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고?](//cpbc.co.kr/CMS/newspaper/2010/09/rc/350457_1.0_titleImage_1.jpg)
[진단]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이 우주 만물을 지으셨다는 창조론을 믿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생물학적 진화론을 배격하지 않는다.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부분(바티칸 시스틴경당)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새 저서 「위대한 설계(Grand Design)」를 통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주장을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매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생산해내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언론들은 '과학과 종교의 대충돌'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호킹 박사의 주장은 크게 두 갈래다.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빅뱅)은 신이 아니라 무(無)의 상태에서 중력의 자연법칙에 의해 저절로 생긴 현상"이라는 것과 "인간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지만, 과학은 신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미국 abc 뉴스 인터뷰)이라는 주장이다. # 창조론과 진화론의 충돌? 하느님이 우주 만물은 지으셨다는 천지창조설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발언이다. 이 논란은 한편으로 창조론과 진화론,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톨릭교회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진화이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교황청 과학원 위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이론을 하나의 가설 이상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진화이론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면서 물질이 우연히 또는 저절로 결합해서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보는 무신론적 진화론 같은 과격한 이론을 경계했다. 그럼 성경 맨 첫 장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는 말씀에 기초한 하느님의 천지창조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는 만물이 어떤 식으로 창조되었는가 하는 창조의 '방법'을 설명한 게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하느님께 그 근거를 두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즉, 창조론은 기본적으로 세상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에 관한 것이고, 진화론은 세상이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박준양 교수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창조 이야기(창세 1-11)는 창조 역사에 대한 실제적ㆍ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당시 고대 근동 설화들을 원용해 하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작성되고 기록된 신앙 고백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우주 생성과 과정을 직접 목격한 누군가가 마치 실제적 사건 보도를 하듯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적 내용을 두고서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양자택일을 하라는 식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저서 「창조론, 아름다운 세상의 회복을 꿈꾸며」) 또한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이 태초의 천지창조 단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역사를 통해 새롭게 계속되고 있으며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궁극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 과학 속에서 신을 만났다 아울러 언론들이 보도하듯 종교와 과학은 간극을 좁히기 힘든 대립 관계가 아니다. 교회는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에 대해서는 초지일관 협력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교회가 최근 생명복제나 유전공학 등 생명과학의 급진전에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 인류 발전은커녕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비윤리적ㆍ반생명적 시도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세계적 과학자들 중에는 "오묘한 우주 질서와 자연 법칙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다. 우리가 사는 물질주의 시대에 진지한 과학도야 말로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3년 인류 최초로 31억 개 유전자 서열을 해독해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한 세계적 유전학자 프랜시스 S. 콜린스 박사는 "생명의 암호가 작동하는 완벽하고 정교한 질서 속에서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한 신의 언어를 발견했다"고 털어놓았다. 천체물리학자 로버트 제스트로의 고백은 더욱 겸손하다. 우주 존재 이유 등 과학자가 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데서부터는 신학자 영역이라는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과학이 창조의 신비를 가린 커튼을 걷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무지의 산을 오르던 과학자가 이제 막 정상을 정복하려고 마지막 바위를 짚고 서는 순간,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그곳에 앉아있던 신학자 무리가 그를 반기기 때문이다."(저서 「신과 천문학자」) #신앙과 이성은 진리를 향한 두 날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신앙과 이성」(1998년) 첫 장에서 "신앙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다"고 천명했다. 교황은 또 "신앙과 이성을 어떤 식으로든 대립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근거 없는 일"(17항)이라고 지적했다. 한 과학자의 주장에 교회 반박을 유도하며 논란을 증폭시키는 언론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김원철2010.09.15
