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육류소비, 창조질서에 혼란 초래 강우일 주교,구제역 사태에 대한 입장 표명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구제역 사태는) 우리 모두의 지나친 육류 식욕과 가축을 생산품으로 만들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축산업계의 상업적 욕심이 초래한 비극"이라며 이에 대한 성찰을 호소했다. 강 주교는 20일 '구제역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디 제사나 명절 때 고기맛을 보았으나 지금은 수시로 고기를 포식한다"며 "이에 부응하기 위해 축산업계는 최단 기간에 가장 많은 육류를 생산하려고 온갖 인공적 수단을 동원한다"고 지적했다. ▶아래 발표글 요약 강 주교는 주교회의 의장 겸 제주교구장이지만, "나도 전에는 집단 살처분에 크게 마음쓰지 않았다", "이번에 창세기를 다시 읽어보았다"는 등 사적 표현을 드러낸 것으로 미뤄 직책을 떠나 성직자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성찰한 내용을 신앙인들과 나누기 위해 글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강 주교는 "과도한 육류 소비는 하느님 창조질서에 심각한 무질서와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협소한 축사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항생제로 키우는 가축들이 면역력이 약해 쓰러지고 △수천만 명이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전체 생산 곡물의 3분의 1이 가축사료로 소비되고 △소 방목이 지구 사막화의 주된 요인이라는 등의 근거를 제시했다. 강 주교는 이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온갖 생물을 다스리라(창세 1,28)고 하신 것은 피조물을 멋대로 다루거나 착취해도 좋다는 게 아니라 온갖 생물이 당신께서 부여하신 고유 존재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보살피라는 말씀이다"고 설명했다. 강 주교는 또 "우리는 예배 위주의 관행적 신앙생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복음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피조물의 고통과 신음에도 고민하며 삶의 궤적을 바로 잡아나가자"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요약] 구제역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강우일 주교 최근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확산돼 소ㆍ돼지 등이 2백만 마리 넘게 살처분 당하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려 생매장된 닭이나 오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집계조차 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축산 역사상 처음 있는 대재앙이다. 몇 년씩 정성들여 키운 어미 소와 함께 송아지까지 한꺼번에 파묻어야 하는 농민들이나 살처분 현장 수의사와 공무원들은 생매장 당하는 소ㆍ돼지들 비명 소리에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환청에 시달리며 정신적 공황에 빠졌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해도 이런 대량 도살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요, 도리에 어긋나는 일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 가축은 공장 생산물이 돼버렸다 전통적으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구약성경에도 가축을 잡아 제사를 지내거나 식용으로 삼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세까지 가축은 각 가정에서 소비하거나 기껏해야 인근 마을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만 사육했다. 그런데 산업기술이 발달하고 대규모 축산 농장을 세우면서 가축은 더 이상 가축이 아니라 공장 생산물이 돼 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양의 육류를 소비하고 있다. 예전에는 드물게 명절 때나 제사 때만 겨우 고기 맛을 보았는데 지금은 수시로 고기를 포식한다. 이러한 왕성한 육류 소비에 맞추려고 단기간에 보다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온갖 인공적 수단을 동원한다. 우리나라는 움직일 틈이 없는 비좁은 축사에서 가축들에게 유전자 조작 옥수수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를 남용한다. 이로 인해 가축들 건강이 더 이상 병균에 저항할 정상적 면역력을 잃어버려 힘없이 무너져 버린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나친 육류 소비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상업적 욕심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곡물 부족으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이 가축 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선진국에서는 육류 과잉 섭취에서 비롯된 심장발작, 암, 당뇨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보다 더 많다. 과도한 육류 소비는 지구 생태환경에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중남미 대륙에서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열대 우림이 이미 가축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됐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과 미국, 호주 남부 목장지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막화의 주된 요인도 소를 방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육장에서 흘러나오는 축산폐기물도 환경을 훼손하는 주요 요인이다. 결국 우리가 육류를 과도하게 소비함으로써 이런 부작용을 일으켜 하느님이 태초에 설계하신 창조질서에 심각한 무질서와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다.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하시며, 인간에게 다스리는 역할을 주셨다. 그러나 '다스리라'고 한 것은 피조물을 인간 멋대로 아무렇게나 마구 착취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온갖 생물이 고유의 존재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보살피라는 말씀이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방주에 온갖 생물들을 한 쌍씩 집어넣으시고 노아와 '함께 살아남게' 하셨다(창세 6,17-20). 