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건립 유감(有感)」(13)-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인테리어> 스테인드 글래스는 구체적인 성경 장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꾸미려 했으나 분심이 들 염려로 비구상으로 하였다. 먼저 내 설명을 기반으로 작가가 의도한 바로는 색상으로 볼 때에 녹색 계열은 유구 산골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성모님을, 노란색과 빨간색은 예수님(하느님)을 상징했다. 그리고 두꺼운 색유리와 색유리 사이를 가르는 선(윤곽)은 꽤 두툼한데 편의상 유리를 지탱할 필요 때문에 넣은 것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탱자나무 가시 같은 모양이다. 이는 우리 삶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이며 아울러 우리 순교자들이 쓰신 가시관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가시관이 다른 눈으로 보면 또 별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고난의 가시밭길 가운데서도 멀리서 보이는 천국의 별, 하느님의 영광의 광채를 별 모양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의미를 알고 보면 참으로 더욱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교우들에게 물어보면 처음에는 ‘글쎄... 잘 모르겠다’고 하다가 설명을 해주면 ‘아하~’라며 격하게 공감했다. 제대 뒷벽 유리창의 스테인드 글래스는 단연 유구성당 최고의 아름다운 부위이다. 성당 안에서도 예쁘지만 밤에 밖에서 보는 모습은 또 다른 영롱함과 아름다운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신자석 양 옆과 성가대 뒷유리창에는 맑고 반투명한 색감으로 부드럽게 표현했다. 그건 그 나름대로 아늑하고 고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더욱 붉고 진했으면 했는데 작가는 금방 질리고 싫증 나며 전례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하여 수긍하고 따랐다. 성당 내의 기둥은 아무리 봐도 참으로 아름답고 그 기둥으로 인해 성당이 보다 안정된 모습에 균형감과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색감에 대한 나의 감각은 대체 어디까지가 끝인지...?? ㅍㅎ~ 그리고 그 기둥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작가의 감각으로 빚어낸 독특한 문양 덕분이었다. 공주의 이대행 다미아노 작가의 솜씨로 성경의 아카시아 잎 모양을 새겨넣은 것인데 정교하게 새겨넣은 그 주두 모양으로 인해 기둥과 성당이 더욱 값어치 있게 이루어졌다. 그분은 우리 성당의 어머니이신 성모상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봉헌식 기념품으로도 제작을 했는데 우리네 시골 어머니의 인자한 모습으로 참 잘 만들었다. 수십 번 이상 숙의하며 만들어낸 역작이다. 그 외에도 내 회갑 묵주도 우리나라 어떤 성지의 것보다 더 단단하고 예쁘게 만들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묵주는 교우들에게, 또 방문객들에게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서 인사를 하고 왼쪽으로 시작해서 성당 현관문까지 한 바퀴 돌면서 십자가의 길(성로신공)을 바칠 수 있도록 화단 한켠에 낮게 깔아서 돌을 비스듬히 세우고 거기에 Granda에 의뢰해서 만든 십자가의 길 조각판을 동분을 부어 새로 만든 작품도 그분이 제작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현관 중앙 밖 문은 바깥 공기와 늘 접촉하기에 오랜 세월 풍파에 견딜 수 있도록 동판으로 제작했고 특별한 꾸밈보다는 가능한 단순한 모양으로 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하게 변모되는 모양과 묵직한 모습이 맘에 들었다. 다른 문들도 첫 문은 동으로 했다. 그리고 현관 두 번째 문과 다른 두 번째 문들은 모두 참나무로 정교하게 제작했고 천사가 나팔을 부는 단출한 모양을 금색으로 새겨 넣었다. 일산에 계시는 저명한 여류 동판화가가 조각했다. 지극히 단순한 그 그림 하나가 문의 격을 높여주고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고양시켜주었다. 제의방과 제구실 가구는 사제관과 교육관을 포함하여 교구의 유수한 원목가구 업체인 인아트에서 제작했다. 가격은 다소 높지만 나무재질과 색감이 좋아서 선택했다. 노란 빛깔이면서도 따듯한 색감이 참 밝고 화사하며 질감이 좋았다.이 회사도 내가 의도한 모양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 어지간히 잔소리하고 호통치며 끝내 내 의도대로 관철했다. 대표가 교우이고 내 의도를 잘 이해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었다. 우리 성당은 어떤 성당보다 조경에 정성과 공을 많이 들였다. 고향을 느끼게 하고 싶기도 했거니와 순교자의 마을, 곧 성지이기에 더더욱 신경 써서 갖가지 꽃나무와 유실수들을 많이 심었다. 꾀꼬리가 와서 깃들고 노래한다 하여 참나무까지 일부러 심었다. 솔잎과 참나무 낙엽이 떨어진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성당 방향으로 성모상과 더불어 순교자의 얼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다양한 돌로 여러 가지 기념석을 제작했다. 강원도 양양에 계시는 신성현(안드레아) 작가는 아드님을 사제로 봉헌하셨고 유명한 다른 조각가들과 달리, 독특한 분이셨다. 이름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태 본 그 어떤 성모상보다도 아름다웠다. 참으로 신심이 깊으신 데다가 우리 한국 신자들에게는 시골 고향 집의 늙으신 어머니 모습을 그렇게 잘 표현하실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들었다는 것은 보통 솜씨가 아니다. 유명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 눈을 사로잡고 내 맘을 빼앗았으면 더 볼 것 없다. 몇 차례나 찾아 뵙고 간청을 드려서 어렵게 승낙을 받고 또 그분이 만드신 작품들도 여러 개 보고 나서 더 확신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성모상은 단연코 최고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성모상이 앳된 소녀의 모습 일색이었다. 아무래도 마리아의 순결한 동정성을 강조한 결과였으리라. 그러나 어떤 성모상은 심지어 요염하기까지 하고 대부분 너무 어린 소녀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혼자였다. 그게 싫었다. 아기와 함께 있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보이고 우리들의 시골 고향 집에서 많은 자식을 낳아 키워내시고, 객지 떠난 자식들의 행복을 간절히 비시는 어머니의 모습, 특히 유구성당 성모상은 특이하게 아기를 가슴에 안거나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 아니다. 두 손으로 아기 예수님을 들어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모습이다. 내 아들이 아니라 여러분의 아들이자 여러분의 주님이시라는 메시지, 연만한 나이의 얼굴에서 풍기는 안정감과 더불어 의탁하고 싶어지는 엷은 미소를 띤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한복도 너무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모습이 아니라 매우 단아하고 단출하게 입은 모습이 그렇게 단정하고 강단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이었다. 재질도 화강석이라서 더 잘 어울렸다. 작품은 작가의 모습을 닮는다더니 확실히 작가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대쪽같은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분은 또한 유구성당의 주보이신 노동자 성 요셉 상도 만드셨다. 노동자를 강조하느라 머리칼이 흘러내린 모습, 작업복과 앞치마를 걸친 모습, 무엇보다도 어린 예수가 자를 들고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요셉 성인은 영락없는 옆집 목공소 아저씨같이 친근감 있고 어린 예수님은 개구진 모습 같다. 요셉 성인은 톱을, 어린 예수는 자를 들고 있다. 작가의 설명을 보태면 예수가 들고 있는 자는 나무의 길이만을 재는 용도로 끝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선행의 길이를 재는 자라는 설명을 듣고 ‘아하~그렇구나’라며 공감하기도 하면서 ‘잘 살아야겠구나~’라는 경각심도 들게 했다. 그리고 그분께 또 하나 어려운 과제를 드렸는데 이곳 출신 순교자들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었다. 너무 힘든일이고 덜도 거대한 게 필요한 일이라서 많이 망설이셨지만 장고 끝에 해주시기로 했다. 돌을 고르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함께 석재상에도 가보고 여러 가지로 재질, 색감, 길이, 두께, 무게, 가격 등 요모조모로 따지다가 역시 내 눈썰미에 맞는 돌을 선택했고, 오랜 시간을 들여 그 힘든 일을 완성했다. 그 엄청난 대작업을 하느라 중간에 하마터면 손이 잘릴뻔한 위험천만한 일도 겪으셨다. 마침내 육중한 조각이 성당에 들어온 날, 포장을 벗겨보니... 누구라도 보면 직관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친근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순교자들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박해시대 교우촌에서의 열심한 공동체 생활, 잡혀가서 순교하시는 모습, 천국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모습... 그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위험했는지 큰 병을 얻어 절석.. 그 작업을 끝으로 이제 망치와 끌을 놓으셨다는 고백을 듣고... 참으로 힘겨운 일을 해내셨구나~ 싶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최후의 작품을 남기신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순교자들의 모습을 떠올려주고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돌과 글씨를 돌에 새겼다. 역시 조경 관계자가 소개해준 유명하지 않은 석재 대표를 알게 되어 중요한 석재 작품을 만들었다. 유구 지역 출신 순교자(윤자호 바오로 회장 외…) 32위(位) 명단과 ‘유구 지역 32위 순교자’라는 기념석, 그리고 ‘유구지역의 순교사 내력(소사)’을 적은 넓은 돌을 성당 정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왼편에, 오른편에는‘유구성당’이라는 표지석을 멋지게 가공한 돌에... 그리고 ‘위주치명’(爲主致命)이라는 글씨를 한문으로 적은 글- 그 당시에는 내가 서예를 몰라서 의뢰해서 글씨를 받아왔다. 아마 지금 정도라면 어쭙잖으나마 내 글씨로 썼을지도 모르겠다-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사라지지만 하느님은 영원하시다’는 글귀를 새겨 넣은 작품을 성당 정원에, 또 성당 묘지 입구에도 하나 세웠다. ‘유구성당 묘원’이라는 표지석도 함께... 물론 돌 모양과 글씨도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능하면 시인성 좋은 글씨로 엄선해서 나름대로 고르고 골라서 최종 낙점했다. 참 피곤한 과정이지만... 그래야만 마음이 놓이고 훗날에도 탈이 없고 오래 보존되며 만족스러울 테니... 성질대로~~... <계속>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이정훈2025.01.10

