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동아시아 여성회의 "성모 마리아 삶과 신앙 본받아야"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평신도가정위원회가 3~7일 대만 타오유안 성데레사활동센터에서 개최한 제2차 동아시아 여성회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평신도가정위원회가 3~7일 대만 타오유안 성데레사활동센터에서 개최한 제2차 동아시아 여성회의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이무스교구장) 주교ㆍ최혜영(성심수녀회 한국관구장) 수녀 발표 내용과 염수정(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 위원장) 주교 인터뷰를 싣는다. 타글레 주교와 최혜영 수녀는 주제 발표에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삶과 신앙을 재조명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제 발표1-마리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여인(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주교, 필리핀 이무스교구장) 마리아의 생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마리아의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난 여러 덕목과 행동은 우리 스스로 깊이 새기고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마리아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 여성들이 어떤 영성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또 실제 존재했던 여성이자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마리아를 통해 우리 시대 진정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마리아를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마리아의 인간성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는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로서만 인식해왔다. 하지만 마리아는 어머니, 부인이기 이전에 본인 스스로 강한 믿음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능동적 사도였다. 특히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의 인간적 면모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린 제자로서의 마리아 △여행자로서의 마리아 △임신한 여성으로서의 마리아 △억압받는 여성으로서의 마리아 △결혼한 여성으로서의 마리아 △축복받은 여인으로서의 마리아 △희생된 어머니로서의 마리아 △성령의 은총을 기다리는 신심 깊은 제자로서의 마리아 등 다양한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마리아의 인간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 마리아가 보여준 이러한 덕목들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증거자로서 행한 마리아의 강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 뒷받침될 때 진정한 복음화 또한 가능하다. '부드러운 힘'을 가진 마리아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교회 구석구석에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우리 교회와 사회에 존재하는 소외된 여성들에게도 강한 영감을 준다. 동아시아 전역에 존재하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과 이주민 여성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해주며, 그들이 하느님 말씀으로 신앙을 갖고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제 발표2-마리아, 교회의 참 제자상(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 관구장) 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매개로 여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시대가 요청하는 변화에 어렵지 않게 응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느님은 사랑받는 존재인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의 여성성ㆍ동정성ㆍ모성을 보여준다. 마리아의 여성성은 하느님의 여성성을 회복하는 온전한 교회를 뜻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아내인 배우자적 사랑으로 '하느님의 가족'을 구성한다는 관념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모성과 동정성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소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 교회가 여성의 고유한 소명을 모성과 동정성으로 규정한 것은 교회가 하느님의 동반자로서 지녀야 할 소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으로 교회는 권위적이고 위계적이고 가부장적 모습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평등한 교회, 생명을 낳아 기르는 살림의 교회, 하느님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우러진 온전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을 선포하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를 뜻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구세주를 잉태하고 양육하며 일생에 거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우리에게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세상을 관상적 안목으로 바라보도록 촉구한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한 여인의 협력을 통해 하느님이 구원 역사를 어떻게 이끄시는지 드러낸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생물학적 동정성보다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모성은 생명을 양육하며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회를 뜻한다. 