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으로 인생 2막여는 예비역 공군 장성 박상묵씨하느님 향한 '신앙의 비행' 출격박상묵(클레멘스) 예비역 소장이 1월 26일 고별비행을 마친 뒤 아내 김현미(베르나데트, 57)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지난달 전역한 예비역 공군 장성 박상묵(클레멘스, 56) 소장은 요즘 군에 몸담았을 때만큼이나 바쁘다. 대학에서 무역학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이자, 국방대학교의 오케스트라인 '팝 오케스트라' 색소폰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국군방송 라디오(96.7㎒)에서 매주 목요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리더십의 세계' 프로그램에 출연, 후배들에게 '행복한 군인의 길'을 걸어온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고, 리더십 향상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박 소장은 국방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공군 고위급 예비역 장성. 국방부 정신전력 리더십 개발원장과 공군 교육사령관, 공군본부 정책홍보실장, 공군본부 인사참모부 부장 등 굵직한 요직을 8개나 거쳤다. 앞으로 주님과 이웃 위해 그러면서도 그는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제 곁에는 늘 주님이 함께하셨음을 믿고, 주님께 매달렸다"며 은퇴 이후의 삶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3일 찾아간 박 소장의 서울 대방동 공군복지근무지원단 사무실은 새로 마련된 듯 깔끔했다. 중책이 수반되는 군 생활을 마치고 새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듯, 독수리 조각상이 힘차게 비상하려 하고 있다. 행복한 군인, 참된 군인이 되고자 노력해온 그의 인생은 출발부터 깊은 신심으로 단단히 다져져 있었다. 신자 집안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중3 때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형이 경기도 안성 안법고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자연스레 천주교를 알게 된 것과 부친이 선종했을 때 장례를 챙겨줬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헌신적 봉사 덕분이다. 1972년(24기)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가톨릭 성서 모임에 참여, 성경공부를 통해 하느님 말씀에 맛을 들이면서 그는 교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동기 생도와 후배 생도들을 성경공부에 참여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당시 사관학교가 있던 대방동은 그야말로 시골이었어요. 매주 먼 길을 와주시는 조 마오로 수녀님 정성에 생도 36명이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죠. 2주뿐인 방학기간의 절반인 1주일을 수녀원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어요. 졸업 당시 138명이던 동기 가운데 현재 절반 정도는 신자가 됐습니다." 박 소장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소위로 임관, 제공호(F-5E/F)전투기 조종사 길로 들어선다. 생도 시절 학교에서 관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방치돼 있던 성체조배실을 매주 청소하고 제대에는 예쁜 꽃까지 놓고 가던 대학생 봉사자 김현미(베르나데트, 57)씨를 만나 1979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혼인 뒤 박 소장은 하느님께 두 가지 약속을 하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첫째는 가족들과 성경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께 십일조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박 소장은 월급이 오를 때마다 봉헌금도 커져 지키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하느님은 (재물보다) 더 큰 은총으로 되돌려 주신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은 봉헌금 중 일부는 의정부에 있는 한 육군본당 성모상 건립에 쓰였다. "십일조는 금액을 떠나 내가 가진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정성'을 뜻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일한다면 직장에서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군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봉사자입니다. 신앙과 업무가 별개일 수 없습니다."시련에도 신앙의 힘으로 박 소장은 2004년 소장 진급을 앞두고 소속 비행단 전투기 두 대가 추락해 후배 조종사 2명이 순직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고, 최근에는 아내에게 모야모야병이 발견돼 아내 건강에 신경쓰느라 중장 진급을 포기했다. 1997년 가족들과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닥친 IMF 금융위기로 자녀도 학업을 포기해야 할 순간을 맞는 등 숱하게 위기를 맞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도로써 하느님께 매달렸다. "추락사고를 겪었음에도 가족과 신자들 기도 덕분에 진급했습니다. 그러나 중장 진급을 했으면 아내가 큰 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느님께 매달리면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아요." 박 소장은 1월 26일 전역을 닷새 앞두고 첫 부임지였던 경기도 성남 제10전투비행단을 찾아 자신의 애기(愛機)인 제공호에 50분간 몸을 실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비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였다. 박 소장의 고별비행이었다. "사관학교까지 38년간 군인으로서 참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인생 1막이 군 생활이었다면, 2막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느님께 봉사하며 살아야지요. 어릴 적 꿈인 교사가 되고 싶고,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에도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창세 1,31) 모습이고 싶어요." 이힘 기자 lensman@이힘2010.02.09

