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빛, 이웃과 지역사회에 나누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포항지역 본당사목구 설립 60돌 행사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대리구장 전재천 신부)는 포항지역 첫 본당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부활의 빛을 이웃과 지역사회에 나누는 공동체로 새롭게 도약할 것을 다짐했다. 3일 포항실내체육관을 메운 5000여 명의 포항지역 18개(울릉도 2개 본당, 군종교구 충무대본당 포함) 본당 신자들은 조환길(교구장 직무대행) 주교와 포항지역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부활성야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은 포항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신앙 선조들의 희생과 봉사를 기억하며, 부활의 빛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포항지역 공동체와 동고동락한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들과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해 있는 장애인들도 함께해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는 3일 포항지역 본당사목구 60돌 기념행사를 열고, 부활성야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포항지역 청년 축하 공연 '일어나 가자'(마태 26,46)를 주제로 마련된 포항지역 본당사목구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는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성대히 막을 올렸다. 포항지역 청년 축하공연과 지역 유지들의 축사, 공로상 시상 및 축하영상 상영 차례로 진행됐다.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 종문 스님은 축사에서 "(우리는) 어느 지역보다 서로 존중하며 지역 평화를 위해 종교간 우애를 다져왔다"며 "포항지역 20만 불자들과 함께 60주년을 축하드린다"고 전했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천주교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인류에게 사랑을 줬듯이, 포항시민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줬다"면서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시상식에는 무료급식소 '요안나의 집'을 기증한 신순희(요안나, 대해본당)씨 등 포항지역 복음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23명과 예수성심시녀회에 감사패 및 공로상을 전달했다. 또 울릉도 복음화에 헌신한 고 현재룡(비오)씨에게도 감사패가 전달돼 의미를 더했다. 이어 상영된 축하영상은 기쁨의 열기를 이어갔다. 죽도본당을 시작으로 18개의 각 본당 전경사진과 설립연도, 주보성인이 적힌 화면이 뜰 때마다 본당 신자들 환호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또 초창기 공소 회장과 초대 신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공소에 성사를 주러 온 신부 이야기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풀어놨다. 포항 가톨릭 공동체 일원인 포항성모병원 간호사와 의사들과 사회복지시설 들꽃마을에 있는 장애인 등 모두 축하 인사를 화면으로 전했다. 직접 수확한 특산물 봉헌 3부 부활성야미사에선 부활초를 들고 입장하는 사제단 행렬로 장관을 이뤘다. 포항지역 15개 본당 어린이 복사단과 성가대도 한 몸이 돼 부활의 기쁨을 노래했다. 성찬 전례에서는 각 본당 신자들이 직접 수확한 특산물을 봉헌해 눈길을 끌었다. 대게와 굴문어, 전복, 사과를 비롯해 충무대본당에선 군인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만든 초코파이를 봉헌에 웃음을 자아냈다. 생명나눔운동의 일환으로 1453명의 장기기증 신청서도 봉헌했다. 조환길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60주년 주제를 '일어나 가자'로 택했듯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하는 때"라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부활의 삶을 살자"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60년 동안 열심히 전교했고, 신자들이 많이 불어났는데도 포항ㆍ경주를 관할하는 4대리구는 5개 대리구 중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떨어진다"며 그 이유를 포항제철을 비롯한 공업단지가 형성되면서 급속도로 늘어난 유동 인구로 꼽았다. 이 지역적 특성은 신자간 결속력을 강하게 하지만 복음화율을 높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다. 이원기(아브라함, 65, 죽도본당 총회장) 4대리구 총회장은 "사순시기에 본당마다 고리기도와 단식, 성경 필사, '포항의 복음화 역사와 신앙생활'이란 주제의 신앙 특강 등을 통해 이 시간을 준비해왔다"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는 포항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4대리구장 전재천 신부는 환영사에서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포항 가톨릭 공동체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그동안 묵묵히 기도하고 노력해주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60년 동안 15개 본당 탄생 포항 지역에 첫 복음 씨앗이 뿌려진 건 1950년 4월 15일 현재 경주 성동본당의 포항공소가 포항본당(현 죽도본당)으로 승격되면서다. 