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하며 살리라제3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우수작(상, 정정희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서울 목5동본당)나는 2007년 12월 10일 세례를 받았다. 햇수로는 3년차이지만 따져보면 아직 1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영아이며, 외짝교우 두 달간의 교리가 전부인 정말 부족한 신자다. "여기에 앉아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주님께서 부르심…"이라며 세례에 앞서 우리에게 하신 신부님 말씀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요즘 나는 부족한 교리와 지혜를 얻기 위해 매일미사 책과 평화신문을 꼼꼼이 읽고, 성경 백주간 모임에 참석해 자매님들과 묵상을 통한 기도를 드리며 "아무 말 말고 3년만 꾹 참고 다녀보라"는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또 한 가지의 작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아직 꼭지 덜 떨어진 새내기 신자다. 사실 셋째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족정책으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을 때였고, 남들은 그토록 어렵다는 임신이 나는 너무 자주 되는 바람에 정말이지 당혹해했다. 딸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원치 않았던 세 번째 임신. 뱃속 아이 또한 딸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은 남편이 자꾸만 병원을 가 보자고 하면 '딸이면 지우라고 할 텐데, 죽어도 병원에는 따라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아이 둘 쑥쑥 건강하게 잘 낳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 아프면 이야기 할게요"라고 불안에 떨며 답하게 했다. 하지만 남편은 끈질기게 "요즘 세상에 아이 셋 줄줄이 달고 외출하는 집이 어딨냐? 다른 집 여자들은 깔끔하게 티 안내고 처리도 잘 하던데 넌 왜 못하냐?"라며 셋째 임신을 나무랐다. 며칠 밤을 고민하다 병원을 찾기로 했다. 다음 날 남편이 건네준 병원비를 들고 퇴근 후 산부인과를 찾았다. 하루 종일 병원에 가서 아이 지울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처음 찾은 병원 안내 데스크에는 "원장 선생님 세미나 참석으로 오후 진료는 쉽니다"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나갔다. 거리를 헤매다 두 번째 병원을 찾아 들어섰다. 안내를 받아 수술대 위에 누웠고,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장갑을 끼고 다가왔다.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만요! 제가… 오늘 가서 다시 생각해보고 올게요." 의아해하는 주변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엉엉 소리쳐 울면서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 아이는 제가 키울게요. 제 의료보험에 올리고-그 때 그 시절에는 두 명의 자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제가 벌어서 키울게요. 제발요…"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임신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5살, 3살 딸 아이 둘을 건사하기도 바쁠 시기인데 입덧까지 심한 셋째를 갖고 보니 직장인 학교생활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1년을 휴직하기로 마음 먹었더니 휴직 서류에 임신진단서를 첨부하라고 했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찾아간 곳이 가톨릭병원이다. 나를 진단해 준 여의사는 세 번째 임신인 걸 정말 축하해주었다. "정말이지 장하세요. 전 아이가 하나인데 둘째 갖기가 두려워요. 병원이라는 곳이 일이 많아서 동료 의사들 피해주는 것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을 도울 일이 없나요?" 너무 친절한 의사의 말에 "보통 병으로 휴직하면 70퍼센트의 봉급이 나오는데… 건강해서 임신이 된 건데요 뭘…." 의사와 내 눈이 마주쳤다. 의사는 진단서에 무어라 영어로 적기 시작했다. "제 의사생활에서 이런 오진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진단서를 건넸고, 난 그 진단서 덕분에 일 년 동안 세금 한 푼 떼지 않는 70퍼센트의 봉급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아이는 복덩이에요. 저 먹을 것 다 챙겨가지고 나오잖아요.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하며 임신 내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성경 백주간 모임에서 묵상했던 부분이다. 야훼이레… '주님께서 그 때부터 날 지켜봐 주시고 늘 함께 하셨구나''수호천사를 보내 아이 생명을 지켜주셨구나' 생각하니 절로 무릎이 꿇어지고 엎드려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남편은 체면을 중시하며 자랐던 집안사람답게 우리가 살던 아파트 광장 맞은편에 사는 직장 상사나 그 부인에게 임신이 알려지면 곤란하다며 장보러 나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외출을 금지 당한 채 남편이 퇴근하면서 사다 주는 부식으로 만족하며 살아야만 했다. 셋째는 입덧이 유독 심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정해져 있었다. 언젠가 용기를 내어 한 번 음식을 사 달라고 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남편은 음식값을 치르면서 "누가 보면 우리 집이 갑부인 줄 알겠다." 언감생심. 그 이후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달라는 말은 꺼내 볼 수도 없었다. 달이 꽉 차 진통이 올 때까지 고집스레 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출산하고 나니 셋째는 건강한 아들이었다. 결혼 후 여태껏 한 번도 고맙다는 표현을 나에게 해 주지 않았던 무뚝뚝한 남편은 "수고했어. 정말 고맙다. 