![[공동기획-냉담교우를 모셔오라]-(12) 냉담교우 모시기 5단계 : 모시기](//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7300_1.0_titleImage_1.jpg)
[공동기획-냉담교우를 모셔오라]-(12) 냉담교우 모시기 5단계 : 모시기다시 돌아온 교우, 진실된 사랑으로 반겨야"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루카 15,22-23). 냉담교우 모시기 4단계에서 냉담 원인별 맞춤선교를 통한 '마음열기'에 관해 알아보았다. 이제 냉담교우 모시기의 마무리 단계다. 5단계는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에 넘쳐 성대한 환영식을 여는 것이다. 환영식은 냉담교우가 주인공인 것처럼 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 1. 초대 이제 냉담교우들은 세 가지 부류의 마음가짐이 된다. 환영식날 스스로 나갈 마음을 가진 사람과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 마지막 노력을 다해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듯 마지막 정성을 다한다. 환영식 일주일 전부터 매일 전화나 방문을 해서 망설이는 마음을 확고히 돌려놓는다. 냉담교우를 성당으로 모셔 오는 날(D-Day)은 가능한 많은 이들이 참석할 수 있는 요일과 시간으로 정한다. 대체로 주일 오후 시간이 적당하다. 시기적으로는 성탄 대축일을 즈음해 환영식을 갖는 것이 냉담교우 마음을 움직이는데 더 효과적이다. 냉담교우 모두에게 미리 초대장을 보낸다. 초대장은 소중한 분들에게 특별한 날에 꼭 참석해 주십사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다.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첩장을 보내듯이 고급스럽게 장식하고, 가능한 주임신부의 친필 메시지를 담아 정감 있게 꾸민다. '2단계 - 사랑의 편지 전달'에서 1차로 초대편지를 보냈으므로 환영식 초대장에는 간결하면서도 냉담교우의 마음과 감성을 움직일 수 있는 문장을 담는 것이 좋겠다. 초대장은 가능한 인도자가 냉담교우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한다. 본당 차원의 냉담교우 모시기 운동이 아닌 개인적으로 냉담교우를 회두 권면하는 경우에는 냉담교우가 마음의 결정을 하면 즉시 본당에 알려 주임신부와 면담을 주선하고 고해성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시간을 끌수록 냉담교우가 마음이 바뀌거나 미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환영 드디어 냉담교우를 맞이하는 환영식날. 본당 신자들은 교회를 다시 찾기로 결심한 냉담교우들을 성당으로 안내해 모셔온다. 인도자는 냉담교우에게 "○시까지 성당으로 오세요"라고 하지 말고 직접 동행해 모셔온다. 당일 모셔오는데 차질이 없도록 냉담교우 1명 당 동행할 인도자를 2명 이상 편성한다. "나는 환영식 날 꼭 갑니다"하고 말하는 사람도 안심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뜰채에 넣다가 놓치는 고기도 많은 법이다. 환영식 날 1시간 전에 대상자 집을 방문해 환영식에 동행하고 그들이 환영식장 자리에 앉을 때까지 안심하지 말자. 본당 신자들은 마치 다시 찾은 형제를 환영하듯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최대한 정성으로 반겨야 한다. 성당 입구에서 냉담교우가 들어올 때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하고 허리 굽혀 인사한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어쩐지 과장된 느낌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지만 냉담교우들은 일단 정중하게 대접받는다는 생각에 내심 흡족해 할 것이다. 환영식은 미리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음식을 준비해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본당의 날 행사나 축제(모범신자 표창, 성경쓰기 시상, 생활성가 가수 초청 음악회 등)를 병행하면 가톨릭 신자의 자존감을 더 심어줄 수 있다. 낯익은 교우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얼어붙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리도록 한다. 환영식에 앞서 '초대받은 형제ㆍ자매들'을 위한 참회예절과 고해성사 일정을 따로 마련하고 주임신부 강의와 묵상을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냉담 사실을 드러내기 꺼리는 이도 있고, "한동안 성당에 안 나왔기로서니 무슨 냉담교우냐?"하며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꽃을 달아 주거나 좌석을 따로 만드는 것을 꺼리는 경우는 있어도, 주임신부가 안수를 해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3. 소공동체와 연결 돌아온 교우들이 소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기존 교우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 환영식 마지막에 본당 소공동체 구역ㆍ반장을 소개해 참여를 유도하고, 구역ㆍ반 중심으로 돌아온 교우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한다. 본당의 여러 활동ㆍ신심단체를 안내해 1인 1단체 가입을 권하는 것이 좋다. 특히 운동을 좋아하는 이에게 선교축구단이나 볼링 동아리, 산악회 등을 권유하고, 음악이나 노래를 좋아하면 기타반 또는 성가대 입단을 유도하면 스스로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다. 환영행사가 끝나면 본당 차원에서 재복음화를 위한 특강이나 피정을 통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신앙 정체성에 확신을 갖도록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피정이나 성지순례가 적당한 프로그램이다. 주의할 점은 어떤 방식이든 이제 막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한 신자들에게 너무 부담이 되지 않는 방식과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냉담생활로 잊어버린 교리와 전례를 새롭게 되새기도록 '냉담교우를 위한 생활교리'를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같은 교육을 실시할 때는 가능하면 대부모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대부모를 찾을 수 없는 경우는 해당 반의 반장이나 인도자가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이들이 다시 냉담하지 않도록 적절한 봉사자를 멘토로 정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살피게 한다. 이밖에 재복음화에 도움이 되는 영성서적을 선물하거나 평화신문 등 교회 정기간행물 정기구독권을 증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냉담교우가 신앙을 회복했다 하더라도 인도자는 그 냉담교우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인도자가 냉담교우를 위해 기도해주고, 돌아온 교우는 자신을 인도한 신자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5). 선교는 한 죽은 영혼을 살리는 길이고 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유태근(요한 세례자, 미래사목연구소 교육부장) cpbc2010.11.16
