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치주간 : 가톨릭의 형제교회들한 뿌리에서 자란 다른 줄기들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는 '한 지붕 세 가족'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지붕 아래 가톨릭ㆍ정교회ㆍ개신교라는 세 가족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가톨릭 하나였으나 정교회, 개신교 순서로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왔다. 일치주간(18~25일)을 맞아 가톨릭의 형제 교회인 정교회와 개신교에 대해 알아본다.▨정교회 정교회는 1054년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적 전례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동방 교회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라는 뜻에서 정교회(正敎會, Orthodox Church)라고 부른다. 1453년 정교회 중심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에 의해 함락되자 정교회 핵심은 러시아로 옮겨져 '러시아 정교회'가 탄생했다. 이어 그리스(1830년) 루마니아(1925년) 알바니아(1937년) 정교회 등이 각기 독립을 선언함에 따라 지금은 국가별 정교회로 나뉜 상태다. 정교회의 성사와 교리는 가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성직이 주교ㆍ사제ㆍ부제로 나뉘는 것은 가톨릭과 같지만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경과 성전(聖傳, Holy Tradition)을 모두 신앙의 근거로 인정하지만 구약 49권과 신약 27권(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을 성경으로 사용하는 점, 구약의 제2경전을 인정하되 교의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르다. 한국 정교회는 1897년 러시아정교회 소속 신부가 주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은 한국 정교회는 1975년 그리스정교회 소속 신부가 한국 선교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오늘에 이른다. ▨개신교 16세기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에서 갈라진 교회이다. 가톨릭에 대한 '항거자'(Protestant)라는 뜻에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견해를 달리하는 분파가 끊임없이 생겨남에 따라 지금은 500여 개 교파로 나눠졌다. 대표적 개신교 분파로는 장로교ㆍ감리교ㆍ침례교ㆍ성결교ㆍ루터교ㆍ구세군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 미국 장로교 신자이자 의사인 알렌과 언더우드 목사 등이 황해도 송천에 교회를 짓고 의료사업과 선교사업을 시작하면서 전파됐다. 개신교는 가톨릭과 크게 다르다. 가톨릭은 성경과 함께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전통(성전)을 신앙의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을 인정한다. 가톨릭이 성전에 근거를 두고 교의로 선포하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개신교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개신교는 구약성경 가운데 제2경전을 제외한 39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한다는 점도 다르다. 연옥 교리도 인정하는 않는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잇는 중간다리로 여겨지는 성공회(聖公會)도 개신교에 속한다. 16세기 영국 헨리 8세 국왕이 교황에게 결혼 무효소송을 냈으나 교황이 이를 거절하자 자신을 교회 수장(首長)으로 선포하면서 가톨릭과 결별한 것이 성공회다. 성공회는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인정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가톨릭과 일치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제 독신 의무도 없다. 성경은 개신교와 같이 구약 39권, 신약 27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대한성공회는 1889년 영국에서 코프 신부가 초대 한국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1993년 독립된 관구로 승격했으며, 전국적으로 100여 개 교회와 5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교구는 서울ㆍ대전ㆍ부산교구 등 3개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남정률2009.01.13
![[특집] 루게릭병 환자 이원규ㆍ이희엽씨 부부의 사랑](//cpbc.co.kr/CMS/newspaper/2009/10/rc/314421_1.0_titleImage_1.jpg)
[특집] 루게릭병 환자 이원규ㆍ이희엽씨 부부의 사랑"ㄱ, ㄴ, ㄷ, ㅜ… 아내의 사랑이 보입니다"발가락 시인의 살아온, 살아갈 기적10년째 루게릭병 투병…깊어가는 아내의 돌봄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눈과 엄지 발가락발가락으로 마우스를 눌러 쓴 시 '내 아내에게'뭐가 그리 재밌는지 부부 사이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혀가 완전히 굳어 발음이 어눌해진 이씨의 말을 그나마 이해하던 아내도 이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어 몇 개의 글자와 숫자가 적힌 판을 눈짓으로 짚어 대화를 나눈다. "나 몸이 굳어가다 결국은 꼼짝 없이 죽는 병이래. 그래도 내 곁에 있어 줄래?"(종우) "원래 사람은 다 죽어, 순서가 따로 없어. 그러니까 하루를 일 년처럼 살아야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백배 더 행복하게…."(지수) 요즘 뜬다는 '내 사랑 내 곁에'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화다. 희귀병 '루게릭'에 걸린 한 청년 '종우'와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그의 곁을 지켜주는 '지수'의 절절한 순애보다. 2년 전 만났던 이원규(아우구스티노, 49, 서울 신천동본당)ㆍ이희엽(크리스티나, 45) 부부를 다시 찾아간 이유였다. <2007년 2월 11일자 제908호 참조>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하나로 화상 키보드를 누르고, 발가락으로 책장을 넘겨가며 논문을 완성해 2004년 8월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원규씨. 그리고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지키며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아내 이희엽씨다. 루게릭병은 희귀병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다. 자그마한 회복의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는 완벽한 불치병이다. "치료법도 없고 다만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는 그의 말처럼. '박제된 잠자리'처럼 그의 온 몸은 구석구석 더 굳어가고 있었다. 이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눈과 얼굴 근육 일부, 왼쪽 엄지발가락 뿐. 눈만 깜빡거릴 뿐 얼굴에 붙은 모기 한 마리도 쫓지 못하는 상황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는 루게릭병의 끔찍함을 절감하게 한다. 식물상태 환자와 반대로 정신은 또렷하다. 지금은 '육체의 감옥'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지만 언제나 희망을 전하는 웃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 루게릭병과 친구하는 남편 꼭 10년 전인 1999년 8월 27일, 이원규씨의 진료차트에 'ALS'(근위축성측색경화증)라는 병명이 기록됐다. "루게릭병에 걸린 것을 처음 알게 된 날, 우리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나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는 울지 말자고 약속했죠.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믿기에…." 