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2. 주님 핵폭탄이 필요합니다.](//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6345_1.1_titleImage_1.jpg)
[사목일기]2. 주님 핵폭탄이 필요합니다.현요안 신부(제주교구 중문본당 주임, 가톨릭 문화기획 IMD 설립) 2008년 6월부터 1년 간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가 선포됐다. 2007년 KYD(한국청년대회)를 치르면서 문화영성의 힘을 느꼈던 터라 '바오로의 해'를 맞아 바오로 사도 영성을 현대에 맞게 풀어내 더 많은 이들과 문화사목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된 작품이 뮤지컬 '이마고 데이'(Imago Dei, 하느님의 모상)였다. 2006년 8월 미국 동북부 한인 성령대회 때 초청강사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행사를 마치고 브로드웨이를 찾아 뮤지컬 라이온 킹과 시카고, 맘마미아를 보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이같은 초대형 가족 뮤지컬을 만들리라 다짐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이마고 데이 오디션을 진행해 배우들을 뽑았는데 천주교 4명, 개신교 4명, 비신자 4명으로 이뤄졌다. 이들과 2008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제주 이시돌 피정센터에 마련한 합숙 훈련장에서 동고동락했다. 노래와 춤, 연기, 공동체 생활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TV와 신문, 술과 세속의 달콤함을 모두 끊고 오로지 연습에만 매달렸다. 이시돌 목장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 풀벌레와 전쟁, 한여름 더위, 밤하늘 별들은 이제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2008년 10월 17일 제주 연동성당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과 부산, 광주 등을 오가며 126회 공연 2만7000명 관람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일년간 여정을 마쳤다. 그 사이 비신자 배우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고 개신교 신자 1명이 개종을 했다. 특히 주인공 바오로 사도 역을 맡았던 장재승씨는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뒤 견진성사와 혼인성사까지 받아 그야말로 겹경사가 났다. 문화사목의 첫 수혜자는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작품을 관람한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에게로 퍼져나갔다. 뮤지컬을 보면서 받은 감동은 사목자들과 신자들 신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특히 신자들은 뮤지컬을 보고난 뒤 바오로 서간과 사도행전 등 성경을 찾아 읽으며 성경과 친숙해지는 시간이 됐다고도 했다.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며 문화사목이야말로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현대사목의 중요한 흐름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마고 데이를 통해 교회 작품은 식상하고 재미없는 학예회 수준이 아니라 일반 무대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는 인식전환의 계기가 마련됐다. 주님, 인식전환의 핵폭탄이 된 이마고 데이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현요안 신부 (제주교구 중문본당 주임, 가톨릭문화기획 IMD 설립)박수정2010.08.10
[새 책] '바닥의 향기'황종렬 지음/ 두물머리미디어/ 7000원 인간이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 발밑에 있는 가장 낮은 바닥은 하느님이 지은 지구다. 바닥의 바닥, 또 그 바닥은 결국 하느님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통해 '땅은 친구이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책이 나왔다. '땅친구 기도의 영성과 실천'이라는 부제가 붙은 「바닥의 향기」는 성경 시편 저자들이 "주님은 바위"(시편 18,19, 28장 등 참조)라고 노래한 것처럼 주님이 우리 삶에서 우리를 서게 하고 살게 하는 존재임을 고백하도록 이끈다. 환경보전이나 생태영성에서 실천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이마가 땅에 닿는 깊숙한 절을 통해 우리 몸을 땅이신 하느님께 내어 맡기게 한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편안한 호흡과 함께하는 절을 통해 앉고 또 몸을 대고 바닥에 머물면서 우리의 원바닥이신 하느님이 우리를 서고 앉으며, 눕고, 걷고, 춤추게 하심을 기억하게 한다. 빈 바닥에 자신을 내려 놓음으로써 우리에게 바닥이 돼준 모든 존재, 함께 사는 모든 존재에 나를 낮춰 바닥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 예수님 생존 당시 통용됐던 아람어로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h)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adam)이란 단어가 나왔음을 알려주는 등 이론적 배경도 충실히 담았다. 생태신학자인 지은이 황종렬(레오) 박사는 책 머리에서 "땅친구 기도는 하느님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인간의 깊은 응답인 절의 복음화, 절의 가톨릭적 수행화의 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0.10.26
