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100) 마음에 안 드는 자비송](//cpbc.co.kr/CMS/newspaper/2011/04/rc/374895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100) 마음에 안 드는 자비송Q. 마음에 안 드는 자비송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아들이 미사참례를 하고 오면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짓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미사 중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기도문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 그렇게 애처롭게 마치 구걸하는 사람처럼 기도해야 하느냐고 하는데 저는 습관적으로 기도해서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냥 따라 하면 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들 말처럼 기도문이 너무 저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벗으로 삼으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 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요? A.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사 중 그 기도문은 주님을 맞을 때 마치 백성이 왕을 맞이하듯 하는 데서 기원한 기도문입니다. 그 기도문에 대한 심리적 풀이를 해 드리지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때로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분명히 저건 아닌데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 내 속을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런데 이럴 때 교회에서는 '용서'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피해를 본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는가보다 내 마음을 힘들게 한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속이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 가장 괴로운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분노는 불덩어리인데 그것을 오래 가지고 있어봐야 데이고 상처입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에, 용서라는 작업을 통해 얼른 마음 밖으로 내어놓고 싶어합니다. 분노가 심할수록 동시에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는 것인데, 상대방이 나에게 보이는 태도에 따라 쉽게 용서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용서하기가 편할까요? 가장 좋은 태도는 변명하지 말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입니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실수에 대해 변명을 하면 오히려 그 변명 때문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왜 그럴까요? 변명이란 상대방의 분노에 휘발유를 끼얹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남자 연예인들 병역문제가 심각하지요. 한창 인기 있고 돈을 벌 나이에 입대하게 되면 인기도 잃고 돈도 못 버니까 입영연기를 할 때까지 하다가 서른 즈음에 가기도 하고, 신체적 결함을 입증해 면제를 받으려 하기도 합니다. 또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시도했다가 발각된 경우에는 자신이 무죄임이 판명나더라도 변명으로 일관하면 사람들에게서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용서는커녕 잘못하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변명이 분노라는 불에 휘발유를 뿌린 탓입니다. 그러나 자기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잘못을 빌거나 사과를 하면 "그래, 잘못은 했지만 잘못을 인정한다니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지"하면서 용서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경영 컨설턴트인 야스다 시게가츠는 기업의 실수 때문에 고객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일단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사로운 것을 설명하고 변명하지 않는다. 왜냐면 잘못했다간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앞으로 개선책을 밝힌다. 셋째,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일단 사과부터 한다. 넷째,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다섯째,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달한다. 최근 한복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시내 한 유명 호텔은 이 수칙을 지키지 않고 변명하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가족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화가 났을 때 어머니가 자식들을 나무라면서 "얼른 잘못했다고 말씀드려"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머리가 모자란 자식들은 "왜 나만 갖고 그래요,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하면서 바득바득 대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영리한 아이들은 바로 사과하고 잘못했다고 해서 아버지 분노를 식힌 후 대화를 시도합니다. 이것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우리와 하느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화가 나 있으실지도 모르는 하느님께 가장 먼저 드려야 하는 기도는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하는 청원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속상한 마음을 풀어 드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송이 미사 초입부에 붙박이장처럼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송은 우리가 하느님께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처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드리는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힘2011.04.26