루게릭병은 발병 후 보통 2~3년 안에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씨는 10년 넘게 살아 있다. 병의 진행속도가 그만큼 느린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더욱이 간병생활 10년,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결코 쉽지 않은 생활이었을 텐데 무엇이 아내로 하여금 남편 곁을 끝까지 지키게 한 것일까. "언제나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희망이 있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살아갈 의지가 생겨요."(이원규) "솔직히 처음엔 하느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어 이런 병을 주셨느냐고. 지금은 다시 하느님게 의지하고 있어요.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든, 회복되든, 죽음에 이르든, 모든 시련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오히려 하느님 은총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은 하루하루 작은 기적을 느끼며 살아요."(이희엽) 이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는다. 발가락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굴려가며 인터넷으로 성경을 읽거나 매일 저녁 7시 평화방송TV '묵주기도'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기도를 바친다. 아내 역시 방학 땐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한다. 난치병에 굴하지 않고 10년 넘게 너끈히 버티며 '루게릭병'과 '친구하고 있는' 이씨. 그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준 아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을 마시는 일부터, 목을 가누고 대화를 하는 일까지…, 아내는 남편과 한 몸이 돼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를 해오고 있다. 아내 이씨는 "그래도 남편이 힘겨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주어 마음 고생이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좀 독해요.(웃음) 예전부터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포기할 줄을 몰랐어요. 너무 힘들 때도 있지만 남편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해 투정도 못해요. 그런 제게 남편은 언젠가 TV방송에서 발가락으로 마우스 눌러 쓴 '내 아내에게'라는 시(詩)를 읽어줬어요. 원망하던 마음이 눈녹듯 풀리더군요." 이씨는 2005년 말 출간해 2만부 가까이 팔린 자전적 에세이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 서문에도 '사랑하는 아내가 없이는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다. "아이들에게도 정말 고맙죠. 지금 고3, 고1 이에요.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남들처럼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하는데 알아서 잘 커주니." # 육체의 감옥 그러나 '희망'… 평생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던 이씨의 꿈은 '기회만 된다면'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싶다는 것.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음성변환장치 등 보조도구를 이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거든요. 1주일에 2~3시간 정도의 특강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 이씨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몇 곳의 대학과 긍정적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강의준비를 하기 위해 최근 맞춤형 전동휠체어와 노트북 컴퓨터, 눈동자를 움직여 컴퓨터 화면에 글을 쓸 수 있는 안구 마우스도 구입했다. 모두 합하면 2000만원이 넘지만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의 인세로 어느 정도 충당하고 부족한 금액은 신천동본당 한정관 전 주임신부 등 주위에서 도움을 줬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려는데 이씨가 기사에 그의 책 이야기를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대학에 강의를 다니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아내는 일을 해야 하고 용돈 정도의 연금으로는 활동보조인을 두기 어려워 책이 많이 팔리면 도움이 좀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씨가 대학 강단에 서는 날, 꼭 다시 취재하러 오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 16~18)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꼽은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09.10.29
![[성경 속 동식물]85-향기로운 도금양나무](//cpbc.co.kr/CMS/newspaper/2008/03/rc/241462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85-향기로운 도금양나무평화와 감사, 사랑의 상징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도금양나무는 지중해 연안, 즉 팔레스타인, 레바논, 베들레헴, 헤브론, 카르멜산, 타보르산에 자생하는 향기로운 상록관목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도 없는 식물이다. 도금양나무는 많은 가지를 지닌 키가 작은 나무로 가지 끝에 담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달린다. 꽃은 지름 2㎝ 정도로 꽃받침조각 5장, 꽃잎 5장으로 구성되며 꽃잎은 둥글다. 수술이 많고, 꽃실은 담홍색이다. 꽃피는 시기는 여름이고 열대에서는 1년에 한 번씩 핀다. 도금양나무는 거의 모든 부분이 향긋한 방향성 기름을 함유하고 있다. 이 기름들은 팔레스타인과 다른 지중해 지방들의 토산품이다. 예로부터 이 나무는 지팡이, 가구, 도구들 만드는 데 사용했다. 또한 이 나무는 상록수이기에 불사의 표징으로 죽음과 부활의 약속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민갈 때에는 반드시 가지고 갔을 정도로 이 나무를 중요시했다. 사람들은 도금양나무를 사랑과 미의 상징으로 삼아 의식, 예술 등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테네에서는 권위와 영광의 상징으로서, 사제와 영웅 및 뛰어난 위인에게 이 나무의 가지로 관을 엮어서 씌워 주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비너스의 신목으로서 비너스 신상을 장식했으며, 신전 주위에 이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게 했다. 고대 로마인은 공공의 장소에 제일 먼저 도금양나무를 심어서 미래를 점쳤다고도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이 나무는 사랑과 환희의 상징으로서 사랑과 기쁨의 여신에게 바쳤다. 그래서 고대신화에는 도금양나무에 얽힌 많은 전설이 있다. 유럽에서 다산과 평화와 순결의 상징으로 결혼식의 꽃다발에 널리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인은 이 나무를 애정의 상징으로 삼았다. 도금양나무 열매는 달콤하고 짙은 향기가 있어서, 날로 먹는 외에 건조시켜 저장식도 만든다. 술, 음식물의 부향제로 쓰는가 하면 방부와 진통의 약효도 있어서 약으로도 사용한다. 성경에서 도금양나무는 초막절에 히브리인들이 초막을 짓는 데 사용한 나무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산으로 나가서 올리브 나무 가지, 소나무 가지, 도금양나무 가지, 야자나무 가지, 그 밖에 잎이 무성한 가지를 꺾어다가, 쓰여 있는 대로 초막을 만들어라"(느헤 8,15). 즈카르야가 본 환시 중에 용기와 소망, 그리고 평화를 언급하는 과정 중에서도 도금양나무를 사용했다. "내가 밤에 보니, 붉은 말을 탄 사람이 골짜기의 도금양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그 사람 뒤에는 붉은 말들과 검붉은 말들과 흰말들이 서 있었다"(즈카 1,8). 