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의 참의미 담아야 이동훈 신부, '강론의 영성적 고찰' 논문 발표 강론을 영성적으로 고찰한 논문이 국내 처음으로 나왔다. 이동훈(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지도) 신부는 최근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교육문화영성전공) 석사 학위논문 '강론의 영성적 고찰'을 발표, 강론이란 무엇이며 강론이 지녀야 할 영성과 강론의 지향점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강론을 '말씀을 통한 삶의 해석'과 '진리에 대한 순종' 두 줄기로 뽑아 풀어냈다. 강론은 기록된 말씀의 참 의미를 찾아내고 오늘날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삶 안에서 실질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강론은 말씀을 통해 삶을 해석하고 구원의 의미를 적용하는 것으로, 그 날의 성찬례에 깊이 참여시켜 진정한 예배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개신교의 설교(preaching)와는 다른 가톨릭의 강론(homily)이 지니는 고유 영성이다. 이 신부는 교회 문헌에서 언급하는 강론의 영성을 찾아 짚었다. 미국 주교회의 '사제생활과직무에관한위원회'가 1982년에 발표한 문헌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주일 집회에서의 강론」을 참고 자료로 삼았다. 가톨릭에서 사목자들에게 강론의 의무를 부여하고 강론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재평가하고 증진시킨 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다. 공의회는 거룩한 전례를 위해 "하느님 말씀의 풍부한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 성경의 보고를 널리 개방하고, 성경의 주요 부분을 일정한 연수(年數) 안에 회중들에게 낭독해준다"는 세부지침을 정했다. 이때 강론의 성서ㆍ전례적 바탕이 복원된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통한 삶의 해석'이어야 하는 강론은 오늘날 신자들 앞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사제가 먼저 기록된 말씀의 참 의미를 찾아내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삶 안에서 실질적 의미를 발견하도록 독서들 간의 해석학적 대화를 찾게 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다. 이 신부는 강론은 강론자마다 기질과 성향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을 수 있지만, 준비가 안된 강론ㆍ소극적 강론ㆍ자아도취적 강론은 위험한 사례로 꼽았다. 그는 "사제품을 받았다는 것 하나로 준비 없이 텍스트에 대한 묵상을 게을리 한 데서 나오는 확신 없는 평이한 내용이나, 현실에 대한 도전이나 압박 없이 예언자로서 사명을 떠나 신자로서의 윤리적 의무감만을 전달해주는 경향으로 치우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너무 잘된 준비로 화려한 말만 남고 정작 말씀이 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신부는 강론을 하느님이 말씀하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으로, 이것이 강론이 지닌 내적 순종의 자세라고 설명했다. 2007년 안식년을 맞아 연구를 시작한 이 신부는 "많은 신자와의 만남과 교육, 다양한 행사로 지치기 쉬운 본당 사목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영성을 끊임없이 닦아나가게 해 주는 원천은 무엇이고, 또 미사 중 집전자나 회중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미사전례에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던 중 그 답을 강론으로 삼아 질문을 풀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0.03.02
![[성경 속 상징]39-눈물- 겸손, 좌절, 실망... 울음과 연관](//cpbc.co.kr/CMS/newspaper/2009/03/rc/287790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39-눈물- 겸손, 좌절, 실망... 울음과 연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실은 눈물이 입안에 부족한 수분을 보충해줘서 먹이를 삼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악어는 사람이 하품을 하듯 턱을 벌리면 눈물샘이 자극돼 눈물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이 흘리는 거짓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 하게 됐다. 눈물 성분의 대부분인 98%는 물이고 나머지는 단백질ㆍ전해질ㆍ글루코오스 등의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눈물은 각막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각막의 광학적 기능을 유지하며 결막과 각막 표면의 이물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경우 하루에 흘리는 눈물의 총량은 평균 약 0.5~0.8g 가량이라고 한다. 눈물은 인간의 강한 감정, 대개는 슬픔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비탄, 애도를 나타낸다. 성경에서 눈물은 겸손, 좌절, 실망의 상징으로 울음이나 통곡과 연관돼 나타난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형제들과 상봉했을 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통곡을 했다.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창세 45,2).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눈물을 흘렸다. 하느님께 기도할 때도 눈물을 흘린다.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1사무 1,10). 