[하루 한 장 성경읽기 해설]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리키서 우리는 드디어 구약성경 마지막 세 권「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 「말라키서」를 읽을 차례입니다. 2006년 대림시기에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반이 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고대해마지 않던 메시아이신 예수님 말씀과 업적을 담은 '신약성경'을 읽기에 앞서 메시아 오심을 노래한 세 권의 예언서들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하까이서」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바빌론에서 귀향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지도 못한 채 가난과 고통 속에서 암담한 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에게 돌연히 나타나 넉 달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에 유다인들로 하여금 성전 재건에 박차를 가하도록 한 예언자 '하까이(나의 축제일)'의 말씀 모음집인 「하까이서」의 주된 관심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고, 다른 하나는 메시아 희망입니다. 그에게 성전은 한낱 건물이 아니라 유다인들의 메시아 희망을 담은 하느님의 집이었습니다. 그 희망은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입니다. (2)「즈카르야서」 하까이 예언자와 동시대인 기원전 6세기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성전 재건에 힘썼던 예언자 '제1 즈카르야(야훼께서 기억하신다)'(즈카 1~8장)와 기원전 4세기께 활동하면서 폭넓은 메시아사상을 전해준 '제2 즈카르야'의 말씀 모음집인 「즈카르야서」는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1) 즈카 1~8장: 성전 건축 중에 기록. 해방되리라는 희망 1-1) 1,1~6: 머리글: 회개하라는 호소 1-2) 1,7~6,15: 여덟 가지 밤의 환시들과 신탁 1-3) 7,1~8,23: 신탁 모음: 단식 설교 2) 즈카 9~14장: 성전 건축 후에 기록 2-1) 9~11장: 신탁 모음집(1): 겸손한 메시아가 오리라는 희망 2-2) 12~14장: 신탁 모음집(2): 하느님 왕권의 도래에 대한 희망 하느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을 주시고 악인들에게는 벌을 주시리라는 종말론 성격이 강한 「제2 즈카르야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본문은 '찔려 죽은 이'(즈카 12,9~14) 와 '칼의 노래'(즈카 13,7~9) 대목입니다. 아마도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주님의 종'과 더불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 수난 신비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된 구약성경 말씀일 것입니다. (3)「말라키서」 소예언서는 물론 구약성경 전체의 마지막 책인 「말라키서」는 비록 55절 짧은 문헌에 지나지 않지만,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예언서입니다. 기원전 460년께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말라 3,14)라며 낙담에 빠져 있으면서 예배를 드리는 일을 등한시하는 이들이 많던 시기에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다시금 충실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한 예언자 '말라키(나의 사자(使者))' 말씀을 담은 이 예언서의 백미는 3장 22~2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의 종 모세의 율법,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내린 규정과 법규들을 기억하여라.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마태 17,1~8; 마르 9,2~8; 루카 9,28~36) 때에도 함께 등장한 모세와 엘리야를 언급함으로써 예언자는 예수님을 통한 새로운 계약을 준비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이제 옛날의 계약을 떠나 '새'계약을 향해 나아갈 차례입니다. 준비되셨나요?이힘2009.08.18
![[아! 어쩌나?] (74) 착하디착한 남편](//cpbc.co.kr/CMS/newspaper/2010/10/rc/354075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74) 착하디착한 남편Q1. 착하디착한 남편 제 남편은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살려고 하는 아주 착한 사람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인사받으려고 하지도 않고 겉치레에 신경 쓰지도 않고, 부모님 보필하는 것도 다른 형제들이 있어도 무조건 자기가 다 하겠다고 합니다. 시아주버니와 동업을 하는데 머슴같이 일만 하고 시아주버니네가 금전적으로 많이 써도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검소하게 살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시댁 일이라면 무슨 일이나 다 나서 돕는데, 다른 형제들은 이제는 고마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연시합니다. 분명히 주님 보시기에 착한 남편인데 그런 남편을 보는 제 마음은 편치가 않습니다. '왜 저렇게 바보같이 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남편에게 불만을 품는 저 자신이 속물 같고, 탐욕스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성경공부를 하면서 제 자신을 달래고 있습니다. '난 행복하다, 저렇게 착한 사람과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하면서요.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고 저를 나쁜 여자로 만드는 남편이 미워집니다. 그렇다고 구질구질하게 싸움을 걸기도 싫고요. 욕심이 많아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인지 답답하고 힘듭니다. A. 자매님 마음이 무척 속상할 것 같습니다. 자매님 설명대로라면, 남편은 착한 분이라기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분 같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기가 센 형 동생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착하게 행동해야 하는 배경 아래 성장하셨는가 봅니다. 이렇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분들은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 욕구를 맞춰주는 삶을 살아왔기에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자기만족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자신에게 위압적인 존재에게 착하디착한 양처럼 행동하면서 만만한 자기 가족들에게 자기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타인지향적 삶을 살까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관심입니다. 관심은 아이들의 심리적 '필수영양분'이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관심을 받기 위한 방법은 성장 과정 안의 자기 자리마다 모두 다릅니다. 불행하게도 남편분은 아주 좋지 않은 병적 방법을 터득하신 것이지요.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분들은 자기 돌봄, 자기 욕구 이해와 같은 심리훈련을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이미 너무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남편을 보고 불편한 마음을 갖는 자매님은 절대 욕심이 많은 분도, 속물도 아닌 아주 정상적인 분이십니다. 착한 남편이 형제들에게 착취당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단지 자매님이 주의하셔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 남편을 보면서 속상해하는 것이 자신에게 무리를 준다는 것을 늘 상기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편이 달라지지 않을 때는 포기하시고, 자매님 인생을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매님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이 남편 생각하느라 어느새 날아가고 남은 것 하나 없는 노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Q2. 