유다인들은 이 나무를 평화와 감사의 상징으로도 여기며, 저주받은 상태의 회복을 상징해주는 식물로 생각했다. "가시덤불 대신 방백나무가 올라오고 쐐기풀 대신 도금양나무가 올라오리라. 이 일은 주님께 영예가 되고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표징이 되리라"(이사 55,13).cpbc2008.03.05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주님 사랑에 새로운 영적 눈 떠야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오늘 우리는 루카 복음의 서문과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공생활 시작의 첫 연설을 듣습니다. 서문에 나오는 테오필로스라는 이름은 상징적 이름입니다. 테오필로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루카 복음 저자는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 모두 진실임을 선포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증언이 필요한 이유는 사실 복음서가 기록되기까지는 일정한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사도들의 복음 선포, 그리고 구두전승에서 기록단계라는 3가지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생애와 복음이 기록된 사이에는 30~60년이라는 긴 시차가 존재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직접 남기신 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체험한 일들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기록하고 증언할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을 역사적으로 입증할 만한 객관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단순히 역사적 검증으로만 찾으려 애쓴다면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역사 안에서 검증되고 비춰진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역사 자체를 창조하고 창조된 역사 안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데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찾으려 한다면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믿음의 영적인 성장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자렛 회당에서 일어난 일이 이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바로 이사야 예언자 말씀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용된 이사야서 61장 1-2절과는 다른 내용이 더 첨가돼 있습니다. 그것은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눈먼 이들이 다시 본다는 의미는 어쩌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하느님과 인간과 관계를 고립시키는 눈먼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닌지 묵상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거기에 눈먼 이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입맛과 감성에 따라 설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 못하고, 오히려 생각이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선포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성취되고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창조하시는 바로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로 되어 있듯이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 한 성령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의 같은 몸을 이루는 지체들인 것입니다(1코린 12,12-14). 우리는 다양한 지체를 구성하지만 주님 안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성격, 생각, 습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각 지체들이 서로 분열되지 않고 동등하게 돌보게 하십니다. 그 방법은 단순합니다. 주님은 가장 모자란 지체를 더 돌보시고 더 큰 영예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게 하신 것입니다(1코린 12,24-25).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사랑에 영적인 새로운 눈을 떠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랑과 믿음을 갖고 옳은 방향을 바라보면, 의외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낮도 필요하지만 밤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밤은 일하지 않기에 비생산적인 때가 아니라, 오히려 낮에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저축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이 눈먼 여정을 걸어왔다고 느낀다면, 이제 눈멀었던 인생의 밤은 새로운 삶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던 때라고 생각하고, 모자란 지체를 더 크게 돌보시고 새롭게 눈을 뜨도록 이끄시는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조은일2010.01.19
![[출판]스코트 한 「나는 왜 믿는가」번역 발간돼](//cpbc.co.kr/CMS/newspaper/2009/09/rc/308095_1.0_titleImage_1.jpg)
[출판]스코트 한 「나는 왜 믿는가」번역 발간돼 1979년 미국 오하이오주 그로브시티대학에서 신학ㆍ철학ㆍ경제학을 전공한 스코트 한은 1982년 고든-콘웰대학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으며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1986년 30년간에 걸친 개신교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천상예식에의 신비로운 참여'(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인 미사에 '구경꾼'으로 참례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그 뒤를 따라 많은 개신교 목사와 성서학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 그는 '돌아온 루터'라고 불렸다. 1990년부터 스투벤빌 프란치스코대학에서 신학 및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특히 '가톨릭 호교론자'로서 명성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그 저작 가운데 대표적 저서가 「나는 왜 믿는가(Reasons to Believe)」로, 장로교에서 가톨릭으로 귀의한 입장에서 '어째서, 왜' 가톨릭 신앙이 답이 될 수 있는지 성경에서, 자신을 비롯해 그가 만난 수많은 이들의 체험에서, 일상의 삶과 자연과학에서 이끌어낸다. 최근 이 책이 이창훈(알폰소) 평화신문 기자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가톨릭, 희망의 이유를 답하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이중의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나는 믿지 않는 비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올바로 설명하고 알리려 한다. 또 하나는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갈라져 있는 형제들, 특히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톨릭 신앙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하는데 집중한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대표적 호교론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그는 가톨릭에서 어떤 궁극의 희망을 발견했을까? 그는 이 책에서 2000여 년 동안 가톨릭교회가 주장해 온 것이 무엇이며, 왜 가톨릭이 이 시대 영적 구도자들에게 궁극적 답변이 될 수 있는지 그 희망의 근거를 밝혀준다. 그래서 이 책은 "호교론의 결정판!"(마커스 그로디, '저니 홈' 진행자)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특히 이 책을 통해 자연과 초자연이, 또한 이성과 계시가 서로 대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상호보완적 증거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하느님이 특별한 목적과 형태로 우주를 창조했음을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이끈다. (살림/1만20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9.01
