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 상징]28- 십자가- 고난, 순교로 이어지는 사도의 신분](//cpbc.co.kr/CMS/newspaper/2008/12/rc/275239_1.2_titleImage_1.jpg)
[성경속 상징]28- 십자가- 고난, 순교로 이어지는 사도의 신분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얼마 전 세계적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경기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봤다. 지난 5월 마리 스텔라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김연아 선수. 경기에 앞서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격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성호경은 아주 훌륭한 기도이며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신앙고백의 행위다. 가톨릭 신자는 손으로 자기 몸에 십자 모양을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기도를 바친다. 이때 십자 모양을 긋는 것을 '십자성호', 함께 바치는 기도문을 '성호경'이라고 한다. 기도하기 전이나 음식을 먹기 전에 바치는 성호경은 가톨릭 신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주님이요 하느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십자가는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 근동 아시아와 로마 제국에서 사형(死刑) 도구로 사용됐다. 십자가에 죄인의 몸을 매달고 때로는 두 손을 못으로 박기도 하는 처형방법은 페니키아를 비롯한 고대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다. 로마제국에서는 중죄인, 특히 제국의 반역자들이나 흉악범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희생자가 십자가에 달리면 그 시체는 십자가에서 썩어질 때까지 두거나 야생 동물 먹이로 내버려 뒀다. 성경에서 십자가는 무거운 짐과 고난을 뜻한다(마태 10,38). 수치스러운 죽음이나 굴욕을 인내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히브 12,2). 사도 바오로에게 십자가의 의미는 속죄에 있다(1고린 1,17-18). 그에게 십자가는 하느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 주는 계시다. 십자가의 죽음에는 하느님과 화해라는 속죄사상이 나타나 있다(에페 2,16). 십자가가 그리스도교 상징이라는 것은 박해 당시 지하묘지인 카타콤바에 세워진 교회 벽 등에 그 형태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복음에 나오는 십자가 이미지는 고난과 어떤 경우에는 순교로 이어지는 사도의 신분 표시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마르 8,34). 또한 루카는 십자가에 대한 매일의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루카 9,23 ). 그래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고난받을 것과 십자가에 못박힐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십자가만이 제단에 놓였으나 나중에는 십자고상(十字苦像)도 놓이게 됐다. 이것은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에서 인류 구원를 위해 속죄하는 고난의 그리스도로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십자가는 초대교회 때부터 무덤을 비롯해 기념비나 동전, 관공서 서류 등 곳곳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가 4세기 말 로마제국 국교가 되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이 됐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마나 가슴에 하던 십자표시를 이마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두 어깨를 연결하는 큰 십자가 표시로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전해서 오늘날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를 바칠 때나 식사를 할 때 긋는 십자성호가 됐다. 우리는 성호경을 바칠 때는 언제나 이 십자성호를 긋는다. 성호경을 바치는 이 행위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성령 안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한다.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바쳐야겠다. 조은일2008.12.09
![[성경 속 상징]-(7) 독수리](//cpbc.co.kr/CMS/newspaper/2008/06/rc/25421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7) 독수리하느님을 대리한 심판자이스탄불 총대주교좌 성당 외벽 정면에 있는 머리 둘 달린 독수리 문장. 머리 둘 달린 독수리 문장은 비잔틴 황실과 정교회를 상징한다. 사진제공=주호식 신부 유럽 문화에서 독수리만큼 큰 영향을 준 동물이 또 있을까? 독수리는 용맹스러운 동물의 왕이다. 푸른 창공을 높이 비상하는 독수리는 용맹, 위엄, 자유 등을 상징한다. 독수리는 로마제국의 상징이었다. 로마가 독수리를 황제와 제국의 상징으로 정한 이후 많은 나라나 왕들이 독수리를 지배자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962년 프랑크 왕국의 오토대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됨으로써 독수리를 정식 문장으로 사용했다. 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독일 황제가 겸함으로써 독수리는 오늘날에도 독일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 황제나 나폴레옹 황제의 문장에도 독수리를 사용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독수리가 씩씩하고 용맹한 기상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독수리류는 강한 힘 때문에 바빌로니아 시대 이후로 힘과 권위의 상징이 돼왔다. 