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데로 임하소서] 서울 '요한의 집' 김봉현씨](//cpbc.co.kr/CMS/newspaper/2010/12/rc/360845_1.0_titleImage_1.jpg)
[낮은 데로 임하소서] 서울 '요한의 집' 김봉현씨"이웃 위한 삶, 제겐 행복한 삶입니다" 흔히들 주름을 나잇살이라고 한다. 주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고의 세월을 거쳐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무게가 만들어낸 주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름의 아름다움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네 눈으로 쉽사리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서울 은평구 역촌1동 '요한의 집'에서 만난 김봉현(요한 사도, 79, 서울 역촌동본당) 원장 얼굴에 굽게 팬 주름에서 평생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온 그의 삶이 잔잔히 묻어났다."하루에 한쪽씩은 꼭 읽어야 해요." 김봉현 원장이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그럴듯한 도서실. 김 원장이 직접 발로 뛰며 모은 도서가 약 3000권에 이른다., 요한의 집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운다.# 주님 뜻을 따라 시작한 봉사 "정말이지 제가 남들보다 착해서, 잘나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어요. 주님께서 부족한 부분은 늘 채워주시니까 감히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거죠." 지난 20여 년간 줄곧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부모로 올곧이 살아온 김 원장은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틀어 '주님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고향인 전남 고흥군 외동읍 녹동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그가 1970년대 중반 봉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파현우(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아내(박처성 마르가리타, 2006년 선종)와 본당 일을 하면서 지켜본 파 신부님의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됐어요." 거리에 버려진 행려인의 시신을 수습해 질 좋은 광목으로 염습을 하던 파 신부에게 감명받은 부부는 생활 속에서 조금씩 봉사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교직에서 물러나 아내와 함께 소매상을 운영하던 김 원장은 매대 한 켠에 자그마한 상자를 올려놓고, 가게에 오는 걸인들을 위해 지폐를 쌓아 놓았다. "점원들이 '사장님이 미쳤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아깝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아내는 돈을 더 갖다 놓으라며 저를 응원(?)했으니 말 다했죠. 하하~" 1980년대 초 이들 부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함께 어려운 이웃을 위한 공동체를 운영해보자는 파 신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그 길로 고향 집과 재산을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데레사의 집 '아버지'로, 행려인들의 '밥집 아저씨'로 1987년 서울 은평구에 있는 '데레사의 집' 운영을 맡아 아이들의 부모로, 형제자매로, 친구로 살기 시작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초중고생 20명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6명. 이들이 김 원장 부부의 첫 가족이었다. 몸은 고되지만 보람됐다. 주님께서 이런 김 원장의 마음을 읽으신 것일까, 김 원장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내려주시기 시작했다. "1991년 과수원을 운영하던 후원자가 보내준 귤 상자를 들고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했어요. 갔더니 행려인들이 '웬 과일이냐, 우리한테 필요한 건 밥'이라며 소리치더라고요.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가 얼마나 절실한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죠." 그 길로 김 원장 부부는 집 마당에 큰 솥을 걸고 밥과 국, 반찬 700인분을 준비해 매주 서울역 지하도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간 음식을 실어 나르던 차량이 승용차에서 승합차로, 다시 화물차로 바뀌었고, 노부부의 주름도 더 깊고 굵어졌다. 김 원장의 노력과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정성으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15년간 무료급식을 하면서 오히려 제가 배운 게 많았어요. 우리에게 '고맙다'고 미소 지어주는 행려인 덕에 행복했거든요." 하지만 2006년 아내 박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무료급식을 중단해야 했다. 1991년 데레사의 집 운영을 다른 수도회에 맡기고, 새롭게 설립한 청소년 복지시설 '요한의 집'에 머무는 9명의 아이를 돌볼 일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언제나 부족한 것 같아 큰일"이라며 계면쩍게 웃어 보였다.