맞벌이 아내랑 살면서 자식 둘 이상은 사치라고 생각했다"며 살가운 말을 건넸고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출산 후 딸이 일곱이었던 친정 엄마가 아들 손자를 키워주시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친정 가까이 집을 옮기고 딸 둘까지 덤으로 6년 넘게 친정 엄마 도움을 받아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셋째를 낳을 때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남아선호 사상이 잔존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딸 둘 낳고 아들 낳았으니 나는 200점 엄마가 되었다. 동시에 아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렇게 늦게 막내아들 두었다고 감사하며 부지런히 세 아이 키우며, 직장인이자 아내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살았다. 셋째 아이가 7살이 되던 해, 몸이 무겁고 소화가 잘 되질 않아 내과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산부인과를 먼저 다녀오라 했다. "아뿔싸! 몸이 힘들었던 이유가 또 임신!"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아이 한 명만 더 낳아 기르자"며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의 임신 소식에 환호하며 좋아했다. "하늘이 내리신 고귀한 선물인데 당연히 낳아야지"하면서 말이다. 반대로 이번에는 내 생각이 달랐다. '최씨 문중에 시집와서 할 일 다 했어. 이제 나도 내 삶에 날개를 달으리라.' 대학 동기들이 전문직인 장학사로 나가기 시작했고, 나 또한 장학사 시험에 응시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던 터다. 하지만 남편의 강한 권유를 거절할 수가 없었고, 나는 괴로운 심정을 친정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 나 임신이래. 어떡하지… 넷째지만 어떡해… 낳아야 할 것 같아." "네 손으로 아이들 셋 제대로 키웠다면 그 입으로 아이 또 낳는다는 말은 못할 것이야.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서 친정어머니는 더 이상 아이를 키워 줄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요즘처럼 저출산이 문제라 하여 출산을 우대하지도 않았거니와 집안 경제가 직장생활을 그만둘 만큼 탄탄한 것도 아니었다. 넷째 임신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가 껄끄러웠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 넷을 건사한다는 것도 녹록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을 것인가? 아니면…' 나로서는 중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나를 팔순의 시골 촌로인 시어머니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배운 여자들이 남편 공경할 줄 모르고, 특히 선생들이 아이들 시켜먹는 버릇이 있어 남편을 막 대한다며 나와의 결혼을 염려하셨던 분이신데 적잖게 당황하신 것 같았다. "문중의 자손을 늘리는 일이니 뭐라 딱히 할 말은 없다만…"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친정어머니는 아이 넷 키우는 것이 이 땅에서는 고스란히 여자의 몫임을 너무 잘 알기에 딸의 고단함을 염려하셨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아들 혼자서 가정경제를 책임져야함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렇듯 주변의 모든 염려를 물리치고, 13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접고 만만치 않은 나이 서른일곱에 넷째를 낳았다. 사표를 썼으니 그만두었다는 표현이 옳다. 일반적으로 지금도 늦둥이라고 하면 '아들 낳으려고 그랬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내 경우는 위로 딸 둘이 있고 아들이 있었으니, 주신대로 감사히 받았을 뿐이다. 늦게 낳은 막내는 또 아들이다. 넷째를 낳고나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출산 후 2년 동안 집에서 아이 돌보며 살림하는 동안 나의 위치는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라 불리던 호칭이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자신만만했던 내 호기는 점점 줄었고, 출근할 때 입던 옷들은 옷장 속에서 거북살스럽게 돌아다녔다. 남편이 돈 벌어 오라고 등 떼민 적은 없었으나 집에서 살림만 하다간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은 내 욕심은 다시 한 번 기회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임용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걸레질을 하면서도, 아이를 등에 업고 잠재우면서도 귀가 따가워 진물이 나올 때까지 이어폰을 끼고 교육학 녹음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시간을 살뜰히 쪼개어 살았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어김없이 부스스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다음 호에 계속남정률2009.06.23
성경 하루 한장 읽기(열왕기 하권, 9∼15일)▨열왕기 하권(9∼15일) ▲17장(9일) : 마침내 주님께서는 당신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땅에서 ( )로 유배를 떠나 오늘에 이르렀다. ▲18장(10일) : 호세아 제칠년에,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사마리아로 올라가 그곳을 포위하고, 세 해 만에 함락시켰다. 곧 히즈키야 제육년, ( ) 임금 호세아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이다. ▲19장(11일) :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 )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20장(12일) :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 )는 슬피 통곡하였다. ▲21장(13일) : 내가 명령한 모든 것과 나의 종 ( )가 명령한 모든 율법을 준수하여 지키기만 하면, 이스라엘이 다시는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헤매지 않게 하겠다. ▲22장(14일) : 가서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을 두고,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해 주님께 문의하여 주시오. 우리 ( )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23장(15일) : 임금은 모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사제들과 예언자들, 낮은 자에서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데리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된 ( )의 모든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남정률2007.09.05
