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성경의 모든 경전 보존[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가톨릭교회 구약 성경 정경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 정경은 히브리어 성경 39권과 헬라어로 쓰여전 제2 경전 7권을 포함해 총 46권이다. 사진은 베들레헴에 있는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으로 성인은 이곳에서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를 번역했다. 70인역 성경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사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대규모 유다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2~1세기 무렵 쓰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임금(기원전 285~246년)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우면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 6명씩 선발된 원로 72명을 초청해 예루살렘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와서 토라(오경)를 헬라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거룩한 책인 토라가 헬라어로 옮겨짐에 따라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책들의 번역을 위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 토라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책들도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에서 기원후 2세기 초까지 점차 번역되었습니다. 이 히브리어 성경 헬라어 번역본을 「70인역 성경」, 라틴말로 「Septuaginta」(셉투아진타)라 하고, LXX로 표기합니다. 「70인역 성경」에는 유다교 히브리어 성경인 타낙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책들이 더 들어 있습니다. 이 책들을 그리스도교는 제1 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과 구분해 ‘제2 경전’이라고 합니다.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입니다. 이 7권의 제2 경전은 모두 히브리어가 아닌 헬라어로 쓰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구약 성경 정경 그리스도교는 이스라엘 성경의 모든 경전을 보존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교회 탄생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옛 계약을 주님께서 완성하신 새로운 계약 앞에 두었습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의 유다교 성경을 자신의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보존한 것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주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선포하고 이해시켜주는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성경의 사라지지 않을 한 부분이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책들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옛 계약은 결코 철회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의 경륜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구약 성경은 하느님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하느님에 관한 숭고한 가르침과 인생에 관한 건전한 지식과 기도의 놀라운 보물을 담고 있으며, 그 안에 구원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을 참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존중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1-123항) 초기와 고대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는 유다교 성경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헬라어 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할 것이냐에 관해 주교들 간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따르는 이들의 수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382년 로마 주교회의에서 제2 경전을 포함한 총 46권의 「70인역 성경」이 구약 성경의 정경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유다교보다 더 많은 수의 경전을 구약 성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인 「70인역 성경」은 3세기부터 라틴어 번역됩니다. 예로니모 성인(†420)은 구약 성경의 경전을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옮겼고, 고대 라틴어 역본 성경을 교정해 ‘불가타’(Vulgata)라 불리는 표준 라틴어 성경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한편,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오직 성경’을 주창한 개신교는 히브리어로 쓰인 유다교 타낙 성경만을 구약 성경 정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제2 경전을 외경(外經)으로 여겨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구약 성경은 39권입니다. 교회가 갈라지기 전 「70인역 성경」을 구약 성경 정경으로 함께 인정해오던 동방 정교회는 1672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히브리어 성경 39권과 토빗기, 유딧기, 집회서, 지혜서를 더해 43권을 구약 성경 정경으로 결정했습니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로 쓰인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을 정경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므나쎄의 기도와 제3ㆍ제4 에즈라기는 정경이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 정경은 모두 46권입니다.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 순서와 분류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의 순서와 분류는 「70인역 성경」을 따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70인역 성경」 구조에 따라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분류합니다. 오경은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순으로 배열돼 있습니다. 역사서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ㆍ하권, 열왕기 상ㆍ하권, 역대기 상ㆍ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서와 지혜서는 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로 구성돼 있습니다. 예언서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애가, 바룩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 순으로 배열돼 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2.12.14

주교 25년 이끈 말씀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의정부교구장 은퇴 이기헌 주교 “더욱 성장하는 교구 되길” 주교 25년 이끈 말씀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 “돌아보니 참으로 감사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끝까지 돌봐주시고 함께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교구민과 함께해온 14년에 세월을 뒤로하고 제2대 의정부교구장 자리에서 은퇴한 이기헌 주교는 주교로 25년, 사제로서 49년의 삶을 반추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주교는 “주교수품 전 들어간 피정에서 처음 접한 성경 구절이 ‘너와 함께 있어 주며,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여호 1,5-6)였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이 말씀이 지금껏 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주교로서 첫 시작은 군종교구장이었다. 이 주교는 군종교구장으로 지낸 10여 년의 세월을 “그야말로 눈부시게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이라크·동티모르·레바논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이 주교는 “청년 사목의 큰 축을 담당하는 군종교구는 한국 교회의 미래”라고 말했다. 2010년 제2대 의정부교구장에 임명된 이 주교는 “전임 교구장 이한택 주교님에게서 ‘우리 교구 신자들은 신앙에 열심하고, 사제들도 신자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사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교구장 일을 시작했었다”면서 “교구 설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모두가 열심히 살아준 덕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주교는 2015년 새로운 10주년에 대한 사목 서한을 발표하면서 △평신도 지도자 양성 △소공동체와 사회사목 연계 △노인사목 △사목연구소 기능 강화 등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현재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타교구의 모범이 되고 있다. 교구의 모든 사제와 면담했다는 이 주교는 “사목의 시작은 사제들이기에 사제단 일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요양원이 밀집된 경기 북부 지역 현실을 고려해 요양 전담 협력 신부를 파견하는 등 앞을 내다보고 과제를 수행했다. 