# 사랑이 꽃피는 요한의 집 요한의 집에는 그 흔한 명패도 없다. 여느 가정집같이 평범하고, 소박한 보금자리다. "아이들이 이곳을 일반 가정과 똑같이 생각하게 하려고 명패를 붙이지 않았어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공동체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제 의무이자 사명이죠." 그간 요한의 집을 거쳐 사회로 나간 아이들은 35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15명은 결혼에 골인해 각자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해 제 짝을 만나 결혼하는 것만큼 보람 있을 때가 없어요. 명절 때 아이들이 이곳에 찾아오면 참 행복합니다." 김 원장은 교편을 잡았던 실력을 발휘해 아이들 독서지도에서부터 숙제까지 모두 도맡아 챙긴다. 행여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도록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집 한 쪽에 놓인 '공부 방법'에 관한 신문기사 스크랩 묶음과 학습지도 일지 등이 김 원장의 노력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김 원장의 친자녀 5남매 중 2명이 이곳에서 같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 보람이 배로 늘었다. "제 친자식들에게는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지만 다행히 자식들이 잘 이해해줬어요. 자식들도 부모의 봉사가 하느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사명이었다는 것을 받아 들여줘서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환히 웃는 김 원장의 배웅을 받으면서 한 성경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3,40).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0.12.14
![[사람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진문도 신부 금경축 맞아](//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7966_1.0_titleImage_1.jpg)
[사람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진문도 신부 금경축 맞아 50년 말씀 봉사자로서 소명에 깊은 감사... 왜관수도원 수련장만 세 차례 역임하며 수도자들 길러내... 요즘도 잡지 편집장 등으로 저술과 강의 활동에 주력 요제프 W. 팀프테 신부가 22일 왜관수도원 대성전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를 통해 보내온 교황강복장을 이형우 아빠스에게 전해받고 수도공동체에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48년간 한국에서 '말씀 봉사자'로 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요제프 빌헬름 팀프테(Joseph Wilhelm Timpte, 토마스 모어, 한국명 진문도) 신부가 20일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았다. 1933년 독일 오베르하우젠 오스테르펠트 태생으로 1953년 독일 쾨닉스뮌스터수도원에 입회, 1957년 종신서원을 하고 1960년 8월 20일 사제품을 받은 지 올해로 50돌을 맞은 것.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20일 화순분원 성당, 22일 왜관수도원 대성전에서 각각 진 신부 금경축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전 공동체의 축하를 전했다. 화순분원에서 봉헌된 미사와 축하행사엔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를 비롯해 윤공희ㆍ최창무(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등 주교단과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왜관수도원에서 봉헌된 미사와 축하식엔 이형우(왜관수도원장)ㆍ오도 하스(Odo Haas, 전 왜관수도원장) 아빠스 등이 함께했다. 진 신부는 금경축 축하행사에서 전해지는 주위 상찬에 "솔직한 심경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침묵과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로서 겸양을 보였다. 또 "사제라는 직분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는 말씀을 통해 용기와 평화를 주는 말씀 봉사자였다"며 "말씀 봉사자의 길로 저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회를 전했다. 평생을 성경, 특히 시편과 수도생활 전반, 교회사 강의와 피정 지도에 힘쓴 진 신부는 "복음서를 통해 보여지는 예수님 생애는 하나의 노래라고 하는데 저는 예수님처럼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지만 그 어설픈 노래에서 사람들이 예수님 목소리를 듣는 걸 보면 놀랍고 기쁘기 그지 없다"고 말하며, 말씀 봉사자로서 산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무 잘해주면 흔히 자식이 버릇이 없다고 하는데, 저 또한 하느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버릇도 없고 미숙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더 성숙하기 위해) 오래 살고 싶고(웃음), 다른 한편으로는 저에게 그처럼 잘해주시는 하느님께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또 웃음)" 진 신부는 1962년 한국에 입국, 1965년 로마 성 안셀모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련장을 세 차례나 역임하며 수도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0년대엔 대구가톨릭신학원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내기도 했다. 1963년 7월부터 3년 6개월간 왜관ㆍ구미ㆍ상주 서문동본당 주임을 지냈으며, 2008년 1월부터 2년간 화순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베네딕도회 수도자모임이 1년에 한 번씩 펴내는 잡지 「코이노니아」 편집장을 맡고 있으면서 저술과 피정 강의에 몰두하고 있다. 