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와 화해의 다리 놓는 아시아 교회, 시노드로 하나 되다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제12차 정기총회 7월 21일 봉헌된 개막미사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어린이들이 기도손을 하고 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제12차 정기총회가 7월 20~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물리아호텔에서 열렸다. 아시아 주교들을 비롯해 세계 각 지역 교회를 대표하는 추기경·주교·사제·수도자·평신도 등 150여 명은 ‘시노드적 회심을 향한 소명과 아시아 가교로서 사명’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특히 이번 총회는 2022년 FABC 창립 50주년 총회와 그 결과물인 「방콕 문서」, 2024년 세계주교시노드 「최종 문서」, 2025년 희망의 희년과 희망의 대순례를 통해 걸어온 아시아 교회 시노드 여정을 잇는 자리였다.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7월 22일 총회 주제에 관해 묵상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시노드 정신 더욱 되새긴 자리 일주일간 이어진 정기총회 동안 매일 오전 7시 미사로 시작한 하루는 강의와 발표, 소그룹 나눔과 전체 회의, 침묵과 기도로 채워졌고, 오후 8시 친교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발표와 나눔 후엔 ‘성령 안의 대화’를 통해 성령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듣고 식별했다. 이들은 시노달리타스를 단순한 회의 방식이나 사목 프로그램이 아닌 교회의 삶의 방식으로 정착시키고 세례받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아시아에서 대화와 화해의 다리가 되고 그 다리를 놓으며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7월 22일 회의장은 피정 공간으로 바뀌었다. 참가자들은 오전 미사 후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교황청 복음화부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 부장관) 추기경이 이끄는 두 차례 영성 강의를 들었다. 타글레 추기경은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모습을 통해 ‘시노달리타스’ 의미를 풀어냈다. 아이가 걷기 위해 힘과 균형 감각을 키우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한 환경과 주변의 격려가 필요하듯 시노드 여정에도 인내와 신뢰, 동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이어 고령으로 잘 걷지 못하는 부모 이야기를 꺼내며 “걷지 못하는 사람과 우리는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을까”라고 물은 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상대의 손을 잡고 곁에 머물러 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시노달리타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을 잇는 참된 다리이자 다리를 놓는 이”라면서 “무엇보다 가장 먼저 예수님께 시선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7 서울 WYD 초대 이튿날인 23일에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알리는 특별 시간이 마련됐다.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는 아시아 각국 주교와 대표단에 대회 의미와 준비 상황을 설명했다. 이 주교는 “정부와 의료기관이 협력해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드디어 아시아에서 열리는 WYD인 만큼 많은 아시아 청년이 서울에서 신앙과 우정을 나누길 바란다”고 초대했다. 조직위원장 정순택 대주교는 “국가 상황과 교회 여건상 대회 참가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교회에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며 “더 많은 아시아 청년이 참가할 방안을 더욱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시노드 사무처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과 시노드 사무처 특별서기 자코모 코스타 신부는 24일 ‘시노드 이행을 위한 길’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레크 추기경은 시노달리타스 이행의 중심은 로마가 아니라 각 지역 교회임을 강조했다. 그레크 추기경은 “지역 교회가 보편 교회와 친교 안에서 자신의 현실에 맞는 길을 식별해야 한다”면서 “각 지역 교회가 지닌 경험과 은사는 보편 교회 전체가 필요로 하는 선물이며, 시노달리타스는 로마에서 내려오는 지침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역 교회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 ‘은사의 교환’”이라고 설명했다. FABC 정기총회에 참석한 추기경, 주교, 사제들이 7월 2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이 마주한 도전과 사목들 총회 기간에는 아시아 교회가 처한 사회·정치·종교 현실을 살피는 전문가 강의도 이어졌다. 토마시 할리크(체코 카렐대) 몬시뇰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교회가 성급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영적 식별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며 “신앙은 닫힌 확신이나 이념이 아니라 하느님이 일하시는 새로운 징표를 읽어내는 힘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 푸이 이(말레이시아 말라야대) 박사는 정치·민족·이념적 양극화가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으로도 스며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박사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서적 양극화’에 교회는 사랑과 자비, 대화로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매일 나눈 나눔과 토의에선 전쟁과 강제 이주, 종교 극단주의, 민족주의, 경제적 불평등, 환경 파괴, 인공지능과 디지털 문화가 아시아 교회가 직면한 공통 과제로 제시됐다. 이주민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교회를 새롭게 하는 선교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가톨릭 학교와 병원, 사회복지기관은 다종교 사회에서 복음의 신뢰를 보여주는 중요한 현장으로 평가됐다. 평신도와 여성, 청년, 이주민, 원주민이 교회의 식별과 사명에 더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는 요청도 제기됐다. FABC는 총회 후 각 지역 교회 의견을 추가로 수렴해 지역 교회들이 시노달리타스를 사목 현장에 적용하도록 돕는 실천 안내서(Vademecum)를 완성할 계획이다. 매일 봉헌된 미사를 비롯해 21일 공식 개막미사와 26일 폐막미사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과 춤, 다양한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하나로 잇는 전례는 다양한 이들과 함께 걸으며 대화와 화해의 다리를 놓는 교회가 되겠다는 이번 총회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줬다. FABC란?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의 약자. 아시아 각국 주교회의의 친교와 협력을 위한 연합체로 1970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아시아 주교들이 마닐라에 처음 한자리에 모인 데서 출발했다. 1972년 교황청 승인을 받아 출범했으며 현재 22개 주교회의(29개국)가 참여하고 있다. 복음화·인간발전·사회홍보·평신도가정·신학·교육신앙양성·교회일치종교간대화·성직자·봉헌생활 등 9개 위원회와 2025년 신설된 시노달리타스위원회를 두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정기총회는 아시아 교회의 주요 사목 현안과 공동 과제를 논의하는 최고 회의다. 2027 서울 WYD에 대한 아시아 각국 주교들의 기대 7월 20~26일 열린 FABC 정기총회를 통해 오랜만에 함께 자리한 아시아 각국 주교들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1년 앞두고 대회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아낌없이 전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청년들이 WYD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친교와 일치를 체험하길 염원했다. 주교들은 특히 평신도에게서 시작된 한국 교회의 역사와 순교 영성을 전 세계 청년들과 나누기를 강조했다. 또 WYD를 통해 아시아 교회가 지닌 대화와 환대의 문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가 보편 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기대했다. 비르질료 도 카르모 다 실바 추기경 동티모르 딜리대교구장 “2027 서울 WYD를 통해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신앙 체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아시아에서는 가톨릭이 소수이지만, 성장하는 젊은 교회로서 전 세계 교회에 희망의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신앙을 증거한다면 신앙의 힘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특히 아시아 젊은이들이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걸어가며 시노달리타스를 체험하기를 희망합니다.” 파블로 비르질료 다비드 추기경 필리핀 칼로오칸교구장 “레오 14세 교황과 젊은이들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매우 기대됩니다. 2027 서울 WYD에 참가한 이들이 진정한 우정을 쌓기를 바랍니다. 다문화·다종교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시아 교회는 보편 교회에 대화와 환대의 문화를 선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가난한 이들과도 함께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에는 가톨릭 인플루언서가 많은데, 이들의 참여가 WYD를 더욱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줄리안 리우 벵 킴 대주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대교구장 “한국 가톨릭교회는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들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신앙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또 이러한 믿음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가톨릭교회가 새로워지길 희망합니다. 30여 년 만에 아시아에서 열리는 WYD인 만큼 더 많은 아시아 청년들이 참여하길 기대합니다. 아시아는 여러 종교의 발상지이며, 예수님 역시 아시아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미디필 빌로네스 대주교 필리핀 자로대교구장 “필리핀 젊은이들은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음식 등을 정말 좋아해 2027 서울 WYD를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아시아 청년들이 희망을 나누는 아름다운 신앙 축제가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순교성지를 순례했는데, 한국 가톨릭의 순교 역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과 같은 활기찬 교회가 보편 교회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기를 바랍니다.” 엠마누엘 K. 