![[출판/문학]윤호병 시인,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는 밤」출간](//cpbc.co.kr/CMS/newspaper/2009/04/rc/291866_1.0_titleImage_1.jpg)
[출판/문학]윤호병 시인,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는 밤」출간영혼의 자유 갈구하는 '구도의 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가득 찬' 시대에 윤호병(빈첸시오, 60, 추계예술대 교수) 시인이 '신앙에 무겁게 침잠하며' 사도 바오로의 내밀한 말씀을 그린 시집을 냈다. 가톨릭적 색채가 짙은 전작시집 「브람스가 보내온 비엔나 숲 속의 편지」에 이어 2년 만에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에 묶어낸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는 밤」이다. 시집은 말씀 속에서 '주님'을 향해 기도하며 질곡에 찬 현실을 넘어 신성을 회복하고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는 '구도의 시'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시 구절로 들어와 시와 한 몸을 이루기도 하고, 시인 자신의 일상과 체험이 성경 말씀에 녹아들어 시적 의미로 형상화된다. '엠마오로 가는 길'을 통해 시인은 노래한다. "그 길 바로 그 길 위에 오랫동안 서 있었지만//올 해 첫 달 마지막 날 제 마음속으로/검은 먹구름 쏟아져 내려 쌓이고 쌓이던/그 시각부터 바로 이때 이 순간까지/만날 수 있으리라는 한 가닥 기대, 기대의 끈/애써 붙잡고 기다렸지만 기다리고 있었지만/아무도 오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에는/클레오파스와 말벗하며 가고 있던 길동무도 없었고/기다리는 소식은 들을 수도 없었고 들려오지도 않았지요…" 시인은 이 시에서 주님을 뵙고 말리라는, 그래서 사도 바오로처럼 "눈꺼풀 벗겨져" 영혼의 눈을 뜨고 말겠다는 기다림을 기록한다. 부활시기를 맞아 선보인 시편 45편은 믿음과 기다림, 말씀의 실천에 대한 신앙적 의지가 배어 있다. 인습적이고 관성적인 믿음, 자신의 위안을 위한 믿음, 베풂마저 자신의 충족을 위해 실행하는 믿음에 대한 치열한 고백과 반성이다. 더불어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상'에서 종교와 종교인의 바른 지향을 담아내려 한다. 남의 얘기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자화상이다. '조금만이라도 주님을 닮아보려 애쓰는' 시인은 영혼의 화학반응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푸른사상/1만2000원) 오세택 기자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4.21
![[성경 속 동식물]82- 행운의 새 공작](//cpbc.co.kr/CMS/newspaper/2008/02/rc/238867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82- 행운의 새 공작무지갯빛 부채 깃털 '신비'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초등학교 때 동물원으로 소풍을 가면 제일 먼저 공작새 우리로 달려가 화려한 날갯짓을 한참동안 구경하곤 했다. 몸길이의 몇 배나 되는 깃털을 활짝 펼친 모습은 마치 형형색색의 거대한 부채 같았다. 깃털 끝에는 청색과 청동색의 테를 두른 무지갯빛 동그란 무늬가 있어 수많은 눈동자로 우리를 쳐다보는 듯 한층 신비스러운 동물로 느껴졌다. 대부분의 동물이 그렇듯이 공작도 수컷의 모습이 훨씬 화려하다. 암컷은 수컷에 비해 몸길이가 작고 온몸이 갈색이어서 그다지 곱지 않다. 수컷은 깃털을 부채모양으로 벌리면서 암컷에게 구애 행동을 한다. 닭목 꿩과에 속하는 공작은 인도 아삼과 스리랑카, 미얀마, 말레이반도 등지에 분포하고 서식하나,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사육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신라시대에 공작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공작의 목, 가슴, 어깨는 짙은 청색이며, 빛의 각도에 따라 녹색, 자청색을 띤다. 공작은 참공작, 인도공작 두 종류가 있다. 참공작은 미얀마와 자바에 걸쳐 분포하며 수컷의 가슴은 금녹색이고 머리 위의 볏은 다발 모양이다. 인도산인 인도공작의 수컷 가슴은 감색이고 볏은 반쯤 열린 부채 모양이다. 또한 하얀공작은 인도공작의 변종으로 희귀종이다. 공작새는 보통 밀림의 물가에서 나무열매와 벌레 따위를 먹으며 산다. 둥지는 땅 위에 잔가지나 풀을 모아서 만들고 6∼10개의 흰색 알을 낳아 암컷이 품는다. 새끼는 약 24일 만에 부화하며 부화하는 즉시 걸을 수 있다. 중국의 소수 민족인 대족은 공작새를 길조(吉鳥)로 여기며 공작새가 깃을 펼 때 행운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공작새의 춤을 본따서 다채로운 공작춤을 추기도 한다.또한 공작새는 용과 호랑이, 거북이 등과 함께 장수의 동물로 알려져 있다. 공작 고기는 맛이 매우 좋아 옛날부터 유럽에서는 고급 요리에 사용했다. 수세기 동안 공작은 서방 세계에서 공원과 정원을 우아하게 장식해 주는 새였고, 선원들이라면 누구나 가져오고 싶어했던 그럴듯한 선물이었다. 그리스인은 공작을 '페르시아조'(鳥)라고 불렀다고 한다. 페르시아와 인도 사이에 무역이 이루어진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페르시아인은 한 번 인도를 정복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가 인도에 침입했을 때 모든 장병들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이 아름다운 새를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로마는 그리스에서 공작을 가져왔다. 그래서 서기 2세기 경에는 사치스러운 로마인들이 공작의 고기를 즐겨 먹을 정도가 되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페니키아 무역 상인들이 솔로몬 시대 이전에는 이집트까지 공작을 가지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 "왕은 다르싯 상선대를 조직하여 히람 상선대와 함께 해상 무역에 종사토록 하였다. 다르싯 상선대로 금, 은, 상아, 원숭이, 공작새 등을 해외에서 한 번 실어 오는 데 삼 년이 걸렸다"(1열왕 10,22). 솔로몬 왕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모두 수집했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 황금시절의 군왕으로서 먼 나라의 진귀한 것들을 많이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cpbc2008.02.13
