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나?] (82) 무조건 받아들어야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0/12/rc/360834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82) 무조건 받아들어야 하나요?Q.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나요? 신앙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새내기 신자입니다. 그런데 가끔 성경을 묵상하면서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본당 신부님 강론을 들으며 '정말 그럴까'하고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배 신자들은 "아직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다. 신앙은 한 오라기 의심하는 마음 없이 순수 그 자체로 믿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 말씀에 대해 공감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외침이 있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인가요? 아니면 제가 가톨릭교회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요? Q.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제님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약하지도 가톨릭교회가 맞지 않은 것도 아닌 지극히 정상인 분입니다. 오히려 형제님에게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신자 분이 병적 콤플렉스를 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이 가지는 정신적 병리현상 중에 '내사(Introjection, 대상의 속성을 자기 것으로 동화시키는 것)'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펄스는 "사람은 자신의 공격성을 사용하는 것을 제지당하면 권위자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자기 안에 동화되지 않은 채 사람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심리적 부작용을 일으키는 타인의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을 내사라고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음식을 먹는데 씹는 과정 없이 그냥 삼켜서 위장 안에 음식물이 그대로 남아 체증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렇게 외부 메시지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과정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면 첫째, 내사 때문에 고정된 행동패턴을 보이고 습관적이고 자동화된 행동을 반복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 마음에 기쁨이 거의 없고, 고해성사를 보기 싫어서 성당에 간다고 하는 분들이 바로 이런 유형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기도가 마음에 생동감을 주는 게 아니라 지루함과 무기력함을 제공하는 좋지 않은 현상이 생깁니다. 둘째, 매번 자신의 다양한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내사된 것들의 명령에 따라 그것이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예컨대 종교적 가치관과 부모의 가치관, 사회적 도덕률을 지나치게 많이 내사한 사람들은 그 도덕적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윗사람에게서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듣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며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만드는 창의적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이 책임지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이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며 그것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입니다. 신자들이 작은 기도모임에서 자유기도 하는 것을 아주 부담스러워 하고 자기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겸손해서가 아니라 내사가 심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셋째, 관계 안에서 갈등이 심합니다. 즉, 심리적 자기고문게임을 하거나 대인관계에서 심한 갈등을 빚습니다. 외부 메시지를 씹는 과정 없이 그냥 삼키면 마음 안의 공격성(치아공격성)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돼 자신을 비난하고 자해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면 그런 갈등이 외부로 투사돼 다른 사람과도 심한 갈등을 빚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치아가 발달하지 않아서 씹어야 하는 음식물을 주지 않고 죽처럼 그냥 삼켜도 되는 것을 먹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했는데도 그냥 삼킬 수 있는 음식물을 주면 성장을 저해 받듯,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유아적 신앙기에는 그냥 믿어도 되는 신앙생활 패턴이 가능하지만, 신앙생활의 성장을 위해서는 나의 신앙 가치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음 안의 치아공격성을 사용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말씀들을 천천히 씹고 음미하고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관계 안에서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형성돼 마치 나뭇가지가 어지러이 얽힌 숲과 같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신앙에 입문하게 되면 하느님 말씀과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식별되지 않고 동일시되는 현상이 생깁니다. 부모님 말씀을 복음말씀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 부모님 말씀이 건강한 것이 아닌 병적인 경우에는 점점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앙생활조차도 성장하기는커녕 병적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말씀이 마음에 양식이 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인생의 덫이 돼 하느님께 가려는 발걸음을 제자리에 맴돌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깊은 생각을 하는 시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제님의 의심은 건강한 것이니 자신을 비하하지 마시고 지금의 자세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힘2010.12.14

제5차 아시파 총회 (하) 강연 및 인터뷰 10월 28일 막을 내린 제5차 아시파총회에 참가한 강우일ㆍ티로나 주교 인터뷰와 소공동체 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로빙거 주교 강연을 싣는다. 두 주교는 "소공동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구현하는 친교의 교회인 동시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이뤄진 아시아교회를 하나로 묶는 끈"이라며 소공동체의 미래를 낙관했다. 로빙거 주교는 복음화라는 큰 틀 안에서 성경과 소공동체, 그리고 소공동체와 실천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강연-복음화와 소공동체(프리츠 로빙거 주교,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알리왈교구장) 소공동체의 목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복음화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의 메시지가 나에게 다가와야 한다. 복음화는 참여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다. 주일미사에 의무적으로 참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고, 그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참여다. 복음화는 먼저 자신의 삶에 응답하는 것이다. 혼자 성경을 읽고 이해한 후 이에 대해 스스로 응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공동체는 많은 장점을 갖는다. 소공동체에서는 각자 성경을 읽고 짧게 응답하며 기도할 수 있다. '복음나누기 7단계'에서 어떤 성경 말씀이 마음에 와 닿으면 그 말씀을 반복해서 곱씹을 수 있다. 그 말씀이 왜 와 닿는지 스스로 대답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 안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하느님 말씀을 더욱 깊이, 그리고 조심스럽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음나누기 7단계의 큰 장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겸손한 자세를 배운다. 