그 사목을 망가뜨린 중심 인물은 바로 내가 아니었던가? 진실한 우정을 위하여 정의와 사랑을 운운했지만, 그 형제적 관계를 망쳐 놓았던 사람은 너가 아니라 내가 아니었던가? 중요한 점은 거침이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거친 삶을 만나고 거친 나를 만나, 잠시 숨을 고르며 우리의 결함을 마주해 주신다는 점이다. 혹시, 나 자신의 부족함에 괴로워하고 있는가?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쳐 놓은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고 있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어쩌면 지금 그 순간은 하느님께서 잠시 몸을 굽혀 나를 마주하고 계시는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던가.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예루살렘 프란치스칸 성서대학에서 성서 고고학 디플롬(diploma superiore)을 이수했다. 춘천교구 묵호, 퇴계 본당 주임을 지냈으며, 현재 교구장 비서 및 교구 성경 사목 담당 소임을 맞고 있다. cpbc2024.04.22
![[신간] 신학의 주제로서의 무신론](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9/24/pgj1727165852413.jpg)
[신간] 신학의 주제로서의 무신론무신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신앙 신학의 주제로서의 무신론 / 배영호 신부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무신론(無神論)’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앙을 거부하는 이론이다. 특히 인격적 의미의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세계는 그 자신에 의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인에게 ‘무신론’은 꺼려지는 단어지만, 종교 없이도 윤리와 덕은 성하고, 세분되고 전문화된 학문이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생각 역시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학의 주제로서의 무신론」은 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오랜 세월 갖가지 부침을 겪으면서도 의연하게 자리를 지켜온 그리스도교 안에서 이미 무신론은 신학 내부의 주제이자 과제로 다루어져 왔다. 이 책은 주요 학자들의 안내를 참조하면서 근대 말의 종교비판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유과정을 요점에 따라 정리하고, 주요 철학과 신학 사상을 세부적으로 정리하고 살펴봄으로써 무신론 현상을 분석하고 정의한다. 저자는 무신론이 오히려 신앙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며,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전망을 살펴보며 제기되는 의문을 통해 우리 신앙을 더욱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의 존재 혹은 부재에 관한 물음에서도 파스칼에게 관건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신앙의 결단은 합리적 증명이나 반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심층에서, 마음에서, 충동과 감정, 애착과 혐오가 함께 얽혀 작용하고 열정이 이성에게 영향을 주고 심지어는 이성을 봉쇄할 수도 있는 그런 가운데서 내려진다. (중략)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유의 확실성으로부터 신(神)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신(神)으로부터 자기 확실성에 이르는 길이었다.”(28쪽) “인간은 하느님을 통해 소망을 투영한다. 하느님 상은 저마다 인간 상황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인간이 그리는 하느님 위에는 항상 인간의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 있다. (중략)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을 인간의 척도에 따라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하느님이지 인간이 아니다.”(219쪽) 저자 배영호(수원교구) 신부는 인스브루크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고,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9.25
![[박성호 신부의 철학 일기] ‘나’를 넘어 ‘너’에게로](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6/04/1jn1717486026463.jpg)
[박성호 신부의 철학 일기] ‘나’를 넘어 ‘너’에게로박성호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프란치스칸 연구소장) 해마다 1월이면 각 교구와 수도회 별로 사제·부제 서품식이 열립니다. 저도 전국 이곳저곳을 누비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구 신학생들과 제가 속한 수도회인 작은형제회 형제의 서품식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10년 남짓의 쉽지 않은 양성을 마치고 찬란한 젊음을 발산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몸짓으로 타인을 위한 삶을 공적으로 다짐하는 이들을 보면서 이 세상, 그래도 아직은 참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묻고 싶어집니다. 이들이 다짐하는 이타적인 삶이 과연 가능한가? 정치인들의 “이 한 몸 나라를 위해 바치겠습니다!”라는 외침의 진정성을 믿느냐 하는, 하나 마나 한 질문을 드리려는 것은 아니고요. 정말 남을 위해 살기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도 결국은 자신의 선익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나에게 매력적인 이를 사랑하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는 이(나에게 아무런 이득을 줄 수 없는 이)를 과연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사상가들은 대체로 선행의 동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함이고, 남을 향한 사랑도 그 뿌리는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남을 돕는 선행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덕을 갖추게 되고, 행복은 곧 덕스러움이기에 남을 위한 선행이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입니다. 악행은 우리 영혼에 해롭고요. 하지만 이러한 고대의 사고방식은 성경을 만나 서서히 수정,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말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를 위한 온전한 사랑을 ‘향유’라고 정의하면서, 대상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예 : 나)를 위한 사랑인 ‘이용’과 구분했습니다. 성인께서 현대인들에게 ‘향유’ 개념을 직접 가르치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나는, 너를 위해 너를 ‘향유’하는 것이지, 나를 위해 너를 ‘이용’하지 않는다.” 중세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인 요한 둔스 스코투스는 이 ‘향유’로서의 사랑 개념을 발전시켜 진정한 사랑에는 그 대상 자체가 목적인 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연의 사랑이고 또 하나는 자유의 사랑입니다. 그 누군가 나의 본성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에 그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자연의 사랑이고, 나의 욕구와 무관하게 그를 목적으로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자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짐승들과는 달리 자유의 사랑을 하는 존재인데, 우리는 사랑한다면 매력적인 대상이라도 본성적으로 끌려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를 선택하기에 사랑하는 것이고, 매력이 없는 대상이라도 사랑하기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매력적이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죄에 물들어 있음에도 사랑하신 것이라고. “영희야, 난 네가 그냥 너라서 사랑해.” 이런 철수의 이유 없는 사랑이 진짜죠. 맞죠. 성직에 자신의 삶을 거는 이들의 첫 출발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진정한 ‘향유’의 사랑을 향한 자기 극복의 도약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직의 은총에도 그들의 구체적인 삶이 전적으로 이타적이기는 쉽지 않겠지요. 이기적인 욕구가 주는 유혹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서품식에서, 또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들이 쏟는 눈물과 그들을 바라보며 뜨거워진 우리의 가슴은 그 영원한 의미를 잃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는 우리의 ‘나’를 향한 죄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신 영원한 ‘너’를 향한 지향에 의해 드높여지기 때문입니다.cpbc2025.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