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 25-입맞춤-친밀감과 헌신, 존경의 표시](//cpbc.co.kr/CMS/newspaper/2008/11/rc/272645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25-입맞춤-친밀감과 헌신, 존경의 표시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감동적 스토리와 멋진 음악의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작은 마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키스 장면은 사전 검열로 모두 삭제됐다. 이후 로마에서 유명 감독이 된 중년의 토토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고향 마을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옛 시절을 추억한다. 토토는 알프레도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필름 한 통을 받아 자신의 현대식 극장에서 상영해 보는데 거기에는 커트된 수많은 영화 속 키스 장면이 이어져 나온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인 키스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입맞춤은 보통 선의의 징표이며 신뢰와 우호, 화해와 애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입맞춤은 평화와 계약의 조인에도 사용된다. 또한 상대방의 손이나 발에 하는 입맞춤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나 보호 요청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신전 입구 문지방과 제단과 신상에 종교 의식으로 입맞춤을 했다. 이집트에서는 신과 동일시되는 지배자의 양 발에 입맞춤하는 관습이 있었다. 또한 입맞춤은 동지적 결속에 대한 표시로서 같은 조직에 가담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교환했다. 성경에 나오는 입맞춤은 일종의 친밀함에 대한 외적 표현이다. 또한 화해나 친밀감 회복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요셉은 형들과도 하나하나 입을 맞추고 그들을 붙잡고 울었다. 그제야 형들은 그와 이야기하였다"(창세 45,15). 이처럼 다양한 친밀함과 서로에 대한 헌신, 존경과 숭배의 표시로 성경에 나타난다. 포옹을 수반하는 입맞춤은 동등한 자들끼리 나누는 인사이다. 야곱과 에사오가 화해할 때도 에사오는 달려가서 야곱을 맞아 안고 입맞추고 울었다(창세 33,4). 사무엘이 사울에게 입맞춤하는 것은 새로 선택된 왕에게 순명의 뜻을 표한 것이다.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1사무 10,1). 입맞춤은 본래 애정과 헌신의 표시였지만 주님을 배반한 유다에 의해 악용돼 배반의 표시로 변했다(마태 26,48-49). 이처럼 유다의 입맞춤은 다른 이를 철저하게 속이는 행위였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향해 신자들이 서로 인사할 때 입맞춤을 언급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로마 16,16). 사도 베드로도 역시 같은 요구를 한 점으로 봐서 초대교회의 일반적 인사였음을 알 수 있다. "여러분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1베드 5,14). 가톨릭에서 미사 시작과 끝에 주례자가 제단에 입맞춤하는 관습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관습을 장려한 것은 제단을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단에의 입맞춤은 제단 아래에 안치해 있는 순교자의 유해와도 관련이 있다. 조은일2008.11.18
![[한국교회 사제열전] 7. 한기근 신부(1867~1939)](//cpbc.co.kr/CMS/newspaper/2009/09/rc/308838_1.0_titleImage_1.jpg)
[한국교회 사제열전] 7. 한기근 신부(1867~1939)'경향잡지' 통한 문서선교의 개척자한기근 신부 "소중한 복음 성경을 번역할새, 책 볼자로 하여금 읽을 때에 서슴치도 아니하고, 뜻도 해박(該博)히 알아듣기 위하여, 말마디를 각각 나누고, 글자의 음이 길고 짧은 것을 분별하고, 숨쉬는데 점을 두었으니…." 한기근(바오로) 신부가 1910년 「사사성경」(四史聖經) 발간 무렵에 한글 띄어쓰기와 부호사용 원칙을 밝혀둔 내용이다. 한 신부는 말마디를 나누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 신 자여…"를 "하늘에계 신우리아 비신자여…"로 붙여 읽기가 쉽다며 띄어쓰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문에 통달한 자도 그러하거늘 언문에 서툰자와 아이들이 어찌 바로 읽겠느냐?"고 말했다. 당시 출판물들은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별다른 보조부호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한 신부는 천주교회가 박해를 이겨내고 기반을 닦아가는 과정에서 문서선교의 새 장을 연 인물이다. 유길준과 주시경 같은 개화기 한글학자들이 「대한문전」과 「국어문전음학」 등을 통해 어문규정을 정리한 게 1905~1908년인 점에 미뤄볼 때, 한 신부는 적어도 천주교 내에서 선각자요 계몽운동가로 불릴만하다. 「사사성경」은 4복음서를 처음 우리말로 완역한 신약성경인데, 개정과 중간(重刊)을 거듭하면서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올 때까지 무려 60년간 널리 이용됐다. 지금도 구교우 집안에서 가보(家寶)처럼 전해 내려오는 「요리강령」도 한 신부 번역으로 빛을 본 교리서다. 매 장마다 한편에 그림을 싣고 그 옆에 설명을 붙인 프랑스 교리서를 갖고 번역한 이 책은 출간 당시 호화판(?) 그림이 실려 있는데다 값도 싸서(68전)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정보에 어두운 시골 신부들은 그 교리서를 접하고 "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걸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교구청에 항의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한 신부는 1867년 경기도 양지 추계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3살 때 모친 방 바르바라를, 9살 때 부친 한 안드레아를 잃은 후 서울에 사는 백부 한영직(베드로)의 집에서 살았는데, 그때 세례를 받고 종현학당에서 공부하다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박해를 피해 양지로 숨어든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도 세례를 늦게 받은 이유는 병인박해로 교회가 와해된 상태라 사제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살 소년 한기근은 정규하 등 신학생으로 선발된 친구 3명과 사제의 꿈을 안고 말레이반도 페낭신학교로 향했다. 여행 경험이 없고, 외국어도 모르는 어린 신학생들이 뱃길을 이용해 페낭에 닿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정규하 신부 유학 회고기에 남아 있다. "(배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우리 방으로 가져오려니 하고 점심을 기다리나 무소식이라. 