성경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화는 또한 신앙을 삶과 연결시킨다. 이는 말씀이 내 삶과 연결되는 것이다. 복음 나누기를 통해 말씀을 숙고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응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소공동체가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제들을 자신의 것으로만 여겨 세상 문제를 보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읽고, 해석해야 한다. 평신도가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성경 해석은 어떤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이들도 성경을 읽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느님 말씀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소공동체를 보자. 소공동체에서도 각자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 이는 상호의존적이다. 소공동체에서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눔을 가지면 주일미사 때 사제 강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소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은 후에는 반드시 그것을 자기 삶과 연결시켜야 한다. 신앙을 새로이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소공동체는 도움이 된다. 소공동체를 통해 교회 가르침이 무엇인지, 가톨릭교회는 어떤 교회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소공동체는 신앙을 찾는 이들에게 활짝 열린 문과 같다. 특히 사제나 수도자를 직접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소공동체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열린 이웃이다. 소공동체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가장 기초적인 모임이다. 소공동체는 현대교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다만 아직까지 명백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도 연구 중이다. 아시파총회 같은 모임에서 서로 배우고 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교회 본질인 '친교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소공동체 역할은 결정적이다. ▨소공동체, 삶과 신앙의 중심에 서야(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 1990년대 초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재직할 당시 한국교회에 소공동체를 처음 도입한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명실공히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의 산증인이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열린 아시파총회에 이번 총회를 포함해 네 번이나 참가할 만큼 소공동체 활성화에 열정을 쏟고 있는 강 주교는 "제5차 총회는 소공동체가 말씀 나누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삶을 일치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한국교회 소공동체는 아직 복음 나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면에서는 많이 부족하죠. 그런 면에서 필리핀교회는 많은 귀감이 됩니다." 1960년대부터 소공동체 운동을 시작한 필리핀교회는 필리핀의 사회ㆍ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사회를 변화시키고, 필리핀이 민주화된 이후에는 정치적 문제와 상관 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인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강 주교의 설명. 강 주교는 아시파총회가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또 다양화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총회에서는 사제와 주교들이 참석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소공동체에 대한 성직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커진 거죠. 소공동체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징표입니다." 강 주교는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교회상의 본질과 핵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상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의회 문헌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친교의 교회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사목의 틀은 바로 소공동체라는 것이 강 주교의 지론이다. 강 주교는 또 "예비신자를 입교시켜 신자 수를 늘리는 전통적 의미의 선교에서 한걸음 나아가 신자 개개인이 복음적으로 삶으로써 세상을 복음적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복음화"라면서 "소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복음화"라고 말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보편교회인 가톨릭은 다른 나라 교회들과 친교를 이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아시아교회와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총회에 참가한 모든 나라 교회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 됐을 것으로 믿습니다." ▨풍성한 친교의 나눔이 축복(FABC평신도가정사무국 의장 롤란도 티로나 주교, 필리핀 인파타교구장) "아시아 전역에서 모인 신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었던 풍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시아지역이 참으로 종교적이고 또 영적 보고(寶庫)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총회를 주관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평신도가정사무국 의장 롤란도 티로나(필리핀 인파타교구장) 주교는 "아시아 전역의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한데 모여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한데 어울린 것 자체가 큰 성과"라면서 총회 결과는 물론 풍성한 나눔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부터 평신도가정사무국 의장을 맡고 있는 티로나 주교의 아시파총회 참석은 2006년 인도에서 열렸던 제4회 총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티로나 주교는 "소공동체는 가톨릭 신자가 소수인 동시에 가톨릭 신자로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아시아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굳건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아시아교회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소공동체"라고 아시아교회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시파는 소공동체를 매개로 아시아교회의 연대와 화합을 일궈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파는 아시아지역에 잠재해 있는 풍요로운 영적 유산을 찾아낼 것이고, 아시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티로나 주교는 2004년 대전 정하상 교육회관에서 열렸던 FABC 제8차 총회와 2007년 선종한 정명조(부산교구장) 주교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부산교구는 일본 히로시마교구와 함께 인파타교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교구. 티로나 주교는 "방한 당시 한국 신자들의 열정적 신앙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공동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 이웃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께서 이땅에서 하신 그대로 실천하기를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남정률2009.11.10
![[사람들]'쉰셋에 떠난 해외선교' 방글라데시 선교 이광미 스테파니아 수녀](//cpbc.co.kr/CMS/newspaper/2010/10/rc/352500_1.0_titleImage_1.jpg)