에사우는 자신의 이익을 찾을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에사우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는 축복이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 저에게, 저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에사우는 목 놓아 울었다" (창세 27, 8). 큰 기쁨을 맞아서도 눈물을 흘린다. "요셉은 자기 아우에 대한 애정이 솟구쳐 올라 울음이 나오려고 해서,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울었다"(창세 43, 30). 예수님께서도 자주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은 절친한 친구 라자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4-35). 또한 곧 멸망 될 예루살렘을 위해 슬피 우셨다(루카 19,41). 예수님의 눈물은 사랑의 표시였고 인간적인 면모를 잘 나타낸다. 강인한 품성을 지녔다는 사도 바오로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사도 20,31). 또는 그는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울었다. "나는 매우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2코린 2,4). 그는 신자들을 향한 걱정과 연민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죄와 연관된 눈물은 특별히 설교나 기도의 전통 가운데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눈물이 그렇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 26,75). 인간의 눈물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과 함께한다. 눈물처럼 인간적인 것이 있을까? 우리가 최근에 눈물을 흘린 것은 언제인가?조은일2009.03.17

신앙으로 인생 2막여는 예비역 공군 장성 박상묵씨하느님 향한 '신앙의 비행' 출격박상묵(클레멘스) 예비역 소장이 1월 26일 고별비행을 마친 뒤 아내 김현미(베르나데트, 57)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지난달 전역한 예비역 공군 장성 박상묵(클레멘스, 56) 소장은 요즘 군에 몸담았을 때만큼이나 바쁘다. 대학에서 무역학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이자, 국방대학교의 오케스트라인 '팝 오케스트라' 색소폰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국군방송 라디오(96.7㎒)에서 매주 목요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리더십의 세계' 프로그램에 출연, 후배들에게 '행복한 군인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고, 리더십 향상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박 소장은 국방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공군 고위급 예비역 장성. 국방부 정신전력 리더십 개발원장과 공군 교육사령관, 공군본부 정책홍보실장, 공군본부 인사참모부 부장 등 굵직한 요직을 8개나 거쳤다. 앞으로 주님과 이웃 위해 그러면서도 그는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제 곁에는 늘 주님이 함께하셨음을 믿고, 주님께 매달렸다"며 은퇴 이후의 삶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3일 찾아간 박 소장의 서울 대방동 공군복지근무지원단 사무실은 새로 마련된 듯 깔끔했다. 중책이 수반되는 군 생활을 마치고 새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듯, 독수리 조각상이 힘차게 비상하려 하고 있다. 행복한 군인, 참된 군인이 되고자 노력해온 그의 인생은 출발부터 깊은 신심으로 단단히 다져져 있었다. 신자 집안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중3 때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형이 경기도 안성 안법고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자연스레 천주교를 알게 된 것과 부친이 선종했을 때 장례를 챙겨줬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헌신적 봉사 덕분이다. 1972년(24기)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가톨릭 성서 모임에 참여, 성경공부를 통해 하느님 말씀에 맛을 들이면서 그는 교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동기 생도와 후배 생도들을 성경공부에 참여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당시 사관학교가 있던 대방동은 그야말로 시골이었어요. 매주 먼 길을 와주시는 조 마오로 수녀님 정성에 생도 36명이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죠. 2주뿐인 방학기간의 절반인 1주일을 수녀원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어요. 졸업 당시 138명이던 동기 가운데 현재 절반 정도는 신자가 됐습니다." 박 소장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소위로 임관, 제공호(F-5E/F)전투기 조종사 길로 들어선다. 생도 시절 학교에서 관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방치돼 있던 성체조배실을 매주 청소하고 제대에는 예쁜 꽃까지 놓고 가던 대학생 봉사자 김현미(베르나데트, 57)씨를 만나 1979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혼인 뒤 박 소장은 하느님께 두 가지 약속을 하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첫째는 가족들과 성경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께 십일조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박 소장은 월급이 오를 때마다 봉헌금도 커져 지키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하느님은 (재물보다) 더 큰 은총으로 되돌려 주신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은 봉헌금 중 일부는 의정부에 있는 한 육군본당 성모상 건립에 쓰였다. "십일조는 금액을 떠나 내가 가진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정성'을 뜻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일한다면 직장에서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군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봉사자입니다. 