'주님과 함께하는 평화의 일꾼' 다짐전국 교구 2011년 신년하례식 종합전국 교구는 2011년 새해를 맞아 교구장과 사제단, 신자들이 함께하는 신년하례식을 갖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다짐했다. 춘천교구는 3일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수도자, 신자 등 5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김 주교는 사제단 60여 명과 공동집전한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신묘년을 맞아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토끼처럼 빠르고 민첩하게 사랑를 실천하고 증거하자"면서 "교구 모든 사목자와 교우들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진정한 복음화의 길을 열어 2011년이 새로운 복음화의 원년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 대전교구는 3일 충남 연기군 정하상교육회관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 사제단 3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성체조배와 신년교례회를 가졌다. 유 주교는 "지난 2년간 소공동체교육을 실시했고, 지난해부터는 순교영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선교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말씀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건설합시다!'라는 사목교서에 따라 올해부터는 2년간 지속적으로 복음 선교교육을 실시해 본당 구성원 전체가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또 2013년 교구에서 개최할 한국청년대회와 아시아청년대회에 앞서 올해 교구 청년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히고, 교구 사제단에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주문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 인천교구는 1일 답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평신도 단체장과 본당 사목회장단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평화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신년교례회를 가진 데 이어 3일에는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가 함께하는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세계 평화의 날 미사 강론에서 "북한에 종교 자유가 보장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가득하게 되기를 함께 기도하자"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부정적 사고에 갇혀 있기보다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감사하며 살자"고 말했다. 교구 평협(회장 문기득) 주관으로 열린 신년교례회에서 참석자들은 교구장과 정신철 보좌주교에게 세배를 하며 올해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5050 선교운동'과 사회복음화 관련 기념사업, 영성교육피정센터 건립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서영호 기자 amotu@ 수원교구는 4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서 이용훈 주교는 강론을 통해 "신묘년에는 주님께 더 다가가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김민경 기자 sofia@ 의정부교구는 3일 경기도 양주시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서 교구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강론을 통해 "가정뿐 아니라 지역사회, 교회 안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작은 봉사와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형제애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교구 사제단과 각 본당 총회장 및 남녀 총구역장, 수도자, 교구청 직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서연 기자 kitty@ 청주교구는 3일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사제단과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임원진, 평신도 등 6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신년교례미사를 봉헌하고,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 세째 해를 열었다. 장 주교는 강론에서 "올해로 탄생 190주년, 선종 150주년을 맞는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난치병에 시달리는 이들이 치유를 받도록 전구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면서 "성체성사의 힘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교구는 또 구동회(요한, 청주 용암동본당)ㆍ이현주(바실리사)씨 가정 등 10가정에 성가정 축복장과 장 주교 친필 사인이 담긴 금장 성경을 수여했다. 장광동 명예기자 jang@ 마산교구는 3일 창원시 양덕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안명옥 주교와 사제단, 신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신년하례미사를 봉헌하고 올 한해도 순교영성으로 세상 복음화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미사 후에는 전 교구장 박정일 주교 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 손춘복 명예기자 광주대교구는 1일 광주가톨릭대 평생교육원 성당에서 교구 평협 신년하례식을 가졌다.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이날 참석한 평신도 대표 160여 명에게 소통과 친교를 통한 하느님과 일치를 강조하면서 "전례생활 활성화를 통해 이러한 일치를 이뤄가자"고 당부했다. 또 평신도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평화의 일꾼으로 거듭나길 희망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 제주교구는 1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교구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 등이 참례한 가운데 신년하례식을 겸한 '티없으신 성모께 교구를 봉헌하는 미사'를 거행했다. 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올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면서 "이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사 참례자들은 이날 미사 중에 '성모성심봉헌문'을 낭독하며 성모께 우리나라와 제주교구, 그리고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수정 기자 남정률2011.01.04
![[특집]방글라데시 의료봉사ㆍ빈민가 현장 동행취재2](//cpbc.co.kr/CMS/newspaper/2011/02/rc/367231_1.0_titleImage_1.JPG)