김경우 초대신부를 시작으로, 1978년 3월 포항의 두 번째 본당 덕수본당을 분가시켰다. 죽도본당과 대해본당(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성당) 관할공소는 구룡포본당으로, 구룡포본당 관할공소는 다시 오천본당으로 승격시켰다. 포항본당으로 시작한 포항 공동체는 60년 동안 지난해 8월에 설립된 기계본당까지 모두 15개 본당을 탄생시켰다. 포항에 복음 씨앗이 처음 뿌려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로 추정한다. 유치수 회장이 문경에서 세례를 받고 오천 문충리에 살면서 신자들이 늘어났고, 1930년경 경주본당 문충공소가 설립됐다. 1945년 9월 경주본당의 정행만 신부가 7~8명의 신자들을 모아 포항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포항공소가 생겨났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10.04.06

"맑은 영혼 구하러 간 것뿐입니다"서울 교정사목위 40돌, 40년 동안 교도소 봉사로 공로패 받은 민성동씨 "제가 특별히 무언가를 했다기 보다 시간이 흘러간 겁니다. '왜 그 놈들 먹여주고 퍼주느냐'고들 비난하면, 저는 영혼을 구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는 순간에, 내가 아닌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형수들을 봅니다. 악한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게 구원인 거죠. 사형수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줘야지요." 5일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40주년 기념미사에서 40년 동안 교도소에서 봉사한 공로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명의의 공로패를 받은 민성동(모니카, 70)씨는 "먼저 하늘나라에 간 30여 명의 사형수가 교도소에서 남기고 간 사랑 나눔을 잊을 수 없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관련기사 24면 백영민 기자 # 사형수들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그날까지 "내일 사형이 집행됩니다." 1997년 12월 29일. 대구교도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부산에 살고 있던 민씨는 덜컥 내려앉은 가슴을 안고 그날 밤 대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눈발까지 휘날렸다. 민씨는 집행장에 들어갈 수 없어 봉사자들과 교도소 내 천주교 방에 모여 밤새 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는가?" 사형수 스테파노씨가 말했다. "없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손엔 묵주가 들려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수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떨리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수녀님, 제 죽음이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하느님 아버지를 뵈옵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제 삶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니 기도 많이 해주세요." 스테파노씨는 수의(囚衣)를 벗었지만 수의(壽衣)를 입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민씨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어머니, 늘 먼 곳에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는 내용이었다. 사형이 집행된다는 것을 모른 채 쓴 스테파노의 편지였다. # 수용자들과 함께한 불혹의 세월 민씨는 1970년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전신인 교도소 후원회가 발족하면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고, 아이 셋을 둔 주부였다. 당시 서울 고등법원장으로 사형수들을 돌본 고 김홍섭 판사의 부인을 알고 지낸 그는 자연스럽게 교도소에 드나들게 됐다. 처음에는 서울소년원에서 종교교육 봉사를 했다. 은행원인 남편의 이직으로 지방으로 집을 옮기면서도 그는 수용자들을 잊지 않았다. 대전에서는 교도소 후원회를 조직했고, 대구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을 보살폈다. 그는 사형수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빵과 떡, 커피, 불고기 등 먹을거리를 양손 가득 들고 갔다. 커피가 귀했던 시절, 추운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은 커피 한 잔을 보약처럼 마셔댔다. 하지만 춥고 비바람치는 날은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내가 지금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죠. 이게 미친 짓이 아닌가…." 저녁식사로 맛있는 갈비라도 요리하는 날엔, 아이들이 많이 먹지 않도록 양해를 구한 그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교도소에서는 이런 거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타일렀다. 