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성 가롤로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 11월 4일)](//cpbc.co.kr/CMS/newspaper/2009/10/rc/314174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성 가롤로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 11월 4일) 1538~1584. 이탈리아 출생. 밀라노대교구장.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의 쇄신에 앞장선 개혁가이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도 헌신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자선가였다.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일찍부터 사제직에 뜻을 두고 교회법과 신학 공부에 매진했다. 1559년 성인의 외삼촌이 교황(비오 4세)으로 선출됐다. 일찍이 성인의 명석함을 알아본 교황은 이듬해 22살인 성인을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파격 임명했다. 성인은 교황 비오 4세를 도와 10년간 중단된 트리엔트공의회 재개에 힘써 1562년 결국 공의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성인은 트리엔트공의회 교리서 편찬을 감독했고 사제용 성무일도서를 새로 간행했다. 성인은 1563년 사제품을 받고 곧 밀라노대교구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1565년 교황 비오 4세는 급작스레 사망했고 교황 비오5 세가 뒤를 이었다. 성인은 트리엔트공의회에서 결정된 교회 쇄신과 혁신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성직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인은 자신의 수입 전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가난을 몸소 실천했다. 또 전염병과 극심한 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도시를 떠났지만 교구장으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환자 가정방문과 고해성사 집전, 미사 봉헌에 헌신했다. 성인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 35-36) 라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양떼를 돌봤던 성인은 결국 건강이 악화돼 1584년 선종했다. 그리고 1610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됐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1일 : 모든 성인, 성 마르첼로(주교, 프랑스), 성 발렌타인 베리오 오초아(순교, 주교, 스페인) ▲2일 : 성 빅토리노(순교, 주교, 오스트리아), 성 테오도토(주교, 터키) ▲3일 :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수사, 페루), 성 플로로(주교, 프랑스), 성 피르민(주교, 스페인) ▲4일 : 성 클라로(순교, 잉글랜드), 성 에메리코(왕자, 헝가리), 성 비탈리스(순교, 이탈리아) ▲5일 : 성 레토(증거자, 프랑스), 성녀 베르틸라(수녀원장, 프랑스) ▲6일 : 성 노니오 알바레스 데 페레이라(수사, 포르투갈), 성 레오나르도(은수자), 성 윈녹(수사, 영국) ▲7일 : 성 아킬라(주교, 이집트), 성 에르네스트(순교, 수도원장, 독일), 박수정2009.10.27

사제직의 정점 '성찬례'신학과사상학회 제5차 학술심포지엄 ▨트렌토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따른 사제직의 이해 :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트렌토공의회, 종교개혁자들 부정한 '성사적 측면' 강조사제 직무의 핵심인 성찬례, 교회 쇄신과 성화의 원동력 트렌토공의회는 16세기 종교 개혁으로 야기된 혼란상을 극복하기 위해 개최됐다.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 된 마르틴 루터(1483~1546)는 교회의 폐해 원인을 인간의 도덕적 결함보다 참된 복음의 왜곡에 뒀다. 루터의 신학적 비판은 기존 가톨릭교회 교리와 교회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종교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세례와 성만찬만을 성사로 인정했다. 그는 성품성사와 나머지 다섯 가지는 '교부들이 도입한 경건한 관습일 뿐 그리스도가 제정한 성사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성품성사의 부정은 직무 사제직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종교 개혁자들은 유일한 그리스도의 사제직만이 존재하고 세례 받은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해 영적 사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트렌토공의회는 종교 개혁자들이 부정한, 성사적 측면을 강조했다. 희생 제사의 거행과 사죄의 권한을 지닌 직무 사제직, 교회 위계 구조를 부각시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직을 교회 공동체 건설과 성장에 봉사하는 직무로 이해했다. 새로운 교회 이해와 함께 세례를 통한 보편 사제직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 성품을 통한 직무 사제직은 이와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고 가르친다. 