로자리오 주교 방글라데시 바리샬교구장 “한국 교회가 매우 활기차고 역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의 홍보를 통해 한국 교회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한국 순교자들이 증거한 신앙을 체험하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를 바랍니다. WYD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기도, 성경 읽기, 미사 참여 등 영적 준비에도 힘써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루이 응우옌 아잉 뚜안 주교 베트남 하띵교구장 “베트남 교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에는 많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순교 신심과 영성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WYD 참가를 준비하며 일상에서도 매 순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기쁘게 복음을 선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큰 행사를 개최하고 조직하는 한국 교회의 경험과 노하우도 배우고 싶습니다. 언젠가 베트남에서도 WYD가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이냐시오 수하료 하드조아트모죠 추기경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대교구장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니라 평신도에게서 시작된 한국 교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한국 가톨릭 신앙을 비옥하게 한 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순교는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희생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WYD를 통해 ‘살아있는 순교’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WYD의 영적 결실로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확신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안토니 웨라뎃 차이세리 대주교 태국 타레-농셍대교구장 “젊은이들은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과 다른 이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WYD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지닌 만큼 이러한 열린 마음이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로 임하면 좋겠습니다. WYD를 통해 함께 걸어가는 시노드적 삶의 방식을 발견하게 되길 바랍니다. 청년들이 친교와 일치의 증인이 되어 서로에게, 더 나아가 교회와 사회에 일치와 친교를 확산하기를 바랍니다.” 에드가 가쿠탄 주교 ,일본 센다이교구장 “한국 교회가 전 세계 청년들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2027 서울 WYD를 통해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신앙 여정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날 세상이 마주한 수많은 도전 속에서도 대회 주제 성구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처럼 젊은이들이 어려움을 헤쳐갈 용기를 얻기를 기대합니다.” 올윈 드실바 주교 전 인도 뭄바이대교구 보좌 “많은 인도 젊은이들이 한국 교회를 체험하길 바랍니다. 다른 지역 교회를 경험하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WYD의 본질은 결국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7 서울 WYD는 아시아 교회가 지닌 환대의 문화를 보편 교회에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박수정2026.08.05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여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9)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으로 서로 섬겨 성령의 열매인 참자유를 통해 육에서 해방될 것을 권고한다. 조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 1305년, 스크로베니경당, 파도바, 이탈리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갈라티아서)은 초대 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도적 권위와 저자 문제에 관해 논란이 된 적이 없는 서간입니다. 기원전 3세기께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남부 지방,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골 지역에 살던 켈트족들이 안키라(오늘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지중해, 내륙으로는 카파도키아, 북으로는 흑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이주해 살았습니다. 훗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갈리아인들이 사는 곳이라 해서 헬라어로 ‘Γαλατια’(갈라티아)라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 여행 때 로마의 속주인 갈라티아 남쪽 피시디아·리카오니아·프리기아 등 여러 지역에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13,14─14,25) 그는 또 제2차 선교 여행 때 병에 걸려 갈라티아 지방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갈라티아 북부 지역 곧 카파도키아와 흑해 사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도 세우게 됩니다.(사도 16,6)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53~58년)을 시작하면서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치며 모든 제자에게 힘을 북돋아 줬습니다.(사도 18,23) 이를 근거로 어떤 이들은 갈라티아서가 49~53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작성(57~58년)하기 몇 개월 전(56~57년께)에 갈라티아서를 썼을 것으로 봅니다. 학자들은 그 근거로 구원론과 의화론 같은 두 서간의 핵심 내용이 믿음·복음·구원·의화 등 비슷한 어투와 용어로 설명되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당시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유랑(떠돌이) 선교사들이 찾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해 마치 코린토 교회처럼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3,2-3; 4,21; 5,4) 아울러 코린토 사람들처럼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도 자유를 남용하면서 도덕적으로 방종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례받기 이전 행했던 정령(精靈)들을 섬기는 미신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4,3.9) 이에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로 복음에 충실할 것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권고하기 위해 갈라티아서를 씁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Γαλαταε’(프로스 갈라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Galat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갈라티아서는 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인사말’(1,1-10)과 ‘바오로의 사도직’(1,11─2,10), ‘바오로의 복음’(2,11-21), ‘구원 역사에서 믿음과 율법’(3,1─4,7), ‘종살이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권고’(4,8─5,12), ‘참자유에 대한 가르침’(5,13─6,10), ‘마지막 권고와 축복’(6,11-18)으로 구분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인사말을 통해 갈라티아 지방의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도직 활동의 원천이며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상기시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이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구원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지며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들이 할례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합니다. 이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공식 인정한 복음의 진리라고 일깨워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 역사에서 드러나는 믿음과 율법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먼저,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됐는데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그리스도에게 전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에 약속된 구원의 축복과 성령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게 되고,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다만 감시자 노릇만 했다고 합니다.(3,15-25)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역사는 사람들이 세상의 종살이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참자유로 성령을 통해 건너가게 해 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덧붙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르 12,31; 레위 19,18 참조)고 하신 주님의 계명으로 요약된다면서 육의 욕정과 욕망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남의 짐을 져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온유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자유라고 가르칩니다. 끝으로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됐다며 이 새 창조에서 인간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기에 율법에서 해방된다고 강조합니다. 리길재 선임2024.06.26
![[전문] 대전교구장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16/jm11744803457108.jpg)