신화와 상징의 세계에서 독수리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새도 없다. 독수리는 어디에서 서식하든지 새들의 왕으로 간주된다. 수메르의 신은 사자 머리를 한 독수리였다. 로마인들은 황제의 시신을 화장할 때 독수리를 하늘 높이 날려 보냈는데 이 의식을 통해 죽은 이의 영혼이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독수리는 이스라엘을 구한 상징적 동물로 표현되고 있다. 성경에서 위풍당당하게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는 힘과 인내의 상징이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 40,31). 하느님께서 선택한 백성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표현할 때도 독수리에 비유한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탈출 19,4). 독수리는 하느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님께서는 너희를 치라고 땅 끝 먼 곳에서 한 민족을 데려오실 것인데, 너희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그 민족이 너희에게 독수리처럼 날아들 것이다"(신명 28,49).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는 바빌론 및 이집트 등 강대한 제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 큰 날개가 달리고 깃털이 많은 큰 독수리가 또 하나 있었다. 그러자, 포도나무가 뿌리를 그 독수리 쪽으로 돌리고 줄기를 그쪽으로 내뻗었다. 포도나무는 자기가 심긴 밭이 아니라 그 독수리에게서 물을 얻으려는 것이었다"(에제 17,7). 예수님은 큰 재난을 예언할 때 독수리에 비유하셨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든다"(마태 24,28). 이 말씀은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말씀으로도 유명하다. 즉, 독수리가 먹이를 찾아내듯 유다인들을 찾아내 파멸시킨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한 독수리는 하느님 의지, 하느님의 뜻을 이룰 사람 또는 군대로서 하느님을 대리한 심판자로 비유되기도 했다. 초대교회에서 독수리는 하느님 말씀과 지혜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성당에 날개를 편 독수리의 모양을 조각한 설교대가 많았다.허 영 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cpbc2008.06.17
![[출판단신]생활성서사,「복음과 삶 2010」다이어리 등](//cpbc.co.kr/CMS/newspaper/2009/10/rc/313378_1.0_titleImage_1.jpg)
[출판단신]생활성서사,「복음과 삶 2010」다이어리 등 ▲생활성서사는 최근 「복음과 삶(Bible & Life) 2010」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소중함을 아는 이들에게서 더 빛나는 1년을 복음과 함께할 수 있도록 편집했으며, 14×18㎝ 크기로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일기장 모양 다이어리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주황ㆍ파랑ㆍ연갈ㆍ검정ㆍ빨강색 표지로 장정해 5종을 냈지만, 올해는 이해인(클라우디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시 12점에 윤지선(제네시아, 까리따스수녀회) 수녀의 그림 12점을 덧보태 한결 돋보인다. 1년간 성경을 통독할 수 있도록 성경읽기표와 매주일 복음 묵상글을 실어 늘 말씀과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교회 전례력과 주요 기도문을 게재, 여러 모임에서 활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양장본의 세련된 품격과 스프링 제본의 편리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생활성서/1권당 7000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펴내는 계간 「분도」 통권 제7호(2009/가을호)가 나왔다. 성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파견된 지 100돌을 맞아 덕원수도원이 그리운 흰머리 소년 이석철(미카엘) 수사를 인터뷰했고, '옛 등걸에 새 순이(Surculus de trunculo)' 꼭지를 통해 연길교구로 떠나는 선교사들의 얘기를 다룬 '가자 북으로! 선교 일선에 뛰어든 베네딕도회원들'을 게재했다. 또 '시대의 징표'를 읽는 분도출판사 얘기를 실었고, '현대에 있어서 베네딕도 영성'을 통해 현대의 특성과 베네딕도회적 삶, 「베네딕토 규칙서」의 현대적 적용 문제를 다뤘다.(무가지) ▲광주가톨릭대출판부(출판부장 김정용 신부)에서 펴내는 계간 「신학전망」 제166호(2009/가을호)가 나왔다. 논단에서 △본당 「사목계획서」의 현황과 개선방향:광주대교구 광주서부지구 본당을 중심으로(김영권 신부, 광주가톨릭대 실천신학 교수) △완벽주의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송동림 신부, 광주가톨릭대 실천신학 교수) △예수의 특이성:정당한 혼합주의는 존재하는가?(엘마르 클링어, 서명옥 옮김) 등을 다뤘다. 영성생활에서는 주수욱(서울 독산1동본당 주임) 신부의 '사제직은 무엇인가?'를 싣고, 서평으로는 김훈(광주가톨릭대 조직신학 교수) 신부가 개신교 여성신학자 구미정씨의 「한글자로 신학하기」(대한기독교서회 펴냄)에 대해 성찰했다. 문의 : 061-337-8034(40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10.20