신앙과 업무가 별개일 수 없습니다."시련에도 신앙의 힘으로 박 소장은 2004년 소장 진급을 앞두고 소속 비행단 전투기 두 대가 추락해 후배 조종사 2명이 순직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고, 최근에는 아내에게 모야모야병이 발견돼 아내 건강에 신경쓰느라 중장 진급을 포기했다. 1997년 가족들과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닥친 IMF 금융위기로 자녀도 학업을 포기해야 할 순간을 맞는 등 숱하게 위기를 맞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도로써 하느님께 매달렸다. "추락사고를 겪었음에도 가족과 신자들 기도 덕분에 진급했습니다. 그러나 중장 진급을 했으면 아내가 큰 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느님께 매달리면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아요." 박 소장은 1월 26일 전역을 닷새 앞두고 첫 부임지였던 경기도 성남 제10전투비행단을 찾아 자신의 애기(愛機)인 제공호에 50분간 몸을 실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비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였다. 박 소장의 고별비행이었다. "사관학교까지 38년간 군인으로서 참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인생 1막이 군 생활이었다면, 2막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느님께 봉사하며 살아야지요. 어릴 적 꿈인 교사가 되고 싶고,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에도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창세 1,31) 모습이고 싶어요." 이힘 기자 lensman@이힘2010.02.09

'주님과 함께하는 평화의 일꾼' 다짐전국 교구 2011년 신년하례식 종합전국 교구는 2011년 새해를 맞아 교구장과 사제단, 신자들이 함께하는 신년하례식을 갖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다짐했다. 춘천교구는 3일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수도자, 신자 등 5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김 주교는 사제단 60여 명과 공동집전한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신묘년을 맞아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토끼처럼 빠르고 민첩하게 사랑를 실천하고 증거하자"면서 "교구 모든 사목자와 교우들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진정한 복음화의 길을 열어 2011년이 새로운 복음화의 원년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 대전교구는 3일 충남 연기군 정하상교육회관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 사제단 3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성체조배와 신년교례회를 가졌다. 유 주교는 "지난 2년간 소공동체교육을 실시했고, 지난해부터는 순교영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선교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말씀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건설합시다!'라는 사목교서에 따라 올해부터는 2년간 지속적으로 복음 선교교육을 실시해 본당 구성원 전체가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또 2013년 교구에서 개최할 한국청년대회와 아시아청년대회에 앞서 올해 교구 청년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히고, 교구 사제단에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주문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 인천교구는 1일 답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평신도 단체장과 본당 사목회장단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평화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신년교례회를 가진 데 이어 3일에는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가 함께하는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세계 평화의 날 미사 강론에서 "북한에 종교 자유가 보장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가득하게 되기를 함께 기도하자"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부정적 사고에 갇혀 있기보다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감사하며 살자"고 말했다. 