[전문] 대전교구장 부활 메시지“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십니다.”(2코린 5,19ㄱ) +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펼치신 구원의 역사가 그 정점에 이른 것입니다. 알렐루야!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는 자식도 하나 없는 75세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축을 이끌고 풀을 찾아 돌아다니는 유목민으로 자기 소유의 땅은 한 평도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고, 그 백성이 살아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즉시 떠났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 이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살이를 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년 광야 여정을 거쳐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렀고, 다윗 왕은 이 땅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웠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약속하시고 이루어주신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 땅이 마치 하느님 나라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른 그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온갖 우상숭배를 하다가 이민족에게 정복당하고 많은 이들이 유배를 떠납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수십 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참된 신앙인의 공동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유배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살고자 굳은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사람의 힘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힘과 의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긴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입니다. 구원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그때가 온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파견하시어,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속죄 제물로 희생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 그리고 그분은 죽으셨으나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고, 그분의 부활로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실 때 주신 자유와는 아주 다른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영원한 생명과 함께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은 주님의 십자가상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이 은혜로운 사건을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라고 선언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십니다.”(2코린 5,19) 이 말씀은 매우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떨어져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욕심과 의지로 하느님의 품을 떠나 갈라서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의 불화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죄를 용서받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화해라고 부릅니다. 이 화해는 갈등을 일으키던 두 사람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화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의 품을 떠나 불화가 생겼는데, 그 죗값을 하느님께서 치러주시고 화해를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하느님과 화해한 사람들입니다. 죄의 용서를 받아 하느님과 화해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 세상에 화해의 사도로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화해를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야고 2,24) 화해는 죽은 관계를 다시 살리는 부활의 기쁨입니다. 복음이 가르치는 화해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이 이웃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형제애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화해의 길입니다. 가난한 형제들을 진심으로 도와줄 때 우리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기 세력에 대한 욕심보다 정의를 실천하는 데에 헌신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에 매우 필요한 화해의 길입니다.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일수록 구성원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모든 직분은 공동체를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고 화해의 진리를 배우며 살아가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의 성공에 너무 집착하면 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고,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존재이기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자비와 화해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부활의 축하 인사를 드리며 주님을 닮은 화해의 사도로 살아가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알렐루야! 2025년 4월 20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에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이준태 2025.04.19

다름 인정하며 갈등 넘어 화합으로[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22)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사람들 사는 곳에는 늘 갈등과 다툼이 존재한다. 성경을 보더라도 태초에 사람이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고 살인과 분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평화를 찾지만,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일상사가 되었으며, 우리나라만 해도 남북뿐 아니라 동서·진영·세대·남녀·종교·민족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과 다툼도 일상에서 늘 목격하는 풍경이다. 사제로 살면서 해야 할 일 중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필자는 보좌 신부로 딱 1년을 살았는데, 많은 시간을 싸우는 신자들 화해시키느라 보냈다. 그 후에도 많은 싸움과 다툼을 봐왔다. 본당만이 아니라 학교나 교구 등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갈등과 분열은 존재한다. 싸움을 말리면서 부모 입장에서 불목하고 다투고 싸우는 자녀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헤아려 보게 되었다. 화해가 되지 않는데 굳이 싸움을 말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 도대체 어떤 뜻으로 알아들어야 할까? 아마도 분열과 갈등의 문제를 이상주의적이 아닌, 현실적으로 접근하라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아무런 갈등도 분열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더 큰 싸움이 일어나고, 그 싸움은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렇지만 싸움과 갈등이 마지막 말이 아니며, 끝이 아니어야 하기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장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아무런 갈등도 분열도 없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다르기에 갈등과 분열이 없을 수 없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나 평화를 이루어가는 세상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와 문화가 요구된다. 예수님께서 다름을 인정하셨기에 다양한 기질·출신·정치 성향의 제자를 뽑으실 수 있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다양성이 존중되는 교회, 일치를 이루는 교회가 가능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분열은 필요하다. 분열과 다툼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다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차이 그리고 그로부터 연유하는 불화를 견디기 힘들어하고 결국 실망하거나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와 화합은 서로의 다름과 그로 인한 어려움과 갈등을 거친 후에 비로소 다다르는 것이 아닐지. 그렇기에 분열을 감추기보다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알기 위해, 그리고 ‘일치’라는 것이 한 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과제임을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우리는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갈등과 분열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갈등과 분열을 넘어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성장하는 과정 없이 진정한 평화란 없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그것을 위해 온 삶을 바치셨다. 오늘 나의 작은 희생, 받아들임을 통해 더 큰 일치가 우리 안에 실현되기를 청해보자. 특히 나와 다른 사람의 얼굴·성향·말투·생각 등의 차이가 오히려 더 큰 나, 더 큰 우리를 위한 선물임을 알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한민택 신부cpbc2025.11.05

‘교리교사의 복음서’ ‘교회의 복음서’ 마태오 복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1)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는 미사 중에 가장 많이 봉독되는 복음서이다. 그래서 신약 성경 첫 자리에 배열돼 있다. 아울러 초대 교회부터 신자 교육용으로 널리 읽혀 ‘교리교사의 복음서’, ‘교회의 복음서’로 불려 왔다. 귀도 레니, ‘성 마태오와 천사’, 1635~1640년, 바티칸박물관.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 복음서는 공통된 원천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 복음서를 ‘공관 복음(συνοψιs ευαγγελιον-쉬놉시스 에우안겔리온)’이라 부릅니다. 헬라어 ‘συνοψιs’는 우리말로 “함께 보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한자로 ‘共觀(공관)’이라 표기한 것이지요. 공관 복음서는 내용 흐름과 형식이 서로 참 많이 닮았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80%가 마태오 복음서에, 55%가 루카 복음서에 옮겨졌습니다. 내용도 요한 세례자가 등장하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받으신 후 갈릴래아로 가서 가르치고 치유 활동을 펼치시다 예루살렘으로 가시어 수난을 겪고 십자가형으로 죽으신 후 부활하셨다는 주님의 공생활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3년을 설명하는 요한 복음서와는 참 다릅니다. 공관 복음서는 시간이라는 물리적 흐름보다 신학적 흐름에 초점을 맞춰 예수님의 생애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오랜 전승은 마태오 복음서 저자를 로마 제국에 고용돼 갈릴래아 주민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레위”(마르 2,14; 루카 5,27)라고도 불리던 세리 “마태오”(마태 9,9)라고 합니다. 그는 주님의 열두 제자인 ‘사도’로 뽑힌 인물이지요. 마태오 사도가 복음서를 썼다고 처음 주장한 이는 2세기 초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주교입니다. 파피아스를 그대로 따른 프랑스 리옹의 이레네우스 주교는 「이단반박」에서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있을 때 마태오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로 복음서를 펴냈다”고 했습니다. 