평신도에게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이 주교는 “고향이 평양이기에 이주민과 난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며 “주님 성탄 대축일은 꼭 이주민과 함께 보냈고, 난민 가정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평양교구 신학생으로 입학한 이 주교는 최북단 교구장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줄곧 전해왔다. 이 주교는 “제가 사제품을 받을 즈음이면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내년이면 사제수품 50주년이 된다”면서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은퇴 후에도 민족 화해를 위한 기도가 제 삶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장 보람됐던 순간도 “교우들과 함께 분단의 현장에서 기도하고 역사의 아픔을 되새겼던 때“라고 꼽았다. 그러면서도 이 주교는 “의정부교구가 민족 화해와 정의 평화 문제 등 현안에는 앞장서고 있지만, 영적 생활 증진 면에선 다소 부족함을 느낀다”며 “제3대 교구장 손희송 주교님이 기도와 성경 읽기 등 기본에 충실함을 강조하는 만큼, 앞으로 더 성장하는 의정부교구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주교는 지난해까지 교구 내 30곳 넘는 본당을 다니며 신자들과 함께 성체조배를 했다. 교구민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 주교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선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 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성경 읽기와 성체조배로 기도생활에 맛 들이고, 나아가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를 만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주교는 4월 29일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서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교구민이 함께한 가운데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장으로서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4.04.30
![[사도직 현장에서] 「찬미받으소서」가 길을 비추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8/27/aBa1724746938274.jpg)
[사도직 현장에서] 「찬미받으소서」가 길을 비추다신성근 신부(청주교구, 산림교육전문가·숲 해설가) 젊은 시절, 어느 날 우연히 들꽃과 눈이 마주쳤다. 작은 꽃인데 따로인 듯하면서도 모여 있어 소담스러웠다. 그저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다. 그때부터 정원을 ‘가꾸고 돌보는 일’(가드닝 : gardening)은 시작됐다. 본당을 이동하면 먼저 하는 일이 야생화 심을 궁리였다. 인터넷 환경이 좋을 때가 아니었기에, 하나하나 식물도감을 찾아가며 익혔다. 인건비를 아끼고자 소나무 전지하는 방법도 어깨 너머 배웠다. 어설프게 전지한 탓에 애꿎은 나무도 여러 그루 고사시켰다. 자연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런데 어느 날 빛이 비쳤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을 발표하셨다.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환경백서’다. 읽고 또 읽었다. “성경 구절은 우리가 세상이라는 정원을 ‘일구고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창세 2,15 참조)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67항)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 교육은 환경 보호에 직접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주는 다양한 행동을 고무할 수 있습니다.”(211항) 이에 자연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일들을 신자들에게 강조했다. 가는 본당마다 분리배출 공간을 마련하고, 음식은 먹을 만큼만 하라고 권했다. 일회용품도 모두 치웠다. 교우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갈수록 익숙해지며 실천하였다. 더불어 성당 주변의 나무와 가까운 숲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제 37년간의 일선 사목을 내려놓고, 회칙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법을 찾았다. 하느님께서 “자연을 돌보는 일은, 더불어 사는 삶과 친교의 능력을 포함하는 생활 양식의 일부”(228항)가 되도록 숲으로 안내하셨다. 바로 산림교육전문가 곧 숲 해설가의 길이다. 신성근 신부(청주교구, 산림교육전문가·숲 해설가)cpbc2024.08.27

피에르 모방 신부, 서양 선교사로서 조선에 첫발을 딛다[한국 교회 그때 그 순간 40선] 14. 파리외방전교회 모방 신부 조선 입국 피에르 모방 신부 초상화 브뤼기에르 주교 뒤를 따라 조선으로 향해 조선 선교사로 파견된 최초의 사제는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였다. 그렇다면 서양인 선교사로 처음 조선에 들어온 이는 누구일까? 임진왜란(1592~1598) 때 스페인 출신 예수회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들어온 사실이 있으나, 그는 군종 사제의 역할을 맡아 일본인 군인을 위해 미사와 성사를 베풀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다. 따라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가장 처음 조선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에 이어 조선을 향한 여정을 이어간 모방(Maubant) 신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선 교우들이 1835년 11월 ‘주교님을 모시러 국경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마침내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들어갈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서로 알아보는 표시로 만신(萬信, ‘전적으로 믿는다’)이라는 두 글자를 택했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의 갑작스러운 선종으로 이 약속은 지켜질 수 없었다. 주교와 함께 떠났던 파발꾼들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 소식 대신 선종 소식을 전했다. “…가슴을 도려내는 슬픔을 안고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별세를 알려드립니다. 주교님은 달단의 프랑스 라자로회 신부들의 신학교를 1835년 10월 7일에 떠나 조선으로 향하였고, 그달 19일에는 도중에 어떤 교우 집에 이르러 몸을 쉬며 남경 주교님의 편지를 기다려 요동으로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20일 저녁을 드신 다음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모방 신부가 어떻게 하려는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만 그가 조선을 향하여 떠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당신의 죽음을 예언하여 우리에게 보내신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나는 외지인 달단에서 죽을 것입니다. 천주의 성의(聖意)가 이루어지시기를!’ …우리는 지금 주교님이 천국에서 당신이 맡으셨던 포교지를 위하여 천주께 전구하시리라는 것을 굳이 바라 마지 않습니다.”(중국 산서(山西 )대목구 알퐁소 드 도나타 보좌주교의 편지) 이 소식을 들은 모방 신부는 마가자(馬架子)의 펠리구 교우촌에 도착하여 브뤼기에르 주교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길로 브뤼기에르 주교의 뒤를 따라 조선을 향해 떠났다. 그는 한양에 도착하여 어떻게 조선에 들어왔는지 전하고 있다. 「주교요지」. 초기 한국 교회 주역 중 하나인 정약종이 저술한 교리서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말로 지은 최초의 한글 교리서라고 할 수 있다. 정약종이 1786년에 입교해 1801년에 순교하였으므로 저작 연도는 1786~1801년 사이임을 알 수 있다. 한국 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오른쪽). 1864년 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Berneux) 주교에 의해 처음 목판 인쇄로 간행된 이 책은 동명의 한문본을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천주교 근본 교리를 문답식으로 풀이했다. 「성교요리문답」이 어느 시대에 도입됐는지, 언제 한글로 번역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1838년 입국한 제2대 조선대목구장인 앵베르(Imbert) 주교가 당시 중국에 널리 보급된 「성교요리문답」을 갖고 들어와 전교에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교요리문답」은 1934년 「천주교요리문답」이 나오기까지 70년간 한국 교회 유일한 교리서였다. 국경 세관원 검문 피하려 수구문으로 입국 “…세관의 관리들이 보통 어느 길손에게나 하는 검사와 질문을 받는 위험을 당하지 않으려고 저희들은 이 읍을 둘러싼 성(城)에 만들어 놓은 수문(水門)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인도자 중 한 사람이 벌써 수문을 빠져나가 탄착거리 앞에 갔을 즈음에 세관의 개 한 마리가 우리가 구멍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는 모두가 허사로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세관원들이 와서 우리가 몰래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질문을 늘어놓을 것이고, 틀림없이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아낼 것이다. 천주의 성의가 이루어지이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그렇게 되기를 허락하지 않으시어, 저희들은 계속하여 읍내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소금에 절인 무와 맹물로 지은 쌀밥으로 초라한 요기를 하고 나서 그 좁은 방에 6명이 그럭저럭 누워 날이 샐 때까지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제 발은 여러 군데가 부르텄습니다만, 이런 고생쯤으로는 선교사의 걸음이 멈추어지지는 않습니다. …갑사 주교님이 주신 돈으로 2년 전 교우들이 사 놓은 집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거기서 유 신부와 20명가량의 교우를 만났습니다.” 