교구 평협(회장 문기득) 주관으로 열린 신년교례회에서 참석자들은 교구장과 정신철 보좌주교에게 세배를 하며 올해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5050 선교운동'과 사회복음화 관련 기념사업, 영성교육피정센터 건립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서영호 기자 amotu@ 수원교구는 4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서 이용훈 주교는 강론을 통해 "신묘년에는 주님께 더 다가가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김민경 기자 sofia@ 의정부교구는 3일 경기도 양주시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서 교구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강론을 통해 "가정뿐 아니라 지역사회, 교회 안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작은 봉사와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형제애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교구 사제단과 각 본당 총회장 및 남녀 총구역장, 수도자, 교구청 직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서연 기자 kitty@ 청주교구는 3일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사제단과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임원진, 평신도 등 6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신년교례미사를 봉헌하고,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세째 해를 열었다. 장 주교는 강론에서 "올해로 탄생 190주년, 선종 150주년을 맞는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난치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치유를 받도록 전구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면서 "성체성사의 힘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교구는 또 구동회(요한, 청주 용암동본당)ㆍ이현주(바실리사)씨 가정 등 10가정에 성가정 축복장과 장 주교 친필 사인이 담긴 금장 성경을 수여했다. 장광동 명예기자 jang@ 마산교구는 3일 창원시 양덕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안명옥 주교와 사제단, 신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하고 올 한해도 순교영성으로 세상 복음화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미사 후에는 전 교구장 박정일 주교 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손춘복 명예기자 광주대교구는 1일 광주가톨릭대 평생교육원 성당에서 교구 평협 신년하례식을 가졌다.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이날 참석한 평신도 대표 160여 명에게 소통과 친교를 통한 하느님과 일치를 강조하면서 "전례생활 활성화를 통해 이러한 일치를 이뤄가자"고 당부했다. 또 평신도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평화의 일꾼으로 거듭나길 희망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 제주교구는 1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 등이 참례한 가운데 신년하례식을 겸한 '티없으신 성모께 교구를 봉헌하는 미사'를 거행했다. 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올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면서 "이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사 참례자들은 이날 미사 중에 '성모성심봉헌문'을 낭독하며 성모께 우리나라와 제주교구, 그리고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수정 기자 남정률2011.01.04
![[특집]방글라데시 의료봉사ㆍ빈민가 현장 동행취재2](//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231_1.0_titleImage_1.JPG)
[특집]방글라데시 의료봉사ㆍ빈민가 현장 동행취재2기찻깊 옆 빈민촌에 희망의 씨앗 심는다 선로 옆 얼기설기 엮은 빈민가 끝도없이 이어져 떼제 공동체와 청소년 쉼터 '말구담 클럽' 운영 예수회 '기쁨나눔' 통해 의료·급식·축구부 지원마이멘싱 역사 바로 앞 기차 선로 옆으로 빈민가가 이어진다. 기찻길 옆 땅은 국유지여서 빈민들을 내쫓지 않아 방글라데시에선 기찻길 옆에 빈민가가 생겨났다. 선로 안에서 한 아버지가 두 손 위에 딸을 올려놓고 묘기하듯 놀고 있다. 선로 안에서 한 아버지가 두 손 위에 딸을 올려놓고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다. 마이멘싱 역사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와 달리 방글라데시는 역사 안팎으로 어디서나 드나든다. 콘크리트가 뭉텅뭉텅 패고 부서진 승강장은 행려자들이 점령했다. 희망, 꿈이라는 단어가 사치스럽다. 누추하고 추레한 삶과 불쑥불쑥 마주해야 한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은 환영마냥 기찻길을 따라 뻗어나간다. 기차 선로 침목 주위엔 대나무로 얼기설기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넝마를 덮은, 집 같지도 않은 집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엄마 젖을 빨던 아이는 이방인이 신기한듯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감동이 밀려올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라'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릴 새도 없이 셔터를 들이댔다. 발가벗은 아이는,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일어서서 기우뚱한다. 그 표정이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시스터" 연호하는 아이들 현지 빈민가 사도직활동을 책임진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방글라데시 분원 성경림(마리아) 수녀와 함께 빈민가로 들어섰다. 성 수녀를 보고 아이들이 먼저 달려온다. "시스터"를 연호하는 아이들 표정 또한 무척이나 밝다. 삶의 환경이 열악하다고 그 삶까지 우중충한 것은 아닌 듯하다. 곳곳에 쓰레기와 오ㆍ폐수가 넘쳐나며 악취가 진동하는 삶터로 따라 들어갔다. 때마침 한 할머니가 식사를 준비한다. 낡은 오두막 곁에 불을 피우고 화덕에 낡은 냄비를 올려놓고 무언가를 끓인다. 성 수녀가 그에게 다가가 인사을 건네며 영양제를 주자, 순식간에 이웃들이 몰려든다. 아이들이 맨 먼저 다가서고, 여인네들도 이어 쭈뼛쭈뼛 나선다.