[사람들]'쉰셋에 떠난 해외선교' 방글라데시 선교 이광미 스테파니아 수녀 '쉰셋, 이 나이에 선교사로 떠날 수 있을까?' 2008년 11월. 방글라데시라는 새 소임지를 받아든 이광미(스테파니아,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수녀는 스스로 물었다. 적잖은 나이에 이방, 그것도 이슬람 땅에서 과연 활동적으로 사도직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든 것. 그런데 앞서 파견된 한 수도자에게 방글라데시 국민들 평균 수명이 51살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이 수녀는 '여분의 삶'을 방글라데시에 바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서 받아들이고 순명했다. 홍콩을 경유해 다카 공항에 내려 바라본 대지는 회색이었지만, 그 땅 모두가 회색만은 아니었다. 가난하고 병든 작은 예수들이 있었고, 순박하고도 따스한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그리고서 2년 세월이 지났다. 이 수녀는 이제야 고백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의 내면이 참 많이 부서졌어요. 하느님께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는 훈련을 시키셨지요. 이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이젠 방글라데시를 떠나올 수가 없게 됐어요. 방글라데시는 제게 있어 '있어야 되는 곳'입니다." 이 수녀가 활동하는 사도직 현장은 수도 다카에서 북쪽으로 120㎞ 가량 떨어진 마이멘싱 시다. 동쪽으로 메그나 강, 서쪽으로 브라마푸트라 강 물길이 지나는 저지대로, 우기 때면 광활한 습지와 물이 괸 낮은 웅덩이 하오르(haor)가 인상적인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에서 간호사로 산다. 소수부족으로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만디족(혹은 갈오족)이 많이 사는 마이멘싱교구(교구장 포넨 바오로 주교)는 교세가 7만 명에 이른다. 이 수녀가 활동하는 성 빈센트 드 뽈 의원(St. Vincent de Paul Sick Shelter &Clinic)은 갈 곳 없는 환우들의 쉼터이자 진료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용한 의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 등 해외 의료진들이 해마다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건기 때 2~3주씩 의료봉사를 하고 가는 '열린 진료소'로 쓴다. 의료진이 없을 때, 환자들이 오면 인근 국립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도록 주선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서 치료해 보낸다. 물리치료사인 성경림(마리아) 수녀, 현지인 간호사 2명과 진료소 운영에 온 힘을 쏟는 이 수녀는 인근 빈민가에서 거리 소녀들을 데려와 교육하고 보호하는 '희망이 머무는 집' 김성자(스콜라스티카) 수녀와 함께 수도공동체를 이룬다. 진료소를 찾는 환자들은 피부병 환자들이 가장 많고, 외과 환자들도 적지 않다. 이웃한 슬럼에서 노숙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찾는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꼭 노숙 청소년들에게 급식활동도 하고 있다. "하루에 환자들을 대략 일고여덟 명 정도 보살펴요. 교구 신부님들 추천으로 치료를 하는데, 지금은 의료진이 없어서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가 없어 안타까워요. 한국에서 1~2년이라도 기한을 정해서 의료봉사를 와주시면 고맙겠어요. 공동체도 열악하지만, 함께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는 교리상 감사하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데서 드러나듯 우리와는 문화 자체가 사뭇 달라 사도직 활동도 때때로 일종의 '피로증후군'에 젖는다. 질병이라는 게 한 차례 치료나 수술만으로 금세 호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차례 입원을 거듭해야 하고 때로는 타계하는 경우도 많아 암담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하느님께 의탁하게 된다는 이 수녀는 "아무래도 지금은 정착하는 단계이니 시행착오도 더 있을 것 같다"며 "그들 속으로 더 녹아들어가게 되면 그들처럼 살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27일 출국.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10.05
![[공동체]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기념비 제막](//cpbc.co.kr/CMS/newspaper/2010/03/rc/328769_1.0_titleImage_1.jpg)
[공동체]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기념비 제막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사제단, 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단장 및 단원 등이 논산 부창동성당에서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기념비 제막 및 축복식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평화의 모후' 레지아(단장 이석구)는 3일 충남 논산시 부창동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4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레지오 마리애 도입 기념비 제막 및 축복식을 가졌다. 1957년 3월 3일 논산 부창동본당에 '천지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도입됨으로써 교구에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된 것을 기념해 세운 빗돌이다. 화강암으로 가로, 세로, 폭이 각각 130㎝, 230㎝, 60㎝ 크기로 제작됐으며 바닥 받침 길이는 130㎝다. 기념비 조각은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 가운데서 '저희 레지오의 불기둥이 될 믿음을 주소서'라는 대목을 형상화했다. 맨 위 비둘기 형상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성령을, 가운데 거꾸로 된 십자가는 베드로 사도가 거꾸로 십자가 형을 받은 것을 뜻한다. 비석 중앙 성모상 조각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머리 위 원형 후관을 둘러싼 영문 글자 'LEGIO MARIAE'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성모님 군대라는 뜻이다. 성모 발 아래 원형은 지구를 뜻하며, 지구 가운데 묵주와 손 조각은 끊임없이 마음을 다해 기도를 바치라는 뜻이 담겼다. 전체 조형물을 떠바친 모양은 성경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말씀대로 살면 새 힘을 받게 되고 말씀에서 나오는 힘으로 그리스도인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말씀을 증거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단 부분 성경 왼쪽에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성모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구체적인 삶에서 실천하여 이 세상에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유 주교 친필 휘호가 새겨졌고, 오른쪽에는 교구 레지오 마리애 운동의 씨앗을 뿌려 초석을 이룬 것을 기념하고 후배 단원들 표상으로 삼으려하는 취지가 실렸다. 유 주교는 격려사를 통해 "50주년을 감사하고 레지오 정신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기도와 마음가짐과 각오를 모아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큰 축복이며,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낳으셨듯이 우리도 삶을 통해서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주는 작은 성모 마리아가 돼 성모님을 닮은 작은 성모님처럼 참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반세기만에 꾸리아 144개, 쁘레시디움 1779개, 단원 수 3만487명(행동단원 1만6630명)으로 성장한 것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를 통해 50주년을 기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정완영 명예기자 0espresso@pbc.co.kr오세택2010.03.09