묵주를 부적처럼 사용해도 되나요? 기도하기 위해 늘 묵주를 갖고 다니지만 기도가 생활화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냥 갖고 다니기만 합니다. 가끔은 묵주를 보면서 '아, 그래 내가 신자인데 잘못된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하는 반성은 하고 삽니다. 차에도 묵주를 걸어놨습니다. 왠지 성모님이 지켜주실 것 같아서요. 그런데 신자가 아닌 남편이 그런 저를 보고서 핀잔을 줍니다. 무슨 부적처럼 묵주를 걸어놓고 다니느냐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묵주를 걸어놓은 것이 마음이 덜 불안해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는데,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처럼 묵주를 대해도 성모님이 화를 내지 않으실까 걱정입니다. A. 부적은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감을 갖고 살기에 부적 효과를 가지는 도구들은 어느 종교건 다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만드는 성물은 기도의 수단이자 불안감을 감소시키거나 없애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마치 부적 같은 심리치료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늘 묵주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자매님이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묵주를 아예 두고 다니신다면, 그나마 있는 신심마저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너무 오래 만나지 않으면 서먹하듯, 묵주기도도 그러하니 늘 수중에 지니고 다니시고, 차에도 늘 걸어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묵주기도를 하고픈 마음이 들겠지요.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힘2010.10.19
신화, 철학에서의 신 문제](//cpbc.co.kr/CMS/newspaper/2011/06/rc/379303_1.2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2)신화, 철학에서의 신 문제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라는 사실이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죽음이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것인데,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끊임없는 질문이 하느님을 발견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철학을 했고, 철학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철학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철학은 신과 인간, 자연의 문제를 다룬다. 철학의 시작은 자연이었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자연도 중요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철학의 큰 주제는 하느님ㆍ인간ㆍ자연으로, 이 주제들은 계속 번갈아가면서 철학의 중심 주제로 다뤄졌다. 자연철학이 나오기 전에는 신화에서 신의 문제를 다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올림푸스의 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부부 사랑을 관장하는 헤라 여신, 불을 다스리는 헤스티아, 지하세계를 다루는 하데스 등…. 인간이 희망하는 것을 투사시켜서 신들 모습을 그렸다. 만약 소나 돼지들이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신의 모습을 소나 돼지로 그렸을 것이다. 인간들이 그림을 그리고 생각할 줄 알기에 신의 모습을 사람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러 신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신들은 죽지 않지만 인간처럼 잠도 자야 하는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신의 세계에도 신들 운명을 지배하는 최고 존재가 있다. 결국 신화는 다신론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을 지배하는 절대적 힘을 가진 유일신론을 지향한다. 한편 철학에서도 신의 존재를 다룬다. 소크라테스 제자였던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를 그렸다. 플라톤의 사고방식에서 플라톤적 사랑은 이데아적 사랑을 의미한다. 물질ㆍ육체적 사랑은 저질적으로, 이데아적 사랑은 높게 평가한다. 그리스도교는 오랫동안 인간 개념을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물려받았다.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교회에 가져오기 전까지 이데아적인 것, 즉 정신적인 것은 고귀한 것이고 인간의 육신은 저질이라고 생각해왔다. 교리에서 보면 우리가 물리쳐야 할 원수는 세속과 육신, 마귀다. 사실 육신은 물리쳐야 할 원수가 아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물질적인 것을 죄악시한 경우는 없었다. 예수님은 먹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오히려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시기와 질투, 증오라고 했다. 이 세상 모든 물질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된 것이다. 플라톤의 사고방식과 달랐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가 신의 세계이기에 이데아 세계가 참되고 옳은 것이라고 봤다. 죽음은 이데아에서 온 우리 영혼이 물질적 악의 세계에서 온 육신과 결합해 인간으로 살다가 육신으로부터 해방돼 영원히 다시 이데아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죽음은 우리 영혼이 죄스런 육신에서 벗어나 본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꿈은 시간을 초월하는 정신세계로, 하느님이 존재하는 초월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플라톤은 정신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의 모든 합리적 사고방식의 기초를 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교부들은 사람을 영혼과 정신, 육신으로 구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거나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성모상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모상을 제작한 작가는 부모에 의해 존재하고, 그 부모는 할머니ㆍ할아버지, 증ㆍ고조부에 의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급과정이 무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시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만물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봤다. 결과를 통해 최종 원인으로서 하느님을 이야기한다. 