마리아의 모성은 혈연관계를 넘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예수의 생애에서 마리아는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였고 지지자였다. 교회는 어머니인 교회로 상징돼 왔으며, 그 사명 역시 모성으로 표현된다. 교회는 세례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자녀들을 낳아 하느님 가족을 늘리기에 '어머니'인 동시에 신앙의 진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신앙 감성을 길러주는 '스승'의 역할도 맡는다. 이처럼 우리는 마리아의 삶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 제자 직분의 모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생명의 소중함, 살림의 지혜를 알리시는 마리아 △자연생명, 창조질서를 보존하도록 촉구하시는 마리아 △인류를 한 가족으로 불러모으시는 마리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실천하시는 마리아 △관계 중심의 봉사적 리더로 부르시는 마리아 등이다. 이처럼 교회의 여성적 이미지와 맞닿아 있는 마리아는 여성뿐 아니라 교회 모든 구성원이 본받아야 할 제자됨의 상징이다. 현대 동아시아 교회가 추구해야 할 것은 마리아의 여성성ㆍ동정성ㆍ모성 안에서 하느님의 여성성을 회복하는 온전한 교회,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을 선포하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 생명을 양육하며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회다. 타오유안(대만)=이서연 기자 kitty@pbc.co.kr한국 대표단으로 회의 참가한 염수정 주교 "동아시아 각국에 공통적으로 결혼ㆍ출산ㆍ양육 기피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인 생명을 거부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같은 생명경시 풍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교회 모두 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제2차 동아시아 여성회의에 참가한 염수정(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 위원장) 주교는 동아시아 각국에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회의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결혼ㆍ출산ㆍ양육 기피 풍조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본ㆍ대만ㆍ홍콩ㆍ마카오 등 동아시아 국가 모두가 공통된 문제로 안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국가와 지역, 문화를 불문하고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꺼리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염 주교는 "이같은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법률ㆍ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여성 존엄성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하느님이 당신 모상대로 창조한 인격입니다. 여성 인격 또한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인격을 자꾸만 수단화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하나의 소중한 인격으로 바라볼 때 생명경시 풍조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염 주교는 이러한 인식 전환이 비단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교회 내 남녀 불평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다 나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 안에서 자꾸만 남녀를 구분할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 회의에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배운 리더십과 영성을 남녀 모두가 함께 본받아 더 나은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염 주교는 "동아시아 전역의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한데 모여 이 시대 여성 문제를 논의하고 마리아의 영성을 재발견하고자 머리를 맞댄 것 자체가 큰 성과"라면서 회의 결과는 물론 풍성한 나눔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서연 기자 이서연2010.05.19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지은이 박혜원씨 "성화에서 느낀 깊은 감동 나누고 싶어요"박혜원씨. "성화는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12세기 무명 장인이 그린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신앙과 정신력을 보게 됩니다.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좋은 작품은 끊임없이 말을 걸며 근본 정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벨기에 브뤼셀 리브르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홍익대미술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한 박혜원(소피아, 42, 사진)씨가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생각의 나무/2만 2000원)을 펴냈다.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은 '위엄 있는 그리스도' '플랑드르 작품 속 그리스도' '인간 예수' '바로크 시대의 그리스도''새로운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 등 모두 5장으로 꾸몄다. 수도원 벽화에서부터 조각, 회화, 수사본, 제단화, 유리화까지 미술사를 총망라한 성화 92점을 소개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루벤스, 밀레, 고흐를 비롯해 무명 작가까지 그가 오랫동안 소중히 들여다보고 공부하며 교감한 살아있는 성화들이다. 신과 인간의 교감을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가장 오래된 이콘 중 하나인 '판토크라토르'(6세기)를 시작으로 조르주 루오의 '달빛 풍경 아래 꽃다발'(20세기)까지 신을 향한 색채 향연이 이어진다. 