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도 몰려드는 인파에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물을 마시던 한 아이는 카메라를 들이대자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돌린다. 한 발자국씩 뗄 때마다 이웃들이 계속 모여들어 빈민가 주민들이나 아이들과 만남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길거리 아이들이 모여드는 말구담 마을 클럽으로 향했다. 수녀들은 현지에 먼저 파견돼 있던 떼제공동체와 함께 '말구담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낡은 대나무로 벽체를 만들고 양철 지붕으로 햇빛을 가린 뒤 바닥에 마대를 깔아 놓은, 소박하다 못해 추레한 공간이다. 26㎡(8평)쯤 돼 보이는 어둠침침한 클럽 안에는 20 명 남짓한 아이들이 몰려와 노래를 부르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생계를 잇는 아이들로, 저녁이 되면 길거리 아무데서나 잠을 자곤 했다. 떼제공동체는 이들을 위해 1997년 정부 땅을 빌려 방글라데시 전통 건축 양식대로 대나무 집을 세우고 클럽을 열었다. 한때는 길거리에서 잠자는 아이들을 데려와 클럽에서 재우기도 했는데, 화재가 나 하는 수없이 2009년에 다시 세운 뒤로는 밤에는 문을 닫았다가 낮에만 열고 있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클럽 봉사자로 활동 중인 하니프 아벨(27)씨는 "원래는 나도 이 기찻길 옆 빈민가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먹고 살았는데 떼제공동체 수사님들을 만나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배운 것을 전하고 있다"면서 "아이들도 우리 봉사자들처럼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되거나 장사를 해 자신의 길을 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송상욱(율리아노, 48) 교수를 비롯한 성 빈센트병원 의료봉사팀원들이 클럽에 들어서자, 봉사자 지도에 따라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아이들은 이내 같이 놀자는 듯 수도자와 봉사자들 팔에 매달린다. 노래와 함께 율동도 보여준다. 이전에 클럽 사도직을 맡았던 때문인지 김성자(스콜라스티카) 수녀에게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 봉사팀원들이 답가를 부르자 잠깐 밖에 나가 꺾어온 꽃을 전하며 환호한다. 5년째 마이멘싱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김 수녀는 "선교란 가난한 이들에게 젖어들어 이들이 인간 존엄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람답게 살도록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들이 비록 삶의 희망 같은 건 갖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도록 도우려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현지 빈민가 소식을 접한 예수회 한국관구 관할 해외원조법인 (재)기쁨나눔은 지난해 3월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수도자들과 손을 잡았다. 10개월간 성 빈센트 드 뽈 클리닉을 찾는 빈민들 의료비 지원에 262만여 원, 빈민가 청소년들 제빵기계 구입 및 급식, 현지 빈민 청소년 축구부 지원 사업 등에 1382만여 원 등 모두 1694만여 원을 지원했다. 특히 기쁨나눔의 의료지원을 통해서는 지난해 5월 니남(70)씨가 백내장 수술을 받고 활기찬 삶을 살게 됐고, 뇌수막류를 앓고 있던 수한이도 수술을 받고 건강해졌다. 또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는 이슬람ㆍ힌두 빈민가 청소년들 급식을, 매주 금요일(이슬람력으로는 금요일이 일요일) 아침에는 현지 청소년들이 축구를 통해 영육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축구부 활동을 이끌었다. 유니폼과 축구화, 축구공 등을 지원해 이뤄지는 축구부 활동은 현지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지난해 3월 설립된 기쁨나눔이 10개월간 후원자 300여명을 통해, 인터넷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소액기부를 유도하고, 지원 대상지에서 이뤄질 구체적 프로젝트를 통해 단체 기부를 이끌어낸 덕분이었다. 이같은 기쁨나눔의 후원을 기반으로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수도자들은 떼제공동체 수도자들과 사도직에 연대하며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촛불처럼 태우고 있다. 마이멘싱(방글라데시)=오세택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02.15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2) 제1차 니케아 공의회(상)삼위일체 교리 바로 세운 첫 번째 공의회325년에 개최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모습.◇배경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어떻게 셋으로 구별될 수 있는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교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는 초기부터 이를 둘러싼 숱한 논쟁이 제기됐고, 많은 이설이 생겨났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박해를 받아온 그리스도교가 신앙 자유를 얻은 직후인 4세기 초반에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다시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논쟁 발화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고 불씨를 당긴 사람은 사제 아리우스였습니다. 