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ㆍ베드로ㆍ요한ㆍ유다 서간 해설믿음에만 머물지 말고 실천하여라 봄 날씨가 완연한 이 시기에 우리는 7통의 서간들, 「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ㆍ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ㆍ둘째ㆍ셋째 서간」, 「유다 서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서간들은 수신인으로 특정인이 아닌 보편 교회를 지목(예컨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야고 1,1))하고 있기에 흔히 '가톨릭 서간'이라 지칭됩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이 서간들을 각각 편의상 「야고보서」, 「베드로 1ㆍ2서」, 「요한 1ㆍ2ㆍ3서」, 「유다서」라 부르겠습니다. (1)「야고보 서간」 저자와 저술 연대 제대로 된 인사말이나 끝인사 없이 짧은 격언들로 구성된 권고문들로 이뤄진 「야고보서」 저자는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야고 1,1)입니다. 문제는 '야고보'가 누구인지 분명치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리스어에 능통한 후대 어느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빌려 사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서간 저자가 바오로 사상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세기말에 작성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2)「야고보 서간」 주제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4)라며 신자들이 믿음의 실천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한 「야고보서」는 크게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완전하게 됨', 곧 '의롭게 됨' 2)'지혜', 3)'가난한 이들의 신심' 4)'믿음과 실천'.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야고보서」 저자는 믿음보다는 실천을 강조하기에 율법이 아닌 믿음에 의한 '의롭게 됨'을 가르친 바오로 사도를 반대하고 있다고 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다만 그는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팔아 아무런 실천도 없이 말로만 믿음이 있다고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설에게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수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 13,1). (3)「베드로의 첫째ㆍ둘째 서간」 저자와 저술 연대 「베드로 1ㆍ2서」는 오랫동안 교회의 전통에서 베드로 사도 작품들로 인정을 받아 왔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두 서간의 어휘나 신학이 서로 다르기에 저자들이 각기 다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1서」는 바오로 사도 가르침에 정통한 로마 교회의 어느 신자에 의해 70~90년경에 작성됐고, 「베드로 2서」는 신약성경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후대인 125년경에 작성됐다고 보면 됩니다. (4)「베드로의 첫째ㆍ둘째 서간」 구조와 내용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8~9)라는 인상적인 말씀으로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격려하는 「베드로 1서」와 종말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제시하려 한 「베드로 2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 1베드 1,1~2,3: 은총으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 2) 1베드 2,4~10: 교회의 기초와 사명. 3) 1베드 2,11~5,14: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본분과 깨어 있음에 대한 가르침. 4) 2베드 1,1~11: 그리스도인의 소명. 5) 2베드 1,12~2,22: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마라. 6) 2베드 3,1~18: 재림에 대한 희망과 축복. (5)「요한의 첫째ㆍ둘째ㆍ셋째 서간」 저자와 저술 연대 및 장소 언어와 문체는 물론 신학사상에서도 일치하는 「요한 1서」, 「요한 2서」와 「요한 3서」 저자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이 서간들 저자가 「요한복음서」 저자와 동일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같은 공동체 출신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서간들은 100년경에 '에페소'에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6)「요한의 첫째ㆍ둘째ㆍ셋째 서간」 주요 신학 「요한 1ㆍ2ㆍ3서」는 모두 주님의 강생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영의 식별'을 강조합니다. 아무 영이나 믿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 '영'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1요한 4,2~3). (7)「유다 서간」 저자와 신학 「유다서」 서두에 저자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유다 1절)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 서간이 빼어난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저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그릇된 가르침으로 혼란에 빠뜨린 거짓 교사들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유다'의 이름을 빌려 쓴 후대 어느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다서」의 거짓 교사들 역시 다른 서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님 강생을 부인한 영지주의자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자는 공동체 신자들이 흔들리지 말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유다 20절) 나아가라고 가르칩니다.임영선2010.04.14