토마스 데 아퀴노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접목해 인간이 이성으로 하느님을 알 수 있다며 하느님 존재를 5가지 방식으로 증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증명한 것 같이,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최종 운동자인 '제일운동인(第一運動因)'을 하느님이라 부른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예를 들어 내가 존재하는 데는 나를 있게 한 부모가 있고, 부모에게는 또 그 부모가 있듯이 부모를 계속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급할 수는 없다. 그 시작이 되는 '제일작용인(第一作用因)'이 하느님이다. 세 번째는 우연적인 것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전개돼 가는 과정에서 하느님을 증명한다. 우연적인 것은 없다가도 있지만 필연적인 것은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세상 모든 사물은 우연적이다. 100년 전에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존재하고 있다. 우주 역시 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사건으로 생겼지만 300억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물이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우연적 존재라면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존재를 하느님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이 세상에는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주 질서가 하느님을 증명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오듯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결론적으로 목적을 부여하는 이도 하느님이고, 그 마지막 목표도 하느님이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에 이어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 co.krcpbc2011.06.07
![[영성의 길 수도의 길]-(30)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1/01/rc/363106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30)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교육 통해 어린이, 여성들에게 '희망의 횃불' 밝혀경북 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한국관구. 앞에 수녀회 상징인 보랭의 성모상이 보인다. 1932년 11월 29일, 성모 마리아가 벨기에 보랭(Beauraing)시에서 5명의 아이들 앞에 발현했다. 성모님은 그 뒤로 1933년 1월 3일까지 한 달여 동안 9일을 빼고 매일 발현했다. 성모님은 발현 때 "성당을 짓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기도하고 희생하라"고 당부했다. 성모님이 발현한 그 곳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 마당이었다. 보랭의 성모님은 그 뒤 수도원의 상징이 됐으며, 1943년 교회가 성모 발현을 공식 인정한 이래 전 세계에서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성모발현지가 됐다. 교회의 미래인 청소년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모님이 수녀회 학교에 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지역 청소년을 위해 경북 안동시 송현동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본원을 찾아가는 길.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한적한 시골길이다. 이제 시골길인가 싶더니 곧 수녀원이다. 대낮인데도 오가는 이가 거의 없이 고요하고 한적한 것이 마치 봉쇄수도원 같다. 수녀원 입구에 도착하자 멀리서 수녀 셋이 수녀원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손에는 앉은뱅이 밥상과 각종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시장에 다녀오는 길인 것 같았다. 이들은 종신서원 준비를 위해 본원에 와 있는 수녀들이다. 한 수녀가 "이것들은 부모가 돌보지 않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위한 생필품"이라고 말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수녀들이 수녀회가 운영하는 상지유치원 등을 돌며 폐품을 모아 마련한 돈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수녀원 입구에서 만난 세 수녀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회원들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수녀회는 현재 안동 가톨릭상지대학 인근에서 상지유치원과 예담어린이집, 경북안동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안동시 율세동에 있는 경북안동아동보호전문기관은 담당수녀와 심리상담사 등 전문가들이 주축이 돼 가정폭력과 성폭력, 방임 등으로 학대받는 어린이들을 돌본다. 일반적 상담 치료와 함께 일정 기간 어린이가 머무는 보호소도 운영하는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열악한 지역 방임 아동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경북안동아동보호전문기관 이선희(레아) 관장수녀는 "수녀회는 아동에게 희망의 햇살을 가득히 비추기 위한 교육활동과 보호활동 등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친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생명을 얻고 또 넘치게 하려고 오신'(요한 10,10) 주님 말씀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정신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스승으로서 세상의 횃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친히 제자들 발을 씻겨준 모범을 보이신 스승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 사랑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또한 교육적 혜택이나 가난한 환자들이 위안을 받지 못하는 곳이 없도록 언제나 열린 자세로 준비하고 있다. 하느님 영광과 자신의 성화와 이웃의 구원을 위해 시대와 상황, 장소에 맞갖은 방법으로 사도직 활동을 펼친다.#신앙교육팀 '참신나' 수녀회는 2006년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한국관구 사명선언(2007~2012)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복지 사도직의 우선적 선택과 수녀회 특성화 사도직을 개설한다"고 천명했다. 가난하고 소박하게 사는 이들이 많은 안동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녀회가 특성화 사도직을 주창, 수도회 내 청소년 신앙교육팀인 '참된 신앙교육 나눔'(참신나)을 꾸렸다. 참신나에 몸담은 '참신이' 수녀들은 △오늘날 주일학교 신앙교육의 비전과 새 대안 제시 △청소년과 교리교사, 부모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계발 △청소년 활성가이자 신앙교육자로서 자질과 전문성 향상 △지속적 연구와 실천을 위한 연구소 설립 등 다섯 가지를 참신나의 비전으로 삼았다. 