[특집]방글라데시 의료봉사ㆍ빈민가 현장 동행취재2기찻깊 옆 빈민촌에 희망의 씨앗 심는다 선로 옆 얼기설기 엮은 빈민가 끝도없이 이어져 떼제 공동체와 청소년 쉼터 '말구담 클럽' 운영 예수회 '기쁨나눔' 통해 의료·급식·축구부 지원마이멘싱 역사 바로 앞 기차 선로 옆으로 빈민가가 이어진다. 기찻길 옆 땅은 국유지여서 빈민들을 내쫓지 않아 방글라데시에선 기찻길 옆에 빈민가가 생겨났다. 선로 안에서 한 아버지가 두 손 위에 딸을 올려놓고 묘기하듯 놀고 있다. 선로 안에서 한 아버지가 두 손 위에 딸을 올려놓고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다. 마이멘싱 역사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와 달리 방글라데시는 역사 안팎으로 어디서나 드나든다. 콘크리트가 뭉텅뭉텅 패고 부서진 승강장은 행려자들이 점령했다. 희망, 꿈이라는 단어가 사치스럽다. 누추하고 추레한 삶과 불쑥불쑥 마주해야 한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은 환영마냥 기찻길을 따라 뻗어나간다. 기차 선로 침목 주위엔 대나무로 얼기설기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넝마를 덮은, 집 같지도 않은 집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엄마 젖을 빨던 아이는 이방인이 신기한듯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감동이 밀려올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라'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릴 새도 없이 셔터를 들이댔다. 발가벗은 아이는,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일어서서 기우뚱한다. 그 표정이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시스터" 연호하는 아이들 현지 빈민가 사도직활동을 책임진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방글라데시 분원 성경림(마리아) 수녀와 함께 빈민가로 들어섰다. 성 수녀를 보고 아이들이 먼저 달려온다. "시스터"를 연호하는 아이들 표정 또한 무척이나 밝다. 삶의 환경이 열악하다고 그 삶까지 우중충한 것은 아닌 듯하다. 곳곳에 쓰레기와 오ㆍ폐수가 넘쳐나며 악취가 진동하는 삶터로 따라 들어갔다. 때마침 한 할머니가 식사를 준비한다. 낡은 오두막 곁에 불을 피우고 화덕에 낡은 냄비를 올려놓고 무언가를 끓인다. 성 수녀가 그에게 다가가 인사을 건네며 영양제를 주자, 순식간에 이웃들이 몰려든다. 아이들이 맨 먼저 다가서고, 여인네들도 이어 쭈뼛쭈뼛 나선다.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도 몰려드는 인파에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물을 마시던 한 아이는 카메라를 들이대자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돌린다. 한 발자국씩 뗄 때마다 이웃들이 계속 모여들어 빈민가 주민들이나 아이들과 만남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길거리 아이들이 모여드는 말구담 마을 클럽으로 향했다. 수녀들은 현지에 먼저 파견돼 있던 떼제공동체와 함께 '말구담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낡은 대나무로 벽체를 만들고 양철 지붕으로 햇빛을 가린 뒤 바닥에 마대를 깔아 놓은, 소박하다 못해 추레한 공간이다. 26㎡(8평)쯤 돼 보이는 어둠침침한 클럽 안에는 20 명 남짓한 아이들이 몰려와 노래를 부르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대부분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생계를 잇는 아이들로, 저녁이 되면 길거리 아무데서나 잠을 자곤 했다. 떼제공동체는 이들을 위해 1997년 정부 땅을 빌려 방글라데시 전통 건축 양식대로 대나무 집을 세우고 클럽을 열었다. 한때는 길거리에서 잠자는 아이들을 데려와 클럽에서 재우기도 했는데, 화재가 나 하는 수없이 2009년에 다시 세운 뒤로는 밤에는 문을 닫았다가 낮에만 열고 있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클럽 봉사자로 활동 중인 하니프 아벨(27)씨는 "원래는 나도 이 기찻길 옆 빈민가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먹고 살았는데 떼제공동체 수사님들을 만나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배운 것을 전하고 있다"면서 "아이들도 우리 봉사자들처럼 공부를 해서 선생님이 되거나 장사를 해 자신의 길을 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송상욱(율리아노, 48) 교수를 비롯한 성 빈센트병원 의료봉사팀원들이 클럽에 들어서자, 봉사자 지도에 따라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아이들은 이내 같이 놀자는 듯 수도자와 봉사자들 팔에 매달린다. 노래와 함께 율동도 보여준다. 이전에 클럽 사도직을 맡았던 때문인지 김성자(스콜라스티카) 수녀에게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 봉사팀원들이 답가를 부르자 잠깐 밖에 나가 꺾어온 꽃을 전하며 환호한다. 5년째 마이멘싱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김 수녀는 "선교란 가난한 이들에게 젖어들어 이들이 인간 존엄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람답게 살도록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들이 비록 삶의 희망 같은 건 갖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도록 도우려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현지 빈민가 소식을 접한 예수회 한국관구 관할 해외원조법인 (재)기쁨나눔은 지난해 3월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수도자들과 손을 잡았다. 10개월간 성 빈센트 드 뽈 클리닉을 찾는 빈민들 의료비 지원에 262만여 원, 빈민가 청소년들 제빵기계 구입 및 급식, 현지 빈민 청소년 축구부 지원 사업 등에 1382만여 원 등 모두 1694만여 원을 지원했다. 특히 기쁨나눔의 의료지원을 통해서는 지난해 5월 니남(70)씨가 백내장 수술을 받고 활기찬 삶을 살게 됐고, 뇌수막류를 앓고 있던 수한이도 수술을 받고 건강해졌다. 또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는 이슬람ㆍ힌두 빈민가 청소년들 급식을, 매주 금요일(이슬람력으로는 금요일이 일요일) 아침에는 현지 청소년들이 축구를 통해 영육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축구부 활동을 이끌었다. 유니폼과 축구화, 축구공 등을 지원해 이뤄지는 축구부 활동은 현지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지난해 3월 설립된 기쁨나눔이 10개월간 후원자 300여명을 통해, 인터넷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소액기부를 유도하고, 지원 대상지에서 이뤄질 구체적 프로젝트를 통해 단체 기부를 이끌어낸 덕분이었다. 이같은 기쁨나눔의 후원을 기반으로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수도자들은 떼제공동체 수도자들과 사도직에 연대하며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촛불처럼 태우고 있다. 