수도회에서 '전형적 독일인'으로 기억될 만큼 반듯한 삶을 산 진 신부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이웃 사랑과 묶어 주셨는데 그것이 우리 활동의 기초"라며 "앞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화순분원장 허성석(로무알도) 신부는 강론을 통해 "신부님의 쉽지만은 않았던 오랜 여정, 시련과 고통, 기쁨과 슬픔 등 온갖 역경의 세월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이끄심을 보게 된다"며 "수도자로서, 또 사제로서 그의 한결같은 현존 자체가 뜻깊고 고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08.24
![[문화 인터뷰]18년 만에 「이콘ㆍ신비의 미」 개정신판 펴낸 장긍선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0/02/rc/327130_1.0_titleImage_1.jpg)
[문화 인터뷰]18년 만에 「이콘ㆍ신비의 미」 개정신판 펴낸 장긍선 신부 이콘은 신앙인의 영적 길잡이... 2000년간 교회가 간직해온 영성적 보화 '이콘(ICON)' 미학을 집약한 「이콘ㆍ신비의 미」 개정 신판이 무려 18년 만에 출간됐다. 편저자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장긍선 신부로, 원래는 1992년 12월 가톨릭대 대학원 졸업논문을 책으로 냈던 것을 이번에 재차 집필한 것. 개정 신판을 내기까지 1997년부터 4년 6개월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교 이콘 교사 양성과정을 밟으며 디플롬을 받을 정도로 혼신을 기울였다. 개정 신판에는 러시아 유학을 통해 체득한 이콘 제작 테크닉과 옛 이콘 복원술, 이콘 미학 및 이론 전반, 자료 및 사진, 정교회 전례 등이 다 녹아있다. 이를 통해 성모에 관한 다양한 성화의 주제별 분류를 명확히 하고, 성모와 축일, 기적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보완했으며, 정교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정교회 성당 내부와 성화 배치, 전례 등에 관한 자료를 덧보탰다. 특히 주제별 분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시대 이콘을 비롯해 성모 마리아 이콘, 성당 내부 이콘 배치, 성인들 이콘 등을 두루 살폈다. 이를 위해 그리스 출신 이콘 전문가인 한국정교회 2대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 대주교와 동방교회 전례 및 이콘 전공자인 일본 요코하마교구 후루야 이사오 신부 감수를 거쳤다. 2000년 귀국해 교구 특수사목을 하면서도 2003년 이콘연구소를 개설해 이콘작가 양성에 몰두해온 장 신부는 아직도 이콘에 대한 교회 인식이 낮은데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콘은 단순한 성화가 아닙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이끌어주는 길잡이입니다. 우리 교회에선 이콘을 가톨릭교회와 무관한 동방교회 미술로만 인식하는데, 이콘은 정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11세기 동ㆍ서방교회 분열 이전 하나였던 교회에서 공유했던 성화로, 동방교회가 고집스럽게 옛 전통을 지킨 반면 서방교회는 각 시대 흐름에 따라 세속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도록 표현에 융통성을 보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영적 보화를 다시금 찾고자 이콘 재발견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장 신부는 "이콘은 옛 형태를 그대로 '베끼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며 "따라서 무조건 창의성이 없다고 매도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이콘을 연구하고 그리는 것은 남의 것을 답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고 있던 초기 교회 성화 전통을 다시금 되찾기 위해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리스 말로 모상, 형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콘의 실체는 성경과 신앙, 전례, 교리이며 그 내용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가시화시킨 것"이라며 "이콘을 제대로 감상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안에 담긴 영성과 상징성을 먼저 보고 성경과 교리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 신부는 이 책에 이어 러시아 유학 당시, 또 그간 러시아에 다녀오며 수집한 각종 자료와 사진을 기반으로 이콘 역사와 제작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이콘 교과서를 펴낼 계획이다. 또 모스크바총대주교청에서 나온 얇은 「러시아정교회 용어사전」을 기초로 우리말 러시아 정교회 용어 사전도 펴낼 구상도 갖고 있다.(기쁜소식/4만 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0.02.23