3일 동안을 기다리나 아무 동정이 없으니 두 아해들은 (배가 고프고 막막해서) 눈물을 흘리더라. 배 위층으로 간신히 올라가니 양인(洋人)이 지나감에 손짓으로 입을 가리키며 먹을 것을 애걸하매, 얼마 있다가 면보(식빵) 세 개와 홍주 두 병과 황유(버터) 두갑을 청인이 갖고 오더라. 그것을 먹으매 정신이 나더라. (홍콩 항구에서 소형선을 타고 상륙할 때) 청인을 불러 궤짝을 싣고 노를 저어 가나 당가(경리부) 신부 댁을 찾을 길이 난처하더니, 선인은 선가(배삯)를 주어야 가겠다며 중간에서 가지 아니하고, 두 시간이나 힐난(詰難)을 하나 결말이 나지 않으매, 선가는 10원이오 주머니에 있는 돈은 3원 뿐이라. 포구에 내리매, 영국 순사와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한 신부는 그토록 어렵사리 페낭신학교에 가서 공부했으나 도중에 토혈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그해(1884년) 귀국길에 올라 용산 예수성심학교에서 사제수업을 받고 1897년 사제품을 받았다. 국내 신학교 개교는 종교자유를 획득한 한불수호조약(1886년) 이후의 일이라 그 전에는 기후적응조차 쉽지 않은 페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 신부는 황해도 해주에서 잠깐 본당 사목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교리서와 성경 번역작업에서 드러났다. 한 신부는 한자와 라틴어 실력이 뛰어났다. 「사사성경」만 해도 마태오복음서를 손성재 신부 등 3명이 번역했으나 나머지 마르코ㆍ요한ㆍ루카 복음서는 한 신부 혼자서 했다. 한군자(韓君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조용한 성격에 학구파적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격이 온화하고 진중하며 침묵을 좋아했다. 남의 말이나 원망 같은 것은 일체 입밖에 내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는 농담이나 객담을 싫어했다. 어느 신부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밖에 드러나는 일은 없다. 70살이 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많은 수녀들의 고해와 고아들 고해, 매일미사를 맡아 해주었고, 틈만 나면 수녀원에 와서 국사 한문, 심지어 수학까지 힘닿는 대로 가르쳐주었다."(「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260쪽) 한 신부의 문서선교는 「경향잡지」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1914년부터 20년간 「경향잡지」를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복음을 전했다. 그의 생애 전부를 이 잡지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매달 2회 발행하는 잡지를 홀로 편집하고 발행하는 한편 성서출판소에서도 번역ㆍ교정ㆍ편찬을 도맡아 했다. 67살에 「경향잡지」를 그만뒀을 만큼 문서선교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그는 한 평생 글을 벗하고 살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글은 남긴 게 없다. 자신은 낮추고 오로지 하느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신자들 계몽을 위해 복음을 실어 나르는 일에만 몰두한 사제다. 그는 1939년 10월 18일 성모병원 병실에서 지상의 벗들에게 "성덕에 나아가기를 진심전력하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cpbc2009.09.08

청주교구 배티성지~진천성당신앙선조 혼 깃든 '한국의 카타콤바'최양업 신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충북 진천군 진천종합버스터미널.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배티순교성지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날렸다. 버스는 오전 9시 30분ㆍ낮 12시 10분ㆍ오후 2시 50분ㆍ오후 5시, 하루 네 대 뿐이다. 터미널에서 성지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청주교구가 지정한 3박 4일 도보성지순례 코스(배티~진천~괴산~연풍 84㎞) 중 하루 코스인 1ㆍ2구간, 배티성지~진천성당(16.7㎞)을 걸을 계획이다. 순례 안내책자를 챙겨들고 성지를 빠져나와 새로 조성된 옛 신학교 터로 향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사목 중심지 10분쯤 가다 103위 성인 계단을 오르니 십자가의 길에 둘러싸인 마당이 나온다.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재촉하는 도포 차림의 최양업 신부 동상이 그 끝에 서 있다. 동상 옆에 옛 신학교가 있다. 혹시나 해서 창호지 발린 문을 살짝 당겨보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성체 거양을 하고 있는 최 신부가 떡하니 앉아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가 비치돼 있는 참배기도문을 바치고 길을 나섰다. "저는 너무 약한 어깨에 힘에 겨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 제가 담당하는 조선 5도에는 매우 험준한 조선의 알프스 산맥이 도처에 있습니다. 저의 관할 신자들은 깎아지른 듯이 놓은 산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마다 조금씩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땀의 순교자' 최 신부가 1851년 10월 15일 절골에서 쓴 서한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 것은 성지에서 2~3㎞쯤 떨어진 옛 삼박골 교우촌을 향해 산비탈을 오르면서부터다. 도보순례에 나선 지 두 시간여 만에 도보가 등산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절골은 현 백곡면 용덕리로 추정된다. 윤의병 신부의 유명한 순교소설 「은화(隱花)」의 주무대가 된 이곳은 소설에 등장하는 이 진사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우촌이자 성 다블뤼 안 주교와 칼래 강 신부가 들러 성사를 주고 쉬던 곳이다. 옛 교우촌으로 향하는 소로에 접어들자 길가 외딴 집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가 요란스레 짖어댄다. 지도상에는 700m라고 쓰여 있는데, 오르막이라 그런지, 처음 가는 길이라 그런지 더 멀게 느껴진다. 중턱쯤 오르자 멀리 잘 가꿔놓은 묘소가 보여 한달음에 달려가니, 으리으리한 묘는 어느 문중의 일반 무덤이다. 그 뒤로 작은 십자가 두 개가 위아래로 서 있는 소박한 묘가 순교자의 것이다.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실제 인물 이 진사는 피신했지만 그의 아내와 딸은 현장에서 순교한다. 지금도 순교자 모녀는 이곳에 남아 옛 교우촌을 지키고 있다. 다시 길가로 나왔다. 백곡공소까지는 5~6㎞가 남았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에서 얼굴을 익힐 듯한 열기가 올라온다. 