홍수가 온 땅을 뒤덮었을 때도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기억하셨다'(창세 8,1). '기억하셨다'는 것은 하느님 자비와 사랑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진다는 의미다. # 짐승들도 하느님 구원과 보살핌 대상 홍수가 끝난 후 하느님은 노아와 그 가족과 함께 모든 생물들이 '땅에 우글거리며 번식하고 번성하게 하여라'(창세 8,17)하고 축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 자손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도 계약을 맺으셨다(창세 9,9-11). 계약을 맺은 것은 하느님께서 짐승들의 멸망을 원하지 않고 그 생명을 지켜주실 것임을 약속하신 구원과 은총의 선언이다. 결국 창세기 가르침에 따르면 짐승들도 모두 하느님 구원과 보살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면 세상이 오늘날 어떤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지, 어떤 덫에 걸려 신음하는지, 또 어떤 아픔과 슬픔에 시달리는지 공감하고 동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 예배 위주의 관행적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복음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성찰함으로써 회심의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예수님처럼 시대의 가장 힘없는 이들, 고통 받는 피조물들 고통과 신음까지도 함께 호흡하며 삶의 궤적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먹는 데에도 인간답게 먹고, 그리스도인답게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김원철2011.01.25
![[성경 속 상징]18-머리카락](//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6156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8-머리카락머리카락을 미는 것은 슬픔의 표시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옛 사람들은 종종 점치는 데에 머리카락을 사용했다. 아랍인들은 머리를 둥글게 미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바쿠스 신을 기리는 뜻으로 머리털 한 술을 정수리에 남겨 두었다. 우상 숭배자들은 수염도 둥글고 고르게 다듬었다. 그러나 유다인에게는 이것이 금기였다. 오늘날까지도 유다인은 수염 끝을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만 이슬람 교도들은 수염을 다듬는다. 친구가 죽었을 때 자기 머리카락를 잘라서 무덤 속에 던져 넣는 것도 오래된 미신이었다. 때로는 머리카락을 지옥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시신의 얼굴과 가슴에 올려놓는 관습도 있었다. 머리털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머리털은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보여준다. 레위기 13장에는 공동체의 건강을 진단하는 사람으로서 제사장의 역할이 소개된다. 여기에는 히브리인들의 생활에서 부정한 것과 질병을 머리털을 통해 어떻게 진단하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근심과 낭패의 표시나 혹은 개인적인 다툼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털을 뽑는 행위는 고대 관습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머리가 많고 긴 것은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구약성경 사무엘기는 당대 이스라엘에서 압살롬만큼 잘 생긴 사람은 없었다고 전한다. 그는 아마도 뭇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미남으로 칭찬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풍성한 머리카락 때문이었다(2사무 14,25-27). 반면에 머리카락이 없는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엘리사는 베텔로 가는 도중 어린 아이들에게 대머리라고 놀림을 당한다(2열왕 2,23). 대체로 머리털은 긍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적당히 긴 머리는 검은 머리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다. 머리털이 많은 것이 건강과 힘과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는 머리털이 없는 불명예의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머리카락을 민다는 것은 슬픔의 표시와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으로 생각했다(아모 8,10). 미가는 포로로 잡혀가는 유다의 자손들을 머리털 없는 독수리의 이미지에 비유한다(미카 1,16). 머리를 깎지 않고 자라게 두는 것은 나지르인이 지켜야 할 서약 중의 하나였다(민수 6,5). 그같은 머리 모양은 하느님께 대한 헌신으로 생각됐다(민수 6,9). 서원의 기간이 끝나거나 부정한 일이 일어났을 때 긴 머리카락을 잘랐다. 거룩함을 위해 구별됐다는 상징으로 육체적인 매력에 끌리지 않고 철저히 금욕 적으로 절제하겠다는 표지였다(민수 6,18).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나지르인이라 할 수 있는 삼손의 그 힘은 그의 머리털의 길이와 관련이 있었다(판관 16,17-22). 신약을 보면 바오로는 긴 머리카락이 여인에게는 표준이나 남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했다(1코린 1,14-15). 화려하게 장식한다든지 해서 머리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외모에 치우친 세속적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1베드 3,3). 노인을 상징하는 백발은 완숙함이나 명예와 아름다움의 표시임을 보여준다(잠언 20,29). 백발은 초월적 차원에서 희고 빛나는 머리털을 가지신 하느님에 대한 성화에도 적용이 된다. 복음서에는 철저한 헌신의 표현으로 예수님 발에 기름을 붓고 머리털로 씻은 마리아의 모습이 소개된다(루카 7,36-50). 성경에서 머리털의 중요성은 가시적 현상으로 중요하고 동시에 그 머리털을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또한 상징으로도 중요하다.조은일2008.09.23