안동교구, 2년 과정 신앙대학 제1회 개강신자들 위한 체계적 배움마당 마련안동교구 신앙대학 입학미사에서 권혁주 주교가 강론하고 있다. 사진제공=안동교구 안동교구는 3일 신앙대학을 개설, 안동가톨릭회관에서 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개강미사를 봉헌했다. 교구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개설된 신앙대학은 신학 전반에 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교구 신자들을 위한 체계적 배움의 장이다. 총 2년 과정인 신앙대학은 구약성경 입문을 시작으로 성사론, 그리스도론, 교회사, 선교신학, 전례신학, 교회론 등 10개 과목으로 이뤄져 있다. 한 학기 16주 과정으로 매주 수요일에 실시되며, 강의는 이춘우ㆍ정희완ㆍ신대원 신부 등 교구 사제들이 맡는다. 권 주교는 개강미사 강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우리 신앙의 목표"라면서 "우리는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도 알지 못한다'(마태 20,22)는 예수님 말씀을 되새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구 사목국장 안상기 신부는 "신앙대학을 통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교회에는 기쁨이 되며, 개인적으로는 영적 성숙을 통한 신앙의 기쁨을 체험해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앙대학에는 현재 34명이 수강하고 있다. 교육 과정 이수자들은 교리 교육 봉사나 본당공동체 활동 등 다양한 직분에서 활발한 봉사와 선교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힘 기자 이힘2010.03.09
![[성경 속 상징]34- 잠(수면)- 영적이고 육체적 건강의 증거](//cpbc.co.kr/CMS/newspaper/2009/02/rc/281992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34- 잠(수면)- 영적이고 육체적 건강의 증거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꿈속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은 경우가 흔치않게 있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 과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도 그런 경우라고 한다. 어느 날 꿈 속에서 원소들이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불후의 팝 명곡이라 불리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5분 만에 작곡된 곡이라고 해서 더 유명하다. 그런데 이 곡은 폴 메카트니가 꿈 속에서 들었던 선율이라고 한다. 고민거리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곤 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보면, 잠을 푹 자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숙면을 취하는 동안 기억이 정리되고 영구화되는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에 새로운 통찰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잠을 통해 뇌와 신체의 모든 기능을 멈추고 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도 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잠과 꿈은 무척 신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는 잠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창세기에서 잠은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창세 2,21). 잠은 꿈과 환시를 경험하게 한다. 성경에는 야곱이나 요셉, 그리고 다니엘 예언자, 베드로 사도 등 꿈을 꾸거나 환시를 봤던 인물이 많다. 아브람의 손자 야곱은 그의 쌍둥이 형인 에사우의 보복을 피해 도망가던 도중에 베텔에서 밤을 지내게 됐다. 야곱은 이곳에서 꿈에 하느님을 뵙고 축복을 받았다(창세 28,10-19). 야곱의 아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형들에게 말했는데 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고, 이집트로 팔려가게 된다(창세 37장). 이집트에서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꿈풀이를 하게 됐다. 제빵 시종장의 경우처럼 모든 꿈들이 길몽은 아니다(창세 40,16-23). 열 처녀 비유처럼 잠이 들었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마태 25,1-13). 긴 설교 중에 창문에서 떨어져 죽기도 했다(사도 20,9). 지나치게 오래 자는 것은 게으른 습관으로 가난을 불러올 수가 있다. "게으르면 깊은 잠에만 빠지고 나태하면 배를 곯는다"(잠언 19,15). 사악한 자들은 악을 저지르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고 남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잠을 설친다(잠언 4,16). 이처럼 성경에서 잠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한편 깊은 잠은 의인들에게는 달콤한 것이다. 의인들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시편 212,4)는 사실을 알기에 평화롭게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장면이 나온다(마태 8,23-27). 