「성경 하루 한장 읽기」 잠언해설무려 150편에 이르는 「시편」 다음으로 이제는 성경의 세 번째 「지혜문학」 작품이자, 대략 375개의 격언들로 구성되어 있는 「잠언(箴言)」 혹은 「미셜레 셜로모( , 솔로몬의 잠언)」를 읽을 차례입니다. 선생 또는 현인이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꾸며져 있는 「잠언」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람이 한 가정 내지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잠언 1,1 참조). 하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이 책의 저자가 솔로몬 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여러 저자들에 의해서 수집되고 작성된 본문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서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된 책이 바로 오늘날의 「잠언」입니다. 다만 기원전 7세기 유다 임금 히즈키야 시대에 전통적인 속담(10,1-22,16)과 격언들(25,1-29,27)이 수집되면서 시작된 이 책의 저술은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 이후인 기원전 5~4세기께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잠언들 대부분은 가정 또는 왕궁에서, 혹은 학교와 같이 다양한 「삶의 자리」를 배경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잠언」은 간결한 두 줄의 단문으로 지혜의 가르침을 힘있게 표현하면서, 히브리 시의 특징인 '대구법(對句法)'을 즐겨 사용합니다. 대구법이란 한 행이나 반 행을 배열함으로써 저자의 생각을 드러나게 하는 문학 양식입니다. 대구법에는 크게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동의적 대구법-같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과정을 동의어로 두 번 반복해서 묘사함(예: 19,29)과 둘째, 반의적 대구법-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서로 반대되는 어구를 나란히 놓아 주제를 반복하여 강조함(예: 10,4), 셋째, 종합적 대구법-어느 한 쪽을 예리하게 강조하거나 종합해 전체적인 뜻을 완성합니다(예: 16,8). 「잠언」은 최종 편집자의 저술 의도가 기록된 도입부(1,1-7)와 결어 역할을 맡고 있는 이상적인 아내에 대한 시편(31,10-31) 사이에 서두에 제목이 수록된 잠언 모음집 여덟 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 1,1~7: 도입부. 2 1,8~9,18: 첫째 모음집-지혜에 대한 교훈과 연설. 3 10,1~22,16: 둘째 모음집-솔로몬의 잠언. 4 22,17~24,22: 셋째 모음집-현인들의 잠언. 5 24,23~34: 넷째 모음집-현인들의 다른 말씀들. 6 25,1~29,27: 다섯째 모음집-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잠언. 7 30,1~14: 여섯째 모음집-아구르의 잠언. 8 30,15~33: 일곱째 모음집-수(數) 잠언. 9 31,1~9: 여덟째 모음집-르무엘의 잠언. 10 31,10~31: 맺음 시편-훌륭한 아내. 「잠언」의 내용은 네 가지 주제에 따라 살펴볼 수 있습니다. ①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 지혜는 주님 곤경에서 시작되며,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②가정생활에 대한 교훈: 남편과 아내는 서로 신뢰하고 충실해야 하며, 부모는 가정 안에서 자녀에게 지혜를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고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③사회생활에 대한 교훈: ㉠재산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하느님 뜻에 맞게 선하게 사용해야 하며, 특별히 가난한 이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웃에게 사랑과 배려가 담긴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과음은 남에게 해를 끼치기에 지혜롭지 못한 행위입니다. 4의인의 길: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게 주님을 경외하고 현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의인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이힘2008.08.26
로마서 해설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실천해야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21권이 '서간'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무려 13권이 바오로 사도에 의해서 작성됐다 해서 '바오로 서간'이라 불립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될 서간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인데, 총 16권으로 분량이 제일 많은 것만이 아니라 신약성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도 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 끼친 영향력이 지대합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이 서간을 편의상 「로마서」라 지칭하겠습니다. (1)「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저자와 저술 연대 및 장소 「로마서」 저자가 사도 바오로라는 사실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별다른 이견 없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57~58년경 3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코린토에 머물던 사도 바오로는 장차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에 들렀다가 스페인에서 선교할 계획을 세우면서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자신을 미리 소개할 목적으로 이 서간을 작성하였습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로마 교회를 세웠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서간이 작성 무렵에 로마에 상당히 크고도 명망이 높은 교회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합니다. (2)「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구조와 내용 「로마서」는 아래와 같이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 1,1~15: 서문. 가) 1,1~7: 인사. 나) 1,8~15: 로마를 방문하려는 원의. 2) 1,16~11,36: 교리적 가르침. 가) 1,16~17: 복음의 힘-전체 주제의 소개. 나) 1,18~4,25: 하느님의 심판과 믿음을 통한 의화. 다) 5,1~8,39: 죽음에서 생명으로, 율법에서 영으로. 라) 9,1~11,36: 이스라엘의 신비. 3) 12,1~15,13: 윤리적 가르침. 4) 15,14~16,27: 맺음말. 가) 15,14~33: 사도 바오로의 사도직과 여행계획. 나) 16,1~23: 끝 인사와 권고. 