마이멘싱(방글라데시)=오세택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1.02.15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2) 제1차 니케아 공의회(상)삼위일체 교리 바로 세운 첫 번째 공의회325년에 개최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모습.◇배경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이 어떻게 셋으로 구별될 수 있는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교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는 초기부터 이를 둘러싼 숱한 논쟁이 제기됐고, 많은 이설이 생겨났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박해를 받아온 그리스도교가 신앙 자유를 얻은 직후인 4세기 초반에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다시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논쟁 발화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였고 불씨를 당긴 사람은 사제 아리우스였습니다. 아리우스는 진짜 신은 하나여야 한다는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단일성을 철저하게 고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의 아들 곧 성자 그리스도는 참된 하느님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리우스에게 성자는 참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성자는 피조물의 으뜸이지 하느님과 똑같은 본질을 지닌 완전하고 절대적 신일 수 없습니다. 성부만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참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아리우스의 주장이었습니다. 아리우스의 이런 주장은 그의 독창적 사상이라기보다는 이미 3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널리 확산된 '그리스도 종속설' 또는 '성자 종속설'의 연장선 상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곧 성자는 성부와 똑같지 않고 성부에게 종속돼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더 극단화한 것이 아리우스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우스의 주장에 상당수 성직자와 평신도가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에 어긋난다는 반대 또한 만만찮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로마,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일찍부터 총대주교좌가 있던 그리스도교 5대 중심 교회 가운데 하나이자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만큼 지지자들과 반대자들간 대립과 다툼도 심각했습니다. 대립이 심각해지면서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데르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318년 교회회의를 열어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추방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밖에서도 지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알렉산데르 주교에게 아리우스를 다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알렉산데르는 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다시 교회회의를 열어 아리우스를 파문합니다. 323년이었습니다. 아리우스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파문 제재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아리우스는 이집트에서뿐 아니라 다른 동방 교회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사이에 분열과 대립이 극심해졌습니다. 교회 내의 이런 분열이 당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관용령'이라는 칙서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도 자신들의 신앙을 자유로이 고백하고 실천할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박해로 지하에 숨어 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준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이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또한 로마 제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불거져 나온 교회 내 분열이 제국의 평화에도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 이 분열을 해결하고자 나섰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스페인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 사절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호시우스 주교는 중재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안의 중요성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마침내 제국의 모든 주교들을 자신의 여름 왕궁이 있는 니케아로 소집하지요. 325년이었습니다. 황제는 회의 장소로 자신의 왕궁을 내주었을 뿐 아니라 회의에 참석하러 오는 주교들에게 제국의 역참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느님 단일성 제기한 사제 아리우스가 삼위일체 반박하자알렌산드리아 주교가 아리우스 파문하며 교회 내 분열 시작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교들을 니케아에 소집해 회의열어대부분 동방 주교 참석, 삼위일체 인정한 니케아 신경 채택 ◇과정 니케아 공의회는 회의 내용이나 과정에 관한 공식 기록이나 문서가 없어서 회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의회 참석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전해지는 기록들을 토대로 하면 공의회는 5월 20일에 시작됐습니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수와 관련해서는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설과 250명이 넘는다는 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공의회에 참석한 성 아타나시우스는 나중에 공의회 참석자가 318명이라고 밝힙니다. 318이라는 숫자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종들을 가리키는 숫자(창세 14,14)로 다분히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지요. 