즉 직무 사제직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권한으로서 신자들이 자신들의 사제직을 충실하고도 완전하게 수행하도록 돕는 직책으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 곧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는 임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사제들의 세 가지 임무를 유기적인 관계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트렌토공의회와 구별된다. 하지만 사제 직무의 중심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성찬례의 봉헌에 두었다는 점에서는 트렌토공의회와 연계선상에 있다. 두 공의회 모두, 상황과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찬례의 거행의 권한을 사제직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트렌토공의회는 교회 직무의 본질을 설교직으로 보려는 종교 개혁자들에 반대해 직무 사제직의 성찬례 거행 권한을 강조했다. 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 생활 전반과 관련해 성찬례와 직무 사제직을 연결 짓는다.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이며 '은총의 샘'으로서, 사제 직무의 목표이며 정점이다. 사제 직무의 핵심인 성찬례는 교회 역사에서 교회 쇄신과 성화의 원동력이 돼왔다. 교회 역사에서 진정한 개혁이 성찬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제의 해'가 목표로 하는 사제들의 내적 쇄신도 성찬례에 중심을 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신원과 삶 : 조현권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 말씀 선포는 첫째 직무,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 따라야기도 없는 사제직은 단순 기능직, 활동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사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제물이 되어 성부께 완전한 구원의 제사를 드리셨으며,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셨고, 성령을 통해 구세주를 낳고 기르시는 가운데 자신을 봉헌하심으로써 하느님 구원 계획에 협력하셨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사제로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삶과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신약의 사제직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신 대사제이시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생애를 통해 하느님 뜻에 순종하시며, 성령의 거처요 도구로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긴밀히 함께하셨다. 마리아와 성령의 관계는 교회가 그분께 드리는 '성령의 신부'라는 호칭에 잘 드러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과 1994년 교황청 성직자성이 발표한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을 중심으로 사제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정립해본다. 사제는 성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께서 파견하신 성자와 성사적으로 결합하며,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삶과 활동을 이어간다. 사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나누는 사랑의 대화 속에서 친숙하고 인격적으로 이 관계를 생활화해야 한다. 특히 사제가 '그리스도의 성사'로서 살아가는 것의 토대는 그의 '인간성'이 돼야 한다. 성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자신에게 없던 그리스도성을 획득해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성사로서의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사제들의 첫째 직무이다. 사제직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현존시키는 성체성사이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과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요, 정점으로서 사제직의 출발이고 수단이며 목표가 된다. 사제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신'(마태 20,28)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살아아 한다. 또한 교황과 주교단 특히 서품식 때 '각별한 존경과 순명'을 바칠 것을 서약했던 자신의 교구장 주교와 친교를 이루지 않는 사제직이란 있을 수 없다. 기도가 없는 사제직은 단순한 기능직에 불과하다. 사목 활동의 요구가 많아지더라도 외적 활동이나 성과주의에 빠지지 말고, 기도하시는 그분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청빈과 기도와 함께 독신의 삶을 보여주셨다. 독신으로 삶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이지혜 기자 이지혜2010.04.21