다) 16,25~27: 종결 찬송. (3)「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핵심 주제 사도 바오로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는 「하바쿡서」 2장 4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전에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간략하게 다루었던 '의화론(義化論)'을 「로마서」 1장 18절~11장 36절에서 상세하게 다뤘습니다. 여기서 '의화론'이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의롭게 돼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사상입니다. 유다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이 율법의 실천과 선행을 통한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지만,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 인간은 율법의 실천과 선행으로는 구원에 다다를 수 없고, 오로지 우리 인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이 돼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실천을 통해 공로를 쌓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그저 말로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헛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구원이 선행을 통해 인간 능력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 곧 '은총'이란 뜻입니다. 인간이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은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임영선2010.01.05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2010년 1월호)](//cpbc.co.kr/CMS/newspaper/2010/01/rc/321833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2010년 1월호) ▨가톨릭 디다케=교리보따리에선 '신년 운세를 알아봐도 되나요?'(김영국 신부)를 실었다. 디다케 상담소에서는 '때문에'와 '덕분에'의 차이를 알아봤다. 게임 따라 교리 따라에서는 '나의 탈렌트는 무엇일까?'를 다뤘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경향돋보기에서는 한국 가톨릭 건축ㆍ미술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실었고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에서는 사회교리에 담긴 신앙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교와 경제, 신학과 경제학을 다뤘다. 세계 교회 동향에서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성령쇄신 운동 활성화를 위해 결성된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를 소개하고, 캐롤 몬시뇰이 방한한 스펠만 추기경과 거제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일을 소개한 보도문 등을 실었다. 2009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발간한 도서도 소개했다.(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공연차 한국을 찾은 포콜라리노 피아니스트 바올로 베르가리씨의 삶을 특집으로 다뤘다. 일치의 영성을 건반 위에서 실현하고 있는 음악가의 삶을 들여다봤다. 포콜라레 이상을 사는 청소년들이 어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기획 '별들이 보는 세상'을 시작했다.(마리아 사업회/3000원) ▨말씀지기=아침뜨락에서 조욱현 신부의 '성 라자로 마을에서 맞는 희망의 새해'를 실었고, 영성 에세이 '새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 '여러분의 적이 누구인지를 아십시오' 등을 다뤘다.(가톨릭출판사/한글ㆍ영문판 각 권 900원) ▨레지오 마리애=강의실 밖 신학여행에서는 전광진 신부가 가톨릭교회 어제와 오늘을 알아봤다. 레지오의 영성에서는 복음화에 대한 고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려면을 다뤘다. 철학하는 의자에서는 사회 전반을 달구는 성형 열풍을 다뤘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사목정보=평신도 영성을 특집으로 다뤘다. '21세기 한국 가톨릭에서의 평신도의 현주소'(이순성 신부)를 짚고 '순교성인들을 통해서 보는 평신도의 영성'(마백락) 등을 실었다. 공동선에서는 용산 참사를 주제로 '소작농, 철거민과 해고 노동자'(김인국 신부) 등을 다뤘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습관 길들이기'를 특집으로, '습관의 심리학'(하재별 신부) '깨어서 기도하라'(이현주)를 실었다. '노성두와 함께하는 특별한 미술감상'과 '정길연의 일상 스케치' '영적 돌봄' '내가 만난 작은 예수' 등 새 시리즈 연재를 시작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지난해 로마,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을 순례한 김수창 신부의 성지순례기를 실었다. 가정과 성경에서는 정은가족치료연구소장(정은)이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바라는 대로 해주기를 조언했다.(성서와함께/3000원) ▨야곱의 우물=금장태 교수의 '다산읽기-하늘과 백성과 나라를 사랑한 열린지성'을 다뤘다.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에선 '친교와 나눔'(송봉모 신부)을 싣고, 민남현 수녀의 새 칼럼 '성경에 담긴 하느님 생각' 연재를 시작했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신앙의 프런티어에선 탤런트 길용우씨를 만나봤다. 특집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에선 △신자도 진짜와 가짜가 있나요?(변진흥) △미리 체험한 통일을 통해 꿈꾸는 남북 평화(김혁민) 등을 실었다. (사단법인 미션/3000원) 이지혜 기자 cpbc2010.01.05
![[한국교회 사제열전] 7. 한기근 신부(1867~1939)](//cpbc.co.kr/CMS/newspaper/2009/09/rc/308838_1.0_titleImage_1.jpg)