참석 주교들은 동방(로마를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 온 주교들이 대다수였고, 서방(로마와 그 서쪽에 있는 교회들) 주교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자문 역할을 한 코르도바 주교 호시우스를 포함해 열 손가락에도 꼽히지 않을 정도로 소수였습니다. 로마 주교인 교황 실베스테르 1세(재위 314~335)는 연로해서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사제 비투스와 빈첸시우스를 특사로 파견했습니다. 참석한 주교들 가운데는 박해 때 고문을 받아 양손 근육이 마비된 주교도 있었고 한쪽 눈을 잃은 주교도 있었다고 합니다. 회의가 열렸고 황제는 명예의장으로서 개회 인사를 했습니다. 주교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화해와 평화를 막는 장애물을 없애고 모두가 일치해서 신앙 안에서 화해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회의는 의장인 교황을 대리해서 호시우스 주교와 다른 이들이 주재했습니다. 참석 주교들은 아리우스 논쟁의 불씨가 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문제와 부활대축일 날짜를 정하는 문제를 논제로 삼아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격론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심상찮게 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황제 자리에서 내려와 화해를 요청하는 등 적극 개입했다고 합니다. 약 한 달 간의 열띤 논쟁 끝에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데르가 이끄는 정통파 주교들이 이겼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하느님으로서 하나의 본체 또는 본질(동일 본질)을 지닌다는 내용의 니케아 신경이 채택됐습니다. 325년 6월 19일이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cpbc2011.02.15
![[출판]성심수녀회 이명기 수녀, 「성경은 왜 이렇게 말할까?2」펴내](//cpbc.co.kr/CMS/newspaper/2009/04/rc/291865_1.0_titleImage_1.jpg)
[출판]성심수녀회 이명기 수녀, 「성경은 왜 이렇게 말할까?2」펴내고통 속에서 하느님 찾아가는 여정 "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제발 저를 죽여주십시오"(민수 11,15). 모세는 절망의 상처가 너무 깊어 그만 죽고 싶은 지경에 이른다. 성경 인물뿐 아니라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고통'은 심해, 그 바닷속처럼 깊고 숙명적이기까지 하다. 이같은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치유를 받을 수 있을까. 그 답이 '성경은 왜 이렇게 말할까?'시리즈 2권에 담겼다. 가톨릭대 종교학과와 인간학교육원, 수도자신학원에서 강의하는 성심수녀회 이명기(마리아) 수녀의 「성경은 왜 이렇게 말할까?2-주님, 제가 고통 받을 때 어디 계십니까?」다. 곽승룡(대전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집필한 1권 「자비하신 하느님이 왜 화를 내실까?」에 이어 두 번째 권이다. 134쪽 분량으로 이뤄진 이 소책자는 고통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일곱 가지로 축약, 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영적 여정을 담고 있다. 고통과 악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고통에 대한 이해를 안겨주고,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며, 더불어 충만한 하느님을 체험케 해준다. 그러나 성경과 같이 우리에게 정답을 제공하려 하기보다는 성경 속 인물들이 고통의 신비를 캐묻고 때로는 모호함을 견디며 하느님과 만남을 추구해가는 여정을 보여주려 한다. 특히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 성조들과 모세, 다윗, 욥, 시편 시인, 예언자 등 대부분 성경 인물들이 고통 한가운데서도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있겠다'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억하며 각자 걸어간 여정을 살핀다. 무죄한 사람들의 고통과 까닭 없이 닥치는 고통, 고통의 훈육적 의미,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성경에서 하느님을 향해 어떻게 불평하고 어떻게 믿음을 고백했는지를 전해준다. 또 착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닥치는 이유와 신앙인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지, 또 모세와 엘리야 등의 예를 들어 '버림받음'의 의미를 묵상한다. 이어 고통의 의미와 목적, 구약성경과 묵시문학의 희망을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과 어떻게 맞서 싸우고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는지, 또 예수의 고통과 죽음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신비'를 통해 본문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바오로딸/65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4.21

부활의 삶을 사는 출소자들"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 철판요리점 사장 신재웅씨 신자 교도관 통해 신앙에 눈 떠, 성경필사하며 고통 사라져희망 씨앗 잘 키워 출소자들 도와주고 싶은 '행복한 요리사'신앙 안에서 새 삶을 찾은 신재웅씨가 주방에서 즐겁게 요리를 하고 있다. 백영민 기자 "제게 부활이란 과거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목숨을 다해 하느님 말씀을 사는 것이죠." 서울 성북구 석관동 철판요리점 사장인 신재웅(스테파노, 46)씨는 "누구에게나 주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저는 그 도움의 손길을 늦지 않게 잡았다"며 안도의 눈빛을 내비쳤다. 그는 "매 순간 일상에서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느끼며 산다"고 털어놓으며 "빛과 어둠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무역업을 하다 크게 부도를 낸 신씨는 2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경제사범으로 수감됐다. '내가 왜 여기에, 성공이 눈 앞에 있었는데…'라는 생각들로 자신을 괴롭히다 자살을 시도했다. 그가 신앙에 눈을 뜬 건 가톨릭 신자 교도관이 그를 보살피면서다. 신씨는 신부를 찾아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물었고, 신부는 그의 손에 성경을 얹어줬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면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신씨는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 기도했다. 그는 성경을 쓰며 여러번 통곡했다. 그는 깨지고 부숴지면서 서서히 고통에서 해방됐고, 원한과 욕심도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출소했던 겨울 날을 잊지 못한다. 2년 전 추운 새벽, 갈 곳 없는 자신을 데리러 온 이들이 눈에 선하다. 