기도와 예수 (1)[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5) 기도는 때로 매우 정적이고, 소극적인 행동으로 판단되어, 거의 휴식에 가까운 의미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또 기도는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활동이며, 끝임 없이 계속되는 낭송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공동 전례 안에서 행해질 때에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미 합의되어 정해진 형식과 순서를 따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 누군가가 이미 작성한 기도문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문은 사람들이 갈구하는 영적, 심리적 상황과 무관한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기도의 어떤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나 묵상이나 관상으로 방향을 바꾼다 하더라도, 기도는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는 그런 체험으로 여겨집니다. 확실히 사람들은 기도를 몸부림치거나 내적투쟁의 시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 안에서 엄첨난 내적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어리석게도 기도를 함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고 또 하느님께 잘해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 제 귀중한 시간을 기도를 통해 바침으로써 전 꽤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곤 했습니다. 제가 봉헌했던 많은 미사에 대해서도 사제로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부끄럽게도, 하느님은 제 기도 없이도 아주 잘 계실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최근에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정반대로 기도와 전례는 나를 위해서 좋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언가를 청하는 기도를 할 때, 하느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원망합니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청함과 동시에 그 결과를 상상하면서, 하느님은 그것을 들어주어야만 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 노력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태도는 누가 창조주이고 누가 피조물인지를 바꿔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인간적 모습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즉, 실망과 원망의 체험은 우리의 헛된 욕망과 이기심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되며, 이 성찰은 신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하였고 또 어떤 때는 홀로 했습니다. 그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그 공동체와 함께 성경을 묵상하였고 하느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행동은 기도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기도의 방법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가 홀로 기도한 후에 그 기도가 어떤 것이었든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예수는 기도할 때, 많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또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 속에서, 기도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cpbc2024.10.21

살아계신 하느님 말씀 받아들이는 교회의 책[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성경이란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놓은 책으로 하느님 계시의 원천이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책이다. 사진은 한국 주교회의에서 간행한 우리말 성경.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죽음의 수렁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입니다. 예로부터 이 샘을 “구원의 샘”(이사 12,3), “생명의 샘”(묵시 21,6)이라 부릅니다. 이 샘에서 솟아나는 생명수는 “하느님의 말씀”(창세 15,1)입니다. 모든 이가 이 생명수를 마실 수 있도록 담은 그릇이 바로 「성경」(聖經, Bible)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샘과 생명수를 담은 그릇이 오염되지 않고 잘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만드신 샘터가 바로 ‘교회’입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알아 사랑하고 섬기며, 그 복된 생명에 참여하기를 소망하는 바람을 담아 ‘성경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성경에 빠지다’는 성경 공부와 읽기를 시작한 이들에게 길동무가 될 내용을 담으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부족한 글이지만 독자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가는 신앙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그리스도교가 여느 종교와 근본으로 다른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직접 알려주신 ‘계시(啓示) 종교’라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실 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감도로 하느님의 계시 말씀을 인간의 글로 표현되어 보존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느님 계시의 원천’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고 알려줍니다. 아울러 성경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모든 세대에 제대로 전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믿고 따르게 이끕니다. 이를 교회의 거룩한 전승 곧 ‘성전’(聖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살아계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책’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핵심 주제어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 참조)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목적도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요한 1장 참조) 그래서 교회는 “성경 전체는 단 하나의 책이며, 그 하나의 책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4항) 성경의 저자와 해석자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활동하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 저자로서 기록해 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록이 구원의 진리를 오류 없이 가르친다는 사실을 보증하십니다. 따라서 영감 받은 저자들 또는 성경 저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계시 헌장」 11항 참조) 교회는 이런 이유로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해석자는 성령이십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느님의 계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에게서 오는 것은 오로지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시하시고자 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은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보존하고 전달하며 해석하는 것을 교회에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의 권위 있는 해석은 교회의 판단에 속합니다. 곧 교회의 교도권인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그 책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옛 계약과 새 계약 성경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구약과 신약을 표기하는 ‘약’(約, Testamentum)은 지켜야 할 약속이나 계약을 뜻합니다. 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선택한 백성과 맺으신 특별한 관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옛 계약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예수님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룹니다. 새 계약은 하느님께서 교회와 맺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의 내용은 예수님과 초기 교회에 관한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친히 완성하셨고,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2.11.30

구약 성경 읽기·말씀 생활화 앞장 선 수녀 사총사cpbc TV ‘바이블 무브’ 강연자 서효경·손남민·손상희·김선미 수녀, 수도회의 50년 성서사도직 역량 발휘 ‘바이블 무브’ 출연진. 왼쪽부터 손상희·김선미·서효경·손남민 수녀. “cpbc ‘바이블 무브’를 통해 시청자들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의 기준이자 지표다. 하지만 일상에서 말씀을 혼자서 깊이 되새기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구약성경의 경우, 많은 양에 압도돼 읽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cpbc가톨릭평화방송TV가 신자들이 성경을 더 쉽고 친근하게 읽으면서 묵상하도록 돕고자 새 성경 강좌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7일부터 방영 중인 ‘바이블 무브’(연출 유호찬, 양주한)다. ‘바이블 무브’는 읽고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이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돕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바이블 무브’라는 이름도 말씀의 생활화를 의미하는 ‘라이프 무브먼트(Life Movement)’에서 따왔다. 지난 50년간 가톨릭성서모임에서 성서사도직을 통해 말씀의 실천에 앞장서온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들이 뭉친 것도 그 이유다. 서효경(마리스텔라)ㆍ손남민(즈카르야)ㆍ손상희(베드로)ㆍ김선미(아가타) 수녀가 바이블 무브 강연자로 나섰다. 모세 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비롯해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하권 등)에 담긴 말씀이 수녀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방송을 타고 있다. 수녀들 또한 일상에서 겪고 들은 내용을 접목해가며 말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손상희 수녀는 “단순한 강의를 넘어 말씀을 살고, 말씀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바이블 무브’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손 수녀는 “강의는 네 명의 수녀가 진행하지만, 그 뒤엔 반세기 성서사도직을 수행해온 수많은 수녀님과 수천 명에 달하는 봉사자, 수만 명에 이르는 성서 모임원들의 노력이 더해진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강의를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이들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서를 통해 하느님을 대하는 고대 신앙인들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도 ‘바이블 무브’의 장점이다. 김선미 수녀는 “고대에는 전쟁의 승패에 따라 그 민족의 신들이 흥하거나 사라지곤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와 상관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였다”면서 “역사서를 통해 과거 신앙인들의 자세를 성찰하며 우리의 근원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녀들은 성경 말씀을 대하는 데 있어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당부했다. 손남민 수녀는 “성경 공부를 할 때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음성 그대로를 듣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저 역시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효경 수녀는 “일상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묵상하며 체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이블 무브’ 본편은 화요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 수요일 0시(자정), 토요일 오전 8시에 방송된다. 화요일 오후 5시에는 한 주 전 방송된 내용을 재방송한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03.22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특별한 40일 사순 시기 곁에 두고 싶은 책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사순 시기다. 