이들 주교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오랫동안 마태오 사도가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성경학자들은 마태오 사도가 아니라 히브리말과 아람어뿐 아니라 헬라어에 능통한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마태오 복음서를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유다교 율법뿐 아니라 자선과 기도, 단식을 중시하는 유다인 관습을 잘 아는 율법학자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로 마태오 복음서에 ‘임마누엘’(1,23), ‘골고타’(27,33),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27,46)라는 아람어가 나오고,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13,52)는 유다계 그리스도인 율법학자의 소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을 통해 율법이 완성됐고, 구약 성경의 주제인 하느님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마태오 복음서 곳곳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해 예수님은 참으로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밝힙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10여 년 전까지 성전세를 바쳤고(17,24-27), 초기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권위를 인정했으며(23,2-3), 십일조도 바치고(23,23), 안식일도 지켰다(12,11-12; 24,20)고 합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됐고, 이 무렵 마르코 복음서가 쓰였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를 인용한 열두 사도의 가르침 「디다케」가 서기 100년께 저술됐지요. 아울러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Ναζωραιοs-나조라이오스, 2,23; 26,71)이라 부릅니다. 이 칭호는 시리아 안티오키아 지역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이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ουs-크리스티아노스)이라 부른 것과 함께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태오 복음서는 서기 80~90년께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저술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서기 50년께 엮은 「예수님 어록」의 원천(Quelle) 사료인 ‘Q문헌’과 마르코 복음서를 참조해 헬라어로 저술됐습니다. 아울러 교회가 간직해온 예수님 전승들이 포함됐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의 유년 이야기’(1─2장)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다섯 개의 예수님 설교(5─7장 산상 설교; 10장 파견 설교; 13장 비유 설교; 18장 교회 설교; 24─25장 종말 설교)를 뼈대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형을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세상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라는 주님의 현존을 선포하면서 끝맺습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신약 성경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주일 미사에서 가장 많이 봉독되는 복음이거니와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서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태오 복음서는 ‘교리교사의 복음서’라 불립니다. 일정한 순서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들려주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비춰주고 있어 초대 교회 때부터 신자 교육용으로 널리 읽혀 왔습니다. 또 ‘교회의 복음서’라 불립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기적과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께 사도들의 수위권을 받는 것은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다”(16,18)라는 표현도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옵니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교회가 할 일, 교회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일과 관련된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4.30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찾은 희망[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01) 희망의 증인들 희망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신앙을 걷고 있는 사람들 중 시련이나 병고 혹은 죽음을 겪는 이들에게 배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이듯 죽음에 대해 겪는 모든 사람의 경험은 소중하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어렵고도 힘든 관문을 거쳐야 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고통과 번민, 외로움과 쓰라린 아픔을 경험해야 하고, 죽음 앞에서 희망이라는 문제로 씨름해야 한다.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 방법은 바로 그러한 ‘희망의 증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욥이라는 인물은 불의한 고통을 받는 의인의 상징으로, 한계상황에서 하느님께 탄원을 올리고 하느님과 논쟁하고 씨름하며 싸운 이다. 그는 하느님 앞에 서서 그분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결국 하느님을 만나고 높은 지혜의 차원에 다다를 수 있었다. 구약의 시편에도 하느님께 드리는 하소연이나 탄원 같은 시가 다수 발견되는데, 독일의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자비」(가톨릭출판사)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성경의 탄원 시편들(6, 13, 22, 31, 44, 57장 등 참조)은 모두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커다란 곤경에서 나온 것으로, 커다란 실존적 충격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이 시편들은 결코 절망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곤경을 겪는 자기 곁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확신으로 마무리됩니다. 탄원 시편마다 그처럼 하소연에서 찬미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탄원 시편들은 하소연과 비난·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찬미와 감사로 끝납니다.” 신앙인이 고난 중에 드리는 외침은 그의 기도를 하느님과의 ‘거래’가 아닌, 내적인 ‘정화’의 자리이자 희망을 배우는 ‘학교’가 되도록 한다. 우리가 희망하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오직 하느님뿐임을 깨닫는 것이다.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하시다 1839년 9월 21일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샤스탕 신부는 다음과 같은 편지글을 남겼다. “제가 조선대목구에 들어온 바로 그때 서울의 감옥에서 5명의 신자가 고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신자들이 받던 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마음이 아주 약해져 무서운 생각이 들어 몸을 떨었습니다. 그 후로는 저에게 은총을 주신 천주님께서는 두려운 마음이 더 이상 들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감옥에서 고문을 인내하면서 굳게 견디는 신자들 가운데, 저한테서 성사를 받은 많은 구 신자들과 새 신자들도 있고, 15살이나 10살밖에 안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고문을 꿋꿋하게 견디는 이들은 감옥 밖에 있는 신자들과 비신자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저희들의 마음을 놀랄 정도로 강하게 하였습니다.”(1839년 9월 1일 자 편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힘찬 증언도 우리 마음에 희망을 향한 열정을 불어넣는다. “여러분은 젊고, 교황은 늙었습니다. 여든두 살의 삶이 스물두 살의 삶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아직도 희망과 염원을 여러분과 완전히 같이합니다. 비록 제가 가혹한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많은 어둠을 헤치며 살아왔지만 여러 가지 증거를 목격하면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용솟음치는 희망을 완전히 억누를 만큼 큰 어려움이나 두려움은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젊은이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희망에 맡기십시오!”(2002 토론토 세계청년대회 강론 중) 희망의 증인들은 절망이 위협하는 우리 삶 한가운데서 희망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희망을 찾아 싸우라고 독려한다. 한민택 신부cpbc2025.05.28

창세기의 끄트머리에 서서[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11) 이집트 사막지대에서 만난 낙타 탄 현지 경찰.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 제18왕조 시대를 연 아모세 왕이 힉소스 왕조를 무너트렸다. 이후 유대인들은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된다. 이집트 역사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 나가다보면, 성경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래서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가족들을 이집트로 이주시켰던 시기는 기원전 1600년경이다. 하지만 당시 그곳에는 이집트가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집트인들이 세운 이집트가 없었다. 역사는 당시 이집트에 있었던 지배 세력을 ‘힉소스 왕조’라고 부른다. 이 왕조는 이집트인들이 세운 왕조가 아니었다.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현재의 이란, 이라크가 위치한 지역)에 거주했던 이들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무기인 2~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로 무장하고 이집트를 침공, 기원전 1680년께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를 식민통치했다. 힉소스 왕조는 분명 이집트에 존재했던 왕조지만, 실질적으로 이집트 직계 왕족이 다스린 나라가 아니었다. 여기서 힉소스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우르 출신이다. 힉소스 왕조와 이스라엘 민족은 혈통으로 볼 때 사촌뻘인 셈이다. 이제야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파라오의 궁궐에 전해지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좋아하였다”(창세 45,16)라는 구절이 이해된다. 당시 이집트는 유대인과 비슷한 혈통의 민족이 통치했기 때문에 요셉이 친족들을 불러들여 쉽게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탈출기」 첫머리에 나오는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탈출 1,8)는 말도 힉소스 왕조를 염두에 둘 때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새 임금이 힉소스 왕조를 잇는 왕이었다면, 선왕들이 존경했던 위대한 지도자 요셉을 모를 리 없었다. 