당시 신부와 함께 배웅나왔던 한 자매가 건네준 묵주는 차에 걸고 다닌다. 출소하자마자, 식당에서 주방일을 한 그는 지난 12월, 출소한 지 2년 만에 식당을 차렸다. 지난 해 겨울 기쁨과희망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법무부에서 지원을 받아 창업을 한 것이다. 그는 새벽마다 도매시장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온다. 그는 오징어를 다듬으면서도, 양파를 깎으면서도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삶은 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을 사시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고 털어놨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신씨는 "제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저를 예수님처럼 대해주셨기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앞으로 삶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제가 받은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라며 "그래야만 제가 받은 희망의 씨앗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또 다른 싹을 틔울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의 출소를 기다렸던 아내와 딸은 등을 돌려 홀로 남겨졌지만, 그는 신앙 안에서 새 삶을 찾았다. "하느님이 주신 평화를 느껴봤기에 다시 유혹이 와도 물리칠 자신있습니다. 제 뜻대로 살았을 때 결과를 훤히 보여주셨잖습니까. 하느님 뜻대로 살 때 평화를 주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지혜 기자 # 양말가게 운영하는 조연구씨출소 후 창업자금 대출 받아 아내와 함께 양말가게 운영도움받아 일어 섰는데… "다시 어둠 속으로 갈 순 없죠" "엄니~ 양말 면이 진짜 좋아. 색깔도 너무 이쁘네. 다섯 개에 3000원! 아니 여섯 개 줄게." 서울 관악구 봉천동 현대시장 앞 사거리. 아주머니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조연구(마태오, 43)씨가 바빠진다. 가지각색 양말이 수북히 쌓인 트럭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고객님이 구입하신 양말 값의 일부는 불우이웃돕기에 쓰여 집니다"는 문구가 함께 쓰여있다. 이 글귀는 자신을 바닥으로 내리치신 하느님께 드리는 약속이다. "만날 술 마시고, 놀러다니고…. 승승장구 하면서 향락에 빠져 살았죠. 어느 날 하느님이 절 치시더라구요. '마태오, 너는 다시 시작해야겠다' 하시면서." 그는 월 매출 1억 원이 넘는 의류 브랜드 매장을 경영했다. 그런데 매출이 떨어지면서 부도가 났고 생계형 범죄를 저질러 4년을 복역했다. 아들 100일날 구속된 그는 원망으로 가득찬 시간을 보냈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렇지만 반지하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내를 기억했다. 그는 군산직업훈련소와 청송직업훈련교도소를 옮겨다니며 제과제빵ㆍ특수용접자격증을 땄다. 터널처럼 어두웠던 그의 마음에 빛 한줄기가 들어온 건 청송직업훈련교도소에서다. 당시 그는 아내가 가끔씩 보내오는 속옷과 생활용품으로 부족하지 않게 생활했다. 그런데 가족이 없는 한 수용자가 묵묵히 사는 모습을 보고 콧잔등이 시려왔다. 그 수용자는 밖에서 넣어주는 영치금이나 생활용품 없이 교도소에서만 제공되는 휴지 두 통과 세탁비누 한 개, 세숫비누 반토막으로 한 달을 묵묵히 사는 것이었다. '나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불평만 하며 살았구나….' 그는 아내가 보내오는 생활용품들을 보며 하느님 사랑을 느꼈고, 그때부터 아내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의 삶도 달라졌다. 출소한 그는 지난해 6월 기쁨과희망은행에서 창업자금 1500만 원을 대출받아 서울 봉천동에 작은 양말가게를 냈다. 아내는 매장에서 양말을 팔고, 조씨는 1t 트럭을 몰고 다니며 지방 5일장을 찾아다닌다. 강원도와 충청도 등 가지 않는 곳이 없다. 그는 지방에서 하루 장사가 끝나면 공터에 트럭을 세워놓고 잠을 청한다. 그는 "의자를 접어 이불을 깔면 '움직이는 호텔'이 따로 없다"며 직접 등받이를 접어 보였다. "심심할 때는 노트북으로 영화 보고, 음악도 듣고, 내비게이션으로 텔레비전까지 볼 수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또 "지역마다 특산물이 있어 먹을거리야말로 걱정없다"고 했다. 그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딨냐"며 활짝 웃었다. 그는 한 손님에게 잔돈을 건네주며 말했다. "저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쁨과희망은행 후원회원들 도움으로 창업하면서, 춥고 배고픈 수용자들에게 양말 한 켤레라도 보내 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조씨는 매일 3000원을 따로 떼어놓아 모은 돈으로 양말 120켤레를 사 교도소로 보냈다. 춥고 외로운 수용자들을 위한 설 선물이었다. 그는 지난 가을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 쉬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빛 한줄기를 만났는데,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이지혜 기자 [BOX] 기쁨과희망은행은 가톨릭 교회가 출소자들의 창업지원을 위해 2008년 6월에 창립한 무담보 신용대출기관이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사회 차별과 편견으로 자립할 기회가 막혀있는 출소자들이 창업교육을 받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심사를 통과하면 1인당 창업자금을 2000만 원까지 담보 없이 빌려주고 있다. 이자는 연 2%로, 5년에 거쳐 분할 상환해야 한다. 현재 50명이 넘는 출소자들이 기쁨과희망은행을 통해 새 삶을 찾아가고 있다. 후원 문의 : 02-921-5093~4,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지혜2010.03.30
![[영성의 길 수도의 길]-(38) 카푸친 작은 형제회](//cpbc.co.kr/CMS/newspaper/2011/04/rc/374082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38) 카푸친 작은 형제회가난, 겸손... 프란치스코 닮으려는 '작은 형제들' 사제,평수사 구분없이 모두 '형제'로 호칭 상설고해소 운영 및 매일 성체조배 경당 개방이주민 사목과 생명운동으로 사도직 확대할 터 십자가를 중심으로 아래에 두 손이 엇갈려 있다. 옷 소매가 보이지 않은 오른쪽 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고, 옷 소매가 보이는 왼쪽 손이 오상의 은총을 받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영으로, 육으로 완전히 일치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는 형제들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손으로 형상화했다. 둥그레 뭉쳐진 하얀 꽃눈이 시리도록 곱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효창운동장으로 접어드는 길목엔 백목련이 줄지어 있다. 