서양 선교사로 첫발을 내딛는 모방 신부의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 수구문(水口門)으로 빠져나가려다가 개가 짖어대는 바람에 위험에 처할 뻔하였다. 초라한 식사에 추운 겨울 부르튼 발을 움직여 한양에 도착하였다. 모방 신부는 서울 정하상(바오로)의 집에 머물면서 조선말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받고자 하는 신자들의 열성과 청원으로, 한문을 아는 신자들은 글로 써서 성사를 주고, 한문을 모르는 이는 통역까지 두고 성사를 베풀었다. 부활 예식을 거행하면서, 십자가도 부활초도 머리 위로 들어 올릴 수 없다고 얘기하였다. 조선 집에서는 도저히 그럴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방 신부는 부활을 맞은 후 경기도와 충청도까지 전교활동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이미 정착된 교우촌의 기도방식을 채택하고, 회장들을 임명하여 주일과 축일 모임을 이어가게 하였다. (왼쪽부터) 「성경직해광익」과 「성경광익」, 「성경직해」. 「성경직해광익」은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합쳐 편찬한 필사본이다. 소년 최양업·최방제·김대건 뽑아 유학 준비 “부활절 후에 모방 신부는 처음에는 서울에서, 그 다음에는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포교활동을 계속하였는데 16 내지 17개 교우촌을 방문하였다. 12월(양력)까지는 어른 213명에게 성세(세례성사)를 주고, 600명 이상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 그는 할 수 있는 곳에 회장들을 세워 주일과 축일에 신자들을 모으게 하였다. 이 모임에서는 공동으로 기도를 드리고, 교리문답과 복음 성경과 성인전기 등을 몇 대목 읽고, 그런 다음 대개는 마을에서 가장 능력 있고 학식 있는 교우인 회장이 낭독한 대목을 해석하였다.” 모방 신부는 교우촌을 다니면서 그동안 목자 없이 헤매고 있던 양들을 돌보았는데, 이미 여러 교우촌에서 체계적으로 하고 있던 기도와 독서를 보고 놀라워하였다. 한글로 번역된 교리서와 복음해설서를 주일 집회 때 이용하여 공부하고 낭독하고 있었다. 이미 한글로 번역되어 있던 교리서는 정약종이 저술한 「주교요지」라고 불리는 한글 교리서였고, 또한 중국의 문답 교리서인 「성교요리」를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복음해설서와 묵상서인 「성경직해광익」이라는 한글 복음성경을 채택하여 집회 때 신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모방 신부는 또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해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소년을 차례로 뽑아 한양에서 라틴어 공부를 시키며 유학 보낼 준비를 했다. 1년 후 파리외방전교회 샤스탕(Chastan) 신부가 조선에 왔고, 다시 1년 후에 앵베르(Imbert) 주교까지 입국하면서 조선 교회는 이제 3인의 파리외방 선교사 시대를 맞이했다. <가톨릭평화신문-한국교회사연구소 공동기획> cpbc2024.04.03

말씀의 소리[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21) OSV “당신께서 저의 소리를 들어 주셨습니다.”(요나 2,3) 세상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세상 창조의 시작도 실은 거룩한 ‘소리’인 말씀이셨습니다. “빛이 생겨라.”(창세 1,3) 그래서 요한 복음 사가는 한 처음에 ‘말씀’인 소리가 계셨다는 말로 긴 복음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요한 1,1 참조) 그리고 이어지는 창조의 엄청난 역사는 모두 말씀인 ‘소리’로 이루어집니다. 아기의 새 생명이 세상에 탄생할 때 큰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창조의 신비를 많이 닮았습니다. 아기는 눈을 감고 세상에 태어났어도 온갖 소리에 민감합니다. 심지어 엄마 뱃속에서도 소리를 듣기에 태교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기가 눈을 뜨고 들리는 소리의 근원을 알기 위해 연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때문에 두 귀를 가진 인간의 시작은 ‘듣는 것으로부터’라는 작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는 들리는 소리에서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익숙한 소리를 기억하게 됩니다. 나아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가장 익숙한 엄마의 소리를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를 가장 먼저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 역시 거룩한 소리로 가득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말씀의 소리를 듣고,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길을 떠납니다. 모세 역시 거룩한 부르심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명을 시작합니다. 이렇듯 성경의 내용은 거룩한 소리(말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고통과 번민의 강이었던 광야 생활이 끝나갈 무렵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 있느냐?”(신명 4,7) 이처럼 우리가 소리쳐 부를 때, 우리의 가엾은 소리를 들어 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잊지 말자고 그토록 강조하고 상기시키는 하느님 백성의 가장 중요한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입니다. 그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하느님의 거룩한 소리,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 옛날 시편의 시인은 거룩한 소리의 말씀을 이처럼 아름답게 풀이해 놓은 것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네.”(시편 19,2-5) 구원의 완성자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천사 가브리엘의 거룩한 인사 소리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지상 복음적 삶도 거룩한 소리인 말씀 선포로 시작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 그리고 구원사업을 완성하신 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마지막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성령강림에 의한 교회의 시작도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사도 2,2)였다고 루카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창조의 위대한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태양이 떠오를 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인사 소리, 아이들의 티 없는 웃음소리, 넘실대는 파도 소리, 장엄한 천둥과 벼락 소리, 시원한 소나기 소리. 이 모든 소리는 서로가 창조의 거룩한 울림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들의 소리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침묵하는 책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는 하느님 사랑의 말씀을 내게 건네시는 거룩한 소리인 것입니다. 그 거룩한 소리에 우리가 경청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는”(예레 20,9) 것을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뜨겁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자신이 느꼈던 삶의 체험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제 인생의 전부는 매일 매일이 주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응답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제가 슬피 울부짖거나 소리쳐 주님을 부를 때마다 주님은 늘 제 소리를 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cpbc2024.05.17
[부음] 서울대교구 임덕일 신부 선종 서울대교구 임덕일(아마또, 성사전담사제) 신부가 5일 선종했다. 향년 83세.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한 임 신부는 1970년 사제품을 받고 세종로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했다. 시흥동·동두천(현 의정부교구)본당 주임으로 사목했고 사당동본당 주임을 지내며 교구 꾸르실료 지도 신부를 겸임했다. 이어 오류동·청담동·노원·장안동·방배동본당 주임을 거쳐 2008년 꾸르실료 담당 사제를 지내다가 2015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임 신부의 반세기 넘는 사제생활은 ‘꾸르실료’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70년 부제 때 동기인 염수정 추기경, 최용록 신부와 꾸르실료 연수를 받은 뒤 사제가 된 후 평생 꾸르실료 차수 지도와 강의를 했으며, 은퇴 전 약 8년간 교구 꾸르실료 대표담당 사제를 역임하는 동안 꾸르실료 발전과 꾸르실리스타 배출에 힘썼다. 한국 꾸르실료 운동 50년 역사를 동반하며 초석을 다진 성직자로서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이었다. 2015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집필 사목’으로 후배 사제와 신자들에게 삶과 신앙의 가치를 전했다. 사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은 2020년 「사랑의 산책길」(2003)을 출간한 것을 비롯해 「성경에 비추어 본 채근담에 담긴 삶의 지혜」(2010), 「명심보감, 그리고 하느님이 이르기를」(2017), 「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2019), 「성사 안에 숨어 있는 사랑」(2020) 등 꾸준히 저서를 냈다. 책이 나올 때마다 교구 사제단 800여 명에게 선물했고, 모든 저작권과 판매 수익을 교구에 위임했다. 2022년에는 20여 년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캐럴 음반(CD) 750여 장을 가톨릭평화방송에 기증하기도 했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7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으며,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4.08.05