![[성경 속 상징]33-소- 경제 변영과 쇠퇴 비유에 사용](//cpbc.co.kr/CMS/newspaper/2009/01/rc/279729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33-소- 경제 변영과 쇠퇴 비유에 사용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송아지, 황소, 암소 등으로 부르고 용도에 따라 육우, 일소, 젖소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성실과 근면, 우직함과 충성심의 상징인 소는 우리민족에게 단순한 가축 이상 존재였다. 농사일을 위한 필수적 노동력이었고, 일상 생활에서는 운송 수단이었으며,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목돈을 장만할 수 있는 비상 금고 역할까지 했다. 고대 문명국은 일찍부터 일소를 사육했는데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4500년, 인도는 기원전 2500년, 중국은 기원전 2200년 께 소가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인 502년 소를 이용한 우경(牛耕)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우경의 발달은 소와 관련된 농기구 발달을 가져왔는데 삼국사기를 보면 백성들이 우차법을 이용해 수레를 끌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으면서는 효율적 밭갈이를 해 생산력이 크게 향상됐다. 당시에는 농업 기술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근동에서 황소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고 강한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는 맏이로 난 소, 그에게 영예가 있어라. 그의 뿔은 들소의 뿔. 그 뿔로 민족들을 땅 끝까지 모두 들이받으리라. 에프라임의 수만 명이 그러하고 므나쎄의 수천 명이 그러하리라"(신명 33, 17). 성경에서 소는 경제적인 면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소들은 밭갈기나(1사무 11,5) 타작이나 수레 끌기(1사무 6,7), 우유와 고기 등 식량 공급원이었다. 또한 소는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사용됐다(레위 3,1). 그래서 소는 경제 번영과 쇠퇴를 이야기할 때 적절한 비유로 사용됐다(창세 41,1-13). 또한 소는 풍요의 상징이었기에 반대로 하느님 진노하심의 표시가 가축 감소나 소멸로 나타나기도 했다(예레 5,17). 아모스 예언자는 사마리아 귀부인들의 지나친 무절제와 게으름을 비난하면서 그들을 "바산의 암소들"로 비유했다(아모 4,1). 바산의 암소는 그 우량함으로 유명했다. 또한 송아지가 제멋대로 뛰는 특성으로 주님의 날에 압제로부터 풀려 나온 하느님 백성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말라 3,20). 하느님께서 소를 보호하신다는 이미지는 하느님 축복으로서 소 이미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침략자 곡의 멸망을 언급할 때 그들 잔치가 바산의 살진 짐승을 먹는 잔치와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용사들의 살을 먹고 세상 제후들의 피를 마실 것이다. 그들은 숫양과 어린 양, 숫염소와 송아지, 모두 바산의 살진 짐승이다"(에제 39,18). 시편 저자도 이스라엘 적들을 "바산의 힘센 소"(시편 22,13)로 비유한다. 또한 성경에서 송아지가 우상숭배라고 하는 나쁜 이미지에 사용된 것(탈출 32,1-6)은 아마도 이집트 신 아피스나 황소나 송아지를 타고 나타나는 가나안 신들에 대한 관습 때문으로 보인다. 소는 값비싼 가축이었기에 송아지를 먹는다는 것은 가장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일이었다(루카 15,23). 올 한해 우리도 소의 인내와 충직함을 닮아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 어떨까.조은일2009.01.13
![[기획/돈 보스코 이 땅에]-(3) 핏줄 보다 진한 사랑의 공동체 살레시오 나눔의 집](//cpbc.co.kr/CMS/newspaper/2010/10/rc/354906_1.0_titleImage_1.jpg)
[기획/돈 보스코 이 땅에]-(3) 핏줄 보다 진한 사랑의 공동체 살레시오 나눔의 집보호 필요한 남자 청소년들 소규모 아동 공동생활가정살레시오 원미동 나눔의집 아이들에게 이모부 신용견(오른쪽)씨는 아빠이자, 형이자, 친구다. 식탁에 앉아 한바탕 팔 힘을 겨루고 있는 아이와 신씨. "이모부~ 팔씨름 한 판 해요! 이번에는 제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에이~ 또 저번처럼 지려구? 어디 해보자. 하하~" 21일 저녁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살레시오 원미동 나눔의집'. 식구들이 둘러앉은 식탁 앞이 시끌벅적하다.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는 풍경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까지 다 있다. 나눔의집은 살레시오회 한국관구(관구장 남상헌 신부)가 운영하는 아동 공동생활가정이다. 가출, 방임으로 보호와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남자 중고등학생을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보호ㆍ양육하는 소규모 아동보호시설이다. 서울ㆍ경기 지역 7개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역사회나 본당 등에서 의뢰한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나눔의집 김해영(베드로) 담당신부가 일일이 아이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아이들 의견에 따라 입소 여부를 결정한다. 아담한 2층 주택에는 생활교사로 가장 노릇을 하는 신용견(베드로)씨와 부인 김영숙(글로리아)씨가 사춘기 소년 10명과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맏형부터 중학교 1학년 막내까지 만났다하면 떠들썩한 아이들은 이들 부부를 '이모부''이모'라 부르며 믿고 따른다. 이 아이들에게는 이들 부부가 아빠이자 엄마이자 친구인 셈이다. 이들 부부는 24시간 집에 상주하며 살레시오의 예방교육 영성을 실천하고 있다. 아이들의 끼니와 잠자리는 물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주고, 고민을 들어주며 보통 가정의 부모와 자식처럼 지내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사랑의 가정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부모의 이혼과 폭력, 가출 등으로 상처받고 소외된 아이들이 이 가정에서 행복을 체험하고 성숙한 사회인, 신앙인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살레시오회 협력자회원인 김씨는 자녀들이 다 크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년 전 이곳 나눔의 집에 둥지를 틀었다. 남편 신씨도 김씨의 권유로 함께하게 됐다.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있던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부부는 오직 사랑과 믿음으로 아이들 곁을 지켰다. 강요하지 않고, 언제나 아이들이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인내하고 기다렸다. 이런 부부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 덕에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성격도 밝지 않고, 공부도 또래에 비해 뒤처지던 아이들이 점차 웃음을 되찾았다. 