![[성경 속 상징]22-눈- 하느님의 전지전능한 능력](//cpbc.co.kr/CMS/newspaper/2008/10/rc/269284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22-눈- 하느님의 전지전능한 능력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얼마 전 TV에서 동남아시아 안다만 해를 떠돌며 생활하는 바다집시 모켄족의 생활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모켄족은 대나무 작살 하나만으로도 빠르고 정확하게 물고기를 잡는다. 공기와 물은 밀도가 달라서 사람의 눈은 물속에서 초점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물안경을 쓰고도 바닷속 생물을 구별하기 쉽지 않은데 모켄족은 물속에서 맨눈으로도 작은 조개와 같은 생물을 정확하게 찾아낸다니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처럼 높은 하늘을 날며 먹이를 잡는 맹금류는 가장 민감한 눈을 갖고 있다. 그중에 매는 인간보다 4∼8배나 멀리 볼 수 있다. 매는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의 밀도가 인간의 다섯 배에 이르기 때문에 선명한 천연색 영상을 본다. 그러나 이들도 밤이 되면 맥을 못 춘다. 매의 눈에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감지하는 간상세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놀라운 후각과 청각을 지닌 개의 시각능력은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근시이며 색맹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개가 보는 세상은 마치 흑백 텔레비전 화면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개의 야간 시력은 휠씬 뛰어나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며, 워낙 뛰어난 후각과 청각의 기능으로,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어 시각의 기능이 떨어졌다고 보여진다. 사람의 눈은 본능적으로 빛이 비추는 쪽을 향한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세계를 본다. 한편 눈은 혼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눈을 통해 인간의 내면까지 뚫어 보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눈은 태양을 상징하며 태양은 제우스신의 눈이다. 일반적으로 눈은 빛과 각성, 지식, 정신, 보호, 안정, 목적을 상징한다. 성경에서도 눈은 사물 일체를 꿰뚫어보는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상징한다. 또한 직감적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을 뜻하기도 하고 힘과 능력, 빛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약성경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주님 발현 체험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네 생물의 형상을 표현하며 눈이 가득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하느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다(에제 10,18). 하느님의 눈은 태양보다 밝고 인간의 모든 것을 다 보신다(집회 34,21). 성경에서 하느님의 눈은 하느님 전체, 하느님의 인격을 나타내는 단어로 종종 사용된다. 지식이란 진실하고 바르다고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인간을 나타낼 때에 눈동자라는 이미지가 이용된다. "주님께서는 광야의 땅에서 울부짖는 소리만 들리는 삭막한 황무지에서 그를 감싸 주시고 돌보아 주셨으며 당신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신명 32,10).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의 방식을 암시적으로 가리키시면서, 눈을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루카 11,34). 시각 기관인 눈이 정신적 태도로 상징되는 경우도 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마태 5,29). 항상 모든 곳에 존재하며 일체를 꿰뚫어 보는 하느님의 눈을 가리킨다(히브 4,13). 눈이 하느님 영의 상징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묵시 5,6).조은일2008.10.21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4) 옳지 않은 사적 계시에 현혹되면 안돼](//cpbc.co.kr/CMS/newspaper/2010/05/rc/336800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4) 옳지 않은 사적 계시에 현혹되면 안돼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잘못된 성모신심과 올바른 성모공경에 대해 얘기하겠다. 우선 사적 계시를 중심으로 빗나간 성모신심 사례가 있다. 주로 탈혼 상태에서 하느님을 봤다든가, 성모를 만났다든가, 천당에 갔다왔다는 얘기 등이다. 그런 환시가 1950년대에 상주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는 조사를 한 뒤 "상주 황 데레사의 사적계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고 공식 선언을 했다. 그게 1957년 1월 15일에서 21일 사이에 조사를 해서 발표한 건데, 그 이전인 1954년, 1955년에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 서정길 대주교께서 금지한 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었다. 1997년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펴낸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들」이라는 책자에서도 상주 황 데레사가 잘못된 사적 계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신비 체험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하지만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얻게 된 메시지를 어떻게 전해주느냐는 별개 문제다. 가령 토마스 데 아퀴노 같은 대학자 성인께서도 「신학대전」을 집필하던 중에 하느님을 체험했는데 그 이후엔 집필을 포기했다. 