애가ㆍ바룩서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두 번째 '대예언서'인 「예레미야서」를 다 읽으면 전통적으로 예레미야가 작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애가」와 예레미야의 서기관으로 활약했던 바룩이 작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바룩서」를 만나게 됩니다. 모두 다섯 개의 노래로 구성된 「애가」와 여섯 장으로 이뤄진 「바룩서」는 비교적 짧은 책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레미야서」의 부록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될 정도로 비중이 큰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1)「애가」의 명칭, 저자와 시대 배경 히브리어 성경에서 「애가」의 명칭은 이 책의 첫 마디인 '에카'( , '아!' 또는 '어찌하여!')입니다. 그러나 탈무드에 의하면 이 책의 본래 이름은 '에카'가 아니라 죽은 이를 애도하며 부르던 만가(輓歌), 곧 애가(哀歌)를 가리키는 '키놋'이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성경과 라틴어 성경에서는 탈무드의 증언을 받아들여서 「애가」를 각기 '트레노이'( )와 '라멘타씨오네스'(Lamentationes)라 부르고 있습니다. 바빌론 침공과 예루살렘 함락을 애도하는 성전 방화일(음력 7월)에 유다교에서 낭독되던 「애가」의 저자는 예레미야라는 전통적 견해와 달리 한 사람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개의 독립된 시(詩)들의 내용과 기조가 서로 너무나 다릅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론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서 함락되고 파괴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의 폐허 앞에서 민족 전체를 휩쓴 재앙의 참상을 바라보며 슬퍼하고 분노하면서도, 이런 재앙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반성하며 참회와 탄원기도를 바칩니다. (2)「애가」의 메시지 「신명기」의 신학에 철저하게 충실한 「애가」는 어느 대목에서도 바빌론을 거명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닥친 대재앙은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셨기 때문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유다 민족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징벌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접한 재난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하느님께서는 정의의 하느님이시기도 하지만 자비의 하느님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애가」서가 담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3)「바룩서」의 저자, 저술 동기 및 구분 유배 이후의 유다인들로 하여금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 자비와 용서를 받게 하기 위해 저술된 「바룩서」는 예레미야의 서기관으로 알려진 '네리야의 아들'(1,1) '바룩'이 저자라고 서두에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바룩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바빌론이 아니라 이집트로 갔기 때문에(예레 43,1~7 참조), 이 책은 기원전 3세기 미상의 인물들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아래와 같이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는 「바룩서」는 각 부분의 문학 유형이 서로 달라 작성 시기와 저자가 각기 다르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1,1~14: 서문 2)1,15~3,8: 참회의 고백과 기도 3)3,9~4,4: 지혜에 관한 명상 4)4,5~5,9: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 5)6,1~72: 부록: 예레미야의 편지 (4)「바룩서」의 메시지 이스라엘에 닥친 재앙의 원인은 하느님의 무능하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며 잡신들을 섬겼기에, 그 결과로 바빌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그곳의 주민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애로우신 하느님께 호소하면서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이상과 같이 유배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면서 「바룩서」의 저자는 '토라', 곧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율법을 알고 준수할 때 이스라엘은 참 지혜를 깨닫고 참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입니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장 비서)이힘2009.04.21
![[출판/책꽂이]「엄마의 기도 수첩」 등 4권](//cpbc.co.kr/CMS/newspaper/2009/08/rc/306666_1.0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엄마의 기도 수첩」 등 4권 ▨엄마의 기도 수첩 안영ㆍ이인옥ㆍ이재희 지음/바오로딸/8500원 「생활 속에서 드리는 기도」의 후속편. 소설가 안영(실비아, 69)씨와 성경봉사자 이인옥(체칠리아, 55)씨, 동화작가 겸 수필가 이재희(제노베파, 51)씨 등 세 작가가 주제별로 집필한 생활 속 기도 150편 모음집이다. 새 영세자와 결혼한 자녀, 군대 간 아들, 유학을 떠난 자녀, 아픈 이를 위한 기도를 30편씩 담았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상황에서 '호흡처럼 바치는 화살기도'다. ▨내 안에 숨겨진 보물 김복순 지음/김선명 그림/성바오로/1만 원 바다에 사는 은치와 금치라는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그린 책. 차가움을 상징하는 은빛의 은치는 우리 이성을, 따뜻함을 상징하는 노란빛의 금치는 우리 감정을 각각 은유한다. 그러기에 이들 이야기는 내면의 바다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심연으로의 여행을 초대받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희망의 기도 응웬 반 투안 추기경 지음/오영민 옮김/바오로딸/9000원 13년간 옥중생활을 기도로 승화시킨 고(故) 응웬 반 투안(전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추기경의 묵상 글. 기도시 형식의 글을 통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현대인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며, 더불어 더 충만한 영적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복음과 선교사명, 젊은이에게 주는 글, 성인이란, 기도, 충만한 기도생활 등 일곱 가지 주제로 나눴다. ▨기도하면 열리리라 강은교ㆍ김소엽ㆍ김율도ㆍ도종환ㆍ서정윤ㆍ이해인 등 지음/율도국출판사/7500원 영혼을 치유하는 기도시 모음집. 국내외 시인들의 기도시를 통해 묵상과 깨달음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1부는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서정적 기도시 17편, 2부는 상황별 구하는 기도 38편, 3부는 사람을 위한 기도 19편을 각각 묶었다. 특히 3부에선 10대들과 부모,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중점적으로 수록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오세택2009.08.18
![[특별기고] 뇌물 이야기(양승규 시몬, 서울대 명예교수)](//cpbc.co.kr/CMS/newspaper/2009/07/rc/301753_1.0_titleImage_1.jpg)
[특별기고] 뇌물 이야기(양승규 시몬, 서울대 명예교수) 뇌물과 사회윤리의 타락 뇌물은 부정부패의 고리이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 받는 것은 사회적 암을 키워 자신은 물론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뇌물이 오가는 현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는 정치권력의 타락으로 권력형 비리가 양산돼 역대 대통령이 하나같이 추한 모습을 띠고, 사회적 부패가 심화되면서 이권이 있는 곳에서는 으레 부정한 돈이 오가고, 뇌물사건의 보도는 끊임이 없다. 잠언은 "뇌물을 주는 자의 눈에는 그것이 요술 보석 같아 그가 몸을 돌리는 곳마다 안 되는 일이 없다"(17,8)고 적고 있다. 이것은 공직자들이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게 되면 악마의 유혹에 걸려들어, 준 자의 청을 거절할 수 없고 시키는대로 따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일 께다. 뇌물을 줄 때까지는 굽실거리던 사람이 일단 상대방이 그 돈을 받아 챙기면 이를 미끼로 오히려 큰 소리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공화당 시절에 어느 장관에게 돈심부름을 했다는 말을 우연하게 엿듣고, 그 공직자에게 좀 더 깨끗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없느냐고 거든 일이 있다. 