아리우스는 진짜 신은 하나여야 한다는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단일성을 철저하게 고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의 아들 곧 성자 그리스도는 참된 하느님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리우스에게 성자는 참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성자는 피조물의 으뜸이지 하느님과 똑같은 본질을 지닌 완전하고 절대적 신일 수 없습니다. 성부만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참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아리우스의 주장이었습니다. 아리우스의 이런 주장은 그의 독창적 사상이라기보다는 이미 3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널리 확산된 '그리스도 종속설' 또는 '성자 종속설'의 연장선 상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곧 성자는 성부와 똑같지 않고 성부에게 종속돼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더 극단화한 것이 아리우스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에 상당수 성직자와 평신도가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에 어긋난다는 반대 또한 만만찮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로마,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일찍부터 총대주교좌가 있던 그리스도교 5대 중심 교회 가운데 하나이자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만큼 지지자들과 반대자들간 대립과 다툼도 심각했습니다. 대립이 심각해지면서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데르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318년 교회회의를 열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추방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밖에서도 지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알렉산데르 주교에게 아리우스를 다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알렉산데르는 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다시 교회회의를 열어 아리우스를 파문합니다. 323년이었습니다. 아리우스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파문 제재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아리우스는 이집트에서뿐 아니라 다른 동방 교회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사이에 분열과 대립이 극심해졌습니다. 교회 내의 이런 분열이 당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관용령'이라는 칙서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도 자신들의 신앙을 자유로이 고백하고 실천할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박해로 지하에 숨어 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준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또한 로마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불거져 나온 교회 내 분열이 제국의 평화에도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 이 분열을 해결하고자 나섰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스페인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 사절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호시우스 주교는 중재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안의 중요성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마침내 제국의 모든 주교들을 자신의 여름 왕궁이 있는 니케아로 소집하지요. 325년이었습니다. 황제는 회의 장소로 자신의 왕궁을 내주었을 뿐 아니라 회의에 참석하러 오는 주교들에게 제국의 역참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느님 단일성 제기한 사제 아리우스가 삼위일체 반박하자알렌산드리아 주교가 아리우스 파문하며 교회 내 분열 시작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교들을 니케아에 소집해 회의열어대부분 동방 주교 참석, 삼위일체 인정한 니케아 신경 채택 ◇과정 니케아 공의회는 회의 내용이나 과정에 관한 공식 기록이나 문서가 없어서 회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참석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전해지는 기록들을 토대로 하면 공의회는 5월 20일에 시작됐습니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수와 관련해서는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설과 250명이 넘는다는 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공의회에 참석한 성 아타나시우스는 나중에 공의회 참석자가 318명이라고 밝힙니다. 318이라는 숫자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종들을 가리키는 숫자(창세 14,14)로 다분히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지요. 참석 주교들은 동방(로마를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 온 주교들이 대다수였고, 서방(로마와 그 서쪽에 있는 교회들) 주교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자문 역할을 한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를 포함해 열 손가락에도 꼽히지 않을 정도로 소수였습니다. 로마 주교인 교황 실베스테르 1세(재위 314~335)는 연로해서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사제 비투스와 빈첸시우스를 특사로 파견했습니다. 