그래서 「신학대전」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 이유는 토마스 데 아퀴노같은 대석학도 하느님을 만난 뒤에 그 체험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계시와 진리, 신비에 대해서 인간 이성으로 남김 없이 다 알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는 계시를 통해 알려주신다고 가르친다. 그 계시에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가 있다. 공적 계시는 교회가 모두 승인할 수 있는 성경과 예언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사적 계시는 한정된 지역에서 특별한 상황에 새롭게 무엇인가를 강조하기 위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사적 계시는 항상 공적 계시의 내용에 부합할 때만 정당하다. 공적 계시를 사적 계시가 보충해야 한다거나, 공적 계시를 수정하기 위해 사적 계시가 있어야 된다는 주장을 교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적 계시가 올바른지 판별해야 한다. 또 기적이나 사적계시를 성역화시키는 성모신심으로 나주 윤 율리아 사례가 있다. 나주 윤 율리아가 모시는 성모상이 1985년 6월 30일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991년 5월 16일부터 2002년까지 21차례에 걸쳐 이 사적 계시의 절정을 이루는 성체 기적 현상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1998년 1월 공지문을 통해, 또 2001년 5월 당시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도 '나주 윤율리아와 그 관련된 상황들에 대한 교구의 입장' 발표를 통해 자칭 '성모동산'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집회와 의식은 가톨릭 신앙행위와는 무관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일명 미카엘회라는 운동도 있는데 이 또한 그 신빙성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근 우리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에 '가계치유를 위한 기도모임'이 있는데, 이 가계치유에도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사적 계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왜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셨는지를 묻는 일이다. 발현에서, 사적 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내용이다. 메시지가 계시나 진리, 교회 교리에 위배되면 그것은 올바른 발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0.05.18
![[성경 속 상징]4-구름](//cpbc.co.kr/CMS/newspaper/2008/05/rc/250824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4-구름하느님의 현존, 신비와 신성함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앗! 저 하늘의 십자가를 보세요!" 폭우가 그친 성이시돌센터, 비구름이 지나간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 모양 구름을 보며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8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회 한국 가톨릭 청년대회 축제미사 직전이었다. 8월 20일 청년대회의 절정인 축제미사를 앞두고 제주도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3시간 가량 내린 폭우로 폐막행사 리허설은 취소됐고, 대회 관계자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미사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비가 그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차였다. 바로 그때 하늘에 십자가 모양의 구름이 펼쳐진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은 하늘에 펼쳐진 신비로운 장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마치 하느님의 선물을 마음 깊이 간직하려는 듯이…. 구름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를 내리게 한다. 사막처럼 더운 지방에서 구름은 한줄기 시원한 비를 내려주는 고마운 친구와 같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구름은 신이 사는 곳을 덮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느님과 깊은 연관이 있다. 마치 수레처럼 하느님은 구름을 타고 어디로든지 가실 수 있다고 믿었다. 아마도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물 위에 당신의 거처를 세우시는 분. 구름을 당신 수레로 삼으시고 바람 날개 타고 다니시는 분"(시편 104,3).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한다.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대목은 광야에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부분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을 떠나지 않았다"(탈출 13,21-22).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난 곳도 바로 구름 속이었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탈출 16,10). 신약성경에서도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을 때 제자들은 구름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한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마태 17,5).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다(사도 1,9). 