모처럼 비가 오지 않아 기분 좋게 나섰건만 30℃가 넘는 늦더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바지가 들러붙어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나을 성 싶다. 물을 살 곳도 없고, 그늘도, 화장실도, 안내 표지판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만 제 세상 만난 양 쌩쌩 달린다. 일부 구간에는 걸을만한 곳이 없어 차도로 걸어야 하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이 걸을 때는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사흘이나 나흘씩 기를 쓰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 봐야 고작 40명이나 50명쯤 되는 신자들을 만날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담당하는 그러한 공소 즉 교우촌이 자그마치 127개나 되고, 그러한 촌락에서 세례명을 가진 이들을 다 합하면 5936명이나 됩니다."(최양업 신부의 여덟 번째 서한 중) 16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길에는 인적이 드물다. 멀리 도로공사 중인 인부들이 보인다. 아마도 석 달 전 청주교구 청소년대회 참가자들이 이 길을 걸었을 때가 제일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순교자들의 본향, 영원한 안식처 이대로 가다가 일사병에 쓰러질 것 같을 때쯤 저 멀리 백곡공소가 보인다. 이 공소를 지키는 김영구(유스티노, 67) 선교사가 순례객을 반갑게 맞는다. 그는 항상 경당과 교육관 문을 열어놓고 순례객을 기다린다. 공소 앞에 순교자 박바르바라와 윤바르바라 묘가 있다. 올케와 시누이 사이였던 둘은 병인박해 때 함께 체포돼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했다. 본래 배티 뒷산 무명순교자 묘역에 안치돼 있던 것을 1977년 후손들이 선산으로 이장하려고 하자 공소 신자들이 "공소에 모셔두고 잘 돌보겠다"고 설득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선 귀국 후 12년 동안 5개 도를 9만 리 이상 걸으며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과로로 병을 얻어 선종한 최양업 신부를 생각하면 진천성당까지 남은 길도 걸어야 마땅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신자 승용차에 올라탔다. 박해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분명 배교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길가에서 차를 얻어 타려고 손을 흔드는 청년을 보니 남 일 같지 않다. 시내를 향해 15분 정도 굽이굽이 달리자 진천성당이 나왔다. 29위의 유명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여서일까. 성당 앞 거목만큼이나 뿌리 깊고 두터운 신앙이 깃들어 보이는 성당에 앉아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사제 시복시성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친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굳건한 믿음과 불타는 열정으로 구만 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방곡곡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데 온 정성을 바쳤나이다. 자비로우신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바치게 하소서."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10.09.28
![[사회사목/특별기고]북녘 식량난에도 쌀을 사료로 써도 되나](//cpbc.co.kr/CMS/newspaper/2010/07/rc/344942_1.0_titleImage_1.jpg)
[사회사목/특별기고]북녘 식량난에도 쌀을 사료로 써도 되나김훈일(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분과 대표, 청주교구 문의본당 주임) 신부 김훈일 신부 1990년대 중반, 북녘에선 극심한 식량난이 발생해 수백만 명 이상 주민들이 굶주려 죽었다고 한다. 비극적 식량난의 근본 원인은 북녘의 경제정책 실패에서 기인한다. 사회주의권 체제 변화로 주요 국가들과의 교역에 큰 문제가 생겼고, 그나마 부족한 국가 재원을 농업생산력 증대와 경공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중공업과 군수산업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제재가 북녘 경제와 식량 사정을 악화시켰다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는 부차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제기구들과 통일부는 식량만 100만t 이상(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지만)이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더군다나 현 정부 들어 전혀 식량지원에 나서지 않아 북녘 식량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북녘 식량난은 굶주림의 고통을 넘어 사회적 혼란도 초래해 주민들에게 이중 고통을 안기고 있다. 강력 범죄와 부정부패, 자살, 고아, 인신매매, 탈북자 증가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주민들 인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식량난 희생자들이 대부분 어르신들과 어린 자녀들이라는 사실이다. 북녘 주민들 마음에 부모와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통한의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러한 비극이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얼마 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2005년산 묵은 쌀 11만t을 사료용으로 우선 처분하는 방안을 조만간 최종 결론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앞으로 쌀 34만t을 사료로 팔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쌀 재고량이 너무 많아 수급 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북녘 주민들이 얼마나 굶어죽건 김정일 정권을 돕는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북녘 정권이 원망스러운 상황에서 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우리 정부는 북녘 정권과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유로 북녘 주민들의 생명을 방치하겠다는 입장이라고밖에 들리지 않는다. 결국 지원한 식량이 특권층과 군인들에게만 돌아간다거나,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뿐이라거나, 식량을 지원하면 김정일 권력을 강화시키고 지속시킨다거나, 우리 국민들도 굶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들이 이처럼 비인간적인 상황까지 몰고 왔다. 