하루 한 장 성경읽기(17~23일)▨에제키엘서(17~23일) ▲7장(17일) : 파멸에 파멸이 겹쳐 오고 소문에 소문이 뒤따르는데 예언자에게 환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사제에게서는 가르침이, 원로들에게서는 ( )이 사라져 버리리라. ▲8장(18일) : 내가 바라보니, ( )처럼 보이는 형상이 있었다.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 아래는 불이고, 허리 위는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처럼 보였다. ▲9장(19일) :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 )에 표를 해 놓아라." ▲10장(20일) : 커룹마다 얼굴이 넷인데, 첫째는 ( )의 얼굴이고, 둘째는 ( )의 얼굴, 셋째는 사자의 얼굴,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11장(21일) : 그들의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 )을 넣어 주어, 그들이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그대로 지키게 하겠다. ▲12장(22일) :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 ( )은 어떤 것이든 더 이상 지체하지 않는다. 내가 ( )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3장(23일) : 너희는 거짓 환시를 보고 속임수 ( )를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도 주님의 말이라고 하는데, 나는 말한 적이 없다.이힘2009.05.12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23)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10)](//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3179_1.0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23)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10)이단 단죄하고 교회일치 개혁 굳건히▨배경 보름스 협약(1122)으로 성직자 서임권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되고 교회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듯했습니다. 나아가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1123)는 성직자 쇄신을 비롯해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다양한 조치들을 발표함으로써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교회 개혁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외부 위협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교회 내부에 잠재돼 있던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개혁 노선을 달리 하는 추기경단 내부의 알력이 교황 선출 문제로 표출된 것입니다. 교황 호노리오 2세가 선종한 직후인 1130년 2월 14일이었습니다. 신진 개혁 세력으로서 교회의 사목적 쇄신을 강조해온 프랑스계 추기경들이 그레고리오 파파레스키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그가 인노첸시오 2세(재위 1130~1143) 교황입니다. 그러자 몇 시간 후 교황 선출에 따른 법적 하자가 있다고 반발한 다수의 다른 추기경들이 유다계로서 로마의 유력 귀족가문 출신인 피에트로 피레르레오니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그가 대립 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재위 1130~1138)입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 교황 지지자들은 사목적 쇄신보다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더 중시한 이른바 정통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다수의 추기경들과 유력 가문의 지지를 얻고 있는 아나클레투스 2세 교황이 우세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지지했던 프란지파니라는 로마 유력 가문이 변절하는 바람에 인노첸시오 2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인노첸시오 2세의 지지세력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프랑스 왕과 주교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영성가이자 교회학자인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가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스페인 주교들과 영국 왕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마그데부르크의 성 노르베르토(1080~1134) 대주교의 지지를 받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로타르 3세의 지지를 얻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마침내 인노첸시오 2세는 로타르 3세와 함께 1133년 로마로 입성해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로타르 3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을 집전합니다. 하지만 바티칸에서 버티고 있던 아나클레투스 2세를 몰아내지는 못합니다. 황제가 철군하자 다시 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인노첸시오 2세는 이번에는 피사에서 지내다가 1137년 여름에 황제 군대와 함께 로마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바티칸에서 요지부동이던 아나클레투스 2세는 1138년 초에 선종하고 맙니다. 지지자들은 후임 교황으로 빅토리오 4세를 선출합니다. 그러나 빅토리오 4세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간곡한 권유 등으로 대립 교황직을 내놓고 인노첸시오 2세에게 순명을 서약합니다. 이리하여 대립 교황으로 10년 가까이 계속된 교회 분열이 자연스럽게 정리됐습니다. 인노첸시오 2세 교황은 대립 교황으로 인한 분열의 잔재를 청산하면서 일치와 개혁을 도모하고 아울러 교회 안에 새롭게 대두하고 있던 이단 문제를 처리하고자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이것이 10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입니다. ▨공의회 개최와 결과 공의회는 1139년 4월 4일(8일이라는 주장도 있음) 개막해 4월말까지 계속됐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과 영국 등 서방 거의 모든 나라에서 대주교, 주교, 대수도원장 등 500~1000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인노첸시오 2세는 개막 연설에서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가 제정한 모든 법령을 무효화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을 파직했습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가 서품한 주교들에게는 주교직을 박탈했습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 편에 서서 끝까지 반기를 든 시칠리아 왕국 로제르 왕에 대해서는 파문 조치를 내렸습니다. 