또한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도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 믿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마르 13,26). 중세 초기 및 로마시대 미술에서는 창조주를 구름 속에서 내민 한쪽 손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것은 창조주의 신성함을 구체적인 상으로 나타내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름은 신비와 신성함의 상징이었다.cpbc2008.05.21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군종교구 편](//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7310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군종교구 편양적 아닌 영적 성장 시동…전 교구 차원에서 지원 필요<문제> 다음에서 설명하는 교구는? 첫째, 1년에 3만 명가량의 젊은이를 하느님 자녀로 탄생시킨다. 둘째, 바다와 하늘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 영토가 사목영역이다. 셋째, 받은대로 돌려주며, 투자 대비 효과가 가장 크다. 넷째, 평균 연령이 가장 젊다. 정답은 '군종교구'다.권지훈 신부가 12사단 초소를 방문해 경계근무 중인 장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변화 바람 부는 군종교구 군종교구에 변화 바람이 거세다. 지난 9월 작은형제회 출신 유수일 주교가 제3대 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불기 시작한 바람은 그동안 교구가 지향해온 '양적 성장'에서 '영적(질적) 성장'으로 체질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사목자들 역시 교구장 서임 직전까지 수도회 영적지도를 맡았던 유 주교가 수장이 됐다는 사실은 앞으로 교구 사목목표나 복음화 방향에 전반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구는 2006년부터 '군 복음화 25%를 향해 나아가는 5년' 계획을 수립, 복음화율 향상과 질적 성장, 성당 건립 등 복음화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노력해왔다. 아울러 지난해 사목목표를 '성사의 삶을 사는 해', 올해는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사는 해'로 정해 질적 성장도 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적 카리스마를 지닌 유 주교 착좌는 시의적절했다는 평이다. 교구는 2~5일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마을에서 사제총회 및 연수를 개최, 사제와 교구장이 함께 중장기 사목목표 수립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유 주교는 이번 총회에서 2011년 군 선교 60주년을 앞두고 이에 걸맞은 사목방향과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군종사제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유 주교는 '기도와 말씀' '성체' '만남' 세 가지를 사목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으로 삼겠다면서, 사제총회 때마다 한 가지씩 주제를 정해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강조했다. 군종 신부들은 총회에서 군 사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군인이자 성직자인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했다. 군에서 만나는 미신자 장교들을 복음화 대상인 '예비신자'로 바라보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양적 성장에서 내실화로 군종교구는 한국교회 전 교구 중 가장 특색있는 교구다. 전국 15개 지역 교구 관할지역에 두루 속해 있으면서도 군(軍)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94개 본당과 160개 공소, 91명의 사제가 있으며 한 해 배출하는 영세자 수는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많다. 지난해 한국교회가 낸 새 영세자 수는 모두 15만6947명. 이중 3만2478명(20.7%)이 군종교구 출신이다. 신자 5명 중 1명이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이들 중 90%가 20~29살 남성이란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군종교구는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교구'라 할 수 있다. 전국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녀가 되거나 냉담을 푼다. 군 사목자들은 "학업과 취업, 무관심 등 여러 이유로 종교가 없던 이들, 10~15년씩 냉담하고 있던 이들이 고된 훈련 등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찾는다"고 입을 모은다. 군종교구가 매년 3만여 명의 젊은이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한국교회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고, 미래의 복음화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을 위한 기여도에 비해 질적 성장을 위한 기여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군대에 넘쳐나는 청년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성당을 짓고 세례를 주고 있지만, 질적 성장 없이는 궁극적인 복음화에 이바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군 영세자를 '초코파이 신자'(간식 때문에 세례받은 장병)라 부르거나 군 본당을 '냉담자 양성소'로 보는 냉소적 시각도 존재한다. 