이웃사랑, 인터넷을 타고다음카페 '라면식탁에 평화를'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들 위한 사랑 모임다음카페 '라면식탁에 평화를…'카페지기 이상열씨(왼쪽)와 김이부씨가 카페를 둘러보고 있다. 가장 배고픈 이들의 식단, 라면. 가난한 이들의 '라면 식탁'에 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다음카페 '라면 식탁에 평화를…'(cafe.daum. net/rtpeace) 회원들이다. 1979년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견진을 받은 서울 응암동본당 신자들은 '장년사도회'(회장 조경제)를 만들어 당시 본당 주임이었던 최창화 신부(현 몬시뇰)를 담당 신부로 두고 두 달에 한 번씩 피정과 성지순례, 산행 등을 함께하며 30여 년간 친목을 다져왔다. 자신들만의 카페를 운영하며 친교를 나눠온 회원들은 나이가 많은 회원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죽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며 2년 전 다음카페 '라면 식탁에 평화를…'(이하 라면식탁)을 만들었다. 라면밖에 못 먹는, 배고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에서 카페에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 모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하느님께 기도 한마디 △성경 한 줄 쓰기 △성경공부방 등 수십 개 코너를 통해 함께 '기도'하는 것에 중점을 둬온 라면식탁은 좋은 의도로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회원들이 하나 둘 늘어, 가톨릭 관련 다음 카페 1만7000여 개 중 순위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카페 설립 2년 만에 회원 수가 2500명이 넘자 이를 기념해 후원에도 나섰다. 지난 2월 한국 카리타스에 아이티 지원 성금 252만2000원을 기탁, 첫 후원사업을 실시한 것. 당시 회원 수 2522명이었던 라면식탁은 2522명이 1000원씩 봉헌한다는 의미로 252만2000원을 지원했다. 앞으로 한국카리타스로부터 계좌번호를 받아 지속적으로 후원에 나설 계획이다. 카페 홍보담당 김이부(실베스텔, 68, 녹번동본당)씨는 "다른 카페는 오락 성격이 강하지만 우리 카페는 성스러운 내용이 많아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글을 올리지 않는다"며 "미국, 캐나다, 중국 등 해외에서 가입한 회원들도 7%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카페지기 이상열(안드레아, 66, 서울 녹번동본당)씨는 "나이가 많아 몸으로 하는 봉사는 하지 못하니 금전적으로나마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2년쯤 후 회원 수가 5000명이 되면 복지법인을 만들어 배고픈 이들을 돕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구청과 보건복지가족부 등을 오가며 법인 설립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는 운영진은 이미 후원자도 마련해 둔 상태다. "카페 활동을 열심히 하는 회원 중 후진을 양성할 계획입니다. 카페에 보다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10.03.09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8> 아라비아에서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가다](//cpbc.co.kr/CMS/newspaper/2011/03/rc/368711_1.1_titleImage_1.jpg)
[기획/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아라비아에서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가다박해자로 떠나 회개한 뒤 핍박받는 자로… "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 은총에 힘입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이제까지 수천 년을 거쳐 오며 신을 찾아 갈증을 느끼는 모든 영혼에게 양식을 제공해온 그러한 인물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며 유일하다." 이 글은 최고의 바오로 연구자들 중 한 분이 쓴 것으로 실제로 바오로를 매우 훌륭하게 설명한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하느님과 끊임없이 교통(交通)한 3년은 바오로 사도의 감성적 삶과 정신세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다마스쿠스에서 하나니아스가 그들의 첫 만남에서 바오로에게 나타내 보였던 바로 그것을 그의 마음속에서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 9,15). 이러한 책임의식이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는 사막에 머물 수 없었다. 그는 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고 전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전형적인 고행자의 모습으로 사막에서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가 사막으로 떠나있는 동안 다마스쿠스의 정치적 상황은 바뀌어 있었다. 이 도시는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대표가 다스렸으나, 나바테아 왕국(요르단 암만에서 서남쪽 150㎞) 아레타스왕에게 양도됐으며, 아레타스왕은 거기에 총독을 세웠다. 히브리인들은 새로운 정부 아래서 상당한 자유를 누렸고 통치자의 후원을 받았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장님이 됐을 때 기꺼이 자신을 유숙시켰던 유다의 집에 다시 머물렀다. 그 다음 토요일에 그는 유다인 회당(Synagogue)으로 갔다. 성경 낭독 후에 그는 설교하기를 청했다. 그의 설교가 진행되고 구약에 근거해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성취됐음을, 예수가 죽은 후 부활해 살아있음을 증명했을 때 수백 명이 주먹을 쳐들고 그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에게서 물러나라! 변절자다!" 그는 간신히 빠져 나왔다. 변절자를 죽이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은 그때에 아랍 총독에게 돈을 줘 자신들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설득했다. 총독은 만일 그가 도망치려고 한다면 그를 잡아들이라고 모든 성문들에 보초를 세워놓았다. 다마스쿠스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가 위험에 처했음을 알고 피신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밤늦게 사도를 성 옆에 세워진 집들 중 하나로 데려갔다. 그 집의 위쪽 바닥에 있는 창문에서 그는 바깥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준비해 놓은 큰 바구니에 바오로를 들어가게 한 뒤 단단한 밧줄로 묶은 바구니를 성문 밖으로 내려 보냈다. 캄캄한 밤중에 그가 길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 예수님이 나타났다. 그가 바닥에 떨어질 것을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그는 감격했고 마음속 깊이 주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바오로가 내려선 곳은 '교회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이었다. 마음속에서 그는 자신보다 앞서 초대교회에서 사도로 불림을 받은 이들과 교통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났다. 앞선 사도들에게 주님 삶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듣기 위해서였다. 먼 길을 걸어온 뒤 성스러운 도시에 다가갔을 때 예루살렘은 그에게 갖가지 복합된 감정을 야기했다. 부제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인 장소를 지날 때 그가 전율했으리라는 사실은 지금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스테파노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에게 범한 잘못을 바로잡고 싶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살인자이며 박해자로 떠났으나, 회개한 뒤 핍박받는 자로 다시 돌아왔다. 예루살렘에서 바오로의 입지는 유다 정신을 배반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다인들의 적이었고, 그가 얼마나 교회를 잔인하게 핍박했는지를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이라는 사면초가의 특별한 곤경에 처해 있었다. 성전 학교에서 바오로의 옛 동기생인 바르나바(그 이름은 '위로자'라는 뜻)는 다른 사람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은사를 가졌다. 그래서 그는 바오로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도들, 곧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데려갔다. 바오로는 당시 다른 사도들을 알지 못했다. 점잖고 동정심이 많고 항상 친절했던 베드로 사도는 갓 도착한 바오로를 불러 마리아의 집에서 유숙하게 했다. 마리아는 복음사가 마르코의 어머니였고, 바르나바는 마르코의 아저씨였다. 아마도 이 두 사도는 14일간 함께 머물며 나눌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았을 것이다. 바오로는 베드로에게서 주님이 행하고 가르친 것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경청했을 것이다. 두 주간에 걸쳐 이뤄진 베드로와의 접촉은 그리스도에 관해 갖고 있던 바오로의 이해를 유다 전통 위에서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바오로는 베드로에게서 주님 삶에 대해 자세하게 듣고 주님께서 성찬예식을 행한 최후의 만찬 장소로 함께 가주기를 그에게 청했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피로 물들은 골고타도 가봤을 것이다. 