[교회상식 교리상식-107]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11) 시몬과 유다시몬과 유다는 성경의 열두 사도 명단에서 열 번째나 열한 번째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옵니다. 이번 호에는 시몬과 유다에 대해 알아봅니다. ◇시몬 시몬은 열두 사도 명단에서 '열혈당원'으로 소개됩니다(마태 10,4 ;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열혈당원은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던 로마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자주 독립을 꾀하던 이들을 일컬었지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시몬을 열혈당원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시몬은 예수님께 제자로 부름 받기 전에 이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것 같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앞에 '열혈당원'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칭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몬이 열혈당원으로 활동했음을 확인해주는 표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열두 사도 명단 외에는 시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대목에서 시몬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형제인 시몬입니다(마태 13,55 ; 마르 6,3). 따라서 애석하게도 사도 시몬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시몬 역시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전승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 혼인잔치의 주인공 신랑이었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탄생 소식을 천사에게서 전해들은 목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6세기쯤에 유포된 「시몬과 유다 수난기」 같은 위경에 따르면, 시몬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톱질로 몸이 잘리는 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시몬 사도의 상이나 그림은 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시몬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다고 하지요. 열혈당원이라는 말 자체에 열정이 담겨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시몬 사도 축일은 10월 28일에 지냅니다. ◇유다 유다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나옵니다(루카 6,16 ; 사도 1,13). 반면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는 타대오라고 부르지요(마태 10,3 ; 마르 3,18). '다두'라는 세례명은 이 타대오를 한자식으로 표기해서 부른 것입니다. 복음서들에서는 이렇게 유다와 타대오로 이름이 달리 표기돼 있을까요. 어쩌면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의 저자들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을 혼동하지 않도록 일부러 타대오라고 기록했을지 모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라는 설도 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교회 전통은 초기부터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타대오를 같은 인물로 여겨왔습니다. 성경에서 열두 사도 명단 외에 이 유다의 이름이 나오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2절로, "유다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라고 나오지요. 이 표현으로 미뤄 초기 교회에서도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유다 이스카리옷을 구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전통은 오랫동안 이 유다가 유다 서간을 쓴 저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유다 1,1)와 동일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이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인 셈입니다. 