코린토ㆍ갈라티아서 해설그리스도 복음 토착화 가르쳐코린토ㆍ갈라티아서 해설「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다음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바오로 서간'들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성실하게 해결하려는 열성적 사목자로서 사도 바오로의 모습이 잘 엿보이는 서간들로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구절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이 서간들을 각각 편의상 「코린토 1서」와 「코린토 2서」, 「갈라티아서」라 부르겠습니다. (1)「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ㆍ둘째 서간」의 저자와 저술 연대 및 장소 「코린토 1서」와 「코린토 2서」 저자는 사도 바오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 남단 번창한 항구도시인 '코린토'에 2년 정도(50~52년) 머물면서 활발한 신앙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코린토' 도시는 도덕적으로 해이했기에 코린토 신자들에게도 심각한 교의적 문제가 생기곤 했는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를 떠나 55~57년 사이에 '에페소'와 '마케도니아'에서 여러 통의 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 서간들이 신약성경 안에서는 2통의 서간으로 재편집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2)「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구조와 내용 그리스도교 복음이 이방 세계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잘 제시해주고 있는 「코린토 1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1,1~6,20: 코린토 교회의 분열과 그릇된 표양. 2) 7,1~15,58: 코린토 신자들이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한 답변. 3) 16,1~24: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격려 및 마지막 인사. (3)「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의 구조와 내용 특별히 사도직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코린토 2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1,1~7,16: 사도 바오로와 코린토 공동체의 화해. 2) 8,1~9,15: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3) 10,1~13,13: 사도 바오로의 자기 변호. (4)「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저자와 저술 연대 및 장소 2차 선교 여행(50~52년)을 감행하던 사도 바오로는 육신의 병이 계기가 되어'갈라티아'에 교회 공동체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죄를 짓는 문제를 신앙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유다계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유다교 율법을 준수할 것을 권고하면서 '갈라티아' 교회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에 57년경 '에페소' 내지 '마케도니아'에 머물던 사도 바오로는 이 서간을 작성했습니다. (5)「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구조와 내용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라며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영적 해방을 인상 깊게 전해주고 있기에 '자유 대헌장'이란 별칭을 지닌 「갈라티아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1,1~10: 서문. 가) 1,1~5: 축원의 인사말. 나) 1,6~10: 서간이 작성된 동기. 2) 1,11~2,21: 사도 바오로의 개인적 변호. 3) 3,1~5,12: 교리적 논증. 가) 3,1~5: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받은 성령. 나) 3,6~29: 아브라함의 본보기를 통한 성서적 논증. 다) 4,1~11: 종살이에서 자유로. 라) 4,12~20: 사도 바오로가 갈라티아 신자들의 우정에 호소하다. 마) 4,21~31: 아브라함의 두 아들들을 통한 성서적 논증. 바) 5,1~12: 결론: 그리스도인의 자유. 4) 5,13~6,10: 윤리적 권고. 5) 6,11~18: 마지막 권고와 축복.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 담당)임영선2010.01.19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인천교구(상) -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cpbc.co.kr/CMS/newspaper/2010/06/rc/340056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인천교구(상) -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 설정 50돌 맞아 교구민 영성 심화ㆍ제2의 부흥 꿈꾼다 '새 성령강림-5050' 교구 설정 50주년(2011년)을 영적쇄신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인천교구의 다짐을 나타내는 표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성령강림으로 변화돼 복음 선포에 나섰듯이, 모든 교구민들이 성령의 새바람으로 영성을 심화하고 선교 열정을 다시금 불태워 제2의 부흥을 이루자는 취지다. 인천교구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일 년 앞으로 다가온 교구설정 50주년 기념사업에 본격 나섰기 때문이다. 교구는 △신앙쇄신 복음화 △사랑ㆍ생명나눔 △영성피정교육센터 건립 및 순교터 개발 △기념행사(신앙문화운동) 등 4대 사업을 선포하고 각 분야별로 하나하나 구체화시켜 가고 있다.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5일 답동주교좌 성당 마당에서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의 해 개막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제1사업 : 신앙쇄신 복음화 운동 △하느님을 '더' 참되게 섬기기 △매일 15분 '더' 기도하기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더' 충실하기 △이웃사랑ㆍ이웃선교에 '더' 힘쓰기 △모든 일에 '더' 감사하고 기쁘게 생활하기.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가 교구민들의 영적쇄신을 위해 제시한 '더' 신앙실천운동의 5가지 실천사항이다. 