소담스럽게 핀 목련꽃 향기가 아슴아슴 번지는 서울 효창동 주택가에서 수도원을 만났다. #올해 한국 진출 25돌 맞아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와 함께 1회 프란치스칸의 세 기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보호구(보호자 에드워드 다울리 형제)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형제회 수도원이다. 라틴어 원문 그대로라면 '카푸친 더욱 작은(Minoritas) 형제들의 수도회'로 번역돼야 할 이 수도회는 기도와 형제애, 복음화, 가난, 더욱 작음의 영성으로 프란치스코가 살아간 삶을 닮으려하는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다. 그래선지 수도원에 들어서자마자 맨 처음 들은 단어는 '형제'라는 말이었다. 공동체 안팎 어디서나 사제든 평수도자든 차별 없이 형제라는 호칭만으로 불리는 공동체를 접하니 좀 낯설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처럼' 살며 형제애를 중시하는 공동체에 호감과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동시에 '더욱 작은 자'로 살고자 하는 형제들 삶에 대한 궁금함도 커졌다. 올해로 한국 진출 25돌을 맞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사도직은 단출하다. 서울 지역 형제회 경당을 개방, 고해성사를 상설화하고 성체조배경당으로 발전시켰으며, 수련소가 있는 가평 지역 형제회에선 소규모 피정을 지도한다. 힘이 닿는 한 재속 프란치스코회원 양성과 영성 보조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주요 사도직 가운데 하나다. 이마저도 지난 2009년 성탄 전야부터 본격화됐고, 이전엔 관상생활과 함께 수도 공동체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주력했다. 상설 고해성사 마련은 1986년 카푸친 형제들을 서울대교구에 초청한 김수환 추기경의 교구민을 향한 사목적 사랑이 계기가 됐다. 유럽에 갈 때마다 신자들이 카푸친회 성체조배경당에 들러 자유롭게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받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뒀던 김 추기경은 카푸친 형제들을 초청해 성체조배와 고해성사 거행을 한국에서도 활성화하려 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한국 카푸친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이 사도직을 펼칠지 궁금해 했다. 이같은 김 추기경의 오랜 바람과 '고해실의 사도'로 불린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모범을 따라 한국 카푸친들은 지난해 3월부터 서울 형제회 경당에서 고해성사를 주고 있다. 평일엔 오후 2~5시, 토요일엔 오후 2~7시다. 토요일엔 영어 고해성사도 1시간(오후1~2시)씩 주고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적을 땐 대여섯 명, 많을 땐 열댓 명에 그치지만, 수도회측은 단순한 숫자보다는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데 더 비중을 둔다. 카푸친들의 고해성사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다. 고해소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과 화해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것이기에 편안하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신변잡사를 얘기해도 고해성사에서 신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위로를 해주는 데 더 주력한다. 2008년 한국인으로는 첫 카푸친 사제가 된 강주현(프란치스코 마리아) 형제는 "화해와 기쁨의 성사인 고해성사가 한국교회에선 냉담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며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고해성사가 마치 심판인 것처럼 오해를 받고 보속 부담으로 또 다시 냉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고해성사를 상설했다"고 말한다. #하느님과 화해 돕는데 힘써 이뿐 아니라 날마다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성체조배경당을 개방, 성체조배를 돕고 있다. 매주 목요일(첫 주 목요일은 제외) 오후 8시 성체조배경당에서 성체강복을 거행하고, 형제회를 방문하는 신자들과 함께 아침기도(오전 6시 15분)와 아침미사(오전 7시), 저녁기도(오후 6시)를 거행한다. 성체조배 또한 고요히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는 방법을 통해 주님과 일치하도록 권유하지만, 특별히 그런 방법을 강권하지는 않는다. 성경을 읽거나 성당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세상 한가운데서 사는 관상자인 한국 카푸친들은 또 교구 성직자들을 돕고 수도자와 장애인, 이주민, 군인들을 위한 미사전례를 거행하고 고해성사를 주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서울대신학교 영어 지도나 인천교구 이주민 사목 같은 활동도 수도형제들 개인 사도직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한국보호구는 앞으로 이주민 사도직과 생명운동으로 공동체 사도직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공동체 내 봉사도 무시되는 건 아니다. 수도회 밖에선 사제들의 사목에만 주목하지만, 수도회 내에선 모든 수도형제들의 활동이 똑같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사제든, 평형제든 똑같은 형제로서 사는 것, 이것이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핵심적 삶이자 수도생활 방식이다. 에드워드 다울리 형제는 "우리 한국 카푸친들은 '작은 형제의 첫째가는 사도직은 진리와 단순함과 기쁨으로 세상 안에서 복음생활을 사는 것'이라는 회헌대로 사도직과 봉사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주민 사목과 생명운동 쪽으로 사도직 활동을 모색 중이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수도회 영성과 역사 카푸친 작은 형제회(Ordinis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 Cap)는 성 프란치스코가 1223년에 인준 받은 회칙(수도규칙)을 문자 그대로 준수하려는 이상에서 비롯됐다. 성 프란치스코의 실제 모범과 이미 알려진 의도, 특히 성인의 유언에서 표현된 대로 회칙을 해석해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첫 번째 동료들을 엄격하게 닮고자하는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것. 카푸친 영성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대로 가난하고 겸손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형제애와 관상, 복음화, 가난 및 더욱 작음, 정의평화 및 창조보전 증진을 핵심적 가치로 삼고 있다. 