마르코복음 6장 2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하고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사람들이 말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들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유다서 저자이자 예수님의 형제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두 사도의 하나로 야고보의 아들이자 타대오라고도 불리는 유다에 대해서도 더 확인할 길이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전승이나 전설에 따르면 유다는 시몬과 함께 열혈당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또 위경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서는 유다가 시몬과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시몬이 톱질로 순교당한 데 비해 유다는 창에 찔려 순교했거나 또는 도끼로 참수형을 당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다 사도는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유다 사도 축일을 시몬과 같은 날인 10월 28일에 지내는데, 이 또한 시몬과 유다가 함께 활동하고 순교했다는 전승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9.02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2- 마음 정화하고 자비 청하며 미사 참례 1. 미사전례-시작예식 미사전례에 참여하게 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통일된 행동을 취하게 된다. 통일된 행동은 미사전례 참여자들에게 일치감과 공동체성을 느끼게 해준다. 시작예식은 모든 이들이 미사에 올바르게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들으며 합당하게 성찬례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음의 정화를 이루게 해 준다.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고백하고, 자비와 용서를 청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시간인 것이다. 사제와 봉사자들이 입당하는 도중에 교우들은 입당송 혹 입당성가(만일 입당송을 할 경우에는 성가를 부르지 않는다. 둘 중에 하나만 한다)를 하게 되며, 입당이 끝나면 사제는 제대에 정중하게 절을 한 후 교우를 향해 십자성호, 인사말, 참회예절, 사죄경과 주일(혹 축일과 대축일)인 경우에는 대영광송을 함께 한다. 시작예식은 사제가 본기도를 바치면서 마친다. 1.1 십자성호 그리스도인들이 미사전례에 참여하거나 혹은 기도를 시작할 때 처음과 끝에 하는 행동은 십자성호이다. 성수를 손끝에 묻혀 이마와 배 그리고 양쪽 어깨에 표시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표현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며, 십자가 희생의 결과인 구원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 또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자 가톨릭 신자임을 드러내는 외적 표지이다. 십자성호는 가장 단순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위이지만 가장 핵심적 신앙고백을 표현하고 있다. 초기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십자성호를 통해 자신의 신원을 드러냈다. 오늘날 자연스럽고 당당한 자세에서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2 참회예절 그리스도인들은 참회예절로써 하느님과 화해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과 죄의식에 대한 인식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참회예절 중 (가) 형식은 초기 공동체에서 공개적으로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고백하고 성모님과 천사, 성인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아름답고도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미사 때나 혹은 다른 시간에 참회 기도를 드려본다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하느님과의 만남과 통교를 위한 정화예식과 같은 참회예절은 사제가 공동체를 대표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함으로써 마친다.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죄 용서는 하느님 몫이고 공동체와 개인은 단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뿐이다. 1.3 사죄경 공동체를 대표해 사제는 하느님께 공동체와 개인이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 참회예절은 고해성사처럼 성사적 효력을 갖지 않지만, 예절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것을 약속하면서 용기를 얻는 중요한 기도문이다. 이때 사제가 팔을 벌리며 기도하는 자세는 초기교회 로마 카타콤바 벽화에서 발견되었으며, 두 손을 높이 펴들고 기도하는 자세는 거의 대부분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보편적 기도 자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성경에서도 이런 기도 자세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손을 펴드는 자세는 높이 계신 하느님께 향하고 그분의 도움을 바라는 자세이다. 1.4 아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마칠 때, 반드시 "아멘"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앞서 기도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사전적 의미로는 히브리말로 "신뢰할 만한"이며, 그리스어는 "진실로", "그렇습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유다인들은 능동적으로 동의함을 나타낸다.cpbc2009.05.26
![[잊혀진 선교루트 차마고도를 가다] 3 - 순교자의 땅 치중성당](//cpbc.co.kr/CMS/newspaper/2009/06/rc/297246_1.0_titleImage_1.jpg)