언뜻 간단하면서도 조금은 어려워 보이지만 마음을 다해 실천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지근해졌던 신앙이 다시 뜨겁게 불타오른다. 커다란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 교구는 반세기 동안 하느님 은총과 사랑으로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이에 안주하지 않고 50주년을 계기로 더 성장하고 발전해 100주년을 향한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면 신자 개개인의 내적쇄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실천돼야 할 과제입니다." 50주년 추진위원회 본부장 김용환(교구 사무처장) 신부는 "신자 개개인이 교회 안팎의 도전에 신앙을 지키고 더욱 굳건히 하려면 자신의 신앙상태를 자각하고, 조금씩이라도 더 신앙을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 교구장 사목교서에서도 영적성장을 위해 개인 성화 및 은사계발에 힘써 매일 성경 읽기, 특강 및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등 보다 구체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교구민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교구는 또 지난 5일 답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의 해(2010.6.6~2011.11.27) 개막미사에서 '복음 선포 5050' 출범식을 갖고, 50주년을 맞아 신자 50만 명 복음화 달성을 목표로 하는 5050 선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2009년 12월말) 교구 신자 수는 43만7600여 명. 한 해 평균 1만1000여 명의 새 신자를 배출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쉽지만은 않은 목표지만, 최근 교세 성장률이 한국교회 전체 성장률을 훨씬 웃돌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보고 1인 1명 선교, 외짝교우 인도 등 선교 열의를 높여가고 있다.▨ 제2사업 : 사랑ㆍ생명나눔운동 김용환 신부는 "교구 설정 50주년은 결코 교구민들만의 잔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교구가 50주년의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형제적 사랑과 나눔으로 사회복음화에 앞장서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 사랑ㆍ생명나눔운동이다. 교구는 특히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기증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생명 나눔'에 적극 동참하고자 장기기증과 조혈모세포 기증, 헌혈 캠페인 등 생명 나눔을 전담할 상설기구로 '생명사랑운동본부'를 지난 5월 8일 출범시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생명사랑운동본부는 또 낙태ㆍ사형반대, 자살예방 캠페인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생명수호 실천에 앞장서는 한편 가난하고 소외된 지구촌 이웃들을 돕기 위한 해외원조사업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아울러 교구는 저소득층에게 원하는 생필품을 무료로 공급하는 슈퍼마켓 형태의 나눔 매장인 '희망을 여는 가게'를 증설할 계획이다. 희망을 여는 가게는 기탁 받은 생필품과 식료품을 일반 슈퍼마켓처럼 진열해 두고 어려운 이웃들이 장을 보듯 필요한 물품을 직접 골라 가져갈 수 있게 한 상설 나눔 매장이다. 교구장 최기산 주교도 매달 사비로 후원금을 낼 만큼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두 3곳에 희망을 여는 가게를 직영하고 있는 교구는 보다 많은 저소득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매장 수를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또 빈곤과 가정해체 등으로 위기상황에 직면한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해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위기청소년 자립지원센터와 행려인 무료급식소 등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제3사업 : 영성피정교육센터 건립, 순교터 개발 교구가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기념사업은 영성교육피정센터 건립이다. 교구는 신자 수 43만7621명, 10.15%의 복음화율을 자랑하는, 한국 교회에서 네 번째로 신자 수가 많은 큰 교구로 성장했으나 교구민의 재교육과 영성강화를 위한 마땅한 교육ㆍ피정시설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교구 또는 지구 단위 교육이나 피정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고, MEㆍ꾸르실료ㆍ성서모임을 비롯한 신심단체의 경우 부득이 때마다 타 교구 시설을 빌려야 했기에 영성피정교육센터 건립은 숙원사업이나 다름없다. 김 신부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건립하는데 대한 우려도 있으나 교구민들 염원을 모으는데 은총의 시기인 50주년만큼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며 기도와 모금 동참을 호소했다. 인천교구는 타 교구에 비해 알려진 순교터나 성지로 개발된 곳이 많지 않다. 이에 병인박해 때 신자 9명이 처형된 '제물진두'(현 해안성당 부근) 순교터를 개발하고, 이승훈 묘역(인천 남동구 장수동)을 기도동산으로 단장해 순례지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제4사업 : 기념행사(신앙문화운동) 교구는 또 교구민들이 더욱 능동적으로 50주년 기념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묵주기도 1억5000만 단 봉헌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교구주보인 '바다의 별 성모상' 순례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교구 관할 내 잘 알려지지 않은 순교터를 찾기 위한 학술 심포지엄을 여는 한편 교구 50년사를 발간하고, 50주년 역사전시관을 설치할 계획이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숫자로 보는 인천교구 ▲4-전국 16개 교구 중 신자 수 기준 4위 ▲10.15%-복음화율 ▲9 : 113-1961년 6월 6일 교구 설정 당시 및 현재 본당 수 ▲35-공소 수 ▲260명-교구소속 사제 수(교구 설정 당시에는 교구소속 사제가 한 명도 없었고, 메리놀회 18명, 중국인 신부 1명이 사목함) ▲2만3169명 : 43만7621명-교구 설정 당시 및 현재 신자 수 ▲1099.16㎢-관할 지역 면적(인천광역시, 부천ㆍ김포시 전 지역, 시흥ㆍ안산시 일부) cpbc2010.06.15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2010년 2월호)](//cpbc.co.kr/CMS/newspaper/2010/02/rc/324935_1.0_titleImage_1.jpg)