북녘 주민들은 김정일 정권을 선택해 북녘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북녘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하는 형제자매들이다. 우리는 김정일 정권과 북녘 형제자매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정권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량한 형제자매들을 아사 상태로 방치한다면, 그런 정책은 전쟁보다 나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 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우리마저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쌀이 없어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 그 귀한 식량을 짐승에게 줄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랑과 정의에 어긋나는 정책이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성경 말씀(마태 25,35.37.40)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에서도 거듭 강조되고 있다. "모든 개인과 정부에 호소한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대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교부들 말씀을 상기해 각자 능력대로 자기 재화를 나누고, 특히 개인이나 국가 원조로 자조 자립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기 바란다."(69항) 전쟁보다 참혹한 것이 굶주림이다. 인간 생명과 직결된 식량을 가지고 남북문제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내 국가와 민족이 야만적 사회로 흘러가지 않도록 신앙인들 기도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설사 전쟁 상황이라도 평범한 북녘 주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하는 주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호소한다.오세택2010.07.27
![[영성의 길 수도의 길]-(21) 마리아의 종 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8792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21) 마리아의 종 수녀회성모님 영성 따르며 일상을 비범하게 사는 삶 봉헌마리아의 종 수녀회 한국지부장 권옥주 수녀가 유치원 어린이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안나 자매님, 우리 수도회에 들어오면 식모살이를 해야 할지도 몰라요. 우리 수도회는 가난하거든요." 독일인 수녀의 말에 20대 후반 권옥주 안나는 주저하지 않고 수녀회 입회를 결심했다. 25년 전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현 서울대교구장)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마리아의 종 수녀회(총원장 마리아 가르멜라 조르다노 수녀)다. 수녀회는 올해 한국 진출 25주년을 맞았다. 한국 진출과 동시에 입회한 권옥주 수녀 역시 은경축을 맞았다. 그는 지금 한국지부장이다. 수녀회 본원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조용한 시골 산자락에 있다. 2004년 건물을 짓기 전까지 수녀들은 20여 년을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다. "조립식 수녀원에서 산 20여 년은 가난을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녀원을 지을 때 진 빚이 조금 남아 있지만 수녀들은 25주년을 맞아 나눔에 앞장서기로 했다. 권 수녀는 "25살이면 자립할 나이"라며 "이제부터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받은 사랑과 관심을 나눠야 할 때"라고 말했다. 수녀회는 2년 전부터 25주년을 준비해왔다. 2008년은 기억과 감사의 해로 정해 수도생활 쇄신을 고민했고, 2009년은 경축과 희망의 해로 정해 설립정신에 응답할 방법을 논의했다. 수녀회는 12일 오전 11시 수녀원 바로 옆 봉담성체성혈성당에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25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선교를 위한 바자를 연다. 바자 수익금은 2005년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수녀회 선교수녀들과 2008년 수단에 파견된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미사에서는 수녀들이 함께 필사한 성경과 장기ㆍ각막ㆍ조직기증 서약서와 설립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에 대해 쓴 책 「미루나무 그늘아래」(박광호 씀/썬앤북스/1만5000원)를 봉헌할 계획이다. 수녀회 영성은 수녀회 이름처럼 성모 마리아 영성을 본받는 것이 첫 번째다. 형제적 공동체 생활 속에서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며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목표다. 고통받는 이들을 모두 예수님으로 바라보기에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도 항상 환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수녀회 모토와 "일상을 비범하게 살라"는 설립자 바칠리에리 신부 가르침대로 수녀들은 늘 주어진 상황에 기쁘게 응답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기쁘게 살아야 이웃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함께 신앙을 완성해가는 여정에서 서로에게 지지자, 협조자, 동반자랍니다." 수녀들의 기쁨에 찬 삶을 보아온 이웃들은 2004년 자발적으로 '페르디난도 가족 모임'을 만들어 수도회와 함께하고 있다. 페르디난도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수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묵상한다. 권 수녀는 "한국 땅에서 마리아의 종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면서도 "각자에게 맞는 행복은 다 다르고, 수도자는 일꾼이 아니라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수도자가 되고 안 되고 또는 어떤 수도회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으로 기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한국인 수녀는 모두 20명.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이탈리아, 독일, 브라질, 체코, 인도네시아 6개국에 200명 가족을 둔 국제수도회다. 