그는 '요즘 그런 돈을 못먹는 것이 바보다. 뇌물죄는 쌍벌죄로서 준 자가 돈을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므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이고, 사회윤리의 타락현상을 드러낸다. 관뚜껑까지의 비밀과 양심의 고통 강의 중 뇌물에 관한 말을 하면서 "나는 뇌물을 좋아한다. 다만 나에게 뇌물을 가져온 자에게는 관뚜껑을 덮을 때까지 절대로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게 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만 돈을 챙기고 있다. 다행히 누구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아 매우 깨끗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해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실 것으로 보느냐?"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물론 학생들은 모두가 '하느님께서는 곱게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하느님께 "제가 얼마나 잘 살았으면 저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청렴하고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칭송하는데 하느님만 저를 그렇게 몹쓸 사람이라고 나무라십니까?"하고 하소연하면 하느님은 어떻게 대하실 것으로 보느냐고 학생들에게 되물었다. 역시 부정적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판별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행실을 알았느냐 몰랐느냐는 상관이 없다. 거짓과 위선으로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양심은 속일 수 없고, 더구나 하느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는 없다. 내가 스스로 교묘하게 불의를 저지르고도 남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해 성인군자처럼 행세하고 남의 칭찬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내 양심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영혼의 파멸과 재앙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우리 삶에 필요한 도구일 뿐 행복의 잣대는 아니다. 돈에 집착하거나 물질적 가치에 치중해 부정한 돈이라도 가리지 않는다면 악마는 미소를 짓고 덤비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도덕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뇌물을 주고 받아 선량한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신의 영혼의 파멸과 재앙을 불러오는 끔찍한 범죄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야고 1,15)는 말씀처럼 사람의 죄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노자(老子)도 "재앙은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얻으려는 욕심보다 더 큰 것이 없다"(도덕경 46장)고 이른다. "불의하게 모은 보화는 소용이 없지만 정의는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준다"(잠언 10,2)는 성경말씀을 깊이 간직하면서 뇌물과 같은 부정한 거래가 없는 밝은 사회를 이룩하도록 힘쓰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남정률2009.07.14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청주교구③ '청소년'](//cpbc.co.kr/CMS/newspaper/2010/04/rc/332771_1.0_titleImage_1.jpg)
[복음화 산실, 지금 우리 교구는] 청주교구③ '청소년''복음과 복음을 사는 청소년' 비전 세워 심혈 교회는 청소년을 '희망'(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스도인 교육에 대한 선언' 2항)이자 '도전'(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1항)으로 본다. '맑은고을' 청주교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5년 교구 신자들을 대상으로 교구 시노드 의제에 대한 의견 수렴을 벌인 결과, '선교' 다음으로 교구민들이 중요하게 여긴 의제는 '청소년'으로 드러났다. 이는 교회 미래가 청소년에 달려 있지만, 동시에 청소년들이 오늘날 급속하고 혼란한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며 교회와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에서 기인한다. 그만큼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고, 이에 따라 청소년에 대한 교회 관심 또한 높아간다. 청주교구도 '복음과 복음을 사는 청소년(Good News, Good Youth)'이라는 비전을 세워 청소년사목에 심혈을 기울인다.오세택 기자sebastiano@pbc.co.kr사진제공=청주교구 청소년사목국1월 9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예비중학생들이 교구에서 마련한 피정에 참가, '시건방 춤'을 추며 또래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알고 느끼고 체험하게 최근 청주교구 청소년사목국(국장 양윤성 신부)은 설문조사를 벌였다. 청주시내, 시외 15개 본당 청소년 171명을 대상으로 한 미니 설문이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청소년들은 성당에서 교리를 배우기보다 놀기를 더 좋아하지 않겠느냐 하는 예상을 벗어나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전환기에 놓인 청소년들은 성당에 바라는 것으로 84명(49.1%)이 신앙심과 교리지식을 꼽았고, 재미나 스트레스 해소, 우정 등은 31명(18.1%)에 불과했다. 주일학교 행사 중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도 신앙학교(80명, 46.8%)를 가장 많이 선택했고, 체육대회(22명, 12.9%), 은총시장(20명, 11.7%) 등은 그 다음이었다. 총 28개 설문을 통해 청소년들은 '주일학교에 나가면 재미있다'(81명, 47.4%)고 답변하거나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한다'(76명, 44.4%)고 응답하는 등 대체로 신앙생활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드러냈다. 본당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기에 얼핏 당연한 결과로도 볼 수 있지만, 이들의 답변은 교회에 아주 중요한 시사를 준다. 그것은 교회가 제일 잘하는 것, 곧 신앙을 청소년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청소년사목국은 성당에 나오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신앙의 장에서 마음껏 주도적으로 '놀 수 있도록' 판을 짜고 '또래사도'라는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를 위한 청소년 사목 모토는 '그리스도를 따름(Sequela Christi)'이다. 교회 미래이자 현재인 청소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느끼고 체험토록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데 그 뜻을 두고 있다. 교구는 특히 시노드 후속 실천으로 '지구 중심 청소년사목'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사업 방안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부응해 청주 흥덕지구는 '공동 청소년사목 기금'을 조성해 본당별로 청소년사목을 도맡고 있는 보좌신부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 8개 지구 중 청주 상당ㆍ흥덕 지구와 충주지구에는 지구연합회가 결성돼 지구연합 교사 피정, 전례부 피정, 지구체육대회, 도보성지순례 등을 갖고 있다. 특별히 올해는 배티성지에서 연풍성지에 이르는 도보성지순례를 지구끼리 여섯 차례에 걸쳐 시행할 계획이다. 