심한 풍랑 가운데서도 배 안에서 예수님께서 잠드신 것은 하느님의 돌보심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잠은 일반적으로 영적이고 육체적 건강의 한 증거이다. "주님, 당신만이 저를 평안히 살게 하시니 저는 평화로이 자리에 누워 잠이 듭니다"(시편 4,9). 성경은 또한 수면을 의인들 죽음을 위한 하나의 비유로 사용했다. 잠은 악의 유혹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고통을 겪으시는데 제자들은 잠에 빠져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자고 있는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태 26,36-46) 라고 꾸짖으신다. '잠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격언이 있다. 우리 모두가 꿈을 이루는 희망찬 2009년이 되길 바란다.cpbc2009.02.03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 강연요약 - 용감한 신앙의 증인들](//cpbc.co.kr/CMS/newspaper/2010/09/rc/351627_1.0_titleImage_1.jpg)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 강연요약 - 용감한 신앙의 증인들곳곳서 종교 탄압, 그래도 희망은 있다 베르나르도 체르벨레라 신부 아시아뉴스(www.asianews.it) 책임자이자 기자이며, 교황청외방선교원(PIME) 선교사다. 1997~2002년 바티칸의 국제 잡지인 피데스(Fides) 편집자로 일했고, 1995~1997년에는 베이징에 거주하며 북경대학에서 '서구문명의 역사'를 강의했다. 이탈리아 가톨릭 일간지인 아베니레(Avvenire)에 기고하며, 여러 출판물이 있으며, TV 뉴스와 프로그램 제작에 협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교회가 시작되던 초기부터 박해가 시작됐고,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 이어지는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다. 순교는 교회를 위한 하나의 축복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순교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 # 순교는 축복이다 중국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인, 대학생, 지성인들이 개인의 권리와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중국에 진정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정신이 아닌가 하고 자문한다. 공산주의 박해에도 가톨릭 신자가 최근 60년 동안 4배(300만 명에서 1200만 명) 증가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순교는 한 사회를 위해서도 축복이다. 지상의 지옥과 같은 곳에서 그리스도와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다른 이와 화해하고 용서하며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이 땅이 희망의 장소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교로 초대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위해 한 번에 피를 흘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매일 삶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한 방울 한 방울씩' 피를 봉헌하는 이들도 있다. 두 번째 형태의 순교도 교회와 사회를 위한 축복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시아에는 아직도 확립되지 않은 인간권리와 종교자유가 그것이다. 종교자유는 모든 권리의 근본이다. # 종교자유가 탄압받는 대륙 아시아 대륙은 이제 국제정치와 경제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종교자유가 억압받고 있다. 대표적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중국, 미얀마, 라오스, 북한이다. 탄압 형태는 다양하다. 이슬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이 아닌 다른 신앙의 모든 공식적 표현을 금하고 있다. 성경이나 십자가, 묵주를 소지할 수 없고 종교에 관련된 공적 기도나 만남이 불가능하다. 북한에는 수십 년 전 모든 사제와 수도자가 처형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사제나 수도자도 없다. 인도에서도 지난해에 오리싸의 반그리스도교 힌두 과격단체에 의해 탄압이 자행됐다. 중국은 사제들과 목사들을 감옥에 가두고, 정책적으로 교회와 티베트 불교 신자들, 위구르족 무슬림들을 억압하고 있다. 아시아 52개국 중 적어도 32개국은 어느 면에서 종교활동이 제한되고 있다. 종교자유의 탄압은 우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2008~2009년 인도 오리싸에서 반그리스도교 힌두 과격단체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자, 그들의 기관을 파괴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중국이나 홍콩,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가톨릭계 학교를 없애거나 또는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이 이미 박해의 한 추세가 됐다.