교구는 지난 5년 동안 △군 간부와 가족의 내실화 △성경 보급 및 읽기 운동 △성사의 중요성 교육 △청년교리서 보급 △하루 100원 모으기 운동 △헌혈 및 장기기증 운동 등 내실화를 꾀하고자 노력해왔지만, 얼마나 목표에 다가갔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질적, 영적 성장을 꾀할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장병 하나하나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 군종후원회원 증가, 남녀 수도회와 지역 본당의 지원, 군 선교사 양성, 교구민의 선교사화 등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정래(삼위일체본당 주임) 신부는 "마산교구 최문성(오스트리아 선교사목, 2007년 수품) 신부는 1994년 군 복무 중 성소를 발견하고 제대 후 신학교에 갔다"면서 "최 신부처럼 고된 군 복무가 하느님을 찾게 하고 열심한 신앙인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어 질적 성장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정의와 평화, 화합과 친교의 교구상 구현 군종교구는 한국교회 '친교의 장' 역할을 한다. 고된 훈련을 받고 임관해 두 번째 군 생활을 하는 군종사제들은 서로 어려움을 나누며, 군 사목을 위해 대화하고 머리를 맞댄다. 각 교구에서 선발된 사제들은 타 교구 현실과 분위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친교를 이뤄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을 닮아간다. 주로 군종병으로 복무하는 신학생들도 매년 한 차례 있는 군 신학생 피정을 통해 타 교구 신학생들과 교류한다. 군인 자녀들은 매년 1월에 열리는 복사단 신앙학교와 교구 청소년대회 등을 통해 육ㆍ해ㆍ공군이 화합한다. 잦은 이사로 일정 지역에서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군 자녀들에게는 이런 교구 행사가 더없이 소중한 친교의 시간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군 사목에 관한 교황헌장」을 발표, 군종교구의 위상을 일반 지역 교구와 동일시했다. 이탈리아 군종교구는 1996~1999년 시노드를 열고 '군인은 정의와 평화의 봉사자'(시노드 문헌 543~621항)임을 강조했다. 군인은 이 땅의 평화와 정의,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는 봉사자이자 희생자이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임관 20년 차인 서상범(통일대본당 주임) 신부는 "군 사목이 특수사목의 한 부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교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중요성은 어마어마하다"며 "군종교구는 한국교회 전체 화합을 도모하고 미래 복음화를 준비하는 교구"라고 평가했다. #군 선교에 더 관심을 군대를 황금어장으로 보고, 선교를 위해 지원을 대폭 늘려가는 타 종교에 비해, 여전히 지원 부족에 시달리는 군종사제들은 언제나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사목국장 박근호(성레오본당 주임) 신부는 "개신교는 군종목사 외에 수백 명의 민간인 목사들이 전국 군부대에 관여하고 있어, 어느 군 교회에서는 민간인 목사가 한 달에 두 번 주일예배를 맡는다"고 말했다. 이어 "불교도 동국대 학생들이 신병교육대 법당에서 훈련병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등 지원이 확실하다"면서 "하지만 천주교는 군 선교단과 40여 명의 군종수녀들이 활동하는 게 고작이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교회는 지난해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안에 세계 최대 선교본당으로 기록될 김대건성당(옛 연무대성당)을 공동으로 건립한 좋은 경험이 있다. 김대건성당 건립을 위해 전국 교구 3만5000여 명의 신자들이 신축기금과 성물, 기도를 봉헌했다. 군 사목자들은 이 같은 전 교구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길 바라고 있다. 홍보국장 김용한(충호본당 주임) 신부는 "원주교구 구곡ㆍ원동주교좌ㆍ단구동 등 3개 본당은 원주 36사단 백호본당에 간식비와 봉사자를 지원하고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된다"며 "군 본당이나 공소를 관할하는 지역 본당이 관심을 가져주면 군 복음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cpbc2010.11.16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cpbc.co.kr/CMS/newspaper/2010/06/rc/338404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 ▨가톨릭 디다케=캠프의 틈새 꼼꼼 메우기를 특집으로, '여름캠프, 이젠 빈틈 없이 준비하세요!''실내에서도 캠프 파이어를 할 수 있다?'를 실었다. 인물 에스프레소에선 성 유스티노 순교자를, 문화가 백서에선 즐거운 레크리에이션을 다뤘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권혁주 주교의 '사랑하는 신부님들에게'를 비롯해 '사제의 해에 찾은 사제의 자리' '지금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살아주세요' 등을 실었다. 다림줄에서는 '천안함,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목자와 만나다에서는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인터뷰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한국 전쟁 발발 60주년 특집 기획으로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전쟁'을 꾸몄다. 당시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회 수녀들의 체험담과 전쟁이 일어난 지역 사제들에게 특별 권한을 수여한 대구교구 공문 및 사진 자료를 실었다. '한국교회의 사적지 순례'에서는 원주 지역에서 드물게 100년 역사를 가진 한옥 목조 형태의 대안리 공소를 소개했다.(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전국 지역에서 열린 하루 마리아폴리 소식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사제의 해를 폐막하며 권지호 신부의 '사제의 해와 마리아적인 사제'를 실었다. 