참석한 주교들 가운데는 박해 때 고문을 받아 양손 근육이 마비된 주교도 있었고 한쪽 눈을 잃은 주교도 있었다고 합니다. 회의가 열렸고 황제는 명예의장으로서 개회 인사를 했습니다. 주교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화해와 평화를 막는 장애물을 없애고 모두가 일치해서 신앙 안에서 화해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회의는 의장인 교황을 대리해서 호시우스 주교와 다른 이들이 주재했습니다. 참석 주교들은 아리우스 논쟁의 불씨가 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문제와 부활대축일 날짜를 정하는 문제를 논제로 삼아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격론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심상찮게 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황제 자리에서 내려와 화해를 요청하는 등 적극 개입했다고 합니다. 약 한 달 간의 열띤 논쟁 끝에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데르가 이끄는 정통파 주교들이 이겼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하느님으로서 하나의 본체 또는 본질(동일 본질)을 지닌다는 내용의 니케아 신경이 채택됐습니다. 325년 6월 19일이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cpbc2011.02.15
![[성경 속 상징]36-반지- 사회적 신분과 지위의 징표](//cpbc.co.kr/CMS/newspaper/2009/02/rc/284849_1.4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36-반지- 사회적 신분과 지위의 징표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한국이 낳은 '피겨 퀸' 김연아 선수는 2월 7일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김연아 선수 금메달 소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적 피겨 요정으로 도약한 김연아 선수는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의 모든 것은 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됐다. 최근 언론 보도 때마다 화면에 잡히는 김연아 선수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낀 반지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커플링이다', '의상과 맞춘 패션 반지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이다' 등 네티즌들 추측이 난무했다. 피겨 퀸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는 묵주반지다. 지난해 5월 바다의 별이신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스텔라'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한 김연아 선수는 경기에 나설 때, 연습할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항상 묵주반지를 끼고 있다고 한다. 반지는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이면서 또한 권위ㆍ충성의 상징,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반지를 주는 것은 권력을 위임함과 진실을 맹세하고 상대편의 인격과 하나를 이루는 일치를 상징한다. 또한 반지는 영원, 연속, 생명을 상징한다. 하나로 묶어서 연결함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결혼반지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결혼반지는 정절의 징표, 진실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오늘날에도 연인들이 커플링을 약속의 표시로 이용한다. 반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고대 이집트 때부터라고 추정한다. 그리스에서 반지는 자유로운 신분을 지닌 남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로마 시대 때도 반지는 특별한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그래서 원로원 의원은 금반지를 끼었다. 중세 시대 대관식에서 반지는 왕과 그 나라의 결합을 나타냈다. 오늘날에도 주교 반지는 주교 품위와 관할권의 표지를 나타낸다. 성서 시대에도 인장, 혹은 봉인과 인장이 딸린 반지는 접촉해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의미와 존경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요셉을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며 옥새 반지를 끼워준다(창세 41,41-42). 이처럼 권력을 위임할 때 인장 반지를 손에 끼워줬다(에스 3,10 참조). 신약에서도 사회적 신분과 지위의 징표로 사용했다. 반지를 다시 끼는 것은 그 사람 권리를 회복하는 의미를 지녔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루카 15,22).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는 그림이 새겨진 일명 '어부의 반지'는 교황 권위를 상징하며 성 베드로 사도 후계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교황청은 역시 그의 라틴어 이름이 새겨진 새 반지를 제작하고, 교황은 선종 때까지 이 반지를 끼게 된다. 예전에는 교황이 공문서를 봉인할 때 이 어부의 반지를 사용했으며 교황을 알현하는 신자들은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무릎을 꿇고 이 반지에 입을 맞췄다. 교황이 선종하면 반지를 부수게 되는데 이는 전 세계 가톨릭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 대한 그의 권위가 끝났음을 상징한다. 부서진 반지는 교황 관속에 넣어지는데 위조를 막기 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은일2009.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