참신이들은 지역 및 봉사자 모임, 참신이 대회 등을 통해 생명력 있는 청소년 신앙교육을 위한 연구와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교사양성과 영성지도, 부모교육,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관계망 형성과 정보 공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인형을 통해 성경 속 인물을 구성, 오감으로 깊은 말씀 체험을 할 수 있는 '성경인물(Biblical Figurine)' 교육과 보급 활동도 펼친다. 수도회 청소년교육 전담 김봉임(효임골룸바) 수녀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사랑하며, 신앙교육에 헌신하는 모든 이들의 모임이 참신나"라며 "더 많은 이들이 참신이가 돼 수녀회의 뜻에 동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의 : 054-855-8833~4, 한국관구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수도회 영성과 역사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는 1700년께 장 밥티스트 바틀로(1688~1748, 프랑스, 사진) 신부가 프랑스 알자스 로렌 지방의 툴(Toul)교구에서 설립했다. 당시 알자스 로렌 지방은 독일과 프랑스 간의 오랜 국경 분쟁으로 지역민들의 삶이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지역사회 무질서와 혼란ㆍ윤리적 탈선이 매우 심각했고, 특히 젊은이들은 교육 기회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바틀로 신부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통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세 여동생과 함께 교육사업을 전개, 소녀들과 부인들에게 글과 교리를 가르쳤다. 바틀로 신부의 교육사업이 점점 확대되자 자신을 도울 여교사 양성이 절실했는데, 이것이 수녀회 설립(1720년)의 모태가 됐다. 수녀회는 이후 유럽 전역에 학교를 세우고 분원을 설립하는 등 급성장을 거듭했다. 바틀로 신부가 선종한 1748년까지 40개 분원이 생겨났을 정도다. 수녀회의 한국진출은 안동교구 설정 이전인 1966년 9월, 대구대교구 안동 감목대리구 시절 파리외방전교회 구인덕(Celestin Coyos, 1908~1993) 신부가 룩셈부르크 출신 노신혜(Celine Knauf, 1914~1988) 수녀 등 3명을 안동에 초대한 것이 시작이다. 초창기 수녀들은 6ㆍ25전쟁으로 낙후돼 있던 농촌 상황과 가부장적 유교 분위기에서 교육 기회조차 박탈당한 젊은 여성들에게 주목했다. 그 시절 안동은 바틀로 신부가 알자스 로렌 지방에서 수도회를 설립했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수녀들은 여학교를 설립해 안동지역 젊은 여성들에게 글과 교리를 가르쳐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 수녀들이 설립한 학교는 가톨릭상지대학으로 발전했다. 한국관구 수도자 수는 108명이며, 서울ㆍ부산ㆍ대구ㆍ안동교구 13개 본당 등에서 본당사목과 사회사업에 투신하고 있다. 캄보디아ㆍ콩고ㆍ코트디부아르ㆍ루마니아ㆍ벨기에ㆍ프랑스 등에 12명이 선교사, 총참사위원 등으로 파견돼 있다. 이힘 기자 ◆성소상담첫째 주일 : 서울수련소 02-394-0223둘째 주일 : 부산 주례성당 수녀원 051-324-9553셋째 주일 : 대구 청원소 053-783-9817넷째 주일 : 대전 목동 작은형제회 수련소 011-9852-9817 cpbc2011.01.04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나의 천사가 되어 줄래?'를 특집 주제로 △천사가 되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최원길) △이 땅에 천사가 있다면(양종규) 등을 실었다. 인물 에스프레소에서는 성 프란치스코를 소개했다. 초록 현장 스케치에서는 의정부 일대를 달군 2010년 한국청년대회를 돌아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경향 돋보기에서는 '가톨릭 학교 교육'을 주제로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의 역사와 현황 △가톨릭 학교의 이념을 살린 교육 △교육은 사랑이다 등을 다뤘다. '시복시성 절차법 해설'에서는 법정의 개정과 진행 및 종료 과정을 알아봤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특별기획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전쟁'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전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함께 체포된 두 명의 복사, 김운삼과 송운철의 감옥생활을 목격하고 기록한 김원우 선생의 체험담을 소개했다. 2007년에 발표한 내용을 본인이 보완한 것으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 교회의 인물상'에서는 근현대 평양교구 순교자 가운데 부친 서정요와 자녀인 서원석 수녀ㆍ서운석 신부 일가가 한국전쟁 때 겪은 수난을 실었다.(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지난 9월 초에 열렸던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를 화보와 함께 집중적으로 다뤘다. 한국평협 최홍준 회장이 「평신도 그리스도인」 문헌을 소개하면서 평신도들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썼다.(마리아 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새롭게 만나는 주님'에선 거룩한 변모와 제자들(신교선 신부)을, '강의실 밖 신학여행'에서는 교회의 위기(전광진 신부)를 알아봤다. '철학하는 의자'에서는 행복한 가정을 위한 6계명을 실었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꼭지에선 최고령 단원을 만나봤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아침 뜨락에선 '오이는 어디로 갔을까'(최강 신부)를, 영성 에세이 1에선 '성숙한 그리스도인에로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게재했다. 전례력에 따른 말씀과 묵상은 연중 제26주간부터 31주간까지 정리했다.(가톨릭출판사/한글ㆍ영문판 각 권 900원) ▨사목정보='아날로그 사목에 디지털을 입힌다고?'를 특집 주제로, △디지털시대의 사목자 △교회 가르침에서 살펴본 디지털 미디어 사목의 중요성과 활용 방안 △디지털 시대의 인간윤리와 사회교리 등에 대해 다뤘다. 공동선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본당 사목방안을 모색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다른 이를 위한 기도'를 주제로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배운다(김용기) △베트남으로 돌아간 마이와 묵주반지(심명희) △다른 이를 위한 기도의 의미(이수철 신부) 등에 대해 다뤘다. '내 성인 이야기'에서는 박주아 아나운서가 성녀 체칠리아를 소개했고, '이 사람'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개그맨 이동우씨를 만났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새로봄에서는 '몸과 마음을 수저씩 덜어내고'를 주제로 △단식,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채우는 영적 여정(오상선 신부) △단식은 왜 하는가?(신교선 신부) 등을 실었다. 영성의 향기에서는 성화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그리스도와 어린 아이들'을 감상했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환경 이야기 우리 이야기에서는 '지진의 피해를 막을 수는 없나요?'를, 바다 건너에서 온 기쁜 소식에서는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김지한 신부의 '모기를 위한 헌혈'이라는 글을 실었다. 순교로 빛을 밝힌 성인 이야기에선 최양업 신부를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세상 속 신앙 읽기에선 '이웃 사랑, 정말 힘든가요?'(송용민 신부)를,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서는 '어떻게 악마와 싸울 것인가?'를 짚었다. 표지 이야기에는 세월이 저만치 비껴간 곳, 모란시장길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우물가 산책에서는 볼만한 책으로 「사랑-성경은 왜 이렇게 말할까?(3)」를 소개했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오, 아름다워라! 주님 주신 이 세상'을 특집 주제로 △그리스도인은 좀 더 정의롭고 사랑 넘치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서상진 신부) △가치 지향의 생태적 삶(한면희) △대자연이 교과서인 생태친화학교, '산자연학교'(이태희) △한가대연의 4대강 순례(김상금) 등을 실었다. 행복 전도사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방상묵 예비역 소장을 표지 인물로 다뤘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이지혜 기자이지혜2010.10.05