공의회는 또한 당시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표적인 두 이단 페트로브루스파와 헨리코 파를 단죄하면서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30개 조항으로 된 법규를 제정했습니다. 대립교황 및 이단들에 관한 조항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1123년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 결정 사항들 및 그 이후에 열린 교회회의들의 결정 사항을 반복하고 재확인하는 내용들입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성직자ㆍ수도자 생활과 관련, 차부제 이상의 성직자는 결혼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런 결혼은 불법이자 무효라고 규정합니다(6조). 성대서원한 수도자들의 결혼 역시 불법이자 무효입니다(7~8조). 성직자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물의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검소하고 단정한 차림을 해야 하며(4조), 성직록의 상속은 금지됩니다(16조). 성직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독성죄로 자동 파문의 벌을 받습니다(15조). 수도자들과 주교좌 참사들은 민법과 의학을 배우는 것이 금지됩니다(9조). 견진성사와 병자성사, 장례미사는 돈을 받고 집전하는 것이 금지됩니다(24조).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사회 교리 혹은 사회 윤리에 해당하는 규정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리대금이나 혈족간 혼인이 금지되고(13, 17조),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마상 무술경기가 금지됩니다. 어기면 교회 묘지에 묻힐 수 없습니다(14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1095년에 공포하고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도 확인한 '신의 휴전' 규정이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에 확대 적용됩니다(12조). 상인을 비롯해서 시골 농부ㆍ순례자ㆍ성직자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특별히 금지됩니다(11조). 방화도 엄격히 금지되며 방화범은 1년 동안 십자군에 참여하거나 산티아고 혹은 성지 순례를 통해 참회해야 사면받을 수 있습니다(18~20조). 거짓 참회 또한 엄중 경고를 받습니다. 그런 이들은 바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2조). ▨이단 단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득세하던 두 이단을 단죄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브레시아 출신의 아르놀드(1100~1155)가 있었습니다. 브레시아의 수도원 원장인 그는 급진적 교회 개혁을 주장한 나머지 이단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절대적 가난을 요구하면서 교회 또한 현세 권력과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공의회에서 단죄받고 이탈리아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피에르 드 브뤼스가 이단 주장을 내세우다 파문을 당했습니다. 순회 설교가 사제인 그는 성직자의 태만과 속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도권과 성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복음서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성경을 배척했으며 스스로 믿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유아 세례를 배격했지요. 그뿐 아니라 미사와 실체변화도 부인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또 십자가는 수난의 상징이기에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단 추종자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페트로브루스파라고 불렀습니다.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피에르와 페트로브루스파 이단을 파문하면서 성체성사와 유아 세례, 사제직, 혼인을 배격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23조). 말하자면 공권력을 통해 이단을 단속토록 한 셈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11.07.12
![[교황주일 특집] 교황 베네딕토 16세](//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804_1.0_titleImage_1.jpg)