[한국교회 사제열전] 7. 한기근 신부(1867~1939)'경향잡지' 통한 문서선교의 개척자한기근 신부 "소중한 복음 성경을 번역할새, 책 볼자로 하여금 읽을 때에 서슴치도 아니하고, 뜻도 해박(該博)히 알아듣기 위하여, 말마디를 각각 나누고, 글자의 음이 길고 짧은 것을 분별하고, 숨쉬는데 점을 두었으니…." 한기근(바오로) 신부가 1910년 「사사성경」(四史聖經) 발간 무렵에 한글 띄어쓰기와 부호사용 원칙을 밝혀둔 내용이다. 한 신부는 말마디를 나누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 신 자여…"를 "하늘에계 신우리아 비신자여…"로 붙여 읽기가 쉽다며 띄어쓰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문에 통달한 자도 그러하거늘 언문에 서툰자와 아이들이 어찌 바로 읽겠느냐?"고 말했다. 당시 출판물들은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별다른 보조부호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한 신부는 천주교회가 박해를 이겨내고 기반을 닦아가는 과정에서 문서선교의 새 장을 연 인물이다. 유길준과 주시경 같은 개화기 한글학자들이 「대한문전」과 「국어문전음학」 등을 통해 어문규정을 정리한 게 1905~1908년인 점에 미뤄볼 때, 한 신부는 적어도 천주교 내에서 선각자요 계몽운동가로 불릴만하다. 「사사성경」은 4복음서를 처음 우리말로 완역한 신약성경인데, 개정과 중간(重刊)을 거듭하면서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올 때까지 무려 60년간 널리 이용됐다. 지금도 구교우 집안에서 가보(家寶)처럼 전해 내려오는 「요리강령」도 한 신부 번역으로 빛을 본 교리서다. 매 장마다 한편에 그림을 싣고 그 옆에 설명을 붙인 프랑스 교리서를 갖고 번역한 이 책은 출간 당시 호화판(?) 그림이 실려 있는데다 값도 싸서(68전)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정보에 어두운 시골 신부들은 그 교리서를 접하고 "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걸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교구청에 항의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한 신부는 1867년 경기도 양지 추계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3살 때 모친 방 바르바라를, 9살 때 부친 한 안드레아를 잃은 후 서울에 사는 백부 한영직(베드로)의 집에서 살았는데, 그때 세례를 받고 종현학당에서 공부하다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박해를 피해 양지로 숨어든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도 세례를 늦게 받은 이유는 병인박해로 교회가 와해된 상태라 사제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살 소년 한기근은 정규하 등 신학생으로 선발된 친구 3명과 사제의 꿈을 안고 말레이반도 페낭신학교로 향했다. 여행 경험이 없고, 외국어도 모르는 어린 신학생들이 뱃길을 이용해 페낭에 닿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정규하 신부 유학 회고기에 남아 있다. "(배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우리 방으로 가져오려니 하고 점심을 기다리나 무소식이라. 3일 동안을 기다리나 아무 동정이 없으니 두 아해들은 (배가 고프고 막막해서) 눈물을 흘리더라. 배 위층으로 간신히 올라가니 양인(洋人)이 지나감에 손짓으로 입을 가리키며 먹을 것을 애걸하매, 얼마 있다가 면보(식빵) 세 개와 홍주 두 병과 황유(버터) 두갑을 청인이 갖고 오더라. 그것을 먹으매 정신이 나더라. (홍콩 항구에서 소형선을 타고 상륙할 때) 청인을 불러 궤짝을 싣고 노를 저어 가나 당가(경리부) 신부 댁을 찾을 길이 난처하더니, 선인은 선가(배삯)를 주어야 가겠다며 중간에서 가지 아니하고, 두 시간이나 힐난(詰難)을 하나 결말이 나지 않으매, 선가는 10원이오 주머니에 있는 돈은 3원 뿐이라. 포구에 내리매, 영국 순사와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한 신부는 그토록 어렵사리 페낭신학교에 가서 공부했으나 도중에 토혈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그해(1884년) 귀국길에 올라 용산 예수성심학교에서 사제수업을 받고 1897년 사제품을 받았다. 국내 신학교 개교는 종교자유를 획득한 한불수호조약(1886년) 이후의 일이라 그 전에는 기후적응조차 쉽지 않은 페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 신부는 황해도 해주에서 잠깐 본당 사목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교리서와 성경 번역작업에서 드러났다. 한 신부는 한자와 라틴어 실력이 뛰어났다. 「사사성경」만 해도 마태오복음서를 손성재 신부 등 3명이 번역했으나 나머지 마르코ㆍ요한ㆍ루카 복음서는 한 신부 혼자서 했다. 한군자(韓君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조용한 성격에 학구파적 기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격이 온화하고 진중하며 침묵을 좋아했다. 남의 말이나 원망 같은 것은 일체 입밖에 내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는 농담이나 객담을 싫어했다. 어느 신부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밖에 드러나는 일은 없다. 70살이 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많은 수녀들의 고해와 고아들 고해, 매일미사를 맡아 해주었고, 틈만 나면 수녀원에 와서 국사 한문, 심지어 수학까지 힘닿는 대로 가르쳐주었다."(「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260쪽) 한 신부의 문서선교는 「경향잡지」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1914년부터 20년간 「경향잡지」를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복음을 전했다. 그의 생애 전부를 이 잡지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매달 2회 발행하는 잡지를 홀로 편집하고 발행하는 한편 성서출판소에서도 번역ㆍ교정ㆍ편찬을 도맡아 했다. 67살에 「경향잡지」를 그만뒀을 만큼 문서선교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그는 한 평생 글을 벗하고 살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글은 남긴 게 없다. 자신은 낮추고 오로지 하느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신자들 계몽을 위해 복음을 실어 나르는 일에만 몰두한 사제다. 그는 1939년 10월 18일 성모병원 병실에서 지상의 벗들에게 "성덕에 나아가기를 진심전력하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cpbc2009.09.08

청주교구 배티성지~진천성당신앙선조 혼 깃든 '한국의 카타콤바'최양업 신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충북 진천군 진천종합버스터미널.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배티순교성지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날렸다. 버스는 오전 9시 30분ㆍ낮 12시 10분ㆍ오후 2시 50분ㆍ오후 5시, 하루 네 대 뿐이다. 터미널에서 성지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청주교구가 지정한 3박 4일 도보성지순례 코스(배티~진천~괴산~연풍 84㎞) 중 하루 코스인 1ㆍ2구간, 배티성지~진천성당(16.7㎞)을 걸을 계획이다. 순례 안내책자를 챙겨들고 성지를 빠져나와 새로 조성된 옛 신학교 터로 향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사목 중심지 10분쯤 가다 103위 성인 계단을 오르니 십자가의 길에 둘러싸인 마당이 나온다.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재촉하는 도포 차림의 최양업 신부 동상이 그 끝에 서 있다. 동상 옆에 옛 신학교가 있다. 혹시나 해서 창호지 발린 문을 살짝 당겨보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성체 거양을 하고 있는 최 신부가 떡하니 앉아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가 비치돼 있는 참배기도문을 바치고 길을 나섰다. "저는 너무 약한 어깨에 힘에 겨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 제가 담당하는 조선 5도에는 매우 험준한 조선의 알프스 산맥이 도처에 있습니다. 