골고타의 작은 언덕 위에 무언가를 기원하며 고개를 숙인 베드로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가 갑자기 속삭이면서 무릎을 꿇고 "여기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래서 바오로는 떨리는 손을 십자가를 세웠던 구멍에 넣었다. 그가 베드로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케파(베드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과 나도 전혀 상관없지는 않습니다. 나는 주님 몸인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 자신이 저에게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선 저를 용서하시고 저를 사랑하시고 박해자인 저를 바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대답했을 것이다. "아! 나의 사도 바오로여, 주님은 항상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분과 3년간 함께 지냈고 그 분의 가르침을 들었고 수많은 기적을 봤고 그 분의 사랑을 봤고 저의 발까지 씻기셨으나, 저는 다음 날 그를 세 번이나 부인했으며 맹세코 그를 모른다고 잡아뗐습니다. 이 모든 일들 후에도 재판에서도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맹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처럼 베드로는 눈물을 터트렸을 것이다. "부활 후 나를 용서하시고 그분 곁에 나를 그분의 사도로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붙들어 두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그분을 부정하거나 박해했던 이들에게까지도 베푸시는 우리 주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때 이후 두 사도는 로마 네로 황제 박해로 인해 순교할 때까지 온 생애 동안 강력한 사랑의 사슬로 하나가 됐다. 바오로는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동안 바리사이인들과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려 시도했고 헬라어를 말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라고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로 히브리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들고 일어나게 됐던 것이다. 형제들이 그것을 알게 됐을 때 그를 카이사리아로 안전하게 피신시켰고 거기서부터 바오로는 고향 타르수스로 향했다(사도 9,28-30 참조).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기도할 때 주님으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어서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라…. 가거라. 나는 너를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려고 한다"(사도 22,17-21).오세택2011.03.01

서울 이태원본당, 역대 주임신부 등 초청 설립 50주년 감사미사믿음과 희망, 사랑 안에서 새로운 50년 시작 다짐이태원본당 설정 5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된 4일, 성당 마당에서 사물놀이패가 신명 나는 연주로 잔칫집 분위기를 자아냈다. 외국인의 거리 서울 용산구 이태원(梨泰院)에 자리 잡은 이태원본당(주임 전형의 신부)은 4일 설립 5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믿음과 희망, 사랑 안에서 하나가 돼 새로운 50년을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임응승ㆍ장홍선(이상 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등 역대 주임신부 6명이 참석한 이날 미사에서는 평소 입장 때 치지 않던 종을 타종(打鍾)해 이태원 일대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이날 기념미사는 본당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동 축일)을 기해 봉헌돼 더 의미가 깊었다. 본당 역사편찬위원회(위원장 허정)가 그동안 수집한 사료를 모아 제작한 DVD 영상물 상영으로 막을 올린 이날 행사는 기념미사와 기념식, 풍물패 공연과 청년들 축하공연으로 이어졌다. 전형의 주임신부는 기념미사 강론에서 "설립 반세기를 맞아 이제는 새로운 50년을 향해 함께 나아갔으면 한다"면서 "이태원본당은 교구 217개 본당 중 26번째로 오래된 본당이기에 신자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김대군(사제평생교육원, 재임 1975~77년) 신부는 축사에서 "47년째 사제로 살고 있지만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한 것은 이태원본당에서의 2년뿐"이라며 "늘 마음 속으로 이태원 신자들을 보고 있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장석호(모세) 사목회장은 "초창기 신자가 300명에 불과했던 이태원본당이 한남동본당을 분리시키고, 현재 2000명이 넘는 신앙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들 노력 덕분"이라며 "모두가 하느님 자녀라는 소명 의식을 갖고 사랑과 행복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자"고 말했다. 이태원본당은 역사편찬위원회와 복음화위원회, 성당보존위원회 등을 설립하고, 전 신자 성경쓰기와 묵주기도(163만3593단) 봉헌 등을 통해 50주년을 준비해왔다. 1960년 해방촌본당에서 분리, 신설된 이태원본당은 이태원동과 동빙고동, 주성동 등 7개 동을 관할하고 있으며 1997년에 한남동본당을 분리시켰다. 현재 이태원본당은 일대 재개발 정책으로 성당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10.07.06
![[성경 속 상징] 신발](//cpbc.co.kr/CMS/newspaper/2008/08/rc/263174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신발신을 벗는 것은 존경의 표시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얼마 전 탈북자의 실상을 그린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북한 함경도 한 탄광마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열한 살 아들, 세 가족의 슬픈 이야기이다. 주인공 남자 어린이가 기차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면서 도둑 맞지 않기 위해 신발을 안고 자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소유하는 것은 그 사람을 통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발과 마찬가지로 신발도 소유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됐던 것이다. 그래서 신발 밑에 깔리는 것은 타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신발은 가치 없는 물건을 상징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 주인의 신을 드는 것은 하인이 하는 가장 천한 일중의 하나였다. 주인이 집 안에 들어갈 때 신을 잘 보관했다가 주인이 신을 신을 때 재빨리 준비해야 했다. 구약 시대에 노예들이 신발 한 켤레 값에 매매됐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세 가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아모 2,6). 신발을 신는 것은 특별한 임무나 여행을 위한 준비를 의미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할 때 신발을 신으라고 지시하셨다.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9). 여기서 신발을 신는 것은 그 사람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임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신발을 신는 것은 자유민의 특권이었고 포로와 노예는 맨발로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는 행위가 법적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구원하거나 교환할 때, 무슨 일이든 확정 짓기 위하여 자기 신을 벗어서 상대편에게 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서는 증거로 통하였다"( 룻기 4,7). 또한 루카복음에서 방탕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위해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발에 신을 신겼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루카 15,22). 이것은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에 지니고 있던 권리를 회복한 것을 의미한다. 신발은 점유와 정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발을 벗는 것은 그 장소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하느님은 타오르는 떨기 나무속에서 나타나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 3,5). 성역에 들어갈 때 속세와의 접촉을 끊고 복종과 존경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악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죄인인 인간은 신발을 벗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예의를 갖추고 서야한다는 것이다.