바벨탑-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창세 11,8)[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4)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년)의 ‘바벨탑’(The Tower of babel, 1563, 유화, 155x114,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제국에 머물지 않고, 탈출을 시도한다. 성경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고 전하지만, 정작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들어선 그들은 이집트의 삶을 그리워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성경이 표현하는 이집트의 삶은 역설적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다).”(탈출 2,23)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민수 11,5)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이집트의 삶과 광야의 여정은 결국 삶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제노역과 함께 언급되는 이집트의 부유한 삶은, 결국 부유함이 강제노역과 다를 바 없는 노예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라는 부유하고 거대한 제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부유함이라는 삶의 자리는 그 안에 머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주함을 선사한다. 신앙적인 의미로 볼 때, 정착하며 안주하는 삶은 성경이 제시하는 본연의 삶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 정착을 그리고 있는 여호수아기에 이어서 전해지는 판관기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순종의 죄를 고발한다. 사실 반복된 죄의 원인의 한편엔 정착한 삶에서 일어나는 안주하는 태도가 자리한다. 유독 성경은 머무르고 안주하는 삶에 비판적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데에 가장 방해가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머물러 안주하는 삶에 대한 성경의 예리한 비판은 창세기 이야기 초반 바벨탑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신아르 지방에서 한 벌판을 만나 거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בשׁי)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 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세 11,1-4) 바벨탑 사건은 동쪽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신아르 지방에 자리를 잡고 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안에서 성경은 정착의 삶을 표현하는 데에 전형적으로 쓰이는 “머물러 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야삽 ‘בשׁי’을 사용한다. 그런데 성경 본문은 이 동사의 주어를 명시하지 않는다. 즉, 자리를 잡고 사는 이들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머물러 살려고 하는 이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스스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기를, 계속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다짐한다. 그러나 이름 없이 등장한 이 정체도 알 수 없는 이들은 한순간에 성경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창세 11,8) 바벨탑 이야기는 머무르고 안주하려는 삶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성경은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도 연이어 소개한다. 11장 바벨탑 사건에 이어 족보 이야기와 함께 아브라함의 이야기(12장)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송하지만, 그 바탕엔 아브라함의 떠남이 자리한다. 그는 여정을 떠나는 이들의 조상이다. 히브리어 본문, 12장 첫 문장의 앞부분만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떠나라!” 아브라함은 움켜쥐고, 머무르고, 안주하며 자만 자족을 누리려는 이들, 그리하여 곧 사라질 이들 앞에서 영원히 기억될 떠남의 여정을 보여준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cpbc2023.12.04

아브라함 (5)[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9)막연함만 가득 안은 채, 약속의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의 행동 가운데 유독 두드러진 점은 그의 신뢰 가득한 모습이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창세 12,7-8) 아브라함은 먼 길을 떠나와 도착했던 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른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신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안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 존재로 응답하고자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 뒤이어 곧바로 시련이 닥친다. 그 땅에 기근이 든 것이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 살이 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창세 12,10) 이는 창세기가 지닌 매우 역동적인 본문 구성이다. 아브라함의 신뢰 가득한 신앙의 모습에 이어 작은 빈틈의 여유도 없이 고통이 들이닥친다. 사실, 이것이 우리 삶이 아니었던가? 하느님께 든든한 믿음을 고백한 직후, 곧바로 무너짐을 체험했던 일이 과연 우리에게 한두 번 일어났던가. 사실, 우리가 크게 넘어졌던 그 순간은 자신의 믿음이 제법 성숙해졌다고 여기며 신앙의 삶이란 그런대로 살만하다고 되뇌었던 바로 그때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수 없는 질문을 연이어 던질 수 있다. 아브라함이 서 있는 그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던가? 하느님께선 그 땅과 함께 그에게 축복과 번성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과연 아브라함은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잠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자. 세례 받을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찬 구원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신앙인으로 살면서 전보다 더 무거워진 삶의 시련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느님의 섭리에 내맡기면서 지녔던 깊은 믿음 뒤엔 언제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삶의 시련이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당최 믿음을 지니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아브라함의 체험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신앙의 경험들과 동일하다. 성경 본문은 아브라함의 마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하진 않지만, 그는 분명 갈등했으며 고뇌했다. 이렇듯 아브라함 이야기가 전하는 하느님의 섭리는 더욱더 내면 깊숙한 곳으로, 인간 삶의 알 수 없는 어려움과 한계성 안으로 들어오신다. 기근이라는 재해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갔다.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이에게 말한다.(창세 12,12-13) “여보,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인임을 잘 알고 있소.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자의 아내다’ 하면서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순명과 믿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정작 이집트에 간 아브라함은 비겁하고 소심하며 자신의 삶을 위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성서학자 폴 보샹(P. Beauchamp)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 즉 아버지의 딸로 소개하고 있다고 함은 아버지(고향)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심리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이는 자신이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심리적인 후회(후퇴)를 의미한다. 결국, 아브라함은 다른 남자들에게 사라이를 내어주고 파라오는 그녀를 자신의 궁으로 부른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이로 인하여 하느님의 계획 자체가 위험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라이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임을 전하지만(창세 11,30), 하느님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번성하게 됨을 약속하셨다. 즉, 사라이가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을 수 있음이 하느님에 의해 암묵적으로 승인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그녀를 누이라고 부르고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는 것은, 그가 후손 번성에 대한 하느님 약속을 믿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렇듯 하느님의 섭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브라함 안에서 복잡성을 띠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 이야기가 전하는 하느님 섭리의 진면목이다.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를 헤아릴 수 없다고 했던 이유는, 결국 그 섭리와 닿아 있는 인간의 삶을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조차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인생의 굽이마다 하느님의 섭리가 자리하고 있음은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 결국, 다시 믿음의 길이며 신뢰의 길이다.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돌려보내는 파라오 (Pharaoh gives Sarah back to Abraham-Isaac Isaacsz)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예루살렘 프란치스칸 성서대학에서 성서 고고학 디플롬(diploma superiore)을 이수했다. 춘천교구 묵호, 퇴계 본당 주임을 지냈으며, 현재 교구장 비서 및 교구 성경 사목 담당 소임을 맞고 있다. cpbc2024.04.15