따라서 ‘새 임금’이란 바로 새로운 왕조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힉소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이집트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그래야 엄청난 수의 인원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힉소스의 침략으로 이집트 왕조가 남쪽으로 밀려나 힘을 쓰지 못하던 시기, 이집트인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마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아시아에서 온 침략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주해온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톡톡히 앙갚음을 해 주고 말겠다.” 그들의 꿈은 현실이 된다.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 제18왕조(신왕조 시대의 첫 왕조) 시대를 연 아모세 왕은 마침내 힉소스 왕조를 무너트린다. 아시아인들의 침략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까. 이전까지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주변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집트가 이후부터는 갑자기 제국주의적 태도로 돌변한다. 도읍을 새로 건설하고, 주변국들을 침략하기 시작했으며, 노예를 학대하고,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킨다. 이 상황은 「탈출기」 첫머리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탈출 1,11) 이집트인들의 계속되는 폭압에 유대인들은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했던 시기는 정확히 언제일까. 많은 학자들은 대체로 그 연대를 람세스 2세 통치 기간(BC 1304~1237)인 기원전 122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참으로 아득히 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아직 로마 민족이 지구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시기의 일이다. 어쨌든 ‘아브라함 → 이사악 → 야곱 → 요셉 12형제’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시대’(Patriarchal Age)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와 함께 구약성경 「창세기」도 끝난다. 이제부터 구약성경의 「탈출기」가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엄청난 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다. 설화는 더더욱 아니다. 유대인들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한 유대인 아기가 태어난다. 글 _ 편집부 cpbc2024.01.17

수난의 길에 동참하는 ‘알프스의 예루살렘’ 바랄로의 사크로 몬테[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68. 이탈리아 사크로 몬테 디 바랄로 바랄로 시가지를 굽어보는 해발 600m 언덕에 자리한 사크로 몬테 디 바랄로. 1491년 성묘 소성당 조성에서 출발해 바실리카와 45개 소성당으로 확장된 ‘새 예루살렘’이다. 노바라교구 소속 ‘성 가우덴치오와 성 카를로 오블라티 공동체’가 순례 사목과 전례를 맡고 있다. 중세의 순례 상상력이 빚은 ‘거룩한 산’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환호가 채 가시기 전, 우리는 곧바로 주님 수난의 짙은 어둠으로 들어갑니다. 종려가지를 흔들던 손은 어느새 군중의 광기에 합세해 비난의 손가락질로 변모합니다. 일상에서 적잖게 보이는 이런 나약함은 자괴감을 낳고 영혼에 깊은 얼룩을 남깁니다. 오늘 가볼 순례지는 주님 수난을 체험하며 그 얼룩진 내면을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환희가 조롱과 모독, 십자가의 참혹한 침묵으로 치달아 가는 과정을 한편의 성극으로 구현한 곳, 이탈리아 북서부 바랄로의 거룩한 산, 사크로 몬테 디 바랄로입니다. 바랄로는 피에몬테주 세시아 계곡에 자리한 중세 신심의 정수가 서린 알프스의 작은 마을입니다. 열차로 가기엔 다소 까다롭지만, 밀라노를 오가는 정기 버스가 순례자의 발이 되어줍니다. 15세기 말, 작은형제회의 베르나르디노 카이미 신부는 예루살렘의 성묘를 관리하다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이곳 언덕에 거룩한 산, 즉 사크로 몬테(Sacro monte)를 조성합니다. 지리적·정치적 이유로 성지를 찾지 못하는 유럽인들이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체험하며 묵상할 대체 순례지를 만든 것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대도시가 아니라, 이 불편한 알프스 산골이었을까요? 카이미 신부의 선택은 치밀했습니다. 바랄로의 가파른 비탈과 넓은 정상부가 있는 지형은 예루살렘 성지를 단계적으로 재현하기에 최적이었습니다. 중세의 순례는 오늘날 관광지처럼 접근성이 좋은 목적지를 효율적으로 찾아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먼 길을 걸어와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고단함을 감수하는 과정이 순례 신심의 일부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예루살렘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힘들게 올라가며 주님의 수난을 체득하는 공간을 지향한 겁니다. 바랄로의 언덕은 오래전부터 북이탈리아 성모 신심과 관련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이곳은 트리엔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신심 고양 차원에서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 지역에 조성된 여러 사크로 몬테의 모태가 됩니다. 지난번 소개한 바레세의 사크로 몬테도 그렇게 생겨났지요. 바랄로 성모 승천 바실리카의 주제대. 17세기 후반 디오니지 부솔라와 몬탈티 형제가 만든 입체 조각과 프레스코화로 하늘의 영광을 구현했다. 검은 대리석 기둥의 주 제대와 스쿠롤로는 1740년 무렵 베네데토 알피에리의 설계에 따라 정비되었으며, 수난의 길 끝에서 순례자를 맞는 희망을 심어준다. 지하 소성당에는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만든 목조 성모상이 있다. 제29 소성당의 빌라도 법정. 16세기 초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회화와 입체 조각을 결합한 장면들을 구성했고, 이후로 여러 예술가가 합류해 오늘의 복합 성지 풍경을 완성했다. 800개가 넘는 실물 크기 조각상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스도 삶을 체험하며 걷는 오름길 밀라노 외곽을 벗어난 버스는 피에몬테 평야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북서쪽으로 달립니다. 논과 들판, 마을의 종탑이 이어지는 창밖 풍경은 티치노강을 건너 세시아 골짜기로 접어드는 순간부터는 사라집니다. 산그늘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강을 거슬러 오르면, 가파른 암벽 위 요새처럼 솟은 사크로 몬테를 품은 바랄로에 다다릅니다. 버스에서 내려 도심으로 들어가면 카이미 신부가 사크로 몬테 조성과 함께 지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이 나옵니다. 허름한 외관이라고 지나치기 쉽습니다만, 꼭 들러야 합니다. 제대와 회중석 사이를 가르는 거대한 벽에 주님 탄생 예고부터 수난과 부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대하 서사시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죠. 글을 모르는 순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가난한 이들의 성경’이자, 본격적인 사크로 몬테 순례에 앞선 오리엔테이션 공간이었습니다. 성당을 나와 길 건너 오르막길을 오르면 하나둘씩 소성당들이 나타납니다. 좀 전에 본 그림 속 장면들이 숲속의 무대에서 다시 펼쳐집니다. 사크로 몬테는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 하나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모 승천 바실리카를 포함해 45개의 소성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소성당 안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부터 주님 탄생 예고, 베들레헴 탄생, 그리고 그리스도 삶과 수난의 장면들이 800개의 실물 크기 조각상과 프레스코화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마치 2000년 전 그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사크로 몬테 정상부의 성모 승천 바실리카.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상부는 웅장한 입구와 두 개의 광장, 회랑 건물과 열주가 어우러져 고대 예루살렘의 성곽 도시를 떠올린다. 광장 중앙의 바실리카는 1614년에 착공됐으며, 1932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바랄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가우덴치오의 벽’.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1513년에 그린 폭 약 10.4m, 높이 약 8m의 대형 프레스코화. 주님 탄생 예고부터 부활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21개 장면에 담은 프레스코 연작으로 사크로 몬테 순례의 서막을 알린다. 수난의 목격자에서 신앙의 삶 증거자로 사크로 몬테의 상부 구역인 정상의 황금문을 지나 광장에 들어선 순간, 수난의 목격자로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됩니다. 두 광장을 둘러싼 회랑과 소성당들은 수난의 핵심 장면을 보여줍니다. 군중에 둘러싸인 빌라도 법정의 팽팽한 긴장감, 골고타 언덕의 묵직한 무게, 성묘의 서늘한 침묵이 차례로 영혼을 파고듭니다. 수난의 현장들 끝으로 성모 승천 바실리카가 서 있습니다. 1614년부터 증축된 성당으로 여러 시대의 신심이 층층이 쌓인 바랄로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성당 내부는 극적인 긴장감보다 차분하고 응축된 분위기가 감돕니다. 주제대를 가득 채운 성모 승천의 찬란한 도상은 이곳이 단순히 과거의 고통을 복기하는 수난극 무대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위한 순례지임을 보여줍니다. 아들의 수난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십자가 아래 끝까지 머물며 그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최초의 그리스도인’. 고통의 심연을 지나서 맞이하는 성모님의 영광은 지금 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수난의 길이 찬란한 부활의 빛으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통로임을 일깨워 줍니다. 성모님이라는 희망의 거울을 통해 저마다의 십자가 너머에 약속된 빛나는 미래가 보입니다. 바랄로의 순례가 가슴 깊이 남는 까닭은, 이곳이 아름다운 풍광을 넘어, 주님의 수난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묵묵히 따라갈 용기를 건네는 장소이기 때문일 겁니다. 환호는 짧고 십자가는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그 좁고 가파른 길 끝에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례 팁> ※ 밀라노 람푸냐노 터미널 ↔ 바랄로 정기 버스.(9:40분 출발, 2시간 소요, 시즌·요일별 운행 확인할 것) 사크로몬테 입구에서 정상까지 도보로 20분, 마을에서 정상부까지 케이블카가 있다. 유네스코 등재 9개 성지 통합 가이드 공식 앱 ‘Sacri Monti’. ※ 성모 승천 바실리카 미사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9:30·11:30·17:00, 평일 17:00(동절기 16:00), 바실리카 개방 시간: 8:30~12:20·14:15~18:30. 정상부에 순례자를 위한 숙소 및 레스토랑이 있다.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cpbc2026.03.25