본당 사도직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수녀회는 현재 청주, 수원, 인천, 서울 등 4개 교구 5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원에서는 '마리아의 종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편, 수원교구 이주사목센터 '수원 엠마우스'에도 수녀 한 명을 파견했다. 수녀들에게는 아름다운 꿈이 있다.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고갈돼 있는 사람들을 돕는 영성센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땅도, 돈도 없다. 빚도 내년까지 갚아야 한다. "하느님이 원하시면 원하시는 곳에 언제든 지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일상을 비범하게 살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만 하기에 수녀들은 걱정이 없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수도회 영성과 역사 마리아의 종 수도회는 123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교회 사상 유일무이하게 일곱 성인에 의해 설립된 수도회다. 다양한 신분의 성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 초대교회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 마리아의 종 대(大)수도회는 남자수도회, 관상수녀회, 활동수녀회, 재속회, 평신도 단체로 구성돼 있다. 같은 영성을 살지만 설립자의 설립 목적에 따라 수녀회를 구분하기 위해 설립지명을 붙여 부르는데, 가족수녀회만 20개가 넘는다. 한국에 들어온 수녀회는 갈레아짜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다. 갈레아짜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1852년 갈레아짜의 성 마리아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사진>에 의해 설립됐다. 1883년 마리아의 종 대수도회의 한 수도가족으로, 1947년에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황청 설립 수녀회로 승인을 얻었다. 한국에는 1985년 9월 진출했다. 바칠리에리 신부는 1893년 7월 13일 영면, 199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으며 1999년 10월 복자품에 올랐다. 김민경 기자 *성소모임매달 둘째 주일 오후 2시 수원 본원문의 : 031-227-8821 cpbc2010.08.31
요한 묵시록 해설 신약성경의 유일한 '묵시문학' 작품인 「요한 묵시록」으로 하느님 말씀과 함께한 3년 6개월간 긴 여정이 마무리 단계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이 은총의 샘인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더욱 성장하셨기를 기원합니다. 또 이 연재를 통해 부족한 저에게도 하느님 말씀을 다시 공부할 기회를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1)「요한 묵시록」 저자와 저술 동기 및 연대 「요한 묵시록」은 「요한 복음서」와 「요한 1ㆍ2ㆍ3서」 저자와 같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요한계 문헌'으로 분류돼 왔습니다. 하지만 문체와 신학사상이 서로 너무 다르기에 오늘날에는 '요한 공동체'에 소속돼 있던 또 다른 저자의 작품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묵시문학' 작품들이 다 그런 것처럼 「요한 묵시록」 역시 박해를 받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작성되었기에, 이 묵시록은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시기인 91~96년에 쓴 것이 분명합니다. (2)「요한 묵시록」 구조와 내용 「요한 묵시록」은 아래와 같이 여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8: 머리말과 인사. 2) 1,9~3,22: 요한의 소명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간. 3) 4,1~11,19: 첫째 환시들. 가) 4,1~8,5: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 나) 8,6~11,19: 일곱 봉인들과 일곱 나팔들. 4) 12,1~22,5: 둘째 환시들. 가) 12,1~15,8: 천상의 음모와 투쟁. 나) 16,1~20,15: 일곱 대접과 사탄의 패망과 어린양의 승리. 5) 21,1~22,5: 새 예루살렘. 6) 22,6~21: 맺음말. (3)묵시록에 나오는 상징의 의미 「요한 묵시록」에는 많은 상징들이 나오는데, 그 의미를 알아야 「요한 묵시록」의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표> (4) 핵심 메시지 박해시기를 맞이해 신앙심을 잃을 위험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요한 묵시록」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묵시 22,13)이심을 증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희망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내라고 격려합니다. "마라나타 -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직접적으로 박해받는 일은 드물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적 그리스도'의 수단은 더욱 강력하고 은밀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무시하는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과제일주의와 편의주의, 불의를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 권위주의와 은폐주의 등이 판을 칠 때,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그러한 현상들을 정당화할 때, 우리는 분연히 "마라나타!"하고 기도하며 그런 현상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 현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게 만드는 커다란 유혹들이기 때문입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 담당)임영선2010.05.06
![[성경속 상징]6- 바위](//cpbc.co.kr/CMS/newspaper/2008/06/rc/253348_1.1_titleImage_1.jpg)