조은일2008.08.26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1) 연재를 시작하며시대 고민하며 주님 길로 인도하려는 교회 노력보편 공의회라고도 부르는 세계 공의회는 2000년 교회 역사에서 모두 21번 열렸다. 사진은 1962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21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회기의 한 장면.◇공의회란 공의회(영어 Council, 라틴어 Concilium)는 신앙과 윤리 규범 및 교회 생활과 관련한 주교들의 회합을 말합니다. 지난 1983년에 반포된 보편교회법인 「교회법전」에 따르면, 주교들의 회합과 관련해 가톨릭교회는 세 가지 기구를 두고 있습니다. 주교회의와 주교대의원회의, 그리고 공의회입니다. 주교회의는 한 국가 또는 특정 지역 하느님 백성의 선익을 위한 그 국가 또는 지역 주교들의 상설 협의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CBCK)가 있지요. 주교시노드라고도 하는 주교대의원회의는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 또는 세계 교회 전체를 위한 주교들의 회합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 또는 국가의 모든 주교가 회원으로 참가하는 주교회의와 달리 주교대의원회의는 모든 주교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에서 선출한 대의원 주교들과 교황이 임명한 대의원 주교들이 참석합니다. 또 주교대의원회를 소집하고 회의 주제를 정하는 것은 교황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주교대의원회의에서 참가 주교들에게 투표권이 있지만 그 투표권은 해당 사안에 대한 확정 또는 실행 여부를 가리는 의결 투표권이 아니라 해당 사안을 교황에게 건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리는 건의 투표권입니다. 말하자면 주교대의원회의는 그 자체로 의결기구가 아니라 교황의 자문기구라는 것이지요. 가장 최근에 열린 주교대의원회의로는 지난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중동 아시아를 위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가 있지요. 공의회는 협의체인 주교회의나 자문기구인 주교시노드와 달리 회의에 참가하는 주교들이 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회의입니다. 공의회는 크게 지역(개별) 공의회와 세계(보편) 공의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역 공의회는 다시 전국 공의회와 관구 공의회로 나눌 수 있는데 전국 공의회는 전국 차원에서 여는 공의회를, 관구 공의회는 관구 차원에서 여는 공의회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관구 공의회를 연다고 하면 서울 관구에 속한 모든 교구(서울 춘천 대전 인천 수원 원주 의정부)의 주교들이 참가합니다. 공의회, 신앙 윤리 규범과 교회 생활과 관련한 주교단 회합교황이 소집하며 주교들 투표로 결정된 사항은 문서로 공표니케아공의회 시작으로 세계 공의회 지금까지 21차례 열려 보편 공의회라고도 하는 세계 공의회(영어 Ecumenical Council, 라틴어 Concilium Oecumenicum)는 말 그대로 전 세계 모든 주교들이 참가하는 회의입니다. 물론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고 회의를 주재하고 공의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승인하는 것은 교황의 고유한 권한입니다만, 주교단에 속하는 모든 주교들은 세계 공의회에 의결 투표권을 가지고 참석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공의회는 전 세계 주교들이 로마 주교인 교황을 단장으로 주교단을 이뤄 세계(보편)교회에 대해 장엄한 양식으로 주교단의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입니다. 세계 공의회에서 주교들이 투표로 결정하고 교황이 승인한 내용은 헌장, 선언, 교령 등 다양한 형태의 문서로 공표되고 발효됩니다. 이렇게 세계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구속력을 지니게 됩니다.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이 활동하던 사도 시대 때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칩니다. 그 중 하나는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간의 마찰을 어떻게 중재하고 해소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5장에는 이와 관련한 대표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인들이 하듯이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함으로써 생긴 분쟁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할례 및 모세 율법 준수를 놓고 생겨난 분쟁은 일단락됩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라고도 부르는 이 회의는 갓 태어난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의 분쟁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소집된 첫 회의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커지면서 교회 안에서는 신앙 교리를 정립하는 문제, 교회 제도와 규율을 확립하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때로는 지역 교회 차원에서, 때로는 전체 교회 차원에서 주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는데, 이 회의들을 시노드 또는 공의회라고 불렀습니다. 시노드라고도 부른 이유는 처음에는 시노드와 공의회의 명확한 개념 구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초창기 회의들에 대해서는 그냥 '교회 회의'라고 번역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200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교회 안에서는 수많은 교회 회의가 열렸는데, 가톨릭교회는 그 가운데 스물 한 번을 세계 공의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열린 세계 공의회는 325년 오늘날 터키 수도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동쪽으로 80km정도 떨어진 니케아에서 열린 니케아공의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계 공의회는 1962~1965년 바티칸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지요.<세계 공의회 일람표 참조> 그런데 이 스물 한 번의 세계 공의회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한 번도 공식으로 '세계 공의회'라고 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 교황이나 학자들이 세계 공의회'로 인정한 것을 통상적으로 수용해서 인정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세계 공의회로 인정받는 일반적 기준은 몇 가지 언급할 수 있습니다. 교황이 회의를 소집했는지, 교황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는지 또는 적어도 교황 사절을 회의에 파견했는지, 모든 주교들이 회의에 소집됐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도 현재 '세계 공의회'로 불리는 21번의 공의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첫 번째 세계 공의회로 인정되는 니케아 공의회는 교황이 아니라 로마 황제가 소집한 공의회였습니다. 이런 형식적 기준 외에도 공의회에서 결정한 내용이 후대 공의회에서도 전거로 계속 원용될 정도로 전체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회의였다면 세계 공의회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여러 상황을 참작해서 신학자들과 교회사학자들은 세계 공의회 목록을 작성했고, 이것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스물 한 번의 세계 공의회를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소중한 유산이 어떻게 형성돼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런 배움과 성찰이 우리 자신과 교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퇴사자22011.02.08
![[성경속 상징]41-빵- 빵을 나눠먹는 것은 사랑의 표현](//cpbc.co.kr/CMS/newspaper/2009/03/rc/289399_1.1_titleImage_1.jpg)