연대 순으로 배열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그리스도교 미술 전개 과정도 읽을 수 있다.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 세르비아 등 한국에는 덜 소개된 문화권 작품들을 다양하게 다룬 점도 돋보인다. "선정한 기준은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미술 공부를 하며 마주한 성화에서 느낀 깊은 감동을 혼자 갖고 있는 건 사치라고 생각해요. 제가 느낀 깊은 감동을 나누고 싶어요.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를 공유해야 의미가 있지요." 성화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곁들였다. 그러나 주관적 표현을 자제하고 객관적 정보만을 쉽게 간추려 전달했다. 좋은 그림은 이미 그림 자체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독자 스스로 '숨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틈을 열어둔 것이다. 예술과 자유롭게 교감하도록 하기 위한 박씨 배려다. 해설 뒤에 따라오는 성경구절은 잔잔한 묵상거리를 남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벨기에로 유학 간 그는 감수성이 풍부한 때에 성당과 미술관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랐다. 학생시절 공부로 받는 스트레스를 성당 안에 걸린 이콘과 마주하며 녹였다. 그에게 성화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다리이자, 살아있는 신앙이다. 그는 아름다움(美)을 추구하는 길은 진리(眞)와 선(善)을 추구하는 길과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을 믿는다. "미술과 음악은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종교적인 것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박씨는 "가톨릭 신자 뿐 아니라 일반인도 하느님 존재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사 속에 나타나는 음악을 주제로 한 책 「그림 속 음악 산책(가제)」을 5월에 발간할 예정이다. 박씨는 가톨릭대ㆍ상명대ㆍ서강대ㆍ인천가톨릭대 등에서 강의를 해왔다. 1996년부터 아홉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003년에는 평화방송 '함께 보는 교회미술' 진행자로 활동했다. 지난해 수원교구 주보에 이어 현재 의정부교구 주보에 성화 해설을 연재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중세 전기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수사본. 만화와 같이 여러 개 층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이다. 페이지 상단에는 라자로가 숨을 거둔 장면이 묘사됐는데, 그 옆에는 마리아와 마르타가 슬퍼하는 장면이 있고, 다음 장면에는 심부름을 보낸 사람이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있다. 중간 층에는 두 자매가 예수에게 라자로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고, 맨 하단에는 라자로가 갑자기 눈을 뜨고 관에서 일어서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단순명료하고 극적인 표현, 화려하고 세련된 색채로 그려졌다. 화가는 예수가 행하신 기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신장을 짧게, 그의 업적은 설득력있게 전달되도록 손은 크게 그렸다. 단순 명료한 표현은 효율적 메시지 전달을 위한 것으로 책을 아름답게 하는 것뿐 아니라 교육과 복음 전파의 목적을 갖고 있다.천상의 짙은 푸른 배경 중앙에는 붉은 옷을 입은 그리스도로 추정되는 인물이 정면으로 우리를 직시하고 있다. 이는 11세기 로마네스크 성당 내부를 장식했던 유리화로 하느님의 신비는 오색찬란하고 환상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1880년 독일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비센부르크의 성 베드로-바오로 수도원에서 발견된 이 작은 유리화는 '영광의 그리스도'의 좌상 또는 입상으로 예수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는 또한 현존하는 유리화 중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녹푸른 배경에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과 얼굴 배경의 묽은 갈색 붓 터치는 눈부신 얼굴에 은은한 바탕을 깔아준다. 강렬한 검정색 윤곽선을 그리스도의 얼굴에 성스러운 기운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15세기 플랑드르의 수도원 식당에 펼쳐지는 광경. 흰 식탁보가 씌워진 수평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탁자 너머 그리스도가 정면을 바라보며 영성체를 축성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만찬에 초대받은 이들은 예수의 열두 제자로 그의 왼편에는 제자 요한이, 오른편에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성체를 응시하는 베드로가, 그 뒤에는 바오로가 있다. 우측에 붉은 옷을 입은 유다는 두 손에 검은 자루를 움켜쥐고 있는데, 이는 예수를 팔아넘긴 대가로 로마군에게 받은 은전 서른 닢이다. 그리스도 머리 뒤에는 나무로 된 큰 벽난로막이가 서 있는데, 우연인 듯 연출된 벽난로막이의 십자가 문양이 그리스도가 바로 십자가의 현현(顯顯)임을 암시한다. 네발이 묶여 꼼짝 못하는 이 백색의 수양은 바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극사실적 섬세함으로 그려진 양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환한 빛을 받고 있는데 이는 바로 암흑을 뚫고 구원의 빛으로 오는 그리스도 모습이다. 양의 폭신폭신한 털의 질감이 생생해 따스한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고, 때를 탄 털의 더러운 모습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힘없고 결백한 양은 자신에게 처해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감지했는지 눈이 반쯤 감긴 지친 모습이다. 외부로부터 환한 빛이 비추이는 화면 연출을 통해 침묵하는 천상의 신비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조르주 루오의 작품은 오랜 시간의 고된 훈련과 깊은 명상 후에 도달한 영성과 인성이 어우러진 심오한 정신의 산물이다. 