사순(四旬)의 ‘40’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신 후 공생활을 시작하기까지 광야에서 단식하며 기도했던 40일에 근거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곁에 두면 좋을 책을 골라봤다.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 / 로널드 롤하이저 신부 / 이선정 옮김 / 허찬욱 신부 감수 / 생활성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 유독 가혹하게 들리는 이 말씀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주심으로써 응답하십니다. 제임스 마틴 신부의 말처럼, 부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때에 오지 않으며, 부활의 방식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놀라운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48쪽) 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은 ‘하느님은 고통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즉 하느님은 ‘구조’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십자가 안에 숨겨진 핵심적인 계시다. 로널드 롤하이저(오블라티 선교 수도회) 신부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구원의 관점에서 바라본 저서 「The Passion and the Cross」(2015)를 번역한 이 책은 희년을 살고 있는 ‘희망의 순례자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큰 울림을 전한다. 사순, 희망의 시간 / 몽포르 드 라수스 생저니에스 신부 / 안영주 옮김 / 바오로딸 “사순 시기는 회심과 성숙의 시간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어 뜻을 행하시게 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의탁해야 합니다. (중략) 사순 시기는 삶에서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도, 단식, 나눔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9쪽) 「사순, 희망의 시간」은 프랑스 투르교구 본당 사제로 사목하고 있는 몽포르 드 라수스 생저니에스(생 마르탱 공동체) 신부가 2025년 희년을 맞아 집필한 사순 묵상서다. 시편과 전례를 기반으로 묵상과 조언을 더했다. 책은 하루의 기도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사순 시기 매일 기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먼저 사순 시기 전례의 화답송 시편으로 기도를 준비하고, 주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며, 우리 삶에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드린 뒤 기도·단식·나눔을 실천하고, 오늘 주신 말씀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끈다. 희년, 희망의 순례자 / 김민수 신부·오현희(체칠리아)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원장 김민수 신부)이 2013년 이후 열두 번째 펴내는 필사용 사순묵상수첩이다. 책은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매일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걷기를 권한다. ‘오늘의 복음’을 직접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실천 여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꾸몄다.성녀의 작은 길 / 성녀 소화 데레사 / 이인섭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성녀의 작은 길」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중요하게 여긴 삶의 가치를 담은 책이다. 성인의 영성 생활의 핵심은 ‘작은 길’로, 사소한 일들을 사랑으로 행하고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을 신뢰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책은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시·편지에서 메시지를 발췌해 엮었다. “제가 영적 메마름의 상태에 있을 때, 기도할 수도 없고 덕행을 실천하기도 힘들 때, 나의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작은 기회, 사소해 보이는 일들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침묵하고 싶고 권태로울 때, 미소를 짓고 배려하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기회조차 없다면, 저는 적어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그분께 계속해서 말합니다.”(121쪽) 성인은 24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온전히 하느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희생을 바쳤고, 그 영성이 담긴 저서가 단기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큰 관심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단순함·사랑·신뢰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한다며 누구나 이 ‘작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일린의 기적 / 에마뉘엘 트란 /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이 사건으로 기도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유일한 길이 되기 시작했다. 기도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 최후의 안식처가 된다.”(63쪽) 안락사 권유까지 받았던 한 아이의 경이로운 회복을 담은 「메일린의 기적」이 출간됐다. 책은 아버지 에마뉘엘 트란의 기록이다. 메일린은 세 살이던 2012년 음식이 기도에 걸리면서 몇 분 동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식물인간 판정을 받는다. 사고 후 열흘째 의료진은 영양 공급의 중단을 제안하지만, 가족들은 메일린을 보낼 수 없다. 당시 세례를 받지 않았던 에마뉘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를 드렸다. 주위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학부모에 의해 성인 폴린 자리코에게 전구(성모 마리아나 성인을 통해 바라는 바를 하느님께 전달)로 메일린의 치유를 기원하는 9일 기도가 시작되고, 기도는 학교 울타리는 물론 국경을 넘어 확산된다. 그리고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 확신한다. 기도가 가장 높은 곳까지, 하느님에게까지 들렸으리라고 확신한다. 지금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선물의 헤아릴 길 없는 가치에 비하면 우리의 감사는 아주 미미하다.”(242쪽) 메일린은 성장해 어느덧 승마를 즐기는 청소년이 됐다. 이 ‘기적’은 지난 2020년 바티칸에서 공인되며, 폴린 자리코 성인은 2022년 복자로 선포됐다. 메일린의 기적은 지난해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방영되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3.12

루터의 말대로 신앙은 그 자체로 성령의 선물[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50) 마르틴 루터를 오늘날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성(城) 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 논제」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 전후 재평가 활발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회심을 목표로 했지만 교회의 기존 제도와 교리의 일부까지 부정 그가 강조한 ‘의화’의 핵심은 사랑의 하느님 가톨릭 신앙 이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의 역사 속에서 마르틴 루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을 전후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루터는 복음이 개인적이고 실존적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살아 있는 메시아이자 위로임을 확신하였고, 하느님 은총의 장엄함을 보여 주는 복음의 위대함을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회심을 목표로 삼았고, “주님이시요,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회개하여라’고 말씀하시며 신자들의 온 삶이 참회의 삶이기를 바라신다”(「95개조 논제」, 1항)는 점을 개혁의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존 제도와 교리의 일부까지 부정하는 듯한 루터의 개혁 요청이 당시의 고착된 시대 상황에서는 주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그에게 개혁적인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청했고, 이에 루터가 자신에 대한 파문을 시사하는 교서와 교황의 문서들을 불태워 버리자 레오 10세 교황은 1521년 1월 3일 그를 공식적으로 파문하였습니다. 루터는 오직 성경에 대한 믿음으로 교황이나 공의회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오직 성경에 묶여 있고, 자신의 양심은 하느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고 확신하면서 성전(聖傳)으로 확인된 교리의 일부를 부정하였습니다. 루터가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처신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에 스스로 모순되는 처신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루터의 사상을 받아들인 농민들이 영주들에게 반기를 들고 농민 전쟁(1524-1525년)을 일으켰을 때 루터는 살인과 약탈을 하는 그들을 학살하라고 귀족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제 독신제를 반대하여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혼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초대 교회와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이어 온 신앙의 유산을 재발견하면서 교회의 쇄신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하느님 백성인 교회 구성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보편 사제직에 동참한다고 가르쳤고, 교계 제도에 앞서 세례를 통하여 주님과 일치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하였습니다. 계시의 원천인 성경은 사도전승인 성전과 뗄 수 없는 신앙의 규범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통하여 돋보이게 강조한 내용들이었다는 점에서 루터의 공헌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터에게 교회 분열의 책임을 떠넘기는 상반된 평가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강조한 ‘의화’의 핵심에는 죄인인 우리를 동시에 의인으로 판결해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깊은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루터의 말대로 신앙은 그 자체로 성령의 선물이며,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랑과 희망에 미치는 구체적인 효과입니다. 이는 오늘날 가톨릭의 신앙 이해와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4.03.27