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신앙을 전할까 봐 입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이유에서다. # 종교 탄압은 빈곤과 무지 불러와 이라크의 무슬림 강경파는 지성인, 대학교수, 언론인 등 소위 온건 무슬림들이 다른 문화와 대화를 함으로써 이슬람 순수성을 오염시킨다는 생각으로 이들을 공격한다. 이라크 박해는 이 나라를 더 빈곤하게 만들고, 전쟁보다 더 심각하게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근본주의가 더 성장하고, 사회적 분쟁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종교자유가 없는 아시아 국가들은 '도덕적 저개발'로 인해 비탄에 빠질 것이다. 종교자유 억압은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교황은 최근 중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회는 가장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정치 투쟁을 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교회는 국가를 대신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교회는 이성적 토론의 길로 그러한 투쟁에 들어서야 하며, 그 정신적 힘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교회가 아닌 정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 그러나 공동선의 요구에 마음을 열고 의지를 불러일으키도록, 교회는 정의 증진을 위한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이힘2010.09.28
이병호 주교와 함께 하는 도보순례전주교구, 22일부터 12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전주교구는 교구장 이병호 주교와 함께 하는 도보 순례를 22일 천호성지-나바위성지를 시작으로 매월 한 차례씩 모두 9차례에 걸쳐 실시한다. '2009 주교님과 함께 하는 도보 순례'는 교구 내 성지 및 교우촌을 연결하는 순례길을 교구장과 신자들이 함께 순례하는 가운데 선조들의 신앙을 계승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시키며 체험 중심의 순례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교구 사목국이 주관한다. 첫 도보순례는 22일 오전 8시 30분 천호성지에서 출발, 여산성지를 거쳐 성 김대건 신부의 입국지인 나바위성지에는 오후 4시 30분에 도착해 파견 미사를 봉헌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참가 신청자들에게는 점심과 기념품, 교통편의가 제공되며(회비 만 원), 신청하지 않고 참가하면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 신청 문의 : 063-230-1085, 010-2799-9443 이병호 주교는 이와 관련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을 걸으며 순례하는 가운데 하느님 백성으로 형성됐고 예수님께서 길을 걸으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셨다"면서 순례길을 걸으면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새길 수 있다면 더욱 뜻있는 순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구가 매월 실시할 순례 일정은 다음과 같다. △초남이-전주(4/17) △천호-되재(5/17, 사제의 해 기념 사제들과 함께 하는 순례) △천호성지 품안길(6/5) △능교공소-먹구니(7/10, 김대건 신부 동생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 △개갑장터(최여겸 마티아 순교터)-고창성당(9/18) △군산하구둑-나바위(10/16, 김대건 신부 상륙로) △진산-경천(고산)(11/8, 윤지충 권상연 압송로) △진안교우촌(어은동-장수 수분리, 12/6)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10.03.16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10) 독서자하느님 말씀 참뜻 깨닫고 전달하려 노력해야어느 수녀님이 본당 전교수녀로 있을 때 경험한 어려움 중 하나가 독서자 선정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나이도 있으시고 신앙생활도 열심하신 어느 자매님에게 주일날 독서를 부탁했더니 극구 사양하셔서, 수녀님은 '이 자매님이 참 겸손도 하시구나' 생각하고 아무튼 꼭 하셔야 한다고 부탁을 하자 나중에는 말소리가 높아지며 서로가 서먹서먹한 분위기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고, 무슨 연유로 그렇게 그 자매가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느님 말씀을 자신 있고 신념에 차서 선포한다는 것은 강심장의 소유자가 아니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 앞에서(가족이나 알고 있는 신자들 앞에서 ) 마이크를 앞에 두고 자신 있게 하느님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어떤 분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독서를 해 나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처음 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렵다. 어려워하는 분들은 집에서 여러 번 독서 내용을 숙지한 후 가족 앞에서 한번 연습을 해 보면 한결 좋아질 것이다. 또 '선택된 독서자'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독서자에게는 독서를 부탁하기 전에 독서자의 임무나 자격에 대해 설명해 주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두려움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말씀 전례에서 성경을 읽어, 전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사람을 독서자라고 한다. 