신씨는 "예전에 종종 나타났던 아이들의 도벽과 폭력도 이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며 "누구에 의한 강요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가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이모와 이모부를 따라 세례를 받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이모부' 신씨의 대자다. 신씨는 "이렇게 많은 대자가 생겨 행복하다"며 웃어 보였다. 아이들은 저녁이면 함께 모여 성경 필사를 하고, 주일이면 집 근처 원미동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례한다. 꿈과 미래가 없던 아이들은 이제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다. 선규(가명) 군은 장래희망이 신부님이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준 나눔의집에서 체험한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다. 이들 부부도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찾아봐라" "소박한 꿈이라도 꼭 꿈을 가져라"며 격려한다. 그 덕에 이곳 아이들은 장교, 건축가, 미용사, 개그맨 등 다양한 꿈을 갖고 살아간다. 김해영 신부는 이 모든 변화를 돈 보스코 예방교육 덕으로 보고 있다. "돈 보스코가 보여줬던 사랑과 인내로 아이들과 함께하면 그 어떤 아이도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들 스스로가 이곳에 억지로 머문다는 생각대신, 자신의 의지대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0.10.26
제15회 성경잔치 열어수원교구 복음화국 수원교구 복음화국(국장 문희종 신부)은 5일 경기도 평택 효명중학교에서 제15회 수원교구 성경잔치를 개최했다. 교구 각 본당 신자 8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를 주제로 열린 이번 잔치는 성경 경시대회를 시작으로 필사성경ㆍ전시작품 관람, 미사, 성경필사 축복장 수여식 및 공모 작품ㆍ경시대회 시상식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잔치에는 바오로 해를 기념해 많은 작품이 출품ㆍ전시됐다. 올해 83살의 남윤우(신덕, 수리동본당)씨는 직접 염색한 한지와 찰흙으로 사도 바오로 상을 제작해 최우수상(성바오로상)을, 십자수로 바오로 사도를 완성한 김경옥(율리안나, 죽전1동본당)씨는 한올 한올 수를 놓을 때마다 기도를 써가며 작품을 완성해 장려상을 받았다. 신앙체험수기 부문에서는 임인경(가르디나, 이천본당)씨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성경완필자 중에는 윤정구(토마, 서정동본당)ㆍ이정옥(아나다시아)씨 부부가 부부성경필사 10회, 김금숙(막달레나, 서정동본당)씨가 개인필사 10회를 완성해 찬사를 받았다. 또 8개 본당(광북ㆍ철산ㆍ소하동ㆍ비산동ㆍ정자동주교좌ㆍ동백제1ㆍ명학ㆍ범계)에서 전 신자가 참여해 성경필사를 완성해 더욱 의미가 깊었다. 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강론을 통해 "경시대회를 계기로 성경을 읽고 묵상해 말씀의 삶으로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공동체를 변화시켜 복음화의 열매를 맺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경경시대회에서는 오기수(니고나오, 소하동본당) 할아버지가 은빛상을, 김재영(마리아, 7, 산본본당) 어린이가 꿈나무상을 각각 수상했다. 청소년부문에서는 김동휘(베드로, 조원솔대본당)군, 성인부문에서는 정소라(미카엘라, 망포동예수성심본당)씨가 최우수상을 각각 받았다. 최효근 명예기자 bundo-choi@pbc.co.kr cpbc2008.10.07
그리스도교 상징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숨겨진 영적인 상징을 이해한다면 세속은 결코 하찮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위를 생각해보자. 바위는 일반적으로 힘과 영원성을 상징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더 나아가 올바르고 의로운 주님을 의미한다. 이를 안 순간 바위는 단지 물질적 대상이 아닌 영적 상징으로 존재한다. 상징적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자애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이콘과 이탈리아 문학 및 예술 연구에 몰두해온 미셀 푀이예(Michel Feuillet, 프랑스 리옹 제3대학) 교수가 500여 개가 넘는 개념어(숫자, 색깔, 도형, 동ㆍ식물, 사물, 자연 현상 등)를 한데 모아 풀었다. 「그리스도교 상징사전」(연숙진 옮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 세계를 담아냈다. 주로 4복음서에 등장하는 개념어들로 성경에 근거를 뒀다. 이 상징들은 처음 다른 문명과 공유된 것이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이 원시 그리스도교에서 중세 및 근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그리스도교의 특성이 더해지면서 더 풍성해졌다. 이 상징 중에는 쓰이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의미가 퇴색되고 잊혀져 대성당이나 프레스코 벽화, 양피지로 된 성가책에 남아 그리스도교의 신비를 전하는 것도 있다. 성경은 물론 외경에서부터 전승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것을 다뤄 성직자와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그동안 이콘과 성상, 그리스도교의 상징주의 등에 천착해 연구해온 저자의 연구 결실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 속에서 변형된 복잡하고 모순되는 상징(언어)들을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돕고자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서양의 예술적이고 지적이며 영적인 유산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을 이해하려면 이 상징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보누스/1만2000원) 이지혜 기자이지혜2010.01.12