[잊혀진 선교루트 차마고도를 가다] 3 - 순교자의 땅 치중성당하늘과 맞닿은 그 곳, 신앙의 샘 고이 흐른다19세기 중반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화 물결1921년 완공된 치중성당, 가톨릭 문화 토착화 전형농산물로 봉헌, 사제 양식으로…장족말 미사 전례동서양 건축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치중성당. 적막산중인 치중에 이 성당을 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순교자의 땅 치중(茨中)은 잊힌 선교루트 자취를 따라 찾은 차마고도 환상을 충족시켜 주었다. 장구한 티베트 문화를 누려왔던 이 땅은 '아늑한 분지'라는 뜻의 티베트 말 '치중'과 딱맞아 떨어진다. 더칭(德淸)에서 약 80여km 떨어져 있다. 오늘날 티베트인 시짱(西藏)자치구 얜징(鹽井)마을과 인접한 이곳은 매리쉐산(梅里雪山)과 바이망쉐산(白茫雪山)이 동ㆍ서 그리고 북쪽으로 둘러싸고 있고, 란창강(瀾滄江)이 남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 4000m가 이르는 협곡속 구름 아래 마을로 옛 티베트인들인 장족(壯族)이 끝없는 고요 속에서 하느님 섭리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국 여러 소수민족들 가운데 장족을 구별하려면 먼저 '고원홍'이 있느냐를 살피면 된다. 고원홍은 광대뼈와 코가 검붉게 탄 것을 말한다. 직사광선이 강렬한 고원의 옛 티베트 지방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고원홍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본래 장족은 잘 씻지 않는다. 고산지대에서는 건조하고 햇볕이 강해 말끔하게 씻을수록 되레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이 심해진다. 장족들이 머리에 붉은 터번을 두르거나 모자를 쓰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동행한 김상진(스테파노) 신부는 일행에게 고도가 낮은 쿤밍(昆明)에 도착 전까지 가능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으라고 충고했다. 비포장길에 먼지를 뒤집어쓴 일행은 김 신부의 충고를 웃어넘기고 샤워를 했다. 그날 밤 건조한 피부 때문에 온 몸이 가려워 잠을 설쳤다. 이후 모두는 씻지 않고 장족처럼 때가 꼬질한 고원홍으로 점차 변해갔다. 19세기 중ㆍ후반 프랑스 선교사들은 더칭(德淸)을 중심으로 티베트 땅에 복음을 전했다. 한국에서 병인박해가 시작된 해인 1866년 프랑스 선교사 2명이 처음으로 라마교와 무속만을 알던 치중 주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치중을 중심으로 인근 샤오웨이시(小紐西)ㆍ디마뤄(迪麻洛)ㆍ공산(貢山)ㆍ빙중뤄(丙中洛)ㆍ얜징(鹽井) 마을이 빠르게 복음화되자 1905년 홍포시(紅坡寺) 라마승들이 토호 세력들을 이끌고 급습, 성당을 불사르고 프랑스 선교사 2명과 신자 3명을 때려 죽였다. 신자들은 설산에 버려진 선교사들 시신을 수습해 더 이상 화를 막기 위해 얜징 마을에 안장했다. 아울러 파리외방전교회는 치중에 새 선교사들을 파견했고, 청나라 조정에 선교사 학살과 선교지 파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 보상금으로 새 성전을 지었다. 1909년에 착공, 12년 만인 1921년 완성된 치중성당은 오늘날 중국에서 가톨릭 문화 토착화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의 전통 가옥 위에 고딕 종탑을 올려놓은 성당은 아름다운 티베트 전통 단청으로 내부를 장식했다. 문화혁명 당시 초등학교로 전용되면서 성경 내용을 담은 성화가 모두 훼손됐지만 천정과 기둥 윗부분에 십자가 문양과 천사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치중성당은 1987년 중국 인민정부 문화재로 지정됐다. 치중에서 가톨릭 문화 토착화 예는 비단 성당 건축물만이 아니다. 장족말 기도와 성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전례 예식을 고수하고 있다. 남녀 신자석이 양쪽으로 엄격히 구분돼 있고, 양손을 엇갈려 가슴에 모은채 영성체를 한다. 헌금 대신 각자 재배한 옥수수, 칭커, 채소와 달걀 등을 봉헌한다. 이 봉헌물이 본당 사제의 일용할 양식이다. 미사 중 아기가 보채자 아기 엄마는 주저없이 훌러덩 앞가슴을 열어 젖을 물린다. 한족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노인들은 미사 도중 연신 묵주알을 돌린다. 미사 시작과 끝에 신자들은 정성스럽게 장족말 기도문을 공동으로 바치고, 장족 성가로 하느님을 찬미한다. 치중성당 건립 당시 20~30명이었던 신자 수는 현재 주민의 절반인 6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해 치중본당 임시 주임으로 부임한 내몽골 출신 타오페이(挑飛, 요한) 신부는 "나이든 신자들이 장족말로 고해를 할 때 잘 알아듣지 못해 안타깝지만 사목에 보람을 느낀다"며 "가톨릭 신앙이 전 주민에게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상진 신부는 "세계에서 장족말로 미사 전례가 봉헌되고 기도를 드리는 곳은 여기 뿐"이라며 "빨리 장족말을 능숙히 익혀 토착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해 달라"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9.06.02
성경 하루 한장 읽기(9월 23일~10월 6일)한가위 연휴 휴간으로 2주치 싣습니다 ▨역대기 상권(23일∼10월 6일) ▲6장(23일) : 계약 궤가 주님의 집에 자리 잡은 뒤에 다윗이 그곳에서 ( )를 책임지라고 임명한 사람들은 이러하다. ▲7장(24일) : 이들은 모두 아세르의 자손들로서 각 집안의 우두머리고 선택된 힘센 용사들이며, 으뜸가는 수장들이다. ( )에 오른 사람으로서 출전할 수 있는 군사들의 수는 이만 육천 명이었다. ▲8장(25일) : 이들이 세대별로 본 각 가문의 우두머리다. 이 우두머리들은 ( )에서 살았다. ▲9장(26일) : 유다의 자손들과 벤야민의 자손들과 에프라임과 므나쎄의 자손들 가운데 ( )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러하다. ▲10장(27일) : 사울은 주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었다. 그는 주님의 분부를 따르지 않아 주님을 배신하고, ( )를 찾아 문의하면서도, 주님께는 문의하지 않았다. ▲11장(28일) : 다윗이 간절하게 말하였다.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 ) 동굴에서 물을 가져다가 나에게 마시도록 해 주었으면!" ▲12장(29일) : 전투 대열을 갖춘 이 모든 군사가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려는 한마음을 품고 ( )으로 모여들었다. ▲13장(30일) : 하느님의 궤가 그 집에서 오벳 에돔의 집안 사람들과 함께 ( )을 머무르는 동안, 주님께서는 오벳 에돔의 집안과 그에게 딸린 모든 것 위에 복을 내리셨다. ▲14장(10월 1일) : "큰물로 무너뜨리듯, 하느님께서는 내 손으로 원수를 무너뜨리셨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 )이라 하였다. ▲15장(2일) : 주님의 계약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갈 때, 다윗 임금이 껑충껑충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 )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16장(3일) :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제물을 들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 ( ) 차림을 하고 주님께 경배하여라. ▲17장(4일) : 바로 그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지을 사람이다. 