초등학생이었던 막내 아들이 어머니 직업란에 '교도관'이라고 썼을 정도로, 수용자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깊었다. 그는 교도소를 다니며 가족들에게 피곤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수용자들을 돌보며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25시간을 살았다. 그래선지 가족들은 그를 더 잘 이해해줬다. 갈 곳 없는 출소자를 집에 재운 날에도 가족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두렵고 불안해 부엌에 있는 식칼들을 이불 속에 숨기고 뜬 눈으로 잤지만…. 출소자가 교통사고를 내 치료비까지 대주는 일도 있었지만 그에겐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감옥에 갇힌 형제들 곁에서 그냥 있어준 것 뿐입니다. 주님 앞에 나도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니,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더라구요." 그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서울구치소에 간다. 그는 4시간 동안 사형수들과 함께 복음나누기를 하고 준비해 간 음식을 나눠 먹는다. 사형수들은 한 주간 어떻게 복음말씀을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은총이에요. 계속 봉사할 수 있게 건강을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 여기서 상을 받으면 훗날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을텐데, 어쩌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부엌 식탁 유리에 끼워진 성경구절이 보였다.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말라"(잠언 3,27). 그의 40년 세월을 지켜준 좌우명 같은 구절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0.04.06
![[성경 속 동식물] 87- 유독식물 가라지](//cpbc.co.kr/CMS/newspaper/2008/03/rc/243156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 87- 유독식물 가라지끝내 불에 태워질 가라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가라지는 팔레스티나, 레바논, 시리아, 지중해 연안 등이 원산지로 보리나 밀밭에 흔히 섞여 나는 잡초다. 흔히 독보리로 해석되는 화본과 식물이다. 가라지는 밀을 많이 재배하는 서구에서는 독밀, 중국에서는 피라고 했다. 가라지는 화본과식물 중에서 유일한 유독식물이다. 목초에 섞이면 가축이 먹고 중독을 일으키는 일이 있으므로, 독보리라고 한다. 가라지의 열매를 먹으면 구토, 설사, 현기증 등을 일으키는 일이 있다. 또한 독보리라는 이름이 이삭이 패어 익기 이전 생육기간에는 그 생김새가 밀이나 보리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60~100cm까지 왕성하게 자라는 1년초인 가라지는 생육기간에는 밀과 생김이 흡사해 분간하기 어렵다. 또한 밀과 동일한 계절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추수 때 곡식이 섞이기 쉽다. 밀은 줄기 끝에 열매가 네 줄씩 또는 두 줄씩 빽빽하게 열매를 맺고 보리는 여섯 줄씩 빽빽히 열매를 맺는다. 그에 비해 가라지는 6~12cm 길이로 몇 알씩 지그재그로 납작하게 열매가 달린다. 그래서 일명 '지네보리'라고도 부른다. 가라지는 다른 잡초와는 달리, 열매가 맺어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으므로, 추수 때에 식별하기 쉽다. 그러나 일단 밀과 함께 추수하면, 밀알보다는 잘지만 키질로도 가려내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중동지역에서는 지금도 아녀자들이 일일이 가라지를 뽑아서 제거하고 있다. 가라지의 씨는 이집트의 4000년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을만큼 오래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밭이나 길의 풀숲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팔레스티나의 농민 사이에는 밀의 종자가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가라지로 변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비가 많은 해에는 밀이 자라기 어려워지고 반대로 가라지가 왕성하게 자라서 눈에 많이 띄게 되므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시는 대목이 있다(마태 13,24-30. 36-43). 종말 때 이뤄질 심판을 가라지의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다. 종들은 원수들이 밀밭에 뿌린 가라지를 뽑아내야 할지 집주인에게 묻는다. 그러나 집주인은 당장은 뽑지 말고 추수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 이 말씀의 배경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로마의 탄압에 시달리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죄인들을 제거해야만 흠없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죄인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많은 유다인들의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시작했고, 마지막 심판 때에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한 인간의 판단은 완전치 못하고 오로지 추수하시는 분인 하느님의 판단만이 완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이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cpbc2008.03.19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제주교구(하) - 소공동체 활성화 모범 노형본당](//cpbc.co.kr/CMS/newspaper/2010/06/rc/339197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제주교구(하) - 소공동체 활성화 모범 노형본당 본당 모든 일 소공동체 중심 신자들 공감대 얻어소공동체에 매진하고 있는 제주교구 내에서도 모범으로 꼽히는 노형본당(주임 남승택 신부)을 찾았다. 