청년 시절 유리화 공방에서의 견습은 그의 작품에 결정적 영향을 줬는데, 강렬한 색채와 거칠고 투박한 마티에르의 표현은 유리화의 형태를 감싸는 검은 납선을 연상시키는 검은 선을 낳았다. 외곽의 짙푸른 테두리는 액자 안의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루오는 그리스도, 광대, 창녀 등 다양한 주제를 그렸는데 본질적 주제는 바로 현존하는 하느님으로, 이는 해 또는 달로 등장한다. 창가의 기다란 화병에는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하느님 사랑의 자비와 그 신비를 소리 높여 찬양하고 있다. 이지혜2010.04.14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13) 복음 봉독말씀 전례의 화룡정점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복음 봉독은 말씀 전례의 정점이다. 복음 환호송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일어서서 말씀 선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복음 봉독을 하는 사제(주례자가 주교일 경우)나 부제는 주례자에게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축복을 청한다. 주례자는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어 그대가 복음을 합당하고 충실하게 선포하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면 봉독하는 이는 "아멘"이라고 응답한다. 장엄미사를 거행할 경우에는 봉독자는 복음서를 조금 높이 받들어 공동체가 볼 수 있도록 하며, 불을 켠 초 복사와 향로를 든 복사를 앞세우고 독서대에 가서 분향(세 번 분향)하고 복음을 선포하게 된다(간추린 미사전례 지침). 복음 선포자는 복음을 제대에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대에서 선포하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불을 켠 초의 의미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는 분에 대한 예의로서, 어둠을 몰아내시는 말씀과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서대에서 복음을 봉독하는 사제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회중에게 인사할 때 손을 모으고 한다(간추린 미사전례 지침). 그리고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하면 이어서 모든 이들이 "주님 영광받으소서"하면서 복음서(봉독자만)와 이마, 입술, 가슴에 작은 십자를 긋는다-분향의 예를 바칠 경우는 복음 봉독 전에 한다. 강복의 의미를 갖는 작은 십자성호는 11세기 이후에 나타난다. 사실 가톨릭에 입교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이나, 예비신자들은 경배하면서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를 잘 따라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주변의 형제자매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면 아주 고맙게 여기며 복음 말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을 봉독하는 사제는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하지만 힘찬 기운을 갖고서 복음을 읽어 나간다. 복음은 분명한 발음으로 미사전례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쉽게 그날 복음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읽어 나가야 하며, 강론에 필요한 부분에는 강조하면서 읽어 나가지만, 연극대사를 읽어 나가듯 개인감정을 드러내면서 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복음을 읽고 난 후에 사제는 분명한 목소리로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선포하고, 공동체는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라고 고백한다. 사제는 성사를 집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선포할 때도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씀 전례에 참석하는 공동체는 사제의 힘찬 복음 선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삶으로 증거하려는 결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복음이 선포되는 동안에 공동체는 독서 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보기보다는 사제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집중해야 한다. 사제는 복음을 봉독한 후에 복음서에 친구하거나 경배하면서 "이 복음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 주소서"하고 기도한다.이창훈2009.10.13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15-성경과 경전, 어떻게 읽을까?입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읽어야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한국천주교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도직 활동 중의 하나는 성서 사도직이다. 종교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인들은 그 심성 안에 내적 수양에 대한 욕구와 지식에 대한 학구열을 풍성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다양한 성서공부 프로그램이나 강좌들이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하느님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은 그룹 활동이다. 