지구별 청소년 행사는 △생활권이 같고 △생활수준도 비슷하며 △본당별로 서로 자극이 돼 또래들 사이에 반응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말씀 실천을 통한 청소년 복음화로 멀리는 2020년까지 이뤄질 '교구 비전 2050'을 향해, 가까이는 올 한해 '말씀 실천'을 향해 교구 청소년들도 마음을 모으고 있다. 2020년까지 교구민은 20만 명으로, 새 영세자 및 주일미사 참례율은 50%씩 늘리려는 기도와 지향은 비단 '어른들만의' 것은 아니어서다. 그래서 올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복음의 사도가 되도록 청소년사목국은 '새 양 잃은 양 찾기 1/1운동'을 시작으로 '나도 선교사', '성경 공부', '또래사도 활성화' 등을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 방안은 청소년 1인당 새 양 1명과 잃은 양 1명을 찾고 10대와 학원, 지역사회를 복음화로 이끈다는 목표다. 또 초등부는 루카복음 쓰기에 이어 루카복음 캠프를 열고, 중ㆍ고등부는 창세기 쓰기와 창세기 실천하기를 지향하고 있다. 지난 3월 28일로 6기 발대식을 가진 '또래사도'는 2005년에 시작된 교구 청소년 사목의 상징으로, 각 본당별로 올해 80명이 참여해 1년에 네 차례 교육을 통해 신앙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물론 '또래를 통한 또래 복음화'는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들만이라도 본당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1년간 판을 깔아주고 이들이 장차 본당 공동체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것으로도 의미가 깊다고 한다. 필리핀 해외선교 체험으로 마무리되는 또래사도 출신들이 벌써 각 본당 주일학교에 신입 교리교사로 들어와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교구 대신학교 입학생 3명 중 2명이 또래사도에서 나왔다. "역시 양성되면 다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환기 청소년 교육도 주일학교 활성화에 '보이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초ㆍ중ㆍ고교 졸업을 전후해 학생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2007년부터 겨울방학 때마다 예비중학생 피정과 예비고등학생 피정, 고교생 졸업 피정 등을 갖고 있다. 올해 네 번째로 참여 본당에선 아주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주일학교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초ㆍ중ㆍ고 입학생이 줄면서 덩달아 주일학교 학생도 줄고, 시골 본당은 아예 주일학교 입학생이 몇 년째 단 한 명도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구별 청소년사목활동을 강화한다고 해도 청소년사목을 지원할 인재가 없는 것도 큰 과제다. 교구 청소년사목국은 지난 3월 27일 '청소년사목지원단'을 발족시켜 각 분야별 전문가 19명을 위촉했다. 장차 지구별 청소년 기획 행사에 인재 풀(pool)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다. 다만 지구별로 청소년사목 거점 본당 지정과 각 지구별 청소년 전담 사제 임명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양윤성 국장신부는 "가장 힘든 건 역시 줄 세우기나 편 가르기 교육, 신앙교육을 저해하는 사회적 분위기"라며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기준이 돼야만 부모와 아이들, 사목자들도 더는 학원이냐, 성당이냐 하는 갈등을 하지 않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cpbc2010.04.14
![[사회사목]2009 종교인대화마당, 18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김포 용화사에서 '생명의 강-깨달음과 영성의 길' 주제로 열려](//cpbc.co.kr/CMS/newspaper/2009/08/rc/307416_1.0_titleImage_1.jpg)
[사회사목]2009 종교인대화마당, 18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김포 용화사에서 '생명의 강-깨달음과 영성의 길' 주제로 열려 19일 김포 용화사에서 종교인대화마당을 갖고 있는 가운데 프로그램의 하나로 잡초를 제거하고 있는 7개 종교환경단체 활동가와 대표들. 8회째를 맞은 '종교인 대화마당'이 올해엔 김포 용화사(주지 지관 스님)에서 열렸다. 18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불교 사찰에 머물며 직접 경인운하 건설 현장을 답사하고,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개 종교 간 이해와 협력을 통해 자연친화적 생명 살림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초석이 되려는 취지로 개최됐다. 2009 종교인 대화마당엔 황종렬(레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위원) 박사가 '생명의 강-깨달음과 영성의 길'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성경을 통해 보는 물의 의미와 그 영성을 짚었다. 아울러 이웃으로 생태적 지평과 연대를 확장해 나가며, 에고(ego, 나)의 이야기를 넘어 테오(theo, 하느님)의 영으로 생명 살림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천적 영성과 대안을 제시했다. 황 박사는 "4대강 살리기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영성은 가난에 대한, 소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한 '동행의 길'"이라며 "비움과 밟힘, 먹힘, 그리고 이음으로써 집안 살림(oikonomia)을 향하여 사도직 실천과 사목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룹별 토의 및 발표는 '강을 살리기 위한 종교인 삶 속의 실천사항'이라는 주제로 이뤄졌다. 성찰과 지향을 통해 종교 역할과 영성을 새롭게 하며 현장성과 실천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현장 체험을 강화하고, 사람들이 강에 많이 찾아오도록 사진전을 개최하고, 운하건설 문제에 대한 전반적 홍보활동을 강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아울러 종교인들의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한 정화의 필요성이 전제돼야 하고, 이를 통해 강에 대한 인식 전환과 현실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종교환경회의(공동대표 김규봉 신부 등 4명) 주최로 열린 이번 종교인 대화마당엔 기독교환경연대와 불교환경연대, 에코붓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천지보은회 등 7개 종교환경단체에서 30여 명이 함께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8.25
![[6ㆍ25 전쟁 발발 60주년 특집]옥사덕 수용소 생존자 벨트비나 체사르 수녀를 만나다.](//cpbc.co.kr/CMS/newspaper/2010/06/rc/340095_1.0_titleImage_1.jpg)
[6ㆍ25 전쟁 발발 60주년 특집]옥사덕 수용소 생존자 벨트비나 체사르 수녀를 만나다."연옥 같은 고통 마저도 주님 뜻에 감사"... 혹독한 수감생활과 강제노동, 추위, 배고픔도 주님의 뜻... 옥사덕수용소도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 찾은 축복의 공간... 한국 사람으로 살다 주님 품으로 가겠다는 독일 출신 수녀...벨트비나(왼쪽) 수녀가 수녀원 성당에서 기도서를 펼치고 있다. 하루 네 차례 있는 공동 전례기도나 개인 기도에 참 열심이다. 그 곁엔 이정자(크리스타) 수녀가 함께하고 있다. 1949년 5월 14일.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함흥분원에는 적막이 흘렀다. 분원장 벨트비나 체사르(Bertwina Caesar, 한국 이름 채인숙) 수녀를 비롯한 유럽 출신 수도자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이에 앞서 7일 제4대 원장인 겔트루드 링크 수녀가 "선교는 끝났다"고 수도가족들에게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을 만큼 상황이 악화돼 있었고, 이어 10일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원산수녀원(프리오랏, 수련소를 둔 원장좌 수녀원)이 공산당국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늦은 시각 함흥분원 현관 초인종이 울리고 정치보위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때 벨트비나 수녀를 비롯해 4명이 원산 임시교화소로 피랍됐다. 