2025년 희년, 희망을 그리다갤러리 1898 특별전 ‘희망의 빛’ 교황님과 함께하는 기도지향 달력 표지 - 희년의 문을 여는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서울대교구 홍보위 2025 희년 기념 특별전 ‘희망의 빛’ 포스터 - 종탑에서 본 명동대성당 지붕 ‘라틴십자가’. 명동성당 성미술·성직자 모습 교황님 기도지향 달력 속지 등 일러스트 작가들의 작품 선봬 희망의 순례자 기도공간도 담아 2025년 희년을 기념하는 ‘희망의 빛’ 특별전이 15일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개막한다. 서울대교구 갤러리 1898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크게 ‘순례·기도·희망’으로 구성된다.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희년 행사의 근본 요소”라고 언급한 ‘순례’ 부문에서는 한국 가톨릭의 심장인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의 성미술을 일러스트로 담아 전시한다. 대림 시기 불을 밝히는 명동대성당 들머리의 ‘LED 장미정원’을 시작으로 최의순 작가가 제작한 ‘청동 정문’, 김태의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 장발의 ‘14사도화’, 장동호의 조각 ‘예수 사형 선고 받으심’, 노기남 대주교 때 제작된 ‘루르드 성모 동굴’ 등 대성전 안팎의 성미술과 기도하는 성직자·수도자·평신도들의 모습을 담았다. 10여 점의 일러스트는 종탑에서 바라본 명동대성당 지붕-라틴십자가를 표지로 희년 달력으로도 제작됐다. 모두 갤러리 1898이 주최한 ‘2024 성미술 청년작가 공모전’에 당선된 박미정(노엘라) 작가가 작업했다. ‘기도’ 부문에서는 ‘2025 교황님과 함께하는 기도지향 달력’의 속지를 소개한다. 이 달력은 매달 전 세계 신자들과 특별한 지향으로 기도하고자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동참하고 바티칸 뉴스 한국어 페이지를 더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가 지난 2023년부터 제작하고 있다. ‘2022 성미술 청년작가 공모전’에서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의 교황 일러스트로 당선된 서예희(발레리아) 작가가 동참했다. 희년의 문을 여는 모습을 표지로 매달의 기도지향을 친숙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과 함께 담았다. ‘희망’을 담은 세 번째 공간에서는 2025년 희년의 주제어인 ‘희망의 순례자들’의 기도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앞서 교황청 복음화부는 2024년 ‘기도의 해’를 위해 마련한 사목 자료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에서 ''기도 장소, 기도하기에 좋은 조용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당부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부터 성직자와 수도자,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평신도, 초등학생 복사단까지 우리 주변에 있는 희망의 순례자 25명의 기도 공간을 들여다본다. 초등복사단 박서은 학생의 기도 공간. 정순택 대주교는 평소 기도할 때 사용하는 묵주와 초, 성무일도 기도서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나종진(서울대교구 노인사목팀) 신부는 견진성사 이후 늘 가지고 다니는 묵주와 스페인 선교를 마치고 본당 사제로부터 받은 예수성심상 등을 선보인다. 배요한(요한 세례자) 작가는 대학 때부터 함께한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워 초기에 만든 캔들 홀더 등을 옮겨오고, 손일훈(마르첼리노) 작곡가는 아버지가 나무로 깎고 어머니가 그림을 그려 선물해준 십자가, 성음악이 담긴 악보와 CD 등을 펼쳐 보인다. 가톨릭평화신문 이지혜(보나) 기자는 혼인성사 때 받은 십자고상, 초등학생 아들과 써내려간 성경 필사 노트 등을 꺼내고, 수지본당 초등복사단 박서은(스텔라) 학생은 복사단 입단을 위해 3학년 때부터 매주 기록한 주일 복음 묵상과 예수님께 쓴 편지 등을 내보인다. 갤러리 1898 관장 이영제 신부는 “이번 전시는 2025년 희년의 핵심인 ‘희망’을 담고 있다”며 “우리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고, 희망의 순례자 25명의 기도 공간을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이 되는 기도의 큰 가치와 절대적인 필요성을 재발견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갤러리 전관과 복도 등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22일까지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갤러리 SNS를 통해 ‘나만의 기도 공간 챌린지’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전시 연계 및 참여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문의 02-727-2336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04

엘라의 계곡[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17) 산을 좋아한다. ‘좋아한다’의 동의어는 ‘가까이 다가간다’이다. 그래서 홀로 산에 자주 다가갔다. 외롭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와 동행한 것은 계곡이었다. 계곡을 옆구리에 나란히 하고 함께 오르는 산행은 그때마다 행복이었고, 그 행복 하나하나가 모여 추억이 됐다. 설악산 계곡은 웅숭깊었다. 지리산 계곡에서 퀄퀄거리며 쏟아지던 물의 잔상은 아직도 강렬하다. 가뭄이 한창인데도 시원한 생명력을 선물했던 치악산 계곡의 곡절(曲折)도 잊지 못한다. 그 ‘계곡의 추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성경을 읽던 어느 날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이 맞짱 싸움을 벌인 곳이 ‘엘라의 계곡’이다. “엘라의 계곡을 사이에 두고 골리앗과 다윗은 맞서고 있었다.”(1사무 17,3 참조) ‘엘라’는 ‘상수리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강원도에서 성장했지만, 상수리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아직’ 모른다. 어쨌든, 베들레헴 서남쪽 약 24km 지점에 있는 이 상수리나무 무성한 계곡에서, 약자 다윗이 강자 골리앗을 죽이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래서 엘라의 계곡은 기적의 계곡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이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영성은 약자가 승리한다는 역설을 믿는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시편 118,22)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살다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엘라의 계곡 전쟁터 한가운데로 내몰릴 때가 많다. 그 전쟁터가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숨는다.(창세 3,10 참조)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 삶 안에서 사랑을 회복해 낸다면,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해 낸다면 우리도 골리앗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두려워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지 말자. 지금까지 신고 있던 피해의식과 옹고집의 신발을 벗어 던지자. 사랑이라는 이름의 새 신발 끈을 꽉 매자. 진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자. 믿음의 방패를 잡자.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자.(1테살 5,8; 에페 6,14-17 참조) 무장을 마쳤으면, 엘라의 계곡 한가운데로 뛰어들자. 삶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는 다윗의 전투, 엘라의 계곡 전투다.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오는 5월에 월출산에 가려 한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예쁜 계곡이 불쑥 나타나 나의 옆구리에 붙어 동행할 것이다. 행복할 것 같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cpbc2024.04.22

부패·분열로 70년 만에 무너진 유다 독립 왕조[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6) 하스모네아 왕조 마카베오 가문의 하스모네아 왕조는 부패와 분열로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기원전 63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 푸케,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는 폼페이우스 군대’, 1470-1475,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다 고대사」 중에서. 구글 캡처 기원전 142년 마타티아스의 둘째 아들 시몬은 셀레우코스 왕조 데메트리오스 2세와 조공 면제 조건으로 화친을 맺고 실질적인 유다 독립을 이룹니다. 유다인들은 시몬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추대합니다. 이때부터 마카베오 가문의 ‘하스모네아 왕조’가 시작됩니다. 하스모네아는 마카베오 항전의 시조인 마타티아스 사제의 아버지 하스메네오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카베오와 하스모네아는 한집안을 일컫는 2개의 다른 이름입니다. 마카베오는 독립 항쟁의 때, 하스모네아는 실질적인 독립 왕국을 가리킬 때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134년 시몬과 그의 아들들이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살해당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시몬의 사위로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7세와 공모해 이들을 예리코에서 암살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게제르 요새를 지키던 시몬의 다른 아들 요한도 죽이기 위해 암살자들을 보냈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요한의 암살을 실패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왕위 찬탈의 꿈을 접고 지금의 암만인 필라델피아로 도망쳤습니다. 반면, 화를 면한 요한은 자신을 예루살렘 백성과 군대의 지도자로 선포하고 임금이 됩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유다인은 하스모네아 가문이 다윗의 핏줄이 아니기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유다인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마카베오 가문, 곧 하스모네아 왕조는 거듭된 부패와 분열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지와 신망을 지속해서 잃고 맙니다. 진정한 하스모네아 왕조의 시작은 요한 히르카노스 1세 때부터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전쟁을 펼쳐 유다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는 기원전 128년 사마리아인들의 그리짐 산 성소를 파괴했고, 유다 남쪽에 살던 에돔인, 곧 이두매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다 항쟁의 시조인 마타티아스처럼 유다교에 충실하게 살아온 이들을 소집해 함께 전쟁을 치른 것이 아니라 용병들을 이끌고 정복 활동을 펼쳤습니다. 유다인들이 볼 때 그는 세속의 지배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하스모네아 왕조를 지지하던 바리사이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요한 히르카노스 1세는 기원전 104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아리스토불로스 1세가 뒤를 이어 임금이 됩니다. 요한 히르카노스 1세는 본래 대사제직을 아리스토불로스에게, 정치권력은 아내와 다른 아들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불로스 1세는 어머니를 몰아내고 세 동생을 감금하고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갈릴래아를 회복하고 이곳에 살던 이투래아인들에게 할례와 유다의 율법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통치 1년 만에 숨졌습니다. 아리스토불로스 1세가 죽자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살로메는 시동생 알렉산드로스 얀네오스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그와 결혼해 그를 왕좌와 대사제직에 앉힙니다. 바리사이들은 살로메의 이러한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얀네오스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었고, 대사제가 과부와 결혼하는 것은 율법(레위 21,13-14)을 어기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얀네오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복 활동을 펼쳐 다윗 시대만큼 영토를 넓힙니다. 그는 점령지 주민들을 잔혹하게 대했습니다. 