[출판] 이달의 교계잡지(2010년 2월호) ▨가톨릭 디다케=이달의 교리실 교안공작소에선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다뤘다. 인물 에스프레소에선 성녀 아가타를, 디다케 상담소에서는 '행복의 길에 담고 새겨야 할 것들'을 실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공소를 찾아서 코너에서는 진안 어은동공소를 찾아갔다. 목자와 만나다에서는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만났다. 시시콜콜 신 신부에서는 주일에 장례미사를 드릴 수 있는지 알아봤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교회와 역사='한국 교회의 인물상' 100회를 맞아 지금까지 소개된 인물들을 돌아보고 과제를 모색했다. 올해부터 새로 연재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를 다뤘다.(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3000원) ▨그물=포콜라레 운동 엠마우스 마리아 보체 회장과 잔 카를로 공동회장의 한국 방문을 스케치했다. 가톨릭 언론인들과 마련한 가지회견 질의응답을 실었다. 별들이 보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숨은 날개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를 다뤘다.(마리아 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문제로 푸는 성경 맛 들이기에선 '의로운 사람, 욥'(남덕희 신부)을 다뤘다. 말을 건네오는 성화에서는 카라바죠의 '이집트 피난 중에 휴식을 취하시는 성가족'을 감상할 수 있다.(세나뚜스협의회/1800원) ▨말씀지기=아침뜨락에선 서현승 신부의 '듣는다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영성 에세이에서는 단식의 초점과 세속적 단식, 거짓된 단식과 참된 단식 분별하는 법을 다뤘다. 전례력에 따른 말씀과 묵상을 연중 제4주간부터 사순 제2주간까지 정리했다.(가톨릭출판사/한글ㆍ영문판 각 권 900원) ▨사목정보=연풍 성지 은티 마을에서 농촌사목을 하는 연제식 신부를 만났다. '본당사목에서의 매체 활용'을 주제로 한 특집에선 교회 사목에서의 매체 활용, 무엇이 문제일까?(김용은 수녀), 본당사목에서 어떤 매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최양호 신부)에 대해 다뤘다. 공동선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다뤘다.(미래사목연구소/1만 원) ▨생활성서='가톨릭 사회교리란?'을 주제로 한 특집호.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한 일문일답(심현주)을 시작으로 세상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변승식 신부) 등을 실었다. 꿈이 있는 세상에선 선교사 고 이태석 신부와 수단 청년들을, 더불어 사는 세상에선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재단을 다뤘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고향, 새 희망의 원천을 주제로 '고향은 제 영혼의 길잡이입니다'(인요한) '살고 있어도 떠나왔어도 그리운 곳'(고은지) '고향, 흙과 생명을 지닌 이름'(지요하) 등을 실었다. 복음의 그때 그 자리에선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을 찾아가봤다. (성서와함께/3000원) ▨소년=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특집호로 동시 '나무는 죽어서도 향기를 남기고'(이지연)와 추모글 '김수환 추기경 할아버지를 기억하며'(박준용 신부) 등을 실었다. 작은 사건을 지혜롭게 풀어 가는 습관에선 '엄마,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를 다뤘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우물=생명의 샘에선 송봉모 신부의 '초대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은'을 실었다. 세상 속 신앙 읽기에서는 '외계인이 있다면 하느님을 믿을까요?'를 다뤘다. 표지 이야기에서는 구불구불한 장수마을 골목길에 단상을 담았다.(바오로딸/2800원) ▨참 소중한 당신=밭에 묻힌 보물에서는 '행복 선언'에서 뽑은 진짜배기 행복(차동엽 신부)을, 신앙의 프런티어에선 지난달 한국을 찾은 포콜라레 운동 엠마우스 회장을 다뤘다. 빛을 전한 아름다운 연인들에선 하느님의 종 한신아(아가타)ㆍ김연이(율리아나)ㆍ정복혜(칸디다) 등을 실었다.(사단법인 미션/3000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10.02.02

부활의 빛, 이웃과 지역사회에 나누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포항지역 본당사목구 설립 60돌 행사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대리구장 전재천 신부)는 포항지역 첫 본당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부활의 빛을 이웃과 지역사회에 나누는 공동체로 새롭게 도약할 것을 다짐했다. 3일 포항실내체육관을 메운 5000여 명의 포항지역 18개(울릉도 2개 본당, 군종교구 충무대본당 포함) 본당 신자들은 조환길(교구장 직무대행) 주교와 포항지역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부활성야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은 포항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신앙 선조들의 희생과 봉사를 기억하며, 부활의 빛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포항지역 공동체와 동고동락한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들과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해 있는 장애인들도 함께해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는 3일 포항지역 본당사목구 60돌 기념행사를 열고, 부활성야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포항지역 청년 축하 공연 '일어나 가자'(마태 26,46)를 주제로 마련된 포항지역 본당사목구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는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성대히 막을 올렸다. 