그로부터 80여 일간에 걸친 원산ㆍ함흥ㆍ평양인민교화소 수감과 장장 4년 5개월에 걸친 '옥사덕수용소'(자강도 전천군 별하면 쌍방리)에서의 수난이 이어진다. 당시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과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원산수녀원에서 체포 투옥돼 강제수용됐던 외국인 신부와 수사, 수녀는 모두 67명으로, 그 중 25명이 희생됐고 42명만이 살아남아 1954년 1월 12일 유럽으로 귀환한다. 피랍 초부터 1954년 1월 독일로 송환되기까지 전 수난 여정에 함께한 벨트비나 수녀는 생존자 42명 중 현재 유일하게 살아 있다. 6ㆍ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벨트비나 수녀가 노후를 보내는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으로 향했다. 수도원의 초여름은 화사했다. 우리 나이로 97살이라는 고령이 믿기지 않을 만큼 벨트비나 수녀 또한 화사한 미소에 정정했다. 아직도 날마다 새벽 4시 30분이면 기상, 하루 네 차례씩 이어지는 공동 전례기도(Opus Dei)는 물론 개인 기도(Lectio Divina)에도 열심이다. 짬이 날 때마다 호미를 들고 다니며 수도원 정원 잔디밭 풀을 뽑는다. 비록 은퇴했지만 '기도하며 일하며 읽어라(Ora, Labora et Lege)'는 베네딕도의 영성 전통은 여전히 그의 삶의 전부다. 이젠 수도생활과 기도에만 오롯이 전념한다. 수녀원 접견실에서 만난 벨트비나 수녀와의 인터뷰는 시종 즐거웠다. 들려주는 에피소드마다 폭소가 터졌다. 워낙 고령이어서 기억이 또렷하지 못했고,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기도 했지만 삶을, 심지어는 북한에서의 혹독했던 수감과 강제노동, 추위, 배고픔, 수도가족들 순교까지도 하느님 뜻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수도자다웠다. "함흥 인민교화소 감방 넓이는 가로 1m, 세로 3m 정도였는데 음식이 기가 막혔지요. 갖가지 잡곡을 섞은 밥 덩어리와 소금물에 배춧잎이 떠 있는 국이 전부였어요. 두 달 넘게 감방에 있으면서도 고기라고는 작은 생선 토막을 두 번 먹은 것뿐이었죠. 국을 담아오던 양동이는 새벽에 일어나 청소할 때 걸레를 빨던 양동이를 대충 씻은 것이었어요. 걸레는 너무나 낡고 더러워 바닥이 잘 닦여지지 않았지요. 뿐만 아니라 이나 벼룩, 빈대 등이 득실거려 견디기가 힘들었지요. 나무로 만든 변기통은 대개 두 주간에 한 번씩 비워주었어요. 우린 간수들이 변기통을 비워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연옥과도 같은 고통이었지요." 57일간 원산ㆍ함흥 임시교화소와 인민교화소에서 산 벨트비나 수녀 등 4명은 그해 7월 10일 평양 인민교화소로 이송된다. 이송에 앞서 수도복과 머릿수건, 소지품 등을 모두 빼앗기고 속옷과 속치마만 걸친 채 끌려간 네 수도자는 굶주리고 탈진한 모습으로 수감됐지만 겔트루드 원장수녀 등 수녀들 16명을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벨트비나 수녀는 증언한다. "새벽녘 옆방에서 벽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우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간수에게 다른 수녀님들이 계신지 물어봤지만 도무지 대답을 해주지 않았죠. 나중에야 들었는데, 원장수녀님이 평양교화소장에게 면회를 신청했다고 하더군요. 그 결과 평양교화소에 들어간 지 사흘 만에 감방 죄수들이 모두 잠든 밤 12시부터 한 시간 동안 우리는 만남을 가졌습니다. 울지도, 소리 내 말하기도 힘든 처지인지라 우린 얼마나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훗날 우린 이때를 '귀신의 시간'이라고 불렀는데, 우리 몰골이 꼭 귀신과 같았고 아무도 모르게 이뤄진 만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 함흥교화소 수감 생활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지극한 인내로 견디며 바친 기도는 간절했다. "주님! 당신 뜻대로 모든 것을 다 받겠나이다. 어여삐 여기소서!" 수난은 그치지 않았다. 1949년 8월 5일 평양교화소를 출발한 성직자와 수도자(당시 유죄선고를 받은 독일인 선교사 8명과 한국인 신부 6명은 피살) 59명은 험준한 자강도 산골짜기로 옮겨진다. 그래도 '모두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고된 노동 속에서도 시간전례(성무일도)와 미사를 통해 궁핍과 고통을 견뎠다. 보위부원들이 덕원에서 가져온 옥수수ㆍ쌀자루에 섞인 밀알을 정성스럽게 골라 밀밭을 일궈 수확한 밀가루로 제병을 만들었고, 미사주는 산에 있는 머루를 따다가 술을 만들어 사용했다. 매일 봉헌된 미사 성제는 수용소 생활을 참고 견디게 해준 하느님 섭리이자 손길이었다. 옥사덕수용소에서 가장 힘겨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벨트비나 수녀는 뜻밖에도 '호미질'이었다고 고백했다. 1937년 6월 21일 수련자로 한국에 들어와 이듬해 6월 29일 첫서원을 한 뒤 수련자 양성과 선교에만 매달린 벨트비나 수녀에게 하루종일 쪼그려 앉아 밭을 매는 호미질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늘 서서 일하는 유럽인에게 쪼그려 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여름이면 옥수수나 감자 등을 재배하고 겨울이면 숯을 굽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일거리도 '배정' 받았다. 수녀들에겐 주방 일과 가축 사육, 농장 일 등이 주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일을 강요당하고 움막을 개조하고 외양간을 고쳐 지었다. 매일같이 옥수수와 콩을 갈아 먹어야 했다. 때로는 몇 주일간 무우국과 무우 시래기, 오이죽이나 오이 나물을 계속 먹어야 했다. 인민군이나 내무서원 같은 감시인들이 산나물을 캐 먹는 걸 보고 따라하고, 숲에 일하러 가서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으면 행운이었다. 죄수복처럼 푸른 작업복을 한 벌씩 나눠줬지만 이것으로는 추위를 견딜 수 없기에 인민군들이 버린 옷을 주워다가 잿물로 빨아 해진 곳을 기워 입었다. "옥사덕ㆍ관문리 수용소에서 수도가족을 열 일곱 분이나 잃어야 했지요. 치명이나 다를 바 없는 죽음을 당한 수도가족들 시신마저 제대로 안장하지 못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벨트비나 수녀는 참혹했던 기억을 손자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처럼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매사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성품이 시련을 '해피엔딩 스토리'로 바꿔 놓은 듯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을 열심히 찾았는지, 서로서로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몰라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옥사덕수용소에서 살았던 시기는 하느님께서 허락한 축복의 시간이었지요." 독일 뷔르츠부르크교구 슈바인푸르트 인근 타일하임 출신으로 1936년 입회한 벨트비나 수녀는 올해 수도서원 72주년을 맞는다. 1954년 독일로 송환됐다가 1958년 한국에 공동체가 복원됐다는 소식에 다시 돌아와 대구수녀원에서 주로 양성을 담당했으며, 최근까지도 수녀원 역사 정리와 독일 은인 관리 업무를 맡기도 했다. 평생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살던 언니 브리기다 체사르(Brigida Caesare) 수녀는 지난해 5월 97살을 일기로 선종해 외로울 법도 한데 노수녀는 여전히 밝다. 지금은 후배 수녀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삶의 아름다운 황혼을 누리는 벨트비나 수녀는 "수녀로 서원한 것도, 수녀로 산 것도 한국에서였다"며 "그런 의미에서 독일산(Made in Germany)이 아니라 한국산(Made in Korea)이니 한국 사람으로 살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환하게 웃는다. 한 삶 신앙과 선행 실천으로 허리를 묶고 성경의 인도를 따라 주님의 길을 걸은 노수녀의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하느님께서 당신을 하느님 나라로 부르시는 날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기도하며 황혼에 젖는 해거름 수도원을 걸어 내려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오세택2010.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