이에 반란과 폭동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바라사이가 반란에 동조했습니다. 얀네오스의 복수는 잔인했습니다. 800여 명의 반란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이러한 형벌은 이스라엘 역사상 없었던 일입니다. 잔혹한 공포 앞에서 누구도 공개적으로 얀네오스를 반대할 수 없었지만, 수많은 유다인이 그를 임금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76년 얀네오스가 죽자 알렉산드라 살로메가 통치했습니다(기원전 76~67). 살로메는 정치 실권만 갖고,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 2세에게 대사제직을 넘겨줬습니다. 율법에 따라 여자가 대사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로메가 하스모네아 왕조를 통치하던 시절 셀레우코스 왕국이 멸망했고, 로마군은 소아시아 동쪽에서 전쟁을 치르느라 비교적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알렉산드라 살로메가 죽은 뒤 장남 히르카노스 2세가 기원전 67년 임금이 됩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동생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사두가이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해 히르카노스 2세를 몰아내고 임금이 됩니다. 이때부터 형제들의 무력 충돌이 이어집니다. 히르카노스 2세는 이두매아 총독 안티파테르에게 도움을 청했고, 안티파테르의 권고를 받아 나바테아인들의 지원도 청해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히르카노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서로 로마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기원전 63년 로마 집정관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1만 2000여 명의 유다인을 학살하고, 성전 지성소까지 들어가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 아들들은 로마로 끌려갔습니다. 로마의 지지를 얻은 히르카노스 2세는 다시 대사제와 영주로 임명되지만(기원전 63-40), 임금이라는 호칭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다는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마카베오 가문에 의해 시작된 유다인 독립 왕조는 이렇게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여기서 실속을 챙긴 사람은 히르카노스 2세를 지지했던 안티파테르였습니다. 안티파테르는 헤로데 대왕의 아버지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5.25

위기를 기회로, 율법 중심으로 다시 서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2) 바빌론 유배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 간 유배 생활을 한 유다인 지도자들과 지식층은 율법 중심의 하느님 신앙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제임스 티소, ‘포로들의 대이동’, 뉴욕 유다인박물관.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자국 백성들을 데려와 그 땅에 살게 했습니다. 이러한 식민 정책으로 북 왕국 10개 지파는 혈통의 순수성을 잃고 신앙도 변질됐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 부르며 멸시했죠. 반면,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유다인들을 자기 나라에 끌고 갔습니다. 유다인들의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 모든 것이 뒤바뀌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제도와 체제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이 모두 파괴됐습니다. 그로 인해 국가 제전(祭典)이 붕괴돼 종교적으로도 큰 위기를 맞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유다인들은 다시 일어나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태동시킵니다. 바로 ‘율법 중심의 유다교’가 바빌론 유배지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597ㆍ587ㆍ582년 세 차례에 걸쳐 유다인 4600명이 포로로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예레 52,28-30) 이 숫자는 당시 관습에 따라 성인 남자만 셈한 수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하면 이 수의 몇 배가 될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그 수가 적어도 2만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유다 남자 대부분은 정치ㆍ종교ㆍ사회 지도층의 유력자들이며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원전 538년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의 칙령으로 유배지에서 해방되어 귀향할 때까지 50년 동안 바빌론과 니푸르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처음엔 모진 고생을 했지만, 점차 부를 쌓고 신바빌로니아 왕궁의 관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유배지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온 힘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연이나 혈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탄생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자신들이 왜 이토록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를 성찰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예언자의 설교를 상기하고 되씹으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이 경고한 대로 자신들이 겪는 고난은 바로 민족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당연한 징벌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징벌은 마땅히 거쳐야 하는 정화의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만이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성찰합니다. 성전도, 축제도, 제의(祭儀)도, 나라도 없으니 무엇으로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임을 증거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그들은 ‘오직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다시 공부하고 안식일과 할례, 정결법,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앙 고백을 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또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생활 동안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의미를 심화시키기 위해 조상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이 구약 성경 저술 단계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성경학자들이 ‘전기 예언서’라고 분류하는 신명기계 역사서들을 편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예언자들의 설교도 수집해 글로 남겼습니다. 율법들도 재정리했습니다. 바빌론 유배 시기에 위대한 예언자 두 명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제키엘과 이사야입니다. 둘은 유배지의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아울러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등을 돌려 온갖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고 탓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시고 온 세상에 새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특히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을 통해 유다인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사야는 “역사를 심판하고 한 나라가 일어서고 무너지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면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이집트 탈출’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어 하느님의 승리를 떨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사야는 아울러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유일신 사상을 신학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체계화합니다. 그는 ‘하느님만이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거룩하심은 하느님의 초월성, 절대성, 인간이 범접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이사야는 더불어 ‘주님의 종’(42장, 49장, 50장, 52-53)의 모습을 통해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실현하는 구세주를 드러냅니다. 주님의 종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종의 노래’에 나오는 주님의 종은 특별한 한 인간을 지칭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선택한 이,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 죄가 없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는 이 고통을 하느님께 대한 순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불평 없이 참아 받는 그 고난과 죽음은 대속의 성격을 띱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이사 7,10-17) 신약 성경의 네 복음사가는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4.26
![[과학과 신앙] (3)마음의 소리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0/15/PWW1728980105959.jpg)
[과학과 신앙] (3)마음의 소리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마음의 소리 깊어가는 가을, 퇴근길 저녁 무렵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으로 시작하는 이태선 시, 박태준 곡의 우리 가곡을 들으면 정겨운 귀뚜라미 소리의 가을밤 풍경이 떠오른다.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와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와 귀뚜라미다.”(레위 11,22) 구약성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귀뚜라미는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소리(음파)는 물체의 진동(떨림)에 의해 발생하고 매질(진동을 전달하는 매개체)에 의해 전달되는 진동의 움직임(파동)이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공기의 진동이 귀의 고막으로 전달되면 청신경에서 전기적인 신호가 발생하고 이를 대뇌의 측두엽에서 인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보통 20~2만㎐(헤르츠) 정도인데, 이것은 1초에 공기의 떨림이 20~2만 번 사이일 때 우리의 대뇌가 소리를 인지한다는 뜻이다. 귀뚜라미는 보통 2000~1만㎐의 소리를 내는데, 노랫말에 나올 정도로 우리 귀에 정겹게 들린다. 파리나 벌은 50㎐ 정도의 날갯짓으로 우리 귀에 ‘부웅’하는 소리를, 모기는 대략 500~600㎐로 ‘애앵’하는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여름철 말매미는 6000㎐ 정도인데 이런 소리들은 시끄럽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겹다거나 시끄럽다는 것은 모두 인간의 관점이지, 곤충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려고 일부러 날갯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물들에게는 인간에 의한 무분별한 환경파괴, 갈등이나 전쟁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자연에 반(反)한 불쾌한 소음일 수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음파 영역인 20~2만㎐를 벗어난 1초에 20번 미만(초저주파) 또는 2만 번 이상의 떨림(초음파)은 우리가 들을 수 없다. 