즉 그룹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서 묵상하여 나누고, 더 큰 그룹으로 모여 피정과 연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에 대한 체험을 심화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과 체험을 지닌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그룹의 봉사를 담당하면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 안에서 사람들은 엄청난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을 깨닫는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러한 뜨거운 체험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이나믹한 그룹 활동에서 벗어났을 때도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방법으로 하느님 말씀을 맛들이고, 지속적으로 그 능력을 만나는 법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렉시오 디비나'라는 방법이 소개되면서 이러한 갈망들을 채워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성경을 공부한다기보다, 일상생활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머물러 묵상하기도 하고, 기도하면서 관상하는 방법이다. 즉 우리가 매일 신문을 읽듯이, 밥을 먹듯이 성경을 읽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만나는 것이다. 오래 전에 이 렉시오 디비나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유학자들은 어떻게 경전들을 읽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주자어류」(朱子語類)의 독서법(讀書法)이라는 부분이었다. 힘들게 힘들게 꽤 많은 분량을 번역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서점에 나가보니 그 부분이 모두 번역되어 이미 책으로 나와 있었다. 무척 반갑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했다.(「주자서당은 어떻게 글을 배웠나」라는 책이다.) 하여튼 이제 '렉시오 디비나와 주자의 독서법'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그동안 정리한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은 '들어가는 말' 정도로 해두자. 유학자들에게 '책'하면 물론 경전(經典)을 뜻한다. 그리고 경전이란 성현(聖賢)의 말씀이다. 그래서 독서는 성현을 만나는 것이 된다.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인의 책을 정말 제대로 읽으면, 마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做好將聖人書讀, 見得意思如當面說話相似. 「朱子語類」 讀書法). 그리고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마치 렉시오 디비나의 여러 단계들과 비슷하다. "성현의 말씀은 모름지기 언제나 눈에 갖다 놓고, 입에서 구르게 하고, 마음에서 돌게 해야 한다"(聖賢之言, 須常將來眼頭過, 口頭轉, 心頭運. 同上). 요즘 서점가에는 옛 사람들의 공부 방법에 관한 책들이 부쩍 많이 나와 있다. 꼭 논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책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퇴계 선생과의 토론을 통해 한국 학술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던 기대승 선생, 그가 독서에 관해 지은 시 한 수 소개하고자 한다. 글 읽을 때 옛 사람의 마음을 찾아보아야 하니(讀書求見古人心), 반복하며 마음에 깊이 붙여야 한다(反覆唯應着意深). 터득하려면 마음으로 체득해야 하니(見得心來須體認), 언어만 가지고 헛되이 찾으려 들지 마소(莫將言語費推尋).cpbc2008.04.16
[공동체]대전교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천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사제인사 ▨대전교구=▲원로사목자 고광의(성모의 마을) ▲원로사목자 서봉세(대전가톨릭대 교수) ▲원로사목자 윤주병(탄방동 주임 겸 대전서부지구장) ▲원로사목자 김영교(교포사목, 미국 하와이 주임) ▲원로사목자 백승옥(유천동 주임) ▲서산석림동 주임 방윤석(정림동 주임) ▲탄방동 주임 겸 대전서부지구장 김용남(천안쌍용동 주임 겸 천안서부지구장) ▲해미 주임 윤여옥(해외선교, 일본 센다이) ▲유천동 주임 윤성균(교포사목, 호주 시드니 주임) ▲버드내 주임 윤인규(요양) ▲안식년 황화인(서산석림동 주임) ▲기지시 주임 김기범 폰치아노(안식년) ▲연수(미국 뉴저지) 정준섭(안식년) ▲천안쌍용동 주임 겸 천안서부지구장 김한승(대전가톨릭대 교수) ▲안식년 김용덕(다락골성지 전담) ▲교포사목(호주 시드니 주임) 김동규(송촌동 주임) ▲면 홍보국장 윤병권 ▲포콜라레 파견(사제학교) 이의정(안식년) ▲정림동 주임 강전민(해미 주임) ▲송촌동 주임 최견우(대전가톨릭대 교수) ▲공세리성지 본당 주임 김찬용(연수, 미국 뉴욕) ▲안식년 오남한(공세리성지 본당 주임) ▲진산성지 본당 주임 이석우(버드내 주임) ▲겸 성 요셉신학원(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영성지도 한정현 ▲겸 홍보국장 이재훈 ▲다락골성지 전담 이의철(유학, 국내) ▲프라도 파견(프랑스 리옹, 연수) 권선민(기지시 주임) ▲복수동 주임 오종진(대건중고교 교목) ▲해외선교(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송우진 가시미로(군종) ▲탕정 주임 이혁(군종) ▲공주신관동 보좌 김인호(유학, 이탈리아 로마) ▲법동 보좌 방영훈(교포사목, 미국 시애틀 보좌) ▲관저동 보좌 이득규(청소년사목국 제2차장) ▲서산동문동 보좌 오기환(요양) ▲연수(국내, 중등교사 자격) 허병도(교포사목, 호주 시드니 제1보좌) ▲조치원 보좌 이재홍(정림동 보좌) ▲홍보국 차장 이의현(유학, 이탈리아 로마) ▲서천 어메니티복지마을 보좌 변윤철(공세리성지 본당 보좌) ▲교포사목(미국 베이사이드) 손은석(교포사목, 미국 퀸즈 보좌) ▲교포사목(호주 시드니 제1보좌) 박성준(교포사목, 호주 시드니 제2보좌) ▲사회사목국 차장 김용호(조치원 보좌) ▲태평동 보좌 이강우(둔산동 보좌) ▲탄방동 보좌 임민수(탄방동 제1보좌) ▲연수(국내, 중등교사 자격) 최선종(직장직종 보좌) ▲군종 조성준(천안봉명동 보좌) ▲해외선교(프랑스 아미앵) 안성준(전민동 보좌) ▲해외선교(프랑스 아미앵) 방익수(월평동 보좌) ▲가양동 보좌 조규석(공주신관동 보좌) ▲교포사목(미국 하와이 보좌) 임승욱(괴정동 보좌) ▲교포사목(미국 시애틀 보좌) 김동훈(관저동 보좌) ▲유학(이탈리아 로마, 결혼과 가정) 강철민(노은동 보좌) ▲유학(프랑스 파리, 교리교육) 전영우(대흥동 보좌) ▲연수(국내, 중등교사 자격) 이상수(가양동 보좌) ▲직장직종 보좌 김광수(서산동문동 보좌) ▲월평동 보좌 임종택(온양 보좌) ▲유학(이탈리아 로마, 신약성경) 김재덕(궁동 보좌) ▲청소년사목국 제2차장 김찬영(도마동 보좌) ▲유학(국내, 교회음악) 강대원(당진 보좌) ▲교포사목(미국 퀸즈 보좌) 김동진(탄방동 제2보좌) ▲교포사목(호주 시드니 제2보좌) 변창수(법동 보좌) ▲대건중고교 교목 최용묵(태평동 보좌) ▲공세리성지 본당 보좌 양동혁(이하 새 신부) ▲노은동 보좌 김진 ▲궁동 보좌 김경환 ▲전민동 보좌 박진규 ▲둔산동 보좌 조성구 ▲대흥동 보좌 주범수 ▲괴정동 보좌 전상현 ▲온양 보좌 김기범 시몬 ▲도마동 보좌 백종관 ▲천안봉명동 