![[선교지에서 온 편지] 중국이야기(상)-도대체 그분이 누구신가](//cpbc.co.kr/CMS/newspaper/2011/04/rc/374120_1.0_titleImage_1.jpg)
[선교지에서 온 편지] 중국이야기(상)-도대체 그분이 누구신가그들 마음에 상처 대신 하느님 심어줘 이유성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중국지부) 한센병이라고도 불리는 나병은 성경에도 언급될 정도로 인간 역사 안에서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의학자 한센이 병원균을 발견한 지 이제 겨우 100년이 넘었다. 약을 만들어 낸 것은 더 최근의 일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병으로 인한 후유증과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장애는 얼굴이나 손발에 그대로 나타나기에 나환우들은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이들을 섬이나 외딴 곳으로 이주시켰다. 그로 인해 환우들이 겪는 정신적, 사회적 고통은 질병으로 겪는 육체적 고통 이상이다. 사천성 깊은 산골에 있는 한선병 환자 마을서 5년째 선교사신부, 수녀들 활동에 위생, 의료환경 개선되고 외부와 교류감동한 한센병 환자들 세례받고 마을은 신앙촌으로 거듭나할머니, 저 앞사람 손가락 잘 보여요? 시력검사를 하려고 나환우마을 할머니 한쪽 눈을 가려드리자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오른쪽이 필자) # 누가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주셨나? 이곳 사천성에서는 요즘도 새로운 환자를 발견하는 게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천성에서도 현급 행정단위로 나환우시설을 만들어 환우들을 격리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나환우마을을 '나병촌'이라고 부른다. 나환우들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5년이 돼간다. 선교사로서, 특히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로서 나환우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이들이 건강하건, 코가 내려앉고 손이 오그라들고 다리가 잘려나갔건 선교사에겐 모두 예수님과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 이런 예수님들은 왜 이리도 깊은 산골에만 사시는지, 만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평생을 이런 예수님들과 함께 살겠다고 하느님과 새끼손가락을 걸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들을 만나려면 적게는 1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혹은 산을 오르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깊은 협곡에 걸려있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나환우들이 지나간 길만 걸어도 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과 두려움으로 인한 차별 때문이다. 이런 마을에는 나환우들만 사는 게 아니다. 적게는 몇 십 명에서 많게는 몇 백 명 환우들과 그들 자녀들, 그리고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자녀를 한 명만 가질 수 있지만 이런 시골은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가족 수는 생산력에 비례한다. 그래서 힘 닿는 데까지 낳는다. 마을에는 초등학교도 있고, 나환우들을 위해 봉사하는 중국인 수녀님들도 있다. 이런 마을이 사천성 량산 이족 자치구에 6개가 있다. 나환우마을은 수녀님들이 도착하고 신부들이 방문하기 전에는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할 정도로 고립돼 있었다. 환우들은 돈이 있어도 채소나 고기를 사기가 힘들었다. 집에 수도나 전기시설이 망가져도 고치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대만과 마카오에서 활동하시는 예수회 신부님들이 개혁개방 이후 찾아오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신부님들은 집과 학교를 지어줬다. 그러자 정부 관계자들도 더 관심을 갖고 찾아오게 됐다. 수녀님들 덕에 위생환경과 의료환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외부인들과도 많은 교류를 하며 살아간다. # 나병촌이 신앙촌으로 하지만 그들 삶의 가장 큰 변화는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마을에 독신 젊은 여성들(수녀들)이 보수도 없이 함께 살겠다고 찾아왔다. 수녀들은 아침저녁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상처를 싸매주고, 아프면 병원에도 데려가고, 신발과 옷도 갖다줬다. 그런 천사같은 수녀들을 보내준 사람이 예수라는 고마운 분이라는데, '도대체 그분이 누구신가?'하며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학교라고는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나환우들은 수녀님들의 교리교육을 통해 신앙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또 신부들이 드리는 미사를 통해 성사에 참여하면서 하느님 사랑을 알아갔다. 이들은 지난 세월 나병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천대받았던 마음의 깊은 상처를 조금씩 풀어냈다. 그리고 코가 내려앉고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나간 장애의 몸이지만 자신의 생명과 이 세상을 주신 주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고자 세례를 청했다. 이렇게 한 명 두 명 세례를 받아 지금은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우들 대부분 천주교인이 됐다. 수녀들과 신부들의 정성과 노력이 나병촌을 '신앙촌'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덕창현에 있는 나환우마을은 주교님을 청해서 견진성사를 받은 교우들도 꽤 된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환우들은 이런 기적이 없었다면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끌어안고 계속 원망과 한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신앙인으로서 같은 아픔을 겪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런 변화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부활이며 신앙의 신비이자 기적이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 512601-01-102007 예금주 : (재)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cpbc2011.04.19