구약 성경 구조를 토대로 27권 확정[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신약 성경 정경 성 다마소 교황은 382년 로마 공의회에서 4 복음서와 사도행전, 14 바오로 서간, 7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 등 27권을 신약 성경 정경으로 처음 확정했다. 사진은 서기 125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 복음서 필사본이다. 성경의 단일성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당신 자신 안에서 이루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계시가 완성되었기에 다른 계시는 더는 없습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를 통해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습니다.(「계시헌장」 7항 참조) 복음은 주님의 명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졌습니다. 하나는 ‘입으로 전승되었고’, 다른 하나는 ‘문서’로 기록되었습니다. 입으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습니다. 문서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6항) 우리는 이를 ‘성전’(聖傳)과 ‘성경’(聖經)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도 시대 때부터 성전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의 단일성을 천명해 왔습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단일성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과 그분 계시의 단일성에서 비롯된다.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을 준비하며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을 완성한다. 둘은 서로를 밝혀 주며, 둘 다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0항) 이에 교회는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당신 아드님의 인격 안에서 이루신 일들의 예형을 구약의 하느님 업적에서 식별해 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 초기 교회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를 선포하기 위해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을 통한 그리스도교 탄생,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러한 글을 처음으로 쓴 이가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서기 50년 말에서 51년 초 코린토에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시작으로 자신이 세운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1세기 후반에 이미 네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 성경의 경전 대부분이 헬라어로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 가운데 가장 늦게 집필된 경전인 「베드로의 둘째 서간」도 120년께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 곧 목록화는 2세기 중반부터 시작됩니다. 정경 작업은 「70인역 성경」 곧 구약 성경 구조를 토대로 분류되었습니다. 「70인 역 성경」은 △토라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약 성경은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요한 묵시록으로 구성됩니다. 신약 성경의 뿌리는 구약의 토라(율법)와 견줄 수 있는 예수님의 네 복음서입니다. 중간에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인간 역사 안에 실현되는 과정을 다룬 구약의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처럼 신약에선 사도행전과 서간들이 그 몫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계시하는 구약의 예언서처럼 신약의 묵시록은 종말에 그리스도 왕과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계시합니다. 교회는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어느 정도 신약 성경 정경 범위를 잡습니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사도의 13개 서한은 이때 정경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한과 가톨릭 서간(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ㆍ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ㆍ둘째ㆍ셋째 서간, 유다 서간)과 요한 묵시록은 지역 교회별로 다르게 평가되었습니다. 382년 로마 공의회에서 성 다마소 교황은 처음으로 현재의 신약 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선포했습니다. 네 복음서(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와 사도행전, 바오로의 14개 서간(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포함), 가톨릭 서간 7개, 요한 묵시록이 신약 성경 정경으로 확정됐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은 397년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재천명 됐고, 405년 성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이 재확인했습니다. 그리고 1439년부터 1443년까지 열린 피렌체 공의회에서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은 동방 교회와의 재일치를 시도하면서 신ㆍ구약 성경의 통일성과 성령의 영감, 그리고 정경에 관한 교리를 선포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의 분열로 또다시 신ㆍ구약 성경의 정경 논쟁이 일어나자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고 1546년 「정경에 관한 교령」을 선포합니다. 바오로 3세 교황은 이 교령에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신ㆍ구약 성경 정경을 신앙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봉독하는 라틴어 불가타본에 수록된 모든 신ㆍ구약 성경을 거룩한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파문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정교회는 1672년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와 똑같은 신약 성경 정경을 받아들여 공포했습니다. 또 개신교 역시 가톨릭교회와 똑같은 신약 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2.12.21

이스라엘 백성이여,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겨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2) 레위기·민수기·신명기 모세 오경의 레위기는 경신례 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응답을, 민수기는 백성과 하느님 사이의 어려운 관계를, 신명기는 계약의 재확인을 전해준다. 필리프 드 샹파뉴, ‘십계명과 모세’, 1648, 유화, 밀워키아트뮤지움, 미국. 구약 성경 앞부분 다섯 개의 두루마리인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모세 오경’(五經, Pentateuchos)이라 합니다. 구약 성경의 근간이 되는 책이지요. 이 책들을 히브리말로 ‘토라’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율법’으로 번역됩니다. 하지만 토라는 ‘법’이라는 의미보다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훨씬 많이 내포돼 있습니다. 모세 오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세 개의 율법 법전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탈출기의 ‘계약법전’(탈출 20,22─23,33)입니다. 계약법전은 하느님께서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둘째는 레위기의 ‘성결법전’(레위 17─26장)입니다. 성결은 거룩함에 중점을 둡니다. 성결법은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는 말로 요약됩니다. 셋째는 신명기의 ‘신명기 법전’(신명 12─26장)입니다. 신명기 법전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 충실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일러줍니다. 신명기 법전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모세 오경은 다섯 두루마리로 나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합된 하나의 전체로 제시됩니다.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서 야곱 집안이 이집트로 내려간다는 보도는 탈출기가 전하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체류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탈출기는 창세기 46장의 족보를 요약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레위기는 탈출기 20장에서 시작해 민수기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될 시나이 율법 계시를 이어줍니다. 