보좌 윤용식 ▲당진 보좌 김은석 ▲예수회 복귀 최홍대(예수회, 대전가톨릭대 영성지도) ▲대전가톨릭대 영성지도 조학균(예수회) 21일 부임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회=▲대구대교구 신동 주임 서경윤(왜관 주임) ▲왜관 주임 고건상(약목 주임) ▲수도원 본원 박근배(신동 주임) ▲약목 주임 김병국(분도출판사) 22일 부임 ▨인천교구=새 사제 ▲소사 보좌 유성모 ▲심곡본동 보좌 양성일 ▲주안1동 보좌 유민균 ▲작전동 보좌 김동건 ▲가좌동 보좌 장세윤 ▲구월1동 보좌 이용현 ▲중2동 보좌 정하선 ▲간석4동 보좌 송찬 ▲부평3동 보좌 신일섭 ▲고강동 보좌 이세연 ▲서운동 보좌 이정 ▲부평4동 보좌 구본영 ▲가정동 보좌 최덕성 ▲원미동 보좌 최한별 ▲역곡2동 보좌 황운상 ▲남촌동 보좌 이재민 ▲만수3동 보좌 김현우 ▲십정동 보좌 김수현 ▲옥련동 보좌 김학신 ▲만수6동 보좌 김용수 ▲부평2동 보좌 임성환 ▲주안3동 보좌 조영승 ▲강화 보좌 김정남(미리내 천주성삼성직 수도회) ▲삼정동 보좌 김선명(미리내 천주성삼성직 수도회) ▲검단동 보좌 엄정환(미리내 천주성삼성직 수도회) ▲논현동 보좌 유수영(예수성심전교수도회) 25일 부임 ▨전주교구=▲은퇴 한봉섭(도통동 주임) ▲상삼례 주임 엄기봉(장계 주임) ▲용안 주임 김병환(필리핀 세부 교포사목) ▲도통동 주임 김준호(상삼례 주임) ▲부안 주임 현유복(금마 주임) ▲해외 선교사 한정현(용머리 주임) ▲운봉 신설 주임 문선구(휴양) ▲신태인 주임 김진철(국내 수학) ▲필리핀 세부 교포사목 이완재(용안 주임) ▲하늘향 원장 김봉술(신태인 주임) ▲장계 주임 박인근(미국 스테이튼아일랜드 교포사목) ▲페루 리마 교포사목 김원중(부안 주임) ▲금마 주임 정식수(진안 주임) ▲용머리 주임 김형수(페루 리마 교포사목) ▲진안 주임 전우진(전북대 병원 원목) ▲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서동원(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겸 인보성체수녀원 지도) ▲효자4동 신설 주임 김남기(일본 교포사목) ▲등용리 신설 주임 조민철(아르헨티나 교포교회 보좌) ▲종교교사 연수 박성환(청소년교육국 부국장) ▲아르헨티나 교포교회 보좌 전보근(금암동 보좌) ▲전북대 병원 원목 공현식(인후동 보좌) ▲금암동 보좌 연규영(덕진 보좌) ▲지곡 보좌 김종성(평화동보좌) ▲종교교사 연수 이용재(아중 보좌) ▲로마 유학 황규진(우림 보좌) ▲군종 입대 소재나(나운동 보좌) ▲나운동 보좌 정광철(사무처 차장) ▲삼천동 보좌 김관우(지곡 보좌) ▲국내 수학 하철민(숲정이 보좌) ▲송천동 보좌 김영복(서신동 보좌) ▲면직 김창연(삼천동 보좌) ▲청소년교육국 부국장 송현석(송천동 보좌) ▲사무처 차장 이가진(중앙 보좌) ▲효좌동 보좌 이준형(전동 보좌) ▲인후동 보좌 이상욱(효자우전 보좌) ▲호성동 보좌 소명섭(효자동 보좌) ▲서신동 보좌 유정현(솔내 보좌) ▲국내 수학 겸 인보성체수녀원 지도 하태진(호성동 보좌) 이상 11일자, 29일 부임 ▲아중 보좌 성현상(해외 연수) ▲평화동보좌 김회인(이하 새 사제) ▲숲정이 보좌 이정현 ▲덕진 보좌 두성균 ▲효자우전 보좌 윤태종 ▲중앙 보좌 김태환 ▲솔내 보좌 송광섭 ▲전동 보좌 최요왕 이상 14일자, 29일 부임 ◇위원회 및 제 단체 담당 ▲시성시복추진위원회 김영수 ▲요한ㆍ루갈다회 김영수 ▲신앙문화유산해설사회 이영춘 ▲의사회 공현식 ▲약사회 공현식 ▲약우회 공현식 ▲간호사회 공현식 이상 14일자 ▨제주교구=▲성산포 주임 이태수(화북 주임) ▲김녕 주임 서웅법(안식년) ▲화북 주임 이시우(김녕 주임) ▲유학 허찬란(성산포 주임) ▲신제주 보좌 우직한(서문 보좌) ▲일본 교토교구 최성환(신제주 보좌) ▲서문 보좌 유정의(동광 보좌) ▲동광 보좌 임남용(이하 새사제) ▲화북 보좌 김태정 ▲동문 보좌 김형민 29일 부임오세택2010.01.19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성 바오로(2) 오라토리오(Oratorio)는 종교 내용을 다룬 독창, 합창, 관현악을 위한 대규모 악곡이다. 대본은 보통 성경에 기초를 두고 해설을 담당한 여러 성부의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아리아(Aria), 합창이 번갈아가며 연주된다. 본래 '오라토리오'는 수도원이나 신학교 경당을 일컫는 말이다. 네리(Pilippo Neri, 1515~1595) 신부는 경당(oratorio)에서 성경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음악극을 하는 모임을 이끌어 왔다. 이후 1575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 모임을 공식적으로 승인했고 '오라토리회'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경당을 뜻하는 용어가 음악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된 유래다. 오라토리오는 카리시미(Giacomo Carissimi, 1605~1674)가 라틴어로 된 대본을 사용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쉬츠, 바흐, 헨델, 하이든, 멘델스존 등의 작곡가들이 품격 높은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교황청 작곡가였던 페로시(L. Perosi, 1872~1956)가 '나자렛 예수'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바오로'는 음악적으로 볼 때, 레치타티브와 아리아와 합창이 아주 잘 배합돼 있다. 주된 역할은 레치타티브가 이끌고 있는데 바흐의 수난곡에서 물려받은 형태를 띄고 있다. 이 곡에서 레치타티브는 소프노와 테너로 나뉘어 있다. 아리아는 전형적인 순환 3부분 형식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합창의 다양성이다. 때로는 합창이 능동적으로 행위를 이끌기도 한다.(예를 들면 5,6,8,28,29,38번). 몇몇 합창들은 대위법적인 푸가로 되어있기도 하다. 다음 회에서 오라토리오 성 바오로의 1부와 2부 내용에 대해 알아본다.신호철(베드로, 트리니타스 교회음악 아카데미 음악감독)박수정2009.02.24

"절망의 순간, 순간 기도로 이겨"발달장애 쌍둥이 형제 신앙으로 길러낸 유계희씨"엄마, 오늘 저녁은 갈비야?" 쌍둥이 동생 유진(왼쪽 두번째)씨가 저녁 메뉴를 물어보자 온가족이 웃음을 터뜨린다. 왼쪽부터 아버지 오철규씨, 동생 유진씨, 어머니 유계희씨, 형 운진씨. "저를 데려가시려거든 쌍둥이의 장애를 치유해 주세요.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 장가갈 때까지만이라도 살려 주십시오." 1998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계희(아가타, 청주교구 모충동본당)씨는 병상에서 눈물로 기도를 올렸다. 발달장애를 가진 오운진(당시 16살, 알폰소)ㆍ유진(에우제비오) 쌍둥이 형제를 키우는 상황에서 받은 암 선고는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었다. 애끓는 모정에 주님도 감동한 것일까. 