![[아! 어쩌나?] (95) 금욕이란?](//cpbc.co.kr/CMS/newspaper/2011/03/rc/371077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95) 금욕이란?Q. 금욕이란? 영세한 지 얼마 안 되는 새내기 신자입니다. 저의 대부님은 아주 열심한 신자분이신데 가끔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예컨대 신자는 수도자들처럼 금욕을 지켜야 한다며 금요일에 고기를 안 먹는 것은 물론이고, 잠자리도 불편하게 해서 잠 마귀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고 하시고, 음식을 탐하지 말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며 식사를 할 때도 성경을 보라고 하십니다. 특히 몸은 영적인 것이 아니고 욕망 덩어리이니 최소한의 것만을 제공하고 오로지 영적인 것에만 마음을 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살면 욕망이 통제되고 오로지 주님 뜻에 맞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워낙 열심히 사시는 분이라 따라서 살고 싶은데 제 생활여건이 그리되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정말 그렇게 살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고 며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몸이 힘들어 포기하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신앙이 약해서 그런 것인가요? A. 우리 교회에 금욕주의를 불어넣은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입니다. 그는 신체와 관련된 모든 것은 사악하다고 믿은 사람입니다. 신체란 천상 존재인 영이 절대적 존재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막는 감옥이라고 했고, 따라서 신체적인 필요는 최소한의 것만 충족시키고 모든 욕망, 특히 성욕을 끊고 절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플로티누스의 이런 생각은 초기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미쳐서 많은 은둔 수도자들이 감정적 충동을 억압하고자 수면 박탈, 반(半)아사상태(3일에 한 끼만 먹고 산 수도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안락함의 거부, 고된 노동, 거친 의복 등 극한의 금욕적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금욕주의는 가톨릭교회 무의식 안에 자리를 잡아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욕은 적당하면 약이지만 지나치면 정신적 부작용을 일으키기에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가진 일반적 생각을 뒤집어야 진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존재"라고 한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 말처럼, 신앙인 역시 욕망에 대한 기존 생각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어빈(William B. Irvine)은 욕망에 대해 몇 가지 개념을 제시합니다. 첫째, 욕망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마귀들한테서 온 것이거나 죄악의 덩어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 생존의 기제로 주신 선물이자, 세상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란 것입니다. 만약 사람 마음 안에서 욕망이 모두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간혹 성욕과 소유욕은 죄의 근원이니 다 없애야 한다고 극단적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려고 하지 않고, 아무도 취업하거나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아 결국에는 사회 자체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또 욕망이 없으면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무감각해져서 마음이 얼어붙은 존재가 돼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욕망은 삶의 불씨'라고 불리는데,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금욕은 정신건강에 좋지만 지나친 금욕은 불씨를 꺼뜨릴 위험이 있어 그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개념은 욕망을 완전히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욕망이 가진 특징 때문입니다. 우선 욕망은 이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욕망은 합리적 사고의 과정을 거쳐 생기거나 우리 의지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욕망은 우리 안에 자리를 잡고 나면 이성을 하인처럼 부리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힘 좋고 거친 욕망은 우리가 세운 인생 계획을 뒤집어버리기도 하고 우리 운명을 바꿔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거친 파도가 배를 뒤집듯이 말입니다. 또 욕망이란 것은 채워졌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욕망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욕망이란 변화무쌍한 것이기에 욕망을 완전히 다스리거나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간혹 '욕망을 다 끊었다', '마음을 다 비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조차도 욕망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님이 해야 할 일은 욕망을 완전하게 통제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즉, 욕망 가운데 어떤 것은 충족시키고 어떤 것은 억누르는 식의 선별적 욕망의 다스림을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나친 금욕주의는 오히려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마치 살을 빼겠다고 아예 밥을 굶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듯, 지나친 금욕도 그런 결과를 일으킬 수 있으니 수위 조절을 잘하시기 바랍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cafe.daum.net/withdoban이힘2011.03.22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청주교구① '선교는'](//cpbc.co.kr/CMS/newspaper/2010/03/rc/330343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청주교구① '선교는'2020년까지 신자 20만 명, 쉬는신자 50% 줄이고 주일미사 참례 50% 늘리자 청주교구는 올해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마태 28,19-20) 둘째 해를 맞고 있다. 2008년 6월 교구 설정 50돌을 기해 4년간에 걸친 교구 시노드를 폐막하고 동시에 시노드 후속 실천에 들어간 지 2년째다. 시노드를 통해 이미 '친교와 나눔의 공동체' 구현을 선포한 바 있는 교구는 그 후속 실천 주제를 선교와 가정, 청소년으로 잡고 이를 하나하나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쉽지만은 않은 후속 실천이지만, 2020년까지 교구 신자 20만 명을 목표로 새 영세자와 주일미사 참례 비율을 50%씩 늘린다는 '교구 비전 2050'에 따라 각 분야별로 실천해가고 있다. 