[교황주일 특집] 교황 베네딕토 16세새 복음화 씨앗 뿌린 평화의 사도 교황주일은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인 교황을 기억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또 교황을 위한 특별헌금을 걷어 교황 사목활동을 돕는다. 한국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은 교황주일로 지내고 있다. 교황주일을 맞아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걸어온 길을 짚어봤다. 올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6주년이자 사제수품 60주년(29일)이 되는 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4월 19일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새 교황 탄생을 기다린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보수주의자,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교황은 교황청이 보수화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평화의 사도로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4월 19일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후 그에게는 보수주의자ㆍ원칙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교황이 되기 전 20년 넘게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자리를 지켜왔던 그는 한결같은 태도로 가톨릭교회 정통 가르침을 수호해왔기 때문이다. 여성사제 임명ㆍ사제 독신주의 철폐와 같이 교회 전통을 흔드는 움직임이나 낙태ㆍ동성애ㆍ인간복제ㆍ이혼 등 교회 윤리에 반하는 주장엔 늘 단호했다.중동사회 평화화 화합의 중재자 일각에서는 교황을 보수 강경주의자로 몰아가며 교황청의 보수화를 우려했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우려에 그쳤다. 베네딕토 16세는 여전히 원칙을 강조하는 가톨릭 신학자로 평가받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평화의 사도로서 교황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다름을 이해하며 다가갔고, 기존 가르침을 지키면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했다. 교황은 이달 초 방문했던 크로아티아까지 모두 16번의 해외 사목방문을 통해 가정과 생명, 화해와 용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전통과 문화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새 복음화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가톨릭에 뿌리를 둔 유럽사회가 신앙으로 재무장할 것을 강조했다. 교황은 또 정치ㆍ종교적 분쟁으로 얼룩진 중동사회에 평화와 화합의 중재자로 적극 나섰다. 교황은 2009년 요르단ㆍ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을 사목방문하고 2010년에는 로마에서 중동 주교시노드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중동 현실을 직접 대면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다.유다교 이슬람교 지도자와 대화 종교ㆍ종파간 화합에도 두 팔을 활짝 벌린 교황은 유다교ㆍ이슬람교 지도자들과 대화했고 동방 가톨릭 및 정교회 수장들과도 잇달아 만나 그리스도교 형제적 친교를 나눴다. 또 2009년에는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성공회 신자들과 성직자들을 받아들였다. 교황은 교황령 「성공회 신자 단체」를 발표하면서 성공회의 영적ㆍ전례적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로마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한 교회법적 틀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교황은 외교관계가 단절된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007년 중국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고 중국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5월 24일)을 제정하는 등 중국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또 2008년 교황청 산하에 중국교회 문제를 연구하는 중국교회특별위원회를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사제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 사죄 가톨릭교회 모범인 성인들의 삶을 본받으며 살 것을 강조한 교황은 2008년 바오로 성인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해 바오로의 해를 선포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불린 바오로 성인의 회심과 믿음, 선교 정신을 따를 것을 주문했다. 이듬해에는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 선종 150주년을 맞아 사제의 해를 선포, 사제들에게 쇄신과 성화를 당부했다. 한편 교황은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잇달아 터져나온 사제 성추행 사건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교황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며 가톨릭교회 잘못에 대해 대중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교황 베네딕토 16세 약력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 출생 ▲1951년 사제수품 ▲1957년 신학박사 학위 취득 ▲1959~1969년 본ㆍ뮌스터ㆍ튀빙겐대 교수 재직 ▲1977년 뮌헨ㆍ프라이징대교구장 및 추기경 임명 ▲1981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임명 ▲2005년 교황 선출 ▨교황 베네딕토 16세 문헌과 저서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년 교황 즉위 9개월 만에 발표한 첫 회칙으로, 하느님 구원 역사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본질과 이를 근거로 한 교회의 자선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사랑의 본질이 점점 왜곡, 변질돼가는 세태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사목의지를 드러냈다.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 2007년 두 번째 회칙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전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았습니다'(로마 8,24)는 말씀을 확신하며 신앙이 곧 희망이고 이 희망은 기도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려줬다. ▲「진리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년 교황의 3번째 회칙이자 첫 사회회칙이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빚어지는 문제에 대해 교회가 제시했던 사회교리를 재확인했다. 