[성경속 상징]41-빵- 빵을 나눠먹는 것은 사랑의 표현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빵은 밀가루나 호밀가루 등에 소금과 물 등 재료를 넣어 반죽한 뒤 불에 굽거나 찐 음식이다. 빵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에서 온 말이다. 밀의 원산지인 메소포타미아 가까운 지역에서 밀을 빻아 얇게 굽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000년 무렵까지 올라간다.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드는 오늘날 같은 빵은 기원전 4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집트의 태양, 만물의 신 오시리스는 곡물의 신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보릿가루로 납작한 빵을 만들어 먹었다. 고대 로마에서 제빵 기법은 귀족과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기에 종교와 함께 확산됐다. 이러한 이탈리아 제빵 기법이 프랑스로 전해져 오늘날 유럽 빵의 기초가 됐다. 한국에는 조선 말엽 비밀리에 입국한 선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선교사들이 숯불을 피워 구운 것이 마치 우랑(牛囊)과 같다고 해 우랑떡이라 했다. 8ㆍ15광복과 6ㆍ25를 겪으면서 원조물자로 공급된 빵은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는 이미 왕정시대부터 빵 만드는 직업이 있었다(호세 7,4). 예루살렘에는 빵 굽는 거리까지 있었다(예레 37,21). 일반 백성은 집에서 직접 빵을 만들어 먹었다. 가루를 빻고 빵을 굽는 일은 주부의 일상 작업 가운데 하나였다(창세 18,6). 부자의 식탁이나 큰 잔치의 주된 음식은 늘 빵이었다. 손님을 접대할 때에 우선 마련하는 것도 빵이었다(창세 18,5.6). 가난한 서민의 끼니는 빵과 물이 전부였다(탈출 23,25). 빵에다 포도주를 곁들이면 풍성한 기쁨의 잔치를 뜻한다(창세 14,18). 이스라엘인에게 빵을 나눠 먹는 것은 단순히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이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누구와 빵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절친한 사이, 곧 친구임을 뜻한다. 또한 빵을 함께 나눔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굶주린 이와 빵을 나눠 먹는 것은 이스라엘인의 큰 의무이며 사랑의 구체적 표현으로 여겼다. 40일간 단식을 마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3-4)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이들을 위해 빵의 기적을 이루시고 직접 빵도 나눠주신다(마태 14,13-21). 빵은 이처럼 예수님 생애와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소개하신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께서는 성 목요일 저녁 열두 제자와 함께한 식탁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고 하셨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남김없이 양식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은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의 빵, 우리의 밥이 되어 주신다. 우리는 매일 삶 속에서 육신을 살찌게하는 빵만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게하는 생명의 빵, 생명의 예수님을 애타게 찾고 있는가.조은일2009.03.31

세상 복음화에 앞서 나부터 회개, 쇄신해야전국 교구장 2010년 사목교서 주요 내용 2010년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궁금하다면 각 교구장들이 발표한 사목교서를 보면 된다. 물론 교구별 특성과 교구장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올해 사목교서들을 대략적으로 종합하자면 '성경 말씀에 토대를 둔 새로운 복음화'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지난 몇 년간 사목교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가정과 생명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이는 특정 주제에 앞서 신자 개개인과 교회의 정체성을 살리는 데 좀더 충실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사목교서 주요 내용을 분야별로 나눠 짚어본다.▨복음화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선교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것들을 복음의 힘으로 바로 잡는 것이다. 근래 새롭게 대두된 개념 가운데 하나로 '새로운 복음화'가 있다. 외형적 성장이 아닌 내적 복음화, 즉 세상을 복음화하기에 앞서 끊임 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교회 스스로를 먼저 복음화한다는 의미다. 복음화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교회의 근본 사명이다. 교구장 주교들이 2010년 사목교서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 역시 복음화이다. 신자 수를 늘리는 선교와 함께 신자와 교회 공동체의 내적 쇄신을 통해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자는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사실 선교와 새로운 복음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새로운 복음화가 뿌리라면 선교는 그 열매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복음화와 선교를 통해 세상을 복음화하자는 것이 올해 사목교서의 가장 큰 흐름이라 하겠다. 의정부교구장 이한택 주교는 "선교는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탈 때 가능하다"며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선교에 관심 가질 것을 요청했다. 또 군종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선교와 봉사의 원동력은 기도"라며 기도와 봉사를 강조한 뒤, 하루 100원 모으기와 헌혈 및 사후 장기 기증 등을 구체적 실천운동으로 제시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서로 나누고 사는 기쁨을!'이라는 제목의 교서에서 "나눔과 섬김의 원천은 하느님 사랑"이라면서 "교회 내외적으로 친교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달라"고 말했다.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가 세상 복음화를 위한 화두로 내세운 것은 순교영성이다. 안 주교는 "한국교회 대표적 영성인 순교영성은 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자 순종"이라며 "하느님과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통의 의미를 승화시켜 나간다면 예수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2009년에 이어 올해도 좋은 본당 가꾸기를 제안했다. 황 주교는 냉담 교우 감소를 위해 냉담 교우들을 본당 공동체에 초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신영세자들이 냉담에 빠지지 않도록 세례 후 신앙적응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교회 스스로 끊임 없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추기경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될 것을 촉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으로써 우리 사회에 구원의 빛을 더욱 밝게 비추기를 희망했다. ▨하느님 말씀 올해 전국 교구장 사목교서 제목 중에서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는 '말씀'이다. '말씀을 증거하는 본당 공동체를 건설합시다'(대전교구), '말씀 실천으로 복음화 토대를 놓읍시다'(청주교구),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성경과 함께하는 해'(원주교구) 등이 그렇다. 말씀, 즉 성경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이자 중심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여러 주교가 이처럼 성경 말씀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힘들수록 기본에 충실하라는 격언처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언제, 어디서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성경이라는 인식에서다. 지난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세계 주교 시노드 주제도 다름 아닌 하느님 말씀이었다.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는 "신앙의 뿌리가 성경임에도 성경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근본 사명은 말씀과 더불어 함께하는 삶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이어 "말씀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시고 살아야 한다"며 △성경을 자주 읽고 △읽은 말씀을 묵상하며 △묵상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성경 공부에 열심히 참여할 것을 권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하느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최고 원칙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유 주교는 또 소공동체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소공동체 봉사자들과 교구민이 복음 진리를 위해 몸바치는 일꾼으로 거듭나고, 소공동체 교육을 통해 굳건한 신앙을 갖기를 기대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사제들에게 하느님 말씀에 젖어 사는지, 그리고 양떼를 잘 알고 있는지 자문해볼 것을 권고하면서 말씀에 젖어사는 사제가 될 것을 요청했다. 