포항지역 청년 축하공연과 지역 유지들의 축사, 공로상 시상 및 축하영상 상영 차례로 진행됐다.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 종문 스님은 축사에서 "(우리는) 어느 지역보다 서로 존중하며 지역 평화를 위해 종교간 우애를 다져왔다"며 "포항지역 20만 불자들과 함께 60주년을 축하드린다"고 전했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천주교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인류에게 사랑을 줬듯이, 포항시민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줬다"면서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시상식에는 무료급식소 '요안나의 집'을 기증한 신순희(요안나, 대해본당)씨 등 포항지역 복음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23명과 예수성심시녀회에 감사패 및 공로상을 전달했다. 또 울릉도 복음화에 헌신한 고 현재룡(비오)씨에게도 감사패가 전달돼 의미를 더했다. 이어 상영된 축하영상은 기쁨의 열기를 이어갔다. 죽도본당을 시작으로 18개의 각 본당 전경사진과 설립연도, 주보성인이 적힌 화면이 뜰 때마다 본당 신자들 환호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또 초창기 공소 회장과 초대 신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공소에 성사를 주러 온 신부 이야기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풀어놨다. 포항 가톨릭 공동체 일원인 포항성모병원 간호사와 의사들과 사회복지시설 들꽃마을에 있는 장애인 등 모두 축하 인사를 화면으로 전했다. 직접 수확한 특산물 봉헌 3부 부활성야미사에선 부활초를 들고 입장하는 사제단 행렬로 장관을 이뤘다. 포항지역 15개 본당 어린이 복사단과 성가대도 한 몸이 돼 부활의 기쁨을 노래했다. 성찬 전례에서는 각 본당 신자들이 직접 수확한 특산물을 봉헌해 눈길을 끌었다. 대게와 굴문어, 전복, 사과를 비롯해 충무대본당에선 군인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만든 초코파이를 봉헌에 웃음을 자아냈다. 생명나눔운동의 일환으로 1453명의 장기기증 신청서도 봉헌했다. 조환길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60주년 주제를 '일어나 가자'로 택했듯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하는 때"라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부활의 삶을 살자"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60년 동안 열심히 전교했고, 신자들이 많이 불어났는데도 포항ㆍ경주를 관할하는 4대리구는 5개 대리구 중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떨어진다"며 그 이유를 포항제철을 비롯한 공업단지가 형성되면서 급속도로 늘어난 유동 인구로 꼽았다. 이 지역적 특성은 신자간 결속력을 강하게 하지만 복음화율을 높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다. 이원기(아브라함, 65, 죽도본당 총회장) 4대리구 총회장은 "사순시기에 본당마다 고리기도와 단식, 성경 필사, '포항의 복음화 역사와 신앙생활'이란 주제의 신앙 특강 등을 통해 이 시간을 준비해왔다"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는 포항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4대리구장 전재천 신부는 환영사에서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포항 가톨릭 공동체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그동안 묵묵히 기도하고 노력해주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60년 동안 15개 본당 탄생 포항 지역에 첫 복음 씨앗이 뿌려진 건 1950년 4월 15일 현재 경주 성동본당의 포항공소가 포항본당(현 죽도본당)으로 승격되면서다. 김경우 초대신부를 시작으로, 1978년 3월 포항의 두 번째 본당 덕수본당을 분가시켰다. 죽도본당과 대해본당(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성당) 관할공소는 구룡포본당으로, 구룡포본당 관할공소는 다시 오천본당으로 승격시켰다. 포항본당으로 시작한 포항 공동체는 60년 동안 지난해 8월에 설립된 기계본당까지 모두 15개 본당을 탄생시켰다. 포항에 복음 씨앗이 처음 뿌려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로 추정한다. 유치수 회장이 문경에서 세례를 받고 오천 문충리에 살면서 신자들이 늘어났고, 1930년경 경주본당 문충공소가 설립됐다. 1945년 9월 경주본당의 정행만 신부가 7~8명의 신자들을 모아 포항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포항공소가 생겨났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0.04.06

"맑은 영혼 구하러 간 것뿐입니다"서울 교정사목위 40돌, 40년 동안 교도소 봉사로 공로패 받은 민성동씨 "제가 특별히 무언가를 했다기 보다 시간이 흘러간 겁니다. '왜 그 놈들 먹여주고 퍼주느냐'고들 비난하면, 저는 영혼을 구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는 순간에, 내가 아닌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형수들을 봅니다. 악한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게 구원인 거죠. 사형수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줘야지요." 5일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40주년 기념미사에서 40년 동안 교도소에서 봉사한 공로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명의의 공로패를 받은 민성동(모니카, 70)씨는 "먼저 하늘나라에 간 30여 명의 사형수가 교도소에서 남기고 간 사랑 나눔을 잊을 수 없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관련기사 24면 백영민 기자 # 사형수들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그날까지 "내일 사형이 집행됩니다." 1997년 12월 29일. 대구교도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부산에 살고 있던 민씨는 덜컥 내려앉은 가슴을 안고 그날 밤 대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눈발까지 휘날렸다. 민씨는 집행장에 들어갈 수 없어 봉사자들과 교도소 내 천주교 방에 모여 밤새 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는가?" 