카푸친 개혁의 시초를 장식한 인물은 당시 작은 형제회의 두 가지 중 하나였던 준수회(Observantes) 이탈리아 마르케 관구 바시오의 마태오 형제로, 1525년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회칙을 문자 그대로 준수해도 된다는 구두 허락을 받는다. 이어 클레멘스 7세는 1528년 칙서를 통해 카푸친 개혁을 '은둔 생활의 작은 형제'라는 이름으로 교회법적으로 인준했고, 이들은 성 프란치스코가 입었던 수도복이라고 생각한 길고 뾰족한 모자(Cappucio)가 달린 수도복을 선택했다. 카푸친이라는 이름은 후드 같은 모자, 카푸치오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카푸치노(Cappuccino)는 '작은 카푸치오'라는 뜻이다. 1535년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 총대리가 된 아스티의 베르나르디노 형제는 수도회를 안팎으로 정비, 이후 카푸친들은 그를 진정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설립자로 여기게 됐다.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는 작은 형제회 세 가지 중 하나로 인가했다. 국내에는 1986년 7월 아일랜드 성 프란치스코와 성 파트리시오 관구 소속 형제 4명이 입국, 서울대교구에 진출함으로써 시작됐다. 한국 카푸친은 모두 16명이며, 이 가운데 6명은 선교사로 종신서약을 한 사제와 평형제가 각각 3명이다. 한국인 종신서약자는 총 7명으로, 사제는 3명이고 평형제는 4명이다. 나머지 3명은 수련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성소 상담 ▨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지역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형제회(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5-40)▨ 문의 : 02-701-5727, 5720, 홍호남 고스마 성소 담당 형제 cpbc2011.04.19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26)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5668_1.0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26)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인정되기까지 '무염시태'로 불렸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에 의해 선포됐다. 이 교의는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논쟁이 됐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와 동정녀라는 것도 일찍이 선포됐지만 성모님의 죄없는 잉태는 1850년대까지 미뤄진 부분이다. 성모님이 죄없이 잉태됐다고 하는 것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초기 교부들도, 성경의 관심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하고,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데 성모 마리아의 역할과 성덕이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의 성덕을 찾아낸다. 초창기 유스니토 교부는 처음으로 하와의 불순명이 성모 마리아의 순명으로 극복되는 부분을 강조한다. 이레네오 교부는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구속자, 공동 중재자라고까지 설명하기에 이른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모님의 원죄없는 잉태에 대해 주저했다. 토마스 데 아퀴노, 보나벤투라 등 중세기 대학자 성인들도 그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프란치스코회 둔스 스코투스 신학자는 "성모님이 원죄없이 잉태되셨다고 하는 사실은 성모님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구원받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구원 중재 능력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크다는 것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결코 한순간도 원죄의 지배하에 있지 않게 하실 수 있다. 둘째, 마리아를 어느 한순간만 원죄의 지배하에 있게 하실 수 있다. 셋째, 어느 시기가 지난 다음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성화하실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능성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실 수 있는 하느님은 과연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질문하고, 하느님은 가장 좋은 것을 마리아에게 이루셨음을 확신한다. 당시 유명한 중세기의 공식이 있다. "하느님은 하실 수 있었고, 원하셨으며, 따라서 하셨다"(Potuit, voluit, fecit)는 것이다. 교도권은 중립적 자세를 취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회칙을 반포해 더 이상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해 논쟁하거나 서로 단죄하지 못하게 했다. 한편 사회적 분위기는 신학적 논쟁과 달리 성모 신심이 가열되고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톨릭의 대중적 경향을 비판했으며,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마리아의 승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 지성주의와 계몽주의는 반작용을 낳았고, 가톨릭의 대중신심은 신비주의 경향에 더 매력을 느낀다. 성모신심을 중심으로 많은 단체와 수도회가 생겨난다. 1841년 8월 22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한국교회의 수호자로 선포된다. 그리스도교 국가의 왕과 주교들은 교황에게 빈번히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교의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한다. 1667년부터 1799년까지 교황 13명은 선대 교황의 입장을 따라 중립을 지킨다. 성모 축일을 장려하면서도 신앙 교의로 선포하지는 않았다. 1840년 10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공동 서한으로 그레고리오 16세에게 교의 선포를 청원한다. 마리아 신심이 깊었던 비오 9세가 1846년 교황이 된다. 그도 끊임없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 선포를 요청받았다. 교황은 주교들에게 설문지를 보내 호의적인 답을 얻었고, 1854년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선포했다. 36항으로 구성된 회칙은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설명하고,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소개한다. 또 선대 교황들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신심을 격려했던 사실을 열거했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1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