이에 '복음화의 산실, 지금 교구는' 기획을 통해 선교와 가정, 청소년 등 세 분야로 나눠 청주교구를 돌아본다. 우선 첫 번째로 선교 분야를 중심으로 교구 선교 비전과 지원 상황 및 교육, 본당 사례 등을 살핀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교구 선교비전은... 청주교구 사도직학교(현 선교학교)에 재학 중이던 평협 임원들이 지난해 7월 19일 내덕동성당 마당에서 '사도직 골든벨'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길경하 안드레아 교구는 최근 '교구 중장기 사목계획 수립방안'을 발표했다. 교구 복음화연구소(소장 송열섭 신부)와 선교사목국(국장 손병익 신부)이 함께 수립한 방안으로, 이 안에는 △교구 평생교육체계 △예비신자 신앙교육 지침 및 실천방안 △본당 중장기 사목계획서 등이 포함됐다. 한결같이 '선교'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를 위한 일선 사목 지원에 그 목적을 뒀다. 교구 평생교육체계는 태아기에서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중장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신앙 교육을 상설화함으로써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 신앙교육을 지양하고 전 교구 공동체가 신앙 성숙을 이루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려는 취지로 만들었다. 또 예비신자 교육지침 및 실천방안을 마련, △성경 말씀과 성체성사 중심 교육 △회심생활과 기도생활을 습득케하는 교육 △교회공동체와 함께하는 교육 △이웃사랑과 선교정신을 익히는 교육을 지향한다. 아울러 교구 비전 및 목표에 따라 본당 비전 및 목표를 수립해 가도록 했다. 이처럼 교구는 교구 비전 2050에 따라 '선교'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교구 직제 개편에 따라 명칭이 바뀐 선교사목국 지원과 본당 주도로 교구는 일단 올해엔 '새 양 잃은 양 찾기 1/1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전 교구민이 새 신자와 쉬는 교우를 각각 1명씩 봉헌토록 권고하고, 이 운동에 대한 교구 공동체 관심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를 위해 선교사목국은 2월 2일부터 3월 2일까지 8개 지구를 돌며 각 본당 구역ㆍ반장 1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한 소공동체 교육을 통해 이를 소개하고 선교의식 저변을 넓혔다. 더불어 아직도 교구 새 영세자의 4분의 3(지난해 말 새 영세자 3916명 중 3000명 안팎) 가량을 배출할 정도로 선교 선두주자인 레지오 마리애 간부 교육을 통해서도 선교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매달 넷째 주 주일에 이뤄지는 교육을 통해 일선 본당의 경우 활동이 겹치는 단원이 상당수인 두 단체 선교활동을 어떻게 조화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나눴다. 교구는 또 '말씀 실천으로 복음화 토대를 놓는 해'로 정해진 올해 교구 사목지표에 따라 단계별 성경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성서사십주간' '성경의 길을 따른 여정' 등 여러 성경 공부 프로그램 장단점을 분석하고, 성경 통독과 성경 필사, 성경 나누기, 성경 공부 등을 단계별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선 본당 사목자들에게 제공한다. 이와함께 올들어 2년 과정 교구 사도직학교를 교구 선교학교로 개칭, 선교 및 성경 강의를 강화했다. 선교학교에는 교구 내 각 본당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임원진이 매년 40명 안팎이 입학하고 있어 교구 저변에 선교의식을 고취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손병익 국장신부는 "신앙인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쇄신되고 변화되고 나눌 때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이고, 진정한 선교이며, 복음화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본다"며 "그래서 말씀이 살아있는 선교 공동체를 일구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내덕동본당은 어떻게 선교활동을 펴나 올해로 본당 설정 53주년을 맞는 내덕동본당(주임 서정혁 신부)은 주교좌본당으로 규모가 큰 본당 가운데 하나지만, 선교가 그리 활발했던 본당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르신층이 본당 구성원의 80%에 육박할 만큼 그야말로 '초초고령화된' 본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내덕동본당이 확 바뀌었다.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 혹은 "해도 안 된다"던 내덕동본당에서 지난해 말 현재 영세자 수가 147명(유아영세자 27명 포함)에 이르렀다. 예년 80명 안팎에 그쳤던데 비하면, 83.5%나 늘어난 셈이다. 본당측은 교구 안팎 전입자를 빼면 그리 많지 않고 또 지난해 2월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 덕분이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르신들 선교 열기를 지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선교선포식을 가진 내덕동본당은 지난 한 해 선교에 전력을 쏟았다. 우선 반모임(소공동체)를 통해 1년 내내 '선교를 위한 40일 고리기도'를 바쳤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또 본당 차원에선 그에 앞서 지난해 1월 본당 평협 회장단과 구역장, 본당 내 레지오 마리애 3개 꾸리아 단장이 참여하는 '선교위원회'를 구성해 화요일마다 선교방안을 기획하고 연구하고 실행했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 선교 효율을 높일지에 대해서였다. 「선교일지」도 만들어 매주일 선교를 위한 개인별 묵주기도를 봉헌토록 했고, 구역ㆍ개인별로 시상했다. 선교 특강도 1년에 두차례씩 마련하고, 본당 안에서 선교를 잘하는 신자들을 초대해 선교 사례 특강도 가졌다. 그 기반에는 '성체신심'과 '1ㆍ5ㆍ3운동'이 자리했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 밤 8시에 열리는 성시간을 통해 어르신들이 성체신심을 다졌다. 또 날마다 1시간씩 기도하고, 5장씩 성경을 읽으며 1년에 3명씩 선교하자는 취지의 1ㆍ5ㆍ3운동을 통해 말씀을 가까이하도록 했다. 서정혁 주임신부도 "매일미사를 통해 1년 내내 성체와 연결되는 강론을 하며 성체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어르신들이 밤중인데도 400~500명씩 성시간에 들어찬다"며 "숫자나 결과보다는 선교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 만큼 성체 안에 머무르며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를 일궈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청주교구 상징문양 청주교구 상징문양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의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8-9)는 말씀을 형상화했다. 청주의 앞글자 '청(淸)'자의 속뜻처럼, 하느님을 뵈올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청색은 세상 죄악을 씻어 정화시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고, 바깥 원은 완전을 의미하는 하느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 안의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평화의 사도로 살고자 하는 청주교구 공동체를 가리킨다. 고(故) 신명우(요셉, 디자이너)씨 작품이다. cpbc201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