성경이란 글자 그대로 거룩한 말씀이며, 거룩한 책을 읽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독서자는 성경 본문을 정독하며, 성경 말씀을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독서와 복음의 상관관계를 잘 이해하고, 하느님 말씀의 참뜻을 깨닫고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올바른 독서를 하기 위해서 독서자는 말씀을 봉독 전에 충분히 읽고 이해해야 하며, 자신감을 갖고서 하느님 말씀 선포자 자격으로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회중들 앞에서 자신감이 결여돼 떨리는 목소리로 봉독해 나간다면 듣는 이들은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기에, 독서자들은 임무를 수행할 참된 자질을 갖춰야 하며 빈틈없는 준비를 해야 한다. 신자들이 거룩한 독서를 들으면서 성경에 대해 맛들이며 마음속에 살아있는 감동을 키워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직을 받은 독서자가 없을 경우 다른 평신도에게 성경 봉독을 수행할 임무를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알맞은 독서자가 없을 때는 주례 사제 자신이 독서를 낭송할 수도 있다. 독서자는 독서 후에 화답송 낭송자가 따로 없을 경우에 화답송을 낭송한다. 독서자는 평신도일지라도 미사 집전 중에 고유 직무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보다 높은 계층의 직무 수행자가 있더라도 스스로 자기 고유의 직무를 수행한다.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서 성경에 대한 감미로움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려면, 독서자들은 비록 독서직을 받지 않았지만 성경 봉독의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여성에게도 복음 전 독서들을 봉독하고 보편 지향 기도를 하도록 허락하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임무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이창훈2009.09.01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4) 추기경의 흔적 서린 '추억의 병실'](//cpbc.co.kr/CMS/newspaper/2010/02/rc/325738_1.0_titleImage_1.jpg)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4) 추기경의 흔적 서린 '추억의 병실'소박한 병상엔 눈부신 햇살 한 줌만이…"똑똑…"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6010호 문을 열다.김수환 추기경이 세상과 소박한 작별을 고한 병실 모습.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 만이다. 지난 1월 27일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앞두고 아직도 김 추기경의 마지막 흔적이 곳곳에 서려있는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6010호 병실을 찾았다. 지난해 3월 23일 서울성모병원이 개원하면서 옛 강남성모병원의 모든 입원실과 진료실이 새 병원으로 이사를 가고 교수 연구실과 호스피스센터, 임상연구센터, 정신과 병동을 제외하고 현재 4~6층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비어 있는 상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 추기경이 입원해 있던 6층에서 내렸다. 전등이 모두 꺼져있는 복도는 조용한 적막감이 흘렀다. 복도 양 옆 일반 병실에는 빈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굳게 잠겨 있던 문을 열고 6010호 병실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십자고상과 김 추기경이 사용하던 침대, 책상, 의자만 빈 병실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이 159일간 묵었던 40㎡(약 12평) 남짓한 병실 곳곳에는 아직도 김 추기경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금방이라도 김 추기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으며 두 손을 잡아주실 것 같다. 김 추기경이 떠난 병상은 말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침대 위에는 환자복과 이불이 잘 개어져 있었다. 이 침대 위에서 추기경은 환자복을 입고, 한 손에 나무 묵주를 쥔 채 세상과 소박한 작별을 했다. 머리맡 선반에는 김 추기경의 손때가 묻은 검정색 표지의 신구약 합본 성경책이 놓여 있다. '강남성모병원 원목실'이라고 찍혀 있는, 병실마다 놓여 있던 성경책이다. 김 추기경은 선종 며칠 전까지도 의료진이나 간병인들에게 성경을 펴들고 복음을 들려주었고, 비서 수녀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성경을 들으며 잠들곤 했었다. 침대 아래 쪽에는 추기경이 제대 삼아 미사를 봉헌하거나 식사를 하던 바퀴 달린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김 추기경은 매일 오전 10시쯤 병실에서 비서 신부, 수녀와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영성체도 했다. 병실 한편을 지키고 있는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프린터가 그대로 놓여 있다. 