나비의 날갯짓은 1초에 20회 미만이기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지 그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 수많은 소리들과 아우성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주위의 특정한 소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반대로 너무 무심하다.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듣기 싫은 소리는 외면하기 때문이다. 아첨이나 근거 없는 세간의 루머들,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귀에 쏙쏙 잘 들어오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간절한 소리,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 일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는 쉽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루카 복음서 10장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남들은 들으려 하지 않은 ‘선을 행하라’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0월 2일 시작된 제16차 세계주교 시노드 정기총회 제2회기에서 시노드 논의의 핵심으로 경청을 강조했다. 평신도들에게 교황의 메시지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세상과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보내고 있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 무엇보다 늘 스스로를 성찰하고 옳은 일을 행하라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마르 4,23)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cpbc2024.10.29

사제들이 붓을 든 이유는?사순 시기 다양한 묵상전 열려 (왼쪽부터) 한만옥·정성훈·남덕희·도현우·용하진 신부의 묵상 서예전 ‘십자가 영성’ 대표작.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둔 사순 시기 곳곳에서 다양한 묵상전이 열리고 있다. 다섯 사제 묵상 서예전 ‘십자가 영성’ 먼저 다섯 신부의 묵상 서예전 ‘십자가 영성’이 21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펼쳐진다. 전시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의정부교구 사제로, 한만옥(제2지구장)ㆍ정성훈(제5지구장)ㆍ남덕희(민족화해센터장)ㆍ용하진(제7지구장)ㆍ도현우(안식년) 신부다. 짧게는 2년, 길게는 40여 년 각자 글씨를 써온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모여 지난해부터 이동천(전 명지대 예술품감정학과) 교수로부터 좀 더 깊이 있는 서예를 익히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10월에는 ‘평화’를 주제로 의정부 민족화해센터 평화순례자 갤러리에서 함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정성훈 신부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서예는 영성 수련에 좋은 도구”라며 “나를 버려야 글씨가 나오는데 나를 비워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또 “사순 시기 글씨라는 예술 행위 속에 십자가 영성이라는 주제를 담았다”며 “이른바 ‘축성의 서예’를 통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만옥 신부의 ‘天主是愛(천주시애)’, 정성훈 신부의 ‘十字聖號(십자성호)’, 남덕희 신부의 ‘我渴(아갈)’, 도현우 신부의 ‘德所至忌世福之羨(덕소지기세복지선)’, 용하진 신부의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등 총 35점이 소개된다. 작품을 담은 굿즈도 판매해 수익금은 난민들을 돕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의 집’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신부님의 책갈피’에 전시된 전미숙 작 ‘자비는 복음의 뛰는 심장입니다’. 작가들과 협업 ‘신부님의 책갈피’ 또 다른 의정부교구 신부 10명은 의정부가톨릭미술가회 작가들과 협업했다. 사제들이 선택한 책 속 문장을 이민혜(미카엘라)ㆍ장미라(마들렌소피)ㆍ전미숙(베네딕다)ㆍ정수미(안젤라)ㆍ황명숙(마리아)ㆍ우소영(마리아) 작가가 드로잉·회화·이콘 등으로 표현했다. 성경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의 글귀도 포함됐고, 작품마다 선택된 문장을 나란히 실어 이해도를 높였다. 전시 제목은 ‘신부님의 책갈피’, 29일까지 주교좌 의정부성당 내 갤러리 평화에서 감상할 수 있다. 복음 통독하며 스케치한 기록과 작품들 서울 중구 디아트플랜트 요갤러리에서는 ‘복음통독프로젝트 IV : 마르코 <요.이.땅. : Ready, Go.>’가 31일까지 개최된다. 앞서 진행된 루카·마태오·요한에 이은 네 번째 복음통독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에는 김대신(니콜라오)·박소영(사비나)·박재희·이아름(유스티나)·조수선(수산나)·황태하 등 저마다 다른 예술적ㆍ종교적 신념과 현실적 상황을 안은 6인의 시각예술가와 조인기(서울 주교좌 명동본당 부주임) 신부, 진행과 기록을 맡은 조성지(마리아 막달레나) 관장이 약 10개월 동안 마르코 복음을 통독하고 묵상하며 스케치한 기록과 작품들을 선보인다. 제주가톨릭서예가회 ‘성경 시편을 찾아서’ 아울러 주님 말씀을 정성을 다한 육필로 담아 전파하고자 2019년 창립한 제주가톨릭서예가회(담당 김석순 신부)는 30일부터 4월 8일까지 다섯 번째 정기전을 개최한다. 올해는 ‘성경 시편을 찾아서’란 주제로 제주 김기량성당에서 3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3.07

문명의 전환기 교회 쇄신의 열망 컸다[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48)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은?르네상스·인쇄술 발명·자연과학의 혁명 등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중대한 전환점 맞아 종말에 대한 불안감과 구원의 갈망 절실했으나 교회 세속화로 신앙과 삶의 모순 크게 느낀 시기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국제루터교회. 사진=ILC 누리집 천주교와 개신교는 그리스도교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래로 성경과 교리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흔히 종교 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교회 쇄신과 개혁을 위하여 「95개조 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는 종교 개혁이 이미 중세 교회의 쇠퇴기에서 근대 신심(devotio moderna)으로 넘어가는 문명의 전환기에 가톨릭교회를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교회 쇄신에 대한 열망과 함께 일어난 복합적인 사건이라고 봅니다. 세 명의 교황이 경쟁하고 서로 파문하며 대립하였던 서방 교회의 분열(1378-1417년)로 교황권의 위신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15세기 말 십자군 전쟁의 패배 이후 교황권은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속권과 교권의 대립 과정은 교황 권위의 쇠퇴를 더욱 가속화하였습니다. 유럽 각국에서는 교황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높인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운동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 발명(1440년경)과 함께, 성경 본문은 물론 초기 교부들의 작품 연구를 자극하여, 하느님의 절대적 권위와 교회의 신앙에 토대를 둔 중세 스콜라 신학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였으며(1492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1453년)으로 1000년 이상 된 비잔틴 제국(330~1453년)이 몰락하였습니다. 또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한 자연 과학의 혁명은 중세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 출처=위키미디어 커먼스 15세기 말 유럽 사회는 세상 종말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여 구원에 대한 갈망이 절실하였고, 그 결과 당시 신자들은 성모님에 대한 신심과 성지 순례는 물론, 성경 읽기와 반복적인 고해성사 등의 개인 신심을 통하여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교회의 세속화에 염증을 느낀 신비주의 영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의 체계적 양성의 부재와 영성 생활의 약화, 교회 재산 증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 등은 교회 안팎에서 비판과 쇄신의 목소리로 이어졌습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난 시기에 르네상스와 인문주의를 이끈 사상가들은 종교를 정화하고 문화를 새롭게 하여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실천적인 그리스도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세속화와 황제의 교회 간섭, 교회의 규율에 따른 공포심의 증가는 신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신앙보다는 학자들의 작품이나 엄격한 교회의 지도 안에서 신앙의 진실성을 질식시켜서 어느 때보다 신앙과 삶의 모순을 크게 느낀 시기였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4.03.06

설화와 서사 중심으로 풀어본 구약 성경의 세계구약 성경의 입체적 이해를 높여주는 책 두 권 귀도 레니 작 ‘골리앗의 머리를 잡은 다윗’, 17세기경, 파리 루브르박물관 구약성경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다채로운 방식으로 담겨 있다. 하지만 시대적, 환경적인 차이가 크다 보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구약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각각 ‘설화학’, ‘내러티브’ 분석을 통해 풀어쓴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처음 만나는 구약성서 장 루이 스카 신부 지음 박영식 신부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성경(Bibbia, Bible, Bibel)’라는 단어는 ‘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수 biblia, 복수 biblion’에서 유래한다. 결국, 성경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책을 모아놨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여러 문헌의 모음이라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도서관’이라고도 불린다. 구약성경의 각 문헌은 당시 고대 근동의 공통된 유산에 속하는 우주의 창조, 백성의 기원, 지혜의 보고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성서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문학 유형, 즉 이야기, 법, 일화, 소설, 시, 기도, 잠언, 현실과 실존에 관한 성찰 등을 통해 표현된다. 「처음 만나는 구약성서」는 ‘설화학’이라고 부르는 성경 해석 방법을 통해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31~32) 비유는 큰아들이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했는지 동의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중략) 성서 이야기들은 이와 유사한 예상치 못한 측면들을 적잖게 포함하고 있다. 채워야 할 많은 공백들과 대답 없는 질문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초대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서, 신랑신부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17쪽) 이것은 ‘설화학’이라고 부르는 주석 방법의 독특한 형태이다. 이 방법은 본문들에서 질문, 공백 또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끊는 생략에 주목한다. 이런 단서들은 독자를 자극한다.