본당은 사목평의회에 소공동체협의회를 신설하고 본당 사목구조를 소공동체 중심으로 바꿔 소공동체에 '올인'해 왔다. 남승택 주임신부는 신자들 부담을 덜기 위해 소공동체 모임을 한 달에 1번만 가져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소공동체에 맛을 들인 신자들은 스스로 매주 모임을 꾸려가고 있을 정도로 활성화 됐다. 노형본당에서 소공동체 활성화 비결을 살펴본다. 이와함께 제주교구를 방문하면 꼭 둘러볼 교구 성지 3곳을 소개한다. 대정성지와 황사평성지, 용수성지는 제주교구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장소다. 박수정 기자 crystal@pbc.co.kr 노형본당 백록1구역 신자들이 소공동체 모임을 하고 있다. 신자들이 소공동체 모임에 맛들이면서 매주 스스로 모임을 갖는 소공동체가 늘어나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말씀을 나누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면서 피상적 교우 관계를 넘어 서로를 위해 줄 수 있는 이웃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종일 직장일로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소공동체에 참여하지만 소공동체가 끝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처음엔 성경 구절을 가지고 평신도끼리 앉아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말씀을 나누라는 것인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원들과 나누는 하느님 말씀에 용기와 위로를 받고 있다." 노형본당이 펴낸 소공동체 백서에는 소공동체 '신비'를 체험한 신자들의 구구절절한 체험담이 가득하다. 남승택 주임신부는 2007년 본당이 제주 서부지구 소공동체 시범본당으로 선정된 뒤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노력과 과정을 백서에 담았다.여섯 차례 진행한 교육 큰 도움 교구에서도 소공동체 모범으로 꼽히는 노형본당 소공동체 활성화 비결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운영과 함께 강제와 부담없는 모임에 있다. 본당은 소공동체 조직을 기존 11구역 35반에서 14구역 63반으로 세분화시켰다. 구역과 반 명칭을 지을 때도 신자 간 소득 수준이 드러나는 아파트 이름을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또 소공동체 모임이 있는 곳이면 본당 사제와 수녀, 사목회 총회장, 소공동체 협의회장 등이 함께 참여해 신자들과 소통했다. 그리고 이들이 먼저 속 이야기를 꺼내고 나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사목평의회에 소공동체협의회를 신설해 본당 사목구조를 소공동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본당 사목구조를 개편한 것도 소공동체 활성화에 큰 힘이 됐다. 또 소공동체 사목에 관한 전 신자 교육을 6차례에 걸쳐 진행해 신자들에게 소공동체 사목 필요성을 이해시키며 신자들과 소공동체 사목 비전을 공유했다. 소공동체협의회 박광록(안토니오) 회장은 "본당 모든 일이 소공동체 중심으로 돌아가니 신자들 공감대를 얻는 것이 수월했다"면서 "특히 6차례에 걸쳐 진행한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소공동체 미사를 신설했고 구역 미사도 시작했다. 특히 소공동체 미사 강론은 소공동체 단원들 사례발표 시간으로 정해 소공동체에서 있었던 일, 복음나누기를 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발표하도록 했다.적응할 수 있는 기간 충분히 마련 남승택 신부는 소공동체 모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반장들에게 "반원들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참석 인원에 연연하지 말라"며 부담을 덜어줬다. 또 모임도 한 달에 1번 정도만 모여도 충분하다고 했다. 고유경(수산나, 월랑1구역) 반장은 "신부님께서 강제하지 않으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모임을 할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매주 모임을 갖는 구역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반장은 이어 "처음엔 서로 마음을 터놓고 말씀을 나누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공동체에 신뢰와 사랑이 형성된다"며 "소공동체에서 나눈 말씀이 일상생활에 큰 힘이 되는 것을 아는 신자들은 스스로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남 신부는 "소공동체 사목은 1~2년 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신자들이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마련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교구 성지 -대정성지(정난주 마리아 묘) 제주교구가 1994년 제주선교 100주년 사업의 하나로 정난주 마리아 묘를 새롭게 단장하고 성역화한 곳이다. 