젊은이의 시선에선 '친구를 따돌리는 것=나를 따돌리는 것(김지원, 고1)'이라는 제목의 경험담을 다뤘다.(마리아 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을 주제로, 대북 관련 특집호를 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활동(이선종 수녀) △평화와 선(김찬선 신부) △분단 시대 우리 교회의 역할(이은형 신부)과 새터민이 쓴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을 함께 다뤘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전례력에 따른 말씀과 묵상은 연중 제9주간부터 13주간까지 정리했다. 아침 뜨락에는 '나는 사제이기에 행복합니다'(김철호 신부)를, 영성 에세이에서는 혼인성사와 부부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뤘다.(가톨릭출판사/한글ㆍ영문판 각 권 900원) ▨사목정보='신앙으로 쓰는 육아일기-가톨릭 영ㆍ유아교육' 특집호. 독일 가톨릭 유치원협의회 회장인 페터 쿠너 신부의 '내일 너의 아들이 묻는다면'을 비롯해 '아이들과 생활하는 유아교육'(함영진) '본당에서의 영ㆍ유아 사목 실천 방안'(박미성) 등을 소개했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예수 성심 성월 제대로 지내기'를 특집으로, △예수 성심 바로 알기 Q&A(고무찬 신부) △사랑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남궁영미) △용서와 사랑의 빛 아래(윤영수 수녀) 등을 게재했다. 장재봉 신부의 교리 보따리에선 사형제도에 대해 다뤘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새로봄/사랑은 듣는 것부터'를 주제로 △그분을 만나려면 일단 들어야 합니다(김대군 신부)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이정호) △고해소에서 만나는 쓰레기꾼이자…(신현만 신부)를 게재했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성경 말씀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조규홍)과 용돈 쓰는 습관(이민정) 등을 다뤘다. 머리가 좋아지는 두뇌 탐험에선 '뇌는 어떻게 진화했을까요?'(류영주), 환경 이야기 우리 이야기에서는 '화산의 종류와 위치는 어떤가요?'(전헌호 신부)를 게재했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교회와 사회에선 강수돌 교수의 '세월이 흐르듯 강물은 흘러야 한다'를, 세상 속 신앙 읽기에선 송용민 신부의 '상처 받는 교회, 상처 주는 교회'를 실었다. 볼만한 책으론 「아르스 본당 신부, 성 요한 비안네의 가르침」을 선정해 소개했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표지 인물로 김수환 추기경 뜻을 이어 바보처럼 사회사목에 헌신하는 김용태 신부를 실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특집으로, △우리 본당 TV를 출범하며(김민수 신부) △그린 캠퍼스 조성과 대학의 경쟁력(이동수) △르트루바이(혼인 재발견) 주말 프로그램 등을 게재했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이지혜 기자 이지혜2010.06.01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2) 성모님 공경, 다 이유가 있다](//cpbc.co.kr/CMS/newspaper/2010/04/rc/334463_1.3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2) 성모님 공경, 다 이유가 있다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남녀 수도회를 보면 성모님과 관련된 수도회가 많다. 마리스타 교육 수도회, 노틀담 수녀회, 로사리오 성모 도미니코 수도회, 마리아 수녀회, 마리아의 딸 수녀회, 메리놀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회 명칭을 통해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님을 얼마만큼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가 뭘까.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말씀하신다. "마리아 공경이 거룩한 예배에서 매우 숭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예배는 하느님 백성이 수행해야 할 첫째가는 과업입니다. 교회가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흠숭하고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마리아를 비범한 애정으로 공경하며 순교자 및 다른 성인들을 경건하게 기념하는 이 전례를 보다 합당하게 부흥시키기 위해 본인은 앞으로 열과 성을 다할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신심이 발전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 신심이 교회의 참된 신심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 흠숭과 성인 공경을 구분한다. 하느님에게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성모님에게는 상경지례(上敬之禮), 성인에게는 공경지례(恭敬之禮)로 구분한다. 흠숭과 상경, 공경을 어떻게 구분할까. 개신교 신자들이 볼 때 하느님을 흠숭하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잘 구별되지 않아 천주교를 '마리아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리서에서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과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을 분명히 구별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렇게 해주십시오"하고 청한다. 그러나 성모님과 성인에게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한다. 