민수기 11─25장 광야 체류 이야기들은 율법 선포(탈출 19장─민수 10장)로 중단된 탈출기 16─18장의 이야기 흐름을 되풀이합니다. 신명기는 민수기 마지막 장에서 백성이 도착한 모압 평원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번 호에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레위기는 첫 장 첫머리에 “주님께서 부르셨다”해 히브리말로 ‘와이크라’, 헬라어로 ‘레위티콘’(Λευτικν), 라틴어로 ‘레비티쿠스’(Leviticus)라고 합니다. 민수기는 “광야에”로 시작해 히브리말로 ‘버미드바르’, 헬라어로 ‘아리트모이’(Αριθμοι), 라틴어로 ‘누메리’(Numeri)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는 “말씀은 이러하다”로 시작해 히브리어로 ‘엘레 하드바림’, 헬라어로 ‘데우테로노미온(Δευτερονμιον), 라틴어로 ‘데우테로노미움’(Deuteronomium)이라고 불립니다. 이들 세 책들은 창세기와 탈출기에 이어 모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의 책(계약법전, 탈출 24,7 참조)이 선포되면서 시작한 하느님께 대한 경신례 규정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니 거룩한 예절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레위기는 사제 직분과 조직, 전례에 관한 규정들을 알려줍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실과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종교ㆍ윤리ㆍ전례 문제에 있어 실천해야 할 규정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제사에 대해(1─7장), 사제 임직 의식에 대해(8─10장), 정결과 부정에 관한 법(11─16장), 성결법(17─26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시나이 산에서 약속의 땅 접경인 모압 평원으로 옮겨 갈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체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이미 탈출기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다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게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의 불평은 단순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는 울부짖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불신하는 표지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탈출기에서와 달리 불평에 대해 처벌하십니다.(민수 13─14장 참조)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된 땅을 차지하기 직전 모압 평원에서 행해진 모세의 설교를 기록한 책입니다. 신명기의 핵심 내용은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입니다.(신명 6,4-5) 신명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12─26장의 ‘신명기 법전’입니다. 신명기 법전은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는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또 우상 숭배를 금합니다. 그리고 정결례와 십일조, 축제일 등에 관한 규정을 제시하고 고아와 과부, 이방인을 보호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저주가 내려진다고 합니다. 신명기는 율법은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대해 인간이 응답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모세 오경의 레위기는 경신례 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응답을, 민수기는 백성과 하느님 사이의 어려운 관계를, 신명기는 계약의 재확인을 전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7.05
서울대교구 이경상 신임 보좌 주교...신앙 선서하고 교황에게 충성 서약 이경상 주교가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대사관 경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주한 교황대사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정순택 대주교, 이경상 주교, 손희송 주교.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에 임명받은 본인 이경상 바오로는 가톨릭교회에 충성하고, 그 최고 목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을 이어받은 후계자요, 주교단의 으뜸인 교황에게 항상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경상 신임 보좌 주교는 2월 29일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대사관 경당에서 신앙선서를 하고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교회법 제380조에 따른 취임 전 사도좌(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이다. 이 주교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총대리 손희송 주교, 주한 교황대사 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회법에 따라 성경에 손을 얹고, 신앙 고백과 충성 맹세를 한 뒤 선서문에 서명했다. 앞서 이날 오전 이 주교는 가톨릭대 신학대학을 찾아 염수정 추기경을 예방했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셨다”며 이 주교를 반갑게 맞이한 뒤, 이 주교에게 ‘마음을 다해 복음을 선포하라’는 의미를 담아 성경을 선물했다. 이 주교는 “사목표어를 ‘예수 마음으로 살기’로 하려 한다”며 하느님 백성을 다스리는 직무에 충실할 것임을 다짐했다. 이어 이 주교는 대성당으로 이동해 성 김대건 신부 유해 앞에서 기도하며, 김대건 신부의 전구를 청했다. 이 주교의 서품식은 4월 11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4.03.04

하느님의 포로가 된 사형수[월간 꿈 CUM] 삶의 길 (12) OSV 신학생 때 ‘카리타스’(Caritas, 사랑)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 시간을 이용해 교도소에 가서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 말씀을 나누기도 하는 그런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형수가 있습니다. 세례명은 베드로입니다. 처음에 베드로 형제님이 천주교를 신앙으로 선택한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가자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답니다. 베드로 형제님은 사람을 살해한 흉악범죄자가 천당에 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와 달리 천주교에서는 천당도 지옥도 아닌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연옥’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님은 ‘잘 하면 연옥에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천주교를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형제님이 천주교를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성경’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담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베드로 형제님은 늘 작업시간에 담배꽁초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담뱃가루를 남몰래 모으기는 했지만 담배를 말아 피울 부드러운 종이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 형제님 말에 따르면, 제가 매일 읽어보라고 주었던 성경책은 기막힐 정도로 부드럽고 재질이 좋았다고 합니다. 담배를 말아 피우기엔 정말이지 안성맞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형제님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봅니다. 하느님 말씀이 적힌 성경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울 때마다 하느님께 죄송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님은 성경책을 찢기 전에 죄송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말씀(루카 15,11-32)을 읽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뒤늦게야 하느님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베드로 형제님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개심만 잔뜩 품고 있었던 그가 상냥해지고 친절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회개하면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와 자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님은 드디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OSV ‘주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와 용서,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천주교를 선택한 이유야 어떻든 베드로 형제님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은 뒤 베드로 형제님은 새로운 삶, 참으로 기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함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베드로 형제님이 말아 피운 것은 담뱃가루였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이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누가 과연 하느님 앞에서 전혀 죄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았노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그 누가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앞에서 전혀 죄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통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월간 꿈CUM 고문)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1.04