저의 관할 신자들은 깎아지른 듯이 놓은 산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마다 조금씩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땀의 순교자' 최 신부가 1851년 10월 15일 절골에서 쓴 서한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 것은 성지에서 2~3㎞쯤 떨어진 옛 삼박골 교우촌을 향해 산비탈을 오르면서부터다. 도보순례에 나선 지 두 시간여 만에 도보가 등산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절골은 현 백곡면 용덕리로 추정된다. 윤의병 신부의 유명한 순교소설 「은화(隱花)」의 주무대가 된 이곳은 소설에 등장하는 이 진사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우촌이자 성 다블뤼 안 주교와 칼래 강 신부가 들러 성사를 주고 쉬던 곳이다. 옛 교우촌으로 향하는 소로에 접어들자 길가 외딴 집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가 요란스레 짖어댄다. 지도상에는 700m라고 쓰여 있는데, 오르막이라 그런지, 처음 가는 길이라 그런지 더 멀게 느껴진다. 중턱쯤 오르자 멀리 잘 가꿔놓은 묘소가 보여 한달음에 달려가니, 으리으리한 묘는 어느 문중의 일반 무덤이다. 그 뒤로 작은 십자가 두 개가 위아래로 서 있는 소박한 묘가 순교자의 것이다.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실제 인물 이 진사는 피신했지만 그의 아내와 딸은 현장에서 순교한다. 지금도 순교자 모녀는 이곳에 남아 옛 교우촌을 지키고 있다. 다시 길가로 나왔다. 백곡공소까지는 5~6㎞가 남았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에서 얼굴을 익힐 듯한 열기가 올라온다. 모처럼 비가 오지 않아 기분 좋게 나섰건만 30℃가 넘는 늦더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바지가 들러붙어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나을 성 싶다. 물을 살 곳도 없고, 그늘도, 화장실도, 안내 표지판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만 제 세상 만난 양 쌩쌩 달린다. 일부 구간에는 걸을만한 곳이 없어 차도로 걸어야 하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이 걸을 때는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사흘이나 나흘씩 기를 쓰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 봐야 고작 40명이나 50명쯤 되는 신자들을 만날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담당하는 그러한 공소 즉 교우촌이 자그마치 127개나 되고, 그러한 촌락에서 세례명을 가진 이들을 다 합하면 5936명이나 됩니다."(최양업 신부의 여덟 번째 서한 중) 16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길에는 인적이 드물다. 멀리 도로공사 중인 인부들이 보인다. 아마도 석 달 전 청주교구 청소년대회 참가자들이 이 길을 걸었을 때가 제일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순교자들의 본향, 영원한 안식처 이대로 가다가 일사병에 쓰러질 것 같을 때쯤 저 멀리 백곡공소가 보인다. 이 공소를 지키는 김영구(유스티노, 67) 선교사가 순례객을 반갑게 맞는다. 그는 항상 경당과 교육관 문을 열어놓고 순례객을 기다린다. 공소 앞에 순교자 박바르바라와 윤바르바라 묘가 있다. 올케와 시누이 사이였던 둘은 병인박해 때 함께 체포돼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했다. 본래 배티 뒷산 무명순교자 묘역에 안치돼 있던 것을 1977년 후손들이 선산으로 이장하려고 하자 공소 신자들이 "공소에 모셔두고 잘 돌보겠다"고 설득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선 귀국 후 12년 동안 5개 도를 9만 리 이상 걸으며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과로로 병을 얻어 선종한 최양업 신부를 생각하면 진천성당까지 남은 길도 걸어야 마땅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신자 승용차에 올라탔다. 박해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분명 배교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길가에서 차를 얻어 타려고 손을 흔드는 청년을 보니 남 일 같지 않다. 시내를 향해 15분 정도 굽이굽이 달리자 진천성당이 나왔다. 29위의 유명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여서일까. 성당 앞 거목만큼이나 뿌리 깊고 두터운 신앙이 깃들어 보이는 성당에 앉아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사제 시복시성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친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굳건한 믿음과 불타는 열정으로 구만 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방곡곡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데 온 정성을 바쳤나이다. 자비로우신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바치게 하소서."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10.09.28
![[사회사목/특별기고]북녘 식량난에도 쌀을 사료로 써도 되나](//cpbc.co.kr/CMS/newspaper/2010/07/rc/344942_1.0_titleImage_1.jpg)
[사회사목/특별기고]북녘 식량난에도 쌀을 사료로 써도 되나김훈일(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대북지원분과 대표, 청주교구 문의본당 주임) 신부 김훈일 신부 1990년대 중반, 북녘에선 극심한 식량난이 발생해 수백만 명 이상 주민들이 굶주려 죽었다고 한다. 비극적 식량난의 근본 원인은 북녘의 경제정책 실패에서 기인한다. 사회주의권 체제 변화로 주요 국가들과의 교역에 큰 문제가 생겼고, 그나마 부족한 국가 재원을 농업생산력 증대와 경공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중공업과 군수산업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제재가 북녘 경제와 식량 사정을 악화시켰다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는 부차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제기구들과 통일부는 식량만 100만t 이상(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지만)이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더군다나 현 정부 들어 전혀 식량지원에 나서지 않아 북녘 식량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북녘 식량난은 굶주림의 고통을 넘어 사회적 혼란도 초래해 주민들에게 이중 고통을 안기고 있다. 강력 범죄와 부정부패, 자살, 고아, 인신매매, 탈북자 증가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주민들 인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식량난 희생자들이 대부분 어르신들과 어린 자녀들이라는 사실이다. 