![[아! 어쩌나?] (77) 못말리는 고정관념](//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6523_1.1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77) 못말리는 고정관념 Q. 못말리는 고정관념 저와 같이 단체활동을 하는 분 중에 아주 유식한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노처녀인데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녀서 그런지 교리이건 성경이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막히지가 않습니다. 저처럼 신앙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주 경이로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보면 듣기 거북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컨대 혈액형과 성격은 상관이 많다며 B형은 성격이 좋지 않으니 조심해라, A형은 까칠하니 멀리해야 한다, O형은 둔하니 결혼하면 고생한다는 등의 말을 합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저를 보고 "인생 선배로서 하는 이야기인데 남자들은 다 늑대이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등 거북한 말을 해서 당혹게 합니다. 그리고 이분이 얼마 전 에니어그램이란 프로그램을 하고 와서는 같은 단체원들을 보고 당신은 무슨 형, 당신은 무슨 형이라며 진단을 내려주곤 합니다. 재미삼아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진지하게 당신의 문제는 이것이니 고치라는 식의 말을 해서 듣는 사람들이 전부 불편해합니다. 감히 반박도 못할 정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에게 문제가 있는 듯한데, 아는 것이 없어 고민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그분이 문제가 있는 건지 개념정리가 잘 안 됩니다. A. 단체원이나 동네 사람 중에 정신적 터줏대감을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신적으로 휘두르려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이분들은 대개 뒷전에서 사람들의 건강한 판단의식을 흐트러뜨리는 공동체의 암적 존재이지요. 이분들이 가진 문제는 '고정관념'입니다. 고정관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봅니다. 그런데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고정적이고 동일한 패턴으로 보는 것을 고정관념이라고 합니다. 고정관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분이 말한 것처럼 성격과 혈액형이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자들은 수학을 못한다든가 나이들면 지능이 떨어진다는 등 연령대나 성별에 따른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경상도 사람들은 이렇다, 전라도 사람들은 어떻다, 미국인은 이렇고 일본인은 저렇다 하는 식으로 지역적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 귀나 입 모양새를 보면 부귀영화를 누릴지 가난에 찌들어 살지 알 수 있다는 등 신체특징에 대해 판단하는 경우도 '보편적 고정관념'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고정관념은 '특수 고정관념', 즉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 생긴 고정관념입니다. 돈은 좋지 않은 것이라든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남자들은 모두 늑대다, 얼굴이 예쁘면 성격이 안 좋다는 등의 말은 본인 경험에 기초한 고정관념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정관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고정관념에 빠질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피스크와 테일러는 사람을 인지적 구두쇠, 즉 '생각하기 싫어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좀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게으름 때문에 고정관념으로 상대방을 판단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부분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고정관념을 사용합니다.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시간이 없으면 소문난 업체 제품을 고른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열등감이 강한데다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분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경우입니다. 사물을 깊이 생각할 만큼 머리는 좋지 않은데 사람들에게 유식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할 때 소위 팸플릿 지식(전단 몇 장 보고 익힌 지식)을 마치 전문서적을 공부해서 얻은 지식인양 사기를 칠 때 고정관념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이런 분들은 전문지식을 가진 분들을 피하고 좀 어리바리하고 자기보다 지적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부하처럼 몰고 다니면서 여왕벌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번째 이유는 '인생패턴'입니다. 자기 인생이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고정관념이 가장 많이 생기며 또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마치 고인 물이 썩어서 마시지 못할 물이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요. 이렇게 고정관념이 심한 분들은 대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일 처리 능력도 수준 이하라서 인생에서 성공하거나 대인관계를 다양하게 갖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매님은 그분이 아무리 유식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거리를 두십시오. 그분과 대화가 자매님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이 그분처럼 되지 않고 그분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마음을 활짝 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다양함을 맛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돼 늘 신선하고 열린사고 방식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이지혜2010.11.09
![[성경속 상징]37-죽음- 믿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문턱](//cpbc.co.kr/CMS/newspaper/2009/03/rc/285826_1.1_titleImage_1.jpg)