의정부·제주교구 신자들, 황사영 가족의 삶과 신앙 기려황사영 순교순례지 성역화 준비 부부의 사랑 잇는 순례길 기획 의정부교구와 제주교구 평협 임원들이 18일 의정부교구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18일 의정부교구 황사영 순교순례지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 순교자 묘 앞에서 주모송이 울려 퍼졌다. 의정부교구 신자들과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마리아, 1773~1838)의 묘를 대정성지로 조성해 정난주 증거자를 기리는 제주교구 신자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다. 두 교구 신앙의 후손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가정 성화의 모범을 보여준 부부의 삶을 함께 기억했다. 황사영 알렉시오·정난주 마리아 부부는 박해 시기에 남편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고 아내와 아들은 노비가 돼 제주도로 유배당했다.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황사영 순교순례지 성역화를 준비하면서 제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함께 ‘황사영 알렉시오, 정난주 마리아 부부를 잇는 순례길’을 계획했다. 두 교구 평협의 순례 소식에 한국평협도 지원에 나섰다. 5월에는 의정부 평협 임원들이 제주교구를 방문해 아내 정난주 마리아의 삶과 신앙을 되새겼고,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18~20일 제주 평협 임원들이 의정부교구를 찾아 남편 황사영 알렉시오의 영성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제주 평협 이남준(요한) 회장은 “부부의 신앙이 지금까지 이어져 두 교구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게 돼 감격스럽다”면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임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정부 평협 고진철(라우렌시오) 회장은 “이번 순례를 계기로 성지와 순례지에 더 많은 이가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조한건(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부의 한국 천주교 창설 역사와 황사영 알렉시오의 삶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튿날에는 마재 성가정 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성지 인근 정약현 묘를 찾아가 정난주 마리아 묘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며 200여 년 만에 딸과 아버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마재 성가정 성지 일대는 정난주 마리아의 아버지 정약현과 형제들(정약전·정약종·정약용)의 고향으로 정난주의 친정이다. 순례단은 20일 양주순교성지 성전봉헌식에도 함께하며 순교한 신앙 선조들을 위해 기도했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는 18일 황사영 순교순례지에서 제주 순례단을 환영하며 미사를 주례했다. 손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지금 누구보다 기뻐하실 분은 황사영 순교자이실 것”이라며 “순교자가 그토록 원했던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그 후손들이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기억하면서 미사를 하는 건 굉장히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앙인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면서 “순교자들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꾸준히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살자”고 당부했다. 이번 순례에는 두 교구 평협 임원과 담당 사제, 한국평협 임원 등 40여 명이 참여했다. 두 교구는 앞으로 황사영·정난주 부부 관련 성지와 순례지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박수정 기자catherine@cpbc.co.kr박수정2025.09.24

바쁘고 고민 많은 청년들, 영적 휴식으로 활력 충전 청년 렉시오 디비나 ‘아씨스텐자’ 살레시오 청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아씨스텐자’(assistenza)에 참여한 청년들이 나눔 전 동반하는 수도자와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살레시오회 제공 살레시오회가 만든 영적 독서 모임 성경 읽고 동반자 강의, 침묵 피정 말씀의 깊은 울림, 삶을 새롭게 해 일상 더 깊에 살아가는 체험 나눠 자극적인 볼거리와 놀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청년들이 고요한 경당에 앉아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성찰하는 곳이 있다. 말씀을 통해 성찰한 내용을 나누는 것도 자연스럽고 진지하다. “사도들을 파견하시는 내용을 묵상했어요. 파견받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고민해봤습니다. 진심 어린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 아닐까요?” 성서 주간(24~30일)을 맞아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진행되는 청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아씨스텐자(assistenza)’ 참가 청년들을 만났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경 말씀을 익히는 모습도 보기 힘들어지는 요즘, 이들은 매주 복음과 나눔으로 무장하고 있다. 살레시오 영성의 핵심어이기도 한 이탈리아어 ‘아씨스텐자’는 우리말로 ‘청년과 함께하며 그들의 모든 처지를 보살피는 일’이란 뜻이다. 청소년·청년을 위한 사도직에 투신하는 살레시오회는 이 시대 청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거룩한 독서 ‘렉시오 디비나’ 모임을 만들었다. 하느님 말씀이 청년들 삶에 현존하며 동반한다는 의미에서 모임 이름을 아씨스텐자로 정했다. 올해 3월 마르코 복음으로 16주간 모임을 한 차례 마쳤고, 9월부터는 마태오 복음으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 12명이 함께하고 있다. 모임 전날 성경 말씀을 전자책 형태로 공유해 미리 접하게 한다. 모임에서는 성령 청원 기도를 시작으로 담당 사제가 그날 말씀의 핵심을 10~15분 정도 해설해준다. 이어 경당에서 40분간 묵상 후 3~4명씩 조를 나눠 수도자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서로의 삶을 나눈다. 매월 넷째 주에는 렉시오 디비나 대신 미사와 강의·찬양·친교 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16주간 여정 후에는 말씀을 보다 깊이 묵상하기 위해 침묵 피정을 한다. 교회 내에는 렉시오 디비나와 청년성서모임이 곳곳에 있다. 그중 아씨스텐자의 특별한 점은 묵상 시간이 따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김예슬(마리아, 36)씨는 “수도회 경당에서 말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예수님께서 초대해주신 느낌을 받는다”며 “공부 차원에서 나아가 말씀이 삶 속에 들어오는 시간이 된다”고 했다. 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2000년 전 성경 말씀이 어떤 힘이 있을까 싶지만, 말씀을 체화하다 보면 삶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매번 나눔조가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또래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매력도 전했다. 직장인이자 학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퇴근과 하교 후면 피곤할 법도 하지만, 화요일 오후 7시 30분을 기다리며 ‘월요병’까지 사라졌단다. 매주 2시간 거리에서 오는 청년도 있다. 최정혜(크리스티나, 33)씨는 “모태 신앙이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며 “신부님의 족집게 강의에 이어 침묵 안에 말씀을 받아들이다 보니, 깊은 울림에서 오는 힘이 삶을 새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임에 동반하고 있는 이정은(살레시오회) 신부는 “성경은 신앙의 길잡이”라며 “성경을 읽고 나누는 것만큼 예수님을 가까이 접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청년들은 정말 바쁘고 고민이 많다”며 “매주 한 번이라도 말씀을 통한 묵상, 영적 휴식을 취한다면 놀라운 힘으로 일상을 더 깊게 살아가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씨스텐자는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싶은 모든 청년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내년에도 루카·요한 복음으로 모임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신문취재팀 박민규2024.11.20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 의안집 주요 내용](//cpbc.co.kr/CMS/newspaper/2014/09/rc/530785_1.0_titleImage_1.jpg)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 의안집 주요 내용가정 생활과 교회 가르침간 괴리 점검과 사목대안 모색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정 사목과 복음화’를 주제로 소집한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10월 5~19일)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주교시노드 사무처는 6월 26일 임시총회에서 다룰 내용이 담긴 「의안집」을 발표하며 “각국 주교회의와 교구, 본당, 전문가와 교회 단체장, 신자와 비신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이 「의안집」은 오늘날 가정 현실에 대한 종합적 전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주교시노드 사무처는 의안집 작성을 위해 2013년 11월 각 지역교회와 관계자들에게 가정 문제와 사목에 관한 질문지(예비문서)를 보낸 바 있다. 세계주교시노드 사무총장 로렌초 발디세리 추기경은 “「의안집」은 동거, 사실혼, 이혼자, 미혼모, 동성 결합 등 교회 안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 대한 현실적 정보를 담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교회는 교회 가르침에 맞고 평화로우며 화해를 이룬 삶으로 이들을 이끄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임시총회 결과와 총회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가정 문제들은 2015년 10월 4~25일 열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4차 정기총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임시 총회 「의안집」은 모두 127쪽, 159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159개 항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는데 제1부에선 ‘오늘날 가정에 관한 복음의 전달’(1~49항)을, 제2부에선 ‘새로운 도전들에 맞서는 가정사목’(50~120항)을, 제3부에선 ‘생명에 대한 개방성과 부모의 양육 책임’(121~159항)을 다루고 있다. 제1부 오늘날 가정에 관한 복음의 전달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담았다. 가정에 관한 성경 말씀과 교회 문헌에 언급 된 가정의 의미를 설명하며 교회가 ‘사회와 교회 공동체의 핵심 세포’인 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의안집」 제1부에선 교회 가르침이 신자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의안집」은 “가정에 관한 교회 가르침의 지식 전달과 수용은 가정생활, 교회 공동체,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가르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회 교리 일부 요소들은 중요한 것임에도 이에 대한 신자들의 다양한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면서 피임, 이혼과 재혼, 동성애, 동거, 혼전 성관계, 체외 수정 등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예로 들었다. 이 밖에도 대중 매체의 영향, 쾌락주의적 문화, 상대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 등도 혼인과 가정에 대해 교회가 제시하는 가치와 심각한 갈등을 빚게 한다고 판단했다. 