북녘 주민들 마음에 부모와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통한의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러한 비극이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얼마 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2005년산 묵은 쌀 11만t을 사료용으로 우선 처분하는 방안을 조만간 최종 결론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앞으로 쌀 34만t을 사료로 팔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쌀 재고량이 너무 많아 수급 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북녘 주민들이 얼마나 굶어죽건 김정일 정권을 돕는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북녘 정권이 원망스러운 상황에서 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우리 정부는 북녘 정권과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유로 북녘 주민들의 생명을 방치하겠다는 입장이라고밖에 들리지 않는다. 결국 지원한 식량이 특권층과 군인들에게만 돌아간다거나,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뿐이라거나, 식량을 지원하면 김정일 권력을 강화시키고 지속시킨다거나, 우리 국민들도 굶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들이 이처럼 비인간적인 상황까지 몰고 왔다. 북녘 주민들은 김정일 정권을 선택해 북녘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북녘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하는 형제자매들이다. 우리는 김정일 정권과 북녘 형제자매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정권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량한 형제자매들을 아사 상태로 방치한다면, 그런 정책은 전쟁보다 나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 하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우리마저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쌀이 없어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 그 귀한 식량을 짐승에게 줄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랑과 정의에 어긋나는 정책이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성경 말씀(마태 25,35.37.40)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에서도 거듭 강조되고 있다. "모든 개인과 정부에 호소한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대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교부들 말씀을 상기해 각자 능력대로 자기 재화를 나누고, 특히 개인이나 국가 원조로 자조 자립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기 바란다."(69항) 전쟁보다 참혹한 것이 굶주림이다. 인간 생명과 직결된 식량을 가지고 남북문제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내 국가와 민족이 야만적 사회로 흘러가지 않도록 신앙인들 기도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설사 전쟁 상황이라도 평범한 북녘 주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하는 주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호소한다.오세택2010.07.27
![[영성의 길 수도의 길]-(21) 마리아의 종 수녀회](//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8792_1.0_titleImage_1.jpg)
[영성의 길 수도의 길]-(21) 마리아의 종 수녀회성모님 영성 따르며 일상을 비범하게 사는 삶 봉헌마리아의 종 수녀회 한국지부장 권옥주 수녀가 유치원 어린이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안나 자매님, 우리 수도회에 들어오면 식모살이를 해야 할지도 몰라요. 우리 수도회는 가난하거든요." 독일인 수녀의 말에 20대 후반 권옥주 안나는 주저하지 않고 수녀회 입회를 결심했다. 25년 전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현 서울대교구장)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마리아의 종 수녀회(총원장 마리아 가르멜라 조르다노 수녀)다. 수녀회는 올해 한국 진출 25주년을 맞았다. 한국 진출과 동시에 입회한 권옥주 수녀 역시 은경축을 맞았다. 그는 지금 한국지부장이다. 수녀회 본원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조용한 시골 산자락에 있다. 2004년 건물을 짓기 전까지 수녀들은 20여 년을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다. "조립식 수녀원에서 산 20여 년은 가난을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녀원을 지을 때 진 빚이 조금 남아 있지만 수녀들은 25주년을 맞아 나눔에 앞장서기로 했다. 권 수녀는 "25살이면 자립할 나이"라며 "이제부터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받은 사랑과 관심을 나눠야 할 때"라고 말했다. 수녀회는 2년 전부터 25주년을 준비해왔다. 2008년은 기억과 감사의 해로 정해 수도생활 쇄신을 고민했고, 2009년은 경축과 희망의 해로 정해 설립정신에 응답할 방법을 논의했다. 수녀회는 12일 오전 11시 수녀원 바로 옆 봉담성체성혈성당에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25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선교를 위한 바자를 연다. 바자 수익금은 2005년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수녀회 선교수녀들과 2008년 수단에 파견된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미사에서는 수녀들이 함께 필사한 성경과 장기ㆍ각막ㆍ조직기증 서약서와 설립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에 대해 쓴 책 「미루나무 그늘아래」(박광호 씀/썬앤북스/1만5000원)를 봉헌할 계획이다. 수녀회 영성은 수녀회 이름처럼 성모 마리아 영성을 본받는 것이 첫 번째다. 형제적 공동체 생활 속에서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며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목표다. 고통받는 이들을 모두 예수님으로 바라보기에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도 항상 환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수녀회 모토와 "일상을 비범하게 살라"는 설립자 바칠리에리 신부 가르침대로 수녀들은 늘 주어진 상황에 기쁘게 응답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기쁘게 살아야 이웃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함께 신앙을 완성해가는 여정에서 서로에게 지지자, 협조자, 동반자랍니다." 