경제적ㆍ사회적 발전은 진리를 필요로 하며, 이 진리는 사랑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권고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 2007년 2005년 바티칸에서 열린 제11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정기총회 후속 문헌이다. 신앙의 신비이자 사랑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다루며 성체성사에서 비롯되는 영적 예배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 2011년 2008년 바티칸에서 열린 제12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정기총회 결과를 다룬 후속 문헌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성경과 친숙해질 것을 당부하면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영성은 교회 안에서 선포된 하느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저서 ▲「나자렛 예수」, 2006년 예수의 탄생과 수난, 부활은 물론 예수가 남긴 가르침을 신학ㆍ역사적으로 재해석했다. 예수의 실체를 둘러싼 다양한 주장에 응하는 교황의 답변으로, '교황의 반(反) 다빈치 코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32개 언어로 번역된 밀리언셀러다. 박수정2011.06.21
![[성경 속 상징] 52-바람- 신약에서 하느님 성령과 연관](//cpbc.co.kr/CMS/newspaper/2009/06/rc/30029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52-바람- 신약에서 하느님 성령과 연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바람은 기압 변화로 일어나는 공기 움직임이다. 바람을 가장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생물은 조류다. 새는 날개를 치며 날기도 하지만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바람의 힘으로 장시간 공중을 날 수 있다. 바람은 구름을 부르고 비를 가져오므로 사람들, 특히 농경민이나 범선으로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친 바람은 사람에게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처럼 바람은 인간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므로 옛부터 사람들은 바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종종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가운데는 하늘 신은 바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한다고 생각하는 부족이 있다. 바람을 죽은 사람 영혼 활동과 결부시키는 사회도 있다. 도시에서는 바람의 직접적 영향은 적지만 농촌ㆍ산촌ㆍ어촌 사람에게는 생명에도 관계되는 큰 영향을 준다. 특히 해안지대에서는 바람 방향과 세기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바람의 이름도 생활과 깊은 연관을 맺고 지어진 것이 많다. 사람들은 바람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보지 않고, 신의 왕래로 여기며, 특히 피해를 주는 바람을 두려워한다. 옛날 자연상태를 벗어나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은 자연현상이 생기는 본래 원인을 몰랐으므로 바람의 술렁거림과 폭풍의 포효를 인격화해서 생각했다. 그래서 바람을 대지가 쉬는 숨, 우주 활동으로 여겼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언가 보다 높은 힘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구약성경에서 심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하느님 현존과 관계가 있다. "커룹 위에 올라 날아가시고 바람 날개 타고 떠가셨네"(시편 18,11). 에제키엘이 경험한 하느님 오심은 북에서 불어오는 폭풍에 의해 예고된다.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에제 1,4). 욥이 고난을 당하는 중에 하느님 음성을 들을 때도 바람은 하느님 현존과 함께 나타난다.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욥 38,1). 또한 폭풍은 하늘의 벌과 위협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라, 주님의 폭풍이, 그 노여움이 터져 나온다. 회오리치는 폭풍이 사악한 자들의 머리 위로 휘몰아친다"(예레 23,19). 신약성경에서 바람은 하느님 성령과 연관된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 바람에 비유해 언급하신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7-8). 이처럼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바람과 연결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든 창조설화를 상기시킨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오순절 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성령 강림을 체험했을 때도 바람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이에 바람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령의 싱징이 됐다. 임영선2009.06.30