사형수 스테파노씨가 말했다. "없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손엔 묵주가 들려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수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떨리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수녀님, 제 죽음이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하느님 아버지를 뵈옵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제 삶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니 기도 많이 해주세요." 스테파노씨는 수의(囚衣)를 벗었지만 수의(壽衣)를 입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민씨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어머니, 늘 먼 곳에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는 내용이었다.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을 모른 채 쓴 스테파노의 편지였다. # 수용자들과 함께한 불혹의 세월 민씨는 1970년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전신인 교도소 후원회가 발족하면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고, 아이 셋을 둔 주부였다. 당시 서울 고등법원장으로 사형수들을 돌본 고 김홍섭 판사의 부인을 알고 지낸 그는 자연스럽게 교도소에 드나들게 됐다. 처음에는 서울소년원에서 종교교육 봉사를 했다. 은행원인 남편의 이직으로 지방으로 집을 옮기면서도 그는 수용자들을 잊지 않았다. 대전에서는 교도소 후원회를 조직했고, 대구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을 보살폈다. 그는 사형수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빵과 떡, 커피, 불고기 등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들고 갔다. 커피가 귀했던 시절, 추운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은 커피 한 잔을 보약처럼 마셔댔다. 하지만 춥고 비바람치는 날은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내가 지금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죠. 이게 미친 짓이 아닌가…." 저녁식사로 맛있는 갈비라도 요리하는 날엔, 아이들이 많이 먹지 않도록 양해를 구한 그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교도소에서는 이런 거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타일렀다. 초등학생이었던 막내 아들이 어머니 직업란에 '교도관'이라고 썼을 정도로, 수용자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깊었다. 그는 교도소를 다니며 가족들에게 피곤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수용자들을 돌보며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25시간을 살았다. 그래선지 가족들은 그를 더 잘 이해해줬다. 갈 곳 없는 출소자를 집에 재운 날에도 가족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두렵고 불안해 부엌에 있는 식칼들을 이불 속에 숨기고 뜬 눈으로 잤지만…. 출소자가 교통사고를 내 치료비까지 대주는 일도 있었지만 그에겐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감옥에 갇힌 형제들 곁에서 그냥 있어준 것 뿐입니다. 주님 앞에 나도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니,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더라구요." 그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서울구치소에 간다. 그는 4시간 동안 사형수들과 함께 복음나누기를 하고 준비해 간 음식을 나눠 먹는다. 사형수들은 한 주간 어떻게 복음말씀을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은총이에요. 계속 봉사할 수 있게 건강을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 여기서 상을 받으면 훗날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을텐데, 어쩌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부엌 식탁 유리에 끼워진 성경구절이 보였다.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말라"(잠언 3,27). 그의 40년 세월을 지켜준 좌우명 같은 구절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0.04.06
![[성경 속 동식물] 87- 유독식물 가라지](//cpbc.co.kr/CMS/newspaper/2008/03/rc/243156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 87- 유독식물 가라지끝내 불에 태워질 가라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가라지는 팔레스티나, 레바논, 시리아, 지중해 연안 등이 원산지로 보리나 밀밭에 흔히 섞여 나는 잡초다. 흔히 독보리로 해석되는 화본과 식물이다. 가라지는 밀을 많이 재배하는 서구에서는 독밀, 중국에서는 피라고 했다. 가라지는 화본과식물 중에서 유일한 유독식물이다. 목초에 섞이면 가축이 먹고 중독을 일으키는 일이 있으므로, 독보리라고 한다. 가라지의 열매를 먹으면 구토, 설사, 현기증 등을 일으키는 일이 있다. 또한 독보리라는 이름이 이삭이 패어 익기 이전 생육기간에는 그 생김새가 밀이나 보리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60~100cm까지 왕성하게 자라는 1년초인 가라지는 생육기간에는 밀과 생김이 흡사해 분간하기 어렵다. 또한 밀과 동일한 계절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추수 때 곡식이 섞이기 쉽다. 밀은 줄기 끝에 열매가 네 줄씩 또는 두 줄씩 빽빽하게 열매를 맺고 보리는 여섯 줄씩 빽빽히 열매를 맺는다. 그에 비해 가라지는 6~12cm 길이로 몇 알씩 지그재그로 납작하게 열매가 달린다. 그래서 일명 '지네보리'라고도 부른다. 가라지는 다른 잡초와는 달리, 열매가 맺어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으므로, 추수 때에 식별하기 쉽다. 그러나 일단 밀과 함께 추수하면, 밀알보다는 잘지만 키질로도 가려내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중동지역에서는 지금도 아녀자들이 일일이 가라지를 뽑아서 제거하고 있다. 