유씨는 성공적인 수술과 항암치료에 힘입어 3년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쌍둥이 형제는 어느새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동생 유진씨는 천재성을 보이는 피아니스트로 자라 대전 배재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수학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형 운진씨는 모교인 청주 성신학교에서 차량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더욱이 쌍둥이 형제의 신앙심은 유씨와 남편 오철규(토마스 데 아퀴노)씨보다 더 독실해 부모의 신앙생활을 압도(?)한다고. 발달장애 3급인 쌍둥이 형제가 이처럼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데는 부모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두 돌이 지나도록 아이들 말문이 안 트여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정신과에 데려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자폐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치료하면 낫는 병인 줄만 알았지요." 유씨는 그 길로 아이들 손을 잡고 특수학교를 찾아다녔다. 네 식구가 단칸방에 살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택시운전을 하는 터라 살림이 늘 쪼들렸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아이들 자폐 증상은 더 심해졌다. 5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하고, 사회성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구원의 빛은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비춰왔다. 자폐증세가 더 심한 동생 유진이 4살 때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연주곡 '디셈버'를 한 번 듣고 반주까지 정확히 연주했다. 마침 단칸방에는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 들여놓은 중고 피아노가 있었다. 유진은 자폐아 중에서 특정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소위 '서번트 신드롬(servant syndrome)'의 한 명이었다. 그때부터 유씨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화성학, 작곡 공부도 가르치고 트럼펫 같은 관악기까지 가르쳤다. 각종 장애인 음악경연대회에도 참가해 큰 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유씨는 "절망하는 순간에 하느님께서 아이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신 것을 알았다"며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밝게 자라지 못했을 거에요. 아이들이 성당 활동을 하면서 부쩍 밝아졌어요. 저희 부부 몫까지 아이들이 열심히 기도한 덕에 이렇게 행복하게 됐나봐요." 쌍둥이 형제는 매일 새벽미사에 함께 참례한다. 동생 유진씨는 본당 청년성가대에서 반주를 도맡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영어성경 쓰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형 운진씨는 본당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며 열심히 기도를 한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기 바라며 열심히 기도했어요. 다행히 아이들도 잘 따라줬구요." 쌍둥이 형제는 인터뷰를 마친 유씨를 향해 "엄마, 걱정말라니까!"라며 달려들어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유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였다.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09.11.10
 신앙의 기쁨](//cpbc.co.kr/CMS/newspaper/2009/12/rc/320364_1.0_titleImage_1.jpg)
[명동성당 대림특강](4) 신앙의 기쁨정윤희(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 성탄절은 그리스도교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명절입니다. 시장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본강국들이 대부분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므로, 세계화의 물결을 타는 이상 이 절기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시장에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을 풀고, 기쁨을 강요하며 구매욕을 자극해야 합니다. 세상은 무작정 기뻐하는데 이 기쁨의 진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스도교인인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어진 존재나 상황들에서 기쁨의 근거를 찾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 얻는 기쁨은 일시적입니다. 순간이고 길어야 몇 년 정도지요. 기쁨의 질도 종류도 천차만별입니다. 본능에 따라 오관을 통해 쉽게 얻는 쾌락에서부터 뚜렷한 인생 목표를 정해놓고 성취해가는 세련된 기쁨까지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 어떤 기쁨이든 영원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길은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마르지 않는 기쁨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그 기쁨은 외부 조건에 좌우됨이 없이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31절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먼저 혼돈 속에서 빛을 창조하시고, 그 빛을 보고 좋다고 하십니다. 이어 말씀으로 피조물을 하나씩 창조하시는데 그때마다 피조물을 보시고는 "좋았다"는 기쁨의 감탄을 반복하십니다. 인간 창조를 끝으로 마침내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보시며 "참 좋았다"라고 품질보증 도장을 찍으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창조주 기쁨의 산물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과 이 기쁨을 공유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다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물론 모든 피조물에 악과 죽음의 고통을 안겨 주게 됐습니다. 