추수를 노래한 곡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17) 추석은 설날과 함께 한국인에게 중요한 명절이다. 추수한 후 특별한 감사 의식을 하는 것은 대다수 종교와 나라에서 보편적이다. 구약성경에도 초막절(Sukkot)이 3대 중요 휴일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미국 쪽에서 특히 유명한 청교도혁명 시기 잉글랜드 전통에서 유래된 ‘추수감사절’이나 중국의 ‘중추절’, 그리고 베트남의 '뗏쭝투(Tet Trung Thu)' 등도 대표적이다. 1930년대까지 가톨릭교회는 돌아가신 조상 앞에서 절을 하고 섬기는 제사를 미신행위로 여겼다. 이는 한국 선교의 가장 큰 박해의 요인이 되었고 정하상 바오로는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하기 전 천주교 교리를 논증하기 위해 쓴 글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제사를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신자가 늘면서 선조들을 공경하는 민족적 풍습인 제사가 과연 교리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이 일자, 비오 12세 교황은 기해박해로부터 100년 후인 1939년에 “제사 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훈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천주교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존경을 표현하는 민속적 예식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설과 한가위를 이동 축일로 제정, 고유 독서와 고유 감사송을 곁들인 명절 미사로 거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 추수에 관련된 음악은 꼭 밝고 즐겁지만은 않다. 유럽에서 추수 시기는 미뤄왔던 세금을 바치고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주세페 물레(1885~1951)의 교향시 ‘추수’는 행진곡풍의 씩씩함과 강렬함이 돋보인다. //youtu.be/2kNxJVmHk2U?si=u7vWSOPLX41rmNhj 영국의 클래식 FM에서는 추수감사절에 가장 적합한 클래식 음악으로 에런 코플랜드(1900~1990)의 ‘애팔라치안의 봄’을 뽑았다. 이 음악은 19세기 미국의 개척자들이 처음 땅을 갈고 농가를 만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들이 즐겨 부르던 민요를 주요 멜로디로 사용하였다. //youtu.be/TXV8yO1FucA?si=oTTnqTilEawFT-pv 모차르트의 ‘작은 밤의 음악, 소야곡’도 추석에 들어볼 만하다. 추수를 끝내고 풍요로울 때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청춘도 들끓게 된다. 이 아름다운 시기를 즐겁게 지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의 음악을 통해 상상해보자. 주님은 어디서나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내리셨지만 우리는 네 개의 뚜렷한 절기를 특별히 더 받았고 이 중 특별한 한때를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을 얻었다. 아무래도 한국인에게 추석은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정으로 넘치는 특별한 때인 것 같다. //youtu.be/QZWKUszkbXU?si=6LezxLVH2vmiuIxM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윤하정2024.09.19

화마 딛고 일상의 순례지로 다시 태어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25.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된 파리 노트르담 주교좌성당. 2019년 화재 후 5년의 복원 작업을 끝내고 2024년 12월 8일 재개관했다. 전 세계 150개국에서 약 1조 2724억 원을 지원하였으며, 총 1조 528억 원이 복원에 투입되었다. 지붕 부분은 아직 공사 중이다. 파리의 심장부, 센강의 시테섬에 자리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에펠탑·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파리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명소입니다. 프랑스어로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란 뜻으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모님에게 봉헌된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입니다. 2019년 4월 15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성당이 불타는 장면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런 노트르담 대성당이 2024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신자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성당의 주보이신 성모님의 전구로 다시 일어섰기에 성모님에게 다시 봉헌한 겁니다. 남쪽 익랑의 장미창과 새로 복원한 천장의 중앙 종석. 서쪽 정면의 장미창과 남·북 익랑의 거대한 원형 창도 구조적 손상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옛 모습을 충실하게 복원하는 동시에 현대적 요소를 선별적으로 도입해 850여 년에 걸친 신앙과 예술의 층위를 고스란히 간직했다. 새로운 빛의 공간으로 탄생 지하철역에서 나와 센강을 따라 걸어가면 서서히 대성당이 나타납니다. 화재 후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된 뾰족한 첨탑과 외벽의 장미창은 상상 이상으로 웅장합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강물에 일렁거리는 노트르담 모습을 감상하다 보면 이내 북적이는 성당 앞에 다다릅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최후의 심판’ 포털을 지나 성당에 들어서면 예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을 받습니다. 전에 가보신 분은 낯설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온 빛과 새로운 조명으로 여느 고딕 성당보다 내부 공간이 훨씬 환하고 깨끗합니다. 복원하면서 본래의 유리 색감을 되찾았고, 천장과 벽면에서 그을음과 먼지를 제거해 석재의 원래 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중세에 성당이 완공됐을 때 파리 시민의 첫인상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인파의 웅성거림과 스마트폰의 셔터 소리를 잠시 잊고 고색창연한 빛 속에서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주제단의 제대 십자가와 피에타상. 첨탑 아래 볼트 부분이 기존 직사각형 청동 제대 위로 무너져 내렸지만, 십자가와 피에타상은 손상이 없었다. 기욤 바르데의 새 청동 제대 표면에 감실이 삽입됐고, 피에타상 아래에도 감실이 추가로 설치됐다. 거룩한 일상의 순례지 파리의 모리스 드 쉴리 주교(재임 1160~1196)는 기존의 낡고 작은 성당을 대신해 유럽 왕들의 본당이라 불릴 만한 웅장한 성당을 지어 이곳을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1163년 루이 7세와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대성당의 초석이 놓였는데, 실제 이곳을 시작으로 랭스·아미앵·루앙 등지에 고딕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으니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입니다. 중세 파리교구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파리대교구의 교구장은 서울대교구처럼 재임 중 추기경의 직위를 받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파리는 상스대교구에 속한 일반 교구였고, 파리교구장은 왕에게 봉토를 받은 제후 주교가 아니어서 랭스 대성당에서 치르는 프랑스 왕의 대관식에 참석할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파리가 왕도였지만, 교회 안팎에서 위상은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이런 판도는 14~16세기 백년 전쟁·위그노 전쟁을 거치면서 바뀝니다. 1593년 앙리 4세는 “파리는 미사를 드려서라도 가질 가치가 있다”라며, 가톨릭이 다수이던 파리로 입성해 이듬해 왕위에 오릅니다. 이후 루이 13세·루이 14세 때 절대 왕정이 확립되면서 파리와 파리교구의 입지가 공고해집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에 의해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주요 국가 행사도 노트르담에서 치렀지요. 노트르담은 자연스럽게 파리 시민의 ‘거룩한 일상’의 순례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특히 성모 신심이 깊어지면서 대림 시기나 성모 축일에 열린 빛의 예식에 많은 시민이 참례했습니다. 하지만 노트르담이 지금처럼 유명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교회가 박해받던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입니다. 나폴레옹이 비오 7세 교황과 ‘정교협약’을 맺은 후 왕실 성당인 생트샤펠에 있던 예수님의 가시면류관과 성 루이 9세의 튜니카 등 성유물을 노트르담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도 큰 몫을 했습니다. 가시면류관과 성모 칠고 소성당의 성물함. 성 루이 9세가 재정난이 시달리던 라틴 제국의 보두앵 2세 황제에게 당시 프랑스 왕국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거금을 치르고 가시면류관을 사들였다. 실뱅 뒤뷔송은 금도금 황동 격자를 이용해 알루미늄 헤일로에 유리블록을 설치해 가시면류관 성유물함을 만들었다. 금요일마다 성유물함 중앙에 전시된 가시관을 친견할 수 있다. 성당 입구 중앙의 세례대. 프랑스 기욤 바르데가 제대와 함께 새롭게 디자인한 것으로, 단순하면서도 성스럽고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500개 의자는 프랑스 솔로뉴산 참나무로 만들었다. 복음화의 멀티미디어 공간 노트르담은 단순히 복원을 넘어 복음화라는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대성당을 순례하면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구원사를 체험하도록 공간이 재구성됐고, 이에 맞춰 관람 동선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순례는 입구 중앙에 새롭게 자리한 청동 세례대에서 시작합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물의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상징이지요. 