가톨릭 굿뉴스, 가톨릭 동영상 UCC 서비스 개시평화방송 TV 방영 영상물 등 제공 가톨릭 굿뉴스(www.catholic.or.kr)가 20일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에 부응해 가톨릭 동영상 UCC(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 제작 콘텐츠) 서비스를 오픈했다. 가톨릭 UCC 서비스는 기존의 텍스트, 이미지 중심의 정보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톨릭 정보를 멀티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동영상 UCC로 제공하는 서비스. 가톨릭 굿뉴스를 운영하는 서울대교구 전산실(실장 주호식 신부)은 평화방송 TV 방영 영상물과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교육자료, 생명위원회가 제공하는 생명 UCC, 명동주교좌본당 미사강론 등 총 700여 개 동영상 컨텐츠를 제공하는 UCC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굿뉴스 회원이면 누구나 직접 제작한 성경ㆍ교리ㆍ강론ㆍ교회음악 등 가톨릭 정보와 교구 및 본당 행사, 성지ㆍ사적지 관련 영상 컨텐츠를 굿뉴스에 올려 네티즌들과 공유할 수 있다. 회원들은 AVI, MPG, WMV 형식의 동영상을 굿뉴스 UCC 서비스에 올릴 수 있으나, 이용자가 UCC를 실행할 때 플래시 파일로 변환돼 보이기 때문에 더욱 빠른 속도로 감상할 수 있다. 굿뉴스 측은 "서버 증설, 회선 속도 향상을 통해 가톨릭 UCC 서비스를 보다 원활하게 제공할 것"이라며 "가톨릭 UCC를 통해 굿뉴스가 보다 생생한 가톨릭 정보와 문화 나눔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09.07.21
![[격동의 현대사-교회와 세상]- 11 '교회 일치의 상징' 공동번역성서](//cpbc.co.kr/CMS/newspaper/2009/01/rc/279706_1.0_titleImage_1.jpg)
[격동의 현대사-교회와 세상]- 11 '교회 일치의 상징' 공동번역성서세계 첫 공동번역…성서대중화ㆍ복음화 이바지「공동번역 성서」 구약편을 함께 번역하는 선종완(왼쪽) 신부와 문익환(오른쪽) 목사. 사진제공=성서와 함께 1977년 4월 10일, 한국 성경 번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가 이룩됐다. 한국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힘을 합쳐 신ㆍ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를 번역하고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발행한 것이다. 1969년 1월 6일 번역에 들어간 지 8년 만의 결실로, 한국 교회는 감격에 젖었다. 이로써 가톨릭교회는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의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1790~1909), 한기근 신부 등의 「사사성경(四史聖經, 종도행전 포함)」 및 「복음성서」(1910~1948), 선종완 신부의 구약성서 17권(9책, 1958~1963) 발간에 이어 최초로 신ㆍ구약 완역본 성경을 갖게 됐다. 신ㆍ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 발행은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된 지 200년 가까운 세월에 처음 있는 경사였고, 우리나라 성서 번역사에도 '하나의 말씀'이라는 굵직한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천주교회를 비롯해 국한문 혼용 「관주성경(貫珠聖經)」을 써오던 개신교회 가운데 성공회와 일부 감리교 및 기독교장로회, 정교회 등도 이를 채택함으로써 교회일치에도 크게 이바지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하느님' '야훼'라는 표현이나 외경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개신교계 보수신학자들 반대에 부딪쳐 '보편화'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 그리스도교회 일치와 대화를 위한 획기적 시도로 평가됐다. 당시 공동번역 성서 번역에 참여한 문익환 목사와 이현주 목사의 점심 중 대화는 아직도 '신화처럼' 회자된다. "이 목사, 공동번역을 하다보니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어. 뭔지 알아요?" "???" "요새는 구교(Catholic)가 신교(新敎)고, 신교(Protestant)가 구교(舊敎)더라구요." #발간 계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아니었다면, 공동번역 성서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성서학계 보편적 견해다. 공의회 결정을 통해 '말씀 전례'가 '성찬 전례'와 함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됐고, 성서가 "각국어로 적합하고 정확하게, 특별히 성경 원문에서 번역 출간되기를" 권장했을 뿐 아니라, 성경 번역이 "갈라진 형제들과 공동 협력으로" 이뤄지기를 희망했기에 가능했다(「전례헌장」 24ㆍ35ㆍ51항, 「계시헌장」 22항). 이에 한국 천주교회는 「계시헌장」 정신을 구현하고자 1965년 2월 성서위원회를 설립하고, 1968년 2월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성경 번역 원칙 하에 대한성서공회와 '신ㆍ구약 성서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번역에 들어갔다. 이렇게 추진된 공동번역 사업은 2년 만인 1971년 신약성서, 8년 만인 1977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개정판 합본 발간으로 세계 교회 사상 첫 공동번역 결실을 맺었다. 번역 작업에는 신약공동번역위원회에 백민관 신부와 허창덕 신부, 김창렬 주교(가톨릭대 학장 취임으로 한 달 만에 사퇴), 박창환 목사, 정용섭 목사, 김진만 고려대 교수, 이근섭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고, 구약공동번역위원회에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ㆍ김정준 목사 등이 참여했다. 또 문장 위원으로 이현주(동화작가)ㆍ김우규(문학평론가)ㆍ양성우(시인)씨 등도 참여했다. 