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은 독자이다. 독자의 대답이 없으면, 본문은 불완전하게 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참으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 독자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한다. 책은 이러한 설화학의 관점에서 고대 이야기의 특성과 구약성경을 읽기 위한 기본 원칙들을 서술한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구약성경을 해석하고, 이어서 구약성경의 신학과 인간학을 고찰한다. “만약 우리가 인간에 관한 성서의 사고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공동체의 중요성은 본질적이다. 성서의 하느님은 라이프니쯔의 단자(單子)처럼 구별되고 개별적 개인을 창조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인류를 창조하신다. 달리 말해 하느님은 하나의 사회를 만드신다. 창세 2,18의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유명한 하느님의 말씀을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337쪽) 벨기에 출신의 저자 장 루이 스카(예수회) 신부는 저명한 성서학자로,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오경 주석을 강의하며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펴냈다. 그중 「모세오경 입문」, 「우리 선조들이 전해준 이야기」, 「인간의 이야기에 깃든 하느님의 말씀」, 「구약성서 입문」 등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하느님의 모상 인간 다윗 크레이그 모리슨 신부 최안나 수녀 옮김 성서와함께 ‘다윗’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다윗과 골리앗’일 것이다. 작은 소년이 무릿매질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려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반전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 이처럼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회자되는 이야기와 일련의 상황들의 전개를 보여주는 수많은 내러티브(서사)가 성경에 존재한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내러티브를 잘 이해하면 성경 속에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고 생생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하느님의 모상 인간 다윗」은 사무엘기 하권을 내러티브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저자는 특히 각각의 장면들을 대구, 병행, 포괄을 형성하는 절들로 구분하고 도식화하여 그 짜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화자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요소들에 어떻게 주제적 응집력을 주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내러티브 접근은 화자가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 곧 말하기의 연출에도 주목한다. 화자가 이야기를 말하는 속도는 얼마인가? 그는 다윗의 전쟁들을 번개 같은 속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2사무 8,1-8), 타마르의 경우 암논의 거미줄에 아주 천천히 걸려들게 한다(13,8-11). 화자는 우리의 관점도 통제한다.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계약 궤를 인도하는 다윗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화자는 우리로 하여금 창밖으로 춤추는 남편을 응시하고 있는 미칼을 올려다보게 한다(6,16). 또한, 화자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이끌 수 있다. 2열왕 17장에서 2개 절(5-6절)로 사마리아의 함락을 보고한 다음에, 화자는 다음 17개 절을 통해 이 패배에 대해 우리가 해석할 거리를 만든다.”(39쪽) 또한, 내러티브 분석 과정에서 다윗이 받았던 풍성한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 그 당시 국제 정세, 왕실의 권력 암투, 그리고 다윗의 가족사뿐 아니라 인간적인 고뇌를 가진 다윗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서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다윗 내러티브는 이스라엘의 역사 서사에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군주제의 기능과 같은 주요한 질문을 몇 가지 제기한다. 그러나 공적이고 사적인 일들이 뒤섞인 상황에서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을 압도한다. 우리는 사울과 요나탄의 장례식에서 임금이 상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다윗이 그의 절친한 친구인 죽은 요나탄에 대한 사랑을 표명할 때 우리 심장은 멎을 듯하다. 우리는 반란군을 물리치는 전투보다 마하나임의 성문에 앉아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로서의 다윗의 극적 정경에 더 집중한다. 그런 사적인 순간에 내러티브가 내면으로 향하여 우리 영웅의 취약성을 드러낼 때 다윗과 나 자신과의 거리는 무너지고, ‘삶은 작은 것에서 더 충만하게 존재한다’라는 울프의 통찰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다윗 내러티브는 큰 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582쪽) 책을 번역한 최안나(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는 “다윗은 주님의 은혜를 엄청나게 입으면서, 그 자신이 지닌 장점뿐 아니라 결점까지도 온전히 다 드러내며 산 사람”이라며 “하느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이 세상에서 말하는 ‘흠도 티도 없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저자 크레이그 모리슨(가르멜회) 신부는 교황청립 성서대학 교수로, 시리아어, 아람어, 타르굼어를 비롯한 여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윤하정2023.03.27

어떤 종교 따르든 ‘정의 실현’은 공동의 과제[한국 천주교회와 이웃 종교](30) 어떤 종교를 따르든지 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의 실현의 공동 과제가 있다. OSV 정의 실현을 위해 여러 종교가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사목 헌장 69항)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수 있을 때 정의가 보장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나이와 역량과 분배된 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차이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불평등을 고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한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이와 같이 정의의 실현은 사랑의 실천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종교를 따르든지 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의 실현의 공동 과제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사랑의 계명이나 자비의 실천 등 자신의 신앙으로부터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이웃 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과 협력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하여 여러 종교가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267항) 공권력은 인권과 사회 규범을 훼손하는 범죄 행위를 억제하고자 범죄자에 대하여 형벌을 부과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형 제도는 일부 중대 범죄에 대한 적합한 대응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형 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 제도가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의문시되며, 사법 제도의 오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존재 전체가 그의 범죄 행위만을 기준으로 판단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형 이외의 형벌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범죄자의 속죄와 교정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형 제도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종교는 일찍이 사형 제도를 폐지하려고 노력해 왔고, 2000년 이후에는 범종교적 차원에서 기도 모임·연극제·포럼·음악회·미술전·정부와 대화 등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사형 집행을 중지하고 있기에, 2007년 이후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의 대열에 있습니다. 사형 제도에 대한 국민 정서의 변화에 도움이 되도록 가톨릭 신자들과 이웃 종교인들은 적극적 연대와 협력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민자와 난민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중략)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40) 세계화 시대를 맞은 오늘날 이주 노동자와 난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이주 노동자 문제는 이민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안에 포함됩니다. 포악한 군주의 횡포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한 성가정은 이주민과 난민의 전형이며 보호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라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신만을 생각하고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며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이처럼 난민과 이주민들을 대하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하시며 세계적 차원의 형제애를 호소하십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이주민들의 노동 가치는 국적·종교·인종과 무관하게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그들의 ‘절박한 처지’가 재정적·사회적 착취의 기회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이주민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문화유산을 존중해야 하며 그 나라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이주민과 난민을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타고난 인간으로 대우하도록 강조합니다. 어떤 종교에 속하든 믿는 이는 누구나 이주민과 난민 발생의 원인이 되는 빈곤과 국제적 갈등, 그리고 곤경에 놓인 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주민과 난민 문제는 사회 통합이라는 큰 과제를 제시합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사회에 속하는, 믿는 모든 사람의 연대와 공동의 노력이 요청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4.12.18

성직자들이 안내하는 성경과 신학김희중 대주교, 이영헌·윤주현 신부 저서