정난주 마리아는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증거한 순교성인은 아니지만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삶을 산 '백색'순교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정난주 마리아는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이자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이다. 그는 남편을 잃고 제주로 유배당한다. 제주 관청의 노비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겸손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관비를 관리하는 양반에게 신임을 얻었다. 그는 양반집 아들을 돌보며 신앙을 이어갔고 또 전파했다. 그는 '서울할망'으로 불리며 마을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다 선종했다.(주소 :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 연락처 : 064-794-2074, 모슬포본당) -황사평성지(무명 순교자 묘) 1901년 일어난 제주교난(濟州敎亂)으로 희생된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제주교난은 신축교의 난, 이재수의 난, 제주민란으로도 불린다. 당시 제주에서는 프랑스 선교사를 비롯한 가톨릭 신자들과 도민들 사이에 충돌이 잦았다. 전통적으로 무속신앙이 강한 섬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외국 선교사들은 무조건적으로 무속신앙을 배척했다. 게다가 나라에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민심이 사나워진 때에 세금을 징수하던 이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여서 도민들은 자연스레 가톨릭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됐다. 결국 도민들은 대대적 봉기를 일으켰고 가톨릭 신자 700여 명이 사망했다. 황사평성지에는 이 때 수습한 시신 28구가 안치돼 있고 1984년 천주교 공원묘지로 조성됐다.(제주시 화북2동 / 064-751-0145, 제주교구청) -용수성지 용수리 포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로 귀국하던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한 곳이다. 그리고 이곳 해안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라파엘호를 복구해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교구는 이를 기념해 용수리 해안에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성당을 세웠고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66 / 064-772-1252,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cpbc2010.06.08
![[출판]광주가톨릭대 교수 정태현 신부 「성서 입문」(하)](//cpbc.co.kr/CMS/newspaper/2009/01/rc/278870_1.0_titleImage_1.jpg)
[출판]광주가톨릭대 교수 정태현 신부 「성서 입문」(하) 성경은 사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량도 만만찮을뿐더러 그 장르나 성격도 다양해 제대로 공부하자면,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읽어 내려갈 수도 없다. 이는 하느님의 첫 백성 이스라엘 역사와 고대 근동이라는 시ㆍ공간적 배경과 문화, 사고방식 등이 오늘날과는 확연히 다르고 그 간극이 넓고 깊기 때문이다. 정태현(광주가톨릭대 성서학 교수, 한님성서연구소장) 신부는 이를 위해 지난 2000년 「성서입문」(상권)을 집필했다. 그리고 8년만인 최근 '성경의 형성 과정과 각 권의 개요'를 다룬 「성서 입문」(하권)을 최근 탈고해 세상에 선보였다. 상권이 성경을 둘러싼 배경과 성조시대부터 예수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몰두했다면, 하권은 성경 한권 한권에 담긴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특히 하권은 성경 본문이 어떻게 형성됐고, 믿음의 공동체는 어떤 과정을 거쳐 그것을 정경으로 확정했는지를 알아보고, 무엇보다도 그 안에 담긴 하느님 뜻은 무엇인지 살핀다. 이를 위해 성경의 기초 단위인 성경의 문학 양식을 대표적인 것만 골라 소개한 뒤 구약성경의 본문을 히브리어 성경 분류방식에 따라 율법과 예언서, 성문서 등 세 부분으로, 신약성경 본문도 네 복음서 및 사도행전과 서간, 요한 묵시록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수집 단계에서 편집 단계까지 서술한다. 그러고 나서 500여 쪽에 걸쳐 정경으로 확정된 신ㆍ구약 낱권을 기초부터 신학사상에 이르기까지 성경 순서대로 꼼꼼히 서술했다. 물론 현대 성서학계 흐름을 수용하고 유다이즘과 교부들 가르침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은이의 간결하고 수려한 글 솜씨 덕에 어려운 주제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핵심을 콕콕 찌르는 일목요연한 설명 덕분에 오랜 묵은 의문이 술술 풀린다. 말씀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에게 「성서 입문」 상ㆍ하권은 더없이 편안하고 믿음직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입문서는 그야말로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다"(히브 4,12)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며, 동시에 "하느님의 가르침을 너무나 사랑하여 온종일 그것을 묵상할"(시편 119,97)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끌어준다.(한님성서연구소/2만5000원) 오세택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1.06