겨레 역사상 최초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연합해 우리말로 선보인 공동번역 성서 번역 원칙은 축자 번역이나 형식적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Dynamic Equivaence)'을 취했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당시까지 사용하는 명사가 같은 것은 그대로 뒀고 △그렇지 않은 명사는 사전이나 교과서에서 쓰는 명칭을 따랐으며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엔 원어 발음을 따랐다. 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한글로 옮기는 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랐고 원어를 실제로 한글로 표기하는데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당시 구약 번역에 크게 이바지한 선종완 신부는 생전에 펴낸 「제1편 창세기」 머릿말을 통해 "번역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그 참뜻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말 어법이 허락하는 한 글자에까지도 충실하려고 힘쓰는 한편 모든 이들이 성경을 읽고 영적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쉬운 말로 옮기려고 애썼다"고 밝힌 바 있다. #성서 대중화에 '견인차 역할' 대한성서공회에 따르면, 2006년 10월부터 1년간 발행된 공동번역 성서는 1019부에 불과하다. 그 전년도에도 3000부에 지나지 않는다. 1971년부터 1984년까지 14년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73만4000부, 신ㆍ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가 26만2000부나 팔려나갔던 것을 감안하면, 공동번역 성서 수요가 얼마나 줄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이는 2005년 말 대림시기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새 「성경」을 쓰기 시작한 게 직접적 원인이 됐지만, 이에 앞서 1993년 대한성서공회에서 「새 번역 성경」을 낸 것이 보다 큰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 성서는 현재 성공회나 정교회에서나 쓸 뿐, 천주교와 개신교 어느 쪽에서도 쓰지 않는 성경이 됐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를 이대로 포기하기엔 그 의미가 결코 적지않다. 공동번역 성서는 우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인 개신교회와 공동 협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번역했다는 뜻이 있다. 또 국내 천주교ㆍ개신교 성서학계 권위자들이 번역에 함께 참여,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빼어난 문체와 토속적인 낱말이 많이 사용된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 심지어는 어린이들까지도 성서를 친숙하게 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성서의 우리말 번역은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천주교회 성서 읽기운동의 초석이 됐다. 가톨릭성서모임(1972)이나 바오로 성서 모임('성서를 따라서', 1976), 시청각 통신성서(1978) 등이 1970년대에 비롯됐고, 이후 생활성서 여정 성서 모임(1983)과 성서못자리(1990), 성서 백주간(1992), 우리 성서 모임(1993) 등 성서사도직운동으로 이어졌다. 물론 공동번역 성서는 '의역' 때문에 원문의 개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전환기에 성서를 대중화하고 보급하는데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고, 복음화의 지렛대가 됐다. 1999년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작업에 참여한 전무용(53,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부장은 "개인 의견으로는 가톨릭 교회 선교에 알게 모르게 공동번역 성서가 지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본다"며 "공동번역 성서는 매우 좋은 번역본 성경이어서 과거 산물로 버리고 가기엔 안타깝고 새 성경과 상보적(相補的) 관계에 놓여있기에 여러모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두 성경을 함께 볼 것을 권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공동번역 성서는 국내 첫 가톨릭과 개신교 공동 한글판 성경인 공동번역 성서는 구약성서 1925쪽(제2경전 328쪽 포함), 신약성서 505쪽 등 총 2430쪽으로 이뤄져 있다. 부록으로 성서 지도 8장과 지명 색인을 덧붙였다. 번역 원본으로는 신약이 그리스어 성경인 「The Greek New Testament」(1966년, 초판,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발행)를, 구약이 히브리어 성경인 「Masoretic Text in Biblia Hebraica」(1937년, 3판, Rudolph Kittel 편집)를 텍스트로 삼았다. 하지만 번역과 관련, 논의나 절충과정, 논의 결과에 관한 상세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1989년 3월 1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 '한글 맞춤법'에 따라 어법을 바로잡고 중대한 오ㆍ탈자를 교정, 1999년에 개정판을 내 현재에 이른다.cpbc2009.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