이런 인간의 한계적 조건을 잘 아시는 하느님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인류 구원을 위한 구세주의 오심이기에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분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그분이 오심을 믿고 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도 이분이 오심을 알지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여인이 세상에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게 했습니다. 소박한 시골의 한 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은밀히 당신 계획을 통보할 때 그 인사말이 "기뻐하여라"입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분명히 세상에 기쁜 소식(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마리아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온전히 믿으며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모두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맡기고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찾아가 이 기쁨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이후 마리아의 생애에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고통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은 그녀의 기쁨은 그 어떤 고통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바라는 줄에 서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입니까, 창조주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입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우리를 쾌락의 환상에로 현혹합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가 창조주 하느님 사랑의 산물인 이 세상을 우리 욕구의 잣대로 상품과 약탈의 대상으로 삼도록 부추깁니다. 이제라도 늦기 전에 창조주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로 의기소침해지기보다는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드리며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 욕구의 노예로 둔탁해져가는 우리 삶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지혜의 기쁨으로 빛날 것이며, 이 기쁨의 빛은 어둡고 힘든 상황 앞에서 더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 빛은 오늘도 인생의 의미를 찾아나선 현자들을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중에 하나로 오신 구세주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힘2009.12.22
![[성경속 동식물] 88-정결예식에 사용한 우슬초](//cpbc.co.kr/CMS/newspaper/2008/03/rc/243915_1.2_titleImage_1.jpg)
[성경속 동식물] 88-정결예식에 사용한 우슬초참회와 겸손과 세례 상징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시편 51,9).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결을 기원하는 의식에 '우슬초'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우슬초는 참회와 겸손, 세례를 상징한다. 우슬초 묶음으로 동물의 피를 발라 정결예식을 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열 번째 재앙을 피하기 위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우슬초 다발을 붓처럼 썼다(탈출 12,22). 악성 피부병 환자 정결례(레위 14,4-7)와 곰팡이가 생긴 집을 정화하는 예식(레위 14,49-52)에도 사용됐다. 이때는 다발로 묶어 피나 물을 뿌렸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 "다 이루어졌다" 하시고 숨을 거두신다(요한 19,29).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에조브'가 우리말 성경에는 '우슬초'로 번역됐다. 에조브는 본래 성벽의 돌 틈에서도 자랄 정도로 흔하고 다발로 묶어 쓰기에 적당하고, 정화 예식에 사용될 정도로 강한 향이나는 식물이라고 짐작된다. 식물학자들은 이러한 특징을 지닌 식물로 마조람(Majorana syriaca)을 꼽는다. 마조람은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등 건조한 지역의 돌 틈에서 자란다. 오레가노(Origanum vulgare L)에 속하는 마조람은 대개 45cm~1m 높이로 자라며 꽃박하라 불릴 정도로 향기가 짙다. 마조람은 작고 하얀 꽃을 피우며 줄기는 잔털로 덮여 있어 물이나 피를 머금을 수 있다. 때문에 붓이나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지금도 과월절 예식때 마조람을 사용해 피를 뿌린다. 그리스어역 성서를 지을 때, 발음의 유사성 때문인지 에조브는 히솝으로 옮겨졌다. 본래 히솝(Hysspus officinalis L)은 허브의 한 종류로,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중앙아시아와 남유럽이 원산지이다. 키는 50cm 정도로 자라고 꽃은 청자색ㆍ분홍색ㆍ빨간색ㆍ흰색으로 다양하며 6~9월에 핀다. 히솝의 꽃잎과 잎은 차로 마시거나 음식을 만들 때 향신료로 널리 사용했다. 또한 꿀에 재어놓았다가 코ㆍ목ㆍ폐 등의 질환에 민간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히솝의 풀 마디가 소의 무릎마디처럼 굵다고 해서 우슬초라 옮겼다. 그러나 적절한 번역은 아니다. 쇠무릎이라고도 하는 우슬초는 비름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풀로 향기가 없고 한국ㆍ일본ㆍ중국 등 아시아에 분포한다. 에조브처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기는 하지만 우슬초와 에조브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cpbc2008.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