북측 측랑을 걸으면서 노아 소성당·아브라함 소성당 등에서 창세기부터 예언서까지 구약의 중요한 순간을 목격하게 됩니다. 구세주의 탄생까지 ‘약속의 길’을 걷는 영적 여정이지요. 소성당마다 서로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성경 구절이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를 하나로 묶습니다. 주제단으로 다가가면 조명에 은은히 빛나는 단순한 형태의 새로운 청동 제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2019년 화재 당시 첨탑이 무너져내린 공간이지만, 피에타상과 그 뒤의 대형 황금 십자가는 기적처럼 무사히 남아 잿빛 성당에 희망의 빛을 던져줬습니다. 그 뒤에는 예수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을 모신 원형의 성유물함이 있어, 성체의 현존·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성모의 통고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남측 측랑은 파리의 성인과 성령칠은을 주제로 한 길로 ‘성령의 길’이라 불립니다. 부활과 성령강림으로 신약의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지요. 2026년 말 6개 소성당의 현대 스테인드글라스가 완공되면 다양한 인종·문화의 현대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임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관식에 보낸 서한에서 “그분의 사랑만이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섬세하게 복원한 흔적이 성당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일부 공간은 아직 미완성입니다만,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회복력과 예술의 힘이 신앙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가장 어두운 순간이 가장 깊은 은총으로 가는 과정임을 묵상해 봅니다. <순례 팁> ※ 지하철 4호선 시테역에서 가깝지만, 생미셸-노트르담역에서 내리는 것이 센강의 노트르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 노트르담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미사 8:30·10:00(그레고리오 성가)·11:30·18:00, 평일 미사 08:00·12:00·18:00, 성체조배 매주 목요일 18:45. 성 요셉 소성당과 위층 회랑에서 고해성사 10:00~ 12:00·14:00~16:00.(미사 참례에는 예약이 필요 없다) cpbc2025.04.23

미사 중 앉고 서고 꿇는 모든 행동에 의미가[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4) 앉아서 미사하면 안 되나요 주일학교 학생 미사에 참여하다 보면 종종 앉아서 조는 학생을 보게 됩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이 미사 전례 안에서 기도와 마음을 온전히 봉헌하기란 힘들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조는 모습까지도 흐뭇하게 보실 주님을 생각하며 옆에서 지켜봅니다. 하지만 성찬 전례 때에는 깨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어서게 합니다. 그랬더니 “앉아서 미사에 참여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앉아서 미사에 참여하면 편하고 좋겠지요. 하지만 미사 전례에서 행해지는 자세도 하나하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부터 미사 전례 안에서 행해지는 자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사 전례에서 행해지는 자세의 의미 ▶서는 자세 : 환영·기쁨·존경·실천·기도의 자세입니다. 사제 입당에서 본 기도까지, 복음 들을 때, 신앙고백 때, 신자들의 기도 때, 감사송에서 거룩하다고 할 때, 주님의 기도 바칠 때, 파견 때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손을 모으는 자세 : 하느님 앞에서 경건함과 하느님께 대한 애원,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표현하는 자세입니다. ▶팔을 벌리는 자세 : 구약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장엄 기도 자세에 해당합니다. 손을 위로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표시’이며, 양손을 마주하게 하는 것은 ‘애덕의 표시’입니다. 들었던 손을 다시 합장하는 것은 ‘하느님 안의 일치’를 나타냅니다. ▶허리를 굽히는 자세 :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간절히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성전에 들어와 제대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제대 앞을 지나갈 때에도 인사하듯 굽힐 때 해당합니다. 그런데 영성체 때 성체를 모신 뒤에는 허리 굽혀 인사하지 않습니다. 이미 내 몸 안에 예수님이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앉는 자세 : 미사 때 앉는 것은 우리가 배우는 제자로서 행하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따라 초대 교회 신자들도 앉아서 교훈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외한 성경 독서·강론·봉헌 성가·성체 성가를 부를 때 올바른 자세로 앉아있다는 것은 바른 몸가짐을 나타내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정성이 담긴 기대와 주의력을 갖고 주님 말씀을 듣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입맞춤의 자세 : 경의를 표하거나 사랑과 평화를 나누기 위해 입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기록에서 얼굴과 손·입 등에 입을 맞추는 것은 혈연·우애·사랑·환영·존경·복종 등을 상징합니다. 물건에 입 맞추는 행위는 속죄·회개·기원·경건의 의식으로 신전의 문지방·제단에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에서는 미사 시작과 끝에 사제가 제단에 입을 맞춥니다. 사제가 복음을 낭독한 뒤에는 복음서에 입을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존경과 복종의 의미를 지닙니다. ▶무릎 꿇는 자세 : 존경과 통회의 자세입니다. 성체가 모셔져 있는 감실을 지나갈 때, 성체 축성 및 성체 현시 때, 그리고 거양 성체시 우리는 무릎을 꿇어 성체에 대한 합당한 존경을 표합니다. 특히 사순 시기 참회 전례에서 무릎 꿇는 것은 통회의 표현으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미사 전례 안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모습의 자세는 전례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미사 때 앉아서만 참여하면 안 됩니다. cpbc2024.05.28

주님 사랑으로 한국과 하나된 메리놀수녀회 100년수녀회 한국진출 100주년 미사봉헌 메리놀수녀회 한국 선교 100주년 기념 케이크 커팅 전 참석자들이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른쪽부터 수녀회 한국분원장 성미영 수녀, 미국 총원장 테레사 허넌 수녀, 일본 분원 이토 테루코 수녀, 전교회 함제도 신부, 수녀회 돌로리스 가이어 수녀, 캐슬린 라일리 수녀, 김유수 수녀. 1924년 수녀 6명 평안도 의주 도착 본당·의료·여성직업교육 사도직 헌신 한세기 소외된 이들 위한 선교 펼쳐 “메리놀수녀회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았고 한국인들과 하나가 됐습니다. 한국 선교 100주년을 축하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메리놀과 한국인들은 앞으로도 함께 모든 창조물들을 위한 포용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 여정을 축복합니다.”(미국 메리놀수녀회 총원장 테레사 허넌 수녀) 테레사 허넌 수녀는 18일 열린 메리놀수녀회 한국 선교 100주년 기념차 방한해 미사 중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 세기 메리놀수녀회의 노고를 술회하며 감격스러운 듯 목이 메이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날 기념 미사와 행사에는 메리놀수녀회 한국·일본 분원과 미국 본원 수녀들이 참석해 100년 여정을 축하했다. 메리놀외방전교회 사제와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수도자, 메리놀어필리에이트 단원 등 400여 명이 함께 자리했다. 회관 내에선 선교 역사가 기록된 사진전도 열렸다. 미사는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안구열(리차드 어거스틴) 신부 주례로 거행됐으며, 독서와 복음·보편지향기도 등은 수녀회를 위한 기도로 봉헌됐다. 이날 미사 중 예물은 세상 끝까지 사랑을 전파하고자 하는 상징으로 지구본과 한국에서 반세기 넘게 선교한 문 요안나(진 맬로니, 한국명 문애현) 수녀의 일기, 수녀회 첫 한국인 수녀 장정온 수녀(장면 총리 누이)와 수녀회 창립자 마더 메리 조셉 로저스 수녀의 사진이 봉헌됐다. 미사 후 참석자들은 100년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을 시청하고, 성골롬반수녀회가 메리놀수녀회의 한국 선교 초창기 모습을 재현하는 단막극을 관람했다. 참석자들은 낯선 땅에 찾아온 수녀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한국 선교 100년을 축하했다. 개신교 신자이지만 13년간 수녀회에서 영어 성경공부를 했다는 지연희씨는 “낙후된 국가의 환경을 감수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 데 대해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메리놀수녀회는 1924년 메리 르듀크 원장 수녀를 비롯한 수녀 6명을 한국으로 파견하면서 한국에 진출했다. 수녀들은 미국 뉴욕 본원을 떠나 그해 10월 21일 평안도 의주에 도착했다. 수녀회는 곧장 의주에 임시본부를 세우고 사도직 활동을 전개했다. 주로 교리교육과 본당·의료·여성직업교육 사도직에 헌신했고, 1932년엔 한국에서 시작된 첫 수도공동체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설립을 도왔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 곁에서 지내왔다. 100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친 수녀는 126명이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신문취재팀 이준태 202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