[성경속 상징]37-죽음- 믿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문턱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우리 가톨릭 교회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께서 2월 16일 지상에서 삶을 마치시고 하느님 품에 드셨다. 추기경님 선종에 모든 매스컴은 '큰 별이 떨어졌다'며 위대한 종교지도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기사를 실었다. 추기경님 선종은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특히 인간의 죽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주고 혈혈단신 유리관 속에 편안하게 누워계신 김 추기경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준다. 사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인양 '웰빙'만을 쫓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김 추기경님은 몸소 답 하셨다. 그분은 가진 것을 남김없이 베풀겠다며 일찌감치 장기기증을 서약했고, 마지막까지 인간 존엄성을 지키고자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당부하셨다.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이고, 미리 죽음을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죽음은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죽음은 부나 권력, 나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이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최고의 고통이며 공포이다. 죽음은 냉혹하고 현실적이다. 죽음은 인간 삶의 가장 큰 적이며 모든 삶을 무력화시켜버린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는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땅이나 도망칠 수 없는 지하 세계의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가나안 신화에서는 죽음을 인간 육신을 끊임없이 탐욕하는 신으로 의인화했다. 구약성경은 죽음의 영역이 지하 세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출입문을 깊은 구덩이로 묘사한다(시편 88,4-6). 하느님께서는 그의 계시된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위한 궁극적 징벌로서 죽음을 선포하셨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역하였을 때 죄와 죽음이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이래로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로마 5,12-21). 성경에서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무섭고 잔인한 원수로 묘사한다. "누가 영원히 살아 죽음을 아니 보겠습니까? 누가 저승의 손에서 자기 영혼을 빼내겠습니까?"(시편 89,49) 죽음에 대한 가장 충격적 이미지는 코헬렛에서 극치를 이룬다. 늙음과 죽음은 인간 삶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코헬 12,1). 그러나 죽음의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엔 하느님이 죽음을 이길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위한 희생적 죽음을 맞으셨을 때, 그분은 죄를 정복하셨다(로마 5,12-21). 그래서 예수님 부활은 미래에 있을 그의 백성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과연 그 큰 죽음의 위험에서 우리를 구해 주셨고 앞으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또다시 구해 주시리라고 희망합니다"(2코린 1,1).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하는 믿음을 통해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은 이미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의 나라로 건너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24). 그래서 부활을 믿는 신앙인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이 믿음이 바로 우리의 부활 신앙이다. 그래서 믿는 이에게 죽음이란 희망의 문턱이요 시작이 된다.조은일2009.03.03
![[성경 속 상징]14-섬](//cpbc.co.kr/CMS/newspaper/2008/08/rc/26244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4-섬복음을 심는 비옥한 땅의 이미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얼마 전 한 유명 가수가 뉴욕 타임즈에 독도 광고를 내서 큰 화제가 됐다.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는 동해이며, 동해에 있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중학교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명기해 한동안 잠잠했던 독도 영유권 논란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섬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독과 격리의 장소로 생각한다. 동시에 섬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안전한 피난처라는 이미지도 갖고 있다. 섬은 지리적으로 볼 때 육지와 떨어진 외딴 곳이며 반드시 육지나 이웃 섬에 가기 위해서는 배와 같은 교통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섬의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현실적 생활 방식 또는 생존 형태가 독특하게 형성된다. 또한 다른 문화가 섬에 들어오면 대부분 그 섬의 사정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서 섬의 문화에는 폐쇄성과 독자성이 드러난다. 성경에 언급되는 섬이 몇 개 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양적인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지중해 연안과 섬들에 대한 지식은 소문에 의한 것들 뿐이었다. 구약성경에서 섬에 관한 언급은 주로 이사야서에 나타난다. 이사야 예언자에게 섬은 미지의 나라와 같은 이미지이다. 하느님께서는 각 나라에 흩어진 그의 백성들을 모으실 때 섬들에 있는 백성들도 부르실 것이다.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주님께서 당신 손을 두 번째로 다시 드시리니 아시리아와 이집트 파트로스와 에티오피아와 엘람 신아르와 하맛과 바다 섬들에 생존해 있는 당신 백성의 남은 자들을 속량하시려는 것이다"(이사 11,11). 또한 의인화된 섬은 하느님의 능력에 마치 사람처럼 반응한다.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들이 무서워 떤다. 그들이 다가온다, 그들이 모여 온다"(이사 41,5). 