[성경속 상징]6- 바위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상징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아프리카 한 부족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급류를 건너는 비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깨에 무거운 바위돌을 지고 건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바위 무게로 급류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바위는 생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고대 세계에서 바위는 견고함을 상징하고 보호와 안전 등을 제공한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바위는 고정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또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의 표상이기도 하다. 옛날 사람들은 거대하고 괴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바위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아 바위를 신처럼 숭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배 대상은 바위 자체가 아니라 그 바위에서 생긴 신의 계시, 혹은 그곳에서 맺어진 신과의 계약이었다. 이처럼 고대 신화에서 바위는 신과 연관성을 갖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위의 이미지들은 사막이 그 배경이 된다. 광야 한가운데 바위는 더위에 지친 여행자나 군인들에게 활력을 제공한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도록 신선한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위 사이에 샘물이 있어 갈증을 풀어 주기도 한다. "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탈출 17,6). 쫓기는 사람들이 바위틈에 몸을 피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저마다 굴이나 덤불이나 바위틈, 또는 구덩이나 웅덩이를 찾아 몸을 숨겼다"(1사무 13,6). 다윗도 사울에게 쫓겨 도망자 신세가 됐을 때 안식처가 되신 하느님을 바위에 비유했다.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 저의 피난처, 저를 구원하시는 분. 당신께서는 저를 폭력에서 구원하셨습니다"(2사무 22,3). 이처럼 바위는 하느님을 상징한다. "그의 활은 든든히 버티고 그의 손과 팔은 날쌔었다. 이는 야곱의 장사의 손, 이스라엘의 목자요 바위이신 분의 이름 덕분이다"(창세 49,24). 구약에서 바위는 대부분 하느님과 연관되며 견고한 기초나 요새로서 또는 악인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신약에서 바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1코린 10,4). 예수님이 사도 베드로를 반석에 비유한데서 바위의 상징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 말씀에 따라 베드로 사도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상징이 됐다. 초대교회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을 바위(반석) 위에 지은 집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마태 7,24-25). 암브로시오 성인은 바위에서 흘러나온 물이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상징한다고 했다. 로마 카타콤바의 벽화나 석관의 부조에서도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이 흘러나오게 하는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중세 초기 미술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어린 양이 서있는 바위에서 샘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자주 그렸다. 우리도 바위처럼 단단한 그리스도 기초 위에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조은일2008.06.11
세계주교시노드, 복음선포 성경공부 심도 있게 논의 말씀의 생활화 종교간 대화 등 주제, 다양한 토론 제12차 세계주교시노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각국 추기경과 주교들은 5일부터 바티칸에서 '교회 생활과 사명에서의 하느님 말씀'이란 주제로 대륙별, 언어권별 회의를 진행하며 현대세계에서의 복음 선포ㆍ효과적 성경 공부ㆍ하느님 말씀의 생활화ㆍ복음에 기초한 종교간 대화 등에 대한 열띤 발표와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개막 열흘 째인 15일 현재 주제 발표는 200회를 넘어섰다. 시노드 기록담당 켈릿 추기경은 주제발표 요약문과 19개 질문지<표 참조>를 소그룹에 넘겼다. 이 질문은 이번 세계주교시노드의 개최 배경과 논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자료다. 시노드 참석 주교들은 소그룹별로 질문에 대한 답을 강구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전달하면, 교황은 이를 기초로 시노드 후속 문헌을 발표하게 된다. 한편, 주교들은 일부 신학자들이 문학양식으로서의 성경에 비중을 두거나 교회 가르침의 보조자료로 성경을 읽는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성서대학 등에서 이뤄지는 자유로운 연구(해석)와 교회 전통 가르침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는 현실에도 주목했다. 켈릿 추기경은 "하느님 말씀은 들려야 하고, 이해돼야 하고, 사랑받아야 하고, 골고루 퍼져야 한다"며 "신학자들과 사목자들은 이를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몇몇 주교들은 하느님 말씀에 기초한 종교 간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신약성경 어디에도 반유다주의를 부추기는 구절은 없다"며 "성경은 지극히 '종교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주교들은 또 예술이 성경과 신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독일의 호프만 주교는 "그리스도교 건축ㆍ조형미술ㆍ음악ㆍ문학은 수많은 사람들을 신앙의 세계로 초대했다"며 "교회는 예술가들과 협력해 복음선포 사명을 수행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의 젠 추기경은 "유교 안에 흐르는 중국 전통사상에서 '복음의 씨앗'이 발견된다"며 "이 때문에 홍콩 교회들은 유교 신봉자들과 건강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고, 전통사상의 귀중한 가치를 보존하려고 노력한다"고 소개했다. 세계주교시노드는 26일 폐막된다. 【외신종합】 ▨ 세계주교시노드, 무엇을 논의하고 있나 -교회가 어떻게 교육해야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일까?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장려하려면? -미사에서 봉독하는 성경 일과표(순서)를 수정할 필요는 없는가? -미사에서 말씀전례와 상찬전례의 연결성을 더 강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성경 번역과 보급을 활성화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성경은 문구와 그에 담긴 영적 의미, 전통적 가르침을 고려해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려면? -성경은 그리스도교 일치 및 유다인과의 대화에 주요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나? -교회와 신자들은 성경에 기초한 영성이 모든 사목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 확신할 수 있을까? -복음이 대한 지평을 넓히려면 예술, 시, 인터넷, 그 밖의 미디어를 어떻게 선용해야 하나? 김원철2008.10.21