![[금주의 성인]성 가롤로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 11월 4일)](//cpbc.co.kr/CMS/newspaper/2009/10/rc/314174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성 가롤로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 11월 4일) 1538~1584. 이탈리아 출생. 밀라노대교구장.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의 쇄신에 앞장선 개혁가이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도 헌신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자선가였다.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일찍부터 사제직에 뜻을 두고 교회법과 신학 공부에 매진했다. 1559년 성인의 외삼촌이 교황(비오 4세)으로 선출됐다. 일찍이 성인의 명석함을 알아본 교황은 이듬해 22살인 성인을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파격 임명했다. 성인은 교황 비오 4세를 도와 10년간 중단된 트리엔트공의회 재개에 힘써 1562년 결국 공의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성인은 트리엔트공의회 교리서 편찬을 감독했고 사제용 성무일도서를 새로 간행했다. 성인은 1563년 사제품을 받고 곧 밀라노대교구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1565년 교황 비오 4세는 급작스레 사망했고 교황 비오5 세가 뒤를 이었다. 성인은 트리엔트공의회에서 결정된 교회 쇄신과 혁신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성직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인은 자신의 수입 전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가난을 몸소 실천했다. 또 전염병과 극심한 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도시를 떠났지만 교구장으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환자 가정방문과 고해성사 집전, 미사 봉헌에 헌신했다. 성인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 35-36) 라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양떼를 돌봤던 성인은 결국 건강이 악화돼 1584년 선종했다. 그리고 1610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됐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1일 : 모든 성인, 성 마르첼로(주교, 프랑스), 성 발렌타인 베리오 오초아(순교, 주교, 스페인) ▲2일 : 성 빅토리노(순교, 주교, 오스트리아), 성 테오도토(주교, 터키) ▲3일 :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수사, 페루), 성 플로로(주교, 프랑스), 성 피르민(주교, 스페인) ▲4일 : 성 클라로(순교, 잉글랜드), 성 에메리코(왕자, 헝가리), 성 비탈리스(순교, 이탈리아) ▲5일 : 성 레토(증거자, 프랑스), 성녀 베르틸라(수녀원장, 프랑스) ▲6일 : 성 노니오 알바레스 데 페레이라(수사, 포르투갈), 성 레오나르도(은수자), 성 윈녹(수사, 영국) ▲7일 : 성 아킬라(주교, 이집트), 성 에르네스트(순교, 수도원장, 독일), 박수정2009.10.27

사제직의 정점 '성찬례'신학과사상학회 제5차 학술심포지엄 ▨트렌토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따른 사제직의 이해 :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트렌토공의회, 종교개혁자들 부정한 '성사적 측면' 강조사제 직무의 핵심인 성찬례, 교회 쇄신과 성화의 원동력 트렌토공의회는 16세기 종교 개혁으로 야기된 혼란상을 극복하기 위해 개최됐다.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 된 마르틴 루터(1483~1546)는 교회의 폐해 원인을 인간의 도덕적 결함보다 참된 복음의 왜곡에 뒀다. 루터의 신학적 비판은 기존 가톨릭교회 교리와 교회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종교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세례와 성만찬만을 성사로 인정했다. 그는 성품성사와 나머지 다섯 가지는 '교부들이 도입한 경건한 관습일 뿐 그리스도가 제정한 성사는 아니다'고 주장한다. 성품성사의 부정은 직무 사제직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종교 개혁자들은 유일한 그리스도의 사제직만이 존재하고 세례 받은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해 영적 사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트렌토공의회는 종교 개혁자들이 부정한, 성사적 측면을 강조했다. 희생 제사의 거행과 사죄의 권한을 지닌 직무 사제직, 교회 위계 구조를 부각시켰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직을 교회 공동체 건설과 성장에 봉사하는 직무로 이해했다. 새로운 교회 이해와 함께 세례를 통한 보편 사제직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 성품을 통한 직무 사제직은 이와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고 가르친다. 