수녀들의 기쁨에 찬 삶을 보아온 이웃들은 2004년 자발적으로 '페르디난도 가족 모임'을 만들어 수도회와 함께하고 있다. 페르디난도 가족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수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묵상한다. 권 수녀는 "한국 땅에서 마리아의 종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면서도 "각자에게 맞는 행복은 다 다르고, 수도자는 일꾼이 아니라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수도자가 되고 안 되고 또는 어떤 수도회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으로 기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한국인 수녀는 모두 20명.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이탈리아, 독일, 브라질, 체코, 인도네시아 6개국에 200명 가족을 둔 국제수도회다. 본당 사도직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수녀회는 현재 청주, 수원, 인천, 서울 등 4개 교구 5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원에서는 '마리아의 종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편, 수원교구 이주사목센터 '수원 엠마우스'에도 수녀 한 명을 파견했다. 수녀들에게는 아름다운 꿈이 있다.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고갈돼 있는 사람들을 돕는 영성센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땅도, 돈도 없다. 빚도 내년까지 갚아야 한다. "하느님이 원하시면 원하시는 곳에 언제든 지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일상을 비범하게 살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만 하기에 수녀들은 걱정이 없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수도회 영성과 역사 마리아의 종 수도회는 1233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교회 사상 유일무이하게 일곱 성인에 의해 설립된 수도회다. 다양한 신분의 성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 초대교회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 마리아의 종 대(大)수도회는 남자수도회, 관상수녀회, 활동수녀회, 재속회, 평신도 단체로 구성돼 있다. 같은 영성을 살지만 설립자의 설립 목적에 따라 수녀회를 구분하기 위해 설립지명을 붙여 부르는데, 가족수녀회만 20개가 넘는다. 한국에 들어온 수녀회는 갈레아짜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다. 갈레아짜의 마리아의 종 수녀회는 1852년 갈레아짜의 성 마리아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칠리에리 신부<사진>에 의해 설립됐다. 1883년 마리아의 종 대수도회의 한 수도가족으로, 1947년에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황청 설립 수녀회로 승인을 얻었다. 한국에는 1985년 9월 진출했다. 바칠리에리 신부는 1893년 7월 13일 영면, 1995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으며 1999년 10월 복자품에 올랐다. 김민경 기자 *성소모임매달 둘째 주일 오후 2시 수원 본원문의 : 031-227-8821 cpbc2010.08.31
요한 묵시록 해설 신약성경의 유일한 '묵시문학' 작품인 「요한 묵시록」으로 하느님 말씀과 함께한 3년 6개월간 긴 여정이 마무리 단계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이 은총의 샘인 하느님 말씀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더욱 성장하셨기를 기원합니다. 또 이 연재를 통해 부족한 저에게도 하느님 말씀을 다시 공부할 기회를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1)「요한 묵시록」 저자와 저술 동기 및 연대 「요한 묵시록」은 「요한 복음서」와 「요한 1ㆍ2ㆍ3서」 저자와 같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요한계 문헌'으로 분류돼 왔습니다. 하지만 문체와 신학사상이 서로 너무 다르기에 오늘날에는 '요한 공동체'에 소속돼 있던 또 다른 저자의 작품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묵시문학' 작품들이 다 그런 것처럼 「요한 묵시록」 역시 박해를 받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작성되었기에, 이 묵시록은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시기인 91~96년에 쓴 것이 분명합니다. (2)「요한 묵시록」 구조와 내용 「요한 묵시록」은 아래와 같이 여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8: 머리말과 인사. 2) 1,9~3,22: 요한의 소명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간. 3) 4,1~11,19: 첫째 환시들. 가) 4,1~8,5: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 나) 8,6~11,19: 일곱 봉인들과 일곱 나팔들. 4) 12,1~22,5: 둘째 환시들. 가) 12,1~15,8: 천상의 음모와 투쟁. 나) 16,1~20,15: 일곱 대접과 사탄의 패망과 어린양의 승리. 5) 21,1~22,5: 새 예루살렘. 6) 22,6~21: 맺음말. (3)묵시록에 나오는 상징의 의미 「요한 묵시록」에는 많은 상징들이 나오는데, 그 의미를 알아야 「요한 묵시록」의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표> (4) 핵심 메시지 박해시기를 맞이해 신앙심을 잃을 위험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요한 묵시록」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묵시 22,13)이심을 증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희망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내라고 격려합니다. "마라나타 -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직접적으로 박해받는 일은 드물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적 그리스도'의 수단은 더욱 강력하고 은밀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무시하는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과제일주의와 편의주의, 불의를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 권위주의와 은폐주의 등이 판을 칠 때,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그러한 현상들을 정당화할 때, 우리는 분연히 "마라나타!"하고 기도하며 그런 현상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 현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게 만드는 커다란 유혹들이기 때문입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 담당)임영선201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