"평생 배운 한 가지 '남이 나, 내가 곧 남'이라오" 팔순에 첫 신앙 산문집「먹을 수 있는 보석」펴낸 성찬경 원로 시인 시를 통해 독자들과 교감해온 성찬경(요한 사도, 80) 원로 시인이 처음으로 신앙 산문집 「먹을 수 있는 보석」을 냈다. "쌀알 몇 톨을 들여다본다. 볼수록 그 신비한 생김새와 빛깔에 넋을 잃는다. 반투명의 쌀알의 깊이를 헤아리려 하다가 그만 상념의 시공(時空)에서 길을 잃는다. 세상에 이런 보석이 있는가. 이 보석은 먹을 수 있는 보석이다. 이 보석은 살아 있는 보석이다. 그 자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진기가 득실 고여 있다."(221쪽) 「먹을 수 있는 보석」은 삶의 울림과 경건함을 담은 신앙 수필집으로, 그가 틈틈이 써온 기고문들을 한데 엮었다. '발견의 기쁨', '아들 사제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 '꿈 이야기 기타', '명상의 오솔길', '시지프의 행복' 등 5부로 구성했다. 하느님과 힘 겨루다 결국 무릎 꿇어 1966년 세례를 받은 성 시인은 "그동안 고집 부리고 방황하면서 하느님과 힘 겨루기도 해봤지만 결국 고개 팍 숙이고 무릎을 꿇게 되더라"면서 "교회 가르침에서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내 생각이 짧아서이지, 결코 하느님의 생각이 그릇돼서 그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쌓아온 일종의 우주관을 버리고 새로운 교리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담력 없는 겁쟁이의 패배라고 여겼다. 그는 1980년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에서 공부하며 마주했던 외롭고 고된 시간을 회고했다. "가족을 떠나 외로우니까 신ㆍ구약을 정독했어요. 전에는 게을러서 알지 못했던 세계가 열리더라구요. 신약성경을 대하는데 어떤 극작보다 깊이가 있고 재밌고, 심오한 정경이 열리는 거예요. 화려함과 꾸밈은 없지만 그렇게 극적일 수 없었어요. 예수님이 살아서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거기서 받은 감화는 평생 꺼지지 않는 등불이예요. 누구나 평생의 등불이 있잖아요." 그는 "유교 전통에 뿌리를 박고 평생을 지낸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고집을 꺾고 대세를 받으신 건 제일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그가 세례를 받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아버지께 드린 인사는 '작별'인사나 다름 없었다. 아버지는 마치 아들을 돌아오지 않을 먼 이국에 내보내는 듯 울먹였다. 하지만 그의 넷째 아들(성기헌 신부)을 하느님께 봉헌했을 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젊은 아들이 극기와 수련의 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세속적인 마음으로는 참 아팠어요. 하지만 세속에 남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일이라는 것을 알고, 아픈 마음을 참고 눌렀죠." 2부에는 아들 사제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를 실었다. 사랑과 가난, 고통과 기도에 대해 이 세상의 아들 같은 모든 신부들에게 쓴 글이다. 팔십 평생을 살면서 인생의 텃밭에서 일궈낸 보화 같은 편지다. 우리는 잠시도 고립돼서 살 수 없어 성 시인은 평생 자신이 배운 한 가지는 "남이 나다, 곧 내가 남이다"고 했다. "우리는 고립돼서는 잠시도 살 수 없으며,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나 대신 겪는 일입니다. 더불어 살아야죠." 그는 "내 관심을 사로 잡는 게 작품의 주제가 되듯이 이미 신앙은 내 생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신앙과 문학은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람에게 가장 기쁜 발견은 나와 하느님이 구체적으로 사랑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일이라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발견이 될 것"(15쪽)이라고 털어놨다. 1956년 「문학예술」을 통해 고 조지훈 시인 추천으로 등단한 저자는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시인협회장과 한국가톨릭문인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화형둔주곡」 「황홀한 초록빛」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등이 있다.(위즈앤비즈/1만 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0.07.06

서울 옥수동본당「사목진단보고서」 발간본당 사목현황 한눈에 자료 분석과 조사연구를 통해 본당 사목현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본당 사목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보고서가 발간됐다. 서울 옥수동본당(주임 정진호 신부)은 지난해 봄 정진호 신부를 위원장으로 하는 '옥수동본당 사목진단위원회'를 구성하고 3개월간 조사ㆍ분석을 거쳐 2009년 성탄 대축일에 「옥수동본당 사목진단보고서」를 펴냈다. 2008년 9월 부임한 정 신부는 빈부 격차가 심한 본당 관할 구역을 보며 '극명하게 다른 삶의 형태를 가진 신자들에게 어떻게 사목을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다 사목진단을 떠올렸다. 현재는 재개발이 진행돼 거의 사라졌지만, 2008년에 옥수동 지역에는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연립주택이 상당히 많았다. 보고서는 신자들 신앙생활을 비롯해 단체 활동, 신자 현황과 같은 본당 사목에 필요한 자료들을 망라해 본당 사목현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또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가 펴낸 신앙생활 실태조서 연구 보고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옥수동본당, 8지구(옥수동본당이 속한 지구), 서울대교구 전체 사목현황을 비교ㆍ분석해 다른 본당에 비해 부족한 점과 나은 점을 분석해봤다. 옥수동본당은 교구 평균에 비해 미사참례율이 다소 낮은 것으로 드러났고 성체조배, 성경 읽기, 묵주기도 횟수 등을 통해 본 기도생활은 교구와 지구보다 다소 양호한 편으로 나타났다. 