나는 그의 ( )를 영원히 튼튼하게 하겠다. ▲18장(5일) : 그래서 다윗 임금은 ( )도 에돔, 모압, 암몬의 자손들, 필리스티아인들, 아말렉, 이 모든 민족들에게서 거둔 은과 금과 함께 주님께 바쳤다. ▲19장(6일) : 용기를 내어라. 우리 백성을 위해서, 우리 하느님의 ( )을 위해서 용기를 내자. 주님께서는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이루실 것이다.cpbc2007.09.19
[교회상식 교리상식-110] 천사 이야기(1)천사는 어떤 존재인가요교회는 9월 29일을 성 미카엘과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로 지냅니다. 또 10월 2일은 수호천사 기념 축일이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와 「한국가톨릭대사전」을 중심으로 천사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봅니다. ◇천사는 존재하는가 천사는 흔히 하얀 옷에 날개를 단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때로는 꿈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천사란 상상 속 존재이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면서 21세기의 과학 시대에 '천사'가 어디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천사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요? "성서가 보통으로 천사라고 부르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적인 것들의 존재는 신앙의 진리이다. 성전 전체의 증언이 일치하듯이, 성서의 증언도 명백하다." 「가톨릭교회교리서」 328항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교회는 천사가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임을 신앙의 진리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진리'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되는 진리는 아니지만 진리임을 믿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천사의 존재가 신앙의 진리라는 교회 가르침은 계시의 두 원천인 성경과 성전의 증언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가톨릭교회교리서」에 따르면 천사는 순수한 영적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이뤄진 존재입니다. 육신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며 나아가 죽음을 겪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천사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영적 존재이기에 죽지 않습니다. 나아가 천사는 지성과 의지를 지닌 인격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인격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입니다. 또 천사는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더 완전한 존재"입니다(330항).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천사에 대한 설명은 꽤 흥미롭습니다. 성인은 "'천사'는 본성이 아니라 직무를 가리킨다"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본성은 무엇인가? 영(靈)이다. 그 직무는 무엇인가? 천사다. 존재로서는 영이고 활동으로는 천사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성인의 이 말을 풀이해서 "천사는 그 존재 전체가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며 전령이다"고 밝힙니다(329항). 이는 천사라는 말이 지닌 의미와도 상통합니다. 하늘의 사신 또는 하늘의 심부름꾼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천사(天使)는 희랍어 앙겔로스(αγγελοs)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사절(使節) 또는 사자(使者)라는 뜻을 닌 히브리어 말락(malak)을 번역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는 천사의 활동 천사는 죄악이 창궐한 소돔을 멸망시킬 때 의로운 사람 롯을 구하고(창세 19장), 외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칼을 빼든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며(창세 22,11), 하느님 백성을 인도하고(탈출 23,20-23), 소명들을 알리고(판관 6,11-24), 예언자들을 돕습니다(1열왕 19,5).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탄생을 알린 것도 천사 가브리엘이지요. 특히 예수님은 탄생 때부터 하늘에 오르실 때까지 천사들의 경배와 봉사를 받으셨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고 노래합니다(루카 2,14).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시중을 들었고(마르 1,13), 겟세마니에서 번민에 싸여 기도하실 때 용기를 북돋아 드렸습니다(루카 22,43).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 것도 천사들이었습니다(마르 16,5-7).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심판을 도와드리게 될 이들도 천사들입니다(마태 13,41; 루카 12,8-9). 