「의안집」은 문제 해결을 위해 잘 준비된 성직자와 봉사자의 필요성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강조했다. “일부 주교회의는 가정과 관련된 도덕적 문제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강하게 거부하는 이유는 개인적 공동체적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서 “교리적으로 아무리 정확한 설명도 그러한 만남을 대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제2부 새로운 도전들에 맞서는 가정 사목에서는 먼저 현장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가정 사목 프로그램과 그 필요성을 소개했다. 이후 가정에 영향을 주는 도전들을 살펴보며 동거, 사실혼, 십대 미혼모 등 어려운 사목적 상황에 처한 가정 현실을 상세히 분석했다. 「의안집」은 가정이 직면한 내적 위기로 가족 간 소통의 어려움을 꼽았고, 부부의 이혼과 별거, 가난과 폭력 등도 가정을 붕괴시키는 내적 원인으로 봤다. 알코올과 약물 중독, 인터넷과 사회 관계망 중독도 가족 구성원 사이의 대화를 방해하며 가족 관계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진단했다. 가정이 직면한 외적 위기로는 경제 위기와 고용 불안, 가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 등이 있다고 봤다. 또한 사목자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가정을 파괴하거나 사목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가정 공동체를 소외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안집」은 동거와 사실혼 등으로 남녀가 공식적인 혼인을 미루는 세태를 분석하고, 별거ㆍ이혼ㆍ재혼한 이들과 이들 가정의 자녀들, 십대 미혼모에 대한 문제도 살폈다. 또 교회법상 ‘불법적’ 상황에 처해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이혼자와 재혼자 문제를 거론하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법적인 상황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불법적 상황에 있음을 알고 성사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로 고통을 겪는 신자들의 좌절감과 소외감에도 주목했다. 동성 결합에 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교회가 아직 이들에 대한 사목적 돌봄의 준비가 부족함을 인정했다. 「의안집」은 많은 이들이 혼인 무효 소송의 교회법적 절차를 간소화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을 전하며 “교회는 단죄하는 심판관의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고 자녀를 보듬어 안고 그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상처를 보살펴 주는 어머니의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자비의 교회가 돼야 함을 강조하며 “교회는 크나큰 자비로 그 자녀들이 화해의 길을 걷도록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동반의 수단을 찾도록 요청받고 있다”고 했다. 제3부 생명에 대한 개방성과 부모의 양육 책임을 다루며 교회 가르침이 세속화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현실을 지적했다. 「의안집」은 “현재의 사고방식은 인간과 그 생명에 관한 교회의 근거들과 관점을 고려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을 낡아 빠진 것으로 성급히 무시해 버린다”고 우려했다. 또한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들이 자녀에게 신앙을 전해주기를 주저하는 세태에 관해 “젊은 부모들이 기쁨과 확신에 차 신앙의 선물을 전달하는 데 유약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안집」은 부모가 교회법적으로 불법적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그 자녀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사목자들에 특별한 관심을 요청했다. 「의안집」은 “개별 교회는 (부모가 불법적 상황에 놓인 가정을) 어떠한 편견 없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어린이와 젊은이의 신앙 여정에서 대부모의 가치와 역할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많은 부모와 대부모들이 성사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현실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26.02.12

메시아의 수난·죽음 통해 정화되리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69) 즈카르야서 즈카르야 예언자가 선포한 메시아는 수난과 죽음을 통해 백성을 정화하고 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는 분이시다. 이 메시아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구체적으로 일치한다. 미켈란젤로, ‘즈카르야 예언자’, 1508~1512년, 시스티나 소성당, 바티칸. 히브리어 즈카르야는 ‘자카르’(기억하다) 동사에서 파생한 고유명사로 우리말로 “야훼께서 기억하신다”란 뜻입니다. 구약 제1경전 「타낙」의 ‘즈카르야’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Ζαχαριαs’(자카리아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Zachari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즈카르야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즈카르야서를 하까이서 다음으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즈카르야가 하까이 예언자 바로 뒤이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는 ‘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인 기원전 520년 10~11월, 곧 하까이 예언자가 마지막 신탁을 선포하기 한 달 전에 예언 활동을 시작합니다.(1,1; 하까 2,10.20) 그리고 그는 기원전 518년 11월까지, 곧 기원전 515년 새 성전이 봉헌되기 3년 전까지 활동합니다.(7,1) 즈카르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실성에 호소하고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선포하며 성전 재건 운동을 촉구한 하까이의 예언을 강화합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하까이처럼 성전 재건과 하느님의 구원을 예언하지만 하까이와 달리 “종말이 임박했다”고 선포합니다. 즈카르야는 ‘이또의 손자’(1,1.7) 또는 ‘이또의 아들’(에즈 5,1; 6,14)로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또 집안의 우두머리 사제였습니다.(느헤 12,16) 그래서 그는 거룩한 땅의 정결과 거룩함을 염려하고 성전의 역할을 강조할 뿐 아니라 기념 단식의 존폐와 제의에 관해 자문받아 하느님의 답을 전합니다.(2,16; 5,5-11; 7,1-3; 8,18-19) 즈카르야는 여느 예언자들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호소합니다.(1,3-6; 7,4-14; 8,16-17) 환시 역시 이전의 예언자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의 환시 대부분은 아모스서 7장과 또 ‘측량줄을 쥔 천사’(에제 40,3-4)와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에제 2,9-10)는 에제키엘서와 연관돼 있습니다. 즈카르야서는 소예언서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인 1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또 제1ㆍ2ㆍ3 이사야로 구분하는 이사야서처럼 즈카르야 예언자의 정통을 잇는 2개의 작품이 묶어져 완성된 경전입니다. 이를 성경학자들은 ‘제1즈카르야서’(1─8장)와 ‘제2 즈카르야서’(9─14장)로 구분합니다. 이 두 부분은 ‘머리글’을 통해 구별합니다. 제1 즈카르야서의 머리글은 하까이서처럼 특정한 날짜와 신탁의 정식이 드러납니다. “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에 주님의 말씀이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크야의 아들인 즈카르야 예언자에게 내렸다.”(1,1) 반면 제2 즈카르야서의 머리글은 단순히 “신탁”(9,1)으로 시작합니다. 제1 즈카르야서는 다시 ‘여덟 개의 환시’(1─6장)와 ‘참다운 단식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7─8장)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8개 환시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당신 백성을 해방하고 새로운 성전과 함께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시대를 열어 줄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그중 3개의 환시는 조상들처럼 되지 말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고, 나머지 5개 환시는 아직도 바빌론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이 단식하거나 축제를 지키는 것은 모두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단식일들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고, 그날들은 오히려 즐거운 축일이 되고, 바르게 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예루살렘은 구원된 세상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제2 즈카르야서 역시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메시아 도래에 대한 희망’(9─11장)을 전하는 전반부와 ‘예루살렘의 종말론적 재건’(12─14장)을 예언하는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모든 민족을 정화한 후 모든 이가 하느님 백성으로 합류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메시아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설 것입니다.(9,9-10) 그러나 그 전에 세상의 많은 민족이 하느님과 전쟁을 치를 것이며 그 전쟁이 끝나면 흩어졌던 백성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9,11-17) 또 참된 목자이신 분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헤매며 고생하는 백성을 몸소 보살피시기 위해 오십니다.(10,1-2) 그는 거짓 목자들을 쳐부수고 흩어진 양 떼를 모아 재건하실 것입니다.(10,3-11,17) 후반부는 하느님께서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정화하십니다.(13장) 이민족들의 승리라는 고통을 통해 예루살렘이 새로 태어남으로써 정화는 완성됩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새 백성의 중심지가 되고,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여드는 신앙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14,1-21) 제2 즈카르야서의 중요성은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을 희망으로 제시한 데 있습니다. 특히 12,1─13,6은 메시아의 희생을 통한 다윗 왕조의 재건을 시사합니다. 제2 즈카르야서에 등장하는 메시아는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9,9) ‘찔려 죽은 이’(12,9-14)의 모습입니다. 제2 즈카르야서가 선포하는 메시아는 수난과 죽음을 통해 결국에는 백성을 정화하고 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는 메시아십니다. 이러한 메시아의 모습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구체적으로 일치합니다. 신약 성경 특히 네 복음서는 이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4.17