섬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영광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에 의해 하느님 구원 역사에 포함될 것이다. "나는 그들 가운데에 표징을 세우고 그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타르시스와 풋, 활 잘 쏘는 루드 투발과 야완 등 뭇 민족들에게 보내고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먼 섬들에 보내리니 그들은 민족들에게 나의 영광을 알리리라"(이사 66,19). 이사야 예언자에게 섬은 지구의 끝이다. 섬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세상의 경계를 가르킨다. 신약성경에서 특별히 사도 바오로가 로마로 가는 길에 난파됐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카우다(사도 27,16)와 몰타 섬(사도 28,1)이 등장한다. 몰타 섬은 죽음의 바다에서 구원된 섬이요, 새 생명의 복음을 위한 현장이 된다. 주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있던 섬에서 로마에까지 선포됐다. 크레타 섬에도 교회가 성공적으로 설립된 것을 볼 수 있다(티토 1,5). 초대교회의 선교를 통해 섬들을 향한 하느님의 선포 즉 이사야의 예언은 실현됐다. 따라서 섬은 성경에서 복음을 심는 비옥한 땅의 이미지가 됐다. 섬이 고난과 관련된 경우가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귀양갔던 파트모스 섬이다. 이 섬에는 아직도 요한의 발자취가 가득하다. 조은일2008.08.19
![[이땅에 평화를] 신앙인 전원주택단지, 횡성 '사누스빌'](//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9058_1.0_titleImage_1.jpg)
[이땅에 평화를] 신앙인 전원주택단지, 횡성 '사누스빌'다양한 모습의 사누스빌 전원주택. 강원도는 사람을 끄는 묘한 힘이 있다. 갑갑한 도심을 벗어나 바람이라도 쐴라 치면 강원도가 먼저 떠오른다. 태백산맥 한가운데를 관통하듯 솟은 차령산맥 줄기, 치악산의 허파에 해당하는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자락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신앙인들이 모여 산다.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사누스빌'에서 맞이하는 초겨울의 평온함이 궁금했다. '사누스(Sanus)'는 라틴어로 '건강한''치유되는'이란 뜻이다.#건강지수 100% 사누스빌이 들어선 안흥면 가천리 129번지 일대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청명한 하늘빛만큼이나 깨끗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가만히 있어도 건강한 기운이 샘솟는 것 같다. 사누스빌로 향하는 411번 지방도 곳곳에서 산과 나무, 들판이 반갑게 손짓한다. 2006년부터 분양이 시작된 사누스빌에는 현재 각양각색 예쁜 전원주택 26채가 들어서 있다. 유럽풍의 아기자기한 전원주택과 현대식 미술관을 닮은 사각형 주택도 눈에 띈다. 대지면적이 10만㎡(3만 평)에 이르지만, 주택이 들어선 땅은 전체의 1/3이다. 나머지는 산책 코스를 겸한 자연 산림욕장이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호젓한 풍경이 따로 없다. (주)사누스 박영군(루피노, 58) 대표는 "사누스빌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은퇴한 신앙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라며 "개발 당시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누스빌을 통해 '지인들과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살면 좋겠다'는 꿈을 이뤘다"고 소개했다. ㈜사누스가 횡성군 일대에서 분양하는 전원마을은 현재 1차 사누스빌과 2차 뜨래꽃마을, 3차 사누스밸리를 합쳐 96가구이며, 대부분 분양이 끝나 현재 10여 가구 정도만 미분양 상태다. #교우촌을 닮은 생활 "오늘이 금요일이라고요? 여기서 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박 대표가 11월 26일 찾아간 기자에게 요일을 묻는다.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박 대표는 "날짜 가는 것을 까먹기 일쑤고, 계절은 새들이 알려준다"고 시골 어르신처럼 말했다. 사누스빌에서는 계절에 따라 뻐꾸기와 찌르레기, 딱따구리, 소쩍새 등이 번갈아가며 찾아온다. 사누스빌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36가구 중 26가구가 입주해 있지만, 주말에만 이용하는 주민도 있어 6가구만 상주해 있다. 입주민은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50~60대가 많다. 40살 김 바실리오씨가 막내다. 입주민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라 크고 작은 일도 서로 돕는 교우촌 모습으로 살아간다. 호칭도 세례명을 부르는 게 다반사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8시에 집을 돌아가며 반장 이승재(바오로, 55)씨 주선으로 반모임을 연다.#영세 1호 부부 탄생 주일에는 최근 본당으로 승격한 안흥성당 미사에 참례한다. 얼마 전에는 개신교에서 전도사를 했을 정도로 열심인 부부가 이곳에 살면서 천주교에 입교해 사누스빌 영세 1호 부부가 탄생했다. 이 부부의 조카도 세례를 받고 해외 선교사가 됐을 정도로 열심이라 귀감이 되고 있다. 입주민들은 생활도 함께 한다. 11월 20일에는 입주민이 함께 김장을 했다. 솜씨좋은 아내들이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려 김치를 담그면, 남편들과 자녀들은 고기를 굽고 음식을 준비했다. 김장하는 날은 마을 잔칫날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전 7시와 오후 4시 30분 두 차례의 산책 시간이 있다. 산책길은 수령 30년이 넘어 쭉쭉 뻗은 소나무 사잇길을 40분간 걷는 코스다. 이웃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건강도 좋아지고 모두가 한가족같이 느껴질 정도로 친해진다. 계절별 행사도 있어 봄에는 인근 산에서 봄나물 축제를 열고, 여름에는 계곡에서 돌쌓기 대회를 갖는다. 최근에는 단풍놀이를 다녀왔다. 2년 전에는 지역 명물 안흥찐빵으로 홀몸노인 돕기 자선 바자도 열었다. 지난해 5월에 입주한 구분남(젬마, 61, 서울 신도림동본당)씨는 "도시를 벗어나 좋은 자연환경에서 평화롭게 살면서 노년을 만족스럽게 보내고 있다"며 "특히 신자들과 어울려 봉사하고, 성경공부를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주)사누스 박영군 대표"모두 한 식구처럼 살아요." (주)사누스 박영군 대표는 사누스빌 주민들 생활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박해시절 서로 돕고 안부를 물으며 전교활동을 펼쳤던 교우촌 신자들의 삶이 사누스빌 입주민이 지향하는 궁극적 삶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언론인 출신 사업가다. 1978년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청년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교회 안에서 잔뼈가 굵었다. 또 서울신문에서 27년간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기자상'을 두 차례나 받는 등 신앙과 일 모두 열심이었다. 