대희년 10주년을 맞아 '2010 특별 사목교서'를 발표한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중점을 둔 것 역시 하느님 말씀과 전례이다. 이 주교는 우리 모두 하느님 말씀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돼야 하며,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모두가 적극 참여하는 생기 넘치는 미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결론적으로 "말씀과 성찬으로 이뤄지는 성체성사를 삶의 중심에 놓고 미사를 제대로 봉헌하는 일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거기서 얻은 힘으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힘쓸 것을 당부했다. ▨교구 설립 기념 계획 대구대교구와 광주대교구, 인천교구가 각각 교구 설립 100주년ㆍ70주년ㆍ50주년 기념 관련 계획을 사목교서에 담았다. 2011년 100주년을 맞는 대구대교구는 2010년을 100주년 준비 마지막 '도약의 해'로 삼아 '새시대, 새복음화'라는 지표 아래 '새복음화의 비전과 성숙한 교회 공동체 실현'을 논의하고 있는 교구 제2차 시노드에 적극 참여할 것과 2011년에는 첫삽을 뜰 수 있도록 100주년 기념 대성당 건립에 마음을 모을 것을 주문했다. 같은 해 50주년을 맞는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강조한 것은 신자 50만 명 달성과 교구 영성센터 건립이다. 2010년을 '성장의 해'로 정한 최 주교는 매일 기도와 성사, 신앙공부를 통한 자신의 성화 등에 힘씀으로써 교구의 질적ㆍ양적 성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요청했다. 2007년 70주년을 지낸 광주대교구는 교구 발전 3개년 추진 계획에 따른 셋째 해인 2010년을 '새로운 복음화의 해'로 정하고, 지역 복음화를 위한 선교 공동체 기반 마련에 중점을 뒀다. ▨청소년 사목 사목교서에서 청소년 사목을 언급한 교구는 수원교구와 청주교구다. 두 교구는 청소년 사목의 주체이자 동반자는 청소년 자신이라는 데 뜻을 함께했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가정은 청소년들의 1차적 신앙공동체"라며 가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청소년을 위한 교리교사와 전문 인력 양성을 제안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청소년이 사목의 동반자가 되려면 청소년과 그 가정 모두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며 특별히 성경의 의미를 일깨웠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남정률2009.11.24
![[기획/돈 보스코 이땅에]-<5>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6566_1.0_titleImage_1.jpg)
[기획/돈 보스코 이땅에]-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청소년 사목자들의 '상담실'살레시오회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는 끊임없는 연구를 기반으로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10일 열린 '한국 교회 안에서의 청소년사목과 가정사목에 대한 정만과 제안' 심포지엄. 청소년 사목자들에게는 공통적 고민이 있다. 청소년들 속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사목활동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를 느낀다. 돌이켜보면 활동과 이벤트, 프로그램은 많았는데 중요한 그 무엇이 빠진 것 같다. 그래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청소년들 기호와 눈높이도 가면 갈수록 맞추기가 어렵다. 살레시오회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소장 백광현 신부)는 이처럼 청소년 사목에 관심과 열의를 가진 사목자들과 평신도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살레시오 정신에 입각한 청소년 사목자 및 교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청소년 사목을 위한 청사진 제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살레시오회 관구관에 있는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연구소에 상주하는 백광현 신부에게 상담을 할 수도 있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백 신부는 "많은 이들이 청소년 사목에 관해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조언을 구할 곳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한다"며 "이곳에 오면 해법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공감과 해결책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는 신학ㆍ청소년학ㆍ교리교육학ㆍ돈보스코의 예방교육방법 등을 연구하고 나눔으로써 청소년 사목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2008년 '청소년사목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침체된 청소년 사목 현황에 비춰볼 때 아카데미 개설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1년 4학기제(매주 월요일 6시간 수업)로 운영되는 청소년사목아카데미는 한국교회에서 처음 개설된 체계적 청소년 사목자 양성 프로그램이다. 아카데미는 신학ㆍ교리교육ㆍ예방교육ㆍ성소지도ㆍ청소년 문화와 영성 등 청소년 사목 분야 전반을 다룬다. 강사진도 백광현(청소년 사목) 신부를 비롯해 조성태(돈보스코 예방교육)ㆍ노우진(청소년 문화와 매스 미디어)ㆍ이준석(청소년 영성) 신부, 정한나(청소년 교리교육)ㆍ신정숙(청소년 사목과 가정) 수녀 등 청소년 사목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또 '교리교사 양성 계절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주일학교 교리교육 활성화를 위한 3차원적(존재론적ㆍ인지론적ㆍ사목적) 양성을 목적으로 1년에 두 번 방학을 이용해 개설된다. 3차에 걸쳐 이뤄지는 교육은 청소년 이해ㆍ청소년 상담ㆍ성경과 교리교육 등 이론수업과 교안ㆍ캠프 프로그램 작성법 등 실습으로 이뤄진다. 현장에서 청소년 사목에 대한 고충을 호소하던 교리교사들은 과정을 마친 후, 살레시오 영성 안에서 현실적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 가정과 청소년 사목을 하나로 예방교육, 현장교육을 중시하는 돈 보스코의 정신은 이곳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프로그램 곳곳에서 나타난다. 부모교육 '건강한 부모, 행복한 가정을 위한 강좌'와 '자녀를 위한 부모 피정'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자녀에 대한 참된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건강한 부모, 행복한 가정을 위한 강좌는 12주 과정으로, 올바른 자녀교육을 실천하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로마 웁스(UPS) 대학에서 교육학 학위를 받은 교육전문가 조성태(살레시오회) 신부가 강의하는 이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참여'다. 수강생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아 강사와 얼굴을 보며 공감하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조 신부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참여를 유도한다. 수강생들은 부모와 자녀로 역할을 나눠 상황극을 하면서 자녀 마음을 조금씩 이해해본다. 또한 매 시간이 끝나면 실생활에서 실천에 옮겨야 할 '숙제'도 받는다. 연구소 상담전문가들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수강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숙제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조 신부는 "부모와 자녀간 관계 향상을 위해 우선적으로 부모가 올바른 교육방법을 숙지하고 그 방법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를 위한 부모 피정'은 살레시오 영성을 가정에 뿌리내리기 위한 배려 차원에서 무료로 운영된다. 매월 첫째ㆍ셋째 수요일에 열리며,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는 이런 프로그램 운영 외에도 꾸준히 심포지엄을 열고, 설문조사를 발표하는 등 학문적 연구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가정과 청소년 사목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는 청소년 사목에서 가정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바 있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