성경 해석의 정석 「제롬 성경 주해」 ‘한국어판’ 첫 테이프를 끊다성서모임·성서와함께 50주년 사업「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첫 권 「창세기」 출간 카라바조 작 ‘예로니모 성인’, 1606년. 2022년 ‘가톨릭성서모임’ 창립 50주년 및 2023년 도서출판 ‘성서와함께’ 창사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의 첫 권 「창세기」가 출간됐다. 성서모임·성서와함께 50주년 사업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 첫 권 「창세기」 출간 원서는 가톨릭 성경 해석에 있어 전통에 충실하며 최신 연구 반영 성서와함께, 26명 번역자 선정 가독성 높은 글에 방향성 두고 2027년까지 총 33권 출간 예정 ‘제롬(Jerome)’은 성경을 당시 서민들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놓은 예로니모(Hieronymus) 성인의 영어식 이름으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는 1968년 전 세계 가톨릭 학자들이 모여 만든 「제롬 성경 주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의 전면 개정판(2022)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제롬 성경 주해」의 초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현대 성경학의 발전상을 한 권으로 축약하여 ‘현대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경 분석과 성경 해석이란 무엇인가’를 보다 많은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로 간행되었다. 이후 1990년 개정판이 출간되는 등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책으로 확산되었다. 성서와함께가 한국어판으로 출간한 「창세기」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2022년 개정판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인 「복음의 기쁨」에 깊이 공명하며 작업이 시작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는 성경학자들이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했고, 성경 73권 전체의 주해와 관련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아 모든 교회 구성원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개정판의 저자가 거의 사제와 수도자였다면,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경우 절반 정도가 평신도이고, 저자의 문화적 다양성이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출간을 적극적으로 반긴 프란치스코 교황은 친히 쓴 ‘서문’에서 “성경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책이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흩어짐과 분열에서 떠나 일치를 향해 나아간다”며 “하느님의 말씀은 신자들을 하나로 묶고 한 백성으로 만들며, 그것이 바로 이 성경 주해서에 나타난 학문 유형인, 신앙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성경 연구의 중요성이며 사명”이라고 전했다. ‘성서와함께’는 이 같은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태생적 특징을 살리고 한국 교회에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2200여 쪽의 방대한 원서를 오는 2027년까지 총 33권(성경 입문 3권, 구약성경 14권, 신약성경 11권, 주제별 논문 5권)으로 나누어 출간할 예정이다. 원서 자체가 여러 저자의 모음집이고 사목적 성격이 강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님성서연구소 주원준(한국어판 번역·출판 위원장, 토마스 아퀴나스) 수석연구원을 필두로 평신도, 수도자, 사제 등 26명의 번역자를 선정했고, 학술적 엄밀함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가독성이 높은 글을 우위에 둔다는 방침으로 작업하고 있다. 주원준 위원장은 “남녀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번역하는 것은 시노달리타스의 시대에 적절한 일”이며 “한국어 번역본을 낱권으로 나누어 내기로 한 것은 ‘늘 가까이 두고’ 참고할 수 있게 하려는 이 주해서 본래의 목적을 한국적 상황에 충실하게 실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첫 열매인 「창세기」는 인류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다룬 ‘오경 개관’과 ‘창세기 입문·주해’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를 이어 연말까지 「마르코 복음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 「교회의 성경 해석」이 잇따라 공개될 예정이다. 도서출판 ‘성서와함께’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가 운영하는 성경 전문 출판사이다. 가톨릭대학생성서모임이 발족한 이듬해인 1973년 성서가족 소식지 「성서와함께」를 발간하며 첫걸음을 내디딘 이후 지금까지 가톨릭성서모임 그룹공부와 성서사십주간 교재, 성경 및 영성 관련 단행본 300여 종을 발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0.11

우후죽순 출현한 이단에 신앙고백으로 맞선 교회[저는 믿나이다] (3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 초대 교회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릇된 가르침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으로 대응했다. 프라칸자노 작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순교’, 이탈리아 로마 보르게세미술관.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5)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전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처럼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인간 예수’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를 하나의 명제로 일치시켜야 했습니다. 곧 인간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선포해야 했습니다.(요한 11,27 참조)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지, 어떻게 한 인간이 구세주가 될 수 있는지,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이 되셨는지를 이성적으로 추론하고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경과 교회의 성전 안에서 충만하게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이단들이 출현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양자설’(養子說)입니다. 비잔티움의 테오도투스와 스미르나의 노에투스, 사모사타의 파울루스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천주성)을 부정하며,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 예수를 양자로 입양하여 성자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권능을 받아 기적을 일으켰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께서 이루신 공로에 따라 신적 지위를 들어 올려 주시고 덕행의 상급을 주셨다고 설파했지요. 두 번째는 양자설과 반대로 단일 신성만을 강조한 ‘양태론’(樣態論)입니다. 노에투스·프락세아스·사벨리우스 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각 위격을 구분하지 않고,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그때그때 성부·성자·성령의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곧 성부와 성자·성령 세 위격의 실제적 구분을 부인하여 아버지 하느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성부 수난설’을 설파했지요. 양태론은 양자설과 함께 이단으로 단죄됐습니다. 양자설과 양태론의 중도 입장을 취한 ‘종속론’(從屬論)도 대두했습니다. 종속론자들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첫 번째 피조물이자 아버지 하느님의 중개자 또는 대리자로, 모든 피조물에 비해 우월한 존재이지만 본성에 있어 하느님과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말씀은 하위 하느님, 두 번째 하느님, 창조하는 하느님과 창조된 피조물 사이의 중개자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이단으로 단죄됩니다. 영지주의자인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마르키온 등은 극단적인 ‘이원론’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상위의 그리스도와 하위의 예수를 구분하여 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결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고스와 외아들,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는 서로 다른 자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조차 다른 존재라고까지 합니다. 그는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물 안에 있는 선한 하느님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울러 발렌티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시몬 마구스와 함께 예수는 인간으로 강생하지 않고 단지 인간처럼 보이게 육신을 빌려왔을 뿐이며, 그가 겪은 십자가 수난의 고통 역시 가상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일련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자문역을 맡아 「교회 헌장」 「교의 헌장」 「계시 헌장」 완성에 크게 이바지한 알로이스 그릴마이어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주류 교회의 선포자, 목자 그리고 신학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한편으로 전해진 가르침을 보존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 가르침을 영지주의로부터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답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이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그리스도교 안으로 반입되지 않았고, 오히려 계시 신앙과 구원 신앙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조명되었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368쪽) 교회는 그 첫 조치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신약 성경 ‘요한의 첫째·둘째 서간’과 초기 교부들인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등은 예수를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144년 마르키온을 파문하지요. “누군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르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귀를 막으십시오.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시고 마리아에게서 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먹고 마시셨으며 참으로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 하시고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것들이 보는 앞에서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으니 예수님은 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졌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분을 닮도록 마찬가지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참 생명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7’)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