나아가 교회도 천사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풀어주고(5,19-20; 12,6-11),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을 도와주며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8,26-29; 27,23-25). 또 교회는 장례 때 "천사들이여, 이 교우를 천상 낙원으로 데려가시어…"하면서 천사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정리합시다 정리하자면 천사는 순수한 영적 피조물이고, 눈에 보이는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더 완전한 존재로서 하느님의 사신, 전령 역할을 하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신, 전령 역할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 계획에 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천사들의 일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천사들은 창조 때부터 구원 역사의 흐름을 따라, 줄곧 이 구원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알리고, 이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332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9.30

"가슴으로 성령을 받고 세상을 변화시켜라"세계청년대회 참가기 변정은(율리안나, 제주교구 서문본당) 2005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를 평화방송을 통해 접하면서 나도 다음에는 꼭 참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3년 후,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바로 언어 문제였다.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내 뜻은 이게 아닌데 상대방은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불안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 민박 가족과의 만남 후, 짧은 문장과 단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고 나중에는 농담도 주고받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느님을 초대하지 못하고 내 능력과 자신에만 의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가 이렇게 쉽게 통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성령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주님 말씀의 씨앗 자라 열매 맺길 교리교육은 3일간 한국에서 참가한 세 분 주교님과 함께 했다. 처음에는 교구별로 선발된 패널들의 신앙 나눔을 듣고 이후 주교님의 강의와 미사로 이뤄졌다. 나에겐 교리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 특히 권혁주(안동교구장) 주교님께서 성경과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면서 '똘레 레제(집어라, 읽어라)'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6월부터 창세기 성경공부를 시작한 나는 성경이 어렵다고 느껴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내 마음의 밭에도 주님의 말씀 씨앗이 잘 자라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하면서 앞으로 기도와 용서와 사랑으로 내 마음의 밭을 잘 가꾸고 성경공부도 꾸준히 해 항상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과 함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다. 십자가의 길은 마리아 주교좌성당에서 바랑가루까지 3시간가량 진행됐는데, 비록 연기자였지만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예수님의 슬픈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욕심과 질투였다. 이번 대회에서도 나는 서로 얻은 것을 비교하고, 질투하게 됐다. 사람에게는 각자 달란트가 있고 각자 몫이 있는데 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큰 것만 추구하려 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서로 몫을 이해하고 내 것을 포기할 줄 알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갖는 것이 내 삶의 숙제로 남았다. 사실 이번 세계청년대회를 축제로 즐긴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큰 깨달음만을 얻으려는 집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운 시간도 많았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한국청년대회 안내 봉사를 하면서 하느님과 나와의 진실한 만남 시간이 별로 없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 큰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보니 그 순간순간 나는 하느님과 만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많은 외국인들과 알렐루야를 노래한 일, 교황님 얼굴 자세히 보려고 자캐오처럼 쓰레기통 위에 올라갔던 일, 밤샘기도 때 전날 만난 참가자와 또 옆자리에 앉았던 일, 옆에 앉은 외국인과 한국 과자를 나눠먹은 일, 선물을 교환하던 일, 하느님을 향한 40만 명의 찬양 등 이 축제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던 일임을 확신한다.마음을 열어 성령을 받으십시오 폐막미사 중 교황님 강론 중에 기억나는 딱 한마디가 있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오시는 데 마음을 열어 성령의 힘을 받으십시오.' 난 이상하게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말씀이 내가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살아가는 데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주님, 참가자 모두가 이번 대회를 통해 성령의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벗이 되게 하소서. 아멘. 이지혜2008.07.29