하루 한 장 성경읽기 에제키엘서 해설이제 세 번째 '대예언서'인 「에제키엘서」를 읽으실 차례가 됐습니다. 기원전 597년께 유다가 바빌로니아 제국에 일차적으로 항복할 당시에 유배를 간 무리 가운데 하나였던 '에제키엘'은 그곳에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아 활약하면서, '하느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는 뜻을 지닌 자신의 이름대로 실의에 빠진 유배민들에게 힘과 희망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1)「에제키엘서」의 구조 「에제키엘서」는 아래와 같이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1,1~33,20: 심판 - 야훼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안 계시다. 1-1) 1~3장: 부르심과 사명 1-2) 4,1~33,20: 예루살렘의 함락을 예시하는 상징 설교, 이민족을 향한 심판. *)33,21: 전환점 - 예루살렘의 함락. 2)33,22~48,35: 구원과 회복 - 야훼 하느님께서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다. 2-1)33,23~39,29: 이스라엘의 부활 예고. 2-2)40~48장: 이스라엘의 재건 실현. 「에제키엘서」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신탁 유형들이 나옵니다. 하나는 심판의 신탁으로서 예루살렘의 함락 이전에 발설됐으며, 또 하나는 구원의 신탁으로서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에 발설됐습니다. (2)「에제키엘서」의 가르침 유배를 겪은 다른 예언서들과 마찬가지로 바빌론 유배라는 민족적 재앙의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한 「에제키엘서」는 이러한 민족적 재앙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기된 몇 가지 신학적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1)하느님은 무능하신가?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면, 어떻게 당신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수치스러운 유배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실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은 거대한 현실 앞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해야만 하는 신앙인의 고뇌를 드러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에제키엘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변합니다. 바빌론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것은 고대 근동의 정치 질서 변화에서 불가피하게 파생된 우연한 결과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징벌로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징벌 기간이 다 채워지면, 하느님께서는 잠깐 떠나 계셨던 예루살렘 성전으로 되돌아가실 것이며, 하느님 영광은 새로 마련되고 성별된 성전에 충만할 것입니다. 2)누가 참 이스라엘인가?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유배를 갔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유배 기간이 지난 다음에 유배를 갔던 이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던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유다인들은 유배 기간을 전후로 세 개의 파벌로 나눠져 서로 자기가 참 이스라엘이라며 경쟁을 했습니다. 즉, 유배 갔다가 팔레스티나로 귀환한 이들, 유배 가지 않고 팔레스티나에 그대로 남아 있던 이들, 그리고 유배 가서 귀환하지 않고 유배지에 그냥 눌러 앉은 이들이 그들입니다. 에제키엘은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바빌론 유배를 갔다가 돌아올 이들의 손을 들어줍니다(예레 29,4~20 참조). 장차 이스라엘을 재건할 참 이스라엘은 바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에제 11,14~21 참조). 「에제키엘서」 마지막 구절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신학 사상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새로 세워질 예루살렘의 이름은 "야훼 삼마"(에제 48,35)라고 예언자는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이 이름의 뜻은 '야훼, 여기 계시다'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새로운 성전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현존의 성전입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늘 잘못을 반복해 저질러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는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에제키엘서」를 읽으면서 우리 주변의 온갖 어려움에도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숨결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장 비서)이힘2009.05.05
![[출판]P. 로싸노 등 44명 집필「새로운 성경신학사전2」출간](//cpbc.co.kr/CMS/newspaper/2009/04/rc/290199_1.0_titleImage_1.jpg)
[출판]P. 로싸노 등 44명 집필「새로운 성경신학사전2」출간성경 궁금증 속 시원히 해결 「새로운 성경신학사전」 두 번째권이 2년 만에 나왔다. 피에트로 로싸노(1923~1991, 이탈리아 알바교구) 전 라테라노대학 총장신부 등 저명한 성경학자 44명이 10여 년간 166개 항목에 걸쳐 집필한 저술로, 원래 1988년 이탈리아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1권으로 출간한 것을 임승필(1950~2003, 제주교구) 전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신부 등 21명이 우리말로 옮기면서 3권으로 나눴다. 성경신학사전은 한마디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근본이 되는 성경 본문의 뜻과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분석적이고도 종합적 해석을 제공한다. 특히 단순히 용어 해설적 성격에 그치는 일반 사전과 달리 성경 73권의 메시지를 역사적이고 문학적 맥락 안에서 폭넓게 조명하고 있다. 풍부하면서도 다양한 내용은 성경을 신학적이면서도 일반적인 개념을 통해 방법론적으로 풀어내면서 본문 주석은 물론 역사학적, 유다교적으로 다양하게 접근, 사전을 접하는 이들에게 실제적, 이론적으로 도움을 준다. 