즉 직무 사제직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권한으로서 신자들이 자신들의 사제직을 충실하고도 완전하게 수행하도록 돕는 직책으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 곧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고 다스리는 임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사제들의 세 가지 임무를 유기적인 관계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트렌토공의회와 구별된다. 하지만 사제 직무의 중심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성찬례의 봉헌에 두었다는 점에서는 트렌토공의회와 연계선상에 있다. 두 공의회 모두, 상황과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찬례의 거행의 권한을 사제직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트렌토공의회는 교회 직무의 본질을 설교직으로 보려는 종교 개혁자들에 반대해 직무 사제직의 성찬례 거행 권한을 강조했다. 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 생활 전반과 관련해 성찬례와 직무 사제직을 연결 짓는다.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이며 '은총의 샘'으로서, 사제 직무의 목표이며 정점이다. 사제 직무의 핵심인 성찬례는 교회 역사에서 교회 쇄신과 성화의 원동력이 돼왔다. 교회 역사에서 진정한 개혁이 성찬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제의 해'가 목표로 하는 사제들의 내적 쇄신도 성찬례에 중심을 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사로서의 사제의 신원과 삶 : 조현권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 말씀 선포는 첫째 직무,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 따라야기도 없는 사제직은 단순 기능직, 활동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사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제물이 되어 성부께 완전한 구원의 제사를 드리셨으며,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셨고, 성령을 통해 구세주를 낳고 기르시는 가운데 자신을 봉헌하심으로써 하느님 구원 계획에 협력하셨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사제로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삶과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신약의 사제직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신 대사제이시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생애를 통해 하느님 뜻에 순종하시며, 성령의 거처요 도구로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긴밀히 함께하셨다. 마리아와 성령의 관계는 교회가 그분께 드리는 '성령의 신부'라는 호칭에 잘 드러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과 1994년 교황청 성직자성이 발표한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을 중심으로 사제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정립해본다. 사제는 성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께서 파견하신 성자와 성사적으로 결합하며,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삶과 활동을 이어간다. 사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나누는 사랑의 대화 속에서 친숙하고 인격적으로 이 관계를 생활화해야 한다. 특히 사제가 '그리스도의 성사'로서 살아가는 것의 토대는 그의 '인간성'이 돼야 한다. 성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자신에게 없던 그리스도성을 획득해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성사로서의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사제들의 첫째 직무이다. 사제직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현존시키는 성체성사이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과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요, 정점으로서 사제직의 출발이고 수단이며 목표가 된다. 사제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신'(마태 20,28)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살아아 한다. 또한 교황과 주교단 특히 서품식 때 '각별한 존경과 순명'을 바칠 것을 서약했던 자신의 교구장 주교와 친교를 이루지 않는 사제직이란 있을 수 없다. 기도가 없는 사제직은 단순한 기능직에 불과하다. 사목 활동의 요구가 많아지더라도 외적 활동이나 성과주의에 빠지지 말고, 기도하시는 그분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청빈과 기도와 함께 독신의 삶을 보여주셨다. 독신으로 삶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이지혜 기자 이지혜201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