김 추기경은 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인터넷도 했다. 평소 병실 벽에는 김 추기경이 생전에 그린 자화상 '바보야'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 눈, 코, 입을 간단한 선으로 쓱쓱 그린 자화상 하단에 적어 넣은 '바보야'라는 글귀가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그림이다. 지금은 다른 유품과 함께 따로 보관되어 있다. 김 추기경은 사람들의 궁금증 어린 질문에 "바보같이 안보여요? 그림과 똑같지는 않아도 내 모습이 바보에 가까워요.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하고 대답했다. 병실 창으로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고 있다. 김 추기경은 저 창문 밖 무성하던 나뭇잎이 겨울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묵상했으리라. 김 추기경은 2008년 9월 11일 6010호에 입원했다. 그 전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때가 마지막 입원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결국 마지막 입원이 된 5개월 동안 수차례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겪었지만 김 추기경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2008년 10월 4일 주말에 김 추기경 병세가 갑자기 나빠져 1차 위기가 찾아왔다. 기관지염으로 가래가 찼고 스스로 가래를 뱉어 내지 못했다. 호흡 곤란 때문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비상 호출을 받은 주치의가 달려와 가래를 뺐다. 다행히 다음날 새벽 의식을 회복한 김 추기경은 비서 수녀를 보고 활짝 웃으며 "여보게, 나 부활했어"하고 농담을 던졌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도 참으로 의연했다. 기자와 함께 병실로의 추억여행에 동행한 김 추기경 주치의 김영균(프란치스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추기경님은 '힘들지 않다. 준비가 됐다'고 말씀하시며 선종 순간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 추기경의 임종을 지켜보고 사망을 확인했던 김 교수는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준비가 된 분이라 그런지 삶의 마지막 순간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병세가 악화되면서 수시로 가래를 뽑아야 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손사래를 치면서도 치료 후에는 항상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따뜻한 분"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김 교수는 "돌이켜 생각하면 당신은 떠날 준비가 됐는데 왜 자꾸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느냐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김 추기경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났다. 김 교수에게도 김 추기경과의 인연은 여전히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김 추기경 선종 후에도 한동안 자신도 모르게 6010호 병실 쪽으로 발길을 옮기곤 했을 정도다. 1년 전 바로 그날 오후 김 추기경 주치의 정인식(루카,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영균 교수가 긴급 호출을 받고 6010호 병실로 달려가던 긴박한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몇 분 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총대리 염수정 주교,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 명동주교좌본당 주임 박신언 몬시뇰도 서둘러 병실로 달려왔다. 10여 분 후 침통한 표정으로 병실에서 나온 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병실 앞 복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 안에서 선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안센터 주천기(요셉) 교수도 긴급호출을 받았다. 후배 전문의 3명과 함께 급히 6010호로 올라갔다. 안구적출을 위한 수술 세트가 도착하고 주 교수는 잠시 기도를 한 뒤 직접 집도에 들어갔다. 수술은 40분 만에 끝났다. 안구를 적출한 자리에 의안(義眼)을 채워 넣었다. 주 교수는 수술하는 동안 계속 주의 기도를 외웠다. 김 추기경의 각막 기증으로 두 사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추기경이 남긴 '사랑과 나눔의 빛'은 수백수천만 명이 영혼의 눈을 다시 뜨게 만들었다. 김 추기경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었을까. 취재를 마친 후에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육신은 이미 떠났지만 추기경이 남긴 사랑의 자취는 여전히 곳곳에 온기를 품은 채 남아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김 추기경 병실을 소박한 기념관으로 만들어 영구보존하고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글=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cpbc2010.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