우리는 성모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성모님과 성인이 우리를 위해 기도를 전구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신자 중에 성모님 공경이 지나쳐 오히려 하느님보다 성모님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훌륭한 어른을 공경하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상숭배처럼 성모님을 신성화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많은 신자들이 성모님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학적 용어로, 센수스 피델리움(Sensus fidelium)이라고 하는데, 신자들의 신앙감을 말한다. 신학적 근거로서 교회 전통과 이성적 논리가 있지만 신자들의 느낌도 신학적 근거가 된다. 모든 신자들이 느끼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성지 중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태중이야말로 예수님이 지나간 흔적이자, 성지이다. 넷째, 성모님은 모범적인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성모님만큼 당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성모님을 공경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성경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105.3MHz)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부터 7시까지 방송됩니다.cpbc2010.04.28
![[성경속 상징] 3-제단](//cpbc.co.kr/CMS/newspaper/2008/05/rc/249072_1.1_titleImage_1.jpg)
[성경속 상징] 3-제단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장소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 중에 천단(天壇)이 있다. 이곳은 명ㆍ청대에 황제가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라고 한다. 제단은 자연신이나 조상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기도를 하기 위해 다른 곳과 구별해 신성화한 대(臺)를 말한다. 종교와 시대, 제사에 따라 제단의 형태가 다르다. 원시 종교에서는 자연석, 돌이나 돌무더기, 흙 둔덕 등을 제단으로 사용했다. 본래 제단은 우주(세계)의 중심을 상징했고 제단에서는 위와 아래,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축을 볼 수 있다.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되는 제단은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 이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쌓은 제단이다. 여기서 제단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장소의 의미이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창세 8,20). 그러나 이에 앞서 창세기 4장에 카인과 아벨이 하느님께 제물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아 시대 이전에 이미 제단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창세 4,3-4).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창세 12,7). 여기서 제단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만남을 상징한다. 이처럼 성경의 제단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장소로서 중요하다. 하느님과 관계되었다는 점에서 제단은 전체와 완전함의 상징이었다. 제단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눈에 보이는 중심 장소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구약에서 제단은 범죄자들이 도피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악의로 흉계를 꾸며 이웃을 죽였을 경우에는 그가 제단을 붙잡았더라도 끌어내어 사형에 처했다(탈출 21,14). 신약에서 제단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식탁을 가리킨다. 신약에서도 제단은 제물을 드리는 장소였지만 제물은 구약 시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예수님 자신이 속죄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제단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고 속죄의 제물인 그리스도는 그 이전에 계속 반복하여 드리던 다른 제물들과 비교돼 나타난다(히브 13,10-12). 제단이요 동시에 제사장과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나오는 제단과 관련된 모든 이미지를 하나로 일치시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계약의 상징이 된다. 최후의 만찬 식탁을 모방한 제단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존재했고 주님의 식탁을 중심에 두고 예배를 드렸다. 제단의 상징적 의미는 신약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가톨릭 성당의 제단은 성당 전면에 설치돼 있고 그 중심에는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제대가 있다. 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 즉 미사가 봉헌되는 곳이다. 또한 최후의 만찬 때에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신 식탁을 상징한다. 이처럼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며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오면 제대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는 예의를 갖춘다. cpbc2008.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