그는 2002년 직장을 그만두고 지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회사에 들어가 부동산 개발사업에 관한 40주 교육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성실한 그를 믿고 투자해준 지인들 덕분에 '은퇴하면 신앙인 마을을 만들겠다'는 꿈을 마침내 이뤘다. 사누스빌은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이들 사이에서 가장 살고 싶은 전원주택단지로 손꼽힌다. 방송사와 일간지 등 각종 언론매체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박 대표는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으로 돌렸다. "사업에 뛰어들고나서야 부동산 개발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누스빌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하느님 은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이힘 기자 이힘2010.11.30
![[성경 속 상징]17-신전(성전)](//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4767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7-신전(성전)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고대 신전은 사람들 집회소가 아니고 신(神)들의 거주지였다. 당연히 신전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신전 건축양식은 종교에 따라 다양하다.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신전은 정교하게 설계되고 장식돼 있다. 계단양식으로 된 신전 맨 꼭대기에는 신들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특정한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도 신전이 있었으나 당시 종교의 주된 관심사는 내세였기에 피라미드형 무덤들이 주요 성지이자 가장 친숙한 건축 유산이 됐다. 고대 이집트 신전은 우주의 구조를 나타내며, 또한 신들과 인간 사이의 종교적 관계를 나타낸다. 잉카인과 마야인 신전은 돌로 만들었는데 뛰어난 조각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유다인들 성전도 우주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하늘과 땅, 지상과 지하를 수직으로 연결한다. 신전 계단은 하늘로 상승하는 의미와 신자의 영적 향상을 상징한다. 예루살렘 신전은 우주의 중심이었으며 신과 이스라엘 민족이 교류하는 장소였다. 구약성경에서 성전은 하느님이 거주하는 장소이며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였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주님의 집을 지었다(2역대 3,1). 그러나 이 성전은 B.C.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함락되면서 불타 없어졌다.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지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에제키엘 예언서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에제 40,1-44,9). 이사야 예언자는 성전이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이사 56,7). 이로써 예루살렘 성전은 단순히 유대 민족의 종교적 예배의 중심지뿐 아니라 전 인류의 중심이 됐다. 그러나 재건된 성전도 A.D. 70년께 로마 군인들이 파괴해 그 웅장한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다. 거룩한 성전 건축에는 채석장에서 다듬은 돌을 사용했다. 그래서 건축 현장에서는 망치나 정이나 그 어떤 쇠 연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1열왕 6,7). 성전이 완성되고 야훼의 언약궤가 성소로 운반된 후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성전의 구름은 하느님의 능력과 기운이 작용하는 장소임을 상징한다(1열왕 8,10-11).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전의 외적 형태가 아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들의 깨끗한 마음과 바른 행동이다(예레 7,3-15). 신약성경에서는 성전이 또 다른 새로운 의미로 전환된다. 진정한 성전은 이 세상의 돌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진다는 것이다(요한 2,19). 더 나아가 세례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 머무르시는 성전이 된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1코린 3,16) 조은일2008.09.09
이콘연구소 회원전 및 십자가 기획전 서울 명동 평화화랑은 24일부터 이콘연구소 회원전과 십자가 기획전을 갖는다. 문의 : 02-727-2336~7, 평화화랑 ▨이콘연구소 회원전 이콘은 형상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신앙과 성경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다. 동방교회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1054년 동서 교회가 갈라지기 전 가톨릭교회가 공유했던 소중한 유산이다. 이러한 이콘의 역사와 전통을 가르치고 있는 이콘연구소(소장 장긍선 신부) 졸업생들이 전시회를 마련한다. 1~4기 졸업생 16명은 이번 전시회에서 졸업 후에도 꾸준히 작업해 온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이미화(안젤라, 55, 4기)씨는 "이콘을 그리는 것은 곧 기도가 된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콘을 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0일까지. ▨십자가 기획전 사순시기에 십자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수난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기획한 전시회다. 평화화랑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30~50대 젊은 작가들을 초청해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 금속, 조각, 도예 등 다양한 미술 분야 작가들이 만든 십자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신선하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이번 전시회 특징이다. 고영환, 곽노훈, 김신규, 손미경, 오수연, 이혜원, 조숙의, 한미씨 등 작가 17명이 참여한다. 전시는 4월 6일까지다. 박수정 기자 이지혜201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