두 번째권은 하느님 백성과 부르심 받은 이의 정체성, 일상 삶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1권은 ㄱ(가난)에서 ㅂ(빛/어둠)까지 57개 항목을 담았다면, 제2권은 ㅅ(사도/제자)에서 ㅇ전반부(예루살렘/시온)까지 49개 항목을 수록했다. 오는 2011년께 출간될 제3권은 ㅇ후반부(예수 그리스도)에서 ㅎ(히브리서)까지 60개 항목을 담을 예정이다. 제2권은 언뜻 보면 성경과 무관하게 느껴지는 신화와 심리학, 문화, 문학, 예술, 음악, 시간 등이 사실은 얼마나 성경과 긴밀히 연관돼 있는지, 또 이 세상에 성경과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 시야를 넓게 열어준다. 아울러 성경에 나타난 지역과 동ㆍ식물, 인간 행위에서 비롯되는 사건과 상징 언어에 대한 용어 해설 및 기원, 당시 생활 및 관습, 사상 변천사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 분석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성경의 전체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덕분에 성경 본문에 대한 이해는 물론 평소 성경에 대해 갖고 있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성경신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 참고문헌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되며, 사목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는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을 제시하는 한편 다양한 신앙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준다.(바오로딸/6만 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4.07

"가난한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함에 행복"행려인들 돌보는 하태욱 원장20년 가까이 행려인들과 동고동락한 '우리집 공동체' 하태욱(왼쪽 두 번째) 원장이 행려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저 건너 조그만 호숫가에 개구리 노총각이 살았는데, 사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가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 나도 몰라, 얼굴이 못 생겼나 돈이 없나 어디가 어때서 왜 그런지 나도 몰라" (동요 '개구리 노총각' 중에서).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조그만 산동네 낡은 복지시설. 이곳에 노총각 사회복지사가 살고 있다. 노랫말의 개구리는 마흔이지만 노총각은 쉰이 넘었다. 물론 돈도 없다. 텔레비전에 나올만한 꽃미남도 아니다. "경식아, 너 무슨 걱정 있냐? 왜 그러고 있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행려인 복지시설 '우리집 공동체' 하태욱(미카엘, 51) 원장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석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긴 행려인들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서 깽판 부리면 쫓아내야 하고…." 노인요양원 운전봉사로 시작해 1992년 행려인 쉼터 설립지금까지 800여 명 병들고 외로운 행려인 정성껏 보살펴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 농촌에 보금자리 마련 꿈꿔 하 원장은 행려인들과 형, 동생하는 사이다. 운전일을 하던 그는 25살 때 노인요양시설 두엄자리 요양원에 차량 봉사를 해줄 운전사가 없다는 말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봉사의 길로 들어섰다. 요양원에서 자신의 꿈은 뒷전으로 미룬 채 봉사하는 이들을 보며 가난을 선택해서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1991년 세례도 받았다. 1992년 그는 함께 봉사하던 지인 몇 명과 행려인 쉼터 우리집 공동체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쪽방촌의 슈바이처' 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이 보낸 결핵 환자를 비롯해 오갈 데 없는 800여 명 행려인들이 머물다 갔다. 알코올 중독자와 중증 장애인 등 병든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이어간 사람들이다. 가족에게도 외면당한 삶이다. 어머니가 지적장애인이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이곳에 맡겨진 아이가 숨을 거둔 일은 하씨에게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밤새 앓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을 감았어요. 그날 밤 아이를 둘러업고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 하씨는 자폐증세가 있어 틈만 나면 뛰쳐 나가려는 아이의 발을 묶어놓기도 하고 대소변 기저귀도 갈아줬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익숙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앗, 이건 진우 똥냄샌가!…(웃음). 진우가 머리 깎을 때 이발기에서 나는 '윙'하는 소리에 늘 심취하던 모습이 생각나요. 부모가 여기에 아이를 맡겨뒀는데 몇 년이 흘러도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욕심 없이 행려인들과 함께 밥 숟가락을 뜨고 함께 잠자리에 누운 그였지만 그에게도 '어둔 밤'은 찾아왔다. "가난하게 살고 싶다"는 철학이 흔들렸다. '계속 이렇게 살면 결혼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그는 종종 공허한 마음이 들어 명례방 협동조합, 천주교 도시빈민회 등에 문을 두드렸고, 빈민사목 봉사자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천주교 도시빈민회장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였고, 다시 하느님과의 연결 끈을 잡았다. 신앙은 깊어지고 삶의 현실적 고민과 갈등이 사라졌다. "우리 아저씨(행려인)들과 부대끼기도 하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요. 