그룹 인터뷰와 개인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신자들이 신앙생활, 단체장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건의사항에 귀 기울인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신자들은 본당 운영체계에 대해 △산출 근거를 정확히 계산해 예산안을 상정하고 △청소년 사목 활성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사제와 수도자가 사목자와 사목 협력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 등 평소 본당에 바라던 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본당은 사목진단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교육ㆍ기도ㆍ봉사를 통한 신앙 성숙을 2010년 사목 목표로 설정했다. 또한 가정 성화, 성경대학을 중심으로 한 어르신 사목, 생명ㆍ환경을 존중하는 사목, 청소년 사목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결과제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꼽았다. 정진호 신부는 "사목진단을 통해 본당 현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옥수동본당이 어떤 점이 부족하고, 또 강점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면서 "자가 진단을 통해 본당 현황을 정확히 알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갈 때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사목진단의 의의를 설명했다. 정 신부는 또 "신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경험, 본당의 역사를 정리해 앞으로 어떤 사목방향을 설정하고 본당 성장을 위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사목진단을 통해 얻은 결과를 신자들과 공유하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목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목진단위원회는 본당 사목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약 3개월간 자료 수집ㆍ분석,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통계분석방법과 더불어 참여관찰, 포커스그룹인터뷰, 심층인터뷰를 실시해 설문조사의 한계(대표성, 표본 수 등)를 보완했다. 1973년 금호동본당에서 분리ㆍ설정된 옥수동 본당은 2009년 7월 현재 4400여 명이 신자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구역ㆍ반장의 85%가 50대 이상 신자일 정도로 장ㆍ노년층 신자가 많으며 재개발로 인해 새롭게 유입되는 신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임영선2010.01.05
![[성경 속 상징] 성경속 상징을 시작하며](//cpbc.co.kr/CMS/newspaper/2008/04/rc/247428_1.3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성경속 상징을 시작하며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여행을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성경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다. 상징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냄. 또는 그렇게 나타낸 표지(標識)ㆍ기호ㆍ물건 따위"라고 나온다. 성경은 비유나 상징을 통해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사람(마태 13,1-9; 마르 4,1-9; 루카 8,4-8), 겨자씨(마태 13,31-33; 마르 4,30-32; 루카 13,18-19), 누룩(마태 13,33; 루카 13,20-21), 보물과 진주 상인(마태 13,44-46), 등불(마르 4,21-25; 루카 8,16-18) 등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비유와 상징으로 들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군중에게 모든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군중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 물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음식이나 음료의 형태로 하루에도 여러 잔의 물을 섭취한다. 물로 몸을 깨끗하게 씻어 여러 가지 질병을 예방하기도 한다. 이처럼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은 '생명'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물로 죄를 씻는 예식, 즉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 루르드처럼 성모님의 발현지에는 항상 샘물이 솟는다. 이처럼 우리 신앙에서 물은 아주 중요한 상징을 지닌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 광야를 떠나 르피딤에 진을 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마실 물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로 바위를 치니 그곳에서 물이 솟아 나왔다(탈출 17,1-7).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신 이 '물'은 죽음의 위험에서 생명을 다시 찾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워진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은 본래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예수님께서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물도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요한 4,13-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에는 구원이라는 근본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물은 사람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는 문자적 의미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성경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사용된 '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성경 말씀은 다양한 시대의 역사와 사회, 문화, 관습, 풍속을 담고 있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갖고 있는 역사ㆍ문화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한 것이다. 성경에는 아주 다양한 상징들, 언어 표현들이 넘쳐있고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상징을 잘 이해하면 성경의 본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경속 여러 가지 상징을 찾아가는 '성경 속 상징', 설레는 마음으로 성경 속 여행을 떠나보자.cpbc2008.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