성경·신학·사회교리 깊이 있게 다뤄 오랜 기간 가톨릭교회의 영성과 학문의 맥을 다져온 성직자들의 저서가 잇따라 출간됐다. 탄탄한 연구와 체계적인 구성으로 성경과 신학, 사회교리를 깊이 있게 안내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사회교리김희중 대주교 지음 / 분도출판사제9대 광주대교구장을 역임한 김희중 대주교의 저서로, 고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자 개혁가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전 생애를 통해 설파한 사회교리를 다루고 있다. 감동적인 설교 덕분에 ‘황금의 입’을 뜻하는 ‘크리소스토무스’로 불리게 된 성인은 4세기 안티오키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던 가난하고 병든 이들, 노예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외치며 스스로 총대주교로서의 특권과 재물을 포기한 채 모든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을 반영한 그의 가르침은 경제적인 부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더 많이, 더 빨리 갖기에 급급한 우리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부(富)’는 그 자체로 선이나 악이 아니며 그 쓰임새에 따라 선도 악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태초에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었다는 이 성인의 가르침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가진 바를 모두 내어놓고 필요한 대로 서로 나누어 쓴 결과 부족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10쪽)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살았던 안티오키아와 콘스탄티노플의 일반적인 경제, 사회, 종교적인 상황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영향을 받았던 그리스 세계의 정의 개념과 비교하며 성인의 사회정의 개념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복음서 강론, 특히 마태오 복음과 다른 여러 담화 등에 드러난 성인의 가르침에서 세속 재물의 가치와 활용, 그 사회적 기능에 대해 서술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풍요로운 재산이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교만해서도 안 되며 또한 궁핍함을 하느님의 징벌로 생각하여 원망해서도 안 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의 보상과 재물의 상관관계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니 이를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지 말라고 가르치며 기복신앙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우리를 깨우쳐 준다. 정녕 우리가 주님께 청해야 할 기도는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집착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에 흡족한 자가 되는 길을 깨달아야 알 수 있는 그 은혜를 청해야 할 것이다.”(153쪽)김희중 대주교는 “12년간의 교구장직을 내려놓으며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마련한 이 책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일조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며 “그동안 사랑과 기도로 동행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윤주현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집필한 「신학사」 시리즈가 합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그동안 신학은 그리스도론, 교회론, 삼위일체론 등 주제를 나뉘어 탐구되곤 했다. 하지만 신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신학사도 중요하다. 이번에 출간된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는 교부 시대부터 현대까지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와 흐름을 한 시대도 놓치지 않고 정리했다. 2000년의 역사지만 핵심만 추려 한 권으로 간략하게 볼 수 있다.책은 크게 교부 시대의 신학, 스콜라학 시대의 신학, 근대 신학, 현대 신학 등 4부로 나뉜다. 그러나 세부 목차만 17쪽에 달할 정도로 각 시대에 따라 학파별, 인물별로 신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신학자들의 일생과 사상, 업적까지 다뤘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교 사상 전체를 시대별, 학파별, 인물별, 교도권의 결정에 따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3세기로 들어와 마침내 신학은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신학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분명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대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이고 개념적인 노작 기술에 불과한 3학의 소박한 학예인 변증법으로부터 이성적 정식들을 넘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을 담지하는 영의 철학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고전 세계의 부흥은 13세기의 인본주의와 자연주의를 포함한다.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대변되는 안셀무스적인 신학이 이렇게 확장된 것은 토마스의 업적이다. 12세기에 아벨라르두스는 ‘거룩한 가르침’에 ‘신학’(theologia)이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알랭 드 릴은 신학적 학문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명확하게 고정하려 시도했다.”(302쪽)신학을 공부하는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신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전해주신 진리를 탐구하며,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함께하신 그분의 숨결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주현 신부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로마 그레고리아눔에서 영성 신학을,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 신학 교수로,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에서 영성 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로 2021년 가톨릭 학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마르코복음서 강해이영헌 신부 지음 / 바오로딸마르코 복음서는 그리스도교의 정경 복음서들 가운데 ‘최초 복음서’이며,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의 복음서를 엮어 편집할 때 원전으로 사용한 ‘가장 오래된 복음서’다. 따라서 실제에 가장 가까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다.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관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활동을 보여준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나자렛 출신 예수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응답하면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듯 생동감 있게 복음서를 엮었다. 「마르코복음서 강해」는 이영헌 신부의 성서연학총서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이다. 1부에서는 복음서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2부에서 6부까지는 성경 본문의 성격에 따라 프롤로그, 갈릴레아 활동, 예루살렘 여정과 십자가 따름,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활동, 그리고 부활 발현과 승천에 관한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했다. 각 성경 구절과 단어를 주해하고 배경 설명을 더해 마르코복음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가능한 성경 원문에 충실했으며, 저자의 편견이나 선입견, 자의적인 해설을 피하기 위해 성서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도 참조하며 주석하였다.저자 이영헌 신부는 1984년 인스브루크대학교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신학대학과 예루살렘 성서대학에서 연수했다. 20년 가까이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고, 여러 해 동안 본당에서 사목한 후, 지금은 원로 사목자로 다양한 집필과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3.02.01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19)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견해는 단호하다. 마르코가 전한 복음에 의하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고,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선 난감한 교리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이혼을 위해 종교개혁의 씨앗을 뿌렸고, 성공회가 탄생하였다. 상류층에서 몰래 행해오던 이혼이 점차 인권과 행복 추구권에 대한 시각이 향상되면서 모든 계층으로 퍼졌고, 불륜 이외의 이유로도 이혼이 가능하게 되면서 귀책사유를 따지다 보니 이혼 자체가 큰 사업이 되기도 하였다. 분명 교리를 따라 이혼을 망설이는 이도 많겠지만,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맡기는 이도 부지기수다. 클래식 음악을 살펴보면 결혼에 대한 음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혼에 대한 음악은 거의 없다. 부부가 어려움을 겪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산다는 해피엔딩뿐이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그 유명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차용한 ‘피가로의 이혼’을 만든 작곡가가 있다. 한국 작곡가 신동일이 작년에 발표한 이 오페라는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 콩깍지가 벗겨질 대로 벗겨진 중년 부부에게 닥친 이혼 위기를 코믹하지만 심각하게 다뤘다. 제목만 보면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차용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반전 포인트다. 신동일 - 피가로의 이혼 //youtu.be/W1lhyV-uo04?si=ByrUkXU3Ib0HRA8L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 이혼에 대해 물어본 이들이 바리사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이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라고 하시자 “모세는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답하였다.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바리사이(Pharisees)는 바리새인, 바리새파 등으로도 불렸는데, 현대에서는 이들을 ‘원리주의자'' 또는 ‘경건주의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바리사이에 대해 경직된 원칙주의자라고 보는 경향이 짙어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들이 예수님께 이혼에 대해 모세가 전한 율법을 언급한 것은, 원칙에 대한 엄격함으로 예수님을 반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만일 현대에 ‘예수께서 이혼을 금지하셨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이들의 행동은 바리사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리사이파는 이후 그리스도교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들의 주된 행동 양식이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부분이 간명하고 명백한 부분과 엮어져 있다. 가장 필요 없을 것 같은 것이 신앙의 모체가 되기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신앙인은 이 흔들림을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그리고 바리새인 중 하나(And one of the Pharisees) //youtu.be/CeJvyyNHFVM?si=HldIOzE3CduXx9n7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cpbc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