가라지의 씨는 이집트의 4000년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을만큼 오래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밭이나 길의 풀숲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팔레스티나의 농민 사이에는 밀의 종자가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가라지로 변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비가 많은 해에는 밀이 자라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가라지가 왕성하게 자라서 눈에 많이 띄게 되므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시는 대목이 있다(마태 13,24-30. 36-43). 종말 때 이뤄질 심판을 가라지의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다. 종들은 원수들이 밀밭에 뿌린 가라지를 뽑아내야 할지 집주인에게 묻는다. 그러나 집주인은 당장은 뽑지 말고 추수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 이 말씀의 배경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로마의 탄압에 시달리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죄인들을 제거해야만 흠없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죄인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많은 유다인들의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시작했고, 마지막 심판 때에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한 인간의 판단은 완전치 못하고 오로지 추수하시는 분인 하느님의 판단만이 완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cpbc2008.03.19
![[출판]광주가톨릭대 교수 정태현 신부 「성서 입문」(하)](//cpbc.co.kr/CMS/newspaper/2009/01/rc/278870_1.0_titleImage_1.jpg)
[출판]광주가톨릭대 교수 정태현 신부 「성서 입문」(하) 성경은 사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량도 만만찮을뿐더러 그 장르나 성격도 다양해 제대로 공부하자면,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읽어 내려갈 수도 없다. 이는 하느님의 첫 백성 이스라엘 역사와 고대 근동이라는 시ㆍ공간적 배경과 문화, 사고방식 등이 오늘날과는 확연히 다르고 그 간극이 넓고 깊기 때문이다. 정태현(광주가톨릭대 성서학 교수, 한님성서연구소장) 신부는 이를 위해 지난 2000년 「성서입문」(상권)을 집필했다. 그리고 8년만인 최근 '성경의 형성 과정과 각 권의 개요'를 다룬 「성서 입문」(하권)을 최근 탈고해 세상에 선보였다. 상권이 성경을 둘러싼 배경과 성조시대부터 예수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몰두했다면, 하권은 성경 한권 한권에 담긴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특히 하권은 성경 본문이 어떻게 형성됐고, 믿음의 공동체는 어떤 과정을 거쳐 그것을 정경으로 확정했는지를 알아보고, 무엇보다도 그 안에 담긴 하느님 뜻은 무엇인지 살핀다. 이를 위해 성경의 기초 단위인 성경의 문학 양식을 대표적인 것만 골라 소개한 뒤 구약성경의 본문을 히브리어 성경 분류방식에 따라 율법과 예언서, 성문서 등 세 부분으로, 신약성경 본문도 네 복음서 및 사도행전과 서간, 요한 묵시록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수집 단계에서 편집 단계까지 서술한다. 그러고 나서 500여 쪽에 걸쳐 정경으로 확정된 신ㆍ구약 낱권을 기초부터 신학사상에 이르기까지 성경 순서대로 꼼꼼히 서술했다. 물론 현대 성서학계 흐름을 수용하고 유다이즘과 교부들 가르침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은이의 간결하고 수려한 글 솜씨 덕에 어려운 주제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핵심을 콕콕 찌르는 일목요연한 설명 덕분에 오랜 묵은 의문이 술술 풀린다. 말씀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에게 「성서 입문」 상ㆍ하권은 더없이 편안하고 믿음직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입문서는 그야말로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다"(히브 4,12)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며, 동시에 "하느님의 가르침을 너무나 사랑하여 온종일 그것을 묵상할"(시편 119,97)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끌어준다.(한님성서연구소/2만5000원) 오세택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1.06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제주교구(하) - 소공동체 활성화 모범 노형본당](//cpbc.co.kr/CMS/newspaper/2010/06/rc/339197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제주교구(하) - 소공동체 활성화 모범 노형본당 본당 모든 일 소공동체 중심 신자들 공감대 얻어소공동체에 매진하고 있는 제주교구 내에서도 모범으로 꼽히는 노형본당(주임 남승택 신부)을 찾았다. 본당은 사목평의회에 소공동체협의회를 신설하고 본당 사목구조를 소공동체 중심으로 바꿔 소공동체에 '올인'해 왔다. 남승택 주임신부는 신자들 부담을 덜기 위해 소공동체 모임을 한 달에 1번만 가져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소공동체에 맛을 들인 신자들은 스스로 매주 모임을 꾸려가고 있을 정도로 활성화 됐다. 노형본당에서 소공동체 활성화 비결을 살펴본다. 이와함께 제주교구를 방문하면 꼭 둘러볼 교구 성지 3곳을 소개한다. 대정성지와 황사평성지, 용수성지는 제주교구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장소다. 박수정 기자 crystal@pbc.co.kr 노형본당 백록1구역 신자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하고 있다. 신자들이 소공동체 모임에 맛들이면서 매주 스스로 모임을 갖는 소공동체가 늘어나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말씀을 나누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면서 피상적 교우 관계를 넘어 서로를 위해 줄 수 있는 이웃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종일 직장일로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소공동체에 참여하지만 소공동체가 끝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처음엔 성경 구절을 가지고 평신도끼리 앉아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말씀을 나누라는 것인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원들과 나누는 하느님 말씀에 용기와 위로를 받고 있다." 