가난한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하 원장은 2001년 후원자들이 대준 학비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원에도 진학해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그는 "오랫동안 행려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공부할 기회까지 얻어 감사할 뿐"이라며 "힘들다고 이곳을 뛰쳐 나갔다면 하느님 섭리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집 공동체 역사가 20년 가까이 되어가면서 후원자 수도 꾸준히 늘었다. 한 달에 봉사자 30~40명이 이곳을 찾아 행려인들 목욕을 시켜주고, 김장을 담그는 등 다양한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하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행려인들 마음을 사랑으로 다시 싸맨 그를 지켜준 좌우명이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그는 "근로 능력이 없는 행려인들이 농촌에서 흙도 만져보고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골에 집을 얻어 살고 싶다"면서 활짝 웃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퇴사자22011.04.05
[하루 한 장 성경읽기]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해설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니호세아서ㆍ요엘서ㆍ아모스서이번 주부터 '12소(小)예언서'를 읽을 차례입니다. 분량은 적지만, 분량으로는 감히 규정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신앙의 대(大)증언들을 담고 있는 이 예언서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먼저 읽을 예언서는 「호세아서」「요엘서」와 「아모스서」가 되겠습니다.(1)「호세아서」 기원전 8세기 초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 호세아의 이름을 따라 제목이 정해진 「호세아서」는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 함락 이후 남유다로 피신한 호세아의 제자들에 의해 수집되고 편집돼 완성됐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ㆍ사회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경신례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호세아는 그의 사생활인 결혼생활을 통해서도 하느님 말씀을 전한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남편과 삼남매를 버리고 정부들을 따라간 아내 '고메르'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찾아가 용서해주고 받아준 호세아는 당신을 배신했음에도 다시금 용서해주시고 받아주시는 '사랑과 자비' 의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결국 이 책의 중심 주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손상된 관계와 그 관계의 복원인데, 다음 말씀이 이를 잘 요약해줍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21-22). 그리고 호세아 예언자는 자신의 온 삶으로 이를 선포하고 증언했습니다. (2)「요엘서」 12소예언서 가운데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엘서」는 바빌론 유배 이후인 기원전 400년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언자 요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문학기법은 매우 특이합니다. 먼저 독자들에게 무서운 메뚜기 재앙을 상상하게 만든 다음, 메뚜기 떼의 공격을 주님이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 보내신 군대의 공격으로 바꿉니다. 이런 문학기법을 통해 요엘은 궁극적인 구원이 실현되는 '주님의 날'이 임박했으니 하느님 백성은 하루 빨리 회개해 하느님께 되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특히 3장에서 예언자는 당신의 영을 내려주신다는 하느님 약속을 전해주고 있는데,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러한 약속이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통해 실현됐다고 선포했습니다(사도 2장). 따라서 주님의 영인 성령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3,5)는 요엘 예언자의 말씀을 일상의 생활 안에서 실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3)「아모스서」 세 번째 소예언서인 「아모스서」는 호세아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8세기께 남유다 베들레헴 근처 토코아 출신 양치기이면서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예언자로 소명을 받아 활동했던 아모스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종교비판에 주력했던 호세아와는 달리 아모스는 주로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난한 이들을 억누르고 착취하던 이스라엘 상류층을 신랄하게 또는 풍자적으로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에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적들 손에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북이스라엘의 적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기원전 8세기 후반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결국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 제국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모스에 의하면, 올바른 회개란 성소를 찾아 겉치레뿐인 예물을 바치는 데 있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해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2-24).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장 비서)이힘2009.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