노형본당이 펴낸 소공동체 백서에는 소공동체 '신비'를 체험한 신자들의 구구절절한 체험담이 가득하다. 남승택 주임신부는 2007년 본당이 제주 서부지구 소공동체 시범본당으로 선정된 뒤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노력과 과정을 백서에 담았다.여섯 차례 진행한 교육 큰 도움 교구에서도 소공동체 모범으로 꼽히는 노형본당 소공동체 활성화 비결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운영과 함께 강제와 부담없는 모임에 있다. 본당은 소공동체 조직을 기존 11구역 35반에서 14구역 63반으로 세분화시켰다. 구역과 반 명칭을 지을 때도 신자 간 소득 수준이 드러나는 아파트 이름을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또 소공동체 모임이 있는 곳이면 본당 사제와 수녀, 사목회 총회장, 소공동체 협의회장 등이 함께 참여해 신자들과 소통했다. 그리고 이들이 먼저 속 이야기를 꺼내고 나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사목평의회에 소공동체협의회를 신설해 본당 사목구조를 소공동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본당 사목구조를 개편한 것도 소공동체 활성화에 큰 힘이 됐다. 또 소공동체 사목에 관한 전 신자 교육을 6차례에 걸쳐 진행해 신자들에게 소공동체 사목 필요성을 이해시키며 신자들과 소공동체 사목 비전을 공유했다. 소공동체협의회 박광록(안토니오) 회장은 "본당 모든 일이 소공동체 중심으로 돌아가니 신자들 공감대를 얻는 것이 수월했다"면서 "특히 6차례에 걸쳐 진행한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소공동체 미사를 신설했고 구역 미사도 시작했다. 특히 소공동체 미사 강론은 소공동체 단원들 사례발표 시간으로 정해 소공동체에서 있었던 일, 복음나누기를 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발표하도록 했다.적응할 수 있는 기간 충분히 마련 남승택 신부는 소공동체 모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반장들에게 "반원들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참석 인원에 연연하지 말라"며 부담을 덜어줬다. 또 모임도 한 달에 1번 정도만 모여도 충분하다고 했다. 고유경(수산나, 월랑1구역) 반장은 "신부님께서 강제하지 않으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모임을 할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매주 모임을 갖는 구역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반장은 이어 "처음엔 서로 마음을 터놓고 말씀을 나누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공동체에 신뢰와 사랑이 형성된다"며 "소공동체에서 나눈 말씀이 일상생활에 큰 힘이 되는 것을 아는 신자들은 스스로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남 신부는 "소공동체 사목은 1~2년 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신자들이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마련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교구 성지 -대정성지(정난주 마리아 묘) 제주교구가 1994년 제주선교 100주년 사업의 하나로 정난주 마리아 묘를 새롭게 단장하고 성역화한 곳이다. 정난주 마리아는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증거한 순교성인은 아니지만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삶을 산 '백색'순교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정난주 마리아는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이자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이다. 그는 남편을 잃고 제주로 유배당한다. 제주 관청의 노비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겸손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관비를 관리하는 양반에게 신임을 얻었다. 그는 양반집 아들을 돌보며 신앙을 이어갔고 또 전파했다. 그는 '서울할망'으로 불리며 마을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다 선종했다.(주소 :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 연락처 : 064-794-2074, 모슬포본당) -황사평성지(무명 순교자 묘) 1901년 일어난 제주교난(濟州敎亂)으로 희생된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제주교난은 신축교의 난, 이재수의 난, 제주민란으로도 불린다. 당시 제주에서는 프랑스 선교사를 비롯한 가톨릭 신자들과 도민들 사이에 충돌이 잦았다. 전통적으로 무속신앙이 강한 섬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외국 선교사들은 무조건적으로 무속신앙을 배척했다. 게다가 나라에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민심이 사나워진 때에 세금을 징수하던 이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여서 도민들은 자연스레 가톨릭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됐다. 결국 도민들은 대대적 봉기를 일으켰고 가톨릭 신자 700여 명이 사망했다. 황사평성지에는 이 때 수습한 시신 28구가 안치돼 있고 1984년 천주교 공원묘지로 조성됐다.(제주시 화북2동 / 064-751-0145, 제주교구청) -용수성지 용수리 포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로 귀국하던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한 곳이다. 그리고 이곳 해안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라파엘호를 복구해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교구는 이를 기념해 용수리 해안에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성당을 세웠고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66 / 064-772-1252,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cpbc2010.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